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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희망찬 새 천년이 열렸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지만 새 천년, 새 세기를 맞는 교원들의 감회는 누구보다 착찹하고 새롭다. 지난 세기의 갈등과 반목, 대립을 벗어나 새 천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교육계의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감안한 듯 김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교육 부총리제 도입을 밝혔다.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부디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행정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면 새 밀레니엄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교육의 특성상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20세기적인 낡은 틀은 과감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각종 교육정책과 계획이 수립과 집행과정 전반에 걸쳐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겠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과거 우리의 교육정책은 조령모개식 일변도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입시제도, 인사제도, 예산정책, 교육과정 등 일련의 정책들이 각계의 의견수렴과 장기적 기획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입안자 몇 명에 의해 밀실에서 양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결과 시행착오만 초래하고 현실과 괴리된 정책으로 교원과 학부모, 학생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새 천년의 사회가 아무리 급격히 변한다해도 교육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좇아서는 안된다. 둘째, 미래 지향적인 교육구현에 힘써야 한다. 새 천년 최대의 화두는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화다. 새로운 지식기반 사회에서 교육이 정보화를 지향해야 함은 필연적이다. 외국어 구사능력, 정보소통능력, 창의력과 신교양을 함유한 신지식인 육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교육의 정치적 독립과 교원 우대책이 구현돼야 한다. 지난 세기 교육은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해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교육은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제기능을 다할 수 있다. 교육은 권력의 예속물이 아닐뿐더러 정치를 정화할 수 있는 유일한 청정제인 것이다. 아울러 법령으로 규정돼 있는 교원 우대책이 인사·보수·의전 등에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말로만 교원 우대책을 떠들게 아니라 조그만 것이라도 실현돼 교원들이 긍지를 갖고 교육개혁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단이 안정돼야 한다. 학교는 교사가 아무런 불편 없이 가르치는 분위기여야 한다. 따라서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행정가들이 상호 불신하고 매도하는 좋지 못한 일탈적 행위가 하루빨리 불식돼야 할 것이다. 새 천년에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놀랄만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교육이 그 변화와 발전이 소용돌이 속에서 주체로 우뚝서느냐 도태되느냐는 바로 교원들이 얼마나 문제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망의 2000년 뉴 밀레니엄 교육의 방향키를 어떻게 트느냐에 따라 새 천년 한국 교육의 명암과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년연장 및 환원문제에 대해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가운데 교육부도 지난해 말 대통령께 반대논리를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자로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교육부는 정년 연장이나 환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교육개혁에 대한 후퇴의 인식을 줘서 불신을 초래하고 이미 퇴직한 교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며 정년단축을 지지한 국민들을 실망시킬 것이라며 설명했다. 이에 대해 내용의 타당성을 제처두고라도 장관이 어떻게 교육을 걱정하는 이유는 없이 오로지 정치논리만을 내세웠는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개혁은 이미 실패한 개혁이란 인식이 높은데 교육개혁을 후퇴시킨다는 인식을 줄까봐 반대한다는 명분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실패한 정책을 시인하고 개선하는 것이 正道다. 국민을 실망시킨다는 이유도 말이 안 된다. 교육문제를 여론으로 해결하려다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교육부는 한치의 잘못도 없는 양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퇴직 교원과의 형평성 문제를 얘기하는 것도 그렇다. 이는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다. 잘못된 정책을 시정해서 교육을 살리자는데 그런 이유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 정당 및 당직자들에게 정년연장의 반대입장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교육문제를 교원들을 설득해 해결할 생각을 안하고 언론과 정당을 설득해 해결한다니 교원들을 얼마나 무시하는 처사인가. 결국 장관과 교육부는 교육을 정치의 예속물로 만들려는 인상이 깊다. 장관은 2001년부터 개혁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황폐화되고 무자격자로 채워진 교단을 보면 낙관보다는 비관적인 마음이 든다. 교원의 정년을 연장하자는 교원들의 주장을 무조건 이기적인 생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점점 황폐화되는 교단을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의 발로이고 그 대안이 정년연장 뿐이어서 요구하는 것이다. 굳이 정년연장을 반대하려면 더 좋은 방안, 교사들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교육재정의 대종은 지방교육재정이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지방교육재정은 국가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며, 지방자치단체의 교육투자에 대한 인색으로 인하여 많은 기채에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건비의 점유 비중이 계속 증가하다보니 교육의 질과 환경의 개선을 위한 학교운영비 및 시설비의 증액투자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교육재정 부족에 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우리 교육이 직·간접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교육재원의 확충은 당위론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명제라 하지않을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수많은 논의를 거치면서 교육재원을 추가로 확충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단행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학교용지확보에관한특별법의 개정으로 교육재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주요개정은 봉급교부금에 교원수당추가, 내국세의 11.8% 상당액을 13%로 증액, 시·도세의 2.6% 전입금을 3.6%로 조정, 서울·부산에만 적용하던 중등교원봉급 부담을 5개광역시와 경기도 경우에도 10%를 적용토록 하는 것이다. 또 시·군·구단체장이 교육경비 보조시 시·도지사의 승인을 구하던 조항을 폐지하여 운신의 폭을 넓혀 놓았다. 이와 함께 그동안 시·도에서 조례로 정하지 않아 부담금 징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사문화되어 왔던 학교용지확보에관한특별법을 개정하여 금년부터 학교용지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동안 교육계의 염원처럼 간주되어 왔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등의 개정자체는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며, 교육계 모두 환영할 것으로 본다. 더욱이 이러한 개정이 정부의 어려운 재정상황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2000년대의 화두가 지식과 교육이라고 볼 때 이를 적극 지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원이 확보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2002년도의 교육재정규모는 GNP의 4.4% 수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정부의 선언수준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앞으로도 교육재원확보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당부하고자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1월3일 금년도 민·관 합동시무식에서 교육부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교육, 훈련, 문화, 관광, 과학, 정보 등 인력개발정책을 종합 관장케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교육부총리제도의 도입은 그 당위성에 비추어 환영해마지 않지만 과연 그 취지가 잘 구현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교육과 관련이 있는 부처들간에는 기능이 중복되거나 갈등이 노출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러한 문제점은 현재도 상존하고 있다. 우선 직업교육 및 훈련업무는 교육부와 노동부에서 함께 관장하고 있는데 특히 기능공 양성분야에서 업무조정이 잘 안되고 있다. 예컨대 직업훈련분담금으로 징수된 재원은 실업계고교교육에도 배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에서 독점하고 있으며 기술검정 및 자격인정과 실업교육과의 연계도 미흡한 상태이다.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과학기술부, 교육부, 정보통신부 등으로 업무가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지원의 기준과 방식에 차이가 있음은 물론 지원이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분야가 생겨 국가 전체적인 조정이 안되고 있으며,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간의 연구개발기능상의 유기적 연계도 부족한 상태이다. 현재 문화관광부가 관장하고 있는 청소년지도 및 체육업무도 원래 과거의 문교부가 수행하던 업무였으며 성격상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청소년 및 체육업무는 지방에서는 교육청에서 그리고 최일선현장에서는 각급 학교에서 주로 실천에 옮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부처 차원에서는 전혀 별개 부처에서 교육기능과 무관하게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기능들이 유기적인 연계는 커녕 부처간 장벽과 부처 이기주의에 부딪혀 협력보다는 불간섭 내지 불협화음을 낳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교육부총리가 이들 관련부처들간에 조정기능을 수행한다면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할 만 하다. 이러한 부처간 조정역할뿐 아니라 교육부총리는 국가전체의 투자 및 정책의 우선순위면에서 교육의 위상과 비중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은 단기간내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투자의 우선순위면에서 항상 다른 분야보다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교육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도 경제 우선 내지 효율성을 높이는 시각에서만 접근함으로써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는 시책들을 펴나가는데 한계가 있었고 오히려 저해요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역대정권들이 학부모들의 직접 관심사항인 입시제도의 개편에만 신경을 썼을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 및 투자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왔다. 한편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하면서 교육개혁에 국정의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두었고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첫째도 교육, 둘째·셋째도 교육이라고 할만큼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공약의 하나로 교육대통령을 자임하면서 교육예산을 GNP 5%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실제에 있어서도 1995년에 4.1%였던 것이 1997년에는 4.8%까지 높아졌다가 IMF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이듬해에는 4.3%로 낮아졌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GNP의 6%를 교육재정으로 확보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1999년에는 4.5%에 그쳤고 금년에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다행히 이번에 지방교육재정교부율을 13%로 올리는 등 추가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경하할만한 일이다. 얼마전에 김대중대통령은 이제부터 직접 교육을 챙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이번 교육부장관의 부총리 격상은 그러한 의지의 표현으로도 간주할 만하다. 우리 나라는 가진 자원이 인력뿐인 여건에서 인력개발담당부총리를 두는 것은 만시지탄이 있으며 그 핵심은 역시 교육이니만큼 교육부장관이 그 부총리 소임을 맡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더욱이 우리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앞당겨 실현하고자 진력하고 있는 터이므로 교육부총리가 문화 및 정보분야까지를 관장하는 것도 타당성이 인정된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교육부총리가 얼마만큼 조정권을 발휘하면서 교육우선의 국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과거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강력한 조정권을 발휘하면서 경제위주의 시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예산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총리가 인력개발 및 정보·문화분야 관계장관회의를 이끌어가면서 교육위주의 행정을 펴나가려면 법적 제도적으로 상응하는 권한을 보장함은 물론 예산편성과 조정에 있어서도 상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능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실권도 없이 직급만 높여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원정책의 개혁은 우수 교원에 대한 개념과 이를 위한 실천적 조건의 원리를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 동안 이에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거나, 설혹 있었다해도 협소하고 균형잡히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교직발전 종합방안'(시안)은 우수교원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각 방안을 철저히 연계시켜야 한다. 양성과 임용 부분에서 제시한 교원양성·연수기관 평가인증제 도입, 양성 인원의 조정, 교과교육 및 현장실습 강화, 임용시험제도 개선, 병역 특례제 도입 등은 구체안이 적합하게 마련된다면 기대해 볼 만하다. 다만 유치원·초·중등학교간 연계 자격증 제도, 초·중등 복수자격제는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또한 교대·사대의 종합 교원양성기관으로의 개편안은 설득력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극심한 이해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특히 초등교원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대학으로의 정통성이 확립된 교대를 중심으로 종합체제가 논의·구축되어야 난립된 중등교원 양성체제 문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는 `교직발전 종합방안(시안)'을 토대로 9월까지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부적으로 교직단체, 교원, 교육전문가, 학부모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교직발전 종합방안 협의회'를 구성, 차관을 위원장으로 해 운영키로 했다. 위원장을 맡은 이원우차관에게 방안 마련 취지와 향후 추진계획을 알아봤다. -종합방안 마련의 의미와 예상되는 효과는 무엇인가.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대비해 정부수립 이후 초유로 종합적인 교원정책의 기본틀을 재구조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문직으로서의 교직 위상을 재정립하고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우수한 교사' 즉 잘 가르치고 자기연찬에 힘쓰는 교원이 우대받는 능력중심의 교직풍토를 조성하게 되리라 본다" -시안발표가 수차례 지연되는 등 뜸을 들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보다 광범위한 여론을 수합하는 등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연금불안이나 정년단축 등에 따른 교직사회 동요현상 등도 발표가 늦어진 한 이유가 됐다" -발표 후 교육계의 반응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아직 공식적인 의견수렴을 하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있는 것 같다. 