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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잠시 멈추고 햇볓이 따가운 오전 9시 30분경, 순천남산초등학교(교장 지연호)에 나라사랑 교육을 위하여 방문하였다. 현관 입구에서 교장실을 물으니 체육수업을 마친 한 학생이 교장실까기 친절하게 안내하여 주었다. 순천남산초는 즐겁게 참여하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학교생활을 통하여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배려, 창의, 인성을 갖춘 미래 인재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기초,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실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자신의 재능을 탐구하는 진로 교육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인성 교육을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라사랑은 전쟁이 아닌 현실에서, 또 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의 꿈 찾기에서 시작된다."내 자신이 꿈을 찾는 것이다. 이꿈을 찾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독서를 열심히 하여 탐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까이 계신 선생님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나라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나라사랑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열심히 듣고 답변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순천남산초등학교의 교육 활동을 충분이 읽어낼 수 있었다.
부모와의 갈등 이유 분석 말 습관의 중요성 깨달아 공감 언어로 마음 읽으면 숨은 능력 발현할 수 있어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말이 불러오는 결과를 가벼이 여긴다. 민병직 경기 삼가초 교장은 학교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부모의 말로 인해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른들은 ‘애들이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에 가족 관계는 물론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민 교장은 최근 말의 중요성, 특히 부모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내 아이가 듣고 싶은 엄마의 말’을 펴냈다. 교직 경험을 토대로 아이의 능력과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말의 비밀’에 대해 풀어냈다. 그는 담임을 맡았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다행히 별 일 없이 집에 돌아왔지만, 가족이 입은 상처는 무척 컸다. 민 교장은 아이와 엄마를 상담하면서 가출의 원인이 엄마의 말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는 엄마가 툭 하면 ‘그것 밖에 못하겠니?’ ‘넌 어쩌면 그 모양이냐’ ‘다 널 위해 그러는 거야’라고 말했고,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집을 나왔다고 했다. 민 교장은 “부모의 이런 말은 아이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말”이라며 “엄마의 말이 지시나 명령, 훈계, 비교, 비난 일색이라면 결국 아이는 그 말에 갇혀버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고 강조한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말하기, 믿어주고 지켜보기, 마음 읽어주기, 재촉하지 않기, 인정해주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마음을 읽어주는 ‘공감 언어’는 닫힌 마음을 열게 한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하는 공감 언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응, 그렇구나!’ ‘괜찮아’ ‘그런 생각이었구나’라는 말로 마음을 읽어주면 된다. 민 교장은 “아이의 마음이 닫혔다며 하소연하는 학부모에게 다섯 가지 원칙을 실천해보라고 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믿어주고 지켜보기도 중요하다. 그는 평소 성실했던 아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을 보고 책망하기 보다는 “와, 머리 물들이니까 참 멋있다!”고 말했다. 사흘 후, 아들은 다시 까맣게 물들인 모습으로 나타나 “축구 선수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무도 칭찬하거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다시 염색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것이 바로 민 교장이 말하는 믿어주고 지켜보기의 교육 효과다. 그는 “유행을 무조건 좇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은 후 결과가 나쁘면 스스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판단력을 발휘했다”며 “자신을 관리하는 능력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부모와의 갈등이 해소되는 ‘일석다조(一石多鳥)’의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말의 법칙은 당연히 교사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모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만큼 부정적인 말 보다 ‘나-메시지’와 공감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메시지’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만을 담아 전달하는 말이다. ‘친구들과 싸우면 선생님은 화가 난다’, ‘수업에 집중해줘서 선생님이 수업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민 교장은 “나-메시지를 사용할 땐 아이의 행동만 언급하고 어떤 비판이나 평가, 명령, 비난은 배제한 채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며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늘 무한능력을 소유한 아이, 가능성 있는 아이로 바라봐야 아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아이는 긍정을 먹고 자란다”며 “재촉하지 않고 너그럽게 지켜보고 아이를 믿어주는, 긍정의 말 습관이 아이를 성공시키는 동력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셰익스피어 명작 뮤지컬 버전 교사들 직접 연출‧작곡 도맡아 학생 20명 참여…매일 한솥밥 “청소년에 고전의 감동 전할 것”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당신은 교수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어떤 감정일까요. 말투는 어떻게 나올까요. 배우가 정서에 맞는 언어와 몸짓을 보여주면 관객은 저절로 빨려 들어와요.” 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연습실. 김정만(서울 창덕여중 교사) 연출의 연기 지도에 배우들의 호흡과 발성, 걸음걸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시선과 발음, 몸짓 하나하나까지 세밀한 연출에 모두가 본 공연처럼 진지하다. 한국교사연극협회 산하극단 ‘교극’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사제동행 뮤지컬 프로젝트 ‘한여름 밤의 꿈’을 기획했다. 46번째 정기공연이다. 20여명의 학생, 40여명의 교사들이 함께 준비한 이번 작품은 번역, 각색은 물론 연출과 작곡까지 모두 교사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곡을 맡은 조용천(서울 삼육중 교사) 회장은 “셰익스피어 특유의 아름다운 대사에 곡조를 더해 ‘보는 연극’보다 ‘들려주는 연극’, 관객들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소리’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연출과 각색을 맡은 김정만 교사는 “원작을 충실하게 전달하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낼 수 있도록 발성과 화술, 제스처에 집중하고 있다”며 “낭만적인 주제와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학교폭력, 왕따 등 주로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춘 공연을 선보였던 교극은 올해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돌렸다. 김 교사는 “2015개정교육과정도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고, 평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언어에 노출됐던 학생들이 언어와 운율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전’에 주목했다”고 교육적 의도를 전했다. 교극은 학기 초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참가 학생을 모집했다. 또 연기 뿐 아니라 음향과 조명 등 공연 전반에 참여하도록 해 진정한 사제동행 뮤지컬의 의미를 살렸다. 5월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 주말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서너 시간 씩 함께해서인지 이제는 사제라기보다 가족 같은 느낌이다. 교극에서 4년째 활동 중인 김경희 경기 매현초 교사는 “처음에는 학생과 교사라는 벽이 있었는데 매일 같이 생활하다보니 허물없이 지내게 됐다”며 “학생보다는 함께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정다연(경기 풍천초 6학년) 양도 “학교에서 교장‧교감선생님이나 다른 학년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도 없고 무섭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는데, 편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공연이 열흘 앞으로 다가와서인지 막바지 연습이 힘들 법 한데도 학생‧교사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김경희 교사는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땀흘리고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김승혁 경기 용인효자초 교사도 “연습실에 들어서는 순간 힐링이 된다”며 “용인에서 대학로까지 2시간 넘는 거리가 힘들게 느껴져도 매일 오게 되는 이유”라고 전했다.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정우(BIS캐나다 국제학교‧고1) 양은 “이 곳에 오면 힐링 되는 기분이 들어 3년째 참여하고 있다”며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학교생활도 더 활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자기 극복의 경험이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등 사제동행 뮤지컬이 학생‧교사 모두에게 일종의 치유 효과를 내고 있다”며 “연극을 활용한 교육 기회가 학교현장에서 더 확대되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사연극협회는 연극의 교육적 효능을 학생 인성교육에 접목하려는 교사들이 의기투합해 1985년 창단됐다. 32년간 공연은 물론 연극교육 연구 및 학술활동, 연극부 지도교사 및 학생을 위한 연극교실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오랜 활동 덕에 협회의 취지를 이해하고 돕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김 교사는 “연습 장소, 공연장, 무대제작, 의상 등 제작비용이 커 참여비만으로는 공연이 힘들다”며 “활동을 지켜봐온 주변 독지가들이 무대제작, 분장, 의상 등 금전이나 재능기부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와 스텝 모두 혼연일체가 돼 멋진 무대를 선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대극장에서 14일부터 17일까지 오후 4시, 7시 두 차례씩 마련되며 300명 이상 단체 예약 시 특별공연도 가능하다. 예매는 인터파크(www.interpark)와 한국교사연극협회 홈페이지(www.ktta.org)에서 하면 된다.
