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전화 한 통화로 자녀의 성적부터 학교생활까지 모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직장·가사일로 바쁜 학부모라면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이 문제를 말끔이 해결한 학교가 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동산고등학교(교장 劉和雄)는 97년 9월부터 '동산다이얼ARS시스템(0345-501-0256∼9)'을 도입해 학부모들이 전화 한 통화로 자녀의 학교생활을 알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劉교장은 "자녀의 생활이 궁금하지만 학교를 찾기가 어렵고 부담스런 학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며 "전용회선과 컴퓨터, 프로그램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부담도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24시간 가동중인 ARS시스템을 이용하면 학부모들은 집에 앉아서도 자녀의 학교성적, 출결상황, 내신관리 상태를 점검할 수 있고 각종 학 교행사 안내, 생활지도 상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학생 개인마다 학년, 반, 번호에 따라 고유한 비밀번호가 주어지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위험도 없다. 이중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부분은 역시 성적서비스와 생활지도 상담. 하지만 요즘은 담임교사와 음성사서함을 통해 생활지도 상담을 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전화로는 가능하기 때문에 교사들도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이규열 교사(미술)는 "학부모님과 함께 아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연계지도가 가능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음성사서 함으로 학교폭력 등 학생들의 탈선을 제보하고 상담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조기에 예방하는 효과도 얻고 있다. 동산다이얼시스템은 가정통신문의 역할도 한다. 이 시스템은 가정에서 학부모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기 때문에 특히 맞벌이 부부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3학년 자녀를 둔 이명애 주부(43)는 "궁금한 일이나 상담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학교가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교육정보화는 정부와 민간의 전폭적인 지지없이는 불가능하다. 상호간의 긴밀한 협조와 지원이 있어야 정보화시대의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학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된 학교의 불법 소프트웨어 문제도 사실은 정부의 적절한 지원없이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일선의 반응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교육계에서도 정부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최근 미국 교육계는 교육정보화를 위한 일선의 요구를 정부와 민간기업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E-rate' 프로그램. 교사와 학생이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등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막대한 요금이 장애요인이다. 97년 5월7일 클린턴 대통령과 교육부장관 Riley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모든 학교와 도서관이 정보초고속망에 연결 가능하도록 하는 'E-rate'가 통과됐다. 즉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전국의 가난한 학교와 도서관이 기기 설치, 연결비용, 월 서비스 비용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연 22억5천만달러(2조7천억원)의 비용을 할인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 70%의 학교들이 소요비용의 약 50%를 할인받게 됐고 경제사정이 아주 어려운 학교들은 9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게돼 모든 학교가 정보공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게 됐다. 통신회사들은 이러한 비용을 지원하는 데 따른 손실을 낮은 지역접속료와 새로운 세입으로 메우고 있다. 그러나 FCC는 통신회사와 의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5월 이 기금을 삭감키로 결정했다. 이 대로 된다면 올해부터는 학교와 도서관은 13억달러밖에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당초 FCC가 약속한 금액에서 10억달러나 삭감되는 것이다. 올해 3만여 학교와 도서관이 'E-rate' 할인을 신청해 놓고 있으며 그 비용은 20억2천만달러에 달한다. 이들은 이 돈을 인터넷 서비스를 연결하는데 이용할 계획이다. 최종 결정은 이번주 이뤄질 예정인데 NEA의 밥 체이스회장은 'E-rate'를 존속시킬 수 있도록 교육계가 FCC와 의회에 E메일을 보낼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의회와 FCC, 통신 회사들은 이 프로그램을 위한 지원을 계속 해달라는 요구의 E메일을 2만여 통이나 받은 상태다. 이같은 일선의 압력은 이 프로그램을 존속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지만 아직까지는 노력일 뿐이다. 그 결과가 주목된다.
EBS 교육방송의 교육 프로그램을 방송시간에 관계없이 시청할 수 있게 됐다. 멀티미디어 종합 교육정보 서비스인 웹클래스(WebClass)는 EBS에서 방송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별도의 녹화 없이 반복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인터넷과 각종 통신망을 통해 제공한다. 웹클래스는 EBS의 라디오, TV, 위성 1·2TV에 방송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방송이 이루어진 이후 동영상 또는 음성 및 전자교재로 개발하여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있으며 인터넷(http://www.WebClass.net)을 통해 초·중·고 대학생 및 일반인 대상의 70여 프로그램을 주문방송(VOD) 형태로 24시간 제공한다. 아울러 PC통신 하이텔, 넷츠고, 유니텔, 천리안에서도 EBS 교육정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는 위성인터넷과 인포샵을 통 해서도 제공된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EBS의 방송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전체 교과학습을 포함한 36개 프로그램과 중·고등학교 대상의 영어관련 14개 프로그램, 대학생 및 일반인 대상의 어학관련 12개 프로그램, 논술·성교육·면접특강 등의 기타 6개 프로그램이다. (주)하스미디어가 개발해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대부분의 정보가 무료로 제공되나, 방송 파일과 교재 파일의 다운로드 이용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월 5,000원으로 70여 프로그램 전체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웹클래스의 멀티미디어 자료는 교안이나 학습물을 제작 할 때에도 활용될 수 있어, 일선 교사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의 =(02)598-7500
