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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첫키스는?, 첫경험은?, 초경은?” 아마도 직장내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성희롱에 으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아직까지 순수하다고 믿고 싶은 중학생들이 내뱉은 말이다. 그것도 수업 중에 자신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장난치듯 던진 말이라니 해당 교사가 받았을 충격도 걱정이지만 ‘막장교실’의 적나라한 풍경을 보는 것같아 허탈할 따름이다. 패륜과 다름없는 교권 침해 사례는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최근에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교재를 지참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 교사에게 학생이 주먹으로 폭행했으며 강원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3학년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일찍 들어오라고 훈계하는 40대 여교사의 멱살을 잡고 밀치며 폭행했다. 심지어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5학년 학생이 싸움을 말리는 50대 여교사를 폭행한 일도 벌어졌다. 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교사를 우습게 아는 ‘막장교실’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교사에 대한 권위 실종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 5월 한국교총이 발표한 ‘2009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에 따르면 교사에 대한 학생ㆍ학부모의 폭언ㆍ폭행사건은 2009년 108건으로 3년전인 2007년 79건에 비해 30건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안의 성격상 드러내놓고 밝히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사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막장교실’의 고삐풀린 풍경은 일부 교육청이 체벌금지 조치를 단행한 이후부터 부쩍 증가하고 있다. 학생 인권 보호의 핵심이 체벌금지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적절한 대체프로그램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된 후유증이 결국 교실을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도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학생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학부모 고발, 유급, 등교정지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통하여 교권을 보호하고 있다. 혀를 차게 만드는 ‘막장교실’의 안타까운 풍경은 교육을 정치논리로 접근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교육은 정치놀음이 아니라 교사놀음이다. 즉 교사의 역할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사를 궁지로 몰아넣고 학생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게 한다면 교육을 망치겠다는 의도나 다름없다. 분명하게 말한다. 교사의 자존심을 짖밟고 교실을 막가파식 패륜으로 몰아간 원인을 밝혀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은 ‘막장교실’의 출구전략으로 한국교총이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 교권보호법 제정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희망속에 맞이하는 신묘년 새아침이밝았지만 고3 담임으로서 정시모집 전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마음이 그린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수능시험으로 인해 점수 대폭락의 안타까움 속에서 치러졌던 이번 정시모집은 원서 마감 직전까지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질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진행됐다. 가, 나, 다군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정시모집 전형의 시작과 함께 사운을 건 사교육업체의 수강생 모집 광고전도 시작됐다. 정시모집 지원을 아예 포기했거나 재수를 감수하고 상향지원을 한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규모가 큰 메이저 업체에서부터 지방 중소도시의 소규모 학원에 이르기까지 광고전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EBS 강사진과 최고의 학원이 만났다.」 요즘 흔히 보는 일간지의 사교육업체 광고 카피다. 지방의 영세 학원들도 수강생을 모집하는 현수막이나 전단을 제작할 때는 EBS 강사 출신이 강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EBS 강사를 보유하고 있어야 영업이 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EBS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그래서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 공교육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부터 수능방송을 시작했다. 교육 당국은 EBS 강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수능 반영률을 70%이상 끌어올리는 무리수까지 뒀다. 그런데 그런 EBS가 이젠 오히려 사교육의 가장 강력한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EBS 강사는 대개 공모 형식을 통하여 선발된다. 문제는 공교육 교사이든, 사교육 강사이든 지원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교육 강사 가운데는 EBS를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명성을 쌓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EBS는 강좌마다 강사의 약력에 소속 기관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사교육 업체나 강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홍보수단이 있을리 만무하다. 공신력이 생명인 수능시험에서 특정 강의와 교재의 내용을 70%이상 반영한다는 발상도 문제다. 학생들은 싫든 좋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EBS 강의를 듣고 교재를 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온통 공교육을 EBS에 예속시켜놓고 정작 강의는 사교육 강사에게 맡긴다면 이는 사교육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과목별로 수십권씩 되는 EBS 교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에게 사교육 업체는 교재별로 핵심 내용만 요약해서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말하자만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EBS 강사가 진행하는 특강은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하니 사교육 업체로서는 오히려 EBS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처럼 EBS 강의와 교재를 믿고 공부해도 성적이 떨어지면 학생들의 반발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EBS 강의와 교재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교육 당국을 비롯한 EBS 측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사교육 창궐의 빌미를 제공하는 EBS 강의만큼은 공교육 교사로 제한하는 조치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수업 잘하는 교사들을 찾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는 수업연구대회 입상 교사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학교장의 학교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교원들과의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그 기초는 학교장과 교원 상호간의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그의 저서「신뢰(Trust)」에서 신뢰를 ‘공동체의 타 구성원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하여 예측가능하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윤리적 가치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본으로서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필수요소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신뢰를 학교경영의 성공요인으로 보고 있는 이유를 보면, 먼저 신뢰는 교원의 능력과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다. 학교와 학교장에 대한 높은 신뢰는 교원의 업무 몰입도 및 창의성을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료교원들과 협력하려는 의사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조직 내 신뢰는 학교의 변화에 대한 교원들의 수용성을 높인다. 교원은 학교나 학교장을 신뢰하지 않거나 자신들이 신뢰받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변화에 저항하고 소극적인 근무태도를 보인다. 반면, 학교장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교원들은 학교교육의 목표와 비전 달성을 위해 스스로 동참하게 된다. 셋째, 신뢰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교원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교원은 신뢰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이 간소화되어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에 보다 신속하고 자신감 있게 대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경영의 갈등과 문제점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장은 교원들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선진화된 학교경영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교원들이 학교나 학교장에 대한 신뢰 수준은 신뢰의 대상과 신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려하여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신뢰의 대상이라 하면, 학교조직에서의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모두 포함한다. 수직적인 관계는 학교장과 교감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고, 수평적인 관계는 동료교사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신뢰의 구성 요소에 대하여 심리학자 미쉬라(Mishra) 교수는 면접기법을 활용하여 ‘능력, 공정성, 개방성, 관심과 배려’라고 하였다. 그 첫 번째 구성 요소인 ‘능력’은 학교장의 학교경영 능력이나 학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두 번째 ‘공정성’은 학교장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학교정책의 운영이나 관리가 일관성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개방성’은 학교교육계획 및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교육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학부모, 학생, 교사들과 수평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마지막 구성 요소는 ‘관심과 배려’는 교원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학교경영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뜻한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신뢰야말로 모든 조직의 기초 자산이다”라며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처럼 신뢰는 학교장의 성공적인 학교경영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신뢰가 교원의 업무성과와 관련하여 몰입도, 학교에 대한 애착관계에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교원으로부터 신뢰받는 학교장의 경영조건을 무엇일까? 첫째는 교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학교장이 교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존중과 배려는 일회성이 아닌 학교조직문화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장은 교원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이 교원들 사이에 확산되면 학교 내에 신뢰 구축이 용이하게 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학교장은 교원들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해야 교원들이 학교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교육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업무 실행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위임함으로써 교원 스스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장은 교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학교장들은 교원들과 의사소통 역량이 낮아 이들과의 신뢰 형성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원들과 의사소통 역량 제고를 위해 학교장은 많은 시간을 갖고 교원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학교장은 교원들과의 신뢰 구축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임을 알고 항상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에서 생각하여 이해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교원들 역시 학교장과 학교의 관점을 이해하고 신뢰하여 학교의 교육정책에 잘 따르게 된다. 만약 학교장이 교원들의 말에 귀 기우리지 않고 자기 말만 되풀이 한다면 교원들과의 신뢰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학교장의 일관성 있는 학교경영의 실행이다. 학교경영의 일관성 역시 학교장의 신뢰성을 구축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학교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학교교육이 계획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교원들은 학교장의 말을 경청하고 행동을 주시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둘이 일치할 때 비로소 신뢰감이 형성된다. 일관성 있는 학교경영을 위해 학교장은 학교가 지향하는 비전과 목표, 그리고 경영 원칙을 갖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교원과 형성해야 한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학교장은 교원들에게 학교의 모든 교육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부정적인 정보를 숨기거나 보기 좋게 꾸며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교장은 교원들과 합의된 경영전략이나 원칙들을 일관성 있게 실행해나가야 한다. 셋째는 교원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교원들은 자신의 노력을 공정하게 인정받을 때 학교를 신뢰하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따라서 교원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해서 교육성과에 기여한 만큼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실패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적절한 학교장의 관리가 필요하다. 넷째, 교원에 대한 통제와 신뢰의 균형이 확보되어야 한다.아무리 학교장이 교원들에게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학교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비록 학교장이 외부로부터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학교경영자로 평가받을지라도 학교내부의 갈등 속에서는 신뢰를 조성할 수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교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때 비로소 학교장을 신뢰하게 된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하에서 학교는 능동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원들이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원들이 학교교육 목표 달성을 위해 자율적인 협력과 노력은 신뢰라는 탄탄한 기초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학교장은 교원들 간의 신뢰가 학교경영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다시한번 생각해야할 것이다.
