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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빠른 변화가 오히려 느림이 행복인 세상을 만들었다. '느림은 행복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청산도. 공기가 맑고 하늘ㆍ바다ㆍ산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청산여수(靑山麗水)로 불린 신선의 섬이다. 지난 4월 29일, 몽벨서청주 산악회원들이 슬로시티 청산도를 다녀왔다. 장거리 여행은 부지런을 떨고 시간을 잘 활용해야 제대로 구경한다. 밤 12시에 관광버스가 청주를 출발하자 차안은 캄캄한 밤이 되어 모두들 잠을 잔다. 어둠 속의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청산도행 정기여객선에 오른다. 6시에 주도 앞 완도항을 출항한 배가 속도를 내자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완도타워가 멀어져간다. 흐린 날씨와 안개가 바다를 감췄지만 뱃전에는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도에서 청산도는 남쪽으로 19㎞, 뱃길로는 50여분 거리다. 청산도의 관문인 면소재지 도청항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옛날 주민들이 오가던 이동로가 지금의 '청산도 슬로길'이다. 대형 청산도 표석을 지나면 부둣가에 생활용품을 운반하느라 슬로길을 오갔을 지게들이 줄지어 서있고, 여행객들에게 슬로길 걷기의 시작을 알리고 느림의 의미를 전하는 '느림의 종'을 만난다. 어떤 길이든 길은 길과 연결된다.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는다. 도락리 안길에서 낮은 담장과 원색의 지붕, 정이 넘쳤을 좁은 골목을 만난다. 담벼락에 걸려있는 빛이 바랜 청산도의 옛 사진들이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잡히던 60년대의 풍어기에는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파시(波市)가 열렸을 만큼 번성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마을을 벗어나 섬사람들이 처음 식수로 이용했다는 동구정에서 목을 축인다. 줄지어선 해송과 정자가 안개와 어우러진 남도 바닷가의 갯마을 풍경이 멋지다. 위편에서 영화촬영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유채꽃밭에서 추억을 남기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1박 2일 일정의 청산도 슬로길 여행을 하루에 마치려면 발걸음이 빨라야 한다. 그런데 2011년 세계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1호'로 인증 받은 청산도의 풍경에 취해 걸음이 느려진다. 직선보다는 곡선, 인공보다는 자연이 청산도의 자랑거리다. 유채꽃과 보리밭을 구경하며 구부러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논두렁과 밭두렁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임권택 감독의 한국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알려지며 침체기를 걷던 청산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 '봄의 왈츠',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봄볕이 완연한 산등성이에 유채꽃이 만발해 영화촬영지 주변은 사방이 노란색이다. 세트장과 유채꽃 물결, S자형 오름길과 바닷가의 갯마을 풍경, 산중턱의 초분과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사는 섬사람들의 생활이 이해된다. 화랑포공원에 초분이 있다. 청산도에는 예전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초분(草墳)이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짚으로 만든 가묘에 장례하는 장례법이다. 고기잡이 나간 상주가 임종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일단 초분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뒤 상주가 돌아오면 장례를 치루는 것도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이었으리라. 당리재, 따순기미를 지나 권덕리까지 몇 개의 고개를 넘지만 초보자도 큰 무리가 없다. 산길과 바닷가를 걷다보면 느린우체통을 만나고 유채꽃이 만발한 자연부락을 먼발치로 바라본다. 욕심이 없는 바다가 안개 속에 숨어있다. 다랭이논이 많은 청산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구들장논이다. 산비탈의 논바닥에 구들장을 놓듯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농사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고이고 남은 물은 아래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구들장논은 물이 부족한 섬의 환경을 선조들이 지혜로 극복한 농업유산이다. 청산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범바위다. 범바위는 바위가 뿜어내는 강한 자기장이 휴대전화와 나침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신비의 바위로 알려져 있다. 기를 쓰고 정상에 오르면 말탄바위와 상도, 권덕리와 보적산, 범바위 전망대가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아래편에서는 반응이 없던 휴대전화가 범바위 정상에 서자 작동한다. 바위를 향해 포효한 호랑이가 울림으로 들려온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는 줄 알고 섬 밖으로 도망쳐 범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출발할 때부터 몸이 아픈 친구가 있어 일행들의 꽁무니가 사라진지 한참 되었다. 보적산 등반을 포기하고 아래편으로 하산하며 청계리와 신풍리의 마을풍경을 구경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청산도의 매력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청항으로 갔다. 이곳까지 왔으니 완도의 특산물 전복은 맛보고 가야한다. 선착장 주변에 전복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 전복과 갑오징어 안주에 술잔을 주고받을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게 행복이다.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떠있는 바닷가에서 피로가 풀릴 만큼 술잔을 비웠다. 오후 3시가 되자 완도행 정기여객선이 도청항을 출항한다. 봄에는 꽃 좋고, 여름에는 물 좋고, 가을에는 먹거리 좋고, 겨울에는 하얀 천지가 아름다워 또 찾아오게 한다는 청산도가 점점 멀어져간다. 여행은 경치 좋은 곳만 구경하는 게 아니다. 여행지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청산도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봐라. 느리면, 조금 뒤에 가면 어떠리. 뱃전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학교는 한마디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다. 이 교육과정을 조금 세분하여 보면 그 중심에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교과목이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에게 이 교과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그리고 교사를 통한 학습경험을 통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중학교부터는 모든 과목을 교과별로 전담 교사가 담당하게 되므로 교과와 학생과의 관계성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그런데 사회라는 교과는 일반적으로 입시에서 최상의 중요도를 가진 과목이 아니기에 중학교 과정에서 잘 못 접근하면 암기과목으로만 생각하여 외우기를 싫어하는 학생에게는 멀어져 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중심에서 교사가 교과목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14년 전 내가 가르쳤던 S학생은 아래와 같은 반응을 글로 적고 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사회과목을 못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와서 김광섭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난 뒤부터는 사회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 1학년 때 한번 시험을 못 봐서 매일 매일 공부를 해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것을 쓰고 외우고 할 때는 선생님이 밉고 정말로 싫었지만, 그렇게 공부한 뒤 본 시험에서 성적이 많이 올라가서 무척 기뻤다. 사회 수업을 하면서 초등학교에서 사회 공부를 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오셔서 보충까지 해 가면서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로 우리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르시고자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매번 수업시간마다 글을 쓰라고 하시고, 그림을 그려라, 칠판에 뭐를 써보라고 하실 때는 정말로 사회 수업을 하기가 싫고, 선생님도 싫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배운 것을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또 중요한 내용은 책에 적색으로 불러주시면서 강조해 주시니까 금방 잊어버리지도 않게 되었고, 시험공부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사회과목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도 조금씩은 좋아지는 걸 느낀다. 아마 내가 크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꿈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아마도 20년 쯤 지나 내가 어른이 된다면 많은 아이들과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 때 쯤이면 기술과 산업이 많이 발전 해 있을 테니까 컴퓨터로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사회 선생님이 나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도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나도 그렇게 생활할 것 같다. 선생님의 감사함과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토요일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충전의 시간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 아침은 상쾌한 아침이다. 하늘은 푸르고 푸르며 멀리 바라다 보이는푸른 산의 나무들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제철을 만난 듯 싱싱함을 더해간다. 오늘 아침은 네 부류의 지도자에 대한 글을 접했다. 우리 선생님들은 지도자인데 어느 부류에 속할까? 본인은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부류에 속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고의 지도자는 있다는 존재만 느끼게 한다. 그 다음은 친절하여 칭찬받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그 앞에 서면 두렵게 만드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뒤돌아서서 욕하는 지도자다” 노자께서는 최고의 지도자는 유지(有之)의 단계라고 한다. 지도자는 부하들이 느끼기에 ‘있다’는 정도만 느끼게 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있다는 정도만 느끼게 하는 것이 학생들이 가장 평온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선생님 최고다. 우리 선생님 아니면 안 된다. 우리 선생님 멋지다. 우리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잘해…’ 이렇게 칭찬을 늘어놓은 선생님이면 최고인 것 같이 생각해 왔다. 그러면 최고의 선생님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되려면 선생님은 너무 피곤하다. 언제나 칭찬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어 진을 다 뺀다. 그렇다고 완벽할 수는 없다. 자기도 모르게 칭찬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칭찬이 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돌아선다. 학부모님들도 그 선생님을 믿었었는데 아니구나 하며 서운해 한다. 그러니 칭찬의 자리에 머무는 지도자는 그래도 상급의 지도자이지만 유지의 단계만 못한 것이다. 