한국교총은 지난 3월부터 5월1일까지 교실과 일상생활에서 교육자로서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찾아 교육과 교육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스승 존중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작은 이야기'를 공모했다. 접수된 71편의 내용들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생님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가슴에 묻어두었던 내용을 살짝 들여다봤다. #서울북공고 강대준교사 무릇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고 했다. 이것이 정한 이치라면 살아있는 자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이치도 우리 삶에 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1978학년도의 제자들에게 '8888 고지'라는 학급구호를 제창시켰었다. 이것은 70명 여학생들의 10년 후 반창회를 88년 8월8일 18시 남산팔각정에서 가진다는 집단 약속의 계시록이었다. 공교롭게 서울올림픽 때문에 88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 우리의 암호가 그 신비감을 좀 읽긴 했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후 나는 남산을 찾았다. 별로 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팔각정 고지에 올랐을 때 거기엔 32명의 숙녀들이 모여있지 않는가. 그로 인해 나는 그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교단 인생의 큰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사연은 일간지를 통해 보도됐고 이 기사를 읽은 당시 3학년 남학생들이 99년 9월9일 19시에 반창회를 열기로 결의하는데 까지 이어졌다. #서울한서초 최경자교사 영석이가 전학 가던 날 영석엄마가 책상 위에 두고 간 감짱아치는 주홍빛 색깔만큼이나 두고두고 정겨웠다. 말썽꾸러기 선열이 할머님이 냄새 풀풀나는 오징어 열마리를 들고 오셨을 때 그건 바닷바람만큼이나 훈훈했다. 그리고 5년전 담임을 했던 다원이 엄마는 작년 스승의 날에도 취미 삼아 손수 만든 도지기 찻잔을 들고 어김없이 찾아왔었다. 나는 이것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이따금씩 주어지는 기쁨이요 보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것을 뇌물이라 할 것인가. 누가 이것을 잘못되어 가는 교육현장의 비리라고 할 것인가. 작년 스승의 날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선물은 물론 꽃 한송이도 받지 않겠다는 학부모 가정통신문을 보냈었다. 그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한 아이가 만들어 온 종이꽃조차 돌려보내야 했다. 스승의 날이 오히려 교사들을 슬프게 만든 날이었다.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지경이지만 우리가 모두 이성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면 우리 모두 국가에 대역죄를 짓게 될 것이다. 우리의 힘은 오로지 양심을 지켜 사랑하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다. #경기평택 지산초등교 안승보교사 준철아. 지금 선생님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감싸주는 포근한 날씨가 얼어붙었던 겨울을 살포시 녹여주고 있는 계절이 오고 있단다. 하체부터 전신이 마비가 되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단다. 휠체어에 앉아서 공부하면서도 발표도 열심히 하고 동화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너였어. 공부시간에 소변을 보고 싶으면 선생님하고 부르기로 약속한 너였지.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 가 들려오면 얼른 너에게 달려가서 휠체어를 옆으로 돌려놓고 통에 볼일을 볼 때 겸연쩍어 하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6학년때 너와 함께 한반에 배정됐고 1학기까지는 너의 활달한 모습에서 학급분위기는 더한층 즐거웠지. 그런데 2학기 들어 학교를 시름시름 빠지더니 10월부터는 학교를 못나오게 됐고 사흘이 멀다 않고 너의 집을 찾았지. 네가 졸업을 하고 어머님께 전화로 안부를 물었을 때 하늘나라로 갔다는 어머님의 울먹이는 말씀에서 말문이 막혀 위로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단다. 세상에 태어나서 마음껏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먼저 간 너. 오늘도 선생님은 너를 생각하며 다 시는 이런 일들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단다. #서울선희학교 김영국교사 청각장애로 인해 들을 수도 없고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학생들과 함께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28년이 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내손을 거쳐갔다. 매년 느끼는 감정이지만 평안남도가 고향인 우리집의 명절은 쓸쓸하다. 설날 아침 우리 가족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다. 전화를 건 사람은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특수학교 제자였다. 새해 문안 전화였다. 지난 28년 동안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각장애인 제자에게 새해문안 인사전화를 받아본 것은 금년이 처음이다. 나는 몹시 기뻤다. 그리고 흥분된 상태에서 제자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청각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말을 하고 또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가. 궁금해하겠지만 제자는 선천적 청각장애가 아닌 후천적으로 4세때 고열로 인해 소리를 못듣게 됐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개념과 어휘력이 있으며 청력 손실상 태가 양호해 보청기를 통해 여러 가지 소리와 음성언어의 변별을 할 수 있고 구화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언어표현을 할 수 있는 학생이었다. 전화내용은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것이었지만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더 귀하게 느껴진 값진 전화였다.
인천마곡초등교 홍성덕교사. 40년째 가계부를 써오고 있다. 196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받은 월급의 쓰임새를 수첩에 꼼꼼히 메모한 것이 시초. 가계부의 생명은 기록에 있다며 동전 한 닢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계 보조부'라는 메모장을 탁자 위에 배치해 가족간에 스스럼없이 기록하게 했다. 날마다 정리하면서 월말, 상반기에 이은 연말 결산을 거듭하기 어느새 40년째다. 결산자료를 바탕으로 가정 경제성장률에다 1인당 가족 소득, 비목별 지출률에서 저축률까지 산출하면서 새해 예산을 수립하는 철저함에 감동됐는지, 85년 5월 저축추진중앙위원회 주최 전국가계부기록체험담 공모전에서 여성응모자들을 제치고 유일의 남성수상자가 됐다. 이때부터 '가계부 선생님'으로 불리게 됐다. 일기쓰기는 풀무원농고 주호창교사를 따라 올 사람이 없다. 개인 일기쓰기를 40여년. 4명 아이들의 육아일기, 성장 일기 등도 27년간 따로따로 써오고 있다. 한줄 한줄 써 온 것이 이제는 대학노트로 12권이나 되는 개인 역사의 기록이다. 이쯤되면 일기쓰기가 취미의 수준을 넘어서 버린다. 그런가 하면 40여년간 탐사 채집활동을 통해 이를 학습자료로 개발하고 현장수업에 활용하는 교사도 있다. 전남나주 남평중 김병구교사. 학생들과 채집, 탐구, 분류, 연구, 분석하는 과정에서 식물표본 1천종, 나비표본 5백종 등 3천5백점의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김교사는 이 자료들로 6월5일 제26회 세계환경의 날을 맞아 환경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숨쉬며 보고 느끼는 환경교육이 이뤄지도록 하는 최고의 교사가 아닐까. 경북영주 풍기공고 민상홍교사는 이제 교직 4년차. 실업계고교 학생들이 국가기술자격 취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그래서 3년만에 취득한 자격증이 9개. 자동차 정비기능사 1급, 자동차 검사기능사 1급, 워드프로세서 3급, 열관리기능사 2급, 자동차 검사 기사 2급, 기중기·굴삭기·지게차·로우더 운전기능사 등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 현황이다. 교사 스스로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가 맡은 과목·분야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민교사의 말을 되새길만 하다.
