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32,95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전국 고등학교의 사회 및 과학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사 중 동시에 3과목을 가르치는 이른바 겸담(또는 상치)교사가 10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겸담교사가 대도시에 비해 농어촌 지역에 집중돼 학습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1일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전국 고교의 사회 및 과학교사 2만2174명 가운데 3과목 이상을 가르치는 교사는 1090명으로 4.9%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강원도가 871명 중 235명인 27%로 가장 많았고 광주광역시가 742명중 3명인 0.4%로 가장 적었다. 평균치인 4.9%를 넘는 지역은 강원을 비롯해 전남(11.8%), 경남(9.2%), 경북(8.1%), 제주(7.9%), 충북(7.4%), 전북(6.6%), 충남(6.4%) 순이었다. 반면 광주를 비롯해 서울(1.1%), 울산(1.2%), 경기(2%), 인천(2.2%), 대전(2.5%), 부산(3.7%), 대구(4.%) 등 특별시와 광역시는 모두 평균치를 밑돌아 도-농간 격차가 현저했다. 이밖에 강원과 전남, 경남, 경북 등에서는 과학교사가 본인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이나, 역사, 체육, 미술, 윤리,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는 사례도 비일비재 논란을 했다. 이 의원은 "교육여건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에 겸담 및 상치 교사 비율이 높은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순회교사 제도를 적극 시행하고 유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에 대한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9월부터 교무/학사 등 3개 영역을 새로운 NEIS 시스템으로 전면 개통한다'는 교육부와 전교조의 지난달 23일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한국교총은 지난달 24일 교육부장관 항의 방문에 이어 지난 30일부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회원 200여명이 참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교총은 교육부와 전교조의 NEIS 합의가 시행될 경우, 검증기간의 절대 부족으로 졸속 시행의 우려가 높고, 40만 교원을 새로운 시스템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교육부는 '2005년 9월 전면 개통한 뒤 시스템 안정화 기간을 거쳐 2006년 3월 전면 시행한다'는 입장이지만 교총의 문권국 부장은 "전면 개통과 전면 시행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불완전한 시스템을 2005년 9월 개통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교육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총은 2005년 1년간을 새로운 시스템의 검증기간으로 설정하고 2006년 3월부터 전면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밀실협약'을 체결한 교육부 관계자를 문책하고, 합의를 전면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항의단들은 "말로만 참여정부 하는 짓은 독재정부" "밀실야합 주도한 관련자를 문책하라" "나이스 파행주도 교육부장관 퇴진하라" "교원단체 편가르는 교육부는 각성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농성했다. 지난달 30일과 1일의 농성에는 대구와 충북교총회장, 경기, 충남, 서울, 대구교총 사무총장 등이 함께 했다. 한편 구논회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선한 교육부와 전교조의 NEIS 합의과정에서는 컨설팅 자문회의에 참여한 다른 단체들은 물론, 교육부내 관련 부서들과도 논의조차 없어 교육부 의사소통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교원단체의 업무를 담당하는 교직단체지원과 관계자들은 지난달 30일 "교육행정정보화지원팀이 주도한 전교조와의 합의과정을 전혀 통보 받은 바 없고, 22일 전교조측으로부터 간접 암시받았다"고 밝혔다. 한 국장급 인사도 "NEIS 합의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중·고교 학교 급식에 `가짜 한우'가 납품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30일 국회 교육위 안상수(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7월말까지 전국의 111개 초·중·고교에 3억원 어치의 수입쇠고기와 젖소고기가 한우로 둔갑돼 납품됐다. 가짜 한우가 납품된 학교는 전국에 걸쳐 초등학교 84개, 중학교 15개, 고등학교 12개 등이며, 삼성에버랜드, 한국냉장㈜ 등 유명 납품회사도 가짜 한우를 납품하다가 적발됐다. 삼성에버랜드는 대구의 효성초등학교에 젖소를 한우로 속여 납품하다가 지난 6월 23일 대구 남부교육청에 적발돼 현재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축산사랑'이라는 납품회사가 2002년 2월4일부터 3월15일까지 한우갈비.뼈 70%와 수입갈비.뼈 30%를 섞는 방식으로 181㎏, 400여만원 어치의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D초등학교 등 3개교에 납품했다. 가장 많은 가짜 한우 납품사건이 발생한 곳은 강원도였으며, `미트뱅크' `한밭축산' 등 4개 업체가 B여고, C초등학교 등 22개교에 1억7000여만원 어치의 가짜 한우를 납품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안 의원은 "가짜 한우 문제는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점에서 강력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의식 / 서울산업대 교수, 역사학 Ⅰ.