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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굳게 닫혔던 학교 교문이 무려 80일만에 열렸다. 고교 3학년생들이 5월 20일부터 등교 수업을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등교 개학이 미뤄진 지 80일 만이다. 다섯 차례 등교개학이 연기되면서 최대 현안인 대입을 비롯한 학사 일정과 교육과정 정상 운영이 불투명해지는 등 발을 동동 굴렀던 고3 학생들은 일단 등교개학과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게 중론(衆論)이다. 물론 등교 개학, 교실 수업을 시작했지만, 교내 집단감염 우려를 하는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다. 국민들도 등교개학의 시기상조를 우려하고 있다.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등교 수업을 강행한 것은 코로나19 발생 상황이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고교 학생 단체가 조사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79.7%가 20일부터 고3의 순차 등교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질병관리본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과 연대해 학교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전국적으로 24시간 비상 대응 체계를 유지해 코로나19 의심 증상자나 확진자가 나올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교육 당국은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추고 등교 개학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며 각급 학교는 수업 현장에서 감염이 예방을 대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이미 등교개학 후 일일관찰시스템 구축과 일시적관찰실 마련, 각 실 방역, 그리고 감염병 발병 시의 대처 모의훈련 등을 수 차례 진행한 상태다. 이번 유.초.중.고교 등교개학은 5월 20일 고3을 시작으로 27일에는 고2·중3·초1∼2·유치원생, 6월 3일 고1·중2·초3∼4학년생, 6월 8일 중1·초5∼6학년 순으로 전국 학교 및 유치원에서 등교·등원을 시작한다. 일반적인 정상적 학사 일정과 교육과정에 따르면 개학일인 3월 2일부터 따지면 무려 80일 만에 학교 문이 열리는 셈이다. 방학 기간이 확 줄었지만, 혹서기인 7월말에는 여름방학을 해야 한다.지난 4월달 말에서 5월 초 소위 황금연휴 기간에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지만, 문제의 클럽을 방문한 학생, 교직원, 원어민 보조 교사 57명에 대한 코로나19 진단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으로 나타나천만다행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예측대로 현재 코로나19 상황의 종식 시점을 알 수 없고 가을에 2차 대유행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진학 및 사회 진출을 앞둔 고3의 등교를 무기한 연기할 수는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대입이 코 앞에 닥친 고3의 경우 원격 수업만으로는 진학·진로 지도가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도 올 연말, 내년 연초 제2차 코로나19 창궐을 경고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역별·학교별 상황에 따라 학생을 분산시키면 등교 이후에도 생활 방역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지역·학교별 상황에 따라 학년·학급별 격주 등교와 등교·원격수업을 하루씩 번갈아 하는 격일제 등교, 오전·오후반 2부제 등교 방안 등을 제시했고 각 학교들은 사정에 맞는 방식을 택해 등교를 준비했다. 등교개학 후 세부적인 운영은 각급 학교와 학교장에게 일임한 상태다. 서울교육청의 지침을 중심으로 보면, 고3은 원칙적으로 매일 학교에 나가게 되고, 고 1∼2는 격주 등교, 초·중학교는 원격 수업을 병행하되 수행 평가 등을 위해 주 1회 학교에 나가는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등 일부 지역에선 중3도 매일 등교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코로나19 전파 위험을 낮추고 학생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과밀학급, 과대 학교는 학교 내 음악실 등 넓은 특별 교실을 활용하고 분반 수업 등의 방식도 동원하게 될 전망이다. 거대학교와 과밀학급은 학생들을 분반해 실제 수업반, 영상 수업반으로 운영(시청)하는 미러닝(Mirroring) 학습도 고려 중이다.일부 교육청에서는 30명 이상 과밀학급 분산을 위한 컨테이너 교실을 도입하고, 시차 등교와 1교시당 5분 이내 단축 수업도 제시했다. 서울교육청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특히 크다는 점을 고려해 2020학년도에만 한시적으로 초등학교 교외체험학습 허용일을 19일 안팎에서 34일로 늘렸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등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곳도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았던 대구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등교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생들에게 등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등교하더라도 당분간 야간 자율학습(야자)과 보충수업은 금지되고 수업 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주지하다시피 학교에는 수업일수, 수업주수, 수업시수를 비롯한 학사 일정과 교육과정의 기준이 있다. 만냐 등교개학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등교 개학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고, 시기를 무작정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엄연한 학교로 연간 수업일수 180일인 유치원이 아직까지 온라인·원격 개학·수업도 하지 못하고 재택 돌봄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고3부터 등교개학이 시작된 지금, 이제 우리는 코로나 19 감염증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등교수업이 원만하게 연착륙할 수 있도록 국민적 생활 방역 실행과 기초적 위생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혹시 확진자가 발병하면 학교를 방역 폐쇄하고 온라인·원격수업으로 회귀한다는 소극적 대처보다 선제적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 학생들이 완벽하게 안전·건강을 담보한 채 등교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 대비.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부, 질본, 중대본 등을 비롯해 전 국민들의 코로나19 종식과 안전한 등교수업을 위한 협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 종식과 정상적인 학교 운영의 시작은 이제부터인 것이다.
교직 생활 30년을 넘기며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3월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을 대하지 못하는 온라인 개학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마다 코로나19로 인한 출입 통제란 빨간 문구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밀고 당기고 조잘거리며 달음박질해야 할 교실과 운동장은 긴 침묵 속에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39주년 스승의 날은 텅 빈 교실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 한 구절도 들을 수 없다. 작년 스승의 날 오후였다. 학교 건물 사이 나이를 더한 느티나무 그늘에 봄바람을 맞으며 몇 명의 아이들이 과수원 길과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실바람처럼 잔디밭을 가로질러 창틀을 넘어 잠시 컴퓨터 자판에 지친 손을 잠시 멈추게 했다. 괜히 움츠러드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은은한 화음에 선생님이란, 스승이란 말은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작은 감동이 전해졌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점령당한 지금은 아득한 그리움이다. 텅 빈 교실에서 맞는 스승의 날 잠시 손을 놓고 창밖을 본다. 태극기는 오월의 청잣빛 하늘에 펄럭인다. 마치 아이들을 부르는 모습이다. 제일 늦게 잎을 피운 대추나무의 연한 잎이 고사리손같이 가냘프게 흔들린다. 비록 늦게 움터 꽃을 피우지만, 가을엔 달콤한 대추를 주렁주렁 매달 것이다. 늦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시계에 순응하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세간에는 스승의 날 대신 교사의 날이 되었으면 바라는 이도 있다. 청탁금지법과 교권침해 등 흔들리는 교단의 모습을 보며 스승의 날이 왜 있는지 원망의 목소리도 울린다. 우리 사회에서 교직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기지만, 교사들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착잡하다. 자연히 교심이반이란 말도 생기고 있다. 학교는 인류가 만든 조직체 중에서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조직체라고 한다. 그 속에서의 일상은 전쟁과 같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적응에 뒤처졌다는 비난도 받으며 일상적인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대인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안정된 교직이라는 이면에 교사의 자존감은 세계 최하라는 어두운 이면을 아는 이들은 적다. 아이들의 성장 공간인 학교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아이들과 함께 잘 지내며 교사 스스로 열정이 가득하고 깊은 책임감으로 학부모와 아이들로부터 신뢰감이 충만한 곳이면 그만이다. 이런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면 교직은 정말 살맛 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뿐이다. 언제나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파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텅 빈 교실! 등교수업을 대비해 짝지도 없게끔 간격을 벌려놓은 책걸상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교실 뒷면 환경 판은 휑한 벌판이다. 빨리 아이들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오지 않는 스승의 날! 조금은 쓸쓸하지만, 아직 대면도 못 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너희들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며 언제나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하나를 지적해 주는 스승, 흐트러진 자세 하나를 짚어 주어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는 스승,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문제의 정곡을 찔러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오월이 푸르고 아름다운 것은 한 교실에서 지지고 볶고 힘들며 고뇌하는 현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줄 참 스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중국은 현재 안정세다. 중국 학교들은 개학을 했거나 앞두고 있고 폐쇄했던 식당 및 상점도 개방하고 있다. 애국주의가 강한 중국 사람들은 춘절 연휴 이후 지금까지 격리 생활을 하며 비교적 국가의 통제에 잘 따르고 있다. 재중 한국국제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필자는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고 2월 말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필자가 살고있는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14일 격리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아파트 내 중국 사람들의 반응들에 조금 놀랐다. 두 가지 오해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중국이 전염병으로 안 좋은 상황일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한국이 안 좋은 상황이 되니 다시 중국으로 왔다는 것. 두 번째는 본인들은 한 달 이상 격리 생활을 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격리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아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오해로 단지 내에서 조금 살벌한 분위기도 연출됐지만 결국 중국인인 본인들도 겪었던 일 중 하나였던 것이다. 등교 개학 서서히 시작돼 중국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줌’이나 ‘위쳇’ 메신저를 활용해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각 성의 상황에 따라 개학 방식이 변동되고 있지만 한국국제학교들은 각 성의 방침에 따라 외국인 학교로 분류돼 가장 늦은 개학을 할 예정이다. 대련 및 일부 한국 학교들은 해당 지역의 상황에 맞게 모의 등교 상황을 점검받고 4월 말부터 중3과 고3이 개학을 했으며 18일과 25일에 유치원을 제외한 전체 학년이 개학한다. 로컬 학교에서는 학생의 마스크 미착용 3회 이상 발각으로 학교 전체 등교가 연기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교사 중 확진자가 발생해 학교 전체가 폐쇄된 일도 있어 교육국, 공안 등에서 학교에 지속적으로 점검을 나오는 중이다. 원격수업 장기화로 학생과 교사들의 피로도 또한 높다. 한국보다 원격수업을 먼저 시작했고 실시간 화상 수업 등도 비교적 안정화 됐지만 대면 수업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중요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미래 사회에 없어질 직업 중 하나로 교사도 꼽히고 있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교감하는 수업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장기적 원격수업 대비해야 이제 몇 년 동안 지속 될 수도 있는 전염병 대비 장기적인 원격수업 방안이 필요하다. 원격수업이 오프라인과 똑같이 진행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하며 학교급, 학년의 특성을 고려해 문제를 제공하고 자율적으로 배우도록 지도해야 한다. 원격수업의 경우 평소 학습 훈련 등이 잘돼 있는 학생은 비교적 빨리 수업에 몰입할 수 있지만, 저학년이나 학습 훈련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몰입이 힘들다. 때문에 차시별 40~50분 단위의 수업시간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리고 원격수업에 적합한 학습목표 설정 및 수업 전개 방안을 다시 한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현장 선생님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원격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봄은 지나 갔지만 학생들로 가득한 학교의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이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바라는 그 날이 오면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라기보다 오히려 학부모들 편에서 교사에게 갑질하는 기관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2년 연속 문제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생활지도 중에 학생으로부터 욕설과 폭행위협을 받았습니다. 교권침해에 대한 후유증으로 병가를 신청했는데 대체 인력이 구해지지 않아 학생들을 자습시킨 것, 또 제 수행평가 처리 과정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당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개별 면담도 하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자고 참여하지 않다가 수행평가 응시도 거부해 0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모는 일부 점수를 부여하라고 요구했고 아동학대 보호기관에 편파적으로 신고했습니다. 저는 교사의 평가권을 침해받는다고 생각했고 또 성의껏 응시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생각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징계위원회는 마치 제가 소통과 자질이 부족해 그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만 간주할 뿐 제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교사 맞습니까?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라’는 등 모멸스러운 조사 과정도 겪어야 했습니다. 아동학대 보호기관은 지역 토박이인 학부모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서학대라고 했고 저는 결국 감봉 처분 받았습니다. 대부분 2~3년 만에 전출 가는 기피 지역 시골학교에서 그래도 저를 따르고 감사편지를 써주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4년을 근무했습니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등교 개학을 하면 아이들 생활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업시간에 화장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20분 넘게 들어오지 않다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아이를 모르는 척 넘겨야 할까요. 