교사들이 '잡무의 늪'에 빠져 헤쳐 나올 줄 모른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예가 있다. 지난해 전남의 모 초등학교(43학급 규모의 읍 소재지)에서 98년도에 발생하여 처리된 공문서의 경우 교무부 소관은 1030여 쪽, 연구부 소관은 900여 쪽으로서 1일 평균 교무부는 4∼5쪽을 연구부는 3∼4쪽의 공문서를 처리한 셈이 된다. 그런데 지난 3월1일자 한국교육신문 보도를 보면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99학년도부터 '모든 공문서를 서무실에서 취급처리 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이 보도를 보고 대다수의 교사들이 공문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제까지 교육부를 위시한 관계 당국의 탁상공론적인 잡무경감 시책에 식상한 전국의 많은 교사들이 환영하리라 여겨진다. 모든 교사들이 공문서의 늪에서 벗어나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지난해 실추되었던 교권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처럼 선생님이 힘든 때는 없었다. 정년 단축, 박봉 삭감, 교사 폭행, 교권 침해, 모진 여론의 화살 등으로 선생님들은 동네북처럼 이리 맞고 저리 받혀 기진맥진 실신상태다. 그래도 말 한마디 못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현실을 비관한다. 이 사회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경시하니까 학생들도 선생님을 무시하며 지도까지 받지 않으려고 한다. 도통 말이 먹히지 않는다. 결과는 심각한 교권침해와 폭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면하는 선생님들은 넋을 잃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술렁이는 학교현장이 딱하기만 하다. 교육적 체벌까지 인권 모독이라는 풍조인데 어떻게 교육이 바로 서겠는가. 때문에 학교는 점점 교육부재와 공황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믿음은 상실되어 험악한 공해로 숨막히는 황폐는 거듭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의 입지는 황당하고 막연할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누가 뭐래도 우린 묵묵히 이 나라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다. 우리가 포기하면 이 나라 교육은 영원한 퇴행일 뿐이다. 이대론 안 된다. 용기를 내어 바로 잡아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우린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스승의 길이란 험하고 고달픈 역경임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천진한 청소년의 앞날과 그들의 문화를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한다. 잘못을 용서해선 안된다. 썩어 곪아버린 교육 공해의 부위에 과감한 메스를 대야 한다. 어두운 길을 가는 그들을 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다.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것은 교육자인 우리 들의 몫이며 우리의 길이다. 떠나지 말고 우리의 자릴 꿋꿋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서울시중등교사회(회장 채수연 한영고교사)는 11일 25개 구교련 중등교사회장이 참석한 운영위원회에서 스승의 날 휴무를 추진키로 결의하고 각급학교장과 분회장에게 학교별로 휴무할 것을 협조 요청했다. 서울 중등교사회는 "평생을 천직으로 지켜온 존경하는 선배들이 한 학교에서 적게는 다섯분에서 많게는 스무분이 떠나는 교육공황 속에서 우리 교사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스승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며 "모두 함께 휴무할 것"을 제의했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4월17일 대의원회 결의에 따라 벌인 이장관 퇴진 촉구 서명운동이 13일현재 23만1천8백45명 서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명기간이 2주였지만 오고 가는 우편배달과 사고 등을 감안하면 불과 열흘사이에 전국 방방 곡곡 1만1천여 학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아직도 서명부가 올라 오고 있어 최종집계 결과는 24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엄청난 서명숫자에 대해 교육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고있었던 교육부관리, 언론조차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 이고 있다. 아뭏든 이번 서명운동으로 교육부장관에 대한 교육현장의 거부 정서가 명징하게 드러났다. 특히 이번 서명운동의 경우 방해압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무게를 한층 더한다. 우선 서명운동의 목 표가 장관퇴진을 촉구하는 것이어서 교원 개개인의 신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므로 일반 서명운동에 비해 부담스러운 측면이 다분했다. 그리고 서명운동을 진화할 목적으로 교육부는 장관신분 관련 사항인 점 등을 들어 '불법적 집단행위'라고 자의적인 유권해석을 전파했다. 중간에 시·도교육감들도 불법성과 비교육적임을 이유로 서명운동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고, 전교조지도부도 지침으로 서명불참을 유도하고 나섰다. 아울러 이번 서명운동이 반개혁 또는 기득권 지키기라는 일부 부정적 여론도 제기됐으나 교원들의 분노의지를 꺽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한나라당, 한국노총과 한교조는 교총의 서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서명운동 막바지인 4일 金大中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며 교육부 정책추진 방식의 문제점 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면서 격앙 일변도의 국면이 다소 완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11일 李海瓚장관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 국무회의에서 자율연수휴직제와 담임수당 인상 등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17일 교총과의 교섭에 나서는 등 뒤늦게 사태수습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교원들의 장관에 대한 불신여론은 요지부동이라 이같은 교육부의 변신노력이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李장관이 소위 '당근정책'을 발표한 후에도 교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하다. 장관퇴진을 요구한게 돈 때문인 것으로 비추이는 것 자체도 못마땅하고 IMF이후 삭감된 체력단련비 등이 복원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원안식년제니 담임수당 인상을 얘기하는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못믿겠다'는 정 서이다. 지난 20여일의 상황을 일지별로 정리해 본다. △4월16∼20일=16일 제243회 교총이사회는 교육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결의했다. 17일 제70회 임시대의원회는 교육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결의했다. 20일 교총은 각급학교 분회로 서명지를 발송했다. △4월23일=전교조는 지난달 23일 PC통신에 올린 '교총서명 대응지침'을 통해 "전교조 조합원들은 서명에 동참하지 말고 일반교사들의 불참을 설득하자"고 강조했다. △4월26∼28일=26일 朴承國의원(대구북갑)은 "한나라당은 조만간 이장관 해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咸鍾漢 국회교육위원장은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27일=시·도 교육감들은 서울시교육청에서 회의를 갖고 '교원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서명운동 자제를 당부했다. 또한 이튿날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에 공문을 보내 자제를 당부했다. △4월28일=교총은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서명자제 요청에 대한 본회 입장을 발표하고 시·도 교육감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4월30일=한국교총은 문화방송(MBC)에 항의공문을 보내 지난달 29일 저녁9시 뉴스에서 교총의 자발적 서명을 왜곡했다며 편파보도자세를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한국노총과 한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는 '일방적 교육정책 추진 및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교단 황폐화 책임자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5월4일=金大中 대통령은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과 관련 4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교육자의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날 金대통령은 교육자는 개혁대상이 아닌 주체라는 말과 함께 "현재 총리령으로 돼 있는 교원예우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시키는 등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5월11일=이해찬 교육부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자율연수휴직제· 담임수당 인상등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보고.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李在五 교육위원회위원장 성명을 통해 교육부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내년부터 근무경력 15∼20년된 중견교사들중 본인이 희망할 경우, 1년간 본봉의 50%만 받고 연수휴직을 할 수 있는 '자율연수 휴직제'가 도입 실시된다. 또 현재 총리지침으로 되어있는 '교원예우 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해 △각종 행사나 회의에서 교사 예우 △외부행사에 교사 동원 자제 △교권 침해 사례와 교원에 대한 민원, 진정 등의 조사처리에 신중을 기하는 내용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매년 초·중등교원을 각각 1천명씩 5년간 1만명 증원하고, 담임수당을 현재의 월 3만원에서 단계적으로 10만원으로 인상해 주기로 했다. 李海瓚교육부장관은 11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교원사기 앙양방 안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이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金大中대통령이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 최근의 교직사회 불만여론을 감안, "획기적 교원사기 앙양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가 이날 보고한 방안에 따르면 수업외 업무와 관련, 관할 교육청을 거치지 않은 외부공문에 대해 답신의무를 면제하는 특별규정을 부령으로 제정하고, 학생의 전·편입학 업무를 교원이 아닌 행정직원이 맡기로 하는 등 교원 잡무를 경감해 주기로 했다. 또 교원 전문직단체의 활성화 방안으로 교원연수, 교과연구, 교육정책 개발 등에 교원단체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행·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주요 정책 입안시 현장교원의 참신한 아이디어 공모를 위해 교육정책 공모제를 도입하며, 교육부 산하기관에 '교육활동 연구지원단'을 신설해 내년부터 매년 3백억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키로 했다. 이밖에 2∼3개 지역교육청 단위로 '교원자문변호인단'을 설치 운영하고 시·도교육청 평가를 격년제로 운영해 학교현장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기로 했다.
