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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서생면의 서생중학교(교장 서정표)가 오는 3월 우리나라 첫 공립 기숙형 자율중학교로 새롭게 출발한다. 이미 지난해 10월 31일 학생 선발을 마친 서생중은 현재 시설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문을 여는 기숙사는 물론, 교과교실제 실시를 위해 대대적인 교사 리모델링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울주군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건립되고 있는 기숙사에는 학년 당 120명씩 전교생 3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과 자율학습실 그리고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나 교육 관계자를 위한 게스트룸이 마련된다. 또 학교 건물 리모델링 과정에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과목별로 특색을 가진 교과교실을 구성할 계획이다. 영어, 수학 수업 증편과 무학년제 방과후학교 “우선 영어와 수학 수업을 주당 2시간씩 늘리고 무학년제 방과후학교를 통해 학력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서정표 교장은 도시학생들에 비해 학습 기회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학력강화를 학교의 최우선과제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교과교실제를 활용한 수준별 수업을 진행한다. 과목군별로 교실을 나란히 배정, 과목별로 하나의 존(Zone)을 구성하도록 했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이 각 교과 특유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해 면학분위기가 조성되고 교사들 간에 수업에 관한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수학과의 경우 수준별로 나눈 4개 교실에 3면에 칠판을 설치, 같은 학급 내에서도 상황에 따라 다시 3개 수준으로 나뉜 수업이 가능하도록 하고, 영어과는 4개 교실이 모여 있는 구역을 영어만 사용하는 ‘잉글리시 존’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모든 교과교실을 꾸미는 데 학생들이 각 과목 특유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사회과 교실은 커튼에 세계지도를 그려 넣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세계의 지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15개 특기적성 강좌 통해 학생들의 다양성 개발 학력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교과 공부라는 하나의 기준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물론 학교교육에 있어 교과 공부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만 학생마다 각기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는데, 무조건 학력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기적성 분야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15개 강좌를 개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적성을 탐색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서생중이 이렇듯 수준별 수업과 특기적성 교육을 강조하는 데에는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들의 구성에 따른 고민도 반영돼 있다. 올해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인근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선발과 울산 지역 전체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입학사정관제 선발의 이원적 방법을 취했는데, 전형 방법에 따라 어느 정도 학력차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선발 과정상의 차이는 단순히 학력차에 따른 수업 상의 어려움 외에도 학생 간 융화의 문제까지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학생 간 융화에 특별한 관심 그래서 서생중은 수준별 학습이나 특기적성 교육 외에도, 학급과 기숙사를 배정할 때도 학생들이 같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학 중에도 전체 교직원이 학교에 나와 사전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PAGE BREAK] 투명한 전형절차로 사전에 잡음 없애 한편, 지난해 있었던 서생중의 입학전형은 경쟁률이 9.5대 1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첫 선발에 이렇게 큰 관심이 쏠리다 보면 그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잡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서생중의 선발과정에서는 잡음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철저하고 투명한 전형관리였다. 인근지역 학생을 선발하는 지역선발에서는 지원자의 주소지를 직접 실사해 3명의 위장전입자를 탈락시켰고, 울산 전체지역 선발에서는 맞춤형 입학사정관제로 변별력 있는 전형을 실시했다. 울산 전체지역 선발전형은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으로 진행됐는데,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는 면접시험에 울산 강남 • 북 지역의 교장과 교감을 각각 1명씩 입학사정관으로 초빙해 공정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원자가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모든 지원자에 대한 1:1 맞춤형 질문을 준비해 기재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실히 판별해 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 모든 과정에 서생중 교직원들의 밤낮 없는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 • 덕 • 체 겸비한 꿈을 가진 학생 키워낼 것 “기숙형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2배 가까운 지도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지(知)에 관련한 교육만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서생중은 함께 생활하는 긴 시간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지(知)는 물론 훌륭한 인성(德)과 체력(體)을 겸비한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교장은 이 말로 지 • 덕 • 체를 고루 갖춘 인재육성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체육활동을 실시하고, 퇴임한 교장을 비롯한 교육 경력자를 사감으로 채용해 학생의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주어진 여건을 교육발전에 십분 활용해야 사실, 기숙형학교 설립을 위한 서 교장의 노력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생중에서 교감으로 재직하던 시절 도심지에서 벗어나 있는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학력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며 기숙형학교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근의 고리원자력본부에 자금 지원을 문의하고 울산시교육청에 기획서를 제출한 결과 수년이 지난 지금의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서 교장은 “아무리 뜻을 갖고 노력해도 지원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며 울산시교육청과 고리원자력본부에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고리원자력본부는 다른 학교에는 없는 서생중의 든든한 지원자이다.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소가 지어지면 그 지역에 일정 부분 환원을 하게 돼 있는데, 고리원자력본부는 기숙사 설립에 22억 원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매년 3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서생중은 이 돈을 급식과 방과후학교 등에 활용해 학생 부담금을 크게 줄여 기숙사비와 급식비, 방과후학교 비용을 전부 다 합쳐도 한 학생이 매월 부담해야 하는 돈은 20만 원 안팎이다. 마지막으로 서 교장은 “내실 있는 교육활동을 실시해 우리 학교와 비슷한 여건을 가진 학교들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
