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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국어 문법은 너무 어려워요.” 아이들이 문법 단원의 내용을 배울 때면 하는 푸념이다. 어떤 내용을 설명할 때는 영어 문법을 연결해서 설명해야 알아듣는다. 실생활의 언어에서 예시를 들어주고, 문법을 좀 더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도 여전히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실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미 생활 속에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기에 문법적인 부분을 굳이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다. 사실 문법은 어렵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문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면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그래도 의문이 생기면 국립국어원에 질의해 가르치곤 한다. 문법 비중 약화에 대한 우려 아이들 말대로 ‘몰라도 잘 쓰고 있는데 왜 배워야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문법이야말로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다시피 통신매체의 변화에 따라 언어의 파괴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줄여 쓰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원칙과 기준을 알고 변형해서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SNS 공간에서 자신들만 알고 있는 은어로 소통하고, 줄임말을 쓸 때 재미와 사용자 사이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문법적인 요소를 알지 못하고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단문 중심의 문장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필수 성분까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글보다는 말에 가까운 특성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원래 문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잊고 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필수 성분이 필요한 이유는 정확한 의미의 전달과 이해를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생략에만 익숙해지고, 무엇을 생략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오해가 생긴다. 무엇보다 어휘 차원의 문제가 심각하다. 신조어의 탄생은 언어의 창조성과 관련하여 당연한 현상이지만 기존의 문법 체계를 파괴하고, 초성 자음만 사용하여 표현하거나 비속어에 어원을 둔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낱말은 나름의 어원과 역사를 갖고 있다. 정확한 의미를 알고 써야 바르게 쓸 수 있다. 끝으로 문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 문제가 크다. 외국어의 표기를 발음 나는 대로 편하게 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외국어 표기규정은 발음을 정확히 적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통일된 쓰기를 통해 혼란을 줄이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처럼 문법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와 가치 형성에 큰 영향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 영역은 공통국어(독서와 문학)와 선택 과목(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으로 분리된다. 선택 과목에 있어 ‘화법과 작문’에 대한 부담을 적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두 과목의 난이도 차이에 따라 점수 보정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문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과목으로 인식되면 지금보다 소홀하게 다룰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바른 언어 사용을 통해 올바른 사고와 가치를 형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그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300년 전 일본에 맞서 독도를 지켜낸 조선 백성 안용복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역사소설 ‘강치’가 출간됐다. 강치는 독도 가제바위에 수만 마리가 살았으나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포획된 끝에, 끝내 멸종돼버린 바다사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독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안용복은 숙종 때인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확인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일본과 담판을 짓고 돌아와 국법을 어긴 죄로 귀양을 간 후 그가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는 관료도 장수도 아닌 천민이었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 소송을 걸겠다고 항변했던 그 흔적 때문에 독도는 현재까지 우리의 영토로 남아 있다. 파도를 넘어 일본과 싸우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냈던 조선 백성 안용복의 고난과 사투, 모험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밀도 있게 담아낸 이 감동 스토리는 영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답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영화 같은 역동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가 되살려낸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소설적 상상력으로 살점이 붙어 생생한 얼굴로 되살아난다. 작가는 지금까지 독도를 지켜온 것은 이 섬과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지 않으면 더 살아갈 방도가 없는 궁지에 몰린 백성들의 절망감과 절박함이었다고 말한다. 나라는 몇몇 권력자들이 아니라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이 지켜내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 소설은 안용복의 삶을 널리 알리고 독도를 끝까지 수호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자 일본의 도발로 한일 경제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과연 나라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의 땅 독도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안용복의 마음은 지금 우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소설 ‘강치’는 독도가 우리 가슴 속에 자리 잡도록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전민식 지음/ 한국경제신문/ 15,000원)
“손으로는 물뿌리고 비질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담론한다(手不知酒掃之節 而口談天理).”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말이다. 실천 중심의 학문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 말은 남명 선생이 1564년 9월 당대 학문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구절이다. 구절의 의미는 이렇다. 일상에서 해야 할 것을 손수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목메는 당대 학문 세태에 대한 비판이다. 남명은 당시 이런 학문으로 이름을 얻고, 세상을 속이는 데 학문을 이용하는 학자들이 성행하는 학문 풍조를 도명(盜名)과 기인(欺人)이라는 말로 비판한다. 남명은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세태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위의 말을 전했다. 남명의 말을 오늘날 우리 또한 귀담아들어야 한다. 남의 허물에는 서릿발처럼 매서우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남명은 당시의 초급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중요하게 배우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제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등 일상에서의 실천을 중시하는 내용이 『소학』에 있다. 이러한 남명의 학문 사상의 핵심을 ‘하학(下學)’ 중시의 실천 학문이라 한다. ‘하학’이란 오늘날의 말로 하면,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 중심의 학문이다. 상학(上學)과 대비되는 말로 하학이라 하면 낮고 하찮은 학문이라 폄훼할 터이지만, 남명은 그러한 경향을 정면 반박하면서 하학이야 말로 중요한 학문이라고 보는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점과 태도에서 구담천리(口談天理)하며 거대담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학적 관점과 태도로 학문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산은 지리산이요, 처사는 남명이다’는 말이 있다. 평생 처사(處士)로 머무르며 학자의 지조를 지키고 실천 학문에 몰두한 선비로서의 남명을 추앙하는 말이다. 경남 산청의 산골,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고 덕천강이 흐르는 곳인 덕산에 가면, 남명 선생이 61세에 정착하여 후학을 양성한 산천재(山天齋)가 있다. 일종의 학당이다. 이곳에서 남명에게 수학하여 실천 중심의 학문 전통을 세운 제자들이 동강 김우옹, 내암 정인홍, 망우당 곽재우 등이다. 이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싸웠고, 실천 중심의 북학파를 형성하였다. 산천재 바로 옆에 최근 남명학진흥재단이 설립한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 있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 이곳에서 개최된 학술발표대회 참가차 방문한 적이 있다. 중앙 건물에 교훈처럼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학문은 실천을 통하여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남명 사후 그의 학문을 기리는 덕천서원의 학문 정신과 같은 것이다. 학술발표대회가 끝나고 주최 학회로부터 기념품을 하나 받았다. 그것은 남명 선생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던 성성자(惺惺子)였다. 성성자는 두 개의 소리 나는 작은 방울이다. 남명 선생은 이 방울들을 끈으로 꿰어서 허리에 늘 차고 다녔다. 선생이 이렇게 한 이유는, 항상 실천에 힘쓰는 학문 정신에 깨어 있으며, 몸소 행동에 옮기고 살피기 위함이다. 방울 소리를 들으며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늘 경계하고 주변을 살핀다. 실천은 자기 주변의 삶에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성성자를 지붕 높이의 높은 처마에 달아둔 것이 아니라 허리춤에 늘 차고 다녔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학문을 실천하고자 하는 남명 선생의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 시대 교육의 실천 정신과 배움의 학습 태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늘 우리의 주변에 있다.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의 만남에서, 대화와 활동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하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그 학문은 밝은 빛을 발한다. 남명 선생의 하학 중시 학문과 성성자는 오늘날 실천하는 실용 중심의 학문 및 교육의 구체적인 길과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태도를 잘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8월은 새 학년을 준비하는 분주한 풍경을 자아낸다. 대부분의 초등 및 중등학교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 가을학기를 시작한다. 교장과 교사들의 7월은 휴가로 바쁘기도 하지만, 8월이 오면 대체로 학교에서 새 학기를 준비한다. 학교뿐만 아니라 각종 지역 단체들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기 준비를 도울 수 있도록 학용품과 책가방 등을 지원하거나 기부하는 행사를 종종 진행한다. 미 교육부는 8월 초 학부모, 학생, 교사들에게 신학기 준비를 위한 안내와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도울 수 있는 각종 정보를 홈페이지에 탑재하였다. 학부모를 대상으로는 자녀들의 특수교육 및 개별적인 지원을 위한 관련 사항,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 월별로 중점 두어야 할 학교생활 및 행사 등을 알리고 있다. 학생을 위한 정보는 주로 대학 입학과 대학 생활을 위한 안내로, 학업과 재정적 문제를 돕기 위한 정보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적절히 계획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에 관한 재정 관련 정보가 많은 편이다. 교사들에게는 학습과 관련된 각종 연구 결과 및 정보, 효과적인 학급 경영,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한 자료 등을 안내하고 있다. 기존의 정책 중 새롭게 바뀐 부분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고 있다. 단위 학교에서도 1년을 위한 계획과 준비를 위한 행사가 열린다. 학교 및 교육청 단위의 교원 연수(Back To School Professional Development)는 대개 하루나 이틀 정도로 진행되며, 한 해 동안 교육청 및 학교에서 중점 두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 다룬다. 학교 차원에서 필요한 준비물과 연간 행사 계획은 학생들을 맞이하기 전 모두 준비가 된다. 학교별 홈페이지에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를 공지하고 있다. 연간 학교 행사 및 시간표 안내, 학년 및 담당 교사 별로 학생들이 구비해야 할 준비물, 개학 날의 일정 등을 사전에 공지하여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학부모들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학생들의 정보를 등록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정보 시스템을 활용하는 학교도 다수이다. 학기 시작 전, 대부분의 학교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에 학부모를 초대한다. 오픈 하우스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둘러보고 교사 및 관리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새 학기 준비 안내를 학부모들에게 전달한다. 이때 교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 및 교육 철학, 일반적인 수업 시간표와 학습 방법, 학급 경영을 위한 규칙, 교사와 학부모 간의 소통 가능한 방법(뉴스레터, 이메일, 학급 홈페이지 등) 등을 안내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1년간의 학교생활을 미리 계획하고 학생들이 학교 및 학급의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를 수 있도록 가정에 협조를 구한다.
2019년 8월 14일(수) 제2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서령고 역사동아리(지도교사 황연)회원들과 지도교사 10여 명은 아침 등굣길에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기림의 날’ 홍보를 실시했다. 학생들은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안부' 피해자 관련 역사적 사실과 전쟁 중 여성인권 문제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홍보물 등을 나눠주었다. 일본의 경제침략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을 맞아, 기림의 날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매우 착잡한 표정이었다. 등굣길에 만난 한 학생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제는 제3의 침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침략에 맞서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동단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하고 김 할머니의 용기와 뜻을 이어받고자 지정되었다.