30년 이상 근속한 교원을 포함한 직계가족(존·비속 및 그 배우자 포함) 7인 이상이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교원에게 '스승의 날' 한국 교총에서 수여하는 '교육가족상' 수상자로 올해는 강원 강릉 강동초등 학교 李京完교사(62) 가족이 선정됐다. 가족만 모여도 작은 학교 교무 실을 방불케하는 李교사 가족을 소개한다. 李교사는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良燮씨는 평창 대화고, 장녀 惠淑씨는 강릉 주문초등교, 삼남 宙燮씨는 서울 후암초등교에서 각각 교편을 잡고 있다. 또 큰 자부 金英熙씨는 평창 진부중, 사위 金龜南씨는 강릉 명륜고, 작은 자부 李恩淑씨는 청주 풍광초등교에 근무한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차남을 제외하고 李교사를 포함한 7명의 가족이 교육계 동지인 셈이다. 지난 57년 강릉사범을 졸업하고 인제 갑둔초등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李교사는 올해로 교직경력 42년을 맞는다. 자식농사 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지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내심 아픔도 많았다. 교사 봉급으로 자식 넷을 키우다 보니 용돈 한번 넉넉히 준 적 없고 학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이 가정형편을 안 자식들이 교·사대로 진학하거나 스스로 벌어 가며 대학을 마쳤다. 공부 욕심은 유난해 장남은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삼남은 현재 교원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교직이 넉넉한 생활의 여유를 주는 직업도 아니고 예전처럼 사회적 대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보람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는 李교사는 "뒤를 이어준 자식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李교사는 또 "자식들에게 무엇이 되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시골 교사로서 맡은 일에 충실하는 아버지 모 습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교직생활 절반 이상을 도서·벽지에 근무했으면서도 승진 기회를 번번히 마다한 李교사는 사재를 털어 학습자료를 제작하고 시골학교 환경개선 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그는 불우한 제자들의 학습준비물을 마련해 주는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오는 8월이면 천직으로 알고 살아 온 교직에서 정년을 맞는 李교사는 "명절이나 방학때 다같이 모일 기회가 되면 항상 이야기꽃의 결론은 교육문제"라며 "서로 갖고 있는 교수-학습 방법을 교환하고 토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른이 된후 돌아보면 학창시절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스승의 날'을 맞아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에는 학창시절 잊을 수 없는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꽃이 만발하고 있다. 지금은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찾는 사연이 있는가 하면, 철없던 자신을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도 올라있다. 사이버공간 사제의 정은 절절한데 실제 교단의 제자는 교사를 고발하고 폭행하는 등 갈수록 삭막해지기만 하니…. "나는 수업하기보다 땡땡이 치기 좋아했고 공부하기 보단 노래방가서 하루를 때우기가 일쑤였다. 수업시간엔 이상한 말로 수업을 차단 시키기도 했다. 조회시간이면 몰래 담넘어 분식집가서 노닥거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고2때 심혜숙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방과후 짙은 화장과 야한 옷을 입고 드나들어선 안되는 곳에 놀러 다녔다. 그러다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선생님은 내게 아무말도 없이 지나치셨다. 다음날 선생님은 "어제 너 나 봤니?" "아뇨" "그래 난 어제 너 봤는데" "..." "아마 니가 졸업후 그렇게 하고 다녔다면 난 너의 센스에 대해 칭찬했을 텐데. 지금 니 신분이 학생이니 널 칭찬할 수가 없구나. 너에게 칭찬을 못해주는 선생님이 미안하구나"란 말씀뿐이셨다. 그 말은 내게 정말로 어떠한 매보다도 아팠다……" 이용자 STREET7은 "그 사건 이후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게 됐다"며 "아직도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고 적었다. "선생님은 이야기 마술사였어요. 우리의 눈꺼풀이 무거워 질라치면 빙그레 웃으시며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주 재미있고 즐거웠어 요.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신걸까 신기했어요.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항상 이야기를 준비하셨대요" 이혜진씨는 수업시간 고비고비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중2 국어담당 여선생님에게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국어를 전공하고 있다는 그는 "선생님이 엄마였으면 좋겠다"라는 일기를 쓸 정도로 선생님 을 좋아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고1때 가출을 하는 등 '문제학생'이었다는 이해구씨는 '김용식'선생님을 이렇게 회고했다. "1학년 여름방학때 가출을 했다. 무작정 집을 나가 한달 정도 있다보니 학교가 그리웠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집안을 원망했다. 선생님은 사정을 알고 학교측에 선처를 호소했다. 선생님은 이 학생이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르면 자신이 사표를 쓰고 책임지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정학당할 수 있었던 것이 근신으로 마무리됐다" 그후에도 학교에 적응을 잘 하게끔 선생님이 이끌어주었다는 그는 지금 성실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이랑씨는 "몸이 약한 나를 멋진 녀석이라며 칭찬해 주시고 스스로 자부심과 부족한 면을 수치심 없이 깨닫게 해 주셨던 선생님. 나의 가치와 능력을 처음 알아주신 선생님이야말로 스승이자 은인"이라며 "중1때 담임선생님이 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고 했다.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사춘기시절을 회고하는 편지도 있었다. "선생님의 결혼식 장에서 축하드린다는 말 한마디 못해 죄송하다"는 김다희씨는 "선생님 정말 사랑해요"라며 행복을 기원했다. 또 김승현씨는 "선생님. 요즘 교직의 권위를 흔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개의치 마시고 소신껏 학생들을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관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모두들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십시오. 이 시대를 살아가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글을 띄웠다. 이밖에 '90년 전남 작은 섬 도촌에서 정치경제과목을 가르치셨던 이태영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문기보) '황지고교에서 지구과학을 담당했던 김춘기 선생님을 찾습니다. 0652-261-5777로 연락 주십시오'(김종래) '84년 서울 용산여중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던 최승호 선생님 뵙고 싶어요'(진유선)등 연락이 끊긴 선생님을 찾는 제자들도 있었다.