1 중학교 동창인 친구 M과 나는 그날 서울 역삼동 근처 생맥주집에 있었다. 우리 둘 말고도 몇 명 친구들이 더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 저녁 함께 먹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맥주 한 잔 나누자고 들어간 자리였다. 유수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으로 있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M이 맥주 값은 자기가 내겠노라 선언을 한 터였다. 고향 친구들이 우르르 모이는 자리는 영락없이 시끄럽다. 자기들끼리의 친숙함과 격의 없음을 과시라도 하듯, 화끈한 직설법 농담들이 퍼질러진다. 때로는 형편없이 유치해지기도 해서 막무가내 우기기식의 화법도 등장한다. 이야기 중에 추억담이라도 실리면,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녀석들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런 자리에서는 진지한 화두를 꺼내어 대화의 격조를 살리기는 어렵다. 그래 보았자 잘난 척하는 꼴로 오해받거나, 공연히 좌중을 썰렁하게 한 죄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밥 굶었던 이야기를 위시로, 누가 더 꽁보리밥을 많이 먹었다는 둥, 교복 기워서 입고 다닌 이야기, 교과서는 으레 헌 책으로 구입했다는 둥, 대학 3학년 때 맥주를 처음 얻어먹고서는 석 달도 넘게 맥주 먹었다는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둥, 끝이 없었다. 어른 세대가 가난을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가난 자체를 예찬한다기보다는 그 가난을 잘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었다는 자기성취에 대한 긍정의 정신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옛날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 추억’이 조금도 신명날 리 없다. 가난 이야기가 한 순배 돌아 나가자, 우리는 그 가난을 딛고 얼마나 ‘잘나가는 시절’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내 생애 최고의 시절’에 대해서 거리낌 없는 자긍심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종합무역상사의 엘리트 에이전트로서 찬란한 수출 업적의 영광을 누렸던 이야기, 해외 건설 현장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공사를 마침내 해냈을 때의 감격 넘치던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자기 체험이 모자라면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친구들의 ‘잘 나가던 시절’까지도 다 불러 모았다. 누구는 돈 많이 벌어서 호기로 기부사업하며 돈 잘 썼다는 이야기, 또 누구는 정계로 진출해 옛날 궁색함을 말끔히 씻었다는 이야기, 또 그 누구는 군대에서 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 또 누군가는 사법고시 합격해서 진작에 부잣집 사위 되었다는 이야기도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 분위기에 조금씩 어정쩡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궁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나도 한마디 하기는 해야 할 텐데. 요즘 유행하는 ‘대략 난감’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았다. 내게 ‘생애 최고의 시절’이란 어떤 때이었던가. 공부해서 선생 되고, 논문 쓰고, 책 쓰고…. 뭐 그런 이야기를 자랑처럼 해야 할 분위기 같은데, 그게 무슨 생애 최고의 보람에 들어맞기나 한 것인가. 끙끙대는 내 속을 알아차렸는지 친구들이 내 고충을 시원스레 해결해주었다. “너는 아직 정년이 여러 해 남았지 않나. 우리 대부분은 이미 은퇴를 한 신세인데. 그것만으로 너는 잘 나가고 있음을 현존(現存)으로 증명한다!” [PAGE BREAK] 2 바로 그때, M이 말문을 열었다. 은행의 고위직 간부를 하는 동안은 스케줄이 너무 가파르고 빽빽했단다. 끊임없는 회의와 의사결정의 연속 속에서 늘 시간은 부족해, 신문도 제대로 못 읽어서 부하 직원이 관련 업무 중심으로 스크랩해주는 것을 간신히 차 안에서 살펴보기 바쁠 정도란다. 중요한 사안마다 무거운 책무감으로 거듭 짓눌리는,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고, 일과 이후는 수백 개 거래 기관의 각종 경조사를 비롯한 공식, 비공식 행사들에 은행을 대표해 참석하고 귀가하면 밤 10시가 훌쩍 지나는 그런 일과였단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미루어지기 일쑤이었단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이 어김없이 말한다. “그래도 그 자리를 아무나 하는 거냐? 너 부러워했던 사람 줄줄이 줄로 서 있었다. 그게 너 잘나가던 시절을 입증하는 거야! 이 친구, 뭘 몰라.” M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자기 이야기를 계속한다. “너희들 잘 알잖아. 옛날에 내 아버지의 일 실패로 우리 집 가계 완전히 파탄 나서 생계는 암담한데다, 억울하고도 대책 없는 빚에 쫓기고 몰려, 상계동, 남가좌동 서울 변두리 외곽 가난한 동네에 셋방으로 전전하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세 동생과 함께 여섯 식구가 참 힘들게 살던 시절 있었잖아. 그 어려운 형편이 말이야, 내가 대학 들어가던 무렵부터 시작해, 군대 3년 갔다 오고, 허겁지겁 바로 직장이라고 잡아서 여러 해를 근무하며 지날 때까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더라구. 돈이 워낙 없었으니 나아질 형편이 어디 있겠어!” 우리는 모두 M의 절친한 친구들이었으므로 그 무렵 20대의 M이 겪었던 어려운 고초를 알고 있었다. M은 장남이었다. 서울대 법대를 다녔는데,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빨리 취직해 식구들의 가계와 동생들을 다급하게 돌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법대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고시공부 자체가 일종의 호사였다. 해 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M의 말이 계속되었다. “남가좌동 변두리 셋방에 살 때였어. 내가 제대해서 바로 취직해 직장 다닐 때인데, 내가 우리 가족들 생계, 또 동생들 학비 등을 대충 감당해야 하는 처지였지. 식구들이 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득 담고 있었던 것 같아. 여러 세대 세 들어 사는 집이라, 겨울 아침이면 마당 수돗가가 복작거렸어. 세숫대야에 더운물 담아 와서 세수하느라 줄을 섰었지. 동생들이 먼저 일어나 세수 순서를 잡아 놓고 있다가, 내가 일어나 나가면 얼른 그 자리를 내게 내어 주었어. 그때 통행금지 있었잖아. 고단하기 짝이 없는 일과였지. 