이글은 2019년 학교도서관 전문인력 직무역량 강화 연수(2019.8.13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국제회의장.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 주관) 이영관 전 서호중 교장 원고의 일부이다.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심장인 이유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다. 학교도서관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알지만 이것을 학교의 심장에 비유한 것은 얼마 전에 알았다. 아주 적절한 은유법이다. 학교도서관 정책토론회(2017.9.14) 자료를 보니 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조미아 교수는 매년 중간고사 문제로 ‘학교도서관은 신체로 비유하면 학교의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를 내고 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학교도서관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시오’라는 문제를 단골로 출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심장이란 무엇을 뜻할까? 죽은 사람은 심장이 뛰지 않는다. 심장의 박동 여부로 생사를 판단한다. 그래서 학교도서관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또 심장은 중심을 가리킨다. 심장은 우리 신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의 위치도 학교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중심역할을 하여야 한다. 학교도서관은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교수-학습활동을 전개하고 독서와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기본적인 학습환경으로서 도서관의 입지가 중요하고 활용도가 높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학교도서관의 위치 선정 시 입지성, 쾌적성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켜 온몸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한다. 심장은 혈액을 펌프질하여 영양분과 산소를 온몸에 공급하는 기관으로 혈액순환의 중심이 된다. 깨끗한 피를 신체 각 부위에 공급한다. 그래야 신체 각 부분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 이래서 학교도서관과 사서가 중요한 것이다. 학교교육의 핵심은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은 각 교실에서 수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서(교사)는 교육과정과 수업을 지원한다. 교육공동체 구성원인 학생, 교직원, 학부모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곳이 학교도서관이다.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이 학교와 교육을 살린다 교육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교육자는 사서(교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교도서관 협력수업이 익숙한 학생은 상급학교에 진학했을 때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사서(교사)가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수업의 대부분이 학교도서관 자료를 활용하는 것인데 자료의 선정, 준비, 제공, 이용방법 지도 등에 있어 전문인력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이뿐 아니라 학년 초에 이루어지는 학교도서관 이용지도 또한 학생들의 학습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도서관 운영편람’(교육부)에서는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즉 다양한 학습활동 전개, 통합적 교수-학습 전개, 문제 해결능력 및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 능동적인 학습 참여 유도, 평생교육의 기반 조성,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하는 인재양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활용수업’(박은하 외 5인 공저)에서는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의 필요성을 통합교과교육과 융합인재교육의 용이성, 문제 해결능력 및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으로 정리하고 있다. 선구자적 사서(교사)들은 말한다. 학교도서관은 꽉 막혀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학생과 교사에게 희망의 돌파구라는 것. 학교도서관은 깨어진 우리 교육을, 신음하는 우리 교육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대안 중의 하나라는 것. 즉 학교도서관은 작게는 수업을, 크게는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을 활용한 수업이 교사와 학생들을 살리고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키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 활용수업을 하면 매 수업 시간이 창조적인 시간이 되고 학생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이, 교사에게는 교학상장의 장이 된다, 사서(교사)에게 드리는 몇 가지 말씀 서호중학교 근무 때 학생회 임원수련회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 ‘우리 학교에 대해 알기’가 있었는데 문제 출제는 참가한 교사와 학생들이 낸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있었다.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 강조하는 6적은?’ 도대체 6적이 뭐지? 내가 언제 그것을 강조했나? 교직원과 학생들은 교장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학교신문이나 학교장 훈화에서 이야기한 ‘적(的)’이 들어가는 삶의 이야기였다. 인생을 긍정적, 능동적, 적극적, 자율적, 창의적으로 살자는 이야기다. 학교이기에 ‘교육적’을 추가하였다. 지금도 율전중학교 양쪽 현관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도전은 즐겁다’와 ‘실행이 답이다’. 어떻게 이런 문구가 탄생했을까? 여기엔 생활철학이 담겨 있다. 일종의 가치관이다. 사람들은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한다. 이것을 깨뜨려야 한다고 보았다. 즉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도전 자체를 하지 않으면 성공률은 0%다. 실패가 두렵다고? 아니다. 실패를 해도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 ‘실행이 답이다’는 우리 머릿속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를 망각의 늪에 빠뜨리지 말고 즉시 기록하고 바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삶의 질이 더 좋게 변한다. 인생이모작 포크댄스 강사. 나는 신중년 수강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은 지금 포크댄스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고. 포크댄스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우리가 포크댄스를 통하여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따로 있다고. 그게 목표라고 강조한다. 즉 포크댄스를 통하여 건강과 사회성을 증진하고 자존감과 성취감을 증대시키고 사회봉사를 함으로써 자아실현을 꾀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라고. 혼자만 행복하지 말고 가족은 물론 주위 이웃에게까지 행복을 전파하자고 한다. 행복전도사가 되자는 것이다. 혼자만 잘 살고 행복하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사서(교사)는 다양한 자질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사서(교사)는 사서이자 교사이어야 하고 정보전문가이어야 하고 수업 파트너여야 한다. 도서관 책임자, 관리자를 넘어서 경영인(전문 CEO)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교과수업 동반자 역할을 당부하고 싶다. 그러려면 사서(교사)는 학교 교육과정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몇 학년 어떤 교과, 무슨 단원에서 어느 시기에 도서관 활용수업이 필요한지, 사서가 지원하고 협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과교사와의 협력체계는 필수다. 그러면 교사들은 살아 있는 수업을 전개할 수 있다. 교과 수업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사서라는 공감대를 확산해야 한다. 사서(교사)의 공통적인 고민은 ‘학교에서 어떻게 나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유지할 것인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고민의 근원은 ‘어떻게 하면 학생이나 동료교사와 학교 교육과정안에서 좋은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이다. 송기호(2010)는 “많은 학교도서관의 교육과정 참여 정도가 좌절과 낙담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투덜거리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해결책은 학교장과 교과교사의 사서(교사)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여 관계형성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공동체 구성원과 학교도서관을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리더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자고 제언한다. 어느 사서의 목표 ‘오고 싶은 도서관, 머물고 싶은 도서관, 다시 오고 싶은 도서관’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어떻게 하면 교사와 학생이 학교도서관에 ‘오고 싶고 머물고 싶고 다시 오게’만들 수 있는가?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고 도서관에서 전개한 활동이 유익했다면 다시 찾는 것이다. 도서관 문턱을 없애 누구나 즐겨 찾는 도서관을 만들자. 신간도서 적기 구입 및 참신한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은 기본이다. 도서관에서 정신적 행복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도서관은 교육과정과 교과수업과 연계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가 살고 교육이 산다. 학교의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할 사람은 사서(교사)다.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종복인저!
호주 의료선교사로 경남지역 학교에서 교육봉사 펼쳐 한국 최초의 신경정신과 전문의…‘사회정신의학’ 개척 신사참배 거부하자 학교 폐쇄‧투옥‧억류 등 수모 겪어 찰스 맥라렌(1882~1957)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세브란스 의전 교수로서 의학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관련 분야 후진 양성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철폐와 사회복귀를 위해 노력했다. 이는 일제시기 대부분의 근대 병원들이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소극적인 약물치료에 의존하던 것과 대비되는 방식으로 증상의 치료보다도 환자가 처한 환경에 대한 근본적 분석을 통해 대안을 추구하는 ‘사회정신의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것이기도 했다. 맥라렌은 한국 의료계에 선구적 족적을 남긴 의사로 기억되지만 그는 의사이기 이전에 호주 장로회 소속 선교사였다. 1911년 부인과 함께 호주 장로회 선교사로 입국해 진주의 배돈병원(Paton Memorial Hospital)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젊은 의료선교사였으나 1915년 선임자의 사임으로 병원 감독자가 됐고 1923년에는 서울로 파견돼 세브란스 의전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맥라렌이 속했던 호주 장로회 선교부는 일제시기 국내에서 활동했던 여러 개신교 교파들 중 소수파였다. 경남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태평양 전쟁 전후로 선교사들의 자국 소환이 이뤄지던 무렵 호주 선교부의 자율 조치에 의해 가장 마지막까지 국내에 남아 활동을 한 이들이기도 하다. 서울 세브란스의전에서 근무하다가 1939년 진주에 임시 부임해 있던 맥라렌은 이 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결국 진주경찰서에 11주간 투옥됐다. 그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간들과 관련해 남긴 몇 개의 저서인 ‘일본 감옥에서의 11주(Eleven weeks in a Japanese police cell)’, ‘그들은 믿음을 지켰다(They kept the faith)’ 등은 일본 국가 신도(神道)에 맞서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한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도 드러내지만 일본 파시즘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투쟁의 정당함을 설파한 저작들이기도 하다. 맥라렌이 견지한 관점은 그가 대표했던 호주 선교부의 입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호주선교사들은 한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의 5.6%에 불과했고 그들의 활동은 경남 지역에 국한돼 있었다. 호주 선교부가 했던 교육활동은 지역 교회사 관계자들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양한 활동들이 전개됐지만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학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선교부가 관여했던 교육기관 중 창신학원과 동래학원의 학교들이 현재 운영되고 있지만 선교부로부터 학교재단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등 그 역사가 다소 단절적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족적은 연세대, 이화여대, 세브란스병원, 숭실대, 배재대 등 현재까지 존속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교들을 중심으로 알려져 있는 경향이 있다. 호주 선교부가 했던 활동은 서울이나 평양 등 대규모 거점 도시들에서 이뤄진 교육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교육정책 안에서 훨씬 더 주변화 돼 있었다. 일제시기에 내한한 호주 선교사들은 호주 전역이나 다양한 교파 출신이 아니라 호주 남부 빅토리아주 멜버른 지역의 장로회를 중심으로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 선교는 이 지역의 대학생 자원 활동, 장로회 여선교회 활동과 긴밀하게 연계돼 이뤄졌다. 한국 선교 이전에 빅토리아 장로회는 호주원주민, 중국이민자, 뉴헤브리즈 등을 대상으로 주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호주 선교부가 활동을 시작하고 경남 지역에 선교지부를 설치하게 된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데이비스(J. Henry Davies) 목사다. 그는 한국에 온 첫 호주인 선교사로 한국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1889년 10월에 내한했지만 여행 중 병을 얻어 1890년 4월 부산에서 사망했다. 