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7,37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말도많고 탈도많은 교원평가제 시범운영결과를 놓고 한국교육개발원이 `2007년 교원능력개발평가 선도학교 운영결과'라는 주제로 지난달 30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정책포럼을 열었다고 한다. 교사들 간의 상호 평가에서는 `우수'하다는 응답이 91%에 달했으나,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평가해 매긴 학생 수업만족도는 60%에 그쳐 동료교사평가 결과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학생에 대한 학교생활만족도는 52.8%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사들은 동료교사 평가에 매우 관대한 것으로 분석했다고 했다는데, 이 부분에 할 이야기가 있다. 동료교사를 평가한 부분에 대해 무슨 근거로 교사들이 서로 관대하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실제로 교사들이 볼때 동료교사가 '우수'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는 것은 왜 언급되지 않았는가. 교육개발원에서는 현재의 교사들은 수업을 잘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책포럼을 연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왠지 씁쓸하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놓고 언론의 기사쓰는 태도도 가관이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이를두고 '교사들이 집단이기주의와 온정주의에 빠져 스스로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하는 관행을 없애지 않으면 교원평가제는 유명무실할 것이란 지적이다.'라고 표현을 했다. 집단이기주의, 온정주의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표현이다. 교사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교사들이 잘 했기에 그렇게 결과가 나왔는지 이에대한 언급은 없다. 무조건평가결과가 낮아야 하는데, 높게 나온 것 자체를 문제삼는 태도는 옳지않다. 결과적으로 학생이나 학부모의 평가결과는 옳고 교사들끼리의 상호평가결과는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결론으로 받아들이고정책포럼을 열거나 기사를썼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왜 교사들은 못믿고 학생과 학부모만 믿는 것인가. 그리고 평가자가 서로 다른데, 비슷한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우수'가 아닌 '보통'이하로 나와야 한다고굳게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사들의 평가결과를 믿지 못하는 인상을 강하게 주면서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라고 압박하는 이유 역시 앞,뒤가 안맞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큰데, 교원평가시범운영 결과를 두고 추측성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평가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이럴것이다라는 추측을 앞세워 시범운영결과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것도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결과는 옳고, 교사들끼리의 결과만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추측은 교사들의 평가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가결과를 믿어주어야 서로의 신뢰도를높일 수 있는 것이다.무조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억지로 맞추기 위한 쪽으로 기사를 써 내려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교육개발원역시 그런 잘못된 시각으로 정책포럼의 결론을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학생의 수업만족도와 학부모의 학생에 대한 학교생활만족도, 교사들간의 동료평가가 왜 같게 나와야 하는가. 평가라는 것이 모두 같게 나와야 한다면 더이상 평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교사들의결과도 소중히 받아들이고 학생들의 평가결과도 소중히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린후에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교육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것이다. 무조건 교사들을 나쁜집단으로 몰아가서 흠집을 낸 후 교단에서 억지로 몰아내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없이 교원평가만 강행한다면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또한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은채 제도의 도입만 앞세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아무리 생각하고 노력해도 객관성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성과급과 근평에서 동료평가를 하면서 많은 교원들이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정책포럼도 열고 관련 기사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추측성 결과분석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학년말이 되면 지자체나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모범학생 추천 요구가 줄을 잇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본받아 배울 만한 본보기라는 모범이 된다는 것, 타인에 본이 된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시대사회상에 따라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의미는 변해왔습니다. 봉건왕조시대, 산업화시대의 모범의 의미는 사회의 규율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질서에 순종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사는 오늘 21세기의 모범의 의미는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11월 27일 국내 굴지의 종합일간지에 실린 삼성종합기술원에 병역특례연구원으로 입사한 김지원(金智元·22)씨의 이야기는 현대의 모범의 의미를 생각하게하고 있습니다. 신문제호가 ‘고액연봉' 거절하고 MS·구글 애태운 천재의 귀국’이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보면 김지원씨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MIT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컴퓨터·수학 복수 전공으로 학부·석사를 각각 3년, 1년 만에 조기 졸업했답니다. 학부 졸업 후 미 최고 엘리트 사교 모임인 ‘파이 베타 카파 클럽(Phi Beta Kappa Society)’에도 뽑혔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천재의 이야기 같습니다만 그가 밝힌 성공 비결은 자신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한 것’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는 지금도 세계최고의 기업인 MS나 구글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등 스카우트에 적극 나선 상태지만 그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지난 9월에는 석사학위를 받은 후 구글·MS에서 박사 학위자 이상에게도 줄까 말까 한 고액 연봉을 제의 받았지만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귀국했다고합니다. 현직 교사로서 신문에 실린 김지원씨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오늘날의 모범의 의미는 봉건왕조시대나 산업화 시대의 모범의 의미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사는 오늘을 글로벌 사회라고들 합니다. 국가와 겨레의 동량지재인 오늘의 청소년들은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끼리 상대하고 우리 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아닌 세계인과 어깨를 겨루고 세계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지구촌 시대의 일원들입니다. 그런 세계의 주역들은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도전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개척인의 의지가 오늘날 요구되는 모범의 의미일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본다면 위의 김지원씨 이야기처럼 21세기형 모범생은 겨레와 조국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국방의 의무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김지원씨 경우와는 다르게 지만 한창 각광 받는 엔터테인먼트로 활약하다가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연예인들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호감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21세기형 모범생은우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진로지도 연수를 받은 중·고등학교 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학생들에 대한 진로지도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들중 학교 현장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살펴보자. 첫째, 중·고등학교의 학생 진로지도를 위한 자료나 정보 보유 정도에 대해 ‘불충분하다’는 응답이 69.3%로 가장 많았으며, ‘매우 불충분하다’도 19.8%를 차지해, 10명 중 9명이 각 학교의 진로지도 자료 보급이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둘째, 학생들 진로지도시 애로사항으로는 ‘진로지도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32.1%를 차지했으며, 전문 인력 부족(15.3%), 교사 인식부족(10.3%), 진로교육과정 및 프로그램 부족(10.0%) 등이 뒤를 이었다. 셋째, 진로지도를 위해 학교 내에 직업정보 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응답은 7.8%에 불과하였으며, 96.7%가 직업정보 자료실을 운영하기를 희망했다. 넷째, 학교에서 실시할 수 있는 진로지도 방법에 대해서는 이상적으로는 현장체험학습이 좋지만, 현실적인 여건 등을 감안하면 재량활동 시간에 진로수업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다섯째, 학생들 진로지도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로는 ‘심리검사결과 해석을 위한 지침자료’가 32.5%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유망직업 및 직업사전과 같은 정보’가 25.9%, ‘대학 및 학과 정보’ 20.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여섯째, 진로지도 활성화를 위해 교육행정당국에 대한 요구사항으로는 진로교육을 정규 교과목화 해달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24.2%를 차지했으며, 진로지도 전담교사 배치와 교사들에게 충실한 진로지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각각 19.4%로 뒤를 이었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진로지도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상당 자료가 워크넷이나 커리어넷, 유코넷 등에 탑재가 되어 있다. 전국의 수천개 학교에 수만개의 중고등학교에 각기 자료를 만들어 보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터넷을 통하여 진로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교사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하면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실제로 학교에 진로정보를 보내도 담당교사가 충분히 전달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학교의 도서실을 활용하면 굳이 진로정보센터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노동부의 취업지원사업을 통하여 많은 전문계 고교에서 진로정보센터를 갖추고 있으나 그 활용에는 의문이 든다. 기존의 도서실 시설을 잘 활용하여 진로정보코너를 두어 앞으로의 직업과 사회의 변화 등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탐색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로지도 활성화 위해 진로교육 정규 교과목화 관련 요구에 대하여 현재 교육과정에서 진로와 직업은 선택과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교사는 매우 잘 가르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교사도 상당수 있다. 현재 진로와 직업에 대한 교사과목 표시도 없다. 그 결과 수업시수가 남는 교사들이 운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들이 커리어넷의 사이버로 연수를 우선적으로 이수하도록 유도하여야 하겠다. 더구나 앞으로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논술이 강조가 되면서 진로와 직업선택비율이 낮아질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선택과목에서 진로와 직업을 더 많이 선택하도록 유도를 하여야 하겠다. 실제로 중고등학교에서 진로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애로사랑은 시간부족으로 진로에 할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량활동으로 하려고 하여도 시간을 날수 없는 것이다. 가능한 토요일 같은데 진로교육 전문가등과의 대화시간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심리검사 정보, 직업에 관한 정보 등 각종 정보가 없다고 하지만 말고 교사들도 자신만의 진로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노하우를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 가족이 각기 다른 시각에 식사를 하는 것은 이젠 어느 가정이나 예사로운 일이다. 옛날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은 모양의 상(소반)을 차려 주는 일은 극히 찾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도 일반 가정집에는 한두 개 정도는 있을 정도로 우리와 친숙한 것이 소반이다. 그동안 서양식 문화와 핵가족화가 팽배해지면서 복잡한 것보다 간단한 것을 원하고, 힘든 것보다 수월한 것을 택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가정에서는 미끈하게 빠진 긴 다리의 식탁이 가족들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외상받기의 흔적 간직하는 소반 우리 옛 가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상받기를 즐겨했다. 특히 상류 가정에서는 어른은 물론 어린이까지 거의 외상을 받았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을 소반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외상은 소반을 의미한다. 필자는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신 외상을 여러 번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어머니가 나만을 생각하며 차려 주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가 받은 외상은 팔각형 반에 유유하게 흐르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멋진 다리를 가진 것이었다. 설강(상을 올려놓기 위해 처마 밑에 나무막대를 두 줄로 만든 상 보관 장소) 위에 정갈하게 정리해 둔 소반들이 그립다. 기나긴 역사가 흘러 생활의 규모와 제도는 바뀌었지만 소반은 우리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고 전통미와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문헌이나 유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소반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세기경의 고구려 각저총의 ‘현실 북벽 부부상’과 무용총의 ‘조실 묘주’의 그림에서 여자들이 소반에 음식을 담아 옮기는 모습은 우리 역사 속에서 소반 문화가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조선시대에 소반과 같이 이동하기 편리한 소형의 상이 사용된 것은 유교 이념인 남녀유별,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의 사상적 영향으로 겸상보다는 주로 독상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공간적으로도 부엌과 방이 멀고 규모가 작으면서 좌식생활을 하는 한식 온돌방에 적합했다. 조선시대 목공을 다루던 장인은 소반을 통해 작지만 큰 세계를 만들어냈다. 소반의 아름다움을 찾아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그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기로 하겠다. 