세상 그 어디에도 교사를 트집 잡아 끌어내리려고만 할 뿐, 교사 입장에 서 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생활지도를 하면 정서학대라 하고 또 징계할까 봐 트라우마에 시달려 모든 활동을 함에 있어 너무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40세·여자) 선생님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징계위원회의 조사 및 감봉과 전출, 그리고 아동학대 보호기관의 상담 권유 등 뼈아픈 결과들을 얻게 되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실까요. 아마도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가슴을 찢는 고통이 느껴지실 듯합니다. 열의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지도했지만 의도치 않게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을 어떻게 회고하고 정리하면 좋을까요? 감정·정서 완화가 우선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선생님의 감정을 정리하고 완화하는 것입니다. ‘교사에게 갑질하는 기관’, ‘교사의 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교사를 트집 잡아 끌어내리려고만 한다’, ‘모멸스럽다’. 이 표현들은 모두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매우 격양된 감정이 느껴지실 겁니다. 이러한 감정의 기저에는 선생님의 교육방법과 대응에 대해 지지받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과 무력감, 그리고 손상된 효능감과 자존감이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매우 격양된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부정적인 정서가 활성화되면, 응당 해당하는 정서에 부합되는 자극과 상황에 선택적인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기울이게 됩니다.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부정적인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당연히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게 되겠지요.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보처리 방식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물론 선생님의 경험은 원치 않았던 부정적인 경험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억울함, 화, 모멸감,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경험하게 됐고요.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혼재로 매우 격양돼 있는 상황이므로,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연함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사에게 갑질하는 기관’, ‘교사의 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트집 잡아 끌어내리려고만 한다’는 표현들은 격양된 감정으로 경험을 회고하는 과장되고 편향된 지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과장된 일반화는 적절한 문제해결과 대처를 제한합니다. 즉, 기울어진 판단으로 ‘산 넘어 산’, ‘엎친 데 덮친 격’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지요. 저는 다년간 교권침해를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는 여러 교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교사들과의 상담 경험에 비춰 보면, 선생님의 경우처럼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의 지지를 받지 못해 이중, 삼중의 고충을 호소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그리고 동료 교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고통의 시간들을 넘는 것을 목격합니다. 때로는 다른 학부모들의 응원을 받기도 하고요. 선생님의 경험이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그 경험으로 앞으로의 교직생활을 절망적으로 보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격양된 감정으로는 이 산을 쉬이 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우선은 감정을 정리하고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거둬지고, 감정을 안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면, 지금의 상황이 다른 국면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시 회고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힘을 조금만 빼보면 어떨까요? 정당한 생활지도에도 불구하고 학생으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했고, 학생지도를 위해 개별 면담을 비롯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다고 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애썼지만, 결실은커녕 욕설과 위협을 받았으니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셨을까 싶습니다. 교사로서의 많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오해를 받았다고 해서 ‘수업시간에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러 가는 아이들을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이러한 이분법적인(All or none) 대응방식은 오히려 선생님의 교육과 지도에 대한 무력감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이분법적인 대응은 극단에 있는 두 가지 방식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극단적인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즉, 선생님이 기존에 시도했던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해당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지요. 반복적인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되, 나의 지도를 통해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노력의 결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말이지요. ‘힘을 뺀다’는 것은 이런 태도를 의미합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힘을 쓸 때, 어긋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아닌 다른 교사, 혹은 교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와 방법, 도구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곧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혹은 선생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학생들이 변화를 보일 수 있습니다. 단지 선생님은 수확하는 자가 아닌, 뿌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두는 것은 아니지요. 이제 서서히 힘을 빼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의 노력이 당장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나의 뜻과 의도가 곡해되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교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떤 힘으로 교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어떤 교사로 남아야 할까요? 선생님의 교육방식을 잘 따르고 감사의 마음을 느꼈던 아이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교직에 집중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 코칭에 따라 힘을 빼고 교단에 서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지금 나에게, 왜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전문상담가와의 상담을 불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개인을 위한 시간으로 이번 기회를 활용해 보시면 어떨까요? 세상에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지금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험이지만 전문가와 함께 돌아보고, 감정을 정화해 상황을 또 다른 국면으로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게 되실 것입니다.
교육부, 격일 등교·분반수업 제안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등 계속된 등교 개학 연기 결정으로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부는 당초 고3을 시작으로 13일부터 순차 등교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연휴 기간 동안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이틀 전인 11일 등교를 일주일씩 미루기로 했다. 교육부는 일단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 결과와 감염증 확산 추이 등을 지켜보고 추가 연기 결정을 발표하겠다면서도 상황이 크게 변동되지 않는 한 20일에는 등교 시작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입 학사 일정 때문에 등교를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4일에는 등교 수업 이후 학생 안전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업 방식과 공간 활용 방안에 대한 예시를 내놨다. 학년별로는 격주제, 격일제로 등교하도록 하고 학급 내에서는 분반을 통한 미러링 동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러링 수업은 3학년 1반 학생이 30명일 경우 15명은 A반, 나머지 15명은 B반으로 나눠 A반에서 하는 교사의 수업을 B반에 TV로 미러링해 동시에 수업하고 B반에는 감독교사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학생 간 거리를 1m 이상 확보하는 책상 배치도 가능하고 오전과 오후로 나눠 등교를 하면 학생 간 거리 두기가 보다 수월해진다는 설명이다. 보통 한 층에 한 학년 반만 배치하는 것과 달리 3-1, 2-1, 1-1, 3-2, 2-2, 1-2와 같은 방식으로 한 개 층 내에 복수 학년을 배치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교육부는 이밖에도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러닝과 플립러닝, 단축수업 운영 등 구체적인 수업 운영 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대안을 공유하고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안내하는 한편 등교수업 중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교에서 실기 중심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시도교육청과 관련 지침을 준수하도록 학교에 대한 지도·점검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개학 준비에 한창인 학교 현장은 가이드라인 발표에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학교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지침을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개학을 이틀 앞둔 11일 5번째 등교 개학 연장 결정 때도 학교 현장은 일대 혼란을 겪어야 했다. 특히 급식이 문제가 됐다. 학생 수에 맞게 미리 식재료를 발주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학교뿐만 아니라 급식 납품업자 입장도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 A고 교장은 “하루 이틀 전에 등교 연기 결정을 해 버리는 바람에 준비 중이던 급식을 취소하고 재정비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며 “교육부와 질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학교 입장도 고려해 좀 더 미리 발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또 5월 20일 고3 등교 이후 서울시내 학교의 고3 등교생 중 의심증상이 있는 경우 ‘긴급이동지원 시스템’을 마련해 선별진료소로 이동을 지원키로 합의했다. 서울시내 학교와 서울소방재난본부간에 비상연락체계를 마련해 등교한 학생 중 발열, 기침 등 의심증상이 발생한 경우 학교 임시관찰소에 대기후 소방재난본부(119서비스)의 협조로 선별진료소로 신속한 이동을 실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생을 선별진료소로 데려가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신속히 진단검사를 받는 동시에 보건교사 등이 학교 내 방역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이범용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 누구나 한 번쯤은 학교 역사 시간이나 교양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 말(1984) 서구세력에 맞서 일어났던 ‘동학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동학운동이 최근 우리나라 증시에서 다시 일어나 화제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우리나라 코스피는 3월 19일 11년 만에 가장 낮은 1457까지 떨어졌었는데 한 달이 조금 못 된 4월 17일 1900선을 회복했다. 연일 매도를 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신해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연일 매수를 하면서 증시를 떠받쳤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개미’와 ‘동학운동’을 합친 ‘동학개미운동’ 덕분이라 하고 있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4월 초 30대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한 달간 주식에 투자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55.7%)이 넘었다. 또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식활동 계좌수가 연초 2935만 개에서 지난 4월 말 3125만 개로 약 5% 늘어났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국내외 주식시장이 모두 하락과 상승을 반복해 당장 내일 주가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19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가 폭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코로나19로 주식시장이 폭락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인지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 중에는 빚까지 내 투자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29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신용융자 잔고는 9조434억 원에 달했다. 신용융자는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3월 25일 6조4075억 원이었던 잔고가 불과 한 달 사이 3조 원 정도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빚까지 내면서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성적은 어떨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4일부터 5월 4일까지 2개월 간 개인투자자는 총 15조5288억 원을 투자했는데 5월 4일에는 하루에만 1조6993억 원을 투자해 하루 기준 사상 최대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런 ‘동학개미운동’ 덕분에 증시는 빠르게 상승했지만 여기에 기여한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순매도한 상위 10개 종목은 대부분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순매수한 종목을 조금 더 확대해 상위 20개 종목까지 살펴봐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한국전력 단 하나로 5.31%를 기록했다. 이처럼 상승장에서 개미투자자는 웃지 못한 반면 외국인 투자자는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다. 외국인 투자자가 순매도한 상위 10개 종목은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 중 절반은 플러스 수익률을, 나머지 절반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순매수 종목 상위 20개까지 살펴보더라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모두 합해 8개로 개인투자자에 비해 훨씬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특정 기간의 수익률이 투자 성공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대형 우량주들을 저가에 매수한 개인투자자들에게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마이너스 수익률만으로 잘못된 투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도박하듯 한탕을 노리고 주식을 비롯해 각종 투자상품을 매매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가 오르자 코스닥으로 자리를 옮겨 투자에 나서거나 주가지수·원유 등의 가격 상승과 하락에 베팅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몰려들었다. 