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51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교육자치안전정책관 전진석 ▲학생건강정책국장 이해숙 ▲부산광역시교육개혁지원관 파견 이강복 ▲인재정책기획관 전담 직무대리 이주희 ▲의대교육지원관 전담 직무대리 김홍순 ▲고등직업교육정책과장 최보영 ▲기초학력진로교육과장 정윤경 ▲운영지원과 지원근무 김태경 ▲운영지원과 지원근무 김진형 ▲장관 비서실장 최민호 ▲홍보담당관 차영아 ▲예산담당관 김아영 ▲혁신행정담당관 유희승 ▲인재양성지원과장 구본억 ▲지역혁신대학지원과장 안주란 ▲대학경영혁신지원과장 이홍복 ▲평생학습지원과장 이진영 ▲의대교육지원과장 최현석 ▲의대교육기반과장 윤혜준 ▲학부모정책과장 황지혜 ▲인성체육예술교육과장 김효신 ▲학생건강정책과장 김새봄 ▲디지털소통팀장 박현정 ▲교육데이터기반성과분석팀장 박형식 ▲이주배경학생지원팀장 강현 ▲교원양성연수과장 이종원 ▲영유아교원지원과장 이병승 ▲교육시설담당관 최문태 ▲글로벌교육정책담당관실 김수정 ▲운영지원과 지원근무 최윤정 ▲한국체육대학교 최경 ▲경상국립대학교 배정익
교사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도덕 시간에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단원을 가르칠 때입니다. 제자들이 가장 본받고 싶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인물로 저를 꼽아줄 때,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를 더욱 나은 교사로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 분이 계셨습니다. 12일가천대의과대학에서 열린 가천 효행 대상 시상식에서 저는 효행 교육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등 30여 차례의 장관상 수상 경험이 있었지만, 이 상은 저에게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효’를 실천하고 효행교육을 통해 제자들에게 효도의 마음을 심어준 교사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시상식에는 가천대설립자인 이길여 총장님께서 직접 참석하셨습니다. 총장님에 대해 ‘젊음을 유지하는 분’이라는 막연한 이미지 정도만 알고 있던 저는, 이날 시상식을 통해 총장님의 삶과 철학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총장님께서 입장하실 때 병원장님과 내빈, 그리고 인천 신명여고 학생들이 보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박수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이길여 총장님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시상식 중 총장님의 삶을 담은 영상을 보며, 그분의 걸어온 길과 정신이 얼마나 숭고한지 깨달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영상은 단순한 상 수여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타인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을 되새기게 하는 강렬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특별한 경험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수상자와 학생들이 총장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고, 특히 신명여고 학생들이 총장님과 악수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을 보며 존경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총장님과 악수하면 일주일 동안 손을 안 씻겠다”는 농담을 하거나, “총장님 옆에서 사진 찍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연예인이 아님에도 이렇게까지 진심 어린 존경을 받는 총장님의 모습을 보며, 존경받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총장님께서는 직접 시상식에 참석해 모든 수상자들과 기꺼이 사진을 찍고 격려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총장님의 젊음과 행복의 비결은 단순히 외적인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철학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총장님께 직접 격려의 말씀을 들으며, 사람의 삶은 자신의 노력과 철학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존경받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삶으로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다른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이길여 총장님을 통해 저는 존경받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단순히 말씀이나 글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진정한 리더십과 헌신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저는 가천 효행 대상의 상금 500만 원에 제 기부금 500만 원을 더해 1+1로 천만 원 기부를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부금이 총장님의 철학을 이어받아 효를 실천하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실천한 작은 나눔이 새로운 세대에게도 ‘효’의 가치를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삶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묻는 제자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답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선생님으로서의 길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오늘의 깨달음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이는 학생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이자 공통된 질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학습법이 세간에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과 개성이 각자 다르듯이 공부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 성인(聖人)들이나 천재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여기선 개략적이나마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공부와 사색의 조화, 전통적인 격물치지(格物致知) 학습법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당시 최고의 현자로 불리던 소크라테스는 일명 ‘산파술’의 교육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받고 순간에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그의 완전학습을 위한 교육 방식인 산파술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그게 무엇인가?(What?)”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는 선입견, 편견, 자기의 생각, 현재의 잘못된 앎을 검토하게 하면서 무지 자각, 즉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게 한다. 그런 후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생각의 각도를 조금씩 틀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균형적 사고, 구체적 사고,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고 연습하도록 하여 결국 ‘온전한 앎’에 다가갈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는 학습법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성군 세종대왕은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 중에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100번 넘게 읽었다고 전한다. 이른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의 전통적 공부법의 실천이다. 이는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연 경연에서 교재로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성군 정조대왕은 《대학연의》를 보충해 주석을 단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항상 책상 위에 놓고서 매년 1회 이상 통독을 했고 두 번 필사했다고 한다. 《대학연의》는 총 43권 12책으로 이중 절반 가까이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선의 두 성군의 두뇌는 격물치지를 통해서 단련되었다고 본다. 청나라의 위대한 황제인 강희제를 비롯한 중국의 황제들도 모두 이런 격물치지 비법으로 두뇌를 단련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격물치지란 무엇인가? 이는 동서양의 인문학 거두들이 공부한 학습법으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완전하게 앎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서 우주와 만물의 원리를 이성적으로 사색하고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원리와 상통한다. 실학자 정약용은 “격물치지 없는 독서는 백 번, 천 번 읽어도 전혀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독서 중에 의미를 깨닫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 뿌리를 알고, 그 글자가 쓰인 문장이 완벽하게 이해될 때까지 치열하게 연구하고 사색할 것을 권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할 수 있다. 격물치지 공부법은 고대 서양에서, 그리고 조선시대와 중국의 역대 황제 시절에만 통용되는 고전학습의 비법이 아니냐고 말이다. 결코 아니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일군 1등 공신인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 성공의 비결로 격물치지를 내세웠다. 그는 퇴임 시에 현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게 붓글씨로 쓴 격물치지 액자를 선물했고, 삼성전자의 전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삼성전자는 격물치지를 통해 혁신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이 된 LG그룹 구자경 전 회장도 입사 초년생들에게 “여러분에게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의 덕목을 당부합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지식이 쌓이고 여기에 남다른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해질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이 생깁니다”라고 당부했다. 역사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 문명의 부흥,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태동, 아인슈타인이 우주와 시공간의 이치를 파고들어 탄생시킨 상대성 이론, 라이프니츠를 이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이 수와 논리와 기계의 이치를 탐구하여 창조해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컴퓨터의 개념(원리)과 구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이 인터넷의 이치를 탐구하여 만들어 낸 구글 등이 모든 것들이 바로 격물치지의 찬란한 증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초중등학교에서는 어떻게 격물치지 학습법을 체득하고 습관화함으로써 평생교육의 기초를 닦을 수 있을까? 공부도 무엇보다 사색을 기반으로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즉,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 어려서부터 이를 몸에 배도록 체질화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서 전통적인 격물치지 학습법에 다가설 수 있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이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이타적인 삶의 목표를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이 낳은 석학이자 세계은행 총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의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용 교수는 “세상을 향한 너의 꿈은 무엇인가?”