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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논쟁사(論爭史)에 두고두고 뒷이야기를 남긴 것 중에 1963년도의 ‘사형제도 찬반’에 관한 논쟁이 있다. 당시 유력한 저널이었던 동아춘추(東亞春秋)를 통해서 찬성 반대 주장이 몇 번씩 오가면서, 지식인은 물론이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논쟁이었다. 5·16 군사혁명 직후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에 대한 지성계의 암묵적 반발 정서가 일조를 한 탓일까. 논쟁은 상당한 활기를 띠었다. 이 논쟁 주제는 이후 논술시험의 과제로도 더러 출제되어 오늘의 우리에게는 상당히 진부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논쟁 주제 자체가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사형제도 찬성 주장을 편 사람이 천주교의 사제인 윤형중(尹亨重) 신부이고, 반대 주장을 편 사람이 현직 법관인 권순영(權純永) 판사였다는 점이다. 사회 일반의 통념으로 보면, 종교인인 신부는 사형제도의 존속을 반대할 것 같고, 법을 집행하는 법관은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할 것 같은데, 이 논쟁에서는 우리들의 통념에 반하여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두 분 논쟁 당사자들은 소신과 철학이 투철했다는 것을 엿보게도 한다. 논쟁은 윤 신부가 ‘처형대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흉악범에 대한 사형의 당위성을 동아춘추 1962년 12월호에 기고한 것에 대해서 권순영 판사가 반박의 글을 동아춘추 1963년 1월호에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이것을 다시 윤 신부가 반박하고, 그것을 다시 권 판사가 대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지성을 표상하는 존재였으므로 이 논쟁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았다. 이미 대한민국이 주시하는 논쟁이 되고 말았으므로 당사자들도 상대에게 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입가경의 경지가 펼쳐졌다. 반박을 당한 윤 신부가 권 판사를 재반박한다. 그는 매우 실감 나는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럴 법한 상황을 상정한다. 이래도 권 판사는 사형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셈이다. 그런데 그 상황 예시가 예사롭지 않다. 윤 신부가 쓴 글의 그 대목을 줄여서 인용해 본다. 권 판사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의 사형이 전폐되었다고 가정하자. 권 판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문제의 본모습이 더 잘 드러나고 더 실감 나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건을 상상해 본다. 권 판사의 아버지는 정의파에 속하는 양심적 인물이다. P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자는 불량한 인물이다. P는 남의 큰 재산을 가로채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권 판사 아버지의 협력이 필요하다. 여러 번 청해서 회유를 해 보지만 권 판사의 아버지는 끄떡도 않는다. P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면 권 판사 아버지의 협력이 있든지, 아니면 권 판사 아버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P는 권 판사 아버지를 죽여 버릴 결심을 하고 기회를 노린다. 독살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납치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P는 여러 차례 자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어느 무더운 여름 밤 일본도를 들고 담을 넘어 권 판사 아버지의 방에 들어섰다.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권 판사 아버지를 난자(亂刺)하여 죽여 버렸다. P는 체포되어 무기형을 받아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무슨 고역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방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P는 돈을 많이 예치하여 놓고 날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청하여 먹는다. 그렇게 소일한다. P는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지도 않는다. 도리어 가끔 소리를 높여 말한다. “내게 협력해 주지 않은 그놈(권 판사 아버지)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린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하하하, 나는 내 명대로 살 것이니 이것은 참 통쾌한 일이다. 나라에 경사라도 생기면 감형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출옥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말이 권 판사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교도소 옆을 지날 때 권 판사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 동아춘추 1963년 2월호 - 윤 신부의 상황 설정이 참으로 묘해서 권 판사의 반론 글이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권 판사가 동아춘추 편집장에게 보낸 글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참으로 심중했다. 권 판사가 보낸 글을 그대로 소개해 본다. 편집장에게 나는 윤 신부의 사형에 관한 글에 대하여 논평하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의 의견대립으로서의 논쟁이 본론(초점)을 떠나 인신공격으로 빠지는 예를 보아왔기 때문에 나와 윤 신부와의 논쟁도 또 그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하고 적이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불행하게도 적중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은 공개토론 할 기회가 적었던 우리 민족의 비극입니다. 나는 윤 신부가 나의 소론(所論)을 반박한 글에 대해서 다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윤 신부의 저주를 받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을 자식으로서 다행하게 생각합니다. - 1963년 2월 27일 권순영 - 2 위의 논쟁에서 누가 이긴 것으로 보아야 할까.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승자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칼로 자르듯 ‘누구의 승리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가 이겼다고 보아야 할까? 상대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케 했으므로 윤 신부가 이긴 것으로 보아야 할까. 논쟁의 올바른 차원을 깨우치려 한 권 판사에게 승점을 더 주어야 할까? 그런데 이런 식의 질문이야말로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표현식으로 하면 그야말로 난센스(nonsense)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하나는, 논쟁의 판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합리적 주장을 펼치고 경청할 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씨름 경기에서 씨름판이 깨어졌는데 승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두 번째 사실, 즉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기지 못했을뿐더러 두 사람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권 판사의 불편함은 쉽게 이해가 간다. 자신의 인격과 몸(인신)이 공격을 당했으니까. 그것도 육친의 아버지가 참혹하게 당하는 장면으로 끌려갔으니까. 윤 신부인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권 판사가 저렇게 속이 상했는데 희희낙락하는 마음이 될 수 없다.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이 논쟁에서는 이긴 사람이 없다. 논쟁을 지켜본 사람들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승자를 가리려고 한다. 아니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는 사람을 승자로 만들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윤 신부의 글에나 권 판사의 글에 악성 댓글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갈 것이다. 논쟁이 게임의 논리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곳에 저급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그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인격이 바로 소영웅주의라 할 것이다. 포퓰리즘의 음습한 온상이 바로 우리들 안의 악마적 공격성에서 만들어진다. 포퓰리즘에 휩쓸리기 쉬움을 경계하는 지혜는 일찍부터 있어 왔다. 대중은 어리석다는 말도 있었다. 대중이 어리석다는 말을 압도하는 말로 일찍이 민심이 천심이라는 지혜로운 명제가 있음도 잘 알고 있지만, 그 민심이 악플을 통해야만 제대로 드러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3 부메랑(boomerang)이란 것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냥이나 전쟁을 할 때 쓰는 굽은 막대 모양의 무기를 일컫는 말이다. 부메랑을 던져서 짐승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나무에 쳐 놓은 그물에 새 떼를 몰아넣기 위해 매 대신 부메랑을 이용하기도 한다. 전쟁에서는 살상용 무기로 쓰이기도 하였다. 부메랑은 차차 발전하여 던진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이 생겨났다.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은 가벼우면서 얇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길이는 30~75㎝, 무게는 약 340g이다. 그래서 부메랑은 던진 사람에게로 되돌아오는 무기이다. 말의 백태(百態)를 알면 사람의 백태를 아는 것이다. 인신공격은 말의 백태(百態) 중에 가장 질이 낮은 말이다. 인신공격을 하는 동안에는 가장 치열하게 말을 하고 가장 잘 공격한 것 같지만 그 피해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인신공격이 예외 없이 그러하다. 그것을 깨닫는 데도 세 부류의 심급이 있다. 첫째 부류는 그래도 교양과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한 못된 말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마음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이다. 그다음 부류로는 인신공격으로 인해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망을 잃고 좋은 평판을 상실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자신의 인격에 실망하기보다는 주변의 인기를 잃었다는 데에 실망을 하는 부류들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부류는 인신공격 자체를 특기쯤으로 자랑스럽게 펼치고 다니다가 자기가 공격을 가한 상대로부터 열 배, 백 배의 통렬한 복수를 당하고 난 다음에 인신공격의 폐해를 아주 늦게야 깨닫는 사람이다. 물론 이렇게 평생을 살면서도 인신공격의 악마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자기가 던진 부메랑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쏜 독한 말의 부메랑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리석기는 원주민들이 아니라, 문명시대 약삭빠른 말의 재주꾼들이다. 국정감사 장면에서도 인신공격의 말이 난무한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장면들이 속출한다. 저렇게 상처들을 양산해야만 국정이 감사되는가. 무릇 모든 상처들은 원혼처럼 떠다닌다. 그래서 부메랑이 되어 원래의 발신자에게로 돌아간다. 주술처럼 들리는가. 사실 주술의 본질이란 것이 자연의 섭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말의 부메랑이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치명적이다.