21세기는 '감성교육' 시대 여름방학은 지난 학기를 반추하며 자신의 열매를 키우는 탐색의 계절입니다. 이때 그 탐색을 돕고 도약하게 하는 지렛대가 책입니다. 여름방학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기다리던 책을 만나는 기쁨도 선물합니다. 그 기쁨은 다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먹여서 생각을 키우는 맛있는 열매가 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게 됩니다. 학교는 그 생각을 하도록 돕고 생각을 이끌어내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생각을 많이 하며 그 생각을 다듬고 표현하게 돕는 일이 교육입니다. 20세기에는 인성교육이 중요했다면, 21세기에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감성교육이 중요해졌습니다. 감성교육은 자신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최고의 프로젝트 수업은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소중함도 알게 됩니다. 자존감의 첫 단추를 잘 끼운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이 할 일은 ‘생각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제자도 놓치지 않는 여름방학, 나도 우리 아이들도 순간순간 바른 생각과 실천을 하도록 여름방학을 헛되지 않게 보내는 일이 바로 책과 함께 여름나기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 자체를 배운다 오늘을 가장 지혜롭게 쓰는 방법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독서가 즐거운 일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책무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자녀와 제자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사람입니다. 잠들어 있는 자녀와 제자의 영혼을 일깨워 세수를 시키고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무한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여름방학에는 바로 그 에너지를 책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보살폈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부러움도 있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포함된 표현입니다. 선생님은 재충전이 필요한 직업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도 여름방학은 2학기를 살아낼 책을 읽고 각종 연수와 배움을 향한 더듬이를 곧추세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필자 역시 방학이 더 바쁩니다. 방학으로 미루어둔 직무연수도 받고 강의도 해야 합니다. 그동안 못했던 건강검진을 받거나 살피지 못한 가족을 챙기는 등 나와 가족을 돌아보려고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다음 학기를 살아낼 영혼과 정신의 양식을 찾아 서점과 도서관으로 출퇴근합니다. 여름방학에 1년 동안 읽어야 할 책의 30퍼센트는 마쳐야 최저 수준의 숙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먹고사는 직업인이니 책이 생명수입니다. 아이들은 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배웁니다. 내 인격과 품성, 독서습관까지 고스란히 배웁니다. 내 제자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순전히 내 책임입니다. 그 아이를 감동시키지 못한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최고의 책입니다. 선생님의 언어사용 능력과 교수 용어는 그가 마신 책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 교육철학을 좌우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바뀌고 교육이 바뀝니다. 그 생각의 창고가 바로 책입니다. 내 생애 최고의 친구, 책 인간의 행복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혼자입니다. 가족이 있어도,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순간에도, 군중 속에서도,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혼자인 것 같은 고독을 느낍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영혼의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소중한 단 한 사람의 의미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의미가 사라질 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상실했을 때도 살아남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문학의 힘, 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에게 책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엄마 찾아 삼만 리』가 그랬습니다. 일찍 어머니와 헤어져 마음의 문을 닫은 어린 소녀에게 다가온 최고의 의사이자 친구였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던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상에는 나처럼 마음 아픈 아이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 다니며 마음 졸이고 같이 슬퍼하던 날, 나는 내 아픔을 온전히 위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책 속의 마르코처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졸업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책을 읽음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다”라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천둥처럼 다가와 가난한 우리 집을 살릴 사람은 바로 ‘나’뿐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장발장』이 기구한 운명을 딛고 인간승리를 이루어 내는 모습은 나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책은 그 뒤로 이어진 주경야독의 긴 터널을 밝혀주는 불빛이 되어주었으니, 지금의 나는 책이라는 훌륭한 도반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해마다 천 권 읽기를 시도합니다. 아침독서 한 시간, 쉬는 시간 5분 읽기, 취침 전 책읽기, 읽은 책제목 수첩에 쓰기, 주말독서하기 등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합니다. 1학년이지만 책벌레가 된 아이들에게는 꾸지람도 잔소리도 필요 없을 만큼 인성도 기본 생활습관도 잘 자리 잡았습니다. 책 내용을 인용하거나 관련된 그림책을 읽어주면 금방 감동하고 변합니다. 성미가 급해서 아무 때나 폭발하는 한 아이를 위해 『퐁퐁이와 툴툴이』(시공주니어)를 몇 번 읽어주었더니 이제는 예쁘게 말하는 퐁퐁이가 되어서 우리 반 모두가 참 행복하답니다. 마음이 아픈 친구라면 이 책을 만나보기를 바랍니다. 공부가 잘 안 된다면 이번 여름방학에는 하루 한 권 읽기로 몰입독서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48분 기적의 독서법』(미다스북스)에서는 3년 동안 천 권을 읽어내면 임계점에 도달해서 그 다음부터는 독서나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는다고 말합니다. 필자도 몇 년 전부터 ‘만 권 읽기’ 프로젝트를 실행 중입니다. 책 속에 숨겨진 마시멜로를 찾는 행복한 이 여행의 시작은, 어느 책에서 중국의 시인 두보가 ‘만 권을 읽으니 글이 술술 나온다’는 대목을 읽은 그날부터 시작해서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홀로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 우리는 오늘 우리의 생각이 데려다 놓은 자리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우리의 생각이 데려다 놓을 자리에 존재할 것이다.” - 영국 작가 제임스 앨런 헨리 소로는 『월든 : 숲 속의 생활』에서 “나는 고독보다 더 사귀기 좋은 친구를 발견한 적이 없다. 사교는 너무 값이 비싸다”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이 책은 세상의 진보를 가져왔고 위대한 사상가들을 키워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책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침묵으로 가르쳐 줍니다. 인내심을 가진 자에게만, 자신이 위대한 존재임을 깨닫는 길을 보여줍니다. 『빌 게이츠는 왜 생각주간을 만들었을까』(토네이도)에서 빌 게이츠는 매년 의도적으로 두 차례, 2주일 남짓 생각주간을 설정하여 홀로 호숫가에 있는 통나무집에 가서 지냅니다. 그리고 일과 삶에서 탁월한 성공을 위해 혼자서 생각에 몰입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명쾌한 힘을 책에서 찾습니다. 시골의사로 알려진 청춘들의 멘토 박경철 원장도 『자기혁명』(리더스북)에서 “배우는 것이 벽돌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쌓는 것이다. 벽돌을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쌓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생각에 몰두하려면 링컨 대통령처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공간이 바로 책이 머무는 곳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임기 중 25퍼센트에 달하는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소박한 별장과 백악관 사이를 오가며 지냈습니다. 호화로운 백악관에서 자주 탈출한 이유는 ‘홀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매년 자신의 키만큼 책을 쌓아놓고 읽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함에 있다고 갈파한 파스칼이 훌륭한 명상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고독을 사랑한 덕분이고, 평생 자기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같은 시각에 산책을 즐긴 칸트의 철학서도 고독의 산물입니다.책을 읽어야 나도 살고 집안도 살고 이 나라도 삽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선생님과 부모님, 학생들 모두 생각주간을 정하여 몰입독서를 해보면 참 좋겠습니다. 가끔은 스마트폰도 꺼두고 컴퓨터와 텔레비전도 멀리하며 책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생각을 바꾸고 새롭게 변화된 마음으로 2학기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생각을 바꾸어 진정한 자기를 찾는 데 있습니다. 벌써부터 생각의 씨앗이 숨어 있는 책들이 도서관과 서점에서 속삭입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권고 기준’을 보면, 면·도서·벽지 지역 학생 수 60명 이하 학교, 읍 지역 120명 이하 초교, 180명 이하 중고교, 도시 지역 240명 이하 초교, 300명 이하 중고교는 통폐합을 권한다는 내용이다. 교육부의 적정규모 이하 학교 통폐안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곤란하고,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이 저해되는 등 교육 격차가 심화되며, 학생 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운영비는 많이 들어가고(60명 이하 학교 기준 1년에 3억∼4억 원) 교육적 효과는 떨어지는 소규모 학교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이 이러한 발표에 소규모 학교의 앞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60명 이하 학교는 2001년 700곳에서 올해 1813곳으로 늘었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이는 농산어촌의 갈수록 더 심한 것이다. 앞으로 이런 기준이라면 농산어촌 학교의 대부분은 폐교의 길을 면할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농산어촌 학교는 1면 1교의 원칙에 의해 유지ㅣ되어 가고 있지만 이마저 곧을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다. 학생교육뿐 아니라 대민 교육과 문화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기능이 사라진다면 지역의 발전은 물론 문화향상에도 적지 않는 폐해가 우려된다. 교육부의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방안’은 경제적인 요인이 깔려있다. 한마디로 효과성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정책이다. 사실 교육의 경제적 효과는 서서히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 교육은 항상 후순위다. 그래서 많은 교육자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 교육은 경제논리가 아닌 교육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강변한다. 단순한 경제논리의 교육정책은 경제적 효과보다 더 큰 교육적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치유하기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소규모 학교가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도시에서 농산어촌으로 유학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것은 살아나는 불씨에 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다. 소규모 학교는 소규모 학교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 사회성 발달의 기초는 가정교육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강화하면 보완이 될 수 있다. 학생 간의 경쟁심과 팀 학습을 위해서는 다른 학년과 협력으로도 가능하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 보다는 단점을 살려 장점으로 만들면 보다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통폐합으로 인한 폐교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캠핑장 등 귀농·귀촌이나 관광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자진 해산하는 영세 사립 초·중·고에 재산평가액의 일부를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적정 규모의 학교 육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기본적 취지는 공감하나 그 추진 과정과 초점은 많은 갈등의 소지가 소재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경제 논리에 의한 교육 정책의 일환이어서 안타깝다. 이와 유사한 정책과 방안이 여러 번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과 유사하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간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관련 지역 민원 발생과 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여건 악화 등을 고려하여, 학생 수를 척도로 한 ‘도서벽지 및 농산어촌 교육 활성화를 위해 일률적 기준에 의한 학교통폐합 지양 등의 논란에 비춰 이번 방안은 지역 사회 학교 활성화라는 사회 일반의 인식 및 요구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다. 그 동안 역대 정부는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통폐합으로 농산어촌의 교육의 질이 좋아지고 교육여건 및 교육격차가 해소되지는 못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 정부가 지역적인 특성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기준에 따라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농현상을 가속화하여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특히 농산어촌 지역 학교가 학생교육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동체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역 사회 교육·문화적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문제도 안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교육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의무 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에 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버스로 장거리를 통학할 경우 많은 애로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학생의 안전 보호에도 문제점이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기본법이 명시하고 있는 ‘지역 간 교육여건 격차를 최소화하는 시책 시행’이라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성에도 배치된다. 분명히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있어 반드시 해당 지역주민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 균형 발전과 귀어산농 권장 등 국가시책에 부응하는 탄력적인 소규모학교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 논리와 인구 수, 학생 수 등 다분히 정량적인 척도에 경사되어 지역 여건 고려하지 못할 경우, 농산어촌 교육 황폐화와 학생의 교육권 보장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물론 현재 논란거리인 3,686개교에 달하는 폐교 활용 확대 방안 모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적이면서도 귀농·귀촌 및 농어촌 체험센터와 문화, 관광 분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한 경제 논리에 입각한 또 다른 학교통폐합과 다름 아니다. 적정 규모가 도농산촌이 학생 수 단일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지역 사회와 농산어촌 소재 학교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의 학교 선택권, 학생들의 의무 교육 학습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주무 부처인 교육부를 위시하여 관계 부처와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과정적 절차 수행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 추진은 도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농산어촌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분명히 핸대의 학교는 교수학습만 이뤄지는 전통적 학교의 개념은 절대 아니다. 적정규모 학교 육성 방안, 또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돼선 안 돼 최근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통폐합으로 인한 폐교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캠핑장 등 귀농·귀촌이나 관광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자진 해산하는 영세 사립 초·중·고에 재산평가액의 일부를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적정 규모의 학교 육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기본적 취지는 공감하나 그 추진 과정과 초점은 많은 갈등의 소지가 소재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경제 논리에 의한 교육 정책의 일환이어서 안타깝다. 이와 유사한 정책과 방안이 여러 번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과 유사하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간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관련 지역 민원 발생과 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여건 악화 등을 고려하여, 학생 수를 척도로 한 ‘도서벽지 및 농산어촌 교육 활성화를 위해 일률적 기준에 의한 학교통폐합 지양 등의 논란에 비춰 이번 방안은 지역 사회 학교 활성화라는 사회 일반의 인식 및 요구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다. 그 동안 역대 정부는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통폐합으로 농산어촌의 교육의 질이 좋아지고 교육여건 및 교육격차가 해소되지는 못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 정부가 지역적인 특성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기준에 따라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농현상을 가속화하여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특히 농산어촌 지역 학교가 학생교육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동체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역 사회 교육·문화적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문제도 안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교육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의무 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에 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버스로 장거리를 통학할 경우 많은 애로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학생의 안전 보호에도 문제점이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기본법이 명시하고 있는 ‘지역 간 교육여건 격차를 최소화하는 시책 시행’이라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성에도 배치된다. 분명히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있어 반드시 해당 지역주민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 균형 발전과 귀어산농 권장 등 국가시책에 부응하는 탄력적인 소규모학교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 논리와 인구 수, 학생 수 등 다분히 정량적인 척도에 경사되어 지역 여건 고려하지 못할 경우, 농산어촌 교육 황폐화와 학생의 교육권 보장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물론 현재 논란거리인 3,686개교에 달하는 폐교 활용 확대 방안 모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적이면서도 귀농·귀촌 및 농어촌 체험센터와 문화, 관광 분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한 경제 논리에 입각한 또 다른 학교통폐합과 다름 아니다. 