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안을 오는 20일께 국회에 제출키로 하면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의 이슈화에 당력을 집중할 태세이다. 전국 시.도를 돌며 공청회를 여는가 하면 대규모 토론회와 지역구 의원 간담회, 여론조사 등도 계획하는 등 점점 식어가고 있는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되돌려놓기 위해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단 여당을 사학법 재개정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했지만 원내 제2당으로서 사학법 재개정을 '단독처리'할 힘이 없다는 현실때문에 여론전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즉 국민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을 최대한 조성한 뒤 여야 협상에 임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주 사학법개정특위 소속 의원들이 영남지역 사학을 직접 방문해 교사, 학부모 등과 공청회를 가진데 이어 13일에는 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안 마련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갖는다. 특히 대토론회에서는 이사진이 해임된 사학에 투입되는 임시이사의 파견 주체를 교육부에서 법원으로 이관하고, 종교계 사학을 중심으로 자율형학교 도입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학법 재개정안이 공개됐다. 또한 이번 주에도 개정특위는 호남과 강원 지역 사립학교들을 방문해 교사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공청회와 간담회 등을 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재개정안 초안의 주요 쟁점 규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개정특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사학법개정특위 이주호(李周浩) 부위원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이 사학 이사회를 규정하는 어려운 내용이어서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면서 "그런 만큼 한두 마디 슬로건이 아니라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방식을 써야만 법 재개정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퇴색해 가는 최근 졸업의 의미를 가슴에 담고자 대전북중학교(교장 임한규)에서는 졸업장을 모든 학생들에게 일일이 교장이 전달하고 악수로 격려하며 담임들이 제자들에게 장미 한송이를 건네면서 축하하고 안아주었다. 조금은 어수선한 식장의 분위기도 선생님들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송하면서 남학교이지만 잔잔한 감동을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선물했다. 비록 작은 시작이지만 서로의 가슴에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의미로 장미 한송이가 곱게 피어나기를 바란다.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각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정적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노사문제를 쉽게 촉발시킬 수도 있고 외국자본의 국내유치를 저해할 수도 있다. 기업인의 사업의욕을 꺾을 수도 있고 사회통합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기업과 기업인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경제는 한층 탄력을 받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지나치게 부정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정치가에게 책임이 있지만 국민들의 맹목적인 부정적 시각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계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따뜻하고 긍정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언젠가 교원평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한 일이 있다.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한 마디로 불신 그 자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교사들을 이기적인 집단, 철 밥통을 차고앉은 집단, 촌지나 받고 폭력이나 행사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시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교단엔 천차만별의 교사가 있다. 실력도 인성도 개성도 만인각색일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모든 교사를 매도하고 같은 잣대로 모든 교사를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시각일 수 없다. 다양한 특성의 교사들과 접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성을 기르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선생님들 뿐이라면 어떻게 많고 많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단 말인가. 기업과 정치에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처럼 교육에 대해서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 사회에 오로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옳지 않다. 기업을 바라볼 때도 때로는 긍정적이어야 하고 정치에도 때로는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에도 맹목적 비난이 아니라 건전한 참여가 요구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비판에 다소 과장은 있을지언정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계의 자성도 절실하게 요망된다. 교육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은주입니다." "그래, 요즈음 소식이 뜸하더니 잘 지내니?" "예, 이번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 연수 중입니다." "그러니? 참 잘 했구나.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제자 중에서 네가 제1호구나. 초등선생님으로는 말이다." 전교생 94명이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제자였던 아이가 벌써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화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늘 욕심도 많고 자신을 다잡아 주는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던 제자였습니다. 21명을 졸업시켰는데 많은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갈만큼 열심히 사는 제자들입니다. 졸업을 시킬 때, 1년에 두 번씩 동창회를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주었는데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합니다.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전화를 건 제자의 칭얼거림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시골 학교가 이제는 폐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자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졸업생들끼리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모교는 가슴 속에 살아남아 언제든지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은주야, 이젠 김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그렇지?" "아니, 선생님도 참. 저는 영원한 선생님의 제자일뿐입니다. 선생님의 교단 제자 1호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 은주는 초등학교 졸업을 한 뒤 중학생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제자였습니다. 전화를 걸었다 하면 30분은 기본일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내게 쏟아놓으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은주야, 일기는 쓰고 있지? 좋은 책도 많이 읽고 있지?" "아이고 선생님도 참. 고등학생이 언제 일기를 쓰고 차분히 책을 읽습니까? 학과 공부도 바쁜데요. " "논술 포기할거면 일기도 쓰지말고 책읽는 것도 포기하렴." "옛! 즉시 실시하겠습니다. 선생님 목소리 좀 들으려고 전화드리면 이렇게 변함없이 잔소리시리즈 멘트를 똑같이 하시네요. 6년 동안 변함없이 말입니다." 