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제 13대 충북교육감에 이기용 괴산교육장이 당선됐다. 이 후보는 3일 치러진 교육감 보궐선거 결선투표에서 2천101표(52.1%)를 득표, 1927표(47.8%)를 얻은 박노성 후보를 174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 후보는 1차 투표에서 1173표를 얻어 1366표(33%)를 얻은 박 후보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올랐으나 막판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 후보는 영재교육 확대와 외국어 교육 확대, 전용교사 연구실 확충, 탁아 유아방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었으며 TV토론회에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충북 교육 현실에 대한 대안을 제시, 인지도가 떨어지는 약점을 극복하고 당선됐다. 이날 결선투표에는 4763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4천29명이 투표해 84.6%의 투표율을 보였다.
교원평가제가 9월 중에 전국 48개 초ㆍ중ㆍ고교에서 시범 실시된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3일 교육부에서 교육과 시민사회 윤지희 대표 등 교육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부적격교원 퇴출제도는 9월1일부터 시행하고 교원평가제는 9월 중에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교원평가제와 관련, "(협의회에서 단일 시행안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교육부안을 비롯해 2개 모델을 만들어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별로 초ㆍ중ㆍ고교의 신청을 받아 시범 실시할 예정"이라며 "신청 학교에 대해서는 교원평가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실시 시기에 대해 "가능하면 9월 중에 조속히 시범 실시하고 늦어도 2학기 중에 시행하겠다"며 시기를 더이상 늦추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했다. 김 부총리는 "6개월 가량의 시범실시를 거쳐 1년 이내에 교원평가제 전면 시행에 대한 논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전국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발언은 6월 말부터 교육부총리, 교원3단체장, 학부모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특별 협의회에서 교원평가제 시행방안을 논의 중인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향후 협의회 단일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교육부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부총리는 "교원평가제는 교원 퇴출수단이 아니라 교육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무능력ㆍ자질부족 교사에 대해서는 재직중 연수나 휴직 연수 등의 기회를 준 뒤 그래도 능력 향상 등이 안될 경우 부적격교사로 분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총리는 부적격교사 퇴출제도에 대해서는 "촌지수수, 성적조작, 심신이상, 성희롱 등 분명한 부적격 사유를 정하되 부적격하다고 판단되면 확실히 퇴출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교육관련 단체 인사들은 "교원단체 위주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교원평가제 세부 시행 방안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지 말고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여름 방학에 K대학에서 열리는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신청하였다. 겨울방학까지 계속되는 연수이기에 무척 기대를 갖고 연수에 임하고 있다. 초, 중, 고 교사로 구성된 2개 반 60명이 20일 동안 받게 되는 연수이다. 첫날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에 소속 학교, 이름과 함께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신청하게 된 까닭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연수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의욕에 가득찬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이 연수가 얼마나 뜨거운 연수가 될 것인지를 짐작케 하였다. M초등학교 30대 남자 선생님께서는 결석이 잦은 어떤 6학년 아이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나올 때마다 불러서 결석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수준에 그치고 부모님께서도 상담에 응해 주시지 않아서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 들려오는 소문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폭력배와 어울려 다니며 경찰서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 듣고 전문적인 상담지식을 가졌더라면 좀 더 의도를 갖고 그 아이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 연수를 신청했다고 한다. D고등학교 여선생님께서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서울대 치대에 들어갔으나 대인관계에 있어 고충이 있는 듯하여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하여, S고등학교 남자선생님께서는 고1 딸이 있는데 중학교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공부를 잘 하였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일진회에 들어가 활동하며 공부를 하지 않고 문제 있는 행동을 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 일이 이 연수를 신청하게 된 동기라고 하셨다. 또 충남 당진의 어느 학교 기간제로 있는 여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상담 분야의 전망이 밝아서 전문 상담인이 되면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었을 때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또는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것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전문상담 인이 되면 퇴직 후 교사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Q고등학교 선생님께서는 학생부장을 하시면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는 중에 규칙을 어기는 학생들이 있으면 큰 소리를 지르거나 회초리를 들곤 하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좀 더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전문적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신청하게 되었다고 하셨고, A고등학교 보건 선생님께서는 보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실제 몸이 아프기 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을 알고 보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고 싶어서 신청하였다고 하셨다. 가장 공감이 갔던 말씀을 하셨던 선생님은 서울 J여고 진로상담부장을 맡고 계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는 20여년 동안 전공과목 한 과목을 가르치다보니 교과지도에서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는 교사라고 자처하셨다. 그러나 교과지도 외에 학생들을 대하는 것만큼은 날이갈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통하여 진로상담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조력할 수 있기 위하여 신청하였다고 하셨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모든 교사들이 전문 상담 자격연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단시일에 끝나는 연수보다 깊이 있게 상담분야를 배울 수 있다는 것과 전문상담 교사자격증이 주어진다는 것, 또 1정 자격연수와 동일한 것으로 승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들었다. 이제 2주일째 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상담원으로 오랜 경험이 있는 강사들이 간혹 들려주시는 상담사례들은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담사례들이었으나 내담자로 하여금 상황을 극복하고 그들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기까지의 과제해결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바람직한 생활과정과 성장발달의 지도를 위하여 기울인 노력은 전문적인 상담지식이 부족한 교사들과는 매우 다른 부분이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성격유형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받아보며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학습지도 및 자녀교육의 강점과 약점, 대안, 사랑, 업무처리에 있어 나 자신과 타인의 성격역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의사결정유형검사(Assessment of Career Decision Making:ACDM-Decision Making Style)를 받아본 결과 의사결정시 의존적인 점은 없지만 합리적인 면보다는 직관적인 점 다소 높게 나온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연수를 받아보았지만 이번 연수처럼 열띤 토의와 넘치는 질문, 강사와 함께 오고가는 인정미 넘치는 대화로 활기찬 연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전문적인 상담지식의 부족으로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있어 오류를 범했던 부분들을 하나 하나 깨달으며 좀더 일찍 이 연수를 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후소샤(扶桑社)가 왜곡된 역사ㆍ공민교과서의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간 가운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이들 교과서의 채택 거부를 호소하는 내용의 의견광고를 일본내 일간지 4곳에 게재했다고 2일 밝혔다. 이 단체는 의견광고 게재를 위해 지난달 4일부터 범국민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이날까지 3억4천여만원을 모았고 이를 재원으로 요미우리ㆍ아사히ㆍ홋가이도ㆍ니가타 신문에 의견광고를 냈다. 이들은 앞으로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신문인 에히메ㆍ구마모토ㆍ시마네 신문 등 3개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게재할 계획이다. 이 단체가 낸 의견광고는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맡자'는 큰 제목아래 후소샤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전쟁이란 멋진 것이구나. 다시 해보고 싶은 걸?"이라는 대사가 실린 박재동 화백의 삽화가 담겨있다. 그러나 에히메 신문은 이 삽화를 문제삼아 광고 게재를 거부해 다른 그림으로 대체하는 우여곡절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 단체는 4일부터 일주일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한ㆍ중ㆍ일 3개국 청소년과 교사 등 180명이 참가하는 '제4회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를 연다.