2011년 새해 신묘년이 밝았다. 찬란한 희망의 해가 떠올랐다. 새해의 밝고 환한 햇살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 소망의 빛을 비추어준다. 특히 교육을 향한 햇살은 더욱 눈부시다. 새해의 교육은 더욱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의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의 주체인 우리 학생들에게 바라는 바가 크다. 우선 학생들 모두가 건강했으면 한다. 육체적 건강 없이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새해에는 체력단련에 더욱 힘을 쓰면 좋겠다. 체력이 곧 실력이다. 체력이 없으면 노력이 뒷받침될 수 없고 노력이 없으면 학력향상을 가져올 수 없다. 또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어두운 생각은 몰아내야 한다. 밝은 생각으로 가득차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도 없애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길러야 한다. 건전한 사고는 정신적 건강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건강에도 힘을 써야 한다. 다음은 학생들 모두의 성장과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먼저 육체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 키도 많이 자라야 한다. 체격도 좋아야 한다. 체력도 좋아야 한다. 육체적인 성장은 기본이다. 그러므로 고른 영양섭취와 운동은 필수다. 배우는 학생이 먹는 일과 운동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격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 인사할 줄 모르는 학생은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청소할 줄 모르는 학생은 청소 잘하는 학생이 되었으면 한다.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하지 않는 학생은 바른말, 고운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하나의 성장은 학력의 향상이 있어야 한다. 학력 향상의 기본은 기초학력 신장이다. 기초가 없으면 학력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기초부터 튼튼히 하도록 했으면 한다. 기초를 잘 다져야 높은 빌딩을 세울 수 있듯이 기초를 잘 닦아 놓으면 학력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선생님들은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바랄 것은 선생님들의 열정이다. 선생님들의 전문지식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바른 생활을 위한 지도에도 열정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더욱 빛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학부모님들은 우선 자녀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면 한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혹시 옆길로 가지 않는지, 혹시 나쁜 짓을 하지 않는지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자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가 따뜻한 사랑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손 길, 따뜻한 가슴을 원하고 있다. 새해에는 좋은 학부모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년 한해가 갔다. 한해가 가는 순간은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올해는 특히 10년 단위의 시대를 접고, 새로운 10년대가 열리는 순간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인지 날이 추운데도 보신각 주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사라지는 해를 아쉬워했다. 방송에서도 아나운서가 2010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며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같은 시간 표현을 두고 ‘2010년 12월 31일 자정’이라는 표현과 ‘31일 밤 12시’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느 표현이 바른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정’은 하루의 시작이니 ‘밤 12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는 특별히 틀렸다고 할 것은 없고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습관이 필요할 뿐이다. 우선 ‘자정’의 뜻을 새기면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밤 열두 시를 이른다. - 자정 무렵 - 자정이 지난 시간 -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느라 고단한 것도 잊고 자정을 넘겼다. - 그는 사업으로 바빠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는 날이 많다. 사전을 보면 ‘자정’은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시간으로, 밤 열두 시를 가리킨다. 이런 뜻풀이로 보아 ‘31일 자정’은 ‘31일의 밤 12시’와 같은 뜻이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도 새해 1월 1일이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시’는 십이시의 첫째 시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31일 자정’은 ‘31일 밤 12시’라고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자정’과 ‘밤’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자정’이 하루의 시작인지 끝인지는 화자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뜻풀이를 명시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어떤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기 어려운 탓으로 보인다. 결국 사전도 이러한 언어 현실을 반영해 ‘31일 자정’과 ‘31일의 밤 12시’는 같은 시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때를 31일 0시라고 표현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영시(零時)’는 이십사 시간제에서 하루가 시작하는 시각이다. 즉 24시부터 1시까지의 사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표현은 1월 1일 0시가 된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주말’이 있다. 사전을 편찬할 때 일요일이 한 주의 첫날인지 월요일인지 고민이 있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때도 사전은 언어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즉 사전에는 ‘주말’은 ‘한 주일의 끝 무렵. 주로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이른다.’고 풀이하고 있다. ‘일요일’은 달력에는 주의 처음으로 보이지만 월요일을 기준으로 한 주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날 보신각에서 치러진 ‘제야’ 행사도 정확한 언어 표현이 아쉬웠다. 방송사는 ‘제야의 밤’이니 ‘송년 제야의 밤’이라는 표현을 했다. ‘제야’는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한다. 한자 의미를 새겨도 ‘제(除)’는 ‘덜다, 없애다, 버리다’란 뜻이고 ‘야(夜)’는 ‘밤’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제야’는 이미 ‘밤’이 들어 있는 말이다. 따라서 ‘제야의 밤’이나 ‘송년 제야의 밤’ 등은 ‘밤’이 중복되어 있어 어색한 표현이다. 시작한 김에 하나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야의 종’ 행사 이름을 바꿔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제야의 종은 12월31일 밤 12시 정각에 친다. 새해를 여는 첫 울림이다. ‘제야’란 섣달 그믐날 밤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한해의 끝이다. 우리가 치고 있는 종은 새해 첫날 0시에 울려 퍼지니 ‘해맞이 종소리’가 정확한 의미다. 물론 이것도 모두 음력을 사용하던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 엄격히 따지면 종을 울리는 행사도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날짜를 잡기 어렵다면 이름이라도 의미에 맞게 ‘해맞이 종소리’ 행사로 바꾸는 검토가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일본의 고교 입시에서「자신의 생각을 쓰세요」등 그림이나 여론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 자신의 고찰력을 보는 문제가 눈에 띄게 출제되고 있다. 12 월상순에 공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 학력 조사(PISA)에서, 15세의「독해력」실력 회복 경향이 보였는데, 이러한 수험 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드는 식자도 있다.「자신의 생각」을 문제가 내년 봄 입시의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0년 봄 오사카 부립고등학교의 입시국어문제에서는, 「생물 진화 캘린더」가 등장했다. 기점의 설날에는「생명의 탄생」이 있고, 7월 2일에 산소 출현, 11월 4일에 다세포 생물 탄생이 계속 된다. 그리고 포유류 탄생은 12월 2일, 산업혁명은 섣달 그믐날의 23시 59분 59초……. 이처럼 생물의 진화의 과정을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어「1년」으로 응축해 설명한 것이다. 문제는 이 캘린더를 보고, 「어떠한 것이 밝혀지는지, 「인류」「탄생」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쓰세요」라고 물었다. 우리 인류는 극히 최근, 지구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면, 정답이 된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인류의 장래를 생각하는데 어떠한 일이 중요한가」라고, 50자 정도로 쓰게 하는 설문도 있다. 오사카부 교육위원회의 담당자는「정보를 집약하고 생각하여 표현하는 힘을 보고 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연구를 거듭한 문제를 도입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에 실시, 12월에 공표된 PISA로, 일본의 15세는「독해력」로 8위로 전회의 15위에서 2000년의 수준까지 회복했다.「배우는 내용을 늘리는 신학습 지도 요령의 본격 실시 전에 향상한 것은, 수험으로(응용력을 중시한다) PISA형의 문제가 증가한 것이 한 요인이 아닌가」라는 견해이다. 베넷세 교육연구개발센터 카마타 메구미 타로 수석연구원은 지적에에 의하면, 고교 입시에서는 이번 봄, 오사카부외, 아오모리현이나 사이타마현, 이와테현, 카나가와현, 토치기현등에서「생각하는 교육을 중시하는 문제」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아오모리현은 침팬지의 행동이 테마였다. 2마리의 침팬지가 상대에게 쥬스를 배달시켜 줄 때, 요구가 있었을 때에 밖에 행동하지 않는 것을 도해로 나타내 보여, 인간 사회에 옮겨놓고 무엇을 생각할까를 물었다. 대답은, 「서로 돕기」등의 언어가 키워드가 된다. 이러한 입시의 선구가 된 것은 중고 일관교의 입시에서 볼 수 있다. 문부과학성에 의하면, 1999년부터 설치가 인정된 공립 중고 일관교에서는 지식을 보는 학력 시험이 아니고, 응용력을 보는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쿄도립안수관중등교육학교에서는 이번 봄, 사전에 있는「길」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시하고, 생각한 것을 500자 이상 600자 이내에서 쓰게 했다. 야나기사와 타다오부교장은「논리적으로 사고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카마타씨는 PISA형의 고교 입시 문제에 대해서, 「전체에서 보면 아직 적지만, 몇년 전보다는 증가하고 있다. 문장을 출제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언어로 쓰게 하는 것이 특징으로, 입시가 바뀌면 수업도 바뀐다. 향후는 더욱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기르는 수업이 확산되어가는 것은 아니겠는가」라는 견해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방과후학교 관련 발표를 두고 논란이 크다. 논란의 핵심은 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미 학교운영위원회까지 통과된 사안에 대해 시 교육청에서 감사까지 하겠다는 것은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있는 이야기이다. 방과후 학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방과후 학교가 시작될 때도 논란이 컸었다. 방과후 학교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가와 방과후 학교운영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인가에 대한 논란이었다. 당시에는 그 어떤 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 했다. 몇년이 지난 현재상황도 그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방과후 학교 운영을 통해 사교육이 줄었다는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그동안 양적으로 엄청난 팽창을 해온 것이 방과후 학교였다. 각 학교별로 수강생 유치에 나섰고 인근 학원과의 한판 승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과후 학교로 인해 그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분석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리어 외고입시제도를 조금 바꾸고 나서 사교육비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 어떤 처방으로도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었는데 입시제도를 바꾸니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사교육비 경감은 방과후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입시제도의 개선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학교평가와 학교장 평가에 방과후 학교 운영실적을 반영한다고 했었다. 당연히 학교장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장 뿐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방과후 학교의 양적팽창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질적인 문제를 고려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 발표는 방과후학교의 양적인 팽창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나치게 교과위주의 수업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어쩌면 이 방향이 맞는 방향일 수도 있다. 효과 측면에서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된 양적팽창을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속된 인위적인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좋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억지로 참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 발표를 계기로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팽창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수강생이 전교생의 몇%라는 식의 비교보다는 어떤 강좌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또한 이를 통해 학생들의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학교장과 함께 전체 학교구성원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경쟁력확보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사교육과의 한판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질적인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한다. 과연 현재의 학교교육이 질적으로 사교육과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서울시내 여러학교들이 방과후 학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의 접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공정사회구축을 위해서는 실천에 앞서 그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후진하던 차가 즉시 전진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불공정 관행과 의식에 찌든 공동체에서 공정을 외친다고 하루아침에 공정사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땅이 기름지고 좋아야 씨앗이 잘 자라는 법이다. 그렇기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을 통해 공정성에 대한 가치를 미래세대에 심어주는 것은 토양을 다지는 일이다. ‘앵그리(Angry) 사회’에서 ‘페어(Fair) 사회’로 공정사회를 위한 교육의 기능은 ‘내재적 기능’과 ‘외재적 기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외재적 기능은 교육을 통해 피교육자의 ‘능력’을 길러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회적 이동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반대로 내재적 기능은 교육을 통해 어떻게 피교육자의 인성을 올바로 가꿀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관련된 교육의 논의는 주로 전자에 집중되고 있다. 교육은 ‘사회경제적 계층이동 사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 교육의 기회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소외계층 출신이라도 “내게도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공정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나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만이 공정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점만을 너무 강조하면 교육의 기능과 목적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교육은 인간을 전인적 인격체로 키우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사회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인성교육의 뒷받침 없이 어떻게 공정사회가 이루어지겠는가.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나아가는 길이 불연속선보다 연속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후세대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꾸준히 공정의 가치를 파급시켜야 한다. 교육이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와 선생님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인성교육이 실종된 학교의 현실을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권위의 붕괴’다. 선생님의 말에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대드는 데서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권위의 붕괴’는 교실붕괴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즉, 권위가 붕괴되니까 인성교육이 붕괴되고 또한 인성교육이 실종되니까 권위의 붕괴는 더욱더 심해지는 것이다. 물론 권위붕괴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인간존중과 평등, 인권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호흡한 학생들이 ‘권리’ 개념을 자신들에게 편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받아들여 선생님의 권위에서 비롯되는 징계와 벌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또한 학부모들도 자신의 자녀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보다는 자녀의 말만 신뢰하는 나머지 학교와 교사의 권위 존중보다는 자기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교육자로서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나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나 하는 교사 자신들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권위는 영어로 ‘오소리티(Authority)’인데, 어원적으로 말하면, 저자(Author)와 같은 어원을 갖는 라틴어의 ‘아욱토르(Auctor)’에서 비롯된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로서 고대 로마인들은 ‘원천’, ‘기원’의 뜻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위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결정과 판단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공정사회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는 교육에서 이런 의미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욕설과 폭력이 만연한 학교, 잠자는 학교, 교권이 무너진 학교, ‘왕따’교실 등은 학생들을 이끄는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학교에서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면 선악의 구분도, 공정과 불공정의 구분도 배울 수 없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학교의 권위를 바로 세워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권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나머지 ‘권위’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른바 ‘권리만능주의’의 병폐다. 이런 풍조가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유감이다. 학생들의 인권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의 결과로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물론 교육계의 합의가 존재하는 한, 체벌금지와 같은 규정을 명문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의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는 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인성교육의 차원에서 어떤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에는 의문이 크다. 학생이 인권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에서 학생은 학교와 교사의 지도와 훈육을 통해 인권 못지않게 의무와 책임의식을 함양함으로써 인성을 도야하고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존재다. 이런 인식은 교육에 관한 서구의 고전적 전통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교육을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했는데, 어원적으로는 ‘Paidos+Agein’의 합성어로서 “아이를 인도한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교육을 ‘Educatio’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영어 ‘Education’의 어원이 되었다. 