때로는 교육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며 본인이 원했던 수학선생님의 길이 아니라며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전화를 받는 날은 귓바퀴가 뜨거울 정도로 오랜 시간 전화로 상담을 청하던 제자가 이제 무사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졸업한지 10년 동안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한데 자기들 모임에 꼭 나오라고 날을 받자고 조르니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자식과 다름없습니다. 군대에 간 제자들이 돌아오고 시집 장가를 간다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찾을 걸 생각하니 이런 맛에 6학년 담임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서슴없이 이성문제까지 내놓고 인생상담까지 들어주는 이 자리가 새삼스럽게 소중해집니다.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지 말고 좀 쉬었다 나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집안 살림을 거들어야 한다며 발령이 안나면 아르바이트나 기간제 교사자리라도 찾아서 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한다는 예쁜 마음에 다시 감동을 합니다. 교직에 나가면 동생의 대학 학비는 자신이 대주겠다는 기특한 제자의 다짐을 들으니 이제는 내가 충고해 줄 일이 드물 것 같아 서운함마저 느꼈습니다. 광주에서 근무하게 될 제자가 도시 아이들을 맡아 마음 고생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에나 선배로서 조언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지혜롭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뭐든 잘 헤쳐나가리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6학년을 가르칠 때, "선생님 하시는 것을 보면 나중에 저는 절대로 선생님 하고 싶지 않아요. 제자들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고 상처도 많이 받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했던 녀석이 그 길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 길만큼 보람된 일도 흔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은주야! 교직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동안 나 스스로 배우는 일이 많아서 늘 깨우치게 된다는 점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게 하는 기쁨을 안겨준단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귀하지만 평생 책을 볼 수 있는 축복, 바른 길을 걷게 하려면 스스로 바르게 걸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이면서도 청출어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요즈음 세태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니 교직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수를 받는 동안 품었던 처음 마음을 잘 기록해 두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도록 하기 바란다. 은주야! 너는 항상 내 기쁨인 걸 아니?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자식이 대견하고 고맙듯이 내 길을 따라오는 네 모습도 늘 자랑이란다. 네가 발령을 받는 날, 만나서 축배를 들자꾸나 '
오늘이 바로 정월 대보름입니다. 이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을 하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가 단단해진다는 속신(俗信)이 있습니다. 부럼이란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깨무는 밤·호두·잣·은행 등 껍질이 단단한 과실을 말합니다. 여러 번 깨무는 것보다 단번에 큰 소리가 나게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며 첫번째 깨문 것은 마당에 버린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보름날 새벽 날밤·은행·호두·무를 깨물며 '일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 하고 축수한다. 이를 부럼이라 하기도 하고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정월 대보름날의 부럼깨기를 위해서 며칠 전부터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모여 부럼을 깨면서 1년 동안의 건강을 빌고 있습니다. 그 풍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속. 핵가족화로, 출산율 저하로, 독신 남녀 증가로 점차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야겠죠. 교사 시절, 대보름날 아침에 담임 책상 위에 놓여진 부럼을 보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을 칭찬하여 주고 부럼 풍속을 이야기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부럼 깨물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십시오."
서울특별시는 자기 집 앞의 눈은 스스로 치우도록 규정한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서울특별시의 조례는 제설․제빙의 책임 범위는 보도 전체로 정하고, 이면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m까지로 규정했다. 또 눈이 그친 때로부터 4시간 이내에 제설작업을 하도록 했고 야간에 눈이 오면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0㎝이상이 내리면 24시간 이내에 추우도록 했다. 소유자 거주시에는 소유자-점유자-관리자 순으로, 또는 소유자 비거주시에는 점유자-관리자-소유자 순으로 책임소재도 명시했다. 지방 자치단체들이 조례 제정에 대건 나선 것은 2006년 2월 6일 폭설때 부산광역시의 사례를 보고 나서다. 16개 구․군(15개 구, 1개 군 기장군)중 12개 구에서 조례를 만든 부산에선 올 들어 가장 많은 3.9㎝의 눈이 내렸다. 비탈길이 많아 어느 지역보다 눈에 취약한 도시였으나 시민들이 대대적인 눈 치우기에 나서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2월 6일 2.2㎝의 적설량을 기록한 대구광역시도 도심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했으나 2005년 11월 조례를 제정한 중구에서만 이면도로와 골목길이 얼지 않아 차량 통행이 원활했다. 현대사회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기상이변을 가져와 2005년 12월에만 60년만에 호남지방에 20-40㎝의 폭설이 2번이나 내리지 않았던가. 고속도로에 차가 갇히는 사태까지 낳아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에 속수 무책이었다. 2005년 12월 2번의 20-40㎝의 폭설이 내릴때 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있어 학교 계단과 진입로를 치우는 등 제설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릴때 시골에서 살 때 눈이 내릴 때 마다 집 마당과 마을 진입로를 치우던 추억을 가지고 제설작업 힘들지만 통행인들의 편리를 위해 눈을 치웠다. 화재 대비용으로 방화수․방화사를 준비하듯이 각 관공서, 마을 회관, 각 기관과 아파트 관리실에 제설 장비의 구비를 의무화하여 주민들이나 아파트 주민들이 솔선하여 치우도록 한다면 환경오염을 가져오는 염화칼슘의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도로 관리인, 아파트 관리인들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앞으로도 매년 살인적인 폭설이 내릴 가능성이 점증할 것이다. 광주광역시만 해도 아파트 거주 시민이 절반을 넘고 대부분의 도시도 아파트 거주자가 많아 아파트 내 보도블록과 진입로와 주변도로, 이면도록, 단독주택이나 상가 거주 주민들도 주변 진입로 등을 나의 길이라는 사고를 갖고 제설작업을 한다면 흰눈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천사표가 되어 깨끗해지고 맑아지지 않을까. 과거 시골에서 살 때 처럼 화재 발생시 마을 사람 모두가 물통을 들고 나와 화재를 진압했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나몰라라 하지 말고 국가에서 다 해주기만을 기대하지 말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발휘하고 새로운 의미의 울력, 현대화된 울력의 개념을 발휘하여 자발적인 울력으로 아파트나 단독 주택 주민들이 폭설이 내릴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길거리나 이면도로의 눈을 치운다면 눈으로 인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고 결국은 시민이나 국민들이 도로 사정이 편리해 짐으로써 거국적으로 더 큰 이득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나의 주변 환경을 더 애착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으면 한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봉사정신 및 자기 지역 및 주변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무슨 일이 발생 했을때 민방위 대원을 소집하지 않아도 자기를 먼저 희생할 줄 아는 한국인이 되도록 우리 먼저 솔선수범하면서 후세들을 깨우쳐야 하지 않겠는가.