회사 일 늦게 끝나고, 버스 종점 정류장 내려서 털레털레 들어가면, 아버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식구가 다 대문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눈빛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 방에 들어오면 누이는 마치 다정한 아내인양 옷을 받아 챙겨주고, 어머니는 얼마나 다정하게 날 다독거려 주는지. 내 목이며 팔이며 안마를 해 주었지.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 식구가 극진으로 염려하고 보살피는 거야.” M의 이야기가 약간은 청승맞아지자,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감응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따분해진 기분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친구들이 M에게 이야기의 행방을 재촉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그거 우리 다 아는 이야기 아냐?” M이 머쓱하고 한 번 웃더니, 바로 말을 이어받았다. “내 말은… 그 시절이 바로…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다는 이야기야. 부모님과 형제 가족 모두에게서 사랑과 인정과 감사와 보살핌을 그렇게 오롯하게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어.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은 바로 그 시절이었어.” [PAGE BREAK] 3 나는 M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의 삶을 그렇게 품격 있게 해석하는 그의 윤리가 한 송이 꽃처럼 고상하고 아름다웠다. 내 욕구나 소망은 밀쳐둔 채, 가족 모두의 생계를 걸머지고 허덕거리는 일상이 얼마나 고단했으랴. 힘든 고역의 팔자를 탓하기로 시작했다면, 가족인들 얼마나 성가시고 무거운 짐이었을까.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는지에 따라 우리는 천국에 다다를 수도 있고 지옥의 나락에서 고통으로 신음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에 대가족이 모여 여러 형제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속이 상해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한국인들이 좀 잘살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병통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속이 상하는 것은 나와 다른 형제들을 이기적 마인드로 비교하는 데서 생기는 불행이다. 누가 더 좋은 물건 들여놓고 잘 사는지, 누가 더 명절 준비 고생을 했는지, 누가 부모에게서 더 보상을 받지 못했는지, 누가 더 출세했는지, 누가 더 잘난 체하는지 등등 이런 것들에 열심히 이끌려 다니다 보면, 우리는 어김없이 내 행복을 내 마음에서 내몰아 버린다. 그렇게 진부하게 듣고 다니는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그렇게 실천하기 어려울 줄이야.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우리 시대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할 때 어떤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았다). “교수님께서는 장관으로, 작가로 예술가로, 교수로서 일생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하시고 큰 업적들을 쌓으셨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위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어령 교수의 대답은 좀 의외였다. “오월 봄날 제 연구실 창밖으로 젊은 학생들이 밝은 음성과 웃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간간 그들의 기쁘고 맑은 환성이 들려오는 시간, 바로 그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하고 위대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최고’란 무엇이고, ‘최대’란 무엇인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철학자 버틀랜드 러셀은 말한다. 행복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적절한 결핍’이라고. 그렇다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내가 지닌 어떤 결핍과 더불어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인가.
광복 이후 현재까지 교육과정 결정 방식은 중앙집권적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제6차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의 지역화와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자율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자율화’라는 용어는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대한 자율화는 단위학교의 요구에 의한 것도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국가에서 부여하는 제한적 자율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까지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일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중앙집권적 교육과정 결정에 익숙해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제약이나 어려움이 없이 단위학교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최근 세계화 • 정보화 사회가 도래되면서 국제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의 경우도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돼 개인이 가진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교육과정 결정에 대한 자율성 요구와 국제적 대응성의 강화 및 국민적 요구는 종국적으로 각 개인의 성장이나 발달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기 위한 자율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서 자율성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으며, 이의 성공적 적용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 결정의 특징 광복 이후 현대적 의미의 교육과정 체제가 마련된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결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중앙집권적 결정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이후 현대적 의미의 교육과정의 골격이 마련된 이후, 중앙집권적 형태로 교육과정이 결정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992년에 고시된 제6차 교육과정부터는 교육과정에 대한 지역화가 강조되고, 단위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 보다 강화됐다. 1998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초 •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서는 국가와 지역수준의 교육과정 기준과 내용의 기본적 사항에 대한 결정권이 있음이 명시되고, 단위학교에서는 이 범주 내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따라서 단위학교에서 편성 • 운영하는 교육과정은 국가, 지역, 학교를 포괄하는 전체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고,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역시 확대될 수 있는 법제 정비가 이루어졌다. 둘째, 교육과정 개정에 학업성취도 평가나 교육과정 평가에 기초해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번에 개정된 교육과정을 포함해, 광복 이후 교육과정 개정은 9차례 이상 개정됐다. 