이것은 ‘e+ducare’의 합성어로서 “학생의 선천적 자질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길러준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육의 의미에 맞게 인도(引導)의 개념을 받아들일 때는 인도자의 ‘이끎’, 즉 ‘권위’를 따라야 한다. 지시와 조언을 하는 교사의 권위에 승복한다고 함은 단순히 노예에게 요구되는 ‘맹종’이나 ‘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아이들이 보호자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상황과 유사하다. 어린이 혼자 길을 건널 때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건널 때 안도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해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직관적 판단보다 믿음직한 선생님의 올바른 조언과 지시를 따르며 자기반성과 판단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권위에 대한 복종의 의미다. 공정사회, 제대로 된 ‘인성교육’ 필요해 공정사회의 튼튼한 기초를 놓기 위해서 교육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것은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공정사회에 필요한 ‘좋은 인성’을 갖기 위해서는 배려의 정신도, 양보의 정신도, 봉사의 정신도 중요하다. 또한 정직과 인내의 덕목도 길러져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기초가 있다. 그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건축물을 세워도 모래성이 될 뿐이다. 바로 그 기초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이른바 ‘위해원리(Harm principle)’이다. 공정사회를 떠받치는 좋은 인성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감수성(Moral sensitivity)’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도덕적 감수성’이란 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다른 사람의 심정과 처지를 ‘섬세한 마음으로’ 헤아리는 능력을 말한다. 남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도 그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 없다면, 이것은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共感, Empathy)능력’이 부족해 초래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우리 청소년들의 경우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를 깨닫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도덕 불감증의 사람들이 많으면 결코 공정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외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연히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을 들을 때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으며 적어도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 관행이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될 때 비로소 공정사회의 튼튼한 기초가 놓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현실을 보면 우려되는 점이 있다. 우선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정 개편이 그것이다. 국 · 영 · 수로 학교교육을 편중되게 만들고 도덕과목을 위축시키는 식으로 인성교육을 경시하는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어떻게 좋은 인성의 소유자가 자라나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는 체벌금지를 비롯해 학생인권을 최우선 교육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일부 교육감들의 접근방식도 수정되어야 한다. 한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고 가꾸는 적극적 의미의 인성교육과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소극적 의미의 인권교육은 유사점이 있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의 인품을 다루는 교육기관이기에 ‘권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함께 다루는, 포괄적인 방식으로 인격을 도야시키는 훈련의 장(場)이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교육을 책임지게 된 교육의 수장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특정가치를 최우선적인 교육어젠다로 내세우면 ‘편식하는 아이’처럼 ‘권리’만 알고 ‘책임’과 ‘의무’는 모르는, 불균형적인 인격체롤 길러 낼 위험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교육의 수장이라면 인권 문제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전인교육의 차원에서 인성교육 문제에 접근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정교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기대보다 우려 큰 현 정부의 교원정책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추구하는 핵심 개념은 ‘자율과 경쟁’,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선택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학교를 비롯한 교육현장의 자율성 확대를 통해 다양한 교육적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함으로써 공교육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 정부의 이러한 교육정책의 기조에 근거해 교원정책들도 다양하게 시행되거나 추진되고 있다. 학교자율화 확대와 2009 개정 교육과정 시행에 따른 교원수급의 단위학교 자율성 확대, 모든 학교가 교장공모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교장자격 미소지자 직무연수 강화로 학교경영 전문성 신장 지원, 교사양성특별과정을 통한 외부전문가의 교사자격 취득경로 확대 및 농어촌 도서 · 벽지 등의 학교 · 지역 단위 교원 채용제 도입 추진, 교원능력개발평가 전면 시행과 평가결과에 따른 교사 개인별 맞춤형 연수 지원 강화 등이다. 또 교 · 사대 등 교원양성기관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연계한 행 · 재정적 지원, 제재 강화, 교사 신규 임용 시 수업능력 중심 평가 강화와 구조화된 교직적성검사 개발 등을 통해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자질 검증으로 교원양성과정의 질적 수준 보장, 교사 수업전문성 지원을 위한 수석교사제 도입 등 교원자격체제 개편 추진 및 복수전공 자격제 도입을 통한 탄력적 교육과정 지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교원정책들에 대해 교육계의 입장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 같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원정책 하나하나가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어떤 것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교원의 전문성 훼손, 신분보장의 약화, 근무조건의 악화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교원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원들은 개혁대상으로 인식되어 개혁과정에서 소외되고, 교원정책에 대한 중 · 장기적인 청사진이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지식정보화의 진전에 따른 학습자 중심의 교육환경 변화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교원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원정책의 비전과 방향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검토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식정보화 시대의 급격한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학교와 교육현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교원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한 교원정책과 지식정보화의 발전에 따른 학습자 중심의 교육정책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효율적인 교원 운용 위한 폭넓은 논의 필요해 현 정부가 그간 추진해왔던 교육정책 중 현직 교원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교원정책으로 학교자율화 확대와 2009 개정 교육과정 시행, 교장공모제 실시, 수석교사제 도입, 교원능력개발평가 전면 시행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정책들이 교육 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발전 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자율화 확대와 2009 개정 교육과정 시행에 따라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은 필연적으로 교육수요자의 선택에 의해 매우 유동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유동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원 운영의 유연성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요가 없거나 대폭 줄어든 교과담당교사가 발생하고, 현원에 비해 과다 수요 교과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교과목별 수요가 유동적이어서 장기적 안정적 교원 수급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고 단위학교 차원에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유연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원의 신분과 임용체계를 바꾸는 문제에서부터 부분적인 교원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안까지 폭넓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교원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원 자격증 체제의 다양화, 교직 입직의 개방, 수습기간 확보 및 계약제 임용 도입 등도 적극 논의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이다. 교원들의 숙원사업 수석교사제, 시급히 법제화해야 교장공모제 대폭 확대와 수석교사제 실시는 교원자격증 체제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교장공모제를 통해 우수한 인재의 교직 유입을 확대하고 교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장자격 미소지자에게도 개방해 직무연수를 통해 학교경영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선후가 바뀐 생각이다. 교장자격 취득 과정에서 학교경영의 전문성을 함양하고 역량 있는 교장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장 공모에 응모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전에 교장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교사 수업전문성 지원을 위한 수석교사제 도입은 교단교사의 우대와 교사 직급의 다양화 측면에서 교원들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수석교사제 시범실시 이후 교내연수 · 장학활동 활성화, 수업전문성 신장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소수의 대상자만을 수석교사로 선발하고 자격 기준이 임의적이어서는 성공적인 정착에 많은 문제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수석교사의 수준 유지를 위해서 시급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교원능력개발평가 근본적인 개선 요구돼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전면 시행은 교원전문성 강화를 통해 학교교육 만족도를 제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수 교사에게는 학습연구년 등 전문성 심화 기회를 부여하고, 영역별 · 지표별로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교사에게는 집중연수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평가, 온정평가, 순환평가, 평가결과 부정, 우수교사에 대한 보상책 미흡, 인사자료 활용 배제 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제 역할과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선을 해야 한다. 평가 목적, 평가 주체, 평가 방법, 평가 대상, 평가 결과의 활용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해서 교원평가가 합리적으로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근무성적평정과 성과급평가를 교원능력평가와 통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평가 결과는 반드시 인사와 성과급에 연계될 필요가 있다. 한 교원의 한 해 교육활동과 업무 성과에 대해 3가지 다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고 열심히 근무한 교원에 대해 이에 상당하는 보상을 하고, 부족한 교원에 대해서는 교정과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 러닝 시대’의 교사, 학교의 역할 고민해야 지식정보화 시대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의 변화는 급격하게 이뤄지고 이에 따라 학습 환경도 급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출근하지 않고도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일하는 ‘스마트 워크(Smart Work)’ 근무율을 2015년까지 전체 근로자의 30%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교육 현장에도 영향을 미쳐 학습자 중심의 교육환경 구축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가 아닌 편리한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에, 일률적인 특정한 내용이 아닌 필요한 내용을 선택해서 학습할 수 있는 ‘스마트 러닝(Smart Learning)’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 러닝 시대 도래를 대비해 학습 환경 구축, 학습 내용 개발과 보급, 학습제도와 체제 정비 등을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러닝 시대가 되면 교육 공급자인 교사와 학교의 역할과 기능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 러닝을 위한 교육은 콘텐츠로 저장되거나 Q A 등 튜터링을 통해 이뤄질 것이고, 교육공간은 기존의 학교로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공간으로 존재하거나 스마트 폰 등 이동 기기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교사에게는 가르치는 일보다는 컨설팅과 상담 중심의 역할이 요구될 것이다. 즉, 교수자와 전수자보다는 조언자, 안내자, 상담자, 문제 해결의 조력자로서의 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분야에서 누구나 학습자가 되고 누구나 교육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학교의 기능도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습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위치보다는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고, 집합적 · 집단적 · 일률적 교육활동에서 벗어나 개별적 · 개인적 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며, 체험활동을 도와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학교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게 하거나 상당히 약화시킬 것이다. 각종 사회교육기관, 종교관련 기관, 사이버 교육기관, 방송 언론 매체, 시민사회단체 등과도 경쟁할 수 있고 심지어 사교육 기관들과도 몫을 나눌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21세기 교육 패러다임에 따라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서 갖춰야 할 학습자의 필수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보통신 활용능력을 기반으로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교육하는 학교현장이 되어야 한다. 즉, 맞춤형 개별학습과 체험학습이 이뤄지며, 지식생산과 협동학습이 함께 어우러지는 학교가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국제화 · 세계화와 함께 지역사회의 현지 특성을 반영한 학교, 글로벌 · 지역사회 학습자원의 연계 및 공유 지원이 가능한 학교, 평생학습의 중심센터로서의 학교로 변화되어야 한다.
2007년 대선에서 보수를 표방했던 이명박 후보는 당시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로 승계된 진보적 성향의 정치 이념과는 모든 면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시장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율과 경쟁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었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교육 관련 공약의 키워드도 자율, 책무, 선택, 경쟁, 다양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교육공약의 핵심 전략은 규제 중심의 관치 교육을 자율화 · 다양화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정부에서 교육의 형평성을 강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구체적인 공약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대입 3단계 자율화, 영어 공교육 완성,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 대학관치의 완전철폐, 맞춤형 국가 장학제도 구축이었다. 이러한 교육공약들은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일부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가 제기돼, 일부 세부 내용들이 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에 추진된 교육정책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정책의 근간 이루고 있는 대선 공약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 교육정책이 이러한 교육공약 추진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교육공약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선공약의 키워드들이 얼마나 빛을 발하고 살아났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자율과 경쟁을 부추겨 오히려 교육발전이 퇴보하고, 학교현장의 혼란만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한 것은 바로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일것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 정부 교육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6명이나 나왔다는 것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집권 후반기에 교육정책을 실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순환구조로 이루어지지 않은 학교자율화 조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학교 현장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정책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교 현장과 연계해 가장 먼저 단행되기도 했고, 가장 많은 비판의 화살을 받았던 정책이 학교자율화 조치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2개월도 안 돼 단행된 정책으로 그 주요 핵심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가지고 있던 초 · 중등교육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시 · 도교육감에게 대폭 이양한다는 것과 교육관련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도록 배려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학생의 성적에 따른 우열반 편성 운영, 0교시 및 야간 보충수업의 자율 운영, 방과 후 학원 강사 수업 허용, 사설모의고사 금지 규정 폐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학교자율화를 위해 학교 규제 29개 항목을 즉각 폐지하고, 2008년 12월 31일까지 515개 규제 중 시 · 도교육청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188개 항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자율화 조치는 그동안 교육자치제를 시행하면서도 오랜 기간 중앙집권적인 교육행정체제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조치였다. 학교자율화 조치의 큰 방향은 학교운영의 권한을 학교장에게 넘겨주고 국가는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운영에 관한 권한을 학교장 등 학교구성원에게 돌려주고, 초 · 중등교육에 관한 교육감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학교자율화 조치는 학교장에게 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교육감에게는 교육자치권을 부여해 각 시 · 도 실정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바람직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자율화 조치는 학교 운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선순환구조로 이루어지지 않아 또 다른 변형된 형태의 관치 교육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육 자치와 함께 교육감에게 너무 많은 책임과 권한이 이양되어 교육청 수준에서 학교현장을 옥죄는 많은 교육정책들이 여과 없이 현장에 내려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학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장의 책임과 권한의 한계가 불분명해 학교장과 교사 사이에 갈등이 더 심화되는 현상도 쉽게 목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둘째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이었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이다. 내용은 자율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공립고 150개, 그리고 마이스터고 50개를 설치하는 계획이었지만 현재 자율형 사립고 50개, 기숙형 공립고 102개 그리고 마이스터고교 21개를 지정 · 운영하고 있다. 