영국에서 최근 열린 국제학교 수학 경시대회에서 한국 학생들이 1, 2, 3위를 휩쓴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유럽국제학교 수학교사연맹(ISMTF)이 지난 4~5일 런던의 아메리칸 스쿨에서 개최한 경시대회 시니어 경쟁부문에서 파리 아메리칸스쿨에 재학중인 황홍균(11학년.한국의 고교2년) 군이 200점 만점중 181점을 획득해 개인전 1위를 차지했다. 또 빈 아메리칸 인터내셔널스쿨에 다니는 문익준(12학년) 군과 장태훈(12학년) 군이 각각 2,3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는 빈 아메리칸 인터내셔널스쿨이 우승했다. 1위를 차지한 황 군은 ISMTF가 2004년 빈에서 개최한 경시대회 주니어부문에서 1위에 올랐었다. 황 군은 황 헌 MBC 주불 특파원의 장남이다. ISMTF 수학 경시대회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국제학교들에서 선발된 수학 영재들이 한데 모여 실력을 겨루는 행사다.
"다들 들어왔나? 서경희! 니가 반장 맡아라. 자, 출석 부른다. 지각한 사람은 나중에 종아리 걷을 각오해라." 이달 말 44년 11개월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경기도 성남 분당중학교 최길시(崔吉時.62) 교장이 11일 옛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수업'을 했다. "딱딱한 정년퇴임식보다는 옛 제자들과 재회를 통해 지난 교직생활을 반추하면서 옛날의 그리움을 어루만져 보는 것도 뜻있다 싶어 마련한 것으로 '묵은 정(情)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심정'으로 준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수업에는 최 교장이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사항을 보고 초임발령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국어교사 때까지 30-50대 나이의 제자 60여명이 참석했다. 멀리 울산에서 비행기편으로 참석한 제자, 20여년전 빛바랜 앨범을 들고 찾아온 제자, 일본 나고야한국교육원 파견교사 시절 만났던 재일교포 일본인 제자도 있었다. 최 교장은 '나'라는 주제를 칠판에 적으며 시작된 수업에서 인기 전공을 마다하고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 얘기, 다섯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17살 때 초임교사가 됐던 사연, 의대 등록금이 없어 의사 꿈을 접은 아픈 기억, 전교조가 결성되기 전 참교육 활동을 하다 전출됐던 일들을 회고했다. 그는 또 오사카대 언어문화학 박사라는 노하우로 영어교육 열풍 속에 언어습득의 신비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견해를 던지기도 했다. 최 교장은 "요즘 세태에선 '돈벌라'고 해야 했는데 '공부하라'만 말한 것을 반성한다"면서도 "그래도 정직하고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주문했다. 최 교장은 '따분한 수업의 양념'이라며 수업 도중에 색소폰으로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하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투박한 강릉사투리로 "마카(모두) 이리나와 쫄러리(줄지어) 서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가요 '만남'을 함께 부르며 수업을 끝낸 최 교장과 제자들은 최 교장이 준비한 포도주가 곁들여진 점심을 하며 추억을 되살렸다. 초임발령 학교였던 강원 묵호초등학교 제자였던 서경희(51.여)씨는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정말 존경했고 열심히 가르치시고자 했다"며 "오늘 반장까지 맡아 정말 기억에 남을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최 교장은 "재미있고 뭔가 가져갈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며 "40여 년만에 만난 제자들 앞에서 수업 중에 눈물을 보일 뻔 했는데 잘 참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최 교장은 1961년 강원 묵호초교 교사를 시작으로 강릉상고, 강릉고, 철원고 국어교사를 거쳐 일본나고야한국교육원 교감, 홍콩한국국제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눈 졸업식은 추억속에 묻혀졌고 벌서 하루가 지났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대학이라는 더 큰 배움의 터전을 향해 떠나갔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제 졸업식에서 우리반 반장을 맡고 있는 재우가 졸업생을 대표하여 답사를 낭독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작성한 답사를 모두 낭독한 재우는 단상위로 올라가 오늘이 있기까지 정성을 다해 키워주고 가르쳐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물론 졸업생이나 참석한 가족들의 박수가 이어졌음은 당연하겠지요. 학교를 떠나는 순간에도 부모님과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 마냥 행복한 행복한 졸업식이였답니다.
