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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하면 첩첩산중 산골이 생각난다. 오죽하면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를 보냈을까. 굽이굽이 사행천이 흐르는 동강과 서강의 물줄기에 막혀 섬이 되어버린 청령포, 그 안에 단종을 가두었던 것이다. 단종의 애절한 삶 때문에 영월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은 소나기재이다. 구름도 고개를 넘다가 소나기 눈물을 흘리니 영월하면 떠오르는 것이 충절의 고장이요, 역사의 고장이란 수식어다. 하지만 이번 호에서 돌아볼 영월은 그 수식어가 다르다. 바로 ‘박물관의 고을, 영월’이다. 영월 곳곳에 크고 작은 이색테마 박물관이 자리하니 조선민화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영월책박물관, 곤충박물관처럼 박물관을 명칭으로 사용하는 곳이 네 곳이며 단종의 능인 장릉 안에 자리한 단종역사관, 김삿갓 계곡에 자리한 난고 김삿갓문학관뿐 아니라 봉래산 정상의 별마로천문대, 국제현대미술관, 묵산미술관 등 박물관에 준하는 볼거리가 곳곳에 산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인구대비 박물관 보유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영월이라 하니 이 정도면 ‘박물관 고을’이란 수식어를 달아줄만 하지 않은가. 박물관 계곡, 김삿갓 계곡 그럼 먼저 와석계곡으로 가보자. 삿갓 하나 눌러쓰고 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시 한 수 읊고 탁주 한 사발 마시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생전에 ‘진정한 무릉계’라고 칭한 곳이 있으니 바로 영월의 와석계곡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이 김삿갓 계곡이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궁금해진다. 김삿갓(김병연)은 순조7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선천부사겸 방어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 군에게 항복해 처형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되어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숨어든다. 20세에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나가 김익순을 신랄하게 탄핵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차지하나 자초지종을 들은 후 조상과 푸른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없다며 삿갓 쓰고 죽장 짚고 정처 없이 떠돌다 전남 화순군에서 객사한 후 그의 아들이 찾아내 이곳 와석리 계곡에 묻었다. 그가 어릴 적 숨어살던 삼옥리가 지척이요, 생전에 무릉계라 칭하던 계곡이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지며, 돌돌돌 계곡물 소리 청아한 산비탈에 소탈한 봉분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비석과 상석이 김삿갓의 생과 잘 어울린다. 계곡을 굽어보다 눈길이 닿는 곳에 그의 재기 넘치는 싯구과 기이한 행적을 모아놓은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자리하니 주인과 똑같이 삿갓을 쓰고 있다. 철따라 한시(漢詩)대회와 백일장이 열린다. 김삿갓의 기운(氣運)이 서린 때문인지 계곡을 찾는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걸음이 잦은 탓인지 이 계곡은 은근히 사람을 끈다. 계곡 초입 묵산 미술관 또한 실제 자연인지 그림 속 풍경인지 분간되지 않는 전통 한국화로 발길을 잡고 계곡 언덕배기에는 조선민화박물관이 독특한 매력으로 반긴다. 호랑이, 까치가 친구? 조선민화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의 민화를 모아 전시한 곳이다. 영월시내에서도 떨어진 와석 계곡의 끝자락에 자리한 박물관이니 그저 이런저런 전시품 조금 모아놓고 박물관의 이름이나 달지 않았을까 싶은 의심이 든다. 하지만 선입견은 금물. 튼실하게 제대로 지은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많은 양의 전시품이 기다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큐레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골구석에서 한 사람이 와도 설명을 해주는 큐레이터는 감동이다. 사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돌아볼 때 설명을 듣는 것과 듣지 못한 것과의 감동은 많이 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돌아보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작호도(鵲虎圖)이다. ‘작호도’는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으로 소나무 아래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있고 그 옆 소나무 가지 위에는 까치 한 쌍이 앉아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거나 반가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새로 까치가 전해주는 기쁜 소식을 듣고 희죽이 웃는 모습의 호랑이는 신년보희(新年報喜)의 염원을 담은 그림이다. 잡기를 막아주는 호랑이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까치를 가까이 두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 많이 들으라는 새해 인사 선물로 인기 있던 그림이다. 그 옆에는 구름을 타고 가는 현란한 색채의 용 그림이 있으니 이는 운룡도(雲龍圖)이고 신라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보여주던 모란도(牡丹圖), 어해도(魚蟹圖·물고기와 게 그림)가 있다. 