따뜻한 어머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우리 선생님이 언제나 우리 곁에 계서 우리를 인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잘 이끌어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선생님이 최고의 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고 피곤을 막을 수 있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유지(有之)의 단계가 최상의 단계라고 하신 노자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예지(譽之)의 단계는 우리가 늘상 바라던 최상의 단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칭찬받는 선생님만 되려고 애쓰면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게 되니 그것을 최고의 단계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있는 것만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싶다. 그 다음의 단계인 외지(畏之)의 단계는 ‘아니다’ 싶다. 학생들이 선생님만 계시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열심히 하는 체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싶다.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 참 무섭다.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 학생들은 위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으로 학생답게 활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의식해서 이중적인 행동만 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서운 존재로만 인식되게 하는 것은 학생들의 바른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때론 무섭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없다. 가장 ‘아니다’ 싶은 선생님의 단계는 모지(侮之)의 단계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기는커녕 돌아서면 그 선생님을 욕하고 미워하고 선생님답지 않다고 입에 올린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선생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되어서는 아니 된다. 올라갈수록 좋다. 네 단계의 선생님 중 가장 마지막 단계만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선생님에 따라 2단계부터 4단계까지는 좋은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4단계의 선생님이 된다면 그것은 최악의 단계가 되고 만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우리의 발걸음이…
2학년 수학여행을 앞둔 담임선생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직 수학 여행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물가상승에 비례하여 책정된 수학여행비가 일부 학부모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없기에 수학여행에 참가하기로 한 모든 학생은 각자 그 비용을 해결해야 할 실정이다. 목요일(10일). 수학여행 건으로 2학년 담임 긴급협의회가 있었다. 안건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반별 수학여행비 미납자에 대한 문제였다. 학년부장은 행정실에서 출력해 온 반별 미납자 명단을 해당 담임에게 나눠주며 금주 내 해결해 줄 것을 주문하였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반별로 몇 명의 미납자가 있었다. 재적 학생 32명 모두가 참가하는 우리 반의 경우, 3명의 학생만 미납된 상태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퇴근 무렵, 3명의 아이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수학여행비를 금주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2명의 학생은 금주 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여 다행이었으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한 아이의 경우, 장담할 수 없다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선생님, 수학여행비 제날짜에 내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무슨 방법이 있겠지.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라.” 그 아이가 걱정할까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아무튼, 수학여행 출발 전까지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의 출석을 점검하고 난 뒤,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잠깐 사이에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걸러온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발신인이 ‘발신번호 표시제한’이었다. 스팸 전화라 생각하고 그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잠시 뒤,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부터 또 전화가 걸러왔다. 순간, 발신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장난전화이면 핀잔이라도 줄 요량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2학년 ○반 담임선생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 “여보세요? 누구세요?” “……” 반복해서 누구냐고 물어봐도 상대방은 내 질문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성을 높여 재차 물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으면 말씀을 하셔야죠?” 그제야 상대방이 작은 목소리로 답을 했다. “수학여행비 때문에….” 순간, 전화를 건 사람이 아직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한 한 학생의 어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학교 행정실에 직접 내시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학급에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한 한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 딸에게 들었는데 제가 대신해서 내주고 싶은데 괜찮은지요? 제 딸 또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요.” 어머니의 말에 차분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머니는 누구인지 절대로 밝히지 말라는 딸의 말을 전했다. 이제야 어머니가 ‘발신번호 제한표시’로 전화를 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착한 수호천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 문제는 담임인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어머님의 전화를 받으니 힘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따님 이름을 여쭤 봐도 될까요?” 내 질문에 어머니는 웃기만 하였다. 결국, 난 그 어머니의 딸이 누구인지 모른 체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난 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 제자와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라는 사실…. 그날 오후, 우리 반 세 명의 아이들 모두가 수학여행비를 완납했다. 그리고 종례시간, 아침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수선을 떨었지만 아무도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진 못했다. 비록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제자의 담임이라는 사실에 행복하였다.
한참 전에 돌아가셨지만 어른들을 위한 ‘생각하는 동화’를 지으셨던 정채봉 선생이 있었다. 정 선생이 지은 동화책 내용 중 생각나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곳에 창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애들은 많고 가진 것은 오로지몸뚱이밖에 없어서 몸을 팔아서 그날그날을 연명했다. 창녀는 자신의 비루한 삶과 잘못된 삶을 날마다 뉘우치면서 매일 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루를 반성하곤 했다. 그런데 창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성직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신도들에게 창녀의 잘못된 삶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창녀 집에 드나드는 사내들의 숫자에 따라서 자기 집 앞에 작은 돌을 던졌다. 한참이 지나자 그의 집 앞에는 커다란 돌무더기가 생겼다. 그런어느날 성직자는 신도들을 모아 놓고 창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도들이여, 저 창녀를 보시오. 나는 날마다 저 창녀 집을 드나드는 사내들을 세면서 그 수만큼 이 돌을 쌓았소. 온갖 사내들이 밤낮으로 드나들어서 이렇게 돌무더기가 생긴 것이오. 저 더럽고 추악한 창녀를 우리 마을에서 쫓아내야 할 것이오.” 그러자 지목당한 창녀는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 또한 돌을 들고서 당장에 그녀를 죽일듯한 기세였다. 이때 무리 중의 늙은 현자(賢者) 하나가 나섰다. “성직자여, 그대는 신을 섬기면서 자기 자신은 얼마나 진실하게반성했소. 저 창녀는 비록 몸을 팔았지만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날마다참회의 날을 보낸 것을 나는 알고 있소. 참회 후 새롭게 태어나서 다음날 또 더러워졌지만 말이오. 오히려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매춘은 육체의 매춘 보다는 곡학아세하는 지식과 학문의 매춘, 자기를 속이는 양심의 매춘, 그리고 이웃 사람의 아픔을 모른 채 하는 무관심일 것이오.” 오늘 신문을 보니 어느 절의 수행자답지 않은 수행자들의 비행이 눈에 띤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절의승려들이 입적하셨던 어느 큰스님의 49재를 하기위해 제자들이 호텔에 모여서 억대 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금하고 있는 술과 담배를 버젓이 하면서 말이다. 더욱이 판돈은 그들이 돈을 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가지고서 했다니 절에 시주한 돈을 몰래 빼온 것이 아니라면 출처를 설명할 길이 없다. 도박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서 고발한 것인데 큰 절의 주지를 맡기 위해서 서로 싸움질하고 원한의 앙금이 쌓여서 상대방이 투서했다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조계종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스님은 고발한 스님이 현 총무원장 선거에서 현 총무원장을 반대해 왔고, 이런 와중에 종단과 갈등이 있어서 멸빈(滅擯)된 스님이라고 한다. 고발 당사자는 소송(1심)에서 이겼기에 멸빈되지 않았고, 종단의 곪은 문제를 밖으로 알려내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하니 필자 같은 세인들이 봐도 그들의 싸움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멸빈이라는 불교용어가 낯설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죄를 범한 승려가 뉘우치지 않을 때, 승려의 신분을 없애고 세속으로 다시 내보내는 것이라고 나온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오신 날이 5월 28일인데 탄신일을 앞두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 비록 종교를 가지지 않은 필자이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데 하루를 보내도 부족하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세상에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신도들의 피 같은 시줏돈을 허투루 쓰는 것도 모자라 세속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추악한 권력놀음을 하는 것에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더욱이 종교는 더러워진 세속인들의 마음을 씻어내고 평안을 유지하게 하는 이 시대 마지막 청정지대 역할을 해야 한다. 앞의 동화에서 현자가 말한 여러 나쁜 매춘만큼 더 더러운 것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종교의 매춘이 아닌가 한다. 진정으로 멸빈되어야 할 사람들, 그들은 종교든 권력이든 뭐든 감투를 쓰고서 높은 사람 행세를 하려는 그들이 아닌가 한다.