온돌문화로 꽃피운 독특한 문화 소반은 그 집안의 가도(家道)나 지방의 특색에 따라 종류와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그중 지역의 특색이 두드러지는 것이 통영반(統營盤), 나주반(羅州盤), 해주반(海州盤), 충주반(忠州盤) 등이다. 소반의 종류는 재료와 장식,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지워진다. 재료에 따라 자개반, 흑칠반, 주칠반, 행자반(은행나무로 만든 소반) 등으로 불리고, 형태에 따라서는 8각, 12각, 장방형, 4방형, 원형, 반월형(半月形), 연엽형(蓮葉形), 화형(花形)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다리는 모양에 따라 구족반(狗足盤), 호족반(虎足盤), 죽절반(竹節盤), 단각반(單脚盤) 등으로 불린다. 상다리는 주로 4개의 다리와 2개의 판다리 형식이 많다. 특히 다리가 4개인 것은 개, 고양이, 용, 범의 형상으로 만들어, 그에 따라 상의 이름도 안개다리상, 괭이발상, 용발상, 범발상 등으로 불렀다. 이처럼 소반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한 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적 취미와 기호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소반의 높이, 그리고 판면의 길이와 너비는 온돌방에 앉아 식사하는 한국 사람의 풍습에 맞게 만들어졌다. 보통 민가에서 쓰이는 소반의 크기는 그 너비가 50㎝ 내외이다. 이 너비는 한 사람이 소반을 받쳐 들고 부엌에서 마당을 지나 대청을 오르고 그곳을 건너 안방이나 사랑방으로 옮겨가는 데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도록 계산된 크기이다. 보통 성인의 어깨 넓이를 넘지 않게 하여 양팔에 부담을 덜 주도록 만든 소반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난 우리 민족의 지혜의 산물이다. 높이도 25∼30㎝ 내외로서 몸을 심하게 구부리지 않고 팔을 움직이는 데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소반의 쓰임새에 따라서는 식반(食盤), 주안반(酒案盤), 공고상(公故床), 제상(祭床), 교자상(交子床), 대궐반(大闕盤) 돌상[百玩盤], 약반(藥盤), 춘반(春盤), 과반(果盤) 등이 있다. 판면의 재료로는 은행나무, 호두나무, 가래나무, 오동나무, 피나무, 느티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었고, 다리는 소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등을 주로 썼다. 마무리 작업인 표면의 칠은 생칠(生漆), 주칠(朱漆), 흑칠(黑漆)과 같이 일반 식물성 기름칠을 하여 소반이 트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막고 방수가 되게 하였다. 붉은 빛이 도는 주칠은 혼례용과 궁중용으로 쓰였고, 검정색이 나는 흑칠은 주로 제사용에 사용되었다. 지역별 특색 반영한 독창성 지녀 소반은 우리나라 주거 양식인 온돌문화와 주거 공간에 가장 잘 맞는 살림살이 용구 중의 하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였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생활 용품이다. 옛 소반들은 제각각 빼어난 균형미와 비례미를 갖추면서 한국 목공예의 아름다움은 물론 각 지역의 지리적 특색을 반영한 자재와 기교, 다채로운 장식 문양 등이 표출되어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소반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거 공간이 평좌식의 생활로 변화하고 온돌방 구조로 정착되면서 앉아서 생활하는데 적합한 형태로 바뀌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회 규범과 신분 질서가 엄격하여 가옥의 구조도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었고, 그러다보니 일하는 공간이 넓어지고 운반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생활공간에서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형태의 규모와 구조로 제작된 것이다. 경상도 지역의 통영반은 전 둘레를 꽃잎 모양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다리는 판 밑에 홈을 파서 물리고 다리 네 면을 돌아가면서 두 줄의 띠를 둘렀으며 판 밑 부분과 위 띠 사이에 초엽을 끼운 것이 특징이다. 초엽은 참대마디, 국화, 넝쿨, 구름 등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통영소반은 바로 이 초엽조각장식으로 이름이 높다. 통영반은 튼튼하면서도 나주반에 비하여 제작이 편리하고 실용적이어서 그 구조가 널리 통용되어 최근까지도 통영반의 형태가 밥상의 정형이 되고 있다. 다리는 아래로 굴곡진 죽절을 하고, 다리 또한 죽절문양을 하였다. 전라도 지역의 나주반은 모를 죽인 네모난 소반이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나주는 지형이 한양과 유사하다고 해서 소경이라 했고 토질이 비옥하고 호남 지방의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한반도 서남부의 문화 중심지였다. 게다가 서남해안의 조공품인 황칠이 나주를 통하여 공급되었으며, 조선왕조의 본관인 전주와 인접한 지역이어서 왕가 또는 집권 계층인 사대부 계층과 교류가 많았던 탓인지 목공품이 유명해졌다. 판면 아래에 좁은 띠와 중띠를 두르고 다리는 둥글고 곧게 뽑았다. 잡다한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이 없으며 나뭇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생칠을 썼다. 나주반은 꾸밈새는 없으나 견고하고 튼튼한 짜임과 투명하고 붉게 피어오른 부드러운 광택의 칠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잘 피어오른 생옻칠의 목기를 나주산이라 말할 정도이고 실제로 나주반이 널리 사랑을 받았다. 보편적인 형태의 나주반은 상판에 운각을 정사각형의 특이한 형태로 네 귀를 귀접이하고 끼워 넣었으며 그 위에 다리를 세웠다. 변죽을 접합하였으며 운각은 견고함을 위해 간결한 민문양을 달았다. 해주반은 투각무늬가 있는 판다리를 붙인 네모난 소반이다. 간단한 것은 다리밑 전을 삼각형, 사각형, 복숭아 모양으로 깎아내고 좀 복잡한 것은 아(亞), 수(壽), 복(福) 등 글자무늬를 도려냈으며 가장 복잡한 것은 연꽃, 매화, 국화 등 꽃무늬를 뚫어 새겼다. 상판은 장방형의 네 귀를 능형으로 굴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게 하였고 판은 두꺼운 통나무 판을 파내어 제물 변죽을 만든 통판이다. 해주반의 특징은 양쪽의 판각과 운각이 모두 투조의 조각판이라는 점인데 장식성이 강해서 기능적인 구조는 약해진 것이 흠이다. 공예 본질의 아름다움 지니고 있어 좋은 공예작품일수록 그 아름다움의 본성이 건강하고 정직하다. 공예가 건강하다는 것을 구조가 착실하고 그 용도에 따라 주어진 기능이 쓸모 있다는 뜻일 것이다. 목공예 작품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반은 색채에 허식과 잔재주가 없으며 따라서 아첨할 줄 모르는 공예 본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서민의 일상생활에 쓰인 소반은 바로 건강과 정직의 아름다움이 멋지게 발로된 경우이다.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든 무의식적인 손맛이었던 간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생활 속에서 숙련되어온 한국미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목공예나 죽공예와 같은 공예품들은 19세기말부터 불어 닥친 개화의 물결 속에 무분별하게 소외당하면서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이젠 그 명맥에 대한 장래가 걱정된다. 그 중 소반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실정까지 이르게 되었다. 키 높은 식탁과 간이 ‘호마이카상’에 밀려 어쩌면 장식용 정도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낱 조선시대 반상에 불과했던 소반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매우 넓은 폭으로 애호가가 번져나가고 있는 것은 전통의 존엄함을 고수하면서 근대 감각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단순미와 소박미 그리고 대담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반은 각 지방마다의 풍토색이 농후하게 깃들여 있으면서도 재료 자체를 매우 분별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용도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분수에 맞게 설계된 것도 특징이다. 말하자면 세계 어떤 민족의 성정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성정이 담긴 작지만 넓은 마음을 표현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것이다. 소반의 빛깔은 어둡지만 탁하지 않고,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빛깔에는 몇 달에 거쳐 정성스럽게 만든 장인의 숨결이 녹아 있을 뿐 아니라, 지혜로운 선조들의 일상이 담겨있어,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우리 생활문화의 한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다. 소반은 우리의 문화가 좌식에서 입식으로, 소반문화에서 식탁문화로 변화되면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러나 부드럽고 평화로운 민족의 정서를 머금고 수세기를 함께 지내온 그 정신만큼은 온전히 지켜야 할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제 제99호 소반장 이인세 옹은 소반장의 진정한 솜씨는 좋은 목재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인세 옹에 의하면 “사실 한국의 소반은 일본인들이 더 좋아한다. 일제강점기 소반의 미를 깨닫고 그것의 종류와 쓰임새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책 조선의 선을 낸 것도 일본인이었으며, 지금에 와서도 그 가파른 언덕을 용하게도 찾아와 물건의 가치를 찾아주는 이들도 일본인들이 많다”고 하였다. 한국의 소반은 동양문화권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우리 것을 지켜가는 일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오늘의 현실을 앞질러 전진해야 할 현대 한국 공예의 중흥을 위해서는 한국 공예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성실한 한국 공예기술의 현대적 해석을 면밀히 해야 한다. 끝 연재를 마치며… 오래 전 저는 우현 고유섭 선생과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옥고를 통해 한국미에 대한 열정과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두 분의 영향으로 한국미의 본질과 독창적인 한국미감을 찾으려고 노력한 지도 어언 2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미술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아름답고 중요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분에 넘치지만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일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하지만 정작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태극문양이나 한복, 초가집 정도를 우리 것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모두가 선천적으로 고유한 미의식과 미적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문양이나 조형물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독창적인 한국적 미감과 미의식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민족의 선천적 미의식을 일깨워 주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한국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아직도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 것을 찾아내는 데 의지와 열정이 많이 부족하고,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아하, 그렇구나!’라며 감탄하고, 심금을 울릴 만한 글 솜씨도 갖추지 못해 항상 아쉽고 걱정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교육을 통해 일 년 동안 ‘한국의 美’를 연재하면서, 작은 부분이나마 한국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어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더 넓은 한국미의 세계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교육 독자들과 졸고를 더욱 빛나게 해준 새교육 편집팀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우리 민족의 영웅 판타지, 이순신 어렸을 적 학교에서 읽으라던 책들은 대부분 위인전이었다. 그것도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던진 애국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가깝게는 한국 전쟁부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 구한말을 거쳐 멀리 병자호란에 임진왜란, 더 멀리 고려 시대와 삼국 시대까지 외적의 침략에 강력히 맞서 민족의 오늘을 있게 한 숭고한 위인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책장을 막 넘겨가던 ‘어린 나’를 있게 한 주역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조상님들께서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그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뒤틀렸다면 절대로 ‘지금의 나’는 없었으리라. 그들은 민족의 영웅 이전에 ‘어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생명의 은인이었다. 물론 철이 들면서 왜 학교가 그렇게나 많이 애국자들의 이야기를 읽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인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 독재 세력의 완벽한 귀감이었다. ‘우리도 죽음을 불사하고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불철주야 애쓰는 애국자가 바로 우리다. 모두 우리가 애국자라는 것을 책에서 읽으며 확인들 해. 그리고 모두 우리들처럼 목숨을 던져 애국하라고.’ 그들은 이렇게 스스로 ‘애국자’라고 억지를 부리며 어린 학생들까지도 자신들과 같이 되라고 강요했다. ‘개인을 내세우지 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라. 우리처럼!’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아니었다. ‘애국자’였을 뿐 진정한 ‘우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잘못된 역사의식에 젖은 특권층이었을 뿐이다. 그만큼 부끄러운 종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위인전들을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애국자들의 활약은 언제나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쥘 정도였다. 엄청난 병력 차이가 나지만 슬기롭게 전략을 짜서 외적을 격퇴하는 애국자들은 어린 마음을 늘 설레게 만든 영웅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유년의 영웅들 가운데 단연 으뜸이었다. 재작년 학생들을 데리고 간 체험학습(수학여행)의 주제는 ‘남도의 문화와 과학’. 필자는 첫날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인 진도 대교 울돌목을 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이곳이 내가 수십 번을 거듭 읽었던 명량 대첩의 현장인가.’ 거세게 출렁거리는 물결들을 바라보며 옛날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며 마치 오래 전부터 자주 온 곳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남녘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필자는 유년 시절부터 그려온 상상의 현실을 더듬고 또 더듬었다. 이순신 장군, 그는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 단단히 자리 잡은 영웅적인 판타지다. 연개소문과 양만춘,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이 요동과 만주를 지켜온 ‘대륙의 판타지’라면, 이순신은 호흡처럼 복잡한 남녘의 해안을 지켜온 ‘바다의 판타지’이다. 한국인들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훌륭한 지도자만 있으면, 스스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면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판타지를 공유한 사람들이다. 이순신과 난중일기 읽기의 어려움 한민족 최고의 영웅 이순신. 그는 무력을 앞세운 ‘힘의 절대 강자’면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혼의 무한 영웅’이었다. 더구나 흔히 말하듯 이순신 장군은 나라 밖의 왜적(倭賊)과 싸우며 동시에 나라 안의 무능한 국왕(國王)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는 나라 안과 밖 모두와 전쟁을 한 셈이다. 그는 최후까지 신명을 다 바치며 이 전쟁들을 모두 이겨내고야 만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한 가장 기본이자 궁극의 자료는 역시 난중일기다. 필자 역시 난중일기를 본격적으로 읽고자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난중일기를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난중일기 판본은 두 가지다.