이미 서울이나 서북 각 도에 다른 선교사들이 정착한 상태에서 데이비스는 부산 정주 계획을 갖고 서울로부터 부산까지 300리에 걸친 답사를 떠났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천연두와 급성폐렴으로 위독했고 당시 부산에 정주하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J. S. Gale)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데이비스의 죽음은 전 호주교회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1890년에 조직된 장로회 여성선교회(혹은 호주 장로부인회)가 한국 선교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1891년에 여성선교회와 신우협회(Young Man's Fellowship Union)가 합동해 멕케이(J. H. MacKay) 목사 부부와 포세트(M. Fawcett), 페리(J. Perry), 맨지스(B. Manzies) 등 3명의 미혼 여성선교사를 파견해 부산 보낸 것이 호주 선교부의 시초이다. 1898년에는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미국 선교사들이 호주인들에게 지역분할을 제의하고 경남 지역에서 철수할 뜻을 내보였다. 당시 호주선교사의 수는 9명에 불과했고 내부의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독자적 선교지에 대한 동의는 1910년에 가서야 이뤄졌다. 1913년에는 경남 선교를 호주가 맡기로 하고 미국 선교사의 자산을 일부 유상 양도 받았다. 경남 전체 선교가 호주 선교부에 넘겨지면서 부산 외에 진주, 마산, 통영, 거창에 4개의 지부가 새로 만들어졌다. 호주 선교부는 신앙적 차원에서 엄격성을 유지했지만 종파주의를 넘어선 통합주의적 관점을 견지했다. 따라서 선교활동에서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에 대한 구분에 덜 엄격했고 지역민의 필요에 기초한 포용적 정책을 폈다. 호주 선교부가 운영하던 초등 수준의 학교들에는 진주의 시원학교와 광림학교, 마산의 의신여학교와 창신학교 등이 있었고, 중등 수준의 학교는 마산의 호신학교, 동래의 동래일신여학교가 있었다. 일제는 1915년 사립학교개정규칙을 통해 선교학교가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종교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뒀다. 1923년 이후 이를 완화한 지정학교제를 통해 종교교육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게 됐다. 호주선교부도 한국인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위해 호신학교와 동래일신여학교에 1925년부터 중등과정을 둬 지정학교 승인을 추진했다. 총독부 지정학교 기준을 맞추기 위한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호신학교는 결국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직업학교로 전환됐고 일신여학교는 1932년에 지정학교 승인을 받았다. 한국인 학생들의 제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서 선교부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하며 지정학교 승인을 추진했지만 호신학교의 경우 결국 좌절했다. 호신학교보다 일신여학교의 승인이 쉬웠던 이유는 일신여학교 설립 추진이 일찍부터(1915년)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정학교제를 통한 총독부의 유화 조치가 서울이나 평양 등 일부 지역의 유력학교들에 집중되고 호주 선교부 같은 주변화된 조건에서는 상당히 높은 문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 군국주의의 강화로 선교 상황은 악화됐고 일제에 대한 충성의 핵심 사안으로 신사참배가 부각되면서 한국 기독교회는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된다. 1939년에는 선교사들이 업무 금지를 당했고 1941년 4월에는 잔류 선교사들에 대한 체포가 이뤄지기 시작해 호주 해외선교위원회와 여선교회는 여성선교사들의 출국을 명했다. 이로 인해 1941년 12월 전쟁 선포 시 극소수의 선교사들만이 잔류했는데 이 중 진주에서 투옥됐던 맥라렌이 포함돼 있었다. 장로회 선교사들에게 있어 일제와의 대립 지점은 신사참배였다. 호주 선교부도 다른 선교부처럼 기독교신앙과 타협하지 않는 한도에서 총독부의 기준을 따르고 있었다. 또한 스스로의 양심이 허락하는 선에서 개인적으로 교사나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할 권리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1939년 1월 선교부 회의에서는 교회와 학교 차원에서 신사참배가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들의 일차적 의무와 배치되지만 학교존립을 위해 일본에 대해 선의와 협조를 유지하겠다고 결의했다. 1935년 평양연합신학교 교장이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추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중등학교에서의 강제 신사참배로 이어졌다. 호주 선교부는 교육당국과 타협해 학생들이 신사 앞에서 천황과 국가를 위해 묵도를 하는 것은 용인하되 신사 내부에서의 의례는 참가하지 않게 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모든 학교들이 신사참배를 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선교사들의 민감한 부분을 자극했다. 이로써 1936년 2월 호주선교부의 모든 학교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당국에 통보를 했다. 1939년 이후 기독교학교에 대한 압박이 강해져 결국 호주 선교부의 모든 학교들은 폐쇄됐고 지정학교로 운영되던 동래일신여학교도 지역유지에게 소유권이 넘겨졌다.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지정학교제도를 통해 종교교육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하며 관리했던 일신여학교도 소유권 이전 이후 1940년 4월 결국 총독부 인가학교로 전환되면서 동래고등여학교로 개칭됐다. 호주 선교부의 교육활동은 이렇게 명맥이 단절됐고 그 이후의 학교사는 한국 교회와 지역사회의 역동에 의해 전개됐다. 호주선교부는 당시의 국가신도가 종교적 숭배행위였는지, 순수한 애국행위(정치행위)인지에 대해 논쟁했다. 신사참배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맥라렌은 호주 선교부 대표로 논쟁을 주도했다. 선교부 내부에서도 맥켄지(MacKenzie)처럼 신도주의가 순전히 정치적이라고 이해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입장을 의심하는 관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1960년대에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신사참배는 순수 정치행위가 아니라 강제된 종교행위였음을 재천명한다. 선교사들이 강제된 종교행위만을 문제 삼을 뿐, 식민지 피지배 입장에서 ‘강제된 정치행위’의 문제점까지 다루지 못한 점은 물론 그들의 한계다. 맥라렌은 이러한 통상적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인식을 드러낸다. 그는 일본인의 애국심 자체가 종교행위와 불가분적이라고 봤다. 즉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천황을 그들의 무법적 음모의 꼭두각시로 만들고 천황을 이용한 광신적 충성심을 끌어낸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국가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천황에 대한 신앙적 숭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애국심이 일본의 진정한 종교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이 자국(自國)을 경배한다면 하나님의 요구와 타인의 권리에 대한 올바른 감각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분석은 신사참배 문제에서 정교 분리를 주장하거나 우상숭배여부만을 문제 삼는 시각에 비해 일본 파시즘의 본질에 보다 근접한 통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맥라렌은 진주 경찰서에 감금돼 있는 11주 동안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던 일제가 자신이 호주인(오세아니아도 대동아공영권의 일부)이라는 이유로 다른 서양인에 비해 친절하게 대한 점을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다. 영연방을 떠나 대동아공영권으로 들어오라고 회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배타적 국가주의와 천황주의 신앙에 기반한 일본 파시즘을 거부했고 왜곡된 권력에 대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을 지지했다. 맥라렌은 감금생활을 마친 후 일본으로 이송, 억류됐다가 1942년 11월 호주로 귀환됐다. 2차 대전 종전 후 그는 한국으로 복귀하고자 했으나 건강악화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은 생애 동안 세브란스병원 등 한국인에 대한 후원활동을 전개했고, 1957년 10월 9일에 생애를 마쳤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사진출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수험생이 수능시험 문제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면서 문제지 회수 사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평가원의 작은 결정이 60만 수험생에게 큰 힘이 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부산의 고3 교사라는 청원인은 “수험생들은 부족한 시험시간을 쪼개 40개나 되는 정답을 매시간 수험표 뒤에 적어서 나온다”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학생들의 수능 시험지를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원인은 최저 등급 여부를 알기 위해 가채점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시험지 회수로 수험생들이 시험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가채점에 어려움이 있음을 호소했다. 그는 특히 “수험생 부주의로 답안이 잘못 표기되는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근거자료로 활용한다”는 회수 사유에 대해 “답안지에 잘못된 표기를 시험지를 활용해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반박하고 있다. 인적사항 오류는 시험 후 검증을 통해 수정되고, 답안은 수정될 수 없어 전적으로 수험생 본인이 책임질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답안지에 이물질이 묻어 오답처리가 되거나 A·B형 답안 작성에 착오가 있는 경우 채점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방지해가 위해서”라며 “잘못된 답안 표기 를 수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일이 문제지를 유관으로 작업해 매년 구제되는 수험생이 수십 명은 된다”며 “수험생에게 최대한 유리한 채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시험지를 회수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부정행위 가능성 때문이다. 평가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장애수험생의 경우 1.7배까지 더 긴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먼저 시험이 끝난 학생들의 시험지가 유출되면 형평성에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일 시험문제와 답안 공개도 장애수험생 시험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해당 시간에 본인이 응시할 예정인 시험지 외의 시험지를 보다 적발되면 부정행위로 간주된다는 현행 규정 때문에 이전 시간 시험지를 휴대하고 있다 부정행위자로 오인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국민청원은 마감일인 10일 3만 400명이 동의해 답변기준인 20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교육감들이 교육부와의 신뢰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강경 발언까지 하면서 교육부에 유·초·중등교육 권한의 신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7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이런 내용의 ‘교육자치 분권 이행 촉구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초·중등교육의 권한 이양을 약속했지만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시행령조차 개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대통령 공약이나 국정과제로 제시된 대입제도 개선, 고교체제 개편 등을 교육부가 이행하지 않고 사문화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이어 “누리과정의 대란 속에서 교육감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감내했음에도 고교무상교육 실시를 위해 열악한 지방교육재정 살림을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면서 교육감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정부에 협조해 왔음을 강조했다. 협의회는 “우리는 오늘 교육부와의 신뢰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숱하게 해 왔던 국민과의 약속을 신속히 이행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협의회는 11월 총회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감들의 이같은 반응은 최근 자사고 재지정 평가와 관련해 교육부가 부동의를 행사한 데 따른 반응으로 해석되고 있다. 협의회 회장인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대한 교육부장관의 부동의 결정은 모든 교육청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고교 교육체제 전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면서 “협의회와 교육부 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한 총회 모두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교육부가 유일하게 부동의를 행사한 상산고는 전북도교육청 소속이다. 김 교육감은 총회 이후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 ‘2019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 개막식 토크콘서트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앞에 두고 “교육부 때문에 교육자치가 안 되는 것”이라며 더 날 선 발언을 했다. 유 부총리는 김 교육감의 발언에 물러서지 않으며 입장 차를 드러냈다. 그는 “교육자치 확산의 속도가 더딘 책임이 교육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교육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견이 나타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서로 신뢰를 무너트리거나 한뜻으로 가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를 믿고 기대한다”고 했다.
