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아동문학가 정채봉 님의 글을 읽다가 감동적인 우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목은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로 혹여 좌절을 겪고 있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소개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발췌해 올려봅니다. 상처를 입은 독수리들이 하나 둘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부터 시작해서, 무리에서 버림당한 독수리, 힘센 독수리에게 할큄을 당한 독수리 등등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만큼 불행하고 상처가 많은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서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영웅 독수리가 날아와서 이들 앞에 앉았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다. "나는 어떨 것 같으냐?" 상처가 하나도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에 많은 상처자국이 나타났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나보다 힘센 독수리가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상처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영웅 독수리가 조용히 말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새들뿐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그렇습니다.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목이 꺾여 죽은 새란 말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모진 풍상을 겪으며 수백 년을 사는 느티나무를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느티나무는 웬만한 시련에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생채기를 안고 수없이 부러진 가지를 보듬으며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느티나무를 생각한다면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 끝이 어디인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게 일탈이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 아주 작은 몸짓으로 일탈을 실행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있는 여교사들이 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9명이 2005년 9월 근무하고 있는 남일초등학교의 교목인 '백송'의 이름을 따서 백송수채화회를 결성하고 이번에 제1회 백송수채화전을 여는 충북 청원군 남일 초등학교 여교사들이 그들이다. “안녕하세요. 더위와 벗하며 부지런히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때론 예상치 못했던 오묘한 색깔에 취해 보기도 하고, 그동안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끼에 환호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달려왔습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무한한 예술적 욕구를 끊임없이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첫 기획전입니다. 우리 함께 수채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보고 내 안의 예술적, 학문적 기질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부디 오셔서 함께 보시고 참여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길 소망하며 그림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이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모시는 글’에서 밝힌 대로 백송회 회원들은 수채화회가 창립된 후 1년 동안 예술에 대한 내적 욕구를 끼로 나타냈고, 색깔의 오묘함에 취해 환호했고, 자아를 화폭에 담으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갔다. 22일 오후 5시, 청주시립정보도서관 1층 문화사랑방(청주시 용암1동 중흥공원 앞)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백송수채화전 오픈행사가 있었다. 백송회 회원인 류재월, 강미연, 민인숙, 심미경, 최남희, 고선희, 임분희, 윤여훈, 오나미 교사와 지인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 생활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꽃과 풍경 등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회원들이 빠듯한 학교 일정 에 쫓기면서 방과 후나 퇴근 후까지 학교 교실에서 주 2회씩 이경선 작가로부터 꾸준히 수채그림 지도와 작품 활동을 해온 결과물이다. “환희와 갈채를...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촌음이 아까워 동분서주하면서도 그들은 하늘에 아빠 얼굴, 勳이 모습을 그렸습니다. 지루한 장마에도 유리창에 수채화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식탁을 마련하면서도 정성스런 눈길로 행복을 그렸습니다. 이제,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나의 소중한 동료들에게 믿음과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그들의 대견스러운 모습 앞에 환희와 갈채를 보냅니다.” 축사의 내용에 들어있듯 직원들을 가족같이 아끼고, 직원들의 끼를 밀어주는 남제희 교장과 가끔 들려 회원들이 작품 활동 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게 보람이라는 김한수 교감이 든든한 후원자였다. 회원들의 말대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며 개인의 역량을 담아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학교 측의 배려였다. 한편 류재월 회장은 “수채화는 미술 분야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로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마음도 더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진 것 같다”면서 “직업인들이 무엇을 새롭게 배운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를 위한 작업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신감도 생기고 즐겁게 생활하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9명의 여교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꾸준히 자기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백송수채화전 전시회장을 찾아 그림과 더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22일 교총 윤종건 회장과의 면담에서 “무자격자가 교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은 (교총과)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좋은 말씀 많이 달라”며 교총 방문단을 맞은 강 대표에게 윤종건 회장은 하반기 국회가 풀어야 할 10가지 교육현안을 제시하고 “현장교원의 바람대로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윤 회장은 우선 “최근 교육혁신위는 15년 교육경력만 있으면 교장 자격이 없어도 학운위가 투표로 선출하는 공모제안을 마련했다”며 “이는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학교를 정치판화 하는 것으로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강 대표는 “이주호 의원의 공모제 법안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의한 것으로 안다. 설마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을 교장에 앉히는 그런 나이브한 법안이겠느냐”며 “그런 건 안된다는데 생각이 같다”고 분명히 했다. 수석교사제 도입에 강 대표는 긍정적인 인식을 내비쳤다. 윤종건 회장은 “교장이 아니더라도 교사로서 보람과 긍지를 갖도록 수석교사를 도입하자는 게 교총의 26년 숙원사업”이라며 “한나라당이 이것 하나만큼은 발 벗고 추진해 달라”고촉구했다. 교총은 이미 마련한 수석교사제 도입 3법안도 제시했다. 이에 강 대표는 “예산의 어려움은 있지만 수석교사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윤 회장은 한나라당이 하반기 국회 원구성에서 교육위원 정수를 한 명 감축한 것에 대해 “교육 홀대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며 보충을 요구했다. 이에 권철현 교육위원장은 “여당 원내대표가 펄쩍 뛰며 반대해 충원이 쉽지 않다”며 “수적 열세로 화력이 떨어져 후반기 교육위 운영에 애로가 많다”고 토로했다. 교육재정 확충을 위해 교부금법 개정도 주문했다. 윤 회장은 “내국세 교부율을 상향 조정하고 봉급교부금을 부활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개정하고 교육세 세목 신설, 세율 인상도 필요하다”며 “국가적 재정확충 노력을 다하고 시도 부담도 점차 늘려야 따라올 것”이라고 제안했다. 