를 외치며 어린 시절부터 의지를 키웠다고 한다. 둘째, 책을 읽고 치열하게 사색하도록 해야 한다. 《논어》에서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고 했다. 읽고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공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살아갈 지식의 기반을 쌓게 될 것이다. 셋째, 자기의 생각을 글로써 작성하여 토론하고 발표하며 결과물을 남기게 해야 한다. 지금은 ‘만인저작시대’라 불린다. 이로써 생각이 정리되고 현장에서 몸소 체험함으로써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해져 세상을 변화시킬 역량이 축적될 것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3단계를 거치면서 개인적인 성찰과 수양을 거쳐 자기 성장을 이루고 나아가 모든 우주 만물과 현상에 대하여 치열하게 탐구하고 사색함으로써 격물치지 학습법을 점차 완성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교육부는 ‘2024 대학 규제혁신 우수사례 공모전’ 대상에 울산대가, 우수상에는 부산외대와 경상국립대가 각각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대상을 받은 울산대는 울산시민과 산업체 재직자를 대상으로 교육의 폭을 넓힌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울산 외곽지역에 위치해 교통편이 불편하다는 시민과 산업체 재직자의 의견에 따라 울산대는 지난해 교지·교사를 임차해 활용할 수 있도록 개정된 ‘대학설립・운영규정’ 을 활용했다. 도심 및 주력산단 6곳에 멀티캠퍼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우수상을 받은 부산외대와 경상국립대는 소단위 전공과정 등을 적극 활용해 융·복합 교육을 잘 추진했다는 평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소단위 전공과정의 운영 근거가 마련되고 학생의 전공선택권이 폭넓게 허용되면서, 두 대학은 학과·학부 칸막이를 과감히 제거하고 융·복합 교육과정을 적극 도입했다. 부산외대는 전체 51개 학과(전공) 교육과정을 296개 소단위 전공과정(모듈 교육과정)으로 전면 개편하고 전체 학과(전공) 대상으로 전국 최대 규모(1425명 대상)의 무전공 자율전공선택제를 도입했다. 경상국립대는 빅데이터, 항공·드론, 반도체 등 12개 분야 55개 소단위 전공과정을 신설했다. 심민철 인재정책기획관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정부의 규제혁신 노력이 각 대학의 여건에 맞게 자율적인 교육혁신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고등교육 전반에 걸친 규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과감하게 개혁하고 대학 현장의 자율적 혁신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학규제혁신 우수 적용사례 공모전’은 규제개선 성과가 대학의 혁신 동력이 될 수 있도록 대학의 우수 혁신 사례를 공유·확산하기 위해 올해 처음 개최됐다. 이번 공모전에는 학과·학부 원칙 폐지, 기관 간 협약을 통한 협동수업 제도 신설, '대학설립·운영 규정'상 4대 요건 완화에 따른 고등교육 기회 확대 등 그간의 규제 개선 내용을 토대로 대학의 혁신 사례 30건이 제시됐다. 1단계 전문가 평가 및 2단계 소통24(https://sotong.go.kr)를 통한 온라인 참여형 국민심사 과정을 거쳤다.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한국교총이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했다. 또 부상자의 조속한 쾌유도 기원했다. 교총은 30일 논평을 내고 “국가의 국민에 대한 첫 번째 의무는 ‘안전한 나라’”라며 “정부와 지자체, 여·야는 믿기지 않는 사고에 무너진 유족을 보듬고 위로하는 일에 우선 협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고 빈틈없는 후속조치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주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의 슬픔과 함께하고 회복 지원에 적극 나설 것임을 천명한 교총은 “이번 사고는 사회적 참사로 남이 아닌 가까운 이웃, 아끼는 동료, 둘도 없는 친구의 일”이라며 “사회 각계가 아픔을 나누고 유족들이 조속히 치유·회복될 수 있도록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와 전남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번 제주항공 항공기 추락 참사로 인한 사망자 중 초·중·고 학생은 11명, 교직원은 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는 현재 상황전담관리반을 꾸려 시·도교육청과 24시간 비상연락체계를 구성한 가운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함께 학사지원, 심리 치료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 제2기 위원을 위촉했다. 지난 제1기 위원들 사이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대입 개편 관련 사전 유출 논란이 불거진 후 갈등이 지속되자 재구성에 이른 것이다. 국교위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0차 회의를 개최하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 제2기 위원 위촉(안) 심의, 교육정책관계자 협의회 구성 및 운영계획(안) 심의,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관련 국가교육발전 연구센터의 발제와 위원 간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국교위는 지난 11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된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외 19명의 위원을 확정했다.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 동안 추진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관련 자문과 사전검토 등을 수행하게 된다. 앞서 ‘제1기’ 전문위는 대입 등 개편 관련 논의를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 이원화 방안과 논·서술형 평가 도입 등 일부 의견이 외부에 유출돼 내홍을 겪었다. 위원들 간 갈등 속에서 일부는 사퇴하는 등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재구성 절차를 밟게 됐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은 “지난 11월에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 재구성과 공동위원장 신규 위촉(안)을 의결한 데 이어, 전문위 위원님들에 대한 위촉(안)을 오늘 의결한다”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제2기 전문위를 새롭게 구성하는 만큼 많은 위원님들께서 전문위에 요청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교위는 이날 교육정책관계자 협의회 구성 및 운영계획(안)도 심의 후 의결했다.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등과 관련해 관계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와 의견 수렴을 위해 추진되는 안건이다. 협의회는 국교위 사무처장을 의장으로, 교육부 등 11개 관계 중앙행정기관 고위공무원, 17개 광역 지자체 및 시・도교육청 국장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중장기 주요 의제(안)’에 대한 국가교육발전 연구센터 발제가 진행됐다.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관련 ▲생애주기별 맞춤형 평생학습 기회 보장 ▲지역과 함께하는 진로・직업교육의 강화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교육 기반 마련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교육 난제 해결 등을 논의했다. 국교위는 지난 9월 출범 2주년 대토론회에서 ‘12+1대 주요 방향(안)’을 제안한 후 3차례 회의를 통해 고등교육 분야 및 유・초・중등교육 분야와 관련한 연구센터의 중장기 주요 의제(안) 발제를 진행한 바 있다. 국교위 관계자는 “이날 발제로 교육 전 영역을 개괄하게 됐다”고 전했다.
순천효천고(교장 조선용)는 19~20일,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과 한자어 이해를 돕기 위한 특별한 행사를실시했다. 첫날인 19일에는 김광섭 강사가'한자어 이해가 학력을 좌우한다'를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을 수강한학생들은 한자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의미가 현대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학생들은 "한자는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한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또한, 강사님이 강조한 "꿈이 내 삶을 이끌어간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며, 한자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20일에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사자성어 탐구행사'를 개최하였다. 학생들은 사자성어의 의미와 쓰임에 대해 그룹토론을 진행하며, 평소 자주 사용하지만 정확한 뜻을 잘 알지 못했던 한자어들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사자성어 경시대회에서는 1학년 황OO학생이 1등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황 학생은 "사자성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제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지혜와 교훈을 통해 삶의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은 단순한 대회 참여를 넘어,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한자와 사자성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고,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제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학년 박OO학생도 이번 대회에 적극 참여하였다.박 학생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여러 사자성어의 뜻과 쓰임을 공부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더욱 커졌습니다. 또한, 다른 참가자들과의 경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열정과 노력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사자성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이를 통해 저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순천효천고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내년에도 확대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한자어와 사자성어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이를 통해 학업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조선용 교장은"학생들의 문해력 향상과 학습 동기를 높이는 기회로 이번 행사가 매우의미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북 점촌북초(교장 하미경)가 26일 '동물복지국회포럼'에서 주최하는 제6회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시상식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점촌북초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학교 교육과정에 동물복지교육 과정을 편성·운영하면서 미래세대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동물복지 의식과 문화를 확산시키고 미래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하미경 교장은 "학생들이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생명 존중과 배려심을 키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왔다.