교육과정이 개정되기에 앞서 교육과정의 적용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학부모나 교사 등의 요구조사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실질적으로 학습자의 학력에 대한 평가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이를 분석해 교육과정 개정의 기초적인 자료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육과정 전공 서적을 보아도 이러한 사실에 기초한 논의 내용이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개정된 교육과정이 학습자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셋째, 2007년부터 수시 개정 체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7차 교육과정까지는 전면적이고도 일시적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됐다. 2003년 10월에 도입계획을 발표하고, 2005년 2월부터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교육과정 수시개정 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교육과정의 수시개정 체제는 일시적이고 전면적인 교육과정 개정의 비효율성, 사회변화에 따른 교육내용의 탄력적 대응,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육과정 개정 요구의 체계적 반영 등을 목적으로 한 정책적 노력의 결과이다. 교과교육연구회,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등에서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검토함으로써 개정에 대해 판단해 몇 차례의 부분적인 개정이 이루어졌다. 중앙집권적 결정 방식을 취하면서도 교육과정의 자율화를 기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육과정 개정 요구에 대응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행 교육과정 개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한국의 교육과정 결정의 특징적인 면에서 볼 때, 교육과정의 결정 방식은 아직도 국가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단위학교의 자율성은 국가에서 제시하는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2009년 12월 17일에 고시된 교육과정 역시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에 기초한 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도 교육과정 개정은 2011년에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에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은 2011년도부터 순차적으로 각 급 학교에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2007년도 개정 교육과정이 교육현장에 적용되고,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교육과정이 새로이 개정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학습자의 학력에 도움이 되는 교육과정인지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PAGE BREAK] 2009 개정 교육과정 교육현장 정착에 필요한 과제 개정된 교육과정에 대해 자율화, 다양화, 특성화 등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실질적인 대전제는 자율화이다. 각 학교가 건학 이념이나 학습자의 특성 등에 따라 다양하고, 특성화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조직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도 자율화를 요청하며, 자율에 따른 책무성 역시 부담해야 할 과제가 된다. 2009년도에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교과편제와 시간배당 등에서 단위학교 교육과정 자율화의 대상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현장 적용을 위한 과제를 특징적인 사항 위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의 소질이나 학교의 개성을 살린 창의적 체험활동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기존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한 형태로 제시된 것이다. 단순히 본다면, 이 두 영역의 통합으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교과 이외의 사항에 대해 단위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편성 • 운영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된다. 향후 이에 대한 영역과 예시적 사항이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과거 특별활동의 경우를 보면, 국가수준에서 예시적으로 제시한 것에 한정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시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단위학교의 실정에 적절하게 이를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학업성취도에 대해 국제비교를 수행한 PISA와 TIMSS의 결과와 더불어 관련 연구 성과물을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학업 성취도는 높게 나타나지만, 해당 교과에 대한 흥미나 동기수준에서는 더 낮게 나타나고 있다. 특정 교과에 대한 교육방법상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고, 정의적 측면의 보완을 요청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와 별개의 활동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교과활동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교과집중이수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교과군이나 학년군을 활용해 교과를 집중이수 하고자 하는 제도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새로이 제시된 개념은 아니다. 2007년도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에 대한 사항이 제시되고 있다. 아마 교육현장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시간표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사항도 고려해야 한다. 학년군은 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교과군은 횡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수업시간이 적은 교과에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지만, 횡적이고 종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전체적인 관계를 고려한다면, 학년 간의 연계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의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학교급 간의 연계 역시 쉽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 교과군이나 학년군의 방법을 활용할 경우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교과별 평가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학년별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개별 교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교사의 고유 권한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평가에 대해 고유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에 기초해 평가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사의 평가에 대한 고유 권한을 주장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교과(군)별로 20%를 증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위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과 다른 교사와의 협력 관계를 통한 학교 내부의 노력과 더불어 지역수준과 국가수준에서 모형의 개발이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 된다. 