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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오랫동안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해서 그런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거는 구호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다. 정책연구자의 본능이다. 독재정부든, 문민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관계없이 정치적 슬로건은 국정지표와 정책변화를 예고하는 풍향계이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구호만도 ‘근대화’, ‘세계화’, ‘지식’, ‘혁신’, ‘균형’ 등 꽤 된다. ‘교육개혁심의회’, ‘중앙교육심의회’, ‘교육개혁위원회’,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교육혁신위원회’의 문패는 정권의 부침사를 말해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만큼 정치에 가까운 게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벌써 ‘균형’과 ‘혁신’이란 말 대신에 ‘창조’와 ‘실용’이 뜨고 있다. 교육에서는 ‘자율’과 ‘경쟁’의 바람이 분다. 인수위 워크숍 관련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비전은 ‘선진화를 통한 세계 일류 국가’라고 규정. 대한민국의 역사를 ‘발전의 역사’로 긍정 평가하고 건국화, 산업화, 민주화를 승화시킨 새로운 발전모델을 지향하기로 했단다. 국정철학을 ‘화합적 자유주의(Harmonious Liberalism)’로 설정하고 행동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Creative Pragmatism)’를 지향키로 했다고 한다.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새 정부의 행동규범은 “아이디어는 창조적으로, 실행방법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5대 국정 지표는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 △ 활기차고 열린 시장 △ 능동적 복지와 고신뢰 사회 △인재대국을 지향하는 평생학습국가 △글로벌 코리아의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실용주의가 아닌 ‘창조’이다. 얼마 전 폐막된 다보스 포럼에서 빌게이츠는 배려와 인간의 얼굴을 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 신문의 기사를 장식했다. 빌게이츠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에는 ‘지식’이란 말보다 ‘창조’란 말이 우선한다. 오늘날 사회를 견인하는 키워드는 ‘창조성’이다. ‘창조사회’, ‘창조적 경제’, ‘창조적 자본’ 등 지식 대신에 창조로 시작하는 말이 유행이다. 2007년도는 삼성의 ‘창조경영’이 화두였다. 최근 두바이의 성공사례에서도 창조는 성공을 위한 핵심적인 키워드로 대두된다. 지금은 지식과 혁신을 넘어 창조의 시대로 가고 있다. 실용주의 앞에 있는 ‘창조적’이란 말은 그냥 수식어가 아니라 경제 패러다임 변환을 말한다. 실체가 있는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창조적 경제’ 논의를 이끌고 있는 리처드 플로리다에 따르면 이미 미국 산업에서 1, 2차 산업인 농업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1920년 이후 급속히 감소하여, 농업의 경우는 10%에, 제조업의 경우 20%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창조적 경제의 도래와 함께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력은 과학자, 엔지니어, 아키텍트, 디자이너, 교육자, 예술가, 음악가 등과 같은 창조적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전체 산업 인력의 26%가 제조업, 40%가 서비스업, 30%가 창조적 산업에 재직하고 있지만, 44%의 서비스업 재직자가 전체 경제적 수익의 30%를 창출하는 반면, 30%에 불과한 창조적 산업 재직자가 무려 전체 수익의 절반에 육박하는 47%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창조적 계급이다. 오늘날 교육의 역할은 창조적 계급을 육성하고 빨아들이는 자석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플로리다의 창조성에 대한 관점은 경제성장의 3T란 단순한 공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T란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말한다. 3T가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플로리다의 핵심 메시지‘ 인간의 창조성’은 경제 성장의 궁극적 원천이며, 모든 개인은 창조적이며, 그러한 창조성을 완전히 개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관용적이어야 하며, 다양해야 하며,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재가 가는 곳에 혁신, 창조성, 경제성장이 뒤따른다. 그런데 그런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그 지역에는 관용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를 다 갖춘 조직이 바로 대학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인재, 관용, 기술의 집적지이기도 하지만 이를 빨아들이는 자석과 같다. 창조성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본질적 요소다. 교육의 본업정신도 바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창조성이 발현되도록 돕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언제부터 우리가 교육의 시장 모델에 관대하고, 친화적인 교육자들이 되었나 의아심이 든다. 공교육의 당초 이념은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시민으로서의 공통된 자질을 길러주는 공통학교에 있다. 수월성에 앞서 ‘위대한 평등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있었다. 초·중등교육 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고난 창조성을 꽃 피우게 하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실용성에 앞서 창조성이 우선한다. 인재대국을 지향하는 평생학습국가 건설이란 천릿길도 오늘날 초·중등 공교육의 정신에 충실하는 첫 걸음을 잘 떼는 데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 대신에 글로벌 코리아를 주창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인수위 때부터 영어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영어 공교육 원년에 앞서 창조교육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플로리다의 창조경제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대운하, 맘모스 스타디움,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등 대형공사에 앞서 교육과 문화 예술 등의 창조적 인프라에 충실하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창조경제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장에 기초한 ‘창조적 실용주의 교육’과 춤을 추기가 주저된다.
이러한 시구들은 입시 대비와 무관하게 내 푸른 시절을 온통 뒤흔들며 다가왔다. 어느새 나 자신은 또 다른 ‘종’, 또 ‘죄인(罪人)’과 ‘천치(天痴)’, 또 다른 ‘수캐’였다. 그의 자화상은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내 청춘이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로 자신을 성찰하며 시작하자마자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로 영원히 끝나기를 바랐다. 다가올 삶이 마냥 불안하였으므로 삶이 그대로 끝나도 나는 좋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아니 나는? 고등학교 때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배웠던 시간. 작가가 시인부락 동인이며 시 또한 입시에 자주 출제되니 그의 시는 반드시 외우라는 지시가 모두에게 떨어졌다. 별 어려움 없이 금세 외울 수 있었다. 시작은 ‘별로’ 탐탁하지 않았지만 과정은 ‘왠지’ 쉬웠고 성과도 ‘제법’ 근사했던 셈이다. 그랬다.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어휘는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고, 또한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심상은 내 머리 가득 폭발했고, 역시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운율은 내 호흡 온통 흔들리게 만들었다. ‘무엇인지’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 질문이 얼마나 큰지 당시에는 미처 가늠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국문학 작품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나는 비로소 그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서구의 형식주의와 신화주의 비평의 세례 속에서 미당의 시들은 마침내 휘황한 정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화사집과 귀촉도, 신라초와 동천, 그리고 질마재 신화로 이어지는 미당의 시들은 거대한 언어의 세계였다. 국문학 교수들은 서구 문학 이론으로 중무장하고 미당이 노래하는 이 땅의 정서와 언어를 능숙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의 시가 갖고 있는 마력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그의 언어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나의 호흡을 어떻게 멎고 트이게 하였는지 가르침은 명료하면서도 웅숭깊었다. 나는 문학의 비밀을 마침내 제대로 엿보기 시작한 청년, 문학의 풍요로움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영혼이었다. 나는 교수들을 학문의 스승으로, 미당을 창작의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화사(花蛇)의 “아름다운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그리고 문둥이의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귀촉도(歸蜀道)의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추천사(鞦韆詞)와 춘향 유문(遺文), 다시 동천(冬天)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내가 돌이 되면 등의 여러 시행마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긋고 또 긋고 있었다. 그의 상상력은 멀리 수천 년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나를 끌어들였다. 기존의 언어에 자유자재로 리듬을 불어넣고 의미를 찾아내는 솜씨는 신부와 해일과 같은 산문시에서도 예외없이 놀랍게 빛났다. 특히 미당의 운율은 지금까지도 내 글과 내 호흡의 운율을 저 바닥 깊은 곳에서 좌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시들을 읽을 때 기본 운율로 작동하고 있을 듯싶다. 서정주. 그는 언어의 진정한 연금술사였다. 단지 몇 개의 낱말들이 그의 머리와 가슴, 목을 거치면 언제나 새로운 언어의 세계가 천상의 우주보다 더 웅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미당 덕분에 시란 그저 영감이 스쳐서 이루어질 뿐이라는 가벼운 낭만적 가치관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다시 흔들리고 또 다시 흔들렸다. 그는 내게 신화의 언어이자 언어의 신화였다. “미당은 운명하기 전까지 거의 60여 년 동안 십수 권의 시집을 펴내며 시작 활동을 계속해 온 열정의 시인이었다. 