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욱더 동물복지 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대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는 특히 초등학교 최초로 동물복지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점촌북초등학교가 수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충북 충주예성여고(교장 정문희)는 24일 1학년을 대상으로 선비문화수련 수업을 실시하였다. 7명의 지도위원이 '선비문화 실천의 길', '나를 깨우쳐 줄 퇴계선생', '예절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를 주제로 각 교실에서 실시하였다. 충주예성여고는 1981년도에 설립하여 40회 졸업생 184명을 포함하여 총 1만3715명을 배출한 충주의 명문교이다. 1992년도에는 축구부를 창단하였고, 2005년에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최우수학교 대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교육 실적을 올린 학교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학교비전은 '바른 품성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예성인'이며, 교육목표는 '맞춤형 교육과 존중하는 학교문화 조성으로 미래학교 만들기'로 전 교직원이 교육에 열정적인 분위기이다. 정문희 교장의 학생 독서 지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이런 노력의 결과 올해도 서울대 의대 합격생을 배출하였다고 전한다. 선비수업 준비를 위하여 들어서자 마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분이 '행운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여 지도위원들에게전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이런 이벤트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신기하게 보였다. 선생님, 학생들에게도 깜짝 준비로 실시하였다니 아이디어가 놀랄만하다.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소통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를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 현장 등 혼란을 이유로 제의요구를 제안했다. 교육부는 26일 총 11개 교육부 소관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의결 법안 중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교과용도서(교과서)의 정의와 범위를 법률에 직접 명시하면서 도서 및 전자책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AIDT의 사용 여부를 교육부 장관이 아닌 학교장 재량에 따르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법 개정안 시행은 공포 후 즉시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AIDT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된다. 이에 따라 최종 공포 시 내년 신학기부터 초등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교 1학년에 도입하려던 교육부의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학교 현장과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교육부 장관으로서 재의요구를 제안할 예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지만, 사용을 희망하는 모든 학교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방안을 시·도교육청과 함께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의 법적 근거를 법률로 상향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을 정상화하는 경우 전·현직 이사협의체와 학내구성원 대표기구 등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도록 의무화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각각 통과됐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서는 수능 출제 참여 전 사교육 영리 행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과세정보 조회 근거가 마련됐다. 폐교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 학교복합시설 설치 및 운영·관리에 관한 법률,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처리됐다. 또한 학생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해 교사 혼자가 아닌 학교와 교육청 등이 함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도시형캠퍼스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제정안이 의결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으로 학생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맞춤형 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마련되고, 학폭 전담조사관의 학폭 사안 처리 공정성과 객관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는 “사학의 공공성과 자주성의 균형이 필요한데, 전·현직이사 측의 이사 후보자 추천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해사학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권보호, 개선 기대… AIDT 후속대책 시급” 교총, 교육 법안 통과 입장 한국교총은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하도록 명시된 개정 교육기본법,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의 법적 근거를 담은 개정 학폭예방법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봤다. 교총은 “학교 현장에 적용될 교육기본법, 학생맞춤통합지원법, 학폭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법 개정으로 교권이 더욱 보호되고 교육 현장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행령 개정과 철저한 준비가 더 중요한 만큼 교육 당국은 후속 조치 만전으로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도록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해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함으로써 더욱 보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를 근거로 시·도교육청별로 더 많은 교권 보호 예산 확보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관련 조례 제정이 이루어지는 근거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개정 교권 5법이 시행됐지만 현장 안착에는 한계가 있어 여전히 학교 현장은 문제행동 학생의 증가, 악성 민원, 툭하면 아동학대 신고 등 교권 침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교총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과 관련해 “부처·사업별로 분절된 지원에 따른 사각지대를 없애고,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해 맞춤형 통합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돼 의미가 크다”고 기대했다. 다만 교원의 행정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등이 협력체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교총의 설명이다. 이번 법안심사과정에서 제외된 ‘보호자 동의 없이 학생에 대한 긴급지원 가능’ 등 실효적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AIDT를 교과서 대신 교육자료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대해서는 “정치에 따라 교과서 정책이 요동치며 자칫 소송 분쟁까지 더해져 학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총은 “AIDT의 활용 여부와 관련한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 차원의 협의를 지속해 합의점 도출과 대책 마련을 바란다”고 주문했다.
경기교총(회장 이상호)과 경기교육청은 23일 도교육청에서 ‘2024년도 단체교섭·협의’ 상견례(사진)를 갖고 본격 단체교섭 협의에 들어갔다. 경기교총은 상견례에 앞서 ▲교원 인사 및 임용제도 개선 ▲교원복지 및 근무 여건 개선 ▲교권 및 교원 전문성 신장에 관한 사항 ▲교육환경 개선 ▲전문직 교원단체 지원 등 38개 조, 45개 항을 교섭과제로 제안했으며, 사전 실무협의를 거쳐 교섭 요구(안)을 확정했다. 주요 요구안은 근무 여건 개선 및 보결수당 인상, 맞춤형 복지 포인트 증액, 교권보호지원센터 전문인력 확대, 퇴직예정교원 연수 지원, 학교 성 관련 위원회 교육지원청 이관 등이다. 이상호 회장은 인사말에서 “현재 학교 현장은 교권 추락과 열악한 교원 처우, 학생 지도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교원이 중도 퇴직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교권 보호, 교원 근무 여건 개선, 행정업무 경감, 복지 확대 등 현장 교원의 의견이 반영된 소중한 교섭안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합의에 도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북교총(회장 오준영)은 교원 사기 진작과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2024 전북교총회장배 교직원 배드민턴 대회’를 21일 전주 덕진 실내배드민턴장에서 개최했다. 13개 부문 72개 팀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김다영(익산동궁초)·노성호(함열초) 조가 혼합복식 초급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또 남자복식 20~30대 A급 경기 1위는 김기종(원광중)·이상현(군산영광여고) 조에게 돌아갔다. 오준영 회장은 “최근 교권 추락과 교권 침해로 인해 교원 사기가 많이 떨어지고 학교 분위기도 흉흉하다”며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생과 학교가 즐겁게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 만큼,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해 다양한 복지 행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교·대학원 졸업생 취업률이 조사 대상 변경 등의 이유로 7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하지만 매년 하락 추세인 교대는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전국 고등교육기관의 2022년 8월·2023년 2월 졸업자 64만6062명을 대상으로 2023년 12월 31일 기준 취업 현황을 분석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결과를2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8월과 2023년 2월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중 취업자는 38만9668명으로 취업 대상자 55만4281명의 70.3%다. 전년의 69.6%과 비교하면 0.7%포인트(P) 높다. 해당 조사에서 취업률 70% 돌파는 처음이지만 이전과 조사 대상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조사부터 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원격대학, 기술대학, 전공대학, 사내대학.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대학원대학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학교 유형별 취업률은 대학원이 82.4%로 가장 높고, 전문대학 72.4%, 일반대학 64.6%, 교육대학 59.5% 순이다. 일반대, 전문대, 교대 취업률은 전년보다 소폭 하락했다. 특히 교대 취업률이 50%대에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대 취업률은 80%대를 상회했으나 학령인구 감소 등의 이유로 2018년 60%대로 급감한 이후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계열별 취업률은 의약계열이 82.1%로 가장 높고, 공학계열은 71.9%로 평균 취업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교육계열(69.5%), 사회계열(69.4%), 예체능계열(67.2%), 자연계열(66.5%), 인문계열(61.5%)은 모두 평균 취업률을 밑돌았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소재 학교가 72.2%로 비수도권의 68.5%보다 3.7%P 높다. 