특히 병역특례제 도입 등 일부 사안에 대한 문의가 빈발하는 등 관심의 폭이 매우 큰 것 같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시안의 목표가 불분명하고 실현 가능성에 의심이 가며 사기진작보다는 책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번에 발표한 것은 최종안이 아니다. 내용이 방대하다보니 목표가 불분명해 보일지 모르나 △전문직으로의 위상 강화 △자율과 참여의 교육공동체 형성 △교육여건 조성이 시안의 기본방향이다. 특히 교원의 전문성이 강화되어야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사기진작과 책무성을 동시에 강조한 점을 주목했으며 한다" -향후 추진일정은 또 사업별 예산확보에는 문제가 없는가. "현실 적합성 높은 최종안 마련을 위해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추진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한편 설문조사, 공청회, 전문가 토론회, 정책연구 등을 통해 9월중 최종안을 마련하겠다. 방안 추진을 위해 향후 5년간 3조6천억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해말 통과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에 따라 재원조달이 한층 용이해졌다" -교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아직 최종안이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기탄없는 의견 개진을 부탁드린다. 본인도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육학 전공자다.(이차관은 서울사대 교육학과 69년 졸업) 스스로 동료의식을 갖고 방안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방안이 아닌, 교육공동체 모두가 참여해 만들어낸 교직발전 방안이길 고대한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매년 1조7천억의 예산이 추가 확보돼 `가난한 학교살림살이'가 크게 호전될 전망이다. 올해의 경우 GNP대비 4.22%까지 하락한 교육재정 탓에 난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학교현장에 다소간 훈풍이 불 것이란 것.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내국세 총액의 11.8%이던 교부금 비율을 13%로 상향(연간 6570억 순증) ▲의무교육기관 교원의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현행 봉급교부금(봉급과 기말수당, 정근수당)에 교원에게만 지급하는 수당(교직수당, 교과지도수당, 학급담임수당, 보전수당, 보직교사수당, 교원특별수당)을 포함한 인건비를 국가가 직접 지원(〃 6633억 순증) ▲시·도지사가 올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교육비특별회계에 전출키로 했던 시·도세 총액의 2.6%를 3.6%로 인상하는 동시에 이를 영구화함(〃 1100억 순증) ▲서울, 부산외 대구 등 5개 광역시와 경기도 역시 중등교원 봉급액의 10분의 1을 부담토록하는 한편 자치구의 구청장이 교육경비 일부를 시·도지사의 승인없이 보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429억 순증). 교부금법과 동시에 통과된 학교용지확보 특례법에 따라 연간 2400억의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정법안이 발효되는 2001년부터 매년 1조7132억원의 교육예산이 추가 확보되는데, 이렇게되면 교육재정은 GNP대비 4.38%선으로 늘어나게 된다. GNP5%를 공약했던 김영삼정부 당시인 97년 4.47%까지 상승했던 교육재정은 98년 4.38%, 99년 4.28% 그리고 올해는 4.22%로 계속 하락해왔다. 김대중대통령의 GNP 6%공약은 실종된지 오래였고 학급당 41명 이상인 과밀학급이 전체 학급의 50%에 이르고 콘테이너 교실이 700여개나 되며 학교운영비 조차 표준교육비의 65%에 머무는 `절대빈곤' 현상이 가속화되어왔다. 급기야 한국교총을 포함한 교육계는 `교육재정 확보없이는 교육개혁 없다'는 문제제기를 계속했고 시민단체조차 `교육재정 GNP6% 확보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으며 새교위도 별도의 교육재정 확보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특히 김대중대통령은 지난해 11월23일 교총이 주최한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 교육재정 확보와 교원처우개선을 약속했다. 교부금법과 용지확보법 개정은 타부처의 이견과 자치단체의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인식위에서 여야 정치권의 한결같은 공감대가 형성돼 극적으로 통과됐다. 교육부 이기우 기획관리실장은 "법개정을 통해 교원의 인건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토대가 마련됐고 자치단체의 교육투자가 법제도적으로 보장됐으며 앞으로 교육재정이 계속 상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질 높이기 '실행'에 매진하자 ⑧ 새 밀레니엄 시대의 교육환경 그동안 몇 회에 걸쳐 우리 나라 학교건축의 100년을 돌아보았다. 요약하면, 1885년의 아펜셀러 등 여러 선교사들에 의한 서양식 붉은 벽돌과 석조로 학교가 건축됐으며 1894년 갑오경장과 더불어 근대화 교육에 따른 신교육을 담을 수 있는 학교가 새로운 건축 기술에 의해 세워졌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부터 그들의 독특한 '왜식' 건축물들이 해방 후 상당기간동안을 영향을 주어왔다. 그러나 1950년 6월 1일부터 실시하려던 균등교육(의무교육)은 6.25로 인해 중단되었고 우리 나라 교육환경은 열악한 상황으로 빠지게 된다. 취학률이 거의 100%에 달한 1950년 말부터의 심각한 교실부족 상황이 전개되어 학생 수용을 위한 교실수 늘리기 에만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5월 문교부의 국민학교 시설기준이 마련 되면서 몇 차례의 표준설계도로 동일한 형식의 학교가 건축되었다. 그렇게 가운데 운동장을 뺀 남는 땅에 담장주위로 ㄱ, ㄴ, ㄷ자의 성냥갑 모양 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1990년까지 똑같이 되풀이 되어 농촌·도시 할것없이 학교는 똑같은 유니폼을 입게 된다. 교육방법이나 학생 활동, 학생의 심리, 물리적 환경 등은 고려치 못하였으며 누런 흙색이나 짓푸른 하늘의 잿빛 색깔로 단장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학교다운 미적 바램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1990년 학교시설의 현대화 모형 연구의 결과에 따라 시범학교를 세우기 시작, 우리 나라 교육환경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나타났다. 2000년도부터 시작되는 새 교육 제도에 의한 교육과정을 고려한다면 대 변혁의 교육환경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바뀌어 2002년도에는 모든 학교, 전과목에 대하여 7차 교육과정으로 전환 한다고 교육부는 확고한 의지를 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환경은 이에 맞게 전국의 모든 학교를 개조하거나 신축해야 할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기존의 교육방식에 맞게 지어진 학교시설은 신교육방식 실현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 교수-학습 방법에 맞는 새 밀레니엄의 학교교육환경이 조성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방향제시로 그동안 써온 글의 결론을 내고자 한다. 초등학교는 수준별 교육을 과목에 따라 실현하는 별도의 필요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반과목(영어, 수학, 과학외)은 수준별 교육도 열린교실에서 수업할 수 있으므로 학년별, 학급별 열린공간 계획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며, 영어·수학·과학 과목만은 별도의 교과교실을 가지고 수준별 Team Teaching을 할 수 있는 大中小의 교실을 수준별 수업 형식에 맞게 계획하고 내부시설은 교과목 성격에 맞게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식당, 체육관, 다목적실은 융통성 있게 교육의 場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중심부에 위치해야 한다. 더욱이 도서실, 정보검색실, 컴퓨터실, multi-medium실 등이 중앙에 열린공간으로 학생수에 맞게 그 크기가 주어져야 하며 설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각 교실은 열린공간이 교실에 연속해서 열린학습이 가능하게 설계되며, 근접해서 교사연구실이 딸려 학생과 같이 생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외부공간도 학생들의 연령층에 맞게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소운동장과 휴식공간을 교실과 연계하여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건물의 형태도 규격화된 정연한 Box 형태를 벗어난 자유로운 조형적 형태 창출이 요구된다. 중·고등학교는 특히 교과교실형이 집중적으로 계획되어야 하는데, 모든 학생이 모든 수업을 각 교과교실군으로 이동하면서 수업을 받아야하므로 학생 거점공간인 락카룸이 모든 시설의 중심부에 위치해야하며 탈의실, 세면실, 화장실 등이 인접해 있어야 한다. 교수-학습 운영은 교과군별로 진행되어야 하므로 각 교과교실군이 Cluster 형태로 이뤄져야하고 어학-국어교과군, 과학-수학-기술교과군, 사회-도덕교과군, 예체능교과군으로 분절되어 배치되어야 하며 이 각각의 수업공간으로는 모든 학생들이 동선이 짧고 용이하게 접근 할 수 있게 배치 하여야 한다. 이동수업을 위해 교실 배치는 집중형 형태로 되어야 되며 각 지원공간(도서실, 컴퓨터실, 정보검색실, 체육실, 다목적실, Multi-Media실, 식당) 등은 중앙에 위치하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중1∼고1 까지는 수준별 교육과정에 따라 大中小의 교과목 교실이 수업형태에 맞게 학생수와 시간수 및 이용율을 계산해야 한다. 고등학교 고학년의 선택별 수업은 더욱 교과군별 공간이 완전해야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규모계획에 맞게 공간크기와 수가 계산되어 진다면 기존 시설보다 45% 정도는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교육과정의 개편을 반듯이 시행한다면 이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2000년대의 우리 나라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환경이 그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교육이 이뤄지기 위한 3대 요소는 좋은 학생·교사·교육환경이다. 이 3대 요소가 조화로운 구성체로서의 기능을 다할 때 그 시대 교육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새 해, 새 천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육을 위해서는 그 질을 높이기 위한 철저한 실행이 가능한 방향으로 사고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100년 후 후학 교수가 “敎育 100년, 校舍 100년”에 대한 소고를 쓸 때는 좋은 교육환경을 자랑스럽게 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즐거운 회고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 完 - 건국대 교수 한국교육환경연구원장
21세기, 아니 새 천년의 첫 날이 밝았다. 인류의 미래는 눈부신 과학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윤택해질 것이다. 그러나 숨돌릴 틈 없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무한 경쟁에 힘겨워하고 가치를 잃은 나머지 난폭한 미래를 맞을 수도 있다. 결국 미래에는 교육이 새로운 가치와 좌표를 제시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한 세기의 기로에서 만난 곽병선 한국교육개발원장과 장회익 서울대 교수로부터 새 천년 바람직한 사회상과 교육의 역할을 들어본다. 곽=새해가 밝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새 천년을 여는 해여서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지난해 말 사회 각 분야는 새 천년을 맞아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고 다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오늘 저와 장교수님도 새 천년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보고 그런 사회를 만들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의 역할에 대해 말씀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 20세기는 어떤 세기였는지 짚어보고 그 토대위에서 우리의 미래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얘기해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장=지난 20세기는 한마디로 급격한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과거 수 천년 역사 중에서 지난 세기처럼 급격한 변화를 보인 시대가 없었죠. 과학을 위시한 인간 지식의 발달과 인류간의 교류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생활방식은 물론 사람의 인식까지 뒤바꿔 놓았습니다.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21세기를 맞게된 만큼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분야가 생겨날 것입니다. 특히 교육은 기존의 생활양식 등을 잘 전수하고 유지해 나가는 기능을 담당해 왔는데 이런 큰 변화의 시기에 어떻게 대응할 건 지 문제를 안게 된 상황입니다. 곽=지난 세기 변화의 큰 흐름은 산업화가 주도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과학주의, 즉 과학적인 세계관과 과학에 대한 신뢰가 사회와 인간의 의식을 지배했다고 보여집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과 사물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대량생산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과실 이면에 환경 파괴와 생태계 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로 대변되는 지난 세기에 비해 21세기, 새 천년의 변화는 더 무서운 속도로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제반 분야조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계속적인 변화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과학은 21세기에도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열어 가는 노력만큼 과학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요소와 경고를 올바로 인식하는 노력도 중요하리라 봅니다. 장=급격한 변화가 온다는 건 결국 우리의 모습도 이대로여서는 안된다는 의미겠죠. 우리의 사고와 생활을 능동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연의 위험을 극복하고 이용해 생활을 윤택하게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자연이 인간을 견뎌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경청해야 할 대목입니다. 자연 없이 인간이 생존할 확률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나아가 새 천년은 자연을 회복하고 더불어 살아야 함을 인식하는 역사적 전환기여야 합니다. 수 세기 동안 물질적 이상을 좇아 온 인류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일 것입니다. 또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라 우리의 인식이 거기에 따라가기에도 급급할 지 모릅니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발전속도를 어떻게 조화롭게 맞추느냐가 21세기의 큰 과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교육이 거기에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에서 우려할 것은 연구결과를 너무 성급히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숙고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곽=이를테면 유전자 조작이나 생명복제 같은 예를 들 수 있겠군요. 장=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인류의 식량,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태계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 일부에서는 과학을 넘어서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을 넘어서는 사고 이전에 우리는 과학적인 사고조차 부족한 형편입니다. 과학적 지식을 적용하기에만 급급해 생태계의 현 상황을 체크하고 어떻게 하면 더 위험해지거나 안정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이 기술과 합리적인 사고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설혹 과학이 일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일반인에게는 전달되지 않아 여전히 기술의 적용만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과학을 통해서 사물을 합리적으로 보고 그 결과를 통찰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과학을 뛰어넘는 전통적인 지혜와 가치를 결부시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반과학, 반지성적인 흐름이 엿보여 우려가 됩니다. 곽=과학적인 사고의 기초라도 확실히 갖추는 것이 더 절실한 과제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지난 20세기를 냉철하게 돌아보는 것은 21세기, 새 천년 미래의 좌표를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20세기는 대외 의존도 또는 타율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세기였다고 평가합니다. 20세기 초 서구문명이 밀어닥친 그 시기도 지금 같은 문명의 전환기였습니다. 하지만 西勢東占의 시기라 일컬어지듯 당시 우리 조상들은 문명의 전환을 주도하지 못했습니다. 일제 강점, 6.25와 분단이 그러한 결과였고 2년전 밀어닥친 IMF 역시 경제자립 하나 제대로 못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의 과학적 사고와 지식, 정치, 경제, 사회제도 심지어 교육조차 내생적으로 생성·발전되지 못하고 서구의 탐구결과만을 수입해 응용해 온 결과라고 봅니다. 