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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오늘, 바람은 서늘하고 하늘은 파란 것이 완연한 가을입니다. 교실문을 밀치면 뭔가 좋은 일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드는 날이기도 합니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의 감촉도 좋고 사람들의 표정과 손길도 감미롭기만 합니다. 잠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청명한 하늘 아래 진홍빛 목백일홍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가을 장마도 시나브로 끝나가나 봅니다. 정말 오랜만에 비구름이 낀 어둡고 칙칙한 하늘대신 비취빛이 감도는 환한 하늘을 보니 제 마음까지도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가을 색이 가득한 교정에는 칸나, 접시꽃, 백합, 메꽃, 맥문동, 연꽃등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알싸한 꽃향기가 코를 찌릅니다. 먼 교실에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보석처럼 부서지는 오전. 문득 교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충만한 행복감이 몰려오는 순간입니다. 땅바닥에 무수히 떨어진 목백일홍의 붉은 잔해를 보니 그동안 제 품안을 떠난 아이들의 영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지금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이란 삶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여념이 없을 산적 영호, 갱스터 현우, 지각대장 건수,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서 놀래미란 별명을 얻은 기명이, 꽃미남 명진이 그리고 달팽이, 남생이, 엥꼬, 쭈글이…. 녀석들의 면면이 그리워집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K라는 녀석이 더 생각이 납니다. 졸업한 지 5년이 되었지만 저와 K사이에 있었던 체벌 사건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별의 별 아이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방과후에 남아 청소를 도와주는 아이도 있고, 개성이 너무 강해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는 아이, 기발한 생각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까지 하여튼 각양각색의 아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이런 학생들과 25평의 좁은 교실에서 지지고 볶으며 부대끼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짧게 느껴지곤 합니다. 우리 반 아이 중에 매일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지각하는 K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지각을 할 때마다 주의를 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고 참다못한 저는 K를 생활지도실로 조용히 불렀습니다. 단단히 타일러볼 작정이었습니다. "K야, 네가 이렇게 매일 늦게 오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본단다. 주번활동은 물론이고 담당 구역 청소도 그렇고 네가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되기 때문이야. 너 대신 그 일을 해야 하는 다른 학생의 심정도 생각해줘야지. 응?" 그러나 잠시 타이를 때 뿐, 담임의 훈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K의 지각하는 버릇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 보기에도 무안하고 담임의 권위도 무시당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K를 상담실로 불러 따끔한 꾸중과 함께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종아리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때렸으나 그래도 녀석의 표정엔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고 언짢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왠지 녀석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녀석 또한 나를 보면 일부러 멀리로 피해가고 마주치려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분명 그 날의 체벌이 저를 피하는 주된 원인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고 늘 자상하고 친절하게만 대해주던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종아리를 쳤으니, 제 딴에는 그것이 꽤나 서운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저 또한 좀 더 설득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체벌부터 한 것에 대한 자책과 녀석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K를 피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계절은 바야흐로 10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던 무렵이었습니다. 교정의 은행잎이 점차 노란빛으로 물들어가고 학교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선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던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전 그만 덜컥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일교차 때문이었죠. 양쪽 편도선이 빨갛게 부어올라 수업은커녕 침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진도는 반드시 나가야 되기 때문에 아픈 목을 감싸고 힘들게 수업을 하며 그렇게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지친 몸으로 저녁 늦게까지 교무실에 남아 잡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지난번 저한테 종아리를 맞은 K란 녀석이 불쑥 교무실로 들어오더군요. 손에는 하얀 봉지 하나가 들려있었습니다. 녀석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약 드세요!"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내뱉곤 제가 미처 뭐라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는 꾸벅 인사를 한 뒤 달아났습니다. 전 녀석이 책상 위에 놓고 간 약봉지를 들춰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소위 교사라는 사람의 생각과 도량이 아이만도 못했다니……. 녀석은 저와 먼저 사과하기 위해 이 늦은 저녁에 약국에서 감기약까지 사왔던 것이었습니다. 아, 몹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쌍화탕병을 들고 한참이나 그대로 앉아있었습니다. 녀석의 따뜻한 마음이 제 몸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는지 그간의 녀석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감히 체벌할 생각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자칫 동영상이라도 촬영되는 날엔 사표를 내야하니까요. 체벌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냉랭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를 일입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케케묵은 말을 들먹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도 열악한 교단을 지키며 얼마 되지는 않지만 당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가정형편이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감기에 걸린 학생이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약을 사다 주는 등훌륭한 일을 하시는선생님들이 참 많으십니다. 이런 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 교육계에 팽배해 있는 불신과 비난의 화살이 하루빨리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간의 사랑이 회복되길 고대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 당시 개성상인들 중에는 고려 왕조의 사대부 계층을 비롯하여 지식인 출신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선왕조로부터 소외당한 아픔을 상업의 합리적 경영이나 상술 개발 등에 쏟아 부었는데, 이미 이탈리아의 복식 부기보다 2~300년 앞섰다는 회계장부 작성법인 ‘송도사개부기(松都四介簿記)’를 사용할 정도로 발달했습니다. 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차인(差人)제도’도 실시하였습니다. 젊은이를 데려와 일을 시킨 뒤 능숙해지면 내보내는 ‘도제식’경영 방식은 요즘 분사(分社)식 경영 방식이지요. 그리고 보증인만 내세우면 대출인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해 대출하는 '시변제(時邊制)'까지 실시했습니다. 고려시대 무역의 전성기를 보낸 개성상인들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공무역을 중심으로 한 대외 교역으로 큰 타격을 받기는 했으나 전국 상업계를 연결하는 행상 조직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조선초기부터 그들의 상업 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가는 한편, 근면과 성실, 높은 지식으로 자신들 고유의 장사 수완을 발휘해 서울 상인들과 쌍벽을 이루었지요. 조선중기 이후 상품과 화폐 경제의 발달에 따라 개성은 전국 제일의 상업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 객주, 여각이 생기면서 상권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조직화해 ‘송방(松房)'이라는 지점을 전국 주요 상업 중심지에 설치했습니다. ‘송방' 또는 '개성상인'이라는 특수한 명칭은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송방은 전국의 포목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이들에 의해 포목 가격이 오르내릴 정도였다고 하지요. 이들은 도고(都賈商業:물건을 혼자 맡아서 파는 일)로 독점 상업을 함으로써 상업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개성상인은 중국 사신 일행으로 몰래 들어가 청나라 상인들과 은, 인삼 등을 교역하는 밀무역도 하였습니다. 개성상인은 삼포(蔘圃)에서 인삼을 재배하기 이전부터 자연 삼을 사서 이를 일본에 수출하고, 은을 들여와 다시 중국에 수출하는 방법으로 큰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개성상인은 이렇게 축적한 자본으로 인삼 재배와 가공업, 광산 등에 투자했지요. 그러나 개성상인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나라에서 금지한 홍삼을 비밀리에 만드는 것과 밀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단속을 많이 했지만 이들은 관리의 눈을 피해 선박으로 밀수출을 했으며, 이를 위하여 다른 지방에도 홍삼 제조장을 두기까지 하였지요. 이렇게 축적한 자본은 국내 최대의 토착 민간 자본으로 성장해 개항 후 외국 자본의 침입에 대항하는 가장 강한 민간 자본으로 대두했습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철저한 상인 정신과 장사 수완, 부지런함으로써 경제적 침략에 대항하여 끝내는 그들을 개성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너무 철저하다 보니 '깍쟁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지만, 개성상인이야말로 우리나라 상업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킨 주역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기르면서 몇 번씩은 내 자녀가 특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내 자녀는 정말 특별한 것인가? 아니면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타고난 천재성을 발견하지 못하여 그냥 팽개쳐 두고 있지는 않은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럴 때에 보이는 천재성은 실제로 사실이라고 한다. 사실 어린이들이 자기가 타고난 특별한 능력을 가끔가끔 발휘하게 된다. 이것이 천재성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그런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칭찬하고 키워주고 인정해주면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지만, 그런 모습을 아무도 눈 여겨 보아주지도 않고 인정을 받지도 못하였을 때는, 그것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재성을 발견하고 키워주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은 별것이 아닌 것이라도 그 아이의 월령성장기의 월별 성장 단계에 훨씬 앞서는 행동이나 동작 또는 말, 행동을 할 때에 부모들이 그런 아이를 칭찬해주고, 자랑스럽게 인정을 해주는 것은 아이의 천재성을 길러주는 첫 단계가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이가 처음에는 우연이 했을 지라도, 칭찬을 해주면 그런 일을 스스로 자주 하게 되고, 버릇으로 길들여지도록 까지 계속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처음에 우연히 했지만 부모, 어른들이 모두 칭찬을 하고, 자신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면 어린이는 ‘이런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고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계속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두 번의 일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은 아이는 어른들이 천재성이라고 인정을 하는 일을 계속하게 되어서 정말 자신이 가진 천재성으로 키워나가게 되고, 진정한 천재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길러진 천재는 이 세상에서 다시없는 귀중한 인재로 자라서 이 사회에 큰 일을 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정설이다. 아이슈타인 같은 천재도 어린이시절의 천재로 알려진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천재라고 인정을 받았던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왜 그렇게 천재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마는 것인가? 왜 천재성은 그렇게 쉽게 시들어 버리고 마는 것인가? 일본의 속담에 [유아시절 천재가 10대에는 수재, 20대엔 범인]이라는 말과 같이 유아시절의 천재라던 아이가 10대까지는 수재라고 인정을 받다가, 20대에 이르면 [범인보통사람]으로 몰락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까닭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들이 곁에서 도와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계속 천재성을 발휘하도록 불을 지펴주고, 계속적인 인정을 하고 지원을 해주었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고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곁에는 모두 경쟁자들만이 우글거릴 뿐이다.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칭찬이나 격려로 길러주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좀 더 깎아 내리고 짓밟아 버리고 내가 올라서겠다는 생각뿐인 셈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재미로 자신의 능력을 길러오고 펴오던 아이는 이제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면서부터는 점점 자기의 능력은 천재성이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버리고, 천재성을 그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는 수재 정도의 조금 나은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리고, 이제 더 이상 키워 보려는 마음을 버리게 되어서, 20대에 이르면 범인(凡人)으로 몰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천재라는 사람들이 그 천재성을 그대로 유지 발전 시켜서 크게 인류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중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국가적인 교육기관에서 그 천재성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길러주기는커녕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재가 더 발전 할 수 있는 대학 입학이나 우수 기관에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버리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국가적인 차원에서 영재교육이라는 것을 시작하여서 특별한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길러주려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정말 우수한 특기나 천재성을 얼마나 길러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검증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 하겠다.