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편입 시도 중국은 2001년 6월에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 이를 줄여서 ‘동북공정’이라고 한다)’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2월 정부의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1996년에 비공개로 ‘고구려사와 동북 지역의 강역문제’를 중점연구과제로 설정하고, 사회과학원의 변강사연구중심(변강사연구센터)으로 하여금 이를 주도케 했다고 전해진다. 사회과학원은 중국 최고의 학술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가 설정한 정책과제를 국가예산으로 수행하는 준정부기구이다. 중국은 공북공정 관련 사업에 2002년부터 5년간 200억 위안(약 3조 원)을 투입하기로 하였고(연구비만 24억), 둥베이3성[東北三省;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 위원회가 사회과학원과 연합해 사업 추진에 나섰다. 동북공정은 수년간의 은밀하고 치밀한 준비 기간을 거쳐, 중국 정부가 국가정책으로 공식 채택하고, 막대한 국가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여하여 조직적·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사업인 것이다. 동북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낙후를 면치 못하였던 동북변경지방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이제 관심을 갖고 투자하겠다는 것이야 우리가 시비할 문제가 아니지만, 이 동북공정의 핵심 연구 내용이 고조선 및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쪽으로 향하면서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짓밟기 시작했다는 점은 우리로서 결코 좌시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동북공정에 참여한 대다수의 중국학자들은 한입으로 말하듯 일사불란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 고구려는 중국의 영역에서 기원하였고 중국 왕조와 조공 또는 책봉 관계를 맺어 지속적으로 예속되어온 데다가 그 멸망과 더불어 대부분의 주민이 중국에 흡수되었으므로 그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며, 둘째 현재의 한민족은 신라 및 백제족에 소수의 고구려족이 섞여 이루어졌으므로 고구려족을 계승한 민족이라고 볼 수 없고, 셋째 같은 이유로 고조선 또한 현재의 한민족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고조선 이래 누천년을 두고 이어져 온 우리 한민족사의 계기적 발전과정을 전면 부인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내용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중국 학자들이 갑자기 천편일률로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피력하고 나선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중국 정부가 의도적·조직적으로 유도·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학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학문적 연구 결과의 산물이라면 정확한 논증과 학술적 토론을 통해 그 오류를 수정해갈 수 있겠지만, 애당초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가 나서서 정략적인 암수로 억지 주장을 유도해낸 결과라면 이는 더 이상 학문 논리로써 설득이 불가능한 대외적 침략 행위라 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국민홍보용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왜곡된 한국고대사상(韓國古代史像)을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중국 학계와 정계의 동향에 유의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일단 저들의 논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주장의 한계를 명백히 지적하는 동시에, 왜 갑자기 저들이 이런 주장을 들고 나왔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적절하고 올바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Ⅱ. 소위 ‘중국고구려’론의 논거와 문제점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사와 관련한 남북한의 상고사 인식체계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고구려는 중국 왕조가 관할하던 변방의 한 지방정권이므로 그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고구려 앞에 꼭 중국을 붙여 ‘중국고구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고구려’라는 용어는, 고구려를 훗날의 고려와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하지만, 그 역사가 중국 것이라는 저들의 인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신조어인 셈이다. 남북한 상고사 부정하는 ‘중국 고구려’론 이른바 ‘중국고구려’론은 단지 고구려사만을 문제삼고 있는 논리가 아니다. 단군조선을 상상에 의한 가공의 허상으로 규정하는 등 그 출발부터 남북한의 상고사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이다. 1998년에 비공개로 개최된 제1차 중국동북지방사학술대회의 결의문에서는 한국과 북한 학계의 상고사 인식체계를 자기들에 대한 ‘도전’으로 파악하고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고 천명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선사시대 둥베이3성 지역과 한반도 북부는 한인(漢人)의 이주와 개발에 의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파악하고, 이는 기자조선이 이 지역에 처음 들어선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자조선은 은(殷)의 유민과 동이족의 습합에 의해 건국된 주(周) 제후국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사관에 의한 역사왜곡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이해형태다. 