셋째, 고등학교의 경우는 대학입시와 관련해 각 대학에 해당 학교의 특성을 알리기 위한 자료 제작과 더불어 학부모에게도 학교의 특성 등에 대한 편람을 제작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학에서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자신의 대학에서 수학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입학사정관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 외 연수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의 주요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대학의 노력과 병행해 고등학교의 경우도 자신의 학교에 대한 특성에 부합하는 대학에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외국에서 행하고 있는 방법과 같이 학부모 등에 대해서도 편람 등의 형태로 자신의 학교가 가지는 특성과 부합하는 전공 및 대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단위학교 내 교육과정 결정에 대한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운영 체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 결정과 운영을 위한 기구가 있다고 하지만, 이들 기구가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간다. 단위학교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학습자의 성장이나 발달을 돕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사에게 전문적 자율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서 학습자의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에, 개별 교사는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다른 교사와의 협력 관계에 의해 보다 충실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별 교사나 교사집단의 자율체제로서만 교육과정의 운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학교 내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지원 조직의 협조체제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전면적인 주5일제 수업에 대비해 지역사회의 자원 활용 및 연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시 • 도교육청에서는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을 보다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한 컨설팅 체제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시 • 도교육청에는 교육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 있지만, 인력이나 여타의 업무 부담으로 인해 단위학교에 대한 교육과정 컨설팅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교사나 지역의 전문가를 통한 자문이나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여섯째, 국가 차원에서도 교육과정의 원활성을 기하기 위한 다양한 모형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개정에서 국가 교육과정을 ‘기준’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보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 교육과정의 모형으로서의 기준, 교육과정의 편성에 해당되는 기준,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의 기준의 기준 등 다양한 해석이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편성 • 운영 지침’을 보면, 단위학교에서 편성하고 운영해야 할 기준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국가는 ‘고시’한 교육과정을 단위학교에서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준 이외에 단위학교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다양한 모형을 개발해 보급함으로써, 단위학교에서 학생의 특성이나 학교의 특성을 고려해 이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PAGE BREAK] 앞으로 단위학교에 더 많은 자율성 주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교육과정의 결정방식은 그 사회의 역사적 환경이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중앙집권적 방식은 국가수준의 기준을 확립하고, 교육의 일정수준을 유지하는데 이점이 있지만, 단위학교의 자율성 확보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비해 분권화된 방식은 단위학교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되지만, 교육의 일정수준 유지에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은 그 나라가 처한 교육과정 결정 방식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집권적 국가는 분권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분권화된 경우는 집권화된 경향을 추진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어느 한 방향에 대해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집권화된 방식의 교육과정 결정 체제를 지니고 있으며, 이 방식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단위학교의 자율성은 국가수준 교육과정 내에서 제한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과정 개정을 거듭할수록 단위학교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자율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화에 대한 모든 사항이 한꺼번에 성공적으로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이나 학교가 주도적으로 행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과감한 이양이 필요할 것이다. 