김인우 - 서산시 청소년 문화센터 성교육 상담소장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9월 1일(토) 적응활동 시간을 맞아 우리 서령고에서는 서산시청소년지원센터 김인우 강사를 초청, 전교생을 대상으로 '청소년과 성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성교육을 실시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12시 20분까지 50분간 실시된 이날 강연에서는 김인우 강사는 "학생들은 흔히 성하면 섹스밖에 떠올리지 않는데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라며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모든 남녀 차별적 요소가 전부 성교육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번 교육은 성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심어 주어 건전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열강하는 강사 선생님 경청하는 학생들1 경청하는 학생들2 경청하는 학생들3 강사선생님의 농담에 오히려 총각선생님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젠 제88회 전국체육대회에서의 승리뿐이다” 서산 서령고등학교(교장 김기찬) 카누부는 경기도 미사리카누경기장에서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실시되는 제6회 파로호배 전국카누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첫날인 8월 30일 C1-10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안현진(고3) 선수가 금메달, 김선호(고1) 선수가 동메달 획득했다. 이어 벌어진 C2-10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김태우(고3), 강도형(고2) 조가 금메달, 구자국(고1) 변홍균(고1) 조가 은메달을 획득, 둘째 날 C1-5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안현진(고3)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벌어진 C2-5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김태우(고3), 강도형(고2) 조가 금메달, 구자국(고1) 변홍균(고1) 조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셋째 날 C1-2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안현진(고3)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벌어진 C2-200M에 출전한 남자고등부 이종명(고2), 강도형(고2) 조가 은메달을 획득하여 도합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고등부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서령고등학교 카누부는 1998년에 창단되어 당해연도에 벌써 전국 체전에 참가하여 7위, 카누 선수권 대회 5위에 입상하는 등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위와 같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숨은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처럼 세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서령고등학교 카누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각종 경기 대회에 참전할 예정이다. 김기찬 교장은 “도교육청의 정기적인 지원과 학생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관계자 및 선수들에게 감사드리고 하루빨리 카누부가 일반인들이 즐겨하는 스포츠로 자리 잡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제88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이러한 탄력을 받아 우수한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이명재 부장검사)는 2일 지방의 한 전문대학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교육부 국장급 공무원 김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교육부 평생교육과장, 인사혁신담당관 등으로 일했던 김씨는 대구의 Y전문대학으로부터 이 대학이 운영하는 사이버대 정원 확대 등과 관련해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4년 7월부터 작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억1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Y전문대학 설립자의 아들이자 이 대학 기획처장으로 재직 중인 C교수는 검찰 조사에서 교육부 근처의 커피숍 등지에서 김씨에게 직접 현금을 건넸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C교수가 유학 경험을 고리로 교육부 공무원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점 등으로 미뤄 Y대의 로비가 김씨 외에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돈을 건넨 측인 Y대 설립자는 물론 교육부의 다른 공무원도 출국 금지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또 김씨가 자신이 인사권을 쥐고 있던 지방 국립대 사무국장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뇌물을 받아 온 사실도 포착, 향후 공소장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씨는 2006년 10월께 평소 친분이 있던 C교수로부터 전별금 명목으로 2천만원을 받는 등 일부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뇌물로 받은 수천만원을 은행 현금자동인출기를 통해 송금하려다 국무조정실 암행감찰단에 적발됐었다.
교원 정원 산정 기준이 학급 수에서 학생 수로 변경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교원 수급 계획이 9월 초 확정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5년까지 초등학생 18명, 중학생 17명, 고교생 16명 당 교원 1명을 확보하는 계획안에 교육부와 행자부가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초등 29.1명, 중학 20.4명, 고교 15.9명으로, 2014년까지는 교원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정원이 결정된다. 안에 따르면 국가 수준에서 학생수를 기준으로 교원 총정원을 산정해서 시도별로 할당하면, 지역 수준에서는 배정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교원을 배치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시도교육청이 차기 년도 소요 정원을 신청하면 교육부가 이를 수합해 행자부,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총 정원을 결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급수에서 학생수로 산정 기준을 변경함에 따라 정확한 교원 수요 예측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교원 수요 예측으로 인해 교원 양성 규모도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는 교육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13일 “교원 산정 기준이 달라질 경우, 수도권 등 도시 지역은 교원 배정이 늘어나고 농어촌 지역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학생 수에 따라 교원을 배정하고 예산 편성하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원 정원과 배치 기준이 분리됨으로서 지역별 교원 수업 시수, 학급당 학생 수가 차이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시 지역과 도지역간 교원 배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함으로서 도농간 교육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초등학생 180명, 중고생 9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는 최소한 교원 7명을 배치하고 도서벽지에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최근 미성년 여학생들의 원조교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소위 얼짱이라는 여성이 자신의 치장을 위하여 주위의 여성들을 원조교제시켰다는 것이다. 얼쩡인 만큼 온라인상으로 따르는 사람이 많으며 얼짱의 말한마디에 한 사람 병신 만드는 것은 쉬우며 피해자들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 어쩔수 없이 원고교제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몇달전부터 알려진 것이었는데 얼마전 텔레비전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영되면서 많이 알려진 것이다. 즉 인터넷 얼짱으로 알려져 하루에 수천명 이상이 접속하는한 소녀가폭행과 심지어 자신의 애완 고양이 똥을 먹이며 여중생과 여고생 들을남자 원조교제 하루에 5번씩 강행시켜 막대한 수입을 올려 하루에 백만원가까이명품사고 머리하고 놀러가곤 하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소년들의 지나친 외모 집중 현상, 청소년의 건전하지 못한 이성교제관, 원조교제를 하는 남성, 원조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우리 사회의 지나친 외모중시 현상이다. 한국의 10대 소녀 중 절반이 17세 이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59%가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똥똥한 것이 외국에서는 문제가 안되는데 한국 여성들은 정상적인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청소년의 성의식도 문제이다.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 조숙하여 성에 대한 관심도 일찍 형성되어 부모나 교사들의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성에 대하여 인식이 잘못된 것 같다. 최근 대구 YMCA의 조사에 의하면 대구 고교생의 15.4%가 돈이나 선물을 주면 성매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에서도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높은 인터넷 보급률에 따라 심지어 정부에서 가난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여 줌에 따라 이들 학생들이 음란 사이트를 접촉한다고 한다. 그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사이버로 인터넷을 접한다고 한다. 청소년 위원회가 2004년 3월 초등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71명 중 14.1%가 음란물을 올리거나 내려받은 경험이 있었다. 성인 사이트 방문 경험이 있는 51명중 1주일에 한번이상 방문자도 10명중 4명꼴을 넘었다. 또 유명 포털 사이트로 검색이 가능한 이색 아르바이트 사이트 가운데 20여곳은 청소년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구인의 52%가 많은 돈을 미끼로 성매매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소년 58%가 음란물을 경험했으며 가장 접촉이 많은 매체로는 인터넷(85.4%), 케이블TV(54.1%), 영화·비디오(52.9%) 순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음란물을 보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등 전체의 76%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답했다. 성에 대한 지식 습득 경로는 친구가 35.6%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선생님 27.8%, 인터넷 18.3% 순이었다. 고교생의 경우는 과반수(56.5%)가 인터넷에서 성지식을 얻는다고 응답해 고학년으로 갈수록 인터넷이 성지식 습득 경로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너무 생물학적 성 중심이고, 교육시간 확보의 어려움이 크며, 학교 교사들의 인식도 부족하며(전인적 발달을 돕도록 전교사의 참여 요구), 전달교육 위주의 교육방법(전교생대상, 유인물 대체)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에 대한 성교육을 더욱 강조하여야 하며, 앞으로청소년들의 수십년간에 걸친 미래를 바라보는 성교육이 되어야하겠다. 성교육에 대하여도 청소년들이 성에 관하여 부정확한 지식을 갖는데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지식(knowledge),올바른 태도(attitude)을 교육하여야 하겠다. 나아가서 이세상의 반은 남성이고 반은 여성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양성간 서로 적절한 역할이 있고 이를 연결하여주는 면에서그만큼 청소년들이 성에 대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교육하여야 하겠다. 아울러 인터넷상에서 청소년들이 접촉을 못하게 하여야 하겠으며 청소년에 대한 원조교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얼짱 소녀의 두얼굴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보면서 학교 교사들은 과연 학교내에서 얼짱이라는 아이들이 갖는 이런 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 교사들 가운데 아이들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것인가? 이제 2학기도 되었으니담당하는 반 아이들 미니홈피도 들어가서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현재고민이 무엇인가 알아보는 노력을 하여 보자.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오후부터 개인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가을 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높은 하늘을 볼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깨끗하고 풍성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운 들녘을 바라볼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갑자기 우리학교가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자랑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9월 1일자 인사발령에도 우리학교 출신 두 분께서 승진과 영전을 하셨다. 한 분은 50대 중반이신데 본청 과장으로 승진하셨다. 또 한 분은 작년에 우리학교 동창회 회장을 맡으신 분이신데 우리 동네인 고등학교로 영전을 하셨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우리학교는 5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많은 학교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우리학교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들이 없다. 비록 건물이 낡았고 바닥은 삐거덕 소리가 나고 교실에 에어컨이 없고 환경 여건이 열악해도 선배님들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학교라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어디를 가도 농소중학교에 근무한다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다. 요즘에는 깨끗한 학교, 환경여건이 좋은 신설학교로 배정받기를 원하는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있어도 그래도 전통을 무시 못해 선배들을 무시 못해 환경이 열악해도 우리학교에 배정 받기를 원하는 학부모님과 학생들도 많다. 믿음직한 학교, 우리 동네를 묵묵히 지켜온 학교에 배정 받는다는 게 축복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 우리학교 출신들은 마음씨도 착하다. 작은 일이지만 학교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이 앞선다. 학교에서 아무런 부탁도,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도 중앙현관 맨 위 건물 벽에 동그란 벽시계를 걸어놓고 가기도 하셨다. 주민들이 학교에 와서 운동을 할 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니 얼마나 좋은가? 또 여름방학 기간에 우리학교 출신 한 분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정치가 어떤 것인지 맛보기를 위해 강의도 해 주시고 무료로 점심을 제공해 주시고 두 대의 버스로 서울 여의도 견학까지 시켜주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학교가 너무 아담하다. 너무 깨끗하다. 운동장 인조잔디며, 폭신폭신한 트랙이 너무 마음에 든다. 뒹굴고 싶을 정도이다.운동장 주변에 역사를 말해주는 나무들이 많다. 더울 때는 학생들과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하늘과 운동장과 나무들이 모두 하나가 된다.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면서 멀리서는 푸른 동대산이 함께 어우러져 동참한다. 찬란한 태양은 학교를 축복해 주며 푸른 상공에서는 푸른 등을 가진 비행기가 축복 비행을 한다. 그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것뿐 아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젊다. 20,30대가 대부분이다. 실력도 탁월하다. 인품도 탁월하다. 열성도 대단하다. 그러니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또 천명이 넘는 푸른 꿈을 지닌 푸른 꿈나무들이 성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된 곳인가! 큰 꿈, 작은 꿈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지 않은가! 큰 꿈, 작은 꿈들이 무궁화 꽃처럼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을 사랑한다. 전통과 역사를 지닌 우리학교에 근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은 우리학교의 아름답고 향기나는 전통을, 역사를, 동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면 더 이상의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학교의 청소년들이 꿈을 키워나가야 한다. 꿈을 펼쳐 보여야 한다. 결실의 계절에 꿈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좋은 모습을 이웃학교에 나타내 보여야 한다.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자랑을 자랑으로만 여기지 말고 자랑을 칭찬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시 다짐해야 한다. 큰 꿈을 가져야 한다. 큰 비전을 품어야 한다. 탁월한 인물로 성장해야 한다. 위대한 인물로 자라나야 한다. 성숙한 인물로 자라나야 한다.선배님들보다 더 좋은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선배님들보다 더 좋은 인격을 갖춘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선배님들보다 더 실력이 탁월한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선배님들보다 더 도덕성이 탁월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진다. 그래야 건강한 학교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자랑스런 학교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칭찬받는 학교가 될 수 있다. 자랑스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꿈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꿈만 말해도 감동과 감격이 일어나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꿈만 생각해도 힘이 솟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꿈만 기억해도 고난이 가볍게 여겨지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꿈만 바라봐도 용기가 생기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랑스런 학생이 될 수 있고 자랑스런 학교가 될 수 있다.