타율적 생존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한 세기, 즉 20세기는 자생적인 과학·기술, 문화를 창조해 타 문화권을 선도해 나가지 않으면 결국 생존까지 위협받게 된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과학,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이 더욱 눈부실텐데 이것을 누가 주도해 나가느냐가 국제사회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국가 전략적으로 몇 개의 선도분야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자립기반이 허약해 혼란을 겪었던 한 세기를 거울삼아 몇 가지 선도적인 분야의 전략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21세기에도 각 분야에서 치열한 발전과 경쟁이 지속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런 과정 속에서 전체적인 조화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크게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고 작게는 인간과 인간과의 공존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쟁은 인간사회의 필수적 요소지만 경쟁 때문에 해야 될 협력, 이뤄야 할 조화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 치열한 개발경쟁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또 몇 몇 선도분야의 육성이 각 분야의 불균형을 심화시켜서는 곤란합니다. 지금도 응용과학과 기초학문 분야의 불균형을 우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 쪽이 너무 앞서 상대적으로 한 쪽은 후퇴하는 사회구조는 비능률을 나을 것입니다. 21세기에는 또 반드시 민족통일을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간 화합도 함께 이뤄야겠지요. 나아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인류전체가 다 함께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곽=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활방식과 사고는 우리의 전통적인 삶 속에 녹아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물질문명 속에서 이런 정신이 점차 퇴색된 느낌이 듭니다. 기본 욕구조차 충족하기 힘든 삶이 그 원인일 수 있겠죠. 그러다가 요즘은 다시 생태학적인 윤리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말일 수 있겠습니다. 각 개체가 공존을 위해 이질적인 타자와도 어울리고 협력하는 삶을 지향하는 윤리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장=우리의 전통속에는 좀 더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추구하는 지금 세상에서 그런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치부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그런 사고와 생활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요. 그냥 옛날 사람들이 그랬으니 그렇게 생각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왜 살 수 없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생태적으로 이렇게 사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어떻게 된다는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아울러 전통적으로 바람직한 삶의 요소를 소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곽=새 세기에는 많은 혼란이 예견되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명의 연장 등은 새로운 윤리 문제를 끌어낼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21세기 안에 사람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날 것이란 예측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정해진 수명 내에서 취해야 할 인간관계를 논한 기존 윤리체계가 혼란을 맞을 것입니다. 또 인터넷 환경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지도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미래의 특징을 불확실성의 점증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화, 공생이라는 가치기준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돼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려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가 난폭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장=맞습니다. 21세기를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수명 연장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그저 건강한 상태로 적절히 살다가 죽는 게 자연스러운데 너무 인공적인 노력을 가해 수명을 늘이다보면 생태적으로 다른 것에 대한 상당한 피해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 보신을 위해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도 그런 예입니다. 수명을 억지로 늘이는 것보다는 무너져 가는 생태계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결국 다음 세대는 많이 얻고, 더 누리려고만 하는 20세기적 가치관을 뛰어넘어 긴 안목에서 인류 전체와 생태계를 살리는 쪽으로 지식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곽=결국 20세기적 사고방식으로 21세기, 새 천년을 내다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죠. 개인은 물론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가 거시적으로 협력해야 공존할 수 있다는 가치전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통찰하고 절제하는 능력을 겸비해야 할 것입니다. 장=바로 그런 점을 보여주는 것에서 우리가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어야 겠습니다. 경쟁과 개발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그리고 인류 전체가 조화롭게 생존해 나가는 방법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앞서서 선진국이 되겠다는 것은 20세기적 사고방식입니다. 21세기에는 문화적으로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장기적으로 인류를 생존케 하는 방식의 삶을 보여주는 정신적 선진국이 돼야 할 것입니다. 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한국에 꼭 가봐야 할 이유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 하구요. 그럴 때 저는 우리 나라가 진정 사람을 존중하고 서로 돌보고 여유와 평화가 깃 든 수준 높은 도덕국가여서 누구나 살아보고 싶어하는 나라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弘益人間이라고 하는 기본정신이 21세기를 밝힐 중요한 교육이념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교육쪽으로 좁혀 말씀을 나눠보지요. 최근 교육계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 붕괴…교원 사기 저하…정부의 정년단축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교육은 교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조화와 공존의 21세기를 만들어갈 구성원을 길러내는 일이 교사의 손에 달려 있는 만큼 교사 각자의 분발과 정부, 사회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 교육을 특징짓던 수용교육의 틀을 벗어나야겠습니다. 남의 지식과 기술, 제도 등을 단순히 전달하고 익히는 방식이 아니라 토론, 실험실습, 현장체험, 조사 등 다양한 수업방식을 통해 과학적인 사고의 틀을 갖추게 해야 합니다. 즉 학습자가 수업 속에서 지식을 직접 생성해보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장=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의욕을 갖고 학생의 위치에서 생각과 호흡을 맞추는 교사만이 그 일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크게 2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지적인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걸 해보면 될 것 같다라는 가능성을 교사는 학생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활동공간을 열어줘야 합니다. 아무리 자극을 받아도 시간·공간적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밤 10시, 12시까지 학생을 교실에 가두는 교육은 그만해야 합니다. 학생 스스로 자유롭게 활동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곽=동감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창의성 교육이 아닙니다. 2002 대입제도의 개선으로 앞으로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해 봅니다만 근본적으로 교육의 지배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학교는 너무 획일화 돼 있는데 상당한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제도개선이 시급합니다. 독자적인 교사 임용, 예산 자율책정·집행, 교과편성 등 교육과정 운영에 상당한 재량권을 줘야 합니다. 결국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려면 학교, 교사에게 상당한 폭의 자율을 주고 아울러 책무성을 지게하는 지배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개성과 창의성을 가진 학생을 길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부모와 사회 전반의 의식도 크게 전환돼야 할 것입니다. 학벌주의 그리고 입시전쟁이 남아 있는 한 모든 것이 부질없는 노력이 될 것입니다. 장=획일화를 깨야 한다는 말씀 정말 동감입니다. 학교 스스로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해 볼 수 있도록 교육행정의 일대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육당국이 너무 일반 여론에 휘둘려 긴 안목과 철학도 없이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곽=교육을 살리려면 교사의 전문성과 재량권의 폭, 그리고 책무성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 공존에 기여하는 구성원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꽉 짜여진 학교에서 지식만을 전달하는 교육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교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교육정책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장=클린턴 미 대통령도 얼마 전 국가의 장래는 나라의 교육수준 이상일 수 없다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교육에 힘을 쏟지 않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건 환상입니다. 다른 부분이 어렵더라도 교육은 살려야 합니다. 국민들도 그건 수용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걸 못한다는 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공교육을 살리되 이제는 양을 줄이고 질을 높였으면 합니다. 밤늦게까지 교실에 갇혀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게 아니라 좀 더 자율을 부여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주5일 수업 같은 제도들이 많이 도입돼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체험할 시간을 주고 교사들에게도 연구할 시간을 주는 과감한 제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곽=앞으로 교육부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획기적으로 늘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공약한 교육재정 GNP 6% 확보는 반드시 실현돼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된 사람을 기를 수 있도록 국민들도 학벌위주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학교가 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새 천년은 우리가 소망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교육이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장=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郭炳善 △美마쿼트대 철학박사(교육학) △現 교육정책심의회 교육과정·장학분과위원장, 문광부 청소년육성위원회 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심의위원회 위원, 한국교육개발원장 △저서: `교육이 변해야 미래가 보인다' `인성교육의 실제' 등 張會翼 △경북 예천 출생 △美루이지아나주립대 물리학박사 △現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과학분과위원장 △저서: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등 △관심분야: 생명문제, 과학이론의 구조 등
힘을 제압하는 것은 속도. -한 이온음료 TV 광고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도로는 양재동에서 가락시장까지 이어지는 양재 대로다. 그 길은 편도 4차선의 널찍한, 그래서인지 잘 막히지도 않는 쌔끈한 도로다. 게다가 음주 단속하는 짭새도 보이지 않는다. 나와 친구는 일주일에 몇 번씩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 이 길을 X나 달린다. 지금은 새벽 1시 30분. 나는 오늘도 이 길을 달리기 위해 나왔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후, 후, 오늘은 바로, 내 오토바이가 생긴 날이기 때문이다. 방학 내내 중국 집에서 스쿠터를 몰며 꼰대 몰래 철가방 알바를 한 대가다. 내 다이어리에 스크랩되어있는 정말 죽여주는 가와사키나 야마하는 아니지만 이래봬도 125씨씨짜리 경주용이다. 무늬만 경주용이라고 대석이 새낀 씹었지만 뒤 안장을 파이프로 용접해서 멋지게 올리고 바퀴에 번쩍거리는 야광 후레쉬에, 앞좌석에는 커다란 스피커까지 달아논 내 타이지를(타이지는 내 오토바이의 이름이다. 내가 X나게 좋아하는 엑스제펜 멤버중의 이름을 땄다) 보고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물론 소음기는 떼어버렸다. 아파트 전체를 울리는 그드등, 그드등 거리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는 타이지의 베이스 기타 음만큼이나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주인인 송씨 아저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이런 쌈박한 오토바이를 내가 원하는 옵션을 다 달아주면서 단돈 50만원에 팔다니, 아주 드물지만 가끔 맘에 드는 어른이 이 세상에 있기도 하다. 어느덧 양재 사거리에 도착했다. 나는 인도 가까이 오토바이를 대고 숨을 고른다. 신호등을 계산하고 출발해야지만 멈추지 않고 가락시장까지 달릴 수 있다. 이제 쪽팔리게 중국집 스쿠터로 아파트 안을 돌거나 애걸복걸해서 단 몇 십분 친구 오토바이를 감질나게 빌려 타야만 했던 지난날의 서러움을 씻을 수 있게 됐다. 대학로에서 비싼 오토바이에 기집애들을 태우고 달리던 놈들도 이젠 부럽지 않다. 만나면 맨 날 징징대기만 하고 자존심만 X나 세우는 기집애들보다 나를 희열의 끝까지 데려가는 오토바이가 훨 낫다. 타이지가 이제 내 깔이다. 내 깔에 손대는 놈은 누구든 간에 죽여 버릴 꺼다. 나는 타이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몸체를 한번 어루만졌다. 신호가 바뀌었다. 동시에 나는 양 손목으로 힘차게 엑셀을 땡겼다. 타이지가 멍에에서 풀어진 들소처럼 퉁하고 튀어 나갔다. 머리카락이 뒤로 젖혀졌다. 웅 웅 바람소리가 들린다. 밤을 깨뜨리는 엔진 소리와 바람소리. 내 모든 신경은 생선처럼 파득거린다. 헬멧은 없다. 그건 속도를 겁내는 비겁한 놈들이나 쓰는 거다. 가죽 잠바는 돈이 없어 아쉽지만 다음 달로 미루었다. 나는 살갗을 벗겨버릴 것만 같은 힘찬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즐긴다. 내 앞에 있는 검은 색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나는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뒷좌석에 앉은 머리가 벗겨진 배불뚝이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씨부렁거리는 것이 빽 밀러에 보인다. 나는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면서 다이너스티를 희롱한다. 나는 고급 차를 보면 가끔 이런 장난을 한다. 소위 성공했다는 저런 새끼들이 테레비에 나와 점잔떠는 것을 보면 속이 메스껍다. 국민을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이 룸싸롱에서 영계만 찾지… 일찌감치 학교는 접고 룸싸롱에서 삐끼하는 친구 놈에게 다 들은 얘기다. 씨팔 나도 학교 때려치우고 삐끼나 할까, 삐끼 수입이 우리학교 선생 수입보다 낫다는 데. 오토바이 타는 것을 말리던 담임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라는 담임의 말에 픽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 목숨이나 걸어본 적 있어?’ 부모말 잘 듣고 착실히 공부만 한 범생이들. 그것이 대부분 선생들의 인생이다. 그들이 우릴 어떻게 이해해. 이 X같은 세상에 이제 목숨 걸만한 것이 무엇이 남았냐 말이다. 난 지금 이 순간 타이지에 목숨 걸 꺼다. 괜히 화가 나서 손목에 더 힘을 준다. ‘속도계는 고칠 필요 없지?’송사장이 웃으며 말한 얼굴이 생각난다. 속도계는 고장나 있었다. ‘그럼요’ 나는 웃으며 말했었다. 내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의 세기. 한 선으로 그어지는 가로등의 조명. 터질 듯한 엔진소리. 이것이 바로 속도계다. ‘자 이제 너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줘 봐.’ 나는 타이지에 속삭인다. 어깨를 바짝 앞으로 누이고 속도를 높인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맞바람이 친다. 몇 대의 차가 위잉하는 소리를 내며 내 뒤로 뒤쳐진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나는 내 뒤로 획획 지나가는 세상과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게 소리친다. 세상 모든 사물들이 줄어들어 하나의 점으로 축소된다. 나는 지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블랙홀 같은 그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점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릴 것 같다. 나는 손목을 더 안으로 당긴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난다. 