바보란 밥만 축내면서 제 구실 못하는 사람 요즘 필자의 눈길을 끈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두루미(이지아 분)와 천재 트럼펫 주자 강건우(장근석 분) 커플, 가을 밤 정취에 취해 키스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입술과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 애견 (베)토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괴짜 지휘자 강건우(동명이인, 김명민 분)에게 딱 걸리고 만다. “흥, 귀머거리에 백치라, 바보 커플이네. 계속해 봐….” 지휘자 강건우가 청신경 종양 때문에 청각을 잃게 될 두루미를 귀머거리로, 스스로 엄청난 음악적 천재임을 모른 채 좌충우돌하는 순수한 청년 강건우를 백치라고 비아냥거리는 대목이다. 이 대사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귀머거리+백치=바보’가 된다. 바보의 뜻을 찾아보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바보를 규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여하튼 통상적인 기준에 비추어 바보가 틀림없을 때 바보라는 호칭을 쓴다. 또 하나는 실제로 바보는 아닌데 비난, 조롱, 동정 같은 목적을 위해 단지 비유적으로 바보라고 부른다. 바보는 어원적으로 ‘밥’에 ‘보’가 붙은 형태라고 한다. 이때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낱말 끝에 붙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마디로 바보란 밥만 축내면서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원래의 뜻에서 어리석거나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변한 말이다. 제 구실을 못한다는 넓고 추상적인 의미가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으로 좁혀지고 구체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자란 사람을 가리키는 말 바보의 뜻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모자람’이다.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을 얼간이라고 하는데, 얼간은 소금에 살짝 절이는 것을 가리킨다. 즉, 얼간이란 간이 덜 되어 맛이 엉성한 상태의 사람을 빗댄 말이다. 본래는 제대로 간을 맞추어 맛깔스럽게 절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대충 간을 맞춘 것처럼 어설프고 모자란 듯하다는 뜻인 셈이다. 얼간이는 얼간, 얼간망둥이라고도 한다. 모자람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말로 ‘반편이’를 들 수 있는데,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란 사람을 가리킨다. 반편, 반병신과 바꾸어 쓸 수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반(半)’ 자체가 모자람, 온전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반편이는 열 달을 온전하게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는 뜻으로 ‘여덟달반’이라고도 한다. 한편 말이나 하는 짓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머저리라고 한다. 머저리와 비슷한 말로 어리보기가 있지만, 이보다 멍청이라는 말이 더욱 일상적으로 자주 쓰인다. 멍청이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속된 느낌을 더하여 멍텅구리라고도 한다. 한 번에 낱말을 하나씩 동원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지만, 분하거나 속이 터질 때는 ‘바보 머저리 멍텅구리…’처럼 몇 개를 동시에 나열하면 감정 표현의 효과가 더욱 커진다. 육체적 결함과 정신적 결함 바보의 뜻이 정신적인 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 유념하며 다시 ‘귀머거리+백치 =바보’라는 도식으로 돌아가자. 귀머거리는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는 사람을, 백치는 뇌에 장애나 질환이 있어 지능이 아주 낮고 정신이 박약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백치는 바보가 틀림없겠으나 귀머거리를 과연 바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바보는 지능과 관련해서 이른바 정상이 아닌 사람을 가리킬 뿐,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은 ‘병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엄격히 말해 병신은 정신적인 결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병신이라 칭한다. 원래의 뜻에서 보자면, 여기서 ‘모자라는 행동’이란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능력을 고려한 지적일 따름이지 정신적인 측면에는 하등 해당하는 바가 없다. 육체적인 기능에 아무런 결함이 없는데도 굳이 병신이라는 욕을 한다면, 육체에 한정되는 뜻의 범위를 정신까지 확장하여 비유적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일 것이다. 본래 병신이란 말이 육체에 속하는 낱말이라는 증거는 이 말이 물건에 쓰일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문이나 한 짝이 없어진 양말, 꼭지가 떨어져 나간 뚜껑 등 어느 부분을 갖추지 못하여 쓸모없어진 물건을 가리켜 흔히 “그건 병신이 되어 버려 이젠 못 써”라고 말한다. 물건에는 지능 같은 정신적 능력이 없기에 병신은 될지언정 죽었다 깨어나도 바보는 되려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다 앞에서 바보의 쓰임새를 실제적인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 두 가지로 제시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일상생활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의미로 바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뇌의 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사람을 바보라고 공개적으로 일컫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병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권이나 차별 같은 개념이 없던 옛날이라면 몰라도, 바보나 병신이란 말을 원래의 뜻으로 입에 담는 일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비유적인 의미라면 상황이 사뭇 다르다. “널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 “이 바보야, 정신 차려”에서처럼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진지한 쓰임새도 있는 한편, “울긴 왜 우니? 바보같이…”, “난 너 같은 바보가 좋아”에서처럼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유쾌하고 귀여운 쓰임새도 친근하다. 나아가 ‘바보들의 행진’, ‘바보 선언’, ‘병신과 머저리’ 등 예술작품의 제목으로 쓰일 때는 사회적 환경이나 시대의 흐름에 닳거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순박함, 혹은 상처나 아픔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밥이라는 뿌리에서 가지를 친 낱말 가운데 밥만 축내는 한심한 족속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밥통’이나 ‘밥벌레’를 들 수 있다. 밥통이나 밥벌레도 바보와 뜻은 별다르지 않지만, ‘통’이나 ‘벌레’에 비하면 사람을 가리키는 ‘보’의 존재는 하늘과 땅만큼 차원이 다르다. 아마도 바보에서 인간미가 흠뻑 느껴지는 까닭은 ‘보’의 위력에 있지 않은가 한다. 바보와 영웅은 종이 한 장 차이 한반도에서 배출한 바보 가운데 가장 전형적이고 고전적이며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역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전하는 온달이 아닐까 한다. 온달은 신분이 낮고 얼굴이 못생겼으며 눈먼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가난한 청년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똑같은 모양인지 별 볼일 없는 사내라는 이유로 고구려 사람들은 온달을 바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남들은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평강공주는 온달이 착하고 성실하며 힘과 지략을 갖춘 남자라고 평가했다. 곁에서 아버지 평원왕이 갖은 말로 뜯어말리는데도 온달의 잠재 능력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고 기어이 온달에게 제 발로 시집을 갔다. 온달이 왜 하필이면 남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내게 시집을 오려고 하느냐고 묻자 평강공주는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서방님이 왜 바보입니까?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보이지요. 늙으신 어머님 봉양 잘하고, 맡은 일 열심히 하고, 남 해롭게 하지 않는 착한 분이 왜 바보입니까?” 남들의 시선을 한칼에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평강공주의 심지가 굳었기에 온달은 바보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온달과 평강공주 부부의 꿋꿋한 모습에서 지능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바보의 이미지를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들 부부는 바보야말로 영웅의 또 다른 모습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바보라고 놀려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남이야 뭐라 하든 말든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해 내는 온달과 평강공주야말로 바보와 영웅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약에, 이런 바보들만 산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 25년 만의 수석교사제 도입 = 교육혁신위원회가 2006년 마련한 교원정책 개선 방안에 따라 올해 3월부터 수석 교사제가 전격 도입됐다. 