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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충남역사교육연구회(회장 최창학·부여고 교장)는 지난달 30일 천안중앙고 강당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한 일본 고교 역사교과서 `최신일본사'를 규탄하는 성명서 채택 및 공동수업 연구대회를 가졌다. 연구회는 성명서에서 "일본 문부과학성은 4월 9일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 기술 누락 등 역사를 왜곡한 `최신일본사'를 검정 통과시켰다"며 "이는 군국주의와 황국사관의 향수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본 정부가 문제의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것은 월드컵 공동개최로 조성된 양국간의 우호적 분위기를 틈타 독도 문제를 은근슬쩍 공식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연구회는 △`최신일본사' 검정통과의 즉각적인 취소 △역사왜곡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독도의 한국영토 사실 인정 △일본정부의 후손에 대한 올바로 역사교육 실시를 요구했다. 또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자주권을 훼손하는 일본정부의 역사왜곡에 강력히 대처할 것 △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연구회는 성명서 채택에 앞서 천안중앙고 컴퓨터실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독도) 대응 학습'이라는 주제로 공개수업을 가졌다. 수업을 맡은 임동수 교사(천안중앙고)는 "학생 스스로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역사적 근거를 습득하고 감정적이 아닌 논리적인 대응자세를 세우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독도의 자연환경과 역사' `한일간 독도영유권 논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논거'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론자료'를 모둠별로 발표·토론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재연 군(1학년 1반)은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독도는 우산도란 이름으로 우리 영토였으며 2차 대전후 미일간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도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영 군도 "독도를 일본땅으로 기술한 명백한 문헌자료는 단 한 건도 찾지 못했다"며 "독도영유권 문제는 일본의 억지싸움"이라고 말했다. 충남역사교육연구회는 공동연구 수업지도안을 연구회 홈페이지(www.chnhistory.net)에 탑재해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최창학 회장은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일은 교사의 책임"이라며 "공동수업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립학교 재단들이 기간제 교원임용을 남용함으로써 교직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막상 교육당국은 기간제 교원 숫자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안일한 자세로 대응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4월 한국교총이 전국 2378개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기간제 교원 숫자는 공립은 학교당 평균 3명 꼴이지만 사립은 8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립 고교의 기간제 교원 숫자는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막상 교육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은 고사하고 대외비라며 자료 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다. 한 시도교육청의 경우에는 올해 400여명의 사립 신규 교원임용 중 369명이 기간제 교원으로 충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간제 교원의 증가는 교직의 유연성을 담보로 하는 7차교육과정과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으로 인한 학급 증설이 주요한 원인이며, 교원전보가 어려운 사립의 특성과 맞물리면서 더욱 상승작용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초등은 교사 자원 부족이 기간제 임용의 중요한 원인이지만, 중등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넘쳐나는 데도 기간제 교원 임용이 늘고 있다. 서울 지역 사범대학생 대표자협의회(서사협) 학생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올 봄 공립중학교 신규 임용에서 30%에 해당하는 279명을 기간제로 임용했다"며 "이 숫자만큼 정규직으로 임용한다는 약속을 받아낼 때까지 교육청 앞 1인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1일 밝혔다. 교육청들에 의하면 "내년부터 고2·3학년을 대상으로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할 경우, 학생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교과목 존폐가 결정되기 때문에 정규교사를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간제 교원 임용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또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교육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7·20교육여건개선사업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낮춰 학급수가 늘었지만, 몇 년 지나면 학령인구가 감소되고 다시 학급수가 줄 것으로 예상돼 정규교사를 뽑을 수 없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한 사립고교는 학급수 증설로 인해 올해 초 21명의 신규 교원을 뽑으면서 기간제 교원을 11명 포함시켰다. 그 학교 교감은 "3년 뒤 학급이 줄게되면 11명의 교원이 남게된다"며 "그 숫자만큼 기간제로 뽑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은 "7차 교육과정 등을 명목상의 이유로 사립학교 재단에서 기간제 교원 임용을 악용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역 교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라며 그는 "사립재단 측은 골치 아픈 정규직 교원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또 "1년 정도 검증해 보고, 정규직으로 임용하겠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한 기간제 교사는 "정식임용을 미끼로 한 사립 재단의 잘못된 기간제 운영 형태는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분개했다. 학교에 기간제 교원이 증가함으로써 여러 부작용들이 불거지고 있다. 정규 교원들은 "기간제 교원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수 없다보니 자신들의 업무가 가중된다"고 불만이다. 서울의 한 사립 실업고 교감은 "기간제 교사는 아무래도 교직 경험이 적기 때문에 그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된다"고 우려한다. 서울 강서구의 어떤 고교에서는 지난해 2학년 영어 기간제 교사가 무려 5번이나 바뀌었다. 교장·교감들은 "기간제 교원 확보하랴, 담임과 보직 피해서 맡기랴, 머리가 아프다"고 손사래를 젓는다. 기간제 교원들의 열악한 처우와 계약조건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기간제 교사의 처우 개선에 대한 교육부의 의지는 어디를 찾아봐도 없군요. 조만간 기간제 모임이 생겨나 생존권 투쟁을 할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aaa@000.net). '무노동 무임금이므로 방학중엔 월급 없고 겸직도 못한다… 방학 땐 전 이슬 먹고삽니다.'(김경남) 이상훈 교감직무대리(경남 거창대성환경정보고)는 "실력있는 기간제 교원도 3년을 초과해서 계약할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하고, 기간제 교사들은 "학교 당 3년 계약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한편 교총과 전교조는 "7차교육과정이 기간제 교원의 증가로 교원의 계약직화를 부추기면서 교직의 안정성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는 반발을 계속해 왔지만 교육부는 공개행정으로 이들을 납득시키기보다는 현상 감추기에만 급급한 인상을 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서사협의 간부를 맡고 있는 김선산 학생(고대 3학년)도 "정확한 기간제 교원의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령인구 감소로 과원교사 발생이 우려돼 기간제를 임용할 수밖에 없다는 교육당국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교육당국은 모든 자료를 공개한 상태에서 교원단체와 교수협의회, 예비교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교원양성 정책 토론의 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총과 교육부는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실업교육과 유치원 교육을 정상화시키는데 공동 노력하는 한편, 초·중등교원의 보직교사수당, 담임수당 인상 및 교원 대학자녀 학비보조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이군현 교총회장은 1일 오전 이상주 교육부총리를 만나 실업교육 및 유치원 교육 정상화 대책, 교육전문직 보임 확대, 2003년 교원처우개선 예산 반영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현재 결렬상태에 놓여있는 `2001년 하반기 교총-교육부간 교섭협의'를 조속히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실업교육 정상화 대책의 경우,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실업교육 육성방안'을 조속히 이행하고 재직교원에 대한 신분보장과 전문성 강화, 실고 특성화 추진 등을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유치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유아교육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만5세아 무상교육비를 국·공립과 사립에 평등하게 지원하며 국·공립유치원의 재정 지원을 확대 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였다. 특히 내년도 교원처우개선과 관련, 교총은 보직교사수당을 현재의 월 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담임 업무수당 역시 월 10만원에서 13만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지난해 예산확보 과정에서 좌절된 교원 대학자녀 학비보조 소요예산 740억원을 내년예산안에 반영하기 위해 양측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이군현 교총회장은 "시·도교육청의 부교육감을 일반직 일색으로 보임한 것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 이의 시정의 요구한 한편,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전문직 보임을 확대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상주 부총리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면서 시간을 갖고 이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교섭·협의사항 중 전문직 교원단체의 교원 전임근무는 교육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해 파견 대상기관에 전문직 교원단체를 포함시키는 형식으로 추진키로 했다. 전문직 교원단체의 사무실 지원의 경우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이를 권장키로 했으며 한국교총의 원격교육연수원 개설 역시 금년중에 교총이 신청하면 심사과정을 거쳐 허가해 주기로 했다.
`대안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일선학교에서 채택과 관련한 부조리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일부교사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출판된 `대안교과서'는 국어관련 `우리말 우리글'과 국사관련 `살아있는 한국사' 등이다. 문제가 되고있는 것은 일반도서로 출간된 `대안교과서'가 교과서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학생, 학부모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로 있고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없는 부교재임에도 불구하고 일부교사들이 이를 어기고 있으며 반공개적으로 학생들에게 구입이 강요되고 있다. 또 책값 역시 1종도서보다 8∼9배 차이가 나는 등 문제점이 들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공연하게 `대안교과서'를 부교제로 선정한 학교명단과 보급부수까지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부당한 채택 부조리를 조장하고 있다. 국어관련 `대안교과?인 `우리말 우리글'을 저술한 전국국어교사모임은 홈페이지에서 교육부에 공개적으로 이 책을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의 입장을 밝힐 것과 교재선택권이 학교장의 권한으로 되어있는 것을 교사의 자율과 학운위 심의로 바꿔줄 것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국어교사모임은 또 `대안교과서'의 문제점을 보도한 한국교육신문 4월1일자 보도가 사실 왜곡이라며 정정보도를 주장했다. 국어교사모임은 나아가 `우리말 우리글'을 부교재로 선정한 학교가 많다며 구체적으로 전국의 27개 고교명과 보급부수까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 B고 470부, 서울 K고 560부, 경기 E고 520부, 울산 J고 407부 등 대규모 일괄구입이 이뤄진 학교가 적지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초·중등교육법'이 명시한 것처럼 정규 수업시간, 특별활동, 재량활동 등 교육과정상의 수업시간에는 1종, 검·인정 교과서만 사용할 수 있다"며 `대안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므로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대안교과서'를 도서관에 비치하거나 한 부분을 복사해 참고자료나 학습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관계자도 "특기적성교육의 경우에도 부교재를 일괄구입해 활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면서 "이를 어기고 일괄구입하거나 구독권유를 하는 행위 등은 행정지도를 통한 시정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국국어교과서모임 김주환 교사는 "7차 교육과정 도입취지에 따라 수업시간에 교과서 외에 부교재 `대안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교사는 또 학운위 심의 등 합법절차를 거쳐 대안교과서를 부교재로 선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교육주권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학부모단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약칭 학사모)'이 창립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24일 창립대회를 가진 `학사모' 고진광 회장을 만나 설립 취지와 향후 사업계획 등을 들어봤다. ―`학사모'가 만들어진 배경과 취지는.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심각성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개혁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고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들의 조직이 활동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96년 학운위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최근까지 학운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일선학교의 문제점을 체감했다. 교육폐해의 최대 피해자는 학생과 학부모다. 당사자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보자는 취지로 학교와 교육을 사랑하는 학부모들이 모였다" ―`학사모'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어느 특정한 이념이나 주의주장을 갖고있지 않다. 학교와 교육을 건강하고 희망차게 만들자는 것이 향후 학사모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기존 학부모단체의 이념성이나 성향, 대의성 등과 차별화될 것이다. 창립총회 당시 서울시내 530개교 학부모대표가 수락서를 보내왔고 이중 460명이 대회장에 참석했다. 이달 중 전국단위 조직으로 법인 등기절차, 기금마련 등을 할 것이다." ―조직구성과 운영 등에서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난 10여년간 `사랑의 일기재단'을 설립해 40억원의 사재를 써가며 30만명의 회원이 가입한 NGO를 운영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지난달 발전노조 파업시 전교조가 조퇴투쟁을 하려할 때, `학사모'가 나서서 이를 저지한 것이 언론에 집중 부각되었는데. "학교가 바로서지 못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집단도 우리의 비판대상이 될 것이다. 명분 약한 전교조의 조퇴투쟁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를 저지하려고 했을 뿐이다. 정부 역시 잘못하면 우리의 비판대상이 될 것이다." ―오늘의 교육위기에 학부모들의 잘못이나 책임은 없다고 보는가. "학부모들의 그릇된 교육열과 교육위기의 원인제공 부분 등을 겸허히 반성한다. 우리는 창립대회에서 스스로 이 문제를 자인했다. `학부모 반성문'을 통해 이기주의적 교육열기를 반성하고 교육당국, 학교 등과 연대해 폭력없는 교육환경을 만들며 가정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의 교육주권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교원을 포함한 공무원이 금고이상의 형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당연 퇴직된다는 현행 국가공무원법 관계조항이 공무원의 신분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온지 오래되었다. 동법 33조 5항은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는 자 중에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를 규정하고 있고 동법 69조에는 이 경우 당연 퇴직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사건이나 범행의 정황이 경미한 범인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기간을 무사히 경과하였을 때 그 죄를 불문에 붙여 면소되는 것으로 보는 선고유예제도는 범인의 자포자기와 다른 죄수들로부터의 나쁜 감화를 예방하고, 범인의 자성에 의해 형벌을 집행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법원이 교원의 경미한 범죄사건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하는 것은 교원의 사회적 신분을 신뢰하여 반드시 형 집행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공무원법은 교원이나 공무원이 금고이상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를 당연퇴직 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은 법원이 선고유예 판결을 한 취지나, 선고유예제도의 목적에 배치된다고 본다. 법원에서도 그 정황과 신분을 고려하여 형의 집행유예가 아닌, 선고를 유예하여 일정기간 후에 면소되게 하려고 하는 법률이나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법률조항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선고유예보다 중한 형인 벌금형을 받은 자는 임용될 수 있거나 당연퇴직 요건이 아닌데, 그 보다 가벼운 형인 선고유예를 받은자는 임용될 수 없고 당연퇴직 된다는 것이다. 벌금형이 선고유예보다 중한 형임은 이미 대법원 판례에서 수차 인정되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법률개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위의 국가공무원법 조항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공무담임권, 교육을 받을 권리에 따른 교육할 권리, 그리고 교원의 지위와 신분보장 등을 규정한 헌법조항에 위배된다. 따라서 이 법률의 개정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27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회가 전교조 해직교사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재고돼야 한다. 전교조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교조 운동은 노동운동이라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88년 전교협이 결성되었을 때, 나름대로의 활동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설립을 고집하면서 '89년,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를 강행했다. 따라서 순수한 교육운동의 측면보다는 노동운동 차원의 노동세력 확산에 더욱 주안점을 둔 것을 지적한다. 둘째, 그들의 주장이 과연 민주화와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교조 출범 당시 그들의 핵심주장은 초·중등학교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와 학교장 선출보직제였다.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는 학교를 주민의 통제가 아니라 교원 자치구로 변질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선출보직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뿐만 아니라 학교현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과연 민주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다른 교사와의 형평성 문제다. 민주화 운동이 권위주의의 해소에 기여한 공로라면, 당시 법을 준수하겠다는 정신으로 노동조합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단의 민주화에 기여한 교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독 노동조합을 결성한 자에 대해서만 민주화 운운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넷째, 전교조가 교단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합법화 과정에서 교육자로서는 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이 난무해 교단 황폐화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전교조 활동의 공과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차상의 문제이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교육계의 의견이나 국민적인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위원 8명중 3명이 기권하거나 반대하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밀어부칠 사항은 더욱 아니다. 개개인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 없이 단지 전교조 해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 처리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전교조 합법화 후 학교는 조퇴투쟁, 연가투쟁 등 불법활동으로 혼란을 겪고 있고 전교조 가입교사와 비전교조 교사 사이의 갈등 또한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과연 전교조 활동의 결과가 노동운동의 합법화 외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분명해 진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교원 및 교육전문직의 신분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키로 한 결정에 관해 교육현장에서 파문이 일고 있으며, 그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내용인 즉 지난 4월 17일 행자부 '지방이양추진위원회'의 행정분과위원회에서 교육공무원 신분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바꾸는 의결을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본 위원회에서의 최종 과정은 남아 있는 듯하나 전례에 비추어 불때 추인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거의 결말이 난 것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교육계는 철저히 배제된 듯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중차대한 결정과정 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다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장의 교원을 비롯하여 교직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그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런 결정의 과정에는 교육계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될 수 있는 공청회, 토론회 등이 동원되었어야 옳다고 본다. 행자부 산하의 동 위원회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지방단체마다 점진적으로 교원 보수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을 유발하고, 이를 교육청간 경쟁으로 승화시킨다면 결국 교육발전도 기할 수 있지 않느냐는데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통합이라는 구도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방자치, 지방교육자치가 견실하게 실시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지방단체간 보수의 격차가 상론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용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와 같은 근거가 일견 타당하게 비칠 수도 있으나, 이는 교육계에서 논의되지 않은 바가 아니다. 그 동안 교육계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전개된바 있으며,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유보되어 왔던 사안이다. 한 마디로 현상태에서의 지방직화는 시기상조라는데 있다. 여기서의 시기상조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방직화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지방직화를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방단체간 재정자립을 들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지방단체간 재정자립의 격차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원보수의 차별은 본 말이 전도된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한 논리로 지방재정력의 차이가 보수의 차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현재 교원의 보수는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서울, 광역시 및 경기도의 중등교원 봉급 일부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기는 하나 아주 미비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원의 신분을 지방직화한다면 교원보수 지급주체에 관한 논쟁도 야기될 수 있다. 지방직화의 경우라면 당연히 보수 지급주체도 지방단체일수 밖에 없으나, 재원부족으로 인해 국고에서 교부된 재원을 일반 재원화하며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직 신분의 교원 봉급을 국가가 부담하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원수급 주체에 관한 사항도 교원 지방직화 이전에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교원양성기관을 국가에서 관할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지방직화와 연계시킬 것인가와 관련하여 수급주체에 관한 논쟁이 야기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재정의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지방단체간 경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지방단체에 따라서는 교원수요 증가를 억제할 수도 있을 것이며, 정규교원보다는 기간·계약제 등으로 충원할 가능성이 우려되기도 한다. 재정의 효율은 국가나 지방단체 모두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볼 수 있지만 지방직화의 경우는 이 가치가 지나치게 신봉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와 같은 예견되는 문제에 대한 처방 없는 지방직화는 교직사회의 안정을 저해할 것임은 분명하며 교원사기 저하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교직사회의 안정없이 교육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하리라고 본다. 그 동안 교육계에서도 교원지방직화 논의를 유보해 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의 지방직화에 대한 성급하며, 섣부른 결정을 내린 행자부의 행태는 마땅히 재검토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면 그 실현을 위해 선행조건의 충족부터 교육계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나치게 당위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 최종 모습을 그려야 할 것이다.