'사랑의 매'와 '체벌'은 어떻게 구별될까.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宋基弘부장판사)는 11일 학생의 뺨을 때려 망막이 분리되는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서울 Y고 金모교사 (34)에게 상해죄를 적용, 벌금 3백만원을 선고하면서 허용 가능한 체벌의 범위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우선 체벌과 상해와의 연관성을 들었다. 체벌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다면 사랑의 매라고 볼 수 없다는 것. 둘째, 장소의 문제다. 여러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당사자의 인격을 침해하기 때문에 교육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교사의 심리상태. 흥분상태를 제어하지 못한 채 감정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교사가 흥분하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학생의 뺨을 한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뺨을 때려 망막박리의 상해를 입혔다"며 "이같은 체벌이 피해자를 훈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체벌"이라고 밝혔다. 한편 金교사는 지난해 5월 평소 무단결석이 잦던 피해학생이 "학교에 오기 싫어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답하자 뺨을 때려 망막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자 교육상 필요한 체벌이었다며 항소했다.
개교 60주년을 맞은 춘천교대(총장 朴敏壽·사진)는 7일 교내 종합 학습관에서 金柱億동창회장, 金炳斗강원도교육감, 李起天강원도교위의장 등 각계 인사와 교직원·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朴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39년 춘천사범학교로 개교돼 12개 학과의 학부와 13개 전공과정의 대학원을 설치한 오늘의 춘천교대가 되기까지 세찬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면서 초등교사 양성에 매진해 왔다"며 "60년의 역사를 발판으로 청년 춘천교대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교대는 기념식이 끝난 후 교내 예술관 입구에 동문 작곡가 金公善선생(춘천사범 4회)이 작곡한 '과수원 길'의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과수원 길 노래비'는 높이 2m 넓이 2.5m의 크기로 '과수원 길' 악보와 작곡가의 부조, 약력 등이 새겨져 있다. 학교측은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는 과수원 길이 춘천교대 동문에 의해 작곡됐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알려 자긍심을 갖게 하고 더욱 널리 불려지도록 하기 위해 동문과 음악계의 뜻 있는 분들이 노래비를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나는 교사 9년차다. 아침마다 나는 강을 건넌다. 발령 받고 지금까지 8년동안 통영에서 진주까지 하루 네 시간을 통근해 온 내게 강은 하나의 숙명이다. 실지로 내가 강을 보는 시간이란 진주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도동교까지의 5분 남짓한 거리지만 나는 통영에 닿을 때까지 강에 가슴을 담그고 흥건해진다. 봄철 까슬한 며칠을 제외하고 강은 안개를 뿜어낸다. 안개는 말하자면 강의 냄새나는 유혹이다. 나는 안개의 비릿한 내를 맡으면 비로소 강을 느낀다. 그 래서 강에 몸을 담그는 네 시간의 통근은 안개의 품처럼 몽롱한 편안함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이 내겐 완벽한 자유였다. 더러운 시내버스 칸에 코를 박고도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시부모님 봉양에, 간단없이 찾아드는 시댁 손님들 치레에 지친 나는 시외버스 칸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웠다. 첫딸을 임신하고서도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는 단풍잎 한 잎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둘째 딸을 낳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 진주에서 통영까지의 네 시간 통근거리는 소롯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삶이란 얼마나 엄정한 것인가. 그건 만만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숨겨진 법칙이다. 통근거리에 부담을 느끼면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 네 시간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책을 보면 속이 메슥거렸고, 가슴 저리게 좋아하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도노란 현기증을 일게 했다. 나는 어떻게든 통근시간을 참아내야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의 교활한 속셈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겐 삶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강은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강을 벗어나서도 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는 매양 물컹한 심정이 되어 환 상이 갖는 편안함에 젖었다. 차에서 내리자 시작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찬 기온이 스멀스멀 소매사이로 스며들었다. 동쪽으로 몸을 앉힌 교사라 그런지 교무실은 아직도 찬 기운이 마지막 저항군같이 낮게 포복하고 있었다. 산언저리의 바위틈에 진달래가 맨 살로 비에 젖었다. 봄은 분홍빛 그리움을 펼쳐 두고도 여전히 늦은 걸음이었다. 하염없이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200까지 혈압이 오르던 남편이 떠올랐다. IMF 된서리를 난장으로 맞고 있는 남편에게도 이 봄은 차가울 터였다. 태연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 남선생님들을 쳐다보았다. 나태하고 일률적인 남선생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교원과 결혼하지 않은 나의 선택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경제불황의 가파른 현실에도 속편한 그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나는 스스로의 이기심이 역겨워 진저리를 쳤다. 1교시를 마치고 오니 교무실이 부산했다. 신임 여교사가 서너명의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열정이 귀여웠던지 남선생님들까지 가세하여 분위기는 제법 살벌하기까지 했다. 저런 때가 있었지. 아이들의 일탈이 못내 안타까워 목울대 를 돋우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시간이 지나면 이해와 너그러움으로 변명되는 적당한 무관심의 시기가 찾아 올 테지. 나는 신임 여교사에게 미소를 보내며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김선생” 뜬금없이 찾아드는 편두통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이마를 지압하고 있는데 옆자리 박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박선생보다 분홍빛 장미가 먼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럴 수가! 혜진이였다. 장미를 안고 선 혜진이, 어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있었지만 워낙 오랜만의 연락이어서 설마 했었는데 역시 혜진이 였다. “이런 걸 뭘.” 용돈을 거의 다 썼으리라는 안쓰러움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내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혜진이에게 나는 옛날의 우정을 느꼈다. 그렇다. 내가 혜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였다. 나는 그 애와 깔깔거리며 거리를 싸대고 다녔으며, 서점에서 진지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책을 골랐다. 때로는 초밥집에서 콜라를 마시는 혜진이 앞에서 거리낌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시집을 갔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바람에 친구들은 일체 내게 연락을 끊었다. 시집살이 몇 년만에 가까운 친구가 남아 있지 않던 내게 또래보다 조숙한 혜진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혜진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도산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충무중학교에서 5년 꼬바기 근무했지만 경력 점수 외에는 아무런 부가점이 없었던 나는 그 게으름으로 해서 원하는 진주지역으로 전보되지 못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선택한 학교가 도산중학교였다. 통영에서는 그나마 가장 진주에 근접한 학교라는 이유에서였다. 혜진이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히말리야시다가 너른 팔로 껴안은 도산중학교는 그림 같은 학교였다. 교사 16명의 워낙 작은 학교여서 업무가 많아 피곤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총명했고, 시내에서 다소 벗어난 학교 여서인지 심성도 맑았다. 도산 중학교 근무를 명령받고 첫 인사를 갔을 때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청소시간을 무엇보다 싫어하던 통영시내 학생들에 질려 있던 내게 방학중인데도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 입고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진주로 발령 나지않은 서운함을 단번에 씻어 주었다. 그 아이가 혜진이였다. 