수석교사제는 한국교총이 지난 1982년부터 가르치는 교사의 전문성에 상응하는 역할의 부여와 교육 전문조직으로서의 유인체계 마련 등을 위해 주장해 온 제도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올 3월부터 전국의 초·중·고 교사 중 172명의 수석교사를 선발해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16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말 교직경력 10년, 15년 이상 경력자 중 수석교사를 선발했으며 대우는 20% 내 수업 감축, 연구활동비 월 15만 원을 지급한다. 이와는 별도로 시·도별로 특별연구비 지원(서울 연 300만 원, 부산 120만 원, 강원 100만 원 등), 교육청 장학위원 위촉, 해외연수, 전보 시 우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준다. 수석교사는 소속 학교에서의 수업 외에 수업 코칭, 현장 연구,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방법 개발보급, 교내 연수 주도, 신임교사 지도 등 해당교과 수업지원 활동을 펴고 있으며 아울러 교원양성·연수기관에서의 강의 등 교과교육 관련 외부활동 등도 맡고 있다. ■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교권보호법’추진 = 한국교총은 지난 7월 ‘교원의 교육활동,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고 교원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보호법’(가칭)을 제안했다. 교권보호법은 교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교원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학생의 학습권 및 교원의 교육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외부인의 학교 출입 시 별도의 사전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법안에는△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시·도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설치 및 교권전담변호인단 운영 △사립교원 교권보호 제도 마련 △교권침해사범 가중처벌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교권침해 예방 및 회복 조치 의무화 △교육과 관련 없는 행사의 교원 참여 요구 금지 △학교 교육과 무관한 자료제출 요구 제한 등이 포함됐다. ■‘영어’ 수업을 ‘영어’로, 영어 교육 강화 = 올 한해는 영어 교육 논란이 유난히 뜨거웠다. 대통령인수위 시절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 사회, 과학 등 일반 과목도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몰입 교육이 제안됐다가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공교육 강화만 추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영어’를 ‘영어’로 수업할 영어전용교사의 자격 문제 또한 이슈였다. 영어전용교사 2만 3000명을 충원한다는 인수위 방침에 따라 교과부는 영어 회화만을 담당하는 교사 충원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영어교사 양성·자격·임용 체계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교육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자 한발 물러서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교과부는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현직 교사의 영어 연수를 강화하는 한편 영어체험교실(초등) 400여 개, 영어전용교실(중·고) 2300여 개를 연내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서울 국제중학교 설립 논란 = 서울의 첫 직선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 재임에 성공한 공정택 교육감이 내년 개교를 목표로 서울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제중학교 논란은 다시 시작됐다.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10월 31일 서울시교육위원회의 동의안 처리가 마무리됨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이 대원중과 영훈중을 특성화 중학교로 지정·고시해 내년 3월 개교하게 된다. 국제중으로 전환해 문을 여는 대원중과 영훈중은 1단계 학교장 추천과 학교생활기록부 등 서류심사를 통해 정원 모집의 5배수 선발, 2단계 개별면접, 3단계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며 학급 수는 학교당 15학급(학년당 5학급), 학생 모집은 서울에 한정된다. 하지만 대원중과 영훈중 지역 학부모 등 국제중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1713명이 11월 5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특성화중학교 지정·고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냄에 따라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국제중학교는 현재 1998년 설립된 부산국제중, 2006년 문을 연 경기 가평의 청심국제중 등 2개 학교가 있다. ■ 가닥잡지 못한 자율형사립고 = 이명박 정부는 자율화·다양화된 교육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100개), 기숙형 공립학교(150개), 마이스터고(50개) 등 다양한 성격의 학교가 설립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의 1차 선정 작업이 이미 끝난 것에 비해 자율형사립고는 파급 효과가 큰데다 반대가 거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입학대상 선발방법, 재단전입금비율, 등록금 문제 등이 주요 쟁점이다. 교과부는 10월 초에 실시한 자율형사립고 공청회를 비롯해 시도교육청 및 사학 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연말 ‘자율형사립고 지정 운영 계획’ 최종안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에 자율형사립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는 2013년 문을 열게 된다. ■ 교육재정 확보 비상등 켠 교육세 폐지 방안 =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향후 5년간 25조 원 세제감면안’에는 부가세인 교육세를 2010년부터 폐지해 본세와 통합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교육계 전체가 “안정적인 교육 재정 확보에 비상이 켜졌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세는 휘발유 등 석유 연료와 술, 금융·보험업자 수입금액 등에 붙은 목적세로, 1981년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재정 확충’ 차원에서 도입됐다. 지난해 규모가 약 4조 1000억 원이다. 기획재정부의 안은 교육세를 폐지해 ‘내국세’에 통합하는 대신 올해 현재 내국세의 20.0%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20.39%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교과부는 교육세가 내국세로 흡수되면 3조 5000억 원의 내국세분 교부금이 늘어나고, 나머지 6000억 원은 교부금 비율을 0.39% 올려 손실을 보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교부금과 전입금은 교육세와 지방교육세보다 삭감이 용이한 재원으로 안정적인 교육 재정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육계의 설명이다. 또한 교육계는 교육세 폐지는 곧 교육자치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교육세는 교과부 장관이 관장하기 때문에 교육영역의 자주재정권을 보장하는 수단이었지만 교육세가 폐지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부세의 통합 교부를 촉진하여 교육재정의 자율성이 약화될 수 있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의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총은 이와 관련해 11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펼쳤다. ■ 공무원 연금법 = 3년여를 끌어온 공무원 연금이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구조로 개혁이 확정됐다.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9월 24일 이 같은 내용의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정책건의안’을 발표했다. 공무원들의 소득대체율은 최대한 현행대로 보장하면서 정부의 적자 부담을 완화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하지만 공무원 연급법 문제는 아직 ‘진행 중’이다. 교총 등 5개 공무원단체, 전문가, 행정안전부 등이 합의한 내용을 골자로 행안부는 11월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정부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향후 일부 조항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수정 = 2004년부터 국정감사에서부터 문제제기가 됐던 교과서 좌편향 논란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올해 더욱 커졌다. 10월 6일 정두언 의원이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서둘러 교과부에서는 10월 30일 교과서 발행사에 수정권고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교과서 집필진이 11월 4일 ‘한국 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 일동’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교과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번 교과부가 수정권고 한 55건 중 반 이상은 ‘첨삭 지도(단어나 표현 바꾸기)’의 수준이고 그나마 쟁점이 될 수 있는 나머지 15건도 ‘좌편향’된 것이 아니라 검인정 제도하에서 다양성의 측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 학업성취도 평가 전면실시 = 논란이 무성했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10월 14~15일 전국 1만 1154개 초·중·고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이번 시험은 앞서 실시된 초등 3학년 기초학력 진단평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했다. 교과부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학생의 학업부담을 이유로 전체 학생의 3% 전후만 표집해 실시해 왔다. 평가 대상은 초등 6학년은 전국 5894개교 66만 25명, 중학 3학년은 3076개교 67만 5053명, 고교 1학년은 2184개교 66만 7329명이다. 평가영역은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5개 교과이며 14일에는 국어, 과학, 사회를 15일에는 수학, 영어를 각각 치렀다. 