충효예 등 유교덕목에 해당하는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文字圖), 서책이 쌓인 방의 풍경을 그린 문방사우도(文房四友圖) 일명 책가도 등 약 320점의 소장민화 중 전시된 150여점의 민화가 갖가지 이야기를 전해준다. ‘구운몽도(九雲夢圖)’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그린 그림으로 채색을 하면서 여인들의 가체에 금가루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왕의 하사품으로 추정된다. 일제 때 해외로 유출됐던 것을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오석환 관장이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민화를 직접 그려보는 체험 코스는 조선민화박물관의 하이라이트다. 폐교의 변신은 무죄, 영월 책박물관 곤충박물관 김삿갓 계곡에서 조선민화박물관, 묵산미술관, 난고 김삿갓문학관, 시비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59번 국도를 타고 영월시내 쪽으로 향해본다. 이 길에서 또 다시 두개의 이색 박물관을 만난다. 영월 책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이다. 1999년 4월 서지학자 박대헌 씨가 문을 연 영월 책박물관은 신천초등학교 여촌 분교를 빌려 박물관을 삼았다.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설 박물관이라 도시 사람의 눈으로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철수와 영이가 등장하는 어린 날의 교과서를 비롯해 개화기 신식 인쇄술이 도입된 1883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 변천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한성순보 제36호 등 오래된 신문들이 있고 단기 4296년 계묘년에 경향신문이 배포한 1장짜리 달력을 비롯해 천재시인 이상이 서울 종로에서 '낙랑'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뿌린 광고전단, ‘남는 쌀을 팔읍시다’라는 미군정청 시절 포스터도 눈에 들어온다. 전시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월 출신인 송광용 씨의 만화 일기다. 1934년 영월에서 태어난 송광용 씨는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중학 1년 시절인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군대시절을 포함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만화 일기를 썼다. 만화가를 꿈꾸던 한 사람의 생을 엿볼 수 있다. 그 중 101권이 영월책박물관에 소장되어 그 일부를 볼 수 있다. 문포초등학교를 개조한 곤충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졌으며 도시에서 보기 힘든 나비, 잠자리, 딱정벌레 등 1만여 종 3만여 점의 곤충을 전시하고 있다. 소박한 모양의 ‘시골처녀나비’와 세련된 날개를 뽐내는 ‘도시처녀나비’, 한 번 날면 정신없이 떼를 지어 팔락거린다고 해서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 등 재미있는 나비는 눈길을 끈다. 이곳에 전시되어있는 표본은 모두 관장 이대암 씨가 30년 동안 직접 표본한 것들이다. 영월 시내에 들어서면 영월군청의 이정표가 가장 많이 보인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또 하나의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영월군청 바로 옆에 자리한 동강사진박물관이다. 사진과 카메라가 주인공, 동강사진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사진 박물관으로 지난 2005년 7월에 개관했다. 이름 때문에 동강을 촬영한 사진이 주로 전시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보다는 진솔한 삶의 모습과 다큐멘터리적 사진, 동강사진축전 수상 작품 등을 주로 전시한다. 사진의 역사를 연표로 정리해 놓았으며, 기증받은 300여 점 클래식 사진기가 볼만하다. 2층에는 사진기의 셔터, 조리개, 렌즈의 기능을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체험실이 있고 안경을 쓰고 입체 사진을 보며, 영월의 자생식물을 슬라이드 상태로 감상한다. 또한 ‘영월을 배경으로 찰칵’ 코너에서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원하는 영월 풍경을 배경으로 넣는 합성사진을 찍어 볼 수 있다. 동강사진박물관을 보고 나오면 바로 앞거리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다. 청록다방, 세탁소, 철물점, 명동 화원이 모두 50m 안에 몰려 있고 KBS 영월 지국은 지척이다. 사진박물관에서 본 오래된 사진기처럼 휘황찬란한 TV의 영상보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나간 옛 노래가 더 잘 어울리는 영월거리다. 반짝이는 별이 친구, 영월 별마로천문대 역시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였던 별마로천문대는 해발 799.8m의 봉래산 정상에 자리한다. ‘별’과 정상을 뜻하는 ‘마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의미다. 2001년에 개관한 별마로천문대는 천체투영실과 시청각교재실,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을 갖추고 있다. 관측실에는 국내 최대규모인 직경 80㎝ 주망원경과 보조망원경 10대 등 총 11대의 천체관측망원경이 설치되어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저녁에는 다양한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다. 연간 관측일수 190일로 국내 최고 관측여건을 갖추고 있다. 동강과 서강이 영월 도심에서 만나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체투영실에서 가상 별자리 여행을 통해 사전 공부를 한 후 4층 관측실로 올라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면서 토성, 오리온성운, 좀생이, 시리우스를 찾노라면 그 어느 순간보다 황홀해진다. 하루 5회 정도의 기본 프로그램이 있으며 예약은 필수. 따뜻한 겉옷을 준비하고 별관찰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의 반짝이 신발이나 핸드폰 사용은 주의를 요한다. 