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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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사와 학부모라면 ‘교과서 만화’를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만화 교과서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현행 교과서를 만화로 옮긴 ‘만화교과서’는 ‘교과서’란 이름 때문에 만화책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교사나 학부모도 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장에 ‘초등학교 교사’가 저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 그 인기와 높은 관심을 짐작케 한다. ‘똑똑한 만화 교과서’의 저자인 서울 금양초 최미연 교사는 만화 교과서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우선 “교과서를 재미있는 만화로 풀어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00% 만화로만 구성된 것들은 흥미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학습의욕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루는 영역도 교과목 뿐 아니라 속담·고사 성어 등 다양해
'올바른 우리 말글살이'를 시작하며 "'어제'라는 말도 한글이고, '오늘'도 한글인데 '내일'만 한자(來日)로 되어 있는 거 알아?" "그렇지. 근데?" "그래서 우리는 내일이 없는 민족이래." 어렸을 때 들었던 우스개 소리 아닌 우스개 소리를 또 들었다. 예전에는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 무척 우울했었는데, 나이 먹고 들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 역시 무척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모레'가 있잖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우스개 소리입니다. "아니, 그러는 일본 지네들은 오로지 '내일'(아시따/아스)만 있다면서? 그래서 '내일' 가지고 그렇게 따졌나? '어제'와 '오늘'도 자국어로 못 가진 우리보다 더 한심한 민족 주제에 당최 주제 파악을 못해요~." 이것은 한 누리꾼의 감정 섞인 댓글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존재하지만 내일이란 우리말은 없어서 오늘까지도 우리는 한자어 '내일(來日)'을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점심'(點心)을 뜻하는 우리말도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내일과 점심이란 고유의 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사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할 정도로 가난했으며 오늘 하루 허덕이며 살기도 벅찼기에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눈물겹게 헤쳐 나온 어제와 또 다시 뚫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가난한 오늘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세월을 오래 보내다 보니 그간 형편이 많이 나아져서 하루 세끼에 참까지 먹으면서 점심과 내일이란 남의 말을 쓰게 된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 민족은 여전히 과거지향적인 것입니다. 내일을 향한 시선이 결여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도 한 번 틀어지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구원(舊怨)으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 땅의 정치지도자들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목사님의 글입니다. 일제의 식민사관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입니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비하시키려고 한 말을 아직까지 신주단지 모시듯 앵무새처럼 따라하지를 않나, 일부 많이 배웠다는 분들 중에서는 한술 더 뜨니 말입니다. 역시 이름난 대면 알만한, 대학교수와 장관까지 지낸 분께서도 이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우리 민족은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당장 지금만을 즐기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분들 말마따나 우리는 정말 '내일'이 없는(었던) 민족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엄지, 집게, 가운데, ( ? ), 새끼손가락' 등 손가락을 가리키는 우리말 중에, 네 번째 손가락을 가리키는 고유어가 없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없었을까요? 분명히 예전에는 네 번째 손가락에 대한 명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네 번째 손가락을 가리키는 '고유어'보다 '한자어'를 더 선호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사라지고, 지금은 약지(藥指)라는 한자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내일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어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가볍게 여기고 한자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이 없어진 것이지요. '토박이말 사전'에서 '내일'에 해당하는 낱말로 '올제', '하제', '후제' 등의 순우리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올제 : 오늘의 바로 다음 날. 즉 `내일`을 뜻하는 토박이 말. 최초의 기록은 고려 때의 문헌인 에 '명일왈할재(明日曰轄載)'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내일에 대응되는 '할재(轄載)'의 소리값을 '하제, 올제, 후제' 등 사람마다 다르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기완 님은 '올제'로, 진태하 님은 '하제'로, 천소영 님은 '후제'로 추정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볼 수도 없고, 고려 사람들은'할제(轄載)'을 과연 뭐라고 발음했을까요? 조선광문회의 광문회사전 원고본에는'내일'을 설명하며 '명일, 밝는 날, 낼, 흘제' 등의 명칭도 보이고, 송강 정철의 '가사와 태산집요 언해' 등에는 '후제'라는 명칭이 보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내일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있었음이 확실해졌습니다. 또한 외국인 로스는 1877년 우리말의 어휘를 모으며 '후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로 보아 조선후기 사람들은 '흐제', '후제'라고 발음했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본디 우리말로는 '내일'이 아니고 '낼'이었다고 합니다. 그 근거로 '낼'의 본디 모습이 사투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사돈, 언제가 장날여?" "낼이 장날여" "응, 그려어. 그라문 낼 장에서 만나." 위의 대화에서 보듯이 '낼'이 본디 우리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낼'은 쓰임에 따라 '낼이', '낼은', '낼이여' 따위로 바뀐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쓰이던 '낼'이 한자의 영향 때문에, 한자말인 명일과는 달리 소리 값이 비슷한 '내일(來日)'로 굳어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마치 '새·하늬·마·높'이라는 본디 우리말이 지배 집단의 오랜 한문 숭상 때문에 '동·서·남·북'으로 바뀐 거와 같다는 것이지요. 이미 있어 온 우리말을 밀어내고 한자말을 주로 쓰게 한 그릇된 말글살이 정책 때문에 '낼'이 '내일'로 바뀌게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사랑은 움직인다'는 말처럼 "언어도 생물"입니다. 우리는 외래종 황소개구리로 인해 토종 참개구리의 숫자가 적어지자, 한동안 황소개구리를 잡자며 법석을 떨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 참개구리를 다 잃고 나면 '황새 복원 작업'처럼 또 난리를 치를까요? 우리의 말글은 우리 겨레의 얼이자 원형질입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소중히 여겨주겠습니까? 요즘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영어공용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의 중심은 "우리 말과 글"입니다. 