한 예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언젠가는 원유 가격이 반등할 거라는 생각에 원유 선물 지수 변동에 따라 움직이는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 Exchange Traded Note)에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가격이 지수 변동폭의 2배로 움직여 일반 ETN보다 2배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레버리지 ETN에 투자가 몰렸다. ETN은 거래 가격과 별도로 실제 가치, 즉 적정 가치가 공개되는데 거래 가격과 적정 가치의 차이를 의미하는 괴리율은 거래 가격이 적정 가치의 2배라면 100%, 4배라면 300%로 표시된다. 괴리율이 크면 클수록 해당 상품 거래 가격에 거품이 많다는 의미인데 향후 원유 가격이 오늘 것이라고 생각한 개인투자자가 몰리면서 괴리율이 최근 10배(900%)가 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 경제가 악화돼 저유가 기조가 예상보다 더 오래 가거나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면 손실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과거 일부 나라의 문제로 유발된 IMF나 금융위기 때와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예측이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 한국거래소가 옵션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KOSPI200 지수의 미래변동성을 측정한 지수인 VKOSPI(Volatility index of KOSPI200)는 코로나19의 국내 확산 전인 1월 31일 19.3이었다가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3월 31일 48.6까지 올라갔다. 4월 29일에는 30.5까지 내려갔지만 지난해 말(12월 30일 14.7)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이렇게 흔들리는 주식시장에서 새롭게 투자에 나서고자 하는 개인투자자들은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현명하고 신중하게 투자할 것을 권한다. ■투자 기간과 자금용도 고려=전세보증금이나 학자금처럼 곧 사용해야 하거나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자금으로 투자할 경우 손실 발생 시 원래 사용하려던 곳에 사용하지 못하거나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는 여유자금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출을 이용한 투자는 신중히=증권회사 대출 등 레버리지를 활용해 투자하는 경우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가 하락 시 예상치 못한 반대매매로 인해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대출 등을 이용해 투자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굳이 대출을 이용해 투자하려 한다면 상환능력 및 다른 지출까지 고려해 최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주식도 분산투자를=대표적인 간접 투자상품인 펀드의 장점을 말할 때 늘 등장하는 것이 분산투자다. 요즘처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을 때에는 펀드처럼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 종목이나 소수의 몇 개 종목에 소위 ‘몰빵투자’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투자 결과는 모두 본인 책임=요즘 주식 투자는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금융회사 직원의 권유나 추천 없이 온전히 본인의 판단으로 투자할 종목과 매매 시점을 고르게 된다. 금융회사 직원이나 TV에 나온 주식 전문가, 주식을 잘 아는 친구가 추천했더라도 그건 말 그대로 추천일 뿐 강요가 아니기 때문에 손실이 났다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주식 투자로 인한 수익과 손실 모두 온전히 투자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정도를 냉철하게 판단해 투자 여부와 규모 등을 결정해야 한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금도 심각하지만 앞으로 더 본격화될 것이며 언제 종식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단기 차익을 노리고 급히 써야 할 돈으로 투자를 하거나 빚을 내서 투자하다가는 수익은커녕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종목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되 본인의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 신중하게 투자에 나서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A 교사는 2년 전 학생끼리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사소송에 휘말렸다. 점심시간, 학생 B와 C의 장난은 쌍방폭행으로 이어졌고 A 교사는 해당 사안을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신고했다. 양측 학부모는 합의하기로 하고 학교폭력으로 처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합의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자 학생 B의 학부모는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한편, 학교 측에도 치료비와 위자료를 요구했다. 학교 측은 이를 거절했고, 해당 학부모는 A 교사에게 900만 원, 가해 학생 학부모에게 3000만 원 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학부모의 보상 요구에 응하지 않자 민사소송을 제기한 전형적인 교권침해 사건이었다. 지난해에도 교단은 교권침해 사건으로 멍들었다. 교권침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며 한국교총의 문을 두드린 것만 513건에 달했다. 자녀지도에 대한 불만으로 고소·협박하는 등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절반 가까이였다. 한국교총(회장 하윤수)은 13일 지난 1년간 교권·교직 상담 활동 결과를 담은 ‘2019년도 교권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보고서’를 발표했다. 지침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상담 사례 건수는 총 513건으로 집계돼 10년 전인 2008년(249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5년간 평균을 따지면 516건이나 된다. 상담 접수 사례를 살펴보면,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았다. 전체 사례의 46.39%(238건)가 학부모에게 피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건수는 2018년(243건, 48.50%), 2017년(267건, 52.56%)보다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침해 양상은 장기간에 걸쳐 반복·지속적인 경향을 보인다. 악성 민원·협박에 그치지 않고 민·형사 소송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원인은 ‘학생 지도 불만’이 109건(45.80%)으로 가장 많았다. ‘명예훼손(57건, 23.95%)’과 ‘학교폭력 처리 관련(43건, 18.07%)’, ‘학교 안전사고 처리 관련(29건, 12.18%)’이 뒤를 이었다. 교총은 “형법이나 정보보호법 등 현행법을 위반해 처벌받을 정도가 아니면 학교가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의 분쟁조정 권한을 강화하고, 특히 개정된 교원지위법에 따라 관할 교육청은 피해 교원 요청 시 교권침해 당사자를 고발하는 강력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도 크게 늘었다. 2018년 70건에서 지난해 87건으로 증가했다. ‘폭언·욕설’이 32건(36.78%)으로 가장 많았고, ‘명예훼손(24건, 27.59%)’, ‘수업 방해(19건, 21.84%)’, ‘폭행(8건, 9.20%)’, ‘성희롱(4건, 4.60%)’ 순으로 집계됐다. 교총은 “제자에 의한 교권침해는 교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자존감을 상실한 교원이 결국 교단을 떠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학생 지도 수단과 방법, 절차 등을 명확하게 마련해 무너진 생활지도 체계를 회복하고, 학생·학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처분 제도를 통해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권침해를 당한 교원을 구제하는 교총의 소송 지원도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소송비 지원 건수는 59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교총 교권 사건 소송비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5년에는 14건이었고, 2016년에는 24건, 2017년 35건, 2018년 45건으로 매년 10건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만연한 교권침해는 교사 개인의 인권을 넘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총은 매년 교권 및 교육활동 보호, 학생의 학습권 보호 등을 위해 교권침해 사건을 접수하고 상담·처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교권침해 예방 및 보호를 위한 법률자문 및 중재, 소송비 지원 활동 등도 전개한다.
최근 교육부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교원연수부터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매년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학교에 위탁해 기본소양, 수업개선, 교육과정평가·이해·재구성·개발 등 내실 있는 연수과정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사실 현장 교원들 사이에서는 1정 자격연수를 통해 수업능력이 향상됐거나 생활지도에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연수과정에서 대학교수는 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처럼 질문 없이 수업하고, 수업을 듣는 현장교사들은 마지막 평가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강의내용을 직접 녹음하기도 하고 수업 도중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단 한 번의 평가로 승진 판가름 이처럼 교육당국은 매년 수십억 원을 투자해 1정 자격연수를 운영하지만 현장 교원들은 이 제도에 대해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20년 전의 단 한 번의 연수성적이 향후 교감·교장 등 관리자로 진출할 때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교원 승진 제도는 연수실적, 보직교사, 지역점수, 연구학교 등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승진 시 상대평가로 동점자를 구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바로 1정 자격연수다. 현장 관리자 및 교원들의 대다수가 현행 1정 자격점수의 문제점이 크다고 지적하지만 교육부는 기존의 기득권자들 때문에 당장 제도를 바꾸기는 힘들다며 답변을 회피해 왔다. 1정 자격연수는 단순 암기 위주 연수고, 다른 직무연수에 비해 단 한 번의 평가가 승진에 아주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도한 특혜 점수라고 인식된다. 또, 평가 당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실수를 한 교사들은 차후에 아무리 열심히 생활해도 승진이 어렵기 때문에 대기만성형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교직에 대한 성취감 또한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현행 1정 자격연수 제도는 교사의 교육적인 전문지식이나 안목을 신장시키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하게 쉽게 승진점수를 매기기 위한 줄 세우기식 교육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균점수 부여 등 대체시스템 필요 그렇다면 20년간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 교직 생활 내내 족쇄로 작용하는 1정 자격연수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 한 번의 성적으로 관리자로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행 1정 자격연수 제도는 불합리한 인사제도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1정 자격점수를 완화한 뒤에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한다. 우선 1정 자격연수 성적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절대평가 전환 결정을 환영하며 앞으로는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수 능력을 높이는 형태로 연수가 구성·운영돼야 할 것이다. 또 점수 반영을 폐지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 승진 인사제도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교육현장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두각을 나타내는 대기만성형의 학생들을 수없이 봐왔다. 마찬가지로 대기만성형 교사들의 꿈과 미래를 한순간에 좌절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처럼 모든 교사가 1정 자격연수에서 오로지 승진을 위해 점수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고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Ⅰ. 주제 선언의 의의 : 위기를 감당하는 교육의 힘 한국교총이 2020년 제68회 교육주간을 맞으며 선언한 주제는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이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감염 사태가 몰고 온 전 지구적 위기, 그리고 그 소용돌이에서 국가적 위기 극복에 진력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특히 이 위기의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떠받치고 있는 교육의 중차대한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 교육의 주체들이 시대를 선도하는 지혜와 의지를 결집하기 위한 주제이다. 오늘의 한국교육을 향하여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이라는 주제를 발신하는 데에는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 교육 현장이 보여준 변화의 힘을 주목하고, 그것의 가치를 의미 있게 확산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 2020학년도 시작과 더불어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교육 현장에서 열정과 창의, 그리고 협치와 연대로 위기를 타개해 나간 교사들의 모습에 감사와 더불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현장 교사들이 보여 준 아래로부터의 변화 즉, 위기 속에서 교육 사랑과 교육 실천을 이루어내려는 것으로서, 우리 교육의 미래 가치를 자극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코로나-19 감염 현상에만 대응하여 그 해법과 처방을 다루는 차원을 넘어서는 주제이다. 주지하다시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감염은 그것의 치료 및 예방 노력을 모색하는 동안, 인류의 생존 방식과 인간의 활동 방식에 대한 놀라운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가 유지하고 영위했던 질서와 체제,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던 사고와 패러다임은 해체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 사태 이전(Before Corona)과는 다른 코로나 이후(After Corona)의 새로운 세계의 세팅(setting)을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현되는 새로운 문화와 체제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체가 새로운 위기가 되는 국면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이라는 이번 주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부터 위기의 의제를 제기 받은 측면이 있으나, 유행성 질병의 감염이라는 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위험이 도사린, 가변성이 심한 현대사회에서 예기치 못한 도전이 불러오는 다양한 위기들, 달리 말하면 위기 일반에 대한 한국교육의 응전을 의미 있게 모색하고 공유하는 주제가 되기를 바란다. 이 주제 선언이 궁극으로는 교육의 본질 및 역할의 위기에 대하여 국민적, 국가적 각성과 극복 능력을 기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특히 안으로 잠재해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치명적 위기로 등장할 문제들을 발견하고 대비하는 데에 살아있는 의제(agenda)로써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Ⅱ. 위기의 본질과 정체 1. 위기의 구조적 총체성 위기는 사회의 구성 체제 전반을 빠르고 치명적으로 망가뜨린다. 현대사회에서의 위기는 고립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발생한다. 하나의 위험이 소멸하지 않고, 상호 영향 관계에 있는 인접 분야에 파상적으로 번져나가며, 마침내 ‘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위기는 총체적으로 온다. 코로나-19 사태처럼 사회 각 분야가 이 사태에 피할 수 없이 말려들어 무너짐으로써 ‘대위기’가 된다. 위기의 총체성은 초연결의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인 현대사회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위기의 극복 또한 총체적이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진단·방역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정치, 경제, 무역, 교육, 복지, 문화 등의 분야로 연쇄되는 위기를 불러왔고, 우리는 총체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가 왔을 때, 극복의 동력을 발휘하는 사회란 ‘총체적 응전의 체제’가 작동하는 사회이다. 