이러한 논의는, 연(燕)의 동북경략과 한무제(漢武帝)의 한사군 설치를 주목하면서, 고구려현이 현토군의 속현으로 나타나는 기록을 고구려가 본디 중국 중앙정권에 대해 종속된 국가로 출발하였음을 입증하는 자료인 것처럼 인식하는 논리로 확대된다. 둥베이3성뿐 아니라 한반도 북부 또한 일찍부터 중국의 강역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주장이 백두산을 둘러싼 천지의 반환문제를 언급하는 데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천지의 반환이나 간도의 귀속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이러한 논의의 궁극적 목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뒤에 다시 자세히 말하겠지만, 동북공정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중국 정부 지도층의 본의를 곡해한 몇몇 학자의 뜬금없는 주장일 뿐이다. 한국에서 동북공정의 핵심이 한반도 통일 후에 전개될 영토분쟁에 대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마치 정곡을 찔리기나 한 것처럼 최근 중국의 고위 관리가 갑자기 방한한 것은 한국 내에서의 논의를 이 정도에 묶어두려는 얕은 술책에 불과하다. 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 전통 사서들 ‘한국 고구려사’ 인정 중국인들이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동북 지역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조선과 청 사이에 국경을 획정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자, 중국은 1880년대에 둥베이3성을 설치하여 만주(滿洲)를 정식 행정단위로 편입하였다. 이를 위한 기초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 광개토대왕릉비인데, 북경의 금석학자들은 이 석비의 발견을 계기로 비로소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구려사를 일찍부터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이를 정사(正史) 체계 속에서 정리해 왔으며 실학이나 독립운동 과정에서 그 의식을 더욱 강고하게 다져온 것과는 그 역사성과 인식 방향이 크게 다르다. 고구려사가 우리에게 본원(本源)이었다고 한다면, 저들에게는 정치현실상의 한 재료에 불과했던 셈이다. 중국의 전통 사서는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서술하지 아니하고 동이전에 편제하여 그들로부터 독립한 외국사로 기록해 왔다. 일제가 만주를 차지하고 전면적인 대륙침략을 감행하자 중국인 사이에는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는데, 이런 시류를 타고 동북지역을 중국사로 보는 일부 역사가가 있기도 하였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중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마르크스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자국사를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한다는 것이 당시 중국 역사학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농민전쟁을 중심으로 한 역사동력 논쟁이나 시대구분 문제 등 사회성격과 관련한 논의가 중국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뤘다. 더구나 ‘항미원조(抗美援朝)’가 정책의 기조를 이루던 때에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역사 연구가 가능한 한 억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중국의 교과서와 일반 역사책들은 거개가 고구려사를 한국의 고대정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대외관계 속에서 서술하였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고구려사론 그러나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고구려사 이해의 방향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를 두 진영으로 가르던 냉전체제가 쇠퇴한 데 따른 변화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는 보편주의를 앞세움으로써 국가 중심, 민족 중심의 역사인식을 세계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의식으로 간주하고 이를 억제하는 구실도 해왔는데, 이 체제가 유명무실해지자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었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중국은 특히 발해사의 귀속문제를 새로운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한 논거를 개발하고 관련 논문의 수를 양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 연구의 주된 방향이고 목표였다. 그러더니 1990년대 들어서 급기야 고구려사까지 중국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연구의 방향과 결론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그 논의는 학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존의 역사 사실과 해석을 그대로 둔 채 이해의 방향만 전환한 기술적·정치적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족의 발생과 거주가 모두 중국의 영토 내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이들이 건립한 정권은 중국 역사상 지방의 소수민족정권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논리만 보아도 그 비학문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현재의 중국과 고대의 중국 왕조를 동일시하고 현재의 중국 영토가 마치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지속된 것인양 착각한 이 논리를 학문적이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중국은 처음부터 단일문명체였던 듯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면서도, 기타 주변 민족은 정권 단위로 서로 다른 종족이었다고 파악하는 것은 이중적 관점이다. 