만주족은 중원을 차지했으나 그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우느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애를 먹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든 한자든 부지런히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다만 그것을 배우는 열정 이상으로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애정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영향력 있는 매체마다 '우리말 바로 알고 바로 쓰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이곳을 통해 을 연재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저는 국어를 전공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배우는 자세로 우리말글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틀린 표현을 고쳐 드리는 등 한글학회와 국립국어원(구 국립국어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우리 겨레의 얼을 지켜나가는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내일에 해당하는 낱말 하나를 잃어버려 '내일이 없는 민족'이라고 조롱은 조롱대로 당하고, 뒤늦게야 부랴부랴 사라진 순우리말을 찾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결코 내일이 없는 민족이 아닙니다.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한자어, 일본어, 영어에는 없는 '그저께', '그그저께', '모레', '글피', '그글피'까지 있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저력 있는 민족이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우리말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 운동'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소중히 여겨주겠습니까? "
이 맘 때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하여 크게 낙심하는 학생들을 봅니다. 또한 소망하는 직장에 취업이 되지 않았다 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젊은이들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거센 눈보라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이번에 얻지 못했다고 해서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허탈하고 자존심 상하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눈물을 딛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웅크리고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엄동설한과 소리없이 맞서 싸우고 있는 저 겨울나무들의 속내를 한번 마음의 눈으로 읽어보기 바랍니다. 동시에 마음의 귀로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마 여러분의 생각이, 아니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자연은 늘 우리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달려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고향집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오늘 밖에 나가 겨울나무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그에게서 한 수 배웠습니다.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남루하고 지친 표정의 거무튀튀한 나뭇가지, 말라붙을 대로 말라붙어 꼭 죽어 있는 것만 같은 겨울나무, 마치 저승길을 며칠 앞둔 병자의 얼굴 같았습니다. 겉보기엔 분명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낙오자,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기야, 지난 가을 그토록 아끼던 잎새들과 열매들을 다 잃어버린 빈털터리에게 무슨 소망이 남아 있으리오? 그냥 콱 죽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만 그럴 뿐이었습니다. 얼음장 밑 물고기처럼 이 북풍한설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숨을 내쉬는 것은 그나마 겨울나무에게도 희망이라는 피가 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우내 쿨쿨 잠만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나 나무는 결코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눈을 감았으나 속눈은 뜨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 호흡이 멈춘 줄 알았는데, 적어도 그렇게 보였는데,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는 춥고 긴 겨울 동안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묵언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가부좌를 튼 채 장기 금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나무는 추위 속에서도 새봄을 잉태하여 몸 안에 키우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한번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어디에서 움이 트나요? 가장 여리고 약한 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꽃이 피나요? 역시 가지의 가장 연약한 부분에서 꽃이 핍니다. 그리고 열매는 어디에서 맺히나요? 꽃잎이 떨어져나간 바로 그 아프고 쓰라린 자리,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그곳에서 열매가 맺힙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처럼, '부드러움의 미학', '위대한 연약함의 역설'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결코 튼튼해 보이는 둥치, 단단해 보이는 줄기에서 움이 돋고 잎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게 아닙니다. 항상 가장 힘없고 나약하고 연약한, 그래서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하고 온유하여 남을 섬기는 자세가 된 가지에게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꺼이 희생하며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선택된 여린 가지에서 움이 돋고 잎에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랫말처럼,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어쩌면 가장 약할 때가 가장 강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겨울나무처럼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가장 빛나는 희망을 만들어내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지금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어떤 모양으로 다듬어지게 될지 그건 주님께서 아실 겁니다. 지금은 아프고 힘들지만, 모난 부분을 깎고 다듬고 나면 난 훌륭한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있겠죠? 그래서 참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기로 했습니다."(리포터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주보에서 옮긴 글) 이 글처럼 여러분도 단련 중이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으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성구(욥기 23장 10절)가 떠오릅니다. 다시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나무는 알몸으로 새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린 나뭇가지마다 용솟는 꽃망울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 같습니다. 지난해 가을….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무성한 잎새와 탐스러운 열매들을 모두 떨어버리고 하얀 된바람에 속절없이 눈물 흘렸을 겨울나무…. 