이 총체적 응전의 체제 속에 교육은 언제나 중심 기제로 그리고 극복의 바탕 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위기의 총체성 속에서 교육이 장기간 중단되는 위기는 사회를 침몰시킨다. 극복과 회복의 동력을 장기적으로 충전하는 역할을 교육이 감당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2. 위기의 심리적 가변성 ‘위기’는 객관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위기를 확대재생산 한다. 위기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두려움과 공포가 크면, 위기도 증대한다. 그렇게 증대된 위기에 모두가 빠져들면, 심리적 현상은 객관적 현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우리의 바깥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심리 내부에서 움직이며 존재한다.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위기는 변할 수 있다. 이 점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위기 극복의 의지와 소명을 가지는 데에는 위기를 심리적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위기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제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공동체 수준에서 반드시 강구되어야 할 노력이다. 국가나 사회는 당면한 위기를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예측하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투명하게 소통하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위기가 사람들의 심리 내부에서 괴물과도 같은 공포로 자리 잡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국민 전체가 위기를 다 함께 넘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은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심리적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치나 태도를 심어주고, 그것을 널리 공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효과는 평상시 교육에 대한 신뢰를 쌓아 온 사회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믿음은 교육 내부와 교육 외부가 협치하는 과정을 통해 꾸준히 증진될 수 있다. 위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요인이 누적되어 나타난다. ‘위기를 넘어서는 힘’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시켜 둔 노력이 빛을 발한다. 3. 위기의 생산적 가능성 위기 안에는 그 위기를 넘어서게 하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 있다. 이것이 ‘위기의 생산적 가능성’이다. 흔히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말이 ‘위기의 생산적 가능성’을 입증한다. 위기는 생겨날 때도 어떤 특별한 발생적 계기를 가지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의 계기를 품는다. 전 지구적 감염으로 위기를 겪게 하는 전염병도, 바로 그 위기 때문에 언젠가는 예방 백신을 만들어 내는 생산적 가능성을 품는 것이다. 코로나-19사태가 여러 가지 발생적 요인을 가지고 우리에게 덮쳐 왔지만, 그것을 감당해내는 동안, 우리는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각 영역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온라인 수업의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 확장’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기를 대적하는 우리의 태도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수동적 도피나 패배주의는 금물이다. 이는 위기를 넘어 함께 가야 하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 주체들에게는 시대 정신(Mentality)으로, 오늘을 사는 시민 각자에게는 시민 교양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위기의 생산적 가능성은, 그 위기에 뛰어들어 해결의 출구를 향해 구체적 실천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확장된다. 코로나-19사태에서, 닫힌 학교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려는 교육적 실천을 한 교육 현장의 자발적 적극성이 유난히 돋보인다. AI 시대, 위기를 대처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협동이라는 관점에서 향후 우리 교육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의 한 모습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Ⅲ. 위기 넘기와 교육의 자리 1. 교육은 ‘인프라 그 이상’이다 국가 사회적 위기는 국가 차원의 총력적 대응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여기에는 국가·사회적 생산 기반인 인프라(infrastructure)의 동원도 당연히 필요하다. 위기에 동원되는 항만, 전기, 도로 등 일반 인프라는 사회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물적 시설로서의 기반이다. 교육이 관장하는 학교 체제는 시설 차원에서 국가 인프라이며, 이에 더하여 교육은 국민의 지력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정신 문화적 인프라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점을 교육의 내부나 교육의 외부가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통념으로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정태적 이미지는 좀체 미래로 열려 있지 못하다. 교육을 상급 학교 진학의 과정 프로세스로만 여긴다거나, 학교를 단순히 수업하는 공간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의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 빈곤을 각성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 사회의 주요 전략을 그 기반에서 추동하는 힘이다. 또 국가적 위기 등의 변동 사태를 질적으로 감당하는 거대한 인프라이다. 이는 교육이 정신과 문화, 그리고 태도와 가치에 미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해 낼 수 있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마땅히 국가적 위기와 관련하여 교육의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공유하는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적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를 단순히 대증적인 방식으로만 대처하는 사회는 선진 문명사회라 할 수 없다. 위기를 대처하는 국가 전략의 큰 기획(grand design)이 있어야 하며, 그 기획에 위기 전, 위기 중, 위기 후 등으로 구분된 입체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위기의 총체성에 충실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선진국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위기 후 국가 전략은 다음에 올 수 있는 또 다른 위기를, 예방적으로 또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중·장기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 위기 전략에서 교육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위기를 해소하는 중심 자리에 교육의 작용을 두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위기의 총체적 구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위기를 넘는 중요한 통로이며, 위기를 넘어서서, 그 위기를 새로운 가치로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2. 교육은 ‘위기 그 이후’까지를 함께한다. 교육은 위기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숨은 기제이다. 재난의 위기이든 경제 위기이든 전염병 위기이든, 이를 직접 당면하여 다루는 전문 인력이나 기술은 교육이 길러내고 양성한 결과이다. 이는 위기 발생 전에 교육이 쌓아 둔 공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위기 이후까지도 교육은 위기로부터 얻은 새로운 성과와 가치를 의미화한다는 점이다. ‘위기를 넘어 함께 하는 교육’은 교육이 더욱 융합지향의 활동과 협치의 시야를 넓힐 것을 이 시대가 당부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사태의 위기 극복과 관련하여 교육은 어떤 역할의 자리에 있었던가. 위기 이전에는 높은 전문성을 갖춘 의료 및 방역 인력을 길러내는 일, ‘대량 감염및 공중위생의 기술과 윤리’를 시민교육으로 수행하는 일 등을 한다. 위기 중에는 실제로 학교를 지역사회의 피난처로 공유하는 일, 학교의 폐쇄를 극복하는 일, 격리 환경에서 새로운 수업의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 새로운 차원의 학생 생활지도 모델을 실현하는 일 등을 수행했다. 위기를 넘긴 후에도 교육은 위기 관련 새로운 개발 과업들을 학교 밖 주체들과 함께해야 한다. 예컨대 위기 사태에서 부모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일, 부모교육이 국민교육으로 전이되는 효과를 일반화하는 일, 위기 사태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돌봄교실의 문제를 합리적 교육복지로 정책화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육이 교육 밖을 향하여 어떻게 연대하고 협업할지를 온몸으로 부딪쳐 고민한 일을 놓칠 수 없다. 교육의 이러한 역할은 위기 극복 과정에서 눈에 잘 안 보이게 작용한다. 그러나 교육 그 자체가 위기 극복의 중요한 통로임을 볼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우리 교육은 스스로 위기와 더불어 교육의 역할을 개발하고 확충하였다. 교육의 이러한 노력이 ‘위기를 넘어 함께 가는 길’을 밝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런 교육 실천에 대해서 범국가적 지원이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미래를 위해서 이런 실천적 노력이 소중하다. Ⅳ. 교육이 함께하기, 교육과 함께하기 1. ‘교육 내적 위기’와 ‘교육 외적 위기’ 코로나-19사태는 특정의 위기를 전제로 하는 위기론이었다. 이때까지 국가적 위기를 교육과 관련해서 논할 때, 흔히 설정하는 논의의 범주는 ‘교육 내적 위기’와 ‘교육 외적 위기’였다. 교육은 교육 자체의 위기를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위기는 ‘교육 내적 위기’인가, 아니면 ‘교육 외적 위기’인가. 질병 감염은 교육의 문제는 아니므로 교육 외적 위기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술한 대로 교육이 관여하는 상관적 변수들이 많으므로 교육 내적 위기라고 해야 하는가. 이미 학교가 문을 열고 학생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가 학기의 반을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큰 교육의 위기가 따로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적 대위기 사태에서 ‘교육 내적 위기’와 ‘교육 외적 위기’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위기는 총체의 양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이분법은 미래의 세계화 생태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초연결 사회로 특징 지워지는 사회, 제4차산업혁명 시대 고도의 기술 생태에서 소통과 교류의 네트워크가 무한 확장되는 환경에서는 교육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가 교육의 문제로 치환되는 일이 무수히 일어날 것이다. 물리적 학교로 표상되는 교육의 이미지는 퇴화할 것이다. 각종 교육 활동 연대 네트워크에 가담하여 교육적 참여와 소통이 활발해지는 현상이 바람직한 교육의 이미지로 표상될 것이다. 2. ‘함께하기’의 시대적 요청 오늘의 시대는 ‘함께 하기의 시대’이다. 문제의 발생이 함께 연동되어 있고, 문제의 해결은 함께 협업해야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요청하는 ‘함께하기’는 이미 윤리적 당위성까지 확보해 두고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는 있어도, 멀리 가지는 못한다.”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삶과 학습의 방식으로 본다면, 협업과 공유로 창의를 일구어내는 삶(학습)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지성’이라는 용어가 이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교육 내적 위기’는 교육 외적 영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해결의 방책을 구해야 한다. ‘교육 외적 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위기가 교육 내적인 영역으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음을 열어놓는다면, 의외로 참신한 해법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자신이 함께해 줄 수 있는 교육 밖의 영역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본 주제에서는 ‘교육이 함께하기’로 명명한다. 또 교육 밖의 제반 영역들은 교육과 함께해 주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를 본 주제에서는 ‘교육과 함께하기’로 명명한다. 그런 모범적 실행을 이번 코로나-19의 위기 사태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실행하였다. 이번 사태에서 교육이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한 참신한 개발과 시도는 알게 모르게 교육 밖의 도움이 함께 한 것들이었다. 교육이 교육 밖을 향하여 함께 해 준 도움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있을 것이다. Ⅴ. ‘함께하는 교육’의 실천 방안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에서 ‘함께하는 교육’은 두 가지 차원을 넘나드는 개념이다. 그것은 ‘교육이 함께하기’의 차원과 ‘교육과 함께하기’의 차원이다. 이는 물론 교육의 내부와 교육의 외부가 상호작용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교육의 선순환과 작용을 확충해 가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제안을 함께 나누고 펼쳐가기를 기대한다. 1. 국가는 국가적 위기 프로세스에 교육의 역할과 작용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새롭게 강화하고, 이를 국가 전략 및 관련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2. 정부와 국회는 교육이 새로운 거버넌스를 개발하거나, 교육이 사회적 협력과 연대를 통하여 위기 문제에 참여하려고 할 때, 이를 지원하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 3. 교육의 융합적 역량과 교육을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와 함께하려는 교육’을 국가·사회적 의제로 제안한다. 당국은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 교육 정책 또는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운영한다. 4. 우리 사회가 교육에 상보적으로 함께하여, 교육의 위기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협치하도록 ‘교육과 함께하려는 사회’를 국가·사회적 의제로 제안한다. 당국은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 정책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 5. 학교가 문을 열지 못하는 코로나 위기 사태에서 현장의 교육자들이 교육의 안과 밖으로 폭넓게 연대하고 협동하여, 아래로부터의 수업 소통의 변화를 얻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간 것처럼, 현장 교육자들은 협동과 연대로 위기를 넘어서는 실천을 지속하여 우리 교육의 변화를 추구한다. 6. 학부모 사회는 교육의 기능과 작용이 변화하는 바를 미래지향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위기 사태에서 교육과 협동하고 연대함으로써, 한국교육의 바람직한 생태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 7. 교원단체는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의 역할과 과업을 합리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하도록 한다. 이를 위한 정책 개발과 연구 과업을 수행한다. 제68회 교육주간을 맞아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이라는 주제를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그 의미를 깊이 새기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겪어내는 ‘위기’가 미래 한국교육의 발전에 소망의 힘으로 변전되기를 믿기 때문이다. 영국의 자유 저술가 아담 J 잭슨의 어록을 인용함으로써, 위기와 함께하는 우리 교육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모든 문제 속에는 그 문제를 완전히 뒤집는 크고 작은 소중한 기회가 숨겨져 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성공 스토리는 문제나 장애를 똑바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 아담 J 잭슨