머물고 있는 학교 기숙사의 커텐을 여니 붉게 물든 연산홍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베란다의 커텐을 여니 또한 역시 하얀 연산홍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붉게 물든 나무는 가지를 흔들며 아침인사를 한다. 아차 싶었다. 그 동안 왜 보지 못했을까? 관심을 나타내지 못했을까? 반갑게 맞이해주지 못했을까? 인정해주지 못했을까? 사랑해주지 못했을까? 그 동안 얼마나 서운했겠는가 싶다. 기나긴 한파를 이겨내며 때가 되어 아름다움을 선보였는데 봐주지도 않고 외면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화내지 않고 말하지 않으니 참 좋다.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내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군자가 따로 없다. 바로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늘 준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인내하는 연상홍이 바로 군자다 싶다. 한 번도 화내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그래도 참고 그래도 자신을 관리하며 그래도 자신을 보여주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선생님들이 오늘 보여주는 연상홍과 같이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군자가 아닐까 싶다. 정말 학생들을 위해 많이 준비하고 많이 연구하고 많은 것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학생들이 몰라주고 학부모님이 몰라주고 교장, 교감이 몰라주니 화가 나고 짜증나고 불평이 나올 법하지만 그래도 참으며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계시는 선생님이야로 진정 군자가 아닌가 싶다. 교육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교육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함이 아니다. 교육은 남으로부터 칭찬받으려고 함이 아니다. 오직 나의 할 일을 하는 것이며, 나의 사명을 위해 걸어가는 것이다. 오직 학생들을 위해 나를 바치는 것이며,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서운할 때도 내색하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해도 오히려 그것을 선용해서 학생들에게 유익을 준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을 오히려 잘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기쁨을 주고 알게 해주고 깨닫게 해준다. 이렇게 함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군자로 가는 길인데 화를 잘 낼 때가 많다. 화를 내고나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싶다. “마음을 잘 갈고 닦는 것이 두뇌를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탈무드에 나오는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우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화를 자제할 줄 알아야 함이 마음을 닦는 첫걸음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몰라주고 자신의 열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 시끄러워진다. 어지러워진다. 자신만 망가지고 초라하게 된다. 보름 이상 붉게, 하얗게 핀 연상홍은 화내지 않았다. 소리내지도 않았다.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오직 때만 기다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잘 관리하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감동을 주었다. 군자는 따로 없다. 우리 선생님이 바로 군자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이 바로 군자다. 마음에 바를 수 있는 약은 없다고 하지만 자연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에 바를 수 있는 약이 아닌가 싶다. 꽃보다 아름다운 이는 우리 선생님이고 꽃보다 오래 가는 것이 우리 선생님이다.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내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계절의 여왕 5월이건만 교육계는 편치 않다. 학교폭력과 이에 연관된 사건으로 연일 시끄럽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엇나가도 한참 엇나간 듯함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는 먼저 학생들의 정서가 황폐해진 것이 한몫을 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야 한다. 부모가 맞벌이라도 되면 밤까지 학원을 전전한다. 생활이 팍팍해지니 또래집단과 공감하고 소통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 학교에 오면 장난으로 스트레스를 풀려 한다. 그런데 그 장난에서 배려와 나눔은 찾아볼 수 없고 짜증만 나니 싸움이 일어나고 시비가 붙는다. 학부모들까지 이것을 중재하지 못하고 더 큰 다툼이 되고 이를 해결하느라 학교가 시끄럽게 되고 만다. 학교폭력이 커지면서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신적, 인격적 미성숙 단계인 학생들에게 책임과 의무는 없고 왜곡된 권리만으로 불량한 행동을 일삼는다. 자기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아이들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몸싸움을 하는 끝없는 괴롭힘이 일어난다. 바쁘다는 핑계로 학부모도 자녀의 심리를 파악할 겨를이 없고 점수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감성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조금만 힘들어도 참지 못한다. 옳지 않는 일인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해 일단 저지르고 본다. 내가 괴로워 남을 괴롭히는 꼴이 된다. 연쇄적인 괴롭힘은 결국 비극으로 이어진다. 다음은 학부모의 태도이다. 예전과 달리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를 지배하려 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가르치려 한다. 영리추구의 학원이나 방문교사처럼 학교 역시 개인 취향에 맞추어야 하고 교사는 고용인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학교는 한 두 아이를 위한 학교가 아닌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모르겠다. 어느 게그 프로에서처럼 ‘어른’은 없고 ‘어른이’만 있어서일까? 학년 초부터 학부모는 아이가 있어도 거리낌 없이 ‘너희 선생은 학교에 관심이 없나 보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학교에 와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이른다. 어떻게 그렇게나 빨리 간파하는지, 그렇게 선견지명이 있으면서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그대로 말한다는 사실은 모른다. 교육적 측면으로 아이 앞에서만큼은 가려서 말하는 의식도 실종된 지 오래다. 무식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학력 대졸에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다. 아이는 보는 대로 배운다. 자기 부모가 교사를 우습게 아니 학교에 와서 무얼 배워갈 것인가? 그리고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학교를 걸고넘어진다. 주의산만한 자기 아이로 인한 경미한 상처도 사진까지 찍어놨다고 협박하면서 시시콜콜 모든 것을 보고해주길 강요한다. 그래도 교사는 할 말이 없어야 하고 죄송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부기관이나 인터넷에라도 띄울까봐 전전긍긍해야 하니 말이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교사의 입장에 서는 이가 없음을 교사와 학부모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학교를 드나들며 간섭하고 험담한다. 그런 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엄마 말은 무서워하면서 교사 말은 안 듣는다. 그 아이 눈에는 엄마가 더 높으니까. 마지막으로 교권 추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학생인권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교사인권은 말하기도 어색하리만치 멀어져 가고 있다. 예전과 달리 교대와 사대에 들어가서 임용고시에 합격이라도 하면 집안의 경사요 교사 사위, 며느리를 보면 이 또한 자랑거리다. 내 자녀가 교사되기를 바라면서 그 자녀의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시각은 별개이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육정책의 그림자가 교사를 숨죽이게 하고 있다. 