적정 규모가 도농산촌이 학생 수 단일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지역 사회와 농산어촌 소재 학교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의 학교 선택권, 학생들의 의무 교육 학습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주무 부처인 교육부를 위시하여 관계 부처와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과정적 절차 수행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 추진은 도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농산어촌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분명히 핸대의 학교는 교수학습만 이뤄지는 전통적 학교의 개념은 절대 아니다. 적정규모 학교 육성 방안, 또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돼선 안 돼 최근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통폐합으로 인한 폐교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캠핑장 등 귀농·귀촌이나 관광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자진 해산하는 영세 사립 초·중·고에 재산평가액의 일부를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적정 규모의 학교 육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기본적 취지는 공감하나 그 추진 과정과 초점은 많은 갈등의 소지가 소재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경제 논리에 의한 교육 정책의 일환이어서 안타깝다. 이와 유사한 정책과 방안이 여러 번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과 유사하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간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관련 지역 민원 발생과 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여건 악화 등을 고려하여, 학생 수를 척도로 한 ‘도서벽지 및 농산어촌 교육 활성화를 위해 일률적 기준에 의한 학교통폐합 지양 등의 논란에 비춰 이번 방안은 지역 사회 학교 활성화라는 사회 일반의 인식 및 요구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다. 그 동안 역대 정부는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통폐합으로 농산어촌의 교육의 질이 좋아지고 교육여건 및 교육격차가 해소되지는 못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 정부가 지역적인 특성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기준에 따라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농현상을 가속화하여 농산어촌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특히 농산어촌 지역 학교가 학생교육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동체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역 사회 교육·문화적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문제도 안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교육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의무 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에 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버스로 장거리를 통학할 경우 많은 애로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학생의 안전 보호에도 문제점이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교육기본법이 명시하고 있는 ‘지역 간 교육여건 격차를 최소화하는 시책 시행’이라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성에도 배치된다. 분명히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있어 반드시 해당 지역주민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 균형 발전과 귀어산농 권장 등 국가시책에 부응하는 탄력적인 소규모학교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 논리와 인구 수, 학생 수 등 다분히 정량적인 척도에 경사되어 지역 여건 고려하지 못할 경우, 농산어촌 교육 황폐화와 학생의 교육권 보장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물론 현재 논란거리인 3,686개교에 달하는 폐교 활용 확대 방안 모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적이면서도 귀농·귀촌 및 농어촌 체험센터와 문화, 관광 분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한 경제 논리에 입각한 또 다른 학교통폐합과 다름 아니다. 적정 규모가 도농산촌이 학생 수 단일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지역 사회와 농산어촌 소재 학교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의 학교 선택권, 학생들의 의무 교육 학습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은 주무 부처인 교육부를 위시하여 관계 부처와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과정적 절차 수행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활용 활성화 방안’ 추진은 도 다른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농산어촌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분명히 현대의 학교는 교수학습만 이뤄지는 전통적 학교의 개념은 절대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직급 체계 단순화, 수평적 호칭을 골자로 하는 인사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이 개편안의 주요 골자는 '직무·역할' 중심의 인사 체계 전환, 직급 단계를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단순화, 수평적 소통을 장려하는 상호존중의 호칭 등이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연공주의 중심의 기존 인사제도를 폐기하고, 업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직무·역할' 중심의 인사 체계를 도입한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함께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를 적용해 기존 부장, 과장, 사원 등 수직적 직급 개념은 직무 역량 발전 정도에 따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로 전환되며, 직급 단계는 기존 7단계(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에서 4단계(CL1~CL4)로 단순화된다. 임직원 간 공통 호칭은 '(이름)님'이 됐다. 단, 부서 내에서는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후배님', 영어 이름 등 상대방을 서로 존중하는 수평적인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으로 호칭한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회의문화·보고문화 개선, 불필요한 잔업·특근 근절, 계획형 휴가 정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회의를 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인원만 참석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회의의 결론을 도출해 이를 준수하는 회의 문화를 조성한다. 또한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 강화를 위해 직급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치는 대신 '동시 보고'를 활성화하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간결하게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보고문화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불필요한 잔업이나 특근을 근절하기 위해 상급자의 눈치를 보며 퇴근하지 않는 '눈치성' 잔업이나 불필요한 습관성 잔업을 없애나갈 계획이다. 또한 직원들이 연간 휴가계획을 사전에 자유롭게 수립해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는 휴가 문화를 조성한다. 한편,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올해 하절기부터 반바지 출근도 허용한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인사제도 혁신안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혁신적 개혁안이다. 혁신안의 실천에는 기존의 관행과 관료화 타파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당사는 물론 공무원 사회에도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만큼 변화와 혁신이 절박하다는 표현이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이나 형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중심의 조직문화이 필요한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 인사제도의 혁신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연공서열의 임금체제와 관료중심의 조직문화였다. 변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Sudden Death:갑작스러운 몰락)’라는 말이 이젠 새삼스럽지 않게 들리는 시대다.기존의 틀을 깨고 바꾸어야 살아나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학교조직도 마찬가지다. 관료적 조직문화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단위학교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창의적인 학교경영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교육부, 시도교육청 주도의 수직적 조직문화로 변화는커녕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체제에 얽매여 있었다. 이젠 교육도 모든 권한과 자율을 일선 학교에 믿고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더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조직문화는 이와는 달리 요즘도 학교는 간섭이 증가하고 자율마저 점점 옥죄는 느낌이다. 일선학교의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교육청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늘 혁신과 관행을 파괴 한다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반대의 상황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상부기관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느리게 변하고 가장 바꿔지지 않는 것이 교육조직이라고 말할 정도다. 상부조직부터 먼저 솔선해서 변화하고 바꿔야 한다. 시대와 환경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한 순간에 우리 코앞까지 왔지만 교육만은 그렇지 않아 걱정이다. 말로만 개혁과 혁신이라고 분주하게 새로운 정책을 펼치지만 정작 바꿔지는 것이 없다. 문제는 자신은 바뀌지 않고 일선 학교만 변화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상의하달로는 불가능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그래서 하의상달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상부기관부터 먼저 체질을 바꿔 실천할 때 가능한 것이다.
환경부 국립환경인력개발원(원장 김승희)과 한국환경교육협회(회장 이진종)는 수도권(서울, 경기도)초등교사를 대상으로 오는 7월 25일(월)부터 7월 29일(금)까지 총 5일간 실시되는 ‘수도권 초등교사 환경교육 지도자 과정 직무연수’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수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특수분야 연수기관’으로 지정(서울교육 2016-1211)된 직무연수(30시간)로 기후변화 대응과 저탄소 생활문화 실천을 위한 환경교육 전문성을 신장하고 환경프로젝트 수업 개념, 교수학습방법, 우수사례를 안내하고자 실시하며, 연수비는 무료이다. 연수과목은 “환경교육의 이론과 실제” 등 총 8개의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론교육을 비롯하여 활동참여교육, 현장방문교육 등 환경교육 관련 교수능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연수를 희망하는 교사는 2016년 7월 20일(수)까지 한국환경교육협회 홈페이지(http://www.greenvi.or.kr/) 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keea1030@naver.com)로 접수하면 되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한국환경교육협회(02-571-1195)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부산의 학교전담경찰관 2명이 여고생들과 성관계를 맺은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학교 폭력 예방 차원에서 파견된 학교전담경찰이 담당 학교 여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특히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할 학교전담경찰이 지위를 악용해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만 큰 문제는 경찰이 사건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크다. 경찰청은 지난 6월1일 ‘학교전담경찰과 여고생의 부적절한 성관계’ 첩보를 입수하고도 사실 여부를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은 체 사표수리를 한 것은 수사인 아닌 일반인이 봐도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미성년자인 고등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학교전담경찰관이 아니더라도 공무원의 품위위반이다. 뒤늦게 경찰청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식 조사로 넘기려 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학교전담경찰의 여학생 성폭행 사실을 서장이나 경찰청장이 몰랐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학교교정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어야 학생들의 꿈을 키울 수 있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학부모의 안심하고 학교보내기를 담보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학교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학생들 간의 폭력이 도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면서 급기야는 경찰이 학교안전을 관리하는 상황이 이르러 학교전담경찰이 상주하게 된 것이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도입한 학교전담경찰관 제도가 2012년 상반기에 전국에서 도입됐다. 학교전담 경찰관 임무는 학생 선도와 피해 학생 보호, 폭력동아리 파악과 해체, 학생 소통, 예방교육 등이다. 그간 이 제도가 도입하고서 학교폭력이 크게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학교가 과거보다 안전한 곳이라는 긍정적 인식도 되었다. 학부모나 학교관계자들은 매일 이들이 학교주위를 순찰하는 모습에서 든든한 마음이 들고 고마워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성과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도 되고, 또한 다수의 학교전담경찰관들 마음의 상처도 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경찰은 우리 사회의 질서나 치안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악’을 척결에 밤낮이 없다. 그만큼 힘든 직업 공무원임에도 학교전담경찰관은 평균 10여개 학교를 담당해야 하는 것은 고유의 업무를 넘어 무리였다. 이제 이 제도의 장단점이 모두 드러났다. 보다 냉정히 평가하고 최대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야 한다. 학교전담경찰관제가 명실공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 청소년을 교육하고 상담할 수 있는 교사 자격을 가진 경찰관을 우선 선발하고, 매년 30시간 이상의 청소년 교육과 상담연수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퇴직을 하고 나서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재미있느냐고?" 그렇다. 삶이 재미있다. 여유가 있어서 좋다. 교장이라는 직책은 평상시에는 별로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만 보면 교장이 학교에 없어도 된다는 발상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교장의 존재가치가 약화된 것 같다. 교장의 가치가 약화되고 선생님의 가치가 존중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의 가치가 같이 약화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얼마전 시골에 사는 쌍둥이 엄마가 하소연을 해왔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쌍둥이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둘의 평균점수를 합쳐도 60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꼴찌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이었다. 원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앉아서 보지 말고 누워서 봐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느슨하게 교육시킨 어머니들이 지켜야 할 수칙이다. 점수에 신경을 안쓰고 지내다가 갑자기 중학교의 성적표를 받아 보면 놀라 뒤로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공부가 무엇인가?'물어야 한다. 지나치게 학교 성적 점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예전과는 달리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성적의 사다리 보다는 성취를 지켜봐야 한다.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공부는 못해도 꿈이 야무져야 한다. 그런데 쌍둥이 중 큰애는 프로게이머, 작은애는 KTX 기관사라고 한다. 학교 시험 성적은 현재 얼마나 선생님이 가르친 것을 많이 기억하여 그대로 베껴내는 능력이다. 이것에만 만족하여서는 안된다. 앞으로 성적은 베끼기가 아닌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도전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핵심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통이 가능하는가이다.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조금 성적이 떨어졌다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성이다. 공부 못해도 인성이 참 좋은 아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인사도 잘 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요청을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응대를 하는 인간 관리 능력이다. 인성이 좋아야 협업이 가능하고 공감이 가능하다. 이 시점이 바로 시작점이다. 공부는 꼴찌여도 친구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는 있는가이다. 운동을 잘하든 악기를 잘하든 노래를 잘하든, 자신을 발견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공부 잘하던 극소수 아이들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정해지는 자리에 가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예측 불허다. 세상을 좀더 넓게 보면 오히려 공부에 주눅 들었지만 저마다의 숨은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성공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 더욱 다양해진 직업군 중에서 성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더구나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희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꼴찌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을 테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완화하라는 권고를 내놓은 것에 대해 학교 현장의 속내는 불편하다. 수업시간 외에 필요한 때만 사용하게 하면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학교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게 교원들의 목소리다. 많은 학생들이 온종일 카톡, 문자에 열중하고 게임에 빠져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 여파가 학교라고 비껴가지 않아 교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고 휴대전화를 수거·보관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겪는 고충과 부담은 만만찮다. 분실이나 도난사고라도 나면 배상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 일명 ‘대포폰’을 내고 다른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돼 교사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폭언까지 하는 교권 침해 학생도 비일비재하다. 일선 학교는 그야말로 ‘휴대전화와의 전쟁’ 중이다. 한국교총이 2013년 교원 314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휴대전화로 수업방해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중학 교원 63%, 고교 교원 68%에 달할 정도다. 이런 문제는 외국도 마찬가지여서 영국 학교의 3분의 1이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 문부성은 7년 전에 초중학생이 휴대전화를 갖고 등교하지 못하도록 전국 교육위원회에 지침을 내려보냈다는 게 교총의 설명이다. 학교는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이다. 그 특수성 때문에 사회 통념을 일반화해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학생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라는 뜻으로 해석 돼서는 곤란하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듯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에 맞게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인권위는 과거에도 초등 일기장 검사 금지, 초등생 집회·시위 보장 등 인권에 치우친 권고를 내려 비판을 초래한 바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는 학교 현실과 교육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 균형적 시각을 갖기를 촉구한다.