권철현 위원장은 “내국세 교부율을 20.7%로 상향조정하는 교부금법 개정안이 교육위에 제출된 상태로 이렇게 하면 1조 6천억원이 추가로 확보된다”고 답변했다. 2007년 교원처우 개선과 관련해서는 교감 직책급 업무추진비 신설 등을 제시하며 한나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윤 회장은 “교감이 되면 교사 시절보다 오히려 봉급이 줄어드는 일이 발생한다”며 “학교 경영, 관리, 장학 등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는 교감에게 월 20만원의 업무추진비가 신설 지급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학급담당수당과 보직교사수당도 월 20만원으로 인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밖에 교총은 초중등 교원도 교육위원 당선 시 휴직이 가능하도록 겸직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교원단체 전임자 휴직 허용 △교총-사학법인 교섭권 부여 △한나라당과의 정책협의회 정례화 △교육감․교육위원 직선 및 시도교육위의 독립형 의결기구화 △학교급식 개선을 위해 당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강 대표는 “교육위원 겸직 허용과 전임자 휴직 허용은 관련법을 검토해 협조하고 정책협의회 정례화도 하자”며 “교총도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많이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는 교총 측에서 하윤수 부회장, 박남화 조직본부장, 김경윤 교육정책연구소장 등이 참석했고, 한나라당에서는 권철현 교육위원장, 이군현 원내부대표, 임해규 교육위 간사 등이 배석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비를 매달 지원 해주기로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광주 백운초등학교 교사들. 교장과 교감을 포함해 전체 32명 교사들은 다음달 2학기부터 매달 1만-2만원을 자발적으로 학교 행정실에 내놓기로 했다. 전체 790여명 학생 중 급식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정 환경이 열악한 20여명 학생들의 급식비를 대납해 주기 위해서다. 대부분이 편모, 편부가정 이거나 조손가정(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와 사는 경우)인 이들 학생은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형식적인' 대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수개월치 급식비(한달 2만3천원)를 내지 못해 교사들과 동료 학생들의 눈치를 보면서 급식을 먹거나 급식비 체납이 부끄러워 아예 굶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을 보다 못한 백운초등교 교사들이 "우리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성장하도록 하겠다"며 지난달 교무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십시일반 급식비를 내놓기로 한 것. 이처럼 백운초등학교 교사들이 불우 학생들을 돕기로 의기투합 하게 된데는 한 특수교사의 '아름다운 마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수학급 담임 김나리 교사가 몇달전 행정실에 들러 급식 행정실 직원으로부터 급식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학생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듣고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내 돕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이같은 소문을 들은 교사들이 모두 동참하게 됐다. 이 학교 박봉현 교감은 23일 "그동안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선생님들의 조그마한 성의가 값지게 느껴지고, 2학기부터는 더욱 활기찬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나리 교사는 "어려운 학생을 돕는다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이야기도 아니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놓을 방’에 ‘배울 학’자를 쓰는 ‘방학(放學)’은 말 그대로 ‘잠시 배움을 놓는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도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나 추위가 심한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이라고 풀이돼 있다. 하지만 잠시 배움을 놓는다고 해서 무조건 노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허약해진 체력을 보완하고 모처럼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 기회로 삼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처럼 학교 밖 교육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방학이 인문계 고등학교만큼은 예외인 듯싶어 아쉬움이 크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방학을 그리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무늬만 방학’이지 학기 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방학이란 말에서 묻어나오는 느낌 때문에 심리적 박탈감이 더 큰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학 때만 되면 평상시 말을 잘 듣던 녀석들도 괜히 말썽을 부리곤 한다. 7월 중순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고3 학생들은 곧바로 다음날부터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등교했다. 어차피 고3은 입시에 저당잡힌 몸인지라 개인적인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하는 치열한 입시 전쟁에서 대오 이탈은 곧 패배로 연결된다는 통념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3은 그렇다쳐도 아직 여유가 있는 고1, 2도 사정이 나은 편은 아니다. 보충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병아리 눈곱만큼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긴 하나 그마저도 충분치는 않다. 1, 2학년 아이들이 며칠 숨을 고르는 사이 1학기 수시모집에 응시한 고3 아이들을 맡은 선생님들은 휴일도 없이 입시지도에 매달려야 하니 휴가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고3 학생들 논술지도를 겨우 마치자마자 1, 2학년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방학 중에 하는 보충수업이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오전 8시까지 등교하여 6시간 동안 수업을 하고 다시 3시간 동안 자율학습을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20평 남짓한 교실에서 서른 다섯 명의 학생들은 더위와 탁한 공기, 그리고 밀려드는 잠을 참아내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선생님들의 처지도 나을 바 없다. 연수나 대학원 수강 등 갖가지 사정으로 빠진 동료 선생님들의 공백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남은 선생님들의 수업 시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6시간 수업에 자율학습까지 떠안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담임을 맡고 있으면 더위로 지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은 물론이고 자율학습 감독까지 맡아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땅에 뿌리박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라면 모순덩어리 방학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니 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밤 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입시 경쟁은 거대한 블랙홀과도 같이 교육의 근간인 학교를 송두리째 흔들며 인성교육의 기본적 장치인 방학마저 집어삼켰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골인 지점을 앞둔 마라토너처럼 헐떡거리며 달려온 여름방학, 겨우 보충수업을 끝내자마자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한 풀 꺾였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약속했던 가족여행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오늘이 개학이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에는 '법령 및 학칙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며 시행령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법규를 따르자니 그 자체의 처벌로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말로써 학생들을 지도하고자 하니 상담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학생의 반성 능력과 자기비판 능력을 기초로 하는 내부의 제동장치를 일으키는 윤리의식을 찾아내야 한다. 유럽 국가의 체벌 규정 2006년 6월 29일 인터넷 네이버에 올린 프랑크푸르트 특파원의 글에 의하면 독일에서는 3년 전부터 아동체벌금지법을 만들어 매질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이미 다른 나라들은 제정한 상태라고 한다. 스웨덴은 1798년에 유럽에서 최초로 이 법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핀란드는 1982년에, 노르웨이는 1987년에, 라트비아는 1988년에, 오스트리아는 1989년에, 덴마크는 1997년에, 크로아티아는 1999년에 아동체벌금지법을 제정하였다고 전한다. 영국 가족청소년관계연구소의 노먼 웰스 소장은 “어린이가 체벌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체벌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고 해서 아동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록 체벌은 줄어들 수는 있으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사랑의 매질을 배제하고는 다스리기는 어렵다. 일부 독일 부모는 아이의 용돈을 중단하거나 TV 시청을 못하게 하는 등의 벌로 매질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논란이 있으면서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 에스토니아 등등의 국가에서는 부모의 자녀 체벌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전통 서당의 맥을 이어오면서 회초리는 필요악이라는 의식이 부모나 교사들의 가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고, 권위주의적이요, 가부장적인 사회의 완전한 탈피는 부모나 교사들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회초리 문화의 근절은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사회에서는 언론의 공익광고를 통해서, 학교 계통은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훈령을 통해서, 지시를 통해서 체벌금지를 강조하는 가운데서 시간을 두고 고쳐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식은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벌은 시대의 조류에 맞게 체벌도 잘못하면 독이 되고 잘하면 약이 된다. 