일본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를 위한 대책으로 교원의 질 향상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이에 문부과학성은 지난 8월 28일, 「지도력 부족 교원」의 정의나 인정 절차의 가이드 라인 작성을 위해, 유식자가 모여첫 회의를 열었다. 도도부현·지정시의 교육위원회별로 규정해 온 정의나 운영이 가지각색이어서 통일된 지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이드 라인은 연내에 정리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첫 회담에서는「이미 지도력 부족 상태가 되어 있는 사람에 대한 연수보다, 예방형 연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등의 의견이 나오는 등 논의가 활발하였다는 것이다. 지도력 부족 교원 인정 제도는 문부과학성이 처음으로 조사한 2000년도는 미야기, 도쿄, 카나가와, 히로시마, 사가의 5개 도현이었지만, 06년도에는 모든 도도부현·지정시 교육위원회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05년도는 전국에서 506명이 인정되었다. 단지, 그 정의는「전문성과 관계되고 문제가 있어, 학생을 적절히 지도할 수 없다」(시가현)라고 단순한 것으로부터, 미야기현이나 도쿄도 등과 같이 복수의 항목을 들어 규정하고 있는 것까지 매우 폭 넓다. 인정 절차나, 누가 지도력 부족이라고 판단하는지도 교육위원회별로 가지각색으로, 05년도의 인정 인원수는 요코하마시의 23명으로부터, 야마가타현, 토치기현, 삿포로시, 사카이시의 1명까지 다양한 실태이다.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문부과학성은「교육 3법」 중에서, 지도력 부족 교원의 규정을 넣은 교육 공무원 특례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6월에 성립한 것을 계기로 가이드 라인 작성에 들어갈 것을 결정해 교육위원회의 담당자나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으로 구성하는 유식자 회의를 출발시켰다. 이 날 첫 모임에서, 유식자 회의 심사가 된 핫토리 아키라 기후여자대 교수는, 가이드 라인에 (1) 정의나 인정의 기준, (2) 연수 내용, (3) 연수 종료의 인정 방법, (4) 인정 후의 조치 등을 포함시킬 것을 제시하였다. 회의에서는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담당자가「신청한 단계에서면직까지 제안하면, 교장은 신청 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해, 상황에 따라 복수의 연수를 준비하고 있는 도교육위원회의 시스템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쿠로다 카오루 토오레 경영연구소 인재 개발 1 부장은「기업의 상식으로서는,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연수를 하는지가 소중하다」라고 지적했다.
전국 입시ㆍ보습 학원이 2001년 12월 1만3천708개 수준에서 지난해 말 2만9천5개로 5년새 무려 1만5297개(111% 증가)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국회 교육위 최순영(민노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입시ㆍ보습학원 수는 2001년말 1만3천708개, 2004년말 2만2천58개, 2005년말 2만6천102개, 2006년말 2만9천5개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매년 평균 3천여개의 학원이 추가로 생겨난 셈이며 5년새 전국 대부분 지역이 2-3배 가량으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제주도가 2001년말 58개에서 2006년말 313개로 5배 가까이 늘었고 울산은 293개에서 883개로, 대구가 432개에서 1천 230개로, 경남 728개에서 1천993개로, 경북이 559개에서 1천515개로 늘어나 2-3배 가량 급증했다. 서울은 2001년말 4천80개에서 2006년말 6천466개로 58% 늘었고 부산은 2001년말 1천81개에서 2006년말 1천648개로 54% 가량 증가했다. 최 의원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소득의 상당부분을 사교육비에 쏟아붓고 있다"며 "사교육비를 들인만큼 국가 경쟁력이 향상되고 아이의 미래가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최 의원은 "사교육비 지출의 목적은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인데 현재 입시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사교육비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요즈음 며칠 동안은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한결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이러다가 여름은 저만큼 물러가고 가을이 다가올 것 같다. 어찌 보면 여름은 어느 새 우리 곁에서 달음질쳐 도망해 버린 것 같다. 늘 땀을 줄줄 흘리면서 허둥대는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오늘은 교육청의 바쁜 일상을 접어놓고 학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니 더욱 기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관내 초·중학교의 사서도우미 및 독서논술 도우미 학부모들과 함께 선진학교를 견학하게 된 것이다. 학교 현장에는 학교도서관 활성화 및 독서 논술 교육 강화를 위해 학부모 도우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정사의 크고 작은 일을 접어놓고 매일 학교에 나와 사서도우미로, 독서논술 지도 도우미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도우미 학부모님은 한결같이 열성적이고 사명감으로 충만한 것 같다. 실제 버스에 오르면서도 이런 생각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여느 모임에서 볼 수 없는 정겨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희생과 봉사를 통해 넉넉해진 학부모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사회를 맡으신 전주서일초등학교의 회장님이 나더러 학부모님께 인사를 하도록 했다. 학부모 도우미 여러분과 함께 독서지도의 선진학교를 견학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요지의 인사를 하였다. 또한 지식기반 사회에서의 적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독서만한 것이 없고, 평생학습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우리 학교교육의 든든한 동반자요, 강력한 후원자로서 교육발전에 기여하신 점에 대하여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사실 나와 학부모님과 관계는 그리 원만한 편이 아니다.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학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내 주장만 늘어놓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잠재된 불만을 토로하고 마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학교나 교사의 입장에서 학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교사를 대신하여 잘못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할 때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분위가 달랐다. 광주광역시로 가는 차안에서 진지하게 사례 발표를 했다. 아침독서 지도 우수사례, 도서관의 쾌적한 환경 구성을 위해 직접 환경정리를 한 사례, 도서관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1층으로 옮기게 한 사례, 부족한 도서를 확보하기 위해서 도서 기증 운동을 펼친 사례 등이 발표되었다. 돌아오면서까지 이어지는 사례 발표 및 정보 교환의 장은 너무도 진지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광주광역시 태봉초등학교의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도 학부모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메모하고, 중요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질의응답은 계속되었다. 진행자가 시간 관계상 준비한 프로그램을 생략하면 어떻겠느냐고 양해를 구하자, 점심은 생략해도 좋으니 준비한 자료는 모두 보여 달라고 오히려 간청하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그들의 열의와 정열에 감동하였다. 12시까지 마치기로 된 행사가 오후 1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지만 점심시간에도 질의응답은 계속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이어진 실천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활지도와 관련 학부모와 실랑이를 하면서 가졌던 학부모에 대한 야속함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 학부모들의 열정과 고뇌는 학교 교육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학부모의 소망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독서 지도 관련 예산을 증액하도록 행정지도에 힘써야 함은 물론이고, 학부모 도우미의 정보 교환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우수 사례를 보여주신 광주광역시 태봉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독서사랑회 회원 여러분과 광주광역시 동부교육청 관계관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찌던 더위가 한풀 꺾였다.각급학교에서는 운동회,축제등결실을 확인하는 각종행사가 시작됐다. 인천 석정여고는 31일 인천지역 유지 및 학생 학부모 등 1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인조잔디 운동장 개장식 및 학교급식소 개소식을 겸한 "석정제" 축제한마당을 개최 했다. 식전행사로 열린 2학년 학생들의 반대항 육상겨루기에서 참가학생들이 온힘을 다하고 있다.