교육부는 2014년까지 연간 1700명의 학교행정인력을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부분을 길게 본 것은 막대한 예산의 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발표가 유효할지의 여·부는 2014년에 가야 최종적인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행정인력을 증원하겠다는 것은 교원들의 과중한 잡무를 줄이고 수업에 저념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행정인력을 증원한다면 교원의 잡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바로 "돈"이다. 아무리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면 예산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증원하여 교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 좋은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행정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면 어떨까 싶다. 즉 일선학교에는 학교회계직(학교운영지원비로 부수를 지급하는 직원-일종의 비정규직)들이 학교에 따라 인원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행정실에서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즉 행정실의 업무분장에 따라 자신이 맡은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신분의 불안은 물론, 보수에서도 정규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액 초과근무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초과근무를 했어도 시간외 근무수당(정액 초과근무수당 외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행정실장이 전권을 휘두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들 학교회계직뿐 아니라 과학실험보조원, 전산보조원, 일부학교의 사서교사 등도 비정규직이다. 과학실험보조원이나 전산보조원의 경우는 일당제로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이번의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학교행정인력을 증원하기로 했는데, 새로 증원하는 것보다 현재의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충원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새로 채용하는 인력보다 이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업무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인건비를 학교운영 지원비에서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교예산의 증대효과도 함께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지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그때 나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인정이 넘치던 시절이라 학부형님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대화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이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반 학부형 한분이 그곳의 지역구 국회의원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불평과 불만을 심하게 늘어놓으며 번번이 대화를 단절시켰다. 그곳의 국회의원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장관까지 지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덕망이 있는 분으로 알려져 몇 번째 의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분이 도대체 어떤 짓을 했기에 저렇게 욕을 얻어먹는지가 궁금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서운해 하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너무나 어이가 없는 오해였다. 그 당시 우리 반 학부형의 사촌동생이 사법고시를 패스해 집안에서 잔치까지 열었다. 지역구의 작은 행사까지 잘 챙기던 국회의원은 직접 찾아가 축하를 해줬다. 축하과정에서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고 학부형의 집안 중 한분이 그 말을 들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고생 끝에 낙이 왔다는 것을 별 뜻 없이 표현한 것으로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 반 학부형의 집안은 ‘왜 우리 집안이 개천이냐?’면서 그 국회의원이 의정생활을 하는 내내 담을 쌓았다. 사실 그때 사법고시를 패스했던 학부형의 사촌동생은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직을 맡았었고,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관심사였던 큰 사건의 담당검사였다. 이렇게 예전에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 중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역경을 이겨낸 수석입학생이나 수석졸업생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래서 우리네 부모들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참아가며 더 자식교육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그야말로 속담과 옛 이야기에서나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개천에 있던 용이 어디로 도망간 게 아니다. 도회지 부잣집 아이 한명의 과외비가 일반 가정의 한 달 생활비와 맞먹는다는 얘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일수록 기초학습부진학생이 월등하게 많다는 통계치가 말해준다. 또 많은 교육학자들이 ‘해마다 지역간, 소득간 교육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며 걱정을 한다. 정부에서도 사회 양극화에 따른 교육격차가 가난 대물림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죽하면 교육부에서 교육격차해소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올해 1조3천억원을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5년간 8조원을 투입해 낙후지역과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개천에서 용은 못나더라도 꽃은 피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일이 또 있다. 백화점의 문화센터들이 봄학기용으로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이색 강좌를 열고 있다. 상업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곳이 백화점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인들 못할 게 있겠는가? 그중 하나가 연설 전문 강사를 내세워 학교의 회장이나 반장 선거에 대비한 연설 및 공약 제시법 등을 가르쳐주는 '새 학기 반장선거 대비 강좌' 개설이다. 전문 강사에게 연설과 공약 제시법을 배운 아이들은 뭔가 다를 것이다. 아이들의 심리를 꿰뚫어본 그럴싸한 공약을 제시하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언변이 유창할 것이다. 가난만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회장이나 반장도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일제의 잔재인 반장, 부반장 대신 회장, 부회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명칭에서 풍기는 권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학교의 교육방침을 이해해야 한다. 일부 교사들의 학급에서는 학습도우미나 봉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연설이나 공약제시법을 가르치며 당선시키는데만 급급하면 상업적이라고 지탄받는다. 이왕이면 학급이나 전교의 대표로서 남보다 더 많이 봉사하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도 교육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참에 자녀를 회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안달하는 부형들에게 묻고 싶다. 솔직히 자녀에게 리더십을 키워준다는 명분을 앞세운 채 부형들이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한 발짝 더 앞서 출발하게 하거나 한 계단 더 위에서 바라보게 하려고 조바심하지 않아도 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면 된다. 인생살이는 결코 짧지 않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
삼성그룹은 2006년 2월 7일 15만 전 임직원이 연간 근무시간의 1%를 사회 봉사활동에 의무적으로 투입하는 근무시간 1% 사회봉사 활동안을 곧 시행한다. 이에 따라 삼성의 모든 임직원들은 월 1회 이상 근무시간 중 연 20시간 이상을 반드시 사회봉사활동에 할애해야 한다. 정부 산하 각 단체에서 먼저 시행해야 할 것을 민간 대기업이 먼저 사회봉사 의무화제를 시행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범정부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공무원과 정부 산하 직원들에게도 연 20시간 이상의 사회봉사 활동을 실시하되 월 1회 이상을 원칙으로 하되 연간 20시간 이상을 의무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의무화 하여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요양원 등 소외된 계층들을 더 돌보고, 보듬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강구하여 사회봉사 활동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현행 대학입시나 고등학교 입시에 봉사활동을 점수화 하자 극히 일부 몰지각한 학생과 학부형들은 허위로 발급받거나, 부모가 대신하여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리포터는 고등학교 지리, 국사, 사회, 도덕 과목을 담당하면서 방학동안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요양원, 미혼모 자녀 요양원 등 3군데를 선택하여 3시간 이상씩 총 9시간 이상의 봉사활동을 의무화하여 수행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그 동안 여러 말도 많았던 삼성 그룹의 앞선 사회봉사 의무화제는 삼성이 역시 세계 제1의 기업임을 드러내주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이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학생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많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독서를 통해서든 학습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해 나름대로 자세히 알고 있다.