김용일(한국해양대 교수)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4년여가 지나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민정부’에서 시작된 교육개혁의 시계는 벌써 8년에 다가서 있다. 모두가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다. 개혁을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은 걸까? 분명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다. ‘교육경쟁력 강화’, ‘국가경쟁력 강화’. 이것이 교육개혁의 목표였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여전히 이런 구호를 앞세워 교육현장에서 겉돌 수밖에 없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개혁의 저돌성(猪突性)이라고나 할까. 특별히 교직사회가 가장 큰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교원의 처지가 이럴진대, 교육의 현주소를 말해서 무엇하랴. 교육개혁이 남긴 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개혁의 철학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개혁의 방법론은 또 어떠한가? 어째서 무리하게 교원정년단축정책을 추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해 있는 걸까? 교원성과상여금제 도입은 또 어떠한가?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면서 교원들의 목소리를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한 때가 있었는가?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교사(원)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런 걸까? 한마디로 개혁의 방법론 때문이었다. 교육에 ‘시장조건(market conditions)’을 창출하여 ‘소비자주권(consumer rights)’을 보장하자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소비자’로서 학생(그리고 학부모), ‘공급자’로서 교사.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서 교사들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교사들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그저 처분만 바라온 게 우리의 학부모들이다. 때론 교사들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싶은 마음조차 억누르며 지내왔다. 그저 자식의 장래를 위해 참고 지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소비자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니 ‘낭보’가 아닐 수 없다. 특별히 교사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말에는 그저 감격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교사가 변화해야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교육 관련 당사자들 가운데 유독 교사만 문제란 말인가? 정녕 모든 교사가 ‘개혁의 대상’이란 말인가? 이런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소비자주권이란 말은 대관절 무얼 뜻하는 걸까.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들의 변화를 꾀할 일이지 왜 갑자기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소비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개혁의 방법론이 제시된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개혁 당시 정부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면밀하게 진단하지 않았다. ‘처방전’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시장만능론)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수입’해 온 이데올로기로 교육현실을 재단(裁斷)하고, 들고 있던 처방전을 들이댄 것이다. 실로 유감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행태가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말았다.[PAGE BREAK]시장만능론적 교육개혁은 ‘공교육재정 감축’을 목표로 한 정책이다.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문제였다. ‘과도한’ 공적 부담이 재정적자를 유발하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니 이걸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공교육에 ‘시장조건’을 창출하여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또 할 수만 있다면 학교를 민영화해야 한다. 교육의 사사화(私事化), 즉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해 왔다고 생각하는 기업과 부유층의 요구가 반영된 해법이었던 것이다. 엉뚱하게도 이런 이데올로기를 수입해 온 것이다. 개혁을 한다면서 정작 우리의 교육현실이 어떤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과소 투자’로 일관해 왔다는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GNP 대비 5% 또는 6%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대통령 선거공약의 단골메뉴였을까.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자니. 더구나 ‘시장조건‘과 ‘교육의 질‘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이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교실 여건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경쟁’을 강조하기만 하면 그만인가. 교사들 ‘개혁의 대상’으로 몰리다 교사(원)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한 이유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교육의 질 제고’는 뒷전이고, ‘공교육재정 감축’이 개혁의 목표였다. 인건비 총량을 줄이려는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이것이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고 교사의 고용 형태를 다양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제교사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도입되지 않았던가. 이런 정책에 대해 교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교사들에게 ‘재갈‘을 물릴 방도를 강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교육의 사사화’ 전략은 필연적으로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시장조건에서 교육소비자는 다 같은 소비자가 아니다. ‘구매력’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본권인 교육권을 소비자주권으로 재해석하여 교육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책을 지지할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그들은 정부가 내놓는 정책의 ‘참뜻’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또 전문직단체나 교원노조로 조직화되어 있다. 편협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셈이다.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언론을 동원하여 교직사회에 뭇매를 가하고, 학부모를 부추겨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간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강행한 교원정년단축정책이 교직사회에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다 ‘돈’ 때문이었다. 시장만능론에 사로잡힌 정부가 교직사회에 무거운 멍에를 씌운 것이다. 하루아침에 교사들이 촌지나 받아먹는 ‘파렴치범’으로 매도되었다. 그런 교사가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호봉 낮은 교사를 쓰기 위해 교직사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던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믿음’을 기초한 일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다시 묻건대, ‘늙은 교사’는 모두가 실력 없고 무능한 교사인가. 이런 식의 발상도 ‘돈’이 앞서지 않으면 감히 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하튼 이 정책을 강행하면서 정부는 ‘절약’된 돈으로 젊고 유능한 교사들을 더 많이 충원하여 교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것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게 있는가. 애꿎게 나이든 교사가 교단에서 내몰리고, 초등교육에 관한 한 교사부족에 쩔쩔매는 형국이 초래되었다. 과연 이것뿐일까? ‘교사이탈’은 또 어떤가? 지난 3년간 무려 2만 명에 달하는 교사가 자발적으로 교단을 떠났다. 무차별적인 경제논리에 교사들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는 징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떠나도 ‘괜찮은 사람’은 보따리를 싸는 풍토에서 교육이 온전하기를 기대해도 좋은 걸까?[PAGE BREAK] 부족한 교사들, 연속된 미봉책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실로 궁색하기 짝이 없다. 교과전담교사를 정규교사로 발령하는가 하면, 퇴직한 교사를 기간제교사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중초임용정책을 내놓고 말았다. 다른 부처도 아닌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직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책을 강행한 것이다. 이런 미봉책들이 교사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교직사회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국민들로부터 받게 한 점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줄어야겠다는 황당한 발상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 결과 교직사회가 나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솔직하지 않은 당국의 태도가 사태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 속내를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정당성이 없는 정책이라면, 추진하지 않는 게 옳지 않은가. 그러나 교원성과상여금제를 도입하려는 데서 보듯이 여전히 겉과 속이 다른 교원정책이 매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언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교원성과상여금제 역시 핵심은 ‘돈’이었다. 별도의 예산을 책정했다고는 하나 결코 추가 보상이 주목적이 아니란 점만은 분명하다. 시행 첫 해이기도 하거니와 예견되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는 교사간의 치열한 경쟁 유발이며, 나아가 인건비 총량의 감축 내지 교원의 대치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원성과상여금제는 시장만능론적 관리전략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교사를 대상화하고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교육서비스’의 ‘공급자‘일 뿐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럴진대 차등적인 물질적 보상을 통해 공급자간의 경쟁을 유발시키려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은가. ‘성과‘가 좋은 교사에게는 ‘돈’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교사에게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같은 ‘경쟁’ 조건이 마련되면, 더 많이 차지하려고 열심히 일할 것이다. 고전적 기업관리론의 ‘부활’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교원 역시 ‘이슬’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 ‘돈’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많은 연구에서 성과급제의 효과가 경험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게 아니더라도 교직사회를 황폐화시키는 데 앞장서온 시장만능론자들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교육의 목적이 ‘이윤추구’가 아닌 이상, 교육의 과정(process)이나 거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 역시 기업관리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물질적 보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사가 결코 바람직한 교육자일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교육은 과정을 중시하는 일이며, ‘돈’보다는 믿음·사랑·변화가능성 등과 같은 ‘인간적 가치’에 기초로 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효율성‘이란 가치가 우선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게 되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투여해야 할 노동량이 많은 학생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된다. 그런 학생의 경우 ‘비용-편익의 효율성’이 아주 낮거나 마이너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만다. 오죽하면, 반 평균 성적을 높이기 위해 성적이 낮은 학생을 등교시키지 않으려는 비교육적인 일이 발생했을까. 효율성과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곧 교육적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PAGE BREAK] ‘교육의 공공성’ 다시 생각할 때 그렇다면 정부가 성과상여금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얼까? 이것은 시장만능론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교직사회는 이미 다양한 고용 형태가 도입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임금 등 고용조건을 달리하면, 그만큼 교사들간의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교직이라는 단일집단에 몸담고 있지만, 이제 다 같은 교사가 아닌 것이다. 고용계약에 관한 한, 모두가 경쟁자인 것이다. 그야말로 통제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고용과 해고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호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정부가 시장만능론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간의 교원정책이 교육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공교육 재정’ 감축이라는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개혁의 방법론을 보면, ‘교육’ 내지 교육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가를 금방 깨닫게 된다. ‘시장조건’에서 살아남으려 버둥거리는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만 있고, 교육자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경쟁과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앞세워 비교육적 행태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만능론적 교육개혁이 우리 교직사회를 뿌리째 흔들어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교사들은 의연하게 대처해왔다. 우리 교육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만능론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널리 인식시켰다. 진정한 변화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교원정년단축정책에 대해서도 맹렬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여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교원성과상여금제 투쟁 또한 효과적으로 전개하여 정부로 하여금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모두 교육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었다. ‘개혁의 대상’이기는커녕 ‘개혁주체’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고 씨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지만, 정부의 시장만능론적 정책기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교사들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의식을 제고하고, 또 기꺼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은 분명 교사들의 몫이다. 교육의 공공성 제고, 이를 위한 노력이 교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잘못된 정책을 일삼아온 정부와의 대립을 발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정부로 하여금 정도(正道)로 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교사가 어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교육서비스’의 ‘공급자’가 아니라 ‘교육자’임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김용호(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정책연구부장) 교직사회는 지금 ‘한 지붕 두 가족’ “겉은 조용해 보이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고나 할까요.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시간표 짜고 담임 배정하고 할 때 빼고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너무 크고, 일을 하는데 ‘우리 같이 해 보자’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게 솔직히 지금은 불가능해요.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거죠. 서로 제 갈 길 가고 다른 사람 일에는 관심 기울이지 말자, 그런 심정이에요. 공동체 의식이니 유대감이니, 그런 건 완전히 옛날 이야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야 쉽게 알 수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요. 해답이 빤히 보이는데 사사건건 쌍지팡이 짚고 나서니 똑바로 못 가고 돌아가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비능률, 비생산이 어디 있습니까. 뭘 좀 해 보려 해도 아무 것도 못해요.… 출발부터가 잘못 됐어요. 그래도 학생들 교육은 중요한 건데, 그냥 내 버려 두는 식으로 자유 방임하는 거예요. 책임감이 없단 얘기죠. 이러니 목적이 다른 데 있다, 명분 뒤에 숨겨진 목적은 다른 거다, 분석이 되는 거죠.(공립 M고교, S교사와의 인터뷰)” 교직사회의 반목과 대립이 위험 수위를 지나고 있다. 유독 현 정부 들어 깊어지기 시작한 교단의 갈등은 교사들의 일에 대한 헌신감이나 효능감을 급속도로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작금의 교실 붕괴조차 그저 관망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일이 없다고 믿게끔 만드는, 그런 심한 무력감 속으로 교사들을 밀어 넣고 있다. 갈등의 한 쪽에는 구태의연한 사고와 태도를 지닌 이들이 많아 교육에 변화와 창조의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반대하고 저지하려는 이들 때문에 도무지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 집단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도 하고 대안도 제시하면서 열심히 만나 보지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학교 차원에서는 상대의 존재에 큰 저항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대화의 장벽을 설정한 채 안으로만 침잠한다. 일정한 ‘계기적’ 사건이 불거져 자기 집단의 힘을 드러낼 순간까지는 외견상 ‘한 지붕 두 가족’으로서 동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정 사안을 놓고 물리적 충돌까지 벌이며 분열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심으로 상호 불신과 견제의 심리를 키워 간다. 요컨대, 공동의 비전을 갖고 나아가는 문화적 지향이 부재하며, ‘함께 하기’의 풍토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 지금의 교직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수록 양 집단 사람들은 학교 밖에 형성된, 접근가능한 네트워크에만 몸을 맡긴 채 조직화·의식화되고, 거기서 제공한 논리를 학교 내로 이식하면서 더 한층 갈등하고 대립하게 된다. 교직사회는 두 개의 고립된 섬이고, 여기서는 어떤 교육 정상화 노력도 실현되기 어렵다. 노조 교사와 관리직 교사간 갈등 양상 교직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런 갈등이 오히려 조직 통합의 매개체가 아닌, 분열과 고립의 촉진제로만 작용하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앞의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것을 교원노조의 등장에 따른 권력 투쟁의 심화와 연관짓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다. 관리직 교원이 독점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학교사회의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산하고 궁극적으론 장악하기 위해 조직의 기제를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대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PAGE BREAK]단순화해서 말하면, 노조 교사들의 사고와 행동의 저변에는 투쟁 지향의 문화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이런 문화는 힘의 우위를 매개고리로 하는 스스로의 권력 독식을 눈감아 주는 풍조를 말한다. 자신들을 축으로 한 대안적인 권력집단형성의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대립이나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의식이 노조 교사들의 삶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교직사회의 갈등 해소는 좀체 용이하지 않다. 외양적으로 볼 때, 학교사회에서 갈등은 다양한 종류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한다. 신구 세대의 교사집단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소속 교원단체가 다름에 따라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노조의 존재로 인해 형성된 분절 단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직사회의 전형적인 갈등 양상은 노조 교사와 비노조 교사 특히 관리자 교사간에 발생하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교원단체별 소속교사들간의 마찰도 대개는 이런 단위 속에 반영돼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조 교사들은 많은 교육의 문제가 관리자 교사들, 특히 교장이 예전의 권위주의적 정부 하에서 보여줬던 행태를 버리지 않고, 지금도 그때처럼 교사와 학생들을 규율과 통제 속에 가두려는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다른 여건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교장들의 태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학교교육의 개혁이 부진한 것으로 인식한다. 물론 교장도 변해야 한다. 