이처럼 용도에 따라 그 효능이 달라지듯 체벌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마땅하나 아직도 이성적인 판단이 확고하게 서 있지 않는 아이에게는 때로는 회초리 교육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교단을 지키는 교사는 학생을 잘 이끌어 가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러나 때로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그 도를 넘어서는 실수는 실수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색이 2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항상 영어 시험만 치면 문자와 의미가 따로 노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만다. 개인적인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긴 세월 동안 영어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영어의 거센 물결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밀려들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영어가 없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우리 삶 깊숙이 영어라는 존재가 침투하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다른 나라 언어 하나 정도 잘 하면 되지라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영어에 대한 노력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 삶과는 철저하게 겉도는 언어 생활에 있다. 며칠 전 대학원 영어 시험이 있었다.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현직에 근무하는 30, 40대 선생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명색이 박사과정의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거의가 영어라면 질색들을 했다. 물론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런 대로 공부라면 일가견을 가지신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험이 있기 며칠 전 그 중에서 나이 드신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하는 말이 "서 선생, 나 우짜노? 박사과정 포기해 버릴까?"하시는 거였다. 나는 깜짝 놀라 그 동안 그렇게 공부에 애를 쓰셨는데 지금 와서 포기하신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참, 낼모레 영어 시험 때문 아이가!"하시는 거였다. 그리고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나도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셈치고 영어 공부 열심히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완전히 수박 겉만 핥은 꼴이 돼 버렸네! 한 몇 년 공부 안 했다고 완전히 A, B, C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네"한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선생님 그래도 포시하시지 말고 시험이나 한 번 응시하자는 마음에도 없는 몇 마디 말을 던지고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선생님을 시험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영어는 하나도 없고 국어로만 된 예상 답안지 묶음을 열심히 읽고 계시는 거였다. 놀라운 것은 시험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보다는 국어로 된 예상 답안지들을 들고 줄을 쳐 가며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같은 연배의 젊은 선생님들도 있었다. 나중에 안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그 중에 어떤 선생님은 어느 번역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정도의 돈을 주고 번역을 시켜 국어로 된 예상 답안지를 통째로 외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어떤 선생님은 영어 때문에 아예 학위 과정을 포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필자 자신도 중고등학교 때뿐만 아니라 대학교 시절에도 상당한 정도로 영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영어라는 것에 매달렸지만, 그 대가는 항상 한 줌의 문장과 말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약함 그 자체였다. 이런 말들이 어쩌면 우리 영어 선생님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우리는 영어라는 것에 너무 오랫동안 상처 받아왔고, 지금도 상처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분명 문제는 우리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원 시험을 치르고 한 선생님께서 "내가 이렇게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데, 아예 우리 아이는 외국으로 몇 년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한국에서 십년 넘게 공부해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판국에 아이 고생만 시킬 것 뻔한데, 차라리 지금 어릴 때 외국에 보내 완전히 영어를 정복시켜 버리는 것이 그 아이한테도 좋을 것 같아"하시는 거였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분명한 것 같았다. 말과 글은 단기간에 정복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야만 제대로 언어 하나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 교육과정이 학생들로 하여금 영어를 완전하게 모국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정도는 성취할 수 있어야 함을 과정 속에서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 제도 하에서는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가?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들 한다. 그러나 영어에 있어서는 이 말이 절대로 적용될 수도, 아니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적 개념이 무엇보다 바로 적용되어야 할 분야가 바로 외국어 학습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그런 영어 학습, 과연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일까?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면서 학교의 역할도 매우 달라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의 지도가 외부에서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것은 문제 해결을 하기가 쉽지만 자살같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서는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갑자기 번진 전염병에는 의사들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고 문제가 일어나면 모든 것을 학교가 떠맡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학교는 불신을 받기 쉬운 여견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갑자기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그 해당 학교는 상급 관청의 눈치를 받게 되며, 모든 것이 위축되고 소송에 휘말리는 등 학교 관리자들은 말문이 막혀 버린다. 2004년 3월 나가사키 시내 시립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교사로부터 뛰어 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학생의 부모는 시의 관리 책임을 물어 9,000 만엔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학부모는 소송 이유로「자살 원인은 학생 지도에 기인한 것이다」이었다. 이후 동시 교육위원회에 호소해 왔지만, 아직까지 납득이 가는 회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 내에서는 그 후, 중․고생 자살이 자주 발생하여「교육이 변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 일은 단지 나가사키 지역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며,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도쿄도 스기나미구립 와다나카중학교 후지와라 교장(50살)은 매년 가을이 되면 3학년생을 대상으로「세상 이야기」라는 주제로 자살을 선택한다.「자살 억제 롤 플레잉」에서는 빌딩의 옥상으로부터 뛰어 내리려 하고 있는 학생과 설득을 시도하는 동급생이 2인 1조로 대화를 진행하는 것을 기록하여 모든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게 한다. 설득하는 학생은「네가 죽으면 가족이 슬퍼하잖아!」, 「살아 있으면 좋은 일도 있잖아!」, 「노력하자」, 「어쨌든 죽으면 안 돼」……. 설득당하는 학생측의 말에는 「그렇지만 나는 죽고 싶다」, 「너는 내 마음을 몰라 줘」, 「자! 죽으면 안 돼」라는 말이 교환된다.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 수업 마지막에 후지와라 교장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어요」라고 학생들을 긴장시킨다.