중원 왕조의 변천은 종족적 차이에 관계 없이 면면히 발전해 온 문명체로 파악하면서도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 등에 대해서는 정권의 붕괴와 함께 해체된 것으로 인식한 이율배반에는 누구라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관계를 전혀 다른 종족 간의 경쟁 관계로 처리한 것은 역사의식과 문화계승의식을 무시한 억지이다. 또한, 역대의 조공책봉관계를 모두 정치적 예속관계로 파악한 것도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무리한 논리이다. 조공-책봉 관계는 이른바 천하관념과 화이적(華夷的) 세계관에 기초한 의제화된 국제간의 질서체계였을 뿐이다. 그것은 중국의 정통왕조를 천하의 중심에 두고 기타 지역을 문화적 편차를 기준으로 차등적으로 구별하여 차별 대응하던 인식체계로서, 중국이 제국질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의제적 명분에 불과하다. 상고 이래 ‘중국’ 또는 ‘천하’의 개념 및 범주는 구체적 실상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거쳐 왔음은 이미 일반상식화한 사실이다.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은 이를 기록한 사서의 서술 자체가 아니라 그 실제적 운용을 고찰할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며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실제 운용 면을 애써 외면한 최근 중국 학계의 논의는 학문적으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책봉 관계를 정치적 예속관계로 파악함을 전제하여 기자의 습봉이나 한사군, 안동도호부 등을 그 예속의 증거로 삼으며 이로써 고구려와 중원 왕조와의 관계를 중앙 정권과 지방 정권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다분히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인식이다. 고구려본기는 확실한 증거 그리고 고구려사를 한국사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도 가소로운 작태다. 고구려 멸망 이후 영토와 인구의 귀속 여부를 근거로 발해 또는 고려와의 연계성을 부정하고자 하나, 이는 현재 강역을 중국의 역사 강역에 직접 대입시키려는 데서 온 것으로, 문화적 측면에서 역사의 계승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억지논리다. 특히 이러한 문화적 승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식일 터이다. 고구려본기의 저술이나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발해가 멸망한 후 그 영토와 민호의 많은 부분이 고려로 편입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 역사를 중국사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해의 역사와 문화는 발해 독자의 것이며, 이를 계승한 것은 고구려 계승의 역사의식 위에서 건국한 고려였다. 중국이 발해의 터전에서 일어난 요·금 왕조와 후금(청)을 계승한 국가라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았으면서도 그 역사를 중국사라고 강변하는 것은 모순이다. 청나라로부터 국가를 되찾았다는 ‘반청(反淸)’의 기조는 현재도 중국인 일반의 역사의식이다. 물론 이러한 억지논리들은 근본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국의 소수민족사로 편입하려는 비학문적 의도가 전제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연구방법론상으로 중국의 정사(正史)를 비판 없이 운용한 결정적 결함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얼마든지 더 여러 각도에서 지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체계가 비학문적인 논리로 치닫고 있는 만큼 이를 학문적 관점에서 일일이 검토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는 실로 의문이다. 또 중국 학계가 고구려사를 다루는 정치적 논리를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도 여겨지지 않는다.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제시된 셈이며, 저들 스스로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을 터이므로 이에 대한 반박과 비판 또한 대략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고구려를 주체로 그 흥기(興起)와 역사 발전의 과정을 계기적으로 체계 있게 서술해내는 것이 더 급한 과제라고 사료된다. 삼국의 형성을 고조선 사회의 계기적 발전 형태로 파악함으로써 고조선 이래 부단히 발전해 온 한민족사 초기의 역사상(像)을 구성적으로 논증해 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와 같은 무리한 논리를 부추기고 있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접국의 역사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면서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야기될 소지가 명백한 도발을 감행하는 데는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를 단순히, 소수민족사를 자국사의 범주 내에서 처리하는 중국의 일반적 방식쯤으로 치부하거나 정치적 협상 카드를 하나쯤 더 확보하려는 노력 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Ⅲ. 고구려사 편입 시도의 배경과 의도 문제의 초점은 최근 중국이 고조선 이래로 줄곧 한반도 북부를 지배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무리한 시도로 감행하는 의도를 현 단계로서는 자료를 통해 입증하기 어려우나 역사적 맥락에서 짐작해볼 수 있고 또 그 결론은 사실의 실상에 매우 근접할 것이다. 