교총회장 취임 후 교권회복 올인 집념·열정으로 마침내 쾌거 이뤄 “학폭법 국회 통과로 교원지위법·아동복지법 등 ‘교권 3법’ 개정완수후 ‘수고했다’는 응원 문자 3600여 통 받아….” “교권 3법 개정 목적은 처벌과 단죄가 아닌 교육공동체를 회복하는 ‘스쿨리뉴얼’. 시행령·매뉴얼 등 현장 안착에 힘쓸 것”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이번 ‘교권 3법’ 국회 통과 결실은 18만 교총 가족과 56만 교원들의 한결같은 여망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3년 동안 1인 시위, 국민청원, 서명운동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국회 문이 닳도록 뛰어녔고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이 나중에는 이제 제발 그만 오라고 손사래를 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그런 집념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겁니다.” 2일 교원지위법, 아동복지법에 이어 학폭법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면서 교총이 3년동안 추진해온 ‘교권 3법’ 개정이 완수됐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은 7일 한국교육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회원과 함께 이뤄낸 결과고 교총의 힘을 보여준 성과”라며 “앞으로는 교권 3법의 현장 안착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6년 제36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교원지위법 개정을 ‘1호 결재안’으로 추진하는 등 교권 3법 개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총력 활동을 전개했다. 교권 3법은 교총이 규정한 교권침해 요소를 담고 있는 3가지 법률(아동복지법‧교원지위법‧학교폭력예방법)을 말한다. “무너져가는 교단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수업 방해 학생을 제지하고 훈육 차원에서 꾸짖은 것이 학대로 신고돼 벌금만으로 교단을 떠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습니다. 교원지위법은 실효성 있는 대응 규정이 없어 학교와 피해교원이 온전히 감당해야 했죠. 학부모 한명이 불만을 품고 100건 이상의 민원과 진정을 남발해 학교를 초토와 시킨 제주의 한 초교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학폭법은 교원을 학폭위 행정처리자, 학교를 형사기관화 시킨다는 비판이 비등했고요.” 하 회장은 이번 교권 3법 통과로 학교와 교원이 교육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스쿨리뉴얼’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5만원 벌금형만 받아도 교단에서 퇴출됐던 아동복지법 독소조항이 개정됐고 교원지위법은 교권침해에 대한 관할청의 고발과 피해교원에 대한 법률지원을 의무화해 교원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했다. 또 학폭법은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그런 노력에 보답하듯 하 회장에게 격려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지금까지 전화를 비롯해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등 3600여 통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41년째 교총 회원인데 이렇게 감격스러운 적이 없었다는 회원, 그동안 낸 회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회원,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념과 열정으로 언젠가 큰일을 낼 줄 알았다고 칭찬해준 회원, 눈물이 난다며 감동하는 회원 등 수많은 메시지들을 나흘 동안 목이 빠지도록 읽었습니다. 교총과 교육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져 더욱 힘을 얻었고 일일이 답장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됐다’는 자족보다는 분발의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도 다졌다. 그는 “메시지 중에는 8월 퇴직자 성과상여금 문제, 성과급 차등지급, 1급 정교사 자격연수 때 한 번 받은 성적이 승진을 좌우하는 폐단 등 다른 현안들도끝까지 해결해달라는 당부도 있어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면서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남은 임기 끝까지 투혼을 불살라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교권 3법 개정 과정에 도움을 준 인물들에게 감사 인사도 전했다. 하 회장은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을 비롯해 조승래(더불어민주당), 김한표(자유한국당) 간사와 현장의 고충을 헤아려 기꺼이 법안 발의에 나서준 박인숙, 염동열, 조훈현, 의원께서 누구보다도 애써주셨다”며 “하나도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법안을 3가지나 결실을 맺도록 앞장서서 교권 확립의 큰 주춧돌을 놓아준 데 대해 전국 교원들을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남은 임기는 교권 3법의 현장 안착에 힘쓰겠다는 뜻도 밝혔다. 교권 3법의 개정 목적이 처벌과 단죄가 아니라 교실이 살아나고 교육이 정상화되도록 교육공동체를 회복하자는 데 있는 만큼 법 개정의 취지, 내용 등에 대한 교원, 학생, 학부모 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매뉴얼 등을 마련하는데 전념하겠다는 것. 특히 교권침해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관할청에 전담 조직 설치, 법률 전문인력 확충, 충분한 예산 확보는 물론 학교자체해결제에 대한 매뉴얼도 만들어 교원의 부담과 학교 대상 민원‧소송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36대 회장으로서는 교권 3법 개정이라는 ‘총론’에 전력했다면 이번 37대 회장으로서는 교권 3법 현장 안착이라는 ‘각론’에 주력할 것입니다. 선생님들 부디 교육이 다시 희망이 되도록 서 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당당한 스승이 돼 주시길 당부 드리고 싶어요. 교원의 가르침이 살아나도록 교총이 앞장서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아이디어가 있는 선생님들은 언제든 주저 말고 저희 교총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교총과 함께 해 주십시오. 늘 곁에 있겠습니다.”
최근 정치공약 실현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 의견은 무시한 채 무조건 자사고 폐지만 외치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감들의 행태가 한심하다. 현실은 고교 무상급식에 지원할 예산이 없어 교육청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당장 2학기에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 약속도 지켜야 하고, 5년간 절반 부담하기로 한 고교무상교육 재원도 예산부족으로 불투명하다면서 말이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400억 가량이 들어가는데 이건 지원해주겠다고 난리다. 눈 감고 귀도 막은 교육감들 학부모들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는 좀 더 필요한 곳에 쓰고 우리에게는 자율과 자유를 좀 달라고 했다. 아니, 있던 것을 가져가지 말라고 하는데 절대 안 된다고 돈 줄 테니 내 말대로 내 생각대로 하라고 너희의 자율은 시대적 사명을 다 했으니 나를 따르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한다. 그래서 대화도 필요 없고, 청문회도 필요 없고, 협의나 소통도 필요 없다. 네가 변해야 한단다. 대화는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우리 교육은 눈감고 귀 막고 입 닫은 정치인에 의해 산으로 가고 있다. 요즘 시대에 대학이 필수는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성공 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적이어서 많은 이들이 대학을 원한다. 그런데도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고등학교를 바꾸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감히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하나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공부 잘 하고 돈 많은 재벌 자제들, 즉 최상위권 아이들이 갈 수 있는 학교는 건재하다. 학비 비싸고 학생 우선 선발권이 있으며 자율성이 있는 학교들 말이다. 광역형자사고의 무더기 탈락 이유는 비싼 학비, 우수 학생 선발로 인한 차별이라 했다. 대학입시 사관학교라고 비판하는 이 두 가지 이유에 정확히 부합하는 전국형자사고는 모두 살아남았다. 문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다른 잣대를 적용 하고 남의 자녀들은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희생양을 삼는 교육감들의 태도에 있다. 모든 학생을 평준화 시키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것 같으니 전국형자사고는 그대로 두고 남은 아이들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 실험대상 원치 않아 이 실험이라는 것은 혁신학교를 통한 사교육 없는 전인교육 인듯하다. 모든 국민이 대학을 갈 필요는 없으니 대학 갈 애들은 전국형자사고에 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은 혁신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광역형자사고는 상대적으로 그 문이 넓다. 그들도 분명 알고 있다. 혁신학교를 확대 할수록 대학을 가고 싶은 아이들은 광역형자사고로 향할 것이고 결국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혁신학교 정책은 실패 할 것이다. 학부모로서 제안을 하고 싶다. 일반고든 혁신고든 제대로 투자를 하라. 그래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평준화 교육, 혁신교육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그러면 자사고는 자연히 일반고, 혁신고로 전환할 것이다. 자사고를 없애야만 성공 하는 정책이라면 이미 절반의 실패를 감수 하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아이를 데리고 모험하지 마시라. 나는 학부모로서 그 누구의 아이도 모험하길 원하지 않는다. 모험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제도를 바꾸고 선택지를 없애면서 강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 부분만은 내가 옳고 당신들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전수아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회장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유학년제는 무엇인가요? 전 말괄량이 삐삐를 떠올렸습니다. 삐삐처럼 엉뚱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틀에 박힌 수업이 답답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자유학기제를 통해 삐삐 같은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9 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이하 수업콘서트)’가 7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개막했다. 사흘간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교원과 교육전문직, 학생, 학부모 등 3500여 명이 참석했다. 수업콘서트는 자유학기제를 통해 수업 변화를 이끈 현장 교사들의 축제였다. 교육과정 재구성과 수업 개선, 학교 운영 등 교실을 바꾸기 위한 과정과 비결을 나누고 배우려는 교원들로 행사장은 가득 찼다. 자유학기제 실천사례 연구대회 시상식과 입상자 좌담회, 전문가 특강, 수업 나눔,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여한 입상자 좌담회에선 자유학기제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학교 교육과정 분과에서 입상한 대구 경서중의 곽상순 교장은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교사들에게 줘야 한다”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주효했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 실정에 맞는 운영 방법과 생활기록부 기록 문제 등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유 부총리는 “열정적인 교사에 대한 학교장의 지원은 큰 힘이 된다”며 “학교 여건과 실정에 맞는 맞춤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참가자들의 인기를 끈 건 수업 나눔이었다. 첫날에는 연구대회 입상작의 수업 시연이 진행됐고, 둘째·셋째 날에는 다시 보고 싶은 연구대회 입상작 수업 시연과 교육청 추천 수업 명장의 수업 시연이 이뤄졌다. 제4회 연구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장유영 울산 진장중 교사의 ‘수학으로 세상풀기 프로젝트’(교과수업 분과), 조창현 인천 만수북중 교사의 ‘수학으로 3D영상(이미지) 만들기’(자유학기 활동 분과) 등도 만나볼 수 있었다. 교과수업 분과에서 입상한 손경진·어혜림·이재은 강원 원주삼융중 교사는 국어와 영어, 미술 교과를 융합한 ‘융합 및 프로젝트 수업으로 ‘생’, ‘생’한 교실 만들기’를 소개했다. 손 교사는 “자유학년제 하면 삐삐와 삐삐같이 엉뚱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다”며 “이 엉뚱함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며 설명했다. 이들은 자발적인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하고 여러 교과를 재구성, 활동 중심 수업을 운영해 참가 교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수업콘서트에서 소개된 입상작은 자유학기제 홈페이지 ‘꿈끼(www.ggoomggi.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더 나아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람,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를 말한다.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기관, 아쇼카(Ashoka)가 제시한 비전 ‘모두가 체인저메이커인 세상’에서 따왔다. 1980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빌 드레이튼이 설립한 아쇼카는 산스크리트어로 ‘슬픔을 적극적으로 사라지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체인지메이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협력적 리더십과 팀워크, 공감 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체인지메이커가 가진 공통적인 역량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 인재의 자질이기도 하다. 한국교총 원격교육연수원 사제동행이 교원 연수 프로그램 ‘새로운 변화, 공감하고 행동하는 체인지메이커-학생 중심 문제해결 프로젝트’를 런칭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쇼카의 체인지메이커 교육 프로그램 ‘유스벤처’의 공식 라이선스를 가진 유쓰망고와 손잡고 단독으로 선보이는 교원 연수 과정이다. 강사진도 눈길을 끈다. 아쇼카 한국의 유스벤처 프로그램을 이끈 김하늬 유쓰망고 대표와 콘텐츠 파트너로 함께한 임세은 유쓰망고 부대표가 직접 강사로 나선다. 김주영 경기 청원 중 교사와 강나윤 심원고 교사, 이태경 양정여고 교사 등 현직 교원들도 힘을 보태 현장성을 높였다. 연수 과정은 총 30시간(2학점)으로 구성됐다. 국내·외 체인지메이커 교육의 흐름과 필요성, 체인지메이커의 정의, 핵심역량 등 체인지메이커 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부터 문제 발견, 팀 구성, 자료 수집, 문제 분석, 아이디어 발산, 해결책 찾기 등 문제해결 과정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설명한다. 자율동아리, 학생자치, 진로교육 등 실제 학교 현장에서 체인지메이커 교육을 접목할 수 있는 사례도 소개한다. 교총 원격연수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이들의 조력자로서 교사들이 실천할 수 있는 교육법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체인지메이커 교육 연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교총 원격연수원 홈페이지(www.educatio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년 전 수원 모 초등학교 교사들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간 적이 있었다. 강의 전에 가진 짧은 티타임 때 교감 선생님께 “선생님들은 교사로서 자부심도 크고, 삶의 의미도 높게 갖고 계시죠?”라고 질문을 했다. 교감 선생님은 놀랍게도 픽 웃으며 “요즘,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 합니다”라고 하셨다. 필자가 놀란 이유는 그 당시는 교사가 결혼 상대자 선호도 1, 2에 오르던 때였기 때문에 교사라는 자부심도, 삶의 의미도 행복도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선생님 너무 많아 2019년 2월 말 교육부 통계를 보면 명예퇴직 교사가 6019명으로 2018년 2월 말보다 29.7% 늘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를 접하고 최근 들어 초·중·고 선생님들과 빈번한 교류를 하면서 그날 교감 선생님 반응에 담긴 의미를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교직을 수행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할까? 바로 과도한 스트레스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사람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는 모든 심리적 증상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 감당하기 벅찬 스트레스가 명예퇴직을 부추기고 실행하게 하는 중요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명예퇴직이 최선의 선택일까? 