지난 6월 23일에 나는 MAACCE에서 미주리대학(at Saint Louis)의 Dr. Cochran 교수와 공동으로 ESL 교육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MAACCE는 The Missouri Association for Adult Continuing and Community Education의 약자로 굳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자면 ‘미주리지역 성인교육 및 지역사회 교육협회’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협회는 한국으로 말하면 학회의 기능도 하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지니고 있는 교수도 발표에 참여하여 현장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현직 교사들과 만나고 있으며, 초, 중등 교사들, 지역사회 ESL Center의 director 및 교사들이 활발하게 관심 분야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내가 토론자로 참석한 한 영어학회는 초등학교 교사를 비롯한 중등 영어를 담당하는 교사들이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신의 교육 내용을 활발하게 발표를 하였고, 그 중 몇몇 발표자의 내용은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이었다. 코크란 교수는 ESL 교육을 위해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였고, 나는 한국에서 영어는 ESL이 아닌 EFL, 즉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이므로 EFL 상황 하에서 만 5세 유아의 효과적인 영어교육 교수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내용은 한국의 학회지에 실린 것으로 구체적인 영어교수법의 효과를 분석한 것이다. 발표 시간에 교사교육으로 명성높은 헌스키교수를 비롯한 한 대학의 학장님까지 참석을 하여 다소 긴장하였으나 코크란 교수가 계속 웃으며 격려하고 여차하면 도와줄 자세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추상적인 언어의 의미를 시각적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보여주는 손유희가 단어의 뜻을 보다 쉽고 오랫동안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가정이었고 처음 시도해본 연구의 결과이므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분석의 결과는 내 가정대로 나왔다. 어린 아동일수록 구체물을 통한 개념인식이 필요하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에 수많은 교육매체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감각을 통한 인식의 단계를 차례로 거치며 추상의 언어와 수를 이해할 수 있는 판단력, 분별력, 인식력, 신체적 협응력을 키우고, 언어와 수라는 교육목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립심, 집중력을 훈련하는 것이다. 발표 중 “잠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심정이 되어보세요” 하며 “다섯 마리 작은 새가 여기 있어요. 꾀꼴꾀꼴 짹짹. '꾀꼴꾀꼴 짹짹. 집으로 날아갑니다” 하고 손유희를 곁들여 보여주고 들려주었더니 미국 선생님들이 호의적인 눈길로 웃으며 바라보아 주었다. 나의 의도는 여기서 한국어를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어는 이들에게 외국어의 하나로서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여 보고, 또한 외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잠시나마 이해해 보자는 것이었다. 발표가 끝난 후 질문 중에 “외국에서 이민 온 영어를 거의 못하는 성인들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키면 효과적인가”가 있었다. 참석자들이 모두 선생님들인 까닭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서로 나누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성인들은 아동보다 기억력이 더디므로 같은 내용을 여러번 반복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손유희가 성인들에게도 유용한가’라는 질문에서 나는 “아동과 성인에서의 손유희의 기능은 다르다. 어린 아동의 경우 손동작은 개념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로서 기능을 하나 만 5세만 되어도 정상적인 아동은 두세 번 손동작을 보고난 후엔 손동작에 의지하지 않고 이미 머리 속에 형성된 이미지로 개념을 끄집어내려 한다. 그러므로 성인에게 있어서 손유희는 놀이의 즐거움을 주는 기능을 주로 담당할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당시에는 성인의 언어교육을 위해서 아동보다 더 많이 반복을 해야한다는 말만을 하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성인의 경우 언어교육이든 그 밖의 어떠한 교육이든 당사자들의 교육 참여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들의 관심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 갔을 때 한국어 관광안내인은 자신이 모르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광객을 만나면 필요한 말을 물어보고 외우며, 공책에 적고 연습하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발이나 다름없는 차를 운행하여야 하는데 주유소의 주유방법을 물어보아야 하는 일이었다. 주유기에 사용방법이 쓰여져 있어도 Lift를 하라는데 어떤 기구를 Lift해야 하는지 몰라 매우 당황했던 때가 있었다. 그 밖에도 상점에 가서 필요한 영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용어이다. 그런데 ESL 반에 가면 정해진 단어와 문법을 알려준다. 이미 성인이 된 그들이 대학을 들어가려면 문법을 배워야 하겠지만 일상 생활에 도움을 받고자 온 사람들인데 그 소용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아동교육이든 성인교육이든 교육의 필요성과 목표에 따라 내용과 지도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연구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 가정을 해보면 그러하다. 한국도 이제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외국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꿈의 한국’을 그리며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나라에서 정보를 접하는 능력도 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앞날을 개선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꿈을 달성하러 오는 사람들이므로 그 사람들의 수준은 중간 이상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또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서도 이들이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이들에게 외국어로써의 한국어를 배워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한국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작은 전도사일 수 있다. 몽골에서 온 서커스 단원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국 초등학교에 넣었더니 학교에서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고 선생님이든 아이들이든 왕따를 시켜서 그 몽골아이가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미국은 ESL반이 있어서 전 세계에서 온 아이들을 그 아이 수준에 맞추어 적응시키고,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몽골의 아이나 방글라데시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상처를 받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아이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미국의 ESL반에서도 차별은 있어서 일본사람의 경우 우대를 받는다. MAACCE에서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매우 다양하며, 교육협회의 목적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활동을 개발, 연구하여 성인과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와 기관을 지원하는 것이다. Maryland 지역의 MAACCE, 성인교육 및 지역사회 교육협회와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미주리 지역은 보다 더 넓은 서비스를 추가하여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포함된 내용에는 Extension Service, School -Age Child Care, Allied Healthcare, Volunteer Program들이 있다. MAACCE 교육협회의 구체적인 담당영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Maryland). - 성인교육(Adult Education) 미국 검정고시(Pre-GED, GED) 과정, 고등학교 졸업과정, 직업교육, ESL 교육 - 글 이해하기(Literacy) 글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가정교사, 협의회, 단체 지원 -지역사회 학교(Community College) 지역사회 학교의 교직원 지원- 사업, 직업훈련, 특수교육, 일반인의 전문적, 교육적, 문화적, 직업적 필요에 의한 코스나 프로그램 지원 -평생교육(Continuing Education) 고등교육의 행정, 직업/기술 훈련, 사업/산업 세미나, 특수교육 분야에 관한 성인교육 -행정(Administration) 리더십 기술 개발을 위한 토론회, 성인교육, 지역사회교육, 평생교육에 종사하는 행정종사자의 networking 지원 -교정교육(Correctional Education)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교정교육에 참여하는 교정원, 행정가, 자원봉사자를 지원 -지역사회 교육(Community Education) 지역사회내의 기관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사회 교육개념을 개선하고, 확장시키고, 촉진시킴. -외국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 말하기 지원(English for Speaker of Other Language) 외국어 사용자의 영어를 지원하는 교육자, 행정가, 자원봉사자의 관심 사항과 문제 사항 위탁교육 미주리 지역 MAACCE는 미주리 지역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평생교육에 관심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규 conference를 운영하고 있는 데 이번 6월 conference는 호수가 많고, 숲이 우거졌으며, 요트 및 각종 운동, spa에 이르기까지 휴양지로서 이름이 높은 지역내 resort에서 개최되었다. 논문 발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호수도 보이고, 숲도, 넓은 풀밭도 보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평생교육원 개념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 지역사회와 지역사회내의 개인들의 필요성과 발전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교정교육이나 검정고시 교육과정, 외국인을 위한 언어교육, 지역사회 내 기관들간의 network 연결 및 자원 활용지원은 내게 참신하게 다가왔다. 특히 community college 지원에 관심이 많이 갔다. 외국에서 들어온 학생이거나 현재 University에 재학중인 학생들도 외국인 학생인 경우 언어의 어려움으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 집안의 우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적이 나쁠 때, 혹은 University에 바로 들어가기 어려울 때 community college에 들어간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주변의 기술교육기관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역의 특수성에 비추어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는 미국이나 여타의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참고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지난달 말 임기만료로 물러난 전성은(全聖恩) 교육혁신위원장 후임에는 설동근(薛東根) 부산시 교육감을 내정했다. 설동근(57) 교육혁신위원장 내정자는 제12,13대 부산시 교육감을 역임하며 왕성한 추진력으로 부산 교육계의 혁신을 주도해왔다. 마산고교와 부산교대를 졸업한 뒤 부산용호.좌천초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연안해운업체인 삼영선박을 운영하다 98년 민선3대 부산시 교육위원으로 교육계에 다시 발을 내디뎠다. 2000년 보궐선거에서 '부산 교육은 변해야 한다'는 혁신론을 주창하며 제12대 부산시 교육감에 당선돼 교단지원체제와 학교 자율경쟁체제 강화에 주력하고 2004년 제13대 부산시 교육감에 재선됐다. 교사와 학생이 수업에만 전념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휘되는 교육환경 조성을 목표로 부산 교육계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EBS 인터넷 수능 자문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부산 양운초등학교 교장인 부인 박현자(55)씨와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경남 의령군(48년) ▲동아대학교 대학원(행정학 석사) ▲ 민선3대 부산시 교육위원 ▲제12,13대 부산시 교육감 ▲EBS 인터넷 수능 자문위원장(현)
한국교원대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교육자료 특별전시회를 11일부터 한 달간 교원대 교원문화관에서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이번 특별전에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사를 살필 수 있는 초.중.고 교과서와 참고서, 입학과 졸업 관련 자료, 학생 활동 자료, 교사 자료와 교지 등이 전시된다. 교원대는 특별전 개막 날인 11일 교육박물관도 착공할 계획이다.