총알 없는 총대를 메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학생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든, 교사에게 욕을 하든, 심지어 폭행을 하더라도 경고나 몇일 등교정지면 그만이다. 이제 학생은 교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을 체벌할 수 없음을 세상이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학생은 기고만장이다. 아예 어깨를 들이밀며 때려보라고 야유를 한다. ‘선생님은 우리를 안 때린다’와 ‘못 때린다’의 차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네들은 시험삼아 대들어도 본다. 그렇지만 교사도 ‘생활인’이라 목 내놓고 교육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래저래 무장해제당한 교사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권이 바로 서지 않으면 학습권 또한 보장될 수 없음이니 진정한 피해자는 우리 교사가 아니다. 교사는 이제 학생과 학부모와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학부모가 교사를 관리하고 학생이 교사를 저울질 하는 시대에 있으니까. 아직 몇 십 년을 더 버텨야 하는 새내기 교사들이 가여울 뿐이다. 작금의 교육현실에서는…
3일 여주 금당초(교장 김한석)에서는 90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금당교육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한마음 체육대회를 열었다. 경기도교육청 지정 혁신학교인 금당초는 배움, 나눔, 꿈이 샘솟는 황금연못(금당)이란 비전아래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하나 되는 학교경영을 목표로 여러 가지 혁신적인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오전엔 단체 줄넘기, 모둠별 이어달리기, 플로어볼, 축구경기 등 어린이 체육활동(다모임 모둠별)을 실시하였는데 아이들은 해맑고 행복한 표정으로 열심히 참여하였다. 오후에는 교직원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모여 족구, 발야구, 플로어볼, 이어달리기를 진행하였는데 40여명의 학부모와 지역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이는 학교 규모를 볼 때 놀라울 정도다. 이후 야외숯불 바베큐 파티로 이어졌는데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 되는 뜻 깊은 경험이 되었고, 이는 혁신학교교육활동의 성공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학교구성들의 학교교육활동 참여를 보장하고 장려하는 알찬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는데 벌써부터 그 열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혁신학교의 취지에맞게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금당초 교직원, 학부모는 한마음이 되어 노력할 계획이다.
지난해8월 10일 개봉한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은 747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2011 한국영화 흥행 1위로 ‘등극’한 영화이다. 문학이 그렇듯 영화 역시 ‘명작’은 오래 가는 법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대박을 터뜨리면 CD 출시 후 한동안 그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사실 ‘최종병기 활’은 지난 여름대작 중 가장 늦게 개봉된 영화이다. ‘7광구’・‘고지전’・‘퀵’ 등 1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대작의 위세에 눌려 개봉 날짜를 정하지 못하는 등 기를 펴지 못했다. 이변은 뚜껑을 열면서 시작됐다. 예컨대 개봉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2006년 ‘왕의 남자’가 세웠던 9일 만이라는 최단 기간 기록을 깼다. 당연히 ‘7광구’・‘고지전’・‘퀵’은 ‘최종병기 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90억 원을 들인 ‘최종병기 활’이 5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개봉 26일 만의 일이다. ‘퀵’과 ‘고지전’이 겨우 300만 명을 간신히 넘기거나 못 미쳤고, ‘7광구’가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한 223만 명의 초라한 성적으로 체면을 구길 즈음 ‘최종병기 활’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그 기세는 추석 대목으로 까지 이어졌다. 개봉 35일 만에 600만 명을 동원한 ‘써니’보다 흥행속도가 빠르더니, 결국 일을 내버린 것이다. ‘최종병기 활’의 2011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기록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일단 ‘극락도 살인사건’(2077), ‘핸드폰’(2009)을 연출했으니 신인은 아니지만, 김한민 감독이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무명 감독의 흥행대박이라? 그쯤 되면 언론이 가만둘 리 없다. 활을 소재로 한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활도 잘 쏘고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면 항상 금메달을 따는 한국에서 왜 활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의아했다”(서울신문, 2011. 8. 23)고 말한다. 김 감독의 그 의아스러움은, 이를테면 유니크한 소재를 견인한 원동력인 셈이다. 사극 등 활과 화살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어 왔지만, 그것에 방점을 찍어 천착한 작품은 ‘최종병기 활’이 거의 처음이다. 말할 나위 없이 대박영화의 제1의적 요건이라 할 참신한 소재이다. 그러고 보면 관객들은 재미있고 괜찮은 영화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금방 ‘재미있고 괜찮은 영화’라고 했는데, ‘최종병기 활’은 결코 재미난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저 ‘삼전도의 비극’이라는, 치욕의 역사로 남게된 병자호란을 시대배경으로 한다. 무능한 조선 조정은 ‘오랑캐’인 청에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 죽어나는 건 백성이다. 50만 명이 청에 끌려갔다는 사실(史實)에 기초한 듯 보이지만, 오라비 남이(박해일)의 누이 자인(문채원) 구출작전은 픽션으로 보인다. 또 조선 조정의 포로 송환 노력이 없었던 건 팩트이지만, 자인과 남편 서군(김무열)의 귀환은 허구이다. 이른바 팩션이다. 팩션의 승리는, 그러나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빚어내느냐이다. 그 빚어냄이 같은 역사를 소재로 하더라도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는 영화가 되게 하는 열쇠라 할 수 있다. 우선 긴박감 넘치는 첫 화면이 관객의 시선을 끈다. 인조반정의 한 단면을 묘사한 쫓고 쫓기는 위기감과 사나운 개까지 풀어 사실감을 더하는 등 서두의 중요성을 잘 아는 감독의 역량은 시종 균형을 잃지 않는다. 기생집에서의 검무, 숲 속 추격신, 절벽 뛰어넘기와 기어오르기 등이 빠른 카메라 워크로 숨 가쁘게 펼쳐지는 등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TV드라마처럼 늘어지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세계일보, 2011.8.5)는 신문 리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자인과 남이, 자인의 혼례 등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 역시 빠른 속도감의 화면 전개를 다소 완충시키는 순기능적 장치들로 읽힌다. 어쨌든 그런 빚어냄은 국내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고속카메라 ‘팬텀 플렉스’ 덕분이다. 3D영화처럼 다가오는 활시위가 당겨져 휙 날아가는 화살이라든가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에서 보던 추격신 장면들이 그렇다. 가히 ‘추격영화(chase film)’라 할만하다. 김 감독은 앞의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촬영감독의 역작이다”며 공을 돌리기도 했지만, 한국영화 기술의 진일보함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또 하나의 남다른 이유이다. 보는 즐거움이 아연 배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재미난 영화는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 대목만 보면 틀린 지적이다. 