선택은 자유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 선택이 행복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 일시적 회피를 위한 선택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는 늘 교사들이 교직에 있을 때나 교직을 떠나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기회가 되면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육환경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심리적 증상들을 어떻게 해소하고 행복한 교직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심리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긍정심리학의 행복 만드는 방법(긍정심리학의 행복, 긍정 정서 키우는 법, 성격강점 찾고 활용하는 법, 긍정심리 셀프 상담코칭 법)을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긍정심리학의 행복’이다. 필자는 2003년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해서 지금까지 오로지 긍정심리학과 행복만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2019년부터는 강점과 긍정자원 기반의 긍정심리치료 및 상담코칭 15회기 프로그램을 완성해 심리 상담코칭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행복은 과학이고 만들어 가야 긍정심리학은 1998년 당시 미국심리협회 회장이던 셀리그만이 창시했다. 긍정심리학의 목표는 플로리시(Flourish 번성, 지속적 성장, 행복의 만개)이고 사명은 예방이다.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문제가 발생하면 치료하기도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은 긍정 정서, 몰입, 관계, 의미, 성취의 5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며, 성격강점은 5가지 요소 전체의 기반이다. 이 여섯 가지 안에는 행복을 만들어 주는 긍정 도구들이 있으며 그 도구들을 통해 행복을 만들고 심리적 증상을 치료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의 행복은 기존의 추상적이거나 관조적인,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행복이 아닌 과학이며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01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몇 가정이 모인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절친들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아내들과 아이들도 함께 자리한 모임입니다. 웃으며 담소하고 덕담들을 서로 챙깁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음식을 함께 하며, 공동 관심거리를 대화로 나누고, 서로의 살아가는 형편들을 이야기합니다. 형편에 따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번지는 쪽도 있지만, 남의 자랑에 공연히 위축되는 쪽도 물론 있습니다. 모임에 데리고 온 자녀들은 저희끼리 친구가 되어서 잘 어울립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들은 자녀들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입니다. 걱정인 듯 자랑이 섞이고, 자랑에 숨어 있는 걱정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교양과 체면이 격조 있게 살아 있습니다. 모임의 분위기는 친목과 화평입니다. 그 누구를 민망하게 하는 말들은 발붙일 데가 없습니다. 모임이 무르익고 친교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말들도 나옵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모임이 끝났습니다. 서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오늘 알게 된,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한 친근감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우호적 감정이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친밀과 화목이 주는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뒷날 그것이 덕성의 일종임을 깨닫겠지요. 그 덕성의 매력을 오늘 몸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제 ‘그들’은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그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없고, 이제 우리만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갑자기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긴장감 같은 데서 벗어난 듯합니다. 교양과 예절로 무장했던 데서 해방이 되는 느낌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오늘 모임에서 불편했던 일 하나를 불쑥 이야기합니다. 오늘 왔던 사람 중 A 씨의 부인이 은근히 잘난 척을 해서 그걸 참느라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빠는 그 사람보다도 B 씨의 부인이 문제였다고 지적합니다. 사는 형편이 다들 비슷한데 자기네만 유독 더 힘들다는 듯 너무 엄살을 피우는 것 같아서 솔직히 밉상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들이 없는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뭐 달리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엄마는 아빠 친구들의 옷차림 평가를 합니다. 점수가 후하지 않습니다. 아무개는 감각이 촌스럽다는 평도 하고, 아무개는 비싼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도 합니다. 그러다 불똥이 아빠에게로 튑니다. “당신도 패션 감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 끼리끼리 모이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다 보니,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쾌감의 근원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듭니다. 그 싸한 분위기와 함께 뒷자리의 어린 딸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 난 오늘 만난 언니 너무 좋던데.” 엄마와 아빠는 아차! 하고서 놀라지만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며, 곱디고운 가르침으로 아이를 바르게 기르는데, 오늘 모임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아이에게 무얼 가르쳤나 하는 당혹감이 밀려옵니다.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자리 잡을지, 아이가 어떤 혼돈을 겪을지, 얼른 분간이 서지 않습니다. 02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돌아가는 차 안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아마 대동소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아까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 말도 다시 생각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인권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세태입니다. 남의 인권 무시하는 것이 첨단 인권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하기야 없을 때는 임금님 욕도 한다는데, 그깟 친구들 험담 좀 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죄라도 되는 거냐고, 있는 데서 한 것도 아니고 없는 데서 한 걸 가지고 뭘 그래! 엄마는 신속하게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리고는 엄마에 대해서 혼돈이 생긴 딸 아이를 홀깃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좋은 모임을 아주 멋있게 가졌으면, 그걸 그대로 끝까지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덕의 완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좋은 모임을 망가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 모임에 숨어 있던 온갖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나쁜 장면들이 어쩌면 내 눈에는 그리도 잘 보이는지. 그걸 말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뒷담화’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모임은 실패한 모임입니다. 망가진 모임입니다. 친근과 신뢰가 그윽한 경지에 가 있는, 그런 모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모임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들’이 없을 때도 친근과 신뢰가 이어지는 모임입니다. 그런 모임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기가 쉽지 않겠지요.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려는 노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무심결에 험담을 내놓았다가도 이내 각성하여 반드시 덕담으로 마무리해 주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합니다. 어쨌든 오늘 엄마와 아빠는 엄청나게 큰 것을 잃었습니다. 먼저, 어린 딸에게 신뢰를 잃었습니다. 없을 때는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배운 것의 교육 효과는 오래 갑니다. 엄마 아빠가 깨닫지 못하는 더 큰 상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사람됨(인격)을 아름답게 고양할 수 있었는데, 그걸 그만 놓쳐버린 것입니다. 아까 엄마가 한 말이 자꾸 상기됩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요. 그래요 다른 집이라고 우리와 뭐 다르겠습니까. 그들도 차 안에서 우리 부부를 험담하겠지요. 아차, 여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험담의 고약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있을 때 아무리 친하면 무엇합니까. 없을 때 이렇게 질투와 시기의 ‘뒷담화’가 만발하는데 말입니다. 예언컨대 이 모임은 오래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큰 복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더 친해지면 사소한 것 가지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있을 때만 잘하는 척하는 관계로는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없을 때 잘해야 진짜 잘하는 것입니다. 아니 없을 때 잘해야 복이 오는 것입니다. 03 칭찬에도 세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3등급의 칭찬부터 소개합니다. 여럿이 있는 데서, 막연히 칭찬하는 경우랍니다. 물론 칭찬받는 당사자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막연히 칭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칭찬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립 서비스(lip service)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둘만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전략적 목적으로 칭찬을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등급 칭찬은 아무도 없는 데서, 당사자만 있는 데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신뢰와 친밀의 정도를 서로 확인하게 하지요. 조직 내에서 이런 칭찬이 많아지면 ‘편애’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향하는 칭찬 방식이 이러하다면 그것은 아부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1등급 칭찬입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나를 칭찬했다는 말을 제3 자에게서 듣는 기분, 그거 참 괜찮습니다. 나를 칭찬해 준 분이 윗사람일 때는 존경이 더해지고, 칭찬해 준 분이 아랫사람이면 그분의 신실함을 더욱 인정하게 됩니다. 아부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유익한 바가 또 있습니다. 나 없는 자리에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었던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미더움이 생기더랍니다.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에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이렇게 나오는 노래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유효한 것이 없을 때 잘하는 것입니다. 없을 때 잘하면 정말 잘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도 잘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도 잘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드높이게 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일이겠지요. 없을 때 잘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하는 이유는 현행 승진제를 보완한다는 취지가 강하다. 즉, 교사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교원임용고시가 생겼듯이 학교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도입했다. 그러면 과연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이에 얼마큼 부합하는지 현재까지 진행된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 학교엔 교장이 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떤 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교육감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사, 더해서 어떤 학습공동체와 함께하는 교사라고 한다. 이런 교사보다 뛰어난 교원이 응시하지 않았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교사, 교감, 장학사 등을 거쳐 객관적으로 교장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교원이 탈락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사의 자질과 교장의 자질은 다르다. 교사의 자질에 ‘무언가1 ’가 더해져야 교장의 자질이 된다. 그래서 현행 교장제도에서 ‘무언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사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어떤 교사들은 이 ‘무언가’가 비합리적이고 바른 교사 되기를 포기하게 하고 심지어 가정까지 버리게 하는 제도라고 비난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보다 교장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교사가 더 낫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한 때 교사의 자질만 충분하면 교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교감이 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교감이 되는 과정을 통해 교감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많이 부족했다. 지금도 그렇다. 내부형 공모교장 자질 검증에 한계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현재의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좋은 교장이 되기 위한 어떤 ‘무언가’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내부형 교장공모제 진행 과정은 교장으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 경상남도교육청의 경우 교감 자격연수 대상 후보가 되면 전화 설문과 심층 면접을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연수 대상자가 된다. 교감 자격연수 시험도 객관식 위주에서 논술과 서술형으로 바뀌었다. 내부형 공모 교장제도가 이보다 더 잘 검증하는 시스템인지는 의문이다. 