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39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한국 여학생의 수학·과학 성취도가 남학생에 비해 낮을 뿐 아니라 남녀 학생의 학력 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학 성취도의 성별 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이화여대가 지난달 29일 '남·여학생의 학력 차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밝힌 학력 차 실태는 지난 1995년과 1999년 38~41개국의 초등4년 및 중2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TIMSS)와 2000년 32개국의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 결과를 토대로 나온 것. 수학의 경우, 남녀 학생의 점수는 95년 588-571점(17점 차), 99년 590-585점(5점 차), 2000년 559-532점(27점 차)이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한국 학생의 수학 전체순위 및 남녀 차이 순위는 95년 3위와 2위, 99년 2위와 17위, 2000년엔 둘 다 2위였다. 과학의 경우, 남녀 학생의 점수는 95년 576-551점(25점 차), 99년 495-480점(15점 차), 2000년 561-541점(20점 차)이었다. 한국 학생의 과학 전체 순위 및 남녀 차이 순위는 95년 4위와 6위, 99년 5위와 9위, 2000년 1위와 2위였다. 한국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잘하지만, 남녀 점수 차이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최석진 교육과정평가원 교육평가연구본부장은 "수학·과학 같은 학문은 남학생이 잘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문화 등도 약간의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수학 과학에서의 남녀 실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 알아본다. # 교사와 부모의 편견이 성취도 떨어뜨려 인천교대 이대식 교수의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의 수학성취도 제고를 위한 학습프로그램 개발 연구'(인천시와 경기도 초등 6학년 학생 2000명과 교사 대상 조사)는 흥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부모와 교사들의 관심이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 이 교수는 "남자 교사들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에 덜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것이 여학생들의 성취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원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부모도 아들만큼 딸의 수학 성적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 연구에서 드러났다. 이공계열에 재능이 있는 우수한 여학생들과 이들의 역할 모델이 되는 여성 과학자들을 1 대 1로 연결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WISE(Women Into Science & Engineering)거점 센터장을 맡고있는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도“여학생의 경우 과학학습을 실제 생활과 연결시킬 때 성취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여학생에게 맞는 과학교육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가르친다면 수학, 과학의 학력 차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여학생 친화적인 수학-과학프로그램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2001년 펴낸 ‘여학생에 친화적인 과학 프로그램 방향 설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과학적 성취도에 있어 남녀간의 선천적 차이는 크지 않다. 문제는 사회문화적 요인. 보고서는 "여학생에게 친숙하지 않은 소재나 경쟁적인 수업 방식 때문에 여학생이 과학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여학생들이 쉽게 경험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를 과학 학습에 도입할 것을 건의했다. 즉 머리카락 물들이기, 화장비누 만들기 등을 통해 화학을 가르치고 음식의 열량 계산, 주방에서 사용하는 열효율 등을 통해 물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라는 것.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여 작년부터 '여학생을 겨냥한 수학-과학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범학교 연구를 거쳐 발표된 여학생 친화적 과학 프로그램은 우주, 에너지, 물, 통신, 미(美) 등 5개 분야 27개 실험 활동으로 꾸며져 있다. 실험방법에 대한 자료는 중고교 과학교사 단체이자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신과람)의 홈페이지(www.tes.or.kr)와 여성부 정책개발평가담당관실에서 구할 수 있다.
지난 4월 23일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교원인사제도 개선 공청회가 전교조의 방해로 무산되면서 교장임용제도, 교원평가, 수석교사제 도입 등 교원정책을 둘러싸고 교육계의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 날 공청회는 작년 7월부터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도하고 교총, 전교조, 한교조, 교장회, 학부모단체 및 교육전문가가 참여하여 논의한 '교원인사혁신을 위한 국민여론수렴사업'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공청회를 주최한 한국교육개발원의 기조강연과 발표내용은 그 동안 8차례씩이나 밤샘까지 하면서 논의한 결과를 그대로 공개하고, 이에 기초하여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이 날 기조강연에 포함되어 있는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원인사제도개선협의회에서 그 동안 수 차례의 토론과 논의를 거쳐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예견되어 도입하기 어려운 정책이라고 의견이 모아진 사항이다. 따라서, 한국교육개발원측이 공청회 자료를 통해 '교장선출보직제의 실험적 도입'을 제시한 것은 그간의 논의결과를 심각히 왜곡, 변질시킨 것이다. 또한, 전교조도 논의의 한 주체로서 워크숍에 계속 참여해 놓고 교장선출보직제가 참여자들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하자 협의의 틀을 깨고 밖으로 뛰쳐나가 그들 주장과 다르다고 반 개혁적이니 수구세력 운운하는 것은 당당한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공청회 자체를 물리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저지한 것은 교원단체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교육개발원은 공청회가 무산된 데 대해 단순한 입장을 표명을 넘어 그간의 논의결과를 왜곡, 변질시킨 것에 대해 책임 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전교조도 자신들의 주장을 물리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는 독선적 행태를 버리고 협의의 틀에 당당히 임해야 할 것이다. 교원인사제도는 교원들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사항이며 교육의 질적 향상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정책의 본질에 충실해야지 여론몰이나 물리적 힘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상식도 통용되지 않고 힘의 논리로만 교육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교원인사제도 개선은커녕 이로 인한 교육공동체의 갈등과 혼란만 야기시킬 것이다. 국민들이 가뜩이나 교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마당에 다른 것도 아닌 교원인사제도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여 교원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아서야 되겠는가. 지금은 각 단체의 주장만을 지나치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원인사제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학교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의 내용을 보면 우려보다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사후 처벌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석정지제와 같이 강도 높은 격리가 학생폭력을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실효성도 문제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단위 분쟁조정 기구의 위원장은 학교장이다. 일반적으로 학교 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교사와 학교장의 책임을 먼저 따지는 사회분위기에서 과연 학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분쟁조정에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이 조정을 신청을 할지 의문스럽다. 분쟁조정이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위주로 하고 있음에도 어느 일방이 수사를 의뢰하면 무조건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언론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져 경찰이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이른바 인지사건의 경우 분쟁조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모든 학교단위에 법률전문가, 경찰공무원, 교원 등으로 구성된 폭력 자치위를 의무적으로 구성토록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6학급 미만의 소규모 학교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 이러한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 학교에는 학교분쟁조정위원회가 있고 학교운영위원회까지 있어 행정업무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 이번 법률의 가장 큰 부작용은 교사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교사는 학교폭력을 보거나 알게 되면 무조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는 때로는 학교폭력의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교사의 학교폭력 신고를 무조건 강요함으로써, 이제 학생이 교사를 믿고 상담조차 할 수 없는 비교육적 관계로 변질시키고 있다. 학교폭력의 주안점은 예방교육이다. 이는 학교단위에 상담 교사의 확보와 폭력예방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행·재정적 지원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번 법안이 소 잃고 외양간 조차 제대로 고칠 수 없는 법안이 되지 않기 바란다.
교사다면평가제가 논의되면서 '선진국에선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평가가 일반화돼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곳은 미국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연구발표가 있었다. 지난달 23일 대전시교육청 주체로 열린 교원평가제 공청회에서 경주대학교 전제상 교수는 '공교육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교원평가제의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중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평가에 참여하는 곳은 미국의 일부에 불과하며 미국에서도 이 평가방식이 거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평가로 평정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도입한다면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대전 교총 추천위원으로 토론자로 참여한 김명순 대전 갈마중 교감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전 교수는 미국교육연구소(Educational Research Service, 997)가 909개 교육구의 교원평가를 조사한 결과 행정가에 의한 관찰 99.8%, 체크리스트 활용 87.4%, 학습자의 학업성취 활용 7.0%, 동료평가 6.0%, 학생평가 3.0%, 학부모 평가 1.0% 순으로 나타났다. 브란드와 간스니더(Brandt & Gansneder)가 미국 버지니아 교육구 11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행정가와 교원기록에 의한 평가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평가는 1개 지역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황호진 교원정책과장도 최근 "미국 외에는 학생,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며 그러나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핀란드에서는 고교의 결원 교원 채용 시 학생 대표가 인터뷰에 참여해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는 확인했다"고 말했다.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과상여금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올 스승의 날을 전후해 지급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최근 교원성과상여금을 지난해와 같은 방식인 90% 균등지급, 10%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두고 교원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제 도입 방침에 따라 합리적인 교원평가시스템이 개발되면 이와 연계해 성과상여금 반영비율(10%)을 점진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되 올해는 지난해 2월 11일 교육공무원성과상여금 제도개선위원회에서 합의한 대로 지급코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90% 균등지급 10% 차등지급 하되 차등지급방법은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 교장이 정하는 방식을 중앙인사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지급하는 이유로, 교육부는 교직사회의 안정이 필요하고 중앙인사위원회의 성과상여금 지침이 지난해와 동일한 점을 들었다. 교총은 교육부의 의견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10% 차등지급 비율을 줄여 조기집행 하되 육아휴직자와 휴직 후 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한 교사, 6개월 이상 교육훈련 파견 자, 사립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공립 특채된 교사들도 지급대상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또 교총은 전문직 지급대상 기준을 합리적으로 변경하고, 기간제 교사도 성과급 지급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교육개발원(원장 이종재)이 지난해 5월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교육주체들(학생, 학부모, 교사)간에는 이념 성향에서 별 차이가 없으며, 교육주체들이 선호하는 이념적 좌표는 '강한 공공성과 능력주의의 동시추구형'으로 드러났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이념=정책 결정의 주도적 측면과 교육의 가치·내용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나라 교육주체들은 복지국가모델이나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달리 강한 공공성과 능력주의를 함께 추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국가론은 국가주도와 공공성을 강하게 지향하는 반면 개인이익과 수월성에 대한 지향은 매우 약한 모델. 반면 신자유주의모델은 민간주도적 관리, 개인주의, 능력주의를 지향하면서 국가주도와 공동성 요인에 대한 지향은 약한 편. 교사, 학생, 학부모 집단간의 이념 성향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x²=.233, p>.05) 세 주체 모두 공공주의적 특성과 자유주의적 특성을 함께 갖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공공주의적 특성으로 더 치우쳐 있다. 교사는 공공주의적 성향을 기본으로 능력주의, 수월성을 선호하며 학부모는 공공주의적 성향이 보다 뚜렷한 가운데 능력주의와 수월성 또한 선호하고, 학생은 이념적 성향은 약하나 공공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총전교조 회원의 이념 차=양 측 회원 모두 공공주의와 자유주의적 성향을 함께 보였고, 소속단체의 차이에 따른 이념적 편차는 거의 없었다.(그림) 다양성에 대해서는 교총교사와 전교조 교사가 각각 81.3%, 86.1%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조사 항목 중 전교조 교사는 개인주의(20.9%), 교총 교사는 대중주의(8.8%)에 대해서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교총 가입교사들의 경우 특성화, 수월성에 대한 지지도는 매우 높으면서도 개인주의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질적 가치를 동시에 긍정하는 것에 대해서 강영혜 부연구위원은 "이전의 교육의식 조사에서도 능력주의, 대중주의, 반개인주의적 성향주의가 사람들의 교육의식에 동시에 존재해 왔다"고 설명했다. ▲젊을수록 자유주의적 성향=이번 조사에서 젊은 교원일수록 공공주의보다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20대 교사의 경우 약한 수준의 공공주의의 형태를 취하면서 특성화 수월성에서는 자유주의적 지향성을 보였다. 50대 교장·교감집단은 공공주의를 기조로 하면서 수월성과 단위학교 자율을 높게 평가하는 향상을 나타냈다. ▲지도부가 구성원 압도해선 안돼=연구자는 우리 공동체의 참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학습해 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공동체는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공공적으로 형성된 조직체라는 점에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는 상호주체성에 기초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건 무차별적으로 적용 가능한 교육공동체 모델은 없는 만큼, 일부 단체의 지도부가 나머지 구성원들의 생각과 발언을 압도하는 상황은 교육주체들의 자발적 주체화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연구자는 지적했다. ▲조사방법=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5월 22일 우편으로 전국 93개 초중고교 교원 1490명, 학부모 2751명, 학생 723명으로부터 설문을 회수해, 집단별 배경변인에 따른 차이를 볼 수 있도록 분석했다.(교차·카이스퀘어·요인분석)
심각하게 보이는 교단의 갈등양상에도 불구하고 교총과 전교조 회원간의 이념 편차는 거의 없으며, 교원단체 지도부의 강성 발언은 회원들의 자발적 주체화를 저해하는 등 바람직하지 않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한국교육개발원 강영혜 부연구위원은 '교육관련 주체들의 이념적 좌표분석 연구'라는 2003년도 기본연구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연구자는 "교육계 갈등의 한 원인이 교육주체들간의 이념적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교사, 학생,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분석결과 교육주체들 간의 이념적 편차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심지어 전교조 소속 교사와 교총 소속 교사들간에도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음에도 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커지는 원인은 학교의 지배구조, 리더십의 재정립, 교육주체 상호간의 관계 설정 등에서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자의 분석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 교육주체(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이념적 좌표는 공공성과 평등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 모델이나 약한 공공성과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모델과도 다른 '강한 공공성과 능력주의의 동시적 추구형'인 것으로 조사됐다. 교총과 전교조 가입교사간의 이념적 좌표도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두 단체에 가입한 교사들은 공공주의적 성향과 자유주의적 성향을 함께 가진 것으로 드러냈다. 다만 학부모들의 교육정책 결정 참여는 전교조 교사들이, 수월성 추구에 대해서는 교총가입 교사들의 지지율이 약간 높게 나왔다. 이러한 결과에 터해 연구자는 "상황과 맥락을 초월해 무차별적으로 적용 가능한 교육공동체 모델은 없으며, 형평에 맞게 협력해 만들고 고쳐나가는 게 가장 좋은 교육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 단체의 지도부가 나머지 구성원들의 생각과 발언을 압도하는 상황은 교육주체들의 자발적인 주체화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5월 전국 교원(1490명), 학부모(2751명), 학생(723명) 들을 대상으로 우편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나혜영 l 서울 환일중 교사 이재훈 l 인천 구월서초 교장 장철순 l 충남 공주 봉황초 교사 조동섭 l 경인교대 교수 진동섭 l 서울대 교수 강병구 출판2국장 김민정 기자 ▷진행자 = 먼저 요즈음 교육계의 현안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부 전문가나 학부모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학교위기의 책임이 상당 부분 교사들에게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재훈 = 학교위기라고 구태여 거론하면서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교사들에게 있다고 지적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그것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학교교육 외에 개인과외를 한다거나 학원을 찾는 등 사교육에 눈을 돌리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 선생님들에겐 원죄처럼 다가올 테니까요. 그러나 과일나무가 튼실하게 자라 열매를 맺게 하려면 농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알맞은 햇볕과 토양 등과 같은 자연조건도 따라주어야 하는 것처럼 학교교육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학부모나 전문가들은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동섭 =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저도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올바른 교육의 소명을 맡은 이상 학생들을 훌륭하게 교육해야 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상당 부분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러한 책임 강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연 그 책임을 물을 만한 정도로 합당한 권리와 대우와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 교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며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교사들이 1주일에 28시간 가까이 매 시간 다른 과목과 내용들을 4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PAGE BREAK]중등학교에서는 학력 편차가 극심한 다인수 이질 집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매일을 씨름하다시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책임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장의 어려운 점들을 십분 고려하여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혜영 = 전 그 학교위기라는 말부터 좀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위기가 무엇입니까? 입시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인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마치 전쟁을 시작한 정부에서 왜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냐고 성실하게 싸우고 있는 사병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합니다. 입시 교육 제대로 시키면 학교 위기 상황이 없어질까요? 인성교육 중심으로 공교육을 서구처럼 운영하면 학교교육에, 교사들에 대해 만족할까요? 저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쟁력 없는 교사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정책 이후의 문제이지 이전의 문제는 아닙니다. “교육 투자 소홀이 교육위기 불러” ▷진행자 = 그러면 벼랑 끝에 서 있는 현재의 학교교육 위기상황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장철순 = 학교교육의 위기를 어느 학부모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있어도 진정한 교육은 없고, 선생은 있어도 가르치고자 하는 의욕이 없으며, 학생은 있어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없다.” 