국가책무 약화, 교육격차 우려 교원 사기 더 떨어졌다 77.7% 믿어주고 소통하는 교사상 1위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현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는 ‘유·초·중등 교육의 시도 이양’에 대해 전국 교원의 79.4%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 지방직화’에 대해서도 절대 다수인 90.5%가 ‘반대’ 했다. 최근 사기가 ‘더 떨어졌다’는 교원도 77.7%에 달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교총이 지난달 27일부터 6일까지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57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39회 스승의 날 기념 교원 인식 설문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29% 포인트)에서 드러났다. 현장 교원들은 현 정부의 공약 추진과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먼저 정부·여당의 공약에 따라 ‘교육부는 고등·평생·직업교육을 관장하고, 유·초·중등 교육 권한은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는 것에 대해 79.4%의 교원이 반대했다. 찬성은 13.3%에 불과했다. 이런 정서는 ‘교원 지방직화’ 찬반 의견에도 투영됐다. 시·도 이양에 따라 교원 신분을 현행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90.5%가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반대 이유로는 ‘교원의 지위, 보수 차이 등 신분 불안 야기’(44.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우수 인재의 지역 편중과 교육격차 심화’(17.8%),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등 국가책무성 강화 기조 역행’(14.3%), ‘직선교육감의 보은·정실인사 등 전횡 우려’(13.5%) 순으로 나타났다. 초등 돌봄교실의 운영 주체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의견이 79.3%로 나타났다. 민간단체·기관이 해야 한다는 의견은 15.7%, 지금처럼 학교가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은 4%에 그쳤다. 교총은 “교육에 전념해야 할 학교·교원에게 보육 업무까지 떠맡기는 것은 교육과 보육 모두의 내실화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돌봄교실 운영 주체는 지자체로 하고 학교는 장소 제공 등의 지원을 하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직 생활을 묻는 문항에는 교권 추락과 사기 저하에 대한 걱정이 묻어났다. ‘교원들의 사기가 최근 1~2년간 어떻게 변화됐나’를 묻는 문항에 77.7%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2009년 같은 문항으로 처음 실시한 설문에서 ‘떨어졌다’고 답한 비율(55.3%)보다 10년 새 22%p 이상 증가한 수치여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교권 보호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높았다. ‘선생님의 교권은 잘 보호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61%에 달했다. 잘 되고 있다는 대답은 11.1%에 그쳤다. ‘교직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서는 ‘문제행동, 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를 1순위로 들었다. 이어 ‘학부모 민원 및 관계유지’, ‘교육계를 매도·불신하는 여론·시선’,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잡무’, ‘교원, 행정직, 교육공무직 등 학교 구성원 간 갈등’ 순으로 조사됐다. 교육주간을 맞아 스승의 길을 다시 생각할 때 가장 되고 싶은 교사상은 지난해와 같이 ‘학생을 믿어주고 잘 소통하는 선생님’이 1위로 꼽혔다. 이어 ‘학생을 진정 사랑하는 선생님’, ‘학생의 강점을 찾아내 진로지도하는 선생님’, ‘전문성 향상에 부단히 노력하는 선생님’ 순이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이번 설문 결과 유·초·중등 교육 시도 이양에 대한 반대 정서와 교원 지방직화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다시 확인됐다”며 “현 정부가 내건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및 현장 중심 정책 실현을 위해 교육 좌표를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원들은 올해도 학생을 믿어주고 사랑하는 교사를 다짐하고 있다”며 “교육 가족 모두가 교육주간 주제인 ‘위기를 넘어 함께하는 교육’을 되새기며 학교를 향해 신뢰와 협력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학교가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서도 아직도 온라인 개학으로 진정한 봄을 맞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계절은 봄이 왔어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추운 겨울에서 깨어나지 못한 ‘춘래불사춘’의 현장이란 말인가. 그런 가운데도 고3 학생을 지도하는 담임교사들과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막연함과 나아가 진학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우 곤혹스러워한다. 하지만 원격으로나마 수업이 진행되고 진로·진학 상담이 이루어짐에 따라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를 벗겨내고 있다. 마치 데미안의 말처럼 새로운 세계로의 탄생을 위해 알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몸부림과 같다. 본교 3학년의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한마음으로 2020학년도 학급의 특색 사업을 구안하여 학급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전개하는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꿈을 꾸는 학급별 슬로건을 보자. ① 함께 성장하는 우리(학급) ②꿈꾸며 성장하며 ③ 꿈지락 꿈지락 ④ 하나 된 우리 ⑤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⑥ 하고자 하는 의지, 열심히 하는 열정, 된다는 확신으로 준비하는 인생 설계 등등이 학급 슬로건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꿈에 다가가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성공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학급별 독톡한 문화, 추구하는 가치관이 돋보인다. 그 몇 가지를 사례로 제시한다. 학급 내 언어 순화 운동, 진로 관련 주제 발표 활동, 학급 신문 제작, 1인 1책 추천, 나의 롤모델 탐색 콘테스트, 헌혈하기, 창의 독서 및 발표 활동, 칭찬의 날 운영, 과목별 멘토-멘티 활동, 학급 단합 체육활동, 글꿈 나눔, 우리만의 문제집 만들기, 신문 스크랩 및 게시, 1인 1주제 발표 및 게시, 1인 1 화초 가꾸기, 미니 체육대회, 생일 축하 이벤트, 마니또 활동, 학급 앨범 제작, 운동+학업 병행 습관 형성, 의지+열정+확신으로 목표 달성하기, 만다라트 계획표를 활용한 나의 목표 설정 후 실천하기 등등이 그것이다. 결국 이러한 학급별 특색 활동은 실제 개학 이후에 학급 운영을 위해 온라인 마음 건강 레시피 활동으로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친구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한 활동, 학급 SNS와 학급 온라인 클래스에 공유하여 마음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1인 1역 및 부서 운용을 통해 학급 운영에 하나의 역할을 맡아 수행함으로써 자발적인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고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자 함이 드러난다. 수업 과제 및 수행평가 공지 및 안내/각종 대회 및 공모전 안내 및 공지, 정기고사 전 과목별 요약정리, 또래 교과도우미 관련 활동, 진로 주제 발표 주관하기, 창의 독서 발표 및 토론 활동 등은 역시 대학진학을 위한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급 언어 순화 활동, 생일 챙기기, 학급 단합대회 기획, 학급 분위기 조성, 각종 체험학습 및 문화활동 관련 대회 기획, 학급의 청결한 환경 만들기, 학급 공용비품 관리, 학급 친구들과 헌혈을 하고 헌혈증을 기부하며 나눔 등은 인간의 덕성을 키우려는 배움 공동체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하고 개성 있는 학급활동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는 ① 자발성에 바탕을 둔 학급, 학생의 특색활동을 통해 창의성과 바른 인성을 함양한다 ②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여 즐거운 학급문화를 형성한다 ③ 학급의 급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하여 학교 적응력 향상 및 교우관계를 개선한다는 3가지의 교육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담임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교류와 소통에 따라 교육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즉 바람직한 인간으로의 변화와 행동을 추구하고자 함이다. 여기엔 진정한 민주사회의 조직과 운영이 적용된다. 의무교육의 최후의 보루인 고등학교 현장에서 우리의 교육은 이렇게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펴고자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있다. 여전히 교육은 살아있고 그 속엔 희망이 태양처럼 빛난다.
교원의 지방직 전환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방 교육자치 역량 강화 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다. 교육자치가 발전 및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되면 교육정책 역시 지역 단위별 특성을 살리는 인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향후 학령인구 감소 등의 상황에 능동적 대처를 위해서는 교원의 지방직 전환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교육공무원의 지방직화는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제2차 대통령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이 보고서에 ‘생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행동은 지역적 차원에서’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당시 세계화와 함께 지방화는 중요한 특성의 하나였다. 이 영향으로 교원의 지방직 전환은 지역 중심의 인사 제도 혁신으로 필요한 정책이라며 끊임없이 제안됐다. 하지만 교원 단체를 비롯한 전문직 단체에서 반대했고, 국가 교육의 중대성을 고려해 실행은 되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도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라는 기조로 교육 민주주의 회복 및 교육자치 강화와 단위학교자치 강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는 중앙집권적 교육 패러다임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서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지방분권적 교육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의 교육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 중심의 책임 정책과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 지방직화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흐름에서 제안됐다. 그러나 현재 교원 임용권은 이미 지방 교육청에서 하고 있다. 지역에서 임용을 받은 인재는 대부분 지역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인사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교원의 신분을 지방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도 그 기능은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지방자치의 교육에 대한 책임은 주민의 참여로 가능하다. 현재 마을학교 등 공동체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 실정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창의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단위학교별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지역 인사 학부모 등이 참여해 학교 운영의 역할을 한다. 교원의 신분과 상관없이 지방 특색에 맞는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교원의 지방직화보다 더 필요한 것이 교육의 지방자치화다. 금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지방 교육청의 역할이 안 보인다. 위기의 교육 현장에서 지방 교육의 수장 리더십은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이 없는 청정 지역까지 마냥 학교 문을 열지 못한 것은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 추구라는 이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과거처럼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던 교육 권한을 놓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국가와 지역교육청이 합리적으로 권한을 배분했다면 충분히 교육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교육의 지방직화로 중앙 정부와 지방이 동시에 각자 부여받은 권한을 어떻게 발휘하고 적용할지에 대한 역량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교원 지방직화를 논의하기 전에 교원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즉 교원은 전문직이다. 그렇다면 전문성 신장을 지원하는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 국가직이니 지방직이니 하는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며, 국가 교육의 중추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이에 대한 책무를 통해 국가 교육에 이바지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고도의 전문가가 시행하는 교육이 지방 교육자치가 추구하는 자율성과 책임성과 연결된다. 교원이 지방직으로 신분이 바뀌어도 전문성이 없다면 결국 주어진 일만 수동적으로 하게 된다. 전문성 신장은 자연스럽게 교원의 자치 역량을 강화한다. 단위학교의 주체들이 교육과정을 스스로 만들고 완성하면서 민주적이고 책임성 있는 교육이 실현되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교원 지방직화보다 더 필요한 것이 교육 투자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개학을 통해 경험한 것처럼, 지금은 교육의 개념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교실 개념과 교육방법이 엄청나게 변화가 온다. 교실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강의를 보고 들으며 혼자 학습을 한다. 그에 따라 교육과정은 물론 교육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온다. 이러한 교육은 시설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장 고교학점제 대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과는 대폭 늘어난다. 선택 교과가 느는 만큼 교사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부전공 교사로 적당히 땜질하면 오히려 사교육 수요만 증가한다. 교원 학보와 코고 작은 교실도 만들어야 한다. 교육 재정 확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자치 분권 시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거기에 따라 교육자치 또한 자연스러운 정책 담론이다. 그렇다고 지방자치 교육이 곧 교원의 신분 전환으로 귀결되는 것은 미시적 접근이다. 미래 시대는 교원의 전문적 자질이 더욱 중요해진다. 학력을 전문화하고, 연수를 강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성이 없이 교원의 신분 변화만 하는 교육 자치는 역설적으로 자율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역 간 격차가 크기 때문에 지방 교육자치가 오히려 지역별 격차를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자치가 고려돼야 한다. 지방자치 교육도 결국은 학생 교육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틈만 나면 교원의 지방직화라는 연구를 하는데, 우수 교원을 양성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당장 필요한 일이다. 미시적 접근보다 국가 교육의 질 향상에 눈을 두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강의 8주째인 4월 4주부터 5월 1주가 중간고사(평가) 기간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은 한 학기 강의가 15주로 그 중간이 8주째에 중간고사를 치른다. 대학의 학점 평가는 보통 중간평가 30%, 기말평가 30%, 과제물 20%, 수업참여 및 토론(실기) 10%, 출석 10% 등 100%로 이뤄진다. 대학마다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이번 학기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이 온라인 강의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진행돼 중간고사부터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대면고사(평가)에서는 정해진 기간에 오프라인으로 고사를 시행한 후 비율에 맞게 학점을 부여하면 그만인 데 온라인 평가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ㅇ노라인 강의 만큼 온라인 평가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의 대학들이 온라인 시험, 과제물 제출로 중간고사를 대체하면서 평가 방식을 기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변경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교수들도 정해진 비율에 맞게 학점을 배분하는 상대평가에 비해 절대평가는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건지 걱정하고 있다. 