초기에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 원죄 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 준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자화상)” 청춘의 피끓는 고뇌에 괴로워하는 시기다. 첫 번째 시집인 화사집((1941)에서 보여주는 본능적이고 관능적이며, 악마적이며, 상징적인 시들이 이 무렵의 대표적인 시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불안한 젊은 천재의 모습이 어린다. 귀촉도(1946) 이후 불교와 신라를 만나면서 놀라울 만큼 변모한다. 즉 동양적 세계관으로 관심을 돌려 안정된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시인의 고향인 ‘질마재’는 유교와 불교, 무교가 뒤섞인 정신적 자궁으로서 톡톡히 구실한다. 토착적인 언어로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자유롭게 노래한 시기다. 말년에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계속 시를 쓰는 놀라운 열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허병두, “'국어의 절정'-'반민족' 곤혹스럽게 하는 미당의 시”, 한겨레신문, 2004년 11월 15일) 하지만 미당, 서정주, 그는… 서정주, 그는 친일 시인이었다. 그가 쓴 친일의 시는 공식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일시는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 밤마다 몰래 숨죽이며 펼쳐들던 월북 작가들의 작품집만큼이나 조악한 또 다른 자료집들에 박혀 있었다. 미당이 친일시를 썼다니! 우리 전통을 노래한 시인이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황국신민의 길을 노래하다니! 대단한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의 친일시들은 어쩔 수 없이 썼다고 보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수준을 과시했다. 국가와 민족, 민중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그의 친일시들은 미학적으로도 빼어났다. 그가 현실과 전혀 상관없이, 또는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로 수천 년 동안의 우리 정서를 시로 그려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일제의 감옥에서 죽임 당한 육사지만 그의 시 주인공은 오히려 미당 자신일 수도 있으니까. 비록 지금 ‘눈’ 내리는 현실’ 따위는 아랑곳 않지만 오로지 ‘천고의 뒤’를 기다리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주인공은 반드시 역사의식만 가져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그가 만일 적극적으로 친일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육사와 미당을 서로 다른 자세로 같은 좌표 위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로 대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세월이 어둡다고 언어마저 어두워야 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모질고 힘든 시기라도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 동화를 읽어줘야 하듯이 시인은 모국어를 품으며 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다시 모국어로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야 한다. 조금씩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국가가 감추었던 월북 작가들의 글이 점점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매우 불경한 언어였고 그들을 읽는 것은 더욱 불온한 일이었다. 그들이 읽는 작가와 작품들은 그래서 더 부정해야 했고, 그들이 아닌 작가와 작품들은 우습게도 다시 더욱 훌륭하게 미화되곤 하였다. 월북 작가는 불온하고 위험한 원흉이었으며 친일 작가는 어쩔 수 없이 협조하고 만 인간이었다! 친일은 월북보다 낫다! 월북은 현실로 남은 과거요, 친일은 과거로 남은 현실이었다. 나는 민족 문학을 공부했고 다시 친일 문학에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좋은 스승들이었다. 하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정(正)’, 또 다른 하나는 반드시 인정하면 안 되는 ‘반(反)’. 나는 ‘합(合)’의 경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사유할 수 없는 풋내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에 다시 미당이 군사독재의 우두머리에게 바친 ‘신 용비어천가’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이 다시 서늘하게 시려왔다. 이제 실수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 많은 비난이 미당에게 쏟아졌고 미당 또한 감수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그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국어를 다루는 귀재 중의 귀재. 누가 그렇게 우리말을 자유스럽게 향토의 서정과 전통의 내음을 담아 오늘에 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언어에는 과거가 담기고 전통이 빛나며 신화가 숨쉰다. 그의 시편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성이 빛난다. 천재와 언어가 만나는 행복한 풍경이 미당의 시편들마다 펼쳐진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살고 시가 살고 다시 시가 살고 미당이 산다. 하지만, 그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언제나 ‘해바라기’에 불과한 소인 중의 소인. 누가 그렇게 격렬하게 찬반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리고 지금은 이상하리 만큼 사그라든 채 온갖 비난을 받았을까. 그의 사유가 영원과 만나면 한껏 꽃을 피우지만, 그의 사상이 시속과 만나면 늘 심각하게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에게는 평생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배역자라는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그만큼 그의 시는 시인의 삶과 연관되며 비루하고 남루해지며 빛을 잃었다. “신들린 샤먼(shaman)처럼 한국어의 진경과 절창을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낸 시인. 친일 문학 작품을 쓴 부끄러운 원로 문학인.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등 마지못해 썼다고 보기에는 적지 않은 친일 작품들, ‘오장 마쓰이 송가’(1944)와 같이 억지로 썼다고 보기에는 완성도가 빼어난 작품들. 독립운동처럼 민주화 운동이 뜨거웠을 때, 총칼로 집권한 군부 독재자에게 아부한 노년의 부적절한 행태. 뛰어난 언어적 재능과 뜨거운 예술적 열정. 그럼에도 힘센 권력에 빌붙던 처신. 복잡하게 그려지는 시와 시인 앞에 그저 곤혹스러울 뿐이다. (중략) 그를 읽으면서 여전히 두 개의 문장이 맴돌지 않을까 싶다. 그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 아니다!-아,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과연 누구인가?”(허병두, “'국어의 절정'-'반민족' 곤혹스럽게 하는 미당의 시”, 한겨레신문, 2004년 11월 15일) 아직까지 미당은 내게 풀지 못한 숙제다. 미당과 그의 시들을 푸른 영혼의 제자들이 어떻게 감상하게 해야 할까. 물론 모든 이들이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시를 즐겨야 하지만,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작가와 작품, 다시 말해 작품 속의 작가와 작가 속의 작품을 구별하고 다시 연관지으며 가르쳐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미당을 빼고 우리 문학사를 온전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 또한 미당을 가르치면서 우리 문학사를 자랑스럽게 전해줄 수 있을까? 올바른 문인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 또렷하게 말해 줄 수 있을까? 국가가 중고등학생을 ‘인적 자원’으로 대하고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무한경쟁’의 노동 시장으로 모는 현실에서 문인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문학적 형상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미당의 문제는 사실 미당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는 문학과 작가, 언어와 삶, 예술과 현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제나 깊게 사유하게 만드는 존재다. 문학 작품의 해석과 평가, 그리고 교육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 해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굳이 형식주의의 문학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대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만 해석하고 평가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창조한 작가와 이를 수용하는 독자, 이를 품은 넓은 의미의 현실을 모두 아우르며 평가해야 하기 위한 기초를 확실히 다져두자는 뜻에서다. 따라서 미당의 시에서는 모국어를 한껏 활용한 언어의 연금술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모국어를 사용한 시가 자칫 현실과 유리되고 역사의식을 잃게 될 때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학생들 각자 교훈을 얻게 해야 한다.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존경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문학이 현실의 권력에 빌붙을 때 그 스스로의 힘, 아름다움의 힘을 잃게 된다는 진실. 훌륭한 문인은 현실과 치열하게 맞서며 자신의 작품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한다는 진리. 이 모든 것들을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판단하게 도와야 한다. 가장 훌륭한 시와 시인이 가장 훌륭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은 문학과 삶을 의미심장하게 곱씹게 할 것이다. 함께 생각하면 좋은 점들 1. 통일이 되면 미당의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통일 문학사에서 미당의 시적 위상은? 2. 미당의 시집들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공통점과 다양하게 변형되는 차이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3. 미당이 쓴 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스스로 질문해 보자. 왜 그럴까? 덧붙이는 말들 1991년에 민음사에서 미당 서정주 전집이 두 권으로 나왔다. 이후의 미당 관련 책들도 이 책의 바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02년에는 문학사상사에서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안에 미당 시선집 미당 서정주를 펴냈다. 이 책의 뒤편에는 서정주 시인이 직접 고르고 낭송한 육성 시낭송 CD가 덧붙여 있으니 꼭 챙겨놓으실 것. 부담 없이 미당의 시세계만 오롯하게 살펴보려면 미래사에서 2001년 말에 출판한 시선집 푸르른 날을 읽으면 좋다. 미당이 1915년부터 2000년까지 쓴 시들 가운데 스스로 고른 100여 편 정도를 모았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짐작해 보는 의미와 재미 또한 쏠쏠하다.