우선 유의할 것은 중국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정치적 의미이다. 중국은 중국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고 자치구를 형성하여 그 언어와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에 대해 그 형성배경 자체를 다른 소수민족과는 다르게 파악하고 대처하고 있다. 즉 중국은 변강지역에 과계민족(跨界民族)을 30개 정도로 파악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원을 선민문명으로 설정하고 소수민족을 낮은 단계의 사회로 설정하여 한족에 의한 동화 및 융합과정으로 인식하여 왔다. 즉 조방농업생산방식의 남방민족이나 반농반목의 유목민족인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선진적인 중원 문화를 받아들여 스스로 동화되어 간 역사 과정으로 묘술해온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의 경우는 이와 다를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근대로 접어든 이후의 역사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족에 대한 정책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중국내 조선족 통제와 간도 영유권 문제 차단 노려 중국 학계는 1990년대 이래 고구려사 귀속 문제를 제기하게 된 배경으로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개재함을 표출하고 있다. 첫째는 1990년대 이래 한중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족 사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조선족의 민족적 각성이 진행된 사실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이 스스로 한민족임을 자각하고 북한에서 탈출하는 ‘동족’을 도우며 한국에 진출하여 경제력을 축적하는 등, 국적과 관계없이 민족적 귀속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제동을 가할 필요가 긴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차에 주목된 것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조선족 사이에서 고구려를 자기 역사의 출발로 인식하는 경향이 제고된 사실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긴급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인의 고구려사 연구 논문에서 고구려는 현재의 조선족과 역사적 계승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애써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이는 아마 거의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둘째는 한국 학계의 일부에서 간도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보인 데 대해 유의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미리 쐐기를 박을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학자들은 현재의 경계인 압록강 두만강의 역사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1722년과 1909년 2차례 걸친 조(朝)·청(淸) 간의 영토 획정과 정계비의 건립, 그리고 1960년 북한 정권과의 사이에 맺은 국경협약을 모두 부정하고 간도는 물론 백두산 영역에 대한 배타적인 영유권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조선의 영역을 자국의 역사 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점은 이러한 간도문제 등 장래의 영역문제와 불가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중국 정부와 학계가 유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무리를 감행하는 중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조선족의 민족적 자각을 억제하고 간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앞으로의 분쟁에 대비한다는 것만으로는 침략성을 띤 중국 측의 동태를 합리화하기 어렵다. 더 심각하고 절실한 정치적 필요성이 달리 있음이 분명하다. 한반도 유사시 개입 근거 확보도 겨냥 이런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특별한 경우 곧바로 한반도에 대한 간섭 또는 침략을 자행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로까지 확대될 여지가 있는 주장들이다. 예컨대 고구려 멸망은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중원 왕조의 말을 듣지 않고 독립을 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고구려에 대한 침공은 중앙권력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도리를 취한 것뿐이라는 논지가 그것이다. 수·당의 대(對) 고구려 전쟁을 중앙과 지방정권 간의 모순에서 발생한 국내 통일전쟁으로 파악하는 것도 같은 논지이지만, 기왕의 역사적 평가를 애써 부정하고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것은 결국 특정 지역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무시할 경우 언제든지 무력을 사용하여 정벌할 수 있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이 점은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 등 동아시아의 중요한 만국(變局)에서 중국이 한국에 대해 이미 행해 왔던 역할을 미화해 온 배경이 있는데다가, 현재처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 사회가 소란한 국면과 연관하여 갑자기 이를 여론화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2000년에 중국은 TV를 통해 이른바 ‘항미원조50주년(抗美援朝五十週年)’ 기념물을 요란하게 방영하고 대담 형식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한 중국의 대응 방략을 논의한 바 있는데, 이는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 후 이 지역에 대한 처리 문제로 부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대담에서 논의는, 국제사회의 원리를 거론하고 이를 전제로 할 때 어떤 태도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일반론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북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국제적인 분쟁 또는 사건에 중국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의였다는 점이다. 