절대평가로 학점 인플레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온라인 개강을 한 대학가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평가 방식 문제로 술렁이고 있다.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한 대학들이 많은데 구체적인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올해 1학기 성적이 발표되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장학금 선정이나 취업에서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문제는 대분의 대학들이 중간고사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도입을 고려하고, 구체적인 시험 방법, 학점 배분 등은 교수 재량에 맡기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온라인 강의로 진행된 1학기 성적평가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이 철저히 교수 재량에 달려 있다. 교수 재량에 맡기고 별도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절대평가, 교수 재량 평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복불복 평가, 로또평가, 임의평가 등으로 신뢰성이 떨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상대평가 시 학점에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학생들이 불만을 사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대부분의 전국의 4년제 대학들이 온라인 강의를 운영 중이지만, 전국 4년제 대학 193곳 중 85곳(44%)이 오는 5월 초 오프라인 강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학기 기말고사는 오프라인 시험과 대학 측의 정책 전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달 말부터 5월초에 치러지는 1학기 중간고사의 평가 방식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1학기 성적 평가가 사실상 교수 재량에 맡겨지면서 학생들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교수들 간의 성향과 편차로 인한 학점의 불균형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수강 신청한 교과목 담당 교수가 극단적으로 A학점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수 있고, 친구들이 선택한 과목의 교수는 모든 학생에게 A학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평가의 문제는 객관성 신뢰성 담보가 결여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중간고사를 온라인 평가로 대체하면 대리작성, 대리시험, 커닝 등 부정행위 우려가 커 상대평가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많다. 과제 대체도 객관성 담보가 어렵다. 일반 대학원·로스쿨 입시에서는 학점이 당락을 가름한다. 성적의 객관성, 투명성, 공정, 신뢰성 담보가 돼야 한다. 그런데 대학별로 상대평가를 고집해 다른 대학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낮을 가능 성이 우려된다. 또 절대평가로 전환해 학점 인플레로 역차별을 받을 우려도 상존한다. 사실 온라인 강의에 온라인 평가 내지 과제 평가로 수행되는 대학의 이번 1학기 중간고사는 문제는 다양한 데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게 또 문제다. 학교, 교수, 학생들의 이해 관계를 모두 포용해 다수가 인정하는 대안으로서의 중간고사 평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러는 중간고사를 하지 않고 이 비율을 기말고사(평가)에 합산하려는 교수들도 있지만, 이 또한 강의계획서 예고에 어긋나고 기말고사 평가에 더 큰 짐을 지우는 우려도 있다. 그에 따라 학생들의 학점 신뢰성과 불만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코로나19 대란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수업과 강의는 미래교육의 총아(寵兒)다. 의료 전문가, 교육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19인 금년 가울, 겨울 즈음에 또 다른 세계적 감염병 창궐을 예고하고 있다.미래교육은 면대면 집합교육의 감축과 온라인·원격교육의 대폭 증가에 큰 줄기가 있다. 그렇다면 초·중·고교와 대학을 막론하고 온라인강의와 수업이 크게 증가할 것이고 또 온라인 평가의 문제는 현실적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온라인강의·수업과 온라인 평가에 바람직한 방안을 교육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말은 양날의 검이다. 말을 잘 사용하면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잘 못 쓰면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나 말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자기표현의 시대에 그 영향력은 어디서나 파장이 크다. 평소 EQ의 감수성을 발휘하여 말을 잘함으로써 대인관계의 폭을 넓혀 성공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헛소리를 구사함으로써 오해와 미움을 받거나 심지어 막말이 되어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말을 많이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무능과 오만함의 대상으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말은 이중성을 가지고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말의 힘을 느끼는 사례를 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이 수상이 돼 국가적인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무런 예고 없이 처칠의 숙소를 방문했는데, 그때 처칠은 목욕 중이었다. 무안해진 루즈벨트가 방문을 닫으려고 하자 처칠은 "괜찮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영국의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감출게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 한마디로 루즈벨트는 처칠을 친구 이상으로 신뢰하게 됐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그의 말 한마디가 상대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고, 처칠은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언젠가 모 방송에서 ‘말의 힘’이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말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 실험은 두 통에 쌀밥을 나눠 넣고 하나에는 ‘고맙습니다’라는 이름을 붙인 후 예쁜 말만을 들려주고 나머지 하나에는 ‘짜증나’라는 이름과 더불어 ‘짜증나, 미워, 넌 왜 이러니’라는 부정적인 말을 한 달 동안 했다. 그러자,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고맙다’라는 말을 들은 밥은 하얗고 뽀얀 곰팡이가 누룩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짜증나’라는 부정적인 말은 들려준 밥은 썩어버리고 말았다. 이 실험은 말의 위력과 파괴력이 엄청남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도 다시금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필자 또한 말이 주는 효과를 크게 경험했다. 힘든 수험생활에 지친 고3 민지(가명)에게 어느 무더운 여름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치고 힘든 요즈음에 샘은 민지를 위해 기도한다. 늘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네가 좋다^^. 화이팅!” 입시스트레스에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자주 찾던 민지는 그 시간 이후 점차 생기를 되찾아 무더위를 잘 넘기고 졸업 시까지 학급활동에서 필자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또한 ‘인서울‘ 대학에 진학하는 결과를 얻었다. 또 다른 필자의 경험을 보자. 어느 오후 무렵에 전철로 서울 시내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배낭을 맨 외국인 부부가 5~6살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승차했다. 지친 아이는 객실 안쪽을 응시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 중간 좌석의 승객이 자리를 뜨려 하자 꼬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잽싸게 가서 앉았다. 그러자 아이의 아빠는 그 자리는 바로 앞과 주변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우선순위가 있기에 네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 아이는 매우 싫었지만 아빠의 말에 순응하며 일어나 아빠에게 다가와 품에 안겼다. 이런 아들을 온몸으로 감싸고 “Oh, good boy!”라고 말하던 그 짧은 말은 자녀교육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최근엔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로 정치인들의 말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형태 없는 말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고 신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을 칭찬하고 존중해 주면 미담이 덕담이 되지만 남을 비방하고 험담만 늘어놓으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적개심뿐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그 너머에서 긍정, 부정의 커다란 존재감을 인식하자.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충남도교육청이 긴급돌봄 참여 교원 수당 지급을 두고 일반직공무원과 교원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해결을 위해 나서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이달 초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도교육청은 돌봄사업에 대해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밝혀 추후 학교가 교육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될 여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도교육청은 최근 교직원 갈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도교육청은 입장문에서 “교직원 사이 갈등 해소를 위해 교육청과 각 구성원 단체가 소통하고 협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며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돌봄을 함께 책임짐으로써 학교가 본래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해 학교 내 갈등이 해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도교육청은 교원 수당 지급에 대해 법령에 따라 정당하게 지급한 것으로, 이에 대한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에 감사도 표했다. 앞서 지난달 말 도교육청일반직노조는 긴급돌봄 참여 교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관련해 일방적인 비방에 가까운 성명을 발표하면서 교직원 간 갈등이 빚어졌다. 이에 대해 충남교총은 가장 먼저 “교원 비방행위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일 충남교총 회장은 충남도교육청일반직노조(충교노) 위원장을 만나 서로간의 입장을 들었다. 충교노 위원장은 일선에서 고생하는 선생님들께 심한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앞으로 서로 간 입장 차이가 발생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미리 논의하고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우리 선생님들 정말 대단합니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 상황에서 정말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김유열 부사장은 6일 경기도 일산 소재의 본사 부사장실에서 지난 한 달간 교원들이 보여준 열정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교원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좋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는 게 김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약 한 달 동안 80만 건 정도의 온라인 수업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는 대단한 수치”라며 “내용면에서도 추후 제작에 참고할 만한 좋은 콘텐츠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개학 초기 접속장애 등이 발생됐지만 다양한 업체 전문가들이 즉시 대응 가능한 ‘기술상황실’이 마련된 이후 빠르게 안정됐다. 이에 비해 원격교육 경험이 생소한 교원들의 적응 기간이 어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교원들은 서로 협력하고 밤샘작업까지 불사하는 등 노력으로 이 역시 예상보다 이르게 안정된 교육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일각에서 원격교육으로 인한 교원 역할 축소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김 부사장의 생각은 정반대다. 오히려 교사의 역할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쌍방향 원격교육의 경우 5명 이내가 적합하다. 그렇다면 분반이 더욱 잘게 돼야하므로 교원의 숫자 또한 늘어야 한다. 사실 현재 학급기준에서 쌍방향 원격교육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니터가 아무리 크다 한들 25명 정도의 학생이 분할화면으로 나눠진 상황에서는 쌍방향 교육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김 부사장은 “쌍방향 교육은 서로 원활하게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25명과 쌍방향 교육을 한다면 출석 체크하고 교육내용에 대해 각자 1분씩만 발표해도 수업시간의 절반 이상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학급기준으로는 쌍방향 원격교육보다 강의형이나 과제형 모델이 더 어울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원격교육은 곧 쌍방향이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다. 이런 인식개선에 대한 방법부터 원격수업에 맞는 교육과정 등까지 미래교육을 위해 완성형 모델을 찾아야 할 때는 이제부터다. 인터뷰에 앞서 4일 정부는 단계별 등교개학을 발표했다. 13일부터 6월초까지 모든 학년이 정상등교가 이뤄진다. 그러나 완전한 등교 전까지, 그리고 등교 후에도 원격교육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생활 속 거리두기와 생활 방역을 하면서 이뤄지는 학교 교육은 이전에 비해 적지 않게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난상황이 언제 어떻게 확산될지 예상하기 어려워 유비무환의 원격교육은 상시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교육 차원에서 원격교육은 순차적으로 확대돼 고전적인 교육방식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교육법을 찾아야 할 과제가 놓였다. 김 부사장은 “재난 대응 통합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원격교육의 장점이 현장에 잘 안착되도록 교육당국과 학교, 교원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라면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EBS도 원격교육 문제를 주요 연구과제로 삼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둑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작은 정사각형 안에서 단순해 보이는 한 수, 한 수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변화무쌍하다. 돌 하나가 결정적 역할을 해 판세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사소한 실수 하나가 전체 승부를 그르치게도 한다. 그래서 바둑을 흔히 인생에 비유하고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사색하고 배운다. 바둑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일 때 신묘한 한 수는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국이 벌어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의 몇 수이다. 큰 얼개를 잡아가는 중요한 수들… 이러한 틀을 잡는 포석의 과정은 매번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전체 흐름을 이끄는 핵심이다. 정해진 포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이후의 과정이 원만히 이루어진다. 처음 포석이 잘못 이루어지면 전체 판이 어그러진다. 첫 포석, 전체 판을 좌우한다 학교에서 교무업무를 주관하는 주무부장은 처음 포석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연간 학사일정 중 핵심이 되는 지점을 기준으로 잡고 학교 구성원이 최대한 만족하고, 무리 없이 일정을 추진해갈 수 있도록 조율한다. 