천문대 주변을 천문공원으로 만들어 다양한 별자리 설명을 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 외 12살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와 장릉역사관에는 단종의 흔적이 있고 4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씨동굴이 볼만하며 한반도 지도를 닮은 선암마을과 거대한 기암괴석인 선돌이 장관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불상 대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진 법흥사를 방문해볼만하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와 더불어 3대 적멸보궁에 속하는 곳이며 오가는 길에 신선과 노니는 정자 요선정 등 풍광이 수려하다.|chorani7@chol.com 알·아·두·면·좋·아·요 ------------------------ 조선민화박물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6시(동절기 5시), 관람료 어른 3000원, 중고생 2000원, 초등학생 1500원. 연중무휴 033-375-6100 www.minhwa.co.kr 영월책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동절기는 5시)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중고생 1500원, 어린이1000원. 연중무휴. 033-372-1713,1714 www.bookmuseum.co.kr 곤충박물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동절기는 5시).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033-374-5888 www.insectarium.co.kr 동강사진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1월1일은 휴관. 033-375-4554 www.dgphotomuseum.com 영월별마로천문대 천문대 이용시간은 오후 3시부터 오후 11시이고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 명절에는 휴관한다. 이용요금은 성인 5000원 청소년과 어린이 4000원이다. 주차는 무료. 문의 033-374-7460, www.yao.or.kr 난고 김삿갓문학관 033-375-7900, 묵산미술관 033-374-7249, 단종역사관 033-370-2619 먹을 것 : 영월군청 앞 청산회관(033-374-3030)에서 곤드레 나물밥을 먹어볼만하다. 취나물과 비슷한 모양의 곤드레 나물을 섞어 밥을 하는 것으로 양념장에 비벼 먹는데 맛이 너무 좋아 취할 정도여서 ‘곤드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법흥사 가는 길에 지나는 주천에서는 가난한 시절 물리게 먹어 ‘꼴두 보기 싫다고 해서’ 이름 붙은 신일식당(033-372-7743)의 꼴두국수가 별미다. 잠잘 곳 : 영월 청령포 옆에 자리한 청령포 모텔(033-374-4114)은 ‘라디오 스타’촬영지로 일박에 3만 원 선이고 주천에서 법흥으로 이어지는 서마니강변에 자리한 서마니관광농원(033-764-1139, www.sumani.co.kr)은 축구장. 수영장, 식당을 갖추고 있어 단체로 머물기 좋은 곳이다. 4~1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객실 10여개가 있으며 숙박료는 6~10만 원 선이다. 영월 가는 길 : 영동고속국도를 타고 남원주 IC-치악휴게소-신림IC로 나와 38번국도 영월방면표지판 따라 가면 영월이다.
별다른 약속이 없는 토요일 저녁이면 TV를 켜고 습관적으로 MBC TV 무한도전을 시청한 지도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엔 자잘한 현실의 스트레스와 결별하여 유일하게 아무 이유 없이 넋 놓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 시청동기가 되었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는 그들의 시도, 그리고 도전을 위한 노력과 결실이 저를 6명 멤버와 함께 울고 웃게 하는 열혈 시청자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수많은 도전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댄스스포츠’ 도전편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죠. 스텝하나 밟기도, 박자 맞추기도 힘들어하던 그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어 연습에 연습을 더하고, 대회에 나가서 실력만큼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 흘리는 멤버들. 참 오랜만에 TV를 시청하면서 그들과 함께 울었던 아름다운 기억, 저 혼자만의 추억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 말고도 이 댄스스포츠 도전편을 보고 눈물 흘렸던 한 선배는 아예 방송이 끝난 후 강남에 한 댄스스포츠학원에 등록해 3개월째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자기계발차원에서 새로운 취미활동 하나쯤 갖고 싶었다던 그녀는 단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자신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얘길합니다. 매사에 소극적인 자신이 조금씩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걸 주변 사람들도 많이 놀라 한다는 군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현재에 안주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시대적 흐름 때문인지, 업무 속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아껴 취미를 즐기거나 공부하는 직장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빨리 일어나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해 몸매 관리와 건강을 위해 열중하거나 골프나 수영 등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학학원에서 비즈니스 영어회화, 중국어, 일어 등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점심시간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외국어 공부를 하는가 하면, 일을 마치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되는 요리 수업, 와인이나 커피 클래스에 참여하여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지요. 