그러나 나무에게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이미 몸 안에는 새로운 희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알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넉넉히 이겨낸 것도 어쩌면 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희망이라는 끈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나는 얼마나 나무와 닮은꼴일까? 겨우내 나무는 뼛속 깊이 밀려드는 추위를 알몸으로 맞서며 목숨 건 한판 싸움을 힘겹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릎을 꿇었으나 아주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멋진 한판 승부, 곧 무혈혁명, 명예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멀지 않아 겨울을 밟고 일어선 나무들의 환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랜 고행 끝에 터지는 파안대소요? 백일기도를 끝내고 나오는 수도자의 얼굴이 아닐까요? 나무는 겨우내 와신상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박박 이를 갈지는 않았습니다. 성급하게 서둘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히 때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기회를 놓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보란 듯이 봄 햇살과 함께 터져 오르는 봄꽃의 함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졸업식이라는 것은 일정한 과업을 끝내었다는 것을 기념하여 가지는 의식이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에 유치원, 초, 중, 고, 대학교, 그리고 남자들은 군 훈련소, 직장에서의 연수원 등 등 수많은 졸업식(일부는 수료식이긴 하지만)을 거치게 된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식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있는 유일한 졸업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 말까지 만 하여도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이 70%에 육박하였으니까, 그 전이야 물을 것도 없었다. 1969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평준화 정책이 시작되어서 1971년 전국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이 사라질 때까지는 전국에서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이 50%를 훨씬 넘는 정도이었다. 그럴 즈음에는 국민학교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졸업식 노래를 부르다가 모두들 목이 매어서 울음이 시작되고 졸업식 노래를 끝맺지 못한 채 훌쩍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것은 이제 이것으로 학교라는 곳을 더 이상 다니지도 못할 형편이니 마지막 교문을 떠나는 슬픔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 평준화 정책이 생겨서 누구나 중학교에 가는 시대가 되자 점점 졸업식장에서 우는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졸업이 학교 생활을 끝내는 의식이 아닌 중학교로 가는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즈음에는 유난히 정이 많은 어린이들이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슬퍼서 울음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울음을 우는 것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한 때 졸업식이 끝나면 시원하다고 생각한 일부 학교생활에는 취미가 없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던 밀가루 뒤집어씌우기, 교복이나 교모 찢기 등의 야릇한 풍습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어른들의 탓으로 이런 풍습도 차차로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2006년 2월 16일 !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마지막 졸업식을 끝냈다. 아직도 초임 발령을 받고 학교를 찾아가면서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42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정년을 맞아 학교에서 물러나야 한다니 참으로 세월은 빠르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졸업식장에서 우리 졸업생 56명 하나하나에게 각각 따로 만든 그들의 꿈을 꼭 이루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달라는 시를 지어 바쳤다. 과학자, 의사, 연예인이 6명씩, 법조인 5명, 교사, 디자이너, 프로게이머, 예술인, 운동선수가 각각 4명씩이었고, 그 외에 요리사, 사업가, 파티쉐, 경찰을 희망하는 사람도 2명씩이었으며, 동물 조련사, 스튜어디스, 군 장교를 희망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각자의 꿈을 이루어서 장차 이 나라 제일의 일꾼이 되어 달라는 당부와 희망을 실어 주는 시를 만들어 준 것이다. 올해로 5년째 이렇게 잘 되어 달라는 꿈을 이루기를 빌어주는 시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것도 금년으로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든다.
2월은 선생님들에게 많은 설렘과 변화가 오는 달이다. 벌써 다른 학교로 전출하는 선생님들의 명단이 신문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새로운 터전을 향한 선생님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렘을 지나 가슴이 텅빈듯한 마음으로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평생을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바치고 이제 교단을 내려서는 그 발길의 무거움을 누가 알랴. 돌아보는 발자취에는 보람뿐만 아니라 후회와 허무도 있으리라. 떠나는 이들의 평생이 그것으로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헌신의 공로를 기려 봉직 연수에 따라 각종 훈장과 표창장이 주어진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사람의 생각이나 당시의 사회 정서로는 그것이 아마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로는 이 수상이 말 그대로 명예와 긍지의 표시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비록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나 표창일지라도 선생을 선생으로 존경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주는 이 훈장이나 표창을 받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것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액자에 넣어 벽면을 장식하더라도 그저 융통성이 없어 교사로 오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덕에 절로 얻은 훈장의 의미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하면 너무 자조의 한탄일지 모르겠다. 현직에 있는 젊은 선생님들에게는 아직도 교단을 지켜야하는 많은 세월이 있고 그 세월동안에 그런 사람들이 주는 상이라도 자신의 신분에 관계되도록 법이 정해져 있으니, 정작 외면하거나 거절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이제 교단을 떠나는 사람들에게야 엄밀하게 말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 서훈이나 표창에 자신의 명예를 얹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받아서 주위나 후손들에게 보이고 가르치는 자료로 삼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주는 서훈이나 표창을 사유를 밝혀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특히 지금의 총리는 교육의 수장으로 있을 때 교사들로 하여금 스승일 수 없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지금도 그것을 자신의 제일 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며 그를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고 발을 맞추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주는 훈장이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훈이나 표창은 받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에 따르는 것이기에 이런 이야기가 참 외람 되고 그 분들에게 누가 될지 걱정도 되지만 그저 꿈처럼 스쳐가는 개인적인 소망을 한 번 이야기 해본다.