경기도교육감이 9시 등교에 이어 취임 2주년에 맞이하여 내년부터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감은 “입시위주, 성적위주, 성과위주의 경쟁적 교육이 ‘야자’라는 이름의 비인간적, 비교육적 제도를 만들었다”며 “더 이상 학생들을 ‘야자’라는 비교육적 틀 속에 가두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 대신 대학과 연계한 ‘예비대학 교육과정’을 도입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찬반의 논란 뜨겁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대체로 환영을 하고 있지만 중상위권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반발이 거세다. 그들은 야간자율학습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없이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정책이 아니냐고 비판하고 나섰고, 또한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하향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사실 경기도는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고 고교 2학년 학생의 기초학력 미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비율도 높은 지역이다. 지난 2월 교육부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경기도는 2013년 대비 2015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4.6%·1만2000원)이 전국 1위였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2.1%·5000원)을 크게 초과한다. 뿐만 아니라 야간자율학습 폐지에 대해 학생에 대한 학교의 책무감을 저버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는 매년 실시하는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지난해 경기 고2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은 5.4%로 서울(7.1%)에 이어 2위였다.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은 이 교육감 취임 이후 더 높아졌다. 국어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은 2013년 3.8%에서 2014년 1.5%로 낮아졌지만 지난해 2.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수학은 6.6%, 7.2%, 7.4%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대안 없이, 학생, 교원, 학부모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하나 없이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9시 등교와 같이 취임 2주년의 이밴트식 교육정책이라는 비난은 면할 수 없다. 그리고 야간자율학습 대신 ‘예비대학 교육과정’은 아직은 우리 교육현실에 맞지 않고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예비대학과정은 외국처럼 고교와 대학이 연계하는 교육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당장 어느 대학은 입학하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기도만 시행한다는 점에서 실현성이 낮다. 현행 야간자율학습권은 단위학교의 학교장에게 있다. 야간자율학습의 폐지는 교육감이 일률적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학교가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 교육감이 학교운영의 세부까지 하나하나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창의적인 학교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경영은 지역,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원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학교가 처해 있는 여건이나 환경은 이들이 자세히 알고 있다. 바로 학교환경에 알맞은 교육정책이 가장 좋은 정책인 것이고 높은 교육성과를 걷을 수 있는 전략도 이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이번 야간자율학습 폐지에 대해 사설 학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반면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에 걱정과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9시 등교 이후 또 다른 교육실험에 학교는 다시 혼란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라는 말은 항상 나를 살짝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어쩌다가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정식으로 문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치약이나 약 상자에 씌어 있는 사용법에서부터 광고 문구에 이르기까지 글자로 씌어 있는 모든 것을 허겁지겁 읽었으며, 특히 소설책이나 시집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일기 비슷한 것을 썼다. 내가 문학교육이라는 걸 받았다고 우기자면 아마도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무엇이든 읽기’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기’. 무엇이든 읽기 무슨 책이든 다 재미있다고 말했던가?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책이든 포장지든 가게 앞에 붙어 있는 간판이든, 글자로 씌여 있는 모든 것이 재밌었다. 처음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책은 아마도 교과서일 것이다. 수업시간 내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들여다봐야 하고, 선생님이 읽으라는 부분을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외워야 하고, 외운 것을 시험까지 봐야 하니까.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독서는 자발적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물론 기계적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재미나 그밖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흡수하기는 힘들다. 문학적 독서는 더더욱 그렇다. 학문을 연구하고 익히기 위한 독서는 아마도 체계적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서 읽는 게 더 효과적이고 유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시를 읽는 방식은 순간적인 흥미나 직관, 혹은 우연을 따라가야 한다. 그게 더 좋은 방식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설이나 시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가? 오래전 카피캣(1995, 존 아미엘 감독)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장면 대부분을 잊었지만, 오직 한 장면은 또렷이 기억한다. 주인공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단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해 괴로워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범죄심리학자이며 자신이 분석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중이고, 실제로 피습을 당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일종의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범인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데, 마침 열려 있던 현관문 밖으로 서류가 날아가 버린다. 그녀는 서류를 쫓아가다가 문 앞에서 멈춰 선다. 한 발자국만 나가면 그 서류를 주울 수 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두려움 때문에 문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문턱을 잡고 몸을 구부려 손을 최대한으로 뻗어 보지만 복도에 떨어져 있는 서류에 닿을락 말락 할 뿐이다. 마침내 서류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그녀는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본다. 앞뒤 상황을 훤히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면,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단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는 그녀를 의지 박약한 무능력자, 패배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으려고 할 때 마주하는 어려움은 보통 사람이 4~5m쯤 되는 벽을 기어 올라가서 뛰어내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막막함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의지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광장공포증 같은 비합리적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현관문 밖으로 나가려면, 보통 사람이 현관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 필요한 의지보다 수십, 수백 배 정도 강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문학이나 예술이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의미를 이해했다. 말은 어렵지만 의미는 단순하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 보도록 하는 것. 내가 경험한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을 근거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현실에서는 ‘나의 입장과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친밀해진 관계, 그래서 너와 내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인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쉽게 타인의 입장이 되지 못한다. 타인이 ‘되어보려 하기’보다는 재빨리 어떤 범주 속으로 집어넣어 타인을 ‘파악하려 하기’ 마련이다. 문학이나 예술은 나에게 타인이 되어 보는 경험, 낯선 존재가 되어 보는 경험을 허락한다. 소설이나 시가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음악이나 미술, 영화 같은 형식은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적 도구를 사용해서 더 직접적이고, 문학은 언어라는 지적인 도구를 사용하므로 더 간접적일 수 있다. 그 대신 언어는 매우 일상적인 것이라서 접근하기 쉬운 도구이기도 하다. [PART VIEW]생각나는 대로 쓰기 요즘처럼 볕과 바람이 좋은 때는 늘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낸다. 내 방 창문 바로 옆에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자주 나무 그늘 아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화제는 다양하고 날마다 만나도 할 말은 늘 많다. 서로 남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자기 이야기 하기 바쁘다. 특별히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주로 이웃의 흉을 보거나, 그마저도 바닥나면 어제 저녁에는 뭘 먹었고, 오늘은 뭘 먹을 예정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몇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사람은 늘 하고 싶은 말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인가를 쓰려고 하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말랑말랑하고 동그랗기도 하고 길쭉하기도 하고 끈적끈적하기도 한 이야기들이 단단하고 네모진 형태로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튀어나오는 것은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그럴듯하지만 밋밋한 글이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정해진 대로 쓰게 된다. 불타는 사랑에 바쳐지는 것은 언제나 붉은 장미이고, 세상을 등진 순수한 영혼은 늘 하얀 나비로 날아간다. 언어 자체가 보편성을 표상하는 도구이기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문학은 보편적인 도구로 개별적이고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숙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어쨌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이야기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는 별로 문학적이지 않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생각, 나만의 감정, 나만의 감각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아마도 문학에 가까운 작업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타인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 내가 경험한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문학의 목적이라면, ‘나에게서 비롯된 나만의 이야기’ 외에는 굳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과격한 결론도 가능하다. 나에게서 비롯된 이야기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기준에서 가장 재밌는 글은 몰래 훔쳐보는 남의 일기이다. 요즘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네트워크에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쓰면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비난의 말을 듣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독창적인 글쓰기는 내밀한 사유와 감정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려면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필요하다. 모순된 이야기 같지만,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가 억압당할 때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이 문학이 되어 버리면, 문학은 이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교실 안에 괴물이 있다. 학생의 모습으로 아이들 속에 앉아 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눈치를 본다. 아이가 언제 괴물의 본색을 드러내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 같지만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떤 아이는 분명 괴물처럼 보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뭇사람을 괴롭히고 상처 입히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의 처음 또한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누구보다 소중한 한 가정의 아이였을 것이다. 해맑은 미소로 엄마와 아빠를 행복하게 했던 평범하고 귀여운 아이였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그 귀엽던 아이가 왜 지금과 같은 괴물로 변할 걸까. 아무도 모르게, 아이가 괴물이 되기까지 승민(가명)이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교육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모든 걸 해내길 원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승민이에게 숙제를 내주었고, 퇴근 후에는 검사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술에 취해 새벽에 귀한 날에도 어김이 없었다. 승민이는 숙제 검사를 통과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준에 맞게 숙제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는 승민이의 숙제는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어졌다. 승민이는 노력했다. 아버지의 기준에 맞춰 잘 해보려고.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나 아이의 노력은 번번이 허사였다. 그럴싸한 거짓말도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아이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턱뼈가 부러졌다. 폭력 앞에서 아이는 몸을 웅크리는 거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의 몸은 자랐고, 6학년이 된 승민이의 덩치는 아주 커졌다. 승민이의 가출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승민이에게는 더 심한 폭력이 가해졌고, 그 폭력을 피하기 위한 승민이의 가출 또한 더욱 잦아졌다. 그렇게 거리로 나온 승민이는 더 이상 앳된 모습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분노로 가득 찬 학교폭력의 주범, 악의 축이 되어 있었다. 집과 학교 대신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다니던 학교에서는 강제전학이 되는 등 언론에서 보도하는 괴물 같은 청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현태(가명)가 어릴 적, 엄마는 집을 나갔다. 술에 절어 허구한 날 주먹을 휘두르는 아빠를 견디다 못해 나갔다. 