“표트르대제. 감기를 이기고 20여 년 더 통치해 러시아의 근대화를 크게 진척시켰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표트르 1세는 한창 일할 나이인 52세에 타계했고, 따라서 그가 열성적으로 추진하던 러시아의 서구화도 늦어지게 되었다. 표트르대제가 50대 초반에 타계하지 않았을 경우 러시아의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것과 관계없이 볼셰비키혁명은 일어났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감행되었을까? 흔히 북극곰으로 불리는 러시아. 냉전시대의 소련만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행세하는 러시아. 9세기 중엽 이래 바이킹의 지배아래 있었고 -그들은 모스크바지역에 노보고로드왕국을 건설했다- 13세기 이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아오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겨우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했지만 후진의 굴레를 벗지 못한 러시아. 그 러시아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표트르 1세(1682-1725) 이야기다. 후진국 굴레 벗지 못한 러시아 16세기에 접어들어 이반 4세가 짜르(tsar)를 칭하고, 17세기 초에 미하일 로마노프가 로마노프왕조를 연 후에도 러시아는 후진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표트르대제에 의해 서구적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2m의 장신에 말(斗)술을 사양하지 않은 그는 즉위 즉시 내정을 개혁하고 산업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표트르는 이복형 이반과의 왕위계승 싸움에 이겨 10살에 제위에 올랐지만 그 후에도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반의 지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4세기에 건설된 궁궐인 모스크바의 크레믈린을 장악한 이반 측 총병대는 어린 표트르 1세의 면전에서 7일 동안 별별 못된 짓을 다했다. 모후와 함께 크레믈린을 버리고 모스크바 교외로 탈출한 표트르는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나 넘나들다 1689년에 제권을 회복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섭정을 하던 모후도 타계해 22세의 표트르는 제국을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친정체제를 구축한 표트르 1세는 우선 강력한 해군의 창설을 시도했다. 흑해로 진출하기 위해 오스만제국에 도전했으나 -그 무렵 소아시아․중동․발칸반도․북아프리카 등지에 걸쳐 있던 오스만제국은 크림반도를 포함해 흑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 좋게 패한 후 해군을 창설하는 한편 서유럽 선진국들의 우수한 기술 도입에 진력했다. 표트르는 소년시절에 모스크바에 살던 서유럽인들과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항해와 기계․기술 등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적으로 자유롭고 지적으로 적극적인 서구적 분위기를 체험했기 때문에 제국을 친정하는 즉시 서유럽의 활기차고 개방적인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 강력한 해군 창설, 서유럽 문화 도입 표트르대제는 친정 15년여 만인 1697년에 250명으로 구성된 선진기술학습 사절단[Grand Embassy]을 이끌고 네덜란드로 향했다. 조선이 1881년에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과 비교되지만 황제 자신도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점을 고려할 경우 서구의 선진 기술과 문물을 익히려던 그의 열정은 오히려 신사유람단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았던 것 같다. 사절단에 동행한 황제 표트르는 신분을 속이고 사르담에 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조선소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기술습득단원들과 함께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4개월 여 후 황제신분이 탄로나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황제는 암스테르담의 한 조선소로 옮겨갔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표트르 1세는 조선소에서 직접 기술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공장들은 물론 미술관․병원․양육원․천문대 등을 견학했다. 그때 그에게 편의를 제공한 인물은 네덜란드 총독을 겸하고 있던 영국의 윌리엄 3세였다 - 주지하듯이 명예혁명(1688)으로 축출된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의 남편이었던 네덜란드의 윌리엄공(公)은 영국 국왕으로 초빙되어 윌리엄 3세가 되었다. 표트르대제는 이후 윌리엄 3세의 배려로 당시 세계의 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잉글랜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갈망하던 영국의 선진문물을 견학할 수 있어 더 없이 흡족했던 황제는 윌리엄 3세로부터 호화 요트를 선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신예 군함을 시찰할 기회도 얻었다. 황제는 그밖에도 영국의 의회․대학․조폐국과 대소의 공장을 두루 견학했는데 네덜란드에서와 같이 그때마다 노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황실 근위대(스트렐치)의 반란소식을 접하고도 선진문물의 견학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귀국해(1698년 여름) 반란 주동자 등 100여명을 처형하고 근위대를 해산했다. 표트르대제는 또한 효율적 정부를 겨냥해 행정개혁을 서두르는 일방 서구식 교육과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국민, 특히 상류 지배층의 서구식 사고와 행위를 북돋우기 위해 귀족들에게 수염을 깎고 -1895년에 시행된 우리의 단발령과 비교된다- 서구식 옷을 입고 댄스파티에 참석하고 커피를 마시게 했다. 황제의 전방위에 걸친 서구화노력은 당연히 상당한 결실을 거두었다. 국민의 서양 제도와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서적들이 활발하게 수입․번역되었다. 러시아 최초의 신문 베도모스티(기록)가 발행되고(1703)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과학아카데미도 등장했다(1724). 재임기간 대부분 전쟁과 산업진흥 표트르 1세는 그밖에도 1718년에 전면적 개혁을 계획하고,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인두세를 부과했다. 한편 국민은 그의 치하에서 군역과 중세에 시달렸는데, 그것은 그가 친정기간 30여 년의 대부분을 전쟁과 산업진흥 등으로 보낸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인두세도 재정 강화의 한 방편으로 채택되었는데, 그것으로 국가재정수입은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징수를 맡은 귀족의 농간도 한 몫 거들어 농민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았다. 1722년에는 14단계로 된 공무원 직제를 만들어 이론상으로는 최하위 공직자도 최상위 직으로 승진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또한 1721년 이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하여 러시아의 남쪽 국경을 카스피해 연안까지 확장했다. 표트르의 서구화정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상트페테르스부르크 건설이다. 그가 제위기간 내내 유념한 일 중의 하나는 북방진출이었다. 그는 북해와 대서양 같은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트해의 관문을 손에 넣기 위해 1700년에 스웨덴을 침공해 대(大)북방전쟁(1700-21)을 도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서전에서 무참하게 패했다. 러시아군은 18세의 소년 왕 칼 12세가 지휘한 스웨덴군이 지키던 나르바요새를 선공했으나 병력의 1/3과 다수의 장교를 잃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그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하지 않았다. 결국 표트르 1세에게 흩어진 전열을 수습할 여유를 준 셈이었다. 새로이 10개 연대를 편성한 표트르는 병사들에게 황제가 아니라 조국 러시아를 위해 싸우도록 독전해 결국 승리했다. 중상을 입은 칼 12세는 후퇴하던 중 포탄을 맞고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러시아는 나르바의 패전을 9년 만에 설욕하고 핀란드만과 발트해의 동쪽을 장악함으로써 북해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셈이다. 대북방전쟁 후 표트르대제는 북해 및 대서양으로 나가는 현관을 마련하고 서유럽과의 교류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핀란드로부터 뺏은 네바강 어구 소택지에 도시를 건설해 새 수도로 삼았다. 10년의 세월과 연인원 5만 명이 동원된 그 공사는 3만 여명의 인명손실을 낳았다. 그처럼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서구의 도시를 본떠 건설된 도시는 완공된(1713) 후 ‘표트르의 도시’란 뜻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었다. 그리고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뀜에 따라 러시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서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감기 하나에 무너진 근대화 그처럼 의욕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던 표트르대제는 그러나 꿈을 못다 펼치고 52세에 타계했다. 1724년 11월 어느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병기창으로 행차하던 대제는 병사를 가득 실은 배가 핀란드만의 여울 톱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1월 추위는 50대에 들어선 황제에게는 역시 힘겨운 것이었다. 그로 인해 감기를 얻은 황제는 결국 타계했다. 1725년 1월 28일. 표트르대제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맡긴다”고 쓴 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유약했던 황태자 알렉세이는 이미 10년 전에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죽었다.★ 결국 천한 신분출신이었으되 표트르가 죽기 4년 전에 황후가 된 예카테리나가 제위를 이었다(예카테리나 1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장에 서 있는 대제 표트르의 동상에는 “어떤 정신이 이마에 새겨져 있고 어떤 힘이 그 속에 간직되어 있을까? 그의 말(馬)에는 어떤 불이 붙어 있을까? 자랑스런 말이여, 네가 뛰어오를 때 어느 곳에 발을 내릴 것인가?”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의 글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유물변증법에 근거해 예상한 공산혁명은 자본주의의 후기단계는커녕 자본주의의 초기단계도 경험하지 못한 러시아에서 일어났지만(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표트로대제가 1725년에 죽지 않고 10, 20년 더 통치했더라면 러시아의 역사는 어떤 길을 걸었고 나아가 유럽 현대사 또한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아마도 서구화, 산업화가 보다 진척되는 등 러시아는 후진적 굴레를 더 일찍이 벗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러․일전쟁에서의 패배나 볼셰비키혁명은 없지 않았을까. 또한 소련이 단독으로 발을 빼지 않아 1차 대전의 양상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혹 동유럽의 공산화나 세계의 공산주의운동은 물론 미국과 소련 중심으로 전개된 냉전도 그 모양을 달리했을지 모른다. ----------------------------------------------------------------------------------------- ★ 야심만만하고 적극적이며 활달했던 거구의 표트르대제와는 달리 외아들 알렉세이는 유약하고 허약했다. 대제와 그로부터 버림받은 황후 예브도키아 사이에 태어난 알렉세이는 아버지의 개혁정치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었다. 대제는 기사적 생활을 싫어하고 하찮은 일에 몰두하는 등 제왕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태자 알렉세이 때문에 적지 않게 고심했다. 상속권 포기와 사제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알렉세이는 억압을 견디다 못해 독일로 도피했다. 그후 아버지의 뜻을 쫒아 마지못해 귀국했지만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살설과 독살설이 있으나 여하간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감옥에서 죽었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29일 오후 6시 30분경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식이 끝난뒤 기관장들로 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 이날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형평성에 수월성을 더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서령에서는 2008학년도 신학기를 맞아 '학교, 선생님들의 열정이 모여 흐르는 강물'이라는 주제로 자체연수를 가졌다. 신임교사와 후임교사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한 시간 반에 걸친 의미 있는 연수였다. 연수회 인사말에서 김기찬 교장선생님은 "마음의 문은 손잡이가 안쪽에만 있어서 자신만이 열 수 있다."며 "지역 사회에 믿음주기, 기본질서 확립, 철저한 진로지도, 솔선수범, 수업시간에 알차게 가르치기" 등을 주문했다. 특히 교사 및 교과서 중심에서 학생 중심 활동으로 시청각교구를 재미있게 구성하여 가르칠 것을 등을 당부했다. 이어서 "존경받는 교사의 첫째 조건은 학생들로부터 성의 있는 선생님, 실력 있는 선생님의 평을 들어야함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며 "학생들로부터 이러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교사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임을 강조했다. 5시 반. 연수회가 끝난 뒤에는 청소갈비에서 간담회 겸 저녁 식사를 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다. 이제 봄이 왔나 싶더니 며칠 전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그러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계절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저녁, 늘 산책하던 저수지를 걷다보니 몸이 금방 더워지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때마침 버들강아지도 눈을 떴다. 버들강아지를 보면 귀여운 강아지의 보들보들한 꼬리가 떠오른다. 또나도 모르게 동요를 흥얼거리게 된다. 버들강아지 눈 떴다. 봄 아가씨 오신다. 연지 찍고곤지 찍고 봄 아가씨 오신다. 왜 봄을 아가씨에 비유했을까? 봄 아저씨...?남성에 비유하니 어색하기만 하다. 봄은 여성의 계절 아닐까? 그러고 보니 여학교에 근무할때 조병화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을 가르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여학생들과 시를 암송할 때'봄은 피어나는 가슴'에서 여학생들은 얼굴이 붉어지고해맑은 미소를 지었었다. 바로 그 시에서 조병화 시인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한다.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항상 봄처럼 새로와라. 3월의 문턱에서 버들강아지를 보며 동요를 불러보고 시 한 수를 떠올려 보았다.