종아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밑을 보니 실린더와 함께 내 다리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뜨겁다.’라고 느낀 순간, 앞 미간에 무언가가 다가온다. 고개를 위로 올리자 DEAWOO라는 영문자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나는 타이지로부터 솟구쳐 하늘을 난다. 시팔, 서울 밤하늘 한번 근사하구나. 교사(敎師):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거나 돌 보는 사람 -‘동아 새 국어 사전’ 중에서- 띠르르.. 아침 보충 수업을 막 끝내고 돌아와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허리가 휘청거려 분필이 잔뜩 묻은 손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깨우며 소리를 질러대느라 턱이 다 아파 온다. 까마귀가 파먹은 듯한 54개의 눈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아침도 굶어가며 수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퍼져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수업을 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하긴 아이들도 전날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다음날 아침도 굶고 7시30분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고 그래서 지금 선생이나마 되지 않았는가. 이놈들은 공부를 못해서 사회에서 겪을 불평등과 설움을 아직 모르고 있다. 고졸과 대졸, 명문대와 비명문대를 가르는 편리하고 명징(明澄)한 잣대. 이놈의 사회는 그 잣대로 그들의 삶에 정육점의 고기처럼 지우기 힘든 낙인을 찍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르르 따르르. 계속 울리는 전화벨은 불편한 내 심기를 계속 긁고 있다. 때론 혼란스럽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이상을 가르쳐야 옳은 건지, 아니면 냉엄한 현실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옳은 건지. 하긴 교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르치든 욕을 먹는 건 마찬가지다. 재밌고 유익한 수업. 그거 나도 할 줄 안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쫓기는 진도에, 50명이 넘는 학급 인원에, 학교 시험 에 반영이 안되면 관심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외면 당하기만 한다. 아이들 특유의 감성이 흘러 넘쳐야 할 문학 시간에 수능 대비 문제집만 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맥이 빠져 버린다. 시를 수능이라는 도마에 놓고 갈가리 찢는 문학 백정. 그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김선생, 전화 좀 받으세요. 선생님 반 학부모라는데요?” 동료 교사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어 전화를 받는다. “예 제가 광석이 담임입니다. 네! 아니 어쩌다가…… 어느 병원인데요? 많이 다치진, 그래요? 결석계는 차후에 진단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오늘 제가 가보죠. 너무 걱정마십시요.” 나는 전화를 집어던지듯이 끊었다. 이런 썩을 놈. 광석이 이 자식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토바이 타는 것은 인구 억제 정책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놈을 앉혀 두고 농담 반으로 말했건만 결국 이놈이 미친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감각적인 것에 목숨거는 놈들을 나는 경멸한다. 결국 감각의 말로는 항상 이런 식이지 않는가? 기계 음 천지인 테크노 음악, 저속한 랩 가사. 폭력과 성으로 도배를 한 일본 만화. 난 이 땅의 십대들이 이런 문화 속에서 커서 뭐가 될지 걱정이다. 여학생 반에서도 시 프린트를 나눠주고 낭송 좀 시키려면 재미없다고 우 우 거린다. 정신적인 깊이가 점점 없어지는 애들에게 정이 떨어진다. “뭔 전화요?” 옆 좌석의 한문 선생인 지선생이 묻는다. “광석이가 또 사고를 쳤어요. 오토바이로 트럭을 박았다는 군요. 아마 이마를 크게 다친 것 같아요. 게다가 왼쪽 다리는 화상까지 입었대요. 중고 오토바이를 샀는데 그게 아마 엉터리였던 모양이에요. 실린더가 폭발해 일어난 사곤가 본데, 판 사람이 아주 나쁜 놈이지, 애들이라고 고철 덩어리를 팔고 말이에요. 부모가 오토바이 가게 주인을 고소한다고 난리예요.” “호오. 트럭을 오토바이로 박아요? 거 완전히 당랑거철(螳螂拒撤)이네요. 요즘 애들 지몸 아까운 줄 모르고, 깡통처럼 굴리는 애들이 많다니까요.” 지선생과 말하는 사이, 반장이 온다. “어제 청소 도망간 애들 명단입니다.” 반장은 의젓한 얼굴로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종이 쪽지를 내민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놈이다. 공부도 잘하고 시키는 일도 책임감 있게 잘한다. 거친 반 아이들이 투정을 부려도 묵묵히 참는다. 이런 아이 하나 때문에 교사할 맛이 난다. 어디 볼까? 매일 그놈이 그놈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우리반의 암적인 존재들. 흡연하다가 걸려서 반성 좀 하라고 청소를 시켰더니 그것조차 하지 않고 날랐다. 솟구치는 울화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알았다. 수고했다 가봐라." 나는 구석에 있는 굵직한 몽둥이를 집어든다. 저번 주 토요일에 등산을 갔다가 마련해온 것이다. 체벌을 금하라고? 교육부 양반들. 웃기지 마쇼. 나도 한때는 열렬한 체벌 반대론자였다오. 걸핏하면 아이들의 아구창을 날리던 고등학교 때의 학생부 선생들의 악몽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교사가 된다면 결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만은 그 악몽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담임 첫 해에 끝끝내 매를 들지 않은 나에게 돌아온 것 은 수시로 담임에게 개기는 반 아이들의 태도와 통제할 수 없는 수업 시간,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결국 말이 안 먹히는 놈들에게까지 인간적인 호의를 베풀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 질서가 무너지자 오히려 몇몇 아이들은 날 찾아와서 좀 때려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몽둥이를 들고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수행평가 과제물 더미가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짜증이 목구멍까지 치달아 온다. 이 놈의 수행 평가 때문에 일이 배가 늘었다. 도대체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무슨 수로 객관적으로 평가한단 말이다. 교육부 정책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건 숫제 총도 안주고 적과 싸우라는 꼴과 마찬가지다. 적이라? 후 후, 내 스스로의 비유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럼 아이들은 적이란 말인가? 하긴 애들이나 나나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 적들을 진압하러. 나는 몽둥이를 어깨에 매고 교실로 진격한다. 캘리포니아는 아름다운 곳이야. '낙원에 가까이 있는 섬'이란 말에서 유래한 지명처럼 아름다운 곳이지. 비옥한 계곡지대와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사막, 콜로라도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아름다운 롱비치와 산타모니카가 있는 곳이지. -박상우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중에서- 차렷! 경롓! 오늘따라 껄렁대며 무성의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없다. 담임이 몽둥이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담임은 독이 어린 눈으로 교단 앞에 섰다. 그리고 내가 적어 준 명단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대석이 새끼가 천천히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그런 모습이 담임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놈이 담임에게 보일 수 있는 반항의 모습은 기껏해야 그것뿐이니까. 담임은 확실히 화가 났다. “너 이 새끼 뭐야 그 태도가. 엎드려!” 담임은 몽둥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대석의 아랫도리를 내리친다. 두 세대 버텨보지만 대석은 무너진다. 오늘 맞은 아이들은 모두 다섯 명. 우리 반의 골통들이다. 한 명 두 명 나가자빠지고 그것을 보는 애들은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똑바로 앉아 있다. 옆을 보니 내 짝인 정호 자식은 그 와중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짜증이 난다. 왜 저들의 부모들은 저런 애들을 인문계로 보냈을까?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저런 놈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현실이 너무 싫다. 우리 나라에 영국의 이튼 고교 같은 고급 사립학교가 없는 것이 나에겐 불만이다. 영국은 그 학교 출신들이 나라를 다 이끌어 나간다는데, 나 같은 고급 인재와 연합고사 100점을 간신히 넘은 저런 골통들과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준으로 공부하는 우리 나라 고등학교의 현실 자체가 모순이다. 마음 같으면 휴학하고 싶다. 수능에 필요도 없는 것까지 일일이 가르치는 학교선생보다는 시원한 에어컨에 요점만 딱딱 찍어 가르치는 학원선생이 훨 낫다. 내신 때문에 학교를 다니긴 해도 갈수록 학교가 지겨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선생들의 비위나 맞춰 주면서 3년을 버틸 뿐이다. “너 또 눈은 왜 그래? 너 어제 또 싸웠지? 이 새끼 네가 깡패냐 맨날 싸움질이나 하고.” 담임이 대석이를 다그친다. 그러고 보니 대석의 왼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다. “선생님이 어제 나 싸우는 거 봤어요?” 대석이가 세게 나온다. 멍청한 자식. 더 맞기나 하지. 담임의 손이 대석의 오른쪽 뺨을 올려 부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누가 반 모둠일기에 이런 글을 써 놨다.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아무래도 애들이 컴퓨터 게임 하다가 반 컴퓨터를 고장낸 것을 말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그 이야기까지 했다가는 담임의 화에 기름을 붓는 일일 테니까. 수업시간에 쓰지도 않는 컴퓨터를 뭐하러 갔다 놨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에어컨이나 놔 줄 것이지. 나는 오늘 조회가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책상에서 몰래 단어장을 꺼냈다. un-ortho-dox 이단의. 정통이 아닌… 후. 난 공부가 좋다. 새로운 세계를 배워나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공부한 뒤에 남는 뿌듯한 지식의 여운이 날 항상 들뜨게 한다. 이 나라에서는 공부란 앞으로의 풍요로운 나의 삶을 보장해 주는 든든한 무기란 것을 나는 알고있다. 난 특히 영어를 좋아한다. 미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다. 할리우드. 아이비리그. 윌스트리트. 막강한 군사력. 순수한 자본주의의 나라. 남의 눈치 안보고 살 수 있는 나라. 나는 그런 미국에 갈 거다. 아버지 차가 외제차라고 담임에게 그 차 타고 다니지 말라고 지적 받는 이런 쫀쫀한 나라가 나는 싫다. 구닥다리 유교적인 관습에 얽매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나라. 그렇다고 영국처럼 멋진 전통이 살아 있지도 못한 나라.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껏해야 한일전 축구에나 열광하는 이 나라의 오강통만한 소견머리. 나라가 작으면 통도 작아지는 건가.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 공부의 이유는 그거다. 이 나라를 뜨는 거. 서울대에 붙으면 곧바로 유학을 보내주기로 아버지는 나와 약속했다. 나는 미국에 가면 아예 거기서 눌러 살 적정이다. 그리고 성공해서 영화에서 보는 넓은 잔디밭과 차고와 수영장이 있는 멋진 집에 살거다. 그렇게 되면 물론 곰팡이 냄새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거고.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석이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다. 주먹에 피가 흐른다. 담임은 놀라 커다랗게 눈을 뜬다. “이놈의 학교 때려치면 될 거 아냐!” 대석이 교실 밖으로 뛰어나간다. “거기 안서!” 담임이 뒤쫓아 뛰쳐나간다. 아이들은 휘파람을 불며 대석이를 응원한다. 옆을 보니 그 와중에도 정호는 세상 모르고 졸고 있다. 아! 정말 이런 한심한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무한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 배너 중에서- 투투투… 총소리에 깜짝 놀라 퍼뜩 눈을 떴다. 깜박 졸았나 보다. 조는 잠깐 사이에 저그족이 밀려오는 꿈을 꾸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다. 다시 베틀넷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마지막으로 새벽 2시전에 잠자리에 든 지가 언제지? 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동호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섯 명과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테란을 선택하고 devill3이란 아이디를 가진 다른 한 명과 동맹을 맺었다. 난 테란이 좋다. 무엇보다 지구 생명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고 테란이 거느리고 있는 화려한 무기를 지닌 유닛들이 맘에 든다. 이제 베럭스를 건설하고 기본 자원을 캐는 유닛이 미네랄을 150까지 만들 때까지 기다린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이 밤에 누굴까? 받을까? 말까? 나는 받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어제 인터넷 채팅 방에서 만난 그 계집애일지도 모른다. 걔가 먼저 번개팅을 하자고 제의했고 나는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만난 애들이 벌써 10명 가량이나 된다. 길거리에서 헌팅하기는 어렵지만 채팅으로는 하루에 열 명도 꼬실 수 있다. 채팅으로 만나러 나오는 여자 애들은 대개 그저 그런 애들이다. 좀 얼굴이 받쳐 주면 발랑 까진 애들이거나 얼굴이 안돼서 채팅으로 남자를 구하는 폭탄이거나. 걔네 들이나 나나 어차피 하루 즐기려고 나오는 거니까 굳이 호적등본까지 따질 건 없지만 요즘은 그런 만남들이 지겨워진다.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다. 나에겐 지금 여자보다 저그족을 부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플라이 포트를 만들고 벙커를 짓고 머린을 상주시켜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이제 공격에 나설 차례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난 지금부터 이 사이버 공간에서 최첨단의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된다. 그리고 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군대는 모두 나의 지휘를 따른다. 이 시간만큼은 더 이상 학교에서 꼴찌라고 선생들과 애들한테 무시당하는 열등생 박정호가 아니다.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마음에 가득 차는 유일한 시간이다. 옛날 사람들은 게임 없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게임 없는 세상을 상상하니 끔찍하기조차 하다. 이런, 저그족의 공격이 파상적으로 시작되었다. 전화 때문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것이다. 상대편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꽤 고수임이 틀림없다. 저그족의 유닛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의 유닛들과 벙커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오싹해진다. 마치 나 홀로 산소도 없는 차가운 혹성의 분화구에 떨어진 느낌이다. 우리편이 점점 밀린다. 태란의 벙커들이 무너지고 있다. 미네랄이 부족하다. 테란의 유닛들이 손도 못쓰고 무너지고 있다. 어떻게 한다? 히드라리스크가 산성 침으로 우리편의 머린들을 녹여 버리고 있다.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온다. 내 턱밑까지 적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 같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갑자기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 손에 경련이 온다. 왜 이럴까?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눈알도 자유롭게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아프다. 동공이 풀리는 느낌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무서움에 나는 엉겁결에 컴퓨터의 파워를 눌러 꺼 버린다. 순식간에 방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주위는 캄캄해진다. 과학 실험실에서 본 어둠 상자에 갇힌 기분이 든다. 나는 갑자기 닥친 어둠이 무서워 벽을 더듬어 불을 켠다. 확하고 어질러진 내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책상에 놓인 생수 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물이 흘러 때묻은 런닝을 적신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을 본다. 까칠해진 피부. 핏발 선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 거기에는 다시 무기력한 18살의 박정호가 나를 보고 있다. 넌 누구니? 그가 나에게 묻고 있다. 거울 속의 그가 갑자기 싫어진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천장의 격자무늬가 빙빙 돈다. ‘그래 요즘 컴퓨터를 너무 많이 만졌어. 주말이면 거의 전부를, 평일에도 서너 시간을 컴퓨터를 끼고 살았잖아. 잠이 부족한 거야. 지금의 나는.’ 내 팔을 만져본다. 물렁거린다. 요즘은 운동도 안해 근육이 와해되는 느낌이다. 침대 밑에 농구공을 꺼낸지도 한참이 된다. ‘이제 게임은 그만 하자.’ 오늘 우편함에서 꺼내 본 전화요금 통지서에 적힌 금액은 이십 만원이 넘었다. 나는 엄마가 볼까봐 통지서를 잘게 잘게 찢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에 엄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미쳤지’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의 휴즈선을 뽑아 둘둘 말아 침대 밑에 박아 버렸다. 