경기도 여주교육청이 지난 겨울방학 때 처음 도입한 교사 대상 골프연수가 인기를 끌고 있다. 2일 여주교육청에 따르면 여주지역 유치원 및 초.중학교 교원 40명은 1일부터 10일간 여주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골프 지도교사 양성과정 직무연수를 받고 있다. 이번 연수는 지난 1월 전국 처음으로 실시한데 이어 두번째 열리는 것으로, 연수 희망자 접수에 70여명이 신청해 여주지역 장기 근무자 순으로 연수대상자를 선발해야 했다. 특히 이번에는 교장 7명과 교감 2명 등 관리직 교원 9명이 포함됐다. 골프연수는 12개 골프장이 있어 '골프특구'를 추구하고 있는 여주지역 특성을 살려 학생들에게 골프 특기.적성교육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여주에는 이포중.고가 2003년 골프부를 창설한데 이어 이포고가 올해 첫 골프과를 신설했다. 또 전교생이 100여명에 불과한 상품초등학교와 천남초등학교는 각각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교내에 골프연습장을 세우고 골프영재반과 특기적성반을 편성해 특성화교육 프로그램으로 골프를 가르치고 있다. 천남초교의 경우 올해 골프연습장을 만들면서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4명이 전입해왔다. 여주교육청 심상해 장학사는 "지역특성을 살린 골프연수와 도예 실기연수의 경우 신청자를 다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연수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며 "교원 개인의 흥미를 충족시키기 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연수를 이끌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석유, 천연가스 부존 가능성 제기로 분쟁 시작 중국의 일방적 영유권 주장으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 6개국 걸친 국제분쟁, 무력 충돌은 중·베트남간만 발생 해양자원 공동개발 이해 일치하면 평화적 해결 여지도 20세기 이후 해양 영유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국에서는 장기적인 해양 전략을 통해 자국의 해양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이 전개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육상의 국경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지만, 해양의 영유권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비화되어 상대국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 구실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역사적인 이유로 특히 민감하다. 즉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식민지, 반식민지 상황의 경험으로 상호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 특히 해양 영토분쟁은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고 당사국 사이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상호 불신과 민족 감정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 해양 영유권 분쟁의 특징은 중국과 여타 국가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남중국해의 동사, 중사, 서사, 남사군도와 각 국과의 거리 (자료출처: www.enanhai.com) 남중국해는 북쪽으로 중국, 대만, 동쪽으로 필리핀,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서쪽으로 베트남에 접해 있다. 남중국해에는 동사(東沙, Pratas), 중사(中沙, Macclesfield Bank), 서사(西沙, Paracels), 남사(南沙, Spratlys)군도 등 4개 군도가 있다. 남중국해의 분쟁은 4개 군도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으나 가장 복잡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남사군도이다. 동사, 중사, 서사군도는 중국의 관할 아래 있지만, 남사군도는 중국과 동남아 여러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으로 아주 민감한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명칭도 동남아시아 각국이 각기 달리 표기하고 있는데, 영문으로는 Spratlys, 중국에서는 남사군도, 베트남에서는 Trong-Sa(長沙)군도로 표기하고 있다. 73만㎢의 남사군도는 남중국해 남단에 위치한 해역으로, 약 100여개의 작은 섬, 모래 섬, 환초, 암초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해상 위에 돌출해 있는 섬의 총 면적은 2.1㎢에 불과하다. 남사군도에 대해서는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및 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그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이 주요한 분쟁 당사국이다. 중국, 대만, 베트남은 남사군도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다른 분쟁 당사국은 일부 수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유엔 해양법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형성된 지형물은 섬이 아니며, 만조 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섬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사군도에서 브루나이를 제외한 모든 분쟁 당사국들이 섬이 아닌 암초와 같은 지형물까지 점령하고, 여기에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 운영하면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사군도 영유권에 대한 각국의 주장을 보면 먼저 중국은 역사적 이유를 들어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한(前漢) 때 남사군도를 발견했고, 송대(宋代)에는 석당(石塘), 장사(長沙) 등의 지명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 기록에 무수히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중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명칭만 기록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영유의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47년 중국은 9개의 불명확한 점선이 표시된 지도를 발행했고, 이 점선 안의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 대만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f)에 의거 일본은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대한 일체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 지배권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거 ‘당연히 중국(대만)에 환원’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으로부터 서사군도를 빼앗아 해남도의 일부로 편입했다. 또 남사군도의 7개 섬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1992년 중국 영해법으로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선언했다. 대만은 중국의 주장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1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베트남은 역사적 증거 및 대륙붕 원칙에 입각하여 남사군도 전체가 자국의 칸호아성 근해지역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17세기 남사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영유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공식 지도에 표기된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면서 1933년부터 1939년 사이 남사군도 가운데 9개 섬에 대해서 실질적인 지배와 점유를 유지하고 1933년 공식기록에서 이들 섬의 영유권을 명시한 것을 근거로 베트남은 남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남사군도의 29개 섬을 점령하고 있으며 1974년 중국에 빼앗긴 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위치상의 근접성과 함께 1956년 필리핀인에 의해 탐사가 이루어진 사실에 입각하여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하고 있다. 1971년 필리핀은 칼라얀이라고 부르는 8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섬들은 남사군도의 일부가 아니며, 어느 나라에도 소속된 적이 없으며, 영유권이 주장된 적도 없다고 밝혔다. 1972년 필리핀은 이 섬들을 팔라완주로 편입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대륙붕 원칙에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의 대륙붕 지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5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본토에서 운반한 흙으로 1개 환초를 매립하고 이곳에 호텔을 지었다. 브루나이는 분쟁 당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어떤 섬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일부인 자국에 인접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84년 브루나이는 루이자 산호초 지역을 포함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는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없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이 주장하는 해양 경계선이 인도네시아 나투나 가스전이 포함되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까지 연장되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남사군도 영서초(永署礁) 만조 때는 0.6m만 수면 위에 드러나는 암초. 중국은 여기에 인공 섬을 만들고 헬리콥터 착륙장과 해양기상 관측 기지를 건설, 40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300m 길이의 부두시설까지 갖추었다. (자료출처: www.nansha.org.cn) 1970년대 이전에는 남사군도의 영유권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으나 이 지역에 석유, 천연가스의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중국이 1974년 1월 남베트남 관할 하에 있던 서사군도의 일부 섬을 점령하여 서사군도의 전 지역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남사군도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중국은 남사군도로 적극 진출하여 1988년 3월 남사군도 적과초(赤瓜礁, Johnson Reef)에서 중국-베트남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분쟁이 발생했다. 이 사건 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어선 조업 및 석유 시추활동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외교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일대를 지배해 왔었다고 하는 자부심이 있다. 이러한 자부심과 결합되어 중국은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이 중화주의의 실현에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 전략은 단순히 해상 방어의 차원을 넘어서 해상 자원의 이용과 개발을 통해 동아시아 해상의 지배권을 차지하는데 있다. 남사군도 분쟁에서 중국은 실효적 지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설물을 설치하여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영유권 주장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즉 조어도 문제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조어도를 강탈했다고 비판하면서,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로 자신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근대 이전 조공국이었던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해 종주국의 권리까지 내세워 남사군도의 일부를 강점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이중적 태도는 중화주의적 패권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중국의 교육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교과서에는 남중국해 전체를 중국 영토의 경계선 안에 포함시켜 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 사회교과서(歷史與社會, 7年級, 上冊)에는 중국 영토의 최남단을 남사군도 증모암사(曾母暗沙, James Shoal)로 기술하여 이것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어도 영유권에 대한 애매한 서술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다. 나아가 교사용 지침서에는 영토 교육을 통해 중국은 거대한 국가이고 영토는 신성불가침한 것임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국가주권 의식을 심어주라고 기술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처음에는 중국과 베트남 등 개별 국가 사이의 영토분쟁으로 진행되었으나 1992년 중국이 남사군도 전체를 자국의 영토로 귀속시키는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국제법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은 아세안 각국에서 중국의 패권주의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었다. 또한 베트남이 1995년 아세안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고, 아세안이 이 지역 분쟁의 중재자로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면서 국제정치상의 공식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국의 주요 무역항로인 말라카 해협-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사군도는 한국에도 전략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이 분쟁이 국익뿐만 아니라 중국, 아세안과의 국제관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쟁의 해결방향은 우리에게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6개국에 걸친 복잡한 국제 분쟁이지만 실제적인 무력 충돌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만 발생했고, 향후 분쟁이 재연될 경우 주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 3개국의 분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분쟁 당사국들은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와 평화적 해결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남사군도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자 아세안에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사군도 공동개발안을 제시했다. 최근 남중국해 분쟁의 이해 당사국들은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을 포함하여 일부 유럽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자원의 다국적 공동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대한 돌파구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계속 논쟁이 되어왔던 인도, 베트남과의 국경문제에서 중국은 상당한 양보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남사군도 문제에서도 중국은 공동 개발을 목표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남사군도는 현실적으로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하기 어렵다. 그리고 남사군도 분쟁은 영토 그 자체보다는 해양자원의 개발과 이용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해양자원의 공동개발이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여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박정현
2006학년도 대학 신입생과 관련하여, 1학기 수시모집이 한창 진행중에 있습니다. 경쟁률이 30:1을 넘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100:1이 넘는 대학까지 부지기수입니다. 대개 1학기 수시모집은 하향 안정 지원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소신 지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만만치않은 경쟁률로 인하여 탈락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마음의 상처도 그만큼 깊어집니다. 무려 80:1이 넘는 평균 경쟁률을 뚫고 1차 서류전형(3배수)에 합격한 학생들은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곧바로 영상강의와 집단 토론에 대비하느라 눈코뜰 사이 없이 바쁘답니다. 이 과정만 통과하면 그토록 고대했던 최종 합격의 기쁨이 손 안에 들어올텐데......