한국교총이 주최하는 2007~2008년 현장교육연구대회의 주제는 ‘기초·기본 교육 강화를 통한 교육력 제고’로 결정됐다. 따라서 연구자는 기초교육 혹은 기본교육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어떻게 창안해 낼 것인가, 그리고 그 방법이 효과적임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박부권 동국대 교수의 현장교육연구대회 ‘대 주제 해설’을 통해 2007~2008년 대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아본다. 현장연구의 의미=현장 연구는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의 관계를 밝히는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도 아니고, 엄격한 통제가 요구되는 실험연구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과학적 진보를 담보하는 사실, 법칙, 원리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연구도 기초연구결과의 실용을 목적으로 하는 응용연구도 아니다. 기초·기본교육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현장연구다. 기초교육과 기본교육=‘기초교육’은 원리, 관계적인 것으로 각 교과의 구조 속에서 보다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면, ‘기본교육’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특정 공동체라는 구체적 맥락 속에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는 것으로 양자는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학과 물리학은 기본교육보다 기초교육이 자연스럽고, 도덕은 기초보다는 기본이 더 자연스러우며 국민 기초교육보다는 국민 기본교육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 그 예다. 기초교육과 기본교육의 이런 차이가 있지만, 연구대회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은 차이에 개의할 필요 없이 양자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교육의 내용과 범위가 국가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그 내용과 범위는 학문원리에서 보면 각 교과의 기초개념, 원리, 법칙이 되지만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국민이 예외 없이 배워야 할 공통필수로, 국민 기본 교육의 내용과 범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교육과 기본교육은 구분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구분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초·기본 교육의 현장연구 예=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공교육의 강제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가, 내재적 학습동기를 기초로 하는 수업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정과 구체적 교육프로그램들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명실상부한 기초·기본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학교의 평가체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가 등이다. 개선책 탐구 이전 단계로서 현 교육제도와 관행 중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어떤 방식으로 기초·기본 교육에 장애가 되고 있는 지, 장애원인을 현장경험 분석을 통해 입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사로서 나는 왜 기초·기본 교육을 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은 그 원인 규명만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초·중등교육에서 어떤 교과를 기초·기본교과로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도 의미 있는 주제다. 영국은 이미 모국어인 영어와 함께 수학과 과학을 핵심 국가교육과정으로 규정하고 이 교과의 확대심화를 국가 교육과정의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좀 더 미시적인 접근으로 연구자가 맡은 교과에서 기초·기본 혹은 구조는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그 규정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규정한 기초·기본 원리와 법칙의 교육 방법과 과정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이때 한 교과전체가 분석의 단위가 될 수도 있고, 한 단원 혹은 한 차시의 수업이 분석의 단위가 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의 연구는 현장연구인 만큼 이론적인 궁구보다는 자신의 현장체험과 경험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장’ 없는 현장연구는 학문발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초·기본 교육을 위한 현장 개선에도 의미 있는 시사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부권 동국대 교수
올 4월 개설 예정이던 전문상담교사 2급 양성과정이 5월로 늦춰질 전망이다. 당초 교육부는 2월 말까지 이수학점과 과목 등을 규정한 교원자격검정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3월 중 개설 대학 선정 및 대학별 이수자 선발을 마쳐 4월부터 양성과정을 개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정령에 대한 규제심사가 지연되면서 전체 일정이 한 달 정도 뒤로 밀리게 됐다. 이수학점을 정하는 것 자체가 규제의 생성이라는 점에서 해당 규제가 필요한 규제인지를 심사,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교원양성연수과 김운종 연구사는 “3월 중순에나 법령개정이 완료될 듯하다”며 곧바로 대학들로부터 신청을 받아도 준비기간이 필요해 양성대학 심사, 선정은 4월에나 가능하고 이수 대상자 선발까지 고려하면 5월에나 개설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2007학년도 임용시험부터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김 연구사는 “42학점이면 6개월에 이수가 가능하다”며 “실제로 대학으로부터 신청을 받을 때 11월까지 양성과정을 마칠 수 있는 곳만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유치원 정교사 2급 자격 소지자를 이수 대상자에서 제외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부는 유아교육법과 시행령에 전문상담교사를 둘 근거 자체가 없는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관계자는 “유치원 원아에 대한 상담교사의 필요성이 현장에서는 높다”며 “법을 고쳐서라도 할 일이지 이를 이유로 못한다는 것은 소극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교총은 16일 “점차 저연령화 돼 가는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인성이 대부분 완성되는 유아기 때 체계적인 상담과 예방교육이 절실하다”며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교육부는 부정적인 의견이다. 교원양성연수과 관계자는 “유아교육지원과에서 전문상담교사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배치계획을 세워 요청하면 우리 과에서 법률 개정작업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우리가 먼저 양성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아교육지원과 관계자는 “원감, 종일반 교사도 다 배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담교사를 양성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신학기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며칠의 여유가 있으나, 고3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고3이나 다름없습니다. 봄방학 기간이지만 정상적으로 등교해서 자율학습에 임하고 있으니 기나긴 입시 전쟁은 또다시 막이 오른 셈이지요. 졸업식 날,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촬영했던 교실에는 어느새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와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교실은 늘 그대로고 아이들은 해마다 새롭게 바뀐다는 점에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날입니다.