단위 학교의 여건과 학교문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세부적인 일정의 순서와 행사 등은 차이를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심축이 되는 지점은 대동소이하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학부모 총회를 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 이후에 각종 위원회와 기구를 구성하는 것은 법률에 근거하여 각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처음의 수가 중요한 것이다. 중등의 경우 상급학교의 진학 일정에 따라 학사일정이 더욱 세밀하게 설계되고 수립된다. 수능일을 기준으로 내신 상정을 위한 고사 일정이 수립되고 이러한 축을 중심으로 학교의 행사와 활동들이 배치된다. 그런 점에서 학사일정의 수립은 바둑의 포석과 꽤 닮아있다. 큰 흐름 잡을 방점 필요해 코로나 19의 여파로 판이 계속 엎어지고 있다.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의 순차적 적용에 따라 학사일정의 변경은 불가피한 일이다.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점은 당연히 공감하지만, 기본적인 포석을 위한 지점을 정할 수 없어 계속 판이 새로 짜이는 데서 오는 피로감이 너무도 크다. 개학 연기가 2주 단위로 짧게 적용되다 보니 많은 부분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다. 일반적 시각으로 ‘2주 단위로 순연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단순하게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정 수업 일수와 시수를 기준으로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의 편성과 계절적 요인의 반영 등 복잡한 변수가 생기게 된다. 무엇보다 외부기관과 업체와 연계된 혹은 이미 계약이 이루어진 행사에 대해서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교무 관련 업무 담당자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년 말부터 준비해 온 학사일정을 셀 수 없이 바꾸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변경안을 작성하면서도 또 바뀔 것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피로가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 입장에서도 처음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큰 흐름을 잡아갈 수 있는 방점을 잡아주어야 한다. 온라인 개학만으로도 벅찬 학교의 현실 속에서 습관적으로 하달되는 공문은 힘을 빠지게 한다. 실제 등교의 시점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학교에 연간 학사일정과 평가 계획을 제출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면 융통성 있게 온라인 개학 종료 시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유예하며 학교 현장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관성에 의해 일반 학기와 동일하게 공문을 내리고 업무를 지시하는 행태는 교육부 장관이 직접 밝힌 담화문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학교가 힘을 내고 나름의 포석을 해갈 수 있도록 분명한 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자식 맡긴 죄인’은 학부모의 오래된 넋두리였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다르다. 자녀가 혼났거나, 수업내용에 불만이 생기면 가차 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학교 운영에 전권을 부여하고, 교사의 학생지도에 순응했던 과거 학부모와는 다르게 담임교사와의 관계도 수평적이기를 원한다.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 더이상 ‘자식 맡긴 죄인’이 아니라 ‘당당한 학교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감 놔라, 대추 놔라’ 시어머니 노릇하는 ‘센 학부모’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교에 부는 ‘치맛바람’은 거세다. 하지만 학부모가 되어 돌아온 X세대의 영향력은 조금 결이 다르다. 과거의 치맛바람이 촌지를 찔러주며 ‘우리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 치맛바람이었다면, 지금의 치맛바람은 학부모 커뮤니티나 학교운영위원회 같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다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적 치맛바람’이다. ‘내 아이가 잘되기 위해서는 학교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부모끼리 커뮤니티를 꾸려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토론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학교 교육에 다양한 의견을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 급식모니터링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학교폭력이 일어나는지 순찰을 돌고, 시험 감독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막무가내로 큰소리치기보다는 청와대나 교육청 민원실에 요목조목 따져가며 힘을 모은다. 자사고 폐지나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등 학교에 위기가 찾아오면 교육청으로, 언론사로 쫓아다니며 학교 살리기에 ‘올인’하기도 한다. ‘위기의 학교’가 ‘학부모의 열정’ 덕분에 되살아났다는 일화도 심심찮게 회자된다. 학교는 이런 학부모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자주 찾아와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며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센 학부모’들이 부담스럽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학부모 커뮤니티의 빠른 정보력은 교사의 정보력을 뛰어넘은 지 오래고, 고학력 전문직 학부모의 증가로 특정 영역에서는 교사보다 더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담임교사와 자녀교육에 관해 사소한 부분까지 공유하기를 원하며, 충족되지 않을 경우 ‘교사의 역할’을 운운하며 서운함을 표출한다. 학부모의 세대교체…X세대가 부모로 돌아왔다 학부모 역시 교사가 탐탁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했는데, 자신들이 교육받던 그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교육상황과 교사의 ‘꽉 막힌’ 사고방식이 답답하다. ‘학교와 교사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면 모든 아이를 소중하고,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당당히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교사도 사람이고, 혼자서 30명의 아이를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면 ‘핑계’라고 말한다. 도대체 X세대 부모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상대하기 힘든 것일까? ‘Z세대’를 키우고 있는 ‘X세대’는 이전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학창 시절과 20대에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1983년 시행된 교복 자율화로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유일한 세대, 민주화 항쟁을 겪었던 386세대 교사에게 진보적 사회의식을 배웠던 전교조 1세대,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시작으로 남녀평등사상을 대학에서 배우기 시작한 1세대, 88올림픽 이후 ‘세계화’ 물결을 타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배낭여행 1세대, 1994년 학력고사 대신 수능 제도로 대학에 입학한 수능 1세대, 1994년 대학자율화 정책으로 대학진학률(특히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급속도로 증가한 고학력 1세대, 1995년 ‘5.31 개혁안’을 통해 열린 교육으로 수업받기 시작한 이해찬 1세대, 1995년 ‘윈도 95’와 함께 개인용 PC가 보급되고, 천리안으로 무선통신을 처음 시작했으며, 삐삐와 휴대전화(셀룰러폰) 등 정보기기를 처음 사용한 정보통신 1세대, 1997년 IMF로 인해 ‘대학 졸업=취업’이라는 공식이 깨진 고학력 청년실업 1세대, 그리고 1998년 역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국민정부 1세대…. 이처럼 X세대는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이 가장 크게 변화된 1990년대를 관통한 세대이다. 즉,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신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X세대로 불렸던 요즘 40대 부모들은 이전의 40대와는 다르다. 학부모의 세대교체가 시작된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재구조화…엄마의 영역이 사라졌다 X세대 엄마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활발한 사회생활’ 즉, 대학 졸업 후 결혼이라는 공식을 깨고 ‘커리어 우먼’으로 사회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일하는 엄마가 많아지면서 아빠도 변했다. 집안일은 물론 공개수업·일일교사·급식 봉사·청소·교통 도우미 등 학교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 역시 엄마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했다. 부모는 자녀의 의견이 사회통념상 아주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자녀의 뜻을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이처럼 엄마의 사회진출은 일방적 부부관계에서 서로 돕는 수평적 부부관계로, 수직적 부모·자녀 관계에서 수평적 부모·자녀 관계로 ‘가족 구성원’의 관계 재구조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X세대 부모들은 학교에서도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수평적이기를 원한다. 자신들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교사도 학생의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학생 편에서 생각해주기를 원한다. 혹은 자신이 바빠서 해주지 못하는 ‘돌봄’ 기능까지도 학교에서 정성스럽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부모처럼 살지 않는 첫 세대…X세대 엄마, 아빠 두 번째 차이점은 ‘더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X세대 엄마들은 출산이나 양육만큼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며, 아이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남편보다는 내가 제일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답답하고 가여운’ 자신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늘 엄한 가르침으로 대하기 어려웠던 무서운 아버지,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결국 가족과는 정서적으로 멀어진 바쁜 아버지가 아닌 ‘친구 같은 아버지’로 관계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친구 같은 아빠’와 ‘자기 계발하는 엄마’는 생활지도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훈육’이 따라줄 때 아이들은 사회적 규칙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책임감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몸에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관에 가까운 부모의 양육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멋대로인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혹은 집에서는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미워하기 때문(혹은 엄마가 자주 학교에 찾아가지 않으니까)이라고 항변한다. “사실 우리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차별 때문에 오랫동안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는 비수와 같은 말과 함께. 사교육 시장을 키운 대학 만능주의…X세대 엄마, 아빠 세 번째 특징은 남다른 교육열이다. 어느 시대에나 부모의 교육열은 뜨거웠지만, X세대는 자녀의 대학진학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한다. X세대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 전국에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너도나도 대학에 가면서 대학진학률은 80%까지 치솟았다. 상고와 공고는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집 아이가 공돌이·공순이가 되기 위해 가는 학교’로 전락했고, 인문계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윗세대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탄탄대로의 성공 가도를 누린 것과 달리 IMF 경제위기와 국제금융위기로 취업은커녕 졸업조차 힘들어졌다. ‘대학 졸업이 곧 좋은 취직’이라는 공식이 깨진 첫 세대이다. 그래서 자녀가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고,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고 고집 피우며,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밀어 넣는다. 아무리 특성화고등학교가 변하고, 많은 혜택을 줘도 ‘인문계고등학교’를 고집한다. 고학력 청년실업률이 해마다 늘어나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진로지도는 여전히 1990년 ‘장밋빛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에게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는 ①학교폭력 신고, ②형사고소(진정), ③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이다. 오늘은 학교폭력과 관련한 민사소송의 쟁점과 학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손해배상액에 관해서 알아보자. 민사소송의 목적 민사소송은 가해학생으로부터 입은 손해를 가해학생에게 청구해서 금전으로 배상을 받는 절차이다. 학교폭력은 사건 발생 이후에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다, 우리한테 책임을 전가한다는 등의 이유로 감정적 갈등으로 소송이 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하는 피해학생 측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고 진심 어린 사과, 상대방이 거짓말 한 것을 소송을 통해서 명명백백히 밝히기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송은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과를 강제할 수 없고, 상대방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밝힐 수도 없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조정을 통하여 진심이 담긴 사과 편지를 보내고 소를 취하하는 방법으로 소송을 종결하거나, 상대방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손해배상의 요건과 관련되어 다른 증거에 의하여 거짓말이라고 밝혀질 수는 있으나 민사소송의 목적은 손해를 금전으로 보전받는 것이므로 피해학생이 원하는 모든 것을 법원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소송은 피해학생이 손해배상액을 정해서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은 청구금액 중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민사소송이 진행되면서 법원은 피해학생이 청구한 청구금액을 확정하는데 필요한 사실관계는 당부를 판단하지만, 그 외 상대방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지나 거짓말을 했는지 등은 판단하지 않는다. 소송은 모든 시시비비를 가려주지 않는다. 민사소송의 요건 학교폭력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①불법행위(학교폭력), ②손해의 범위, ③인과관계가 주된 쟁점이다. 불법행위는 보통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종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학교폭력으로 인정되어 가해학생, 피해학생으로 조치를 받은 사실 또는 형사절차에서 폭력이 인정되어 처분(보호처분 포함)을 받은 사실로 인정한다. 민사소송에서 학교폭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처음부터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보통 민사소송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또는 형사고소의 결과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학교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보이지 않는 은밀한 폭력, 사이버 폭력, 관계적 폭력의 비중이 크다. 이에 손해의 범위가 인과관계와 함께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손해는 적극손해(치료비 등), 소극손해(일실수입 등), 위자료로 나뉜다. 병원 진료비나 약값, 입원료, 심리치료비 등이 적극손해에 해당하고, 학생은 수입이 없으므로 일실수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치료비는 객관적 근거가 분명하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는데 정신적 손해인 위자료는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대법원은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확정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41377 판결 등 참조). 