샐러리맨(salary man)과 스튜던트(student)의 합성어인 ‘샐러던트(saladent)’가 괜히 탄생했겠습니까? 자신이 일과는 다른 새로운 영역이나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는 샐러던트. 현실에 대한 불안감, 남들에게 뒤지지 말아야겠다는 의식 등도 샐러던트를 탄생시킨 배경이기도 할 테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학습욕구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실천하는 자가 열매를 얻는다 주말을 맞아 친구는 어머니와 함께 마트에 갔더랍니다. 친구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하던 1976년에 입사해 현재까지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멋진 워킹우먼이기도 하시지요. 장을 보는 중에 어머니는 벨이 울려 핸드폰을 받더니 구석진 곳으로 가셔서 통화하는데 좀처럼 끊지를 않아 가까이 가서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영어로 통화를 하더랍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가 영어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딸은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회사에서 영어 때문에 임원승진에 번번이 탈락해 도저히 안 되겠기에 1:1 전화영어 신청을 했고 매일 안 되는 영어로 통화하며 몸부림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고백하셨답니다. 친구는 그 일로 충격을 받고, 손 놓았던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배움에는 나이도 성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인거죠. 밸런스 컨트롤 중요한 자기계발 ‘독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동료나 친구들을 볼 때면 참 부끄러워집니다. ‘나는 출근이 빠르니까’, ‘야근이 잦으니까’ 등의 핑계나 자기합리화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지 못하는 제가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자기계발도 본업에 충실한 다음, 일과 후 시간을 조절해가며 스텝을 밟아가는 게 중요하겠죠. 자기계발에 매여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만들진 마시고, 우선은 건강 먼저 챙기시고요. 새 학기면 우리 선생님들, 목감기에 기관지염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3월입니다. 물론 해가 바뀌는 1월에 세운 신년계획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순이 싹을 틔우려면 워밍업 하는 2달여의 시간이 필요한 법. 이미 시작한 일이 있다면 궤도에 올려놓으시고, 오늘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자기계발과제 하나씩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국어다운 표현을 찾아서 이제까지 두 번에 걸쳐 관형격조사 ‘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의’를 생략해도 좋은지 잘 따져야 깔끔한 말과 글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과, ‘로의’, ‘로서의’, ‘에의’, ‘에서의’, ‘으로부터의’, ‘와의’ 같은 일본어투 조사를 그대로 옮기지 말고 적절히 손질하여 한국어다운 표현을 몸에 익힐 것을 제안해보았다. 실제로 글쓰기를 할 때 ‘의’를 어떻게 하면 잘 구사할 수 있는지를 적잖이 고민하게 된다. 이른바 세계화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같은 외국어의 물결은 점점 더 거세게 밀려올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고 교류가 늘어나면 언어가 뒤섞이고 변화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밀려온다고 손 놓고 떠밀려 가기보다는 자기 자신한테 어울리는 알맞은 언어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마치 한국어에 남의 옷을 걸쳐 놓은 듯한 관형격조사 ‘의’의 어색한 쓰임새를 점검하여 바로잡는 일은 한국어다운 글쓰기에 여간 중요하지 않다. 서술어 중심이란 ‘의’가 던져주는 문제를 곰곰이 곱씹어보면, 한국어 표현의 특성이 동사와 형용사 같은 서술어 중심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다. 서술어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성질, 상태,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로 동사, 형용사, 서술격조사가 붙은 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서술격조사는 어디까지나 조사인 만큼 체언에 붙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서술어 중심이란 과연 어떤 특징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아마도 깊이 있는 언어철학 분야의 통찰을 동원해야 할 것이나, 여기서는 단순하게나마 개괄해보기로 한다(무엇보다 필자의 능력이 닿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우선 다음 두 예문을 읽어보자. (1) 참 맛이 좋구나. (2) 참 좋은 맛이구나. 아주 단순한 문장들이지만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1)은 ‘맛’이라는 주어에 그것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 ‘좋다’라는 서술어를 결합한 반면, (2)는 ‘좋은 맛’이라는 명사를 서술어로 삼았다. 