이는 전년 지역별 격차(2.7%P) 대비 1%P 증가한 수치다. 성별로는 남성 72.4%, 여성 68.5%로 3.9%P 격차다. 성별 간 차이는 전년(3.0%P) 대비 0.9%P 벌어졌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학 졸업자의 월 평균소득은 309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24만4000원 늘었다. 전문대 졸업자는 257만7000원으로 9만2000원 증가했다. 대학원 졸업자는 509만6000원이다. 기업유형별 취업 비중은 중소기업이 41.8%로 가장 높았고, 비영리법인(17.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12.2%), 중견기업(10.8%), 대기업(10.2%), 기타(4.3%), 공공기관 및 공기업(3.5%) 순이다. 대기업 취업자 비율은 전년 대비 2.2%P 감소했다. 교육부는 이번 취업통계조사 결과를 교육부(https://www.moe.go.kr)와 한국교육개발원(https://kess.kedi.re.kr) 누리집 및 국가통계포털(https://kosis.kr)에 탑재해 국민들이 손쉽게 자료를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 양육·성장 지원방안’, ‘국가책임 입양체계 개편 방안’, ‘제1차 전통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 2024년 주요성과 및 향후 계획’을 상정했다고 밝혔다.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 양육·성장 지원방안’은 소외될 수 있는 조손가족을 조기에 발굴하고,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인 양육·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조손가족 맞춤형 지원을 위해 학생에게 학교장 추천으로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을 지원하고, 가족센터와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연계해 상담을 제공하는 등 학업과 심리·정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부모를 돌보고 있는 가족돌봄청(소)년 등이 이용 가능한 일상돌봄·긴급돌봄 서비스 운영 지역도 확대한다.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고령자복지주택 공급을 연 1000호에서 3000호로 늘리고,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 조손가족이 입소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등 주거시설 입주 기회를 확대한다. 양육 부담 완화를 위해 아동양육비 지원단가도 인상(2024년 월 21만 원→ 2025년 월 23만 원)한다.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조손가족에게 선제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기 위해 사회보장급여(기초연금 등)를 신청하는 조손가족의 정보를 본인 동의하에 가족센터로 연계하고, 전국 가족센터 중심 지역사회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취약·위기 조손가족 집중 발굴 기간’을 운영(2025년 3~4월)할 예정이다. 또한 인터넷을 활용한 정책정보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는 조부모를 위해 ‘손자녀 돌봄‧양육 지원정책 안내서’를 제작해 주민센터 등을 통해 내년 하반기쯤 배포하고, 손자녀를 대상으로는 내년 상반기까지 청소년정책 홍보채널을 통해 정책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가족상담전화(1577-4206)’를 통해서도 조손가족 정책정보를 제공한다. 조손가족에 대한 사회적 수요, 변동 요인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현행 ‘한부모가족실태조사’의 부가조사에 ‘조손가족 실태조사’를 추가해 2027년부터 3년 주기로 시행하고,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와도 연계해 만 9세 이상 가족돌봄청(소)년의 현황을 파악(2025년~)하는 등 관련 실태조사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를 교육자료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정까지 통과한 상황에서 AIDT를 개발한 발행사‧출판사들은 해당 입법이 헌법이 금지한 소급 입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헌법 소원까지 제기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도입 여부 입장까지 갈리면서 당장 검정 교과서를 선정해야 하는 일선 학교는 어찌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에 한국교총은 “여야의 정치 대결과 합의 없는 입법 추진으로 지리한 법적 분쟁과 공방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혈세, 행정력 낭비 또한 예견된다”며 “학교 현장 혼란 최소화, AIDT 대한 불신과 부작용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문제가 예상되는 만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 앞서 정부와 함께 대안을 갖고 진정성 있는 논의와 조속한 해법 마련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2025년에는 검정 통과한 AIDT를 당초 계획대로 도입하지 말고, 시도교육청과 학교가 자율적으로 사용해 효과‧부작용 검증 후 정책 보완‧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미 AIDT 개발 및 교과서 검정, 교사 연수, 인프라 구축, 각 학교 별 교과서 채택 등 적용을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교육자료로 전환된다면 국가 정책 신뢰 상실은 물론 막대한 매몰 비용 발생, 학교 현장 혼란 등이 따른다. 하지만 AIDT 교과서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신뢰‧공감 부족, 교사 연수 내용 미흡, 디지털 기기 관리 등 교사 업무 부담, 개인정보 노출 보안 문제 등 준비와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와 관련해 교총은 교사의 기기 관리 및 행정업무 부담 완전 해소,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교실 환경 구축, 도입 속도 조절, 활용 여부 관련 교사 자율권 보장 등 현장 안착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교총은 “검증 이후 AIDT의 도입 범위, 수준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검증 과정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 전문가가 참여해 다양한 교육적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분석해야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교육 현장의 정책 수용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이 젊은 교사 이탈 방지와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저연차 교사 정근수당 인상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인사혁신처는 내년부터 정근수당 기준 연수를 근무 연수 1년 미만 10%를 신설하고, 2년 미만을 5%에서 10%로, 3년 미만을 10%에서 20%로, 4년 미만의 경우 15%에서 20%로 인상하는 2025년 공무원 보수규정 및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에 교총은 24일 입장을 내고 “젊은 교사들이 떠나가는 교단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며 “교총이 요구한 정근수당 인상을 전격 수용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최근 3년간 물가 상승률 대비 교원 보수 인상률이 삭감 수준(-7.2%)임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보수 이상률이 3%에 그쳐 젊은 교사들이 또 한번 좌절했어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젊은 교사들이 떠나가는 교단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며 “교총이 요구한 정근수당 인상을 전격 수용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총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교원 처우를 회복하는데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교원 보수 10% 이상 인상, 24년째 동결된 교직수당 인상 등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줄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실제로 교총이 지난 8월 3일부터 27일까지 20~30대 교사 4,603명을 대상으로 ‘월급만족도 설문조사’를 한 결과, 86%가 ‘월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교총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 국회,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교원 보수 10% 이상 인상 ▲저연차 교사 정근수당 획기적 인상 ▲교직수당 40만원으로 인상 ▲교감(원감) 중요직무급 수당 신설 ▲교원연구비 7만5천원으로 균등 상향 지급 ▲올해 인상에서 제외됐던 보건‧영양‧상담‧사서교사 수당 인상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지난 3월과 7월, 10월 교원 제수당 인상 요구서를 교육부, 인사혁신처 등에 전달한 바 있으며, 9월에는 세종교총, 교총 2030청년위원회, 보건교사회, 전국영양교사회, 한국사서교사협의회와 세종 인사혁신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제수당 인상 요구서를 전달했다. 아울러 10월부터 교원 처우 개선(기본급 10% 인상, 교직수당 및 제수당 인상) 촉구 등 7개 과제를 내걸고 전국 교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대통령실 등에 요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경기도 연천에는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장소가 있다. 경순왕릉과 기황후릉 터다. 경순왕이 통일신라의 마지막왕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의 릉이 경주가 아닌 이곳 연천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경순왕릉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 또한 어느 순간 그 역사를 다하게 된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패자였던 통일신라 역시 예외는 될 수 없다. 천년의 영광을 누렸던 통일신라는 경순왕때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짧은 오르막길을 지나면 외롭게 자리한 경순왕릉을 만난다. 오르막길 주변에는 철책선이 2m이상 높이로 쳐져 있으며 지뢰가 있다는 표식이 보인다. 경순왕릉 주변의 숲은 군사지역이라 출입이 통제되며 바로 앞이 민통선이다. 삼엄한 경계가 느껴질 정도였다. 경순왕은 통일신라의 56대 임금이다. 신라의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경주시 밖에 위치해 있다. 왕릉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데 거기에도 사연이 있다. 현재의 왕릉은 1747년에 경순왕의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을 발견하면서 새로 정비한 것이다. 재정비 당시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사대부 묘의 격식을 따라 꾸몄다. 경순왕의 시호는 '공손하게 따른(敬順)' 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태조 왕건보다 35년을 더 살았던 경순왕은 서기 978년 개경에서 죽었다. 신라의 왕인 경순왕릉이 왜 연천 지역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전해온다. 경순왕이 죽자 패망한 국가의 왕이 겪었을 굴종의 삶을 본 신라의 유민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들은 곡을 하며 남쪽으로 가는 경순왕의 상여를 따라붙었다. 장례 행렬이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바로 이곳 연천의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그 인원수는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고려 왕족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장례 행렬 인원이 혹시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웠고 이를 막기 위해 ‘왕족의 시신은 도성 밖 100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내세워 이곳 연천에서 멈추게 하였다고 전해온다. 