저는 학교교육의 위기와 붕괴의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교육공동체 상호간의 불신이 그 첫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교육이라는 것은 학교공동체 구성원들간의 신뢰와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정상적인 수업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체벌할 경우에도 학생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경찰은 학교현장에서 교사를 체포하는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집단 괴롭힘과 학생폭력마저 성행하고 있으니 학교는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원, 학생, 학부모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50%를 밑도는 현실에서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동섭 = 최근의 학교교육의 위기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증폭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그 원인은 획일적 교육에 따른 결과, 사교육에 대한 학교교육의 경쟁력 약화, 교사들의 자질 부족, 교육여건의 미흡, 교육투자의 미흡 등 다양하게 설명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교육투자의 미흡이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학급당 학생수와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동섭 = 위기의 원인은 너무나 복잡합니다만, 그래도 가장 근원적인 것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수단적인 교육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PAGE BREAK]학부모들을 위시해서 교육은 출세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확고부동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관이 일관성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큽니다. 국민들은 또 한편으로는 전인교육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이중적인 교육관이 학교교육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행자 = 교사평가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평가의 필요성, 평가방법(동료평가, 학부모·학생 참여 등) 등에 대한 생각은? ▶이재훈 = 교사평가를 들고 나온 교육부의 입장은 무사안일에 빠진 교원들을 자극하여 교사문화를 바꾸면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과연 교사평가제가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만큼 효과가 있을까요? 교육여건이나 교원들의 처우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교사평가라는 채찍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외형적으로는 평가를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원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이는 교원들의 특성과 학교문화를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교육은 열과 성의가 깃들어 있어야 효과가 있는 법이거든요. 평가가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교사평가가 굳이 필요하다면 장기간 충분히 연구하고 다양한 논의도 거쳐 평가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충분한 연구와 사전 준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학부모나 학생들까지 참여시키는 평가제도가 도입될 경우 교직의 안정성은 무너질 것이고, 교사들의 사기 또한 저하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하여는 충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직사회 특성 고려한 평가 필요” ▶나혜영=먼저 교사평가를 해서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평가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며, 평가 내용이 적절해야 합니다. 사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평가는 수업보다는 근무 태도나 행정적 업무 처리 성과 등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부분을 학부모와 학생의 평가가 보완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생의 입장에서 수업 시간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나 자신의 이해도 등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 인기투표로 전락할 위험은 방지해야 합니다. 교사간의 평가는 저는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사간의 평가는 교사의 능력 평가보다는 인성 평가에 머무를 수 있으며, 이는 전문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동섭 = 교사평가의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직사회는 이익사회보다는 공동 사회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매우 인간적이고 정의적인 요소들이 조직풍토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PAGE BREAK]따라서 단순히 다른 조직의 다면평가를 그대로 교직에 적용하거나 학교급에 관계없이 교원평가에 학생과 학부모를 참여시키는 일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계획한 후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철순 = 교원평가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원의 직무 분석을 통하여 교원의 전문성, 책무성, 자율성에 맞는 교사의 능력별·직무별에 따라 그 목표가 명백하게 진술되어야 하며 평가 내용의 요소와 기준이 교원들의 전문적인 역할을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 요소와 기준에 의한 평가는 곧 교원들의 전문성 신장과 자기 연찬과 개발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공정한 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객관성·공정성 있는 평가를 확보하기 위해 평가 담당자의 ‘교원 평가’에 대한 훈련·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며, 교원들이 자기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도구를 개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동료평가, 부장평가 등의 다양한 평가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교원의 전문성·책무성을 제고하는 교원 평가에 대한 논의와 노력들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즉, 교원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포함된 교원 평가가 상호 연계성을 갖고 실시된다면 교원의 전문성에 더욱 발전적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진동섭 = 현재에도 교사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사와 교감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교사평가가 원칙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평가는 새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면 평가를 실시하되, 학생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평가 결과는 반드시 교원에게 피드백이 되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의 자료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진행자 = 요즈음 각종 직업선호도 조사에 의하면 교원은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여교사의 경우 부동의 1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만큼 향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합니다. ▶나혜영 = 저는 여교사가 인기 직종 1위라는 것은 아직도 성차별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남학생이 교사 한다고 하면 ‘남자가 더 큰 일을 해야지’ 그러면서 여학생에게는 ‘교사나 해라’ 뭐 이런 분위기인 거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많이 남아 있고요, 남성들이 여교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살림도 하면서 직장 생활도 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한데요, 요즘엔 남성들에게도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니 경제가 정말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다면 경기와 상관없이 인기 직종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경제적 대우만 해 줘도 아마 우리 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앞다투어 교직으로 진출하려고 할 겁니다. 경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교직이 부상되고 있다고 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보는 것은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AGE BREAK]▶진동섭 = 직업 선호도와 그 직업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 지위는 분명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교직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실업이 9%를 넘고 있고,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은 현실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성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직업의 주는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같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 직업 자체의 특징과 같은 내재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가르치는 일 그 자체가 좋아서 교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직이 삽니다. 외재적 요인에 이끌려 교직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것이 열악해지면, 교직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직은 전문직,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진행자 = 교직은 아직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재훈 =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직도 다른 일반 직업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 아니고 이 나라의 동량지재를 길러내는 체계적이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교직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전문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동섭 = 교직은 명백하게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업의 특성이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고, 장기간의 준비교육과 자격증이 필요하고, 사회적 봉사와 책임을 강조하고, 활동의 자율성과 윤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직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교원 노조가 합법화되면서 그 전문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교직의 전문직적 특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교수 노조 등의 등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용된 전문가들은 그 근무여건과 복리 향상을 위해 집단적인 요구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집단적 요구는 노조를 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또 유리하기 때문에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라고 보면 그것이 전문직적 특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치단체의 결성이라는 전문직적 특성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철순 = 우선 교직은 다른 전문직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회 봉사직으로 국가와 민족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은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며 장기간의 교육을 받아야 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지식과 전문적 식견으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교원으로서의 자율성이 있으며,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각종 연수나 교육을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부단한 자기 연찬과 장학활동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PAGE BREAK] ▶진동섭 = 직업은 범속직과 전문직으로 구분이 되는 데, 분명히 교직은 전문직입니다. 전통적인 전문직으로는 의사, 법률가, 종교인, 건축가, 교사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직업의 종류가 수십 만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들의 위상과 권위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변합니다. 인간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직업들이 창출되고 이들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어, 교사직이 기존의 위상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행자 = 현재의 사회 인식이나 제반 구조가 교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재훈 = 교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육에 관한 한 누구나 다 전문가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각종 언론 매체에도 제가끔 글을 올려 논쟁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 논란의 주제는 될지언정 정말로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한 대안은 아니더군요. 우리 교육정책이 끝없이 표류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연유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평생 일했기 때문에 초보 의사보다 오히려 의료행위를 잘 하는 사람도 의사면허증이 없이 의료행위를 하면 법에 의해 엄한 처벌을 받지요. 그런데 비교가 될 지는 모르지만 교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쳐도 전혀 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교육은 교원자격이 없이 누구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초등교원이 부족하니까 중등교원 자격을 가진 사람을 단기 연수 후 초등교원으로 임용한 예처럼 정부에서조차 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단적인 예도 있지요. “자율성·다양성, 교직 전문성의 전제조건” ▶장철순 = 교직은 일반적으로 직업분류상 전문직으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실제로 다른 전문직에 비하여 그 전문성의 정도가 낮게 평가되어 왔습니다. 특히, 초등교육은 국민의 기본교육이며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과정으로 기초적인 교육이므로 초등교사의 자질, 태도 동기 등은 초등보통교육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또한,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교사의 영향력은 막중하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는 초등교사의 위치와 임무가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현실은 초등교직을 다른 전문직이나 중·고등 교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초등교사의 사기 및 역할수행에 대한 충실감이나 직무에 대한 만족감을 저하시키고 교직에 필요한 전문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발전에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적 성과는 교사가 교직에 만족하여 투철한 사명감으로 교육에 헌신하고 충실히 임할 때 기대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는 확고한 전문직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교직에 대한 보다 높은 만족감과 사명의식을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PAGE BREAK]▶진동섭 = 직업의 전문직성은 첫째, 오랜 기간의 교육 기간, 둘째, 직무 수행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셋째, 직무 수행의 자율성과 책무성, 넷째, 높은 윤리 의식, 그리고 전문직 단체의 조직 등을 요건으로 합니다. 이런 것들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노력을 해서 얻어내야 합니다. ▶나혜영 =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면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따라줘야 합니다. 선택의 폭을 넓게 열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획일화된 입시중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실업계 학교들은 거의 존폐 위기를 맞을 정도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중학교는 이제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저 얼마나 잘 가르쳐서 시험을 잘 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전문성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교육의 전문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보고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 있으며 단순 작업해야 하는 잡무들이 학교에 가면 늘 산재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교사의 전문성은 학생과의 상호 작용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입시 맞춤 교육이 아니라 학생 맞춤 교육에 있어야 합니다. ▶조동섭 = 사회 일반에서는 교직의 전문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많다고 봅니다. 그것은 교육이라는 활동 자체가 일상적인 생활사태에서 일어나고 교육을 맡은 교사들의 전문적 활동과 식견이 미흡해진 데 따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계에서는 교직의 전문성을 사회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교육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그것이 특별한 활동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현직연수(교사재교육) 시스템은 바람직한 수준입니까? ▶이재훈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현장에서는 나름대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체연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평소 선생님들에게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처리해야 할 잡다한 일들이 수없이 많아서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교육청에서 마련하는 연수를 받고 있지만 연수기회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별도로 연수예산을 책정하여 연수를 받게 하고는 있지만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교원에게만 연수비의 50% 정도를 지급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 교원들은 자비를 들여 연수를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들의 연찬은 교원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학생교육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정책의 일환이므로 그 연수경비는 당연히 국가에서 지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더욱 다양한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모든 교원들이 무료로 언제나 편리하게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PAGE BREAK]정부나 교육청에서 모두 수용하기 어려우면 한국교총과 같은 단체에서 개설하고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조동섭 = 교원의 현직연수는 크게 자격연수, 직무연수, 특별연수로 구분되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그것이 매우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직에 입문하기 전에 실시하는 연수도 이전과 비교하여 그 양과 질에서 크게 개선되었고, 교직 입문 후에도 교육청이나 학교 주도의 직무연수와 자체연수들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직무 향상과 소양 계발을 도모하고 있는 등 제도적 차원에서 현직연수는 매우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내용과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교사들이 필요한 연수를 수시로 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가령 교사들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연수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충분한 행·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원에 등록하거나 사회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여 능력계발을 도모하는 경우 일체의 경비를 지원하여 그 의지와 노력을 지원해 준다면 보다 바람직한 연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 연수 아닌 실질적 연수 필요” ▶나혜영 =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간혹 저희들도 이런저런 연수들을 받지만, ‘정말 좋았다’하는 연수가 있는가 하면 ‘도대체 이런 연수 왜 시간 내서 받게 하는 거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연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연수가 아니라 교과목과 관련된 실질적인 연수, 필요로 하는 연수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의무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혹은 교과 과정이 바뀔 때마다 연수를 받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단, 실질적으로 교수-학습 방법 등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동섭 = 현직 연수는 자격연수, 일반연수, 직무연수, 특별연수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연수의 내용, 연수의 여건, 연수의 운영 등의 측면에서 당사자들인 교원들의 반응과 평가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철순 = 현직 연수 시스템 자체가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연수시간과 연수과정을 다양하게 마련하여 교원 개인별 요구를 고려함으로써 가능한 학교수업 결손을 최소화하면서 연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본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일제, 오후제, 야간제, 주말제 등 연수시간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자기 부담 연수 확대 및 부전공 자격연수도 확대 운영해야 합니다. 교원들이 원하는 분야의 연수를 시간적·공간적·방법적 제약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첨단 정보 통신에 의한 원격연수 방안을 확대 실시하여 가정에도, 학교에서도 원하는 연수를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연수 시스템을 개발·확대해야 합니다.