21세기 지식,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교육 개혁의 요소 중에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과제는 교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의 문제, 즉 교실수업의 질이다. 이 문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교육개혁이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면서도 가시적이지 못하고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요인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리거나 소홀히 취급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어떠한 문제에서 장애가 되는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학교교육의 변화와 교실수업의 도약을 위하여 특히 학교현장에서 관리자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敎室授業跳躍, 管理者의 役割은 무엇인가? 학교 경영의 책임자인 교장이나 중간 관리자인 교감은 학교의 전반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학교 경영자로서, 학생을 교육하는 일과 학교 교육 전반에 걸친 실제적 운영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자로서 교실수업도약의 주역인 교사의 전문성 향상은 물론 학교 교실수업의 제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지향적인 학교경영이 되도록 다음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수업의 질 향상을 촉진하는 학교 경영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직원회의를 연수 위주의 회의로 전환하고 교사의 담임 및 업무 배정은 물론 교무실을 교과 중심의 연구실화 하는 등 관리자가 앞장서서 교실수업도약을 경영중점 과제로 설정 추진해야 한다. 둘째, 교실수업도약을 위한 기본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ICT, LAI 수업 등 교실수업도약을 위한 기본적 여건 조성은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휴먼웨어의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인프라가 구축될 때 참다운 교육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고 수업의 질이 향상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다. 셋째, 자율장학을 활성화하여 전교사의 '수업★STAR化' 분위기를 확산해야 한다.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한 현직연수, 외부강사 초빙 연수, 선진학교 견학, 교과 연구회 활동의 활성화, 교사 1인 1연구 활동, 공개 수업 등 교사 간 수업 기술을 공유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등 자율장학의 활성화하여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장시켜야 한다. 넷째,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도서관, 탐구실, 실험실, 자습실 등을 개방적으로 운영하여 학생들에게 선택 기회를 넓히고 자발적인 탐구의 기회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자율과 창의성을 신장하고, 학생 수준을 고려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함으로써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학습 능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학교에서 교실수업도약의 과제는 교육환경과 여건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사 개인의 교과에 대한 전문적 역량을 개발하고 열정을 갖는 일이다. 이를 위한 교사 아니 스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며,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실수업의 도약이 절실한 시기이다. 따라서 교장과 교감은 행정가로서만이 아니라 전문직으로서 교사들의 전문성을 보다 높여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율적인 노력과 신념의 배양, 교과에 대한 전문적 소양과 깊은 이해, 학생에 대한 애정, 교육의 가치에 대한 열정, 교육활동 전 영역에 대한 바른 이해와 협조 분위기 조성에 노력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교실수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방학을 맞아 선생님들의 연수 열기가 삼복더위보다 뜨겁다. 한국교총에서도 올여름 300명의 교원들이 현장교육연구방법론 등의 연수를 받는다. 게 중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방을 얻어놓고 수고하는 열성파도 있다. 노력과 시간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두들 학점, 또는 승진점수를 따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에서 연수 경비를 지원받은 교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최근 3년동안 연수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는 교원들이 20%가 넘는다는 연전의 조사결과도 있었다. 현행 체계로는 승진에 관심이 없고, 연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교직생활 3년이 지나면 받게되는 1급정교사 자격연수만 받고 나면 나머지 30여년 동안을 연수한번 받지 않아도 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로 그런 교원은 한사람도 없겠지만, 한마디로 승진에 목마른 사람은 스스로 돈들여 가며 우물을 파고, 싫으면 관두라는 식이다. 지식기반 사회, 평생학습 시대를 맞이하여 온 국민들이 생애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기업체에서는 직원연수에 명운을 걸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 때, 정작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교원들의 연수 체계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될 일인가? 교원 연수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만큼 정부는 교직 생애에 걸쳐 단계별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내용을 시간적, 경제적 부담없이 받을 수 있는 체제를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 4년 이상을 공들여 양성한 교직인재들이 2, 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인력관리를 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연수체제 개편에 관해서 교육부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교직 전생애에 걸친 전문성 개발에 중점을 두고 연수프로그램 개선, - 교직수행 필수분야에 대한 주기적 연수이수제 도입 추진, -연수기회 확대 및 연수비 지원 등을 계획하였다. 기실, 이같은 계획은 표현만 달리하면서 수년동안 거듭되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하반기를 넘어선 이 시점에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교육부의 답변을 기다린다.
25년이 넘게 야생식물을 연구해 온 이명호 교사(의정부서중)가 최근 학생들을 위한 식물도감 《어린이 식물백과》(베텔스만 북클럽)를 출간했다. 초·중·고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식물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 600여종을 엄선해서 실었다. 그간 모아온 3300여종의 자료 가운데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선별하고 쉽고 재미있는 설명을 붙이는데 2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바쁜 교직생활 중에서도 오로지 야생식물에 대한 애정으로 이뤄낸 방대한 자료와 설명에 학계에서도 귀중한 성과로 보고 있다. 사범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식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우리나라의 모든 식물을 카메라에 담고자 결심했다는 이 교사는 좀 더 나은 사진을 위해 사진 기술을 배우고, 타고 다니는 차까지도 바꿔가며 매주 전국의 산야를 빠짐없이 돌아다니는 집념을 보이고 있다. 이 교사는 개인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외에도 우리나라의 야생식물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의정부에 있는 정보도서관에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숲 해설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며 홈페이지 ‘이명호의 야생화(www.skyspace.pe.kr)’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시(市)의 지원으로 4권의 《의정부 야생식물도감》과 5권의 《경기 북부 야생식물의 세계》를 발간했다. 특히 올 여름방학 때는 시의 지원을 받아 의정부 청소년 생태 체험교실을 4~5차례 열 계획이며, 도교육청의 지원으로 의정부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교실을 계획 중이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4년에는 의정부시로부터 학술부문 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게 제가 대학교에서 배웠던 식물도감인데 아직도 이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참 잘 만들어진 책인데 나온 지가 20년이 넘은 것이라 이를 뛰어넘는 식물도감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대학 때부터 보아온 《대한식물도감》을 능가하는 식물도감을 만들고 싶다는 이 교사의 최종목표는 우리나라의 식물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 식물도감을 편찬하는 것. 이를 위해 이미 사진을 찍은 식물일지라도 더 좋은 자료를 모으기 위해 다시 촬영을 하고, 중국과 백두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에도 다시 백두산을 오를 예정이다. 이 교사는 자신의 책이 학생들에게 유용한 학습 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도 소중한 생명이 깃들여 있음을 일깨워주는 역할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엄성용 dyddl96@kfta.or.kr
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청계천, 서울의 역사 이번 호에서는 서울의 다리를 찾아 옛 궁궐도 찾아보고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청계천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옛날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도성이 둘러쳐 있고 명당자리에는 궁궐이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도성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런저런 애환이 담긴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지금 청계천 주변에 남아있는 지명으로 청계천의 옛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종로는 도성의 중앙에 자리한 보신각종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일대는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어 운종가(雲從街)라고 불리었습니다. 마장동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말을 팔고 사던 목마장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다동은 다방골로 불렸는데 주로 광교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민중들의 주거지였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중인들은 장통교 및 수표교 일대에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관수동은 관수교에서 유래하는데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장교동은 장통교에서, 수표동은 수표교에서, 무교동은 모전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청계천 일대에는 이렇듯 다리와 관련한 지명이 많습니다. 서울에 도읍을 정한 이래 서울 사람들의 생명수로, 배설구로, 위정자들의 정치적 무 대로 활약했던 청계천이 어느 때부터인가 빈곤과 비위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복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오는 10월 1일이면 약 6킬로미터에 이르는 청계천이 다시 태어납니다. 청계천의 역사는 곧 서울의 역사였고, 서울의 현재이고, 서울의 미래입니다. 청계천의 다리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입니다. 이 말에는 자연 그대로의 하천을 파서 새롭게 물길을 정비했다는 개척정신이 숨어있습니다. 