숭의전지(崇義殿址) 숭의전지는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원래는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절이 있었던 곳으로 1397년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었던 것을 1971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길가의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어수정(御水井)이라는 약수터가 보인다. 임금(태조 왕건)이 와서 물을 먹었다는 의미의 어수정이다. 잠시 왕이 된 듯한 착각을 하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다. 어수정에서 약 100m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며 임진강 가에 조용히 자리한 숭의전을 볼 수 있다. 숭의전 바로 앞 임진강변 벼랑 바로 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는 20m, 둘레는 4.7m이다. 1452년(문종 2년)에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한다. 전(傳) 기황후릉 터 2013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기황후’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 기황후에 대하여는 특별한 관심이 없는 터라 눈여겨 시청하지는 않았다. 이 기황후의 능 터가 연천에 있다. 하지만 전(傳), 즉 전해온다는 의미의 한자가 붙은 것처럼 이 곳이 기황후 릉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는 않다. 기황후는 행주 기(奇) 씨이며 고려 출신 공녀로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혜종의 황후이다. 기황후는 원이라는 대제국을 무려 37년간 지배하였다. 기황후는 출생과 사망 시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다. 혜종은 기씨를 총애하여 황후로 삼고자 하였으니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후에 황태자를 낳자 제 2황후로 책봉하였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아들을 황태자에 오르게 하고 군사권도 장악하여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기황후가 원나라에서 권세를 휘두르게 되자 고려에 남아있던 기 씨의 친족들도 공민왕에 의해 모두 숙청되었다. 이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공격하였으나 최영 장군에게 대패한다. 이후 원나라에서는 기황후를 위시한 황태자파와 반대파 사이에 정쟁이 벌어지고 결국 반대파를 숙청했다.황후가 죽자 기황후가 정후가 되었으나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으로 원의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기황후릉 터를 가기 위해서는 연천군 상리를 가야 한다. 상리 입구에는 모처럼 보게 되는 장승이 있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승의 모습조차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 되어 버렸다. 기황후릉 터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차도를 아슬아슬하게 거쳐야 한다. 팻말 앞 차 한 대가 간신히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차를 돌려서 나오기 힘들 정도이다. 팻말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기황후릉 터가 보인다. 사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야트막한 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전 기황후릉 터는 2013년 11월 25일 연천향토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부터 『동국여지지』 등의 기록에 ‘기황후는 죽기 전 고국에서 장례를 치르기를 원하여 이곳 연천현에 장사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릉의 형태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록과 더불어 이곳 능선 아래쪽에 기와 파편이 다수 보이고 릉의 석물로 보이는 석수 2점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 능선에 남향하여 릉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석수(석양)들은 현재 연천군 문화원 정원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연천 읍내에 있는 연천군 문화원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앞마당에 석양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연천군 문화원에 전시해 둔 것으로 보아 전 기황후 릉 터는 결정적인 스모킹 건은 없지만 어느 정도 그 신빙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호로고루 성에서 37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고랑포구가 나온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1930년대 고랑포구를 생생하게 재연하고 있다. 내부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으며 연천 지역의 여러 명소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학생 등 단체관람 시 교육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경순왕릉과도 인접해 있어 호로고루성, 경순왕릉,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함께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임진강 황포돛배 나루터가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출항하는데 40분간 운행하며 임진강 주변의 주상절리 등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민물인데도 배 위에 있는 나에게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신기했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이는 것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말의 동상이다. 레클리스(ReckIess)라는 군마라고 한다. 여기서 레클리스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라는 뜻이다. 레클리스 군마는 계급이 하사로 미군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한국전쟁에서 탄약 등 물자와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등의 활약을 펼쳐 무공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레클리스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겨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레클리스의 원래 이름은 ‘아침 해’였다. 연천군은 특히 산악이 많아 차량으로 무반동 소총과 탄약 보급이 어려웠다. 군인 등 인력만으로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졌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침 해'는 첫 번째 임무에 투입된다. 당시 레클리스는 수십 kg의 탄약을 짊어지고 오솔길과 45도 각도의 급경사 산비탈을 해병대원들과 함께 386번이나 왕복했다. 왼쪽 눈과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새벽부터 황혼까지 아군의 탄약 공급을 도왔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하다. 인적이 뜸한 길목을 굽이굽이 지나치면 연천 경순왕릉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오른쪽에 공원이 있다. 공원이 위치한 장남면 일대는 예전에 황해도 땅이었다고 한다. 분단 이후 파주에 편입됐다가 다시 연천군에 속하는 질곡의 과정을 거쳤다. 공원 뒤편 야산을 넘으면 남방한계선과 이어지는 삼엄한 지역이다. 철조망에 ‘지뢰’ ‘출입 금지’ 이정표가 빼곡하다. 사진은 보안상 게재하지 못한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나오자마자 1.21 무장공비 침투로 간판이 보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그리고 영화로 접했던 사건이라 관심이 있어 들어가 보려고 하였으나 민통선 구역이라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관련 홈페이지에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입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특수부대가 창설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다. 고랑포에서 서남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무장공비 침투로는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침투한 곳이다. 속칭 ‘김신조 루트’라 일컫는다. 얼어붙은 고랑포를 건너 파평산, 파주 법원리의 삼봉산을 지나 서울 세검정으로 침투한 사건인데 당시 남북한의 적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남북 관계는 어떠한 국면으로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현지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임진강 뱃길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무렵이라고 한다. 임진강 뱃길의 종점이었던 고랑포는 경기 북부 지역 포구의 중심이었고 고랑포의 상업적 위상은 개항기를 거치면서 보다 커졌다고 한다.
재인폭포는 연천군 전곡읍에서 연천방향으로 약 11km정도에 자리하고 있다. 통현리 고인돌을 끼고 우회전 하면 재인폭포 방면이다. 사실30~40년 전만해도 연천에 볼거리라고는 재인폭포가 유일했다고도 말할 만큼이 재인폭포는 연천군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의 재인폭포는 주변에 아무런 시설물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재인폭포였다. 재인폭포 방면으로 가다보면 중간쯤에 '종자와 시인 박물관' 표지판이 보인다. (http://www.fspmlove.co.kr) '종자와 시인 박물관'은 '농부는 흙에 씨를 뿌리고 시인은 사람의 가슴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기치로 198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희귀본 씨앗 및 다양한 종자 표본들과 고서, 사전 그리고 옛날 교과서 및 전국 문인들의 저서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 전시하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여학술 및 교육자료로 활용, 제공하고 나아가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운영하여 생활 문화예술 발전과 활성화에 공헌하고자 한다'라고 홈페이지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박물관도 2개의 파트로 구분되어져 있는데 한쪽은 다양한 씨앗을 전시했고 다른 한쪽은 옛날 서적, 레코드판, 타자기 등 문인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990년 중반, 대학을 졸업한 해의 봄, 발령을 앞두고 홀가분한 마음과 허전함을 함께 안은 채 여행을 떠났다. 무작정 떠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짐이 반은 접힌다. 펼치면 새로운 인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혼자의 여행은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시간’이다. 난 나에게 계속 물었다. 옳게 살았는지, 또는 열심히 살았는지, 대학을 졸업 후 너는 무엇을 목표로 살 것인지 등,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걸었다. 특히 이곳(전곡)에서는 그런 물음과 대답이 훨씬 편하고 담담하게 이루어진다. 3월,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길가에 핀 들꽃과 삶에 대하여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다. 전곡을 떠난 지 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다시 만난 동창들과 읍내에서 맥주 한잔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은 술 한잔과 더불어 이내 사라졌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 함께 놀고 있었다. 삶에 조금은 지쳐 있을 때였다. 그리웠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에너지를 준다. 