"졸업식 한 두 번 해봤나요? 참석 못해도 별로 안 섭섭해요" 10년 대학생활 끝에 21일 광주여자대학교 미용과학과를 졸업한 유중란(33.여)씨는 졸업식장 대신 교사 예비소집이 있는 충남 천안 병천고로 향했다. 유씨는 오는 27일 충남교육청으로부터 정식 발령을 받아 3월부터 병천고에서 미용교사로 근무한다. 길고 파란만장한 대학생활을 보낸 유씨는 동료 졸업생들보다 10살이 많다. 광주여전 2년, 광주여대 편입 2년, 방송통신대 3년, 광주여대 재입학 3년 등 유사학과에서만 총 10년의 대학생활을 보냈기 때문이다. 고교를 졸업해 미용사로 일하던 유씨는 기술이 손에 익기 시작할 무렵 공부에 '뜻'을 품기 시작, 95년 미용과가 있는 대학 중 고향(충남 장항)에서 가장 가까운 광주여자전문대학(광주여대 전신) 피부미용과에 입학했다. 공부에 '맛'을 들인 유씨는 97년 졸업과 함께 4년제 편입을 시도했지만 비슷한 시기 4년제로 승격한 광주여대에는 관련학과가 없었던 탓에 그나마 비슷한 방송통신대 보건위생학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아 2년 과정을 3년 뒤인 2000년 졸업한 유씨는 광주여대에 미용과학과가 개설된 사실에 또 한번 편입을 결심, 2001년 3학년으로 편입했다. 유씨는 이 때부터 교원자격증에 욕심을 냈지만 교직 과목은 1학년부터 이수해야만 하는 규정에 막혔다.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채 2003년 2월 학사학위를 따낸 유씨는 대학원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교육대학원 미용과학과는 현직 교사에게만 입학기회를 주는 바람에 또 번 실망해야 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같은 과 재입학. 유씨는 2003년 미용과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한 다음 3년간 대학생활을 마치고 교원 임용고시에도 합격, 꿈에 그리던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나마도 '같은 대학에 재입학하면 교양학점 일부를 인정해 준다'는 모 국립대 규정을 근거로 학과장에게 건의해 이미 이수한 교양 28학점을 인정받는 규정을 신설토록 하는 등 노력 끝에 한 해 빨리 졸업할 수 있었다. '편입해서 졸업한 학과에 재입학하면 후배들이 선배가 돼 어색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유씨는 "그래도 나이가 많아서 '왕언니'로 군림했다"며 "솔직히 직장과 대학생활을 함께 하느라 수업시간외 대학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고 이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들이 수채화 전시회를 열어 주목을 받고 있다. 동주초등학교 여교사들로 구성된 동주수채화회(회장 지태희.38)는 21일부터 상당구 용암동 시립정보도서관 문화사랑방에서 6일간의 일정으로 창립전을 열고 있다. 전시회에서는 지씨를 비롯해 교사 12명이 출품한 24점과 함께 지도강사 이경선 화가의 작품이 관객들을 맞는다. 같은 초등학교에 근무중인 교사들이 수채화 동아리를 만들어 공식적인 전시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평범한 교사들의 그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등 숱한 수상 경력의 전문 수채화 작가인 이 화가를 사사, 매주 2회씩 방과후 학교에서 강도높은 '그림훈련'을 받은 덕에 실력이 녹록지않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학교측은 교사들이 수채화를 배울 경우 학생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교실 제공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지씨는 "3년전 한 선생님이 수채화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돼 정식으로 모임이 만들어졌다"며 "아직은 자랑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전시회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채화회 함경숙 교사는 "우리 작품이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의 하나 판매가 이뤄진다면 결식아동돕기 등 불우학생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사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하더라도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사립학교 전 교사 이모(53)씨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면직 처분은 위법하다"며 해당 사학재단을 상대로 낸 면직처분 무효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립학교법 상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교원의 임명ㆍ면직은 무효라고 볼 수 있지만 의결이 필요한 면직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직권면직만 포함될 뿐 의원면직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학법 '면직사유' 조항에는 ▲신체ㆍ정신적 장애 ▲근무성적 불량 ▲반정부단체 가입ㆍ방조 ▲정치활동 및 집단적 수업거부 ▲부정 채점ㆍ기재 등이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직권면직 대상으로 명시돼 있으나 의원면직은 포함돼 있지 않다. 재판부는 다만 "원심은 이사회 결의가 없는 의원면직은 무효라고 판단해 강요에 의한 권고사직 가능성, 사직의사를 철회한 경우 조건부 사직서의 효력 등에 대한 이씨의 주장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점이 있다"고 밝혀 복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씨는 채권기관의 월급 가압류 조치 등 채무 문제로 시달리다 사학법인 이사장을 찾아가 "빚을 다 갚겠으니 선처해 달라"며 사직일자를 2004년 1월 31일로 기재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법인측이 하루 전날인 1월 30일 사직서를 수리하자 소송을 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재적이사 7명 중 2명이 출석한 사학법인 이사회는 개회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직서에 대한 이사회 심의ㆍ의결이 없었으므로 해당 사건 면직 조치는 무효에 해당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한국일보에서 기획취재를 통해 보도한 '여학생이 정말 공부 더 잘하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면서 비교적 정확한 지적을 했고, 학교현실과 가까운 내용의 보도 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번보도는 학교의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본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의 학부모들은, 고등학교배정에 있어 남학교로의 배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형제 중 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학부모의 경우는 그런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으로 본다. 이는 이미 남·녀공학보다는 남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내신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보도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실제로 공부를 여학생들이 더 잘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성적이 여학생이 높게 나오는 것은 '수행평가'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수행평가를 실시해 보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우수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과제를 부여해도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과제를 더 잘 해내고 있다. 내용이 거의 같아도 남학생들은 대충하려는 경향이 높지만 여학생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한다. 따라서 수행평가의 반영비율이 높아지면서 여학생들의 우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공부를 남학생보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신성적의 결과는 여학생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일보에서 이를 두고 착시현상으로 지적했는데, 이 역시 정확한 지적으로 보인다. 우리학교에서도 교사들 사이에 남·녀분반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다. 논의 긑에 분반하는 것은 남·녀공학의 취지에 맞지 않는 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학부모와 교사들 중에는 남·녀분반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녀분반을 한다고 해서 내신성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신처리는 남·녀를 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학교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즉 남·녀공학 학교보다는 남학교의 경우가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남학생들의 경우는 남·녀공학보다는 다소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단순히 남·녀분반 문제로 보는 것보다는 남·녀공학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하여 이를 토대로 최소한 고등학교라도 개선점을 찾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늘은 봄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출판과 관련된 일이 있어 겸사 겸사 잘 됐다는 생각으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습니다. 먼저 교보문고에 들러 아이들에게 책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나는 개인적인 일을 보았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서 교보문고로 다시 돌아오자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고르거나 읽고 있어서 부담이 없었던 듯합니다. 