또한 재미 없으면 관객이 들지 않는 속성과도 거리가 있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답은 치욕의 역사를 재미삼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종병기 활’은 민족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문화에 있어 국수주의자가 되어도 좋다는 필자의 편견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물론 관객, 특히 흥행성적을 주도하는 10,20대 젊은 층은 영화에서 민족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마구 때리고 부수는, 그리하여 남는 것이나 건질 게 거의 없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오랜 세월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최종병기 활’을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재미난 영화로만 보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압축된 전쟁 상황은 감독의 의도인 듯싶은데, 오히려 그것이 더 상흔을 남긴다. 가령 아군과 접전 없이 무혈입성하다시피하는 자인의 결혼식장 난입과 마을 백성들 나포 장면 등이 그렇다. 전쟁이 기본적으로 끔찍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것이 더욱 잔인하고 치사하게 보이는 것은 군인간 전투가 아니어서다. 이를테면 전쟁상황 압축에도 불구하고 그 처절함 은 오히려 극대화되어 있는 셈이다. “너희 왕처럼 기어와봐라” 따위 대사가 주는 치욕의 역사 환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메시지를 놓친 채 숲 속 추격신, 절벽 뛰어 건너기 같은 기술적 현란함의 재미에만 빠져드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민족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그러나 애국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 남이의 자인 구출이 나라 구하기와 아무 관련없이 오로지 피붙이에 대한 원초적 끌림 때문이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따로 있다. 초반부 쥬신타(류승룡)의 공격을 받은 남이가 살아 돌아오는데, 그 과정이 너무 엉성하거나 싱겁다. 쥬신타가 죽은 것으로 생각한 만큼 그것에 필적할 살아남는 과정의 절실함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했다. 위기에 처한 남이를 별안간 호랑이가 나타나 구해주는 것도 긴박감이란 전반적 균제미를 단번에 깨뜨려 황당하기까지 한 대목이다. 자인의 오라비(남이)에 대한 반말투 대사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역적으로 몰린 무반의 명문가 자녀들이기에 그렇다. ‘어서 어서’라는 우리말 대사가 자막으로 뜬 것이나 “한양 집에 가서 근사하게 꼬슬(꽃을→꼬츨) 심고” 따위 틀린 발음도 옥에 티랄까 매끄럽지 못해 아쉽다. 그럴망정 명대사 하나 기억해두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도 죽지만, 최후의 승부에서 쥬신타를 쓰러뜨린 남이가 한 말이다.
대전 서일여자고등학교 1-9반 학생들의 현장체험 중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기념탑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 다양한 해양체험활동 및 머드체험활동을경험하고 왔다. 드넓은 바닷가에서학생들은 학업의 연장선으로 체험활동을 통해 갯벌주변 환경정화 활동으로 봉사정신을 함양하는 기회및 학교교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아발전 및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서일여자고 1학년 9반 반장인 류소희 학생은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해양 생태계 체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다의 소중함과 함께 앞으로도 인류을 위해 잘 보존하고 가꾸어 후손에게도 바다의 자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서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어릴 때의 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일생으로, 나쁜 습관은 나쁜 일생으로 살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독서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릴 때부터 좋은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교육적인 배려와 지도에 열중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침독서 ○○분’이라는 사업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그 짧은 시간일지라도 의도적으로 책을 읽게 하여 좋은 독서습관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김제 부용초도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독서의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매일 ‘아침독서 40분’을 실시하고 있다. 아침 8시10분쯤에 대부분 학생들의 등교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에게는 1교시 수업 전까지 40분 정도의 아침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 사실 학생들이 교사들 보다 먼저 등교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왕좌왕 서성거리거나 장난치면서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루 수업을 시작하기 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수업에 임해야 능률적인 학습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항상 아쉽곤 했었다. 본교는 40여명의 소규모 학교다. 전교생 모두가 도서실에 모여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등교하는 대로 교실에 책가방을 놓고 도서실로 간다. 조용히 앉아서 독서를 시작한다. 도서실에서는 인사를 하지말자고 학생들과 약속을 했다. 인사말을 하게 되면 침묵이 깨지고, 눈에서 책을 떼게 되어 주의집중이 흐트러져 효과적인 독서 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만나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그 취지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독서 시간이 종료될 때 반가운 인사말과 함께 인사를 한다. 작년 9월 처음으로 실시하여 8개월째 아침독서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당번활동이나 아침 전체조회도 생략했다. 아침자습이나 0교시 방과후활동도 없앴다. 오직 독서 활동만 하였다. 처음에는 시끄럽기도 하였고, 책을 고르는데만 시간을 낭비하는가 하면 보는 시늉만하다가 책을 바꾸곤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옆 친구와 소곤거리는 학생들도 많았었다. 그러나 아무런 제재도 안했다. 스스로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는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강압적인 통제나 질책을 하면 도서실에 오는 것조차 싫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입학한지 2개월밖에 안된 1학년 학생들만이 아직도 소곤대지만 곧 조용한 분위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침 독서시간, 교사들도 학생들과 함께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다. 교장인 본인을 비롯하여 담임교사들도 학생들처럼 책을 읽는다. 고개도 들지 않고 책을 보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무언의 가르침과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어떤 책을 읽든, 어떤 자세로 읽든, 도서실에서는 지적이나 지도를 하지 않았다. 엎드려 읽는 학생, 누워서 읽는 학생, 책상에 바르게 앉아서 읽는 학생, 계단에 앉아서 보는 학생, 다락방에서, 지하방에서, 서가 사이에서, 방석에 앉아서, 인형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등 각양각색이다. 우선 집중해서 읽는 습관을 길러줄 필요가 있었다. 한두 장 읽고 딴생각이나 딴 짓을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했다. 독서에서의 필요한 자세나 읽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효과적인 독서습관이 형성되도록 참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책 한권을 읽는데 지루하다 생각하지 않고 거뜬하게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책을 읽어서 지식과 지혜와 교양을 겸비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이 증진되고, 간접경험에 의한 아름다운 일생을 살아갈 것이다. 책을 읽는 좋은 습관이 형성되어 좋은 일생을 살아갈 사랑스런 어린이들의 미래를 꿈꿔본다.