교육환경의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하기 위한, 유연하면서도 자율적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동시에 노조교사 자신들의 변화와 그것을 담지하는 행정당국의 정책 방식의 변화와 함께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표현대로 “교육정책도 바꿀 수 있고 교장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화한 존재로서 그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한 교육의 내실화니 정상화니 하는 노력들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의 현실성 없는 정책이 혼란의 주범 현 정부 출범 이후 교직사회에서 많은 갈등과 혼란이 발생해 온 것은 사실 정부의 교원정책이 일관되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온 데 그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일부 교사의 촌지 사례가 드러나자 이를 전체에 만연한 현상으로 규정하며 일종의 ‘정풍 운동’ 차원에서 교직사회를 흔들어 대더니, 이후 참교육인증제니 학부모에 의한 교원평가제니, 담임선택제니 하는 현실성 없는 정책들을 차례대로 쏟아내며 교직의 위상을 끝없이 추락시켰다. 이와 함께 교직사회의 그토록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원의 정년을 3년이나 끌어내려 자존심과 사기를 짓밟았고, 결정적으로 교육부조차 절대 불가라고 하던 교원노조특별법을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서둘러 국회에서 통과시켜 교육 자체의 분열을 예고했다. 1999년 7월 출범 후에도 노조 교사들은 여전히 과거의 투쟁문화를 유지, 재생산하면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고 대립각을 형성함으로써 학교사회에 끊임없는 파열음을 생산해 왔다. 교장의 학교운영상의 소소한 문제나 잘못까지 낱낱이 캐서 알리고, “교장, 교감과는 항시 적대 관계나 후퇴없는 공식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서로 독려하면서 학교사회에 긴장과 대결의 분위기를 상시화시켰다. 그러나 관리자 교사들을 동반자가 아니라 적이라는 타도 대상으로 여기고, 적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전술적으로 볼 뿐 원칙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의식구조는 필연적으로 관리직 교원들의 대항적 투쟁의지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교직사회에서 평화적 인간관계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노조 교사들이 주장하는 ‘참교육’ 실현을 위한 투쟁적 색채의 활동방식은 교직사회를 모든 사회세력간 이념적 충돌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그 예로 우리는 지난해 여당이 소위 사립학교 운영의 공익화란 미명하에 ‘사립학교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자유시민단체들과 극심한 이념 대결을 전개한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결국 이때의 싸움으로 사립학교 교직사회는 여당에 편드는 노조 교사와 학교경영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경영자 및 학교 관리자 교사로 양분돼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다. [PAGE BREAK]또 지난 해 교육부가 노조와의 단체 협상을 통해 노조 교사들의 교내 연수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의 학교단위 노조 활동이 이뤄질 수 있게 하자, 노조 교사와 비노조 교사간 분열의 가속화를 우려한 관리직 교원들이 크게 반발하며 격렬한 논쟁을 전개한 일도 떠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교장을 교사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는 소위 선출보직제를 쟁점화시킴으로써, 향후 이 문제가 교직사회 구성원들간의 또 다른 대결 공간으로 변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렇듯 교직사회에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교원 노조의 활동이 오늘의 교직사회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떤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도 크게 요청되고 있다. 특히 교원노조 활동이 교직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 지를 냉철하게 따져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진단은 보다 새롭고 발전적인 교직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 통한 문제해결방식이 남긴 상처 커 교원노조의 등장은 교원들간의 관계, 특히 관리직 교사와 일반 교사들간의 관계를 일종의 협약에 의한 권리 및 의무 수행의 이분법적인 관계로 변모시켜, 학교사회에 긴장과 대결의 구도를 심화시켰다. 여기서 관리직 교원은 교사의 참여를 허용하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위치로 바뀌면서 불가피하게 노조 교사들과 다양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노조 교사들의 활동 전개에 따른 갈등 양상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 교사들은 관리직 교원의 교육활동과 관련한 기본적 권위를 불신, 침해함으로써 학교 내 인간관계의 불안정성을 초래하였다. 특히 교장은 정부 시책의 실천 주체로서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시·명령·감독만을 일삼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장의 독점적 권력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교육의 민주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주장하는 것이 ‘교장선출보직제’이며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라고 할 수 있다. 교장을 무력화시키자면 교장을 교사 전체가 직선할 필요가 있고, 학교 운영의 주요 사항은 교무회의에서 의결하여 교장을 단순 집행기관으로 격하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행이나 약정으로 여겨져 오던 학교 경영상의 방침들을 비민주적 제도로 매도하며 들추어내고, 지난날의 사소한 잘못까지 침소봉대시켜 폭로하는 등의 학교경영 까발리기 작업을 서슴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타난 일로 이해된다. 이런 현상들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단위학교에서는 학교 운영의 구심점이 해체되고, 교원 계층간의 심한 불신과 적대감으로 갈등이 편재화되는 양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둘째, 노조 교사들은 관리직 교원은 물론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풍토를 조성하여 인간관계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는 교사들을 어용으로 적대시하는 한편, 자신들의 편에 서면 민주교사로 부르며 다른 교사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이런 경향은 젊은 교사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교육개혁이나 교육의 민주화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대학 시절에 익힌 운동 논리로 교육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기존 질서나 교육과정에 충실해 학생을 교육 지도하는 선배 교사들을 역사의식이 없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 결과 오늘의 교직사회는 세대차에 따른 의식의 차나 갈등의 골이 매우 깊게 형성돼 나타나는 실정이다. 셋째, 주요 교육정책 추진을 둘러싼 교직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대결을 심화시켜 전체 교육력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의 정년단축 조치로써, 고연령과 고경력의 교사를 무능 무사안일로 규정한 독단적 정책으로서의 성격이 다분했으나, 교직사회의 의견이 양분됨으로써 그대로 관철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젊은 교사들 중심의 교원노조는 정년단축을 적극 지지하면서 정부와 결탁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대다수 선배 교사들과 교총의 활동을 교육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 기도로 몰아붙이며 대립하였다. 이 사태 이후 교직사회는 ‘수석교사제 도입’이나 ‘교원성과급 지급’, ‘자립형 사립고 도입’ 등 중요한 정책 방안이 제기될 때마다 교원노조와 교총으로 양분되어 심한 갈등 양상을 보여 왔다. 그에 따른 교직사회의 침체와 무력감은 전체 학교사회의 교육력 약화를 가져와 지금의 교육 위기를 낳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PAGE BREAK]넷째, 학교 현장을 투쟁의 장소로 일상화시킴으로써 교직사회에 심한 무사안일과 적당주의를 잉태시켰다. 노조 교사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부인하는 체제에 대한 투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제도적 권리의 확보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기 집단만의 소모임 활동을 통해 학교 운영의 주요 사안마다 압력을 가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민주로 규탄하며 실력 행사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 결과 학급담임 배정, 업무 배정, 예산 집행,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교무회의 운영과 교직원 연수, 애국 조회, 심지어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관한 사항까지 갖가지 이유를 붙여 반대하고 비판하면서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한다. 학교 내 문제뿐만 아니라 통일이나 사회개혁 등의 이념이나 체제 문제까지 들고 나와 다른 구성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학교 현장이 이렇게 언제든지 노조 교사들의 투쟁 공간과 대상으로 변하게 될 개연성이 높아지면서, 비노조 교사들의 상당수는 자기 일에 분명한 소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노조 교사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노조 교사들은 여론에 끌려 다니거나 영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그들이 명백히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타이르기보다는 못 본 체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노조 교사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와 현실성 없는 비판, 그리고 투쟁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교직사회에는 무사안일과 적당주의, 편의주의 풍토가 점점 깊게 형성돼 가고 있다. 교원단체간 사안별 공조 필요한 때 교원노조 결성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교직사회는 말할 수 없는 내부 갈등을 경험하였다. 더욱이 이런 갈등은 다분히 권력 싸움의 토양에서 출현한 것이어서 그 해소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만큼 교직사회의 인간관계를 황폐화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지식경쟁사회의 새로운 교육체제를 확립해야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갈등을 그대로 두고서는 어떤 형태의 교육 개혁이나 교육 내실화도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관리직 교원과 노조 교사들의 갈등 관계 청산은 국가적 과제로 간주돼야 하는 측면이 있다. 교직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오랜 투쟁 과정을 통해 이제 학교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 집단으로서 부상한 노조 교사들부터 먼저 학교 권력 장악의 고삐를 놓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싸움’을 매개고리로 하는 권력 독식에의 욕구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고, 학교사회 또한 결코 갈등의 풍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노조 교사들에게 이런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단기간 내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미 그들은 다양한 싸움을 통해 이러저러한 승리를 맛보았고, 그 혜택을 가장 크게 본 당사자라는 점을 매 순간 스스로 확인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관리직 교원들이 스스로를 좀더 공고히 조직화시키는 일이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권력 장악을 둘러싼 갈등 풍조가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노조 교사들의 권력에 대한 제도적인 억제가 필요하고, 그런 방안 중의 하나가 관리자 개념에 포함되는 교원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하나로 조직돼 힘의 균형을 보장받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체제를 바탕으로 상호간의 관점을 인정하고,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한다면, 지금의 무한 대립과 투쟁에서 각종 교원 단체간 사안별 공조나 협력, 협조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사립학교의 사용자측에 대해 노조에 상응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무작정 안된다고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도 여기서 나온다. 더불어 정부 또한 노조와의 관계에서 확고하게 정도와 원칙을 걷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매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협상의 범위를 넘어선 사항들에까지 편법으로 합의를 해 주고 양보를 해서 노조의 투쟁 역량을 키워 줄 필요가 없다. 그런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지금의 교직사회 갈등을 심화시킨 점을 부인해선 안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여 단협의 공공성을 망각하는 누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교원노조를 비롯해 교원단체는 작금의 교직사회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연유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여 이를 극복하는 일에 이제부터라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교직사회의 위기는 이를 건전한 교직문화 형성의 자양분으로 활용만 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소지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교직사회 붕괴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성재(한국교총 교권옹호국 차장) 들어가며 부당한 교권침해로 인하여 교원들의 설 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3월 중순에는 모 광역시의 신규임용 여교사가 학생의 생활지도에 대해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담임교체요구를 당했다며 도움을 청해 왔다. 그리고 작년 10월, 어머니의 잘못된 자식편애로 교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으면서도 오히려 피해자라고 신고한 교권침해 사례가 6개월 가까운 수사기간이 소요되면서 교원의 폭행혐의가 ‘혐의 없음’으로 처분을 받아 종결 처리된 바 있다. 이렇듯 교권침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여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킴은 물론 이제는 교직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의 학교현장에서 한국교총에 제보되어 교권침해로 분류·처리된 건수는 104건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개별적 사건 및 교권침해사건 전체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와 특징이 나타났다. 그리고 교권침해사건은 교원의 교직수행에 전념할 수 없도록 하여 결국은 학교구성원 모두에게 피해를 초래하게 되었다. 주로 학교구성원간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교권침해 사건의 특징과 문제점 및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교권침해의 특징 갈수록 증가 추세 앞서 말했듯이 2001년 한국교총에 제보되어 교권침해사건으로 분류된 총 건수는 104건이다. 이 수치는 1997년의 36건에 비하여 3배 가까이 증가된 것으로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현격한 변화를 보였다. 침해의 정도가 단순한 항의 내지 요구가 아닌 폭언을 동반한 폭행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수치와 내용 면을 고려하면 현재 학교현장에서의 교권의 실태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최근 몇 년간 본회에 접수된 교권침해사건의 발생 수치의 변화는 1997년(36건), 1998년(70건), 1999년(77건), 2000년(90건), 2001년(104건) 등 날로 증가 추세에 있다. 학교구성원간 불신과 갈등 만연 학교의 구성원은 크게 교원, 학생, 학부모로 구분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간 교육의 공급자인 교원과 수요자인 학생·학부모 간의 갈등은 예상외로 심화되었다. 교육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고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여 협력하기보다는 대립관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학부모 측에서는 정부의 교육개혁을 왜곡 해석하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학교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기존에 유지되어 오던 교원과의 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학교구성원의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이러한 갈등현상을 초래한 원인이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획일적 정년단축에서 비롯된 일련의 소위 교육개혁정책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교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으며 상대적으로 교원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극소수 일부교원의 촌지수수를 언론 등을 통해 마치 교원 전체가 비리집단인 양 매도하는가 하면, 교육수요자 중심 정책의 일환으로 교원에게 체벌을 금지함으로써 교권을 위축시켰다. 정당한 교육적 체벌임에도 불구하고 교원에게 폭행을 가하는 학생, 휴대폰으로 112신고를 하는 학생, 학생의 연락을 받고 학교에 달려온 학부모가 폭행을 가하는 등의 사례는 현재의 교육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관계가 신뢰·협력이 그 기본을 이루기보다는 불신과 갈등이 만연되어 언제든지 교권침해사건과 연계될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PAGE BREAK]교원간 갈등과 반목 심화 교원간의 갈등은 관리직(교장·교감)과 교사간의 관계, 교사와 교사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갈등의 주원인은 교원단체와 교원노조 회원간의 대립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교원노조의 합법화 과정에서 심히 우려한 사항으로서 교권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원간의 갈등이 지속적이고 장기화될수록 교원에 대한 외부인의 이러한 풍조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교원간의 갈등과 반목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뿐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부작용만을 초래할 뿐이며 위기상황에 처한 오늘의 교육환경을 교원 스스로가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한 집단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적대시하여 매도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 규준을 일탈하여 교원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불신이 조장되는 형태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적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외부의 세력을 동원하여 집단적 시위양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사학 분규의 증가 사학이 우리 나라 교육발전과 인재양성에 기여해 오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몇몇 사학법인은 교육의 목적을 벗어난 채, 학원의 부당한 인사 운영, 학사개입 등으로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부당성을 개선하고 학교운영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요구는 위의 몇몇 사학 내의 대부분의 사학교원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이의 실현 방법을 둘러싸고 이견을 표출하게 되었다. 학교의 교원으로 그러한 정당한 주장은 그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적절성과 사회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남으로 인해 학사 일정이 마비되어 학내의 분규와 소요사태가 장기화된 경우도 있었고 1년이 경과하도록 해결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수업이 중단되는 등의 심각한 상황까지 맞이한 곳도 있다. 특히, 학생을 동원한 수업거부 내지 수업방해, 등교방해 등은 주장과 목적의 순수성을 희석시킬 수 있으며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법 행위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학교법인의 비리나 불법성이 있으면 교육기관 내지 사법기관에 의뢰하여 법적인 절차를 통하여 해결하여 그 시비를 가려내도록 하고 집단적인 자력구제 내지 사력구제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규가 장기화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서로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공공기관의 결정 내지 사법적 판단에 대해서는 따르면서 직무를 수행하고, 불복 시에는 적법절차에 의해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불리하게 작용하면 결정 내지 판단 자체를 부인하고 심지어 ‘부정(不正)한 결정 내지 악법’이라 칭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결정 내지 판단이 내려지면 ‘정의’의 이름으로 그 결정 내지 판단을 활용하기 때문에 에 사태 해결의 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학 분규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학교법인의 투철한 교육관에 의한 투명성과 도덕성, 그리고 학사운영에 있어 구성원의 민주적 의견 수렴이 요구된다. 또한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수업을 포함한 교육에 부작용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주장에 걸맞게 수단과 방법 절차에 있어서도 적정성과 상당성의 범위 내에서 요구하여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구성원간의 신뢰를 높이고 질 높은 교육의 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PAGE BREAK]사건해결의 공권력 의존성 증가 교권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이의 해결방법에 있어 경찰과 검찰에 형사사건으로 고소·고발하거나 학교안전사고 등과 관련한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해결방법에 있어서 공권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민·형사상의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가기관에 그 구제를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며 실제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기관을 통해서만 구제가 허용되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교육현장에서 발생되는 각종의 사건이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비교해 보면 그 특수성은 인정되고, 내용에서도 차원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에 의존하는 경향은 학내에서 당사자간의 이견에 대하여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는 제도적 장치의 미비점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만 무엇보다 학교구성원, 특히 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불신이 더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주요 사례로는 교원의 교육목적 범위 내의 학생체벌과 관련하여 체벌 당시에는 이상이 없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학부모가 민법상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소멸시효가 경과된 어느 시점에 와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각서, 담임교체, 해임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의 수용이 안되면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내에서 공론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채, 인터넷상에 본인의 주장만을 게재하여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주로 청와대, 정당, 교육부 등)도 있는데 관할 교육청에서는 이의 처리방법에 있어서 양측의 의견을 정확하게 수렴하지 않고 집단적인 의견을 우선 고려할 경우, 교원의 교권침해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사건해결에 대한 공권력 의존성은 조정과 중재에 의한 해결과는 달리, 양측이 상반되는 결과를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고 교원의 경우, 교직수행에 어려움이 수반되고 양측간의 불편한 관계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요자 측에서 법적 의존성이 증대될수록 이는 교원에 대하여 “일단은 가고 보자. 그리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식의 의식이 저변에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공권력 의존은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서 사전에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교권침해를 최소화하고 이는 당해 자녀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의 교육적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에 제반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문제점 교단 전체의 소극적 학생교육 초래 교육의 수요자에 의해 야기되는 교권의 침해는 1차적으로 당해 교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 방문하여 다른 교원들과 학생이 보는 앞에서 모욕, 폭언, 폭행을 당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장기화되기 때문에 최종적 판결이 나기까지 겪어야 되는 정신적인 피해는 계량화되지 않는다. 