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전서본 일기와 국보 제76호인 초서체 일기 등 두 종류의 난중일기가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똑같지 않고 수록일자와 내용 등에서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초서체 일기인 초고본에 없는 내용이 전서본에 있어서 난중일기의 실체를 확정하기도 편치 않다. 상식적으로 따져도 처음 것에 있는데 나중 것에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그 반대다. 나중 것에는 있는데 처음 것에는 없단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듯 확정본을 만들고 싶어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일기 자체의 근본적 속성도 난중일기를 쉽게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떤 일기든지 작성자의 내면이 담기기 마련이다. 객관적인 자료나 실체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와는 다르다. 난중일기를 일반 학생들이 읽기 어려운 것은 사실 너무도 당연하다. 난중일기는 온갖 풍파를 거치고 전라좌수사로서 한창 전쟁에 대비하던 때의 고단함에서 시작하여 전쟁 중의 심란함, 한양에 압송되어 국문을 당하고 백의종군을 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삶, 전란의 중심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끝내 당당하게 맞서서 헤쳐나간 삶의 기록이다. 간략히 기록된 파편들만 갖고, 게다가 당시 평균 나이로 보았을 때는 초로에 가까웠을 장군의 가슴 속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힘들고 또 힘들다. 난중일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난중일기의 초고본 일기는 모두 7권 8책으로 1592년 선조 25년 임진 5월 1일부터 1598년 선조 31년 무술 9월 17일까지 기록을 담고 있다. 여기에 장계와 등본, 별책, 부록 등이 덧붙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일기를 그저 ‘日記’, ‘丙申日記’, ‘丁酉日記’ 정도로 특별히 이름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중일기란 이름의 책을 이순신 장군이 썼다면 엄밀히 말해서 잘못된 표현이다. 참고로 ‘난중일기’란 말을 쓰고 난중일기를 낳게 한 사람은 바로 정조 때 벼슬을 한 윤행임이다. 왕명을 받아 초고본 일기를 모아서 공식 총서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정조 19)에 윤행임이 왕명으로 편집·간행한 것으로, 교유·도설·세보·연표·시문·잡저·장계·난중일기·부록 등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난중일기는 제5권부터 8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초고본에 없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임진년 1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을미년 1월 1일부터 12월 22일까지, 무술년 10월 8일부터 12일까지의 일기가 더 첨부되어 있다.(365쪽, 평역 난중일기, 김경수, 행복한책읽기) 앞서 말했듯 이순신 장군의 초고본 일기와 이충무공전서본 일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럼 윤행임이 왕명을 받아 일하는 관리답지 않게 초고본 일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이미 초고본 일기를 자료로 삼아 전서를 정리하면서 원본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친필 초고를 정자로 베껴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한 때문인 듯하다”(366쪽). 뿐만 아니라 전서본에는 있는데 초고본 일기에는 없는 경우도 있고 보면 의도 여부에 따라 실수나 고의 둘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어떤 책을 후대에서 다시 간행할 때 원본을 망실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려우니 혹시 고의가 개입되지 않았을까? 필자는 시간이 나는 대로 반드시 이 두 가지 판본을 직접 자세히 비교해 보며 읽을 작정이다. 평역 난중일기(이순신 원저/김경수 편저, 행복한책읽기)는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는 데 적절한 책이다. 청운대 교수인 저자는 한글세대가 읽기 쉽도록 원전이 한문인 난중일기를 우리말로 쉽게 풀이하였다. 어려운 표현이나 대목은 자세히 설명을 덧붙였고 기존의 번역본을 두루 참고하여 다시 풀어내어 대중들이 읽기에 훨씬 편해졌다. 크게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대중들이 읽기 쉽게 풀이해주는 것이 마땅한 태도라고 본다. 용어나 기타, 간결하지만 꼭 필요한 설명은 지면 좌우편에 별도로 배치하여 편하고 알차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본문을 읽으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참고자료들을 덧붙여 놓은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별도의 지도와 사진, 설명을 알맞게 넣어서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 쉽게 하였다. 이를테면, 수군 지휘관의 임무를 수군절도사와 수군첨절제사, 수군 우후, 수군 만호 등으로 직급별로 나누어 설명하여 조선 수군 장교의 편제와 각 직책별 역할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임진왜란 초기의 수군 배치,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과 판옥선의 비교, 총통의 종류와 성능, 옥포 해전도, 사천 해전도, 당포 해전도, 한산도 해전도 등에서 이순신의 누명과 백의종군,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수군통제사 복귀 경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깃발, 순천왜성공격도, 이순신의 죽음까지 난중일기를 읽는 데 알아두면 요긴한 내용들을 안성맞춤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부록으로 난중일기의 체제와 국내 주요 사건일지를 덧붙였으며, 전쟁 일기의 대명사 난중일기, 임진왜란 이전의 이순신, 난중일기가 말하는 이순신, 이순신 관련 참고 문헌 등을 실었다. 난중일기를 새롭게 읽는 요즘 난중일기를 새롭게 읽다보면 좀 더 다양한 참고자료들을 덧붙여 풍요롭게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 이를 위해 빼어난 감수성을 키워 삽화도 직접 그려 보고 당시의 유물을 좀 더 다양하게 확보하여 소개하며 난중일기의 하루하루가 온전하게 떠오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완벽한 난중일기를 만들고 싶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연일체 어울리는 언어의 빛나는 승전을 거두고 싶다. 이를 위해 먼저 난중일기를 몇 번이고 읽으며 꼼꼼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난중일기에 쓰인 일기 가운데는 빠진 날짜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한산도 대첩을 치른 이야기는 난중일기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개전 첫 해의 가장 큰 대승이 바로 한산도 대첩이다. 당시 장군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흥분의 순간들, 분명 역사적 순간임이 분명한 사건들에 대해 장군은 단 한 줄의 언어에도 기대지 않곤 했다. 그에게 언어는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조선의 바다와 수군, 백성을 지키고자 그토록 애썼던 장군에게 난중일기는 과연 어떤 언어였을까. 어렸을 때의 필자가 언어를 징검다리 삼아 장군의 활약을 쫓아가는 데 흥분하는 소년이었다면, 지금의 필자는 침묵을 응시하면서 장군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고자 몰두하는 중년의 교사다. 다시 난중일기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장군의 모습을 쫓는 대신에 난중일기에 드러나지 않은 채 속으로 숨겨진 장군의 내면을 짚어 보고 싶다. 좀 더 원숙한 삶의 시선으로 당시의 시대와 장군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재현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필자 역시 우리나라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순신 장군을 읽으며 가슴 설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제 필자는 어느새 당시의 장군 나이쯤인 중년의 교사가 되었다. 그가 32세의 나이에 무관으로서는 뒤늦게 출발하여 북방과 남녘을 지켰다면 필자는 27세의 나이부터 꼬박 21년째 우리의 교실을 지켜왔다. 그동안 적지않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실수와 잘못 또한 그보다 많았다. 필자에게는 난중일기가 더 이상 과거의 영웅이 쓴 단순한 전쟁 일기나 빼어난 무용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교육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필자가 가르친 아이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 되고 만 미래의 비극, 아니 현실의 고해(苦海) 속으로 아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고3 담당 교사는 이미 절체절명의 심각한 ‘난중’에 처해 있다. 필자가 구사하는 모든 언어들은 결국 오늘의 ‘난중’을 헤쳐가며 기록하는 ‘난중일기’다. 필자는 난중일기에 그려진 장군의 모습처럼 앞날의 대란을 걱정하면서 방비에 앞장서고 무능력한 조정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보면서 부하와 백성들의 생존과 행복을 위하여 고민한다. 무엇이 오늘 필자가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언어로 다가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대비하고 진정한 삶과 인생을 위하여 힘쓰게 할까 걱정하며 때로 그들의 성숙에 즐거워하며 때로 그들의 미숙에 야단치면서. “아이들은 나의 국토이자 백성, 동료다. 우리 교사들은 지금 날마다 새롭게 난중일기를 써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통곡 이순신 실록, 이우각, 숲속의꿈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징비록,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서해문집 임진왜란 해전사, 이민웅, 청어람미디어
“정조와 순조, 천주교를 금압하지 않고 믿고 전도할 수 있게 하다.” 사실은 전혀 달랐다. 천주교는 금지를 넘어 수차례의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정조 때의 일이었지만 그때 서양의 과학과 기술 문명을 동반한 천주교를 수용했더라면 조선의 근대화는 일본보다 오히려 앞서지 않았을까. 천주교 전래의 역사적 의의를 개항문제와 관련시켜 살펴보고, 마찬가지로 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조선 후기에 놓쳐버린 근대화의 기회를 더불어 되짚어보고자 한다. 신앙으로 수용되면서 박해받아 우리나라는 보다 일찍이, 적어도 일본에 앞서 근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두 차례의 양요는 물론 그에 앞선 천주교의 전래가 그 기회였다. 만약 천주교가 그처럼 철저하게 금지 받지 않았으면, 적어도 박해만이라도 그처럼 가혹하지 않았으면 서양의 사상은 물론 과학과 기술을 비교적 활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극심한 박해 탓에 천주교도들이 심산유곡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상황이 아니었을 경우 천주교는 1백여 년 후에 개신교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에서 이념적, 현실적으로 담당했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천주교는 명나라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도하던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문화와 함께 전래되었다. 주지하듯이 천주교(서학)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실학자들이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지은 천주실의를 소개했다. 이익과 안정복도 서학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천주교를 종교로 수용해 귀의한 것은 아니었다. 천주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서양의 문물에 관한 호기심 수준을 크게 넘지 않았다. 천주교가 남인(南人) 학자들을 중심으로 신앙으로 수용된 것은 정조 때의 일이었다. 이승훈이 정조 7년(1783)에 북경에 갔다가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귀국한 뒤 일부 남인계열의 인사들이 천주교에 귀의했던 것이다. 이익의 문하생들이기도 했던 이벽, 이가환,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철신, 권일신 등이 그들이었다. 그밖에 중인계급 출신 중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이 출현했다. 하지만 조선의 벌열(閥閱) 양반사회는 성리학적 이념과 질서에 도전한 천주교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 천주교의 유교의식 거부와 그로 인해 일어난 전례(典禮) 문제는 유교주의적 조정(朝廷)으로 하여금 천주교 금지와 탄압을 정당화할 수 있게 했다(천주교는 청에서도 전례 문제를 야기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타협해 조상제사를 인정했지만 후일 교황청이 용인하지 않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조선은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여 금령을 내렸고(정조 9년) 1년 뒤에는 천주교 관련 서적의 수입을 금했다. 그리고 정조 15년(1791)에는 모친 장례 때 신주(神主)를 없앤 진산의 윤지충을 처형했다. 이후 천주교와 관련된 전례문제가 빈발했고 더불어 천주교의 탄압도 강화되었다. 피압박 계층 중심으로 교세 확장 그런 중에도 중국 신부 주문모가 밀입국해(1795) 전도하면서 신도가 1만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천주교 교세는 상당히 성장했지만 정조 재위 중에는 큰 박해가 없었다. 하지만 순조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순조 원년(1801)에 신유사옥(辛酉邪獄)이 일어났던 것이다. 순조의 대왕대비(영조 비)로 섭정하던 김씨와 손잡은 노론의 벽파(僻派)가 남인 시파(時派)를 타도하려는 의지가 신유사옥을 낳았다. 이승훈을 비롯해 이가환과 정약종이 처형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되었다. 주문모도 그때 처형되었다. 그 얼마 후 신유사옥의 전모를 북경의 서양인 주교에게 보고하기 위해 백서(帛書)를 지니고 출국하려던 황사영이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는데, 그 백서에는 조선정부를 억눌러 신앙의 자유를 인정케 하도록 베이징 주교에게 해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내용도 있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천주교의 금압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40여 년 후에 일어난 기해사옥(己亥邪獄)으로 천주교는 다시 큰 위기에 처했다. 신유박해 이후 시파인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를 하는 동안 심각한 탄압을 받지 않은 천주교는 비교적 활발하게 전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교구가 독립했는가 하면 모방·샤스탕·앙베르 등 프랑스 신부들이 입국해 전도하면서 천주교의 교세는 날로 커갔다. 하지만 안동 김씨를 대신해 벽파인 풍양 조씨(趙氏) 일문이 정권을 장악한 후 천주교 금지와 탄압은 강화되었고, 결국 헌종 5년(1839)에 기해사옥이 일어나 서양인 신부와 조선인 신도들 다수가 처형되었다. 하지만 천주교 박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지하듯이 고종 3년(1866)의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수천 명의 천주교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해사옥 이후에도 천주교의 교세는 착실히 성장해 중인·평민·부녀자 등 피압박 계층을 중심으로 신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베르누와 리델 같은 프랑스 신부들도 몰래 입국해 전도했다. 쇄국정책으로 근대화 기회 놓쳐 그 무렵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우려하던 대원군은 천주교 신자 남종삼의 건의를 받아들여 프랑스의 힘을 빌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청나라의 천주교 탄압 소식이 전해올 무렵 프랑스와의 교섭이 실패로 끝난 데다 조정 신하들의 배외적 태도가 짙어지자 대원군은 천주교를 탄압했다. 말하자면 점차 커져가던 천주교 교세와 서양세계에 대한 조선사회의 막연한 공포가 결국 천주교에 대한 격심한 탄압을 초래했던 것이다. 남종삼과 홍봉주 등 조선인 신도 수천 명과 베르누를 비롯한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순교했다. 그리고 8도에 영을 내려 각지의 천주교도를 처형하게 했으나 그로 인해 프랑스함대의 침공을 받아야 했다(병인양요).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그 도를 더해 갔다. 더욱이 병인박해가 있던 해에 두 차례나 통상을 요구했다가 실패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3년 후에 충남 덕산에 있던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해 대원군의 극심한 분노를 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고자 하던 미국은 평양 군민이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살해한 사건(1866)을 빌미로 군함을 파견해 신미양요가 발발했다(1871).