혜진이가 다시 내 눈 안에 확 들어온 것은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위대한 사람의 기념비’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고 있었다. 시방도 혜진이의 비문을 정확하게 왼다. “1951년 4월 23일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일을 하진 않았으나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딸을 통근시켰으며 그 통근 길에서 교통사고로 먼 길을 떠난 김영석씨 여기 잠들다. 살아서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으나 죽어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학처럼 자유로이 산천을 희롱하길 여기에 빗돌을 세운다.” 이마가 유난히 향그러운 아이는 심상찮은 목소리로 비문을 읽었다. 김영석씨는 혜진이의 아버지였다. 유명한 소프라너로 불같은 사랑의 전설을 남겼느니, 빈민 구제로 일생을 보낸 수녀니, 삶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사막에서 나서 사막에서 죽었으니 하며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눈으로 자신들의 비문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말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기준은 각자 틀려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여 간간이 짝을 대상으로 장난을 거는 유치한 비문들도 웃으며 받아 주었다. 그 많은 비문들 사이에서 혜진이의 비문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 건 단순히 그 아이에게서 받은 신선한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내가 실명이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우리 아버지예요.” 하고 혜진이는 야무지게 대꾸했다. 혜진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애의 습작노트에 빼곡이 적힌 낱말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이다운 분노와 홀몸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날카로운 창날을 겨누고 일렬정렬 해 있었다. 나는 그런 혜진이 를 위해 글은 사랑이어야 함을 힘주어 말했다. 혜진이와 본격적인 얘기를 나눈 것은 3월말이 되어서였다. 퇴근길에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혜진이와 맞닥뜨린 것이다. “엄마가 돼지를 길러요.” 학교에서 걸어 40분이나 되는 동네에 산다는 혜진이는 트럭을 몰고 사료를 구하러 시내에 간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고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두 대나 보내면서 혜진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학처럼 비상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혜진이는 조롱 속에 가둬 두 고 있구나.” 혜진이는 잠시 내 눈을 응시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 애의 작은 머리를 안아 주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때가 있다. 뭔가 그럴듯한 얘기를 해주었다고 가슴이 뿌듯해졌는데 아이들의 말간 눈을 곧바로 대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 아, 내가 입술을 놀리고 있구나.’하는 자책.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잃어보지 못한 내가 혜진이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혜진이는 순순히 내 품안에 안겼다. 나는 그런 혜진이의 너그러움이 고마워서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혜진이에게 본격적인 창작 실기를 지도할 계획을 세웠다. 제법 글재주가 있다는 지숙이와 경량이를 함께 불렀다. 길동무가 있는 것이 혜진이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다. 방과후에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도록 했다. 먼지 앉은 보급용 도서 몇권과 쓰레기로 처리할 작정으로 보내온 기증도서 수십 권, 해묵은 교과서 몇 권으로 채워져 아무런 소용이 없던 도서실은 이제 의젓해졌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실에서 보냈다. 나중에는 점심을 먹기도 했고, 아이들의 생일 잔치를 조촐하게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귀가가 늦어져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일도 있었다. 혜진이는 확실히 글재주가 있었다. 적은 재주는 없느니만 못하다고 비탄해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도 글이 느는 게 느껴 지는지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 편지글이나 교환일기 따위를 쓰고 나서 나는 세 아이들에게 작정대로 소설을 쓰자고 제안했다. 소설은 수필과는 달리 일정한 형식이 있는 글이고 분량도 만만찮아서 중3학년이 쓰기로는 역부족일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대산문화재단에서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소설을 공모했다. 나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에게 대산문화재단이 제공하는 우대 조건은 참으로 훌륭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리라고 믿었다. 소설 얘기를 꺼내자 예상대로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일주일의 여유를 주며 이야깃거리를 구상해 오도록 했다. 노상 자연의 커다란 품에 안겨 지내는 아이들의 생활이 소재 찾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되리라 격려했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도저히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호소하던 아이들은 일주일 후 제각기 한 꾸러미씩 이야기를 꾸며 왔다. 역시 혜진이는 아버지 얘기를 쓰고 싶어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표현하고 나면 정복되지 않는 대상이란 없는 법이니까. 아이들과 소설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아이들 모두 성적이 수위인데다 계속 문학이론을 공부해 왔으니 이론적인 무장은 그런대로 탄탄하리라고 믿었는데 막상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되자 머리 속의 이론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경량이가 2인칭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바람에 우리 모두는 웃을 수도 없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문학적 지식만을 무작정 주입 시킨 나의 문학수업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였다. 원고지 60장이 목표였는데, 아예 첫 문장부터 내가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단락을 써 오면 내가 서너 단락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글을 전개시켰다. 그러다가 글이 중반에 이르게 되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글을 쓰는 부분이 점점 늘어났다. 때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글을 이끌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이끌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뜻하지 않는 멋진 표현이 떠올라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눈이 시렸다. 그렇게 60여장의 원고가 완성되었고, 햇살 고운 오월 말 학교 앞 우체국에 원고를 부쳤다. 아이들은 스스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지만 나는 이 일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랬다. 아마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내 꿈에 대한 보상심리나 대리만족의 열망이 컸으리라. 그랬다. 아깝게 경량이는 탈락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예선에 통과하여 겨울방학 문학캠프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캠프에서 또 한 번 백일장을 치르고 나면 고등학교 3년간을 무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진숙이 엄마가 해 온 떡을 우리들의 도서실에서 먹으며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혜진이 엄마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고구마 한 가마니를 트럭으로 실어 왔다. 나는 혜진이 엄마가 싣고 온 고구마를 받아 들며, 어둠 속에서 장미가 말라 가는 냄새를 맡으며 사흘이고 나흘이고 배를 깔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던 나의 음습한 습작기와 이별했다. 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얼음조각보다 차갑고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던 그 서름 푸른 꿈을 곱게 접었다. 문학캠프에서 고등학교 학자금을 타는데는 실패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50만원이란 적지 않은 상금을 타 왔고, 무엇보다 책으로만 보던 젊은 소설가들과 똑같이 작가에의 꿈을 키우는 전국의 어린 문재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귀한 추억을 담아 왔 다. 개학을 하고서도 아이들은 문학캠프에서의 추억을 자랑하느 라 달떠 있었다. 나는 혜진이를 데리고 갈비집으로 갔다. 