수시개정 하더라도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안정성 지향해야 현재 교육과정 개정 방식이 수시 개정 체제를 취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너무 자주 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주요 골격 위주의 핵심적 사항이 제시됨으로써 안정성을 취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 단위학교에서는 학습자나 학교의 특성에 맞도록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이 융통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시 • 도 교육청은 지원체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개정에서 각 교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조정능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단위학교의 교육내용은 학습자의 성장이나 발달에 최우선이 두어져야 하지만, 교육관련 당사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교육과정의 개정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안을 도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필요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관련 당사자의 공정한 역할 분담과 이에 따른 최대 공약수를 산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mentee 교직생활에 대해 처음에는 막연히 수업만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생활지도 역시 무척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면서 수업준비도 벅찬데, 생활지도까지 함께 신경을 쓰려니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수업과 생활지도 두 가지를 모두 무리 없이 잘해낼 수 있을까요? mentor-김웅철 | 제주 대정고 수석교사 교과지도와 학생지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 교단에서 학생들과 씨름하다 보면 수업시간과 학급활동 시간, 그리고 생활지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무슨 방법을 써야 일관되게 지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지요. 간혹 선생님들이 “난 수업만 잘하면 된다. 생활지도야 학생부 선생님들이 하는 거지 뭐” 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교과지도와 학생지도는 별개가 아닙니다. 저는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는데 잊지 말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아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현재의 학생실력수준을 교사와 학생 서로 간에 인정하고 학습자의 부족한 분야를 보충하려면 솔직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칭찬하는 방법으로 학습자 개개인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자기중심학습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가 됐습니다. 따라서 교실수업과 교내외 생활지도까지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수업에 학생들의 입장 반영해야 가령 교재내용에 청소년흡연으로 인한 해악이 정의적으로 학습목표의 일부가 되었다면 음주, 흡연 등으로 주목받는 학생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것입니다. 이때 학생들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주거나 자신들의 음주 흡연사실을 반성하고 개전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도와줘야 수업목표에 도달할 수도 있고 학생지도에도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흡연만 떼어놓고 생각할 때 흡연학생 자신 때문에 타인이 간접흡연의 폐해를 입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 금연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선생님들이 간과하기 쉬운 가정환경은 대단히 중요한 변수입니다. 스스로 사회적 약자라고 여기는 빈곤층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이 재정적으로 파탄 난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경우 영어교사인 저는 ‘온실 속의 꽃보다 바람 맞은 들꽃이 더 향기롭다’, ‘지진 난 땅에서도 샘물을 찾을 수 있다’같은 속담과 모네와 마네에 관한 이야기를 영어로 설명하며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려 했습니다. 난감해질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때는 이해는 물론 인내와 사랑이 필요하겠지요. 친근감과 신뢰를 듬뿍 안겨주는 상담이 최고의 영약 고향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저는 초년병시절 생활지도를 담당하면서 우범지역을 돌아보는 교외지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생활의 이모저모를 잘 파악해두니 학생들 사이에서 ‘저 선생님께는 사실을 털어놓고 혹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받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 돌았고, 당시 유행하던 TV 드라마의 주인공인 형사 ‘콜롬보’라는 별명도 얻게 됐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시절부터 체득한 생활지도의 경험은 가장 소중한 학생지도의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렵게 살아가던 학생들 중에 불량서클을 결성하는 경우가 흔했지요. 저는 두 개의 불량서클을 용기를 내 해체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업시간에는 늪에 빠져버린 학생들에게 학업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가면서 교실수업과 학생지도를 같은 맥락에서 지도해나갔습니다. 물론 친근감과 신뢰를 듬뿍 안겨주는 상담이 최고의 영약이었지요. 외국에서 연수를 받을 때 학급담임 선생님과 카운슬러 선생님들이 활동 중에 유기적인 협동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며, 학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교단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페스탈로치와 신사임당의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지 않듯,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한 뿌리를 가진 하나의 교육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 두었으면 합니다.
서랍을 칸칸으로 구분하듯 통장도 용도별로 구분하자 먼저 우리집 책상 서랍을 떠올려 보자. 책상 서랍이 칸칸으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모양일까? 볼펜, 종이, 손톱깍기, 실, 바늘 등 모든 잡동사니가 한데 뒤섞여서 뭐 하나 찾으려면 온 서랍을 다 뒤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필기구는 필기구 통에, 실과 바늘은 실바늘 상자에 용도별 칸에 물건들이 제자리를 들어 있는 서랍을 상상해 보자. 서랍을 여는 것만으로 한눈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칸칸이 정리된 서랍의 효용을 돈 관리에 응용한 것이 통장 쪼개기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통장 쪼개기는 용도별로 통장을 만들고 해당 통장에 예산만큼의 돈을 매월 이체하고 통장을 사용할 때는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예산만큼의 돈만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용도별로 통장이 쪼개져 있기 때문에 통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득과 지출 저축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장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이 좋을까? 그럼 용도별로 통장을 어떻게 쪼개는 것이 효과적일까? 우선 우리집 지출내역을 변동지출과 고정지출(주로 자동이체)로 나눠보자. 