교과부는 14일 시험에서는 전국적으로 78명의 학생이, 15일에는 92명의 학생이 평가를 거부한 것으로 파악했다. ■ 학교 시험문제 저작권 대법원 판결 = 중간고사나 기말 고사 등 학교시험문제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며, 출제자 이름이 명시된 시험문제 저작권자는 교사 개인이 갖는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가 4월 10일 출제 교사를 명시하지 않은 학교 시험 문제에 개인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 저작권을 인정한 경우에도 손해배상액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을 기각함에 따라,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논어에 서서히 빠져들다 80년대 중반, 국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한문에 능통해야 했다. 학부 내내 외국 문학 이론을 배경 삼고 철저한 작품 분석을 통해 언어예술의 심연과 진경을 포착하려 애쓰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선배들을 통해서 입수한 대학원 입학시험의 한문 문제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A4 용지 한 장짜리 원문을 한글로 옮겨 내라는 주문이 있는가 하면, 귀거래사(歸去來辭) 같은 작품을 원문 그대로 외워 쓰라는 요구도 있었다. 바로 전해에는 적벽부(赤壁賦)를 외워 쓰라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한자 공부를 그럭저럭 한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온통 한자투성이였던 갖가지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한문 공부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일찍부터 결심했기에 미리 틈틈이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몇 개월 앞두고는 논어와 맹자를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도 공부했고 시험에 나올 만한 명문들도 외웠다. 다행히 대학원 시험에 통과했다.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면서부터 그나마 띄엄띄엄 읽을 수 있었던 한문 해독 능력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열심히 외웠던 명문 원문들 또한 가물가물해졌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공부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부했던 논어의 구절들은 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를 ‘잘못’이라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두루 잘 어울리고 끼리끼리 모이지 않으며, 소인은 끼리끼리 모이고 두루 어울리지 못한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최근 논어를 다시 읽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논어가 내게 미친 영향이 엄청나구나. 나의 삶과 인간관계, 실천과 행동 등 다방면에 걸쳐서 논어는 늘 나와 함께해 왔구나. 대학원 입시를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며 읽고 외우기 전부터, 또한 한문 해독 능력이 사라져 가면서도. 그래. 나는 논어를 읽기 전부터 논어를 만났고, 논어를 읽은 후부터 논어를 다시 읽고 삶과 함께 새로 써 왔구나. 영원한 ‘학생(學生)’으로서 나는 논어를 만나고, 읽고, 써 왔구나. 비단 나뿐이랴. 논어는 촌철살인처럼 다가와 장편소설처럼 자리 잡는 인류의 가르침. 책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논어는 동양 고전의 은하계를 낳은 주역이다. 많은 책들이 논어를 중심으로 태어났고 읽히고 빛난다. 논어와 공자는 언제나 새로운 동양의 고전, 단지 중국의 책과 사상가에 그치지 않는다. 논어 읽기와 인간 공자 만나기 논어를 읽는 길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언제나 논어는 공자를 읽는 궁극적인 텍스트임을 기억해야 한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가 나눈 대화 가운데 제자들이 골라 모은 대화록. 공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형식이기에 공자가 어느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했는가 곱씹으면서 논어를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공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빨리 버려야 한다. 공자는 결단코 케케묵은 도덕 타령이나 하고 있던 샌님이 아니다. 공자는 딱딱하고 고루한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텍스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 있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논어의 주역인 공자는 언제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텍스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자의 모습은 실감 날 정도다. 그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모자람조차 솔직하게 드러낸다. 성이니, 인이니 하는 경지를 내 어찌 감당하랴? 다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기를 싫어하지 않고, 남을 남자도 가르치기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라면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자 공서화가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저희 저희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이러한 겸손함은 제자인 안회(顔回)를 자신과 동급으로 공개적으로 존중하기도 하고, 그가 요절했을 때는 그만 평상심을 잃고 너무나 슬퍼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噫, 天喪予, 天喪予) 제자를 아끼던 공자의 모습은 ‘공문십철(孔門十哲)’의 존재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공자가 자신이 직접 거명한 수제자 열 명과 나눈 대화들을 읽다 보면 존경할 만한 교사와 그를 따르는 열 명의 빼어난 제자들이 만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공자가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생각했던 최고 우등생 안회(顔回). 과묵하며 한결같아 공자가 좋아하던 민자건(閔子騫), 덕행에 뛰어났으나 훗날 나병 환자가 되어 학업을 중단했던 염백우(伯牛)와 중궁(仲弓), 말솜씨가 뛰어났으나 공자에게 늘 꾸중을 맞았던 재아(宰我), 뛰어난 언어능력을 과시하여 외교와 이재(理財)에 실력을 보였던 자공(子貢), 정사(政事)에 능력을 보인 염유(有), 성정이 급하고 용감했던 자로(子路),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 공자가 중시한 네 가지 분야는 특별히 ‘공문사과(孔門四科)’라 부르기도 한다. 德行(顔淵, 閔子騫, 伯牛, 仲弓), 言語(宰我, 子貢), 政事(有, 季路), 文學(子游, 子夏) 결국 논어를 읽다 보면 교사들을 위한 일종의 드라마 ‘학교’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교사는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공자를 치밀하게 분석하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교사 공자의 교수법을 찾아 낼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형식상으로는 직접적인 개인 지도 방식이고, 내용상으로는 이른바 대기 설법(對機說法)이었다. 흔히 석가모니 붓다의 전용 교수법으로 알려진 대기 설법은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 가르침의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논어-사람 속에서 찾은 사람의 길, 진현종 풀어씀, 풀빛, 37쪽) 공자는 개념이나 정의부터 말하며 어렵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물어보는 이의 수준과 상황에 맞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조언을 해 줄 뿐이다. ‘인(仁)’에 관한 똑같은 질문에 서로 다르게 답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이었기 때문에, 그 제자들이 인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한결같이 “인은 모든 덕목의 총체다”처럼 개념적인 차원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지금 묻고 있는 그 제자에게 결핍되어 있거나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답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앞에 나온 자장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제자였으므로 공자는 주로 대인 관계와 정치 분야에서 요구되는 인의 내용을 알려준 것이며, 사마우는 말이 많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품이었기에 인의 내용을 우선 입조심에 국한시켜 말해준 것이다.”(논어-사람 속에서 찾은 사람의 길, 39쪽) 감탄도 하고 자문자답도 하며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공자의 모습은 그대로 교사, 인류의 스승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는다. 논어의 맨 앞에 ‘학이(學而)’편이 나오고, 그 첫 마디가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易悅乎)’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논어는 결국 공자의 삶과 교훈이 배움과 익힘, 기쁨으로 요약되며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가르침이라는 제자들의 선언인 셈이다.(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온 不亦君子乎) 공자와 논어 읽기의 필수 전제 - 주석과 번역 공자의 출생과 사망은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물론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52년 10월 21일 또는 551년 11월 21일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 5월 11일에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쿠 야스시(佐久協) 같은 사람은 왕과 제후조차도 생년월일이 분명치 않았던 시대이니 이 정도 기록조차 공자에 대한 신격화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보여 준다고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공자세가’ 편에 공자의 일생이 자세히 나오는데 이 역시 사쿠 야스시도 말했듯이 대단한 신분 격상의 증거다. 본래 ‘세가(世家)’란 제후의 전기인데 제후의 신하인 배신(陪臣)의 신분이었던 공자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공자와 논어에 대한 존경과 추앙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져 우상화의 폐단까지 낳았다. 그 결과 논어에 나오는 공자는 인간 공자에서 성인 공자로 절대화된다.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은 논어에 대한 주석(註釋) 작업이다. 