현재 서울시장이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복원사업 또한 또 다른 개척의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청계천이란 말은 1910년대 이후 붙여진 왜색 짙은 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복원을 진행하면서도 지금까지 약 90년 동안 공식적인 하천명칭이었고, 어의가 나쁘지 않고,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청계천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량포가 일제에 의해 중랑천이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는 백악·인왕·목멱산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서 도성 가운데를 가로 지나서 세 수구(水口)로 나가 중량포(中梁浦)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개천에 있던 다리로 송기교, 장통교, 태평교, 혜정교, 대광통교, 통운교, 연지동교, 동교, 광제교, 하량교, 영풍교, 송첨교, 영도교, 제반교, 청파신교, 경고교, 홍제교 등이 보입니다. 그중에서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관수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은 옛 이름을 되찾고 새로운 다리로 탄생합니다. 이에 반해 삼일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나래교, 버들다리, 맑은내다리 등은 새로 만들어낸 이름입니다. 청계천 발굴과정에서 드러난 광통교지, 수표교지, 오간수문지를 합한 ‘서울 청계천유적’은 지난 3월 25일자로 사적 제4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토목기술 수준을 알 수 있고 아울러 도시기능의 확대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밟아주면 그해 재앙을 받지 않고 각기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답교놀이가 성행하였습니다. 청계천에서 광통교(廣通橋), 즉 광교(廣橋)는 정월대보름에 답교놀이가 성행했던 곳입니다. 대보름이면 동네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청계천의 다리를 밟고 연날리기를 하였는데, 젊은 남녀가 깊은 밤까지 나돌아 다님으로써 풍기문란을 이유로 금지하기에 이른 적도 있답니다. 이 다리에 쓰인 돌들은 태조의 계비 강 씨의 능을 옮기면서 당초 묘에 썼던 것들이라 합니다. 광통교는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인데 성종임금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루는 성종 임금이 달 밝은 밤에 평복 차림으로 광교를 찾았습니다. 마침 다리 밑에는 경상도 흥해 땅에서 올라온 사내가 보퉁이를 짊어진 채 다리 밑에서 하루 묵으려던 참이었지요. 신분을 속인 임금이 자초지종을 들어본즉, 그 사내는 임금이 어질다 하여 죽기 전 꼭 알현하고자 어렵게 서울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내의 고장에서 생산되는 해삼과 전복도 정성들여 준비했지요. 내가 요순임금이라도 된단 말인가, 성종은 자신을 이첨지라고 소개하고는 이틀을 기다리면 임금을 알현하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임금님을 만나려면 벼슬자리가 있어야 하는 법, 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성종은 그에게 충의초사라는 벼슬을 하사합니다. 얼떨결에 벼슬도 받게 된 이 사내가 임금님께 인사를 드리려 궁에 들어가니 자신이 알고 있던 이첨지가 바로 그토록 뵙고자 하던 임금님이 아니었겠습니까. 임금을 만나기 위해서 며칠을 걸어 찾아왔던 순박한 시골 사내는 광교의 인연으로 금의환향하였답니다. 청계천 일대에는 큰 시장이 여럿 있습니다. 방산종합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 신평화시장, 세운상가, 동대문 시장 등. 그중 평화시장은 1970년 11월 23일,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항변했던 전태일의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는 나래교에서 오간수교에 이르는 거리를 전태일거리로, 버들교를 전태일교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고향 잃고 이산가족으로 수표교(水標橋)는 세종 때 놓인 다리입니다. 치수를 위해 수중지석표(水中之石標), 즉 수표를 설치하였는데 그래서 수표교입니다. 지금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 마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로 철거되어 현재 장충공원에 옮겨 놓았습니다. 영조 때는 수표교 북쪽 냇가에 준천사(濬川司)라는 관청을 두어 토사를 걷어 둑을 쌓게 하고 양쪽 언덕에 버들을 심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이 때 쌓아놓은 모래가 긴 뱀처럼 쌓여 있어서 현재 장사동(長沙洞)이 유래하였으며, 쌓아놓은 모래가 산을 이루었는데 그곳에 꽃을 심으니 향기로운 산이 되었다는 데서 방산동(芳山洞)이 유래하였습니다. 지금도 가운데 교각 한 곳에는 ‘경진지평(庚辰地平)’이라 새겨두어 준천사업을 하는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장희빈의 집이 수표교 인근이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수표교 건너에 왕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숙종이 영희전을 가러 수표교를 건널 때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그 바람 때문에 떨어진 발을 창가에 걸어놓던 장희빈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 아닙니까. 두 사람의 만남이 수표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시에 문의해 보니 수표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위치로 복원할 계획이랍니다. 다리를 관찰해 보면 멍엣돌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것이 방형의 다른 석교와 차별화 되고 특히, 교각을 이루는 위아래 두 돌기둥이 물살을 향해 마름모 모양으로 틀어져 있어 물살의 저항을 막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름드리 성장한 나무를 싹둑 잘라 만든 것처럼 자연스런 조형미가 돋보입니다. 민간의 다리이지만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난간이 있어서 한껏 품위 있어 보이네요. 이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시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건된 다리로 홍수를 대비한 수표를 두고 준설을 위한 지표까지, 게다가 빼어난 외모까지 더했으니 청계천의 대표교량이라 해도 무난할 것입니다. 비록 제 살던 고향을 잃고 타지에 옮겨지고, 수표마저도 딴 곳에 시집보내 이산가족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금천(禁川)너머 임금님이 이제 우리 궁궐 속 다리를 찾아갑니다. 경복궁 근정전 가기 전에 영제교를 건너야 합니다. 다른 궁궐의 다리와 달리 다리 양 옆으로 돌짐승이 두 마리씩 떡 버티고 물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독특합니다. 해태일까, 사자일까, 다른 짐승일까. 사람들은 그냥 서수(瑞獸)라 일컫습니다. 혀를 날름거리고 입맛을 다시는 놈도 있습니다. 사악한 것은 아예 침범을 마라며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제법 진지합니다. 엄지기둥 네 곳에는 주작으로 보이는 동물이 조각되어 있지요. 경복궁 경회루는 그 규모면에서나 역할 면에서나 경복궁의 자랑입니다. 이름도 끝내 줍니다. ‘경회(慶會)’라, 덕있는 임금과 충정심 많은 신하들이 함께 국정을 논하고자 하니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무절제한 절대 권력에 의해 기쁨의 정도가 왜곡되어 ‘흥청망청’이란 말이 유래되기까지 한 곳입니다. 이 경회루는 바깥쪽에 사각 돌기둥이 서고 안쪽에 둥근 기둥이 서 있습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말해 주고 있지요. 작은 우주인 이 인공섬에 닿으려면 동쪽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금천 건너 임금님 나라에 들어왔어도 다시 다리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 경회루의 몸값이 여기 있습니다. 경복궁 뒤편에 자리한 향원정도 방형 연못에 둥근 섬을 두어 그 위에 만든 정자입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취향교라는 나무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취향교(醉香橋), 향기에 취해 다리를 건너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환상적인 궁궐생활일까 마는 실은 아픈 역사가 배인 곳이랍니다. 원래 취향교는 향원정과 건청궁을 잇는, 그래서 북쪽으로 난 다리였습니다. 하지만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죽음을 맞고 다리는 전쟁 와중에 사라져 버립니다. 건청궁이라는 원래 주인을 잃고 관광객을 새 주인으로 맞아 새롭게 남쪽으로 지은 것입니다. 아름답기만 한 취향교와 향원정에는 이렇듯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창덕궁에는 금천교(禁川橋 혹은 錦川橋)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궁궐내 다리를 통틀어 금천교라 이르는데 하늘같은 임금님이 계시는 성역임을 말해 줍니다. 창덕궁 금천교는 남북 양쪽에 귀면을 새겨두고 남쪽에는 귀면상 아래에 해태를 닮은 석상을 두고 북쪽에는 현무로 추정되는 석상을 두었습니다. 멍엣돌마다 공하(蚣蝦)로 보이는 용을 돌출시켜 놓았습니다. 공하는 범공(帆蚣)이라고도 하는데 용의 아홉 아들 중 물을 좋아하여 다리 기둥에 세우는 녀석을 말합니다. 흔히, 이무기돌[龍頭石]이라고 하지요. 한편, 창경궁에 있는 금천교인 옥천교(玉川橋)는 그 형태와 구조는 창덕궁의 것과 흡사하지만 창덕궁의 거북상과 해태상과 달리 금천을 바라보며 수호하는 동물상은 없고 받침돌만 남아 있습니다. 경복궁 근처 서울지방경찰청 옆에는 종침교(琮琛橋) 표지석이 있습니다. ‘종침교-조선 성종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과 허침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터’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성종 때 유명한 재상 허종(許琮)과 그의 아우 허침(許琛)이 연산군의 생모 윤 씨를 폐출할 어전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종침교에 이르러 다리 밑으로 일부러 굴러 떨어져 회의에 불참하게 됩니다. 성종이후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이날 회의에 참여한 대신들을 가려 참화를 맞게 하는데 이른바 갑자사화입니다. 고의적으로 회의에 불참한 두 형제는 무사하였지요. 그들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라 한 것입니다. 물은 흘러 살곶이로 살곶이다리는 한양대학교 인근에 있습니다. 세종 2년(1420)에 가교 공사를 시작하여 성종 14년(1483)에 완성되었습니다. 현재 일부만 옛 모습이 남아있네요. 살곶이다리를 전관교(箭串橋)라고 합니다. 전관교란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위치하여 ‘물살이 세다’는 물살의 ‘살’과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을 이르는 ‘곶’이 합쳐진 곳에 위치한 다리를 말합니다. 이 다리를 제반교(濟盤橋)라고도 함은 어느 스님이 이 다리를 놓고 난 후 그 탄탄함이 반석과 같다하여 유래합니다. 남아있는 멍엣돌을 보면 홈이 파져 있어 귀틀석이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렇게 물살이 센 곳의 뾰족한 땅이라는 의미의 살곶이[箭串坪]는 선조 때 무사들이 매를 사냥하며 심신을 단련하던 곳으로 태조 때는 응방(鷹坊)이라 하여 매 사냥을 위한 기관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응봉산이나 매봉산의 지명이 이곳이 옛날 매사냥 터였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한성부」에서는 ‘국도의 동쪽 들로 땅이 평평하고 넓으며, 물과 풀이 매우 넉넉하고 주위는 둑으로 둘렀는데, 나라 말을 기르며 넓이가 34리이다. 처음에는 나무우리를 만들고 해마다 개수하니 백성은 이속들의 농간질에 피폐하고, 말도 도둑맞아 도망갔는데, 명종조에 와서 상진이란 자가 정부에 건의하여 돌을 쌓아 제방을 만들고 냇물이 흐르는 곳에는 철색으로 열고 닫게 하니, 그 후로 폐단이 제거되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이 다리는 난간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난간은 격식을 갖춘 다리에만 세웠는데 살곶이다리는 민간의 다리였기에 난간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표다리가 난간을 둘렀던 것과 대비되는군요. 현대식 다리를 달리는 지하철 소리에, 자동차 소음 소리에 지칠 만한데 오늘도 서울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받을까 며칠 후면 아이들이 성취도평가를 치른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은 교사의 몫입니다만, 교사평가제가 도입되면 아이들이 교사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사평가제, 누가 누구를 평가하겠단 말입니까. 청계천 복원사업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쏟아질 것입니다. 정답이 없는 평가가 되겠지만 점차 순기능이 더 많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돌아오고 다리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은 매우 흡족합니다. 이왕이면 이름까지도 ‘개천’이나, ‘맑은 내’ 라고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입니다.