변동지출은 대표적인 것이 식비, 외식비, 의류비, 미용 같은 것으로 예산관리를 하지 않으면 과소비가 발생하기 쉬운 항목들이고 주로 마트나 시장에서 사용하는 항목들이다. 이 항목들을 마트통장으로 묶어서 사용한다. 그다음 고정지출은 교육비, 용돈, 통신비, 주거생활비같이 한번 정해지면 잘 바뀌지 않는 항목들이며 주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돈들이다. 이런 고정지출은 대부분 급여통장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추가로 통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다음에 꼭 만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통장을 하나 있다. 바로 연간비용통장이다. 연간비용은 명절, 경조사, 자동차보험, 휴가비, 여행비처럼 매월이 아니라 연간으로 지출되는 비용들을 말한다. 이 연간비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일년 내내 플러스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연간비용을 계산한 후 연간비용통장을 만들어서 매월 적립해 필요할 때 사용하면 명절 때가 되었는데 막상 돈이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야 하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통장에 따라 이체방식도 달리해야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변동비에 대한 이체방식이다. 변동비는 생활비의 개념인데 한달에 한 번 이체해 2~3주 만에 이체한 돈을 다 써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변동비는 매주 한 번씩 이체하는 것이 좋다. 이때는 예약이체 기능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그리고 연간비용의 이체방식은 수입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매달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고 보너스나 상여금이 불규칙적으로 지급된다면, 그 수입을 연간비용통장으로 바로 입금하고 모자라는 금액만을 12로 나눈 후 매달 급여에서 이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정기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지출을 늘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겉보기에는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는 국경없는 마을 작년 5월 지식경제부가 다문화특구로 지정한 경기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은 하나의 작은 지구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이곳에는 50여 개 국가에서 온 3만 5000여 명의 외국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외국인의 비중이 전체 주민의 60%에 이를 정도로 높다. 하지만 외국인이라고 해도 외모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중국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특별한 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작정 방문했다가는 실망하고 돌아서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국경없는 마을은 그냥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평범한 마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경없는 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유락시설이나 유려한 장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약간의 도움만 받는다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 그리고 인권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갈 수 있다. (사)국경없는마을의 다양한 다문화 체험프로그램 안산에 처음 외국인들이 정착할 무렵부터 이주민 문제와 관련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온 ‘사단법인 국경없는마을’은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자 둘도 없는 안내자이다. 이미 다문화교육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안산시교육청과 MOU를 체결하고 관내의 방과후학교와 공문번역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국경없는마을은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체험학습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체험학습프로그램은 크게 ‘찾아오는 다문화체험교실’과 ‘찾아가는 다문화체험교실’로 나눌 수 있다. 찾아오는 다문화체험교실은 안산 국경없는 마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학생뿐 아니라 교사를 비롯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수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롤플레잉 게임으로 배우는 다문화 찾아오는 다문화체험교실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RPG이다. RPG는 컴퓨터게임의 한 장르인 롤플레잉게임(Role-playing Game : 역할수행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채용한 것으로 참가자에게 임무를 주고 국경없는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참가자에게 몇 가지 힌트를 주고 어떠한 물품을 구해오라는 미션이 주어지면 참가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물품을 구해오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참가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물건을 구입해야 해서 흥정이 필요할 수도 있고, 중간에 힌트를 주는 사람이나 해당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한국말에 서툴러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임무를 수행하다보면 다른 문화와 물품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쌓이는 것은 물론 문제해결 능력도 향상된다. [PAGE BREAK] (사)국경없는마을이 전하는 다양한 문화의 맛 (사)국경없는마을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돌아보는 것 역시 다양한 문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국경없는 마을에는 다양한 나라의 여러 상점이 있지만,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들이기 때문에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도 메뉴판의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소개된 몇몇 식당에서 카레나 쌀국수 정도의 평범한 음식만 먹어볼 뿐이다. (사)국경없는마을의 김승일 사무국장은 “한 끼를 한 식당에서 모두 해결하는 우리 식습관 때문에 음식으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아쉬워 한다. 그는 “이곳에서는 조금만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한 끼에 여러 가지 맛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한 식당에 들어가 에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고 그 옆에 있는 다른 식당에서는 본 식사로 고기를, 마지막으로 입가심은 다른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는 식으로 해도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비용부담 없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나라별로 독특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감상할 수도 있다. 