내부형 교장 공모에 응시한 교원과 내부형 교장을 선출하기 위한 분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내부형 교장공모제에서 교장으로 선출되려면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들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오랫동안 사전에 접촉해서 공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정도 조직을 갖추지 않은 교원이 이들과 일일이 접촉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교장으로서의 자질과 더불어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로 작용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장으로서의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고, 특정한 세력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학교공동체의 다양한 요구를 공정하고 슬기롭게 수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혁신학교가 기초학력 저하 현상을 가속화 시킨다고 비판 받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 단체, 특정 세력의 철학과 논리로 학교를 끌고 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특정 단체와 특정 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름과 차이’를 그동안 차별받은 것에 대한 ‘보복과 틀림’으로 받아들여 그들만의 의견을 다양성으로 해석하고 그 밖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법령과 전문성, 그리고 다수결의 함정 많은 이들은 또 현재의 교장 임용 제도로는 학교가 민주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민주적인 학교 문화의 의미를 물어보면 ‘학교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집단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전문성, 지식과 지혜의 차이, 경험 등을 무시하고 ‘1인 1의사 표시’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식의 의사 결정은 결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학교는 법령으로 운영된다. 법령은 복잡하다. 얼마 전 연수에서 법 관련 전문 강사가 한 말이 귓전을 맴돈다. “학교에는 백가지 직종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스물다섯 가지 직종이 있는 학교가 존재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학교에 다양한 직종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뿐인가. 복무도 다 다르다. 역할이 다르고 관리하는 방법도 다르다. 어떤 직종은 학교장이 지시할 수 없고 관리만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 이런 점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학생들의 교육 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법령을 위반하는 강제성이 동원되면 안 된다. 법령을 잘 모르면 관리자에 의해서만 갑질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종 사이에도 갑질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 교육 활동과 관련되는 법령과 매뉴얼도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구성원들의 전문성, 지식과 지혜의 차이, 경험을 무시한 다수결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교감과 교장의 역할, 전문가의 영향력을 배제한 교사들에 의한 결정이 목적이다 보니 오히려 학교는 전문성 결핍에 노출되곤 한다. 지금의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민주적인 학교 문화에 전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문을 갖는 이유다. 혹자는 선출되는 교장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현재의 교장 임용제도의 불합리한 점도 사람의 차이에 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부형 교장공모제 발전을 위한 검증 필요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보완되어야 한다. 교육감이 바뀌더라도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에 입각한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되었는지, 중립적인 전문가 그룹에 의한 감시 체계와 검증 절차가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또 동료 평가, 심층 면접, 상호 토론, 전문가 그룹에 의한 질의응답 등과 이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교장 자격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기존의 교장 임용제도에 비해 나은 것인지 후속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부형 공모교장제에는 아직 그늘이 존재한다. 그 그늘은 우리 교육의 부끄러운 초상이기도 하다. 상생과 존중의 빛으로 그늘이 더이상 길고 짙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서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원조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특성화된 학교를 확충해 교육수요자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대거 확대되었다. 교육은 다양성과 수월성이 있어야 하고,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대 취지였다. 또한 고교평준화 문제를 보완하여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보장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하향평준화 교육에 대한 우려도 자사고 도입에 한몫했다. 그러나 자사고는 귀족학교 논란과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들어선 2014년부터 폐지 논란이 심화되었다. 자사고 논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학생선택권 보장과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사고는 출범하자마자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 한다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초기에는 지원 자격으로 내신 성적 기준을 두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자사고에서 내신 성적 기준 없이 지원이 가능하고, 1차 전형에서 추첨에 의해 2차 면접전형에 참여할 학생들을 선발한다. 사실상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학교로 달라진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살리되 수월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과정은 완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자사고에 따라 지원 학생수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 자사고 스스로 일반학교로의 전환을 꾀하는 경우들도 나타나고 있다. 자사고 존폐 논란에서 이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사고로 계속 운영이 어렵다면 일반고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훨씬 더 유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입맛따라 춤추는 자사고 정책 자사고의 존폐가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유로 교육 외적인 즉, 정치적인 필요를 꼽는 이들이 많다. 수시로 개정되는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교육은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교육과정개정, 교장임용제도, 자사고 폐지 등이 정치와 관련되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선 학교 교사 일부와 학부모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사고 재지정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 외적인 문제로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 중에 자사고의 운영상 문제와 사학비리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거나 비리가 발생되었다면 당연히 지정 취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문제는 자사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자사고는 전체 모집 정원의 20%를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그 자녀, 차상위 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로 보는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누구나 원한다면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자사고는 학교별로 내신 성적 등의 교과전형을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목고와 같은 맥락으로 자사고를 포함시키려 하지만 특목고와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사전에 정해놓고 거꾸로 절차를 진행할 때 이를 꼬집는 표현이다. 최근 자사고 평가에서 재지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준점수를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불리하도록 높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사고와 학부모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자사고는 ‘아싸’ 혁신학교는 ‘인싸’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에 변화를 주면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 자사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설립 취지에 맞게 성실한 운영으로 부러움을 사는 학교들이 상당수 있다. 도리어 이들 학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사고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반면 혁신학교는 논란을 피해 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사고보다 더 큰 비난과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혁신학교이다.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하나의 학교 형태지만 논란의 온도차는 상당히 크다. 주지하다시피 혁신학교는 자사고와 달리 진보교육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각종 통계에서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현상이 뚜렷함에도 이를 부정하면서 계속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학교를 혁신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혁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2015 개정교육과정의 시행으로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혁신학교의 혁신교육 목표가 상당히 닮아 있다. 더이상 새로울게 없는 것이 혁신학교다. 더구나 중학교에서의 자유학년(기)제 도입으로 더 이상의 혁신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당연히 혁신학교를 더 이상 확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기존의 학교를 지정 취소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초·중·고 2,366개교 중 혁신학교는 665개로 28.1%를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가 1,263개교 중 378개교(29.9%), 중학교 629개교 중 218개교(34.7%), 고등학교 474개교 중 69교(14.6%)이다. 서울의 경우는 전체 고등학교의 320개 중 혁신학교는 15개교로 3.8%이다. 교육청에서 집중적으로 혁신학교를 확대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나 중·고등학교의 혁신학교 전환은 난항에 부딪힌 상태다. 초등학교의 비율을 보면 603개교 중 164개로 27.2%, 중학교는 382개교 중 45개로 11.8%로 경기도의 비율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향후에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공감하지 않고 적극적인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일찍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제도 개선 없이 혁신학교를 도입한 것은 당초부터 현실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혁신학교는 초기에는 교당 1억 5천만 원 정도의 예산이 지원되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줄어들어 서울의 경우 5~6천만 원 선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혁신학교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년 전 보수교육감 시절에 혁신학교를 평가하여 재지정 혹은 지정 취소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지표를 정하는 단계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혀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평가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외부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우여곡절 끝에 평가 보고서가 나왔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혁신학교에도 엄격한 평가 이뤄져야 시범학교나 연구학교가 운영되면 우수사례를 다른 학교에 보급하게 된다. 혁신학교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면서도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개발·보급하는 학교들이 많다. 그러나 우수하다는 혁신학교의 자료를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물론 혁신학교도 평가는 받는다. 그러나 평가단에 혁신학교 경험이 있는 교사들이 포함되면서 평가보다는 컨설팅의 의미가 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쉽게 수긍되지 않는 대목이다. 따라서 혁신학교도 자사고 처럼 더 강도 높은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누구나 평가 과정과 결과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에 따라 지정 취소도 검토되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들의 전유물로 거듭나면서 확대되고 있고, 자사고는 재지정보다 지정 취소에 방점을 두고 평가를 진행한다는 의혹 속에서 대폭 축소의 위기에 몰려 있다. 혁신학교에도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혁신학교 운영이 모두가 만족할 만큼 제대로 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별천지의 학교처럼 운영되는 것이 자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혁신학교에도 똑같은 시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청에서는 자사고에 이어 혁신학교도 평가를 한다고 한다. 다른 교육청도 곧 혁신학교 평가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어떤 평가단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사고처럼 과감히 칼을 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혁신학교는 자사고와의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존재의 설득력도 얻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황송하게도 한 학기에 많으면 두세 번씩 대학교에 특강 형식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때마다 과연 내가 이런 자리에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럼에도 거절한 적은 없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K팝과 시장경제’로, 내용은 간단하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mp3라는 새 압축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 음반 시장은 일대 위기를 맞이했다.