학교폭력 사건에서는 정신적 위자료를 참작할 수 있는 사정으로는 학교폭력의 경중, 경위, 관련 학생들의 연령, 피해의 정도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보통 위자료는 피해학생 이외에 부모도 별도로 청구한다. 인과관계는 심리치료비나 피해학생 부모가 받은 치료비 등이 문제 된다.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피해학생에게 원래 교우관계의 문제,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을 이유로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고 이를 청구하면 가해학생 측에서는 학교폭력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민사소송 사례 가. 사례1 ● 사실관계 ● 청구금액 피해학생은 가해학생들에게 1억 2천만 원, 부모에 대한 위자료로 각 1천만 원을 청구함 ●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 치료비 : 5,021,690원 향후 치료비 : 2,426,800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학교폭력의 관여도 : 75% 원고 측의 과실 비율 : 40%(부모가 주의를 기울이고 피해학생을 관찰했다면 상황을 파악하여 손해의 확대를 줄일 수 있었음) 위자료 : 피해학생에게 150만 원, 부모에게 각 70만 원 총액 : (5,021,690 + 2,426,800) × 0.75 × 0.6 + 1,500,000 + 700,000 + 700,000 = 6,251,820원 나. 사례2 ● 사실관계 ● 청구금액 치료비 등 8,929,338원, 위자료 50,000,000원(피해학생) + 5,000,000원(보호자) ●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 치료비 : 1,642,600원 인정하지 않은 금액 : 병원에 다니면서 지출한 유류비, 고속도로 통행료, 보호자 인건비, 전학으로 인한 생활비 위자료 : 7,000,000원(피해학생) + 2,000,000원(보호자) 총액 : 1,642,600 + 7,000,000 + 2,000,000원 = 10,642,600원 다. 사례3 ● 사실관계 ● 청구금액 : 정신적 위자료로 31,000,000원을 청구함 ●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 - 위자료 : 1,000,000원 가해학생 측은 피해학생 측에서 처음부터 돈을 원해서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학생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며, 가해학생이 초기에 진정한 사과를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소송을 하면 명확한 기준에 의해서 배상액이 정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손해배상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자료는 명확한 기준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정하므로 천차만별이다. 민사소송은 손해를 당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의 절차와 형사절차가 끝나고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학교폭력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꽤 지난 후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소장을 받은 가해학생은 이미 조치도 받고, 경찰에까지 신고해서 형사처분도 받았는데 다시 민사까지 제기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억울해하고, 피해학생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치유되지 않고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워하므로 당연히 가해학생 측에게 손해배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사소송까지 제기된다면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학교폭력 발생 직후에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여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다.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개학’은 사람들이 미뤄뒀던 모든 일을 하는 시발점이 되어버린 탓에 그 사회적 의미가 너무나 커져 버렸다. 온라인 개학은 일상 회복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마스크 없이 봄볕을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영웅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다. 외모, 힘, 돈, 지혜 여러 면에서 보통 사람들을 압도하고 그들의 도움이라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웅의 도움이라면, 갈망했지만 지지부진했던 문제들도 손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영웅을 기대하고, 한때 영웅인 줄 알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어린 시절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쉽게 매료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화려한 삶의 주인공을 꿈꾼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연예인, 돈과 인기를 긁어모으는 유튜버들이 요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명백하다. 인기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인기를 누리려고 하면 누구도 인기를 얻을 수 없다. 모두 리더가 되려고 하면 진정한 리더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고향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이상적 공간 영웅들은 모험을 즐기면서 많은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얼핏 보기에 오디세이아는 모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험은 보물섬처럼 신대륙을 향하는 여정이거나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는 일이 아니다.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다. 아름다운 마녀 키르케가 마술로 위협하고, 칼립소는 7년 동안이나 그를 붙잡아두지만, 고집을 꺾지는 못한다. 나와 같이 결혼하면 불사의 신이 될 수 있다는 제안조차 뿌리치고 고행길을 나선다. 오디세우스의 왕궁에 황금이 가득하고 페넬로페가 천하제일의 미녀여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타케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자가 풍부하다는 말은 애향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진정 이타케가 풍족한 땅이었다면 오디세우스의 부친 라에르테스가 농사일에 매진할 리 없다. 내가 살던 곳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자신이 내놓은 계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고향으로 귀환하고 싶은 것이 오디세우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키르케 덕분에 저승에서 이미 확인했고, 살아있는 아버지는 언제 명을 달리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구혼자들의 구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아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트로이 전쟁을 함께 했던 아가멤논은 귀향 후 원수 아이기스토스와 간통한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손에 죽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으로의 귀환은 아닐 것이다. 아마 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상화된 공간일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말하듯 여자 하나 때문에 그리스 전역이 참여하는 전쟁을 시작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명분이 무엇이건 간에 전쟁은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돌이켜보면 부와 명예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한 여자를 구출하기 위해 그리고 영웅들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 상관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승자 없이 패배자만 남은 전쟁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전리품으로 명예를 높인다고 해도 20년의 세월, 그리고 덧없이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귀향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중첩되어, 기억으로 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기억의 이정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선한 의지와 행동에서 오는 인간의 훌륭함 파이아케스 족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타케에 도착하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타케 전역에서 구혼자들이 나타나 텔레마코스를 죽이려 하고 페넬로페에게 청혼하며 난장을 벌이고 있었다. 구혼자들은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 환대를 요구하며 주인의 살림을 탕진한다. 오디세우스 혼자의 힘만으로는 왕궁에 들어갈 수도, 100명이 넘는 구혼자들을 모두 제거할 수도 없었다.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가장 낮은 신분의 거지가 되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구혼자들은 영웅을 자처하지만, 오늘날의 표현이라면 ‘양아치’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영웅들이 두루 갖춰야 할 미모와 무력은 없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허세와 허튼수작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양심 없고 이해타산에 밝은 평범한 소인배들을 유혹할 만큼의 힘은 있어서 동조자들을 구할 능력은 된다. 때문에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을 속여오던 묘책을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재혼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흘러가는 시간은 영웅의 황혼과 함께 새로운 영웅을 예고한다. 새로운 영웅은 오디세우스의 분신이자 지난 세월의 모든 것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이타케의 주인이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에 새로운 주인으로 성장한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에게 구혼자들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직접 창을 들어 그들을 제거한다. 처음에는 구혼자들의 만행에 대책 없이 분노만 삭이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자 오디세우스의 활시위에 화살을 얹을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증인들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외롭지 않았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유모 에우뤼클레이아는 지체 낮은 백성들이었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와 함께 성장했고 그를 길렀던 사람들은 신분과 상관없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훌륭함이 신분과 계급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의지와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꾸준한 마음과 행동에 있음을 오디세우스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이라기보다는 10년간의 시련기를 맞게 된 한 영웅의 변화와 각성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계략으로 상대의 힘을 빼는데 익숙한 영웅은 자신의 지혜와 용맹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10년간의 유랑생활을 하는 동안 모든 병사를 잃어버리고 혈혈단신으로 오귀귀 섬에 유폐되어 바다를 보며 눈물만을 흘리는 미미한 존재로 전락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이타케로 향한 오디세우스의 희망찬 여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를 만나 병사들을 잃었고 가까스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오디세우스가 불필요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폴리페모스의 저주를 받게 된다. 괴물의 아버지 포세이돈은 아들의 저주에 응답했고 포세이돈은 전심전력으로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방해한다. 오디세우스는 위풍당당했던 함대를 모두 잃고 우여곡절 끝에 마녀 키르케의 섬에 도착한다. 키르케의 섬에서 1년 동안 생활하다 다시 여정에 나섰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난파당한다.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렸고, 만신창이가 된 병사들이 헬리오스의 섬에 정박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키르케는 헬리오스의 섬을 피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인내심이 바닥난 병사들은 오디세우스의 경고를 듣지 않는다. 그들을 지치게 만든 원인에는 오디세우스의 호기심과 오만도 한몫했으니 사실은 자업자득이었다. 한배를 탔고 가장 믿을만한 친척이었던 에우릴로코스까지 반기를 든 상황에서 영웅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병사들과 함께했던 오디세우스는 당당했고 지혜로웠으며 동시에 오만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이라면 쉽게 위기를 돌파하고 괴물을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혹독하고 절망적이었다. 그는 무엇을 위해 전쟁에 나섰는가,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앞으로 해야 하는가. 귀향을 향한 여정과 칩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그 삶의 목표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 10권에서 저승에 있는 오디세우스의 영혼이 평민의 삶을 선택했다는 신화적 비유는 오디세이아의 메시지를 잘 읽어내고 있다. 파이아케스 섬에서 나우시카아의 도움으로 알키노오스 왕의 환대를 받게 된 오디세우스는 심금을 울리는 시인 데모도코스의 공연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회한에 젖은 과거는 드러내고 싶은 성공의 사례가 아닌 숨기고 싶은 과거일 뿐이다. 문학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아닌 인생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화려하지도 영웅답지도 않다. 각종 금은보화와 함께 금의환향을 꿈꿨던 병사들은 하나둘씩 스러져 저승으로 향했고, 그 자신은 거지와 다름없는 꼴로 불청객이 되어 주인의 환대를 바라는 초라한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무찌르는 장면은 영웅의 귀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세와 오만으로 점철된 자들에 대한 징벌에 가깝다. 권선징악을 이뤄낸 진짜 영웅들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고 있던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었던 돼지치기, 소치기, 유모였다. 지체가 낮고 차별받던 신분이 실제로는 인간사의 윤리와 도덕을 견지하고 있었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줄 알았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이아는 병사들을 잃고 혼자 된 영웅이 새로운 조력자를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평범한 일상의 승리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구혼자들이 사라졌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머무를 수 없다. 그는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오이디푸스의 진실을 말했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조언에 따라 그는 자신을 저주했던 포세이돈과 자신의 결정 때문에 희생당했던 많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야 하는 새로운 화두를 안게 되었다. 다시 고향을 떠나 정처 없는 길을 가다 ‘자유’의 상징이었던 노(櫓)를 땅에 묻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오디세우스에게 방황이 아닌 정착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결이 아닌 화해를 지향하고 있다. 오디세우스의 새로운 고향은 라에르테스와 페넬로페가 반겨주는 이타케가 아닌, 모든 영혼이 평화와 안식을 거둘 수 있는, 갈등 대신 평화와 환대에서 출발하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여정을 준비한다. 오디세이아는 영웅의 화려한 무용담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면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강요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그 모양이 어떻든지 간에 상황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는 힘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