27일 김동채 서울 개원초 교장선생님이 퇴임식에 앞서 교무실에서 학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대표로 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물위에 떠있는 오리를 아시는가. 고요한 수면, 아름다운 경치. 그 위에서 한가로이 헤엄을 치는 오리를 보면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물밑을 보면 오리발이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의 학교가 그렇다. 아이들은 봄방학 중이고 교정은 정적에 싸여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더없이 한가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학교 또한 물위에 떠있는 오리와 다를 것이 없다. 신학년도 교육계획을 세우랴, 학급경영계획서를 짜랴, 신입생들 신상정리 하랴, 지도안 짜랴.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늘은 인근 서점에서 각종 문제집과 참고서를 한 트럭이나 싣고 왔다. 과목별로 일일이 구분하고 선별하여 해당 선생님들께 제공하느라 오전의 교무실은 도떼기시장이 됐다.
4년 가까이 중단된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노조의 단체교섭이 재개될지 학교 현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4년 5월 25일 유인종 당시 서울시교육감과 교원노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마지막으로 양 측은 4년 가까이 재교섭 없이 기존 협약을 연장해오고 있다. 서울시의회(의장 박주웅)는 21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성 의원(한나라당) 등 32명의 의원들이 제안한 ‘서울시교육감과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결의안은 현행 단체협약이 ▲학급담임 배정, 보직교사 임명, 교무분장, 전입요청 등에 대한 학교장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있고 ▲사립학교에 대한 교섭권한이 없는 교육감과 사립학교 교원임용, 신분보장, 정관 및 예·결산 공개 등을 합의했으며 ▲주번·당번교사제 폐지, 일·숙직 폐지, 근무상황카드와 출·퇴근시간 기록부 및 체크기 폐지 등 학교장 책임이나 교육적 효과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조합원 편의 위주로 체결됐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회는 다음날인 2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 재협상 촉구 결의문’을 서울시교육청에 이송했으며 결의문은 현재 담당부서인 시교육청 교원단체업무추진반에 전달된 상태다. 시교육청은 후속조치로 28일 전교조와 한교조, 자유교조 등 3개 교원노조에 ‘단체교섭 진행 촉구’ 공문을 보냈다. 시교육청 박근석 사무관은 “이번 시의회 결정과 관계없이 교육청에서도 자체적으로 2004년 체결된 단체협약에 대한 현장 의견 등을 수합해왔으며 교섭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왔다”고 밝혔다. 박 사무관은 “시의회 결의문에서 지적한 단체교섭의 내용을 사실상 위법이나 무효라고 간주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학교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이 재개된다면 그러한 부분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2004년 5월 교육청과 교원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약 4개월 후인 2005년 9월 29일 전교조 측으로부터 단체교섭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양 측이 몇 차례의 준비모임을 가지던 중인 2006년 3월 ‘反 전교조’를 표방한 자유교조가 출범했고, 이에 “자유교조가 참여하는 단체교섭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전교조가 교섭 참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교원노조 쪽에서도 조합원의 요구에 따라 단협을 갱신할 필요성은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전교조가 얻을 것을 다 얻었기 때문에 교섭을 거부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유교조 지회가 없는 지역은 2005년 이후에도 단체교섭이 무리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시교육청의 설명이다. 시교육청은 시의회 결의안 통과 이전에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교섭 촉구 공문을 교원노조 측에 보냈으나 전교조는 지금까지 교섭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전교조의 보이콧으로 4년째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자 한교조 역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교조 관계자는 “1년여 전 한교조와 전교조 집행부가 만났을 때 ‘단체교섭이 재개될 수 있도록 잘해보자’고 당부했었다”면서 “교원노조마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올해는 교섭이 재개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학기초에 실시될 예정인 초·중학생 대상 진단평가를 놓고 일부에서 ‘일제고사 부활’이라며 반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치러지는 진단평가는 총 2종류다. 하나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중1 대상 진단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초 4~6, 중 2,3학년 대상 ‘교과학습 진단평가’다. 평가과목은 국·영·수·과·사 5개 과목으로 같으며 중학생은 6일, 초등학생은 11일 시험을 치른다. 교육부가 학습 부진아 판별을 위해 시행하는 초·중학생 교과학습 진단평가는 올해 처음 실시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평가결과 1%를 표집해 분석하기로 했지만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이 최근 ‘모든 학교가 치르도록 준비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제고사 부활’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경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도에서 전체 학교가 시험을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평가는 성취도평가가 아니라 ‘도달-미달’ 여부만 가리는 진단평가로 기존의 초3 평가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표집분석을 통해 5월경 학생들의 ‘도달-미달’ 여부에 대한 판별도구를 내놓고 각 학교에서 학습부진아 지도자료로 활용하게 할 계획이다. 한편 중1 진단평가는 매년 실시되던 것이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전국적으로 같은 문항으로 실시된다. 평가를 주관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예산 절감은 물론 양질의 평가문항을 개발해보자는 차원에서 우리가 문항을 개발해 각 시·도교육청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평가는 성적표에 점수, 평균, 전국 석차백분율을 매겨 학생에게 개별 통보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김연배 장학사는 “평가 결과는 학생 개개인에게 성적표를 통해 배부하겠지만 성적표 양식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 “현재 성적처리기관과 검토 중인 상태로 개학일이 지난 후에야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말에 전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취도 평가가 예정돼 있고 교육감협의회도 ‘학교별 학력 정보 공시’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어 학기초 진단평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성취도 공개는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전국연합 학업성취도 평가는 5개 과목에 대해 1,2학년은 12월 23일, 3학년은 선발고사를 치러야 하는 일부 지역을 감안해 10월 29일에 평가가 실시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가 관련 시행령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법령이 완비되면 성취도평가 결과 공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27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회 교육위에서 열렸다. 이날 청문회는 이틀 뒤로 예정된 한승수 총리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의 공격과 여당으로 이를 방어하려는 한나라당 의원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김도연 후보의 부동산, 수월성 위주의 사고방식 등을 주로 공격했으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영어공교육 프로젝트, 대입시 자율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도 소신을 물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못한 김 후보는 구체적인 교육정책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적합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로 예봉을 피해갔다. ◆이군현 “영어만 잘한다고 교사 자격 부여 안 돼”=첫 질의자로 나선 김교흥 의원(통합민주당)이 “인수위가 영어전용 교사 2만 3천명 선발하겠다는데, 영어만 잘하면 교사 할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도 “영어수업은 영어로 하는 데 동의하지만, 테솔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 외국서 석·박사 취득한 자에게 교사자격을 주는 것은 기존 교원 양성 체계를 흔드는 것이다. 가치교육이 초중등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영어를 잘 한다 해서 교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신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안민석 의원(통합민주당)은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은 국가경쟁력 없지만, 영어를 못하는 일본은 국가경쟁력 높다. 모든 국민이 영어 잘할 필요 있나”라고 질의했다. 김 후보는 “지적한 기본 방향에 충분히 공감 한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영어교육을 영어로 하면 더 효과적이라 생각 한다”고 답변했다. ◆“지역 격차 줄여야”=김 후보는 모두 발언을 통해 초중등 교육 업무를 빠르게 지방으로 이양해, 실질적인 교육 자치를 실현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교육의 다양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문헌 의원(한나라당)이 “초중등 교육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방재정과 인프라가 큰 격차가 있음을 인식하고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교흥 의원도 “지자체 여력에 따라서 공교육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초중등 교육 이양하면 지역 간 격차가 가장 큰 문제점이며, (재정)격차가 10배까지 난다고 보고 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응답했다. 김영숙 의원(한나라당)이 “시도교육청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교육정책이 현장 속에서 이뤄지려면 유초중고 출신 전문직을 대폭 증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현장 경험 있으신 분 많이 모시도록 하겠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충분히 연구 검토 하겠다”고 답변했다. ◆대입시 업무, 연말까지 대교협 이양=유기홍 의원(통합민주당)이 “2004년에 유명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로 제재 받았다. 