허름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재인폭포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전곡에서 재인폭포까지는 걸어가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약 11km). 하지만 난 여행에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당시부터 선호했던 방법이다. 그냥 걸었다. 필자는 지금도 어지간한 곳은 걸어서 여행한다. 재인폭포는 전곡에서 적당히 먼 곳에 있어 마음먹고 걷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사실 재인폭포 자체를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봄의 향기도 느낄 심산이었다. 때마침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적당히 내리는 봄비는 마른 마음을 적셔 부드럽게 해 준다. 그리고 뾰족했던 마음속의 무언가를 무디고 뭉툭하게 만들어 준다.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뒤에서 승용차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당시만 해도 승용차는 흔하지 않았다. 친구 W였다.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이다. W가 차를 끌고 나를 찾아 따라온 것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 앞의 자전거 수리점에 갔더니 아침에 내가 자전거를 빌리지 못하고 그냥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재인폭포에 갈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W의 차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인폭포로 향하였다. 당시 재인폭포는 지금처럼 인공 구조물이 전혀 없었다. 나무 데크(deck)는 고사하고 계단 몇 개만 덩그러니 있어서, 등산하듯 재인폭포 앞으로 힘겹게 다가가야 했다. W와 초등학교 이후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군대 이야기, 대학 이야기, 여자친구 이야기 등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 나이에 겪었을 여러 이야기를 재인폭포 앞에서 신나게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재인폭포는 이런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슬픈 광대의 사랑 노래’라는 전설을 담고 청록색에 가까운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광대가 한 가닥 줄에 의지하여 자신을 보여주듯, 살기 위한 몸부림을 포기한 듯 폭포 저 아래로 푸른 물을 끝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현재 재인폭포에는 관광객을 위한 많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와 출렁다리, 그리고 나무 데크(deck)로 된 길과 주차장, 편의점 등이 재인폭포를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이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왠지 재인폭포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행여 그렇지 못할 것만 같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재인폭포 입구의 도로에는 옛 표지석 위로 현대식 표지판이 올려져 있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1986년에 창립된 것으로 추정해 보면, 옛 표지석은 1980년 후반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재인폭포를 볼 수 있다. 전망대와 출렁다리에서 내려다보면 재인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비해 변치 않은 것은 재인폭포밖에 없다. 재인폭포 외의 주변 경관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재인폭포 주변에는 장마로 흙탕물이 된 한탄강이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저 멀리 한탄강댐이 웅장하게 한탄강 물을 머금고 있다. 거대한 절벽과 그 절벽 사이로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무서울 정도로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한탄강 물이 유유히 흐른다. 한탄강은 언제 보아도 슬픈 느낌이다. 전에 가보았던 남쪽 지방의 강들은 밝은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유독 한탄강은 무섭고 슬픈 느낌이다. 큰 절벽과 거대하고 검은색을 띤 바위들 사이로 흘러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재인폭포는 한탄강 주변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재인폭포는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柱狀節理) 절벽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재인폭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잉어목 모래무지과의 민물고기)’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여러해살이풀의 하나)’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폭포의 이름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첫 번째 전설은 문헌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옛날에 한 재인(才人)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던 중에 재인이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자,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줄을 타고 반쯤 지나가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줄을 끊어버려 재인은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한다. 두 번째 설화를 살펴보면, 옛날 재인폭포 인근 마을에 금실(琴瑟) 좋기로 소문난 광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줄을 타는 재인이었던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이었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그만 숨을 거두었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하게 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은 ‘코문이’가 산 마을이라 하여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 재인폭포가 있는 마을인 ‘고문리(古文里)’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재인폭포는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광대 재인과 관련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종자와 시인 박물관'과 '재인폭포'를 함께 여행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전곡-연천간 큰 도로로 다시 나와서 우회전, 연천방향으로 5분 정도만 가면 동막골 유원지가 나오고, 다시 조금만 더 가면 연천읍에 이른다. 연천군 통현리 인근에는 지석묘(고인돌)가 있으며 고인돌공원도 인접해 위치한다. 가까운 거리 안에 관람할 명소들이 널려있다. 이어서 추천 명소를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연천군에는 생각보다 많은 관광명소들이 있다. 인근의 강원도 철원까지 포함해서 2~3일 정도 일정으로 여행을 할 것을 권장한다. 사진: choon
경북 비안초(교장 이임남)가 교육부가 주최한 2024년 행복한 함께학교 우수사례 공모에서 전국 30개 우수학교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비안초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며 따뜻한 교육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았다. 함께학교는 학생, 교원, 학부모 등 모든 국민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현장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이번 공모는 플랫폼에 접수된 미담 사례를 바탕으로 내·외부 전문가들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진행되었다. 비안초는 ‘모두가 행복한 따뜻한 비안초등학교’라는 제목으로 제출된 사례를 통해 학부모, 학생, 교직원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따뜻한 학교 문화를 소개했다. 농촌 지역이라는 특성을 살려 학부모들이 학교 설명회와 체험 수업, ‘모두의 그래피티’ 행사 등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학생들은 자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교육장기 육상대회와 탄소중립 숏폼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교직원들은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협력하며 모두가 행복한 학교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임남 교장은 "비안초가 함께학교 우수사례로 선정된 것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며, 학교의 따뜻한 문화와 상호 존중의 전통이 인정받아 매우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학생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안초의 이번 수상은 농촌 지역 학교에서 교육공동체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성공적인 사례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따뜻하고 창의적인 교육 문화를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천을 가로지르는 경원선(京元線)은 서울-원산(元山)을 잇는 철도로 길이 223.7㎞이며 1914년 9월 16일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오늘날에는 국토 분단으로 용산역~백마고지역 사이의 94.4㎞만 운행되고 있다. 용산에서 출발하여 서울 북부지역 – 의정부 – 동두천 - 소요산을 지나 연천군의 첫 역인 초성리역에 진입한다. 이후 한탄강, 전곡, 연천, 신망리, 대광리, 신탄리, 백마고지역까지가 경원선의 연천 구간이다. 경원선이 지나가는 간이역을 따라 연천 여행을 해보았다. 연천군의 주요 지역들을 지나는 역들이다. 전곡역, 연천역은 2023년 신축된 현대식 역사가 오래되고 낡은 간이역 건물을 대신하고 있다. 전곡읍까지만 주로 갔었던 터라 이전에는 소요산역에서 전철을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소요산역에서 전곡이나 연천까지 가는 기차는 그 간격이 너무 길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승객이 거의 없다. 덜컹거리는 열차를 타고 산야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시간이 기억난다. 8월의 어느 날, 연천에서 군 생활을 했던 40년 지기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서울에 살다가 강원도 원주로 이사를 간 이후 1년에 한 번을 보기도 빠듯하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예전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냥 억지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추억을 재생시킨다. 난 이 친구를 ‘흑백영화의 낡은 필름’이라고 표현한다. 참 소중한 녀석이다. 어느덧 우리는 사춘기 시절의 어린아이로 변해있다. 너무나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경원선을 따라 연천을 여행했다. 첫 번째청산역(옛 초성리역) / 한탄강역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은 초성리를 지나 연천과 신탄리를 거쳐 대광리역, 백마고지역으로 이르게 된다. 물론 종착역은 북한의 원산이다. 청산역(초성리역)은 현재 폐역이다. 청산역(초성리역) 주변의 마을인 초성리는 오래된 옛 모습을 여전히 담고 있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한눈에 보아도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니 훨씬 더 오래전 느낌의 간판들이 많이 걸려있다. 또, 주변의 학담마을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오래전 모습들이 잘 간직되어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학담마을의 고즈넉한 풍경들은 옛 추억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초성리 바로 인근에는 ‘열두개울’이라는 유원지가 있다. 