그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제 자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중간고사시험 첫날이다. 잠을 자야 맑은 정신으로 그나마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둘둘 말고 몸을 웅크렸다. 쿠쿵 쿠쿵…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유닛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베개로 머리를 눌러보지만 귀를 막을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쿠쿵 쿠쿠쿵, 몸을 뒤틀어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보았다. 천장에는 지금 테란과 저그의 싸움이 한창이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심장 고동 소리가 귀에까지 들린다. 몸 전체는 무거운 돌덩이에 눌린 듯이 피곤을 느끼지만 정신은 오히려 깨어나고 있다. 눈은 감았지만 내 정신 속에서 테란과 저그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신경이 오돌오돌 깨어나 나의 잠을 방해한다. 쇠사슬로 나의 몸이 칭칭 감겨 쥐어 오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 밑에 손을 뻗쳐 휴즈선을 집었다. 그리고 황급히 컴퓨터에 다시 이었다. 컴퓨터의 파워를 누르자 위잉하는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제야 나는 나를 짓누르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해방된다. 심장 박동이 차츰 느려진다. 나는 손바닥의 땀을 런닝에 슥 닦고 마우스를 손으로 거머쥔다. 자 이번엔 누구와 한 번 싸워 볼까? 태주:임마, 산다는 건 장난이 아냐. 도시에서 깡패로 산다는 건… 더 그렇구. -영화 ‘넘버 3’ 중에서-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난다. 눈깔이 터졌나. 상가 유리창에 눈을 두룩거려보지만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분하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당했다. 내가 중삐리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면 개쪽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게 맞장 뜨자는 놈들이 많아질 것이다. 어제 그 X만한 새끼랑 마주쳤던 그 뚝방 길을 돌아 동네를 한시간이나 헤메였건만 찾지 못했다. 어제 일이었다. 게임방 갈 돈이나 마련하려고 지나가던 중삐리 하나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갔었다. 순순히 지갑을 꺼내는 그 새끼의 태도에 방심한 게 잘못이었다. 벽에 기대에 딴 곳을 잠깐 바라 본 순간 놈의 주먹이 내 왼쪽 눈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어버려 뛰어가는 놈을 뒤쫓아갈 생각조차 못했다. 싸움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아무리 약한 놈이라 할지라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새끼를 잡으려고 부근에 있는 중학교 주위를 빙빙 돌았지만 발견 못하고 지금 다리 품만 팔고 있는 것이다. 걷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도 내 짜증에 부채질을 한다. 담탱이에게 맞은 허벅다리가 걸을 때마다 욱신거린다. 유리 파편에 찔린 주먹도 따갑고 쓰라리다. 오늘은 재수 X나게 없는 날이다. 담탱이에게 맞을 때의 공포가 되살아난다. 담탱이의 매질은 초보다. 그래서 더 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들에게 수없이 맞아본 경험으로 안다. 때리는 것에 관록이 붙은 교사는 힘들이지 않고도 짝짝 살에 붙게 때린다. X나 아프지만 근육이나 뼈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뒷 끝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담탱이같은 초보가 힘으로만 때리는 요령 없는 매에 잘못 맞으면 힘줄이나 뼈를 다치게 된다. 그런 무지막지한 매가 멈추지 않으면 공포심이 밀려온다. 뒷 모가지에 소름이 돋는 공포. 나한테 맨 날 맞은 은수새끼도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난 그런 공포가 좋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와 박 터지게 싸우면서 그 공포를 맛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맞장 뜨기 바로 직전에, 서로의 눈을 쏘아보면서, 때론 상대방이 든 벽돌이나 각목을 보면서 얼굴 근육이 근질거릴 정도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나는 즐긴다. 그리고 그 심장이 터질 듯한 시간이 지나가고 상대방의 턱이 깨지고 내 주먹 가득히 다른 놈의 살덩이가 뭉개질 때의 쾌감. 그렇게 누군가를 짓밟을 때 가슴 켠켠이 쌓여 있던 온갖 체증은 싹 가신다. 내가 처음으로 싸움에 눈을 떴을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 때도 역시 학교에 오면 담임에게 맞는 게 일이었다. 그날도 기집애들 필통에 바퀴벌레를 넣었다는 이유로 담임에게 양 볼을 쥐어 터진 후에 교문을 나오는 길이었다. 그 때 새로 전학을 와서 6학년들을 제압하고 있던 덩치가 중학교 3학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 놈이랑 붙었었다. 그 놈의 억센 손에 멱살을 잡힌 채 버둥거리다가 나는 그놈의 머리를 잡고는 한쪽 귀를 물어뜯어 버렸다. 내 입안에서 느껴지는 찝찔한 핏물의 내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앞날을 결정지어 버렸다. ‘그래 커서 멋진 갱이 되는 거야.’ 영웅 본색의 주윤발처럼 총알구멍이 있는 바바리를 걸치고 양손에 권총을 든 채 피칠갑을 하고 거리를 누비는 멋진 갱. 나는 그 후로 갱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갱 영화와 일본 만화에 빠졌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건달들의 대사와 몸짓하나 하나는 나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나라 최고의 건달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다. 신창원 같은 강도도 영웅이 되는 세상인데, 나라고 존경받는 건달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싸움은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싸움은 힘보다는 악과 깡으로 하는 거다. 내가 작은 키에도 우리 학교 짱이 된 것이 물 불 안 가리고 덤비는 깡다구 때문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밀려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만의 것이다. 고로 난 천성적인 싸움꾼이다. 그런 날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제 X만한 새끼한테 어이없이 당한 것이다. 어제일을 떠올리자 다시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 저기 낯익은 새끼가 보인다. 은수 새끼다. 벼엉신 같은 놈. 난 온수 새끼가 싫다. 언젠가 내가 왜 그 새끼를 싫어하는지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새끼를 X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끼가 싫어질 때마다 싫증날 때까지 조지면 되는 것이다. 주먹질은 사람의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유 따윈 필요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쌈이 벌어질 때마다 선생들이 하는 지겨운 질문이 있다. ‘왜 싸웠어?’ 그건 ‘넌 왜 사니?’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스페인 놈들이 소를 칼로 서서히 죽이면서 열광하지 않는가? 유혈이 낭자하게 싸우는 권투도 어차피 스포츠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일 뿐이다. 걔네 들이나 나나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좀 더 표현이 솔직한 것뿐이다. 은수 새끼가 나를 봤다. 은수 새끼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병신 새끼. 짜증이 난다. 난 저런 약한 놈들을 보면 더 밟아주고 싶다. 은수 새끼가 내 앞에서 강아지처럼 오줌을 지리며 꼬리를 내릴수록 나는 저 새끼를 더 패고 싶어지는 것이다. 캭. 나는 침을 탁 뱉고 은수에게 가기 시작했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커트코베인의 ‘자살노트’ 중에서- 대석이 새끼가 나를 봤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어쩌지. 차라리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이 덜 맞지 않을까? 갑자기 나의 머리는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내 앞의 사물들이 하얗게 탈색되고 있다. 헉. 대석이가 길을 건너 내 쪽으로 오고 있다. 두렵다. 공포가 화염처럼 내 숨을 턱턱 막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을 더듬는다. 그 안에서 육교 위에서 산, 칼집을 누르면 칼날이 툭 튀어나오는 나이프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 조각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들을 벌써 2년째 가방 안에 가지고 다닌다. 아 아, 그것으로 대석이를 찌르고 때리는 상상을 얼마나 했던가.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것을 사용해 보지 못했다. 대석이가 어떤 놈인가. 중학교 1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난 그놈을 잘 안다. 남자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었던 학교에서 대석이가 매점 뒤에서 고등학교 유도부 형에게 삥을 뜯겼을 때, 대석이는 감히 그 형과 맞장을 떴었다. 당연히 대석이가 나가 떨어졌었다. 하지만 대석이는 쉬는 시간마다 그 형에게 찾아가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으면서도 끝까지 개겼고, 마지막 쉬는 시간에는 숨기고 간 커터 칼로 그 형의 얼굴을 대각선으로 그어 버렸다. 선생님들마저 혀를 내두른 대석의 살무사 같은 독기. 난 그 독기가 너무나 무섭다. 그런 대석이에 대한 살벌한 기억들로 인해 나의 전의(戰意)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책가방 속에서 얼른 손을 뺐다. “야 뭐하냐.” 대석이 나의 턱을 손끝으로 강아지처럼 쓰다듬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어, 그냥, 집. 집에 가는 길이야.” “야. 니네 누나 잘 있냐. 니네 누나 몸매 짱이던데. 소개 좀 시켜주라.” 대석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계속 건딘다. 전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누나를 눈여겨 본 모양이었다. 순간 대석이에 대한 증오심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대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칵하고 침을 뱉고 나의 멱살을 잡는다. “아 X만한 새끼가 내 말을 씹어. 이 시발 놈 나 따라와.” 대석은 나의 머리칼을 잡고 나를 골목으로 끌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사람 몇 몇이 대석의 시퍼런 서슬에 놀라 걱정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구제 해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눈빛을 보낸 모든 사람이 그랬으니까. 대석은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가자마자 나의 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나의 입안이 찝찔한 핏물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으로 금방 가득해진다. 이제는 일상화된 아픔. 하지만 그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미움과 수치심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소리친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대석의 주먹과 짓밟힘이 계속된다. 나는 고개를 막고 주저앉아 그 매를 받으면서도 내 스스로에게 계속 외친다. 그래, 이번만은. 이번만은. 얼마를 맞았을까. 대석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야 돈 좀 내놔 봐. 겜방엘 좀 가게.” 나는 한 손으로 쏟아져 나오는 코피를 막으며 가방 손에 다른 손을 넣었다. 지갑 옆의 벽돌이 내 손에 걸렸다. 순간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항상 우울한 내 표정을 보며 걱정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벽돌을 힘껏 쥐었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새끼 죽어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벽돌을 쥔 손을 대석이가 있는 쪽으로 휘둘렀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내 손 가득히 물컹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 눈을 뜨자 ‘억’하는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대석이가 큰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내가 그를 쓰러뜨렸다. 내가 해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잡는 대석이의 움직임을 본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두려움이 다시금 나를 엄습했다. 대석이 금새 벌떡 일어나 숨기고 있는 칼로 나를 그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대석을 타고 앉아 벽돌로 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찍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대석이의 팔다리가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벽돌을 버리고 골목을 뛰쳐나왔다. 겁이 나서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있는 힘을 다해 내가 사는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도 없는 싸늘한 철창에 갇혀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옥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 있는 물탱크 사이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내가 한알 한알 모은 '콘택600' 50알이 있다. 나는 대석이에게 린치를 당할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 그 약을 손에 쥐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콘택 600' 50알은 그곳에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래 오늘 그곳으로 가는 거야. 날 괴롭히는 누구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 어차피 이 세상에는 미련 따위는 없었다. 다만 엄마의 슬픈 표정이 눈에 밟힐 뿐이다. 대석이 보다 더 미운 것은 아이들과 담임이다. 며칠 전 담임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음수야 요즘 어때? 뭐 어려운 점 없나?” “예 없습니다.” “너 요즘, 성적이 떨어지는데 성적 좀 올려라.” “예” 형식적인 담임의 말투는 날 무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소외감만을 주었다. 차라리 묻지나 말았으면 담임에 대한 배신감은 없었을 것이다. 의례적인 관심. 의례적인 상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담실. 전부 ‘없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폭력설문 조사서. 학교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평소에 성실하고 매사에 침착한…’ 등으로 써 주는 학생생활기록부의 몇 마디뿐이 없었다. 반아이 놈들은 대석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내가 대석이에게 당하는 것을 외면했다고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내가 대석이에게 맨날 당하는 것을 알자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대석이처럼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병신 취급하고 왕따를 시킨다. 나에게 무엇을 빌려주는 자그마한 친절도 대석의 눈치를 보면서 베푸는 비겁한 놈들. 그 똥개근성들. 나는 그들이 대석이 보다 더 밉다. 아아 사람이란 존재가 너무나 무섭고 싫다. 난 약을 한 움큼 입에다 털어넣는다. 그리고 물탱크 옆에 새어나오는 물을 손으로 받아 약을 삼킨다. 땅바닥에 떨어진 몇 개의 알록달록한 캡슐들. 예쁘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이렇게 작고 예뻤을까?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황지우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중에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오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턱이 덜덜 떨릴 만큼 아침 날씨가 매서워졌다. 1999년의 마지막 애국조회 시간이다. 11월의 차갑고 높은 초겨울 하늘은 나에게 또 다시 한해가 실없이 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11월은, 아침에 일어나면 문득 가슴이 휑하게 비는 듯한 느낌이 많아지는 달이다. "똑바로 서지 못해!”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학생부 선생의 고함소리는 잠깐의 감상마저도 방해한다. 나는 단상 옆에 서서 패잔병처럼 줄 서 있는 우리 반 놈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이렇게 힘이 없어 보이는 젊은 군중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오직 앞에 있는 반장만이 대열에서 한 발자국 나와 열중쉬어 자세로 허리를 꼿곳이 펴고 서 있다. 저놈은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함이 없다. 하지만 반장의 그런 모습을 대할수록 어쩐지 정이 안가는 것은 왜일까? 반장을 볼 때마다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느낀다. 사리 분별은 확실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계산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은수 녀석은 중간쯤에 서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 간덩이를 한번 들었다 놓은 놈이다. 사람 속은 정말 한길을 모르나 보다.