[PAGE BREAK]또한 연수기관을 확충하여, 연수내용과 장소, 연수시간의 폭을 넓혀 수요자가 원하는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행자 = 교원들은 자신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한다고 보십니까? 교원들이 자성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동섭 = 사실 교원의 현직연수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현직연수 기회가 확대되고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참여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승진을 위한 점수 따기 방편으로 연수를 받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진이 계기가 되었든 다른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많이 참여한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발전을 담보하는 매우 의미 있는 증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학교에서는 많은 교사들이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각종 연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그들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매우 열심히 경청하고 진지하게 참여합니다. 따라서 저는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의미있게 참여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연수에 잘 참여하지 않은 교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변화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연수에 참여를 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고 또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그 기회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노력을 학교와 교육당국에서는 적극적으로 계획·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재훈=저 스스로도 자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하여 노력해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생님들도 이 부분에서는 매우 공감하실 것입니다. 나는 매일매일 학생교육을 위해서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생지도에 임하고는 있는가? 틈만 나면 연수를 받고 교육서적을 탐독하고 토론을 하면서 자기 연찬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교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올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혜영 = 교사처럼 편하자고 작정하면 편한 직업도 없고, 일하자고 덤비면 해야 할 일이 그처럼 많은 직업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 말을 절실히 느낍니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이 교사 집단에서도 적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많은 교사들은 순박하고 성실합니다. 학생들과 몸을 부대끼며 정말 뭔가를 해 보려고 노력하는 교사들 참 많습니다. 입시 제도가 바뀌면 그에 맞춰 대학 보내주려고 노력하고, 수행평가 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PAGE BREAK]그런데 저는 이처럼 소극적인 대응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교육부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전문성을 실현시키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교사에게 그에 맞는 대가가 주어지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단지 행정적인 업무 처리 능력이 아니라 그야말로 학생과의 상호 작용인 교육 활동이 되어야겠지요. ▶장철순 =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들의 전문성은 무엇일까요?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자신의 수업방법 개선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자발적 노력은 얼마나 하는지 제 자신부터 반성해 봅니다. ‘일 잘하는 교사’보다는 ‘수업 잘하는 교사’가 대접받는 교육현장, 승진과 담당 업무 추진을 위해 밤잠을 설치기보다는 내일의 수업을 준비하며 교수-학습 방법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교원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도록 기대해 봅니다. ▶진동섭=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교원 개인적인 노력, 교원들 집단적인 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원들은 개인별로 보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집단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다소간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혼자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주로 혼자서 해결하는 경향이 큽니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실험도 하는 그러한 노력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교사의 자율성 확보 시급” ▷진행자 = 교사의 자율성은 많다고 보십니까? 적다면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재훈 = 이 문제는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자율성은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있고 시·도 교육과정 운영 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바탕을 두고 학교 교육과정을 스스로 만들고 의견을 모아 자율적으로 교재를 선택하는 등 예전과는 사뭇 다른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각 부별로 예산안을 수립하고 집행에 참여하는 등 학교경영에도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각종 학교 행사 역시 교사들 중심으로 협의하여 추진하고 있지요. 그러나 교사 입장에서는 아직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 중 한 예가 연구기회의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필요할 경우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근무시간이라도 자율 연수를 위해 연수 장소로 갈 수 있게 하고 연구기관을 방문할 수 있게 하는 등 공무원의 복무규정이라는 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PAGE BREAK]물론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연수기관 및 근무장소 이외에서의 연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방학을 제외하고 평상시에 활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평상시에도 이 규정이 활성화되어 교원들이 자율적으로 연수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조동섭 = 현재 학교가 자율성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교사의 교육적 자율성은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하여 교육내용의 결정권, 교재 선택권, 교육방법의 결정권, 교육평가권, 학생징계권 등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들을 교사가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거나 선택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교과과정의 경우 국가와 지방 수준의 지침과 방침에, 학생지도의 경우는 학교의 형편과 풍토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영역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사가 교육전문가로서 독자적인 판단과 권능 아래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사의 본래적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과정 운영이나 평가, 학생지도의 권한들은 교사들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나혜영 = 전 우리 사회에서 자율이란 말이 특히, 학교에서 자율이란 말이 이처럼 왜곡되어서 인식되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학습이 타율학습을 포장하는 말이 된 지 오래인데, 학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자율성이란 위계 서열화된 관료제적 운영방식에서는 확보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별학교의 자율성이 어려운데, 어떻게 그 안에 있는 교사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학교에서는 교과서의 선택이나 학습 방법 등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그조차도 사실 완전히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요. 책임을 지게 하고 대신 좀 더 폭넓은 자율성을 줄 수 있도록 위로부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장철순 = 어느 정도는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타율적 개혁이 아니라, 교사들의 자기 반성과 함께 자기 혁신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전문성에 근거하여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교사가 개별 학생의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 그에 적절한 교육 내용이나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성적처리와 생활 및 진로지도를 위한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진행자 = 지식-정보화 사회화의 흐름 속에 학교교육(체제, 기능 등)이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변해야 한다면 학교교육의 새로운 지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PAGE BREAK]▶이재훈 = 학교교육이 끝없이 변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의 폭넓은 공감대나 이해를 얻지도 않은 갑작스러운 교육정책으로 학교교육의 변화를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효과 또한 크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개혁이나 변화는 뒤집어서 확 바꾸는 것이 아니고 제자리를 바르게 찾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교교육의 새로운 지향점은 선생님들이 다른 걱정 없이 학생교육을 잘 하도록 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나혜영 = 학교 교육의 지향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창의력이며 학교교육 역시 개인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것도 다양성을 기초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개개인의 다양성, 학교간의 다양성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획일화된 교과 과정 속에서 대학 가기 위한 고등학교, 일류대학, 이렇게 ‘한 줄 서기’가 중심이 되어 있는 교육 체계가 변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등의 복잡한 문화와 얽혀 있어 하루아침에 변화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교육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다양한 중학교, 다양한 고등학교, 다양한 대학교를 특화시키며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전달자’ 아닌 ‘지식연구자’ 되자” ▶조동섭 = 21세기 사회는 지식기반사회라는 특징을 가진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힘이고 절대 자원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속에서 국가와 사회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마련하고 다양한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들의 능력 계발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학교도 많은 점에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평생에 걸친 생애교육을 체계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그 기초와 기본을 충실히 제공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다원화되고 개별화된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해 주는 체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장철순 =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창출한 지식에 의해 움직이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학교의 존재는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위상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존재했던 지식과 위계를 지닌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없이 넘쳐나는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내장돼 있는 열린교육 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학생 개개인이 타고난 각각의 소질과 능력을 발굴하고 이것을 더욱 크게 계발하고 육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체제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PAGE BREAK]▶진동섭 = 사회가 변한다고 해서 교육의 기본적인 목표와 방향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입니다. 학교교육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이러한 학교교육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당당한 인간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교사의 역할도 필연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변해야 한다면 교사의 새로운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나혜영 = 아마 원튼 원하지 않든 교사의 역할도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을 학생 개개인에게 맞춰주는 교육을 해야 하며 그것이 새로운 교사의 역할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교육이 효율적인 지식 전달 체계였다면, 이제는 그 학생에게 맞는 지식을 찾아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학생들이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과목을 맘에 드는 강사를 찾아서 수업을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선생님에게만 의존하던 시대에선 벗어났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제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며, 학생의 능력을 파악하고 평가하고, 적절한 지식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 진로를 모색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인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훈 =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교원들의 역할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동료교사까지 참여하는 교사평가제가 거론되고 있고 학부모 감사청구제도 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습니다. 학교 사회에 조만간 바람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도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 교원들이 예전처럼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자세로 안주해서는 안되겠지요. 학생 교육을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열과 성의를 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바른 교육을 위한다면 당당하게 우리 주장도 펴고 적극적으로 대 학부모 교육이나 대 국민 홍보에도 뜻을 모아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육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 연찬과 수업방법에 대한 연구, 그리고 학생 지도에 관한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 진정한 학생 교육의 프로가 되도록 한층 더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철순=“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교육개혁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상태는 학교 교육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개혁은 교사개혁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사는 변해야 합니다. 권위주의 사고방식에서 자율 참여의 사고 방식으로, 닫힌 마음에서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며, 학생에 대한 지시·통제를 하기보다 자율·능동의 상태를 만들어주는 조절자 역할을 기대합니다. 또한 비판적이고 수동적인 보수주의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나 진보 합리적인 의식구조로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PAGE BREAK]▶진동섭 = 새로운 사회의 학교는 폐쇄적인 체제가 아니라 개방적 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단순히 ‘학교’가 아니라 ‘학교공동체’로 성격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러한 개방적 체제로서의 학교공동체에서도 교육의 주도적 역할은 교사들이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교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어떻게 보면 무제한적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에 담긴 한정된 정보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안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의 학습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이것을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 학습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학습 과정을 모니터하고, 학습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해서 피드백을 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교육 컨설턴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동섭 = 지식기반사회를 위해 학교교육을 변혁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다양한 차원의 변혁을 의미합니다. 우선 교육체제를 바꾸는 것이 그러한 일이라고 할 수 있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 교육환경과 지원체제 등을 변화시키는 일도 그러한 일들의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체제를 운영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그 여건과 환경들을 변혁시키는 것 모두 사람의 의식과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교육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 변화 중에서 교사의 변화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지식을 찾고 지식을 가공하고 잘 활용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역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스스로 우수한 지식정보 탐색사가 되어야 하고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활용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지금까지의 ‘지식전달자’로서의 역할로부터 지식을 탐색·가공·생산·활용하는 ‘지식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식전문가로 그 영역과 역량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곽병선 | 경인교대 초빙교수·전 한국교육개발원장 1. 다시금 각광받는 교사의 직 한국에서 교사들은 전형적으로 사범학교라는 교원양성기관을 통해서 양성되어 왔다. 구한국말(舊韓國末)에서 일제(日帝)를 거쳐 현대식 학교제도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사범학교는 우수한 인재들을 교원으로 흡인하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학교제도 형성 초창기에 해 왔다. 해방을 전후해서 1970∼1980년대 산업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청년들의 사회적 진출기회가 다양하지 못했던 과거에 교원 임용이 보장되었던 국·공립 사범학교(과거의 고교과정 사범학교를 포함한 사범대학 전반을 일컫는 말로 사용)로 우수한 청년들이 진학했었다. 사범학교 출신 대부분은 교육계에서 종사하였지만, 일부는 교육계 밖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사범 교육이 교육계만이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을 길러내는 사회 진출 통로 역할을 나름대로 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국 이후 적어도 산업화가 전면적으로 일어나기 전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다소 낭만적인 전통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득세한 물질주의 여파로 봉급직인 교직은 그렇게 매력적인 직종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다시 1997∼1998년의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전되었다. 구조조정이란 교육외적 요인으로 교원의 정년이 단축되는 시련을 겪었으나,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비교적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교직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종으로 다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정황에서 초등교사 양성기관인 교육대학교가 오늘날까지 사범교육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비교적 안정되게 수급을 조절하여 잘 훈련된 교사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중등교사의 양성과 임용의 경우는 다소 곡절이 있었다. 교원 수급을 엄밀히 고려함이 없이 중등교원 양성기관을 방만하게 허용함으로써 수요를 초과하는 대학 졸업자들에게 교원자격증을 남발하여 왔고, 결과적으로 교사 자격증에 대한 가치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원임용에 있어 국·공립 사범대학 출신에 대한 우선적 혜택이 거부된 이후 중등교사는 사범대학 과정 또는 일반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거쳐 교사 자격증을 획득한 이후에 경쟁적인 선발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여하튼 초·중등 학교 어느 수준이든 한국 사회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소정의 양성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아울러 임용시험을 거쳐 선발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 전문 직종임에는 큰 변함이 없다.[PAGE BREAK]그러한 면에서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든 오늘날 교단에 선 전국의 40만 교사들은 책임이 막중한 직업인들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의 질과 장래는 여지없이 이 교사들 손에 달려 있다. 2. 