2007년 9월 1일부로 e-리포터가 근무하는 대전광역시동부교육청의 김창규 교육장이 취임 1주년이 되어서, 우리교육청 자랑과 함께 교육장 취임 1주년의 성과를 알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취임 1주년을 맞는 감회는? 봐야 할 곳 너무 많고 듣는 얘기 너무도 다양한 곳에서, 여기 보고 저리 뛰다보니 남들이 벌써 취임 1년이 지났다기에 헤아려보니 맞기는 맞는가 봅니다. 가치야 있든 없든 맘껏 욕심내어 가지고 온 소재들, 아직도 꺼내지 못한 것들도 많은데 벌써 1년이 다 갔으니……. 이쯤해서 정리해 보니 펼쳐놓은 일들이나 완벽하게 추진하여 그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아봐야 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 하나 얻은 것이 그나마 보람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그동안 펼쳐놓은 그림 하나하나 챙겨보면서 엇나간 색칠부분은 바로잡고, 빠뜨린 작은 소개 다시 화폭에 담아 감동적인 감상 작품이 되도록 24시간 시간운용을 더욱 알차게 해야 겠습니다. 교육장 취임 후 역점을 둔 교육 사업은? 우선 다섯 가지에 큰 방점을 찍고 교육 추진 중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첫째, 실천중심 인성교육을 위해 기본생활 습관 형성, 공동체 의식 함양, 인권존중 풍토를 조성, 건전한 학생 문화를 만들고 체험학습의 내실화를 꾀하였습니다. 둘째,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영재․과학․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내실화하였습니다. 또한, 학부모들이 바라는 학력신장을 위한 각급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있어서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셋째, 교육적 배려가 요구되는 대상자에 대한 교육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교육기회 균등을 꾀하여 교육복지 사회 구현에 힘썼습니다. 환경이 열악한 계층과 지역을 위해 유아․특수․학생 복지를 집중 투자했고, 소외계층이 많은 판암,대동지역에 방과후 학교 운영을 활성화했고 평생교육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넷째, 교직원의 전문성을 신장하고, 권위를 향상시켜 긍지와 보람이 있는 존경받는 교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교실수업 개선 중심 장학활동과 교과전문성 신장을 지원하였습니다. 人事는 萬事라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사제도를 운영하여 교직원들의 호평을 받았고, 청렴한 교육풍토 조성을 위한 교직원 새마음 갖기를 독려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위학교 자율경영 및 행정혁신을 도모하고, 교육환경 격차를 완화하여 교육의 균등발전을 도모하는 학교중심 지원행정을 구현한 것이 보람을 갖게 합니다. 대전동부교육청의 특색사업은? 우리교육청의 관할 지역은 대전의 원도심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지역입니다만, 신도심이 개발됨에 따라 인적․물적 기반이 대거 이동하여 서부지역보다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합니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동부교육 및 교육환경을 정확히 진단하고, 지역유관 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학교 안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동부지역 교육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유초중 교원 15명을 조직하여 동부교육발전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여 학교현장 및 동부지역의 현안 과제를 수시로 발굴하고 토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부교육발전협의회를 구청장, 운영위원장, 교장과 함께 구성하여 교육현안을 협의하고 교육재정 확보 및 인력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색사업을 자치구와 시민들의 협조를 통해 원도심을 활성화하여 떠나가는 원도심에서 돌아오고 살고 싶은 원도심 지역으로 변화시켜 동부지역을 대전의 교육중심의 도시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리포터가 본 김창규 교육장 처음에 김창규 교육장님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초등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교육청 근무 전에 초등학교 근무할 때 모셨던 어느 교장에 대한 부정적 그림자가 강해서였을까요. 하지만 직접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눠보니 그러한 선입견이 한낱 젊은이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결재를 하기 위해 교육장실에 가면 항상 직원들에게 웃으며 일어서서 맞으십니다. 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나도 높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하지 않으셨는가 합니다. 사람을 한 두 번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김창규 교육장님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작은 철학자 같은 師表라고나 할까. 비록 160센티미터의 短尺이지만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큰 성품과 넓은 인품을 지닌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현재 동부교육청의 당면과제인 신도심과 원도심의 교육기회의 격차로 인한 학력수준 차이와 같은 엉킨 실타래 같은 교육적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갈 것으로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30여년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몇 가지 어록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실수를 줄이며 삽시다. 교직에 몸담은 우리는 자신의 하는 일에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다워야 합니다. 진정한 프로의 가장 큰 특징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금년은 가급적 실수를 줄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삽시다. 내가 당신의 입장을 생각해준다면…….그 사람의 처지에서 내가 미소를 보내준다면…….당신과 나 그 사람과 나는 얼마나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까요? 금년은 가급적 역지사지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셋째, 한 달만 앞서 삽시다. 두 달 후, 반년 후, 1년 후 이렇게 욕심내지 않습니다. 다만 한 달 후의 계획만이라도 지금 꺼내어 꼼꼼히 챙겨보며 미리미리 완벽히 준비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금년은 한 달 앞서 살았으면 합니다. 넷째, 하루 2시간만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삽시다. 때는 정해놓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 1시간은 건강을 챙긴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개인 운동에 투자하고, 또 1시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독서하는 시간으로 써 봅시다. 하루 중 2시간은 불과 8%에 지나지 않습니다. 2시간 투자에 너무 인색하지 맙시다. 금년은 그저 2시간만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2007년 3월 월례회에서) 우선 프로가 됩시다. 또한 프로에서 나아가 『참ㆍ피ㆍ온』이 됩시다. 챔피언이 되는 과정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참는 것입니다. 우리는 업무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갖가지 어려움을 참으며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피할 줄 아는 것입니다. 검은 유혹, 검은 손길을 피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온순함과 온화함을 갖추는 것입니다. 온순함과 온화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 챔피언이 됩시다. (2007년 6월 월례회에서)
여름 방학은 선생님들에게 있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학교의 교육 활동을 잘 모른 일반 사람들의 눈에 교원들은 방학이 되면 그냥 학교에 가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연수장에서「Monday(월요일)」의 카드를 가진 교원도 있으며, 「Friday(금요일)」을 가진 교원도 있다. 각 요일의 카드를 가진 아동 역할을 하는 교원은 약 80명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하나의 그룹을 만들도록 호령을 하면, 교원들은 종종걸음으로 가 부족한 요일을 불렀다. 게임 형식의 수업의 실연이었였다. 쿄토시내에서 6일부터 시작된 시 교육위원회의 연수인「초등학교 영어 지도 기초력 양성 강좌」이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초등학교 교원이다. 「수줍어 하지 않고 영단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입니다. 클래스 바꾼 직후 등에 좋은 것은 아닌지 ?」라고 하는 설명에, 참가자의 한 명, 쿄토시립 제 3금림 초등학교의 마츠무라 교사(30)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도, 지도를 보면서 영어로 길안내를 하거나 영어의 노래를 부르거나라고 하는 모의 수업이 계속 되었다. 참가자끼리의 의견 교환에서는「45분간의 수업을 하는 것은 어렵다」,「순간에 영어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라고 서로 털어 놓았다. 연수는 3일간으로 남는 2일간의 대부분은, 수업 내용을 그룹 마다 계획해, 발표하는 작업에 사용했다.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로, 마츠무라 교사는「모두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라고 안심했습니다. 많은 교원을 알게 되어 앞으로도 정보교환이 생길 것 같다」라고 만족한 것 같았다. 쿄토시에서는 2005년도부터, 3~6 학년의 종합적인 학습의 시간에, 전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평균 연간 20시간 정도(거의 2주간에 1시간)로 전국평균보다 약 2배의 시간을 실시한다. 전초등학교에「영어 활동 주임」도 있으며, 영어가 모어인 외국어 지도 조수(ALT)와 상담하면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담임과 수업 내용의 협의도 한다. 마츠무라 교사도 제3금림소에 착임 한 봄부터 영어 활동 주임을 맡고 있다. 게다가, 동초등학교는 금년도에 다른 시립소 4교와 함께 문부 과학성의 영어 교육 연구 사업의「거점교」가 되었다. 마츠무라 교사에게는 시 교육위원회의 지도를 받으면서, 시립소학교 전체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특별히 영어 교육을 공부해 온 것이 아니기에 당황하는 것도 많다. 연수는 머뭇거리지 안고 신청했습니다」. 올 여름은 초등학교 영어의 연수를 하나 더 받고 학년에 맞는 수업을 공부했다. 여름휴가 중에는, 보충학습이나 수영 지도, 연수, 가을의 숙박 학습처의 예비 조사등 해야 할일이 매일 같이 있다. 따라서 휴가는 추석을 낀 1주간으로 금년은 여행의 계획을 세울 여유도 없었다. 8월 하순에는 영어 교육의 계획에 대해 교장들에게 설명할 예정도 잡고 있다. 「여름에는 오키나와를 좋아합니다만, 자택에서 천천히 휴양 합니다」. 가을 이후 본격화하는 커리큘럼의 재검토 작업으로 여름의 성과가 발휘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너무나 변덕스럽다. 일정치 않다. 건강한 날씨가 아니다. 장이 좋지 않아 변비가 계속 되다가 설사가 계속 되고 또 변비, 설사...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앓는 증세처럼 요즘 날씨도 그러함을 보게 된다. 가뭄, 더위가 계속 되다가 이제는 비, 서늘함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빨리 정상적인 회복을 기대해 본다. 오늘이 9월 초하루다. 9월 초하루를 맞이하면서 우리학교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리학교의 교훈은 ‘사랑, 정직, 성실’이다. 1학기 때 이웃 신설학교의 교장실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학교도 우리와 교훈이 똑 같았다. 그 정도로 ‘사랑, 정직, 성실’이 사람됨의 덕목 중의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면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부산에서 어느 할머니께서 손자, 손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나무 밑에서 말벌의 공격을 받아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 그런데 목격자에 의하면 그 할머니께서는 벌이 달려드니 치마로 어린 손자, 손녀를 감싸다 자기가 70-80번 벌에 쏘여 돌아가신 것이다. 이 뉴스를 듣고 할머니의 사랑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렇게 희생을 했을 것인가?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의 희생도 사랑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을 지키는 것도 사랑이 밑바탕임을 알 수 있다.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지키는 것도, 학생들을 지키는 것도 사랑이 밑바탕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학교에는 체육진흥공단의 지원을 받아 인조잔디와 폭신폭신한 트랙을 꾸며 놓아 주민들이 운동하며 건강을 지키기가 참 좋다. 그런데 그분들이 지나간 뒷자리는 아름답지 못하고 늘 추하고 지저분하다. 학생들이 등교하고 선생님들이 출근할 때면 항상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주민들이 버려둔 쓰레기는 몽땅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몫이다. 보다 못해 부장선생님들이 모두 발을 벗고 나섰다. 실내 청소 특히 특별실을 주로 맡고 계시는 부장선생님들께서 운동장 구석구석을 분담하여 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도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오늘 아침 사랑, 정직, 성실이 태양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아침뉴스에 나온 할머니처럼, 우리 부장선생님들처럼 사랑이 있기에 빛을 발하는 것 아닌가? 태양처럼 말이다. 언제나 빛난다. 반짝반짝 빛난다. 눈부시도록 빛난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큰 것이다. 정직은 다름 아니다. 구름이 해를 가릴 때나 구름이 해를 가리지 않을 때나 해는 언제나 같다. 언제나 빛을 내고 있다. 구름이 가린다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구름이 가린다고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 구름이 가리든 그리하지 않든 언제나 똑같지 않은가?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공부하고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청소하고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없는 마음이 정직한 마음 아니겠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이 늘 같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언제나 빛이 날 것이다. 성실은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것 같이 늘 일정하고 한결같음을 말하지 않는가? 꾸준해야 한다. 변함이 없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변덕이 없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태양이 하루라도 변덕을 부리는 것 보았나? 태양이 하루라도 떠지 않고 지지 않는 것을 보았나? 그렇지 않지 않느냐? 2학기 와서 3학년 일부 학생들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고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할 학생들은 열심히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할 학생들은 공부를 포기한 채 아예 수업분위기를 흐트리고 있다고 한다. 수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수업이 더 힘들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인문계를 가든 실업계를 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인문계 가면 어떻고, 실업계 가면 어떻나? 어디를 가든 기초를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기초를 다지기 위해 더욱 열심히 듣고 공부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성실이다. 성실이 따로 없다. 변함없이, 끈질기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태양처럼 아름다움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 정직, 성실! 이게 바로 태양이다. 태양처럼 살고 싶지 않은가?