박경민 | 역사칼럼니스트 cafa.daum.net/parque 불가피했던 충돌의 시작 오리엔트를 두 번째로 통일한 페르시아! 이란에서 발흥하여 리디아와 신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더니 기원전 525년에는 제26왕조의 이집트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니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나아가 발칸 반도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리스의 폴리스가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빛은 동방에서(Lux ex Orient)'가 아니라, '전운(戰雲)은 동방에서(Guerra ex Orient)'가 된 것이다. 거대한 통일제국 페르시아는 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치세에 그 여세를 몰아 그리스를 원정하게 되었는데, 그의 눈에 지중해가 눈에 들어오니 바다 건너편에 있는 발칸반도와 펠로폰네소스의 폴리스를 평정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폴리스는 대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걸친 체제정비를 통해서 문화적으로는 성취기반을 확립하면서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장에서 페르시아라는 존재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와 흑해와 지중해 방면으로 팽창하려는 페르시아가 만났으니, 이렇게 동서양의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강력한 전제군주체제하의 페르시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에 합의(?)하고 진검승부를 위한 칼을 빼어 들었다. 다리우스 1세의 엄청난 착각 여기서 페르시아의 정치·외교의 기본 틀을 알아보자. 우선 페르시아는 단명의 아시리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복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자치를 인정하는 관대한 정책을 폄으로써 무단통치 때문에 스스로의 명운을 재촉한 아시리아의 경우와는 달리, 민심수습에 성공하여 안정된 토대 위에서 전체 오리엔트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다. '흐흐흐… 세상에서 날 대적할 자가 누구냐! 서쪽 편에 있는 그리스 녀석들은 통일조차 이루지 못하고 밤톨만한 폴리스로 서로 분열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다리우스 1세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만다. 그는 오리엔트에 만족하지 않았다. 교통망의 정비로 광범위한 교역과 문화교류로 그리스 인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문명에 대해서 호기심, 나아가서 정복욕이 발동하였고 페르시아의 통일된 내부적 역량이 능히 그리스를 도모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수사에서 사르데스에 이르는 '왕의 길'을 닦아 새 도읍지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바 있었으므로 자신만만에 야심만만의 군주였던 것이다. 다리우스 1세는 첫 번째 군사행동을 시작하였는데, 소아시아 서안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압박하고 본국인 그리스 측이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기다렸다. 적대행위를 하면 그것을 트집을 잡아 침략의 구실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마치 1875년 일본이 운양호사건을 일으키고 조선 조정이 어찌 나오나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다리우스 1세가 전쟁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 배경에는 앞에서 그가 착각한대로 '그리스'라는 정치적 실체가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 말은 독립된 폴리스가 지방정부라면 각 폴리스를 전체 그리스 차원에서 통제할 연방정부 내지 중앙정부가 없다는 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정치적인 '그리스'라는 것은 없었을지라도 '헬레네스', 즉 헬렌의 후손이며 '헬라스(그리스인들의 땅)'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낸다는 정신적인 힘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499년 식민도시의 하나였던 밀레토스가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반(反)페르시아 운동을 일으키자 기원전 494년 이를 무력진압하고 테러집단(밀레토스)를 지원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폴리스를 불량집단(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으로 낙인찍고 페르시아 함대에 발진명령을 내렸다. 우선 페르시아 함대는 트라키아 해안을 경유하여 그리스 본토를 친다는 작전을 세웠지만 폭풍을 만나 페르시아 해군이 궤멸당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본격적인 전쟁은 페르시아의 2차 침공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그 당시 페르시아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있었다. 전직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였다. 그는 독재로 일관하여 아테네 시민들의 도편추방에 의해서 쫓겨난 인물이었는데, 엉뚱하게 페르시아 원정군을 도움으로써 조국에 복수하려고 하였다. 매국노의 길 안내로 페르시아군은 발칸반도에 상륙했지만 그리스측은 밀티아데스를 지휘관으로 하는 아테네의 중무장 보병대를 마라톤 평원으로 보내어 격전 끝에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하였는데(기원전 490년), 총사령관인 밀티아데스는 전에 트라키아 지방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운 전투경험이 있어 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이 맞다. 마라톤 평원은 그리스 영웅들이 무용을 겨루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후세의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는 그의 에서 마라톤의 승리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전령이 아테테까지 쉬지 않고 계속 뛰어 승전보를 알림과 동시에 숨을 거두었다는 일화를 기록하여 마라톤 경주의 유래가 되었다. 실제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의 거리는 39.909km이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가 42.195km가 된 것은 윈저 궁을 출발점으로 삼은 제4회 런던대회의 코스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1924년 제8회 올림픽 이후부터는 42.195km가 공식거리로 굳어지게 되었다. 세계 4대 해전, 살라미스 해전 마라톤 전투의 패배로 충격을 받은 다리우스 1세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재침을 준비하였으나 기원전 486년 갑자기 죽고 말았다. 마음의 병이 너무 깊어서였을 것이다. 복수혈전은 대를 잇게 되는데,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 BC 486∼465)는 복수하기 위해서 전쟁준비를 했지만, '페르시아는 사실 덩치만 컸지, 별 볼일 없더라'는 소문이 전체 페르시아 제국으로 퍼져 나가 이집트와 바빌론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리스 침공을 늦추어야 했다. 드디어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 원정을 감행하였는데, 이제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스 측은 전쟁에 대비해서 아테네는 데미스토클레스가 주장한 해군력 강화, 스파르타는 육군을 동원하여 대 페르시아 방어전선을 구축한다.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 가운데 그 첫 번째가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 벌어졌다. 페르시아 대군이 임전무퇴와 필사즉생의 각오로 그리스에 상륙하여 여러 폴리스를 굴복시키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였지만 이는 자발적이 아니라 물러서면 참수하겠다는 자기네 왕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속전속결로 전쟁을 결말지으려고 하였다. 물론 자신의 승리로 말이다. 만약 이번에도 진다면 아케메네스 왕조가 창업된 이래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며, 돌아가는 귀로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퓔레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중심이었던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군대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 3백여 명의 스파르타군을 전멸시켜 버렸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방어선이 뚫린 아테네로 진군하여 도시를 함락시키고 철저한 복수를 하였다. 신상을 무너뜨리고 신전을 유린하면서 도시 곳곳에서 철저한 살육전을 벌였는데 페르시아군의 무자비한 살상극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일단 민주주의와 자유의 맛에 길들여진 아테네 시민은 전제적인 페르시아의 압제 하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서 살라미스 앞 바다로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아테네를 수복하기 위한 전선을 구축하였다. 과연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차피 육전에 강한 스파르타의 방어선이 무너진 마당에 구태여 아테네를 사수한답시고 아까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없었다. 해전에 강한 아테네인들은 차라리 적을 바다로 끌어내어 섬멸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일순간의 승리에 도취한 페르시아군은 바다에서 약을 살살 올리고 있는 아테네 해군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고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고 전투요원들은 배 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상대로 불화살을 날려 좌충우돌하는 페르시아 함대를 수장시켜 버렸다. 페르시아 함선의 노를 젓던 노예들이 달아날 궁리만 하니 지휘관의 전투수행에 차질이 생겨 마치 훈련이 잘된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과 귀선에 섬멸당하는 일본수군과 같았다. 지상전도 물론 그렇겠지만, 특히 해전은 전체적인 팀웍을 중요시하는 전투이다. 이렇게 아테네 시민과 해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만약에 아테네에서 민주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비록 노예를 기반으로 한 제한적 민주정이었지만) 그토록 자유시민들이 결사적으로 싸웠겠는가? 아마 '아테네의 독재나, 페르시아의 전제나 그것이 그것이며 목숨만 부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테네의 승리는 동방 전제세력의 침략에 대한 서방 민주주의의 수호였으며 최초의 동·서 충돌이었다. 전쟁 후에 나타난 승자의 분열 양대 축을 중심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다가 어느 한쪽이 힘을 잃게 되면 선의의 경쟁심이 없어짐으로써 둘 다 공멸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스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침공으로부터 그리스를 구한 아테네는 발언권이 세졌다. 