수적으로도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는 50%에도 못 미칠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원래의 정책 목표를 성취하는 데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교는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내용이지만 추진과정에서 그 내용이 변형돼 자율형 사립고교 도입의 취지가 퇴색되고 말았다. 다만, 농촌형 기숙형 공립고교 경우에는 차별화 전략에 따라 학교별로 일부 도시의 우수한 인재들이 입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모처럼 농촌 학교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스터 고교는 산업체와 연계해 현장감이 있는 우수한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아직 졸업생이 배출되지 않아 평가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학진학을 위한 또 다른 통로로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입학사정관제에 ‘올인’ 하는 대학자율화 셋째는 대입 3단계 자율화를 포함한 대학 자율화 정책이다. 대입 3단계 자율화의 핵심 내용은 1단계는 학생부와 수능 반영비율의 자율화이고, 2단계는 수능 과목 축소이며, 마지막 3단계는 3불 정책 폐지를 포함한 대입 완전 자율화이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포함한 대학 자율화와 관련된 많은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이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대학 자율화를 위한 업무 이양은 현재도 추진 중이지만 대입 3단계 자율화는 대입 정책을 관장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대입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그리고 대학들까지 오로지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올인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면서까지 확대를 유도하고 있어 대학에 대한 또 다른 관치로 비춰지고도 있지만 마치 대입 자율화는 물론이고 사교육까지 이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여론의 뭇매 맞은 학업성취도평가 넷째는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을 위한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이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해당 학년 학생의 5%만 표본으로 추출해 실시하던 학업성취도 평가를 2008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전체로 확대 실시하게 되었다. 이 정책은 학교와 교사의 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써 학교장이나 교사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정책임에 틀림이 없다. 심지어 학업성취도 결과를 교육청별로 공개함에 따라 각 시도교육감에게는 물론 교장이나 교사들에게 그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제고사’로 폄하되어 일부 교사들이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빚기도 했다. 이상의 대선 당시 공약 중심의 교육정책 이외에도 현 정부는 집권 전반기에 하루가 멀다고 많은 교육정책을 쏟아 냈다. 이외에도 수업공개 연 4회 의무화, 교육과정의 개정과 시행, 집중이수제 도입, 교육과정 운영 자율화 등 많은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 교육정책 추진에서 많은 문제점 드러내 대선 공약을 포함해 이렇게 현장에 쏟아진 많은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려 변화를 이끌어 내고, 교육의 수월성 추구를 통해 공교육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며, 부분적으로 사교육을 완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전반기는 교육계 내외의 갈등과 대립으로 대선 공약 당시의 교육정책이 후퇴되거나 퇴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의 입안 및 추진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우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교육적 소신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확산된 교육 평등론에 밀려 대부분의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에서 대립과 갈등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학교자율화는 미친 교육, 학업성취도 평가는 일제고사, 자율형 사립고는 귀족학교로 이어지는 비판과 사회적 저항에 밀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의 가치가 퇴색되었다. 결국 이러한 교육정책의 대립과 갈등 양상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왔다. 둘째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들은 그 정책의 교육적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정책의 수단이나 방법이 목적을 대신하는 본말전도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교육에 지나치게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것에서부터 자율, 경쟁, 책무, 다양성 이 모두가 교육정책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거나 방법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경쟁을 통해 학력을 신장 시키겠다지만 인성교육이나 인간교육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셋째는 교육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소통 부재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정책 추진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을 관리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교육정책을 입안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있어 왔다. 또한 정부는 교육을 관치에서 자율로 전환하는 것을 대전제로 하면서도 각종 교육정책들을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과정을 잘 거치지 않고 상명하달식으로 일선학교에 내려 보내기 일쑤였다. 넷째는 교육정책의 속도 조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한꺼번에 일방적으로 그것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빠르게 쏟아내는 특징이 있다. 학교자율화만 해도 학교 현장이 자율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자율화할 수 있는 준비가 됐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마지막은 교육정책의 주체에 대한 혼란이다. 국가가 개입해야 할 교육 정책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혼란이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대명제는 관치에서 자율로의 전환 그리고 교육정책의 분권화이다. 중앙정부는 교육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고 초 · 중등교육은 각 시 · 도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대학교육은 대학교육협의회와 대학에 이양하거나 일임하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육정책이 중앙정부 수준에서 입안 · 추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정책과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마찰을 불러와서 학교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책 혼선이 학교는 물론 학부모들까지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교육정책의 현장 착근이 중요하다 이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드는 이명박 정부는 대선에서 공약한 교육정책의 미진한 부분도 보완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추진한 교육정책이 현장에 잘 착근되어 학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자율과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경쟁력을 제고 하고, 교육의 수월성을 확보한다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즉, 대선 공약 당시의 교육정책 기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물론 교육의 평등론이나 형평성을 지지하는 집단과의 갈등과 대립이 지금과 같이 심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21세기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교육의 수월성이고 공교육의 경쟁력 확보라면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는 학교자율화, 고교다양화, 대학자율화, 대입 완전 자율화 등의 정책기조를 우회 없이 정면 돌파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교육수요자 중심의 교육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지난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에서의 교육정책 기조인 교육의 평등성이나 형평성은 수요자 중심 교육을 지향하는 반면 자율과 경쟁의 정책기조인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수요자 중심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일부 계층의 교육수요자를 위한 교육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따라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정책, 교육복지 정책의 추진 등으로 이러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모든 교육정책을 수요자 입장에서 재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 정책 추진보다 교육정책 완성을 목표로 해야 셋째,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에서의 상명하달식 교육정책 추진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학교교육의 혁신과 변화가 일어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학교자율화 조치가 단행되었고 일부 학교에서 현장으로부터의 교육혁신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 현장의 혁신과 변화의 움직임에 정부나 교육청이 개입하면 관 주도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정부나 교육청이 개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행 · 재정적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이 정부가 모든 교육의 문제를 일격에 해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현재까지 추진된 교육정책을 잘 완성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현장에서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교육정책들은 현장에 잘 착근이 될 수 있도록 모든 행 ·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사교육 문제 해결과 같은 정책은 장기적인 구상을 요함으로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 입안 과정에서 소통이 부재했던 교육정책은 추진 과정에서라도 소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즉, 교육정책 추진 과정에서 교육 현장의 목소리와 학부모, 학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정책의 추진 과정에라도 꼼꼼히 점검해 문제가 있거나 현장 착근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궤도 수정을 하거나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영구불변의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이 정부가 교육난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선공약의 대전제였던 ‘관치에서 자율’로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권전반기에 추진한 교육정책을 학교현장에 잘 착근시키면서 교육수요자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데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년 한 해를 돌아보면 정책을 입안해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주체자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교육객체가 된 구성원들은 즐거운 나날보다는 우울한 나날들이 많았다. 학교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고 또 국민들 역시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한 해였다고 평가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교육과정 선도학교(시범학교) 학교인 S학교 H교장은 2010년 11월 10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9 개정 교육과정과 수능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교장으로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중학교의 경우, 거의 모든 과목이 필수인데, 한 학기 8개 과목으로 20% 자율증감하면서 운영해 보았더니 집중이수제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교육에서 학생들의 수업부담을 줄이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주장은 천만의 말씀이고 과목수를 줄이면 학생들 수업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도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기본으로 깔고 만든 것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라고 시범운영 1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 교장 선생님의 고백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교과부는 교육과정 관련 보도자료 Q A에서 ‘국민공통 기본 교과별로 20%의 자율권을 주면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교육과정에 20%의 자율권이 주어지면 학교별 여건에 따라 특색 있는 교육과정의 운영과 심화교육의 조화로운 운영이 가능하게 됨. 즉, 교육수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교과목의 증감을 통해 전인교육을 강화할 수 있고, 성취수준이 떨어지는 교과의 시수를 늘려 학업성취도를 강화할 수도 있음’이라고 밝혔다. 이 얼마나 학교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들인가.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역시 Q A 자료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 개편으로 국, 영, 수 등 입시 과목위주의 운영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고, 대학입시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등이 중요시될 것이므로 국, 영, 수 중심의 과목 편성 방지 기대. 학교교육과정은 구성원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고 학교교육과정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는 등 민주적 절차를 거쳐 만들어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중 · 고등학교 2011년도 교과편제표를 분석해 본 결과, 수업시수가 증가된 교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영어의 경우, 3114개교 중 2198개교가 증가(70%)한 반면, 감소된 학교는 단 15개교(1% 미만)이었다. 수학은 3114개 중 1786개교가 증가(57%)한 반면, 감소된 학교는 단 16개(1% 미만)이었다. 기존 7차 교육과정 이수시간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많이 감소된 교과는 선택교과군(한문, 정보 등)(-59%)이며, 그다음이 도덕(-30%), 국어(-16%), 미술(-15%), 체육(-15%), 음악(-14%), 역사(-12%) 과목 순이었다. 이렇게 2009 개정 교육과정 시범 시행 첫해의 교과목별 수업시수 증감을 확인해 본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증감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을 교과부의 ‘학교별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입시과목으로의 과도한 쏠림 현상과 소수교과의 몰락’이 정녕 학교별 교육과정의 다양화란 말인가.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다양한 교과목의 증감을 통해 전인교육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 나라의 교육과정은 교육현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교과목과 수업시수, 그리고 교사의 수급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교육주체의 하나인 교사들의 의견과 우려를 무시한 채 추진하고 있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엄청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교과부가 주장하듯이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학교”가 될 수 있겠는가. 새해, 교육을 다시 보며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탈춤과 놀이’ 도록 펴낸 백만종 서울 서초초 교감 체조부 지도하며 취미로 시작한 사진 처음에 어떻게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학생들의 체조 자세 교정을 위해 시작했죠. 20여 년 전 전북 이리초 체조부 교사 시절이었는데 아무리 잘못된 자세를 지적하고 설명해도 모르던 아이들이 순간을 포착한 한 컷의 사진을 보고는 자신의 문제점을 바로 알고 고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초보가 스포츠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았는데 일일이 사진에 담아 보여주는 노력 끝에 체조부가 전국대회 1등을 했고 그렇게 기록된 사진들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줬더니 너무 기뻐했습니다. 사진을 더 전문적으로 배운다면 교직에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분야가 많은데 왜 특히 전통 문화를 선택하셨습니까? “저를 끌어당긴 것이 바로 전통문화였기 때문입니다. 1990년쯤 서울로 오면서 처음 탈춤을 보게 됐는데 흥과 멋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종합예술이었습니다. 우리 가락이 너무 독특하고 아름다웠고 그 당시 드러내놓고 할 수 없어 탈을 쓰고 마음껏 양반을 조롱했던 우리 조상들의 풍자와 해학, 저항정신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이 얼마나 멋있는지 아십니까. 그런 훌륭한 음악이 몇백 년을 이어오고, 전통이 계속 살아 있다는 것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 전통문화 사진을 찍으면서 더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원형 잃어가는 무형문화재 보며 애착 갖게 돼” 전통문화 중에서도 특히 무형문화재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1995년쯤 초청 행사로 열린 조선족의 춘향전 공연을 촬영했는데(이때 사진은 전국사진공모전에서 2위를 했다) 우리의 춘향전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또 황해도 강령지방에 전승 되어오던 강령탈춤 역시 그렇습니다. 북에서 피난 와 남한에 살면서도 원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보존회의 강령탈춤과 가락이나 춤사위가 변질된 북한의 강령탈춤은 다릅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서 특히 보존이 어렵고 사라지기 쉬운 무형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되는데 그때부터 열심히 찾아다니고 연구했습니다. 사진은 아는 만큼 찍히기 때문이죠.” 중요무형문화재를 촬영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어요. 무형문화재 공연이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녀야 해 노력과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했습니다. 또 교직에 있으니 주말밖에 시간이 없고 그것도 공연 날짜와 맞아야 하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1)는 1년에 딱 한 번 전 과정 을 공연 합니다. 운 좋게 그날이 놀토여서 촬영할 수 있었죠. 윤년에 한 번 하는 ‘기지시줄다리기’2)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4년을 기다렸습니다. 풍어제인 ‘위도 띠뱃놀이’3) 촬영 때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배가 끊겨 고생하기도 했죠. 공연 전체를 담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는 일은 허다합니다.(웃음)” 20년의 노력 담긴 ‘탈춤과 놀이’ 도록 그렇게 어렵게 촬영하신 사진들로 한국전통문화사진연구회 회원들과 도록을 만드셨습니다. 연구회 회장이시기도 한데 책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한국전통문화사진연구회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중 전통문화행사에서 자주 만나던 분들 10여 명이 2001년에 만들었습니다.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죠. 저는 형태가 남아 있는 유형문화재는 보존이 가능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만 멀어져도 사라질 수 있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교직에 있다 보니 우리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생, 교사에게라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연구회분들과 함께 도록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강남교육지원청과 학교에 기증했죠. 아이들이 알기 쉽게 무형문화재 지도도 만들고 실감 나는 사진과 짤막한 설명글로 이해하기 쉽게 했습니다. 도록을 보며 많은 아이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무형문화재, 학교에서 관심 가지고 교육해야”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도록을 기획하면서 처음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30여 가지를 모두 담으려고 했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무형문화재를 차례로 사진에 담는 것이 목표이고, 그 일이 다 끝나면 인간문화재 도록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 밖에도 제사와 굿, 궁중무용 등 전통문화의 전 영역을 사진에 담아 보는 것이 제 꿈입니다. 