공권력에 의존하는 경우에는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민사의 경우에는 반년 이상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원심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종국판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어야 한다. 학생간 싸움에 의한 안전사고에서 담임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2년 가까이 소요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당해 교원은 교육에 회의를 가지게 되고 다른 교원들에게도 영향이 파급되어 교단 전체가 학생교육에 있어 소극적인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교권침해가 교원에게뿐만이 아니라 학생 전체에게도 부작용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PAGE BREAK]교육수요자 전체의 교육권 침해 교육의 수요자는 당해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 밖의 전체 학생을 포함하는데 교원의 당해 학생에 대한 교육적 체벌은 그 학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전체의 요구에 의한 수업권 보장을 위한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 자식의 교육적 체벌에 대하여 교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는 행위는 자기모순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부모가 타인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면 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위상에 부작용이 있음과 마찬가지로 교사가 당하는 이러한 불법적 폭행이나 모욕 등은 학생들에게 교사의 위상에 심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고, 교육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제지간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한다. 교권침해가 증가할수록 일부 학부모단체에서 제기하는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참교육이 실현되기보다는 우리 교육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공교육의 버팀목이 와해되어 공멸의 파국으로 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안 모색 사전예방 조치 학생의 지도방식을 둘러싸고 이견을 가진 학부모들에 의해 주로 발생되는데 명예훼손피해와 폭행피해가 해당된다. 교육적 체벌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바, 최근 정부에서 교사에게 체벌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고 하더라고 체벌에 이르기까지 상호 허용되는 범위와 기준을 정하여 체벌이 단순히 학생에 대한 신체적 고통이 아닌 교육목적으로 각자에게 인식되어 승화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체벌을 할 수 있는 요건, 체벌도구, 신체부위, 체벌 후에는 학부모에게 알리는 등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한다면 구성원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체벌은 보충성의 원칙과 감정을 절대 개입하지 않고 모든 학생들의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최소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후 조치 첫째, 교권침해사건이 발생하면 그 유형에 따라서 처리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공통점은 연락망을 통하여 한국교총에 제보하는 것이다. 지난해 접수된 104건의 교권사건 중, 종결된 78건 대비 75건이 제보시보다 유리하거나 원만하게 종결되었고(96.2%), 현재 진행중인 사건도 소송비를 보조하는 등 교원의 권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둘째, 학교안전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발생원인과 당시 상황을 6하 원칙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기록하고 주위에 학생이나 목격자가 있으면 진술서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학부모의 폭언이나 모욕에는 절대 맞대응해서는 안되며 상대를 진정시키도록 하고 폭행을 당할 경우에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신고하도록 한다. 학교안전사고와 관련하여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요구하는 보상은 과도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학생간 싸움과 관련해서 가해자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가·피해자 학생, 학부모 모두가 학교와 교사에 그 책임을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이때, 그 요구를 구두로 받기보다는 문서화된 형식으로 요청토록 요구하고 방법도 구두보다는 내용증명의 우편을 발송하면 최고(催告)하여 추후의 법적 분쟁을 미리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셋째, 부당한 징계 등과 관련하여 신분피해를 입으면 교육인적자원부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결정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구제될 수 있다. 재심청구는 징계처분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하므로 조기연락으로 재심청구문 작성과 소송 등에 있어 행·재정적 보조를 받을 수 있다. [PAGE BREAK] 넷째, 교원노조와의 갈등으로 발생하는 교권침해에 대해서는 발생하는 즉시 제보토록 하고, 항상 법령과 원칙에 입각하여 대처하면 쉽게 풀릴 수 있다. 교단의 동반자적 입장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되 충돌되는 부분은 모두가 따르는 일정한 법과 기준에 따라서 해결해 나간다는 자세를 가질 때 교원간의 갈등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이 해방 이후 우리의 탈빈곤과 산업화를 거쳐 오늘의 정보화 시대 창출에 기여한 역할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전체 국민의 학력수준과 교육열 또한 세계 각국과 비교할 때,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양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즉, 세계 각국과의 첨단 정보화의 치열한 경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한 그 해답을 교육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은 그 주체인 교원에게 역할에 걸맞는 동기를 부여하고 교원 스스로가 사명의식을 갖고 인재양성에 혼신의 정열을 쏟도록 환경조성을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정은 교원으로서 교직수행에 필요한 그 기본적인 권리마저 인정치 않고 책임만이 강요되는 현실이다. 부당한 교권의 침해로 학교현장의 교사가 의욕을 잃고, 학교 교육은 공백을 맞이하여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 군사부일체” 등을 인용하면서 교사로서의 권위를 요구하는 것이 이 시대의 대다수에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이는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모든 것이 변화와 물질문화만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강요당하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결과로 보여진다. 하지만 분명히, 학교구성원 모두가 무너진 신뢰관계를 다시 세우고 교육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와 다른 구성원은 나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희생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며 모두가 교육의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교원은 21세기 세계 각국과의 경쟁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문성신장과 자기 연찬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학부모는 자기자녀만 우선 생각하는 잘못된 교육편견에서 벗어나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도 인정하고 교사에게 책임만을 요구하기에 앞서 교사의 학습지도를 포함한 권리를 우선적으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이제 구성원간의 소모적 갈등, 교권침해의 분쟁, 공교육의 붕괴 등에서 벗어나 선진 제국과의 생존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를 위한 교육의 중심에 교권의 확립이 있음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희대(서울 중대부고 교사) 들어가면서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관련 조사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교사들은 교직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10명 중 8명은 교직생활을 할수록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에 대해 74%가 사회적 기대가 교사의 능력이나 여건에 비해 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있다(동아일보 2002.3.23). 이는 교사에게 교육적 책임은 주어지나 그에 상응하는 교육적 권한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나 여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안팎에서 교육의 문제가 확대되어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될 때마다 그 책임과 해결책은 결국 교사에게 귀결되고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에게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교사의 지도성은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의 지도성은 교육의 핵심인데, 잇단 정부의 교육개혁 조치는 교사들에게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교권을 실추시켜, 학교에서 교사의 지도성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교직사회가 불안하고, 교사의 지도성이 무력화되면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에 실망한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학교교육의 대안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민이나 해외유학의 폭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본교의 경우 지난해 유학을 위해 학교를 떠난 학생이 학급당 평균 5명 정도로 나타났다.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고, 정부의 교원정책 역시 뾰족한 방안 없이 말 잔치로 끝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에 발표한 ‘교직발전종합방안’을 두고 대다수의 교육전문가들은 구체성이 없어 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현장 교사들 역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즉, 교사사기와 관련있는 처우개선, 근무여건 개선, 업무부담의 완화 방안은 대체적인 방향만을 제시하였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교직사회를 안정화하고, 교육 본래의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의 후유증으로 무력감에 빠져 있는 교사들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의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과감한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획기적으로 교직 풍토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교직 안정화 방안 교원정책의 핵심은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여, 전문성 신장을 촉진하며, 이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교직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 본 글에서는 교원 관련 주요 정책을 사안별로 구분하여 쟁점 사항과 그 해결 방안을 살펴본다. 1. 우수 교사의 확보 성공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 교재, 시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수한 교사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우수한 교사는 시설이나 교재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가며 교육의 성공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AGE BREAK]몇 해 전 교실붕괴가 극성을 떨어 교실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에 대다수의 교사들은 정부의 교육개혁조치를 비판하고, 교직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가져 학생지도에 무기력할 때, 일부 학급에서는 교실붕괴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수업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교사의 준비된 수업과 합리적인 지도성이 학생들로 하여금 교실붕괴 풍토를 일신한 것이다. 비록 유행처럼 번져가던 교실붕괴의 풍토 하에서도 교사의 열정과 지도성 여하에 따라 수업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교사 요인은 학교교육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교원정책의 출발은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는 데 있으므로,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의 잠재적 능력을 가진 고교 졸업생들을 교사 후보자로 선발하여,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교사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교사 임용 후에도 전문성 신장을 위한 노력을 유도하고 지속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우수한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문적 교직 풍토를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2. 교원처우개선 처우 문제는 교사의 사기를 고양시키는 기초적인 문제로 보수나 복지, 후생제도의 개선에서도 비롯될 수 있으나, 교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안으로는 교사의 보수 수준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여 사기를 높이고, 밖으로는 사회적인 인식을 제고하여 자연스럽게 교사들을 존중하는 여건 조성도 중요하다. 우수교사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의 경우는 특정 교과목 교사들에 대해서 보수의 차등을 두고 있으며, 교육구별로 우수한 교사를 유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1974년 이후 ‘인재확보법’을 만들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프랑스는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탐색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는 교사의 경제·사회적 처우 향상을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 교사에 대한 우대 규정이 형식적으로는 마련되어 있으나 선언적 의미 이상의 효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1982년까지 독자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교육공무원보수규정이 전체 공무원의 보수와 수당규정에 통합되어 운영됨으로써 교원우대법 정신을 구현하는 데 경직성을 따를 뿐 아니라, 전문직으로서의 교직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교사의 사회·경제적 처우개선을 위해 그 동안 계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우수교원확보법’ 제정과 교직의 특수성이 반영되는 ‘교육공무원 보수수당규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 3. 수석교사제 즉각 실시 현재 교원자격제도는 교사들로 하여금 교직생애의 최종목표를 교장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데, 교장 승진률이 1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현행 자격체계는 결과적으로 한 평생 교단을 지키는 거의 모든 평교사들을 무능교사로 보는 교직풍토를 만들어 교직사회에 관료적 풍토를 유도·조장해 왔으며,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상대적으로 약화시켜 왔다. 학생 교육에서 교장, 교감이 되어 행정가나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실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현장에서 몸바치는 교사가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수석교사제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한 교사가 우대 받는 풍토를 조성하고, 교장·교감 등 관리직으로의 지나친 승진 경쟁을 완화하고, 전문교사로서의 자질을 높이고, 각종 정부의 개혁조치 등으로 추락된 교사의 사기 진작 차원에 추진의 배경이 있다. 그러나 수석교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이며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등에 대한 현실적 문제가 있고, 또한 수석교사를 보직화하여 교사 정원의 10%만 선발하는 방식은 평교사들간의 치열한 경쟁을 초래해서 또 다른 승진루트로 전락할 수도 있으며, 수석교사제 실시에 따른 여건 조성에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 등이 걸림돌로 제기되고 있다.[PAGE BREAK]수석교사제는 초기 교종안에는 실시될 것으로 예고되었으나, 교직단체의 이견 대립으로 향후 검토과제로 분류되어 시행이 보류되고 있으나, 단일화되어 있는 교사의 직급체계를 이원화함으로써 교사의 역할을 다양화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학교의 역할도 다양화·전문화할 수 있어 교직풍토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큰 제도이다. 따라서 수석교사제 실시를 가능하게 하는 학교여건의 조성과 합리적인 선발과 운영방안 등이 마련되어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하여 교직사회에 활력을 주고, 한국 교육발전에 기여하는 제도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교육신문에 보도된 중동고등학교의 사례는 수석교사제 실시와 관련하여 시사를 던져 주고 있다. 중동고의 수석교사들은 ‘존경받는 학교의 어른’으로서 교내 자율장학과 교원들간의 갈등 중재, 교장의 자문위원, 학생들의 인성교육 등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이런 활동들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으로 나타나, 지난해 평준화체제에서 중동고는 선발집단인 외국어고교와 비슷한 대입성적을 올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수석교사제는 지원조건이 충족되면, 그 운영 여하에 따라 교사의 승진 적체 해소와 교직풍토의 개선, 학생의 학력향상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제도인 것이다. 4. 학교안전공제회 등 교원안전망 확충 교원안전망은 학교안전사고에 따른 교육활동의 위축을 방지하고, 학생·학부모·교원이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원들이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이다. 현재 학교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학생이 다쳤을 경우 치료비는 시·도별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보상하고 있으나, 신속하고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피해 학생·학부모 측으로부터 불만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관련 교사의 봉급이 가압류당하는 등의 사례까지 있었다. 이렇듯 학교 현장에서 교원과 학부모·학생 간 갈등 또는 분쟁 발생 시 이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분쟁이나 갈등이 불필요하게 장기화되거나 증폭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학교의 교육활동 중에 안전사고가 발생해 학생들이 다치는 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으며, 1997년 이후 명예훼손이나 폭행 사건 등 교권 침해성 학교분쟁이 3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학교안전사고피해의 경우 주로 안전사고 피해 학생의 부모가 학교안전공제회에 의한 보상을 거부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경우나 학생간의 다툼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교사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한국교육신문, 2002. 3.18).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몇해 전 교실에서 남아 혼자 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이 깜박 잠드는 바람에 교실 문이 잠겨버렸고,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학생은 불현듯 무서운 생각으로 2층의 교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다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소송까지 갈 정도로 여파가 컸으며, 학교 교육의 운영에도 어려움을 주었다. 이러한 경우 학교와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되므로, 이러한 고충을 해결하여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현재의 ‘교원안전망’을 더욱 확충하여, 실질적으로 교원분쟁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적 차원의 원만한 조정과 중재를 위해 현재 임의기구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학교운영위원회로 통합하고, 중재 기능 등을 부여한다. 또한 현재 시·도 단위의 학교안전공제회를 전국 단위의 학교안전관리공제회가 설립되도록 관련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PAGE BREAK]5. 교원단체의 교섭창구 단일화 오늘날 교직은 전통적인 성직관에서 많은 부분 탈피하여 전문직관과 노동직관이 주가 되는 직업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직업관 중 전문직관을 바탕으로 하여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노동직관을 바탕으로 하여 교원노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노동조합)가 결성되었다. 현행법은 교원단체를 교총과 교원노조로 양분하여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교총이,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에 관해서는 교원노조에서 교섭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법 운영에 있어서 교총과 교원노조에 의한 단체교섭의 내용 중 직·간접적으로 교육정책과 교원의 지위 향상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교육정책에 관한 부분과 교원처우개선에 관한 부분으로 나뉜 현재의 교원지위법과 교원노조법을 하나로 통합하는 ‘교원단체의교섭에 관한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전교조 설립 이후 교원단체가 다원화되면서 교섭창구의 다양화와 교섭 내용의 차별성으로 교원단체의 힘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분산되고 있다. 교원과 관련된 주요 사안인 동일한 교육 정책의 내용이 교원단체의 이해에 따라 달라짐으로써 교섭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교직사회의 큰 현안이었던 수석교사제, 교원성과급 지급과 관련된 문제에도 의견을 달리함으로써 학생교육에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학교 내의 각종 사안에 대해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듯 하다. 교원단체의 상호간의 경쟁을 통한 다양성도 중요하나, 교섭의 내용뿐 아니라 교섭의 창구도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교원단체간의 교육관련 주요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조정기구를 설립하여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교직단체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 교육정책 수립과정에서의 교원참여 확대 한국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이 자주 바뀌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함에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교육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기존의 교육현실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즉 교육현장에 대한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강행됨으로써 교육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현 정부 초기 단계의 교육개혁 조치들이 흐지부지된 것이 태반이고, 지금도 그 시행착오는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에 공교육 강화라는 명분 하에서 발표된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의 부활’ 등이 단적인 사례로 조령모개 교육정책이라는 비판을 듣게 만든다. 교육정책은 그 특성상 관심 집단층이 많고, 그 미치는 영향이 넓게 오랜 기간을 두고 나타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여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교육정책의 남발과 그 결정의 졸속, 그리고 자의적 집행 등을 경계하게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육정책결정 과정은 합리성, 정통성, 의사소통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합리성의 결함은 교육현장의 실제와 연결되지 않은 교육정책의 불안정성으로 나타났고, 정통성의 결함은 교육정책이 교사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실패로 나타났으며, 의사소통의 결함은 정책결정 과정에의 교사집단의 참여를 봉쇄하는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교육정책은 교육현장의 교육적 필요보다 정치권력의 정치적 목적을 반영하여 왔기 때문에 교사들은 그 정책들에 순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법적 형식을 갖춘 교육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교사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였다면 정통성이 결여된 정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개혁 정책의 성공에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교사의 주체적 참여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향후 모든 교육문제의 해결에 지금까지 소홀히 해온 경륜있고, 합리적인 교사들의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PAGE BREAK]7. 