연천군의 남단, 초입에 자리 잡은 ‘열두개울’은 서울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여름철에 많은 인파가 몰린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기 전, 열두 개의 개천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계곡이 크지는 않지만, 물이 깊지 않아 어린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안전하다. 닭백숙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대학 시절만 하더라도 기차를 타고 한탄강역을 지나 전곡역에 도착했었다. 한탄강역은 한탄강 유원지 바로 옆에 있다. 승용차가 드물었을 당시 한탄강 유원지에 오려면 경원선을 타고 이 한탄강역에서 하차해야 했다. 연천행 시외버스도 한탄강 유원지에 잠시 정차한 후에 전곡까지 운행했었던 기억이 난다. 한탄대교를 건너자마자 한탄강역에 기차는 잠시 머문다. 별도의 건물이 없고 기차가 정차하고 승객들이 승하차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으나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두 번째전곡역 경원선은 초성리역-한탄강역-전곡역-연천역-신탄리역으로 이어져 백마고지역에서 멈춘다. 조그마한 각각의 역마다 그들만의 소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 중, 전곡역은 1912년 7월 25일 경원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남북분단 당시 소련군이 들어와 있던 38선 이북 지역의 최남단 역사(驛舍)이다(나무위키). 전곡역은 전곡의 중심이 되던 곳이다. 전곡 버스터미널보다 훨씬 많은 승객이 이용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곡역은 전곡초등학교와도 멀지 않아 학교 공부가 끝나면 역사(驛舍) 인근에서 철길을 뛰어다니며 위험하게 놀았다. 전곡역 앞에는 군용 트럭이 주차된 조그만 공터가 있었다. 휴가가 끝나고 자대로 복귀하는 장병들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그때 본 군인(아저씨)들은 나처럼 어린 초등학생에게는 덩치가 크고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동두천중앙역에서 신탄리 방향 열차를 타면 전곡역에 갈 수 있다. 캄캄한 서울의 지하철에서 벗어나 탁 트인 주변 경관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야트막한 언덕 사이로 군데군데 큰 산이 있고 자그만 개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창밖의 풍경을 보며 상념에 빠져있노라면 어느새 한탄강역이 보인다. 한탄강역은 무인(無人)으로 운행되는 오래된 역이다. 한탄대교와 북위 38도선 표지판을 보며 한탄강역을 지나면 얼마 가지 않아 전곡역에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전곡역 앞의 M 식당은 전곡에서는 매우 유명한 중화요리 음식점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데리고 가셨던 곳이다. 모처럼 전곡 읍내의 시장에 나오신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셔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이 음식점에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이때 먹은 자장면은 내 평생 어떤 자장면보다 맛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자장면 가격은 400원이었다. 2000년대 초반 어떤 그룹(가수)이 불렀던 노래, 「어머님께」에 등장하는 자장면에 대한 가사가 가슴을 저민다. ‘어머니’와 ‘자장면’을 연결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기가 막히게 감정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품게 해 주었던 노래였다. 현재는 당시 주인의 며느리께서 식당을 경영하고 계신다. 전곡을 갈 때면 항상 그곳에서 식사했다. 아직도 음식이 유난히 맛있다. 특히 쫄깃한 탕수육이 정말 참맛이다. 전곡초등학교는 전곡역 인근,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필자는 1980년 늦가을 서울에서 이곳 전곡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한 학년에 5~6개 정도의 학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전곡읍은 연천군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동시에, 가장 큰 읍이다. 아무래도 동두천, 의정부, 서울과 가까운 곳이다 보니 군인 가족뿐 아니라 다수의 인구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전곡읍은 군사 도시이다. 군부대와 군인을 대상으로 하여 마을의 경제활동, 사회활동 등이 대부분 이루어진다. 학교의 운동회 때에도 군 장병들이 와서 천막도 쳐주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주었다. 그리고 각종 음식점, 상점, 숙박업소 등의 고객 대부분이 군부대의 군인 또는 군인 가족들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위수지역(衛戍地域)은 한탄강 유원지 부근이었다. 따라서 외출, 외박을 나온 군 장병들은 전곡읍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전곡 읍내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아마 이 무렵이 경제적으로 가장 번화하였을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023년 7월 현재 연천군의 인구는 4만1000여 명이며 이 중 전곡읍의 인구는 1만8000여 명이다. 1980년 당시 연천군의 인구는 6만7000여 명이었다. 1980년을 기점으로 연천군의 인구는 차츰 줄어든다. 전곡초등학교에 처음 전학 갔을 때, 군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난 서울에서는 학급에서 친구들에게 주목받은 적이 없다. 공부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운동을 잘한 것도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조차 내가 그 학급에 있었다는 것도 잘 모를 정도로 내향적이었다. 전곡초등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을 받는 경험을 했다. 군인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도 나를 살갑게 대해주셨고 친구들도 나와 함께 놀려고 다가오곤 하였다. 난 조금씩 바뀌어 갔다. 학교생활이 재미있었고 자신감도 차츰 생겨났다. 학급 임원을 하면서 여러 가지 학급 일에 영향을 미치곤 했다. 공부도 잘되었다. 성적도 많이 오르고 우등상장을 받아 부모님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그 무렵에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우리 반에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설의 ‘엄석대’와 같은 학생도 있었다. 그 친구는 부하(?)를 몇 명씩 거느리고 다녔고 가방과 신발주머니는 그 친구들이 대신 들고 다녔다. 반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부하들을 시켜서 때리는 것을 몇 번 목격하였다. 그들이 보기 싫었고 증오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본 그 소설에서 그 기억이 데자뷰(Dejavu) 되었다. 당시 많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전곡초등학교 뒤편, 차탄천 쪽에는 현무암과 이름 모를 나무가 무성하고 외진 장소가 있었다. 학교와는 별도의 출입문 없이 운동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무가 크고 울창하고 현무암이 어두운색을 띠고 있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무서웠다.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반 친구가 다른 반의 학생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야외학습장에서 정체 모를 귀신을 본 이야기였다. 어느 학교건 ‘학교 괴담’ 하나쯤은 있을 터이다. 아마 전곡초등학교에는 그 이야기가 ‘학교 괴담’으로 전해 내려올 것이다. 손발이 없고 검은 옷차림과 검은 모자를 쓴 중년의 아저씨가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아저씨의 손이 있던 자리에 지팡이가 둥둥 떠 있고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는데 얼굴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발도 없는데 천천히 걷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리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전곡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아마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전쟁으로 많은 억울한 희생자들이 죽어간 자리가 아니었을까? 물론 어린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한 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숭고하게 희생한 호국영령의 넋이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 당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나 무서웠다. 지금 전곡초등학교 학생들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학교 주변에 주차하고 전곡초등학교에 잠시 들어가 보았다. 10여 년 전에 혼자 이곳에 들어와 벤치에 앉았던 생각이 났다. 운동장 끝에서 학교 전체를 살펴보니 40년 전 전곡초등학교의 모습이 한눈에 그려졌다. 본관 건물은 1층짜리 낮은 건물이었고 본관 뒤편 후관은 3~4층 정도 되는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운동장 건너편은 콘크리트로 만든 스탠드가 계단식으로 길쭉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연천군 내 초등학교 대항 축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우리는 운동장의 계단에 앉아서 전곡초등학교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때의 환호성과 축구 선수들의 뛰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40년, 정확히는 44년째이다. 내가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공을 차면서 놀던 때가, 난 어느 순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째서 44년 전의 일을 이토록 정확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스틸사진처럼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뇌는 가장 안 좋은 기억과 가장 좋았던 기억을 제일 오랫동안 저장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전곡초등학교에서의 그 시간은 내 머릿속에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것일까? 세 번째연천역 연천역 앞의 도로는 확장되어 어지간한 대도시의 그것과 비슷한 최신식 형태를 갖췄다. 역을 중앙에 두고 대로가 펼쳐지며 좌우로도 큰 도로가 있는 모양새다. 예전보다 큰 도로와 건물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주말 오후인데도 왕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군 장병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천역이라 하면, 연천군을 대표하는 역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연천군에 인구가 많이 유입되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펴는 모양이나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하튼 연천역 앞에는 예나 지금이나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연천역 바로 옆에는 연천역 급수탑이 있다. 웅장하다. 연천역 급수탑은 길게 뻗은 원통형으로 생겨 마치 등대나 굴뚝같다. 23m의 높이를 자랑하는 급수탑 내부, 출입구 반대편에 계기 조작판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급수관 3개와 기계장치가 보존되어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경원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14년에 만들어졌으며 2003년 국가등록 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상자형과 원통형 2기가 남아있다. 상자형 급수탑은 콘크리트조로 기단, 벽체부, 지붕부 3단으로 입면을 형성하였으며, 아치형 출입구를 두었고, 외관에 줄눈을 그려 벽돌로 쌓은 것처럼 꾸몄다. 