자연늪 품고 낙동강 구원하는 황강 거창군 가북면의 산악지대에서 출발된 황강은 덕유산에서 내려온 위천을 만나 몸통을 불린 다음, 거창과 합천군을 가로질러 가다가 청덕군 적포리에서 낙동강에 흘러 들어간다. 전체 길이는 111㎞이고, 물길의 경사가 심해 토사가 많고 일부에서는 하천의 바닥이 평야지대보다 높은 천정천을 이루기도 한다. 토사의 대부분은 은백색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강바닥과 주변은 황금 색깔을 보인다. 먼저 자리 잡은 모래알들은 강물에 떠내려 온 작은 진흙 입자를 받아 들여 넓은 퇴적층을 이루고, 그 퇴적물들은 버드나무의 씨앗을 잉태하여 웅장한 버들숲을 만들었다. 여름이면 황금빛 나는 강변에 시원하게 잎을 드리우는 버들숲은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버들숲은 사람들에 의해 더렵혀진 강물에서 나쁜 성분을 걸려 내고, 몸속에서 많은 산소를 뿜어 강을 맑게 해 준다. 이렇게 깨끗하게 정화된 강물은 낙동강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구원의 물이 된다. 새 생명이 어미의 젖을 먹고 생명을 이어 가듯 주변의 공단에 의해 크게 오염된 낙동강에 다량의 용존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에 ‘모성의 강’이라고도 한다. 합천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큰 군이지만 80%가 산으로 되어 있어 골이 깊고 물이 맑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던 이곳에 1988년 홍수 조절과 전력 생산을 위해 합천댐이 들어섰다. 합천댐의 건설로 낙동강의 수위가 60㎝ 정도 낮아져 홍수의 피해를 크게 줄였지만, 평상시에 황강을 흐르던 물이 크게 감소하여 자연늪의 입장에서는 많은 물을 빼앗겨 이들의 육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합천의 자연늪들은 황강에 의해 만들어진 배후습지성 호수들인데, 용주면의 박실늪과 연당늪, 대양면의 정양늪이 있고, 인위적으로 산의 중턱에 조성된 율곡면 내천리의 연지못이 있다. 한때 39.7㏊였던 정양늪은 대양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황강으로 들어가다가, 홍수 때 역류하여 만들어졌다. 황강으로 들어가는 수로의 길이는 매우 짧아 황강의 물높이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몇 년 전 수로의 바닥을 낮추어 호수의 물이 많이 빠져나가 대부분의 늪이 육상화 되었다. 박실늪은 둘레 5.5㎞, 넓이 40㏊의 장화모양으로 황계폭포에서 내려오던 황계천의 물이 황강에 들어가다가 역류하여 만들어진 늪이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2호인 백조 도래지로 지정되었다가 1974년 해제된 곳으로 지금은 이 사실을 기록한 비석만이 제방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직도 이곳에는 여름에는 백로 류가, 겨울에는 백조 무리가 무리지어 찾고 있다. 황강에 인접한 연당늪은 연꽃이 자라고 있기에 이름이 붙여졌고, 규모는 작지만 지금은 합천에서 유일하게 보존이 잘된 자연늪이다. 배후습지는 아니지만 율곡면 내천리에 있는 연지못은 내천마을에서 1㎞ 떨어진 해발 180m의 야산 정상부에 있으며 넓이는 0.5㏊이다. 산 정상부근의 샘에서 임진왜란 때 우리의 군사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판 곳이 연못의 형태로 남아 있다. 샘에서 나오는 물에 의해 일 년 내내 같은 물 높이를 유지하나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의 높이가 증가한다. 희귀식물 낙지다리의 군락 박실늪 한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8년 버들밭을 없애고 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귀한 유산이 사라졌다. 남아있던 부분도 근래에 수로의 바닥을 황강의 높이로 낮추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육상화 되고 있다. 이곳의 습지에는 솔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물옥잠, 선버들, 버드나무, 고마리, 낙지다리, 질경이택사, 택사 등이, 물속에는 개구리밥, 생이가래, 어리연꽃, 가시연꽃, 통발, 붕어마름, 물수세미 등이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붕어, 잉어, 메기 등의 여러 종류 물고기와 수달, 남생이, 금개구리, 유혈목이 등이 살고 있다. 물옥잠은 한해살이풀로 9월에 청자색의 꽃이 피는데, 그때 박실늪 전체는 보라색의 밭으로 변한다. 물옥잠의 사촌인 물닭개비는 꽃의 색깔이나 잎의 모양이 비슷하지만, 원줄기에 하나의 잎이 달리고 물옥잠보다는 작은 잎을 가진다. 물닭개비는 물에 사는 달개비라는 뜻으로 꽃이 육상에 사는 닭의장풀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낙지다리는 전 세계에 단 3종뿐으로 학자에 따라 돌나물과 또는 낙지다리과로 나누고 있는데, 어디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은 특이한 식물이다. 7월에 줄기 끝에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황백색 꽃이 하늘을 보며 모여 달리는 모습이 낙지다리처럼 보인다. 뿌리에서 짜낸 즙을 부스럼에 바르는 낙지다리는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는 식물은 아니다. 습지가 파괴되고 하천이 정리되면서 살 곳이 없어져 버린 낙지다리를 산림청에서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연늪의 변화과정 보여주는 정양늪 1983년 정양늪은 습지와 물이 드러나는 부분이 반씩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습지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줄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줄은 4월에 싹이 나오기 시작하여 점차 자라기 시작하다가 태풍이 오기 전에 최대 250㎝까지 자란다. 이때 줄 밭에 들어서면 공기가 혼탁하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씩 늪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들이 터져 나오면서 ‘끙끙’ 울음소리를 낸다. 이런 줄 밭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자연늪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정양늪도 박실늪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정양늪을 통하여 우리나라 늪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호수에는 상류에서 내려온 흙들이 쌓여 점차 물 깊이는 낮아지고, 이곳에 습지식물인 부들과 줄 및 갈대가 들어서게 된다. 이때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게 되는 가뭄이나 댐의 건설로 인하여 들어난 습지에 버드나무가 들어서게 된다. 육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나도미꾸리낚시와 고마리가 버드나무 밑에서 자라기 시작하고, 이런 늪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 육지로 변하게 되고 버드나무 대신 소나무나 오리나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 늪의 육지화에 큰 역할을 하는 버들에는 선버들, 왕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등 30여 종류가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4월에 피고, 5월에 열매가 익으며 가을에 낙엽이 진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이것으로 진통제 성분인 아스피린을 만든다. 살리실산은 배고픈 딱정벌레가 버들잎을 먹을 때, 벌레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약품을 만들었다. 이처럼 자연이란 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면 파괴하지 않고도 더 좋은 이용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멸종 위기의 순채 자라는 연지못 연지못에는 순채, 통발, 창포, 나래새, 털여뀌가 자라고 있으며 이 중 순채가 가장 넓게 분포한다. 특히 이곳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순채가 나타나는 곳으로 순채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및 보호 식물이다. 순채는 물 위에 잎을 띄워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땅속줄기는 옆으로 기어 다니고, 줄기는 물 위까지 자라 드문드문 가지를 친다. 어린줄기와 잎은 투명하면서 미끈거리는 점액으로 덮여 있고, 잎자루는 잎의 중앙에 달렸으며 잎의 뒷면은 자주빛이 난다. 긴 꽃자루에 달린 꽃은 검은 빛을 내는 홍자색이며 물에 약간 잠긴 채로 초여름에 핀다. 전 세계에 1속 1종이 있으며, 온대와 열대지방에 자라는 순채는 점액질이 분비되는 어린줄기가 있다. 잎은 피부병 치료를 위해 바르거나 소화제로서 그대로 먹는다. 예전에는 남한 전역에서 자랐지만, 현재는 연지못, 울산의 못산늪, 전남 영암의 형제제, 익산의 신성저수지, 김제의 석동저수지와 명덕저수지, 충남의 삽교천, 제주도의 괴살메와 갈마못, 속초 근방의 광포호와 봉포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세월 아닌 사람에 의해 변해가는 자연 사람이 변하듯이, 우리 삶의 모태인 자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1917년 자료에 의하면 박실늪은 지금의 약 2배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해곡동 앞의 들에도 물이 고여 있는 호소였는데, 지방도로에서 해곡동까지 둑을 쌓아 논을 만들면서 넓이가 반으로 줄어든다. 이후에 박실늪 상류 제방에 황계천에서 떠내려온 흙들이 쌓이면서 습지대가 점차 넓어지다가,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황강의 물 깊이가 급격히 낮아져 박실늪의 습지대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그때까지 경작지의 옆에만 자라고 있던 몇 그루의 버들이 갑자기 물에서 드러난 습지대에 많은 씨를 뿌려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 1990년대 초반에 가뭄이 자주 우리나라를 찾아 왔다. 가뭄이 들어 박실늪의 수위가 낮아질 때마다, 버들이 몇 년 간격으로 찾아오면서 나이가 다른 버들 밭이 습지를 원 모양으로 그리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귀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버들밭을 보면서 이를 없애고 논을 만드는 작은 이익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결국 1997년 겨울에 버들들은 모두 베어졌고 1999년 여름에 모내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논은 해마다 홍수 때 물에 잠기게 되고, 눈앞의 이익에 현혹된 사람들은 기어이 황강으로 들어가는 보를 허물어 박실늪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고대 다라국의 신비 간직한 황강변 예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용된 황강의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지천에 늘려 있다. 박실늪 상류에 있는 황계폭포는 구장산의 계류가 험준한 계곡을 감돌아 2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2층 폭포이다. 여름철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천둥소리를 내고, 사시사철 일정한 수량을 보인다. 1단 폭포 밑의 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이를 가져 예전부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곳의 풍광이 아름다워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하였고, 합천 8경 중 7경에 해당된다. 황강의 금빛 모래를 이용하여 번성을 누렸던 다라국(多羅國)도 황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적중면에는 옥전고분(玉田古墳)이 있는데, 옥이 출토된 밭에 있는 고분이라는 의미이다. 다라국은 가야의 한 소국으로서 일본서기와 중국의 양직공도에 나타나는데, 합천의 황강과 낙동강을 끼고 서기 400년 전후에 등장하여 560년대에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 및 철제무기를 만들어 수출하였는데, 고분에서 전쟁 시 말을 보호하기 위한 말 투구 6점과 갑옷 3구가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말 투구 14점 중 반이 이곳에서 나왔다.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을 다듬었던 다라국은 합천박물관 주변에 대형 고분 27기와 약 1천기의 무덤을 남겼다. 봄철에 만나는 합천댐과 백리 벚꽃 길(44㎞)은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등의 수려한 산이 감싸고 있어 절로 신선이 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합천호를 감싸는 황매산의 철쭉제, 합천댐 아래에 조성된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게 한다. 존재의 위협을 받는 자연늪! 비단 합천의 늪만이 가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늪의 파괴가 계속 일어난다면 우리 후손들은 책을 통해서만 자연늪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연늪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연늪이 사라지면 늪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많은 생물들이 살 터전을 잃고 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은 현 정부의 야심작이었다. 복지 정책을 강조하는 참여정부는 살인적인 경쟁과 만성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야심에서 혁신적인 대입제도개선안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대학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성적의 석차나 수능 시험의 백분위 점수를 제공하지 않고 각각 9개로 구분된 등급만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책에 대한 대책 부실이 문제 사실 정책입안자들의 주장처럼, 2008학년도 대입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수능과 내신에 등급제를 도입하고, 내신에서도 교과뿐만 아니라 교과 외 활동의 반영을 유도하는 대입 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과 사교육비 문제 등을 어느 정도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대학들이 정책입안자의 의도대로 움직여 준다고 가정할 때에 그렇다. 그러나 좀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관성에 비추어 볼 때, 2008학년도 대입 방안을 대학이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 모집단위별로 분석해 볼 때, 지원자 대부분의 수능과 내신 등급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수능과 내신을 지원 조건이나 일차적인 선발 기준으로 격하시키고, 논술이나 면접시험 점수를 학생 선발의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고자 하였다. 논술이나 면접이 학생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함에 따라 각 대학은 논술의 신뢰도와 변별도를 높이기 위하여 논술을 이른바 통합논술, 수리논술, 본고사형 논술 등과 같은 형태로 바꾸고자 하였다. 면접도 더 이상 단순한 면접이 아니라 오랄 테스트로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책입안자들은 모든 ‘정책’에는 반드시 ‘대책’이 따름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에 본고사형 논술과 면접시험이라는 대학의 ‘대책’이 뒤따랐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은 본고사형 논술 열풍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논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2008학년도 입시가 다가옴에 따라 고등학교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실력 차이로 인하여 내신의 비중을 높일 경우 우수 학생의 선발에 어려움을 느낄 것을 예상한 대학은 각 대학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기 위하여 대학별로 내신 1·2등급, 1·2·3등급, 1·2·3·4등급에 모두 만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각 대학 지원자의 대다수에게 내신 만점을 주려는 대학의 ‘대책’에 정부는 내신 무력화 조치라고 경고하였으며, 이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각 대학에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08학년도 대입에서부터 내신 실질 반영률을 50%로 끌어 올릴 것을 요구했다. 