단위학교 의사결정의 민주화 단위학교에서의 의사결정의 민주화는 교사들 모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게 해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학교의 대표적 의사결정 관련기관으로 교무회의, 학교운영위원회, 각종 위원회 등이 있으나 형식적 요식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학교 역량이 하나로 결집되어 학교교육의 ‘시너지’를 나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현재 교단의 모습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종전 관리자 중심의 의사결정에서 현재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통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수의 참여 교사와 학부모 운영위원들의 전문성 부족, 운영상의 한계 등으로 실제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공·사립학교를 막론하고 대개의 경우 학교의 주요 의사결정은 교장, 교감, 교무부장 선에서 이루어지고, 형식적으로 부장회의를 거쳐 논의된 것으로 하고, 이를 교무회의를 통해 공표함으로써 민주화·정당화된다. 교육과정의 결정 및 운영, 교무분장조직, 교직원 인사, 수업이나 업무와 관련된 주요 정책들이 교사의 입장보다 관리자 측면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들이 학교의 교육력을 약화시키고, 교사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학교내부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여, 복지부동하거나 교사 편가르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교사가 주체적이지 않고, 분열상을 보일 때 학교교육의 질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단을 민주화함으로써, 의사결정의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학교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창출에 모든 교사들을 동참하게 함은 교단 민주화의 필수과제인 것이다. 단위학교의 의사결정의 민주화와 관련하여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하고, 학교 내의 각종 위원회를 전문화하여 적극 활용함으로써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오며 지난 97년 집권한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을 내세울 만큼 교육을 국가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교육의 가장 큰 목표를 학교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 일류 교육이 필요하고, 일류 교육을 위해서는 일류 교사가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 교사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 무한경쟁의 시대에 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교육의 주요 과제이다. 한국교육의 수월성은 교사의 손에 달려 있으며, 교사의 교육열과 지도성 여하에 좌우된다. 한국교육의 문제에는 학교외적 요인으로 잘못된 교육풍토, 입시위주의 교육 등 우리 사회의 교육문화 등과 같은 구조적인 것도 있으나, 학교 내적 요인으로 교사의 지도성 상실, 교사의 교직에 대한 무력감, 잘못된 교육정책, 교육여건의 미비 등이 뒤얽힌 복잡한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우선적 해결책은 교사들의 사명감과 책무성을 회복하여 교사의 지도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학교 현장에서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교사를 교육의 주체로 세워야 하고,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교권과 책임을 분명하게 제도적·법적으로 보장하여야 하며, 기본적으로는 교사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처우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황석근(한국교총 대변인) 교육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과정(political process)의 일부분이다. 교육정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행정부 내에서 기본계획이 작성되고 여당과의 당정협의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국회라는 정치적 논의과정을 거쳐 확정·집행된다. 이 과정에서 교육전문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보다는 개혁 실적에 급급한 정부의 영향력에 의존하거나 교육적 논리보다 시장경제 논리 혹은 특정 집단의 압력에 의해 교육정책이 왜곡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 왔다. 교원의 정치활동은 정부와 정치권의 교육정책 실적과 향후 방향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표적 참여방식인 선거를 통하여 평가함으로써 잘못된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대해 책임을 묻고 나아가 무분별한 정책의 남발 방지와 안정된 교육정책을 구현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단순히 교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기본권까지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이다. 더구나 교육전문가인 교원이 정당이나 후보의 교육정책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하고 이를 발표하여 국민들에게 알리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민주시민사회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노동기본권보다 훨씬 앞서 보장하고 있다. 교원노조까지 허용할 정도로 개방된 정부·여당이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유독 경직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예컨대 교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하였을 경우 오히려 선거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원의 87% 이상이 정치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학교 내에서 교원의 편향된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지 학교 밖에서 개인 자격의 정치활동까지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교육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학교의 정치장화에 따른 학습권 침해 우려는 학교 내에서의 정치활동을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또 교사는 정해진 교육과정 내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업에 대해서도 우려할 필요가 없다. 만약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업을 하는 교사가 있다면 행정적인 지도 혹은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방안을 강구하여 제재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정치기본권을 제한하는 논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활동의 제한은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특히 대학교원에게 정당가입이나 참정권을 허용하면서도 초·중등교원만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위배된다. 외국의 경우에도 정치적 기본권은 노동 기본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OECD의 가입국가 중 교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의 대표적 교원단체인 NEA는 1972년도에 정치활동위원회(PAC)를 출범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사의 자발적인 기금 모금뿐만 아니라 캠페인, 경매 및 경품판매, 우표 판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기금도 모금한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였으며 1990년대에 미국 하원의원의 75%가 NEA의 지원을 받은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미국의 교원노조인 AFT도 정치교육위원회(COPE)를 통하여 다양한 기금모금과 정치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단의 정치오염을 걱정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영국교원노동조합은 우호적인 의원들의 명단을 작성, 지지 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입법과정에서 조합의 의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최대 교원조직인 국민교육연맹(FEN)의 경우 소속 교원의 80%가 사회당에 가입되어 있다. [PAGE BREAK]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은 시민사회의 도래에 따라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시민단체의 활성화와 전문화 그리고 특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 당시 시민단체의 활동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시민단체의 전문성이었다. 즉, 시민단체가 민주성의 원리는 앞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분야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육전문가 그룹인 교원단체가 정치활동에 참여할 경우 시민단체 활동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고 이는 곧 시민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교원의 정치활동보장은 국제적인 추세나 국민으로서의 기본권 신장, 그리고 책임 있는 교육정책의 구현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교총은 이미 사회각계 인사로 ‘정치활동위원회’를 구성해 정치활동을 위한 관련법률의 개정, 향후 정치활동 일정 등을 확정함으로써 정치활동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당할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것이다.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전문가인 교원이 훌륭한 정책을 개발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교육정책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을 맹목적으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적법한 활동을 통하여 정치와 교육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홍득표(인하대 교수, 정치학) 정치활동의 유형은 시민단체 참여, 정치집회 참여, 선거운동이나 정당가입, 공직자와 접촉, 정치토론, 청원, 항의, 시위, 투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시민에게는 이와 같은 정치활동에 대한 제한이 없다. 하지만 초·중등교원은 선거운동 참여와 정당가입 그리고 교육위원 출마 등에 대한 피선거권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초·중등교원의 정치의식 수준이나 전문적인 소양을 고려할 때 개인의 정치활동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이유와 명분은 설득력이 약하다. 개인의 정치활동 참여 보장이 선진국에서는 공직자에게까지 무제한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교원을 제한하는 것은 정치학적·법리적·시민적 차원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일반시민과 마찬가지로 교원 개인의 정치활동 참여를 완벽하게 허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원단체가 교원들의 이익집단으로서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 교육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여 교육현실과 부합되는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원의 신분과 권익에 직접 관련된 정책이 이해 당사자인 교원의 의사가 무시된 가운데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데 대하여 교원들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교원단체가 전문적인 이익대표체계로서 집단행동이나 집단적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필수 요건이다. 교육현실과 동떨어진 조령모개식 교육개혁이 강행되고 교권이 짓밟히고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원의 권익과 관련된 정책결정 과정에 이익집단으로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원단체가 순수한 이익집단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서 선거 때 집단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지지·반대·낙선 운동을 하거나, 선거정보의 제공도 교육 이외의 정치전반으로 확대하는 것, 그리고 정치 세력화되어 정치현장에 뛰어드는 것 등의 정치활동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원 개인은 물론 단체의 제한 없는 정치활동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원인의 하나로 법치주의의 실종과 법 경시 풍조를 꼽는 상황에서 교원단체의 활동은 일반 시민운동단체와 달리 합법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것이다.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 주장의 시대적·법리적 당위성을 충분하게 인정하지만 학생들에게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선생님들의 접근방식은 달라야 할 것이다. 둘째, 교원단체가 정치 집단화되어 소모적인 정쟁에 휘말린다면 교육환경이 정치에 오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불신이 대단한 상황에서 선생님조차 진흙탕 싸움에 끼어든다면 교육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선생님들이 선거 때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줄을 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며, 역으로 정치권은 교원단체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의 손길을 뻗칠 것이다. 또한 줄을 잘못 섰다가 만의 하나 정치적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치경험이 전무한 선생님들은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PAGE BREAK]셋째,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교원단체 회원이 혹시라도 편향된 시각에서 당파적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자율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초·중등학생 교육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학교는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의 편향적인 학습현장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의 시장이 되어야 한다.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권력으로부터 교육의 독립도 절실하게 원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교원의 정치적 중립, 교육의 무당파성, 그리고 교육의 정치에의 불간섭 등도 바라고 있다. 넷째, 교원단체간 그리고 교원 상호간에 편가르기 등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선생님들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노선이 상이한 교원단체간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지지 또는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 충돌 가능성이 있다. 교원 단체끼리 싸우면 학부모들은 불안해 할 것이며, 선생님들을 불신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한 수만 혹은 수십만 회원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와 소속단체의 정치노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자칫하면 교원단체간 그리고 회원 상호간 반목과 대립의 골이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이익집단인 교원단체는 일반시민 운동 단체와 다른 성격이길 국민은 원하고 있다. 그 활동방법과 전략도 차별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적인 과제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원노조, 한국교원노조 등 모든 교원단체가 교원 개인의 정당가입, 선거운동 참여, 피선거권 확대 등 정치적 기본권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데 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교원단체의 정치활동 공간은 자연적으로 넓어 질 수 있을 것이며, 단계적·점진적으로 정치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정유성(서강대 교수, 교육학) 학교와 가족제도 세월 따라 변해 세상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달라지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놀라운 변화에 신기해 하다가도 그 엄청난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휘청거리게 된다. 밖의 세상이 변하는 만큼 우리 생각이나 마음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우리는 늘 무언가 비빌 언덕을 찾고 또 버팀목을 구하곤 한다. 하도 정신없는 세상변화가 어지러운 나머지 어디든 안정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안온하게 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가깝고 익숙한 자리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안으로는 가족이요, 밖으로는 학교다. 언제나 밖에서 지친 나를 품어주고 보살펴 주는 가족, 그리고 언제 봐도 똑같은 눈에 익은 교실환경에다 지루하긴 하지만 몸에 익은 시간표에 따른 일상이 진행되는 학교.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가족이고 학교는 언제부터고 늘 그렇게 있고 앞으로도 내내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 가족이고 학교고 늘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 아니 역사를 살펴봐도 가족과 학교만큼 변화무쌍한 제도는 없다. 사람은 사람 사이, 곧 인간(人間)에서만 사람답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인간다운 사회생활, 곧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보살피고 돌보고 이끌어 주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그 첫 자리가 가족이고, 그 활동의 첫 내용이 곧 교육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이 핵가족을 이루고 산 것도 아니오, 학교에서만 교육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부부중심의 가족은 최근의 일이고 아주 옛날에는 그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집단생활부터 했다. 그러다가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대가족의 형태를 띤 가족유형이 나타나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왔고 이른바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과정에서 현대사회의 가족유형으로 오늘날과 같은 부부와 자녀중심의 핵가족이 나타난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집단 안에서 너, 나할 것 없이 모두 교육을 했고 삶 한복판에서 삶 전반에 걸쳐서 교육을 받았다. 그것이 학교라는 틀에 맞추어 제도화된 것은 불과 몇 천년 전의 일이며 그 때에도 학교는 겨우 몇몇 사람, 곧 지배계층만을 위한 기관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면서 가족과 지역사회의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생활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화된, 국가 중심의 공교육 체제에 따른 학교가 생긴 것은 산업화와 근대적인 민족국가 형성의 과정에서 질 높은 노동력과 의무를 다하는 국민을 양성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게다가 핵가족화와 더불어 옛날처럼 삶 속에서 교육을 할 수 없게 된 점도 작용하여 생활 속의 교육을 떼어 학교라는 틀과 제도에 맡긴 것이다. 학교중심 아닌 학교만능 교육관 이렇게 만들어진 산업화 시대의 가족과 학교는 나름대로 그 기능과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가족은 편안하고 안온한 쉼터이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삶터, 그러면서 동시에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를 갖는 가족 구성원들이 인간관계를 배우고 익히는 겪음터였다. 특히 가족은 비교적 수직적인 인간관계의 축, 곧 아버지 중심의 가족문화를 이루고 자라나는 세대의 사회생활의 준비라는 일차적인 사회화의 장소가 되어준 것이다. 반면에 학교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족에 이어서 흔히 말하는 이차적인 사회화, 곧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준비를 해주는 기관이었다. [PAGE BREAK]개인마다의 특성과 개성을 찾아주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사회가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알맞게 배분해 주는 일을 한 것이다. 때로는 우리 사회처럼 후발 산업국으로 근대화를 서둘러 하게 된 경우 마치 대규모 공장처럼 경제성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길러내는 역할도 맡고, 빠른 사회변화에 적응시키는 훈련기능도 맡았다. 가족과 학교의 분업은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두 축이었고 그것이 잘 이루어진 사회는 근대화에 성공하여 국민 대다수가 현대사회의 풍요와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비교적 뒤늦게 시작한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진행한 우리 사회도 이 단계에서는 적잖이 과장된 가족과 학교의 분업으로 문제는 많지만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근대화를 꾀해 왔다. 다만, 흔히 그렇듯이 이런 과장된 분업과정에서 다양한 교육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학교중심 아니 학교만능의 교육관을 낳은 것이 문제였다. 정작 학교나 가족의 교육적 의미나 질보다는 학교 자체, 그리고 그 성과만 따지는 잘못된 교육관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졸속한 산업화와 압축적 근대화의 가장 심각한 폐해로 우리 사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걸림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바로 최근 우리 사회를 거듭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사람의 위기다. IMF 위기 이래로 경제나 사회 전반에 갖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지만 결국 그 핵심은 사람이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상은 또 한번 크게 변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탓에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사람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의 앞날을 열어가려면 그 사람부터 제대로 살펴야 한다. 그 앞뒤를 따져보면 이렇다. 요즈음 일고 있는 세계화나 정보화와 같은 거센 변화의 조짐, 아니 문명전환의 물결에 즈음하여 이러한 가족과 학교라는 우리가 가장 익숙한 제도는 또 한 번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이제 자고 일어나면 새로워질 만큼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이런 격변의 시기 아니 문명전환의 시기에는 그저 저 밖의 환경이나 물건들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의 관계조차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가족문화다. 핵가족조차 분열되고 해체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관계 속에 있는 사람 자체도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 곁의 자라나는 세대, 청소년들이 그렇다. 변화에 응답할 준비가 안된 학교 자라나는 세대인 청소년들은 어른세대에 비해 전혀 다르고 새로운 사람들이다. 사고방식이나 감수성뿐 아니라, 삶의 방식과 느낌, 버릇, 기호조차 어른들과는 딴판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우리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미래의 주인공이다. 예전 우리 자랄 적처럼 어른들이 나름대로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충고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컴퓨터 능력과 같은 미래사회의 핵심적인 역량에서는 이미 어른들을 앞지르고 있고 어른 세대의 상상을 뛰어넘은 미지의 시공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제 삶과 앞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가족 안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이들의 새로움과 다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며 그저 자신들의 뜻과 생각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탓만 한다. 