그렇게 집에는 아빠와 누나, 어린 현태가 남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래서 현태도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을 했고, 자연스레 비행청소년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소년원에 가게 됐다. 남의 집 옥상에서 자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빨랫줄에 걸려 있는 옷을 태워 불을 쬐었고, 현태는 방화범이 되었다. 어린 현태는 그게 그리도 큰 죄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이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재판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현태의 재판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현태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서 재판정에서조차 평소대로 막말을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법원은 현태의 행동을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방화로 판단했고, 현태는 결국 치료감호 소년원에 최연소 위탁생으로 보내졌다. 소년원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아는 동네 형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형들로부터 보호도 받았다. 하지만 현태의 마음속에는 억울함이 차올랐다. ‘엄마는 왜 나를 버리고 도망갔는가?’, ‘아빠는 왜 술을 먹고 누나와 자신을 그리도 때렸는가?’ 현태는 분노로 똘똘 뭉친 아이가 되어 소년원을 나왔다. 눈에 거슬리면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싸웠다. 억울함이 느껴지는 상황에선 더욱더 잔인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또 한 명의 아이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어갔다. 부모에게 학대받았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다. 모든 비행청소년과 위기의 아이들이 직접적인 폭력으로 인해 괴물이 된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괴물인 아이는 없다. 단 한 명도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 괴물이 된 아이들의 삶 속에는 아이를 괴물로 만든 환경이 자리해 있고, 아이는 다만 처해질 뿐 스스로 선택하고 바꾸어갈 만한 힘을 지니지 못했다. 그 힘이 어른인 우리에게 있다. 괴물의 죄를 묻고, 그리된 아이를 탓하며, 괴물이라 낙인찍고 묶어두는 대신 괴물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묻고, 상처를 다독이며, 아이가 잃어버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시작, 어떻게 이 아이들을 바라볼 것인가 ● 나쁜 아이 VS 아픈 아이 이 아이들을 나쁜 아이로 바라본다면 버릇을 고치려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격리 혹은 추방(?) 조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아프고 상처받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치료와 회복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픔과 상처 속에서 몸부림치며, 그 표현을 비행으로 하는 거라고 여기며 아이를 보듬어 안을 것이다. [PART VIEW]● 가출한 것인가? VS 탈출한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는 가정이어야 한다.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정서적인 안정과 더불어 인성 대부분이 형성되는 토대가 바로 가정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곳인가? 쉼과 평안을 주는 곳인가? 지지와 격려, 미래를 위한 지원이 있는 곳인가? 학교는 또 어떠한가? 아이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갈 수 있는 곳인가? 꿈과 희망이 자라는 터전이 되고 있는가?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끝까지 기다려주고 인내해주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이유다. 수많은 아이가 거리로 뛰쳐나오는 오늘의 이유. 편한 집 놔두고 생고생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에게 집은 편안한 곳도 안전한 곳도 아니다. 고통과 아픔과 상처로 가득한 지옥일 수 있다는 말이다. ● 쓰레기 VS 자원 쓰레기는 치워야 하고 자원은 개발해야 한다. 위기청소년들을 쓰레기로 바라보면 할 수 있는 건 눈앞에서 깨끗이 치우는 것, 격리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존귀한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 자원이라고, 그저 지금은 일그러진 모습에 가려져 있는 것뿐이라고 믿는다면 아이들을 돌보고 자원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 변하지 않는다 VS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행이 습관화된 아이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 아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아니면 지금의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면, 그렇게 혼돈과 방황을 잘 겪어내면 멋진 어른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네가 그렇지’라고 포기해 버릴 것이고, 변하지 않는 건 아이의 과거이지 그 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끝까지 기다려 주고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바라보기의 다음, 한 걸음 다가서기 마이 페어 레이디(1964)라는 오래된 영화 속의 대사가 위기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언어학자인 헨리 히긴스 교수는 절친한 친구인 피커링 대령과 묘한 내기를 한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하층계급 여인을 한 명 데려와 정해진 기간 안에 그녀를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드는 내기다. 이 내기의 대상으로 선택된 여인은 빈민가 출신의 꽃 파는 부랑녀 일라이자 토리틀이다. 그녀는 히긴스 교수의 끈질긴 교육으로 이상적인 여인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놀라운 귀부인의 매너와 품위를 보이는 그녀가 유독 자신을 교육시킨 히긴스 교수 앞에서는 막돼먹은 여자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히긴스 교수가 이유를 묻자 일라이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숙녀와 길거리의 꽃 파는 여자와의 차이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어떤 대접을 받느냐의 차이입니다. 당신의 친구 피커링 대령은 나를 숙녀로 대해주지만 당신은 나를 언제나 꽃 파는 무식한 소녀로만 바라보고 있지요.” 위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청소년은 이 땅의 미래라고 한다. 그렇게 보고 아이를 대한다. 그런데 위기청소년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위기청소년도 이 땅의 청소년이다. 인생의 한때, 위기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이 땅의 미래다. 바라보는 이의 생각과 시선과 태도에 아이들은 반응할 것이고, 그렇게 아이들이 변할 것이다. 비록 많은 시간을 들여 느리게 변할지라도. 그렇기에 ‘위기청소년’이라 불리는 아이들의 진짜 호칭은 ‘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고 더 많이 기다려주어야 할 아이들’인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미워 보일 때가 가장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4초 마다 한명이 자살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는 더 이상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비전과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정신건강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살예방’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학교’를 중심으로 자살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아마도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기반 자살예방교육은 ‘자살 공중보건 모델(public health model)’의 위험 단계별 전략에 해당하는 보편적(universal)·선택적(selective)·지시적(indicative) 예방 전략에 근거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학교의 보편적 예방 프로그램은 선별검사?게이트키퍼(gatekeeper) 교육, 커리큘럼 기반 교육, 보호 인자 증진교육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학교 문화에 가장 적합한 교육은 교육과정과 접목할 수 있는 ‘생명존중 자살예방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명존중 자살예방교육은 윤리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2012년)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정규 교육과정과 특별활동 시간에 학생 자살예방교육을 하도록 의무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예방교육의 핵심 내용과 전달 체계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은 없는 상태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학생 자살예방교육의 해외 사례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자살예방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 미국 미국은 자살예방사업과 관련 연구가 활발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자살예방사업은 1960년대 캘리포니아 주에 자살예방센터 설립과 국가정신건강기구(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내에 자살예방연구센터 활동으로 본격화됐다. 학교에서의 자살예방교육은 198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주 교육법에 자살인식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여, 옐로우 리본 자살예방 프로그램 등 학생과 학부모 대상 자살예방인식 증진 교육이 개발되면서 시작됐다. 현재의 학교 기반 자살예방체계는 2000년대 초 약물방지와 정신건강 서비스를 관장하는 연방행정기구(The federal 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 SAMHSA)와 각 주정부 단위에서 학교 자살예방교육을 위한 법률제정 등 기반이 마련되면서, 학교와 체계적인 협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학교 자살예방교육은 주로 자살에 대한 정확한 인식·자살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도움 청하기 같은 자살에 초점을 둔 실천적인 행동 대처방법 제시와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심리학자, 보건교사, 상담교사, 학교 사회복지사 등 보건 전문가들에 의해 개별적인 시간을 배정하거나, 주간 보건 수업에서 교사가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적용 여부는 주정부와 학교 환경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위스콘신 주의 자살예방교육은 중·고등학생에게는 자살초점 교육을 적용하고, 초등학생은 집단괴롭힘 예방, 학교 및 교실환경 적응, 생활 기술(life skill) 등의 문제해결능력 강화와 정신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잘 알려진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살징후와 위험요소 교육(Adolescent Suicide Awareness Program), 우울과 자살선별검사, 징후 및 대처방법 교육(Sign of Suicide)과 라이프라인(Lifelines), 미국 청소년 자살예방 프로그램(Washington’s Youth Suicide Prevention Program) 및 보호 요인 증진 프로그램인 자살위험 대처 및 교육지원 프로그램(Coping and Support Training Program, CAST) 등이 있다. ● 유럽 및 호주 호주의 학생 자살예방사업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학교와 지역사회 기반의 포괄적 청소년 정신건강 프로젝트 ‘마음 문제(Mind Matters)’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인드매터스 프로그램은 긍정적 학교환경 강화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국가와 지역사회, 외부 전문가 및 학교 교사가 연계한 통합적인 사업수행을 지향하고 있다. 이중 정신건강에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은 삶의 교육(Educating for life), 탄력성, 괴롭힘, 상실과 애도, 정신질환의 이해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자료집을 기반으로 교육하고 있다. 학생 자살예방교육은 삶의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으며, 주로 자살에 대한 오해, 인식증진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2000년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청소년이 자살위기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도록 돕는 전략으로 학교 기반 청소년 자살예방 인식증진 프로그램인 SEYLE(Saving and Empowering Young Lives in Europe)를 공동 개발하였다. 프랑스, 독일 등 10개 유럽연합 국가들이 청소년에게 적용한 결과를 보면, 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정신건강 증진 교육(Youth Aware Mental Health Program, YAM) 모듈은 교실 단위로 학생들에게 정신건강·우울증·스트레스·친구 돕기 및 도움 청하기 등 자살과 관련된 위험 및 보호 요인들에 대한 인식향상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자료집과 역할극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 스트레스 관리와 대처기술 증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표준화된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학교에 확산·적용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 학교기반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 일본과 대만 일본은 높은 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살대책기본법(2006년)과 ‘자살종합대책대강(2007년)’을 통하여 자살정책에 대한 국가 주도의 사회적 인식 증진과 자살예방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은 학생 교육과정 지침인 ‘학습 지도요령’을 통해 학교 자살예방교육을 제시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는 교육과 도덕교육 종합 지원 사업을 강화하였다. 일본의 자살예방교육은 자살 위험성에 직접 초점을 두거나 이에 관한 교육시간을 따로 배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생명과 삶의 소중함·안전 및 인권의 포괄적인 주제를 정하여 도덕·국어 등 정규 교과목 수업과 체험활동 연계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지바현의 경우 초·중·고등학교의 생명존중 프로그램으로 생명·인권·이지메와 폭력 방지·자신을 감싸기·생명의 소중함·배려하기·학교 사회 및 지역과 융합·사회공헌·지역봉사 등 교육내용을 제시하고, 교사가 수업을 통하여 적용 가능한 활동과 각각 교과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교육하고 있다. [PART VIEW]대만은 청소년 자살 및 자해에 대한 근본적 예방정책으로 ‘생명 교육(life educ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학교에서 생명 교육을 교과과정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9년 동안 교육과정에 생명교육을 포함시키고 자아·타인·자연환경과 인간·사회와 인간·우주와 인간이라는 5가지 영역으로 교육내용을 구성하였다. 또한 2006년부터 고등학교에 공개강좌로 생명교육관련 8개 교과목(생명 교육·생명과 철학·생명과 종교·죽음교육·도덕 성찰·성과 결혼 윤리학·생명과학 윤리학·인성 발달)을 교육하고, 초·중등학교는 다른 교과목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통합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양권은 인성교육으로 자살예방 나서 학교기반 자살예방 교육에 관한 외국 사례를 본 바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학생 자살예방에 외부 전문가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실제적인 자살 위기 대처와 정신건강 증진 전략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학생의 자살대응역량 강화와 학교의 정신건강 친화적인 분위기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만과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은 학교 교과 교육과정을 통해 생명과 삶·사회적응·윤리 등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어 지역 국가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마다 여러 학교 기반 자살예방교육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교육내용과 전달 방식이 궁극적으로 학생 자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지에 대한 일치된 근거는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국내 학교환경에 맞는 전략을 도출하기 위한 다학제적인 연계와 노력이 필요하다.