제한된 시간으로 인하여 더 이상 교보문고에 머무를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발길을 돌려 청계천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을 뚫고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침 방학을 맞은 듯,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맑은 시냇물 소리에 섞인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워 슬그머니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자연은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은 자연을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며 자라듯이 빌딩숲에서 만난 시냇물이 바로 산 교육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혁신위원회가 현행 교원 승진 및 교장임용 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국교총이 참여하는 토론회가 전국 6대 도시에서 열린다.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교원정책개선특별위원회'는 21일 서울을 시작으로 다음달 9일까지 전주, 대구, 광주, 대전, 부산 등을 돌며 토론회를 개최한다. 특별위원회는 교육부가 마련한 교원 양성ㆍ연수체계와 교원승진 및 교장임용 제도 개선 시안을 토대로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6월말까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 교육부 시안 핵심 = 교육부가 교육혁신위원회에 넘긴 개선안의 핵심은 초빙교장 및 공모형 교장제 강화로 요약된다. 현행 연공서열식 교장 승진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25년인 경력반영 기간을 5~10년 가량 축소하고 점수 비중도 90점에서 70점이나 80점으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근무성적평정도 현행 교장, 교감 위주에서 동료 교원들이 참여하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근평 반영 기간도 현재의 2년에서 최장 10년까지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 3.9%인 초빙교장 비율을 매년 5%씩 늘려 전체 승진 인원의 50% 수준까지 확대하고 교장 자격이 없어도 교장을 맡을 수 있는 특례학교도 대폭 늘려나간다는 방안을 마련했다. ◇ 핵심 쟁점 = 전교조와 교총의 입장이 가장 팽팽히 맞서는 부분은 교장 자격증 제도의 유지 여부와 교장 공모제 또는 선출제의 도입 여부, 승진을 위한 근평제도의 개선방향 등이다. 교장 자격증제도와 관련, 교총은 교장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교장 자격 강화방안으로는 자격연수를 개선하고 별도의 양성기관을 설치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총은 또 업무 기피 등 학교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장 선출제와 사실상 선출로 인정되는 교장 공모제 도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또한 현행 교감 직급을 유지하고 승진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수석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교조는 교장 자격증 제도와 근무평정제도를 폐지하고 교직경력 10년 이상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일반학교를 제외한 특성화 학교 등에서 교장직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장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직경력이 있는 교사가 후보가 돼야 하고 일정기간 행정연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교조는 나아가 교감직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 논의 전망 = 교총과 전교조가 워낙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어 양측의 합의에 의해 개선안이 마련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개선안을 토대로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이 진행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교조와 교총이 입장 관철을 위해 '세대결'을 벌이는 상황도 우려된다. 교육혁신위 관계자는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의견이 모아진 부분은 그대로 반영하고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복수안으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 잠시 자리를 비운 중년의 남자인 김선생님에게 "사랑해요." "변함없이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 함께 기뻐합니다." 리본에 글이 새겨진 꽃바구니와 케이크 하나가 교무실로 배달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20여 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선물을 선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고 있었고, 이날 아침 여직원에게 초콜릿을 하나 얻어먹은 기억이 있는지라 일순간 야단이 났다. "아니? 이걸 누가 보냈지?" "오늘이 무슨 날이야?" 옆에서 답한다. "밸런타인데이잖아!" "그러면 생일은 또 뭐지?" 보낸 분의 이름을 보니 자주 듣던 사모님의 이름이었다. 우연히 오늘 남편의 생일이 밸런타인데이와 일치하였던 것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라 한 점 의혹이 없을 텐데, 모두들 시샘이 나는지 좋은 상상력으로 한 마디씩 거든다. 주정뱅이였던 토스토예프스키가 을 쓸 때 하숙집, 전당포 노파 등 주위 배경을 그대로 둔 채, 노파를 죽였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듯이 소설을 써냈다. "아니야! 김선생은 아무리 성실하고 착해도 술을 좋아하잖아. 술집에 술값 바친 게 얼마인데! 이건 틀림없이 술집으로부터 시작된 뭔가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남녀관계는 아무도 몰라. 꽃 사이에 쪽지나 있는지 확인해 봐!" "그럼 보낸 분 이름은 뭔가요?" "그건 말이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위장전술일 수도 있어!" "그럼 김선생은 술 마시면 약간 엉뚱한 구석이 있다구!" "아따, 부처님 눈에 부처밖에 안 보이는 법이고, 문제가 있게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세대별로 각각 다른 반응이다. "나는 그런 것 바랐다간 맞아죽어! 꽃바구니 하나에 양말이 몇 켤레인데."(50대) "난, 마누라 생일 날 꽃바구니 보내려고 했더니 현금으로 달라던데."(40대) "고생은 내가 하는데 받는 건 몰라도 주는 건 난 못 줘!"(30대) "부럽네요."(20대) 여기에 약간의 바람둥이 기질이 있은 한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아마 나에게 왔다면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을 거야." 또 한 분이 한 마디 거든다. "나는 꽃집에 내 돈 주고 나에게 하나 보내라고 해야겠다." 당사자가 나타났다. 모두들 모른 척한다. 꽃바구니를 보더니 깜짝 놀라 얼른 아래로 내려놓더니 주위를 한번 슬쩍 둘러본다. 모두들 딴 짓 하는 척한다. 당사자는 약간 안심이 되었는지 조용히 살짝 전화를 건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여보, 고마워!" 이렇게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갔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에게 오늘 밖에 나가 겨울나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름동안 하늘을 뒤덮던 짙푸른 잎새와 가을햇볕 아래 달콤한 향기를 발하던 풍성한 열매들을 모두 다 떨어버리고 나무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더구나. 어떤 점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나무줄기와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1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너희들을 이 겨울과 함께 떠나보내고, 그리고 새봄이 오면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새로운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고, 더불어 힘겨운 씨름, 아니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너희들을 처음 만난 작년 3월의 봄볕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며칠만 지나면 새 학기로구나. 일년 동안 정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종업식하던 날, “선생님, 시원섭섭하시지요?”라고 너희들이 내게 물었지. 그래 시원섭섭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솔직히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더 크구나.