그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등급으로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 한다”고 답변했다. 이어서 “혹시 기여입학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몇 년 전) 국감서 대교협 사무총장에게, 연·고대가 어느 정도 기부금 내면 된다고 알려져 있느냐고 묻자, 20억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것도) 대학 자율의 범위에 포함되나”고 유 의원이 물었다. 김 후보는 “(학생의)자질 외 기부금(으로 입학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기조는 대입시에서 대학 자율이 맞지만 지금 말씀 드린 것은 허용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주호영 의원이 “임기 중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우리나라 교육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입시에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로스쿨 정원 재조정은 또 다른 문제 유발”=이은영 의원(통합민주당)이 “로스쿨 예비인가 정원이 너무 적어 3천명으로 늘리자는 의견 있다. 또 등록금이 막대하다는 얘기 있어 어려운 가정이 로스쿨 가는 게 어려운 게 아닌가하는 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군현 의원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자, 김 후보는 “20% 학생에 장학금을, 9천만 원까지 대여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돈 있는 사람만 다니는 학교가 돼선 안 된다”고 대답했다. 김 후보는 그러나 “(로스쿨 정원 재조정은) 또 다른 문제점이 유발될 것 같다. 확정된 것 아니고 가승인 단계라 추이 지켜봐야겠다. 정원 재조정은 교육부만 결정할 일 아니고 여러 분야의 의사소통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기부 페지에는 부정적 생각=민병두 의원이 “한국과학기술원 부회장으로서 과기부 폐지 반대 성명 냈다. 지금도 그 소신에 변함 없나”고 묻자, 김 후보는 “과학기술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과기부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과기부를 교육부에 통합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권철현 의원이 “교육과 과학부서가 하나 되니 과학자들은 우려 많았지만 후보자 내정에 (과학계가) 안도하는 것 같다. 일본도 문부과학성을 만들었지만 그 성과는 결코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은 “과기부를 합치고 난 이후 융합이나 부처 인맥 때문에 실질적인 정부조직 통합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려 많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김 후보는 “지적한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안믈 생각하고 있다. (교육, 과학부서 공무원이)섞여서 같이 일할 수 있는 물리적인 결합도 시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부동산 정리하겠다”=서울 문정동과 봉천동의 두 아파트, 이천시 마장동의 전원주택이 야당의 표적이 됐다. 이경숙 의원(통합민주당)이 실제 어디서 거주하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여름에는 이천, 겨울에는 문정동의 아파트에 있다.” 고 답변했다. 아파트를 두 채 소유한 것은 한 채가 미처 팔리지 않아 그런 것이며, 투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택문제가 자랑스런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가능한 빨리 정리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27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 인사청문회에서 “교수노조 합법화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교수노조에 대한 소신이 뭐냐”고 묻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자와 대등하지 않고 지시를 받는 공장근로자와 학문의 자유 속에서 자유롭게 가르치는 교수와 같은 카테고리로 볼 수는 없다”고 논리를 폈다. 이 후보자는 “대학에는 위치가 불안정한 강사와 신분을 완전히 보장받는 정교수가 있다”며 “이들을 묶어 하나의 노동기본권을 향유하는 노동조합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문제는 논란이 있고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분명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와 특성화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5년간 총 2조 1850억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당초 재원확보 방안으로 기대했던 자사고 100개 운영으로는 5년간 3180억원만 절감할 수 있어 1조 8670여억원의 추가 재원은 상당액 시도 부담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회장 공은배)가 29일 개최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재정정책 운용방안’ 토론회에서 최준렬 공주대 교수는 제2주제발표에서 “5년간 기숙형 공립고 150개 운영에 1조 3299억원, 마이스터고 50개 육성1275억원, 1850개 고교 특성화에 7280억원이 든다”며 분석결과를 내놨다. 최 교수는 “인수위의 국정과제 실천방안 세밀화 작업 시 참여해 논의했던 안을 산출 기준으로 삼았다”며 “대통령께 보고된 최종안과는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막대한 추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이 관건인데 당초 공약에서 내건 자사고 예산절감으로는 3000여억원만 확보할 수 있고, 특별교부금 사용, BTL 도입은 모두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사고 절감액과 관련해 “올 20개를 시작으로 매년 20개 학교를 추가 선정해 학교당 25억원의 재정결함 보조금을 절감한다 해도 5년간 7500억원”이라며 “하지만 정원의 30%를 국가․교내장학생으로 선발해 1인당 연 600만~1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어 이를 감안하면 실제 절감액은 5년간 318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자사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도 과연 100개가 전환될 수 있을까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숙사를 BTL로 짓는 것도 손실이 크고, 특별교부금도 계속 축소되는 상황이어서 기대할 게 못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합리적인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 “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교부율이 0.6% 높아져 시도교육청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며 “지방 이양에 발맞춰 교육부와의 조율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자체의 세수 확대 방안을 마련해주면서 전입금을 높여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병주 영남대 교수는 1주제 발표에서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이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지금도 1조 5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시도교육청, 2조원 가까운 학교용지매입비를 시도교육청에 못 넘기고 있는 시도가 추가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논란이 예상된다.
우리 서령고에서는 2008학년도 입시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거뒀답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1명, 단국대 의예과 1명, 경찰대 2명, 한국정보통신대학(ICU) 1명, 연세대 3명, 고려대 7명, 사관학교 2명, 서강대 4명, 한양대 5명, 성균관대 9명, 경희대 16명, 중앙대 3명 등 서울경기지역의 대학에 210명이 합격하였고, 서울교대 2명을 포함하여 교대 및 사범대학교에는 16명, 충청권 대학에는 105명, 기타 지역으로는 38명이 진학하였답니다. 3년 동안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과 가정을 잊고 아이들을 가르치신 선생님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바로요즘입니다. 교육여건이 열악한 시골 고등학교에서 이처럼 훌륭한 결과를 거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부디고교시설의 그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길 기원합니다. 합격한 모든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교직에 몸담아 정년에 이르기까지의 사진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영상으로 스크린에 스쳐지나 간다. 젊은 시절엔 장발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모습이 그 시대의 자화상이 되어 어색해 보인다. 월남파병까지 하신 군 생활의 사진이 나올 때는 풋풋한 젊은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08년 2월 27일 오후3시 충청북도제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영호 교육장님의 정년퇴임식이 시작되기 전 사모님의 인터뷰가 유난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기용 충청북도교육감, 성영용 교육위원회 의장, 도내지역교육장, 제천관내 초중고교장, 엄태영 제천시장, 윤종섭 제천시의회 의장, 제천지역단체장 등 많은 내빈이 소개되고 퇴임식이 시작되었다. 이원기 관리과장의 약력소개, 직원대표와 가족 등 많은 꽃다발증정이 있었고, 송공 패와, 기념품전달도 풍성하였다. 김영호 교육장이 교육자로서 얼마나 잘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는 훈훈한 정이 오가는 보기좋은 모습이었다. 존경과 감사의 정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교육자의 길이 저렇게 보람 있게 마감하는 분은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퇴임하는 김 교육장님께 주어지는 꽃과 기념품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 공을 기리고 사랑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와 따듯한 정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교육청 직원을 대표하여 류병섭 교육과장이 읽은 송공사, 교육감, 의장, 시장의 축사, 의림여중 근무시 제자의 사은사에서는 가슴이 찡하는 대목이나와 식장이 숙연해 졌었다. 김교육장의 퇴임사로 이어지는 동안 그분이 걸어온 교육자의 외길이 돋보였고 후배교육자의 귀감이 되었으며 그 진솔함이 배어나왔다. 낮은 음악이 흐르면서 섹스폰의 석별의 정이 식장분위기를 감동으로 넘치게 하였다. 한송이 백합화를 부른 축가와 아드님의 가족대표 인사로 퇴임식은 끝이 났지만 식장을 가득 메운 축하객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역력해 보였다. 언젠가 교육장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육장님처럼 훌륭한 교육자가 정년단축으로 교육계에 더 봉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법적나이라는 잣대로 아직 열정이 남아있는 훌륭한 교육자를 백수로 내보내야만 하는 교육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계에 들어와서 교육장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분들은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년 후에 나에게도 닥아올퇴임을머리속에상상해 보며 식장을 빠져나왔다.