교과전문성으로 교육현장에 새로운 활력소 올해로 교직 3년 차인 A 교사, 누구나 선망하는 선생님이 됐지만 마음 한구석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다. 수직적 학교 문화 속에 학부모에 치이고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임용 시험 때의 패기와 열정은 오간데 없이 무력감에 빠져있다. 교과 수업은 갈수록 어렵고, 각종 교수법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어떤 것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A 교사처럼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학교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찾고 싶은 교사들이 ‘광주 초등수석교사회’로 몰려들고 있다. 창의적인 수업방법과 다양한 수업기술, 그리고 교직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갈 멘토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은 새내기부터 40대 후반의 고경력 교사까지 다양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송미나 수석교사(광주 수문초)는 “교직생활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전문성 향상을 통해 보람과 만족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수석교사들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4월 광주초등수석교사회 주최로 열린 수업혁신 위크숍에서 그대로 그러났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광주지역 초등교사 2백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역량 중심 2015 교육과정 개정 설명’부터 ‘하브루타를 적용한 초등영어수업’, ‘아카펠라를 활용한 음악수업’, ‘액션리서치로 수업 전문가 되기’, ‘사회 이슈를 활용한 배움 중심 도덕수업’ 등 요즘 각광받는 수업기법들이 소개돼 주목을 끌었다. 이뿐 아니다. 6월에는 수석교사와 일반 평교사가 멘토와 멘티 관계를 맺고 함께 수업 개선을 모색하는 멘토링 사업을 실시하고 이어 목요연수회, 요청수업, 수업나눔 행사 등이 줄줄이 예약돼 있다. 특히 ‘수석교사 멘토링’은 올해 역점 사업 중 하나다. 수석교사가 영어나 수학 등 멘토 과목을 공개하면 일반 교사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분야를 수강 신청하는 방식이다. 수업내용은 교과 수업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학급 경영과 교직생활 전반까지 폭넓게 다룬다. 일회성에 그치는 컨설팅 장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폐쇄적인 학교 문화에 ‘소통’이라는 활력소를 불어 넣기 위해 마련됐다. 그래서일까? 멘토링 신청서에는 ‘올해 교과전담을 처음 맡았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는 교사부터 수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활동을 하고 싶다는 교사, 새로 옮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걱정이라는 교사들까지’ 속 깊은 사연들이 담겨있다. 김동군 수석교사(광주 치평초)는 “교과 전문성 뿐 아니라 학생지도와 학부모 응대법 등 학교생활의 모든 영역을 조언하게 된다”며 “쉽게 드러내기 힘든 교사들만의 고충을 함께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별로 선후배 교사들 간 멘토링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가 부담을 느끼는 탓에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착안했다면서 “직접 면담은 물론 전화나 문자로 피드백을 해주다 보니 교사들이 더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탄탄한 실력으로 최고 전문가 집단 자리매김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일반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목요연수회’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수석교사들의 자기역량강화를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유익한 정보를 우리끼리만 공유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서 일반교사들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요청수업’은 광주초등수석교사회의 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교사들이 원하면 수석교사들이 학교를 방문,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 전체 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거나 담당교사와 팀티칭도 하는 일종의 ‘출장 수업’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수석교사가 일선 교사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데는 ‘실력’이라는 확실한 보증수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뛰어난 교과 전문성과 풍부한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세미나와 공개수업, 문제 해결 리서치 등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다. 실제로 광주초등수석교사회 구성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공부하기 좋아하는 선생님들의 모임이라는 점이다. 교재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좋아 수석교사가 됐다는 정유경 수석교사(광주 하백초)는 “후배 교사들에게 유익한 ‘수업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석교사가 교직사회의 새로운 도전과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얼마 전만 해도 교장, 교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인식이 교직사회에 팽배했지만 이제는 수업 전문가로서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대우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송 수석교사는 “관리 직렬과 교수 직렬이 학교에서 서로 윈윈하며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교육현장이 열린사회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수석교사 절대 부족”… 정부가 정원 확보 나서야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수석교사들. 이들은 요즘 우리 실정에 맞는 수업기법을 개발하는 데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외국의 교육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다 ‘열린교육’ 열풍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좋은 수업’이란 본질적인 고민은 뒤로 한 채 각론만 쫓아다니는 ‘연수 쇼핑’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수석교사들이지만 정부의 지원정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수석교사들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정원 문제를 꼽았다. 현행 제도상 교감과는 달리 수석교사는 정원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 데다 시·도교육청의 재량에 따라 선발토록 해 놓다 보니 정책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 특히 부족한 수석교사 정원은 이들의 역할 수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광주지역의 경우 초등학교는 154개이지만 수석교사는 22명에 불과하다. 송 수석교사는 “직급은 있는데 정원은 없는 기형적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학교 교육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수석교사 정원 확보가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라고 호소했다. 수석교사제는 유·초·중·고교의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 등 관리직으로 승진하지 않고도 일정한 대우를 받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시범 운영을 거쳐 2012년 법제화됐다.
친구들과 어울려 딱지치기를 하거나, 함께 몸을 부대끼고 뒹굴며 놀던 ‘놀이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서울가동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학교 공간마다 아이들의 건강한 호흡과 티 없는 웃음소리로 온 학교가 들썩거린다. 이 아이들을 웃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서울가동초등학교의 가장 대표적인 감성교육프로그램은 ‘즐겁게 함께 놀기’이다. ‘우리’라는 말보다 ‘나’라는 말이 익숙한 학생들에게 올바른 심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서울가동초 학생들은 중간놀이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교실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전통놀이를 하며 옛 멋을 즐기는가 하면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야구·농구·축구·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클럽 활동에 구슬땀을 흘린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운동장 걷기’이다. 땀 흘리기 싫어하는 여학생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산책하듯 운동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역시 풍요롭고 따뜻한 감성은 ‘좋은 친구와 어울려 놀 때’ 가장 왕성하게 싹튼다. 36.5℃ 따스한 감성으로 ‘365일 행복한 감성 학교’ 서울가동초등학교의 교육목표는 ‘365일 행복한 감성 학교’이다. 조병래 교장은 학생을 행복하게 하는 힘은 ‘감성 교육’이라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문학·음악·미술·바둑·운동 등 예술적 감성을 익히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 풍부한 상상력을 비롯해 자유자재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의력을 길러주며, 자신의 삶을 탐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 진다. 그래서 ‘감성 교육’은 사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을 위로해주며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 역할을 해준다. 조 교장이 ‘감성 교육’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이다. 방과후학교 역시 감성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이다. 마술·논술·요리·주산암산·큐브·바둑·체스·건축교실·창의과학 등 창의영역, 우쿨렐레·플룻·클라리넷·첼로·방송댄스·음악줄넘기·농구·디자인미술 등 예술영역은 물론 해법수학·한자급수·생명과학 등 교과영역까지 70여 개의 부서가 운영 중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다보니 학생들의 참여율은 무려 92.3%. 전교생 953명 중 880명이 참여하고 있다. ‘즐기고 체험하는 수학’으로 학업성취도 ‘쑥쑥’ 서울가동초등학교의 복도와 운동장에는 ‘양감(量感) 체험코너’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적 안목을 높이고 수학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교육부 지정 수학교육 연구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이 학교의 수학교육 목표역시 ‘즐기는 수학’이다. 학생들은 수학 학습에 성공 경험을 제공하는 수학클리닉, 수학 이론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수학 동아리, 방학 동안 열리는 수학캠프 등 수학을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수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물론 수학에 대한 자신감마저 끌어 올리고 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즐기고 체험하는 과정중심교육을 하다 보니 학업성과가 오르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당연히 만족도와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마련한 ‘가동 가족사랑 음악회’, ‘가동 가족 걷기대회’, ‘가동 가족 산행대회’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마시멜로 실험’의 교훈, 진정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감성지수(EQ : Emotional Quotient)’를 연구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윌터 미셀(Walter Mischel) 교수의 이른바 ‘마시멜로 실험*’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아이가 성장 후에도 학업성취도는 물론 삶을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성지수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다. 다만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의 습관이 커서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꽉 짜인 일정에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우리 아이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36.5℃ 따스한 감성으로 365일 행복한 교육’을 실천하는 서울가동초등학교는 우리 교육의 해법을 찾는 첨병(尖兵)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모순 행정’ 13 대 4. 지난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는 소위 진보 성향 교육감 13명에게 화려한(?) 시대를 열어줬다. 유창한 언변으로 포장된 그들의 교육혁신 공약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틀 안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심정으로 지켜본 지 2년이 흘렀다. “학교자율성을 확대하고, 학교 내 갈등을 해소하며, 교육환경개선을 위해 교육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처음엔 환영받았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정한 교원정책과 학교자율성에 대한 이중성 진보 교육감들은 선거에서 투명한 교원인사와 교육비리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육비리에 불관용 원칙을 세우고 인사제도개혁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지난 3월 1일 자 서울·경기 등 일부 진보 교육감들이 보여준 교원인사는 ‘낙하산 보은(報恩) 인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진보 교육감들이 비서, 보좌관을 공모교장에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등 측근 중심 파격 인사를 단행해 교육공무원임용령 및 교육청 인사 관리 원칙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무원칙한 보은 인사는 또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교혁신특위 집행위원장 출신 평교사를 서울시교육연구원 연구관으로 2단계 승진시켰고, 광주시교육청은 교육감 핵심 측근을 교육국장에 임명했으며, 경기도교육청과 충청북도교육청 역시 교육감 비서와 보좌관을 공모교장으로 임명했다. 겉으로는 인사 비리 척결을 주장하면서 안으로는 무원칙·불공정 인사의 전형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직문화 개선과 학교 내 갈등 해소에 대한 문제점 두 번째 모순 행정은 ‘모든 교원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직문화를 개선하고 학교 내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공약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호소한다. 지난 4월 경기도교육감과 현직 교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2016 학교장과 함께하는 현장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된 이 날 간담회는 현장 교원들의 허심탄회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학교 문화 정책은 현실과 괴리감이 크고 학교 내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H 초등학교장은 “도교육청이 행정실무사 인원을 줄여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일선 교원들의 행정업무가 많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행정실무사 감축으로 교사 본연의 업무인 교재 연구에 집중하지 못한 채 공문 처리 및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교원과 교육공무직 간 업무 배정을 둘러싼 갈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J 초등학교장은 “학교 구성원 간 업무 분장은 학교장의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이 교육공무직원의 역할을 노조와의 단체 협약 등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학교장의 재량권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교직원 간 충돌이 빈발하는 등 학교 내 갈등이 감소하기는커녕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행정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학교에서는 아직도 외부 손님이 오면 교사들이 차 심부름을 해야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소규모학교가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어촌학교는 지역사회의 문화 및 평생교육의 중심지로 그 존재가 단순한 학교의 범주를 넘어서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교육청은 교육의 효율성이 낮고, 인력지원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교육을 경제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약자(弱者) 우선 정책을 강조하는 진보 교육감의 철학과 정면 배치되는 행정에 농어촌지역 학부모와 교원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 문화의 피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 초등학교장은 학교 민주주의 정도를 평가한다면서 교육청이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는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교육청은 설문조사 결과, 점수가 낮게 나온 학교는 중점 컨설팅을 실시하고 감사 대상 학교로 지정할 계획이다. 