공자와 제자들 간의 대화를 골라 모은 텍스트가 논어이다 보니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고 본뜻을 명료하게 다지고 풍부하게 덧붙이는 주석 작업을 하려면 공자와 논어를 제대로 읽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논어는 수많은 주석서가 있다. 하안의 논어집해를 ‘고주’라 하고 주희의 논어집주를 ‘신주’라 하여 중요하게 여긴다. 조선의 정약용이 지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에서는 고주와 신주에서 각기 보이는 폐단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공자의 원의에 가까운 해석을 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조선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오규 소라이, 이토 진사이와 같은 일본 유학자의 주석에까지 고루 시야를 넓힌 점은 정약용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인터넷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여기서 논어집주(論語集註)는 남송 시대의 거유(巨儒)인 주희가 사서집주(四書集註)안에 담겼는데 이후 공자와 논어의 해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공자와 논어를 폭넓고 자유롭게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되기도 한다. 논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16세기 논어언해에서 비롯된 논어 번역은 수없이 이루어져 왔다. 지금 대략 160여 종이 시중에 나와 있으며, 절판된 경우까지 따지면 300여 종, 제목에 논어가 들어간 책까지 따지면 500여 종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논어 번역본과 관련서들이 있다. 너무나 많아 번역본 논어의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한마디로, 원문 논어에 수많은 주석이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지면서 우리에게 다가왔으며,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번역본들이 등장하여 논어 읽기, 즉 공자를 제대로 읽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결국 동양의 영원한 고전인 논어는 가장 읽기 힘든 고전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고전 번역을 평가하는 번역 비평이 전공 교수들을 비롯한 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싹트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평가하는 논어의 최고 번역본은 어떤 책일까?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논어 번역서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 역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 언어로 바꾸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다. 또한 간결하고 명료하며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권위의 굴레를 벗고 일상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황희경, 교수신문 엮음, 생각의 나무, 14쪽) 하지만 가장 좋은 논어는 역시 삶 속에서 스스로의 사색과 실천으로 길어 올리는 책이다. 즉, 논어가 절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듯이 가장 훌륭한 논어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서로 배우고, 익히며, 기뻐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 읽을 만한 논어 입문서 한 권 :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 풀어씀, 사계절) 논어 스무 편을 각 편마다 한두 가지 주제를 정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으로 가볍게 논어 전편을 섭렵하며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안성맞춤의 책이다. 논어에 대한 이공과 내력이 잘 배어 있다. 책 앞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을 취해서 논어에 대한 사전 이해와 마무리 설명을 시도한다. ‘논어 여행을 위한 준비’라는 제목으로 선비들의 삶과 사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논어의 위력에 대해 성삼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논어의 지혜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시대에 맞게 경쾌하게 읽어 가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논어를 깊숙이 읽어 보면 춘추 시대라는 대혼란기에 ‘인간을 중시하는 세계’를 꿈꾸었던 공자와제자들의 소탈한 진면목을 우리 시대에 맞게 읽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본(底本)이 된 책은 풀어쓴 이의 또 다른 책, 한글세대가 본 논어 1, 2(배병삼, 문학동네)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옷깃은 여미고 눈은 치켜뜨라”라는 역설적 문장의 논어 읽기를 주장한다. ‘옷깃을 여미라’는 말은 텍스트 이해를 긴절하게 하라, ‘눈은 치켜뜨라’는 텍스트 해석을 치열하게 하라는 뜻. ‘논어의 이해와 해석을 경쾌하게 시도한 이 책을 디딤돌 삼아 다시 논어에 대한 분석과 해체를 시도하고, 다시 논어 위에 건설한 국가인 조선의 사상사 해석, 나아가 곧 맞이할 통일국가의 정치 철학을 논어를 바탕으로 살펴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 한다.
실존 인물 감사용 골수팬은 아니지만 자칭 ‘가늘고 긴’ 야구팬인 필자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한 해를 결산하는 한국시리즈’라는 대작을 통해 늘 짜릿한 기억을 남겨 준다. 올해는 특히 정규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돌던 ‘롯데 자이언츠’가 하반기에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보이며 8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해라 더 흥미진진했다. 어렵사리 4강에 진입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은 롯데팀의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맴돌았다. 2004년 가을, ‘한국 스포츠 영화의 편견을 무너뜨린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상영된 슈퍼스타 감사용. 실존 인물인 전직 야구 선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재 자체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에게는 그 이름조차 낯선 ‘감사용’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는 16연패라는 무시무시한 대기록(?)을 남긴 팀이다. 그 엄청난 기록에 일조한 ‘패전 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 프로야구 초창기 5년 동안 1승 15패 1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마운드를 떠난 그를 스크린에 불러들인 이는 ‘김종현’이라는 신인 감독이었다. 춥고 배고픈 연출부 생활을 거쳐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데뷔 준비를 하던 김종현 감독은 지갑에 ‘리틀 OB 베어스’ 회원증을 꼭 넣고 다녔다고 한다. 할리우드 키드이자 골수 야구팬인 김종현 감독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꿈을 던진 패전 투수’ 감사용에게 빠져들었다. 패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넘어 존경하게 된 감사용 선수.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감독은 아는 연줄을 다 동원,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던 감사용 선수를 찾아내 기어코 승낙을 받아 냈다. 올곧은 직구로 승부하다 도박을 일삼는 감삼용(조희봉 분)의 동생 감사용(이범수 분)은 삼미특수강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홀어머니는 형보다 나은 아우가 기특하다. 직장 일보다 야구를 좋아해 직장인 야구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사용은 남몰래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결국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로 파견 근무를 나간다. 171㎝의 작은 키에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좌완 투수라는 이유로 운 좋게 발탁된 감사용은 상대팀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선수 대접을 받지 못한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소리 없는 눈물을 삼키며 연습에 매진하던 감사용.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1승을 하는 게 소원이었던 그에게 드디어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작은 키에 왼손잡이, 직장인 야구 출신, 가난한 집안이라는 배경은 늘 감사용을 짓누른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남부럽지 않지만 아무도 그 꿈을 알아주지 않기에 그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패배자’다. 오직 야구에 대한 애정과 성실함으로 매일매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을 던지지만, 16연패를 기록한 꼴찌팀 내에서도 지는 경기 마무리 전문이었던 감사용에게 희망이란 너무 먼 단어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앞에서 매번 쓰라린 눈물을 흘려야 하는 그의 이야기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평범한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인간 승리 드라마가 아닌, 그저 꿈을 위해 묵묵히 노력한 한 젊은이의 진심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감사용의 고군분투는 가식도 미화도 없이 올곧은 직구로 가슴을 파고든다. 패자에게도 꿈은 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힘겨운 시절을 겪게 마련이다. 간절히 바라던 꿈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지만 행운의 여신은 냉담한 등을 보이며 나를 외면하고, 주위 사람들의 무시와 질타는 커져만 간다.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하지만 손이 닿으려 하면 성공은 저만치 멀리 도망간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우리는, 어느 순간 인생이라는 괴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그렇게 평범한, 아니 무능력한 패배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감사용의 인생에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무명의 패전 투수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그가 간절히 바라던 1승을 진심으로 기원하게 된다. 