보통 다른 지역의 식당에서는 이렇게 하면 업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식당 외에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 국가 이주민들이 십시일반 해 만든 이슬람사원을 비롯한 종교시설과 다문화공방, 다양한 상점이 있고, 2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중국 파륜궁 집회나 클럽데이 같은 다양한 문화행사도 볼 수 있다. 소득수준이 낮은 이주민 노동자가 많은 지역특성에 따른 독특한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곳에는 8500원 하는 저렴한 마루식 뷔페식당이 많은데, 외국인들이 양반다리를 불편해하자 업주들이 외국인 손님들에게 목욕탕 의자를 제공, 상 앞에 목욕탕 의자를 놓고 앉아 식사를 하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된다. 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사가 잦아 새 물건보다는 중고품 중심으로 시장이 발달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사)국경없는마을은 이러한 정보를 가득 담은 국경없는 마을 가이드북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학교로 찾아가는 다문화체험교실 찾아가는 다문화체험교실은 학교로 강사를 파견해 방과후학교 등을 진행하거나 다문화부스를 설치해 학생들이 다문화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 안산지역에서는 교육청과 MOU를 채결하고 방과후학교 형식의 다문화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형식의 수업은 현재 서울, 경기 일원을 중심으로 점차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국제이해’가 수업의 중심을 이뤘지만 요즘은 문화체험 위주로 변화했다. 여러 나라의 춤, 노래, 동화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배운 내용을 다른 장르로 표현해 내는 놀이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호응이 좋다. 다문화부스는 학교의 요청에 따라 여러 국가 출신자들로 행사단을 구성해 학교에 각국의 부스를 설치, 학생들이 교내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행사규모는 학교 측의 요청에 따라 결정되는데, 소규모 행사의 경우 보통 12명 정도의 인원을 투입돼 5~6개국의 문화체험부스가 설치되며 비용은 거리나 제반사항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120~200만 원 정도다. 프로그램은 전통 의상, 악기 등을 직접 만져보고 음식을 먹어보는 체험활동부터 전통인사법, 전통공예를 배워보는 것까지 학생들이 오감을 모두 활용하도록 유도해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 관람정보 (사)국경없는마을의 체험프로그램은 대부분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맞춤형 프로그램이므로, 참가를 원할 경우 전화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협의하는 것이 좋다. ○문의전화 031) 402-8786 ○홈페이지 www.bvillage.or.kr
“부부가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책, 영화, 방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 읽어주는…’이라는 제목을 가진 것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그만큼 책 읽기가 중요하기 때문이겠지만, 너무 유행하다 보니 상업적인 냄새가 나서 지금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 책 읽어주는 남편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젠 남편까지 나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가뜩이나 부권이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 책 읽어주기 의무까지 더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 순간 표지 하단을 감싸고 있는 띠지에 적혀 있는 한 줄의 글이 제 눈과 손을 이 책으로 이끌었습니다. “부부가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도종환(시인) 이 문구 양옆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무척이나 다정해 보이는 부부의 사진도, 특별한 로맨스나 낭만으로 치장되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했습니다. 저자가 책을 읽어주게 된 계기는 아내의 대상포진이었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힘들게 참아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겠다는 생각하던 차에 아내가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는 것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첫 책 읽기를 마치고 더 큰 행복감을 느낀 사람은 오히려 책을 읽어준 저자 쪽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서 아내에게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책을 읽어주겠다고, 아니 둘이서 함께 책을 읽자고 말입니다. 뜻밖의 제안에 아내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면서도 속으로는 반기는 눈치였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내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아내에게 책을 읽어준 내 자신이 흐뭇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 만족스럽습니다. 기꺼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책 읽어주는 남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5쪽) 행복은 함께하는 데 있는 것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듣게 되는 것 중 대화가 단절된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도 오가다 잠깐만 봐도 드라마든 뉴스든 하루도 이런 이야기는 빠지질 않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혀를 차며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하죠. 하지만 이런 일들은 분명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쩌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조차 제법 많은 수가 집에서는 외딴섬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을 지 모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막연히 관심사가 다르다는 핑계나 작은 귀찮음 때문에 고쳐보려는 시도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요. 이 책을 보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책읽기든, 대화든 하면 함께하면 할수록 꺼리가 더욱 풍부해진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감정적 • 유전적으로 묶여 있는 가족이라면 더욱 쉽게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기조차 싫을 정도로 추운 겨울밤, 따뜻한 방에 앉아 이 책 책 읽어주는 남편을 부모님께,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읽어주는 것으로 한발 다가가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