이들은 벌써부터 어른들의 기존의 가치나 제도에 웃자라 버렸고 어른들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고 또 누리고 있는데 말이다. [PAGE BREAK]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가족과 학교의 역할과 기능, 곧 교육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문화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앞으로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가족의 교육적 역할과 기능은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반면에 학교의 교육적 역할과 기능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 학교교육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감당할 수가 없다. 우리는 대개 교육, 특히 학교교육을 기존의 가치체계나 지식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수하는 보수적인 역할과 기능에 치중하여 강조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문명전환의 시기에는 그보다는 앞날의 새로운 삶의 틀을 준비하는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학교교육은 전혀 이러한 과제를 감당하지 못하며 그 준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한편으로는 산업화 시대, 소품종 대량생산의 방식에 맞게 획일적이고 경직된 학교교육이 유지되고 있다. 다른 한편 학력주의 풍토 탓에 여전히 극한 경쟁의 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 시대착오적인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시대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요구하고 다양성과 개성을 촉구하는데, 학교는 그 요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학교는 이제 더 이상 학습의 중심도 아니오, 교육의 독점적인 장소도 아니다. 예전에는 학교가 학습의 중심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 지식의 중심이었고 교사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벌써 오래 전에 이러한 학교의 위상은 달라졌다. 하다못해 학습기능으로 보더라도 편협한 입시위주의 학습으로만 본다면 학원에 그 주도권을 넘긴지 오래고 새로 등장한 컴퓨터에 학생들의 관심을 빼앗기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다양한 학습의 채널이 열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의미에서 영국에서 나온 어느 보고서에는 학습중심으로서의 전통적인 학교는 30년 안에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비단 학습뿐 아니라 위에 이야기한 자라나는 세대인 청소년들이 제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 바로 우리 학교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이란 없다. 그저 학생만 있을 뿐이다. 이 땅에서는 ‘1318’이라는 중요한 삶의 시기에 제 나이 또래의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청소년이 발 부칠 곳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학교 밖의 문제 청소년, 학교를 벗어난 일탈 청소년이 있을 뿐이다. 우리 자라나는 세대는 어른들이 만들고 사회가 시키는 학습을 강요당하는 학생신분에 묶여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학교에 갇혀 있다. 0교시부터 보충수업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의 일상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또 폭력적이다. 눈에 보이는 왕따나 체벌뿐 아니라 학력사회 전반의 경쟁주의에 찌들은 구조적 폭력 탓이다. 학교는 삶과 체험의 장소가 돼야 지금, 여기 우리 학교는 청소년들의 삶이 없다. 삶이 없는 학교는 즐겁지 않다. 즐겁기는커녕 지겹고 힘들고 짜증난다. 열악한 학교환경에서 획일적이고 경직된 수업문화에 이르기까지 어디고 즐거울만한 구석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학교생활이 고단하고 힘겨울 뿐이다. 오죽하면 학교붕괴니 교실붕괴 같은 말들이 생겨나겠는가? 하다못해 이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하나씩 둘씩 학교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혐오시설’이 되어가고 있다. [PAGE BREAK]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학교가 생기면서 학교란 본디 삶의 자리이며, 즐겁고 신나는 곳이었다. 또 누가 뭐라 해도 학교는 마땅히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학교란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살고, 누리고, 즐기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억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학교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교가 삶과 체험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배움터뿐 아니라, 삶터, 겪음터로 학교가 탈바꿈 해야한다. 그래야만 사람을 만나, 사귀고, 서로 바뀌며 살아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학교는 놀이터, 싸움터가 되어야 한다. 머리뿐 아니라 가슴과 손발을 써서 실컷 놀고, 또 다름을 알고 배우며 서로 다투고 함께 사는 방식을 익히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나 즐거움은 찾아들 것이다. 지금 당장 학교를 한꺼번에 이런 장소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뿐 아니라 가능성은 아주 커지고 있다. 먼저 학교가 답답하고 지루한 학습의 장으로, 공부하는 자리로만 머물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앞서도 이야기한대로 그 학습과 공부는 이미 다른 통로가 많아졌다. 학교가 벌써 빼앗긴, 그런데 여전히 고수하려는 학습의 장으로서의 시대착오적인 독점을 포기하고 새롭게 거듭나기만 하면 된다. 배움터 뿐 아니라 삶과 겪음의 터전으로 말이다. 또 다른 한편 학생이 아니라 청소년인 자라나는 세대는 언제라도 이런 삶과 겪음을 학교 안에서 펼치고 누릴만한 풍부한 바탕을 갖추고 있다. 상업화되고 대중화된 문화뿐 아니라 이들이 만들고 있는 다양하고 힘있는 삶의 문화들이 그것이다. 이것을 학교에 받아들이고 교실로 들여오기만 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교실 한 구석, 수업 한 자락, 학교 한 공간에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될 틈새만 만들면 된다. 이 틈새를 통해 학교 안에 즐거움이 생기고 머물 수 있도록, 또 자리잡히도록 차츰차츰 학교의 틀이며, 교실생활의 얼개며, 교육과정의 축을 바꿔 가면 된다. 그 자리는 그렇다고 멀리 볼 것도 없이, 갖은 걸림돌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학교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또 만들어내려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김혁진(‘즐거운 학교’전문위원) 우리는 청소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가? 요즈음의 청소년 세대를 가리켜 흔히들 N세대 또는 디지털 세대라고 부른다. X세대 이후 청소년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일종의 부호로 바뀌었다. 질풍노도의 시대니 주변인이니 하는 용어는 이제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된 것 같다. 청소년문화를 가리켜 저항문화, 부분문화, 하위문화니 하는 설명들도 이제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의 정답 표시를 위해 자신들을 가리키는 과거의 단어들을 외우면서 청소년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즈음의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TV 광고를 보라는 말이 있다. 광고란 상품을 팔기 위한 매우 적극적인 마케팅 방법의 하나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고 이 비용은 결국 상품값으로 소비자들이 지불하게 된다. 그러나 원가 상승으로 물건 판매가 감소할 수 있음에도 왜 기업들은 광고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특히 이른바 N세대 마케팅이라 불리듯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 열정을 쏟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은 이윤이 목표이다. 광고비 이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N세대 마케팅의 성공 여부가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생존 여부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그 문화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업들이 스스로 그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무조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환경과 사고 방식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나왔었던 한 과자 광고는 모델 얼굴과 몇 가지의 숫자를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나열하였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핸드폰의 번호를 이용하여 과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문자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고의 대상은 누구인가? 이 숫자를 알아들을 수 있는 청소년집단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또는 그 밖의 현장에서 단지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청소년세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것이 가능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청소년들의 속마음과 문화를 정확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른바 새로운 세대의 특징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리를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더 이렇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일에 대해서도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 공통점은 어른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이제는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진다는 지적을 한다. 이들은 이제 자신이 판단하여 좋은 것인가 아니면 싫은 것인가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한다. 평범함에 대한 거부는 ‘무난함’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어른들과 달리 분명한 표현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부와 논다는 것도 이제는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모범생이고 얌전하며 착해서잘 놀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미 사회에서도 통용되지 못한다. [PAGE BREAK]시키는 일에만 소처럼 충실한 사람은 지식정보사회에서 반드시 실패하는 사람이며 그래서 기업에서는 공부만 잘하는 소극적 인재보다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개방적인 인재를 찾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아이들이 인기를 얻게 된다. 공부와 논다는 것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건널 수 없는 강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사례가 청소년세대를 대표하는 특징의 전부는 아니다. 더군다나 모든 청소년들이 이러할 것이다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한 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청소년상에 대한 강조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 자기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 밖을 벗어나면 성공할 것 같은 신화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에 만족을 못하고 스스로 학교를 떠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당국에서조차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을 위한 정책을 거론하는 것이 어찌보면 학교 교육에 열정을 가진 교사들을 씁쓸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다 그럴 수는 없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특별한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전체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또는 이상을 차지할 보통의 아이들에게 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찾고 그 재능을 키울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어떠한 유형에 속하든지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이 청소년들은 이른 바 지식정보사회라고 하는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인재상에 대한 제안을 보면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창의력과 인성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산업사회 속에서 태어나 자란 어른들이 나면서부터 TV를 보고 컴퓨터와 인터넷, 무선통신망을 통한 사이버 세계의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사회는 붕어빵과 같은 인재보다는 독특한 생각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인재를 찾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문화의 시대이다. 어른들에게는 그 실체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어른들의 고정관념과 상관없이 청소년 세대의 문화는 변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도 생각보다 빨리 변해간다는 것이다. 청소년세대에 대한 문화적인 접근은 학교의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교과서를 매개로 한 평면적인 교육이 아니라 삶 중심의 입체적인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학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학교 울타리로 보호를 받고 있는 갇힌 세상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가 교육내용으로 들어와야 학교 교육의 내용도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10년간 아니 20년간 유지되어오던 학습 내용도 앞으로는 1년도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 변하는 아이들을 앞서 가지는 못해도 가까이 뒤따라갈 정도는 되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과연 어른들은 얼마나 아이들을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청소년의 문화를 위한 토양으로서 사회적 환경이 가진 의의나 한계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이중구조의 모순 변해가는 청소년들과 비교하여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잠재된 시각이 있다. 그것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서 청소년들이다.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는 때는 1년에 두 차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연말연시와 5월이다. 12월과 1월에 각 지역에 걸리는 현수막(대체로 경찰서에 걸려 있는)에서는 ‘연말연시 청소년을 선도 격려합시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말은 보기에는 어른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반면에는 연말연시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선도 또는 단속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PAGE BREAK]5월이 청소년기본법에 의한 청소년의 달이기는 하지만 실제는 어린이의 달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외에는 학교 폭력, 화재사고와 같이 문제가 발생할 때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물론 어느 때나 온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입시와 관련된 상황은 예외로 해야 할 것이다. 학교 성적과 입시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다면 청소년들이 관심을 얻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학교 밖에서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갖고 건전하게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방향에 모두가 동의는 하지만 정책적인 지원은 항상 후순위로 밀려난다. 특히 사회적 환경은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는 것과는 역방향으로 흘러간다. 학교 앞의 러브호텔 문제로 한 때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학교 앞은 그래도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당장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흥문화는 무조건 청소년들이 접근만 못하면 상관없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단지 학교만은 아니다라는 점은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 여러 가지 한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최선의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청소년들이 삶을 살아가는 학교 밖은 최악의 교육적 환경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19세 미만에게 술과 담배 판매를 금지하기 위해서는 술을 파는 구역이 구분되어야 한다. 주택가와 유흥가와 교육시설이 한 데 어울려 있는 환경 속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선도 보호해야겠다는 어른들과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중구조 속에서 청소년들은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솔직한 생각은 학교를 든든한 울타리로 생각하고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야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 밖으로 나오고 싶은 청소년들의 욕구는 통제와 금지 속에서 점점 커져 왔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구조 속에서 학교의 영향력은 점차 더 감소하고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자유를 추구하였다. 여기에 사교육 의존과 같은 다양한 상황과 맞물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과 함께 학교위기 현상도 초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작 학교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도 지금은 그저 막연하게 내몰리고 있다.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사회전체가 교육의 장이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생 선도 보호대책, 청소년 성매매 대책, 출입제한 지역 대책과 같은 소극적 정책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 실상은 어른들의 상업적 욕구에 따른 환경이 통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된 환경 속에서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장을 원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문화가 없다는 지적은 어른들의 걱정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청소년들에 대한 질책이 될 수도 있다. 좀더 심하게 비유하자면 왜 너희는 좀 더 착하게 살지 못하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과연 그러할 자격이 어른들에게 있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많지만 언제라도 가라고 추천할 만한 공간은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유해환경 문제에 발목을 잡혀 있을 때는 아니다. 물론 금지해야 할 것은 사회적이든지 정책적이든지 확실한 대처가 필요하다. 건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제한된 공간 울타리와 통제, 금지를 통해 청소년에게 건전하게 자랄 것을 요구하는 것, 더 나아가 창의적 인재가 되어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관점이 요구된다. 변화하는 청소년 세대의 문화가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이며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경쟁의 시대, 지식정보사회, 21세기 문화시대를 말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인재 양성을 위한 거창한 구호와 계획이 실생활 속에서는 기본적인 토양도 갖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AGE BREAK] 놀이문화, 삶의 탈출구에서 창의력의 원천으로 그렇다면 사회적 환경이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장을 넘어서서 창의력 개발의 토양으로까지 확대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은 학교가 가지고 있는 부담이 감소될 필요가 있다. 학교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다 보니 학교 밖에서 경험해야 할 활동의 기회가 제한되어 왔다. 결국 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없음에도 우리는 학교에만 책임을 물어왔다. 문제는 너무 많은 교육내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내용들이 정작 21세기에 필요한 지식인지조차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영어교육 방식이 라틴어식 교육이어서 비실용적 영어 교육이 되었다고 한다. 라틴어는 누구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언어이다. 실생활에서는 죽은 언어이다. 그저 외우고 단어와 문법을 익혀 이해할 수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나 중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조차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 개발은 비실용적이어서 기업은 매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물론 실용적인 지식과 기능만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그 바탕이 되는 인문학적인 지식이나 기초 과학이 없다면 그 발전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21세기의 교육내용이 살아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한 방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용과 방법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 즉 교육적 차원에서도 이제 청소년들의 놀이문화에 대한 관심이 달라져야 한다. 놀이문화를 통한 체험활동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체험활동 경험은 단지 학교 학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청소년들의 사회적 능력 개발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학교 안에서도 그리고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문화체험 활동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어른들의 걱정은 아이들이 유해한 환경에 빠지고 불량하게 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제대로 놀 수 있는 좋은 사례도 볼 수 없었고 또 그러한 활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도 어릴 때부터 갖지 못하였다. 놀이란 보다 폭 넓게 보면 생활 자체가 된다.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21세기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이고 자발적이며 좋아서 하는 활동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매니아, 골드칼라라고도 부르며 앞으로의 사회를 주도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지적해왔다. 청소년들에게 놀이문화란 단순히 건전하고 착하게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아니다. 놀이를 통한 체험활동이란 누가 시켜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경험, 창조적인 경험을 갖게 한다. 청소년들에게 논다는 것은 다양성과 창조성의 경험이다. 청소년을 위한 놀이공간, 문화공간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수량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시설의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전용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시설조차 수익구조 중심으로 내몰리고 있고 다른 문화 복지 공간도 말할 것 없는 실정이다. 이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정책적인 이중구조의 문제이다. 단순히 청소년시설만 있으면 청소년놀이 공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의 놀이문화, 그리고 놀이공간이란 일정한 틀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건물 공간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경험이 중요하다. 실패도 있을 수 있다. 어른들은 일정한 틀과 공간에 청소년을 가두어 놓지 않으려는 자세부터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스스로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스스로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 가면서 주입식에 의한 창의성이 아닌 놀면서 스스로 체득하는 진정한 창의력의 터를 제공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도 학교 밖에서의 청소년의 놀이활동과 자율문화는 필요한 일이다. 