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친 대원군은 서울의 종로를 비롯해 대소의 섬을 포함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쇄국의 결의를 굳건히 했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제국과 친교하고 교역하는 것은 바로 국가를 팔아먹는 행위로 규탄받았으니 개국하여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에 앞서 혹은 적어도 일본에 뒤지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를 근대화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한 가운데 완전히 잃어버렸다. 서학에 관심 높았던 소현세자 조선이 근대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이전에 이미 근대화 혹은 적어도 개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병자호란(1636) 후 인질이 되어 북경에 머물며 아담 샬 등 기독교 선교사들과 교류한 소현세자는 인조 23년(1645) 귀국하면서 아담 샬이 번역한 서양 천문학서와 산학서(算學書)를 비롯해 서양문물에 관한 서적, 지구의, 천주상 등을 가져왔다. 우리는 소현세자가 가져온 서적이나 지구의 등이 상징하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문명은 물론 그가 서양인들과 교류하면서 가지게 된 서양세계에 대한 인식 내지 관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무렵 서양문물을 조선에 유입한 사람은 소현세자만이 아니었다. 소현세자보다 앞서 인조 9년(1631)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은 귀국 길에 천주교 서적, 화포, 천리경, 자명종, 천문서적, 서양풍속기 등을 가져왔다. 정두원 이전에도 사신들을 통해 서양지도가 들어오기도 했다. 김육도 1646년 소현세자가 귀국한 다음해에 아담 샬의 서양 천문학 역서를 가져왔다. 그리고 조선사회는 인조 6년(1828)에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로부터 직접 서양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귀화해 조선여인과 결혼까지 하고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총포제작을 지도했다. 효종 4년(1653)에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 36명이 제주도에 표착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에 승선해 대만을 거처 일본으로 가던 하멜 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어 14년 동안 병영에 억류되어 있던 중 탈출했다. 일행 7명과 함께 여수 좌수영을 탈출해 귀국한 하멜이 표류기를 써 조선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했다. 인조 치세(1623~1649) 중에는 그처럼 서양문물과 서양 관련 지식이 활발히 유입되었다. 그런 시점에 서양세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서양문화에 전향적 태도를 가졌던 소현세자가 요절하지 않고 즉위해 조선을 통치했을 경우 개화정책을 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인조를 이어 즉위한 효종도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잡혀 북경에 머물렀던 봉림대군이지만, 서양문물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진 쪽은 소현세자였던 것 같다. ‘서학’으로서의 천주교 용인했다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본은 통상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한 미국에 굴복해 개국한 이후 명치유신을 단행해 근대화를 서둘렀다. 아편전쟁 후 서양 열강에 시달리던 중국 또한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힘써 수입하고 익혀 부국강병을 성취하려 했다. 태평천국난 후의 양무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자리 잡은 조선은 천주교를 지나치게 금압해 개화 내지 개방의 기회를 잃었다. 조선이 근대화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도, 페리제독의 무력시위에 굴복해 문을 연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전화위복의 개국 기회로 삼지 못했다. 천주교를 금압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서학’ 차원으로라도 용인했을 경우 조선의 운명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조선은 보다 일찍이 개방과 근대화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에 앞서 소현세자가 치세했을 경우 서양의 사상이나 문물에 대한 조선의 태도는 보다 호의적이지 않았을까? 아니 병인년과 신미년의 사태가 역사책에 ‘양요(洋擾)’로 기록되지 않고 병인년과 신미년의 ‘무력시위 후 개국’으로 기록되어 있으면 적어도 일본보다 늦지 않게 근대국가로 발돋움했을 것이 아닌가. 그랬다면 합방이란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역사도,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로서의 부끄러움도, 현재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한계도 우리의 몫이 아닐 것이다. 천주교 전래 전후 시기는 민족사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었는데….
“가족 같은 분위기로 박사마을 전통 이어가요” 강원도 춘천시 서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박사마을’로 알려져 있다. 면 전체 인구가 4천 여 명에 불과하지만, 올해까지 전국 면 단위 행정구역 중에서 가장 많은 109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박사마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선양탑(서면 금산리)에는 서면 1호 박사인 송병덕 박사를 비롯해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송병기 전 경희대한의대학장 등 서면 출신 박사들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힘든 일도 한 가족처럼 함께 해결 면 전체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외부와의 교통마저 불편한 작은 마을이 박사마을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서면의 유일한 중학교인 강서중(교장 이찬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서중은 학생 수 41명, 교직원 12명의 소규모 학교지만 도학력평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강서중이 다른 학교에 비해 높은 학력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소규모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이다. 강서중은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1-Ⅴ 가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Ⅴ 가족은 학년별 4, 5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결연을 맺어 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학년 초에 결성된 1-Ⅴ 가족은 가족별 활동 계획을 세우고 학교의 연중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물론, 공부에서 봉사활동까지 대부분을 함께 하게 된다. 올해도 가족별 장기자랑, 가족단위 가정 방문 및 상담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가정방문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집에 찾아가 도배나 청소를 해주고, 기초학습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개별 지도를 해주는 등 서로 보듬어주는 봉사 활동에 힘쓰고 있다. 학생부장 장상윤 교사는 “1-Ⅴ 가족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 쉽게 적응하고,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는 문제 학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성조 군(2학년)도 “1-Ⅴ 가족끼리 서로 먼저 도와주려고 해서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다”며 자랑했다. 맞춤형 교육으로 도학력평가 상위권 유지해 이처럼 1-Ⅴ 가족제도가 정착되고 효과를 보게 된 것은 교사들의 힘이 컸다. 강서중 교사들은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학교교육 외에는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능력별 맞춤형 지도에 힘을 쏟는다. 수업이 끝난 후 매일 오후 6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책을 보거나 교사들과 함께 자율학습을 한다. 자연스럽게 개별 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또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과 동문들도 학교를 위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여름 방학 때는 1회 졸업생인 황원중 씨의 초청을 받아 전교생이 인제에서 1박 2일간 레프팅 체험을 하기도 했다. 황 씨는 “선생님들의 노력 때문에 후배들이 밝게 생활하는 것 같아 동문회에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소규모 학교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그만큼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아이들의 형편 상 가정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치루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 지원을 많이 찾는 편인데, 다행히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학교의 장점 살릴 방법 연구해야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서중도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학생 수로 인해 고민이 많다. 인구 감소로 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춘천 시내 학교로 진학을 원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 교장을 비롯한 강서중 교사들은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면내 초등학교를 방문해 협조를 구하고 6학년 학생들을 학교로 초대해 설명회를 개최한다. 지난 10월말 실시한 설명회에서 이 교장은 직접 구입한 책을 선물하며 “우리 학교에 입학하면 여러분들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시내 학교보다는 강서중에 입학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우선 방학 중에는 이 학교 출신 대학생들로 구성된 도우미 수업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책사랑 축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학교 축제인 ‘신연제’ 개최, 토요휴업프로그램 실시, 전교생이 함께 하는 체험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복도나 교실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수리하고, 교무실도 새롭게 꾸며 쾌적한 교육환경으로 학생들이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그밖에도 지역주민들과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지역 행사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 한지공예, 미니정원 만들기 등의 평생교육강좌를 열고 있다. 이 교장은 “소규모 학교가 경제논리에 의해 통폐합되는 경우가 있는데, 소규모 학교의 이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통폐합을 논하기 전에 먼저 학교를 살릴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박사마을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가족 같은 학교, 웃으며 다니는 학교를 만들어 1명의 학생이라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Q1.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학부모회 임원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은 겸임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A1.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와 학부모회 두 조직은 설치목적, 설치근거, 성격, 구성원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학운위는 학교운영에 필요한 정책결정의 민주성, 합리성,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심의·자문기구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는 법적인 기구이며 학부모위원, 교원위원, 지역위원 등으로 구성됩니다. 학부모회는 학교교육활동을 위한 지원, 회원 상호 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학부모의 자율조직으로 그 설치 근거는 ‘학부모회 규약’입니다. 이 처럼 두 조직은 설치목적과 성격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나 학교교육목표의 달성을 위해 지원하고 노력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호 관계는 개별학교의 자율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 회원과 학운위 위원은 겸임이 가능하며, 학부모회와 학운위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학부모회 규약이 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회원이나 기존의 학부모회 임원을 학운위 당연직 학부모위원으로 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이는 법에서 학운위 위원의 민주적 선출절차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2. 학교교사로서 타 학교의 학부모위원 겸임이 가능한지요. A2. 일반적으로 교사가 소속 학교의 운영위원이 아니면 학부모 자격으로 다른 학교의 학부모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습니다. 학운위 위원의 겸임제한은 「국가공무원법」과 당해 시·도 조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 규정은 공무원인 운영위원에게도 적용됩니다. 운영위원도 학운위라는 법정 조직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회의 등으로 인해 공무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사가 타 학교의 운영위원을 겸하게 되는 경우 운영위원으로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교사 본연의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소속 기관장의 겸직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교육학 통합형 논술로서 지식과 정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보와 지식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때의 정보란 객관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이미 밝혀진 객관적 지식이나 정보만으로는 최첨단의 창의적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요구되는데, 이 지식을 문제해결적, 실천적, 생산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지식은 지식기반사회라는 사회적 배경과 현상학, 해석학, 신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구성주의 등의 철학적·학문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을 내 것으로 전이(轉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학습자나 문제해결자인 내가 어떻게 재구성하고 내면화했느냐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주변에 있는 많은 정보들을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는 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문제. 제시문을 읽고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 그 자체의 전달보다는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러한 능력 신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과 학교에서의 효과적인 수업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앎 혹은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내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겪었거나 무엇인가를 한 결과, 즉 경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여기서의 ‘경험’이란 포괄적으로 말해서, 생각이든 행동이든 내가 해 본 것, 밖으로나 안으로나 내가 겪은 것, 직접 깨닫거나 남에게 들어 내 마음에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게 된 것,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의 생각, 태도, 행동, 능력, 삶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 영향으로 인하여 변화된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두가 나의 지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제시문 (나) 그러나 그 알게 된 내용은 대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남의 경험을 통하여, 즉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나 교사 또는 대중매체, 정보 통신망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이 나의 경험과 관련해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단지 남의 경험을 듣고 아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흔히 ‘정보(information)’라고 말한다. 