우리 자녀는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야할 존재이다. 사실 떠나보낸다는 것은 자녀가 혼자 독립할 때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부모가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우리 부모들은 자녀가 홀로 서야한다는 것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인 일본,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키코모리가 있다. 이들은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 취직도, 결혼도 마다하고 사회와 연을 끊고 집에만 틀어 박혀 사는 일본의 젊은이들로, 약 300만 명이 넘는 숫자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본의 장래와도 연결될 것이다. 중국에서도 엄격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한 가정에서 한 자녀만 낳다보니 이들에게 지나친 사랑과 관심을 쏟아 부어 소황제처럼 자라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학자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자녀가 먼 훗날 멀리 비상하길 바란다면, 지금부터 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린 자녀에게 세발 자전거를 가르쳐 줬던 시절을 기억해 본다면, 언제까지 붙잡고 있기만 하면, 자녀는 자전거 타기를 배울 수가 없다. 부모가 손을 놓아야 스스로 배운다. 넘어질 것 같지만 놓아 주어야 하며,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넘어지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다. 한 독수리가 온갖 상처로 아파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상처 때문에 더 이상 날수 없다는 시름에 빠져 마지막으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하려 했다. “높이 날 수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 모습을 본 대장 독수리가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려 하는가?” “나는 상처만 입고 살아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그러자 대장 독수리는 자기의 날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몸을 한번 보아라. 지금은 내가 대장 독수리지만 나 또한 젊은 시절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왔지. 여기는 사냥꾼에 총에 맞은 상처, 여기는 다른 독수리들에게 습격 받은 상처, 또 여기는 나뭇가지에 찢겨진 상처란다. 이것은 나의 몸에 새겨진 상처일 뿐이지, 나의 마음에 더 많은 상처 자국이 생겨나 있단다. 하지만 난 그 상처자국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었지. 상처 없는 독수리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독수리일 뿐이니까.” 우리의 자녀가 독수리처럼 멋지게 비상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면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는 그들을 하늘의 제왕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장식일 뿐이다. 자녀에게 스스로 배우며 성숙할 기회,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기회, 죽고 싶을 정도의 공포감, 떨림, 두려움을 이겨내고 행동에 나서는 용기를 그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본인 외에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인생의 조연일 뿐이다. 유대인의 속담 중에 ‘부모는 활이고, 자식은 화살이다’란 말이 있다. 부모는 있는 힘을 다하여 화살이 멀리 나가도록 활시위를 당기고, 화살은 일단 활시위를 떠나면 그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가야하는 것이란 의미일 것이다. 또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의 이유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항구에만 있는 배는 어떤 곳에도 도달할 수 없다. 우리 자녀들도 부모의 보호아래 있을 때 가장 안전할지 모르지만, 자녀를 바다로 떠나보내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항해하지 못하는 의미 없는 배에 불과할 뿐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의 자녀가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멋진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경받는 부모가 가장 현명한 부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공동 제정한 ‘제1회 대한민국 스승상’ 시상식이 11일 교육문화회관 거문고홀에서 개최됐다. 조벽 심사위원장(동국대 석좌교수)을 비롯한 교육계 중진, 학자, 학부모 대표 등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1, 2차 심사를 거쳐 대상 한명과 각 부문별 수상자 9명 등 총 10명을 최종 수상자로 확정했다. 수상자는 ▲대상 조연주 전남 조도고 교사 ▲유아교육 부문 박춘금 광주 봉산유치원 원장 ▲특수교육 부문 최영수 인천 강남영상미디어고 교사 ▲초등교육 부문 천미향 대구 안일초 교사, 이건표 대전 산내초 교장, 김태선 제주 납읍초 교장 ▲중등교육 부문 김화연 서울 동도중 교사, 채찬석 경기 소사중 교장, 전용섭 경기 매현중 수석교사 ▲대학교육 부문 이명학 성균관대 교수다. 대상을 수상한 조연주 전남 조도고 교사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학생들이 사교육 없는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자비로 석식을 지어 제공하기도 했다. 조 교사는 “큰 상을 받아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며 “늘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교사, 기본에 충실한 교사로서 살아가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근정훈장과 상패가 수여됐으며 부상은 대상 2000만원, 부문별 수상자 1000만원이 주어졌다. 조벽 심사위원장은 “열악한 교육환경과 교직사회에 대한 일부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늘 사명감으로 묵묵히 제자들을 보듬어 온 선생님들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밝은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상은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헌신해 온 교육자를 찾아 참다운 스승상을 정립하고 스승 존경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11월 교과부의 ‘으뜸교사상’과 공제회의 ‘한국교육대상’이 통합되면서 새롭게 제정됐다.
“선생님의 숭고한 희생정신 깊이 애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학생들에게 안전띠를 매게 해 교통사고 대형 참사를 막은 담임교사가 제자는 살리고 자신은 세상을 떠나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원광여중은 12일 학교장(學校葬)으로 전교생이 참석한 가운데 고(故) 신명선 교사의 영결식을 가졌다. 김종천 교장은 “평소에도 학생들을 세심하고 꼼꼼히 지도하던, 정이 많은 교사였다”며 “그런 성격으로 이번에도 학생들을 지켜내고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어린 자녀도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양옥 교총회장과 이승우 전북교총 회장 등 교총대표단은 영결식에 참석해 전국의 교육자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안 회장은 이 자리에서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육활동 중에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 신명선 선생님과 유가족께 전국의 교육자와 함께 조의를 표한다”면서 “선생님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깊이 새기고 더욱 학생교육에 매진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충남 논산에서 열린 ‘제31회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도 참석한 교육자들이 함께 묵념을 하는 등 고인의 뜻을 기렸다. 10일 제주 한림읍 금능사거리에서 전북 익산 원광여중(교장 김종천) 2학6반 학생 34명을 태운 전세버스가 교차로를 지나다 왼쪽에서 오던 15t 트럭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담임 신명선(39) 교사가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하지만 학생들은 당시 대부분 안전띠를 매고 있어 5명 정도만 찰과상을 입는 등 대형 참사를 피했다. 신 교사가 학생들이 버스에 탑승한 직후 “안전띠를 매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이날 사고로 숨진 신 교사는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타고 있었는데 트럭이 운전석 쪽을 들이받아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교사는 버스가 출발한 지 5분밖에 되지 않아 학생들을 돌보다 미쳐 안전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2학년 담임으로 음악을 가르치던 신 교사는 원광중에서 근무하다 5년 전 원광여중으로 옮겼다. 피아노를 전공해 평소 음악 등 예술을 통한 인성교육과 정서순화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남편 이현호 교사도 같은 재단인 원광여고에 재직 중인 부부 교사다. 슬하에는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인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선생님! 전해지지 않을 글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제 슬픔과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어 이렇게나마 보내어 봅니다. 지난 2000년 처음 뵌 후로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모습과 음성이 아직도 생생한데 오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는 온종일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부디 편해지셨길 바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제자들을 남기고 먼저 떠나시는 것이 얼마나 슬플지 가늠할 수조차 없으나 부디 행복한 곳으로 가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중략…) - 학급 홈페이지 애도의 글 중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년 스승의 날을 전후해 치러지는 교육주간이 금년으로 벌써 60회째를 맞는다. 교육주간은 1953년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교단을 교육자의 힘으로 재건함으로써 교육구국을 실현하자는 선배교육자들의 고귀한 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처럼 뜻깊은 교육주간을 맞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공교육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안타깝고 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해 12월, 급우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대구의 한 중학생이 자살한 데 이어 교육 당국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실태조사 과정에서도 경북 영주의 중학생 한 명이 또다시 아까운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따뜻한 교육공동체가 답이다 지난 달 발표된 교육당국의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그야말로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20%대에 불과한 회수율과 중복 응답, 응답 학생들보다 답변지가 많이 걷힌 학교도 있는 등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수조사(全數調査)를 한다며 25억원의 막대한 혈세(血稅)를 들이고도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졸속 행정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나 의견 충돌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같은 다툼이 아이들 사이의 단순한 갈등 수준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지(死地)로 내몰 수 있는 조직폭력배 수준의 ‘폭력’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학교폭력은 전시행정이나 사법당국의 처벌만으로 근절되기 어렵다. 스쿨폴리스제도 도입 등 물리적 개입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와 사랑과 배려에 기반한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데 있다. 또한 그럴듯한 명분으로 교육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련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일부 교육청에서 시행중인 학생인권조례는 교사의 권위주의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교권을 심각하게 훼손함으로써 새로운 양상의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마디로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한국교총에서는 이번 교육 주간을 맞아 ‘학생 생명 및 학교 살리기 범국민운동’의 일환으로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스승의 날 전후 1주일을 ‘행복한 교실, 따뜻한 교실’이라는 주제 하에 ‘학교폭력 근절 주간’으로 운영한다. 