응모분량이나 그 작품 수준이 우리나라 교단문단의 현주소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간지의 신춘문예 최종심 수준에 버금가는 좋은 작품들을 읽은 그 감동이 이처럼 생생함은 선생님들의 문학적 재능과 그 열정에 대한 탄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요즘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교실의 붕괴현상이 담긴 작품이 많아 교단문학상이 문학을 통한 이 시대의 교육진단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여졌다. 그러나 수기적인 자기 신변 얘기에 몰두하거나 그 주장과 의도가 너무 노출됨으로써 모처럼의 좋은 소재가 작품의 형상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 작품이 많았다는 것을 밝혀둔다. '아버지의 고향'은 잘 짜여진 구성으로 잔잔한 감동을 연출하고 있었으나 주제가 다소 상투적이었고 '우리들의 아주 오래 된 창' 등은 서술방법에 크게 호감이 갔지만 작위성이 눈에 거슬렸다. '뛰어내리기'는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26년 6개월'은 이야기 서술의 밀도와 성실성 등으로 미루어 입상권에 충분한 작품이었으나 두 편 모두 작위적인 냄새가 짙어 아깝게 뒤로 밀린 수밖에 없었다. '학교'와 '안개꽃 동산' '섬이 있는 풍경' 등 세편을 가작에 올린다. '학교'는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가의 눈이 비범치 않았으며 '안개꽃 동산'은 소년의 눈으로 본 사춘기 청소년들의 사랑심리를 매우 실감나게 형상화했고 '섬이 있는 풍경'은 가출했던 한 소녀의 눈에 비친 어느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매우 밀도있게 펼쳐보임으로써 문학적 재능확인에 모자람이 없었다. 당선작 '1999, 학교, 겨울'은 화자를 각기 하는 몇 편의 얘기가 유기성있게 만나게 되는 잘 짜여진 구조에다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심리포착 및 교육현상의 문제점을 매우 세련된 표현법으로 보여준 빼어난 작품이었다. 선에서 밀린 이들에게는 분발하라는 말로, 뽑힌 이들에게는 새로이 시작하라는 말로 축하의 말을 대신한다.
희망찬 새 천년의 새 세기의 새해가 열렸다. 천년에 단 한번 이런 날이 있기에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인간의 수명이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기에 서기 2000년 1월 1일부터 서기 2099년 12월 31일까지 향후 100년간을 예측해 보고자 한다. 21세기 내에 우리 한반도에서 일어나게 될 주요 변화를 열거해 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가장 큰 변화는 남북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새세기 동안에는 분명히 성취될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는 크게 증대될 것이다. 동서독 통일에서와 같이 통일비용이 걱정되지마는 우리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효율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면 한국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통일비용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경제력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미래학자 막스 싱거는 서기 2064년에 통일한국은 1인당 GNP 60,000불로서 세계 경제 8대 부유국 중 2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의 예측이 맞는다면 우리나라는 2064년 이전에 통일이 되며, 연평균 GNP 성장률이 4.5%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그 결과 1인당 GNP가 세계 2위로 부상하게 된다. 셋째는 한국인이 문화시민이라는 것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전개한 문화시민운동이 크게 성공하여 "친절, 질서, 청결"이라는 세 가지 덕목이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넷째는 정치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게될 것이다. 더 이상 장관부인들 옷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고, 폭력을 일삼는 데모도 없고, 정치인들이 기업가로부터 돈을 받는 일도 없고, 국회에서 의원들끼리 난투극을 벌리는 모습도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하여 등을 돌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변화에 부응하여 교육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100년간의 변화보다 훨씬 커다란 변화,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교육분야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선 교육기회가 대폭 확대될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 이후에 한국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즉,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학교교육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인 생활과정 내지 성장과정이 될 것이다. 미래의 지식사회·정보화사회에서는 교육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될 것이다. GNP 대비 교육비는 매 10년마다 1%씩 증가해서 2050년에 10%, 2099년에는 15%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학생1인당 교육비도 OECD 국가 중 최하위에서 최상위로 뛰어오를 것이며, 교육의 질적 수준도 투자하는 만큼 향상될 것이다. 교육투자는 크게 증가하고 출생률이 감소함에 따라서 과대규모학교, 과밀학급의 문제는 일찌감치 해소되고, 교원당 학생수도 대폭 감축될 것이다. 초·중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매 5년마다 1인씩 감축되어 21세기 말에는 10∼15명 수준이 될 것이며, 교원당 학생수도 5∼7명 정도가 되어 개별학습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설·설비의 면에서도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구호에 부합하여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다. 냉·난방시설을 완벽하게 구비함은 물론 휴식공간, 회의실 등에까지도 최첨단의 시설을 갖추게 될 것이다. 가정이나 기업체보다 월등히 우수한 시설을 구비함으로써 쾌적하고 즐거운 학습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인쇄매체보다는 영상매체로 학습하게 됨에 따라 책가방이 사라지고, 교실에는 흑판이 철거되고 스크린만이 남게 될 것이다. 월·수·금요일은 단체생활을 위해 학교수업을 하고, 화·목·토요일은 재택수업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학의 교수 연구실마다 가득 꽂혀있는 책들은 모두 도서관 한켠으로 보내지고 컴퓨터와 강의에 필요한 책 10여권만이 책상에 놓이게 될 것이다. 교육이 정치·경제적 논리에 따라 좌우되거나 침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교원의 정년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3년씩이나 뚝 잘라 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교원이 가장 존경받고 우대되는 나라로 평가되어 한국에서 교직생활을 하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몰려들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의 변화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것도 있으나 상당 부분은 소망스러운 모습이므로 집중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100년의 교육이 새 천년의 국운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정부에서는 교육투자를 지속적으로 증대함과 동시에 교육우선의 정책을 추진하기를 바란다.
새 천년을 여는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새해를 맞아 교육가족 여러분의 가정과 학교에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날마다 해마다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오늘 아침 맞는 해가 우리에게 더욱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한 세기와 천년을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지난날 해묵은 교육적 병폐와 갈등을 저 붉은 태양으로 녹여 없애고 교육복지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교육가족 여러분! 지난 한 세기를 되돌아 볼 때, 민족과 국가발전의 한 가운데 늘 교육과 교육자들이 자리해 왔음을 확인하면서 그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 침탈이 극에 달했던 100여년 전 구한말, 국민을 각성시켜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自强論이 대두되었고, 그것은 교육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과 애국 교육자들의 헌신적 노력이 합쳐진 결과, 잃었던 나라를 되찾게 되었고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세계 열강과 당당히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독립정신의 불씨를 지피고 키웠으며, 6. 25동란의 폐허 속에서도 천막교실로 열정을 불태웠던 애국 교육동지들의 피나는 노력과 정신이 민족 발전의 한 세기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 세기, 새 천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그 분들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교육을 통해 인간의 행복이 더욱 고양되는 교육복지의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교육은 이제 학교와 교육자의 책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바른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학교에서 가꾸어지고,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물론 사회 전체와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바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육동지 여러분! 한편 우리 교육자들은 지난 세기말부터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경제논리, 소비자 개념의 왜곡된 敎育思潮로부터 교육의 본질을 지키고, 교육이 새롭게 펼쳐지는 정보지식 문명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의 이상과 목표를 재정립하고, 자질과 전문성을 연마하여 실천에 옮겨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특히 19세기말의 '자강론'처럼 20세기말에는 "이익이 곧 정의"라는 식의 '경제적 경쟁력 강화론'이 온 사회를 뒤덮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교육에도 무분별하게 유입되어 교육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소비자와 공급자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소비자 중심의 교육론'은 우리 교육의 큰 자산인 교원.학생.학부모간 교육공동체적 협조 관계를 대립과 갈등 관계로 변질시키고, 학교를 이익추구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으로 변질시켜 감으로써 오늘날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황폐화', '교실붕괴', '교권추락'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무분별한 경제논리의 유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교육과 학교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며, 21세기를 여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동지 여러분! 새 천년을 여는 이 시점에서 한국교총도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각오와 자세로 새출발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교총이 쌓아온 많은 성과와 업적 뒤편에 여러분들의 더 많은 요구와 질책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총은 이런 요구와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40만 교원들의 여망을 실현하고 수준 높은 교육터전을 일구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2000년 새해에는 우리 40만 교육자들의 숙원사업인 '우수교원확보법' 제정과 '수석교사제' 도입 등 정책과제를 실현해 추락한 교권과 교원지위를 높이고, 건전한 사회단체와 연대활동을 강화해 "교실붕괴"의 교육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교총은 지난해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를 창립해 학교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는 이를 더욱 확산시켜나갈 계획입니다. '학교현장과 함께 하는 강력한 교총'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고 조직 연수를 강화하며, '회원가입 운동'을 펼쳐 조직체제를 견고히 해 나가겠습니다. 교총의 교섭권과 교섭력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 아울러 회원들에게 많은 복지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고 실현시켜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교육동지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젊고 강한 조직, 노·장·청이 함께 조화롭게 어울리는 조직, 떠나가는 교총이 아니라 돌아오는 교총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교총으로 굳게 뭉쳐야 우리 선배 교육자들이 일구어온 우리의 교육터전과 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가족 여러분! 붉게 달아오르는 저 태양에 그 동안 우리들 가슴을 짓눌러온 온갖 갈등과 분노의 묵은 감정을 던져 태워버립시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첫 새해에는 기필코 교권이 존중되고, 교원과 학생과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며, 자율과 창의와 열정이 충만한 희망찬 학교를 만들도록 용기를 가집시다. 庚辰年 새해 여러분의 가정과 학교에 많은 축복이 내리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1월 1일 아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김 학 준