1. 기숙형 공립고교에 대한 찬성과 우려 2008년 2월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공약사업의 하나로 고교교육의 다양화를 주장하고 있다. 고교교육의 다양화는 종래의 획일적 교육을 개선하여 학습자 개개인의 학습요구와 관심, 적성에 부합한 교육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기숙형 공립고교 분야를 중심으로 공약내용을 살펴보고 이 공약이 향후 추진되면서 고려하여야 할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명박 정부의 기숙형 공립고교의 공약에 대하여 잘만 운영된다면 고교교육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이명박 정부의 공약중 고등학교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 적성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고교를 300개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한 원칙과 전략으로 학생ㆍ학부모의 선택이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살립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시작으로 사교육이 필요없는 다양한 고교를 만들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재 학생당 월 45만원에 달하는 일반계 고교의 사교육비(연간 총 7조원)를 절반(총 3조5천억 원)으로 줄이겠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이다. 농촌지역, 중소도시, 대도시 낙후지역에 150개 기숙형 공립고교를 지정한다. 해당 지역 학생들을 우선 입학시키고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한다. 기숙사비는 학생의 가정형편 등에 따른 맞춤형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교육 때문에 지역이 낙후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이 공약집의 내용이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로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농어촌에도 공평한 교육 혜택을 주겠습니다. 농어촌에서도 도시 못지않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농어촌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서울로, 도시로 보낼 필요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시ㆍ군단위별로 국립대학의 농어촌지역할당제를 실시하고,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를 만들겠습니다. 또 농어촌출신 학생들에게 기숙 사비를 지원하고,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 내 아이가 좋은 교육환경에서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최우선적으로 만들겠습니다. 교육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사교육을 못시키면 좋은 학교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는 농촌에서 아이들 교육을 못시키면 가난이 대물림 됩니다. 가난한 농촌이지만, 아이들만은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부를 할 때 저는 이웃이 도와줘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웃의 도움으로 공부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이웃이 아니라, 나라가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농촌에 있는 학교를 기숙형 학교로 바꿔서, 농촌에는 기숙학교를 150개 정도 지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농촌에 살지만, 서울에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국가가 장학금을 주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보고 부자들만 위한 정책을 편다고 하십니다. 제가 바보입니까? 부자만 들어가는 학교를 만든다고요? 아닙니다. 저는 없는 사람에게도 교육기회를 똑같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정책에 대하여 비판의 글도 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화여고 이형빈교사의 다음과 같은 글이다. “고교평준화는 이미 무너져 있다.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에 사는 30%의 학생들은 소위 일류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입시에 시달리고, 소위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들은 약 2.5%의 학생들만 진학할 수 있는 자사고, 특목고에 가기 위한 입시에 시달린다. 특목고 경쟁률을 4대 1로만 잡아도 약 40%의 학생들이 고교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토록 일류고, 특목고 입시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류대 진학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2100여 개의 고등학교 가운데 자율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 전문계 특성화고 5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공립, 사립, 전문계를 아울러 15%의 학생들을 위한 고등학교 30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생길까? 당연히 15% 안에 들기 위해 학교들은 피 말리는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15%에 들어간 학교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기존 2.5%의 자사고 및 특목고에 더하여 15% 안의 학교 사이에도 치열한 서열 경쟁이 시작된다. 그 서열의 기준은 단연 ‘명문대 진학률’일 수밖에 없다. 85%에 들어가는 학교는 속된 말로 ‘×통 학교’로 취급되어 슬럼화 되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학교선택제가 본격화된 일본이나 영국에서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다른 비판의 글도 보인다. “기숙형 공립학교의 경우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경우 기숙사 비용이 만만치 않고, 별도의 보충학습과 사교육이 진행됐을 때에는 학부모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자율형 사립고 100곳, 기숙형 공립고 150곳 등이 생겨나 상위권 학생들이 특정 학교로만 몰리면 “경제력 있는 계층 학생만 혜택 볼 것” (한겨레 2008.1.28)이다. 2. 기숙형 공립고교 추진 시 예상되는 성과와 문제점 1) 기숙형 공립고교 추진 시 기대되는 효과 기숙형 공립고교 운영시의 긍정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숙형 공립고는 농ㆍ어촌과 대도시 낙후 지역에 집중 설립해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기숙형 고등학교를 운영함으로써 농촌의 초중고 교육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농촌지역에서 우수학생들이 도시에 있는 고교로 취학하기 위하여 이혼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2006년 읍지역 학생의 41.2%, 면지역 학생의 41.1%가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농촌학교에 대한 매우불만이 19%, 약간 불만이 36.6%(면지역)으로 과반이상이 불만족해하고 있었다. 불만 이유 중 높은 것으로는 교육시설과 우수교사로 높게 나타났다(농림부, 농림어업인 복지 등 실태조사 결과, 2004). 둘째, 농산어촌 지역의 특성상 기숙형 고등학교가 도움이 될 것이다. 농어촌지역에는 고등학교가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인근 도시나 읍지 역에 고등학교가 설치되어 있어 통학하는데 불편함이 많이 있다. 대중교통편이 많은 것도 아니며, 대중교통이 일찍 끊어지는 등으로 인하여 학습하는 분위기가 도시만큼 좋지 않다. 기숙사 시설을 지원함으로써 통학에 따른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셋째, 기숙형공립학교를 설치함으로써 학교,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지역의 교육을 개선하는 데 협조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기숙형 공립학교를 통하여 단순히 기숙사 시설을 짓고 무료로 급식을 하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학교가 고등학교 교육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 중심으로 하여 우수고교 육성을 위한 협의체를 운영하여 지역교육개선을 위한 분위기(social climate)를 만들어 가는 것이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는 기숙형 고등학교의 운영을 통하여 교육 때문에 지역이 낙후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2) 기숙형 공립고교수행시의 문제점(부작용) 첫째, 기숙형 공립학교를 신설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리라 전망한다. 경상북도의 계획에 의하면 공립형 기숙학교를 신설하는데 교당 200억 원을 추정하고 있으며 신설할 경우 2010년 이후에야 개교가 가능하여 그 효과가 상당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둘째, 기숙형 공립학교를 만드는데 있어 기숙사 신설 등 하드웨어적인 면에 많은 신경을 써서 이 정책의 근본 취지인 취약지역의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켜 원하는 진로를 잡게 하는데 도움이 적게 신경을 쓸 우려가 있다. 기숙사를 건설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시설을 확충하는데 더욱 많은 정책적 관심을 쏟는 것은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목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경북 지역의 어느 여고에서는 2008년 3월 신입생 150명중 40명의 예산을 확보하였으나 28명만이 기숙사에 입주하고 있다. 2007년의 경우 396명 학생을 대상으로 11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시설이 있지만 80여명만이 입사하고 있다. 고등학교가 위치한 읍면의 학생들이 상당수 일 텐데 이들을 포함한 80% 수용목표로 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 학생의 80%를 수용하는 기숙사 시설을 건축하는데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농촌지역의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여 입학 가능한 학생인구도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인데 과다한 시설을 투자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함양고등학교의 경우 28개의 기숙사 방이 있지만 1학년 5학급중 기숙사 입사대상은 50명 정도이다. 전체 대상자의 1/3 수준이다.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 80%의 학생을 대상으로 기숙사 입사를 시키는 것이 어려우리라 전망한다. 장안제일고는 2007년 12월 4층(1012㎡) 규모의 기숙사 증축에 들어가 2008년 3월말 완공할 계획으로 증축이 완료되면 기존 140명을 수용할 수 있던 데 비해 25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게 돼 전체 학생(330명)의 3분2 이상이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다. 학생 100명을 수용하는데 11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되어 100명을 더 수용하는 시설에 11억 원이 소요되었다. 