「학생에게 합리적인 이치나 격려는 반론으로 끝나버린다. "나는 네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아"라고 포기하지 않고 전하자.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살 외에 우울증에 대해서도 가르치면서「이러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병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주위 친구나 의사에게 상담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2시간째는「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살은 용서될 수 있을까?」, 「말기 암에 괴로워하는 모친의 연명용 튜브를 제거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잘 못인가?」라고 하는 테마로 토론을 시킨다. 수업에 참가하는 어른이 체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말하는 장면도 있어, 학생은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1999년도에 「청소년을 위한 자살 예방 메뉴얼」을 정리한 경험이 있는 일본 방위의대 타카하시 교수는「긁어 부스럼을 내는 선생님이 많다. 그리고, 교수법도 잘 모르고 있다」 면서, 자살에 관하여 염려되는 아이가 있을 때의 대응 방법으로 첫째, 말을 건넨다. 둘째,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 셋째, 분명히 말로 하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지 묻는다. 넷째,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의 00고교 재단이사장 동생인 교사가 지각생 2명에게 100~200 대의 매를 때려 이중 1명이 입원한 사실이 알려져 교육당국이 당혹해 하고 있다. 16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이 학교 재단이사장 동생인 3학년 담임 A(35) 교사가 옆반 학생인 B(18)군이 5분 정도 지각하고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200대 때렸으며, 이어 이날 함께 지각한 같은 반 C(18)군도 100 대를 때렸다고 한다. 한두 대도 아니고 100대 아니면 200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 이다. 지난 6월에는 군산의 한 여교사가 초등학교 1년생을 과도하게 체벌하는 모습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유포되어 부끄러운 장면을 전 국민이 보게 되어 교육자로서 창피하여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었다. 문제는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부 교사에 의한 과도한 체벌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데 있다. 학교가 마치 폭력장으로 교사는 폭력자로 모든 국민의 눈에 비친다면 그 후의 교육활동은 보나마나 위축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심각함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발생한 대구지역 과잉 체벌 문제와 관련,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포함한 학생인권 보호 방안을 하반기 최우선과제로 정해 대대적인 공론화 과정을 밟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체벌 하면 먼저 '회초리'를 떠올리듯 물리적 수단으로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교육 효과를 얻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물리적 수단'은 통상 회초리 같은 도구나 체벌을 가하는 교사의 신체의 일부를 의미하지만 반드시 직접적 접촉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걸음이나 손들고 있기 등 당사자간 직접적 접촉 없이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혹은 언어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도 체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현행 교육기본법 12조에는 '학생은 학교의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교원의 교육 연구활동을 방해하거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케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초중등교육법 18조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명시, 체벌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학생 지도 방법과 관련해서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1조에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체벌 현황은 교육부는 교육상 불가피한 체벌의 경우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합의절차를 거쳐 사회통념상 합당한 범위 내에서 학교규정에 명시해 시행토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회통념상 용인되지 않는 체벌'로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은 채 교사의 성격 또는 감정에서 비롯된 지도행위, 공개적으로 학생에게 체벌이나 모욕을 가하는 지도행위, 학생의 신체나 정신 건강에 위험한 물건 또는 지도교사의 신체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성이 있는 부위를 때리는 행위, 학생의 성별, 연령, 개인적 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으로 꼽고 있다. 이를 반영해 최근에는 체벌을 금지하는 학교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옛 우리 선조들의 교육수단으로 필수적인 것이 초달(楚撻)이었다. 초달은 회초리로 맞는 것이다. 옛 부모들은 서당에 다니는 자기 아이가 오랫동안 초달을 맞지 않으면 서당을 찾아가 오히려 훈장에게 섭섭하다는 뜻을 전하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초달을 맞지 않은 것은 글공부를 잘하고 선행하는 학동이어서 혼낼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녀에게 초달을 하여 더 바른 품성을 형성하도록 해 달라는 게 부모들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부탁을 하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웬만하면 교사의 학생 체벌에 관한한 문제 삼지 않았다. 체벌은 법적으로 금하고 있는 나라가 많지만 관습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체벌을 가하는 인체의 부위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영국, 독일 게르만 민족은 엉덩이를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계통 민족은 귀나 코를 끌어올리기, 아프리카는 등짝, 인도의 힌두 문화권은 이마를 튕기며, 일본은 손바닥, 한국은 종아리에 체벌을 가한다고 한다. 체벌이 교육상 비중이 얼마나 컸는가는 가르친다는 것을 敎(가르칠 교)鞭(채찍 편)을 든다하고 가르쳐 인도한다는 것을 鞭撻 한다는데 편은 채찍편이요 달도 매질할 달이다. 앞으로 체벌금지 법제화 추진을 놓고 찬반 논쟁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체벌금지 법제화 반대론자들은 ‘이는 현행 학교 생활규정으로도 학생에 대한 과도한 체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며, ‘특히 체벌금지가 법제화될 경우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데다 교단의 자율성도 침범할 우려가 크다’고 강조할 것이다. 반면 체벌법제화 찬성 논자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올해 하반기 중 체벌금지 규정을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고 할 것이며 ‘교육부는 물론 정치권도 학생의 체벌금지 법안이 국회에서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체벌금지를 시급히 법제화하자는 입장일 것이다. 체벌금지 법제화 찬성논자들은 체벌이 학생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교육 공동체는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학교의 교실 현장은 어떠한가. 요즈음 학생들의 특성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님을 어려워하지도 않거니와 의식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나 수업시간에 통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학교 급별로 차이는 있을 것이나 대체적으로 한 반에 10~15% 정도의 학생들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동안은 칭찬과 상벌로 지도하여 왔으나 체벌이 법제화가 된다면 자칫 학생지도에 무관심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가 되는 것이다. 체벌금지를 법으로 제정을 하면 교사들은 의기소침하여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구태여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학생지도에 열의를 보인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지도에 열의를 가졌던 교사들도 학습 부진학생이나 비행학생을 보고서도 일상적인 활동 외에는 무관심하거나 등한시 할 수밖에 없다. 학생지도에서 무관심만큼 무서운 체벌은 없다. 즉, 잘 하든지 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자란 학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방치되어 엄청난 손실로 학생 자신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 국가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주었으며, 꾸지람 한 번 듣지 않은 자식은 도둑질로 평생을 살다가 형장에서 죽게 되었을 때, 마지막 소원으로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여 상봉한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생교육은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상벌을 통해 교육적인 지도를 받을 때 바르게 자라게 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 크다.