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故 신해철을 포함해 권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요계(그땐 K팝이란 말이 없었다)의 멸망을 개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멋진 일들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심도 있는 연구가 전개되진 않았다. 경제·경영학과 교수들도 이제 막 호기심을 갖는 단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고 나에게 멋들어진 강의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나는 그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 음악 이야기와 내 나름의 가설을 두세 시간에 걸쳐 얘기한다. 10대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한국 대중음악의 변천사, 중요한 분기점,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진 이들에 대해 목격자처럼 얘길 전한다. 그리고 멋진 음악을 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존재만으로도 음악적인 20대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가 없을 리 없다. 아니, 없었다.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 ‘없었다’라는 과거형이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나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각도의 질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렇다. “지금까지 K팝의 발전사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을 들려주셨는데,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제까지 없었던 직업정신의 호출을 요구받는다. 그렇다. K팝이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바로 그때처럼 상황은 다시 한번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월 강남의 어느 클럽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하나가 한국의 K팝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도 상황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글에서 현상의 원인을 심도 있게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이는 구석은 있다. 분명한 건 K팝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 시점부터 오늘날의 문제가 배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K팝의 성공 요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외모지상주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의 어느 출구로 나가면 보이는 그 즐비한 성형외과들의 행렬을 상기시킬 필요도 없다. 연예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망은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에게 갓(GOD)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데까지 와 있다. K팝이 유명해진 계기 중 하나인 세칭 ‘칼군무’는 눈에 보이기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가수 개인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면 너무나 멋진 일이다. 북한의 ‘아리랑’처럼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오로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혹독한 무대의 삶을 선택한 10대 20대들이 추는 최후의 춤사위. 강처럼 흐르는 땀방울을 쏟아낸 대가를 누가 확실히 보상해 준다는 약속도 없다. 가수가 되려는 연습생들은 많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데이터는 무대에서 빛나는 가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진흙 위의 연꽃처럼 보이게 만든다. 문제는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우리 중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되고 한 달 뒤의 상황 같다. 로또 1등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한 달 정도는 이 성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색한 마음이 들 터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얼마간 돈을 펑펑 쓴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제정신이 들고 당첨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는 잔액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진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1.6%의 어떤 것 K팝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성공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것. 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단단히 꼬인 실타래의 가장 안쪽에서 미리부터 대형사고의 폭발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뱅의 막내 멤버 승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동년배들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승리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업체를 꾸렸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성공의 과실을 나누면서 자못 ‘의젓한 어린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많은 카메라들이 뒤를 따랐으며, 그런 주목을 발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던 것처럼 보였던 게 사건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그 이후 무시무시한 낙차로 그의 하락세가 시작됐지만, 나는 그가 성공의 정점에서 내놓은 노래 ‘셋 셀 테니’의 한 구절을 지금도 떠올린다. 승리가 직접 노랫말을 적은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그런 자태를 가졌으니 / 눈은 네 구두보다 높을 거야 / 조금 새삼스럽지만 / 결국 다 동물이란 생각을 해” 인간이 동물인 건 모두가 안다. 단, 이 맥락에서의 ‘동물’에는 무서운 함의가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교양, 윤리, 도덕, 문명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폭발버튼이 매복돼 있다. 인간은 침팬지와 유전자의 98.4%를 공유한다. DNA 차원에서 봤을 때에는 거의 같음에도 우리가 침팬지이길 거부하는 이유는, 작지만 큰 차이가 저 1.6%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작은 숫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의 하나로 간주하며 지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다. 그중에서도 대세는 역시 입시학원이다. 서울의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 대표적인 학원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도처에 입시학원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원들은 과연 언제부터 성행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에 대한 해답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러한 학원들이 성행하게 된 배경이 입시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결국 시험이 도입된 시대와 학원의 등장이 맞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답은 바로 과거시험이 도입되었던 고려시대이다. 혹자는 고려시대에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을 것이고, 그곳을 중심으로 과거 준비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물론 학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학교가 바로 국자감이다(국자감은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같은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최고 수준의 공교육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자감에 학생들이 몰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려 성종 때 기록 중에는 학생들이 국자감에 적만 걸어두고 실제로 다니지 않는다는 탄식이 나온다. 문종 때는 국자감 학생들이 학업을 전폐하게 된 것은 교관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발견된다. 이처럼 국자감은 학생들의 기피로 인해 공동화(空洞化)되다시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학생들은 어디서 과거 공부를 했을까? 그곳은 바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12도(徒)였다. 여기서 ‘도’는 교습을 위해 사적으로 맺어진 교사와 학생들의 무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도는 일정한 공간에서 교습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결국 오늘날 학원과 같은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무리가 12개가 있다고 하여 으레 ‘12도’로 불렸던 것이다(처음부터 12개의 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애초에는 한 개의 도로 출발했던 것이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자 앞을 다투어 도를 만들게 되어 나중에는 그 수가 12개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중에서 12도의 시초이자 가장 인기가 있었던 도는 최충(崔沖)이 만든 ‘문헌공도(文憲公徒)’였다. 당시 학생들이 12도에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12도가 과거 준비를 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임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운영하였길래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과거시험 대비 '12도'의 출현 기본적으로 12도의 정규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과거 합격을 목표로 수업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라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특별 행사들을 실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하과(夏課)’였다. 하과란 매년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12도마다 시원한 절간에서 개최하였던 강습회로서, 오늘날 ‘썸머 특강’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하과 행사로는 먼저 특강 개최를 들 수가 있는데, 이 특강에 초빙된 강사는 바로 최근에 과거에 합격한 학생이었다. 이처럼 최근 합격생을 초빙하였던 이유는 이들의 시험 준비 경험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당시 학생들이 선호했던 강사는 과거시험 출제 위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데, 12도의 설립자들이 대체로 과거 시험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평소 수업 때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과에서 이뤄졌던 행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각촉부시(刻燭賦詩)’였다. 이것은 양초의 아랫부분에 금을 그어놓고 심지에 불을 붙여 양초가 그 금에 타들어 갈 때까지 부(賦)와 시(詩)를 짓게 했던 행사로서, 여기서 우수한 글을 지은 학생들 순서대로 방을 붙이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양초는 오늘날 시계의 역할을 한 것이고, 부와 시는 당시 과거시험 과목으로서, 쉽게 말해 각촉부시는 ‘모의고사’였던 것이다. 이처럼 12도에서는 과거시험에 최적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에 비해 당시 공교육을 대표하였던 국자감은 오직 과거시험 합격에 관심이 있었던 당시 학생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당시 국자감은 12도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생들이 국자감에는 이름만 걸어 놓고 실제로는 12도에서 수학하려 했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사교육 기관은 12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고려도경(高麗圖經)」이다. 이 문헌은 당시 중국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서긍이 고려에서 지내는 동안 보고 들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중 고려의 사교육 기관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舍)가 두 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자제로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 지어 지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장성해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마을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 훌륭하도다. 서긍의 눈에 비친 당시 교육공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먼저 민간 마을에 있었던 ‘경관’과 ‘서사’는 누가 보더라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사교육 기관이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경관’과 ‘서사’는 그 기관의 일반적인 명칭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교습기관의 의미로서 서긍이 임의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관들이 앞서 살펴본 12도와 별개의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절간에서 강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12도를 다른 명칭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마을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는 기관은 12도와는 다른 별도의 교습기관이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이처럼 당시에는 어린아이부터 청년층까지의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사설 교육기관에서 과거 준비를 하였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중국이 아닌 조그만 변방 국가에서 이렇게 사설 교육기관들이 성황을 이뤘다는 사실은 서긍에게 충격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올 정도로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과거 준비 교육이 사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곧 당시의 공교육이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음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교육이 침체되었던 것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학(官學)의 경우 국가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내면화 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학교에서 과거시험 합격을 위한 요령 위주의 교육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과거 합격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관학은 기피될 수밖에 없었고, 그 대신 과거 합격을 목표로 교육을 운영하였던 사교육 기관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이 있는 한 공교육의 퇴락은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후 고려시대의 사교육 기관들은 조선시대로 들어서서도 그 명맥을 이어갔다. 