따라서 종전의 아티카 계열의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폴리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라코니아 계열의 폴리스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파르타 계열의 폴리스는 아테네 측의 공금횡령을 규탄하면서 물고 늘어졌는데, 전쟁이 터지자 그리스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구축하고 기금을 모아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에 비축해 두었고 의장격인 아테네가 관리했던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는 그리스의 맹주가 되어 크게 번영하였는데, 공동으로 출자한 델로스 동맹의 비축자금을 각 도시국가에 돌려주지 않고 그 돈을 아테네로 옮겨 오로지 아테네 해군력 강화에 유용하고 말았다. 물론 다른 도시국가도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 번영하였으나 아테네의 융성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이를 질투한 스파르타가 반 아테네 동맹인 펠로폰네소스 동맹 을 결성함에 따라 패권을 다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물론 스파르타가 이겨 일시적 전성기를 누렸으나 자신에게도 독(毒)이 되었다. 아테네의 쇠퇴는 그리스 전체의 침체를 가져와 소아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지숙 | 인천 심도중 교사 시작하며 21C 고도 정보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수많은 정보와 자료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어 구성해 갈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길러주는 학습자 중심의 학습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정보의 수동적 동화나 기계적 암기 능력이 아니라 문제 해결력, 반성적·비판적 사고, 창의성을 비롯한 고등정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교육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영균은 종래의 국어 교육 내용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취사선택하여 적절히 활용·요약할 수 있도록 하고, 목적과 필요에 맞는 내용을 선택적으로 빨리 읽어 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활용 능력 신장에 관한 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언어문화연구원, 2001, p.7..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에 발맞춰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길러주는 학습자 중심의 학습과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류, 분석하고 요약하여 사회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적합한 학습 방법은 무엇일까?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NIE: Newspaper in Education / NIE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본 연구에서는 NIE를 ‘신문을 알고, 신문으로 학습하는 교수-학습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이하 본문에서는 편의상 NIE로 약칭하기로 한다.)이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신문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정보, 현재나 미래에 관한 시대를 초월하는 정보를 매일 신속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관심 있는 기사를 언제라도 접할 수 있다. 윤덕홍은 신문은 유익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접 체험을 통해 사회를 알고 삶을 배울 수 있고 비판능력, 표현력, 독서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인성지도를 위한 학습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훌륭한 학습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윤덕홍, 한국신문협회주최 2003년 7월16일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주제 중심 통합 학습을 위한 NIE 프로그램 개발 방안」 세미나 내용 중 일부 인용). NIE를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사들은 신문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과서를 위주로 가르칠 때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수업과 관련된 NIE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그러나 논리적인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개별적 수업 사태에 부분적으로 활용한 것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므로 NIE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체계를 가지고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함이 사실이다. NIE란 무엇인가 NIE의 탐구 대상은 크게 인간 요인(언어 표현과 이해 활동의 주체자로서의 학생), 언어 요인(신문에 보도된 기사), 활동 요인(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이해나 표현 행위 등), 교육 요인(국어 교육의 목표, 신문 자료 선정, 교수-학습 방법, 교육 결과 평가 등) 등 총 4가지로 볼 수 있다. NIE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NIE의 정의 1948년 파리에서 결성된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는 NIE를 ‘학교에서 유용한 보조교재와 교수 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미래의 신문 독자를 키우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공통적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신문 협회는 ‘교육에 신문을’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중앙일보사에서는 ‘신문을 학습에 활용하여 신문을 친숙하게 하며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는 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NIE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학교에 유용한 보조자료와 교수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써 신문을 학교 수업에 활용하여 신문과 친숙하게 하며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는 교수·학습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NIE의 시작 NIE는 ‘신문을 교육에 활용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고 교육 속에 신문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1955년 미국의 아이오와주 레지스터(Register) 신문이 미국교육협회와 협력해 처음에는 NIE의 전신인 NIC(Newspaper in Classroom ‘신문을 교실로’)를 채택하였다. 이후 NIC는 1976년부터 NIE(Newspaper in Education ‘교육에 신문을’)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에 ‘NIE’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은 캐나다 일간 신문 발행인협회였다. 신문의 교육적인 활용 방법이 전통적인 학교 교육의 범주를 넘어서 일반 사회단체나 연구 기관에까지 폭넓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NIE 세미나’를 주관하면서 ‘NIE’라는 용어를 소개하였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그 당시 교육부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어 ‘X세대라고 불리는 요즈음 신세대들은 읽고 쓰기를 싫어하며 문자로부터 이탈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TV, VTR 등에서 얻는 정보량은 많지만 생활체험의 부족에서 오는 편협한 인간관계, 자율적인 의견 및 판단력의 결여, 주장만 있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행동, 피동적이고 끈기 없는 생활태도 등의 부작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협회는 또 이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언론계와 교육계가 협력하여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국가시책으로 추진할 것과 그 방안으로 신문 알기 교육, 신문 읽기 훈련, 신문 제작 실습, 시사 토론 연습, 신문을 통한 전인교육, 민주교육, 사회교육, 역사교육을 제안했다. 이 같은 신문편집인협회의 건의에 따라 교육부는 ‘특별활동 시간에 교장 재량 아래 신문을 교육교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 다각적인 실천방안을 검토키로 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NIE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정부·교육계·언론계가 NIE에 대한 논의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3.NIE의 교육적 목적 (1) 미국 미국의 ‘Pantagraph’지는 NIE의 목적을 신문매체의 올바른 이해와 교육적 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가늠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양성 둘째, 신문 읽기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능력 강화 셋째, 과목이나 주제 중심으로 작문·역사·수학·시사·소비문제·생태학 등 여러 분야의 내용들을 효과적이며 흥미 있게 가르쳐 주는 교수도구의 제공 넷째, 현대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오락기능 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개인적 성장도모 (2) 영국 영국신문협회가 밝힌 NIE의 교육적 목적을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다양하고 현실적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보조적인 교육 자료의 제공 둘째, 역사적 기록과 정보에 대한 일상적인 접촉 셋째, 적극적인 독서를 통한 실용적인 단어와 문장력의 증대 넷째, 학생들의 개인적·사회적인 교육의 추진 다섯째, 다양한 미디어 중 하나인 신문에 대한 이해를 촉진 여섯째, 신문의 제작과정에 대한 이해 일곱째, 실질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목적 있는 글쓰기 기회의 제공 (3) 우리나라 한편, 우리나라 중앙일보사에서는 NIE의 목적을 10개로 나누어 구체화시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용적인 단어와 문장능력의 증대 둘째, 신문의 제작과정에 대한 인식의 창조 셋째, 목적을 갖고 실질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한 글 쓰는 기회의 제공 넷째, 간결한 작문, 레이아웃(어떤 특정한 기사를 전체 지면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부분적이며 개별적인 지면구성 방법)과 디자인, 이야기의 명쾌한 검증 등에 대한 창조적인 훈련 다섯째, 지역의 역사와 지리,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사건 등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확대 여섯째, 팀워크를 통해 자신감과 의사소통의 효율성 제고와 프로젝트 수행의 개인적인 능력 개발 일곱째, 사회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성 확립 여덟째, 다양한 의견과 가치의 존재 사실 인식 아홉째, 많은 사실과 의견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판단력과 사고력 배양 열째, 많은 정보 가운데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육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NIE의 목적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문 매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활용하여 교육의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데 NIE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 NIE의 세계 동향 (1) 미국 1958년부터는 미국 신문 발행인 협회가 NIE 프로그램을 짜서 재정적·행정적·기술적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 신문 협회(NAA : 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가 NIE 사업을 전담하여 전국적 규모로 전개하고 있다. 1990년에는 FIEJ와 공동으로 뉴욕에서 세계 각국의 NIE 대표를 초청하여 NIE에 관한 첫 번째 국제회의를 개최했으며, 이 날을 ‘국제 NIE의 날’(International NIE Day)로 이름 붙이고 기념일로 정하였다. 