내신 실질 반영률이 10% 내외에 그쳤던 그간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교육부의 이러한 요구를 대학은 황당한 요구로 간주하고,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하였다. 내신 실질 반영률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 각 대학은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허용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까지 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와 이로 인한 자율성 침해를 비판하면서 내신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대책’의 계속적인 맞대응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첫째로 내신, 수능, 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히게 되었고, 둘째로 대입정책의 불확정 속에서 ‘저주받은 89년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대, 2008학년도 대입정책 입안자들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학교교육은 더욱 왜곡되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내신 논란이나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으로부터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난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에 이미 이런 논란의 씨앗이 담겨져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5년 초에,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의 파급 효과를 우려하면서 교육관련 잡지에 실린 필자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적·교육적 가치 중시돼야 대입 논술 고사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맥락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대입 논술 고사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본고사형 논술금지’라는 이념적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교육부는 상당한 유연성과 동시에 경직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의 유연성을 드러내 보인다. 다만 논술이 통합형 논술이나 교과형 논술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할 뿐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대학 논술 고사의 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육부는 본고사형 논술을 금지하는 이유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목적’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지점이 교육부가 매우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본고사형 논술이 사교육비를 정말로 증가시킬 것인가? 일시적인 사교육으로 본고사형 논술에서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깨닫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본고사형 논술을 치르지 않는다고 사교육비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목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진술될 수 있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교육적 가치를 지닌 대학 논술 고사를 놓고 진행되는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 정책’간의 싸움의 결말은 어떠할 것인가? 현재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과 ‘사후심의’ 정책으로 인한 논란은 궁극적으로 본고사 실시와 관련한 논란으로 발전할 것이며, 논란이 본격화될 경우 본고사 실시 정책이 본고사 금지 정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본고사 실시는 한편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성이라는 ‘민주적 가치’로, 다른 한편으로는 수월성 추구라는 ‘교육적 가치’로 정당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본고사 금지는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비교육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본고사를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비가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통제정책 아닌 지원정책 필요 2년 반 전, 교육부가 2008학년도 대입정책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예상했던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은 처음에는 ‘본고사형 논술’ 시험 문제에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문제로 바뀌어 다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3불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와 대학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할 태세다.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 즉 정책 수립 및 집행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통제’보다는 학생 선발 결과에 따른 ‘지원’의 차등화를 통해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학생 선발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허용하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균형 있게 학생을 선발한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통제 패러다임’을 ‘지원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더 나아가 미래의 사회에서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을 통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을 통제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정부의 정책 의도와 일치하는 선발 결과를 보인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 집행 방식이 대학의 학생 선발에 있어서의 자율권 보장이라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대학 진학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정책 취지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명문 대학일수록 사회적 약자의 진학 비율이 낮아져 온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는 대입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의 문제와 사회복지의 문제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정책의 배후에는 사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가 놓여 있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대입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관심과 노력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교육을 통하여 사회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가 입시제도 등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적 관심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 교육 논리를 무시한 채로 정치 논리, 경제 논리 또는 사회복지 논리로 입시문제 등에 접근할 경우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하게 엉클어 놓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사회적 책임 잊지 말아야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교육부의 간섭, 즉 본고사 금지, 논술가이드라인 제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금지와 같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교육 자체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많다. 달리 말하면 사회 계층의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교육까지도 망가뜨릴 가능성이 있다. 학력과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계층의 양극화 문제는 사회복지제도나 경제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대입제도와 같은 교육정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을 정치나 경제, 사회복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정부의 태도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렇다고 대학의 잘못은 없는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의 대입 정책에 대한 ‘간섭’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 부족 때문에 초래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사례는 이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적이다. 미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조기입학허가제(early admission)’가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자체 분석 결과에 따라 하버드 대학은 우수 학생 선점에 유익한 정책으로 간주되어 왔던 조기입학허가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의 자율은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대학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가능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학생 선발은 한편으로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정확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도 있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이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키우거나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그리고 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생을 선발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대학은 변별력 있는 선발제도를 통해 탁월한 학업 성취를 보인 학생을 선발하는 것 못지않게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으나 사회적 여건이 불리하여 발전할 기회를 놓쳤던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에 정부가 간섭하는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느끼기에는 그런 듯하다. 1997년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는 12개국 학자들을 대상으로 고등교육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 조사 항목 가운데는 “대학의 주요 학사 정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나친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90% 가까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조사 대상 나라들 가운데 긍정 비율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부분 반응이 50% 이하였던 것에 비교하여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같이 조사된 나라들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에서만 50% 조금 넘는 긍정 반응이 나왔을 뿐, 아시아의 일본과 홍콩, 유럽의 네덜란드와 스웨덴, 남미의 브라질과 칠레, 그리고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다른 모든 조사 대상 국가에서 긍정 반응을 한 빈도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정부 간섭 지나치다는 응답 90%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통제)은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국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전제적 정권들이 으레 자행했던 대학 통제의 유습, 뒤늦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학을 국가 발전 수단으로 여겼던 통념, 일천하고 척박한 고등교육 역사 속에서 불거졌던 대학들의 부정과 부패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진원이었던 대학들은 여러 이유로 정권의 통제를 받았고, 성장이든 배분이든 대학은 그 문제에 대한 중요한 국가 정책 수단으로써 조정돼 왔으며, 급속한 팽창 와중에 빚어진 대학의 비리들도 정부의 개입을 불렀다. 이런 역사의 연장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등교육의 문제를 대학에 맡긴다는 생각은 아직 멀다. 문제가 터지면 정부를 탓하고 정부가 나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관성은 여전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관성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자율권을 요구하는 강도는 세지고 있다. 대학들의 이런 변화(요구)에 대한 사회적 동조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일차적으로 이른바 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대학들이 자유시장적 경쟁을 통해 강해져야 한다는 개혁 논리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대학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라는 방안들이 중요한 개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연히 대학 경영상에서 자율 폭이 커지고 있다. 경쟁적 생존을 요구하면서 자율을 제한하는 것은 모순인 셈이 된다. 대학의 자율권은 이런 개혁 추세가 아니더라도 점차 회복되기 마련일 것이다. 대학은 본디 자율의 바탕 위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통제적 전통은 점차 해소될 것이다. 