이 기간 동안 학교폭력 근절 포스터와 교육주간 주제해설집을 배포하고 ‘우수 생활지도사례 및 교육사진’을 공모해 학교현장에 제시하고,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라디오 광고 등 범국민운동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현장의 교원들이 스승의 날을 맞은 축제의 기간인 교육주간 동안에도 제자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만큼 교육당국도 이제는 제 몫을 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 이후 학교현장은 체육수업시수 확대로 다 짜놓은 교육과정을 바꾸고, 복수담임제 및 생활지도 도움카드 시행 등 성과 중심의 교육활동에 매달리느라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학교와 교사에게 학생의 모든 것을 파악하라는 것은 사실상 무리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학교폭력을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절대다수의 교원들은 묵묵히 부여된 업무에 최선을 다한 만큼, 교육당국의 학교폭력 실효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교육당국의 노력 뒷받침돼야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보다 학교 당국과 일선 교사들에게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데 있다.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를 깨우면 눈을 부라리며 교사에게 대드는 아이들이 있는 한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겉돌 수밖에 없다. 또한 교육당국은 대책을 위한 대책만을 양산하기보다는 교사들의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학생 상담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장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공교육 붕괴에 대한 위기국면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총이 교육주간 슬로건으로 내건 ‘행복한 교실, 따뜻한 교실’이라는 화두가 오늘날의 학교와 교실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교단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교육주간을 설정하고 교육구국에 헌신한 선배교육자들의 희생정신이 아직도 뜨거운 함성이 돼 오늘의 교단을 응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학교폭력으로 어린 생명이 스러지는 아픔은 결코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할 시대적 소명이다. 한국교총은 교육주간을 맞아 18만 회원은 물론이고 50만 교육자의 염원을 모아 행복하고 따뜻한 교실을 만드는 데 온 몸을 던질 각오로 교육구국에 임할 것이다.
신개념 놀이문화 ‘라이프 밴드 쌩’으로 유명한 ㈜지에스엘앤씨(GS LC)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기부에 나섰다. GS LC는 10일 인천운봉공고(교장 허훈)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5000여 만원 상당의 ‘라이브밴드 쌩 시스템’을 학교에 기증했다. ‘라이브밴드 쌩’은 최소 2~4인이 팀을 이뤄 키보드, 기타, 드럼, 보컬 등 각자 역할을 맡아 자신들 만의 무대에서 밴드연주를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 공간으로 전문적인 훈련과 오랜 연습이 필요한 실제 밴드와 달리 누구나 쉽게 키노트를 따라 밴드 수준의 연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운봉공고 학생·교사의 동아리활동, 방과 후 학습에 ‘라이브밴드 쌩’ 교육프로그램 지원하고 경연대회를 여는 등 인성교육 강화와 학교폭력 예방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허훈 교장은 “올바른 청소년 문화 환경조성이 절실한 현실에서 라이브밴드 쌩이 학생들의 소질 계발과 건전한 놀이문화 확산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GS LC는 현재 16개 시·도교육청에 ‘라이브밴드 쌩’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하고 업무협약을 추진하는 등 교육기부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안창돈 GS LC 대표는 “학생들이 ‘라이브밴드 쌩’을 통해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고 협동․이해․배려하는 마음을 키웠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학생들이 불건전한 놀이문화에서 벗어나 자기계발이 가능한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연녹색 잎새가 짙어가는 푸르른 5월에는 어린이날, 스승의 날을 비롯해 각종 기념일이 많다. 그리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급 학교에서는 교육실습을 갖는다. 가끔씩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다른 활동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이런 교사가 되지 않으려면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교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다. 필자가 학창시절에 봤던 선생님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면서 박봉에 시달리셨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가는데 궁핍함을 하소연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를 받고 퇴직한 두에는 연금으로 노후도 보장된다. 그런데 작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 목에 핏대를 세우는 선생님들을 만날 때에는 동료인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교직사회를 떠나는 것이 본인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교직은 벼슬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흔히 교사를 천직이라고 한다. 교사는 하늘이 내려준 천직(天職)이기도 하지만, 선생님 똥은 개도 먹지 않을 만큼 숯검정처럼 새까맣게 속을 태우는 힘든 천직(賤職)이기도 하다. 물론, 교직사회에서 관리자로 승진을 꿈꾸는 선생님들이 계신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교사의 본분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까지 승진에만 매달리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몹시 화가 난다. 출세나 영달을 꿈꾼다면 교단에 서기보다 정치가나 관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교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성실하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친절하게 돌보는 일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작물의 상태를 살펴 벌레를 잡아주고, 메마른 곳에는 물을 대고, 거름이 부족한 곳에는 비료를 뿌리며 작물을 정성껏 가꾼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상태를 살피고 알맞은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정성스런 관리인이어야 한다. 아침에 등교해 학생들의 출결과 건강을 살피고, 수업시간에 정성을 다해 가르치며, 학생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가슴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학생들이 하교한 교실을 돌아보고 퇴근하는 선생님이 돼야 한다. 교사는 또한 학생들을 가족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다. 요즘 학생들은 10년 전, 5년 전의 학생들과도 많이 다르다. 가정 해체로 부모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혼자 버려진 아이들은 학교 공부보다 다른 일에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하지 않는다고 야단치기 전에 공부할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교사들이 할 일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교사다. 그리고 교사에게 담임만큼 복되고 보람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담임업무를 기피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런데 졸업한 제자들이 성장해서 선생님들을 초대하거나 주례 부탁을 한다. 이때 자신들과 고락을 함께한 담임교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을 보면 역시 교사는 담임을 맡았을 때가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다. 좋은 담임교사는 학년 초에 가정방문도 하면서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교사와 학교에서 보호하거나 도와줄 필요는 없는지 두루 살피고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공교과에 대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먼저이지만,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해 학생들한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선생님은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교사로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전공 교과목에 대해서는 남다른 노력으로 학생들에게 실력이 있는 교사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학업을 지도하는 일 이외에도,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을 계발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공부보다 더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공부가 조금 부족해도 좋은 습관을 형성하고, 체력을 관리해 건강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좋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학생들의 삶은 훨씬 윤택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직장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과지도만 하느라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동료교사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다. 교직에 임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를 충실히 하면서 자기 직장을 밝고 즐겁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내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제31회 스승의 날 "대한민국 교육에 희망을" 한국교총은 12일 오전 11시 스승의 날 행사 발원지인 충남 논산 문화예술회관에서 제31회 스승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김종성 충남도교육감, 이인제 자유선진당 대표 등 각계 인사와 학생, 학부모 600여명은 스승존경의 의미를 되새겨 교육본질을 회복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해 교육공동체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굳게 결의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교육은 양적·질적으로 성장을 이뤘지만 최근 인성교육 약화가 교육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한국교총은 학생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학부모·시민 사회단체와 함께 '학생생명 및 학교살리기 범국민운동'을 적극 전개하겠다"며 각계각층의 동참과 지원을 당부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최근 우리 교육은 세계 여러 선진국들이 겪어 온 것처럼 인성교육 측면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며 "이런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정과 사회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잘 살펴보고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학생대표로 참석한 충남 강경고 황종성·오정인 학생은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과 죄송함이 가득 담겨 있는 감사의 글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요즘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교권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면 선생님의 슬픈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밝은 모습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을 보면 저희도 더욱 힘을 내어 힘을 드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며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학교가 위기라는 말,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이 더 이상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는 유공교원 및 공로자 등에 대한 시상도 함께 이뤄졌다. 한국교총 특별공로상은 서울 김정표 교사 등 34명, 교육공로상은 양인모 충남 입장중 교장 등 3671명, 교육가족상은 조인기 서울 신동중 교사가족 등 10가족, 교육명가상에는 이재석 대구 상서여자정보고 교장가족 등 10가족이 선정됐으며, 교원은 아니지만 교육발전에 공헌한 개인 및 단체에 수여하는 독지상은 정은숙 경북 금락초 학부모회장 등 13명에게 주어졌다. 또 곽승근 순성초 교사 등 27명은 교과부 장관 표창을, 이형순 부여고 교사 등 22명은 충남도교육감 표창을 받았고, 우제란 신사초 교사 등 43명에게는 충남교총 회장 표창이 수여됐다.