학교는 지역 여건이나 및 교직원 구성 등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설문으로 민주주의 지수를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감사를 시행한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칫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데다 학교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가 왜곡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직원이 자신의 직무에 태만의 모습을 보였다면 학교장은 초·중등교육법에 입각해 엄격하게 문책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공무원 행동 강령에 따라 원칙대로 교직원을 관리한다면 민주주의 점수는어떻게 나올까? 결국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야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교 민주주의 평가가 학교장에 대한 인기투표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PART VIEW]교육환경개선과 교육재정확충에 대한 허울 진보 교육감의 교육정책 중 빠질 수 없는 공약 중 하나가 교육환경개선과 교육재정확충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허울 좋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소규모학교의 무상급식 정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상당수 소규모학교는 부족한 무상급식 예산 때문에 식재료비 60%대의 질 낮은 급식이 운영되고 있다. 조리실무사 인건비를 학교가 책임지다 보니 매년 5% 이상의 학교기본운영비가 지출되고, 이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 살림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현행처럼 무상급식비를 식재료비, 운영비, 인건비를 구분하지 않고 총액 교부한다면 ‘모든 학생에게 무상으로 양질의 급식을 제공한다’는 무상급식의 기본 취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급식 인원이 적은 소규모학교일수록 매년 조리실무사 인건비 보전으로 학교기본운영비 부담액이 증가, 학교 규모에 따른 ‘급식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C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 당국에 수차례 시정을 호소했지만 묵살당하기 일쑤였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통령을 향해 유치원 누리과정에 예산 편성은 정부책임이라며 1인 시위를 펼친 경기도교육감이 정작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조리실무사 인건비는 학교에 떠넘기는 처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경기도교육감은 ‘세월호 교육감’이다. 세월호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준엄한 책무를 띄고 있다. 하지만 학교안전에 대한 재정지원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학교는 수많은 외부인이 드나드는 장소로서 언제든 범죄자로 인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각별한 관심과 철저한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1주일에 15시간 미만 근무하는 배움터지킴이를 학교에 배치한 것이 고작이다. 부족한 인력은 ‘학부모 어머니 폴리스’ 등 자체 봉사 인력을 구성하여 운영하라는 것이다. 학급수가 적고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인 학교는 학부모에게 자원봉사를 구걸해야 할 판이다. 이뿐 아니다. 교육 당국이 무상급식 등 포퓰리즘 사업에 예산을 쏟아붓다 보니 정작 학교의 교육환경개선은 지방자치단체 등 외부기관에 손을 벌려야 할 형편이 됐다. 그런데 여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자체의 예산지원은 이미 혁신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이미 그 지원의 테두리가 한정되어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난 학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결국 경기도 지역 상당수 학교가 지자체의 입맛에 맞는 계획서를 제출하고 지원을 받아 교수·학습 환경개선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학교가 어쩌다 지자체의 입맛과 눈치를 살피게 됐는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물론 진보 교육감들의 모든 행정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정하고 투명하고 교육을 위한 행정을 해 달라는 마음에서 아쉬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교육감의 성향이 보수든 진보든 중요하지 않다. 누가 얼마나 교육을 위해 희생하고 열과 성을 다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남은 2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교육감이 되기를 바라면서 대오각성을 촉구해 본다.
얼마 전 ‘선생님…. 저 생리대 살 돈이 없어요’(스브스뉴스, 2016.05.28.)라는 기사를 읽으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생리대 하나만 빌려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건 아닌지, 내가 거절했던 아이 중에 이런 아이가 속해있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생리대를 자주 갈지 못해서 주위 아이들로부터 냄새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아이였어요”라는 어느 자원봉사자의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혹시나’하는 마음과 함께. 유난히 냄새가 나는 아이들이 있다. 적어도 한 반에 1~2명은 있다. 더운 날 밖에서 운동을 해서 나는 땀 냄새가 아니다. 머리를 안 감고, 잘 씻지 않고, 옷을 자주 빨아 입지 않아서 나는 냄새이다. 교복은 꼬질꼬질하고, 거친 손과 얼굴엔 각질이 피어올라 와 있다. 1평 남짓의 개인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불편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어휴, 선생님이 갱년기인가. 왜 이렇게 덥다니. 문 좀 열고 하자”며 창문을 열어야만 상담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냄새 난다’는 말을 하자니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고, 말을 안 하고 넘어가자니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찜찜했다. 좀 더 세련되게 아이가 직접 자기위생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방법은 없을까? 자기위생관리가 안 되는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저소득층이며, 왕따이고, 부모로부터 폭행 혹은 방치 등의 아동학대를 받는다. 또한 우울하다기보다 무기력과 패배의식이 몸에 배어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는 중이다. 슬픈 사실은 이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의 복지비가 정말 쓰일 곳에 쓰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이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러운 냄새가 난다’…유치원 때부터 왕따 올해 학교에 입학한 민지(가명)는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는 매일 소주 3병 정도를 마시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alcoholic)이고, 집안 살림은 어렸을 때부터 민지가 했다. 그 작은 손으로 살림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씻으라는 사람도, 씻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늘 지저분한 모습으로 어린이집에 갔다. 그때부터였다, 왕따가 시작된 것이. 자기 주변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민지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입 냄새가 심했고, 몸에서 나는 체취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감은 높았지만, ‘진로계획’만큼은 똑 부러졌다. 늘 취해있는 아버지 옆에서 민지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이었고,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고,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도 없다고 했다. “나도 웹툰을 좋아하니까 기회가 되면 보여 달라”고 하자 단칼에 싫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학교와 와 보니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아마 제 그림은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PART VIEW]● 상담전략 _ 머리부터 단정하게, 교복은 깔끔하게 3~4차례 만남이 이루어진 후, 헤어지면서 “민지야, 머리 안 답답해? 앞머리만 이렇게 다듬어도 훨씬 귀여울 것 같아”라는 말을 건넸다. 다음 상담시간에 민지는 앞머리를 눈썹 위까지 자르고 왔다. 민지가 마음을 열었구나 싶어 이번엔 교복에 도전했다. “빨래도 민지가 하니?”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교복 상의 안에 늘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민지는 이 옷 엄청 좋아하나봐?” 물었더니, “입을 만한 반팔 티셔츠는 이것 밖에 없다”고 했다. 세탁물이 많지 않고 귀찮기도 해서 한 달에 1~2번 정도 밖에 빨지 않는다고 했다. 꽃에 향기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특유의 체취가 있으며, 음식을 오래 두면 상하는 것처럼 매일 입는 옷은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어도 일주일 이상 되면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 교사에게 부탁하여 양치하는 요령도 교육했다. 민지는 항상 혼자만 생활해서 친구 관계 맺는 것이 서툴렀다.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도 몰라 했다. 개인상담보다는 집단상담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방과 후에 진행하는 집단상담에 민지를 포함시켰다. 3~4차례의 집단상담이 진행된 후, “민지가 웹툰을 잘 그리니까 집단상담에서 나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처음엔 자신의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던 민지는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학교 급식이 유일한 끼니인 지선이 올해 2학년인 지선(가명)이는 부모님과 한집에서 살 뿐이다. 어머니는 살림은 물론 아이들 양육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법적으로 양육을 책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보호하지는 않는 듯 했다. 지선이는 얼굴엔 늘 각질이 가득하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기름져 있다. 교복엔 곰팡이 핀 자국이 선명하고, 빨아 입기는 하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묵은 때가 찌들어 변색까지 되어 있다. 지선이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선이의 유일한 끼니는 학교 급식이었고, 집에 가면 그냥 누워서 스마트폰만 한다고 했다. 최근엔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과 함께 내쫓기기도 했다. 지선이는 지금까지 뭔가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왔다가 간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대답도 한두 박자 느리며, 논점에서 어긋나 있을 때가 많았다. ● 상담전략 _ ‘방임’이 의심된다면 아동보호센터와 연계 지선이의 경우 아동학대 중 ‘방임’이 의심되었다. 아동보호센터와 연계하여 가정방문을 했더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었다. 일단 아동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를 연결해줬고,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줬다. 민지와 마찬가지로 자기위생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속적인 지도와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과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 착실했던 세라 3학년이 된 세라(가명)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 대신 지적장애 오빠를 돌보는 학생이다. 물론 집안일도 도맡아서 한다. 부모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며 착실하게 취업준비를 하던 학생이다. 하지만 올해 세라는 작년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2학년 때까지는 깔끔했던 학생이었는데 복장이나 외모가 점점 지저분해져 갔다. 학업성적도 떨어졌고, 대화 도중 간간히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말을 했으며, 멍하니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학급 친구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상하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면 “몰라요. 생각이 안 나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 상담전략 _ 갑자기 생활 모습이 변했다면 병원과 연계 몇 번의 설득 끝에 학부모 동의를 얻어 의료지원서비스를 받았다. 세라는 조현증(schizophrenia) 초기 증상이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하여 꾸준히 치료할 경우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세라는 현재 대인관계에서 조금 어려움을 느낄 뿐 큰 문제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물론 학교관리자, 보건교사, 담임교사, 상담교사 이외에는 세라의 상태에 대해서 모른다. 혹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상태 악화 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는 학부모 서면 약속도 받아 놓았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돕기 언젠가부터 내 책상엔 핸드크림이 2~3개씩 놓여 있다. 보건실도 아닌데 캐릭터 밴드도 책상 서랍에 수북하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손이 거칠면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손톱을 물어뜯거나 쥐어뜯어 피가 맺혀있으면 밴드를 붙여준다. “손은 또 다른 얼굴이야. 손이 예뻐야 자신감도 더 생긴단다” 하면서. 올해는 꼬리빗과 헤어밴드도 사다 놓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는 ‘머리스타일’부터 시작하니까. 간혹 담임교사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볼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냄새난다고 말하면 상처가 될까 봐서…. 말을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정답은 없다. 어떤 아이는 이야기를 해줘서 개선이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아이는 화를 내면서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는 ‘병’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부모의 ‘방임’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아이와 속사정 이야기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학생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 ● “이번 주에 교복 못 빨았어? 때가 그대로네. 바빴어?” ● “얼굴이랑 손에 로션 꼭 발라야 해. 늙어서 주름 생긴단 말이야. 로션 다 썼어?” ● “여기 왜 이래? 화장이 들떴나? 아니면 다쳤니?” ● “너 오늘 머리 안 감았구나. 늦잠 잤어? 사춘기 때는 호르몬 때문에 하루만 안 감아도 기름이 좔좔 흐른다니까. 나처럼 아줌마가 되면 머리에 기름도 안 생겨. 매일 머리 감기 귀찮지?” 그다음의 대화는 아이들이 이끌어 줄 것이다. 민지처럼 “바쁜 게 아니라, 제가 빨아야 하는데 귀찮아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 빨아요”라는 답변을 할 수도 있고, 세라처럼 “로션을 발라본 적이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보호를 받지 못해 자기위생관리가 안 되는 아이들을 돕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쟤는 왜 저렇게 자기위생관리가 안 되지?”라는 질문을 따뜻한 관심으로 바꾸면 된다.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배웠어야 할 자기위생관리를 지금이라도 교사가 하나씩 알려주면 된다.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받은 치유자’, 교사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떤 학생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중심에는 늘 담임교사가 있다. 학교를 다니는 중 한번이라도 담임교사가 적절하게 도움을 주거나, 지지를 보낸 경우 아이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하지만 좌절을 경험한 아이는 말해봤자 소용없고, 모두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성장을 멈춘다. 심리학 용어에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healer)’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키론(Khiron)이 영원히 치유하지 못할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뛰어난 의술로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제자들을 키워낸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개념을 도입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산다는 것 자체가 늘 상처와 함께하는 일’이라고 했다. 교사 역시 상처를 안고 다른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아닐까? 아이의 ‘성장’ 없는 교사의 ‘성공’은 없으니까 말이다.