원통형 급수탑에는 급수관 3개와 기계장치가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고, 탑 외부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밤이면 급수탑 벽면에 예쁜 조명이 켜진다.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여 제 기능을 다하고 사라졌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증기기관차 관련 철도 시설물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연천역 등 모든 경원선 기차역에는 차탄천이 함께 흐른다. 철로를 따라 흐르는 차탄천은 색다른 묘미를 준다. 경원선과 차탄천은 마치 평행선처럼 긴 세월을 함께 머금고 달린다. 연천역 바로 인근에는 여름철 유명한 관광지인 동막계곡 즉, 동막골 유원지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동막골 유원지는 연천을 대표하는 유원지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천향교와 연천 현충탑을 볼 수 있다. 연천향교는 1398년(태조 7년)에 처음 설립한 향교로 본래 읍내리에 있었으나, 1658년(효종 9년)에 한 번 이전되었다. 연천향교 바로 아래쪽 명륜(明倫) 교육관에 잠시 주차하고 홍살문(紅箭門)을 지나니 연천향교가 있었다. 현재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해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가면 차탄천 개울 바로 앞에서 현충탑 입구가 보인다. 곳곳에 대전차방어 진지가 보인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으나 연천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어느덧 익숙해져 버렸다. 전차의 이동을 지연시키고자 거대한 콘크리트로 만든 군사시설이다. 연천 현충탑은 국가보훈처(現 국가보훈부)지정 현충 시설로서 육군 제17연대가 1950년 12월 17일부터 1951년 3월 15일까지 연천지구 전투에서 이룩한 장병의 공훈을 높이 찬양하고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한 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누군가는 지금의 평화를 ‘피를 먹고 얻어지는 평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쩌면 6월 25일을 매년 기리는 일이 없어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벌써 70년 전의 일이다. 세대가 2번이나 바뀌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들에게는 역사책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지를. 연천 곳곳에 자리 잡은 현충탑과 전적비, 위령비는 왜 지금의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다. 그리팅맨(Greeting man)을 보러 가는 길에는 두루미 마을 간판이 보인다. 연천은 콩과 율무, 그리고 두루미 등으로 유명하다. 연천을 다니다 보면 콩으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 즉, 두부 요리나 콩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 자주 보인다. 율무 또한 연천군의 농특산물이다. 매년 10월이면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율무 축제가 개최된다. 몇 해 전, KBS ‘동네 한 바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떤 주민이 두루미에게 율무를 먹이로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연천군 중면 횡산리 일대 ‘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는 국제적으로 희귀한 조류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1500여 마리가 매년 겨울 월동하는 곳이다. 두루미들은 임진강과 주변 여울, 농경지에서 먹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하며 겨울을 난다. 이 일대 두루미들은 특이하게 산기슭에 심어있는 '율무' 낙곡(落穀)을 먹어 '율무 두루미'라고 불린다. 그리팅맨은 옥녀봉 정상에서 북쪽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존중, 배려, 그리고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함께 저며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벙커 건물은 그리팅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좁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만 올라가면 그리팅맨이 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연천 9경 중 하나인 그리팅맨(Greeting man)은 유영호 작가가 만든 조각상이다. 2016년 4월에 설치하였다. 조각상은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 평화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옥녀봉은 해발 205m로 연천군 거의 모든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네 번째신망리역/대광리역/신탄리역 경원선의 간이역을 방문했던 날은 오전에는 더웠다가 오후가 되자 갑자기 흐려지면서 비가 내렸다. 여름내 폭염이 지나간 자리를 말끔하게 청소라도 하듯이 차분히 비가 내렸다. 어둡고 탁한 연천의 하늘은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듯이 간이역 주변을 무채색 수채화로 물들였다. ‘간이역(簡易驛)’은 레트로(Retro) 감성 최고의 아이템이다. 일단 간이역은 대부분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폐 간이역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간이역 주변의 모습들 또한 간이역과 마찬가지로 오래전 풍경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많다. 간이역에 가면 지금은 사라진 그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겨난다. 경원선의 간이역도 마찬가지이다. 역 주변에는 오래된 상점의 낡은 간판과 지금은 사라진 표지판 등이 아직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오래된 것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오래된 것, 낡은 것이 새롭게 생겨난 것들보다 훨씬 소중해 보이고 눈길이 자꾸 머문다. 경원선 간이역은 이미 폐역이 되었다. 2023년 하반기 새로운 청사(廳舍)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낡은 폐역 옆에 근사하게 지어진 신(新)청사는 옛날과 오늘날의 모습을 대표하듯이 나란히 서 있다. 폐역이 철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신망리역 부근은 건축 기자재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간이역이 버려진 듯하여 안타까우면서도 세월의 무상함이 함께 느껴졌다. 경원선이 원산까지 이어지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이미 지나버린 70년을 거슬러 올라 경원선 증기기관차가 마음껏 달리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신망리역 주변에는 ‘평화누리길’과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지나간다. 신망리역 주변의 대표적인 콘텐츠는 바로 다방 거리이다. 지금은 온갖 외국기업 카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지만 필자의 젊은 시절만 해도 친구와 편하게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다방과 빵집밖에 없었다. 다방이라는 이름이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으나 사실이 그랬다. 특히 연천군은 군부대가 많아 다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메리카노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역시 우리에겐 설탕과 커피 프림이 적당히 들어간 다방 커피가 최고다. 오늘은 식후에 달콤한 자판기 커피로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대광리역은 1912년에 영업을 시작한 기차역으로 연천의 경원선 기차역 중 가장 오래된 역이다. 지난 2019년에 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운행이 중단되었다. 역 앞에는 큰 군용물품 상점이 자리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필자도 옛 시절을 생각하며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해보았다. 대광리역 주변에는 드문드문 오래된 가게 간판과 현대식 간판들이 상존한다. 그리고 바로 인근에 군부대가 있다. 그래도 대광리역 주변은 생각보다 사람의 왕래가 꽤 있었다. 신탄리역은 2012년 백마고지역이 신설되기 전까지 지난 60년간 경원선의 최북단 종착역이었다. 여느 경원선 역과 마찬가지로 차탄천이 바로 옆에 흐르고 있다. 과거,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목재와 숯으로 가공해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이기에 이름도 신탄(新炭)리가 되었다고 한다. 신탄리는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북한에 귀속되었다가 1951년 수복된 지역이다. 대광리역에 비하여 주변에 음식점, 상점 등이 많은 편이고 고대산과 연계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군데군데 보였다. 주변에는 고대산이 있다. 고대산의 정상에 오르면 북한 땅을 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찾는 곳이다. 신탄리는 ‘통일을 고대하는 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대산에는 큰 규모의 자연휴양림이 있다. 신탄리역은 연천군에 있는 경원선 역 중, 백마고지 다음으로 북단에 있다. 북한과는 매우 가깝다는 이야기다. 다른 역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신탄리역 철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 보았다. 이 철로를 따라가면 경원선의 끝인 원산까지 갈 수 있다. 단순히 원산을 향한다는 것보다는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통일의 길이 아련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오래되어 부식된 표지판이 세월의 흔적과 분단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준다. 신탄리역에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이 표지판 바로 옆까지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철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하다. 신탄리 역사(驛舍)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신탄리역에서 북쪽으로 철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경원선 폐(廢)터널을 만나게 된다. 이 터널은 북한의 원산까지 연결된 경원선 철로의 일부였지만, 1945년 해방 이후 철길이 끊어지면서 버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폐 터널의 입구에는 바닥에서 위로 솟아오른 형태를 한 역고드름이 있다. 지금은 여름철이라 고드름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조금 더 살펴보았다. 이 폐터널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탄약 창고로 사용됐는데 미군이 이 터널을 폭격했고, 그 폭격으로 인해 터널 위쪽에 생긴 틈과 함께 자연현상이 우연히 맞물리면서 역고드름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역고드름 터널 입구에는 연천 급수탑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총탄 흔적이 있다. 하지만 급수탑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컸다. 아마 비행기에서 쏜 총탄으로 보였다. 거의 성인의 주먹 크기 정도의 탄환 자국이 수십 개가 넘게 눈에 들어온다. 역고드름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상흔이다. 연천군 관광 지도에는 ‘연천 역고드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곳은 연천의 가장 끝이다.몇 걸음만 더 가면 강원도 철원 땅이다. 신탄리에 오면 꼭 들러주길 바란다. 경원선은 연천군을 세로로 가로지른다. 경원선의 여러 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관광하면 빠지는 곳 없이 자세히 둘러볼 수 있다. 경원선 열차를 타고 원산까지 멈춤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