특히 (2)는 주어를 생략한 채 서술어만으로 문장이 성립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이 문장의 주어는 ‘이것은’ 혹은 ‘이 음식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술어 중심이란 ‘좋은 맛이다’보다는 ‘맛이 좋다’처럼 명사+서술격조사로 이루어진 서술어보다는 동사나 형용사를 서술어로 취하는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특징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2)에서 보듯이 주어 없이 서술어만으로도 문장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점도 서술어 중심이라는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 하겠다. 명사가 중심을 이루는 표현 영어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다’(I think that~)라는 문장구조를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할 때 일단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는 명사구를 맨 앞에 턱 내놓는다. 예를 들어 ‘내가 느낀 점은 한국이 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첫 자리를 차지한 주어가 강한 인상을 주면서 ‘~라는 것이다’라는 식의 서술어를 취하기 쉽다. 이렇게 주어도 명사, 서술어도 명사인 특징을 명사 중심이라 부를 수 있다. 일부러 지어낸 문장이라 좀 어색하지만 명사 중심의 표현과 동사 중심의 표현을 비교하기 위해 ‘나의 올해의 희망은 해외로의 파견 근무다’ 같은 문장을 살펴보자. 한국어 표현으로서는 누구나 불만을 가질 법하지만 영어나 일본어를 직역한 문장으로서는 가끔 목격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것을 ‘나는 올해 해외파견 근무를 희망한다’로 바꾸어 써보면, 역시 한국어다운 표현은 동사가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명사가 중심을 이루는 표현에서는 ‘의’가 지대한 역할을 떠맡는다는 점도 알아챌 수 있다. 따라서 서술어 중심인 한국어를 잘 다루려면 적재적소에 ‘의’를 쓰는 요령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의’를 없앨 수 있다면 없애자 지난 호 ‘나의 살던 고향’이 어색한 까닭-관형격조사 ‘의’에 대하여(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를 생략하는 경우를 요약한 바 있다. 복습 겸 되풀이하자면, 그것은 ①‘언니 연필’처럼 ‘의’로 이어진 두 체언이 소유주와 소유물 관계를 나타낼 때, ②‘코끼리 코’처럼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나타낼 때, 그리고 ③‘선생님 아들’처럼 친족 관계를 나타낼 때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연의 관찰’, ‘학문의 연구’, ‘상품의 수출’처럼 앞에 나온 말이 뒤에 오는 말의 목적어인 경우도 생략이 가능하다. 생략의 묘미는 뜻을 해치지 않으면서 모양새가 좋게 하는 데 있다. 명사구 표현은 ‘의’의 부작용을 금방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인데, 제목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누구나 글을 쓰다 보면 크고 작은 제목을 다는 일에 고심을 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간추린 맛이 나면서도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축약된 표현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수사에 있어서의 정확한 내용의 발표 → 수사의 정확한 내용 발표 (4) 헤겔의 있어서의 모멘트의 개념 → 헤겔의 모멘트 개념 (5) 근대 문학사에 있어서의 언문일치의 성립 → 근대문학사에서 언문일치의 성립 왼쪽의 예들은 흔히 논문이나 보고서의 제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사구 표현이다. 세 어구에 쓰인 ‘~에 있어서(의)’는 직역투를 그대로 차용한 말이므로 문맥에 따라 ‘~의’, ‘~에서’ 등으로 다듬을 수 있으며, 거기에 없어도 무방한 ‘의’를 생략하면 오른쪽과 같이 된다. 축약을 위해서는 명사를 나열하게 되고, 그 명사들을 연결하려면 ‘의’를 빈번하게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어의 명사구 표현에서 ‘의’가 두 번 이상 들어가면 어법에도 맞지 않고 의미도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명사구 표현으로 맛깔스런 제목을 달기 위해서는 ‘의’를 다루는 요령과 연습이 필요하다. 서술어를 사용해서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자 ‘의’는 두 명사가 소속, 소유, 속성, 주체, 대상, 목적 같은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적절한 서술어를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가다듬을 수 있다. 특히 ‘의’가 두 번 이상 나올 때는 뜻이 명확해지고 글이 잘 읽히도록 서술어를 동원해 손을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성격’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격’으로 고치면 훨씬 읽기가 편해진다. ‘푸리에와 프루동의 계층 부정의 사상’은 ‘푸리에와 프루동이 말한 계층 부정의 사상’으로 고칠 수 있는데, 이때 ‘말한’을 문맥에 따라 ‘언급한, 주장한, 이야기한, 호소한’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다음의 예들도 눈여겨보자. (6) 당국으로부터의 발표 내용 → 당국이 발표한 내용 (7) 환경 보호의 입장 →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 (6)에서 ‘당국으로부터의 발표’는 ‘당국의 발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발표’라는 명사를 ‘발표하다’라는 동사로 바꾸어주면 의미가 더욱 살아난다. (7)의 ‘보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술어를 사용하면 ‘의’로 명사를 연결된 어구의 뜻이 선명해진다. 맵시 있게 시침질하듯 ‘의’를 쓰자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의’의 쓰임새를 바로잡으려면 마치 문장 안에서 ‘의’를 쫓아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의’는 추방당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조사일까. 다음 예문을 읽어보자. (8) 중년에 학생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불편하다. 이 문장의 주어는 ‘중년에 학생 생활을 한다는 것’이라는 절(節)로 되어 있다. ‘절’이란 주어와 술어를 갖추었으나 독립하여 쓰이지 못하고 다른 문장의 한 성분으로 쓰이는 단위를 가리킨다. 이 절을 ‘중년의 학생 생활’이라는 구(句,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토막)로 바꾸면 표현이 간결해지면서도 의미에 조금도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이렇듯 ‘의’의 존재 가치는 압축적인 표현으로 간결한 맛을 구사하는 데 있다. 바느질이 뛰어난 사람은 바늘땀이 보이지 않도록 공그르기(blind stitch)로 시침질을 한다. 마찬가지로 ‘의’가 겉으로 툭 불거지지 않으면서 맵시 나게 명사와 명사를 이어주도록 하는 것이 글쓰기 요령의 하나다.