이를 감안하여 과다한 시설투자가 안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넷째, 기숙형공립학교의 경우 학생의 70%에 대해 학습부대경비 및 기숙사비 등의 장학금을 학생당 연간 30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공약사항이 있다. 80%의 학생들을 기숙사에 입주시킨다고 하였는데 70%에게만 지원하겠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농촌지역 학교의 학생이 평균 500명이라면 그중 80%인 학생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입주시키고, 350명에 대하여 연간 300명 지원한다고 하면 150개 학교*350명*300만원=1,575억 원이 소요된다. 기숙형학교에 필요한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어느 학교의 경우 11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사감과 청소원의 인건비는 연간 28,810천원, 생활관운영비 31,480천원, 급식비 10,9809천원, 조리원 인건비 7,7028천원, 관리비 3,3050천원 총 280,177천원 학생 1인당 255만원이 소요되었다. 다섯째, 기숙형 공립학교는 기존에 농어촌자율학교에서 적용하던 자율학교 운영의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지 우려된다. 현재 농산어촌 1군 1우수고 육성사업에서는 농어촌학교에 대한 육영의지가 강한 교장을 초빙 또는 공모할 수 있게 되고,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되어 학생선발, 교육과정운영에 있어 대폭적인 자율권을 부여받고 있다. 기왕에 실시하던 제도가 자율형 사립고교의 추진에 따라 기존에 부여받던 혜택이 축소되어서는 안 되겠다. 기존 농산어촌 우수고교에 따라 학생선발을 전국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적 운영과 교과용 도서의 자율적 사용이 가능하였었다. 여섯째, 농산어촌 지역에서 기숙형 공립 고등학교에 선정되지 못하는 고등학교의 문제가 있다. 기숙형 공립고에 기숙사 건립비 등 예산을 일반고보다 더 많이 쏟아 부어, 인근 지역 성적 우수 학생들을 끌어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2,159개 고교중 1,457개의 인문계 고교가 있으며, 그중 사립고교를 제외하면 800여개의 공립인문계 고교가 남으며 그중 농촌, 중소도시, 대도시의 취약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는 30%인 240여개로 추산된다. 그중 150개가 선정되고 나머지 100여개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인다. 이들 학교 학생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3) 효율적인 기숙형 공립학교 정책추진을 위한 과제 첫째, 기숙형 공립고교 공약은 기존의 농산어촌 1군 1우수고등학교 육성과 연계하여 추진하여야 하겠다. 지난 1960년대의 경제발전5개년계획의 추진에 따라 추진된 도시와 농촌의 격차중 교육의 격차는 매우 심각하였다. 1969년 한국사회학회에서 도시와 농촌의 교육격차를 다룬 이후 농촌의 교육은 도시에 비하여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농촌부모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은 농촌의 면소재지에 고등학교가 없었다는 것과 농촌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좋은 대학에 갈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1980년대 초 대학입학인구의 증가에 따라 농촌학부모들의 농촌고등학교에 대한 불만은 급격하여 향도이촌이라고 하여 자녀교육을 위한 이 촌이 증가하였으며, 그런 상황이 안 되는 경우 자녀만이라고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시켜 1980년대 중반 농가의 교육비가 도시의 교육비에 비하여 높은 적이 있었다. 이 당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된 것이 농촌초등학교의 통폐합과 농촌의 우수고등학교 육성이다. 또한 농촌우수고교 육성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 중의 하나는 기숙사 시설이었다. 경북 청송과 같이 교통이 나쁜 곳에서 버스는 일찍 끊겨 집중적인 공부에 지장을 줌으로 이들을 위한 기숙사시설을 지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농촌고등학교 교육에 대하여 수요가 매우 높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내고 정부는 20년 뒤인 2004년부터 농산어촌 1군 우수고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즉2004년 7개교, 2005년 14개교, 2006년 44개교, 2007년 86개교를 선정하였다. 그동안 실시한 농산어촌 1군 1우수고등학교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사업을 실시한 44개교중 24개교에서 과 같이 기숙사 신‧증축 및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 부산광역시의 장안제일고등학교는 새벽 2시까지 학생들의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관리교사를 채용하여 기숙사생들이 충분한 자기 주도적 학습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교육에 의존함이 없이 학력향상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충남 서천고등학교는 기숙사 시설을 현대화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노후화된 기숙사 시설을 현대화 하여 우수 신입생을 유치하고 쾌적한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최신식 개인용 독서 대를 설치함으로써 쾌적한 학습 공간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편안하고 아늑한 현대식 냉․난방 시설로 학생들이 밝고 쾌적한 환경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충북 진천고등학교의 경우 2006학년도 입학 홍보 시에는 ‘농촌우수고등학교 육성지원 대상학교 및 자율학교’로 선정되어 기숙사와 현대식 도서관이 건립되고 농촌 우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2006학년도 신입생 모집 시 관내 중학생들이 대거 지원하여 입학 정원을 초과하였으며 전체적인 입학 성적이 향상되고 우수 학생들도 많이 입학하여 명문고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경북 예천여고의 경우 기숙사 환경 조성을 통한 수요자들의 만족도 제고와 면학 분위기 정착하였다. 기존은 생활실 1실에 10명을 수용하였으나, 생활실 2실을 추가로 신축하여 1실 수용 인원을 8명으로 감축하였으며, 각 생활 실마다 실내인테리어와 새집증후군 예방을 위한 산소촉매 처리와 함께 공기정화 식물을 비치하여 입사 생들의 건강과 안락한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두고, 개인별 고급 원목 옷장 및 사물함을 비치하고, 샤워 실을 추가로 설치하여 입사 생들의 불편을 줄였다. 또한 웰빙을 위한 체력단련 실을 설치하고, 120석 규모의 고급 원목 책상 및 하이팩 의자를 구비한 생활관 독서실과 함께 최신 펜티엄급 LCD 모니터 사양의 PC를 갖춘 생활관 인터넷 카페를 설치하여 교육방송 시청 등 e-learning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생활관 환경의 개선으로 쾌적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내 집 같은 생활관에서 학생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면학 분위기가 정착되어 큰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 있어, 기존에는 생활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생활관 환경 개선 후에는 생활관 정원을 다 채우고, 입사를 희망하며 대기하는 학생들이 줄을 서는 등 큰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경남 함양의 경우 기숙사 운영으로 학교발전 가속화하였다고 한다. 경상남도 함양고등학교는 경남에서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고, 군 전체 인구가 주변 지역에 비해 적으므로 인하여 우수학생의 타 지역 유출이 적잖았으나, 기숙사의 건립 운영과 농어촌우수고등학교 예산지원으로 시설과 운영의 다양화함으로써 우수학생의 타 지역 유출이 적어졌고, 이로 인하여 우수 인재의 교육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제2기숙사가 지어지면 더 많은 학생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됨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볼 때 적은 비용으로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좋은 진학 내용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므로 더욱 학교 발전이 가속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상의 사례와 같이 상당수 농산어촌 1군 1우수고등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상당수가 기숙사 시설을 확충하여 효과를 보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이번의 공약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어느 면에서는 이번 공약에서 강조가 되는 자율형 사립고 100개에 대한 반대 논리를 잠재우려는 의도에서 추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기존에 실시된 농산어촌 1군 1우수고등학교 정책과의 연계성을 가져야 하겠다. 2007년까지 선정된 86개교에 아울러, 2008년부터는 사업대상 지역을 교육여건이 열악한 도농복합시 지역(52개 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에 따르면 웬만한 지역은 150개에 다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기숙형 공립고교를 설립하기 보다는 기존에 지정된 농산어촌 1군 1우수고등학교를 활용하여야 하겠다. 둘째, 이 공약의 원래 취지는 농어촌과 중소도시의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특별시는 기숙형 고등학교를 5개 만들겠다는 등 안산시 등 수도권의 대도시에서도 기숙형 고등학교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의 공약에도 보이고 있다. 지역단체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역개발을 위하여 기숙형 공립학교 공약을 제시하는데 이 정책의 원래 취지대로 농산어촌이나 중소도시의 불리한 지역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이미 지역적으로 여자고등학교가 선정되면 그 지역의 남학생들이 불리함을 당하게 된다. 이를 고려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1개 군에 2개 정도가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 그 지역에서 상당부분을 부담한다면 1개 군에 2개 이상도 선정할 수 있어야 하겠다. 넷째, 기존에 실시되는 농어촌자율학교와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산어촌 1군 1우수고 육성사업에서는 농어촌학교에 대한 육영의지가 강한 교장을 초빙 또는 공모할 수 있게 되고,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되어 학생선발, 교육과정운영에 있어 대폭적인 자율권을 부여받고 있다. 기왕에 실시하던 제도가 자율형 사립고교의 추진에 따라 기존에 부여받던 혜택이 축소되어서는 안 되겠다. 기존 농산어촌 우수고교에 따라 학생선발을 전국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적 운영과 교과용 도서의 자율적 사용이 가능하였었다. 다섯째, 기숙형 고교를 농촌지역에 만들려면 지역의 관련기관과도 유대를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지역 내 장학재단, 지역의 인재발전기금 등의 도움을 받아 농촌지역에 교육적인 사회적 분위기(social climate)를 만드는데 노력하여야 하겠다. 기숙형 공립고교를 만드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자녀를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내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이를 계기로 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향상을 위하여 관련기관과 담당자들의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하겠다. 3. 결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06.10.18~19에 실시한 200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2007.12.21에 발표하였다. 