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1년을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된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과 슬프고 안타까웠던 일들이 교차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구나. 우선 지난 일년은 나의 교육경력 가운데 유난히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보람 있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구나. 처음에는 마음을 바로 세우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무척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모름지기 학생으로서의 기본자세가 되어 있어야 함에도, 왜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아이, 구체적인 인생설계는 고사하고 목표의식도 없는 아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글쎄요”하면서 머리만 긁적이는 아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아 어떤 소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 정작 해야 할일은 뒤로 제쳐놓고 하고 싶은 일(친구들과 놀기, 컴퓨터 게임, 휴대전화와 MP3로 소일하기 등)에만 몰두하다가 후회하는 아이, 꿈만 거창하지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에는 게으른 아이, 어떻게 되겠지 하며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아이……. 기초적인 생활지도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었지. 아무 곳에 휴지를 버리는 아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이 열려있는 아이(비속어, 욕설 포함), 교실과 운동장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 자기 하나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아이, 수업시간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선생님들께 예의 없이 행동하는 아이, 청소시간에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먹는 시간에만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 3월 한 달, 너희와 지내면서 솔직히 겁이 덜컥 나더구나.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이런 아이들과 어떻게 1년을 보내나 싶어 한숨이 다 났었다. 너희들만큼이나 나도 너희들에게 적응하느라 혼이 좀 났었지. 어떻게 보면 너희들은 마치 온실 속 화초 같았고, 또 어떻게 보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았다. 부모님의 과보호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서 그런지 겉모습은 옥골선풍의 왕자님이었으나 정신력이나 자립심은 여전히 어린아이 수준이었지. 또한 중학교 때까지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입시교육이라는 허울 아래 틀에 박힌 교실 안에서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려니, 너희들 표현대로 정말 죽을 맛이었겠지. 교사가 사육사로 아닌데, 마치 야생에서 마음껏 뛰놀던 동물들을 우리 안에 가두어놓고 길들이는 씁쓸한 기분이더구나. 너희들이 알다시피, 나는 내가 맡은 학생들에 대한 기대수치가 크고도 높다. 1번에서 35번까지 그 목표 수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때로는 당근을 주고 때로는 채찍을 들며 갖은 노력을 다한다. 너희 부모님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집 아이들보다 너희들에게 훨씬 더 신경을 썼다. 돌아보니 너희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점도 많구나. 수학여행에서의 자유와 낭만, 체육대회에서 보여준 너희들의 협동심과 단합된 힘, 그리고 가을소풍에서의 즐거움, 또한 생일잔치와 자장면 파티 등 교실 속 오아시스도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소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그렇지 심성이 뒤틀리고 악의적인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솔직히 유난히 활발한 아이들이라 혹시 사고를 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결석이나 가출 등 불미스런 일 하나 없이 35명 모두에게 개근상을 주어 진급시키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정말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1년 동안 성실성이 입증된 셈이니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이 성실성을 계속 유지하기 바란다. 소수 몇 명을 빼놓고는 입학성적에 비해 학업성적도 많이 향상되었다. 원래 10등 하는 반을 받아, 모의고사는 1위로, 정기고사는 3위로 올라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그러나 공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늘 주어진 여건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눈물겹게 노력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노력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는데 시간만 낭비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더구나. 지난 한해 정말 본의 아니게 말도 많이 했고, 화도 많이 내고 나와 어울리지 않게 때로 악도 쓰고 매도 들었다. 덕분에 머리카락도 더 빠지고 건강도 좀 나빠졌다. 남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더라. 대충대충, 적당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하라고. 그러나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더라.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너희들에게 신경을 쓴 것은 고교시절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신경 쓴 만큼 달라지기 생물이기에. 1년 동안 내가 옥이야 금이야 하는 귀한 아들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훈련이라면 훈련을 시킨 셈이고, 길잡이 역할을 했다면 길잡이 역할을 한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너희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 안다고 본다. 오로지 실천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는 정말 너희들을 떠나보낼 시간이구나, 너희들과의 추억을 나이테처럼 아로새겨 길이길이 간직하마. 이제는 '나'라는 둥지를 떠나 자유롭게 비상하거라! 누구의 간섭 없이도 스스로 잘 했으면 좋겠다. 모두들 보다 나아지는 모습을 샘~에게 보여 주거라. 들려오는 소식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샘~은 너희들을 믿는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의 제자들아, 1번 병무부터 ~ 35번 관문이까지! 마지막으로 ‘기도문’ 하나를 선물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아버지의 기도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담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주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가 되게 하시고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자녀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을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 나 아버지는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 D.MacArthur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전국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원 10명은 20일 오전 11시께 자신들의 고용문제와 관련,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고 교육감의 집무실에 사전 예고없이 진입, 한때 점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남지역 공립유치원 교사 출신 노조원들인 이들은 그러나 고 교육감이 면담을 수락하자 수분 만에 집무실에서 철수했다. 잠시 동안의 소란 뒤 열린 면담에서 노조 관계자는 "앞서 진행된 이승무 경남 부교육감과의 면담에서 이 부교육감이 고용승계를 골자로 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감이 나서서 고용승계를 이행토 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고 교육감은 이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해당 인력의 계약연장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교육 한가족'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교육혁신위원회를 관장하며 교육정책을 조율하는 청와대교육문화비서관실에 최근 또전교조 인사가 입성해 교육정책의 편향성 우려가 일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육혁신위 상근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김성근 충주여고 교사(화학)가 같은 전교조 출신인 김진경 교육문화비서관 산하 행정관(과장급)으로 20일 경 발령 날 것이라고 한다. 