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하여 임기웅변적인 방편으로 서둘러 체벌금지 법제화를 서두를 것이 아니라 먼 훗날을 보고 제정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는가. 현재 초중등교육법에는 '법령 및 학칙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며 시행령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좀 더 개선을 하여 보완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말 아끼는 아이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려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간혹 어긋난 행동이 있을 시 칭찬을 겸한 꾸중으로 그 아이의 마음을 잡아갔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방학하기 두 달 전,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단짝처럼 어울리던 두 아이가 가출을 했고, 이에 녀석도 동요되고 있었다. 이에 점차 그 아이의 행동은 지뢰밭 길을 걷는 모습처럼 위태해 보였다. 말없이 수업 중간에 가방을 메고 학교 밖으로 나간다든가, 종례를 받지 않고 가버리는 행동이 자주 나타났다. 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아이들의 전언을 들은 후엔 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를 믿었기에 질책보다는 열심히 해보자는 말로 다독였었다. 그렇게 잡아가던 아이는 기말 고사 첫날 첫 시간만 시험을 치룬 채 교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다. 여러 방법으로 그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지만 소문만 있을 뿐 알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하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다른 전화를 통해 어쩌다 받으면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에 ‘선생님 잘 계시죠? 저 00에요. 몸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잘 지낸다며 만나자는 말에 ‘선생님 뵈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학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언젠가 꼭 찾아뵐게요.’라는 말로 거절을 하였다. 아이와 몇 마디 문자를 주고받으며 고민에 들어갔다. 그 아이를 그냥 내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무작정 잡아서 끌고 올 문제도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은 강하게 나가면 반발력이 심해 더욱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왔다 하더라도 얼마 참지 못하고 또 나가기 마련이다. 일단 마음을 움직이는 게 좋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러다 엊그제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받을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벨 소리가 한참을 울리고 나서 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00 아니니?”“맞는데요. 누구세요.” 녀석은 전화를 한 사람이 선생님인지 모르고 무심결에 받은 것 같았다. 오락실인지 주변에선 쿵쾅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선생님이란 걸 확인하고 잠시 멈칫한 것 같았지만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며 일단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임마, 선생님은 널 보고 싶은데 넌 안 보고 싶니?”“…… 보고 싶어요. 근데 자신이 없어요.” “뭐가 자신이 없어.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은 거지.” “죄송해요.” “니가 죄송할 게 뭐 있어. 근데 요즘 뭐하고 지내지. 집엔 들어갔니?” “네. 일하고 있어요.” “그래. 공부는 어떻게 할 거야. 마음 좀 돌려봤니?” “검정고시 준비하려구요. 아직은 이게 좋아요.” 그러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얼굴 보자는 말엔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 이곳에 있으니 데리러 와 주세요.’ 하는 신호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모든 마음의 결정을 했으니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자기가 생각했던 길을 가겠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화 속에서 아이는 웃기도 했다. 갈등의 몸짓도 얼핏 보여주기도 했다.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던 아이가 이젠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 밖에 없다. 만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음을 돌려서 새 학기엔 서로 웃으며 이야길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출 전이나 가출 후의 지금이나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3월에 처음 만났을 때의 미소 띤 얼굴로 만났듯 다시 만나 남은 시간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J 교육장의 친필 편지다. 그의 글씨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 전, 하계 교감연수회에서 있었던 그의 말이 떠 오른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를 악필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니 악필은 아니고 개성이 있다. 자세히 보니 정감이 가는 글씨체다. 그는 특강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때 하도 글씨를 못 써 담임 선생님께서 겨울 방학 숙제로 글씨 쓰기를 내어 주셨다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악필을 고쳐 정성껏 과제를 해 갔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그는 악필 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네가 쓴 것 아니지? 네가 이렇게 잘 쓸 수 없어! 누가 대신 써 주었니? 솔직하게 말해 봐!” 만약, 담임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 정말 잘 썼구나! 그래 너도 잘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네가 글씨를 잘 쓰는 줄 선생님은 미처 몰랐단다. 앞으로 계속 잘 할 거지?”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있어 악필과 명필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자가 그에게 좌절과 포기, “맞아,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실망감을 준 데 반하여 후자는 희망과 자신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학생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학생에게 잠재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는 그 한마디, 그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절대 필요한 것이다. 학생뿐이랴. 몇 년 전 정년퇴임한 L 교육장. 그는 도교육청 장학사 시절, 교육감 훈치사를 담당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른도 칭찬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 번은 교육감 치사를 써서 결재를 받는데 초안 문구를 교육감이 고치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고친 글이 더 좋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감님, 그렇게 고치니 글이 더 자연스럽고 좋아졌네요.”라고 했더니, 교육감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 정말 좋아졌어? L 장학사 글 보는 안목이 높은데….”라고 칭찬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론 교육감과 염화미소가 통하여 훈치사 결재가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칭찬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찬 말이다. 격려는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에게 용기를 복돋워주고 다독거려 주는 말이다. 또한 칭찬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여 주니 칭찬의 ‘말 한마디’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필자도 교사 시절, 전문직 시험에 몇 차례 떨어져 의기소침해 하고 있을 때, 도교육청 모 장학관이 “이 부장, 힘 내! 이 부장은 충분히 할 수 있어!”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재기에 성공하여 장학사를 거쳐 오늘 여기까지 와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격려가 칭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칭찬은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지만 격려는 상대방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 주고 행동의 동기를 불러 일으켜주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칭찬과 격려가 활기차게 살아 움직였으면 한다. 그 칭찬과 격려의 ‘말 한마디’에 우리가 사는 곳은 즐겁고 행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교총 윤종건 회장은 22일 한나라당 강재섭대표를 방문해 '올바른 교육'을 위한 정책과제를 논의했다. 윤 회장은 특히 교장공모제 도입 반대와 수석교사제 도입,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 등을 위해 강대표가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 했다.