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며 그분들처럼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키운다. 전 인류의 존경의 대상에서부터 주변의 훌륭한 삶을 가진 평범한 분들까지 학생들의 마음에는 본받고 싶은 대상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읽도록 권장하는 이유도 위인들의 생각과 행동과 노력의 정도를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누군지 존경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사상이나 행동 그리고 업적을 본받으려 한다. 그 존경의 인물을 멘토(mentor)라고 한다면 학생은 멘티(Mentee)가 된다. 멘토와 맨티의 상호관계 속에서 맨티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바람직한 인재가 되도록 하는 것을 멘토링(Mentor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인을 통한 멘토링은 일방작용으로 유지된다. 멘티의 의지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는 대학생 멘토링 제도를 4월부터 시범 실시한다고 한다.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지역 내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기초학습지도, 보호 및 상담, 인성지도 및 체험활동 등 학생의 희망에 따라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예비교사인 사범대 학생들은 3~4명의 학생에 대하여 개별화된 학습지도를 하게 하겠다고 한다. 멘토(Mentor)인 대학생은 멘티(Mentee)인 저소득층 학생의 개인적인 후원자, 역할모델, 교사, 코치,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멘토링 제도가 잘 된다면 교육적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멘토와 멘티가 직접 만남을 통해 인간적인 정을 나누게 되고, 매사에 상호작용을 통한 교감이 축적되며 신뢰를 통한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멘티에게는 교육적인 효과가 상승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멘토링 관계를 맺어 줄 수 있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자발적이며 봉사적이고 헌신적인 대학생 멘토이어야 할 텐데 각박한 요즘 세상에 그런 대학생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인센티브를 염두에 둔 멘토 역할은 진정성을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실과 적극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멘토링 제도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중·고등학생에게는 타율적으로라도 봉사활동을 하게하고 있다. 성적에 반영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학생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교육적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감동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봉사의 방법을 체득하게 되며, 보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경험도 소중하다. 경험 없는 사람은 몰라서 안하지만 경험해 본 사람은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다. 훌륭한 대학생 멘토와 어린 학생 멘티 사이에 형성될 지극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상담활동, 학습지도 등 멘토링에 기대하는 바 크다.
내가 교직에 들어온 것은 1979년도 봄이다. 제약회사에 입사하여 영업사원으로 활동하던 중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을 놔두고 객지에서 생활하는 것도 불편했고 하숙집을 두고 일주일에 두 번씩 출장을 가서 여관 잠을 자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병원과 약국을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의약품을 주문 받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생활이었다. 전공한 영어를 한 번도 활용할 기회가 없어 그대로 사장시켜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대학 은사님께 부탁드렸더니 마침 모 사립학교에서 영어교사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단에 입문하게 되었다. 제약회사 그만두던 달의 월급이 196,000원이었는데 첫 월급을 받아보니 130,000원이었다. 회사의 3분지2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전공한 분야이었기 때문에 재미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 후 1994년부터 공립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술 얘기를 꺼내려니 좀 망설여진다. 이 글을 학부모님들도 읽을 텐데 핀잔을 들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90년대 들어와 하나 둘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술 먹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이전에는 퇴근길에 주막집으로 직행하는 일이 꽤 많았다. 가면 이미 다른 선생님들이 와 있고 우리는 합석을 하여 교육계 현안부터 정치 얘기까지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곤 했다. 때로는 2차로 이어져 생맥주나 맥주로 입가심을 하기도 했다. 술집에서 이웃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통성명을 하고 알고 지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세간에선 선생님들이 백묵가루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돼지고기 하고 막걸리를 많이 마신다는 얘기들을 하곤 한다. 탄광노동자들이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즐기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돼지고기가 중금속 배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퇴근길 술 한 잔씩 나눴던 것이 백묵가루를 배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퇴근길에 잠깐 들러 대화를 나누며 오붓한 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마신 술값은 학교별로 마련된 외상장부에 기재가 되고 월말에 학교별 총무가 장부를 가져다가 사람 수대로 나우어 수금을 했다. 수금된 외상값을 갚으러 가서 총무는 또 공짜 술 한 잔을 얻어먹곤 했다. 그 때 같이 술을 마시던 동료교사들이 지금은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들이 되었고 많은 선배 선생님들이 정년퇴임을 하셨다. 지금은 어떻게들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가끔 술 한 잔씩 하시며 현직에 계실 때를 회상도 하실 것이다.
세월이 남긴 나이테가 하나 더 늘었다. 이번까지 3학년 담임만 여섯번째니 그간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만도 족히 기백명은 넘을 듯싶다. 한 이불 덮고 사는 부부도 미운정 고운정이 알맞게 들어야 금실좋다는 얘기가 있듯 스승과 제자 사이도 적당히 밀고 당기며 속도 어지간히 태워봐야 서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가 싶다. 작년 이맘 때쯤으로 기억된다. 졸업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실상 고3과 다를 바 없는 너희들과 첫대면을 했지. 다른 담임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의 명단이 담긴 봉투를 선택할 권리도 없이 내가 맡게 될 반은 이미 정해져 있었단다.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처럼 다른 재능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모아놓은 혼성학급이었지. 처음에는 공부와 거리가 먼 녀석들이 있어서 걱정을 했으나, 그런 대로 담임의 말을 믿고 따르는 모습에 한시름 놓았단다.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숨돌릴 틈없이 이어지는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으로 인해 특별한 추억거리를 만들 여유가 없었으나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구나. 교내 체육대회 때, 전력상 절대 열세라는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농구 경기에서 결승전까지 올랐을 때였지. 매경기 혈전을 치르느라 ‘부상병동’으로 변한 우리반 선수들은 결승전에서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렸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하여 막판 역전극을 펼칠 때의 그 감격,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런 정신력이 있었기에 대학진학도 비교적 순조로웠던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한 경쟁률(120:1)을 극복하고 우리반에서 가장 먼서 합격 소식을 전해온 민기, 컴퓨터 게임에 빠져지내다 결국 컴퓨터학과에 진학한 동훈이, 장차 멋진 비행기를 몰겠다며 항공학과에 진학한 용훈이,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경호학과에 진학한 상범이 등 대부분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구나. 유난히 자존심이 강해 담임에게 조금만 서운한 말을 들어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울던 완섭이가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 하루하루 불안 속에 기다리던 나날들. 합격자 발표일이 되자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예배당에서 기도드리고 있을 때였지. 순간, 주머니를 가볍게 흔들던 문자메시지 한통.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합격했어요!’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목이 메어와 한동안 답장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구나.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더 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래도 각자 소망했던 목표를 성취하고 떠나는 길이기에 선생님의 마음은 한결 가볍구나. 너희들을 보내는 아쉬움을 표현이라도 하듯 오늘 아침 출근길에 차안에서 듣던 대중가요 한 소절이 떠오르는구나. ‘어울려 지내던 긴 세월이 지나고, 홀로이 외로운 세상으로 나가네~.’ 잘가라, 사랑하는 제자들아. 이제부터는 그동안 입시라는 굴레에 갇혀 숨죽이고 주눅들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너희들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힘껏 날아보려무나. 너희들이 잠시 머물다 떠난 빈자리는 선생님이 굳건히 채우고 있을 테니까.