그 정보가 아무리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가치와 의의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소화하거나 나의 지식 속에 통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정보로서의 의미 이상일 수가 없다. 예시답안 1. 서론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첨단 기술과 창의적 지식이 부가가치창출의 원천으로서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사회이다. 이에 선진 각국에서는 이러한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개혁과 교수·학습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여전히 지식위주의 설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 2. 본론 지식정보화사회는 자본이나 토지보다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러한 사람을 길러내는 ‘열린교육사회(Edutopia)’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제시문 (나)와 같은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정보를 주입하기보다는 제시문 (가)에서 설명한 지식을 재구성하고 내면화하는 인간이 요구된다. 즉,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감식하고 가공해서 스스로 의미를 형성하고,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인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현장에는 피상적인 정보나 지식만을 전달할 뿐, 학습자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재구성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원인은 우선, 교사 중심의 지식전달교육에 있다. 교사는 풍부한 학습 자료와 멀티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위주의 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지식중심의 획일적인 학교풍토는 학생 주도의 의미형성이나 다양한 경험을 어렵게 한다. 셋째, 학부모들 역시 학벌주의 풍토 속에서 성적과 같은 결과 중심의 평가에 치중하여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학습자 스스로 주변의 정보들을 주도적으로 재구성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는 우선, 학습자가 중심이 되어 지식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즉, 체험이나 조사, 실험 및 실습, 토픽이나 프로젝트 학습 등을 적극 실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실제상황 하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협력학습이나 다양한 문제 상황 하에서의 상황학습이나 문제기반학습, 토의나 토론학습, 협동학습은 창의적 문제해결력이나 자기주도적 의미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활용한 교육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보화능력 함양은 물론 인터넷을 활용한 CAI나 웹기반학습을 통해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실제상황 하에서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관찰법이나 포트폴리오 등 다양한 평가방법에 의해 평가해 줌으로써 학생들의 성취동기가 강화될 것이다. 3. 결론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지식과 관점들을 요구한다. 구성주의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학교교육과 교사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에 의해 주입된 지식은 의미 있는 지식이 될 수 없고 문제해결에 이르기 어려운 만큼 교사는 시대에 적합한 지식관을 인식하고 학생 스스로의 탐구와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성주의 학습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시대변화를 주도할 인재 양성을 위한 사명감과 소신을 바탕으로 부단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지식기반사회와 지식 1.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되는 지식(관) (1) 미래사회는 노동과 자본이 주된 생산요소였던 산업사회 대신에 ‘지식’이 생산의 중요요소가 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은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인식, 표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의한 ‘주제적 또는 교과적 지식(Subject Knowledge)’이다. 이러한 지식은 지적 호기심과 기본적 연구수행 등에 의해 생산되지만 일반적으로 이 지식은 학교제도의 지식으로서 인정될 때만 그 가치가 보장되었다. (2)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폭발하는 지식의 신속성, 다양성, 복잡성, 중첩성 등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연계망적 지식(Networking Knowledge, Cross-linked Knowledge)’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식의 양적 팽창이 또 다른 지식생산의 동기를 형성함에 따라, 상호연결적인 지식과 함께 거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일반적 학교 지식과 달리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Problem-solving Knowledge)’이 중심이 된다. (3)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식정보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식정보량이 매 4~5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XEROX사(社)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부터 세계의 지식은 73일 만에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인류 지식의 총량은 10년 후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1%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학교의 지식보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식능력과 정보를 지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지식능력이 지식기반사회에서 중요하게 됐다. 지식은 사실과 아이디어 그리고 경험의 축적뿐 아니라 수용자의 이해와 해석 그리고 이에 따른 지식의 재체계화 및 재구조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보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4) 그리고 지식기반사회에서 학습은 매체의 네트워킹에서 비롯된 정보와 지식에의 광범위한 접근 가능성으로 인해 학교 및 제반 제도적 교육기관을 넘어서 다양한 장소와 생활환경 속에서 사회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일, 생활, 놀이와 분리된 학교의 교과적 지식이 아니라 이것들과 통합된 사회통합적 지식이다. 2. 지식과 정보의 차이 (1) 지금까지 우리가 이 글에서 ‘지식’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지만 그 의미가 그렇게 명백한 것은 아니다. 지식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언어(특히 문자)나 기호로써 표현된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엄격히 따져 보면 언어나 기호로써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지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쓴 일기나 편지, 그리고 직장에서 하는 일의 일부로서 보고한 문서 같은 것을 모두 지식이라고 하면 ‘지식’이라는 말이 너무 격이 없이 쓰인다는 느낌을 누구나 가질 것이다. 물론 일기나 편지나 문서 속에 지식이라고 해도 좋을 내용이 담겨질 수는 있다. 그러면 그 지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2) 또한 쉽게 생각해서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지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에 관한 것이든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알게 된 것, 그것이 나의 지식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든지, 학계의 권위자이든지,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든지,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누군가가 혼자서 알고 있을 뿐이지 남에게 그 아는 바가 전달되지 않은 채, 그야말로 사적인 느낌이나 기분이나 상상이나 체험처럼 누구에게도 말해 보지 않은 내용, 즉 아무런 객관적 혹은 공적 의미를 지닐 수 없는 내용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을 두고 ‘지식기반’이니 ‘지식인’이니 하는 말을 한다는 것도 격에 맞지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앎 혹은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겪었거나 무엇인가를 한 결과, 즉 경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경험’이란 말을 흔히 전통적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감각적 자료(sense-data)’, 즉 형체·소리·온도·냄새·맛과 같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어진 것 혹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획득된 것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실증주의적 노선의 과학자들이 말하는 ‘관찰’의 의미와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4) 오히려 여기서의 ‘경험’이란, 포괄적으로 말해서,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간에 내가 해 본 것, 밖으로나 안으로나 간에 내가 겪은 것, 내가 직접 깨달았거나 남으로부터 들었거나 간에 내 마음에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게 된 것, 이러한 것들의 전부에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과 능력과 삶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 영향으로 인하여 변화된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바의 모두가 나의 지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5) 그러나 그 알게 된 내용은 대개 나의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남의 경험을 통하여, 즉 주위의 다른 사람들로부터나 교사를 통해서나 대중매체를 통해서나 정보 통신망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이 나의 경험에 관련시켜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단지 남의 경험을 듣고 아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흔히 ‘정보(information)’라고 말한다. 그 정보가 아무리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가치와 의의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소화되거나 나의 지식 속에 통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여전히 내게는 정보로서의 의미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 (6)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매우 넓은 의미의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은 바로 지식의 덩어리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신념, 습관, 자아는 그러한 지식의 영향으로, 그 지식을 내용으로 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의 지식 속에는 순수한 개인적인 경험도 있고 외부, 즉 사회와의 관계에서 수용된 경험도 있다. 수용된 경험 중에도 사소한 인간관계에서 얻은 단순한 타인의 경험도 있고, 학교의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획득한 지식과 같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화로서 공유하고 있는 공적인 경험도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지식을 논하고 그 기능을 말할 때, 그것은 주로 공적인 경험의 수준에서 의미를 지니는 지식을 말한다. (7)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이러한 공적 의미를 지닌 지식의 조건을 제시하는 데 열중해 왔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 가운데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성립되며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두고 ‘인식론적 역사’를 엮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사는 지식의 본질에 관한 역사를 중심으로 해서 전개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학설과 사조가 있어 왔으므로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논할 수는 없다. (8)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지배적이었던 이론적 대세가 오늘에 이르러 몇 가지 전환의 경향을 보이고 있거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 있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명제적-관조적 지식관에서 총체적-실천적 지식관으로의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적 지식관에 대한 상대적 지식관의 도전이 등장한 것이다. 3. 이론적 지식과 명제적 지식 (1)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철학(philosophia)’이라는 이름의 활동을 할 때, 체계적인 논리의 형식을 입은 이론적 지식의 체제, 즉 학문적 내용을 이루는 요소들은 ‘명제’로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지식이라는 말은 명제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명제란 언어나 상징처럼 객관적 의미를 지니는 기호로써 표현되고, 그것에 진위의 판단을 적용할 수 있는 주장의 형태이다. 명제들 가운데 진리인 명제가 지식이고, 허위인 명제는 지식이 아니며, 진리나 허위로 분별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 명제는 의견에 불과하다. (2) 이러한 기준(명제라는 기준)에 의하면, 사고의 형식을 표현하는 논리적 명제나 수학적 명제 그리고 사실을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과학적 명제에는 ‘지식’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초월적인 세계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정되는 형이상학적 명제에도 진리의 여부를 논할 수 있다. 물론 예술도 만약에 진리와 허위를 분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명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지식이 될 수도 있다. (3)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논리실증주의자들과 같이 명제의 진위를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표현은 명제도 지식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예술, 도덕과 같이 가치 혹은 당위의 표현이거나 처방 혹은 규칙의 진술인 것은 진위의 객관적 판단을 적용할 수 없으므로 지식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고도 말한다. 