하지만 감독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신파조의 드라마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해피엔딩을 바라는 관객들의 염원을 외면함으로써 휴먼 드라마의 묵직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우리의 감사용은 20연승을 앞두고 있는 박철순(당대 최고의 스타 투수)이 선발로 등판하게 될 OB와의 경기에서 마운드에 선다. 천신만고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9회 말 투 아웃, 과연 감사용의 꿈은 이루어질까? 가족과 동료들이 감사용의 투혼에 못다 이룬 자신들의 꿈을 대입시키며 ‘딱 한 번만’이라고 기도할 때, 카메라는 승리의 함성 대신 쓸쓸한 마운드를 비춘다. 1승 15패 1무승부의 기록을 남겼다는 감사용의 그 ‘1승’은 에필로그에 자막으로만 처리된다(이후 감사용은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그토록 원했던 첫 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줄의 자막을 읽는데 코끝이 찡해 온다. 오직 승패만 있는 줄 알았던 스포츠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하게 한 영화. 승자가 아닌 패자에게도 꿈은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면서, 그렇게 따뜻하게 우리의 등을 토닥이는 영화의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름을 갖게 된 그대 슈퍼스타 감사용은 한국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완성도 높은 야구 장면을 연출하며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금기에 당당히 도전했다. 감독의 진심이 배우들의 호연을 이끌어 내면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성실한 드라마를 직조했다. 한 신인 감독의 패기만만한 열정과 야구에 대한 애정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 영화는 또한, 요즘처럼 다양한 놀이 기구나 게임이 없던 80년대의 아이들, 그래서 어쩌면 더 프로야구에 열광했을지도 모를 그들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선사해 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 모으던 프로야구 선수들의 딱지, 아이스크림콘을 사면 덤으로 들어 있던 야구 스티커 등등. 이 영화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본 관객들의 상당수는 아마도 이러한 연대감을 빚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이 단지 그뿐이었다면,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그쳤다면, 관객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들판의 잡초에 이름을 붙여 준 따스한 눈길과 성실한 손길에 있다. 기록에 의하면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은퇴 투수는 총 700여 명이다. 그중 10승 이상 거둔 투수는 120여 명뿐이며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0여 명이다. 나머지 투수들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고 한다. 한때 운동장을 찬란하게 빛내 주던, 혹은 벤치에 앉아 얼굴 한 번 내밀지 못했던 그 많은 선수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현재 지방의 한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는 감사용 씨는 이 영화를 본 후 감독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고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프로야구 초창기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 많은 선수 중 감사용이란 이름을 용케도 찾아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되새겨 주었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다. ----------------------------------------------------------------------------------------- 제목 : 슈퍼스타 감사용 (2004, 한국) 감독 : 김종현 주연 : 이범수, 윤진서, 김수미 관람정보 : 전체관람가, 113분
이황의 결단을 따를까? 연산군의 결단을 따를까? ② 11월호에서 이어집니다 같은 결손가정을 배경으로 가졌지만 연산군과 이황을 비교하면 몇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결손가정도 상황과 배경에 따라 다르다 첫째, 가족 간의 상호작용에 차이가 있었다. 가족은 핏줄로 연결된 특수한 집단이다. 이 특수한 집단 속에서 경험한 내용은 이후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린 시절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질과 양은 매우 중요하다. 상호작용의 질이란 가족구성원들 간에 얼마나 깊은 애정과 사랑이 담긴 교류가 이루어지는가를 뜻하고 상호작용의 양이란 교류가 이루어지는 횟수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상호작용의 질이 좋고 그 횟수가 많을 때를 이상적이라고 한다. 연산군의 경우는 상호작용의 질과 양 모두에 문제가 있다. 일단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생모가 없었다는 점, 계모인 정현왕후가 정을 담지 않고 겉치레로 대했다는 점, 할머니인 인수대비 역시 손자를 까다롭고 차갑게 대했다는 점, 아버지 성종마저 의례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 등에서 상호작용의 질이 매우 떨어졌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연산군이 할머니나 아버지 품에 안겨 재롱을 떨고 어리광 부리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 궁중 생활 법도상 서로 만나서 허물없는 시간을 가질 만한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아서 상호작용의 양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이황은 상호작용의 질과 양에서 연산군보다 훨씬 더 좋은 처지에 있었다. 아버지는 없었지만 생모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생모가 특별히 이황을 귀여워하였다는 점, 막내로 태어나는 바람에 다른 형제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 형제들 사이에 우애가 좋았다는 점 등이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특히 생모와 더불어 많은 형제들이 좁은 집 안에서 부대끼며 살았으므로 다양한 형태의 접촉이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둘째, 부모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차이가 있었다. 연산군은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했다. 계모인 정현왕후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연산군은 정현왕후에게 무언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었으므로 정현왕후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겠지만 본능적으로 다른 엄마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에게는 무려 30여 명의 자녀가 있었고 장남이라고 해서 연산군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쯤 되면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세상살이가 아주 혼란스러워진다.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의심되기 때문에 그 위에 쌓이는 다른 모든 관계도 믿기 어려워진다. 연산군일기에 부정적이고 음험하다고 표현된 연산군의 성품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바로 이런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이황은 어머니로부터 절대적이고 확실한 사랑을 받는다. 양친으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머니로부터 의심할 여지없는 풍성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이황 스스로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분은 어머니’라고 할 만큼 이황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리하여 이황은 평생 어머니를 소중하게 모시고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이황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사랑, 그리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는 이황의 세상살이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가족과 친척, 배움을 구해 찾아온 문인, 서신을 교환한 지인과 학자, 벼슬길에서 만난 관리와 백성 등 접하는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성실하게 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가 탐구한 성리학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릴 때 형성된 튼튼한 기본 신뢰감도 한몫하고 있다. 믿음 속에 자란 이황 vs 불신 속에 자란 연산군 셋째, 주변의 지원 환경에 차이가 있었다. 연산군은 궁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지만 관계의 친밀도나 깊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폐비 사건으로 인해 연산군의 외가 사람들은 연산군을 만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설사 연산군을 만났더라도 만에 하나 의심되는 행동을 하면 목숨이 위험했을 터이므로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친가 쪽 사람들도 인수대비와 성종의 눈치를 보며 연산군을 서먹하게 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궁궐 안에 심정적으로 연산군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왕세자인 그와 터놓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러니 연산군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겉은 화려한 왕세자였지만 속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가득했을 법하다. 반면 이황은 주변에 튼실한 지원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진성 이씨라는 친족 세력이 이황을 둘러싸고 있었다. 비록 이들이 이황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심정적·학문적으로는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황은 어울려 함께 공부할 정도로 사촌들과 친하게 지냈고 숙부는 직접 그에게 논어를 비롯한 유교 경전을 가르치기도 했다. 