2006년 학업성취도 평가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약 3%에 해당하는 60,846(905교)명을 표집 하여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5개 교과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그중 지역별 학력에 관하여 살펴보자. 기준 연도부터의 지역별 성취수준 비율 추이를 살펴보면, ‘우수학력’ 비율이 초6․중3은 대부분 중소도시(국어․사회․과학), 대도시(수학․영어)에서 지속적으로 많았고, 고1은 중소도시(국어․사회), 대도시(영어)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모든 교과에서 대부분 읍면지역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학과 과학과목에서 농촌지역인 읍면의 학력이 낮으며 학교단계가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수학의 경우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2.5점, 중3은 2.8점, 고1은 3.2점으로 차이가 나고 있었다. 과학의 경우도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0.7점, 중3은 1.0점, 고1은 2.6점으로 차이가 나고 있었다. 여전히 농촌의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2006년 읍지역 학생의 41.2%, 면지역 학생의 41.1%가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농촌학교에 대한 매우불만이 19%, 약간 불만이 36.6%(면지역)으로 과반이상이 불만족해하고 있었다. 불만 이유 중 높은 것으로는 교육시설과 우수교사로 높게 나타났다(농림부, 농림어업인 복지 등 실태조사 결과, 2004). 이런 농촌학교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명박 제17대 대통령당선자의 공약 중에는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를 설치하겠다고 하는데 기숙형 공립고교는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대도시 낙후지역에 설립하는 학교이다. 농어촌 지역의 고등학교는 대중교통이 일찍 끊어지는 등으로 인하여 학습하는 분위기가 도시만큼 좋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지역별로 기숙형공립학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학교는 고교 교장 관사를 줄여서라도 학생들의 기숙시설을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기숙형 공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있다. 2006년에 전국 고교생 1,775,857명중 농촌은 138,538명으로 그 비율은 높지 않지만 이들 학생전체에 대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대통령의 공약을 연계하여 농촌의 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농촌주민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농촌을 떠나거나 자녀를 도시에 유학시켜 많은 부채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다. 기숙형 공립학교는 원거리 통학생이 많은 농촌지역에서 등하교에 대한 불편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기숙사 생활을 함으로써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서 학습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전망을 하고 있다. 단순히 기숙사 시설을 짓고 무료로 급식을 하여주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농촌 학교교육개선이 되어야 하겠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지난 2월 21일까지 신규임용예정교사에 대한 연수가 끝나고 2월 25일에 각 지역교육청에서 초, 중등 신규임용교사에 대한 임용장 전수가 있었다. 신규임용교사가 근무하게 될 각 학교에 연락을 하여 교감들에게 이들을 인솔하여 가도록 했다. 새롭게 임용된 교사들을 인솔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교감선생님이 인솔해 오면 각 학교에서는 봄방학기간이긴 해도 많은 교사들이 기다렸다가 반겨주곤 한다. 그래도 학교현장은 서로를 반겨주고 아껴주는 분위기가 아직까지는 살아있다. 우리학교도 신규임용교사가 있었는데, 거의 1/3에 해당하는 교사들이 학교에 나와서 반겨주었다. 그런데 이날 모 지역교육청에서 이런일이 있었다. 신규임용교사 중에 타 시도의 현직교사가 있었던 것이다. 신규교사를 인솔해가야 했던 해당학교 교감이 '아니, 현직교사가 임용고사를 거처 다른 시도의 교사로 새롭게 임용되는 것이 타당한 것이냐.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담당 장학사에게 문의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담당 장학사는 문제가 없으니 임용을 했겠지, 뭘 걱정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교감은 이해가 잘 안되어 현직교사가 임용고사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또 이야기 했지만 결국은 담당장학사의 시원한 답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대목은 교감과 담당장학사 모두가 해당규정을 잘 모르고 있었기에 발생한 것이다. 교감의 경우는 일선학교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바뀐 규정을 모를 수도 있다. 특히 교사로만 재직한 후에 교감승진을 했다면 모를 가능성은 더욱더 높다. 문제는 교육전문직인 담당장학사인데, 해당업무를 담당하는 장학사라면 당연히 그런 규정쯤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청에서 인사담당을 하고 있으면서 바뀐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바쁘기 때문에 모두 알고 있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잘 알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해당 장학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교육청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새롭게 규정이 개정되었으면 해당 규정을 수시로 전문직 연수 등을 통해 알렸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에 '현직 및 퇴직 2년 미만의 전직교사에 대한 교원 임용고사 응시 자격 제한 규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로 현직교사도 타 시,도의 임용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시에 이 규정의 개정으로 인해 농 어촌 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하였으나, 그대로 적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에 농 어촌 교육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전문가와 교직단체에서 요구하였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대도시로의 이동을 위해 많은 현직교사들이 임용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규정이 바뀐 것을 신규임용된 해당교사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 돌아가서 의문이 풀리긴 했겠지만 담당장학사가 당시에 시원스럽게 답을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전문직에 임용되면 더 이상 공부를 안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문직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계속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감도 예외가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담당장학사의 경우는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참으로 유별나다. 그런 열정때문에 선진국이 100년, 50년 걸려 이루어내 근대화를 유별나게 짧은 기간에 이루어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유별난 교육 덕분에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한마디로 교육문제를 풀지 않고는 지도자라는 말을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미 부모들은 교육때문에 전세를 얻어서라도 강남으로 이사를 가기에 강남의 집값이 올라가는 이상한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캐나다의 한 외국어 학원 강사는 “한국에 무슨 일 생겼어요?”라고 걱정스럽게 묻는 현실이 되었다. “갑자기 한국 학생들이 떼지어 몰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엄마는 과외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빠는 자식 교육을 위해서 ‘기러기 아빠’도 불사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편 노원구는 올해 구민 ‘영어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영어 과학테마공원 식당, 잉글리시 존, 원어민 영어교실 등 16개 사업에 총 78억원을 투입하고 향후 5년간 무려 1000억원을 ‘영어교육’에 쏟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이제 영어열풍은 지방자치단체 구석 구석까지 몸살을 앓게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도 내년까지 15억여원을 들여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잉글리시 프리미어센터’를 설치키로 했다는 보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국어와 한글 관련 사업을 내놓는 자치구는 하나도 없으니 이제 한글의 장래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교육열은 지대하지만 교육의 질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입시제도는 우왕좌왕 춤을 추고, 조기 유아교육, 고교 평준화 문제, 최근에 회오리 바람처럼 불어오는 영어교육을 공교육으로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정책 과제 등 당장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자식 없이 살고 싶어 하는 부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는 아닌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얼마 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폴리처 교수의 수상 소감은 “내가 받은 미국 교육에 감사한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말이다. 그가 받은 노벨상도 부럽지만 “우리나라 교육에 감사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교육시스템이 더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기대하여 보고 싶다.
정부는 2월말로 정년퇴임 등을 하는 각급학교 교원 3655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키로 했다. 퇴직하는 대학총장에게 수여되는 훈격이 가장 높은 청조근정훈장은 김달웅 전 경북대 총장 등 5명, 특2호봉을 적용받는 총장에게 주어지는 황조근정훈장은 이상철 전 한국체대 총장 등 648명에게 수여된다. 38년 이상~40년 미만 재직자에게 수여되는 홍조근정훈장은 강사민 서울사대부설고 교장 등 782명, 36년 이상~38년 미만에게 주어지는 녹조근정훈장은 엄장옥 고산중 교감 등 730명, 33년 이상~36년 미만에게 주어지는 옥조근정훈장은 조윤래 상남초 교장 등 566명이 받게 된다. 또 30년 이상~33년 미만에게 주어지는 근정포장은 옥은성 남도대학 학장 등 346명, 28년 이상~30년 미만의 대통령표창은 최상매 대전어은초 교사 등 163명, 25년 이상~28년 미만의 국무총리표창은 곽병춘 주문진고 교사 등 174명, 15년 이상~25년 미만의 부총리표창은 김은주 순천남산중 교사 등 241명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