형이상학이 참으로 지식으로서의 의미는 없는 것인가, 객관적 가치 인식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는 여전히 철학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4) 대체적으로 말해서 19세기의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 지식관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초현실적인 것이든, 사실적이든 규범적이든, 과학적이든 예술적이든 명제, 즉 진리와 허위를 적용시켜 논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식은 주로 ‘관조적(觀照的) 지식’으로서 우주와 세계의 질서와 법칙, 인간과 사회의 이상과 의미,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법칙, 예술적 감상과 창조의 기준 등에 관한 것이었으며, 체계적인 논리와 구조를 지닌 이론적 체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이지적 능력을 대표하는 이성(理性)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5) 그러므로 자연히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나 체계적인 과업의 수행과정에 적용되는 기술, 기능, 절차, 전략 등은 아무리 고도의 이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지식의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 밖의 인간 활동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지식관에서도 지식 그 자체를 정당화하고 성립시키기 위하여 문법, 논리, 수사 등의 기술이 요구되었지만, 이러한 기술은 관조된 지식을 표현하는 언어적 기술에 한정된 것이었다. (6) 그러나 20세기의 영국 철학자인 라일(Gilbert Ryle, 1971)은 지식의 의미를 ‘안다’는 말이 쓰이는 방식을 분석하여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과 ‘방법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으로 구분하면서 ‘지식’이라는 말을 명제에만 한정하지 않고 능력과 기능에도 적용하였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명제를 아는 것이고 피아노를 칠 줄 아는 것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언어의 사용에서 표현된 방식의 구분이다. 명제적 지식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인식한 관조적 지식이라면, 방법적 지식은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의 노력이 수반되는 수행적 지식이다. (7) 어떤 명제로서 표현된 것을 안다고 할 때, 명상, 직관, 상상 등과 같이 세계를 마음에 비추는 사색 혹은 사유의 경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명제가 진리라는 것을 판단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증거를 제시하는 능력도 요구하고, 그 증거를 증거로서 내세우는 사람은 방법론적 원리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명제적 지식의 주장은 대개 자연히 방법적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방법적 지식은 그 자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쳐서 안타로 만들고, 부품을 조립하여 컴퓨터를 만들며, 손님의 구미에 맞추어 요리를 하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여 정책을 수행하며, 불리한 국제적-사회적 여건을 극복하여 기업을 발전시키는 일과 같이 행동 혹은 실천의 형태로서 어떤 문제해결을 해내는 기술, 능력, 절차, 전략 등은 명제적 지식을 정당화하는 일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 기술공학과 경영능력과 통치역량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지식이다. (8) 지식 혹은 안다는 것의 의미는 적어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명제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제적 지식에 해당하는 이론, 학설, 사상이든지, 방법적 지식에 해당하는 요령, 규칙, 전략이든지 간에 언어로써 표현되거나 직접적으로 관찰되는 명시적 수준 이상의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라고 하고 최근에 와서 철학자나 과학자, 혹은 경영부문의 이론가들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9) 과학자가 어떤 방법적 원리에 따라서 지식을 개발하고 주장할 때 그가 소유하고 있는 성향에는 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그 원리에 따라 증거를 보이는 능력 이상의 것이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가 발표한 이론 속에 담지 못한 수많은 종류의 사고와 감정이 있으며, 그가 입증해 보이는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방법적 요인들이 그의 인격적 구조 속에 남아 있다. 과학적 생애에 대한 가치관과 과학에 대한 개인적 신념과 문제의식도 있지만, 또한 발표된 이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휘된 희열과 고뇌와 열정, 그리고 크고 작은 솜씨, 기지, 영감, 요령 등도 이면에서 작용해 왔다. 이러한 심층적 수준의 것은 그 과학자의 인격 속에 내축되어 있는 능력, 태도, 신념, 성향의 어떤 체제이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거나 사용하는 지식은 언어나 기호로써 표현되는 명시적 명제나 능력 이상의 것이다. 참으로 나의 지식으로서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나의 경험의 총체적 구조의 한 부분으로 소유한 것이다. (10) 금세기의 많은 철학자들은 이러한 이면의 지식에 관심을 가져 왔다. 폴라니(Michael Polanyi, 1958)는 그것을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듀이(John Dewey, 1983)도 “지식은 이론적 차원의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질성적(qualitative) 차원의 경험이며 본질적 특징에 있어서 심미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오우크쇼트(Michael Oakeshott, 1978)도 “과학적, 역사적, 실천적 지식은 각기 별개의 경험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적 총체가 단면적으로 나타낸 양상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75)도 “경험의 본질은 심미적 총체”라고 하였다. (11) 그러므로 총체적 지식은 관조적 이성의 기능으로 인식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획득되고 재구성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실천적 경험이나 지식은 단지 관조적 지식의 응용이 아니라, 관조적 지식 그 자체를 지식으로 입증시키는 상황과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천적 경험과 지식은 어떤 관조적 지식에 예속되지 않는 그 자체의 기능과 의미와 창조성을 소유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총체적 지식관은 전통적으로 지식이란 고도의 논리적 사고와 엄격한 관찰의 능력을 보여주는 소수의 뛰어난 천재들만의 것으로 생각하던 고정된 관념을 바꾸어 놓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새로운 의미의 지식은 엄격히 정의된 명제와 그 체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발휘되는 각종의 능력을 포괄한다. 지식은 나의 구체적 삶과 분리된 고답적 이론이나 능력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서 소유한 모든 성향에까지 미치는 개념이다. 존재하는 모든 인격체는 그 자체로서 지식의 체제이며, 삶은 그 자체로서 지식의 삶이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모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중에 전파견문록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인데, 막상 이 프로그램은 유치원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 어른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를테면 유치원 어린이들을 끌어들인 일종의 오락 프로그램인 셈이다. 두 팀의 연예인들이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그들의 숨어 있는 마음과 언어를 누가 더 잘 알아맞히는지를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치원 어린이를 두고 양 팀의 대결이 게임하듯이 전개되기 때문에, 오락적 흥미가 높았다. 동시에 유치원 어린이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마음과 언어를 감동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이다. 꼬마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서 어른들의 때 묻은 속기(俗氣)를 매우 산뜻하게 반성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양성’이 강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제작진이 전문성을 가지고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다양하고도 현실감 있는 조사를 계속하고, 그것을 프로그램 제작에 유효적절하게 반영시켰던 데에 있었다. 그 조사 중에 두고두고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유치원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말씀 중에 제일 듣기 싫은 것은 무엇인지 말 좀 해 보세요’하는 물음에 대해서 아이들이 반응한 내용이었다. 천여 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보여 준 반응 중에 1위에서 4위까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먼저 4위부터 보자. 듣기 싫은 선생님의 말씀, 제4위에 올라 와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반응은 이거다. “선생님이 예뻐? 옆 반 선생님이 예뻐?” 유치원 꼬마들이 지적한 것이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 중심(가부장 중심)의 전근대적 가치관 하에서는 아이들의 인격은 쉽게 무시되었다. 겨우 말을 시작할 무렵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물음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 아니었던가. ‘아빠가 좋아’라고 하면 짐짓 엄마가 찡그리는 척하고, ‘엄마가 좋아’라고 하면 짐짓 아빠가 찡그리는 척하는 모습으로 가족의 단란함을 과시하였다. 아이가 곤혹스러워 하면, 어른들은 곧잘 “그 놈 참 영리하다”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어른들만의 유쾌한 놀이일 뿐이다. 아이에게는 그저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유치원 꼬마들만의 괴로움이고 고민이겠는가. 어른들의 세계인들 다를 리가 없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어떤 권력의 줄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사회, 아차, 한번 줄을 잘못 서면, 아득하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불안은 정치판에도 장사판에도, 심지어 교육판에도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힘없고 불안정한 직장인들에게는 줄서기처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힘을 가진 쪽에서는 심심풀이로 묻는 말일 수도 있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더없는 마음의 갈등과 눈치 보기의 곡예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억압이다. 줄 서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편 가르기’가 극성을 피우는 사회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심리 내면에 ‘편 가르기’에 대한 악마적 유혹이 본래부터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편 가르기’란 권력을 공학적으로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이 내 권력 만들기를 위해 가동하는 풀무질과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내 마음 어딘가에 편 가르기를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아, 내가 권력 지향의 유혹에 이끌려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선생님이 예뻐? 옆 반 선생님이 예뻐?” 억압의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 대목에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선생님 말씀 중 가장 듣기 싫은 말, 제 3위에 올라 있는 말은 짧고도 명료하다. “너 말고 !”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드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어떤 아이를 제쳐놓음을 선언할 때 하는 말이, 바로 ‘너 말고!’ 아니겠는가. 선생님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아마 여러 번 발표를 독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표출된 말의 모습이 너무도 단호한 차단이다. 설령 그 아이의 참여를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좀더 부드러운 제어의 말은 없을까. 아무런 어루만짐의 배려도 없이 냉정히 선고하듯 투사하는 ‘너 말고!’라는 말은 너무 직선적이고 강렬해서, 그 말을 받는 아이에게는 ‘너 싫어!’라는 말로 전해오기 십상이다. 그만큼 마음에 입게 되는 상처도 쓰리고 아프다. 어른들도 사회생활에서, 여러 수십 번 ‘너 말고!’를 경험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또 다른 그 누구를 향하여 ‘너 말고!’를 외친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현대 사회라고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병리 현상이 ‘소외의 현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소외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자기네들끼리 무어라고 신나게 떠들다가 내가 들어갔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게 되는 상황을 경험할 때이다. 이런 상황이 ‘존재의 감옥’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나만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는 순간, 사람들과 아득하게 격리되는 자아를 가지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존재의 감옥’으로 가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것,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는 환경이 바로 소외의 본질이다. 소외는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색깔도 없는 새로운 종류의 억압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나를 낙오시키는 것이다. 저항할 기력 자체를 빼앗아 가버리는, 그런 억압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런 소외의 언어에 억압되고 있다. 유치원 꼬마들이 선생님에게서 듣기 싫어하는 랭킹 2위의 말은, 사실 우리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이든 자라면서 경험했던 말이다. “너 이렇게 말 안 듣는 것, 원장 선생님께 모두 일러바쳐야겠다.” 어떤가. 이 억울하기도 하고, 대책 없기도 한 막막함의 상황을 누가 알겠는가. 진정 나는 그런 ‘나’가 아닌데, 원장 선생님께서는 순전히 나쁜 아이로만 나를 인식할 것 아니겠는가. 나는 어떻게 변명조차 해 볼 수도 없고, 나란 존재는 속절없이 왜곡되고 만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이렇게 부자유한 것이 또 있을까. 아, 나도 일러바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면 일러바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때로 최고 권력보다도 더 권력스럽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물론 그런 권력은 부당한 권력이다. 부당한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남용한다. 권력자에게 누군가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심리에는 미움과 견제의 감정이 개입한다. 아니, 모든 일러바침의 속에는 확장된 미움의 감정이 스며있다. 일러바치는 본인은 그것을 ‘정의감’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최면을 걸지만,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미움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잘못된 것을 교정해 주는 방법 중에 가장 야비한 것이 누군가에게 일러바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러바치겠다고 은연중에 위협하는 것은 막상 일러바침 그 자체보다 더 고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별다른 대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휘둘러지는 일러바침의 집중은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흔히 드러난다. “너 이렇게 말 안 듣는 것, 원장 선생님께 모두 일러바쳐야겠다”는 엄청난 억압임에 틀림없다. 이런 식으로 억압을 받는 아이는 자율을 버린다. 내 나름대로 잘 해보았자 일러바친 대로 이미 나는 찍힌 몸이 되는 걸 알면서 절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율을 버린다. 타율적 인간이 된다.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도 꼭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대망의 1위, 유치원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선생님의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내쫓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안 되겠다. 다시 여섯 살 반으로 내려가야 하겠다.” 유치원은 두 개의 학년으로 되어 있다. 여섯 살 반과 일곱 살 반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위의 반응은 일곱 살 반 어린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예닐곱 살 무렵의 여섯 살과 일곱 살은 엄청난 발달상의 차이를 가지는 때이다. 여섯 살 반으로 내려 보내겠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형용 못할 당혹감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무리 못하기로서니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저 코흘리개 동생들 반으로 가서 배우라니, 동네에서 내 자존심은 어떻게 되는 거냐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이 반에서 나만 쫓겨나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나보다 더 못한 영철이도 있고 예림이도 있는데, 왜 날더러 나가라고 한단 말인가. 또 그건 그렇다 치고, 그간 친구들 열심히 사귀어 정도 들고 분위기도 익숙해져서, 어른들 말로 정체감과 안정감을 가지고 공부해 왔었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해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분노와 불안이 뒤섞이니 세상이 우울하고 밥맛도 없어진다. 유치원 꼬마들의 마음을 여기까지 따라오다 보니, 매우 유사한 것 하나를 발견한다. 구조조정과 퇴출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우울해 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이것과 꼭 닮았다. 근원도 알 수 없고 출구는 더욱 알 수 없는 퇴출과 구조조정의 메커니즘, 이보다 더 우울한 억압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생고해(人生苦海)는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고단하게 건너야 하는 바다인가.