사회의 다양한 기관들이 학교와 함께 청소년들의 자율적인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노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지승희(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들어가며 『내 마음을 읽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상담사례집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일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상담원을 찾은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 대한 흥미가 없어져서 또는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생활에 부적응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 어머니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한마디도 안하고 앉아 있다가 상담을 해보겠느냐는 물음에도 고개만 좌우로 흔드는 아이들도 있다. 한동안 요즘 아이들은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몰라요” 같은 단답형밖에는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말을 하는 대신 그들은 행동을 한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가출을 한다. 청소년 비행은 우울증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말은 안 하면서도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이 청소년기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과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아이들의 모습 1. 수업시간이 지루한 아이들 2001년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전국의 청소년 1275명에게 실시한 ‘수업중 수면 실태조사’ 결과는 청소년의 학교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체의 18.6%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1시간 이상 엎드려서 잔다고 하였고 자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 수업이 재미없어서,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라고 하였다. 수업중에 자는 시간이 긴 학생들일수록 부모와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였고 교사와의 관계, 수업 내용과 수업방법에 대해서도 불만족하였다. 또한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과 교사 몇 명에 대한 면접조사 결과, 수업중에 잠을 자는 이유는 학생의 경우 과목 및 교사 요인(싫어하는 과목,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과목, 목소리가 작은 선생님 등), 방과 후 활동으로 인한 피로, 학업 수행의 어려움,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반면, 교사들은 좀 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으로 인한 수면 부족, 흥미 부족,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의 부재, 기초 부족과 같은 학업의 어려움, 학교 부적응 등의 이유와 학교 분위기가 느슨해진 것, 사이버 문화 등 감각적 정보와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에 비해 변화하지 않는 학교 문화 등을 이유로 지적하였다. 이상의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소규모 학급운영으로 인성교육까지 책임진다는 보습학원들보다도 열악한 곳처럼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습학원의 강사가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전화를 해주는 것은 관심이요, 학교의 교사가 전화를 거는 것은 아이가 문제나 통보하는 가슴 철렁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부모와 학교, 그리고 교육제도가 손발이 안 맞아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무력하게 잠자고 있다. [PAGE BREAK] 2.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요.” 한 어머니가 울먹이고 있다. 험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 키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어렵게 키운 그 아이가 학교엘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유는? 폭력이다.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하고 반 친구를 쳤는데 코뼈가 주저앉았다. 꾸짖는 선생님 앞에서 분을 참느라 주먹을 불끈 쥔 것이 처벌의 수위를 높였고 아이는 스스로 자퇴를 선언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어머니는 밤새 친구들과 놀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애쓰다 지쳐버렸다. 아이를 폭력범 취급하는 교사와 학교에 대해서는 섭섭하고 힘이 없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서럽기까지 하다. 결국 아이는 자퇴했고 어머니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수용해주는 만큼 묵은 감정들이 해결되면서 아이는 검정고시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훈육과 처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아이를 학교로 돌아오게 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으로 수용되는 경험이었다. 학교 밖은 얼마나 유혹이 많은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은 충분히 벌 수 있다. 옷, 화장품, 술, 담 등등. 필요한 것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할 수 있으니 인정받지 못하고 지루하기만 한 학교에 있는 것보다 빨리 나와 돈을 벌어 즐겁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처벌은 두렵지 않다. 3. 교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아이들 학교에서 아이가 맞았다. 가해자는 학교 폭력의 주범. 이전에도 여러 아이들이 맞았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학교에서는 문제가 확산되어 외부로 알려질까 우려하여 조용히 덮어줄 것을 종용하였다.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을 해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올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서야 되겠는가? 어머니는 분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하게도 남들은 알아서 피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그 전부터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경험을 했던 아이는 학교가 싫다고 했고, 부모는 머리를 싸매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지식한 어머니는 아이를 혼자 보내놓고 밤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운단다. 단 한 명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한국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이의 말을 생각하면서. 극단일 것이다. 한 쪽 이야기만 들었으니 오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의 마지막 말, “단 한 명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선생님이 있었다면…”이라는 말이 귀에서 맴돈다. 상식이 통하는 학교,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마지막까지 갖고 있었을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나 대우가 어떠하든 아이들은 교사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상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온갖 냉소적인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이처럼 큰 것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1.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이해해주자 에릭슨(Erikson)에 의하면 사람은 8단계의 발달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각 시기마다 수행되어야 할 독특한 발달과업이 있다. 그 8단계 중에서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은 자아정체감 형성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등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감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정체감 혼미에 빠지느냐 하는 위기를 겪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PAGE BREAK]정체감 형성 과정은 자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상황과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역할들을 시도해 보고, 아동기까지 어른들에 의해 주입되었던 가치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 미지의 것을 탐색하는 과정은 불안과 두려움을 수반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알 수 없고 낯선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가 말이다. 더욱 나쁜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고 낯설고 두려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에게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 안의 많은 모순들과 불안정한 정서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혼란에 귀기울이고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부모가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이야기해도 좋을까, 야단이나 맞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선생님을 찾을 때 그들의 그런 불안까지 공감하면서 편안하게 자신을 열고 탐색하게 해주는 이해심 많은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생후 1년 된 아기와 어머니의 관계를 일정기간 관찰 연구한 아인스워스(Ainsworth)는 아이와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 비해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였고 적절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2차 성징의 발현을 비롯한 신체적 변화와 그로 인한 정서의 변화를 겪게 된다. 청소년이 처해 있는 독특한 발달단계와 과업들에 대해 잘 이해한다면 그들의 변화에 민감하고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2. 상담자적인 마음을 갖자 교사의 주 업무는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이다. 각자 담당한 교과목의 전문가로서 지식을 전수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으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문제와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학교 상담에 대한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상담이 학교현장에 도입된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학교 상담실 운영 형태를 보면 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단기간의 상담교육을 받고 교도교사로 임명된 교사가 주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고 현재는 진로상담교사로 명칭이 바뀐 상담교사와 담임교사 혹은 교과 담당 교사가 면담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또한 단기교육을 받은 학교 상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상담교사나 자원봉사자들은 단기교육이라도 받지만 대다수 교과담당 교사들은 상담이나 생활지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교과지도 능력이 뛰어난 교사라고 해서 상담도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담은 문제 행동을 처벌하고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있는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보다 전문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은 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과지도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연수를 받는 것처럼 상담이나 생활지도를 위해서도 전문적인 교육과정이나 연수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모든 교사가 전문적인 상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교육과 연수를 받음으로써 상담자적인 태도와 마음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미 청소년 문제가 발생한 뒤에 조치하는 것은 늦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문제 예방에 있어 학교의 역할이 중요함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모든 교사가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들으려는 마음과 적절한 기술을 갖고 있다면 청소년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기관이나 시설에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PAGE BREAK]3. 가족, 지역사회와 협력하자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협력해야 한다.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청소년들을 잘 키우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익히지 못한 채 학교에 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이리저리 책임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정과 학교가 연계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는 학교에서는 예의바르고 서글서글한 아들이 어느 날부터 부모에게 반항하고 형제들과 싸우기 시작했는데, 이런 아이의 문제를 교사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행여라도 담임교사가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되면 오히려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사실 그 아이를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좋은 점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학교의 교사였을지도 모른다. 독립과 의존의 갈등을 겪으면서 자기를 형성해 가는 청소년기에는 부모보다 교사의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하다. 독립과 의존을 반복하며 시험할 때, 독립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며 의존하게 해주고 다시 독립을 시도할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이 교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협력해야 할 대상에는 (상담전문교사가 있다면) 학교의 상담교사나 외부의 전문 상담자도 포함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전문 상담자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담임교사는 마치 부모와 같이 반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 아이가 상담교사를 찾아가는 것을 섭섭해하거나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담임교사의 학급경영 능력이나 생활지도 능력의 부족으로 인식될 거라는 두려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상담교사와 담임교사가 분리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아이의 입장과 상관없이 내 아이는 내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담임교사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오히려 좀 더 깊은 상담이 필요한 아이를 학교상담실이나 외부의 전문상담기관에 적절하게 의뢰(refer)할 수 있는 것이 담임교사의 능력이라 하겠다. 나오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꽃밭이어야 한다. 수백송이의 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아름다운 화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에는 시들시들 자고 있거나 자의 반 타의 반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을 깨우고 학교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훈육과 처벌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여 그것을 꽃피우게 하려면 사랑의 눈으로 그것을 발견해 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 그 어느 곳이건 단 한 명이라도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상처를 회복시키기도 하는 존재이다. 한 사람 교사에 의해 아이의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기도 하나, 이해하고 수용하며 귀기울여 주는 한 사람 교사에 의해 극적인 변화와 성장이 가능한 곳이 학교인 것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우러져 피어나는 것이다. 모든 교사가 한 아이 한 아이의 개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려는 상담자의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 학교, 그리고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한시기구로 출범한 비대위를 상설기구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대위는 정년환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지난해 9월 비대위가 출범할 당시는 11월 국회에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설정하고 그때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위와 법사위까지 통과한 법안이 한나라당의 입장 선회로 국회에 계류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며 현재도 국회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활동을 연장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대위가 상설기구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한시기구로서 활동을 연장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기구의 명칭이나 조직의 변화는 없는 것입니까? “기구의 명칭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출범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조직을 현실에 맞게 효율적으로 재조정할 예정입니다. 초기에는 논리 개발 업무, 교육자 대회 동원 업무, 정치권·교직단체·정부를 상대로 한 대외활동 업무 등 크게 3개 부문으로 구분하고 수도권, 그 중에서도 주로 서울의 교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방으로의 연락은 교직단체나 교장회 조직을 통한 전달 방법 등을 택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전달 속도가 늦고 확인 절차가 간접적으로 이루어져 확실성이 결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비대위 자체 조직을 전국으로 확대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각 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인사로 전국 네트워크 조직을 구축하여 정년 원상회복의 불 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예산관계도 있고 하여 현 단계에서는 서울의 조직을 축소하고 시·도별로 3명씩(초·중·고 각 1명) 구성하여 지방 45명을 포함한 70명 정도의 조직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비대위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펼쳤습니까? “비록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2001년 9월 25일 처음으로 발기인 대회가 있었습니다. 출범은 남암순 한국초등교장협의회장을 비롯, 14개 전국 교장회의 대표들로 시작되었으나 그 후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 김종서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준 전 서울시 교육감, 정원식 전 국무총리 등 32명의 교육계 원로와 중진들의 적극적 지원을 얻으면서 폭넓게 동참세력을 확대하였습니다. 비대위는 지도위원 21명, 실무위원 21명 등 봉사할 뜻을 가진 교장 교감 교사 42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보다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동원기획 1·2·3부, 대외활동 1·2·3부 및 자료수집개발부로 조직되어 업무를 분담하였고 5차에 걸친 확대회의를 통해 활동상황을 점검, 논의해왔습니다. 비대위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한 주요 활동은 대내적으로 정년환원의 필요성을 확산시키고 흩어져있던 교원의 목소리를 결집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교총과 손잡고 지난해 11월 10일 여의도에서 전국 교육자 대회를 추진하고 교원 동원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전국의 단위학교에 연락망을 구축하여 비대위의 활동을 알리고 교육자대회 참여를 독려하였으며 성금을 모금하여 정년환원이라는 목표 아래 교원들을 결집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PAGE BREAK] 또한 대외적으로는 대 정치권 활동을 통해 각 정당 관계자들에게 정년환원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득하여 법안의 국회상임위 통과를 가능케 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정년환원의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수 차례 게재한 바 있습니다. 물론 경험과 여건, 시간의 부족 등으로 뜻한 바를 충분히 이루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는 힘을 모아 최선을 다했 습니다. 우리 교육역사상 이처럼 교단 내부에서 결집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교원정년 연장 내지 환원이라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어도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정년 1년연장을 골자로 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교육위와 법사위까지 통과한 것은 법안 처리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으로 이는 16대 국회 회기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내외적으로 여건이 성숙되면 다시금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활동할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교단 내부의 목소리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교단에서는 위에서 밀어붙이는 일에 대하여 속으로만 중얼거렸을 뿐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부적절하거나 무리한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정직한 피드백을 하지 못하고 소화 안 되는 것들까지 꾸역꾸역 집어넣어 왔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교육의 소화불량과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원들이 지닌 무던함과 성실성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바람직한 덕목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오히려 병을 키워간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비대위는 그런 태도를 지양하고 건강한 교육의 미래를 위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표현할 것은 표현하여 사회 전체가 교육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적 방향을 모색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비대위의 활동을 통해 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소위 '국민의 여론'에 밀려 연장안을 처리하지 않았는데 국민의 여론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중대한 교육문제를 여론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는 여론이라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문제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교육의 중요한 문제들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은 여론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마는 나라살림을 책임진 사람들이 멀리 내다보고 바람직한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미래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정년환원에 대해 마치 정년을 앞둔 교장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간 정부의 여론조작은 교육개혁에서조차 밀리면 끝장이라는 집권당의 강박관념에서 나온 자기생존의 논리였을 뿐입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얄팍한 당리당략에 매달려 소신을 바꾸는 한나라당의 줏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여론이 교원들의 정년환원에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작금의 교육붕괴와 교육이민이라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이 황폐화된 데는 교원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단순한 경제논리로 교원정년을 3년이나 단축시켜버린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이 한 몫을 했던 것입니다. 