변모하는 교직환경 그러면 과연 오늘날 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물론 교사의 자리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종류의 일 중 하나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의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특별히 교직이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고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교직은 교직으로서 중요한 것이고, 교직이 중요한 이유를 대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날 교사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그들의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교사들이 믿음직스럽게 성심성의껏 교사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주기를 바랄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사설 과외학원에 보내거나 심지어 이산가족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기 유학으로 해외에 보내기도 한다. 또한 대안학교 또는 재택 학습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특수한 교육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은 국가 또는 학교 재단에 의하여 임용된 신분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업무는 국·공·사립 구분 없이 인간교육이라는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 종사한다. 그래서 그들의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 학생을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되, 그들의 업무처리는 공정하고 신뢰로와야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 교사들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별히 고등학교 단계에서 교사들이 작성한 학생생활기록이 공신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가급적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교사들의 선의(善意)가 학교 기록에 대한 왜곡과 불신을 가져오고 있고, 이것은 대입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학교외적 평가제도를 강화시켜 다시 학교 교육을 시험 준비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질 높은 교육, 공정한 업무처리를 바라는 사회적 기대에 교사들은 부응해야 된다는 것은 교직의 중요한 한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상이한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다. 정부 정책이나 학부모의 요구를 추종하기만 하는 입장에 서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무엇이 교사의 직무인가에 나름대로의 안목과 기준을 가지고 그들에게 부과되는 과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조율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직무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문적 직무 수행에 대하여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보상을 정책당국과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에게 요구, 협상할 수 있는 권익단체를 결성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교직사회는 이러한 면에서 상호 노선을 달리하는 권익단체들이 교사들에게 선호될 수 있기 위한 단체의 정강정책과 행동 양태를 통해 상호 경쟁을 벌이고 있다.[PAGE BREAK]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그들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크고 작은 여러 문제를 개별 교사의 독자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조직과의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교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직무환경은 불과 지난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조성된 것이다. 교사들이 하고 있는 일과 그 질에 대해서 사회일반은 보다 납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증대되고 있고, 교원 사회 또한 서로 연대함으로써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사의 직무를 중심으로 한 업무구조가 다층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오로지 그 일에 전념하여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의심할 여지없는 교사의 일차적 책무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는 오로지 수업활동에만 종사하고, 그 이외의 업무에 대해서는 기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한다고 하면, 오늘날 다층화·다면화되고 있는 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사는 다차원의 입장에서 그들의 직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3. 답보하는 교육본질 문제 이처럼 교직 환경이 다층·다면적 역할 구조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은 지식·정보화, 세계화와 같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 전반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전대미문의 급격한 변화가 더욱 가속될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 국가 단위 공동체가 자주적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그 공동체가 어떠한 변화상황에서도 주변으로 밀리지 않고 원하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상황주도력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달렸다. 상황주도력을 갖춘 공동체는 안으로 구성원들이 다양할 수 있는 가치관과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열하지 않고 상호 높은 신뢰를 가지고 공동체의 건재(健在)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과제에 대해서 높은 결집력을 발휘하는 사회이고, 이질적 요소를 확대하기보다 타협과 절충으로 상생(相生)과 조화를 위한 통합을 꾸준히 시도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생산성을 올리고, 대외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과학, 기술, 예술 등의 각종 분야에서 핵심역량을 선도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서 창의성, 상상력,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력을 앞서서 갖추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과 지난 30∼40년의 짧은 기간에 만성적 가난을 탈출하여 오늘날 국민 소득 1만 불 대를 나름대로 구가하면서 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만한 성취에 우리는 자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황주도력을 발휘할 만큼 내실을 갖추지 못한다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외부 세계와의 조우(遭遇) 과정에서 겼었던 역사적 고난을 또 다시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내부 문제하나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지 못한 처지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상황주도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얼마든지 예측불허의 난폭한 상황에 여지없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PAGE BREAK]이 국가 공동체의 건재를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그 근간은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의 질에 달렸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국가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교육의 본령을 살리는 교육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국정을 담당한 관료들이나 정치세력들은 무엇이 교육의 근본이고 무엇이 지엽적 문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학교 교육을 담당한 교사 사회는 상황주도력을 길러내는 교육을 위해서는 오래 전에 버렸어야 할 정답주의 교육체질을 온존시키고 있다. 지금 사교육 대책의 하나로 공영 교육방송에서 수능시험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고, 이것이 사교육의 불을 끄는데 매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책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사교육 열을 식히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창의성 교육, 학습자 주도 교육, 갖가지 문제를 보다 학생들 체험의 과정으로 차원 높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해결학습은 우리 교육에서 실종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교육의 근본문제는 학력 자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 없이 수능시험제도와 같이 수험생에게 중요한 고부담 학력평가를 국가 관리 학교외적 평가로 시행함으로써 안정적 기준 없는 임의평가가 학교 내외 평가를 막론한 모든 평가에서 만연하고, 학교를 시험 준비기관으로 종속시키고, 교사의 직무를 피동화할 뿐만 아니라, 정답암기 교육의 폐단을 낳도록 하는데 있다. 이 정답암기교육의 가장 큰 폐단은 학생들에게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허용할 수 없는 데 있다. 학생들이 그들의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해결해 보는 그런 과정에 충실할 수 있는 학습의 과정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살펴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될수록 많이 암기하는 것이다. 잘해야 기존 지식 습득 교육이고, 암기력을 훈련하는데 효과를 볼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이다. 변화무쌍한 미래 사회에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으려면, 정답주의 교육을 넘어서 자기주도 학습을 조장하는 교육으로 우리는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진정 학생들에게 갖춰 주어야 할 실력은 이미 결론이 난 정답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의미 있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4. 한국 교사의 역사적 책무 건국 반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진입한 지금의 상황에서 남달리 선택받은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상황주도력의 개발을 모든 교사들이 유념해야 할 중요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주도력의 핵심은 교육으로 길러진 인성과 사고방식들이 기존의 지식, 기술, 사상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핵심 역량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새로운 지식의 생성, 핵심 기술의 개발, 영혼을 적실 수 있는 예술의 창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감(靈感)을 자극하고 촉진하는데 교사들이 헌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주도력을 길러내는 교육은 세계 수준을 달리는 교사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말은 이제 우리 교사도 세계 수준의 교육을 목표로 실천하고자 하는 교육에 대한 기대치, 다시 말해 교육에 대한 교사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PAGE BREAK]세계 초일류의 교육을 향해 나가는 것을 교직의 지향점으로 삼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교직 역량을 축적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그러한 사항들이 실현되도록 공동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학교가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교사들이 필요한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교육이 정답암기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토론, 실험, 관찰, 봉사체험 등 과정에 충실한 학습 경험을 학생들이 갖도록 하려면, 학교가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학교는 평가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세워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수능과 같은 학교외적 평가가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의 본질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망국적 사교육의 폐해를 해소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다행히 향후 입시제도는 학교 평가권을 살리는 쪽으로 개선된다고 들린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학교가 평가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다음과 같은 선행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고 이것은 대부분 교사들의 역량과 직결된다. 무엇보다 교과별 학력 평정에 대한 기준이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즉 교과별 학력자격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학력 자격기준은 학생들이 성취하여야 할 학업의 수준을 체계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비중은 학생들이 어떠한 학습경험을 쌓아야 되는가에 대한 기준, 즉 학습과정에 대한 기준을 중요하게 포함하여야 될 것이다. 아마도 개별 교사수준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국이 알아서 기준을 설정하여 교사들에게 안겨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교사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나는 동일 교과 교사들이 연대하여 스스로 학력자격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교과별 전문 연구회, 교직단체 내 교과연구회 등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교사들이 교육부에 연대하여 학력자격기준을 개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사용하던지에 관계없이 교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교과별로 학력자격기준에 대한 지침과 이해를 상호 공유하는 것이다. 고립적 근무환경에서 일하던 과거에 이러한 요구를 교사들에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사들은 이제 관심을 같이하는 동료 교사들과 얼마든지 연대해서 공동 작업을 벌릴 수 있다. 우선 교사들은 소속 학교 동료교사들과 학력자격기준을 공유하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 학교들과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그 연대의 범위를 넓혀 지역 내 동일 학군, 시·도 교육청 범위로 확대하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이웃 학교 교사들과 협의할 수 있고, 동일 지역 내 교사들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중앙 교육부에 대하여 해당 문제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로부터의 이러한 상향식 접근은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 조직에 교과별 전문가를 배치하도록 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의 학력관리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관건적 요소가 된다. 학교 평가권을 실현함에 있어 학교 성적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는 과제는 바로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연대하여 대외적으로 공정성 있는 학력관리 정보를 생성하는데 달렸다.[PAGE BREAK]이 공정성 있는 학력관리정보를 학교가 마련하게 되는 때, 우리 나라 교육의 질은 국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5. 교육개혁, 교사가 움직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1918년 오스만 터키 제국의 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정착촌의 유대인 학교에서 교사들의 쟁의가 발생하였다. 이 교사들의 쟁의는 이스라엘 교육은 이스라엘 언어로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정착촌에 이주해 온 이스라엘 인들은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나라의 언어로 아동들을 가르쳤다. 이스라엘 언어는 세계에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인들이 주로 예배의식에만 사용하였을 뿐, 일상적 언어로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정착촌에 들어온 교사들은 이스라엘 교육은 그들의 민족 언어로 해야 되겠다는 의식으로 무장되었다. 종교의식 외에 언어, 역사, 문학 과목 등은 이스라엘 언어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과학이나 수학은 유럽 언어로 가르치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스라엘 언어에는 그러한 과목의 전문용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교 당국의 방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결국 학교 당국은 교사들의 쟁의에 굴복하여 모든 교과를 이스라엘 언어로 교육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교사들은 1800년 동안 죽었던 그들의 언어를 살려내는 단초를 만들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교사들은 그들의 교육사에서 첫 번째로 벌인 이 교원 쟁의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교사들의 결집된 의지가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육에서 세계 수준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구성원을 길러내기 어렵다. 아직 우리의 교육은 정답암기 교육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의 주범은 학교를 한낱 시험 준비기관으로 만들고 있는 학교외적 평가제도에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공정성과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학교 평가권을 확립하는데 있다. 이 학교 평가권의 확립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물론 정책당국의 상응하는 정책 개발, 관련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은 교사에게 있다. 이 작업의 성패는 미래 한국의 장래와 직결된다. 상황주도력 있는 국가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어 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관한 중차대한 과제이다. 이 중차대한 과제가 21세기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 한국 교사들의 양 어깨에 걸머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교사들은 단순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변화의 주변이 아닌 주역으로 역할할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을 길러내야 할 역사적 과업을 안은 이 사회의 주도적 세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교원 단체들은 크고 작은 정책 사안을 불문하고 사사건건 정책당국이나 이해 당사자들과 대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사활적 과제, 즉 학교 평가권을 확립하는 과제에 대해서 결집된 노력을 펼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인규 | 서울미술고 교감 내면의 평화가 교실평화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하여 우리의 교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실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 어찌 문제가 없을까? 어른들이 툭하면 이혼하고, 싸움질을 하고 있다면, 이 작은 교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곳이 우리의 미래를 제일 먼저 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실이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데, 우리의 미래가 어찌 평화스러울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반면에 우리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행복해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참으로 희망적일 것이다. 이를 너무 기대한 나머지 일부 교사들은 어찌 이런 학생들은 가정에서 학교에 보내지 않는가 하며 불평한다. 학교가 가진 문제를 두고 가정이 문제니, 학부모가 문제니, 학생이 문제니 하는 귀인 논쟁은 따져보면 덧없는 것이다. 이미 가정에서 문제없이 학교에 보낸다면 학교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문제는 교실에서 따돌림이나 싸움, 폭행 등 사건의 빈번한 발생 현상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학교의 부족한 대처 능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중에서 몇 명이 ‘왕따’를 경험했고,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어느 기준 이상 일어나면 심각한 것으로 판정할 것인지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교실로 인하여 학부모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불안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으레 문제가 일어나면 학교의 대처는 상투적인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격리 조치하며, 교내 순시를 강화하고, 계도 훈화를 많이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학교가 교육 기관인지 사법·교정 기관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학교가 진정 학교다워지려면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에 대한 교육적 해결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성이 외부 전문가를 학교에 초빙해서 해결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대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바로 교사들이 현장에서 폭력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는 교사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라는 점을 알면 순차적으로 다음 수순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이란 타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정렬시킬 줄 아는 것이며, 나아가 학생의 갈등을 조정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즉, 나의 내면에서 분노를 조절할 줄 알면 상대의 분노를 제어할 줄 알며, 제3자로서 분노를 제어할 줄 알게 된다. 그래서 교실 평화 만들기의 요체는 바로 교사의 내면 평화인 것이다.[PAGE BREAK]분노 감정의 생성 원리 뜨거운 물체를 대면 손을 뗀다. 왜 손을 떼었느냐 물으면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답을 한다. 그러나 뜨거운 것을 내가 만졌구나 지각을 하고, 그래서 손을 떼어야겠구나 판단을 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뜨거운 것을 대자마자 연수 근처에서 반사 행동을 한 후에, 나중에 대뇌에서 내가 손을 뗀 것은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지각한다. 지각 판단 행동이라는 순서는 그리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갑자기 뒤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시커먼 무엇이 지각되었다고 하자. 지각 판단 행동이라는 순서를 밟는다면 이렇다. ‘아, 저것은 무엇일까? 나를 해치는 것일까, 아닐까? 그래 나를 해치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피해야지.’ 그러나 실제 이렇게 행동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수 있다. 설사 시커먼 무엇이 생명을 해칠 가능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죽은 뒤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일단 피하고 나서 나를 해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옳다. 