‘구교육’, 혹은 ‘헌교육’에 대한 ‘새교육의 반란’은 미군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3년간 지속되었던 ‘새교육의 반란’을 진압하고 ‘구교육의 복원’을 꾀하려 했던 최초의 인물은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 장관에 임명된 안호상이었다. 그는 백과사전에서 민족사학자, 철학자, 대종교인, 정치가, 그리고 파시스트라는 다양한 명칭을 부여할 만큼 경력이 화려했다. 그는 1920년대 초에 일본에서 영어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을 거쳐 독일에서 유학하였다.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 1929년이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일본 교토제국대학교, 독일 훔볼트대학교,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연구생으로 경력을 쌓은 후 1933년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이듬해에 이광수의 소개로 시인 모윤숙과 결혼하였으나 후일 헤어졌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해방과 함께 민족주의 계열의 다양한 학술단체, 문화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자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일민주의 안호상은 단군을 숭상하는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하나의 백성’이란 의미의 ‘일민주의’를 이론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이승만이 외치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정치 구호를 학술적으로 공고히했으며,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삼기 시작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안호상은 민주주의 출발점이 서양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파격적 주장을 함으로써 새교육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 수립 직후 행한 한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신라식 민주주의요, 신라에서 발달한 것이 구라파로 넘어가 이것이 또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신라의 화랑도 이야기에 나오는 화백회의를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해석한 것이 분명하다. 안호상을 따라 많은 교육자가 새교육에 대한 비판에 참여하였다. 예컨대 서울청계공립국민학교장 최윤수는 새교육의 정신적 지주인 듀이가 한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기에 개인주의에 기초한 교육이론을 발전시켰고, 우리나라는 미군정 3년 동안 이를 학습하였는데 이는 흡사 ‘유아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꼴’이라고 비유하였다. 결국 새교육은 엄청난 피해를 이 강산, 이 민족에게 입혔다는 점에서 이것은 ‘민주주의 교육’이 아니고 ‘미친주의 교육’이었다고 평가절하 했다.(새교육 2권 2·3호) 민족주의 진영의 새교육 비판은 미국 유학파 출신 백낙준 2대 문교부 장관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잠시 주춤했던 새교육 운동은 이른바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형태로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부활한다. 이후 1955년 8월 1일 제1차 국가교육과정의 공포에 이르기까지 현장 교사 중심의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아동중심, 생활중심, 그리고 경험중심 철학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봉건적 색채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기울인다(이 시기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교육사적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청된다). 국가교육과정 공포가 주는 의미 1955년 8월 1일의 국가교육과정 공포는 한국 교육의 발전 과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교육독점의 제도화 선언이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국가권력에 밀착된 지식인들이 교육을 지배하고 현장교사들은 국가의 교육 아젠다(agenda)를 맥없이 실천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자치제, 학원의 자유 등 1950년대에 추진되고 있던 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들이 하나둘씩 소멸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새교육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새교육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비판, 그리고 새교육 이후의 미래 교육에 대한 탐색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잡지 새교육이었다. 그 시작은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진보주의 교육의 퇴조에 대한 관심과 소개였다. 새교육은 1957년 6월호에서 ‘3R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에 게재되었던 기사 ‘Back to the 3Rs : Change in the Schools’를 번역 소개하였다. 이는 진보주의 교육의 퇴조를 가져온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 4개월 전이었다. 이 기사는 미국의 공립학교들이 진보적 관념에서 벗어나 기초적인 교과 과정으로 돌아가려는 경향, 그리고 훈육을 강조하는 경향을 조사한 일종의 보고서였다. 학력에 대한 관심의 부활, 숙련된 과학자와 기술자 부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우려, 그리고 학생들의 풍기문란에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이 점차 확대되면서 읽기·쓰기·셈하기 등의 중요성이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PART VIEW]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새교육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새교육 실천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부산사범부속국민학교장 김두성의 말처럼 1950년대 후반에 이르자 새교육의 상징이었던 생활커리큘럼·경험커리큘럼·코어커리큘럼 등의 용어들이 사라져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미군정기 후반부터 시작된 비판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자 극에 달하였다. 대표적인 존 듀이(John Dewey) 비판가였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이해남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8년경부터 듀이즘(Deweysm)은 철학도 아니요, 교육도 아니다”는 주장과 함께 듀이즘을 미국 사상의 왕좌 자리에서 몰아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듀이즘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이해남은 듀이즘이 과거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새교육을 지도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명을 이미 다하였고 이제는 우리의 자연·지리적 배경과 사회적 유산을 고려하면서 세계 문화의 주류 위에 우리식 교육이론을 세울 때임을 주장하였다(새교육, 1958년 11월호). 듀이즘에 대한 비판과 새교육의 고민 이러한 의식은 새교육의 가치와 한계에 대한 종합적 검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민을 이끈 것 또한 새교육이었다. 새교육은 새로운 10년, 1960년대의 시작을 앞둔 1959년 9월호에서 ‘새교육 운동의 반성’을 특집으로 구성하였다. 이 특집은 다른 어떤 분야와도 달리 우리나라 교육계가 정부수립 이후 10년간의 교육경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우리식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의 새교육 운동이 그랬듯이 1960년대의 교육운동 또한 서구식 교육이론의 무비판적·맹목적 모방에 그칠 수 없다는 우리 교육자들의 자의식이 매우 철저하고 진지하였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소위 새교육이었나? 새교육의 본질과 이제까지의 새교육’이란 글에서 김두성은 “많은 비판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새교육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이 민주주의 교육을 향해 비약적인 변화를 이루었고, 비록 열기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이나 생명은 살아 있으며, 새교육의 매력은 잊혀진 것이 아니다”고 보았다(새교육, 1959년 9월호). 새교육 운동은 첫째, 학력 또는 실력 저하에 대한 우려, 둘째, 입학시험이 요구하는 것과의 상충, 셋째, 도덕적 성장에 대한 관심의 미흡, 넷째, 정서 또는 기능 교과의 불철저 등으로 인해 암초를 만나게 된 것으로 김두성은 해석하였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새교육의 잘못으로는 첫째, 우리나라의 역사·사회적 현실의 무시, 둘째, 경험과 문화의 균형 유지 실패, 셋째, 교사들의 능력 부족과 시설 환경의 미흡, 넷째, 학습에서 차지하는 계통성과 연습의 중요성 간과, 다섯째, 전인교육의 어려움, 마지막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국가·사회적 지원의 결여 등을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새교육 주장자들이 보여주었던 경험주의의 과잉의식이나 보수주의 교육자들이 드러낸 아동 경험에 대한 과소평가 모두 한국 교육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들은 1960년대 한국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면서 “교과 형식과 경험 형식은 빙탄불용(氷炭不容)하는 모순관계가 아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안인희 교수는 중등교육 분야에서 새교육의 영향을 다루었다. 그는 1950년대 후반의 새교육을 “뿌리가 잘린 꽃처럼 아름다우나 불안스런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안 교수는 새교육이 비록 “새것인 동시에 남의 것”이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았다. 특히 과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온 것이 가장 큰 공적이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새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도의교육의 실패를 꼽았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도의 과목의 신설을 주장했지만 일제강점기 수신(修身) 교육을 회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장기적 안목에서 과학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진보교육의 퇴조와 본질주의 교육 등장 이와 관련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사 심재형은 ‘교육학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해방 10년 만에 권태기를 맞이한 우리 교육이 과거의 지식중심교육으로 환원하지 않고 다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교육계획을 주도하는 교육학자들이 책이나 이론에 그치지 말고 현장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였다(새교육, 1959년 9월호). 서울 충무국민학교 교사 심경석은 ‘교장을 위한 학교냐, 아동을 위한 학교냐’라는 글을 통해 “새교육은 복잡한 그 무엇이 아니고 시대사조에 따라 교육의 계획, 조직, 내용, 방법, 시설 등을 개선해 나가는 움직임이며 이런 성과가 부진한 것은 교육학자, 교육행정가, 교사 등이 공동으로 져야 하지만 특히 학교행정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심 교사는 특히 교장의 민주적 학교경영을 촉구하였다. 이 특집에서 1950년대 새교육의 경험과 의미를 정리하고, 1960년대 한국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은 수원 매산초등학교 교장 황기익이었다. 황기익은 진보주의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어 온 새교육의 장점과 한계,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본질주의(문화유산의 전승을 중시하는) 교육의 장점을 통합하는 방향에서 당시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지점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개인의 욕구를 중요시하되 이기적 방향에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욕구로 방호해야 하며, 교육과정에는 반드시 인간의 문화적 전통 중에서 인간생활에 기여하는 근본적인 것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요소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진보주의 교육의 결함을 보충하여 개인과 사회를 같이 중요시하며 자유와 통제, 흥미와 노력을 강조하고, 기본 지식과 이해를 동등한 자리에 놓도록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교육계의 지배적인 생각입니다” (새교육, 1959년 9월호) 지금의 시점에서도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황기익은 새교육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새교육으로 인해 기초 학력의 저하됐다”는 지적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교육에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학력관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학력관은 “주지주의에서 벗어나 태도, 습관, 기능 등의 정의적 방면에도 중점을 둬 하나의 완전한 전인적 인격체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교육에 의한 새교육 비판, 그리고 새로운 학력관이 제안된 지 어언 57년, 그 동안 우리 교육은 여전히 낡은 학력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