김 교사는 김진경 비서관과 초기 전교조 활동뿐 아니라 1기 교육혁신위원회 시절 교과서현대화방안 마련 업무도 함께 했고 최근 전교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참여정부 들어 교육정책의 편향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2기 교육혁신위원회도 교장임용제를 바꾸면서 당사자인 교장의 의견은 배제하고 일부 학부모단체들의 의견만 듣는 등 균형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인데 청와대마저 전교조 인사로만 채워진다면 그 파장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논란이 분분하다. 김성근 교사는 “강남 8학군부터, 중소도시, 시골학교 등 학교현장의 여러 의견을 편견 없이 정책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진경 비서관이 최근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비서관의 저서 ‘고양이 학교’가 프랑스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앵코립튀블상’ 후보작에 올랐으며, 내달 프랑스 전국을 돌며 진행되는 동화책 순회설명 행사를 이유로 사의를 밝혔다는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김 비서관은 휴직 처리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합교육의 효과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몇 년내로 모든 초중고교에 특수학급을 설치운영하려 하고 있다. 그 만큼 일선 초중고등학교 관리자와 일반교사들도 특수학급 운영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하겠다. 그러나 일선학교 특수교사들의 의견을 조사하면 학교관리자, 일반교사 및 일반학생들의 이해와 협조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일반학교 교장이나 교감들을 대상으로 한 CEO 연수나 회의에서 일반학교의 장애학생 대상 특수학급 운영의 중요성과 교육적 의미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기회를 시도교육청 장학사들이 적극 추진하여야 하겠다. 또한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운영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특수교사가 아닌 일반교사들의 장애학생, 특수교육, 통합교육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협조다. 이를 위하여 일반학교 교사에 대하여 장애학생 교육 프로그램 연수가 강화되어야 한다. 학교관리자 집단은 일반학교 일반교사들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제공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도교육청에서도 일반학교 교사들의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통합교육의 방향에 대하여 집중적인 연수기회를 제공하여야 하겠다. 연수프로그램의 예시와 이를 시디롬으로 개발하여 각급 학교에 보급하여 교원연수 시간에 활용하도록 한다. 일반 교원들의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교육 지원의 중요성에 대한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여야 하겠다. 아울러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 교육을 시키고 일반 학생들을 장애시설에 봉사활동을 하게 함으로써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중요함을 알게 하여야 하겠다. 장애학생의 특성과 적합한 특수교육방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면 앞으로 일선학교의 관리자와 교사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될것인 만큼 새로운 공부분야로 설정하여 보면 어떻할까요?
‘학교 폭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고 '교육신문'과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인천광역시 교육청에서는 2006학년도의 핵심 사업으로 학교 폭력 예방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교장단 회의, 교감과 학생부장 회의를 연이어 개최하여 일선 학교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지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캠페인이 오히려 교사들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학생들의 지도에 필요한 회초리조차도 외면해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에 학교 폭력에 대한 지도가 교육부나 일선 교육청이나 한결같이 지시 일변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문서화된 지시는 일선 학교에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실천 가능한 것이다. 교사에게는 회초리를 들지 마라, 언어를 공손하게 사용하라, 수업을 학생의 요구에 맞게 하라 등등.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학생들의 인성을 바로잡아 바른 행동, 바른 언어를 쓸 수 있는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교사들에게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지.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자문해 볼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실학 정신의 바탕으로 한 폭력 예방을 위한 바른 교육은 도덕 교과와 윤리 교과를 시험으로 평가하지 않고 토론학습, 협동학습, 체험학습, 케이스문제 중심 수업 등등으로 진행하여 이 교과목이나마 학생들에게 진정한 인성을 바로 인식시키는 방안은 어떨 지. 너무 타이트한 수업 시간, 너무 분주한 학교 생활이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의 지도에 짜증을 불러 일으키게 해서는 자연처럼 조화를 이루어 내는 지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교과에 대한 과목 축소 또는 확대를 생각해 보되 현실에서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교실 현장은 무엇 때문일까? 과연 교사들에 대한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학업에 지친 피로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즉 학업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 부족과 공부로 승패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형이하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일까?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진정으로 지도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없어서 학생들을 폭력 현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가? 학생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때문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폭력에 대한 예방책으로는 학생들에게 바른 인성을 교육시킬 과목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교과 과목을 공부하는 경우 학생의 평가를 시험을 치루어 점수대로 평가하니 도덕 점수가 40점 이하로 나타날 수 있고, 윤리 점수가 40점 이하로 나타나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진정 이 학생들의 도덕적인 인성의 객관도가 타당도 면에서 신뢰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도덕·윤리 교과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 시점이라고 본다. 2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1963년도에 '반공, 도덕' 과목이 신설되었고,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에서는 '도덕, 윤리와 사상'으로 교과목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도덕에 대해서, 윤리에 대해서 느끼는 감도는 폭력을 앞지르고 있다. 아무리 윤리 의식을 강조해도 폭력이라는 단어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 윤리와 도덕 교과목의 교수 학습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늘어나는 학생들의 악행이 학교를 불신으로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에 학교는 학교대로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 도덕·윤리 과목에 대한 수업 방법을 개선하여 학생들의 EQ를 높이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학교 폭력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서서히 정화되어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