실제 우리의 생명 기제는 이렇게 진화되어 있다. 나를 공격해 오는 그 무엇에 대해 나의 몸은 방어하기 위해, 혹은 역으로 공격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온 몸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선다. 혈액 순환은 증가하고, 혈압도 오른다. 그래서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주먹을 붉게 쥐는 법이다. 이때 사고 기능도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일념(一念)을 이룬다. 그래서 ‘저게 나를 해칠 지 몰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게 나를 해치는 것’이라 일단 단정한다. 나쁜 것으로 생각해 버림으로써 나의 방어 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몸을 구한다. 나는 나의 몸을 구한 후에 판단을 한다. ‘아, 나쁜 것이 아니었네….’ 이러한 생명 보존의 기제는 우리 조상들이 정글과 초원 지대에 살면서 자연의 재난과 동물의 습격, 타 종족의 공격으로부터 유전자를 보존해 온 원리였다. 지금 현대에 살면서 자연의 재난도 줄어들었고, 동물의 습격은 거의 없고, 타 종족의 공격도 현저히 줄어들었건만 아직 내 몸은 과거를 기억하고 여기에 맞추어 작동된다. 생명 보존의 원리는 나의 자존심이나 신념, 재산, 기타 다른 내가 가진 것이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작동된다. 만약 이것이 침해되었을 때, 방어하기 위해 혹은 역으로 공격하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이 작동된다. 혈압이 오르고 혈액 순환은 빨라진다. 근육은 긴장하고 언제든지 상대를 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생각은 일념으로 진행된다. ‘너는 세상에 나쁜 몸이야. 네 시커먼 속은 다 알겠어. 네가 없어져야 세상이 더욱 정의로워질 거야. 나는 정의의 사도! 그러니 당신은 나한테 벌을 받아야 해.’ 공격하는 것이 물체라면 금방 상대에 대해 판단을 하고 공격의 고삐를 늦출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말이나 생각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방어 기제는 더욱 영속화된다. 일단 방어 기제가 작동되면 눈과 귀와 감각도 고정된다. 나쁜 놈의 그것으로만 보고 듣게 된다. 더욱이 나의 말이 그렇게 나가면 상대도 고와질 리 없다. 내가 나쁜 놈이라 했던 것만큼 나쁜 놈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진짜 나쁜 놈이 된다. 눈싸움이 말싸움되고, 폭력이 되고, 전쟁이 된다. 상대가 나쁜 놈임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도 등장하고 마르크스도 등장하고, 의회민주주의도 등장한다. 정치인도, 지식인도, 교사들도, 나이 어린 학생들도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PAGE BREAK]지금 학교교육은 어쩌면 상대를 나쁜 놈이라는 것을 검증하기 위한 이론적 기저를 제공하는 활동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화가 난 정서가 먼저이고 화가 나는 판단 근거는 나중이라는 것이다. 화가 나서 판단한 근거들은 실재하는 원인이 아니라 화가 났기 때문에 지어낸 생각인 것이다. 이 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화난 상태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불난 데에 부채질하는 것이지 결코 분노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분노에 빠져 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 상대가 분노에 빠졌을 때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 조용히 분노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 조절의 요체는 바로 이것이다. 분노 조절을 위한 원리 ‘저 녀석은 이래 저래서 나쁜 놈이야. 암 그렇고 말고.’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정의감이라는 기준을 세운다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선한 행동이 되고,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 된다. 내가 참아버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 된다. 진리와 정의의 전당인 학교에서 나쁜 놈을 그래도 두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학교는 곧 폭력화된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폭력을 두둔한 적은 없다. 참을 인(忍)자를 쓰라고 가르친 것이 학교이지 화를 폭발시키거나 위협이나 폭행을 가하라고 한 적은 없다. 이 가르침대로 참기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화는 중요한 보호 장치이다. 그런데 무조건 이를 억눌러 버리면 가슴에 응어리가 되고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를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억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참아버리게 되면 서로를 조정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왜곡은 갈수록 심화된다. 그리고 본인 내부에서 잠재되어 속병이 된다. 상황은 변화되지 않고 나의 자존심을 뭉게거나 재산을 공격하는 일이 지속되면 언젠가 임계 한도를 넘어 공격이 들어올 때 한꺼번에 폭발한다. 사고를 치는 학생들을 관찰해 보면 지금까지 말도 없이 잘 참은 학생들이지 수시로 자기 속을 드러내는 애들이 아니다. 분노는 무조건 억압할 일도 아니고, 무조건 드러낼 일도 아니다. 앞에서 말한 나의 생명 기제 작동 원리를 조용히 지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아, 내가 무엇 때문에 생명 보존 차원에서 몸이 작동하고 있구나. 아하 그래서 숨이 가빠오네. 얼굴은 붉어오고 주먹을 쥐고 있구나. 상대를 나쁜 놈이라고 일념의 생각을 하고 있구나…. 화가 나는 동안 이렇게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화가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 이렇게 화난 의식을 내가 조용히 쳐다보고 있으면 화는 잠잠해진다. 그리고 마음의 선택을 기다린다. 화를 꼭 내야 할 상황인가? 만약 낸다면 어느 때, 어느 정도 낼 것인가? 혹시 내 기준만 전하면 되는 사항이라면 어떻게 전할 것인가? 보다 복잡한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면 언제 만나서 협상을 할 것인가? [PAGE BREAK]내가 화의 주인이 되어 화를 내기로 작정해서 화를 내는 것과, 화가 나의 주인이 되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내가 화를 내기로 한다면 나는 충분한 무기와 전투식량, 우군, 통신장비를 비축해 놓기 때문에 결국 이기게 될 것이며, 화가 폭발해 버리면 이것들이 없는 가운데 전쟁하기 때문에 반드시 후회하도록 되어 있다. 역사상 존경을 받는 화는 간디나 킹 목사의 그것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화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난 이유를 상대가 알도록 함으로써 상대의 행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를 잘 전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의 기법은 단순하다. 그저 ‘무엇 때문에 내가 화가 있다’라고 전하는 것이다. 전하지도 않고 분노의 생각만 키우고 있기보다는, 만나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두 담화를 비교해 보라. A는 상대로 하여금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만 B는 상대로 하여금 협조기제를 작동시킨다. A : “너희들 정말 이럴꺼야? 왜 지각을 자주 하는거야?” B : “학생들아, 너희들이 지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 분노하는 상대에 대한 조절도 똑같다. 상대가 화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면 상대는 곧 이성을 되찾고 대화 분위기로 돌아서게 된다. 다음에서 A는 자칫 전쟁으로 비화된다. 그러나 B는 곧 상담 분위기로 전환된다. B와 같은 대화 방식을 ‘가시빼기 전략’이라고 부른다. A : “아니, 선생님. 너무 하시잖아요. 머리가 길기로 서니.” “어쭈 이 녀석이 감히 말대꾸야!” “내가 무슨 말대꾸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B : “아니, 선생님. 너무 하시잖아요. 머리가 길기로 서니.” “학교의 두발 규정이 너무 엄격해서 화가 난단 말이지?” “네!” 교실 갈등과 중재 전략 교실 내에서 학생들은 크고 작은 분쟁에 휩싸인다. 집안 내에서 오누이끼리도 서열 다툼이나 헤게모니 전쟁을 치르는데 남남끼리 오죽하겠는가? 책상을 두고 몸이 넘어 온다고 다투고, 빌려간 돈 안 갚았다고 싸우고, 어떻게 하면 나한테 그렇게 대우했느냐고 다툰다. 판단 능력을 좌우하는 대뇌전두엽이 아직 덜 커서 그러려니 하면 학부모나 교사들의 속이 덜 상하련만, 학교의 일상은 성인보다 더한 규칙을 학교에 세우려 한다. [PAGE BREAK]교실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교사들은 잘잘못을 가리는 판사가 된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적절한 판단을 구하기 위해 잘못을 일러바치고, 그 사이 한 판 싸우게 된다. 교사가 이를 다 들어주면 괜찮지만 그럴 시간도 모자라고 인내심도 크지 않다. 그래서 둘 다 벌을 세우는 것으로 대부분 끝이 난다. 만약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폭행한 것이라면 물론 가해자를 가려 벌을 준다. 만약 이러한 사태에 학부모가 끼여드는 경우 낭패이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두둔하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교사는 자칫하면 일방의 학부모로부터 상처를 입기 쉽다. “왜 선생님은 저 학생만을 두둔하십니까?” 교실 평화를 위해서는 교사가 판사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재자의 역할을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져보면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보다는 쌍방 과실이 많다.
배용득 | 울산 대송고 교사 교사들은 우리의 희망이요, 꿈나무인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일선 교단에서 묵묵히 항상 학생들과 더불어 수업지도 및 학생들의 선도에 힘쓴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생 지도 과정에서 늘 뜻하지 않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 장애물은 부적응 학생의 돌출이다. 담임교사는 부적응 학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도하느냐에 따라 학급 운영의 승패가 달려 있으며 효율적인 학급경영 전략도 부적응 학생의 진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학급경영 전략 짜기는 다수 학생의 성향을 정확히 진단하는 일과 더불어 부적응 학생의 진단이다. 여러 다른 학생들은 담임 교사가 부적응 학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하는 지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학급 운영 전략은 문제 학생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학업에 대한 무관심과 삶의 의욕을 상실한 학생이 있는지 살핀다. 부적응 학생의 학습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고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선생님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자율학습을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담임교사는 이런 학생을 발견하면 즉시 불러 상담을 해야 한다. 상담을 통해 지난 학년에 대한 생활태도를 중심으로 학생의 성향을 파악하여 그에 맞추어 학생을 지도하되 엄격함과 따뜻한 배려를 통해서 학교가 공부하기에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비사교적인 학생이 있는지 살펴본다. 비사교적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한다.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은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출의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담임교사는 학교의 따뜻한 배려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지각과 결석을 학기초부터 시작하는 학생이 있는지 살펴본다. 지각과 결석이 많은 학생은 학교 생활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학생은 조금만 방심을 하면 장기 결석으로 이어진다. 담임교사는 이런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을 때는 학부모와 상담을 통해 이유를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적절한 조치는 담임교사가 학생으로 하여금 학교가 정말 다니고 싶은 곳임을 일깨우기 위해 엄격한 훈육과 따뜻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학급경영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소속감을 부여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학생을 처음 맡게 되면 학생들이 우선 그 반에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소속감을 부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속감 부여는 1년 동안 함께 할 학생간에, 급우간에 서로 아끼는 학급 풍토와 학습 풍토를 형성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담임 교사는 학생이 소속감을 갖게 할 수 있도록 학생 상호간에 따뜻하게 대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일부 모범학생들로 하여금 부적응 학생의 학습과 행동면에 도움을 주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원칙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담임교사가 학급을 경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학생들을 훈육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담임교사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훈육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 있는 담임교사의 훈육 적용은 학생 모두가 담임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면서 실행할 때 효과가 크다. [PAGE BREAK]부적응 학생을 배려하는 지도 또한 필요하다. 담임 교사는 어떤 반을 맡는다 하더라도 학급 부적응 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담임 교사가 부적응 학생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고 조금만 소홀히 한다면 학급 경영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부적응 학생들은 담임의 지도 여하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담임교사는 부적응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학생이나 부모님과 꾸준히 대화해야 한다. 끝으로 학급 경영 목표를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학급 경영의 목표는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과 학력 향상이다. 담임교사는 조·종례 시간에 학생지도에 열을 올리지만 언제나 부적응 학생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중요 지도사항을 인식시키기 위해 칠판 왼편에 학급경영 목표를 적어놓고 실천하도록 하였다. 필자가 실천하는 학급경영 목표의 주요 내용은 지각·결석을 하지 않는 반, 신독(愼獨)하는 반, 올바른 인간성과 가치관을 지니려고 노력하는 반, 스승을 진실로 존경할 줄 아는 반, 실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반, 성적이 낮다고 포기하지 않는 반,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반, 봉사와 헌신을 다하는 반, 열심히 공부하는 반이다. 효율적인 학급경영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두 주체의 변화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책무로 학생을 포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포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효율적인 학급 경영은 무한정의 사랑과 때로는 엄한 모습이 학생을 올바르게 변하게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사는 엄친자모형의 학급경영 태도를 견지할 때 효율적인 학급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황연옥 | 부천 상일초 교사 설렘 속에서 시작한 바쁜 새 학기 3월이 지나고 어느새 푸르름 가득한 5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신바람 나게 뛰어가는 초등학교 신입생에서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이르기까지 가슴에 소망의 무지개가 가득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고 청소년의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겨우내 추위 속에서 꽃망울을 도톰히 키워 올린 꽃나무가 눈부신 꽃송이를 피워 올리고 훈풍에 밀려 멀리까지 풍겨오는 꽃향기를 맡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미래를 가꾸어갈 청소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들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모두가 거리로 나가고 싶어하는 이 계절에 들뜨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회생활을 해 나가며 필요한 것 중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여 말하라고 하면 ‘질서’와 ‘책임’을 꼽고 싶다. ‘질서’와 ‘책임’은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 소중해진다. 자연과 우주도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듯이 서로 더불어 살며 가치를 창출해 가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을 인정하는 중심에는 나보다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과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집단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만 먼저 생각하는 사소한 개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월은 산과 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다. 공중도덕을 지키고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에 흔적을 남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켜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모든 일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깊은 마음을 길러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긍적적인 생각으로 즐겁게 일을 해나가다 보면 알찬 결실을 얻게 됨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여 마지못해 하는 일에는 좋은 결실이 있을 리 없다. 어떠한 일이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되 신바람 나는 활동이 되게 하는 것이 좋다. 교사들은 학습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수-학습활동을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흥미 있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학생들도 즐겁게 학습활동에 임해야 하고, 학부모들은 지나친 과잉기대로 자녀들을 지레 피곤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 신뢰하며 면밀한 계획과 준비 속에서 즐겁게 교육활동에 임할 때 좋은 결실을 맺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3·1절에 필자가 사는 마을에서 흐뭇한 일이 있었다. 3·1절을 이삼일 앞두고 아파트 부녀회에서 관리실 방송망을 이용하여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수 차례 홍보했다. 그 결과 90% 이상의 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하여 지난 3·1절날은 우리 아파트 단지가 태극기 휘날리는 마을이 되었다. 심지어 연휴라 지방에 내려가야 될 어느 가정에서는 가깝게 지내는 이웃집에게 부탁하여 태극기를 달아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PAGE BREAK]작다고 보면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얼마나 가슴 뿌듯했는지 모른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여도 학교에서 4대 국경일에는 꼭 기념식을 치르며 그 날에 얽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선생님께 들었었다. 심지어는 여름방학 동안에도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학교에 가서 하였다. 작은 활동이지만 이 같은 계기교육을 통하여 우리는 나보다도 남을 생각하고 개인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들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같은 교육 활동들이 6·25 전쟁 직후 폐허 속의 이 나라를 이렇게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흔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현실을 딛고 오늘날 이 만큼 살게 된 것이 교육의 덕택이라고 한다. 우리 후손들도 번영된 조국에 살면서 늘 교육의 덕택을 감사하게 느끼도록 해야 할 책무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 국가가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하고 국민들도 건강하다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새 학기, 새봄이 지나고 있다. 우리 모두 차분하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친구와 이웃과 자신이 소속된 단체와 나라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학부모들은 지나친 과잉기대로 자신의 자녀들 능력보다 큰 가방을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잉기대가 자신과 자녀를 묶는 올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며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들 또한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연찬 활동을 통하여 교원의 전문성을 키우며 책임의식을 갖고 즐겁게 교육활동에 임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 모두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자신보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질서와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국민성을 보일 때 이 나라의 장래는 봄볕보다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양금석 |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 청소년폭력 사건이 방송과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른바 ‘왕따 동영상’이 한 교장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목포 모 중학교의 한 학생은 집단 폭행에 의한 뇌경색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얼마 전 부천에서 검거된 성인폭력 조직에서 밝혀졌듯이 중·고교 음성 서클과 연계되어 회식비, 활동비 등을 제공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조직원으로 흡수되는 이른바 폭력 조직의 재생산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파이터 클럽’이라 하여 온라인에서 회원을 모집하여 인적이 드문 공터 등에서 일대일 격투기를 통하여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는 등 청소년폭력의 양상이 갈수록 조직화·다양화·저연령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해 전학을 가더라도 이미 여러 가지 통신수단과 경로를 통하여 전학 간 학교에 알려지고, 그 곳에 가서도 집단 따돌림이나 왕따가 계속 이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초·중·고생 41%가 학교폭력에 대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하였고, 폭력피해로 교사나 학부모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조사한 결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39%로 가장 많았다. 