대학이 그 긴 역사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나 사회(종교)적으로 완전하게 독립적이었던 적은 없을 것이다. 대학 생존에 이바지하는 주체가 늘 대학 밖에서 받치고 있었다. 그 주체는 때로는 귀족이기도 했고, 때로는 교회이기도 했으며 자선재단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만 본다면 많은 나라에서 대학을 뒷받침한 주요 주체는 정부(국가나 지방 정부)이다. 대학이 이들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율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지원한 주체들은, 적어도 대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와 지역(국가)을 두고 보면, 대체로 후원자(patron) 자리에 머물렀지 대학 운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대학의 자율은 대학의 본질에 붙박여 있는 것으로 여겼다. 본질적 자율 범위에 대한 논란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선발 권한이 대학의 본질적인 자율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 종종 논란이 생긴다. 특히 정부쪽에서는 학생 선발의 쟁점이 대학 자율 문제와 거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학의 자율은 본질적으로 학문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여 교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자유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에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대학의 학문적 자유(대학이,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탐구하고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와 관련해서 가져야 할 자유)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 입장은 사실 옹색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어쨌건 합리화해야 하는 궁지에서 학문의 자유를 좁게 규정함으로써 빠져나갈 논리를 찾는 꼴이다. 대학의 역사를 서구 유럽에서 찾는다면 대학의 자율권은 본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설립 900주년을 맞던 1988년에 유럽 대학 총장들이 볼로냐에 모여 채택한 대학대헌장(Magna Charta Universitarum)은 근본원칙(Fundamental Principles) 첫 조항을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은 사회의 심장에 자리한 자율적인 기관이다.” 이 원칙대로 대학의 자율권이 사회적 심장의 자리에서 향유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경 전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학생 선발에서의 자율도 물론 포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당위적이고 선언적인 바탕에서 대학 자율권이 학생 선발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생겨난 많은 신생국의 경우와 크게 다름없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애당초 국가 기관이나 마찬가지인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이 초기부터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적 지위 이동에서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사회적 환경에서 대학 진학 기회가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관심이 예민한 데 따른 시비는 종종 증폭되고, 결국 증폭되는 시비를 해결할 당국(곧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우리나라 대입 선발에 대한 정부 개입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 선발권을 전적으로 대학에 주었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초기 역사는 대학들의 비리로 얼룩졌다. 이 역사적 기억은 오늘에 와서 자율의 이름으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주려는 생각을 너무 순진한 발상으로 여기게 한다. 서구 대학의 전통이 그 순진한 생각을 지지해준다 하더라도, 우리 상식은 그런 전통에 기대는 정책 행위를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학생 선발에 관하여 규범적인 검토보다 ‘사실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학과 정부 가운데 어디가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가져야 할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전통(규범, 당위)이 어떤 답을 주는지 살피기보다 우리의 대학 운영 현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살피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것이다. 선발권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들 대학이 학생 선발의 권한을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역사적 사실이 잊지 못하게 하는 문제는 대학들의 부정 가능성이다. 대학들이 적격하지 못한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고 정작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을 버릴 위험이 있다. 과거 대학들이 보였던 입학부정 사례들이 이런 걱정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이와 같이 탐욕을 보였던 대학들은 더 나아가 학교교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대학들이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입생들을 챙길 방도만 찾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하여 대학들이 최근 보이는 경쟁은 이런 우려를 절감하게 한다. 경쟁에 눈이 어두운 대학은 또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사회는 여긴다. 이를테면, 불우한 여건에서 도전하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요컨대 대학들이 공익에 먼저 마음을 쓰기보다 자체의 이해(利害)를 먼저 계산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에서 정부가 내놓는 입장도 이런 것이다. ‘공공성’의 견지에서 정부가 대학 정책(특히, 학생 선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공공 기관으로서 몫을 해내지 못하거나 안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들어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자율을 구가한다면 학교교육의 정상화나 교육기회 균등을 위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걱정할 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반드시 걱정한 대로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물론 이해관계에 매인 행위를 보이겠지만, 공공성을 견지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마냥 방기하지만은 않을(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유보한 채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행사한다고 해서 곧 공적인 이익이 확보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가 정책을 책임진다고 해서 공공성이 당연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가 그 유지를 위해 사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그 결과가 취지에 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간섭 결과 냉철히 따져봐야 우리나라 대입 정책은 적어도 반세기 가까이 정부가 좌우해왔다. 물론 정책 입안과 시행 과정에 다양한 목소리가 개입했고, 대학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인 정책 권한은 정부에 있었다. 단순하게 자문해보자. 과거 반세기 정책 역사가 대입 학생 선발에서 공익을 키워왔는가? 그렇다고 긍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도 대입 부정 사례가 과거보다 현격하게 줄었다. 교육기회 배분(학생 선발)이나 장학금 지원 등이 사회적 평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대입 정책을 대학 자율에 줄곧 맡겼었더라도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학도 발전을 강구하면서 사회적 요구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한때 부정을 자행했던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런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학습하게 되고, 정책의 정도(正道)로 돌아갈 수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강자 우선의 정책만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학교의 위신을 높이거나 사회적 지원을 얻어내는 데 더 유효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국의 명문 대학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그 대학들이 고매한 도덕률을 지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런 정책이 종국에는 대학에 득이 된다는 인식을 경험적으로 얻게 된 점도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 대학들이라고 이런 역사적 지혜를 체득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사실 무의미하다. 대학에게 맡겼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보다 정부가 권한을 행사한 결과를 좀 더 따져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늘날 정부가 지휘하는 대학입학 제도에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수능시험이나 대학별 전형 등에서 큰 사건 없이 한 해 한 해 넘겨오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대입과 같은 심각한 사안에는 정부가 개입했을 때 안심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인 무난함이 공공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객관적 관리가 오히려 파행 불러 대입정책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얻는 성과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정(査定)이 이루어지게 되는 점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정부가 엄정하게 관리하는 시험을 통하여 핵심적인 전형자료를 제공한다. 다른 전형자료들(예컨대, 학교생활기록부, 논술고사 등)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지침으로 표준적인 활용을 도모한다. 이런 수고를 통하여 정부는 입학 사정에서 ‘커트라인’을 긋고 당락을 가르는 데 다른 입김이 작용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객관적이고 효율적이게 보이는 정부의 대입 관리는 역설적이게도 대입 경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교육의 파행을 더 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형을 위해서는 국가 수준에서 하나의 표준 잣대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이의 없이 받아들일 척도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잣대는 학생 전형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대학의 서열을 가르는 데도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몇 점이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진학할 수 있는지 탐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가 되고, 학과나 대학의 커트라인이 해당 학과와 대학의 위세를 결정하게 되는 현상도 따라서 일어난다. 대학들 역시 위세를 확보하기 위해 입학전형에서 전국 표준의 잣대를 가장 중시하게 된다. 학생이나 학교가 학습(교육) 과정에서 그 잣대를 가장 중요하게 의식하게 되리라는 짐작은 우리 현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결국 학교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되는 파행이 거듭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 전국 표준의 지침(또는 잣대)을 적용하게 되는 사태는 불리한 학생들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효과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대로 내신 성적을 중시하는 지침이 전국 대학에서 관철된다고 해보자. 단순하게 보면, 이 지침은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되어 있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 특수목적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중소도시 또는 읍면 지역의 이른바 ‘우수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정부는 소위 ‘특수한’ 학교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작은 도시나 시골의 우수한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어려서 도시로 나가지 못한 형편에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는 간과된 듯하다. 이 경우에 정부가 실수로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실수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실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실수라는 점이 심각한 것이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즉 획일적인 정책을 추구할 때 ‘목소리 낮은’ 소수는 흔히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획일적이지 않은 정책을 추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그런 정책이 바로 대학에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목표’를 제시하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규칙’(정책)은 대학이 스스로 만들고 지키도록 맡겨두는 것이 그 대안이다. 국가가 이를테면 대학에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입학전형 방안을 요구하는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만들어 강요할 만한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대안을 강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사회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대안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대안에 대학들이 사악한 방책들로 대응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견제는 정부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대학답지 못한 대학들을 의식하며 대학다운 대학 만들기를 주저해선 안 될 것이다.