“다중지능 평가로 아이들의 무한 잠재력 알았어요” “다중지능 이론은 30여 년간의 교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교육활동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아닌 내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양대부설 한양초 이인순(54) 교사는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 어때요?”라는 학부모의 질문에 학생에 대해 몇 줄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설명하는 것이 너무나 창피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날의 고민은 이 교사가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다중지능 이론’을 교실에 접목해보겠다는 ‘실천’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30년 교직생활을 달라지게 한 학습자 중심 평가 “학생, 학부모도 만족할 학교생활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던 중 한양대 한국교육문제연구소에서 연구해온 ‘다중지능 이론을 통한 학교개혁 프로젝트’가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지능을 인정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기다려주는 학습자 중심의 평가라는 점에서 제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줄 대안이 됐죠.” 이 교사는 그때부터 5년간 한양대 한국교육문제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중지능 이론에서 ‘지능’은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나 암기 속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의 실제 생활에서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느냐를 말한다. “사교육이 주는 가장 큰 폐해가 바로 ‘만들어진 교육’입니다. 빨리 학습해서 정확히 잘 외우도록 하기 때문에 맞는 답만 맞추는 아이가 최고가 되죠. 하지만 다중지능 평가에서는 그런 학생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어요. 그 아이가 얼마나 창의적인 행동을 했고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학생, 학부모 신뢰 얻은 ‘수업 동영상 공개’ 그는 다중지능 이론을 교실에 적용하기 위한 해답을 ‘협동학습’에서 찾았다. 다중지능 이론의 8가지 지능인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탐구 중 핵심지능 하나를 선택해 수업을 계획하고 협동학습 과정에서 그 재능에 대한 아이들의 잠재력과 특성을 파악했다.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처음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협동학습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이 잘하는 역할을 찾고, 자신감도 갖게 됐죠.” 또 수업활동을 촬영, 매주 1회 25~45분용 CD로 제작해 학부모에게 공개하고 아이들과 함께 보도록 했다. 모든 수업이 공개돼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학부모들의 불신은 사라졌다. 오히려 ‘우리 아이의 실체를 알게 됐다’며 이 교사를 격려했다. 아이들도 객관적으로 수업동영상을 다시 봄으로써 자기반성을 했고 학습효과도 높아졌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 때문에 수업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교사로서의 ‘나’ 발전시킨 다중지능 이 교사는 한 학기가 끝나면 다중지능의 8가지 영역별 능력에 대한 학생들의 발달, 진보 상황을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에서 기록한 ‘다중지능평가발달표’를 작성해 각 가정에 보냈다. 발달표는 학생들 특성과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언어지능을 파악할 때 일반적으로 ‘유창함’이 평가기준이 되는데 다중지능 교실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8가지 영역에서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약점보다 강점을 먼저 파악하고 독려해주는 제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인순 교사는 다중지능 평가가 거창한 계획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을 보는 방식만 달라져도 교실에는 큰 변화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교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중지능 평가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오늘은 학교에 가면 어떤 재미있는 수업을 할까’ 기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고민이 사라져요. ‘다중지능 평가’라는 대단한 이름을 붙인 연구나 평가여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가장 큰 행복이 바로 학생이 즐거워하는 학교, 수업이기 때문이죠.”