잘 알려진 대로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부적격 교원’ 퇴출 방안을 확정, 시행에 들어갔다. 교육부는 부적격 교원에 대해 학부모·학생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부적격 사실을 자체적으로 알았을 경우, 지역교육청 감사 담당 부서에서 조사를 통해 진위를 확인한 뒤 제기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학부모단체, 교원단체, 의사 등으로 시도교육청에 새로 구성된 ‘교직복무심의위원회’가 심의한다. 이 결과에 따라 교육감은 적격 여부를 심사하여 파면․해임시키고 이후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학교장의 은폐로 방치할 경우 지도감독 책임을 물어 문책도 한다고 한다. 최근 사상 최초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열려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동료 의원들에 의하여 적격 여부를 심의 받고 비록 야당 의원 중심이긴 하지만 정모 산자부, 이모 노동부 장관 내정자에 대하여는 '부적격', 김 모 과기부총리 등 세 사람에 대하여는 “절대 부적격”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번 국무위원 후보자의 부적격 사유를 보면, 과기부총리는 증여세 미납, 사망사고를 포함하여 모두 7차례의 교통사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고,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독설과 극언이 트레이드마크로써 허위학력 기재, 연말정산 중복 공제, 건강보험료 소득 축소 의혹 등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노무현 대통령도 `장관직을 잘 해낼지 걱정'이라고 할 정도인 인물이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국가안전 관련 기밀문건 유출 사태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로써 당초 88서울올림픽 개최를 반대했고 80년대 대학생 분신사건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대안교육단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편향적 교육단체인 ‘나다’의 후원회원으로 활동 중인 사람으로 야당에서 3명 모두 '절대 부적격'으로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내정자들은 재산 편법증여 의혹, 교통법규 위반 등 도덕성에 큰 결격 사유는 물론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검찰수사, 배우자 부동산투기 의혹 등 국무위원으로서 심각한 결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졸속 추진에 대한 교원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원평가제를 강행하면서 ‘부적격 교사’를 퇴출하려 하면서도 ARS 여론조사에서도 10%대의 낮은 지지를 받는 등 국민들로부터 '절대 부적격자'로 판정받은 국무위원 내정자에 대해서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 학부모의 민원 제기만으로도 심의하여 부적격 교사를 교단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려는 정부는 야당과 국민들 대부분이 반대하는 결격투성이인 '부적격' 국무위원 임명은 물론 범교육계가 불신임하는 현 교육부장관도 당연히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1964년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에 있는 신호분교(이듬해에 흥양국민학교가 됨)에 처음 발령을 받아서 첫해에 담임을 하였던 당시 2학년 제자입니다. 항상 예의 바르고 너무 선생님을 잘 따르던 2학년 어린아이였던 주인공 송애심양(아줌마가 되어 있겠지만)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니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월 15일에 발령을 받고 담임을 맡은지 3주일쯤 지나서 그러니까 4월 초였겠지요. 너무 어려운 학교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칠판 지우개가 다 떨어져서 속에 넣은 솜이 삐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칠판을 지우다가 솜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서 간신히 칠판을 지웠습니다. 이튿날 아침 교실에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는 시골에서 칠판 지우개를 살 수도 없고, 또 그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정성을 들여서 어머니가 직접 칠판 지우개를 만들어 보내 주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정식 지우개 형식이 아닌 어린 시절에 만들어서 쓰던 유리창 닦기 처럼 만들어진 칠판 지우개가 4개나 칠판 틀에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진 솜씨로 보아서 두 집에서 각각 두개씩 만들어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한 쌍은 골덴 천으로 제법 격식을 차려 만들어 졌고, 다른 한 쌍은 그냥 면으로 된 것인데 유리창 닦기를 좀 크게 만들어 놓은 모양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정년을 며칠 앞둔 오늘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어린 2학년 어린이들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칠판닦기가 떨어져서 못쓰겠다는 말을 하거나, 누구에게 만들어 오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만들어 온 것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선생님이 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졸랐으면 논밭에서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그 칠판 닦을 것을 만들었겠는가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학년 초가 되면 꼭 가정방문을 다녔습니다. 병아리 교사인 나는 선배님들의 주의 말씀을 듣고 나서 가정 방문을 나섰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학생의 집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에 가면 그 집의 청소 상태와 댓돌위의 신발이 놓인 모습, 그리고 화장실을 보면 그 집의 하고 사는 모습과 가정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정 방문을 나가서 두 집을 거쳐서 찾아 간 집이 바로 이 주인공의 집이었습니다. 농촌 마을의 골목을 지나서 집에 들어서려는데 다른 식구들은 밥상을 받고 늦은 점심을 드시고 계시는데, 이 주인공은 고사리 손으로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돌아 설 때에 어머니가 "먼지난다니까, 얼른 와서 밥을 먹고 치우고 나서 쓸어라."고 불러대었지만, 아이는 "이제 쪼끔 남았어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집에 들어섰습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달려와서 인사를 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학교에서 오자 마자,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고 저렇게 밥도 먹지 않고 마당 청소를 하기에 밥을 먹고 하라고 해도 선생님이 청소가 되었는지 보면 그 집을 알 수 있다고 했다면서 저렇게 고집을 숙이고 기어이 다 쓴다고 저러고 있답니다."하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렇게 무슨일이나 열심히 잘하던 그 까마득한 옛날의 제자를 찾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불로그에 제자가 들어와서는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이름도 쓰지 않고 제자라고만 적어 놓았었고 , 얼마 후에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이름을 밝혀 놓았었지만, 연락처가 없고 이메일도 안 되어서 연락을 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달 말이면 42년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몸담았던 교직에서 정년으로 물러나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발령 첫해에 맡았던 제자가 글을 남기고는 있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본인이 이 글을 읽으면 연락이 될 수 있을 것이니 더 좋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겠기에 여기 사진을 올려 놓으니까 아시는 분은 연락이 되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10일 관내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무결석 학급 담임교사 표창'을 올해부터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은 교사들의 담당학급 학생들에 대한 관심제고와 이를 통한 학생들의 비행 및 학업중단 예방 등을 위해 5년전부터 1년간 학생들의 결석이 없는 학급 담임교사에게 교육감 표창을 실시하고 이를 승진인사 등에 반영했다. 