교육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무형문화재는 학교에서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은 조회시간을 이용해 서초초 아이들에게 무형문화재를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전시, 강의 등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역사’라는 공통 주제로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연구하면서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해보게 됩니다. 현장 답사를 통해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안목을 키우게 됐고 수업안을 개발하고 계기수업을 해보면서 전문적인 지식이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경기 평택 은혜여고 공일형 교사)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이 모여 수업에 대해 연구하고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는 연구회가 있다. 이제 창립한 지 1년 된 ‘우리역사교육연구회’(회장 이두형)다. 초 · 중 · 고 교사 32명으로 구성된 이 연구회의 주된 관심사는 ‘수업의 개선’. 역사 연구 모임을 통해 교사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육 자료들을 공유하면서 역사와 수업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교수 · 학습 자료 개발과 계기수업으로 스스로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역사교육연구회 이두형 회장(서울 양정고 교사)은 “이론적이고 고리타분한 내용보다 실질적으로 선생님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연구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들이 수업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연구회 활동의 포인트, ‘연간 주제’ 설정 우리역사교육연구회만의 차별화되는 특징은 ‘연간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연구회를 1년 동안 이끌어줄 대주제를 정한 뒤 그에 맞춰 연구회의 모든 활동과 프로그램을 기획해 그 분야의 주제를 집중해 연구할 수 있게 했다. 2010년 활동을 이끌어온 주제는 바로 ‘경술국치 100년’. 연구회는 이 주제를 바탕으로 현장답사, 교수 · 학습 자료 개발, 특별 · 계기 수업을 진행했고 ‘한 · 일병합 100년 연구보고서’를 발행할 예정이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갖게 하는 현장 답사 연간 주제에 따라 연간 2〜3번 진행하는 현장 답사는 특히 회원 교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현장에 가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전문가 수준의 노하우를 가진 연구회 교사가 답사를 이끌어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테마로 두 번의 서울 답사를 했다. 6월 ‘일제 식민통치 기관의 흔적을 찾아서’ 답사 때는 조선 헌병 사령부터, 김익상 의거 터, 저경궁 터, 남별궁 터 표석 등을 거쳤고, 10월 ‘대한독립만세의 흔적을 찾아서’ 답사 때는 김성수 옛집, 3 · 1 독립 운동 기념터, 중앙 중 · 고등학교(노백린 집터, 3 · 1운동 기념비, 6 · 10 만세 운동기념비), 손병희 집터 등을 방문했다. 연구회 교사들은 현장 답사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일 사무국장(경기 평택 은혜여중 교사)은 “역사 교사이면서도 두 차례 서울 답사를 통해 그동안 몰랐고 보지 못했던 부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깨닫게 됐다”면서 “답사를 다녀오면서 얻고, 느낀 것들을 바로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답사를 통해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업자료 개발, 특별 · 계기 수업이 최우선 우리역사교육연구회에서 특별히 공을 들여 준비하는 것이 바로 수업자료 개발과 특별 · 계기 수업이다. 연구회 활동을 통해 교수 · 학습 자료를 개발해 수업을 개선하고, 또 이것을 학교 현장에 다시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초 · 중 · 고 학교 급별 독도 계기 수업 지도안, 한일 병합 100년 수업자료 등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의 연구회 회원 교사들이 ‘독도 계기 수업’, ‘경술국치 100년 특별수업’ 등 3~4차례 의미 있는 특별 · 계기 수업을 진행했다. 특히 경술국치 100년 특별수업에는 일본 지상파방송인 TBS가 수업 내용 전체를 카메라에 담고, 교사와 학생을 인터뷰하는 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특별수업에서 아이들의 감정적인 반응 등이 일본 측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했을텐데 취재진이 수업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주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보다 더 역사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그 판단은 나중에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연구회는 역사에 대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 활동한다. 2010년 7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5회 한 · 중 · 일 평화교재교류회’ 참가는 연구회 회원들에게 또 한 번 역사교사로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10월 25일 ‘독도의 날 선포식’에도 참여하고 특별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일형 교사는 “한 · 중 · 일 평화교재교류회에서 다른 나라 교사들과 역사에 대해 맘껏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라면서 “1년간의 연구회 활동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 미|니|인|터|뷰 “연구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시각 갖게 됩니다” 우리역사교육연구회 이두형 회장, 김일 사무국장 연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두형 = 역사에 대한 관점과 관심입니다. 현장 교사로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수업을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이 모여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나누고 고민을 풀어 가면 스스로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현장답사, 워크숍, 계기 수업 등으로 연구회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회의 1년간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이두형 = 지난해 7월 한 · 중 · 일 교사들이 모인 제5회 평화교재교류회입니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각국 간의 역사인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우리 역시 많은 선입관과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연구회만의 장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두형 = 회원들의 정보공유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역사 수업을 진행하다가 특별히 자료가 필요하거나 어려울 때 바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죠. 학교 급이 달라도 항상 하는 고민들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의견을 자주 나눕니다. 김일 = 선생님들 개개인이 능력과 전문성이 뛰어납니다. 이런 분들이 연구회를 하면서 한곳에 모이게 되니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더 큰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됩니다. 앞으로 연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까? 김일 = 교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연구회 활동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수업 상황에서 몰랐던 부분, 스쳐 지나갔던 부분들을 다시 깨닫게 돼 교사 본인이 갖고 있던 능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앞으로도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우리가 역사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연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두형 = 선생님들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역사수업을 하시는데 연구회가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또 일반 교사들이 참여하는 연수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시 현장답사와 수업 개선이 핵심이 될 텐데 더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고 경험해보셨으면 합니다. 요즘 역사에 대한 이슈가 많은데 현장 교사로서 어떤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두형 = 역사 인식은 주체적이되 주관적인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자료,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주체적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역사 교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교사는 객관성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그 판단은 아이들이 하도록 맡겨줘야 합니다.
경기 남양주 평내동에 위치한 장내중(교장 강명희)은 올해로 개교 7년째인 신생 학교지만 인성과 학력을 동시에 발달시키는 감성교육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학생들의 인성함양과 학력신장은 언제나 함께 가야 하는 것이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감성교육이라는 말도 무척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장내중을 찾아보면 호평받는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배려’ 장내중 감성교육의 키워드는 바로 ‘가족 같은 공동체’와 ‘다듬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는 이는 다름 아닌 이 학교 강명희 교장. 마틴 부버의 ‘사랑하면 보인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누구를 만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 머리 예쁘게 잘랐네”, “요즘 공부 열심히 한다며?”, “○○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때요? 곧 출산일이지요?”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느껴지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행동에 큰 마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 장내중 가족들의 공통된 평가다. 기초학력 미달로 보충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찾아 직접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며 격려하고, 스승의 날에는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예쁜 포장지에 담아 전 교사들에게 선물했다. 또 새로 발령받은 신규교사의 부모님께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난을 전달하기도했다고 한다. “관리자가 학생에게 신경을 쏟다보면, 교직원들에게는 소홀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장선생님은 교직원들의 복리까지 세심히 신경을 써주십니다. 지금까지 교사생활을 하며 이런 배려는 처음일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교사들도 학교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 같습니다.” 이 학교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이애경 교사는 강 교장의 세심한 배려가 교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큰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변화의 중심에 있는 강 교장은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는 무엇보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해나가다 보니, 인간적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권위는 증명서로 부여받을 수 있고 능력은 일을 통해 습득할 수 있지만, 인간적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학생 눈높이 맞춘 훈화와 미적 공간 구성 장내중 인성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수시로 이뤄지는 훈화다. 훈화는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학생입장에서는 때로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장내중에서는 학생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형태의 훈화가 이뤄져 이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가령, 학교폭력에 대한 훈화를 할 때는 학생 몇몇과 상황극을 만들어 그 심각성을 알리고, 어떤 때는 화이트보드를 동원해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하는 식의 훈화를 한다. 이렇게 하니 훈화를 자주 해도 학생들이 싫어하지 않고 메시지 전달도 잘된다. 그리고 훈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아 존중감’이 있다. 지시하고 제한하기보다는 학생들로 하여금 ‘훌륭한 학생으로서, 또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발적인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훈화와 함께 중시되는 것은 바로 환경정리 등을 통한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지하 공간을 새롭게 단장해 휴식공간으로 만들고, 복도에는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전시해 학교 곳곳을 갤러리처럼 꾸몄다. 일은 자율과 합리를 바탕으로 장내중이 특별한 예산지원 없이도 이렇게 잘 정돈된 환경과 좋은 시설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예산 운용을 합리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어전용교실 구축 같은 비교적 큰 공사는 물론이고, 내부 시설 단장을 위한 여러 자재와 화단의 화초까지 일일이 비교 · 구매하니 예산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재작년에는 260만 원 상당의 쓰레기 압축기를 구입, 연간 3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절감했다. 이러한 운영을 통해 냉방이나 온수공급 등을 충분히 하면서도, 매년 2000~3000만 원가량의 예산이 남는다. 김학종 학생부장은 “학교에 필요한 일임에도 예산을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교사가 원하는 일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되 교장선생님이 일의 포인트만 점검해주시니 일이 더욱 원활히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라며 운영방침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학교를 변화시킨 인간적 리더십 사실 강 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장내중 내부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주거단지가 새로 조성되는 과정에서 원 거주 학생과 이주 학생 간의 알력도 있었고, 교직원 간 소통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강 교장 부임 후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2년 반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학생들 간의 다툼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 수준이 됐고, 교직원 간 갈등도 완전히 해소됐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도 크게 개선돼 지난해 9.7% 수준이었던 부진학생 비율이 3.73%로 낮아졌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생각하기도 했었다는 장내중 학교운영위원회장 윤보옥 씨는 “처음엔 불안한 마음을 갖고 아이를 입학시켰는데, 지금은 학교에 대해 너무 만족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보다 오히려 중학교 입학 후 아이가 더 학교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지역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장내중이 있어서 일단 아이 중학교 걱정은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라며 학교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끝으로 강 교장은 “꽃도 예뻐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듯이, 사람도 서로 격려하고 칭찬할수록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로 격려하고 아끼는 학교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교사의 심리 들여다보기 우선 아래 문제를 살펴보자. -------------------------------------------------------------------------------------------- [문제] 다음 중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들의 유형은? ①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는 좀 못하는 학생 ② 선생님 말 잘 안 듣고 공부는 잘하는 학생 ③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 ④ 선생님 말 잘 안 듣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 -------------------------------------------------------------------------------------------- 이런 문제의 답으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은 당연히 ③번을 첫 번째로 꼽는다. 선생님 말을 잘 안 듣고 제멋대로 하는 학생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일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유형을 순서대로 고르라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경우는 ③ → ① → ④ → ②의 순서로 놓겠다. ④번과 ②번의 순서를 놓고 잠깐 고민을 했다. 말은 안 들어도 공부를 잘하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듣고 공부도 못하는 편이 나을까? 부모입장에서 보면 ② → ④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교사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④ → ②가 낫다. 한 문제를 제시하고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공부의 결과(거의 시험성적)보다는 학교생활 과정에서 ‘얼마나 교사의 말을 잘 따르는가’가 교사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공부를 잘 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생활지도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의 말을 잘 안 듣는 학생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교사의 심리가 드러난다. 교사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은 공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이 교사의 속마음이다. ③번 학생들은 자기할 일을 잘 해나가면서 가끔은 선생님이 바쁠 때 눈치껏 도와줄 준비도 되어있는 학생들이어서 이런 학생들에게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저절로 우러난다. 한편, ①번 학생들에겐 측은지심이 생겨서 애정을 갖고 더 격려를 하게 된다. ‘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문제는 교사의 말을 잘 안 듣는 학생(②)이 공부를 잘하게 되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생각에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간혹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서는 공부는 곧잘 하는 학생이 지능적으로 교실 분위기를 안 좋은 방향으로 주도하면서 수업방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담임교사 시간에는 자제하다가도 교과교사 시간에 주로 그런 행동을 한다. 이런 학생들이 시험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공부 잘하는 것’이 결코 곱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선생님 말 잘 듣고~’는 바로 생활지도 측면을 말한다. 교사의 하루 들여다보기 교사는 가르치는 일, 즉 수업이 교사의 할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정규수업 시간 외엔 어떻게 하면 학습내용을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하루 근무시간 8시간 중에서 중학년을 기준으로 할 때 수업진행 시간 평균 5시간, 점심식사 지도 1시간, 동학년 협의사항 30분 정도(사안에 따라서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전체 교사협의 시간 5~10분(30분을 평균 내어서), 공문처리 평균 1시간(공문내용에 따라 통계 조사 수합 및 의견 정리 과정), 학습부진아 지도시간 하루 1시간 30분 정도, 담당한 업무처리 30분~1시간, 학생개별상담 30분 정도….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정시 퇴근은 어려워진다. 또 깊이 있게 교재연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교재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집으로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해결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곧 회복이 된다. 교사는 어느 집단보다도 우수한 집단이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 입학하려면 상위권 중에서도 앞서 있어야 합격할 수 있고, 4년 동안 교양, 전공, 실습 등의 쉽지 않은 훈련과정을 거친다. 대학졸업 후 교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임용고사라는 매우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교육학, 논술, 영어, 컴퓨터, 수업시연 등 이 모든 관문을 너끈히 통과한 사람이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설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준비도에 따라 재수를 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이들을 만나면 요즘 초임교사들은 참으로 많은 준비를 하고 교단에 서기 때문에 초임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들은 업무처리도 매우 능숙하게 하며 쩔쩔 매면서 이리저리 물으러 다니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다. 아주 당당하고 뚜렷한 주관을 갖고 교단에 선다. 