칭찬의 교육학이 위세를 얻고 있다. 인격에 대한 인식이 성숙할수록 칭찬의 교육적 가치는 확장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덩치 큰 고래도 칭찬 한 마디에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춤을 추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칭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칭찬의 효력을 이렇게 강조하는 데에는 우리네 현실이 그만큼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또 그만큼 칭찬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나무람과 꾸짖음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스스로 돌아보건대 나는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 편이다. 교사를 기르는 대학에서 선생을 하려면 ‘교사되기의 원리’를 교수가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컨대 나는 칭찬에 후한 사람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에게 의미 있는 꾸지람을 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꾸지람을 앞두고서는 몇 번씩 머뭇거리는 편이다. ‘아, 저 학생이 내 꾸지람을 정말 멋있게 수용해 주었으면 참 좋을 텐데. 혹시라도 내 진정한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로만 남게 되면, 이 꾸중은 안 하기만 못한 것 아닐까’하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머뭇거림이 길어질수록 나의 꾸중 계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달라진 세태를 의식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마음으로 충고하여 꾸중하기가 정말로 어려워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꾸중은 악덕이고 칭찬은 미덕이라는 단세포적인 이분법이 어느새 우리들 인식에 타성처럼 자리 잡았다. 꾸중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꾸중은 본래의 의도한 효과와는 천리만리 먼 역효과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 역효과의 상흔은 오히려 꾸중한 쪽에게도 오래 남겨진다. 제대로 된 진정성 넘치는 꾸중을 접해 본 경험이 아예 사라지고 있다. 꾸중의 방식이 문제가 될지언정, 그렇다고 꾸중 자체의 교육적 책무를 아주 무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칭찬의 교육적 위력을 진정으로 높이기 위해서라도 꾸중의 길은 그것대로 바르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칭찬과 꾸지람의 위상(位相)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칭찬과 꾸지람은 이 지구상에서 선생 노릇 하는 사람 모두에게 숙명적 실천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칭찬의 교육학’이 중요하면 할수록 ‘꾸지람의 교육학’ 또한 마땅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칭찬과 꾸지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 상호성을 가지는 것이다. 칭찬만 있는 세상에 칭찬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마치 빛만 있는 세상과도 같다. 빛만 있는 세상이란 사실 피곤한 세상이다. 빛은 끝없는 시지각의 작동을 요구하여, 오로지 보고, 보고, 또 보게 할 뿐, 그 막막한 밝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쉬지 못할 것이다. 빛만 있는 세상일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만상을 어둠 속에서 놓아 버리는 명상의 시공(時空)과 지각의 안식을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다. 빛이란 어둠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칭찬 또한 꾸중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칭찬만 있는 세상에서는 칭찬이 걷잡을 수 없이 인플레 될 것이다. 인플레 된 칭찬이란 이미 번다한 비위 맞추기이거나 임시방편의 안심시키기로 왜곡되기 쉽다. 이런 변질된 칭찬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가 가지게 될 ‘말에 대한 불신’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그것이 어찌 말에 대한 불신만으로 끝날 일인가. 필경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 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꾸중의 철학 없이 막무가내 칭찬으로 나서는 것은 자칫 ‘주책없는 어른’을 자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인생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섭렵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단맛만 가지고 인생의 경륜을 쌓을 수 없고, 쓴맛만 가지고도 인생의 경륜을 쌓을 수 없다. 교육을 받고 자라는 쪽에서도 그 성숙의 총체적 발달을 위해서는 단맛과 쓴맛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빛과 어둠의 순환이 만물의 생장을 주관하는 우주의 리듬이듯이, 칭찬과 꾸중 또한 한 인간의 성숙과 발달을 도모하는 상보적(相補的) 기제이다. 적어도 교육하는 행위의 총체성 속에 칭찬과 꾸중은 조화로운 동반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외우(畏友) W교수의 연구실을 오랜 만에 들렸다. 추운 날이었다. W교수가 만들어 주는 차 한 잔을 마시며 환담하는 동안, 누가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20대 중반의, 선생인 듯 학생인 듯한 여성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인사의 투로 보아 W교수의 제자인 듯하다. W교수가 제자를 소개하여 내게 인사시킨다. 