오히려 보복을 당했다는 답변도 2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나 학부모들의 폭력 불감증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그 동안 교육계·청소년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수많은 원인 분석과 대책이 있어 왔지만 일시적인 일과성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가 주장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불감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학교폭력 전문 청소년 단체와 시민단체가 여러 해 동안 주장을 해왔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이 지난 해 12월에 제정된 일이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교육부내에 ‘학교폭력대책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시·도교육청에는 이와 관련한 전담부서를 설치토록 하였을 뿐 아니라 각급 학교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각급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예방 상담실과 전문상담교사를 둘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문제를 담당하는 책임교사를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이 특별법과 관련하여 교육부에서 시행령을 제정 중에 있다. 이 특별법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시행령의 제정 과정에서 학부모·교사·학생·청소년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 위원회에 청소년전문가가 필수적으로 참여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면의 원인을 살펴보면 학교와 교육계의 폐쇄성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되는 이유는 학교 내부의 문제로만 국한시켜서 처리하고 숨기기 급급하여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데 있어 왔다. [PAGE BREAK]따라서 이 특별법 시행령에는 각 위원회에 청소년관련 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학교폭력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찾고 개입하는데 있어서 보다 더 전문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학교폭력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사회 전체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고 이미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단절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청소년 안전망’을 구성하여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가정·경찰서·청소년 단체 등이 연계하여 문제 유발 가능지역에 대하여 순찰을 강화하고 문제 발생시 해당 전문가들이 즉시 개입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학교폭력의 문제는 개개인의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학교의 정규 교과과정에 인권교육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격적 존중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학생과 학부모·교사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채널이 확립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 간의 단절, 교사와 학부모 간의 단절, 자녀와 부모 간의 단절 그리고 학생과 학생 간의 단절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와의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학교폭력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학교폭력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인식하고 노력할 때 비로소 그 실효성을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성숙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근 | 미국 유타주립대 교환교수·전 한국국·공립고등학교장회장 합리적인 문화는 국가발전의 동력 몇 년 전 일본의 한 지방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일본정부의 장학금으로 유학 온 한 인도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1년간 일본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일본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다른 나라보다 부강한 선진국이 되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일본인 학생들은 우리보다 별로 우수한 것 같이도 보이지 않은데 말입니다. 교수님, 일본이 잘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어려운 답변을 대신하고 말았다. “일본사람 개개인을 후진국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비교해 보면 반드시 특별히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문화의식은 후진국 사람들의 것과 다르며 그 것이 일본을 다른 나라보다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후진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은 몇 년 또는 10년 안에 이루어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자기 국민의 문화의식을 바꾸는 것은 몇 세대 또는 세기가 소요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 온 우수한 후진국 학생들이 자기보다 크게 우수하지 못한 일본의 지방대학 학생들과 매일 같이 공부하면서 위와 같은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진지한 생각을 가진 학생이라면 당연히 느낄만한 일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국민이 다른 민족이나 국민보다 선천적으로 우수하고 부지런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모든 민족의 구성원은 적어도 태어났을 때만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민족간·국가간의 발전 격차가 발생했을까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인간이란 주어진 어느 사회에 태어나면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자라나게 되며 그 문화에 동화되면서 그 구성원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는 민족문화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수천 년의 역사와 더불어 이어져 온 민족사의 결과물이자 기후나 지리적 자연여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아온 우리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그리고 관습과 제도 등을 비롯해서 그 사회가 이룩해 온 유형무형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PAGE BREAK]따라서 진취적이며 생산적인 제도를 갖추어 합리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 문화와 고도의 기술을 유지 발전시켜 온 경험을 쌓아온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출생한 사람들에 비해 별다른 특별한 노력 없이도 기존의 문화를 흡수하여 계속 잘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유학생이 위와 같은 의아심을 갖게 되었음은 그 젊은 학생의 통찰력이 가상할만함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한 평가 돼야 공정한 경쟁 가능 최근 미국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을 위한 다음 세 가지 요인 가운데 어느 요인이 가장 중요한 역할과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연구하여 발표한 바 있었다. 즉 첫번째 자연적인 요인으로는 기후, 자연자원의 유무, 국토가 바다에 면해 있는지의 여부와 같은 지리적 위치 등을 포함시켰으며, 둘째 요인으로는 국가의 효율적이며 적절한 경제정책의 시행 여부를, 셋째 요인으로서는 국민경제를 뒷받침하는 관행, 관례, 법령 등 각종 제도(institutions)가 합법적이며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꼽았다. 여러 나라의 실례를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셋째 요인인 바람직한 제도의 운영이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되었다. 제도화된 관행, 관례, 법령 등이 경제성장에 적절하며 그것이 법에 따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 국가나 민족의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지식이나 의식은 짧은 기간 안에 발전 내지 변화될 수도 있으나 전체 국민이나 민족의 문화의식은 한 세기 또는 수세기가 걸려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 발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가 국가간의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비롯한 모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의 개발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육성은 당연히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교육의 효율성은 국제경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제경쟁에서의 교육의 중요성은 우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육은 그 나라 기술수준 제고를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앞에서 언급한 경제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바람직한 제도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그 운영’을 뒷받침 해 주는 국민문화를 보급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의 장점과 활력은 공정한 자유경쟁에서 생긴다고 우리 모두가 믿고 있다. 그런데 공정한 경쟁이란 공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공정한 평가란 평가를 하는 사람과 평가를 받는 사람과의 사이에 필요한 사회적이며 법적인 관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평가 결과를 사회가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공정하고 건전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에서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PAGE BREAK]되풀이하면 바람직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에서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며, 공정하고 활발한 경쟁이 보장된 나라가 경제성장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국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제경쟁에서의 우위는 물론 또한 나라발전의 중요한 요인인 효율적인 교육의 발전도 건전한 평가문화에 기반을 둔 활발한 자유경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의 공정하고 건전한 평가문화란 피교육자에게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 교육행정가 그리고 교육을 직접 간접으로 관장하는 각급 교육기관에서 더욱 더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 년 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있었던 한 강연에서 인도인 원로교수는 미국문화를 인도문화와 대비해서 성공지향적(成功指向的)인 문화라고 규정하면서 양국 문화의 차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가 있는 미국대학 내의 영어교육원의 교사도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미국문화를 소개할 때 “미국의 학교교육은 어릴 때부터 서로 경쟁하면서 자라고 경쟁결과를 존중하도록 일관된 경쟁유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해들은 바 있다. 미국의 힘의 근원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보장하되 경쟁결과는 공정한 평가를 통해서 사회가 존중해 준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평가와 경쟁과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경쟁지향적인 문화와 공정한 평가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문화란 한 종합적이며 통일된 문화의 양면을 이루면서 서로 보완해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평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조직체 내의 상하간의 관계가 엄격하고 또한 장유유서를 존중해 온 동양사회에서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는 물론 연장자와 연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대(尊待)말과 하대(下待)말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관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이 문화가 확연하게 다른 미국사람들의 언어관행과 행동거지를 보고 미국사회의 실체(實體)를 오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의 오해를 자아내기 쉬운 그들의 관행 가운데 우선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관습을 꼽을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미국사람들의 이름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첫째이름(first name) 가운데이름(middle name) 그리고 마지막이름(last name, 즉 성)으로 나눠져 있으며 처음의 두 부분이 우리의 이름에 해당하며 마지막 부분이 우리의 성에 해당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사적인 모임 등에서 미국사람들은 친근감이나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자기의 상사나 연장자를 첫째이름 그것도 애칭(愛稱)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즉, 로버-터(Robert, 남자이름)를 밥(Bob), 수-잔(Susan, Susannah, 여자이름)을 수-지(Suzy, Suzie)라고 부르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곤 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내외간에도 서로가 이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PAGE BREAK]그리고 사적인 모임에서는 부하들이 앉는 자세에서부터 대화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상사와 연장자에 대한 그 행동거지가 동양 사람들에게는 불손하게 보일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호칭의 사용이나 상사에 대한 태도 등은 아직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표면상에 나타난 미국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처음 보게 되는 외국인은 미국이야말로 자유분방하고 상하관계란 제약이 전혀 없는 진정한 자유평등의 나라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체나 사회의 운영실태를 면밀히 관찰하면 ‘누가 방침을 결정하고 또 명령을 내리며, 누가 그 정한 방침에 따르고 명령을 준수해야 하는가는 분명한 것’이 미국사회이란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이 같이 일을 위한 상하간의 역할분담과 구분 그리고 그 권능(權能)의 명확한 구분은 현재의 우리 사회보다 더 분명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미국제도나 문화를 모방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도 잘못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겉보기와는 달리 미국 사회의 모든 조직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상하간의 역할분담과 함께 구성원간에 권능과 책임의 구분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와 같이 구성되어 있는 조직체 안에서는 엄정한 평가와 이를 존중하는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이것이 바로 그들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사회에는 지도자가 있고 그에 따르는 일반대중이 있는 것처럼 모든 조직체는 의사를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이에 따라 집행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와 같이 다른 권능을 기반으로 한 상하간의 인간(사회적인) 관계는 조직체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조직체가 생산적으로 발전하려면 구성원의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를 존중해주는 바람직한 평가문화가 정착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활발한 자유경쟁을 통해 발전의 활력을 지속해 가려면 건전한 평가문화가 자유경쟁을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여 평가해주지 않으면 경쟁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공정한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인간사회의 현실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되풀이해서 강조하면 조직사회의 바람직한 상하관계, 공정한 평가문화의 정착, 공정한 자유경쟁의 보장,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의 제고 등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경쟁력도 공정한 평가서 출발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국제경쟁에서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교육의 발전과 효율성도 바람직한 평가문화에 바탕을 둔 공정한 자유경쟁의 보장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학교교육의 평가문화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 나라 교육의 깊은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 유타 주의 인구 약 6만 정도의 작은 도시의 공립고교 졸업식을 참관하고 우리 나라 교육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PAGE BREAK]같은 시내에 있는 유타주립 대학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오후부터 진행된 졸업식은 축제처럼 진행되었다. 계단식 관람석에 앉자마자 무엇보다 첫눈에 특이하게 보인 것은 단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처럼 학교장, 육성회회장단, 참석한 각급 기관장이 아니라 학생회 간부와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들이란 것이었다. 단상의 좌측 좌석은 학생들이 차지하고 단상의 우측 좌석에는 학교장 교육구청장과 그 간부가 앉아 있고 졸업식도 학생 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배부된 졸업식 관련 유인물의 첫 페이지는 식순이며, 둘째 페이지에는 졸업반의 학생회 간부이름이 맨 위에 있고 그 다음에는 성적최우수자(top scholar), 그 아래에 졸업식에서 고별연설을 하는 졸업생 총대표(valedictorian)의 두 사람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어서 성적평균 4.0이상을 취득한 우등생(4.0 scholars) 8명의 성명이 잇달아 적혀져 있는데 모두 크고 진한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개근상, 졸업생 명단, 다른 상의 수상자 이름의 순으로 실려 있었다. 학교장은 졸업장만 수여하고 한국처럼 회고사(回顧辭)는 하지 않고 그 대신 교육구청장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식순의 마지막에 있었던 사은사(謝恩辭)는 학생회장과 개근상을 받았든 두 학생이 각각 담당하는 것을 보았다. 졸업식 안내장에 대서특필로 기재된 성적이 우수한 학생 세 명이 졸업식의 다른 행사를 사이사이에 두면서 각자가 연사(speaker)란 이름으로 영광스러운 연설을 하게 한다는 것은 이들이 더욱 돋보이도록 한 것으로 우리 졸업식과는 전혀 달랐었다. 신기한 생각이 들어 며칠 후 교육위원회를 통해 학생들의 연설원고를 전해 받아 보았더니 내용이 교훈적일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열심히 노력하자는 다짐과 서로를 격려하는 좋은 내용이었다. 우리 나라 고교졸업식에서도 우등상이 있고, 최우수 학생은 전체 졸업생을 대표해서 학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으러 연단 앞으로 나가기도 하고 사은사를 읽기도 한다. 그러나 졸업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상에 자리를 하면서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할 수 있는 영광에 비길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같이 성적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이 졸업식장에서 연설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경쟁을 거쳐 우수한 성적을 얻은 학생들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학교교육에서도 평가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에 와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을 가능하면 너무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우리 나라 고교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는 두 나라 사이의 평가문화의 차이에서 온 현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고등학교는 입학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해당 지역의 모든 입학희망자를 성적에 관계없이 모두 받아들이는 일반 고등학교란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성적 격차가 심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우수한 학생은 대학에 진학했을 때 이수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목을 미리 고교 재학 중에 이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 고교에서는 위화감을 조장시켜 교육적으로 나쁘다는 이유로 능력별 반편성은 물론 난이도가 다른 교과목을 능력과 적성에 따라 선택하는 제도를 채택하는 것까지도 어렵게 되어 있는 우리의 사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타고난 재능과 각자의 노력이 자유경쟁을 통해 공정하게 평가받고 그 결과를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평가문화가 사회전반에 정착하지 않으면 능력에 맞고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PAGE BREAK]군(county) 교육구청에서는 매년 업적보고서(performance report)를 작성하여 공개하고 있었다. 관내 모든 초·중·고교의 각종 표준화된 시험성적의 연도별 대비, 주 전체의 평균과의 대비 등 학부모들이 자기 학교의 교육활동의 성과와 수준을 다른 학교 또는 지역과 대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자료가 되어있다. 또 이 보고서에는 학교시설 및 교원 현황, 학생 현황, 교육과정, 성적, 재정실태와 지원업무(support services) 등이 상세히 실려 있다. 그리고 군 전체에서 선발된 군의 그해 우수교사(teacher of the year) 한 사람과 각 학교마다 선정된 1명씩의 우수교사 성명이 이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최근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웃 일본 동경의 어느 교육구청에서도 불원간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보고서가 학교간의 과열경쟁을 부추기게 된다고 반대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면담한 군 교육구청의 부구청장에게 업적보고서를 공개하면 학교간의 과열경쟁을 유발하게 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군민(郡民)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교육이니 만큼 당연히 군민에게 평가결과나 실태를 보고해야 되지 않으냐”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이 업적보고서는 이 교육구청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어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교육의 활력소는 공정한 평가와 이를 철저히 공개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공정한 평가와 철저한 공개는 필수 다음으로 평가문화와 관련하여 필자가 가있는 대학의 실태를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대학은 학생 수 약 2만 3000명의 주립대학으로서 졸업식에서는 고교의 경우처럼 각 단과대학별로 그해의 우수교수(professor of the year)가 발표되고 그 결과는 교무처 앞 복도에 액자에 넣은 사진과 함께 연도순으로 게시하고 있다. 