여섯 살 때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웃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 천등산 봉정사에 친구와 함께 공부하러 들어간 것으로부터 판단하건대 속내를 털어놓고 앞날을 꿈꿀 수 있는 막역한 친구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결단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앞의 세 가지 차이점은 두 사람의 배경적인 특성에서 찾을 수 있는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연산군과 이황의 인생을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이들이 스스로 내린 ‘결단의 내용’에 있다. 연산군은 아마도 두 번의 결단을 내린 듯하다. 한 번은 왕위에 오르고 4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내 앞에 무릎을 꿇게 하겠다’는 것이요, 또 한 번은 생모의 폐비·사사 사건에 대한 전모를 알고 난 직후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이황의 결단은 ‘평생 성리학을 탐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연산군의 결단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며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 원인이 되었고 이황의 결단은 성리학의 최고봉에 서서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대학자로 우뚝 서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연산군이 제 명을 다 살지 못한 채 비명횡사한 것도, 이황이 세상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70세의 장수를 누린 것도 모두 이 결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연산군과 이황을 들어 결손가정의 자녀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인생길을 살펴보았다. 이제 결손가정의 자녀 입장에서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좋을지 정리해 보자. 첫째, 더불어 사는 가족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부모 형제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은 경우를 빼면 결손가정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가족이 있다. 이 가족과 보다 밀도 있고 친밀감 넘치는 관계를 맺어 나가도록 한다. 불행한 현재의 조건을 원망하며 서로 탓을 하거나 다투는 대신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배려하는 생활을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끼리 사랑과 애정을 다져 가는 것이다. 이는 다른 가족을 위하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위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둘째, 마음에 의심이 남지 않도록 부모의 사랑을 확인한다. 흔히 부모가 이혼을 하면 자녀들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또는 ‘나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는 오해를 하고 고민한다. 이것이야말로 오해일 따름이다. 대개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이혼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혼은 둘 사이에 풀리지 않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한 선택일 뿐이며 부모의 자녀 사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만일 부모의 사랑이 의심되면 마음에 묻어 두지 말고 부모에게 직접 물어보고 확인하라. 부모의 사랑에 대해 찝찝한 구석을 남겨 두면 평생 개운하게 살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를 반드시 풀고 넘어간다. 셋째, 주변에 살가운 지원 세력을 만든다. 사람은 자기에게 흠이 있다고 판단하면 몸을 사리고 사람들 눈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 쓸데없는 자격지심 때문에 과잉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방어적인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더 나빠질 뿐이다. 사실 힘이 많이 들고 마음이 많이 아플수록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그 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편이 낫다. 따라서 늘 가깝게 지내며 아픈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를 사귀도록 한다. 이들에게 부모와 가족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감정, 혼란스러움을 마음껏 털어놓고 하소연하며 심정적인 지원을 받는다. 자신의 말을 깊이 있게 들어 주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넷째,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결단을 내린다. 상투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똑같은 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내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다. 부모의 이혼이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살 길을 찾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 괜히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해 봤자 마음만 아프다. 실은 결손가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 때문이다. 나의 마음에서 그것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수긍하면 뜻밖에 그 사건이 주는 충격은 작아진다.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또 하나의 요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다. 사람들이 결손가정 출신인 자신을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신경 쓸 정도로 ‘나’에게 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살기에 바쁘다. 이따금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개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만이다. ‘나’는 ‘나’의 의식 속에서나 스타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스타가 아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하고 비웃을 거라는 착각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라. 그러므로 결단하자. ‘그래, 우리 집이 결손가정이 되는 바람에 마음이 좀 아프고 또 남들처럼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 그렇다고 해서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치명적인 결점은 아니야.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그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이지? 그것을 찾아내 에너지와 시간을 쏟자. 세월이 가면 나도 빛나는 별이 되어 반짝일 수 있을 거야.’ 연산군과 이황은 결손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아주 색다른 인생을 살아갔다. 한 쪽은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갔고 한 쪽은 역사에 길이 존경받는 빛나는 별이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이 결손가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두 사람이 내린 결단, 그리하여 두 사람이 만들어 간 삶의 발자취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면 지나치게 심리적인 해석일까? 우리 앞에 있는 삶은 우리의 창작품이다. 자, 여러분은 어떤 창작품을 만들어 갈 것인가? 연산군식? 아니면 이황식? --------------------------------------------------------------------------- 교사에게 드리는 TIP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 뒤에는 대부분 문제가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문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결손이 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학생들의 마음에 틀림없이 응어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응어리를 잘 풀어 주고 가정에 문제가 있음에도 학생들이 잘 버텨 나갈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여기서는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하나는 가족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일입니다. 가족의 기능과 역할, 가족의 구성과 해체, 가족 발달, 가족 갈등, 가족 역동성, 이혼 가족 등등 가족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지식은 가정 문제로 고생 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일반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가족상담 또는 가족치료 서적들을 참고 자료로 추천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결손가정에서 크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이들과 직접 상담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입니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라면 부모의 이혼을 이해하는 상담과 교육을 하고, 부모가 갑자기 사고를 당해 사별하게 된 경우라면 일종의 위기상담을 실시하며, 일찍부터 부모 없이 자란 경우라면 자아탄력성을 키워 결핍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겠지요.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상담 서적들도 출판되고 있으니 참고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부모 가정과 이혼 이해 교육(서영숙 외, 2004), 가족상실과 위기상담(윤상철, 2003) 들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저는 우리 반 아이들도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어서 수백 권의 책으로 교실을 작은 도서관처럼 만들고 자잘한 일들을 함께하며 아이들과 책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즐거운 책 읽기는 아이들의 생각도 쑥쑥 키워서 저절로 사고력도 길러지고 창의성도 길러 주리라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거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만난 것이 토론이었습니다. 처음 토론을 접했던 때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배우긴 했지만 ‘과연 아이들에게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기쁨은 정말 컸습니다. 