현재 700여 개 신문사에서 NI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한 교사연수를 하고, 안내책자와 교재도 발간하고 있다. 또한 NIE 주간행사를 매년 3월 첫 주에 마련하고, NIE 주간이 아니라도 항상 학생들의 신문사 방문과 신문제작을 돕고 있다. (2) 영국 1984년 신문협회(Newspaper Society)의 주도 아래 시작되었다. 미국에 비해 본격적인 신문활용교육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1997년 8월 현재 약 700여 개의 신문사가 NIE 프로그램을 실시할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신문협회 안에 NIE 소위원회가 조직되어 신문사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각종 NIE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미국처럼 학교와 신문사, 지역사회 사이의 연계가 잘 되어 있다. 인터넷에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NIE 사이트를 개설하며 정보화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영국의 신문협회 역시 매년 10월 첫째 주를 NIE 주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하고 있다. 특히 1993년의 NIE 주간에는 어린이들의 독서에 부모가 참여하자는 주제의 행사(Reading Together)를 열고 모두 네 권의 독서 여권(Reading Passport)을 개발·보급하여 교사와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3) 일본 지난 1987년에 설립된 일본신문협회가 중심이 되어 NIE의 도입을 추진해 왔으며, 1988년에는 NIE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89년부터 NIE 교육의 토대를 쌓기 위해 5년간 실시한 실험 프로젝트는 일본의 문화적·교육적 환경에서 매우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어 일본 전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모델로 채택되었다. 1992년에는 최초의 NIE 세미나가 신문협회 주최로 열렸다. (4) 독일 일부 교육자나 신문사의 관심과 이해에 따라 간헐적으로 NIE가 전개되고 있으나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NIE 실시는 1970년대에 전개된다. 이때 독일신문협회는 ‘학교에서의 신문교육’(Zeitung in der Schule)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시켜 전국지 및 지방지의 호응으로 붐을 일으켰다. NIE에 대한 열정으로 NIE 알리기에 널리 힘쓰고 있는 지숙 교사(인천 심도중)가 본지에 6회에 걸쳐 NIE에 대한 글을 싣는다. 1981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교사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방법을 찾던 중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 경험을 살려 NIE 교육 직무연수를 받고 NIE를 통한 수업에 힘써왔다. 인천광역시북부교육청 국어교과 연구회 부회장, 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제3기 사이버 현장교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각종 언론과 인터넷 홈페이지 ‘지숙선생님의 NIE(www.goodnie.pe.kr)'를 통해 NIE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 교사는 NIE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며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동료 교사들이 다양한 사례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7월 2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평준화 보완방안으로 공영형자율학교 도입을 언급한 이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부와는 별도로 공영형자율학교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고,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미국 차터스쿨 방식의 자립형공립학교를 제안한 바 있다. 교육부는 공공기관이 이전되는 2010~12년 혁신도시에 공영형자율학교를 시범실시 한다는 계획을 갖고 정책연구에 착수했다. 연구보고서는 올 연말 완성되며 교육부는 이를 토대로 구체안을 만들어 내년까지 관련 법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교육부가 구상하는 공영형자율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 등이 교육감이나 장관과 협약을 맺어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형식이다. 현행의 틀 안에서 학생선발이나 학사운영에 소폭의 자율성을 갖는 자율학교와는 다르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원인사권도 개별 학교에 부여돼, 학운위가 교장과 교사를 초빙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많다. 학사운영도 대폭적인 자율성이 부여된다. 교육부는 그러나 정책연구가 완료되지 않아 구체적인 그림을 밝힐 단계는 못 된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7월 8일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한나라당정책위원회와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자가 지역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 또는 국가행정기관으로부터 학교운영의 허가권과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 차터스쿨 형식의 자립형공립학교를 제안했다. 이 의원은, 자립형공립학교는 교육과정, 교원임용, 학교운영에서의 규제와 감독을 대폭 면제해 주고,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와 더불어 5년 이하 단위로 주기적 평가를 받아 재정 지원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립형공립학교는 성적에 의한 선발을 금지하고, 교원의 채용 및 해고, 임금수준, 복리후생, 단체교섭 적용 여부를 헌장에 명기하고 인가기관의 허가를 맡는 형태로 학교운영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자고 제안햇다. 아울러,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그 외 교과목의 종류, 난이도 및 이수단위 등에 대해서는 개별 학교가 결정해 학교별 특성화를 유도하고, 학기제와 학년제, 조기 졸업제 운영도 학교 재량에 맡기자는 안이다. 이 의원은 자립형공립학교 도입으로 학교교육의 다양화와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확대, 저학력․저소득 계층에 대한 공교육 서비스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공영형자율학교는 ‘설립주체가 아닌 학교운영의 다변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이주호 의원의 자립형공립학교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의 지속적인 하락(본지 5월 30일자 보도)과 더불어 시․도간 정원 확보율도 큰 편차를 보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최근 교육부에 따르면 올 중등 교원 법정정원 확보율은 최고치인 전남(87.0%)과 최저치인 광주(78.0%)간에 9.0%의 차이가 있으며 전국 평균치는 81.4%였다. 초등은, 대전과 충남이 100%를 확보한 반면 최저치인 서울은 94.5%에 그쳤고, 전국 평균치는 96.8%다. 교육부는 대도시의 경우 인구집중에 따라 학교 신증설이 증가하는 반면 농어촌 지역은 감소함에 따라 지역 간 편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학교교육력제고를위한특별협의회를 구성해 교원단체들과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교육부는 우선 전국 단위 학교별 교원정원 및 배치실태 자료를 수합해 시․도간 교원정원 확보율 편차를 조정하기 위한 방안과 중장기 교원수급 계획을 수립할 전망이다. 아울러 교원정원관리시스템을 연내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하고, 학령인구감소에 대한 교원종합대책 수립을 내년 5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안정적인 교원 확보를 위해 행자부로부터 교원정원조정권을 넘겨받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내년도 2만 1338명의 교원 증원을 최근 행자부에 요청했다. 증원 요청현황은 ▲유아 1775명 ▲초등 7123명 ▲중등 9355명 ▲특수학교 444명 ▲비교과 2641명 등이다. 이는 ▲학급증설(9046학급)에 따른 1만 4879명 ▲초등 수업시수 감축(올 기준 25.9시간) 에 따른 소요 교원 1500명 ▲유치원 및 특수학교 부족교원 331명 ▲정부의 주요 정책 지원을 위한 신규 교원 및 비교과 교원 4628명 등이다. 이 중 특수학급 순회 치료교사는 130명 요구했고, 국립사대 졸업자 중 미임용자를 위한 500명은 정원 외로 특별 채용된다. 그러나 지난해 교육부가 2만 7358명 증원을 요청했으나 행자부는 5231명을 허용한 것을 감안하며, 실제 증원 규모는 9월 가배정 시점에 가서야 확정된다. 김경윤 교총정책교섭국장은 “교원정원의 확보는 교원의 근무여건 개선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핵심 과제인 만큼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며 “교원정원법과 교원보수규정을 별도로 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공립 초.중학교는 이르면 내년부터 학급편성에 자율권을 갖게 될 전망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이 31일 보도했다. 문부과학성은 학급편성 기준을 정한 현행 의무교육표준법의 개정안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현행 법에서는 학급당 '40명 이하'라는 기준 아래서 각 광역단체가 학급당 학생숫자를 정하고 이에 기초해 기초단체가 학급을 편성토록 돼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학급 정원을 결정하는 권한은 광역단체에서 기초단체로, 학급편성권은 기초단체에서 각 학교로 이양된다. 국가가 정한 '40명 이하'라는 기준 자체는 변하지 않으나 이렇게 되면 이른바 법정 담임교사 외 '추가배치 교사'를 활용해 학교 재량껏 소수 학급을 편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초등학교에 80명의 학생이 입학하고 이 학교에 추가배치 교사가 1명 있다면 26명-27명-27명으로 세학급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추가배치 교사는 일본 전국 공립 초.중학교 통들어 5만4천명에 달한다. 일본 교육당국은 앞으로 5년간 1만명을 증원할 계획이다. 신문은 이 방식이 도입되면 학교로서는 수업 부적응 학생과 이른바 '부등교' 학생을 위한 전문교사와 전문학급을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