지난해의 경우 각급 학교 2천100여명의 교사들이 이같은 무결석 담임교사 표창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표창제도로 인해 일부 교사들이 갑작스러운 질환 등으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에게조차 일단 등교후 조퇴할 것을 강요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 일부학부모로부터 '비교육적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도 교육청은 이같은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무결석 학급 담임교사에 대한 표창을 폐지하되 1년동안 결석한 학생이 1명도 없는 학교에 대한 기관표창은 현재와 같이 계속 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일렬로 정렬해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수상자가 상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틀에 박힌 졸업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15일 졸업하는 서울 전동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동생들의 축하 공연을 졸업선물로 받는다. 졸업생 200명 전원이 학교 시청각실에 모여 후배들이 선사하는 종이인형극과 꼭두각시춤 공연,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한다. 5학년 학생들은 형과 언니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마음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동영상으로 담아 졸업식장에서 상영하고 재학생 송사와 졸업생 답사도 영상으로 꾸몄다. 또 우수상 시상을 폐지하는 대신 졸업생 전원에게 특기에 따라 '달리기상'과 '리코더상', '종이접기상' 등을 주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졸업생 10명에게는 특별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전통'에서 벗어난 이색 졸업식은 김승식 교장과 장효범 교감이 딱딱한 분위기에서 탈피해 졸업생이 제대로 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자며 제안한 데서 비롯됐다. 17일 서울 한신초등학교 졸업식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졸업생 107명 전원이 대학교 졸업생처럼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걸친 채 후배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단의 연주에 맞춰 입장한다. 한 명씩 단상에 올라 상장을 받는다. 졸업생 모두에게 상을 주자고 제안한 6학년 1반 담임 우승희 교사는 "후배가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는 것을 도운 학생은 승하차 도우미상을 받는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6년 동안 착실히 학교에 다닌 것을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금산초등학교는 15일 '꽃밭길 졸업식'을 열어 졸업생이 학교 정문부터 늘어선 꽃길을 따라 졸업식장에 입장한다. 피튜니아, 마라고데스 등 꽃길을 장식하게 될 꽃은 모두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 옥상과 교실에서 정성껏 키운 것으로 아직 제철이 아닌 개나리까지 실내에서 길러내 졸업식장에서 선보인다. 홍종원 교감은 "식물처럼 모든 정성을 쏟아 가꿔야 하는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가는 길을 꽃길로 꾸며 축하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년 전, 입학식 날이었다. 대열을 맞추라고 호통을 치는 학생부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 앞에서 장난을 치는 녀석이 있었다. 유난히 키가 작아서 그런지 한 눈에도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앞에서 지휘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가볍게 넘기는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골치깨나 썩이겠다 싶은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녀석과 나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불행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우리 학급의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만약 내 자식(?)이 된다면 옹골지게 다뤄 태도부터 고쳐놓겠다고 벼르던 마음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다만 내가 맡고 있는 과목은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마다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사람의 선입견이라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입학식장에서 보았던 녀석의 불량기는 수업시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졌다. 말그대로 수업에 충실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맡고 있는 국어 과목에서 녀석의 성적은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 애초에 녀석에 대하여 품었던 선입견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소심해지고 심지어는 여성화되는 경우도 있어 틈만나면 공과 사를 분명히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채근한다. 그런데 녀석은 내가 주문하는 바람직한 이상형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수업 시간에는 공부에만 열중하고 쉬는 시간이나 체육 시간에는 자신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아이들끼리 웃고 떠드는 화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녀석이 있었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공을 차는 장소에는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내닫는 녀석의 화려한 발재간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 고3이 되었다. 녀석과 나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는지 삼낸 내내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도토리처럼 작지만 야무지기 짝이없는 녀석과 내가 함께 파트너가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듯 싶었으나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학년 때까지는 여가시간이 생기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에 열중하던 녀석도 삼 학년이 되자 짜투리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생판 공부에 취미가 없던 녀석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3이 되면 정신차리고 공부하는 척이라도 한다. 사실 녀석의 성적으로 볼 때는 서울의 명문 K대학에 지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녀석은 1학기 수시에서 덜컥 K대학에 원서를 넣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교과를 맡고 있기 때문에 늘 친형님처럼 모시고 있는 녀석의 담임 선생님은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차피 수시모집이기 때문에 떨어져도 크게 손해될 것은 없지만, 그간의 예로 볼 때 수시에 탈락하면 그 충격으로 인하여 수능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려 4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K대학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논술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런데 녀석의 국어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열심히만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듯 싶어, 틈나는 대로 녀석의 논술문을 일일이 살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합격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내신과 수능을 공부하면서 비는 시간을 활용하여 논술문을 쓰다보니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 정도면 합격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멋지게 날아가고 말았다. 