이러한 교사가 좌절감을 경험할 때가 있다. 바로 생활지도의 대상이 되는 ‘말 안 듣는 학생들’ 때문이다. 학습지도로 인해 교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학생생활규정 그 이후 들여다보기 서울의 경우 2010년 9월부터 학교에서는 체벌금지와 맞물려 교사, 학부모, 학생 토론회를 거쳐 학생생활규정을 새로 정했다. 여기에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학교에서 함께 보호받고, 힘에 의한 강요가 아니라 대화에 의한 설득과 합의를 통해 학교 내의 질서와 규칙으로 권위를 세워나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규정이 새로 정해진 후, 학교마다 단계적인 벌칙 절차가 있어서 학급에서의 단계적 지도에 불복하거나 변화가 없을 때에는 성찰교실로 가서 상담을 하고 그래도 변화가 없을 때에는 부모면담을 하도록 되어 있다. 학생생활지도에 부모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절차인데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말을 잘 안 듣는 학생에게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면 그래도 즉효를 볼 수 있어서 그동안 교사들이 많이 애용했었다. 그런데 만일 학부모가 학교에서의 호출에 응하지 않거나 학교의 규칙을 무시한다면 그런 학생들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학생생활규정이 학교에서 권위를 유지하려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이 규칙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단계적 적용에 대해 부모가 긴장감을 가지고 협조해야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이 생활규정 발표 이후, 세 가지 반응이 보인다. 어떤 교실은 이전보다 분위기가 더 엄숙해져서 정말로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방해를 하던 학생이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교실은 그 이전이나 이후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반면, 어떤 교실엔 교사를 끊임없이 시험해보려는 눈빛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체벌을 하지 못한다는 제한을 마치 교사가 힘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담임시간에는 버릇없는 행동을 못하다가 교과교사 시간에는 눈치를 봐 가면서 무질서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행동이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 [상황] 6학년 도덕과 8단원 ‘평화통일의 길’ 단원을 다루는데 한 여학생이 느닷없이 ‘선생님, 남북한이 38선 때문에 분단되었죠?’한다. 다른 학급에서도 발견된 오개념이었기에 수정해줄 필요가 있어서 ‘저 학생의 질문에 보충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하고 물어보며 다른 학생에게 설명할 기회를 준 후에 좀 더 보완할 필요가 있어 역사적인 배경 설명을 시작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의 오개념을 수정해주고 있는 교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흔들흔들 싱글싱글 서 있다가 설명 도중에 갑자기 ‘선생님, 나 그런 거 몰라도 돼요. 그러니까 그만 설명하세요’라고 한다. 평소 수업태도가 안 좋던 아이이긴 하지만 학생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수정해주는 교사에게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교사의 의도를 무시하는 아이의 태도가 심히 걱정스러워 맥이 빠진다. -------------------------------------------------------------------------------------------- 이렇듯 고학년 교실에서는 개인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말을 내뱉는 아이들로 인해 한 시간 수업을 진행하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저학년은 저학년 나름대로의 문제행동들이 있겠지만 특히 고학년에서 더욱 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러한 문제행동들로 인해 선생님들마다 모이면 나름대로 경험한 학생들의 불량스런 태도관련 이야기로 걱정이 많다. 앞의 상황예시는 불량스러운 행동은 수반되지 않은 한 예에 불과하다. 여기에 행동까지 불량스러우면 힘들다 못해 교사는 감정적으로 화가 나고 간혹 상처를 받기까지 한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참다못해 교사의 감정이 고조가 되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고 교사도 인간인지라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다음 기사를 보자. -------------------------------------------------------------------------------------------- 꾸짖는다고 … 중학생이 여교사 폭행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중학생이 40대 여교사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해당 교사가 10일 넘게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인천 서구 모 중학교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7시쯤 1학년 20명이 듣는 ‘방과 후 수업’ 시간 때 김모(13)군이 시간제 계약직 교사 이 모 씨를 주먹으로 때렸다. 당시 김 군은 자신이 듣는 다른 방과 후 수업이 끝난 뒤 이 씨의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를 보러 이 교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김 군은 복도에 서서 수업이 진행 중이던 교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넣은 채 친구를 바라봤고, 이씨가 “수업에 방해되니 나가라”고 2차례 주의를 줬다. 그래도 나가지 않자 이 씨는 복도에 나가 김 군 뺨을 때렸고 김 군은 주먹으로 이 씨 얼굴을 3〜4차례 가격했다.…(중략) - 조선일보 2010년 11월 22일 자 A10면 -------------------------------------------------------------------------------------------- 자, 이런 상황은 학교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교사의 충고나 권면을 쉽게 무시하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거듭하며, 반성을 하더라도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반성이 아니라 형식적인 반성만 하면서 오히려 내성만 키우는 상황이 현장에서 되풀이 되는 것이 요즘 학교의 현실이다. 학생들은 심각하고 진지해야 할 상황을 ‘봉숭아 학당’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의 행동에 교사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어느 정도 주었는지, 자신의 행동이 표준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등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웃기는 행동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잘못된 영웅심을 갖고 있다. 교사의 화 다스리기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생활지도를 제대로 하려면 교사의 감정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학생들의 행태로 인해 속상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결국 교사만 손해를 보게 된다. 상황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교사에게 요구된다. 잘못하면 어린 아이들의 속없는 행동에 교사가 약이 오르게 되고 그러한 상황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에게 점점 권위만 떨어져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다음과 같은 사이클이 반복된다. --------------------------------------------------------------------------------------------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화를 냄 → 아이들은 장난 식으로 받아들임 → 교사는 점점 더 화를 냄 → 아이들은 구경하듯이 바라봄 → 교사의 권위가 약화됨 → 생활지도는 점점 어려워짐 --------------------------------------------------------------------------------------------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지 않는가? 그래서 이번 연재를 통해 2011년 한 해 동안 생활지도를 잘 하기 위해 먼저 교사의 감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이어서 교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행동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사례별로 살펴보고 이런 문제행동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 아이의 발달특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성장환경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노력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한다. 문제행동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주도성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교사가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도 알아보자.
급격히 부각된 ‘창의성’ 2010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창의 인성교육 기본방안’을 중점 과제로 발표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창의적 체험의 활동시간을 늘려야 하기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회사원부터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창의성이 강조되더니, 이제 교육에서도 창의성은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교육에서 창의성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최근 일은 아니다. 교육목표로써 창의성 함양이 문서화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보건체육과에서 ‘창의성을 기른다’는 지도 방침을 수립한 이후부터, 모든 제도권 교육기관의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창의성을 언급해왔다. 이는 창의성이 예전부터 이미 중요한 교육 지향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게 반복적으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의성 교육이 달성되지 못했기에 근래의 가장 절실한 교육목표로써 대두된 것 또한 알 수 있다. 요즘 ‘창의성’이 크게 부각된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래학자가 21세기에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고, 기업에서도 창의적 인재가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킨다고 이야기한다. 한 기업 CEO는 ‘창조적인 소수의 인재가 미래를 먹여 살린다’고 까지 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것으로 회자되는 인물은 미국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IT 생태계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창조자로 그를 떠올린다. 애플의 제품 덕분에 우리나라 하드웨어 업체와 정보통신 업체는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 중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이 꼽은 국내 최고의 창의적인 인물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뽑혔다. 스티브 잡스와 안철수 모두 현재 경제체제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혁신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닮았다. 창의성을 저해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창의성에 대한 요구는 시대적인 절박함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창의성’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창의성의 정의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여러 환경에 접목되는 창의성은 문제들을 뚝딱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야기되기도 했다. 창의성이란 말이 너무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면서 식상해진 것도 사실이다. 창의성이란 말만 많았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창의성이 증진됐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창의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사회는 “창의성을 저해하거나 억압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교육 · 사회적 요인들을 많이 언급한다. 교육적 요인들은 주입식 교육, 평준화 교육, 창의성을 무시하는 교육 등이고, 사회적 요인들은 관료주의 성향, 고착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 개방성 부족 등이다. 기존 체제로는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창의성을 길러 낼 수 없을 것 같다. 한 논문에서는 아예 동양과 서양의 교육을 비교하면서, 동양의 교육방식이 창의성을 저해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교육방식은 노력, 인내, 끈기를 강조하는 기술습득 교육이다. 좋은 성적을 위해 반복과 암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감정을 억제하고, 작업과 놀이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탐구, 조작, 실험, 위험 감수, 개방적 과제, 사고의 수정 등 교육에서 새로움과 다양성, 기회 제공을 강조한다. 예컨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조하는 ‘일기쓰기’만 보아도, 동양권에서는 주제의 적합성, 도덕성, 근면성과 조화 등을 강조하지만, 서양에서는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성에 강조점을 둔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의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우리 교육환경 전반을 바꿔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스트레스가 된 ‘창의성’ 문제는, 교육당국이 창의성을 기르자는 선언만 했을 뿐, 아직까지 별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앞으로 창의성마저도 주입식으로 교육시키지 않을까 우려한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창의성 교육을 한다는 사설 학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쉬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창의적 체험활동을 하게 해 학생들은 더욱 피곤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평가해 대학입시에 반영한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창의성이란 새로운 스트레스와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창의성 연구에서 강조하는 것은 호기심, 몰입, 개방성, 독자성, 위험 감수, 실패와 장애에 대한 인내심, 모호함에 대한 인내심 등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발현할 기회를 제공하고, 교실 안에서도 보상과 칭찬 등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이러한 경험들이 낯설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호기심이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었다. 암기 위주의 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호기심은 스스로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는 질문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아이들은 질문이 잘 생각나지도 않거니와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은 선생님과 교과서가 알려주고, 아이들은 그것을 잘 외우기만 하면 된다. 오히려 아이들 사이에서는 질문이 수업시간을 연장하는 눈치 없는 행위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질문이라도 통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원하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그래서 잘못된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교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질문시간이 되면 경직된다. 질문을 하는 아이는 튀는 아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질문하는 모험을 꺼리게 된다. 모험 기피, 안정된 삶을 꿈꾸는 아이들 창의성은 모험심으로 시작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 속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경쟁이 심화되고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축소되는 사회에서 실패란 곧 죽음으로 인식된다. 아이들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그래서 오히려 ‘혼자 튀는 것’보다는 집단 안에서 동질감 유지에 몰두한다.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친한 친구들을 따라하는 동료문화가 청소년기에는 더욱 발달하게 된다. 심지어 그 문화적 속성이 경쟁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학원은 대부분 단기간 빠르게 지식을 암기하여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을 학습 원리로 활용한다. 이 안에서 배움에 대한 인내심이 발휘될 여지는 없다. 오로지 학원 강사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수동적으로 암기하는 교육과정을 선호한다. 모순적이게도 경쟁적인 분위기가 숨 막히게 답답하지만 오히려 편안하기도 한 것이다. 최근 대학생들은 스펙 관리라는 경쟁을 통해서 자기 증명을 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고시, 토익시험 등의 점수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아간다. 경쟁에 중독된 아이들에게 창의성이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입시라는 틀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아이들에게 창의성은 국 · 영 · 수 중심으로 공부하기도 바쁜데 또 갖춰야 할 새로운 종류의 스펙에 불과하다. 아이들은굳이 스티브 잡스가 되려는 꿈을 꾸지도 않는다. 최근 아이들의 직업관을 살펴보면 공무원,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부모세대에서부터 시작한 경제위기 경험과 선배 세대(현재 20대)의 스펙 경쟁을 지켜보는 아이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러한 직업관 속에서 창의성이란 불필요하거나,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된다. 창의성을 일반적인 직군에서도 발휘되는 보편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특이한 직종에서 발휘되는 능력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창의적인 롤모델의 성공사례를 제시하면 그러한 롤모델을 닮기 위해 추종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그러한 롤모델은 나와 다르다며 분리한다.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선배 세대들의 노력과 열정은 자신과는 무관한 이야기일 뿐이고, 그러한 롤모델처럼 고생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거나 쓸모없는 모험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창의성은 ‘별 일 없이 살고 싶은’ 자신들에게는 걸맞지 않는 공포스러운 능력이다. 그러나 변화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는 불안한 사회에서 창의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누구나 창의적일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에게 굳이 창의성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창의성은 인간의 여러 능력 중에 하나일 뿐이지 모든 능력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모두가 창의적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지면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중요한 질문은 ‘과연 어떤 창의성이 더욱 필요한 것인가’일 것이다. 창의성 연구의 선도적인 연구자 중 하나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 연구팀은 ‘훌륭한 전문직업인 되기 연구 프로젝트(The Good Work Project)’에 참여하면서부터 창의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훌륭한 직업인이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일을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High quality)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스티브 잡스나 안철수 같은 기업 경영인의 경우 자신의 분야에서 더 높은 이익을 얻기 위해 창의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이 사회적으로 책임감(Socially responsible)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예로 마하트마 간디, 마더 테레사와 같은 사람을 든다. 칙센트미하이는 연구의 취지문에서 창의적인 젊은 영재들이 앞으로 사회적인 책임감, 가치관, 목적을 갖고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목적이라 밝혔다. 즉,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창의성(Humane creativity)’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적 사명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이 창의성을 기르기를 바란다면, 창의성의 시초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기르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왜 필요한지부터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창의성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새로운 능력이 아니라, 이미 아이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잠재성이라는 것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창의성을 길러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사로서의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기이다.