8월이 다 가는데도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치닫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팔월 초보다는 조금 덜한 것 같지만 아직도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군요. 어제는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 농가 담모퉁이에 핀 채송화를 보았답니다. 문득 채송화를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담모퉁이마다 붉게 물들이던 그 가녀린 채송화들을 말이죠. 그래, 선 채로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아, 참 예쁘더군요. 리포터의 눈동자에 새겨 넣듯 카메라 렌즈를 대고 접사촬영을 했습니다. 저는 채송화를 보면 뭔가 애절한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꽃이 연약해서 그런가? 아무튼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채송화는 시들지 않았더군. 그 모습이 아주 강건해 보였습니다. 어제는 그 가녀린 채송화 때문에 행복한 추억에 잠겨 본 하루였습니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농가 울타리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감과 밤, 봉숭아, 달래꽃 등을 보았습니다. 달래꽃은 리포터도 어제 처음 본 꽃이었습니다. 우리 교육신문 독자 님들도 한번 보시고 가을을 느껴보시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던 서울시 교육위 김귀식 의장이 22일 전교조에 대해 애정어린 쓴소리를 냈다. 김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재의 전교조는 친화력과 포용력, 정치력이 없고 너무 투쟁일변도로만 나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이번 교육위원선거에서 참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교육위 의장으로 있을 때 전교조의) 교육청 앞 집회를 줄여보려 했는 데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쉽다"며 "투쟁일변도의 집회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을 서로 원수보듯이 하면 안 되고 반려자가 돼야 한다"며 "서로를 원수보듯이 하는 진보와 보수 세력은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농사꾼이 매일 논에 나가서 벼를 돌보듯 교사들도 항상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를 살펴야 한다"며 "이는 아이들이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하면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교육정책이 어떻게 변화하든 지 교사는 스스로 알아서 교육을 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특히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은 절대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교생이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현재의 교육 위기를 이대로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주체들이 (교육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앞으로 교육단체들 간의 갈등과 대립에는 그 어느 쪽에도 절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교조가 합법화되기 이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던 김 의장은 2002년 서울시 교육위원에 당선돼 현재 서울시 교육위 의장을 맡고 있으며 1958년부터 1999년까지 경복고ㆍ혜화여고ㆍ경기여고ㆍ성동고ㆍ상계고ㆍ중화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럭비공과 청소년의 공통점을 분석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째,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둘째, 생각보다 잡기가 힘들다. 셋째, 그래도 잘 다루는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히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심각함이 숨어있다. 오죽하면 청소년을 질풍노도의 시기, 혹은 주변인, 경계인 이라고 했겠는가. 이것은 청소년기가 그만큼 심리가 불안정하여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상존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 대한 우리 기성세대들의 자상한 보살핌과 따뜻한 사회적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편히 쉬면서 학업과 입시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문화적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청소년은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이며 예비 주역들이다. 어떤 나라의 장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청소년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것일 것이다. 청소년 정책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를 통치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접수한 즉시 모든 학교에서 운동장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그 나라 청소년들의 신체를 약화시키고 동시에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영원히 식민지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음흉한 계산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시급한 것이 청소년들을 위한 건전한 전용문화시설의 확충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여가 시간 활용 실태에 관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1위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게임하기, 2위가 노래방 가시 3위가 영화, 연극, 공연 관람하기, 4위가 쇼핑하기를 통해 여가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며, 기타 여행이나 수영,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의 건전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극히 일부였다고 한다. 위의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문화의식과 사회적 인프라가 얼마나 빈약한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청소년들이 언제든 가서 편히 쉬고 놀만한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외국에서는 청소년 체육시설은 물론이고 연극, 댄스, 여행, 레크리에이션, 과학탐험 등 다양한 취미와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무수히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기껏해야 텔레비전 아니면 PC방 외에는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고 OECD에도 가입할 정도의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는 예전의 청소년들만도 못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못 먹고 못살았지만 그래도 자녀들만큼은 건강하게 키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 엄동설한에도 아이들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밖으로 내몰았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추위를 무릅쓰고 제기차기, 자치기, 얼음지치기, 썰매타기 등을 하며 여가를 보냈다. 비록 변변치 않은 놀이문화였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런 놀이문화를 통해 건강과 사회성을 동시에 길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청소년들은 어떤가. 아침 일찍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방과후에는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며, 쉬는 날이라고 해봐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기성세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혹독한 가난과 끝없는 전란 때문에 먹고사는 일에만 전력투구하느라 국가적 차원의 청소년 대책과 보살핌은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먹고 살만하고 나라도 안정이 되었으니 미래의 주역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해결해 주어야 한다. 청소년은 나라의 희망이요 미래의 꿈이기 때문이다.