녀석도 실패의 아쉬움이 큰 듯한 눈치였으나, 그래도 2학기를 대비하겠노라고 당차게 말하는 것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무더운 여름도 잘 견디고 2학기에 접어들어서도 녀석은 목표로 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조금도 마음의 자세를 늦추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녀석은 2학기 수시모집에도 변함없이 K대학에만 지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시모집이라고는 하지만 K대학의 경우, 수능시험이 끝나고 열 흘 뒤에 논술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토록 힘들게 준비했던 수능시험을 마치자마자 논술시험을 치르는 아이들만 별도로 모아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녀석은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아마도 시험에 대한 부담을 떨치지 못한 듯 했다. K대학의 논술시험이 있기까지 열 흘 동안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이 대학에 지원하는 여섯명의 학생과 나는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논술문을 쓰고 또 분석을 하면서 계속 같은 방식으로 반복을 했다. 내신이나 수능만을 반영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여섯명의 아이들과 나는 오히려 더 숨쉴틈 없이 입시 경쟁에 내몰려야 했다.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한 녀석은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포기하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여섯명의 아이들 가운데는 이미 상위권 대학에 합격해 놓은 상태에서 편한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K대학의 평균 경잴률은 40:1에 육박했다. 이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합격하면 대성공이나 다름없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열 흘이라는 시간도 훌쩍 지나고, 드디어 시험을 치르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논술 답안을 검토해 주고 서울로 떠나는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건승을 기원했다. 여섯명의 전사들은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내려왔다. 이제 결과만 남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발표일이 다가왔다. 뚜껑을 열고 보니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겠다고 울먹였던 녀석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미역국을 먹었다. 합격한 녀석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줄 겨를도 없이 탈락의 아픔을 곱씹고 있는 녀석들을 달래주는 것이 더 급했다. 특히 이번만은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녀석의 탈락은 그만큼 충격이 컷다. 수능성적이 워낙 낮게 나왔기 때문에 녀석의 K대학 도전은 여기서 끝나는 듯 싶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까지도 무모하다고 여길 만큼 녀석의 고집은 완강했다. 정시모집에서도 K대학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여섯명의 아이들가운데 이미 다른 대학의 수시모집에 합격했던 아이와 이번에 K대학에 합격한 아이를 제외하고 네 명이 남았다. 모두가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수능 성적이 어느 정도 갖춰졌기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녀석은 설령 논술에서 만점을 받는다해도 합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한번의 숨막히는 준비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젠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만큼 지친 상황이 되어서야 정시모집도 끝이 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는 또 환희와 슬픔의 교차로 나타났다. 두 아이는 서울의 명문 Y대학에 합격했고, 한 아이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이미 예상된 일이기는 했지만 녀석은 이번에도 탈락한 것이다. 다른 대학에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락과 동시에 재수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다른 아이들이 잘 됐어도 녀석의 실패는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발표가 있고 난 며칠 후, 차를 타고 가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고 있는 녀석을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마음이 안됐던지. 좀더 열심히 지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쳤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녀석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에 있는 모학원에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학원으로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위로의 말이라도 전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천근의 무게로 짓누르고 있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졸업식 준비로 눈 코뜰 사이 없이 바쁜 가운데 일과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삼년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기에 몸도 마음도 정갈히 하고 싶은 생각에 목욕탕으로 향했다.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즐긴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방금전에 심부름을 온 사람이 놓고 갔다며 조그만 물건을 내놓았다. 포장지를 뜯자마자 먹음직스러워보이는 딸기가 눈에 들어왔고, 그 위에는 조그만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어보았다. 『선생님께 OO이는 참 행운아였습니다. 자칫 비껴갈 법도 했었는데, 선생님같은 스승을 만나 인연을 맺고,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선생님만의 열정적인 가르침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결과는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OO이는 선생님이 주신 능력으로 평생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그 힘으로 대학을 다니고, 또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는 기획안을 쓰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 오래전부터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 졸업식에 OO이는 참석하지 못하게 되지만, 졸업을 빌어 선생님께 그간의 고마음을 전해드립니다. 2006년 2월 9일 - OOO 母 올림 - 』 구절 구절마다 마음이 저려왔다. 자식이 대학입시에 실패하여 재수의 길로 들어섰는데, 지도했던 교사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선물에 편지까지 보냈으니. 흔히 아이가 잘되면 자식이 잘나서 그렇고 못되면 학교나 교사를 탓하는 풍조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결국 학원에 다니느라 졸업식에까지 참석하지 못할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아플 것인지. 날이 밝으면 녀석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올 해에는 반드시 기쁜 소식이 날아들 것이라고 다짐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