이번 봄 새 학기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 올 학생이란다. 학생이기도 하거니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현장 3년차의 선생님이라니 신참 교사는 지난 셈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본격적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장하다고, 나는 그녀에게 격려의 말을 한다. 신입제자를 자리에 앉힌 W교수는 제자의 공부에 대한 포부와 각오를 확인한다. 상대의 잘못된 학문 방식과 습관이 보이면 서슴없이 나무란다. 학문적 노력과 논문쓰기 과정의 엄밀성을 강조하면서, 제자의 준비 상태를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미흡하거나 부족하면 또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젊은 제자는 선생의 나무람이 있을 때마다 입을 굳게 다문다.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것인지, 마음이 상하여 면구스러워지는 것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W교수는 학문의 길을 같이 가는 동학의 친구들과 왕성하게 교유하기를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쓴 소리를 많이 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한다. 간간 웃음을 띠며 이야기했지만 분명 W교수의 말은 나무람과 교정의 메시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만 이야기했으니 자네의 말도 들어 보기로 하세. W교수가 말할 기회를 제자에게 넘겨준다. 그녀는 수그린 이마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W교수를 향하여 다시 한 번 가벼운 목례를 한다. 비로소 굳게 다물었던 입가의 근육을 풀고 가볍게 웃음을 머금는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상처받지 않겠습니다.” 이 첫마디가 내게는 신선하고도 산뜻한 미더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강하고 알차게 그리고 너그럽게 성장, 발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학문의 길에서 자기연마를 하려는 사람의 다짐으로서 저처럼 견고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아울러 스승에 대한 신뢰를 저처럼 확고하게 보여주는 말이 달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들과 문답하며, 제자들의 모자람을 일깨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일깨움의 대목을 꼭 꾸지람이라고 하기에는 무엇하지만, 그것이 칭찬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닌 것만큼은 틀림없다. 공자의 제자들이 그렇게 꾸중 받는 자리에서 무어라 반응을 했는지 묘사돼 있지 않지만, 문맥의 큰 흐름으로 보면, 스승의 나무람을 가르침의 본질로 받들어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논어로 기록하면서 그런 나무람의 장면들을 수록하지 않았겠는가. 신약성서에도 예수가 제자들을 꾸짖는 대목이 더러더러 나온다. 그러나 그 꾸중을 들은 제자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기록은 없다. 성서 역시 예수가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 이후 예수의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다. 예수의 꾸중을 제자들이 잊지 않고 굳이 의미 있게 기록한 것은 그 꾸중의 본질과 가치를 존중하고 감사히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문득 유도를 배우던 시절의 사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유도의 연습과정에서는 상대가 공격을 걸어오면 무리하게 피하려 하지 말고 그 공격에 선선히 넘어가 주라.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 그래야만 실력이 발전할 수 있다. 단 연습할 때만 그러하다. 경기에 나가서는 그리하면 안 된다.” 꾸중이란 유도 연습에서 내게 가해오는 공격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공격 자체를 거부하면 유도의 기량을 기를 수 없다. 공격의 리듬에 잘 호응하여 나를 매트 위에 떨어지게 만드는 과정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유도의 기술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꾸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자리가 있는 사람이 발전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꾸중이 사라져 가는 세태에는 상처의 과잉이 나타난다. 그만큼 눈에 안 보이는 학대가 심해지는 세상이라는 것일까. 우리 사는 세태가 얼마나 삭막해졌는지 사람들은 마치 언제라도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조금의 꾸지람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들 존재는 더욱 허약해지고 우리 사회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 아닐까. 스스로의 강함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너그러움을 위하여, 마음에 심어두고 주문처럼 되뇌어 보자. ‘상처받지 않겠습니다!’| 경인교대 교수 칭찬과 꾸지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 상호성을 가진다. 칭찬만 있는 세상은 마치 빛만 있는 세상과도 같다. 빛만 있는 세상이란 사실 피곤한 세상이다. 빛은 끝없는 시지각의 작동을 요구하고, 그 밝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쉬지 못할 것이다. 빛만 있는 세상일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만상을 어둠 속에서 놓아 버리는 명상의 시공(時空)과 지각의 안식을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