대학원 시절의 어느 날이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 들렀다. 교수님께서는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 이유를 여쭤 보니, 교문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시는 중에 길거리 좌판상에서 눈에 띄는 액자가 있어 두 개를 사 오셔서 책상 앞면 벽에 걸려고 하는 참이라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그 액자들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는 지휘자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지휘봉을 들고 있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발레리나가 허리를 숙여 발레 슈즈를 여미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별 것도 아닌 싸구려 액자들을 사 놓고 싱글벙글해 하시는 교수님을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그 사진들이 주는 의미를 설명하셨다. 즉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를 하기 직전에 최선을 다해 지휘를 하겠노라는 마음가짐과 발레리나가 무대에 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슈즈를 점검하는 마음가짐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면서, 바로 교사도 항상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즉 늘상 있는 강의를 교사는 태만한 자세로 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싫증을 내기도 하면서 시간 때우기식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림의 지휘자나 발레리나처럼 강의에 들어가기 직전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번 시간 강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도 강의에 들어가시기 전마다 그 액자의 사진들을 보면서 태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불식하고 최선을 다하는 강의를 하겠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책상 앞에 걸어 두고자 한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머릿속에는 항상 교수님의 말씀이 맴돈다. 특히 강의준비가 덜 됐거나, ‘몸이 피곤하니 대충 강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예외 없이 교수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할진대, 교사의 학생들에 대한 열과 성의는 최선의 교육내용이자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사론의 핵심인 것이다. 학부시절에 수강한 교사론 과목의 내용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교수님이 잡담 삼아 무심코 우리한테 하신 말씀은 평생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바로 이것이 잠재적 학습이다. 이처럼 잠재적 학습의 교육적 효과는 지대하다. 그런데 이런 잠재적 교육은 교사가 의도적∙계획적으로 준비해 와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묻어 나오는 의도하지 않은 교육의 한 형태다. 이처럼 교육에서 교사의 인격적 모범은 가장 최선의 교육내용이자 교육방법인 셈이다. 그러기에 옛말에도 “참된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먼저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師, 敎人以道者之稱也)”라고 했으며, “스승은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師者, 人之模範也)”라고 하지 않았던가? 교육의 핵심은 인격적 만남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경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의 인격적 모범과 그것에 토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만남’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러한 교육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 필자를 16년이나 지도해 주신 대학의 한 은사님이시다. 페스탈로찌를 전공하셨던 선생님께서는 한때 김교신 연구에 심취하시다가 김교신 인물평전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책에서 말한 김교신의 인격적 특질을 학자적 기질, 예술적 기질, 지사(志士)적 기질, 종교적 기질, 감읍(感泣)적 기질로 논했는데, 바로 그런 기질들이 이제와 생각하니 선생님의 기질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신에게 김교신이라는 인물은 교육적으로 하나의 모범이 되는 상이었으며 그런 역사적 인물과의 ‘만남’과 흠모를 통해 당신의 교사상과 교육관을 재정립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사실 이 시대 교육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들이 따라야 할 인격적 모범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런 시대에 필자는 훌륭한 스승의 곁에서 16년 간이나 당신의 삶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으니 어찌 행복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런 모범을 오랫동안 접하고도 지금까지 언행 하나 반듯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능함을 오늘도 자책할 뿐이다.
전담경찰관 확대·전문성 키울 것 생활지도교사 명예경찰 위촉·지원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전 경찰력을 집중해 학교폭력에 대응해오던 경찰청(청장 김기용)이 5월부터 정책 방향을 크게 바꾼다. 그동안 경찰 주도로 이루어져 오던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가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경찰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교사 명예경찰관 위촉 등 교권확립을 지원하고 학교폭력 전담경찰관을 확대 배치하는 등 내실화 대책도 추진된다. 이에 대해 경찰청 홍익태(52·사진) 생활안전국장은 “학교폭력 대응 방식을 체계화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경찰-학교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학교폭력 문제에 공동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학교폭력 대응을 학교 주도로 바꾸는 이유는. “경찰청은 일진 등 불량서클의 고질적인 학교폭력을 조속히 근절되는 수준으로 낮추고 학교가 스스로 학교폭력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을 목표로 근절 대책을 추진해왔다. 경찰력을 집중해 주도적·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학교폭력 신고 건수가 전년대비 156배 증가하고 일진 등이 관련된 심각한 학교폭력이 다소 위축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범사회적으로 지속 추진해야 할 과제로 학교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학교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학교 전담경찰관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청에서도 ‘학교폭력 전담경찰관 제도’가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내실화 방안으로 전담경찰관이 306명에서 514명으로 늘어나고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전원 ‘학교폭력 상담․예방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할 계획이다. 전담경찰관은 경찰과 학교의 핫라인으로 범죄예방교육,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참석, 피해사례 접수 등 학교폭력 대응활동만 맡게 된다.” -교권확립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을 하나. “앞으로 학교가 주도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면 교원의 학생지도 역량 강화 등 교권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반대로 경찰도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학생부장 73명을 명예경찰로 위촉한 제주도의 경우처럼 학교별 생활지도부장을 명예경찰로, 전담경찰관을 명예교사로 위촉해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명예경찰로 위촉된 교사들에게는 명예경찰증을 수여하는데 이전보다 학생지도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내실화 방안에는 지역사회 연계도 강조하고 있는데. “학교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가정·지역사회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찰청-한국교총, 13개 지방경찰청-시․도교총이 업무협약을 맺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찰·광주시·교육청·학교·학부모가 한마음으로 ‘학생사랑지역협의회’를 구성해 결손 학생에 대한 후원,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 확대 등을 위해 협력하기로 한 광주의 경우처럼 지역 실정에 맞는 지자체․교육당국 등의 협력 사례를 발굴해 전국에 알리고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또 Wee센터,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와 연계해 사법처리 단계 이후에도 가해·피해 학생들을 도울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