‘학교교육’하면 첫째가 인성교육입니다. 둘째는 창의성교육이지요. 이 두 가지는 빠지는 법이 없고 순서도 첫째, 둘째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하소연을 합니다. 인성교육, 창의성교육 할 기회가 없다고요. 그러나 방법은 다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틈새교육입니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틈새교육 점심시간입니다. 영민이가 도화지를 사러 문방구에 간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영민이에게로 다가갑니다. “영민이가 도화지를 사러간다고?” “미술 준비를 안 해와서요.” “그렇구나, 그런데 영민이는 문방구에 가면 주인에게 뭐라고 인사할래?” “안녕하세요? 하면….” “그래, 그러면 되겠네. 올 때는?” “올 때는~, 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겠습니다.” “그래, 그거 참 멋진 인사다. 가서 그렇게 해보고 선생님에게 자랑 좀 해 봐.” 이렇게 해서 영민이는 문방구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선생님에게 실천한 것을 자랑했고 선생님은 영민이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수미가 예쁜 나비모양의 머리핀을 꽂고 학교에 왔습니다. 선생님은 수미의 머리핀에 대해 칭찬을 합니다. “와, 수미의 머리에 예쁜 나비 한 마리가 앉았네. 그거 누가 사줬어?” 수미는 얼굴만 붉힙니다. “아, 할머니가 사주셨구나.”(수미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음) 수미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수미는 참 좋겠다. 수미를 이만큼(두 팔을 크게 벌리며) 사랑하는 좋은 할머니가 계셔서.” 선생님의 이런 말에 수미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수미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착한 손녀니까 오늘 집에 가면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릴 것 같아. 선생님 느낌에 수미가 그렇게 할 거 같은데 ….” 이와 같은 교육이 틈새교육입니다. 틈새교육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면서 인사예절을 가르칠 수도 있고, 어항에 기르던 금붕어가 죽었을 때 금붕어에게 주는 글을 써서 함께 땅에 묻어주도록 지도할 수도 있으며, 제비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아이들의 손가락에 끼워줄 수도 있고, 등하교를 하면서 좋아하는 시를 외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감동으로 학생을 바꾸는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틈새교육은 인성교육에 강합니다. 선생님이 출근하다 현관에서 준철이를 만납니다. 선생님을 본 준철이가 옆으로 비켜 서며 선생님이 지나가도록 해 줍니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준철이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와,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로구나! 누군가 지나갈 때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 것이 배려하는 건데, 준철이가 선생님이 잘 지나가도록 비켜 주니까 선생님이 쉽게 잘 지나가잖니? 준철이는 선생님을 배려해 준 거야. 그러니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지. 오늘 선생님은 일기장에다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라고 써야겠네.” 이 같은 지도는 학생에게 감동을 주게 됩니다. 감동을 받으면 쉽게 행동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교과시간에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사례를 이야기하겠습니까, 영화를 보여주겠습니까, 아니면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까? 그 어떤 것을 선택하여 지도해 봐도 위와 같은 감동을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틈새교육은 생생한 현장에서 가장 적합한 기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보다 강하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감동하면 자연스럽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틈새교육은 창의성교육에 강합니다. 청소시간입니다. 유리창을 닦던 도현이가 친구에게 자랑을 합니다. “나 내일 전주에 간다. 우리 외사촌 누나가 결혼을 하거든. 전통혼례를 한대.” 도현이의 말을 엿들은 선생님이 하교하려는 도현이를 부릅니다. “도현이는 참 좋겠다. 내일 외사촌 누나의 결혼식에 간다며?” “네. 전통혼례를 한대요.”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도현이에게 전통혼례에 대한 사진을 찍어오도록 지도했고 결혼식에 참가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전통혼례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기로 했으며, 찍어온 사진을 복도에 전시해 주었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선생님은 공부를 많이 한 도현이에게 전통혼례에 대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멋진 일을 했음을 인정한다는 인증서도 주었습니다. 위와 같은 지도는 학생이 신나게 학습활동을 할 수 있어서 교육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함께 일을 하면서도, 놀이를 하면서도, 교육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학생 스스로 신나고 재미있게 알찬 공부를 하도록 안내할 수 있는 교육이 틈새교육입니다.
“학교에 대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 왜곡된 교육경쟁 구조 바로잡아야 -차기정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전상훈=공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사교육 의존도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연간 사교육비 지출 총액이 30조원에 육박하고 조기유학생이 해마다 몇 천 명씩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학교교육의 현실을 개혁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명심할 것은, 단순히 사교육비를 경감시키는 차원의 미봉책이 아니라 학벌중심, 학력중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교육경쟁 구조를 바로잡는 근본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김세령=교사의 입장에서 ‘단위학교 및 교사중심의 자율적 운영’에 가장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추진해 주시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단위학교 운영 중심의 개선요구 반영, 교원 각자가 전문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니도록 지원하는 전략 개발, 교육인프라의 충분한 지원 등이 뒤따라야겠지요. 김덕산=무엇보다 교육제도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 목표달성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개선이 필요하다면 유급제도를 두어서라도 하향평준화를 일소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높여야 합니다. 또한 내신 성적을 중시함으로써 공교육을 살리고,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을 발전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입시 제도를 강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청회를 통한 국민들의 의견이 집약된 제도라면 일관된 교육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대학교육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정책적인 졸업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홍석훈=교육정책은 평준화에 대한 논쟁,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기여 입학제 문제 등 주로 정부 주도의 교육규제 여부를 중심으로 논쟁해오고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 문제를 정부 주도의 평준화 정책과 공교육 정상화 정책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오히려 국가의 과도한 개입과 규제가 교육의 자율성을 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실패와 사교육 팽창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차기정부에서는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더욱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교육수요에 부응하는 다각적인 정책과 유능한 대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수교사 인센티브 제도 필요 -교원의 사기 진작, 전문성 제고 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개혁과제는 무엇일까요? 김덕산=우수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교원평가제가 모든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라면, 우수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교사의 자율적 의사표현에 의한 선택적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교사 자신의 연수, 실적 보고서, 학위 등에 잣대를 놓지 않고 교사가 가르친 학생에게서 결과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교사 스스로가 우수교사에 도전하는 풍토를 조성하여 과도한 경쟁 위주의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사명감을 갖고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도우미로서 교단에 우뚝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세령=성공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 ‘교사’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우수 교사를 확보하여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수 교원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나 사기진작 방안 등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수교원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사직과 행정직의 이원화된 지속적 성장 유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교사 전문적 책무성 이행 절차로서 모든 교원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교사 생애 주기 연수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홍석훈=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낮아짐에 따라 사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교원들에게 책무만이 아니라 자율성과 권한을 함께 보장해야 합니다. 사기 진작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교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오로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와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전상훈=우수교원에 대한 학습년제 및 근무시간 탄력제, 교원 전문성 개발 확대를 위해 국내외 민간기업, 교육기관, 연구기관에 고용 휴직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적극 실현돼야 합니다. 아울러 교원보수도 민간기업 수준에 비견될 수 있도록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원 양성체제에 대한 근본적 점검이 있어야 하고 임용제도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바람직한 방향의 교원평가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합니다. 평가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강점이 무엇이며, 발전방안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단하는 한편, 능력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자율적으로 실행해 나간다면 학교 교육력 제고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코드인사, 농공행상은 안돼 -차기 정부의 교육부총리로는 어떤 인물이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또 참여정부에서만 교육부총리가 여섯 번 바뀌었습니다. 잦은 교체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김덕산=교육부 장관이 자주 바뀌게 되는 것은 많은 국민이 교육에 대해 특별히 중요하고 민감하게 여기는 우리의 사회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넓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이해하고 경험을 가진 분으로 소신이 있고, 흠결이 없어야 합니다. 코드인사나 논공행상을 지양하고, 교육인사위원회(가칭)를 두어 완전한 검증을 거치는 등 선정기준이 엄격해야 합니다. 적어도 교육부 장관은 검찰총장이나 참모총장처럼 임기를 법제화하여 보장해야 합니다. 아니면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처럼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세령=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부총리는 자주 교체되고 그에 따른 교육정책 변화도 심합니다. 교육부총리 개인적인 자질 면에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품과 도덕성을 갖추고, 교육적 식견과 경험이 있으며 리더십을 발휘하여 정부 부처 간 또는 다양한 이익단체 등을 아울러 조정·협상할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습니다. 