뒷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혜진이는 한결 어른스러워 보이고 이마는 더욱 향그러웠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통영 시내에 있는 이모집에 얹혀 지내는 혜진이는 원래도 야윈 체질이지만 그새 많이 말라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아파 계속 물만 마셨다. “니가 잘 살아 주면 돼. 훗날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찾아 와도 된다. 너희가 잘 자라 주면 나는 행복해.” 그건 에누리없이 진심이었다. “한동안 힘들었어요. 갑작스레 돼지값이 내리는 바람에 엄마도 휘청거렸었구요. 생활이 엉망이니 괜히 운명이란 단어만 떠오르 고, 글 쓸 마음도 없어지고, 그래서 더욱 살기 싫어지고……” 혜진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언젠가 혜진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다. 보모일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여선생이 있으면 소개 해 달라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여기저기 알아 봤으나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연 짜증이 나고 이런 부담을 주는 혜진이 엄마가 뻔뻔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이해타산 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가. 스스로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사랑의 뿌리는 관심이나 희생의 수액과 닿아 있지 않았다. 지극히 공식적이고 메마른 산출의 논리가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사랑을 매음한다. 그런 나의 사랑이란 얼마나 교활한 수작이냐.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을 단순히 밥벌이로 치부하고 나면 스스로 비참해질 것이다. 생존의 등딱지를 지고 기어가는 짱구벌레는 되고 싶지 않다는 교활한 자기 만족, 그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냐. “그랬었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글도 생활도 자신이 없어지니 자연 선생님께 연락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루도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래 그렇단다. 열정 만한 재능은 없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숱한 문제들은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길이 보인단다. 글을 쓰는 일은 그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지. 이런 얘기는 니 문제에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태평스런 설교라고는 생각하지마. 어차피 고통은 자기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니까. 삶이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 얼마나 숱한 고통을 주어야 순해질까 싶어. 그러나 내 경우 글을 쓰면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 밥맛도 좋아지고. 창작은 배신의 기억만을 남긴 첫 사랑 같은 거야. 절대 딱지가 앉지 않는, 언제나 생살이 찢기는 상처, 그러나 수백 되의 피를 쏟아도 오히려 생활의 밀알이 되지. 삶이 엄정하다면 그걸 극복하는 길 또한 지독한 도전이어야 되지 않겠니?” “분풀이한답시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습작 노트를 다 태웠었어요. 습작노트를 태우는데 웬일인지 눈물이 났어요. 뭐 위대한 작가의 습작이라고, 우습죠? 그러나 이젠 달라졌어요.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 그런지 모의고사 성적도 한층 나아졌어요. 3학년 학기초에 자살 소동을 벌인 애가 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미현이라구. 근데 미현이도 작가가 꿈이라지 뭐예요. 지도 죽기 전에 습작노트를 찢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우린 둘 다 교지 편집반에 들었는데, 교지 담당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선생님이에요.” 혜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혜진이에게 익은 고깃점을 올려 주며 동지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여고시절이란 그건 것이다. 사람살이에 별이 될 수 있는 시기, 나도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옥상에 올라가 친구와 별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선생님이 유부남이란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 사랑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지사연하기도 했었다. 동성 친구에 대한 깊은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때도 그때다. 남자애들은 죄다 몸껍데기만 가진 유치한 족속들이라고 폄하하고, 스스로의 순결함에 취해 함빡 웃는 것만으로 입안 가득 별을 깨물 수 있는 시기, 그래서 먼 훗날 흩어져 세상의 한가운데로 걸어 갈 때 깃발이 되는 추억을 쌓는 시간. 우리 혜진이도 꼭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 그래서 니 주위가 이렇게 밝은 거구나. “친구랑 이번에 소월문학상에 응모해 보기로 했어요.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보다 확실히 하는 의미에서 뭔가 현실적인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워낙 시간이 부족해서 이 번엔 시를 한 번 써 봤어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만은 의미로울거예요. 그런데 우리 작문선생님께서 미혜 글을 보고 너무 난해해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손을 볼 수가 없다고 고백했대요. 그래서 저는 내놓지도 못했어요. 불현듯 찾아와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선생님 도와주세요.” 그렇지.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기와 세계와의 맞대면, 그러나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힘든 일을 세상에 대해 면역이 약한 너희 혼자서 하려면 얼마나 막막할 겐가. 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지망했던 단짝 미경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당당히 등단했을 때 했다. 이래서 지방대다 싶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고 아무런 열의도 보이지 않는 교수들. 혜진이는 외롭다는 말을 거듭하며 습작시 세 편을 내놓았다. 안도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연어’와 ‘어느 난장이의 가방’ ‘염원’ 세 편이었다. 혜진이의 정신적 성장을 첫 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새 많이 컸구나. 힘자랄 때까지 혼자 하지 말아라. 금새 지 친다. 세상에 대한 불건강한 혐오감만 키우게 될 수도 있어. 내 힘이 부치면 주위에 문재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마.” 나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상추쌈을 싸는 혜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나는 미혜를 생각해서 시를 너무 난해하게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장 구체적인 세계의 형상화, 그것이 시아니던가. 지나친 감정 노출이나 곡예는 환상이나 허상이다. 그건 글을 비틀거리게 하고, 읽는 사람마저 휘청거리게 한다. 혜진이를 위해 노트를 한 권 사기로 했다. 노트를 고르며 어쩌면 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에 손가락이 떨렸다. 현실의 한 높이 도움닫기, 나의 네 시간 통근의 노역마저 새로운 의미로 바꿔 줄 일, 어쩌면 그건 끝없는 배신에도 굴하 지 않는 습작열 일 지도 모르겠다. 혜진이가 삐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혜진이가 그 나이 때의 치기 만만함마저 갖추고 있는 건 정말 다행이다. 나는 아버지를 해방시키던 어른스러움과 삐삐 여기저기 스티커를 부친 단순한 쾌활함까지 고루 갖춘 혜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음주 퇴고한 원고를 가지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는 혜진이의 삐삐번호를 소중하게 접었다.
EBS 교육방송은 교육주간(10일∼16일)을 맞아 3부 연속기획 특집을 마련, 방송한다. 교육현장의 중심 또는 외곽에서 불고있는 새로운 바람의 현장을 취재한 TV 3부 연속기획 '21세기, 아름다운 교육공동체를 위하여'와 FM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말한다'가 그 것. '21섹기…'는 제1부 달라지는 아이들-10대 문화 보고서, 학교밖 아이들-홈스쿨링, 제3부 변화하는 학교-새교육 공동체 등으로 구성됐다. 청소년의 변화와 학교현장에서 이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우리나라 '홈스쿨링'의 현황과 교육현장의 문제점, 21세기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미리 점검해 보는 이 프로그램은 12일부터 14일까지 밤 10 시40분에 방송된다. EBS-FM도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10일부터 15일까지 오전 9시에 집중분석한다. 1부 교원정책(10,11일)은 '교권추락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의 시대·우수교사 확보가 시급하다' 는 주제로, 2부 새학교 문화창조는 가능한가(12,13일)는 '인간존중 교육풍토 조성,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교육의 질 향상이 새학교 문화를 만든다'를 주제로, 3부 학교운영을 위한 학부모 참여(14,15일)는 '학부모의 교육행정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학부모단체와 교육혁신 운동'을 주제로 진행된다.