정년단축을 강행한 결과는 오히려 교원의 사기저하, 연금기금의 악화, 정부와 교원간의 신뢰 상실, 그리고 심각한 교원부족 대란을 초래했을 뿐이며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자명해진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는 하루 빨리 교육을 바로 세워 교원들이 신명나게 교육에 전념하고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학교를 신뢰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PAGE BREAK]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너진 교권을 확립하고 교원들에게 자존심을 되찾아주어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교원의 정년환원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홍보와 이해의 부족이 일부 국민들에게 정년환원을 부정적으로 보게 한 원인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논의가 이어진다면 여론도 교원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기대합니다.” 비대위 활동 중 어려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교원들의 참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많은 격려와 성원에 비한다면 어려움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굳이 어려움을 든다면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비대위 활동을 교장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안팎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지금의 학교 체제가 과연 교장과 교사의 대립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원 정년환원이 과연 교장들의 기득권만 유지해 주고 일반 교사들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는 조치입니까? 굳이 득의 다과(多寡)를 따진다면 교장들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교원들의 자존심 회복이라는 거시적 입장에서 보면 결국 오십보백보가 아니겠습니까? 제 스스로 양심의 거리낌이 없으니 크게 구애받지는 않았습니다. 둘째는 실무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전국적인 네트워크의 미비로 일선 학교에 대한 자료 송부나 그들의 의견 수합 등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교원들의 참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은 적절치 못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교원들이 우리들의 일에 동조했다고 판단합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5만여 명의 교원들을 동원해 교육자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하였고 정년 원상회복 관련 서명지에는 2000여 학교에서 약 7만5000명의 교원 중 5만6000여 명이 지지서명을 함으로써 74.6%라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여론이란 누가 어떤 의도에서 조사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는 표본조사에 의한 여론의 확인이 아니라 교사들이 직접 서명한 교사들의 서명지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정부의 정년단축은 왜 잘못된 것이고 정년단축의 폐혜는 무엇입니까? “정부의 정년단축은 교원들에게 특히 노·장층 교원들에게 피맺힌 한을 머금게 한 처사였습니다. 정부의 처사는 이렇습니다. 힘있고 단결력 있는 젊은 교사들에게는 전교조 합법화란 당근을 주어서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반대 성명만을 내게 하면서 현 정부는 무난하게 정년단축을 단행했습니다. 참으로 한스러웠습니다. 교원의 생존권에 영구히 영향을 미칠 정년단축은 금융위기 중에 별다른 논의도 없이 방송, 신문 등의 언론을 총동원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고령교원들의 부패와 무능, 파렴치함을 들추면서 퇴출의 명분을 1년 이상 쌓아 가는 중에 교원의 사기는 천길만길 아래로 실추되었고 이러한 결과 학교 현장은 교실붕괴, 국민은 교육도피이민 등의 현상이 만연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년단축이 왜 잘못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상세한 답변을 비대위에서 개발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교원 및 학교 교육에서의 문제점으로 교원 사기저하와 교단침체 가속화로 인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촉진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교원정년을 단축함으로써 교원들의 의욕을 떨어뜨려 1998년 8월에서 2001년 2월까지 무려 5만명 이상의 교원이 일시에 정년·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PAGE BREAK]둘째는 교원수급상의 문제점으로서 퇴직자 급증으로 인한 교원 부족사태가 유발되었고 교육의 질적 저하와 공교육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교원 정년단축을 추진할 당시 고령교원 1인을 퇴출시키면 신규교원 2.59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1:1 충원도 하지 못하여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2001년도 1학기에 3020명을 기간제교사로 임용하여 교원부족을 땜질하였습니다. 실제로 1998년에서 1999년 사이에 퇴직한 초등교원 2만2000여명 중 33.6%에 해당 하는 7400여명이 기간제교사로 복귀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셋째, 경제논리에 입각한 교원정년단축 효과의 허구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초 정부가 주장한 교원정년단축에 따른 경제효과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시에 교원이 대량 퇴직함에 따라 공무원연금 운용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으며 명예퇴직금의 일시지급에 따라 시·도교육청의 부채가 급증하였습니다. 게다가 명퇴교원의 기간제교사 채용에 따른 보수의 2중 지급으로 인하여 정부가 당초 내세웠던 교원정년단축에 따른 경제효과는 전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년환원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교단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교원의 구조조정은 연령이란 하나의 잣대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60세가 넘어도 교단에 설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50세 이전의 교사 중에도 부적격자는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초·중등 교육공무원은 직무의 전문성과 특수성에 비추어 법관이나 대학교수와 같이 정년을 65세로 하여 축적된 경력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학습지도에 능통한 교사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륜으로 인성교육을 담당할 교사가 조화롭게 공동체를 이룩해야만 학교교육이 바로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타 직종에 비해 근무 여건과 보수 체제가 열악한 가운데서도 그 동안 65세 정년이 우수교원 확보를 위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교육공무원인 대학교수의 정년은 65세입니다. 초·중등 교원과 대학 교원간의 불평등 해소와 교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정년 원상회복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년단축 과정상의 절차와 방법과 논리가 교육본질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IMF 체제하의 경제논리와 상황논리였으므로 그 동안 경제적 효과도 이루지 못했음이 입증되고 상황도 바뀌었으므로 그 정책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교원정년 연장 내지 환원과 관련, 일반 국민과 정치권 등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교육을 살리는 일은 누가 혼자 알아서 할 일이 아니라 교원, 정부, 학부모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함께 협력해야 할 일입니다. 교단이 초라해졌다고 교사들이 떠나가고 교육이 붕괴되었다고 학생들이 떠나버리면 교육은 더욱 악순환에 빠져들 뿐입니다. 교육의 질이 교원들의 수준 이상일 수 없습니다. 부디 교원들의 상실된 자존심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에 국민들이 관심과 이해를 가져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우리 나라 교육의 미래를 위해 교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리당략을 넘어선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교육에는 교육의 논리가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정치나 경제논리로 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원들로 하여금 의욕과 사명을 가지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뒷받침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용환(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지금 우리는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16강에 들기 위해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고 있다. 축구에서 16강에 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데, 작년도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우리 나라는 독일, 일본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O,L 대회에서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무려 13번이나 종합 우승을 하였다. 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가? 기능올림픽 우승의 주역은 바로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들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들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산업 현장에서 땀흘려 일해 온 발전의 원동력이요 주역이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 나갔던 많은 실업고 졸업생들이 실망하여 자리를 옮기거나 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바꾸려고 하였다. 막상 대학을 진학하려고 하나 실업고 졸업생들에게는 대학의 문이 너무나 높고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실업고에서 배운 실용적인 내용은 대학 진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취업을 하여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대학 진학에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실업고 사정을 간파한 중학교 졸업생들은 자연히 실업고를 기피하게 되었고, 급기야 실업고 교육은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우리 나라의 산업 기능 인력 양성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실업고 학생은 우리 나라 전체 학생의 약 40%를 점하고 있다. 실업고 교육을 살리지 않고서는 우리 나라 교육의 정상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첨단화하고 있거나 인문 중심의 교육으로 흐르고 있다. 첨단 분야만 귀중하고 나머지 분야는 등한시되는 감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국가 발전을 위하여 첨단 기술 분야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첨단 분야의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을 생산해낼 수 있는 분야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첨단 분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실업고 졸업생들이 취업하는 곳은 첨단 분야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실업고 출신들은 우리 나라 산업을 지지하고 있는 분야의 핵심 기능 인력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업고를 살려야 한다. 작년도에 결정된 실업고 출신들이 동일계 대학에 진학할 경우 대학 정원의 3% 범위 안에서 정원외 특별 전형을 통해 입학할 수 있게 한 조치와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직업 계열을 신설한 것은 실업고 교육의 진흥을 위한 한줄기 밝은 빛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실업고의 염원이었던 이러한 제도적인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이 제도를 잘 살려서 우리 나라 실업교육의 진흥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선 대학이 실업고 출신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호를 넓혀야 한다. 혹자는 실업고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낮아서 문제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는 그 동안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실업을 배웠기 때문은 아니다. 과거에 실업고 졸업생들에 대한 동일계 진학 제도가 있었을 때에는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실업고로 진학하였고, 그들은 지금 사회의 각계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핵심 기능 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앞으로 실업고에 우수한 학생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배려를 하여 성공적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하여야 한다. 그래서 모처럼 마련한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실시되어 실업교육이 다시 진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실업고는 대학과 산업 현장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학생 양성을 위하여 노력을 배가하여야 한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산업체, 교사 등 실업교육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실업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실업고의 실업교육이 진흥될 때, 우리 나라의 지속적인 산업 발전도 함께 약속될 수 있을 것이다.
강인수(수원대 교육대학원장) 1. 머리말 성교육 활동에서 교사의 흥미중심으로 성인수준의 표현방법이나 시청각 교재를 활용하는 것은 학생 교육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교육 효과를 저해하고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교사의 행위에 대해 교사는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결정문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2. 원색적 표현으로 성교육을 한 행위 가. 문제와 사건 20년의 경력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가 사회과 시간에 학교장의 결재 없이 교과를 임의로 변경하여 반 아동들에게 교육과정 수준을 넘어선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미성숙한 어린이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집단 민원을 야기시키고 이 사건이 TV와 신문에 보도되어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킴은 물론 전교직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는 등의 사유로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의무와 제63조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해임처분을 받은 사건에서 징계를 받은 교사가 재심위에 재심을 신청하였다. 학부모의 진정 내용과 당해 교사의 주장, 재심위의 판단에서 보면 방학중 실시되는 ‘교원 성교육 및 성상담에 대한 일반 연수’에서 성교육 및 성상담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교사는 현재의 아동들에게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교육보다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교육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지도방법에 따라 교육한다는 생각으로 지나친 표현을 하게 되었다. 즉, 아동들에게 “인터넷에는 O양의 비디오도 있는데 오늘 하루는 용서해 줄 테니 보고 감상문을 써와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심위가 조사한 기록을 보면 그 교사가 아동들에게 인터넷을 통하여 성에 관한 초기화면을 검색하는 장면을 알려주었고 음란 사이트의 화면을 예를 들어 설명한 사실이 있다고 본인이 진술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담임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남자어린이의 성기를 만지는 등의 행위도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그 교사는 부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교사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재심위의 결정을 살펴보기로 한다.[PAGE BREAK]나.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결정 (1) 원색적인 표현에 대한 책임 재심위는 학부모의 진정 내용과 해당 교사의 주장, 사건을 조사한 기록 등을 종합하여 교사가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반 아동들에게 성교육을 실시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비록 그 교사가 성교육에 대하여 “현재의 아동들에 대해서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교육보다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교육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교사가 실시한 성교육 내용들은 마치 포르노의 설명과 같은 것으로서 초등학교 5학년 아동들에게 적합한 교육적 수준의 성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2) 교과를 임의 변경한 책임 성교육은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다루어지는 것으로서 교사의 판단하에 해당과목과 관련되는 성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할 것인 바, 교과와 청구인이 실시한 성교육과의 관련여부는 차치하고 학교장의 승낙 없이 교과시간표에 없는 성교육을 실시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3) 결정 이 교사는 사회과 시간에 성교육을 실시하면서 미성숙한 어린이들에게 성인끼리도 차마 할 수 없는 원색적이고 난잡한 표현을 사용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왜곡된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학부모 282명의 집단 민원이 발생함으로써 이 사실이 TV와 신문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보도되어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킴은 물론 전교직원과 학교교육의 명예까지 실추시키는 등 이 교사의 행위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 및 제63조(품위유지의무)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해임처분을 한 원 처분이 상당하다고 하여, 이 교사의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교원징계재심위원회 99-171 해임처분취소청구, 결정문집 제10지1, 2000, pp.55-58). 3. 성적 수치심을 주고 체벌을 한 행위 가. 문제와 사건 경력 11년이 된 고교 교사가 수업시간에 여학생들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언행을 하였고 학생들에게 교육적 한계를 벗어난 체벌을 하여 국가공무원법 제63조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하였다 하여 감봉2월 처분을 받고 이를 취소해달라고 재심을 청구한 사건이 있다. 재심위의 판단에 따라 사건 내용을 보면 성희롱 문제와 학생체벌 관련 사건이다. 청구인은 수업시간중에 “나는 많은 못난 점이 있지만 변강쇠다”라고 하거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 학생에게 “열달 동안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해 주겠다” “야한 비디오를 나의 지도하에 보자” “리비도는 성욕이니 성욕강화훈련을 해야 한다” “남자 앞에서 춥다고 하는 것은 안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등의 말을 하였고 여학생과 함께 이마를 비빈 행위, 수업중 눈싸움을 하는 행위, 치마를 입고 있는 여학생의 허리를 잡고 씨름을 하는 행위, 수업중 학생들의 눈을 감게 한 후 칠판 쪽으로 돌아서서 웃옷과 바지를 추스려 입는 행위를 하였으며 이것은 본인도 시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종아리를 때린답시고 종아리를 만진다는 학생들의 주장이나, 성기에 대한 욕설을 조사해 오라는 행위, 앞단추가 풀어졌을 때 학생에게 잠가달라는 행위,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쓰다듬은 행위, 학생의 가슴에 명찰을 달아 주거나 꺼내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주장과 달리 본인이 부인하고 있으나, 많은 학생들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과 성희롱을 받았다는 진술하고 있어서 사실로 보여진다고 재심위는 판단하였다. [PAGE BREAK]또 수업중 학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내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느냐”고 질문하여 손을 든 학생에게 2∼5차례 구타한 사실, 자기에게 학생들이 ‘싸이코’라고 말한 학생의 이름을 쪽지에 적도록 하여 밝혀낸 뒤 그 학생들의 엉덩이를 빗자루로 5회 정도 구타한 사실 등 여러 차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의 머리를 구타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문제가 제기되어 결국 감봉 2월의 징계를 받게 되고 이 징계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한 재심위의 결정을 보기로 한다. 나. 결정요지 (1) 성희롱 관련 청구인은 자신이 한 말과 행위는 농담으로 했거나 열심히 공부하면 교과담임으로 적극적으로 밀어 주겠다고 무심코 한 말이고, 수업진행의 도움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하여 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행위는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사로서 교육적 목적이나 친밀감의 표시의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며 정상적인 교과지도라고 보이지 아니하는 한편, 어떠한 교육환경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성희롱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여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2) 학생체벌과 관련 이 교사의 행동에 대해 본인은 교육적 필요에 의해,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학생체벌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교사의 학생에 대한 체벌이 징계권의 행사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하려면 그 체벌이 교육상의 필요가 있고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여 부득이한 경우에 한 하는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그와 같은 경우에도 그 체벌의 방법과 정도에는 사회관념상 비난받지 아니할 객관적 타당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할 것이다( 대법원 1988.1.12 판결, 87다카2240 참조).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그 교사는 자신이 학생들이 대응하자 단순히 ‘때리는 것과 때리지 않는 것과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학생들의 엉덩이와 머리를 체벌하였고 그 체벌에 대하여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며 격한 감정에서 다시 체벌한 것을 볼 때, 그 교사의 체벌이 교육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여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체벌이 방법과 정도에 있어서 사회관념상 비난받지 아니할 객관적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3) 결정 이 사건에서 재심위는 당해 교사가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사표가 되고 학생들을 인격적 감화에 의하여 바람직하게 교육하여야 할 직무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이러한 행위를 하였다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한 원래의 감봉2월의 징계처분을 상당하다고 인정하여 재심신청을 기각하였다(교원징계재심위 결정 2000-79 감봉2월처분 취소청구, 재심위 결정문집 제10집, 2000. pp.93-97). 4. 맺는 말 위의 두 사건은 교육활동에서 성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한 교사의 원색적이고 직선적인 표현에 대한 것과 학생에 대한 체벌의 정도에 대한 교육적 판단과 법적 책임이 다루어진 것이다. 성교육 활동에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연령, 성장발달 수준, 교육활동의 상황에 따라 적당한 수준의 교육 내용과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이러한 수준과 필요에 적합하지 않고 교사의 흥미중심으로 성인수준의 표현방법이나 시청각 교재를 활용하는 것은 학생 교육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교육 효과를 저해하고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교사에게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체벌의 경우 교사의 체벌이 교육상 필요성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하여 부득이한 경우에 교육적 판단에 따라 그 행위의 내용과 학생의 연령, 신체적 조건, 교육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그 방법과 정도가 사회관념상 비난받지 아니할 객관적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사들은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