리포터가 '김영옥'이란 이름 석 자를 접한 것은 3월 초순이었다. 평소 자주 들르던 문학공모전 사이트인 '오즈'란 곳을 방문했다가 영웅, 김영옥 선생을 추모하는 독후감을 공모한다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김영옥?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김영옥이면 여자 영웅? 여자 영웅 중에서 유관순 열사말고 또 유명한 영웅이 있었나? 이상한 공모전도 다 있군. 출판사에서 책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겠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이왕 내친김이니 성별이나 한번 알아볼 생각으로 소개된 웹사이트를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바로 공모전 홈페이지가 열렸다. 깔끔하고 세련된 화면 구성과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니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언뜻 우측 상단에 '영웅, 김영옥 추모 독후감 공모전'이란 광고가 보였다. 바로 그 배너를 클릭하자 공모전에 대한 안내문과 함께 하단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이 나타났다. 사진을 보니 남자였다. 그것도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였다. 남자 영웅이라면 순간적으로 이순신 장군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군. 분명 '어떤 시답잖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분칠하고 과장해서 내놓은 자서전이겠지'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을 품으며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참가비도 없고 책을 사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읽을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일단 책을 팔아먹기 위한 가짜 공모전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김영옥이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대상도서 읽기로 들어간 뒤 우선 책머리를 클릭해 보았다. 이 방법은 필자가 무슨 책을 읽던 제일 먼저 하는 버릇이었다. 그동안의 독서 경험으로 보아 서문만 훑어보면 대충 그 책의 지적 수준이라든가 대략적인 내용까지도 짐작할 수 있어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문을 읽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문장 한 구절을 발견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한우성 씨의 말이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걸고 보증한다는 말에, 책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믿고 공들여 읽기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김영옥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엠파스 검색창에 '영웅+김영옥'을 넣고 엔터를 치자 '한국계 전쟁영웅', '한우성' 등 많은 관련 자료가 떴다. 그 중 제일 관심이 가는 글귀가 '故 김영옥 대령, 태극무공훈장 수여'란 단어였다. 이름 앞의 '故'란 관형어로 보아 이미 사망했을 테고, 또 태극무공훈장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엄청난 가치가 있는 훈장이 아닌가. 도대체 김영옥이 누구이기에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단 말인가. 호기심이 새록새록 일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이트를 클릭하자 김영옥 님에 대한 설명이 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최고무공훈장까지 받고 미국에서도 특별무공훈장을 비롯하여 10여 개의 이름 있는 훈장까지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왜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자 호기심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항해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2005년 9월 25일 문화방송의 'mbc스페셜'이란 프로그램에서 김영옥 씨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낸 것을 알아냈다. 인터넷 서비스인 '다시보기'를 통해 그 프로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는 55분 내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뭐랄까 마치 500년 전의 이순신 장군이 다시 환생한 느낌마저 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전쟁에서 세운 불멸의 업적. 부하에 대한 깊은 사랑과 휴머니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을 주관하는 신까지 감동시켜가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점이 장군과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 백인사회에 적응하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인데, 김영옥 님은 미국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이구동성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비록 이민 1세의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위상과 지혜로운 모습을 유럽과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린 김영옥 선생님을 우리 정부는 왜 진작에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혹시 나만 문외한이라서 그런가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웅, 김영옥'을 아느냐고 물어봐도 내 주변사람들 중엔 그를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내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홍보부족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오늘날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영웅주의라고 말한다. 미국은 쉽게 영웅을 받아들이고 또 영웅도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도를 잡다 목숨을 잃은 경찰관, 911 테러 때 순직한 소방관,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숨져간 일등병, 심지어 CIA나 FBI 요원들까지도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사후엔 동상까지 세워준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건만 지금도 어디어디에서 미군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많은 비용을 들여 유골을 수습해 가는 미국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자국의 영웅을 아끼고 보살피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mbc스페셜에서 김영옥이란 인물을 만난 뒤 나는 일주일에 걸쳐 인터넷으로 '영웅 김영옥'이란 책을 다시 읽었다.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은 그분의 뒤안길을 좀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방송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흔이 넘게 이 땅에 살면서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김영옥이란 영웅을 이제 서야 알았다는 것이 죄송했던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김영옥 님에 대한 홍보를 서둘러 우리 국민들이 자긍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영웅, 김영옥'을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하고 교과서에도 실어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제2의 제3의 김영옥이 계속해서 탄생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 만연되어 있는 각종 부정부패도 뿌리뽑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김영옥. 가짜 공모전이란 불손한 생각까지 갖게 만들었던 인물 김영옥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고매한 사람이었다. 또한 '영웅, 김영옥'은 그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끝없는 회의를 품고 살아가던 리포터에게 정답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영옥 님께 삼가 존경을 표한다. 군인으로서의 용맹함과 죽어서도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땅 하와이에 묻히길 원했던 수구초심, 약자들에게 베푸는 따스한 인정과 봉사정신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가 이토록 예술적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민선 제4대 광주시교육감 선거가 두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예비후보들의 물밑 행보가 활발해지고 있다. 광주시선관위가 차기 시교육감 선거 날짜를 10월 23일(월요일)로 잠정 확정한 가운데 현재 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인사는 안순일(61) 동부교육장, 윤영월(55.여) 서부교육장, 윤봉근(49) 광주시교육위원, 이정재(60) 전 광주교육대 총장, 김창현(61) 전 광주교육대 총장 등 5명. 광주교대를 졸업한 안 교육장은 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을 역임해 '초등 대표 주자'로, 조선대 사범대를 졸업한 윤 교육장은 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을 지낸 '중등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다. 전교조 출신으로 시교육위원회 의장을 지낸 윤봉근 위원은 일부 시민.교육단체들의 지지속에 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민선 제3대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정재 전 광주교육대 총장은 재차 도전에 나섰고, 김창현 전 광주교육대 총장도 오랜 교육경험을 토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런 가운데 시교육감 선거 유권자는 학교운영위원들로 극히 제한적이어서 지난 교육위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과열.혼탁이 예상된다. 