40년 전 기억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아프리카 지역의 열대우림 기후 풍토와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흥미를 느낀 것은, 사람이 이것에 물리면 한없이 잠을 자게 되는, 이른바 수면병을 일으킨다는 흡혈 파리인 체체파리(Tsetse fly)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우리들의 흥미를 확인하신 선생님은 약간의 신명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질문인 듯 의문인 듯 말을 했다. “선생님, 그거 아프리카에 직접 가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순간 선생님의 낯빛이 달라졌다. 그 당시는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이고, 자연 다큐멘터리 동영상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학생으로서는 품어봄직한 의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 보지도 않고 아프리카를 다 아는 척 말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불손한 태도가 묻어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질문은 ‘지식에 대한 의문’이었지만 그것은 곧 ‘선생님 인격에 대한 의문’으로 오해받기에 족한 것이었다. 당신의 지식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의 신명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선생님은 “건방진 녀석!” 하고 짧게 되뇌시고는, 문제의 친구를 앞으로 불러내었다. 분기를 참지 못하신 선생님은 녀석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몇 대 세게 쳤다. 그러고도 모자란다고 생각하셨는지, 교탁 옆에 꿇어앉아서 수업을 받도록 했다. 요즘 같으면 금세 체벌 시비가 분분해졌을 것이다. 만약에 선생님이 아프리카에 가보셨던 분이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직접 체험한 아프리카 지식을 더 유연하고 더 너그럽게 소개하면서, 오히려 그 학생의 호기심 많은 질문 태도를 칭찬해주셨을지도 모른다. 깊이 있고 든든한 지식은 그것을 전할 때 너그러움의 덕성까지 함께 베풀게 한다. 좋은 지식은 반드시 그것을 실천함에 덕성을 동반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그런 지식의 모습을 두고 ‘지혜’라고도 한다. 얼마 전 외우(畏友) W교수의 홈페이지를 우연히 들어갔다가 나는 매우 감동적인 글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W교수에게 온 편지글이었는데, 나는 이 글을 읽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더불어, 나의 옹졸한 교수 철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편지에 나타난 W교수의 인격도 감화를 주기에 충분했고, 편지를 보낸 사람의 지혜와 덕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이 편지에 나타난 W교수의 언행이 20대 후반 청년 교사로서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가벼운 선망의 감정이 일기도 했다. 편지는 이러하다. -------------------------------------------------------------------------------------------- W교수님께 어린 까까머리 소년은 교실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도 저편 끝에서 계단을 다 올라온 선생님이 소년의 교실을 향하여 성큼성큼 다가올 무렵 소년은 교실 안을 향하여 같은 반 아이들에게 크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다 ~! 늑대 출현 ! 늑대다!” 그때까지 수선스럽던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 앉고, 늑대라고 외치던 소년도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 갔지만, 너무 가까운 곳에서 소릴 지른 탓인지, 늑대라고 불리게 된 것을 알아챈 선생님은 소년에게 다가왔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출석부로 머리를 톡톡 어루만지듯이 두드리며, “내가 왜 늑대냐?” 라고 말씀하셨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다 짤막하게 세 개의 단어를 적으셨습니다. “Homo Homini Lupus!” “호모 호미니 루푸스! 이건 라틴어인데,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는 말이란다. 잘 생각해 봐. 어차피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인 부분이 많아. 나를 늑대라고 부른 네놈도 늑대일 테고….” 묘하게 재미있는 표정과 웃음을 지으시며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 소년은 기억합니다. 선생님을 늑대라고 부른 죄를 묻지 않고 웃으며 자상하게 이런 지식을 말씀해주신 그 선생님을 평생 기억하게 되었고, 선생님이 해주신 ‘호모 호미니 루푸스’라는 말도 평생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고 지치고 사람에게 시달리거나 극한의 대립과 경쟁에 시달릴 때마다, 선생님이 오류중학교 국어선생님이셨을 때 하셨던,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인생의 어려운 상황을 담담하게 맞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류중학교를 1회로 졸업한 ‘허○○’이라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던 아이였고, 지금도 종종 선생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데, 어처구니없게도 나이 46세가 되도록 선생님을 찾아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오류중학교 동창 들과 만나 술을 마실 때면, “야, 우리 옛날 선생님들 좀 찾아봐라. 언제 한번 모시고 소주나 한잔 하자. 난 너무 보고 싶다. 그 분들! 특히 그 늑대 이야기해 주시던 선생님 보고프니 좀 찾아봐라.”, “그래 그러자” 라고 얘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습니다. 한국을 오래 떠나 살았기에 세월만 그저 흘려보내 버렸죠. (중략)… 저는 오류중학교 이후에, 중경고등학교와 부산에 있는 국립 한국해양대학교를 다녔고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외항상선의 항해사로 4년간 수십 개 나라를 돌아다녔고, 그 후엔 주로 서울과 노르웨이를 오가다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꽤 오래 살다, 2000년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해양대학교에선 해양문학회라는 동아리에 참가해 어쭙잖은 글들을 쓰곤 했었는데, 아마도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받은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홈피에서 선생님 삶의 궤적을 주욱 보고는,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라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학문하는 곳에 가 계시는 것 같고, 어울리는 일과 공부를 하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너무나 뵙고 싶군요. 가능하면, 7월 초순, 중순 사이에 꼭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 7월말에는 어린 아들을 제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일본 열도 종주를 나설 것인데, 그 길을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허락되시어 저녁 식사에 약주까지 모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옵니다. (선생님이 까까머리 소년에게 가르쳐 주신 유식한 문자를 평생 써먹으며 삽니다.) 미친 듯이 일하며 정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며 살아오다가, 마흔네 살 되던 해 겨울, 오토바이 한 대 끌고 콜롬비아로 가서 남미대륙의 최남단까지 100일 간 안데스 종주를 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고요. 선생님은 제 삶에 짧지만 불꽃처럼 반짝이는 큰 의미를 준 몇 안 되는 소중한 분 중 한 분이십니다. 불쑥 글을 올리는 무례함을 용서해주시고, 30년 전 그 까까머리 소년을 어루만져 주시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늑대처럼(?) 제 눈앞에 나타나 주시길 소망합니다. 늘 건강히, 열정 속에 정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Homo Homini Lupus!(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이처럼 명료하고 냉철하고 건조한 라틴어 지식 명제를 그처럼 따뜻하고 너그럽고 윤기 있는 지혜의 메시지로 변용해 다가가게 해주다니. 나의 감동은 오로지 그것이다. W교수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교수법의 마력을 배웠을까.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무슨 수업모형 차원의 교수 공학적 마인드로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지식을 사랑하는 W교수의 사람됨이 아주 자연스럽게 빚어낸 것일진대, 그것을 굳이 교수법이라 말하기보다는 그의 의사소통 철학(방식)이라 일컬음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선생들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무엇이겠는가. 지식은 단순한 전달 내용 그 이상의 것, 이를테면 감동의 기제로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위의 편지를 읽으면서, 모든 지식에는 그것을 가치 있게 하는 어떤 덕성이 보이지 않게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덕성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다. 내가 지닌 지식이 어떤 덕성을 발효하게 하는지 나는 이제껏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르치는 지식의 덕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경지로 나아갔을 때, 비로소 그 지식은 나의 참된 가르치는 힘이 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일종의 감화의 힘이다.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러나 ‘지식 사랑’은 ‘사람 사랑’과 서로 다르지 않다. 지혜로 승천하는 지식의 자리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할 것이다.