모성보호란 사회적 노동력의 유지 및 재생산에 필요한 임신·출산·육아 등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의 노동력 재생산 역할이 없이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존속조차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성의 고유한 기능인 모성을 보호하는 것은 여성개인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유지발전을 위해 국가가 반드시 시행해야 할 사회정책이며, 여성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다. 모성보호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산업화의 가속, 여성의 교육수준향상 및 의식변화, 가전산업의 발달로 인한 가사노동의 여가시간 증가, 삶의 수준 향상을 위한 욕구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여성들의 취업률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전체 여성의 모성보호와 함께 특히 산업현장에서 각종 유해물질, 유해한 작업환경, 장시간 노동 등으로 모성의 파괴가 우려되는 취업여성에 대해서는 취업과 임신·출산·육아가 효과적으로 병행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취업여성의 모성 및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을 개별여성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아무런 투자없이 개별 가정에서 형성된 노동력을 무상으로 사용하여 이윤을 얻는 무임승차에 해당하므로 공평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는 현재 생리휴가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여성의 모성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 교원, 민간기업의 노동자 모두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대체인력문제, 기업주의 기피 등으로 인해 사실상 권리보장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1세미만의 영아를 가진 여성근로자들의 일할 권리와 영아의 보호받을 권리실현을 위해 도입된 육아휴직의 경우 동일한 목적의 휴직임에도 불구하고 적용받는 법률에 따라 적용기준과 근로자들에 대한 혜택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을 받는 민간기업의 경우는 당사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사업주는 당연히 휴직을 주어야하며, 이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형을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는 교원의 경우는 휴직을 신청해도 임용권자의 판단에 따라 휴직을 부과하지 않을 수 있고, 근속기간에도 포함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 다행히 올해 정기국회에서 `당사자가 신청할 경우 육아휴직을 반드시 주도록 하고 승진 소요연수, 승급기간, 퇴직금 산정에 포함'하도록 한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마치고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어 교원의 경우는 2001년부터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이익이 대폭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육아를 포함한 모성보호 문제의 사회적 해결은 남녀간 성에 따른 역할구분과 이로 인한 남녀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유아휴직을 영아를 둔 남녀 근로자 모두가 신청·사용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한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육아문제를 여성의 고유한 영역으로만 인식해왔던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의식과 관행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여성의 모성보호정책은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불이익을 근절하고 남녀근로자 모두가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제수준에 못 미치는 60일의 출산휴가를 90일로 확대하고, 기업이 전담하고 있는 이 기간동안의 임금을 사회보험화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육아휴직기간에 대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법으로 보장된 임신·출산·육아 관련 휴가와 각종 보호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여성근로자들이 강제퇴직 되거나 불이익 조치를 받는 현실도 국가가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이런 정책이 실효성 있게 시행되지 않을 경우 여성들의 결혼 및 출산기피현상이 사회문제화 될 수 있다. 결국 모성보호는 남녀평등과 남녀 모두가 가정과 직장생활을 조화롭게 영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정보화, 지식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될 21세기는 여성의 노동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경쟁력이 좌우되는 시기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여성의 모성보호 확대를 위한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정책시행과 여성 스스로의 노력을 한층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이하 학실련)는 구랍 20일 흥사단 강당에서 학생·학부모·교원을 대표한 발표자 9명과 '학실련' 분과위원 및 관계자 등 총 50명이 참여한 가운데 `학교위기, 그 실체와 극복방안'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은 학교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불신과 갈등으로 빚어지고 있는 학교붕괴 현상의 실체와 원인을 진단하고 극복방안을 마련,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의 교육운동의 방향성을 탐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 이날 워크숍은 교원·학생·학부모 대표 각 3명 총 9명이 '학교위기 현상과 학교공동체의 인식'이라는 소주제로 각각의 입장을 발표했고 여기서 제시된 문제사안에 대해 분과별 분임 토의를 벌였다. 초등학교 분과에서는 현재 초등학교의 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한 주된 이유로 ▷주당 수업시수 과중 ▷공·사립학교 교육 환경 격차 심각 ▷정년단축에 대한 일반적 시각과 이해 즉, 교원의 열의보다는 연령만을 강조 무능하다는 식의 잘못된 세대차이 ▷교원의 권위하락과 교사를 고발하는 학생들의 잘못된 태도 ▷가정교육의 부재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 문제 ▷열린교육의 다양성을 제도·정책으로 획일화하려는 잘못된 인식 ▷언론의 흥미위주식 또는 교육문제에 대한 사건 고발위주의 방영 태도 인식문제 등이 거론됐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교원의 권위 회복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분과에서는 이를 위해 ▷모범교사의 지속적인 발굴과 소개 ▷칭찬하기 프로그램 개발 ▷교사자신의 소양과 자질 개발 자세(예: 신나는 학교 만들기 프로그램 개발, 선생님의 일기작성, 나부터 실천운동 등) 및 자기역할 충실히 하기 운동 전개 ▷어머니회, 여성단체 중심의 '어머니' 교육(학부모 대학원) 강화 ▷교육(학교)지원 부서로서의 교육 행정관청(교육부, 교육청)화 정책 ▷교원의 임금 체계 개선 등 교육공동체 각자의 노력과 실천 못지 않게 정책·제도적인 개선을 강조하는 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중학교분과는 현재 학교위기가 무엇보다 교육공동체간의 불신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극복방안을 마련하기 전에 학부모는 교사를 믿고 따르기보다는 전문성을 부인하는 불신태도와 의식문제 그리고 교사는 학생지도 등의 자기개발 노력 등이 부족하다는 것부터 스스로 반성하면서 극복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대안과 극복방안으로는 ▷1 학교 1 홈페이지 개설 제안과 함께 교사·학생·학부모가 다함께 참여하는 홈페이지 개발 전국공모대회 등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상담 야영 프로그램 개발 및 실시 ▷소그룹 스터디를 통한 교육주체들의 의사결정 참여 폭 확대 등이 제시됐다. 중학교 분과는 이밖에 ▷교원·학생·학부모 상호간 칭찬하기 운동 ▷좋은 학교운영위원회 발굴 및 모범사례 전파 ▷청소년 단체 활동 적극 지원 및 활성화 등도 제안했다. 고등학교 분과는 교사들의 이기성과 노력도의 결핍에 따른 문제점과 아울러 학부모의 자녀 태도나 예절교육 그리고 컴퓨터 등 기계와 시간을 주로 보내는 교육프로그램의 부재 등이 오늘날의 학교현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학부모 대상 교육 캠페인 운동 전개(가정교육 프로그램 개발 지원-가정에서 바르고 엄격하게 키우기·규칙만들기 등) ▷자연친화적 수련 활동 강화(국토순례, 수련활동의 정부지원 강화/ 여유있는 학교 만들기 운동- 교원·학생 스트레스 해소관리 프로그램) ▷학생 이름 불러주기 운동 전개 ▷학생들 스스로 만든 학교 내 '행동 실천 수첩' 모델 제시 및 확산운동 ▷교사·학부모용 언어순화 자료 개발 보급 등을 제시했다. 이밖에 ▷선생님 일거리 줄여주기 운동 전개 ▷학급당 학생수 줄이기 정책 건의 활동 ▷교육재정 GNP6% 확보 건의 ▷실업고·인문고 학생 적성 강화 지원 프로그램 제도 마련을 위한 지역사회와의 연계성 구축 ▷교사의 학생 '낙인' 인식 태도 지양 등 구체적인 교육운동과 캠페인 실시의 아이디어들도 제안됐다. 학실련은 워크숍에서 제안된 학교위기의 문제점과 극복방안들을 토대로 내년부터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교육운동 프로그램을 개발, 교육공동체 신뢰회복과 바람직한 학교문화 풍토 조성을 이루기 위한 본격적인 교육운동 사업들을 전개할 계획이다.
최근 일선교육계에서 나돌고 있는 공무원 명예퇴직제 존폐론과 관련, 김기재 행자부장관은 "폐지를 검토한 적이 없으며 조직의 신진대사를 위해 명예퇴직제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장관은 또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연금제도에 관한 KDI연구안은 최종 정부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저부담 고급여 구조'인 현행 공무원 연금제도를 중장기적으로 개선하되 2001년 이후부터 본인부담율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정부부담율 역시 선진국 수준을 감안해 공무원부담율보다 높게 조정해 연금재정을 안정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기재 행자부장관은 최근 이와 같은 내용의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김장관은 연금제도의 근본문제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저부담 고급여 구조에 있으며 IMF상항 이후 정부 구조조정과 정년단축으로 퇴직자가 예년보다 2∼3배 급증했기 때문에 연금문제가 부각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평생소득을 기준으로 해 60세부터 지급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최종월급을 기준으로 하면서 20년만 근무하면 퇴직후 즉시 연금을 지급하는 현행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김장관은 또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부족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부가 모아둔 기금과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해 퇴직금을 차질없이 지급해 왔으며 내년에도 1조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퇴직금 지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연금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공무원의 노후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마련을 위해 지난해 1월 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지난 천 년간의 교육과 그 흐름은 인류의 정신과 문화, 체제와 가치기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변화와 발전의 고비고비를 넘겨 왔다. 그렇다면 이제 새천년의 교육은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갈 것인가. 그 비밀의 열쇠는 아마도 지나간 천년의 교육사 안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는 현재 사회는 물론, 미래 사회의 지휘봉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난 천년의 긴긴 교육사를 지금 더듬어보는 이유는 새천년 미래 교육을 올바로 예측하고 지혜롭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사에서 연대기로 보아 1천년대 초는 고려시대(918-1392)에 해당한다. 고려는 삼국시대와 달리 건국초기부터 각종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태조때 서경에 학교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가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여 민족통일의 대 꿈을 완성하려는 북방정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고려초에 고등교육기관인 국자감을 비롯하여 개경에 東·西學堂과 지방에 鄕校를 설치하는 등 교육제도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고려의 교육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고려 말 충렬왕 때부터 국자감 부흥운동을 통한 고려 부흥정책이었다. 이때 유학자 안향(1234-1306)은 교육부흥을 위하여 관리를 비롯한 지도층을 대상으로 교육헌납제를 실시한 바 있다. 바로 섬학전제도다. 한편, 최충(983-1068)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12도의 사학기관은 관학이 쇠퇴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 유학교육의 정신을 앙양하고 인재양성에 이바지하였다. 고려말에 성리학(性理學)이 전래됨에 따라 침체된 유학의 부흥을 꾀하며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최충, 안향, 이색, 정몽주 등은 한국교육사적 인물들이다. 한편 서양사에서 1천년대 초기는 기독교 절대주의 사회였던 소위 서양 중세기의 후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도덕 등 모든 가치관의 기준이 오직 기독교주의에 귀착되어야만 했다. 오늘날 서양사회의 일상생활 풍습과 가치관의 대부분이 기독교적이 된 것도 이 무렵의 기독교주의 교육의 영향이다. 서양중세의 전기는 5세기부터 11세기경까지다. 이 때는 기독교적 교육내용이 교육실제를 지배하던 종교적 교육의 시기였다. 한편 중세후기는 11세기 후반부터 문예부흥이 일어난 15세기경까지의 비종교적 교육의 시기였다. 중세교육의 특징은 기독교적인 완전에 도달하는 교육,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교육,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교육을 엄중히 감독하는 교육이었다. 서양중세의 대표적 교육기관으로서는 문답학교, 고급문답학교, 본산학교, 수도원학교 등이었다. 기사도교육은 11세기 이후 봉건제도의 성립과 더불어 나타났다. 그 후 기존의 기독교 절대교육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자유시민을 위한 실업 교육의 발생은 인류의 가치관과 삶의 질을 크게 바꾸어 놓게된 시발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12-3세기경에 유럽남부 지역에서부터 신흥 경제 자유도시가 나타나면서 소위 동업조합제도가 생기도 조합원의 기술확산을 위한 새롭고 폭넓은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조합학교(guild school)이 태동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의 자유시민학교는 종래의 신앙이나 기사도정신 교육과는 달리 자유시민으로서의 지식과 교양, 직업 및 생산교육도 과하므로서 근대교육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처럼 13∼14세기경까지 신흥자유도시의 발생과 동업조합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던 자유시민교육은 이전의 특권층만의 교육기회가 모든 서민에게도 허용되고, 교육내용도 성경과 교양 및 이론 위주에서 직업, 기술, 생산, 경제, 예술, 체육에까지 확대되는 등 세계 교육사상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영국의 그래마스쿨, 퍼블릭스쿨, 독일의 라틴어스쿨 같은 고급인문교육기관 등도 12∼13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대학의 발생과 맞물려 크게 번창하였다. 중세말기에 급팽창한 자유시민정신과 신흥상공업 및 무역도시의 발생으로 인하여 사회가 복잡화, 다양화, 전문화되어 갔다. 높은 수준의 문장력과 다양한 언어기술은 물론 법률, 신학, 의료, 철학, 예술, 면에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드디어 중세대학이 발생하였다. 세계교육사상 큰 변화의 시점이었다. 이탈리아의 사례르노(1060년), 보로그나(1088년) 대학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파리(1109년)대학, 영국의 옥스퍼드(1167), 켐브리지(1209년)대학, 독일의 프라그(1348년), 윈(1365년), 하이델 베르그(1386년), 쾨른(1388년), 라이프니쯔(1409년)대학 등 지금도 세계적 대학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들이 바로 1천년대 초기에 설립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한국 역사에는 고려의 국자감이 관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의 역할을 하였는데 그 교육의 내용이 4서 5경을 중심으로 한 유학교육 일변도였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중기 한국사에서 1천년대의 중기라고 하면 조선시대 전반부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14세기말에 건국된 조선이 20세기 초에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할 때까지 500년동안의 약 반이 바로 1천년대의 중기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교육은 한양에 세워진 성균관을 비롯하여 4학(四學)과 향교 등의 관립교육기관이 있었고 서원과 서당 같은 사학기관도 크게 번창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교육사상적 특색은 성리학적 우주관·인생관·교육관으로 표현된다. 