본격 선거운동은 후보자 등록(10월13일)후 가능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벌써부터 학교운영위원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면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 일부 인사들은 학교운영위원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모 인사는 특정 대학 출신 교사들을 겨냥해 일부 교장들을 포스트로 내세워 학교운영위원들과 접촉하는 등 과열.혼탁 조짐이 보이고 있다. 현재 학교운영위원은 학부모들의 직.간접 선거로 뽑힌 학부모위원 1천550여명, 교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교원위원 1천220여명, 학부모위원과 교원위원들이 선출한 지역위원 630여명 등 총 3천400여명이다. 이와 함께 양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선 2, 3대 재선을 한 김원본 현교육감이 윤영월 교육장에 우호적적 이라는 설이 시교육청 안팎에서 파다한 가운데 김 교육감의 중립적인 '선거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김 교육감은 지난달 모 초등학교 집단 커닝 사건과 관련해 안순일 교육장을 직위해제 하겠다고 밝혀 '오해'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안순일 교육장과 윤영월 교육장은 '현직 프리미엄' 등 때문에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게 교육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편 광주시선관위는 시교육감 선거와 관련한 불.탈법 행위를 엄단하기로 했다. 시선관위 관계자는 22일 "시교육감 선거가 깨끗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특히 10월초 추석을 전후한 금품제공 등에 대해 집중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요즘 같은 권위 상실의 시대에 일선 학교 교감 자리가 무슨 큰 힘이 있을까. 하지만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무와 권한의 범위 안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는 구태와 비교육적 요소들을 조금씩이라도 바로잡음으로써, 죽어 가는 우리 교육을 다시 살리는 일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부임한 지 어느 새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잘해보겠다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처음에는 몸이 지치는가 싶더니 생각이 다른 사람들, 그 다양한 이해의 틈바구니를 헤쳐 오다 보니 이젠 마음까지 지치고 말았다. “내가 무슨 ‘통뼈’라고, 혼자서 이 나라 교육의 십자가란 십자가 다 메고 가는 듯, 속 타며 애간장을 태울 필요가 뭐 있는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나머지 교육자로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책임과 의욕의 끈마저 다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학교에서 관리자가 나름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학생과 학교 발전을 위해 무엇을 좀 해보고자 할 때, 선생님들 모두가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일이 잘되는 쪽으로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 하나하나를 제자식처럼 아끼며 그들의 사표가 되려는 노력, 더 잘 가르쳐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며 이런 저런 생각을 다 해보지만 교단의 현실은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고 만다. 학교는 지금 위기다. 교육체제나 교육 내용, 교육 방법의 위기가 아니라 교단 풍토, 교육자들의 자질의 위기다. 그 위기의 중심에 바로 우리 교사들이 있다. 세상은 우리가 변하지 말라 해도 변해가고 있고, 그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변화를 거듭하며 활로를 찾아가는 데 그 선두에 서야 할 학교와 교육자들이 과거에 안주하며 현실을 방기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 이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며 아이들에게 커다란 죄악을 짓는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자초한 오늘의 교육위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선, 교단풍토를 개혁하기 위해 모든 선생님들이 개혁의 주체로서 자기 책무에 대한 자각을 새로이 해나가야 한다. 교육개혁을 위한 현장 혁신 과제 추진에 있어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참여적인 태도를 가지고 작은 힘들을 보태야만 한다. 둘째, 교육 자질과 관련하여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르고 투철한 교육관을 확립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교육자적 인격의 완성에 매진해야 한다.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모름지기 인격 완성의 도장이다. 학생들의 인격에 감화를 주기 위해서는 교육자 스스로 사회적 또는 자신의 양심이 요구하는 고도의 윤리기준에 부합되는 인격 연마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교육자가 바로 서면 교육은 절로 바로 서게 된다.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기보다 서로 잘해보자며 손목을 잡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교단풍토가 돼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바른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 교육에 다시 희망이 올 것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지각생에 대한 과잉체벌로 물의를 빚은 대구 O고등학교 박모(35) 교사를 지난 17일 파면한 데 이어 교장에 대해 지도.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결정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이와 함께 대구시교육청은 이 학교 교감과 학생부장에 대해서도 생활지도 및 감독의 책임을 물어 경징계인 감봉 조치키로 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벌방지에 특별 대책을 수립, 시행할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문제점과 함께 비위가 인정되면 체벌 당사자는 물론 지도.감독자도 엄중 문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교육청이 O고등학교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지난 14일 지각을 이유로 각각 100~200대씩 맞은 A(18.3년)군 등 2명 외에도 5명의 학생들이 지각하거나 교재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대에서 100대를 맞는 등 과잉체벌을 당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교장임용제 개선과 관련하여 공모제를 근간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던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이번에는 영어교사들을 괴롭히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교육위.비례대표)은 2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법 제정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조기유학과 어학연수 인원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 공교육도 질 높은 영어교육을 할 수 있도록 영어교사 연수․관리제도 등을 개선하고 이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한교닷컴, 2006.8.21) 이 법안의 주요내용은 현행 영어교원 6개월 심화연수를 전체 교원으로 확대실시하고 평가점수가 기준에 미달하는 교원은 행정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교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안을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른 조치는 취할 생각없이 교사만 탓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호 의원에게 묻고 싶다. 교장공모제는 이제 흥미가 사라졌는가. 아니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함인가.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은 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이제 다음은 수학교사들을 연수시켜 평가하고 기준에 미달되는 교사는 별도의 조치를 취할생각인가. 그다음은 국어, 과학, 사회, 도덕....차례대로 법안 만들려고 하는가. 뭔가 보이지 않는 음모가 숨어있다는 생각이다. 한가지 더 묻고 싶다. 공교육의 질이 떨어진 것이 영어교사들의 실력탓으로 보는가. 영어교사들이 잘 못 가르쳐서 질이 떨어진 것인가. 그럼 다른 과목도 똑같이 시험보고 평가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영어교사만 그렇게 해야 하는가. 영어만 잘하면 영어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나. 그럼 처음부터 영어만 잘하는 사람들을 교사로 임용하면 될 것 아닌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약하는 의원이라면 최소한 교육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학교의 각종 여건을 생각해 보고 조사해 보라. 당장 내일이라도 학교를 방문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교실의 온도가 몇도가 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최소한 35도 이상의 무더위 속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런 여건에서 영어교사 탓만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 할 일인가. 이런 법안 당장 백지화 해야 한다. 그것을 실시한다고 해서 탈락할 영어교사들은 없다. 다만 그 과정이 괘씸하고 부담될 뿐이다. 이런 발상으로 더이상 교사들을 괴롭히지 말고 다른 곳에 더 많은 노력을 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