그리고 수상자 본인의 연구실에도 같은 사진(상패)을 게시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평가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존중하고 수상자 자신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대학은 이와 같은 교수 표창제도에 관한 의식 내지 문화가 미국 대학과 다르고 실제로 평가에 대한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어 그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한 한국인 교환교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과목의 강의는 학기말에 학생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 평가의 요약이 대학의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참고토록 교무처 앞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평가문화가 얼마나 깊게 정착되어 있는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과장은 소속 교수를 평가하며 또 소속교수는 자기 학과장을 평가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단과대학장도 5년마다 업무수행에 관한 종합평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자기 대학의 평가결과도 철저히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발견하고 평가에 관한 의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입학희망자들이 가장 많이 참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대학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지의 연례 전국대학 평가에서 이 대학이 3등급(삼류대학이란 판정)을 받았다고 명확하게 기록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PAGE BREAK]더욱이 같은 사이트에는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대학들 가운데는 2등급인 대학과 또는 4등급의 평가를 받은 대학의 이름도 게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평가문화가 우리와 판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대학이 3등급에 속한다는 것을 인터넷에 공개하면 지원자가 줄어들지 않으냐”고 한 미국인교수에게 물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약에 3등급에 속하는 대학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면 사람들은 이 대학을 더욱더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이 점이 공정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또는 미국과는 다른 형태의 평가문화를 가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학은 정착된 평가제도에 따른 평가결과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수요 공급에 따라 상품의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것처럼 교수의 봉급도 전공 분야의 수요 공급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 있다. 동일한 경력의 회계학 교수의 연봉이 사회학과 교수의 꼭 2배가 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학과 교수보다 봉급이 더 적은 영문과 교수와 회계학과 교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공과대학 교수의 연봉 차이는 더 클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양국간의 문화의식의 차이라고 넘기기보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대학에서도 공정한 평가와 자유경쟁 하의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교수들의 보수체계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는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서로서는 이런 현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것이나 미국사람들은 이를 잘 참고 실천해 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위크(Newsweek)지는 2003년 6월 2일자에서 ‘미국 내의 가장 우수한 100개의 고등학교’ 명단과 그 순위를 대서특필로 보도하면서 학교간의 경쟁과 높은 수준의 시험에 도전하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도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평가는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경쟁을 촉진시킨다고 받아들이는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는 우수한 학생 우수한 학교를 높이 치켜세우는 것을 마치 사회에 위화감을 조장시키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나라 발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현장의 공정한 평가문화 절실 한국 유학생에 관한 추천서를 믿지 않는 미국대학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리고 한국학생의 토플(TOEFL)점수도 믿지 못해 전화 인터뷰를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한 한국인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일부 한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작성해 오는 추천서에 교수가 서명만 해서 그 추천서를 바로 학생 본인에게 교부하게 되며 또한 추천의 대상인 본인이 자기가 희망하는 미국대학에 제출 내지 송부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천을 받는 사람이 자기 추천서의 내용을 작성한다는 것과 그것을 바로 본인에게 다시 교부한다는 것 모두가 미국의 관례에서는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소위 ‘족집게 토플 학원’의 훈련을 받아 취득한 고득점은 그 점수에 상응하는 영어구사능력이 없다고 미국대학 당국이 감지한 것 같다고 씁쓸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PAGE BREAK]한 사회의 사람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장소(거주 지역 포함), 직업, 계급 등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난이도(難易度) 즉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그 사회는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교육의 자유경쟁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즉 계층간의 이동이 쉬워야 사회정의 구현의 기반이 선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이 속해 있는 가정의 사회경제적인 사정이 학생의 교육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많이 논의되어 왔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처사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는 이상 다소의 빈부격차는 있게 마련이며, 학교교육에서 공정한 평가를 통한 자유경쟁을 유도하지 않고 오히려 제도적으로 이를 억압 내지 획일화함으로써 빈부의 격차를 막으려 하거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빈부의 차를 교육현장에서만은 가리려고 하는 것은 모순된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사회경제적 정책의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지 교육현장에서 이를 지나치게 문제 삼는 것은 모순된 사리일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 나라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과열현상과 사교육비의 과다지출 및 대학입시경쟁의 과열 등은 좀 더 깊이 생각하면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데 그 원인의 일부가 있으며 나아가서는 자유경쟁의 부재 내지 그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데서 오는 부분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편안함, 이득, 권리 등은 곧잘 주장하되 남으로부터 평가받는 것은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체에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과 이를 집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평가가 없으면 자유경쟁이 불가능하며 자유경쟁이 없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지배적인 경향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인류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이상경(理想境)을 갈구해 온 인간의 몸부림에서 보면 유감스러운 일일뿐만 아니라 서글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의 꿈을 이루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교육현장에서 공정한 평가문화가 정착하여 합리적인 자유경쟁이 이루어져야만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교육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특히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나라 교육에서의 평가문화의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며 공정한 평가에 바탕을 둔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해야 교육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란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자유와 평등이란 소중한 두 개의 가치를 구가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한 평가문화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며 활발한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체제의 요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삼 새겨야 한다. 달리 말하면 미국 체제의 강점은 엄정한 평가와 냉엄한 자유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오랜 꿈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발전도 교육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교육을 직접 간접으로 담당하는 사람과 기관 모두가 얼마만큼이나 공정한 평가문화를 정착시키며 또한 자유경쟁을 활성화해 가는가에 달려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김영춘 | 한국교총 교권옹호국 Q 얼마 전 신규임용된 교사입니다. 임용전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교대에 입학하여 졸업을 하였는데 현재 호봉에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동등 정도의 학교 인정에 의해 두 번째 대학에서 수학한 기간을 호봉에 반영하여 호봉 정정을 신청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호봉의 변경에는 호봉 정정과 호봉 재획정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호봉 정정은 호봉 획정이나 승급의 잘못으로 인해 보수가 과소 지급된 전 기간에 걸쳐 소급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호봉 재획정은 누락 경력 등재, 자격 변동, 승급 제한기간의 산입 등의 사유로 인해 행해지며 과소 지급된 보수는 소급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초임호봉 획정과 관련하여 동등 정도의 학교 인정(8할)을 위해 인사기록카드에 관련 사실을 기재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즉, 증빙서류 제출의무가 선생님에게 있었는데도 선생님께서 제출하지 않았었다면 호봉 정정이 아닌 누락 경력 등재로 인한 호봉 재획정이 될 것입니다. 이때 호봉 재획정이 이뤄지므로 과소 지급된 보수의 소급지급은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관할 교육청의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 선생님이 불이익을 당했다면 그 귀책사유가 관할 교육청에 있으므로 호봉 정정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과소지급된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호봉정정 발령일로부터 향후 3년(민법163호, 급료의 단기소멸시효)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인사기록카드 등재와 관련 증빙자료 제출과 관련하여 선생님과 교육청의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 교육공무원보통고충심사제도를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교육공무원이 봉급, 수당 등 보수와 관련하여 고충이 있을 경우에는 교육공무원법 제49조에 의거 보통고충심사위원회에 고충심사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신청방법은 별도의 절차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겉봉에는 ‘고충심사의뢰용’이라고 쓰시고 수신인은 관할 교육청의 교육감으로 하시면 됩니다. 기재 사항으로는 주소, 성명, 생년월일, 소속기관명 및 직급, 청구의 취지 및 이유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심사결과에 불만이 있으시면, 중앙고충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신인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되며, 보통고충심사위원회의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해야 합니다.
김영화 | 서울 영중초 교사 예로부터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고, 또한 나의 가장 큰 꿈이 교사가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교사가 되기 전에는 이런 말이 이해가 정말 되지 않았다. 남을 가르친다는 일은 누가 보아도 좋고 쉬운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고 나서 기쁜 일도 많았지만 마음 아픈 여러 순간들을 경험했었다. 5월이 되면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행복한 가정, 사랑이 싹트는 가정을 흔히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본 아이들 중에는 이러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많았다. 오히려 이런 학생들에게는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과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들은 너무도 어려서 부모님께 의존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속상해 한 적이 많다. 내가 교육대학교 3학년 때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로 실습을 간 적이 있다. 대학시절 4차례의 실습이 있었는데, 그 당시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던 나에게는 꽤나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내가 갔던 실습학교는 프로그램이 매우 빡빡하여 동기들이 지원을 꺼려하던 학교였다. 나는 교생으로서 학급 전체의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도 짧고 실습 중에는 매우 바쁜 일정이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 교실에 가면 학급의 학생 중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학생이나 그 동안 담임교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아동을 찾아 2주 동안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며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는 사랑을 받는 학생에게도 기쁨이겠지만 나의 사랑을 받고 밝은 표정으로 변화되어 가는 학생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실습에서는 어떤 아이를 만날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간 교실에서 처음 만난 학생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비쳤고, 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했다. 이번 실습에서 만난 나의 사랑을 받을 아이는 바로 ‘영혜’라는 남자아이였다. 영혜는 표정이 밝지 못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매우 쑥스러워 하는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며칠동안 영혜를 지켜보며, 참 너무 예쁜 아이인데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고 숙제 또한 잘 챙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혜에게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를 아는지 영혜도 나에게 조금은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영혜는 내가 교생선생님이라 편해서 그랬는지 가끔은 “선생님, 피아노도 못 쳐”라든지 “선생님이 글씨도 못써”라는 식의 반말을 하곤 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실습이 끝날 쯤 알게 된 사실인데, 영혜네 가정은 어머니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 교통사고의 보상 문제로 바쁘게 지내셨고, 영혜와 어린 동생들은 제대로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PAGE BREAK]실습이 끝나기 3일전 아침이었다. 나는 영혜에게 “선생님 좀 도와달라”며 음악실에 단둘이 학습자료를 챙기러 간 적이 있다. 평소 아침도 먹지 못하고 오는 영혜가 너무 안쓰러워 집에서 챙겨온 작은 초코파이를 영혜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곤 다른 아이보다 덩치가 작은 영혜를 무릎에 앉히고 영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영혜가 늘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영혜는 너무도 씩씩하더라. 영혜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었다. 교생실습이 끝날 쯤 영혜는 나에게 편지 2통을 주었다. 한 통에는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선생님께 반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자기처럼 씩씩하게 꼭 키우라’는 부탁(?)의 말들이 들어 있었다. 실습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떠나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혜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영혜에게 정을 주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더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질 못하면서 정만 들인 것 같아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실습이 끝난 후 다시 한번 교실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보고싶던 영혜는 교실에 없었다. 영혜 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어 큰집에 아이들만 보냈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영혜는 씩씩하게 자라서 중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도 가정이 어려운 학생을 만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없다는 사실에 속상할 때가 많다. 그런 학생일수록 학습상태가 좋지 못하여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또한 돌봐 줄 사람이 없다. 그런 학생에게 교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올해 교사로서 4년차에 접어든 나는 5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학기초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적도록 한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의 직업, 나이, 이런 것들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놀아주는 사람은?’, ‘우리가정의 고민거리는?’, ‘밥먹는 시간은?’과 같이 아주 평범한 내용을 적는다. 5학년쯤 되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과 면담을 통해 가정 환경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학생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서 가급적 이런 내용은 묻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의 환경을 알려고 해도 학생들이 이미 마음을 닫아버린 경우가 많아 이러한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올해는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더욱더 마음이 쓰였다. 우리 반에는 현철이라는 아이가 있다. 현철이는 엄마가 집을 나가 어려서부터 아빠와 할머니에 의해 길러졌다. 다행히 현철이 아버지는 현철이에게 다정다감한 분이신 듯하다. 하지만 현철이에게는 항상 현철이 아버지가 피우시는 지독한 담배 냄새가 배어 있다. 현철이는 유치원 때 엄마가 딱 한번 자기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그 때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고 그 얼굴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철이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여 우리 반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학생이다. 하루 일과중 내가 우리 반 아이들 일기검사를 하는 동안 ‘오늘은 우리 현철이가 무엇을 적어왔을까?’ 하는 기대로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준영이는 자폐와 우울증이 겹쳐 4세 수준의 사고력을 가진 아이인데, 교사로서 나에게 여러 가지 고민들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급에 잘 적응하고 있고, 우리 반 학급 친구들은 준영이를 평범한 친구로 대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학급 활동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급식을 먹고 자기가 스스로 치우는 일, 친구들과 청소를 함께 하는 일, 체육시간에 줄을 맞춰 서는 일 등 남들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일을 준영이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PAGE BREAK]우리 반 아이들의 이런 상황은 나에게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할 의지를 안겨주었다. 오랜 고민 끝에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에게 현재보다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학급에서 마음 편하게 생활하며 학습 능력이 향상되도록 도와줄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정말 한계가 있다. 가정에 돌아가면 제자리이고, 또한 1년이 지나 나와 헤어지면 가끔 만나 안부를 묻고 애정을 표현하는 일뿐이니 말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 올해에는 유네스코에서 운영하는 CCAP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학기초라 너무도 바빠 제대로 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해 포기한 나에게 행운처럼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나라에 있는 여러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수업을 해주는 것으로 캐나다인, 영국인, 일본인 등 총 6명의 선생님이 오셔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벌써부터 캐나다에 관한 책들을 읽고 다음에 오실 선생님을 정하는 등 모두 너무도 즐거운 고민에 빠져 살고 있다. 1년이 지나 우리 아이들에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을지 기대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훌륭한 교사는 따로 있지 않다고 본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학년 동안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부모’로 남는 것이다. 사실 학년이 끝나면 내가 옛날 제자들의 부모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새 선생님은 더 좋은 분이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또한 새 담임 선생님께 내가 학부모가 된 것처럼 부탁의 말들도 잊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헤어질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해주곤 한다. 아마 부모님 다음으로 너희를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선생님일 거라고.