공정한 권력배분 장치 공교육의 위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특정 계급에게 집중되거나 귀속되지 않고 국민 모두에게 있다. 과거의 귀속주의(Aristocracy) 사회에서 현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민주적인 권력배분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곧 학력(學歷)이다. 요즘에 와서는 진정한 의미의 학력(學力)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도 이른바 ‘가방 끈’이 권력배분의 중심에 있다. 대학교육을 받았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그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의 정도를 가늠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대입 경쟁에서 남보다 좋은 조건에 들기 위해 고액 과외를 받거나,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행태를 비난하기 어렵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지역, 어느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를 불문하고, 각자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더 나은 학력을 갖게 되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가 주어진다.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노력한 결과를 가지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계층 이동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공교육을 통해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왔다. 1960년대 후반의 ‘중학교 무시험전형’과 70년대 초반의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이 그 일환이다. 이 두 정책은 공교육 기관이 권력배분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는 대입제도이다. 특히 대입전형에서 고등학교 교육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어느 요소보다 중요하게 반영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바로 ‘내신의 반영’이다. 우리의 공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경쟁이 치열해지고,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학교마저 적자생존의 경쟁 시장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우리 모두 최고가 되려고 경쟁하는 사이에 성적이 하위권에 속한 학생들이 먼저 소외되기 시작했다. 공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하위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위권 학생들로부터 학교가 외면당하고 있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경쟁에 이기는 데 학교가 학원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김동춘, 1999:1). 내신을 무력화 하려는 일부 대학들은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실시하면서 한편으로는 ‘기회균등할당제’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대학 졸업자에게 투표용지를 두 장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별 다름이 없다. 우리는 근대 시민사회에 살고 있다. 시민사회의 교육이란 위대한 시민(citizen)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시민은 태생의 청탁수박(淸濁秀薄)은 다를지라도 그 본성의 존엄함에 있어서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현실태(現實態)의 우열은 있을지라도 평등주의적 인간관의 원칙(egalitarian ideal)에 의해서 교육돼야 할 권리를 소유한다. 젊음이란 가능태(可能態)일 뿐이다. 한 시점에서의 한 기준이란 위인의 준칙이 될 수 없다(김용옥, 2007). 공정성 위해 내신 반영비율 높여야 국가 또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공정한 권력배분의 잣대를 잘 만들어 실시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잣대의 객관성을 그 어느 것보다 중시했다. 이제는 객관성만을 담보한 잣대로 권력을 배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전에는 명문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이제는 부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사회과학연구원, 2004:3 ; 김동춘, 1999:4). 학교가 더 이상 권력배분의 장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돈도 권력도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공교육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입전형에서 단순히 현재의 성적만이 아니라 그가 처한 교육 환경까지도 고려하는, 즉 공정성이 중시되는 잣대를 개발해야 할 시점이다.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필요조건(충분조건은 아니지만)은 내신의 실질 반영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수능은 대학지원 자격요건 정도로만 활용하고 대입전형에서 고교내신을 주로 활용하겠다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시의적절하다. 새 정책의 취지는 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각 학교는 주어진 권한 내에서 교육과정을 소신 있게 편성하여 운영하고, 그 결과는 다른 학교와 비교할 필요 없이 해당 교사들이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에도 고교내신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영의 명목상 비율은 꽤 높으나 실질 비율은 매우 낮은 상황이었다. 내신 반영비율의 이런 이중 구조는 대학의 기존 서열 구조를 지키려는 명문 대학들의 암묵적 담합을 바탕으로 조성되고 유지되었다. 이른바 일류 대학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신입생의 전국단위 시험 성적이었다. 과거의 대학입학학력고사와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그 대학의 일류, 이류를 결정하였다. 내신 성적이 수능 성적보다 예언 타당도가 높다는 게 상식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신이 높은 학생을 뽑는 데 소홀하다. 대학의 일률적인 서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도 새 대입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 제도가 정부의 방안대로 순순히 실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교 평준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학교 간 학력 격차는 심화되었는데(강상진, 2005:176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5), 정부는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명문 대학에 수십 명의 입학생을 배출하는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학생과 명문 대학 지원서조차 써본 적이 없는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학생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대입전형의 공정성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발상이기는 하나 국민들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 효과성 측정으로 내신 등급 보정 고교등급제와 같이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평균 성적을 그 학교의 성취 수준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편 각 학교의 평균 성취도에 관계없이 모든 학교의 1등급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양 극단을 취한 두 가지 관점을 지양하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을 감안하여 학교의 효과성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함으로써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의 동의를 구하면서,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필자는 위계선형모형(HLM, Hierarchical Linear Model)으로 학교 효과성(School Effectiveness)을 측정하고(김경성, 1998), 이를 바탕으로 단위 학교의 내신 등급을 보정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그 연구(남현우, 2006a)는 미국에서 수집된 자료를 이용한 것이었다. 또 미국과 우리는 교육환경이 같지 않고, 학교 효과성을 결정하는 변수도 같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한 연구(남현우, 2006b)를 수행했다. 전국의 학생들을 하나의 잣대로 재어서 줄 세우는 현행 제도는 물론, 각 학교의 수준을 무시하고 모든 학교의 1등을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을 지양해서, 각 학생과 학교가 처한 여건을 감안하여 학교 효과성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내신을 단위 학교 내에서 과목별 9등급으로 산출한다는 게 교육부의 기본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교육부의 기본 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입시 관계자들이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엄존하는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고교평준화를 기본 정책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 실적과 관련해서 명문고와 비명문고를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교육부의 생각과 여러 입시 관계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되, 여건(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학교 위치, 개인 과외의 기회 등)이 비슷한 다른 학교들에 비해 높은 효과성을 보인 학교(School Effectiveness)의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등급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 반대로 여건이 비슷한 다른 학교에 비해 낮은 효과성을 보인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등급을 낮춰주는 것이다. 학교 간 학력 차이를 무시하고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한다면, 각자가 처한 여건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가지고 전국의 학생들을 하나의 잣대로 재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방안도 그에 못지않게 문제가 있다. 양 극단을 지양하여 입시 관계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필자는 학교 효과성을 반영하는 내신 등급 조정 방안을 제안하였고, 이의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공정성 확보위한 타당성 검증 계속돼야 고교평준화가 명실상부하게 이루어져 있고 고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자는 교육부 안에 대부분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 간 학력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모종의 경과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을 필자는 위계선형모형(HLM)을 이용한 학교 효과성 측정과 이를 이용한 내신 등급의 보정이라고 보았다. 학교 효과성을 결정하는 최적의 함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하여 대입 전형에 반영한다면, 대학 입시 때문에 고교교육이 파행으로 치닫는 현상은 없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학부형과 학생들이 고등학교 선택을 자유롭게 해도 괜찮은 상황이 될 것이다. 새 대입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고교평준화가 실현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교육 여건의 평등과 교육 효과의 차등을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HLM 방식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노력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빈약한 필자의 안목으로 볼 때, 대입전형 방법의 타당성 문제는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가치론적 추론의 대상이며, 경험적 검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LM 방식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교육평가의 기본 철학은 사회 정의의 실현에 있어야 한다(황정규, 2000). 학업 성적이라는 결과는 그 밑에 ‘능력’과 ‘노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이라는 개념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것은 오랫동안 가족 구성원이 보내준 지원이나 사회적 기회의 불공정이 누적되어 나타난 집약체로서 형성되어 있다. 교육평가가 공정성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려면, 평가하려는 객체가 무엇이며, 그것을 결정하리라고 짐작되는 선행 변수 또는 선행 제약 조건이 공정하게 평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고 있는지 되짚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데 잘 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도 잘 할 때 칭찬이 필요하다. ‘잘 뽑는 것’ 아닌 ‘잘 기르는 것’ 필요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대학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국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는 이러한 국가의 간섭이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국가적인 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우수한 신입생을 뽑기 위해 대학들이 노력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국가가 정한 대입제도의 틀을 무시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안겨주는 일부 대학들의 처사는 비난 받아야 한다. 대학 신입생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들이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각 대학의 희비는 갈리겠지만 대한민국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우수 인재들이 기초 학문 분야보다 장래의 안락한 직업이 보장되는 학과에 몰리는 현상이다. 일류 대학의 입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 양 포장되는 사례가 많다. 대학입시제도의 자율화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수 요건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대학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우수한 인재를 잘 ‘뽑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입생이 들어오더라도 이들을 잘 ‘길러내는’ 것이다. 공교육은 사회적 약자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국가는 공교육을 굳건히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도 이러한 인식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고 공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2008학년도 입시제도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면서 자기 대학의 이익을 챙기려는 소위 일류 대학들의 행태가 있었다. 이를 제지해야 할 교육부장관은 애매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공교육 기관의 맏형인 대학, 그 중에서도 최고를 자칭하는 일류 대학이 할 짓이 아니다. 이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공언하는 부총리의 행동도 잘못됐다. 세계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서방 선진국의 유명 대학 대신에 우리나라의 대학에 유학 오도록 하는 대입제도를 만드는 데 국가의 대입 정책이 걸림돌이 된다면 수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3 학생들을 나누어 갖는 방안을 짜면서 국가의 기본 틀을 무시하는 대학의 처사를 용납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가가 정한 대입 제도를 따랐을 때 특정 대학의 입시 경쟁력은 약화될 수 있어도 그것이 공교육의 기본 취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켜야 한다.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자율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입 제도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을 감안할 때, 초등 및 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받아야 한다. 대학이 자율권을 구가해야 할 영역은 신입생 선발이 아니라 이들의 교수·학습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대학의 오판 서울에 소재하는 이른바 일류 대학의 입학 처장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노력하는 것 같다. 이들은 수능 성적을 9개 등급으로만 보고하고 학생부의 비중을 확대하여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이루려는 정부의 의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매번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새 대입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일류 대학들은 정부의 방안에 아랑곳 않고 제 갈 길을 가곤 했다. 주요 대학들이 반발할 것이 뻔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또 그런 대학들에 적절한 행정 지도도 못하는 교육부 관리와 국가 전체의 교육은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대학에 성적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도록 생떼를 쓰는 대학의 입학 처장들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조롱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일류 대학들은 수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가? 학생부(내신)보다 수능의 변별력이 높아서인가? 수능을 표준점수로 보고할 때에도 수능의 변별력이 낮다며 논술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류 대학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능이 9개의 등급으로만 보고되는데도 오히려 변별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진짜 이유는 일류대의 ‘기득권 지키기’이다. 이른바 ‘일류’를 계속 지키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방법들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에 대입 제도에서 기득권 지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교수의 연구 업적이 일류이며, 그것을 계속 지킬 수 있는가? 학부 학생 또는 대학원생의 학업 성취도가 일류이며, 계속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시설이나 재정 상태 등을 포함한 교육 여건이 일류이며, 이를 계속 지킬 수 있는가? 등을 통한 일류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류 대학은 전국의 학생들을 오직 하나의 잣대로 재서 얻은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 중에서 상위에 있는 학생들만 쏙쏙 뽑을 수 있는 기득권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서울대에는 수능 성적 상위인 자들이 가장 많다. 그 다음에 연세대나 고려대 등에 많다. 게다가 이러한 관행은 잘 바뀌지 않는다. 국가가 제안하곤 하는 새 제도가 정착되는 것만 적당히 방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9개 등급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이제는 거꾸로 등급에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몽니를 놓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대학인들까지 제 몫을 챙기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현실태(現實態)의 우열에 주목하지 않고 젊은이의 가능태(可能態)를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일류 대학을 이 사회는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