한편 정부의 정책적 의지 면에서는 우선 최소한의 임기보장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고, 차선으로는 장관교체와는 별도로 교육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상훈=잦은 장관교체가 공교육 불신의 한 원인으로 작용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블레어 총리 시절 10년 동안이나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영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했던 고든의 경우처럼 되지 않는다할지라도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과 철학, 추진력을 겸비한 사람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하여 온갖 난제로 둘러싸인 교육현안을 슬기롭게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거나 임명권자와의 코드를 중시하는 인사로는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교육재정 확보는 필수 -참여 정부에서는 특히 교육재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재정 GDP 6% 확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난 4년간 교육재정은 4.9%에 그쳤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재정 확보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김세령=참여정부의 교육재정 GDP 6% 확보 공약은 교육현장에 희망의 종소리로 들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사회적 환경이 좋은 지역의 학생들은 가정과 차이나는 열악한 학교교육인프라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적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학생들은 학교에서조차 다양하고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구형 TV나 프로젝션 TV로는 다양한 ICT수업이나 교육매체 활용 수업을 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으며, 실험실습을 위한 기구 구입 예산이 줄어 여러 명이 한 세트로 실험을 해야 하고, 전기세를 아끼느라 푹푹찌는 교실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내며 질문·대답할 기운도 없이 축 쳐져 있곤 했습니다. 전상훈=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시골 학교의 경우에는 아직도 비가 새거나 냄새나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학교도 상당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교육재정 확충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수업부실화로 이어지는 과밀학급, 교사부족 문제 역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도서관·강당 등 교육기본시설 확충, 열악한 급식시설 개선, 무상교육 확대 등도 교육재정의 충분한 확충 없이는 불가능한 문제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입니다. 교육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서 성장잠재력 배양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국가 재정배분의 최우선적 고려요소로 작용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새 정부의 획기적 결단을 기대합니다. 홍석훈=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서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교육재정의 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공정하게 배분하여 능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교육의 효과를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교육활동은 교육재정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재정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김덕산=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며 선거공약에 교육재정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당선된 후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교육재정이 부족하여 학교 시설과 교육기자재가 노후화되어도 제때에 보수나 수리를 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생들의 학습 준비물 확보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우수 교사 확보 및 지역·학교·학생 간의 교육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 GDP 6%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합니다. 현장을 이해하는 교육대통령이 되길 -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홍석훈=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어두게 됩니다. 학교에서 좋은 인적 자원들을 배출해 주어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우리나라 교육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여 올바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얻어내고, 합의를 이루어야하며 소신을 가지고 교육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상훈=교육을 알고, 교육문제를 그 어떤 통치영역보다 중요시하며, 교육자들의 애환을 인간적으로 이해주는 따뜻한 교육대통령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외교·국방·통일·경제 등에만 관심 있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교육비 부담에 오늘도 허리가 휘는 학부모,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내보내 놓고 혼자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그들의 한숨과 아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교육자들의 노고를 스승의 날 이메일 한 장으로 격려하기보다는 현장의 의견과 고충을 수렴하는, 그래서 교육자 모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그런 속에서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는 대통령을 기대합니다. 김덕산=초정권적인 교육정책으로 현장, 교원중심의 교육정책을 실시하여 실질적으로 OECD 수준의 교육여건을 실현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행정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또한, 교직의 특수성을 반영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하며 학생들의 측면에서는 공교육 전반에 걸쳐 교육적 측면에서 더 이상 사회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 복지법’을 제정, 법제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 현재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석훈=공교육의 정상화와 내실화가 이루어짐으로써 공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치를 높일 수 있으며, 학부모의 교육열을 학교 안으로 이끌어 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학생과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줌으로써 다양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지향해가기 위하여 특성화 교육의 활성화, 다양한 선택과목 확대 등을 통한 실질적인 교육 선택권을 제공해야 하며, 학습자 개개인에게 적합한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학교 중심의 자율적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덕산=창의력과 논리력을 기르려는 독서 및 논술 교육이 중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독서교육이나 논술교육은 대학본고사나 다름없는 입시용 논술고사를 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 및 체험활동, 토론과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논술교육을 의미합니다. 각 학교마다 도서실을 확충하여 다양한 독서 자료를 구비하고, 학생의 관심과 수준, 교사의 교육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 및 논술 교육을 함으로써 창의력 신장은 물론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을 학교가 함께 해주는 교육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전상훈=입시위주의 교육풍토로 학교나 학부모 모두가 학생들의 학업성적, 내신서열에만 매달릴 뿐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은 외면받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보고 배우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조차 인성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면 이는 개인적 불행을 넘어 국가적 비극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종되어버린 가정교육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범사회적 각성과 계몽이 이루어져야 하며, 학교에서도 건전한 가치관, 기본 생활 습관, 민주시민의식 함양에 초점을 맞춘 인성교육 실천에 주력해야 합니다.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입니다. 경력 10년을 넘긴 직장인이라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말 당신도 혹시 ‘빨간 봉투’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연말이 되면 빨간 봉투를 받을까봐 겁이 나. 우리 회사는 연말 구조조정 대상자에게 조용히 나가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빨간 봉투를 대상자에게 보내거든. 언제 내가 그 대상이 될지 모르니 연말이 되면 아주 피가 마른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점에 나가보면 〈회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회사생활 잘하려면 꼭 알아야 할 77가지 비밀〉, 〈회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10가지 방법〉 등 직장인의 생존전략을 가르치는 처세서가 빼곡하게 쌓여있습니다. 이런 책들의 원조는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서돌)이라고 하는데요. 출판사 공혜진 대표 역시 연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경력 10년을 넘긴 친구들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더라는 거지요. 공 대표는 이런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북을 찾다가 〈회사의 비밀(Corporate Confidential)〉이란 책을 발견하고, 직접 번역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이자 인사전문가인 신시아 샤피로가 쓴 이 책은 정말 노골적입니다. 직장인들이 흔히 갖는 착각의 실체를 속속들이 밝혀주니 말입니다. “능력만 뛰어나면 성공? 충성심이 없으면 어떤 기회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직장 동료는 가족? 당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져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일과 가정의 균형? 회사가 대외 홍보용으로 내세우는 말을 믿는 당신은 구조조정 1순위”, “내가 옳다면 회사는 내 편? 상사와 맞서는 것은 지는 게임이다. 상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회사 생활 10년을 넘긴 직장인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이 정말 많습니다(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이라면 조금 덜 수긍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장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별 것은 없지 않던가요?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만해도 그렇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책들이 수십만 권씩 팔려나가는 건, 제 친구처럼 다가올 연말이 당장 불안한,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샐러리맨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신만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책이라도 사 보면서 강박관념을 달래며 꺾인 무릎 다시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갈 밖에요. 그나저나, 제 친구 녀석, 올해도 ‘빨간 봉투’를 비켜갔으면 좋겠네요(뭐, 남 걱정 할 일은 아닌 거 같긴 합니다만. ^^;;).
교사들은 교장, 교감 등 관리자보다는 동료교사의 평가가 자기 개선에 가장 도움 된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부모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교원은 0.9%에 불과했다. 김갑성 연구위원(한국교육개발원)이30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교원능력개발평가 정책 포럼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 내용이다. 교육개발원이 주최한 이날 포럼에서 김갑성 연구위원은 506개 교원평가 선도학교 교원, 학생, 학부모 2만 1359명을 대상으로 10월 1일~19일 동안 설문조사한 결과 등을 토대로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김도기 교원대 교수도 선도학교 운영 결과를 발표했는데 지난해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 결과와 비슷했다. ◆동료 교사 평가 신뢰도 높아=평가자로 참여하는 교장, 교감,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 중 ‘자기 개선에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평가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초중고 교원들은 동료교사(61.4%), 학생(33.7%), 교장, 교감(3.9%), 학부모(0.9%) 순이라고 대답했다. 초, 중, 고교를 막론하고 동료교사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높았지만, 교장, 교감이 도움이 된다는 답변은 초등(5.4%), 중학(2.8%), 고교(2.1%) 순으로 낮게 나왔다. 학교급이 높을수록 학생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급증한 반면 학부모 평가에 대한 선호도는 반대였다. 동료교사의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비교적 높게 나왔다. ‘나에 대한 동료교원의 평가 결과는 신뢰할 만 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46.8%)는 답변이 ‘그렇지 않다’(14.9%)보다 세배 이상 높게 나왔다. 이에 따라 김 연구위원은 “학생은 교사 수업에 직접 노출되는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에 수업 개선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는 또 교원평가 법제화가 지연되는 사유로 “교원평가, 근평, 성과금이 통합 시행될 것이라는 교원들의 우려가 줄지 않는 실정”을 들며, “교원능력 개발 평가 목적이 오직 전문성 신장에 있음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전문성 신장만을 목적으로 할 때 동료나 상사를 더욱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급 높을수록 수업 만족도 낮아=포럼에서 김도기 교수가 선도학교 운영 결과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교급이 높을수록 동료교원에 대한 평가와 학생·학부모의 수업과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동료교원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우수’(91.4%) ‘보통’(7.9%), ‘미흡’(0.7%)으로 나타났지만, 초(94.2%), 중(90.7%), 고(89.3%)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졌다. 김도기 교수는 초등학교는 수업이 담임 위주로 이뤄지므로 교사, 학생 간에 친밀도가 높고 교과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수업 방법과 내용 등에 대한 공유가 많은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초등(70.8%), 중학(57.2%), 고교(54.4%)로 갈수록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도 낮았다. 연구자는 학교급이 높을수록 수업 내용이 어려워져서 교사가 다양한 학습 방법을 동원하기 어렵고, 칭찬 위주의 조장적 지도보다 통제를 강화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교총 “다면평가 중복, 해소해야”=토론자로 나선 김동석 교총 정책교섭국장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대상을 두고 교원평가, 근무평정, 성과금이라는 평가 중복이 발생 한다”며 “근평상의 다면평가와 교원평가상의 동료평가를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외국의 사례에서도 학부모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당위론과는 달리 실제로 학부모 의견을 교원평가에 반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는 정보 습득의 제한성, 자녀를 통한 2차 정보 활용에 따른 객관성, 타당성의 결여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