최홍숙 | 충남 공주 학봉초 교사 20여 년 전, 6학년 담임을 하던 때의 일이다. 학생들을 하교시키기 직전 교무실에서 우리 반 철수를 호출해 갔다. 사전에 아무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 그 애가 왜 불려 갔는지 몰랐다. 철수는 금방 돌아왔다. 책가방을 챙겨 보내려고 하는데 녀석의 가방 속에서 닳고닳아 짤막해진 부엌칼이 교실 바닥으로 뒹굴어 나왔다. 어딘가에 갈고 갈아 자기 손안에 들어올 만하게 만든 것 같았다. 시선이 철수한테 집중된 터라 나와 반 애들 모두 한순간 흠칫 놀랐지만 캐묻지 않았다. 녀석은 흘끗 눈을 치떠 담임인 나의 눈치를 한순간 살피더니, 얼른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날은 아무 말 없이 하교시켰다. 그 때, 내가 다니던 그 학교는 전통(?)적인 좀도둑 조직이 있었다. 중간놀이나 운동회 연습차 운동장에 나가면 돈을 잃어버리는 선생님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핸드백을 갖고 나가거나 교무실에 맡기고 나가곤 했었다. 교실에 잘 둔다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캐비닛의 자물쇠 장치를 뜯어내고 선생님들의 지갑을 털어 갔다. 모두가 운동장에 나가 있었으니 재학생을 의심하긴 어려웠다. 근처 불량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분명 내부에도 내통하는 자가 있었다. 가정환경이 안정되지 못하거나 부모님이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빠 방임상태의 학생들이 불량친구의 꾐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어수선한 환경 속에 있었던 한 녀석이 철수였다. 교무실에서 전해준 이야기는 여러 명이 남의 집 창문을 타고 넘어가 저금통 훔치기, 목욕탕 엿보기 등의 좀도둑질을 했단다. 저금통은 한두 집이 털린 것이 아니라 꽤 여러 집이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경찰관이 조사하러 와서야 모두가 알게 됐지만, 당장 내일 그 녀석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였다. 녀석은 비쩍 마르고, 작고,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이튿날 하루 일과는 숨가쁘게 팽팽 돌아갔고 녀석은 흘끔거리며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마땅히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무렵엔 모두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던 때였다. 나는 도시락을 녀석의 책상에 갖다 놓고 마주 앉았다. “철수야 선생님하고 점심 같이 먹자.” 녀석은 꼼짝없이 숨을 죽이며 할 수 없이 도시락을 내놓고 같이 먹기 시작했다. 침묵이 싫으니까, 나는 당연히 이것저것 물었다. 어제 일만 빼고…. 식구는 몇이니? 부모님은 뭐하시니? 네가 좋아하는 과목은? 뭘 잘 먹니? 커서 뭐가 될래? 부모님은 시장에서 옷가게를 한단다. 누나가 하나 있는데 중2란다. 도시락은 누나가 싸주었단다. 아마 밤늦게 들어오신 부모님이 도시락까지 챙겨주진 않으셨나 보다. 그래도 반찬이 맛있다며 내 꺼 한번, 녀석 꺼 한번, 번갈아 가며 도시락을 비웠다. 반찬은 짜디짠 무 장아찌였지만 참 맛있다고 해 주었다. 그 때 맛있다고 했을 때, 녀석이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나는 장아찌 반찬을 먹으며 녀석과 친해졌다. 좀도둑 사건은 발설하지 않았으므로 반 친구들도 몰랐고, 그 녀석도 나도 그 사건을 모르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PAGE BREAK]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그 해 크리스마스날이었다. 우리 집 편지함에 우체국 마크가 찍히지 않은 편지가 꽂혀 있었다. 보니까 녀석이었다. 선생님의 사랑에 고마워하며 나쁜 짓 하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때 무렵엔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 집에 무척이나 놀러 오고 싶어했었다. 그 뒤로 몇 해가 바뀌는 동안 걸어와서 넣어 놓고 간 편지가 들어 있었다. 4∼5년 계속되다가 아주 끊어졌다. 보낸 이의 주소가 없으니 답장을 할 수 도 없고 그렇게 녀석은 내 가슴속에 지금도 남아 있다. 철수야 어디 있니? 떳떳하게 선생님 앞으로 나오렴, 선생님 집까지 왔으면서 왜 들어오지 못하고 도망치는 거니? 너 중·고등학교 다닐 때 몰래 와서 편지 넣어 놓고 갔었지? 그리고 너 군대 갔을 무렵부터는 편지가 없더라. 휴가 올 때 들어오지 그랬어. 작고 말랐던 네가 무지하게 컷을 거야. 지금 애 아빠가 되어 있거나 여자 친구가 있겠구나? 데려와 같이 들어오너라. 네게 딸린 식구들에게 선생님한테 사랑 받고 학창시절을 보냈노라고 자랑하렴. 벨만 누르면 되는걸…. 철수야 네 모습이 정말 보고 싶다. 기다릴게. 나는 그 때 그 철수가 보고 싶어 이렇게 수신인 없는 편지를 허공에 날린다.
박만춘 | 충남 보령 한내초 교사 “성현아,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배구를 왜 그만 두었니?” “엄마가 공부 못 한다고 하지 말래요.” 성현이는 중증도 비만이다. 서른 여섯 명 친구들 중 유일한 비만 친구이다. 다행이 키도 커서 비만이 지나치게 부담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 특색은 초등배구여서 담당선생님의 눈에 성현이가 뽑혔다. 성현이는 싱글벙글 좋아하며 방과후에 다른 선배들과 동료들이 함께 모여 배구를 하게 되었다. 공 다루기를 무척 좋아하는 성현이는 형들의 멋진 경기를 눈여겨보고, 즐겁게 따라 하면서 잘 적응해 나갔다. 그 모습이 담임인 내가 보기에도 무척 예뻤다. 그런데 열흘쯤 지난 뒤 돌연 연습을 빠지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엄마가 공부 못 할까봐 하지 말라고 말리기 때문에 하고 싶은 배구를 할 수 없다는 성현이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배구는 성현이의 큰 몸매에 걸맞고 본인도 좋아하건만 운동하는 아이는 공부를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 뚱뚱한 몸이 교실의 딱딱한 의자에만 붙잡혀 있게 된 것이다. 요즘 운동만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붐이 일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아침저녁으로 뛰는 운동을 하는 인구가 많아졌다. 꼭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배구를 하면 성현이의 비만 관리에도 도움이 되고 동료들과 정도 들어 학교 다니는 즐거움을 하나 더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거기다 오랜 훈련 끝에 대외 경기에서 우승이라도 하면 성취감에 기쁘기도 하련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아이의 욕망이 좌절되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된 또 다른 인격체라고 말하면서도 흔히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강요하여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소질이나 특성을 바르게 파악하여 그에 합당한 취미를 기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반 편성을 할 때 아이의 특성을 고려하여 문예반, 수학반, 과학반, 미술반, 서예반, 기타반, 만화그리기반, 축구반, 발명반 등으로 분반하기를 권한다. 다소 인기 있는 반에 지원자가 몰리는 경우에는 적절히 두 번째의 취미 반으로 들어가도록 하여 조절하면 된다. 현재 주 1회 정도 특별활동 시간에 취미반을 찾아가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는 시간이 너무 적어 효과가 적다. 선생님의 숨은 재주를 마음껏 활용하기에도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예를 잘 하시는 선생님과 또 서예를 지속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한 반을 이룬다면 학생과 교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정열을 기울여 배우고 익히며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시간을 배정하면 실력이 늘고 친구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자기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며 친화감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담임교사는 정해진 한 시간 외에도 적절히 아침자습 시간이나 방과후의 시간을 이용하기도 수월할 것이다. [PAGE BREAK]어떤 직업이든지 남모르는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36명 내외의 어린이들이 한 반으로 생활하면 갖가지 태도가 다 나오는데 이때 모두의 태도를 다 좋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말로 좋게 타이르고 잘 따라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성장기 어린이는 신체 발달의 겉모습만큼이나 마음의 키도 다양하다. 칭찬을 받을 때도 있고 꾸지람을 받아 마땅할 때도 있다. 어린이와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아이가 칭찬만 받기를 원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되도록 칭찬만 받을 정도로 학교생활이 즐거우려면 어린이가 좋아하는 과목을 많이 배우는 취미반 편성이 매우 필요하다. 공통의 정서를 가진 교사와 학생들 간에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바가 더 깊고 융화도 잘 될 것이다.
전국 교사대 예비교사들이 목적형 교원양성임용제도 실현과 교직이수 및 임용고사 철폐를 주장하며 이틀간의 경고 동맹휴업과 대규모 연합집회를 가져 향후 교원양성임용 문제를 놓고 정부와의 전면전이 예상된다. 지난달 29일 동맹휴업에 들어간 전국 56개 교사대는 경고 동맹휴업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예비교사 결의대회’를 갖고 중장기적 교원수급계획 마련 등 7대 요구안 관철 투쟁에 돌입했다. 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전사련), 서울지역사범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사협), 전국교육대학학생대표자협의회(교대협), 지방사범대학생연합(지사련) 깃발 아래 참가 학생만 2만 여명 이상이 운집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목적형양성임용제도 실현 △교직이수제도 철폐 △미발령자 특별법 폐기 △임용고사 폐지 및 자격고사화 △공무원총정원제 폐지 △중장기 교원수급계획 마련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중단 등 7대 요구안을 내걸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단계적이고도 강도 높은 연대투쟁을 선언했다. 경쟁을 해야만 교사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환상이며 양성임용과정에 끼여든 시장논리가 오히려 교사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게 학생들의 논리다. 투쟁사에서 박인철 인하대 사대 회장(교육학과 4)은 “시장논리와 개방형 양성임용체제에 의해 속성 배출되면서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교사들이 교육의 질을 높일 수는 없다”며 “올 하반기부터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연계자격증, 수습교사제, 계약직화, 교사대 통폐합 등의 개방형 체제를 단호히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목적 사대를 실현해 소명의식이 분명한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고 사대 교육과정을 내실화 해 자질과 실력을 갖춘 교사를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용고사 폐지와 교직이수 철폐도 이와 괘를 같이 한다. 박성진 서원대 사대 회장(영어교육 4)은 “한국교사들은 노량진에서 양성된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임용고사는 시험 잘 치는 교사를 선발할 뿐”이라며 “현행 임용고사를 폐지하고 일정한 질 이상을 갖춘 교사를 선발해 목적성을 강화하는 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교직이수제도에 대해 “사범대에서 양성하지 못하는 과목 교사를 배출한다는 당초 취지에서도 벗어나고 전문성 확보에 턱없이 부족한 학점을 이수하면서 사대생의 두 배나 배출되는 상황이 양성과 임용의 균형을 깨뜨렸다”며 “교직이수제도가 존재하는 한 가산점 제도는 위헌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양성임용제도를 개선할 수도 없다”며 철폐 투쟁을 외쳤다. 국립사대 미발령자 문제는 정원 외 선발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성근 공주교대 총학생회장은 “특별법은 사실상 교대 특별편입을 규정하고 있지만 교대와 미발추 모두 교대 편입을 단호히 반대하며 특별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그들을 초중등 교사 정원에 포함시키지 말고 정원 외 특별채용 형식으로 전원 중등교사로 임용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혜민 전국예비교사총궐기준비위원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은 “우선 5월 12일 교육부가 발표할 공교육 개편안과 8월 제시될 교원양성체제 종합대책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과 교사대 교육과정 정상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이후 투쟁방향 설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오늘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을 계속한다면 하반기부터는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비교사들의 주장에 일선 교원들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인다. 경기 송호중 이영관 교감은 “목적형 교원 임용제도 실현은 지방사범대에서도 우수 학생을 유치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 균형발전과 사회 공공복리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북 A여고 S교사는 “현재 교육대학원 강의를 나가고는 있지만 교육대학원이나 교직 이수로 자격증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총도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교육부는 정부는 그간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한 교원양성임용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땜질 식의 교원수급정책을 남발해 교원수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더 이상 미온적인 대응과 무책임한 태도로 예비교사를 동맹휴업과 거리시위로 내몰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어 △가산점 위헌결정에 따른 후속조치 마련 △목적형 교원양성임용제도 실현 △일반대학 교직과정 제한 △사범대발전특별기구 설치 및 사범대발전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한편 교육부는 8월말까지 교사 임용양성체제를 전면 손질한 '교원양성체제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하고 지난달 26일 교원양성체제개편추진단(단장 정진곤 한양대 교수)을 구성했다. 또 헌재가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가산점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법률적 검토도 5월말까지 마치기로 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주최로 지난 23일 서울교대 사향관에서 열린 교원인사제도혁신방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본지 4월 26일자)는 전교조의 방해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날 토론회는 전교조 측 토론자가 불참한 가운데 이상진 교장(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과 조흥순 한국교총교권정책본부장, 김희규 한교조 정책위원장, 강소연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회장, 진동섭 서울대 교수가 토론원고를 제출했다. 쟁점별로 토론자들의 주장은 다양했으나, 교사직과 교육행정가직으로 이원화하고 교사자격을 다단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5명 중 3명의 토론자가 찬성했다. 다음은 4월 26일자 교인혁 주요 내용 소개에 이어 배포된 자료를 통해 토론자들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 ▲ 수석교사제 도입=진동섭 교수는 '2급 정교사→1급 정교사→수석교사'의 3단계 교사자격체계를 제안했다. 그는 수석교사는 1급 정교사 이후 10년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전문화된 연수과정을 거쳐 부여하되, 교장과 교감은 수석교사로의 진입을 막고, 수석교사는 자격연수 후 교감 임용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상진 교장은 2급→1급→선임교사→수석교사의 4단계 안을 제안하며 선임교사는 교감으로 전직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흥순 본부장은 "일정 조건을 갖추면 인원에 제한 없이 수석교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교장선출보직제 실험 운영=조 본부장은 "교장선출보직제는 오랜 논의 끝에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아 도입하기 어려운 정책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이 때문에 전교조와 일부단체가 합의를 깨고 탈퇴했다"며 "왜 교장선출보직제가 기조발제에 제시되었는지 교육개발원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진동섭 교수는 "교장선출보직제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특수한 교육목적이나 여건을 가지고 있는 학교(예 대안학교)에서 실험적으로 실시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동료교사 다면평가=조 본부장은 동료교사다면평가제는 학습지도 영역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평가자에 대한 수업공개는 전시수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동료교사에 의한 다면평가는 개인별 친분 등 인간관계가 평가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학생·학부모의 교사 평가=김희규 정책위원장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사평가는 아직은 적절치 않다"며 대안으로 학교단위 경영평가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방안과 고교단계에서 학생이 학급경영과 학교경영에 참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조 본부장은 "외국에서도 대체로 교감, 교장 등 학교행정가와 장학진을 평가자로 하고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강소연 회장은 "학부모가 전문성이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학부모를 참여시키던 지, 학부모와 학생의 평가자로서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부적격 교사 조치, 우수교사 포상=조 본부장은 우수교사의 발굴지원보다는 존경할만한 교원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물질적인 포상보다는 정신적 명예를 부여하는 쪽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장은 "평가결과로 부적격 교사를 가려내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장평가제 도입=조 본부장은 평가에 앞서 교장의 직무설정과 학교평가와는 관계부터 명확히 설정할 것과 평가주기는 2년이 적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장 초빙제 개선=강 회장은 초빙교장 자격요건을 최소화해 교장 자격증이 없더라도 유능한 인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장 공모제 도입=진 교수는 교장 공모제는 평교사에게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개혁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한 뒤 "조직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다양한 구성원들로 심사기구를 구성해 실시한다면 굳이 교육경력요건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강 회장은 "개방적 경력제로 다양한 인사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일반인도 교장직에 공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 반면, 조 본부장은 "공모제가 현 승진제도보다 더 유능한 교장을 뽑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