아동 · 청소년기의 신체발달을 위해 적당한 운동과 다양한 음식을 통한 고른 영양섭취가 필요하듯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고른 영양섭취가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와 학원을 바삐 오가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기 선택적인 문화향유를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의 벽과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기도 하다. 예체능 교육의 일환으로 음악, 미술, 체육을 대변하는 피아노, 태권도, 무용 레슨 등을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여의치 않다. 입시를 치르는 중 · 고생들의 경우에는 전혀 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의 첫발, 공연 관람 그렇다면 이유야 어떻든 우리의 이런 예술교육들이 아이들의 예술적 정서함양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음식이라면 일단 먹고 나면 어떻게든 영양공급으로 이어지겠지만 문화예술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음식도 음미하며 즐기는 요즘 시대에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해법은 있다. 아이들의 지적 사고력과 감성의 발달은 종합구성물, 즉 ‘공연예술 감상’을 통해서 자연적인 영양섭취가 가능하다. ‘공연예술’이라 하면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예술장르를 말할 수 있다. 연극, 무용, 뮤지컬, 퍼포먼스 등 최근에는 규정할 수도 없는 다양한 복합 예술 장르가 봇물 터지듯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국어, 논술, 미술, 음악, 체육 등의 역할을 극대화시켜 희곡, 연출, 무대, 조명, 작곡, 음향, 의상 등의 다양한 어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예술교육의 첫발인 공연관람은 중요한 예술교육의 하나로 지속적이면서도 자율적인 관람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공연, 여러 번 경험할수록 지적 영역 넓어진다 아이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나오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묻는다. “재미있었니?” 그럼 아이들은 대답한다. “네〜.” 그리고 여기서 질문과 대답은 끝난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연관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재미있었니?”하고 다시 묻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뭐라 뭐라 말들이 많아진다. 극히 개인적인 견해가 마구 나열되고, 아이들 사이에 난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이것이 1단계 공연관람 체험이다. 자, 그럼 질문이 아니라 감상문을 쓰라고 하면 어떨까? 처음에 아이들이 써놓은 감상문을 받아보면 글들이 대동소이하다. 줄거리를 본대로 나열한다든지, 특정 장면의 느낌만을 쓴다든지, 특정인물에 관한 소감을 나열한다든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2번 혹은 3번 이상 관람한 아이들은 확 달라진다. 왜 작가는 이 희곡을 썼을까, 왜 저 장면에 저 배우는 저렇게 연기할까, 왜 무대는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왜 이 장면에 이 음악이 흐를까 등등 점차 큰 그림을 마음에 그리게 된다. 이렇듯 공연예술은 책이나 TV, 영화와는 또 다른 쌍방향 소통을 관객인 아이들과 나눈다. 그러면서 점차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지적영역을 점차 넓혀준다. 여기서 선생님들이 해야 할 것은 많지 않다. 그저 좋은 공연을 선택해 아이들이 많이 관람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론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코스가 될 것이다. 1월,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나들이, 어린이를 위한 방학선물 5편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축제 ‘국립극장 어린이 우수공연축제’가 2010년에 이어 올해도 1월 5일(화)부터 2월 27(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지난해 객석점유율 104%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은 어린이 우수공연축제는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국립극장과 어린이 공연 전문 단체인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가 엄선한 우수 어린이 공연 작품들로 구성돼 더욱 믿음이 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축제다. 어린이 우수공연축제는 연극, 인형극, 뮤지컬 등의 공연과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균형 있게 구성해 어린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주고, 건강한 자아 형성은 물론 친구 · 가족과의 바른 관계 맺기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 74석의 오붓한 공연장인 별오름극장은 2달여 동안 아이들의 꿈 발전소가 될 것이다. 4개의 엄선된 어린이 명작들이 올해 축제에서 소개된다. 각 공연에는 미술체험, 연극놀이, 인형극교실, 뮤지컬 교실 등의 체험놀이가 함께 구성되어 있어 공연도 보고, 직접 만들고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신기한 국악보따리 국악관현악단 음악극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1. 21 ~ 30)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 엄마가 더 재미있어 하는 공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는 2004년 초연을 시작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음악극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객석에서 조용히 앉아서 감상해야 하는 공연이 아니라 국악 반주에 맞추어 맘껏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놀이형’ 어린이 체험 국악공연이다. 할머니집은 보물창고? 자파리연구소 할머니의 낡은 창고 + 연극놀이(1. 19 ~ 23) 할머니의 낡은 창고는 방학을 맞아 TV와 인터넷도 없는 할머니 집으로 놀러 간 아이들이 할머니의 낡은 창고에서 여러 가지 옛날 물건들을 찾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일기장, 결혼사진 등을 보며 상상 가득한 소품들로 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파리연구소는 제주를 소재로 공연하는 창작집단으로 자파리는 제주 방언으로 ‘장난’이라는 뜻이다. 장난 같은 놀이에 철학적 의미를 더해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나눌 수 있는 자파리(장난)을 재생산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진행되는 연극놀이도 놓치지 말자. 정교한 목각인형의 유쾌한 콘서트 극단 보물 목각인형콘서트 + 인형극 교실(1. 26 ~ 2. 13) 2002년 러시아 국립연극대학 인형극학과를 수료하고 돌아온 김종구(극단 보물 대표)가 직접 깎아 만든 목각인형이 무대에 오른다. 목각인형에 가느다란 줄로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인형과 하나가 되어 공연하는 목각인형콘서트는 정교한 기술과 감각적인 예술이 조화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레리나 목각인형의 아름다운 발레 공연과 색소포니스트 목각인형의 멋진 연주, 목각인형 강아지의 묘기 등 다양하게 구성된 콘서트 형식으로, 별다른 대사 없이도 명쾌한 음악, 신기하고 정교한 인형의 움직임이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한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인형극 교실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인형과 애니메이션, 그림자극이 펼치는 환상의 무대 극단 금설 이불꽃 + 미술놀이(1. 5 ~ 16) 이불꽃은 부모세대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가족의 사랑을 그려낸 아기자기한 인형극이다. 엄마의 출산을 통해 탄생의 신비로움과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작품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임신과 출산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펼쳐진다. 닥종이 인형과 애니메이션, 그림자극 등 다양한 무대장치기법을 사용해 흥미로운 이야기 복선과 함께 환상적인 비주얼로 온 가족이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해 어린이와 부모가 같은 감동으로 한마음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미술놀이 체험도 할 수 있다. 춤과 노래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자신감이 UP! 극단 동화가 꽃피는 나무 깃털피리 + 뮤지컬 교실(2. 16 ~ 27) 제19회 서울어린이연극상 최고인기작품상에 빛나는, 극단 동화가 꽃피는 나무의 깃털피리는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는 창작뮤지컬이다. 숲속 음악회가 열리고 딸꾹질만 하는 너구리, 새침데기 고양이 등 동물 합창단의 신나는 모험이 펼쳐진다. 즐거운 노래, 환상적인 모험, 신비한 비밀 그리고 따듯한 감동이 있는 가족뮤지컬 깃털피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미래의 주인공으로 커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주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동작과 화려한 의상에 아이들은 한 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된다. 춤과 노래가 함께하는 뮤지컬교실도 운영된다. -------------------------------------------------------------------------------------------- 관람료 2만 원, 체험활동 1만 원. 문의 02)2280-4130, 4114 ※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으며, 공연관람과 체험활동을 같이 하거나 단체관람의 경우에는 할인됩니다.
어느 성당의 행사장, 주교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입장을 했다. 그 주교는 “미사를 수천 번 봉헌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의 기쁨을 위해 망가지기(?)로 했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대기업의 CEO들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사소한 일상과 취미를 공개하고 어떤 유명인은 TV에 출연해서 성형수술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여자 연예인들이 일반인들도 꺼리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것들이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것이 유행했던 과거와는 달리 ‘나도 당신과 같다’라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 같다. 며칠 전, 우리 학교 재경동창회 정기총회, 900여 동문이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설픈 실력으로 색소폰 연주를 했다. 조용필의 ‘친구여’와 조니 호튼(Johnny Horton)이 1959년에 발표한 ‘All for the love a girl’ 두 곡이었다. 다소 매끄럽지 못한 연주였지만 그야말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것은 격려의 의미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녀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 시절의 근엄한 교장이 아니라 친근하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서 공감의 포인트를 찾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영의 본질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다. 특히 학교는 일반 기업체 등과는 달리 관리자와 교사, 교원과 학생, 학교와 학부모 등 온통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곳이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바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공감’에 대한 통찰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유독 자신과 같은 것을 선호하는 이 시대에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번 건네 본다. 자신의 시각에 빠진 사람은 남을 빠뜨릴 수 없다. 상대방의 시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에 빠진 사람은 남을 유혹할 수 없다. 자랑할 때 사람들이 도망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 송치복 생각의 축지법 중에서 손끝에서 마음으로 --------------------------------------------------------------------------------------------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셔서. /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지었다는 시다. 아이의 시에서조차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이 그대로 담겨있어 이 시대 아버지들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신문 2007년 12월 17일 자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초등학교 3학년에서 고교 3학년생까지 750명을 대상으로 ‘학교교육 및 생활관련 고민거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다. 그중 ‘학교와 가정의 고민거리’를 묻는 객관식 질문 중에서 담임교사와의 대화는 ‘종종 한다’는 응답이 23.9%로 나타난 반면 ‘전혀 없다’가 27.2%, ‘별로 없다’가 46.3% 등 대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73.5%에 달해 학생과 교사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민을 의논하는 상대로 응답자들은 ‘친구’(48.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것은 어머니(24.0%)나 아버지(0.7%), 혹은 ‘두 분 모두’(13.9%) 등 부모라고 말한 응답(38.6%)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특히 ‘없다’는 답변도 6.8%나 됐고, 여학생의 경우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학교와 가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잘 대변하는 대목이다. 특히 아버지와 고민을 나누는 여학생이 거의 없다는 통계는 여학교 교장으로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인간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고 정체성 확립이다. 따라서 본인 취향의 아버지가 아니고 딸이 자신의 속 무늬를 아름답게 그릴 수 있도록 자존감을 키워주는 아버지이기를 기대하면서 ‘부녀마음 나누기(손끝에서 마음으로)’라는 프로그램을 부임 첫해부터 실시하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1, 2학년 학생 중 희망하는 부녀가 참가해 요리실습과 명상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가사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스테이크를 만들고, 예절실에서 ‘마음 동산 꾸미기’라는 명상 프로그램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에 대한 명상, 한마음 체조, 촛불의식을 하고 딸이 아버지께 편지를 읽어 드리며, 따뜻한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편지를 낭독하면서 우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가 눈시울을 붉히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딸들이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에 나도 울컥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공감이란! -------------------------------------------------------------------------------------------- ‘남자의 자격’에서 만들어 준 할머니캐릭터가 너무 고맙다. 그 이후 부활 공연장의 객석이 꽉꽉 찼다. 그 전에는 오라고 해도 안 오던 관객이 빈자리도 없이 공연장을 메운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이 캐릭터가 ‘비웃음’의 할머니가 아니라 ‘친근감’의 할머니라는 걸. 내게 많은 걸 갖게 해준 프로그램이다. - 아시아경제 신문 2010년 4월 2일 자 -------------------------------------------------------------------------------------------- 가수 김태원의 인터뷰 기사이다. 김태원은 한국 록 음악의 대표 그룹 ‘부활’의 리더로서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약하고 약간 모자라는 듯한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다. 나는 1970년대 초인 대학 1학년 때, 5인조 록그룹을 만들어 대학축제에서 주가를 올렸다. 3부에 출연해 주로 Deep Purple의 ‘Highway Star’와 같은 하드 록(Hard Rock) 계통의 음악을 연주했다. ‘애드리브(Adlib)’을 연주할 때는 몰입의 경지(?)에 들어간 듯 온갖 폼을 잡으면서 신비주의랄까, 하여튼 뭔가 대단한 비밀스러움을 가지기 위해 관객들과는 거리를 두기도 했다. 아마추어인 우리가 이랬으니 프로들은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록 음악의 황금기인 그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팬들은 무게와 신비로움을 벗어 던진 ‘인간 김태원’에게 환호하고 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스타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친근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나와 공감할 것’을 요구하는 오늘날 대중들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페이스 공감, 문화 공감, 세대 공감, 낭독 공감, 대중 공감, 생활 공감’ 등 최근에 ‘공감’이란 말은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에서 이제는 정치 · 경제 ·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시대정신으로까지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리하여 사람 사이의 유대를 강조하는 사상적 흐름은 이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 교수의 공감의 시대는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은 끝나고 이제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시대로서 ‘공감(共感)’을 이 시대 최고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이 공감의 시대에 따르면 공감의 감(感 · Pathy)은 다른 사람이 겪는 감정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공감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한다. 그게 완전한 사랑이라고 한다. 얼마 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중국 어느 세탁소 주인의 ‘다리미질’을 본 적이 있다. 입신의 경지였다. 자기 분야에서 끈기와 정직함으로 경지에 오른 달인에게는 비약이 없다. 그 사람의 다리미질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견(異見)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그 사람의 노력은 신뢰할 수 있고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은 신뢰이다. 사시사철 향긋한 쑥국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39년 동안 ‘딱 하루’ 문을 닫은 곳이라 했다. 그것도 딸이 거짓으로 아프다고 하는 바람에 속아서였다고 한다. 회갑 때도 새벽에 국을 끓여 종업원에게 맡겨놓고 서울의 아들 집에 당일로 다녀왔단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깨알 같은 소문들이 나를 유혹한다. 그래서 공감은 유혹이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 타인의 고통을 타인의 것으로만 간주할 때 이 세상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신을 위한 변론의 저자이자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은 말한다. “종교는 본래 사람들이 ‘생각한’ 무엇이 아니라 ‘행한’ 무엇이다. 과거 오랫동안 인류의 종교생활은 신의 영혼을 갈고 닦는 한편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방법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수행과 실천이 종교의 요체였던 것이다.” --------------------------------------------------------------------------------------------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산 기운 저녁에 더 좋아 나는 새들도 서로 더불어 돌아온다’ 도연명의 시 음주의 한 구절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들고 남산을 바라보는 도연명(陶淵明)의 진실이 무엇인지 어렴풋하다. 나 또한 학교 정원에 서서, 무심하게 떨어지는 낙엽들이지만 수북하게 쌓인 모습이 괜찮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 없이 걸어가는 녀석과 함께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종자기(鍾子期) 역할을 톡톡히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