교직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동요가 교육개혁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지, 아니면 교육체제의 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기적인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장 교원들의 불만과 갈등은 교육공동체를 취약하게 하고, 학교교육은 교육개혁을 추진하는데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정책 당국은 물론 우리 모두 교원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교육부가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교원정책에서 거론된 문제들은 주로 양성, 수급, 임용, 현직연수, 인사 및 처우, 교원단체 등과 관련된 과제들이다. 교원의 문제가 이처럼 광범하게 인식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포괄적이고 중핵적인 문제는 그들의 전문성을 확립하고 교직에서 만족감과 권위 및 긍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교원이 교육을 올바로 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과 이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탁월한 교과지식은 물론이지만 미성숙한 학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들에게 교육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의 숙지, 인간의 책무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윤리적 가치의 정립, 국가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책무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소명감 내지 헌신적 태도 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교원의 전문성은 충족될 것이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교원들이 우리의 교육을 이끌어 갈 때 우리의 교육이 크게 발돋움할 것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교육문제에서 교원문제의 해결은 다른 어떤 교육문제의 해결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치유책이 될 것이다. 인적 자원은 물적 자원과 달리 일단 질적 향상의 계기를 만들어 놓으면, 그들 스스로 그 질적 수준을 유지·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구비한 자기성장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훌륭한 교원이 한 두가지의 절차적 개선이나 그것들의 일시적 운영 또는 일방적 행정 조치로 이루 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원양성기관이 교원지망생으로서 지적·정서적·윤리적 자질을 갖춘 사람을 어떻게 선발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어떠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며, 졸업 후 어떤 합리적 방식을 통해 임용해야 하며, 교직 임용후 어떠한 연수와 인사제도를 통해 그들이 끊임없이 자기성장과 교육에의 헌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처우 및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인가 등 여러 과제들간의 상호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개혁의 폭과 시기, 우선 순위 등에 걸쳐 실효성있고 공감되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교원의 전문성 확 립은 물론 교직 만족도 제고 등과 나아가서 현실적인 교육문제들의 해결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수한 교원의 확보·개발·보상·유지 등 교원정책의 각 과정을 별도의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보완할 수 있도록 교원정책에서 통합시스템적 사고를 발휘하기 바라면서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교원정책에 관한 종합방안은 그것이 포함하는 영역이 어떤 것이든지 교원의 우수성에 대한 개념과 이를 위한 실천적 조건의 충족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의 교원정책은 사실상 우수교원의 철학을 개념적 전제로 하여 추진하지 못했으며, 설혹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협소하고 균형 잡히지 못한 개념에 기초하였다고 본다. 둘째, 교육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차원에서 교원정책을 구상하고 단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본질과 특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교육외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교원정책의 입안 전에 충분한 연구 검토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아이디어 구안 수준에서 그것도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흔들렸으며, 더구나 적극적인 여론 수렴보다 여론 주도의 자세가 강하게 작용함으로서 결국 교육현장에서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 정책추진의 실효성을 기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교원을 개혁의 주체로서보다는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교육외적 동기나, 이해집단의 갈등 또는 대립적 분위기 속에서 충격적으로 교원정책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교육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셋째, 교원들이 교육에 사명감을 갖고 헌신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높이기 위한 획기적 조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행정적 요구와 잡무로 인한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견디기 힘들고 교직에 회의감마저 들게 하지만, 수업과 같은 본질적 업무로 분주한 것은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는 어떤 교사의 말은 정책당국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20년 이상 된 교사들이 교직을 그만 두려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모습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분들에게 있어 굳이 두둑한 퇴직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이기에 곡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이 든 선생님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장은 학교를 관리하는 자로서 교장실이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자신을 과시하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라도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교감은 선생님들을 통솔하는 자로서 교무실을 장악하고 지시하는 권위와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원로교사들은 과다한 수업으로 하여 교무실 책상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위아래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며칠전 교감선생님 앞 탁자 위에 수박을 썰어놓고 젊은 교사 몇분이 담소하며 이른 수박을 들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수박을 핥고 있던 젊은 교사들 중 누구 한사람 나이 든 교사들에게 수박 한 조각 드시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17년간 교직에 머물며 흰머리가 조금씩 빛을 발하려 하고 있는 교사로서 그런 매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듯 초라해 지겠지 하는 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교무실은 젊은 교사들의 천국이다. 휴게실에서 해야할 잡담도 교무실에서 두서없이 해대고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 나이 든 교사들은 이제 나무랄 기력도 없이 서서히 주눅이 들어 뒷전으로 밀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 때문에 20여년을 하루같이 헌신해온 교사들이 이제 앞다투어 교직을 떠나려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행여 퇴직금 때문이라고 떠나가는 분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오래 묵은 포도주를 소중히 여기듯 떠날 분들이 떠나고 난 뒤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단을 지키는 원로교사들이 당당하게 교직에 머물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부 장관은 최소한 유치원교사를 한달쯤 해 보았거나 농사를 한해쯤만이라도 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 교육개혁은 판잣집을 뚝딱뚝딱 허물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짓는 물리적인 작업처럼 결코 함부로 서둘러 다루어도 좋은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유행되는 말 중에서 구역질 나는 용어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말과 '기득권층'이라는 말이다.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철저한 자유직업인-이 이런 말을 하면 크게 흉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거의 특정 직업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 터무니없는 천대를 받거나 멸시를 받거나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불이익'을 당해도 과연 얌전하게 입을 다물고 있을까. 교원들이 보여준 집단적 의사 표현은 한국 사회의 통념상 '지탄받아 마땅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65세 정년을 국가와 약속받고 교직을 선택했는데 왜 대학교수의 정년은 그대로 두고 초중등 교원의 정년만 단축하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취지의 순박한 항변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또한 '기득권'이란 용어도 초중등 교원들에게 함부로 쓰지 않기를 바란다. 초중등교원은 이미 얻은 권리'란 뜻에 해당되는 기득권이 당초부터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가 속시원하게 초중등 교원들이 누린 기득권이 무엇인지를 말해보라. 나무나 풀은 뿌리가 상하면 말라서 죽는다. 이 뿌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 초중등교육이다. 역대정권이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온 교육개혁이 대학교육 위주였던 것을 이번 기회에 크게 뉘우치고 단호히 방향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金大中대통령은 최근의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과 관련, 4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교육자의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세우라"고 李海瓚장관에게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이 세계에서 37∼39위라는 평가가 있는데,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개혁을 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최근 정년단축, 연금불안, 교원 권위훼손 등으로 교직자의 사기가 저하돼 있고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어서 "아무리 교육개혁의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도 교사들이 자발적, 적극적으로 동조해야한다"면서 "교육자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보고 스승의 날을 계기로 교원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현재 총리령으로 되어있는 '교원예우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시키는 등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에따라 교원사기 앙양방안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를 갖는 등 구체안 성안작업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