북한 지역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이미 염두에 둔 토론이었다. 따라서 고조선사 및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애써 귀속시키려는 의도는 결국 한반도 유사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데 본심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를 둘러싸고 근래 국내에서 이루어진 분석은 대체로 한반도의 통일 후를 대비한 중국의 선제공격이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간주하는 인식은 한국이 (통일)신라를 계승한 국가일 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것이고,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북한은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결국 한국과 상관없이 중국사의 범주에 들어와야 할 대상이라는 주장을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논리는 그 자체 이미 한반도의 통일을 저해하려는 의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현 정권이 무너지면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질 듯 기대하는 것은 국제간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환상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Ⅳ.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향 역사학은 우리가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기 위해 그 과제가 기인하고 경과한 과거 사실들을 추출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흔히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한다. 역사의 현재성, 즉 역사가 가진 문제해결 능력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역사학의 현재성이 절실히 요구된 때는 일찍이 없었다고 여겨진다. 우리 민족과 국가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학이 나서야 할 때이고, 정부와 의회가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할 때다. 중국의 자의적 고구려사 인식 방치 안 된다 지금까지 한국 국사학계는 학문의 객관성을 중시하며 주로 실증적 관점에서 역사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리하여 사료의 진위를 판단할 기준을 세우고, 많은 사실들을 새로 규명하였으며, 한국사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문헌고증의 태도를 견지한 나머지 적잖은 문헌과 자료의 신빙성을 부인하였고, 그 결과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고대사회가 성립하고 고대국가가 건국하였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리고 이는 우리 민족이 고조선에서 유래하여 부단히 발전해 왔다는 사실과, 중국 등 주변 민족과의 쟁패에서 밀려 고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였어도 민족의 주체성과 국가의 독립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일정한 장애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한국사 이해에서 고조선사는 국지적이고 특수한 발전의 사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로 서술하는 것을 국수적인 태도로 비난하며 동북아사라든가 하는 별도의 역사로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실정에 있다. 고조선사와 삼국시대사를 계기적인 발전 형태로 설명해내지 못한 결과이다. 반면, 중국은 이 틈을 비집고 고조선에서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를 자국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인식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정치적·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을 함의한 침략적 인식 형태이다. 저들의 자의적인 고구려사 인식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의 영토와 민족의 일부를 상실할 위기에 당면하고 말 우려가 없지 않다. 중국은 민족적 자각이 점차 고양되고 있는 조선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 대비하여, 역사학의 현재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조선족의 민족적 자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부 학자는 조선족과 고구려가 전혀 무관함을 주장하기에 이른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정치주도층은, 고구려사 자체를 중국사로 편입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구려인을 중국민족의 하나로 편제하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면, 이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온 중국이 갑자기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배경에는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를 대비하는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북한 지역을 군사력으로 장악하고, 역사로서 명분을 세우는 한편 정치력으로 버틴다면 그 지배에 대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믿음이 중국으로 하여금 무리를 감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타국을 강제로 점령한 강대국이 그 정치적·군사적 강점을 고착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역사를 동원하는 것을 경험해 왔다. 