고려시대의 관학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와 같은 관학들 역시 과거시험과 관련하여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수험생들은 관학을 외면하고 사교육 기관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교육의 형태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대체로 강습자가 여러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서당과 같은 형태가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학설상으로는 서당을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서민 교육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보편적인 사교육의 형식으로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앞서 살펴본 고려시대의 12도나 여타의 사교육 기관들 역시 이러한 서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고려시대의 서당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고려시대 사교육 기관들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도 ‘서당’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조선시대 사설 사교육 기관은 '서당' 그렇다면 오늘날 서당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학원’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전제로 하여 반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지금의 학원의 전신은 조선시대 서당이며, 조선시대 서당의 전신은 고려시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오늘날 학원의 원조는 바로 고려시대 서당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교육 기관의 흐름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고려시대 교육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사교육이고, 조선시대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교육은 사교육에 의존해 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교육도 사교육에 지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도 사교육은 수많은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를 촉발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래의 우리 자녀들에게만큼은 사교육으로 인한 폐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사교육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무려 1,000년 동안 누적되어온 문제였다는 엄중한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절실한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긴다는 보장이 있으면 진행하겠습니다. 이길 수 있나요?” “이길 확률이 몇 %나 될까요?” 의뢰인과 상담할 때 가장 답하기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은 필자가 모르는 법리나 법 조항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질문이다.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입는 경제적, 심리적 타격은 상당하기에 사람들은 승소의 확신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의뢰인이 그동안의 경과, 학교의 부당함, 우리 애의 억울함을 실컷 얘기하고 묻는 것은 한결같이 이길 수 있는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다. 알파고는 내부적으로 한수 한수 둘 때마다 실시간으로 승률이 표시된다고 한다. 그런데 소송은 그 자체가 누구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고, 상대방 특히, 학교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괜히 그러한 조치를 할 리 만무하므로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그 결과 혹은 승률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소송을 하다 보면 승소를 확신했는데 지기도 하고, 질 것 같았는데 승소의 기쁨을 누리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기에 필자에게 의뢰인이 “이길 수 있냐, 이길 확률이 얼마냐”고 물으면 “누구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는 절차가 소송입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기 더 어려운 이유는 같은 쟁점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법원을 구속하나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서로 참고만 할 뿐이다. 따라서 서로 충돌하는 하급심 법원 판결도 많다. 다음은 서로 상반된 결정을 한 학교폭력 관련 판결을 살펴보자. 입학 전에 한 학교폭력을 징계할 수 “있다 vs 없다” 고등학생에게 중학생 때 한 행위 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을까? 교육부와 교육청은 입학 전의 행위도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졸업 후 입학 전에 발생한 사안은 입학하기 전이라면 졸업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고(졸업했다고 하더라도 2월 말까지는 해당 학교의 학생이다), 입학한 후라면 입학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여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쟁점 사안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대구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이 상반된 결정을 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7카합80664 사건에서 “이 사건 전학처분은 채권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저지른 행위로서 애초에 징계사유가 될 수 없는 사유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하여 둔다”는 내용으로 입학 전의 행위를 징계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구고등법원은 2018누2620 판결에서 “①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호는 학교 외에서 발생한 학생에 대한 상해, 폭행 등의 행위도 학교폭력에 포함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의 발생 시점이나 징계 시점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점, ②학교폭력으로 인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에 관해서는 그 조치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제척기간이나 공소시효 등에 관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점, ③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에 있는 것이고(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고 해서 위와 같은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는 점, ④원고 주장대로라면, 중학교 졸업 무렵에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상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어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점을 각각 들었다. 이를 종합해 학교폭력이 중학교 재학 중에 발생한 경우에도 당해 가해학생이 소속된 고등학교장은 가해학생에 대하여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소정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입학 전의 행위라도 상급학교의 장이 징계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구고등법원이 서울중앙지방법원보다 상급법원이며, 나중에 판시한 최신 판결이라는 점에서 징계가 가능하다는 논거가 조금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 모두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므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호자 간의 감정싸움은 학생에 대한 징계 양정의 고려사유가 “된다 vs 안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은 보호자들 간 감정싸움에서 시작된다. 가해학생 보호자가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우리 애도 억울하다.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가해학생의 조치를 결정할 때 보호자끼리의 감정싸움 또는 갈등이 징계양정의 고려사유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상반된 판결이 있다.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1358 판결은 “원고와 ○○○의 각 부모는, ○○○의 모친이 2014년 11월 27일 학교 교실에서 원고 등을 야단친 것과 원고의 모친이 이를 문제 삼으며 ○○○의 모친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고 협박죄로 형사고소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여 화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바,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이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서는 아니 되는 점”을 재량권 일탈·남용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원고가 받은 1, 2, 5호 처분 중 2, 5호 처분을 취소하였다(이외에도 재량권 일탈·남용 사유가 더 있었음).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6957 판결은 “원고와 원고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격한 학생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고 피해자를 먼저 고소하는 등 현명하지 못한 비교육적·감정적 대처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판시하면서 원고가 받은 전학처분이 타당하다고 결정하였다. 보호자 간의 갈등은「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의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학생의 화해 정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소이나,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수준에 고려하면 안 된다는 것이 위 판결들의 취지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부분인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SNS 단체 대화방 험담은 학교폭력이 “된다 vs 안된다” SNS 단체 대화방 내에서 다른 학생을 험담하거나 성희롱하여 학교폭력으로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초·중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회사에서도 문제가 되며 최근에는 언론 기자들 단체 대화방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대화방에 참여한 숫자, 구성원들의 관계, 자유롭게 대화방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를 가지고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한다. 즉, 앞에 소개한 상반된 사례와 달리 이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44674 판결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내에서의 이 사건 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원고 등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불만 등을 토로하는 내용에 해당하고, 이러한 대화 과정에서 욕설이나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욕설 중 상당 부분은 원고 또는 □□□이 스스로에 대하여 자조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며, ○○○과 관련된 부분 또한 ○○○에게 직접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가하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위와 같은 비난이나 욕설이 ○○○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을 제외한 채팅방 구성원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 자체를 쉽사리 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한 사이버 따돌림 등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소수가 참여한 대화방에서의 욕설이나 험담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그에 반해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84607 판결은 “원고 ○○○은 이 사건 채팅방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사진을 편집하여 수차례 무단게시하고, 피해자의 외모를 비하하였으며, 모텔 사장인 피해자가 콘돔을 많이 준다는 등 성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였는 바, 당시 이 사건 채팅방에 피해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동급생들이 가입해 있는 위 채팅방의 성격 및 회원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수의 회원 사이에서의 폐쇄적인 온라인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에 대한 전파 가능성이 현저하고, 원고 ○○○으로서도 위 채팅방에서 발언하면서 위 발언 내용을 피해자가 알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위와 같은 채팅 내용이 피해자에게 알려져 피해자는 자살 충동을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따라서 원고 ○○○의 행위가 반드시 피해자의 면전에서 이뤄진 직접적 가해행위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전달될 것을 예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전달되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수반한 이상, 위 행위는 단순한 ‘뒷담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모욕으로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여 반 단체 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비하하고 험담한 것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 어떠한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해당 조치가 과한지 적정한지, 절차적 위법이 존재하는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그때그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즉,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정이 타당한지는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수치로 표현할 수 없고 결국은 판단자의 주관과 상식, 경험에 의해서 규범적으로 결정하기에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직까지는 변호사, 판사를 알파고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