포항공대 김병원 교수님께 일주일에 한 번씩 오후 내내 배웠는데 그때 참으로 오랜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맘껏 누려 보았습니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때 함께 배운 선생님들이 많게는 100명, 가까이에서 30~40명은 꾸준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는지…. 1999년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토론 수업을 공개하고 난 뒤 바로 전국 교과 연구 모임을 만들어 당당하게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저는 서울로 왔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가늘게 이어지던 토론대회가 서울초등토론교육연구회의 ‘서울시 어린이 토론대회’와 ‘민족사관고등학교 토론대회’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지 않은 저로서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최근에 나온 토론의 전략(이정옥 지음, 문학과지성사)이란 책을 보니 토론대회에 대한 상세한 보고 자료가 나와 있었습니다. ‘토론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록을 통해 교내 규모는 제외하고 전국 규모나 혹은 지역 규모의 토론대회를 안내하고자 한다. 토론대회 안내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다음의 세 가지 문제점을 확인하였다. 하나는 토론대회마다 용어를 달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토론대회의 일정이나 형식, 진행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은 한번 개최되었던 토론대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토론대회를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단체의 사정에 따라 개최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 토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무척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 있을 때 늘 느끼던 것이었고 토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그러함을 알고 있었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부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토론대회는 주로 중학생 토론대회가 많은 편이고 시민단체나 대형서점, 대학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고등학생 토론대회가 많은 듯합니다. ‘벌써 이렇게 많아졌나?’ 하는 기분으로 읽어 가는데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물론 일부 선생님들의 의견이었겠지만, “토론대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토론대회도 사교육 받은 아이들이 돋보이는 곳이더군요.” “현장에서 열심히 나름대로 지도했다고 해도 대회에 나가 예선에서 떨어지거나 등위에 들지 못하면 아예 토론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발언이 오가는 토론대회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다시는 토론을 하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에요.”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토론교육을 받은 아이는 횟수에 관계없이 토론에 자신감을 갖는 것 같아요.”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의견들이었습니다. 교육은 없고 대회만 있는 ‘토론대회’ 새 교육 방법이나 정책을 효과적으로 널리 알리고 빨리 뿌리내리게 하려고 할 때 상위 기관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대회를 개최하여 등위를 매기고 표창을 하거나 전체 평가를 통해 경쟁하게 하는 것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매우 효율적인 것 같지만 그 성급함이 오히려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하게 하고 이제까지 많은 교육이론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 왔듯 결국 일회용 행사를 위한 교육을 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나 교육 방법도 현장에서 지도하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실천에 의해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저 한때 우리 곁에 머물렀다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의미일 뿐이지요. 가만히 서서 조금만 견디면 또 새로운 이론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자조적인 독백은 언제쯤 듣지 않게 될까요? 교육청 단위의 토론대회를 개최하는데 담당 교사 연수 두어 번 하고공문 내려 보내고는 6개월 만에 수백 명이 참가하는 토론대회를 치러 내야 하는 계획서를 우수한 기획으로 표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을 받은 담당자는 정해진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그 기획을 추진하느라 바쁘기만 합니다. 현장 선생님들은 토론이 뭔지, 왜 지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막연하기만 하고 제대로 이해도 되지 않았다고 답답해하고 있는데 대회는 출전해야 하니 말이지요. 토론교육은 없고 토론대회만 있습니다. 기본적인 독서교육의 부재도 원인 제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독서교육에도 있는 듯합니다. 읽으려고 하지도 않고(책 읽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인 선생님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학년 수준에 맞는 읽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을 토론까지 하라고 하니, 게다가 대회에 나오라고 하니 급한 김에 토론에서 이기는 요령만 가르치고 익히게 되지는 않을는지요? 그런 우려는 어쩜 저만 하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현실적으로 이미 드러나고 있는 듯하네요. 읽기와 토론, 그리고 쓰기의 통합 교육을 통해 ‘소비로서 독자 만들기’가 아니라 진정 ‘창조하는 독자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은 최근 펴낸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그린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험담이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데는 토론 경험이 부족한 데도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제를 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내고 두루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를 개인적으로 소화해 내기가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토론 형식으로 거치게 하면 의외로 학생들이 빨리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게 되고 쓰는 데 필요한 과정을 잘 소화해 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쓰는 것과 말하기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하고 나면 잘 써진다. 쓰기 교육에서 말하는 개요 짜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대학에서 연 정책토론 대회에 심사하러 간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 주제어만 치면 주르륵 올라오는 자료를 바탕으로 형식에 맞춰 토론하고 있어서였다. 토론대회 상금이 만만찮아 그걸로 등록금 마련한다더니, 복장이나 어투는 스튜어디스와 아나운서 뺨칠 정도였다. 전문적인 꾼이 등장한 것이다. 도대체 그래서 무엇을 하는 걸까. 토론 요령을 익히는 데 정책토론이 여러모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데다 자료를 구하기 쉽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고작 그런 주제로 경연을 벌여야 하나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사실은 모두가 답답한 현실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토론교육 방송, 신문, 인터넷을 통해 그 어느 해보다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진 2008년, 우리도 이제는 대화와 토론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을 본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때맞춰 토론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이제는 골라서 보아야 할 정도가 되었네요. 세계 토론대회에까지 우리 아이들이 출전하고 그 결과도 기대할 만하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주장이긴 하지만 장차 논술을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더 불안해진다고 합니다. 우선 토론대회부터 열어서 분위기를 만들고 현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평가를 통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겠다는 정책적인 고려는 잠시 곁에 놔두고 ‘왜 가르치는지?’ 그러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어떤 교육을 하려고 하는지?’ 자신을 향해, 또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교단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좀 더 깊이 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자신이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 토론 교육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끝 ----------------------------------------------------------------------------------------- 연재를 마치며… 1년을 계획하고 시작한 연재가 조금 더 길어졌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새교육이라는 잡지는 교장·교감 선생님만 보시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가끔 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온 과월호를 주르륵 훑어보던 기억이 나는데 참 오랫동안 제 미숙한 글을 싣고 또 다른 분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새교육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되었네요. 얼마 전에 한 교육청에서 강의를 하는데 거기 오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새교육에 나온 예문으로 토론을 해 보았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고개 숙여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