교육사상에 있어서 성리학 일변도의 이러한 경향은 후세학자로 하여금 부정적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퇴계 이황(1501-1570)은 인간형성의 기본방향을 인(仁)에 두고 교육목적 달성의 수단을 경(敬)으로 삼았는가 하면, 교육목표를 지(知)보다 행(行)으로 본 훌륭한 교육자였다. 율곡 이이(1536-1584)는 이 시기의 대철인이요, 경세가였으며, 탁월한 교육가였다. 율곡은 이미 인간중심교육, 지행합일교육, 생활중심교육, 문제해결중심교육과 같은 현대 교육사상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므로써 2천년대의 교육방향에도 변함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17세기에 이르러 한국교육사상에는 큰 발전의 계기가 나타났으니 이른바 실학교육사상의 태동이다. 실학교육사상은 17세기조선사회가 정치, 사회, 도덕적으로 크게 타락하여 가고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의 바람같은 것이었다. 공리공론적, 비생산적, 편파적, 형식교육으로 폐허가된 당시의 유학교육풍토를 합리적, 과학적, 주체적, 실용적 실학풍토로 개선하기 위해서 교육목적과 교육방법, 교육내용을 재구성하자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유형원(1622-1673),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하여 이익, 안정복, 김육, 김정희 등은 당대의 대표적 실학사상가로서 교육사상계에서 크게 주목되는 인물이었다. 한편 서양교육사에서 1천년대 중기의 교육은 15세기경에 나타난 문예부흥기의 인문주의 교육사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났다. 15세기 문예부흥운동이 자아의 자각을 통한 인간 재생운동이라면, 16세기 무렵의 종교개혁운동은 형식적 교권주의에서 탈피하여 오직 성서에 의해서만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신앙본연으로 돌아가라는 계몽 교육운동이었다. 루터(1483-1546)에 의하여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그 성공을 위해서 필연적으로 교육개혁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여전히 언어주의·암기와 훈련위주의 형식교육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17세기의 실학주의 교육사상을 기다려야 했다. 실학주의 교육사상은 실용성 있는 구체적 지식과 실제적 직업기술 그리고 과학적인 학문연구의 방법으로 나아가는 교육사조이다. 이 실학주의 사상은 직관교수, 실물교수, 감각적 교육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교육 혁명을 일으키게 하였다. 밀턴(1608-1674), 몽테뉴(1553-1592), 로크(1571-1635)와 코메니우스(1592-1670)는 17세기 실학주의 교육운동에 공헌한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코메니우스는 근대적 교육사상과 과학적 교육방법의 발달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기에 근대교육의 아버지로 알려지고 있다. ◆후기 한국사에서 1천년대 후기라고 하면 여기서는 조선말기와 일제침탈기 및 해방후 대한민국시대로 보겠다. 조선은 강화도조약(1876) 이후 열강 제국과의 통상조약 체결로 문호가 열리게 되고, 서양의 새로운 근대문물을 활발히 접하게 되었다. 이때 선각적 개화사상가들에 의한 개화교육운동과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식 근대교육이 도입되면서 한국교육은 전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특히 갑오경장(1895)으로 신학제가 제정되고 근대지식을 보급하는 등 새로운 교육체제를 이루어갔다. 주체적 민족 개벽사상인 동학사상과 서양식 근대지식의 수용사상이었던 개화사상은 한국의 근대교육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정책의 팽창에 의하여 근대 교육운동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말 한국의 근대교육운동은 부득이 교육 구국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드디어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자(1910), 민족교육은 파멸위기에 이르렀다. 세차례에 걸친 조선교육령의 개폐과정은 그들에 의한 민족말살과 예속을 시도한 교육적 침략행위였다. 이처럼 악랄한 침략적 만행과 탄압 밑에서도 우리 민족은 사학과 야학 등으로 교육적 저항을 계속하여 해방(1945)까지 맞았다. 이시기의 이기(1848-1909), 박은식(1859-1925), 남궁억(1863-1939), 안창호(1878-1938), 이승훈(1864-1930) 등의 교육사상은 새로운 2천년대에도 민족교육, 민주교육, 시민교육, 인간교육, 세계교육, 실용교육, 과학교육을 위해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데 귀한 교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1945년 8·15 민족해방은 한국교육사에서 실질적 민주교육의 첫 출범이었다. 우리의 뜻에 의한 우리 교육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후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기회균등의 민주교육이념을 헌법과 교육법에 명시함으로서 명실상부한 현대 교육국가의 자리를 매김하였다. 한편 6·3·3·4제의 단선형 학제를 기간 학제로 채택하여 민주교육 이념 실천에 부응하였으나 학벌주의의 팽창, 입시경쟁의 가열, 출세주의 교육풍토, 이기적 교육목적 등의 부작용이 극에 달하여있다. 이런 비교육적 현상은 교육정책의 혼란, 교육재정 확보의 인색, 교육행정의 비전문성 등이 더욱 악화시켜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1천년대의 끝세기인 20세기에 숫하게 많은 정치사적 소용돌이를 겪어오면서도 교육의 양과 질면에 획기적 발전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양사에 있어서 1천년대의 후기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로 보겠다. 18세기에는 계몽사상이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및 방법을 지배하였다. 계몽사조는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계몽주의 교육사상은, 인간의 작위적인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장한 자연주의 교육사조와, 국가관념과 국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범애적 입장에서 교육을 시도한 범애주의의 교육사조를 낳았다. 전자의 대표는 루소(1712-1778)가 있고, 후자의 대표에는 바제도(1724-1790)가 있었다. 한편 서양사에서 19세기의 교육은 신인문주의로 대표된다. 신인문주의는 계몽사조의 주지주의·합리주의·개인주의·반역사주의·반민족주의·반국가주의에 대립되는 정의주의·역사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신인문주의는 교육에 있어서 인간의 지(知)·정(情)·의(意) 영역에 걸쳐 풍요하고 폭넓은 발달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신인문주의의 흐름에 속하는 교육사상가로서는 페스탈로찌(1746-1827), 헤르바르트(1776-1841), 프뢰벨(1782-1852), 피히테(1762-1814) 등이 있다. 20세기는 교육의 기회균등, 교육의 민주화를 기도한 시기였다. 그것은 전세기에 이룩된 교육의 제도적 민주화에서 내용적 민주화를 가져온 세기였음을 뜻한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새 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새 교육운동은 학교 교육내용의 개조운동으로서 나타났다. 그리고 새 교육운동의 두 번째 특징은 아동의 해방운동이다. 새 교육운동의 세 번째 특징은 학습지도법의 개발이었다. 개성과 개인차를 존중하는 학습지도법이 여러 형태로 고안 또는 연구되어 나왔다. 새 교육운동의 네 번째 특징은 지역사회학교 운동이었다.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지식중심 학교와 아동중심 학교로부터 교육의 사회화를 중요시 하는 학교교육운동이다. 이런 일련의 새교육운동의 전개로 인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교육의 주도권이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새교육운동은 지금까지의 교육선진지였던 유럽의 교육사상을 대신하는 미국교육사상의 탄생을 뜻한다. 20세기의 미국적 교육사상의 경향은 진보주의 교육사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동중심, 경험중심, 생활중심 교육을 중요시 하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죤 듀이 같은 교육사상가의 노력에 의하여 20세기 교육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20세기 전반기의 아동중심·경험중심·생활중심의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본질주의, 항존주의, 도덕적 재건주의 교육사상으로 연결되면서 서력기원 1천년대의 세계 교육흐름을 마감하고 2천년대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의 각종 교원무시 정책과 체벌교사 112신고,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사폭행 등으로 99년 교육계는 희망보다 절망을 많이 이야기했다. 모든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새천년 희망의 교육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진주목걸이 촌지' 사건을 돌아본다.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맡고 있는 김모교사가 한 학생으로부터 진주목걸이를 받았습니다. 부모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아이를 통해 선물을 건넨 것입니다" 지난 6월 초 일부 신문과 방송에 '진주목걸이 촌지'가 등장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선생님이 그걸 뿌리치지 못했나보죠", "워낙 진주알이 굵었나 보지…"라는 학부모들의 비아냥 인터뷰도 뒤따랐다. 이른바 '귀금속 촌지' 사건이다. 이 일로 언론의 뭇매를 맞아 만신창이가 된 김교사는 교육청으로부터 '감봉 1월'의 징계까지 받았다. 김교사뿐 아니고 동료 교직원들이 받았을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진주목걸이는 싯가 1만원 상당의 중국산으로 밝혀졌고 김교사에게 내려졌던 감봉 1월의 징계는 교육부교원징계위원회에서 취소됐다. ◇사건의 발단=김교사는 스승의 날 한 학생이 가져온 선물을 받았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정표라고 생각하고 받았다가 학생들이 하교한 후 뜯어보니 '아이가 아주 즐겁게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고맙고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르치고자 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김교사는 다음날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선물을 돌려주겠다고 했으나 '시어머니가 친구에게 받은 선물로 중국산이며 값싼것이니 개의치 말고 받으라'는 답변을 들었다. 재차 간곡히 돌려주겠다고 하고 기다리던중 지방 신문의 기자가 찾아와 유도성 질문을 하고 이 내용을 녹음, 보도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사건이 확대되자 김교사는 학부모를 찾아가 이를 되돌려줬다. 김교사는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했으나 정년을 앞둔 교장에게 누가 될까하는 마음과 '사건을 확대하지 말라'는 학교측의 만류에 속앓이를 하다 감봉 1월의 징계를 받았다. ◇학부모 입장=선물을 준 학부모는 진술서와 탄원서를 통해 "시어머니의 친구분이 중국에서 사온 값싼 선물 하나로 선생님과 우리 가족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할 줄 몰랐다"며 "언론의 보도처럼 고가의 것을 주고 받았다면 지탄받아 마땅하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작은 정성을 드렸을 뿐인데 일을 이렇게 과장시킨 기자가 정말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재심위 판단=문제가 된 목걸이를 직접 산 사람은 중국에서 1만원을 주었다고 하고 초등학교 1학년 아동이 직접 가져올 정도의 것이라는 점을 볼때 고가의 진주목걸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김교사의 강요도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규명 없이 고가의 귀금속이라고 왜곡보도한 기사내용에 근거하여 징계처분한 것은 지나치다. 감봉 1월을 취소한다. 인사기록카드를 정리하고 그동안 미 지급된 보수를 정산하여 지급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교육재정 관련 법안이 교육위를 통과했는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개정은 교육재정의 확충없이는 교육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지난번 교육자대회에서 대통령이 발표한 교육재정 확충 약속을 구체화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비 전출액을 확대해 지방정부의 교육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제고한 것도 의미가 있다" -법률안 통과로 가져올 실질적인 효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율의 상향 조정으로 6570억원, 교원관련 수당지급으로 6633억원, 시·도의 교육비전출액 비율 상향 조정으로 1100억원, 광역시 및 경기도의 중등교원 봉급전입액 10% 부담으로 429억원 등 1조4732억원이 확충된다고 보면 된다" -법안 심의과정에서 3당의 이견이 비교적 원활하게 조정된 것 같은데 "교육재정이 확충돼야 한다는 데에 여야 의원들간의 의견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조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타부처의 반발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도 있는데 "개정안을 제출하기 전에 기획예산처와 사전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교부율 상향 조정의 경우 사전협의가 없어 반대의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의 교육재정 확충 약속을 지킨다는 점에서 기획예산처가 양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교육공동체 시민운동이 조금씩 활성화되고 있다. 교육공동체 시민운동은 교원과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이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교육현안 해결을 모색하는 운동.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출범과 공시에 주요 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새교육공동체위원회(위원장 이돈희)는 최근 올해 모범적인 활동을 펼친 모임들의 활동사례를 발표했다. ◇구리·남양주 공동체문하 체험 실천단=광동중·고 학생 2535명으로 6월7일부터 7월25일까지 행사를 벌였다. 자율도우미에 학생 1만216명, 학부모 181명, 사회단체 300명, 도우미 지원반에 학생 34명, 경찰 34명, 교사 34명, 사회단체장 34명이 참여했다. 자율도우미 5명을 개조로 해 하루 2회 13개 권역에서 교대 순찰하면서 관찰과 모니터링 일지를 기록했다. ◇대구동부 청소년 문화탐구 경진대회=외래 문화의 실태를 청소년 스스로 파악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해 실시됐다. 5인 이내의 학생 모둠을 만들고 교사 또는 학부모 1인이 해 청소년 문화 속에 침투돼 있는 외래문화 실태에 관한 분석 결과를 논문으로 제출하게 했다. 전문가의 심사를 통해 본선에 오른 작품(10편)을 시상하고 멀티미디어 시설을 이용해 공개발표회도 개최했다. ◇경기 군포 지역안전 실태조사=군포시 관내 초·중·고교 및 놀이터 시설과 관내 학교 주변도로 및 교통시설을 7월19일부터 8월27일까지 조사했다. 청소년 자원봉사대 160여명이 2∼3인 1조로 분야별 봉사대를 구성해 지도자와 함께 조사활동을 펼쳤다. 이 조사활동으로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활용함으로써 자원봉사의 활성화에 기여했고 군포시의 중장기적 청소년 백서 사업을 기초를 세웠다. ◇경북 김천 한마음 교환 문화 기행=`더 넓은 가슴으로, 조국을 내 품에'라는 주제로 펼쳐진 타 지역 문화체험 행사. 김천교육공동체시민모임과 바른 교육을 위한 순창군민모임의 연계로 김천 모임에서 초·중학생(39명)을 대상으로 homestay 자원봉사 회원을 모집하고 순창지역의 초·중학생(39명)을 초청했다. 영남과 호남지역 학생 상호간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