한(漢)이 고조선을 점령하고 ‘기자동래설’을 내세운 것, 당이 백제를 점령하고 ‘남대방설’을 내세운 것, 청 태종이 조선을 굴복시키고 ‘만주원류고’를 편찬해 그 정치적 간섭을 정당화한 것, 청 말기에 원세개(袁世凱)가 ‘속방론(屬邦論)’을 들고 나와 조선 정치에 간섭한 것,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고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내세워 그 식민 지배를 합리화한 것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때, 최근 중국이 뜬금없이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임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동북아의 위기 상황에서 북한 지역에 대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는 중국이 정치적·군사적 점령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사실이 놓여 있는 게 아닌지 적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장악에 대비한 역사적 책략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힘 모아 파쇄해 나가야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의 이런 시도를 철저히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구려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체계화하여 그 역사가 한국의 역사임을, 그리고 그 민이 한민족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남북이 한 민족, 한 국가임을 하루 빨리 세계에 천명해야 한다. 역사학을 통해 남북한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법적 장치와 정책을 통해 민족적 유대감을 고양시킬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즉 고조선에서 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진 북방의 역사 전개를 계기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이 명백히 한국민족사의 일부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기자동래설’ 이후 ‘속방론’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이 주장해 온 한국사 인식의 침략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며, 문화 계승 관계를 무시하고 현재의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자국사로 간주하는 중국인의 역사인식을 논리적으로 파쇄(破碎)해야 한다.
신형식 / 상명대 사학과 초빙교수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중국은 근자 동북공정이라는 국책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소수 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는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고대국가에서 고구려를 아예 없애고 백제와 신라만 두고 있다. 이러한 역사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은 중국이 갖고 있는 고대적인 중화사상을 현대사회에까지 적용하여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의 소수민족을 소위 그들의 ‘통일적 다국가론’에 편입함으로써 번영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쇼비니즘(Chauvinism)의 발상이다. 이번의 고구려사 왜곡은 자기 나라의 성격 해석을 외국의 문헌내용으로 설명할 때 왜곡과 오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 신라가 왜에 조공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라는 왜의 속국이 아니었다. 따라서 중국 문헌에 소개된 우리 역사를 기록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와 당위성이 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고구려사 중국 편입을 위한 계획을 세워 왔다. 그 결과 (張博泉, 1981)와 (孫進己, 1985) 등을 통해 이를 적극화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와 (손진기, 1994)와 (장박천, 魏存成, 1998) 등을 내놓았다. 이어 2000년에 들어와서 (馬大正, 楊保隆 등)와 그 속편 그리고 (耿鐵華, 2002)를 통해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공식화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이 이러한 역사왜곡을 시도한 이유는 중국의 모든 소수 민족 중에 번듯한 모국을 가진 조선족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한편, 통일 후 간도에 대한 영토권 요구를 사전에 봉쇄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의 시작은 고구려사 편입이며, 그 마지막 단계는 간도문제에 대한 영토분쟁의 사전 저지인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①고구려는 출발부터 멸망까지 중국영토 안에 존재한 소수 민족이 세운 나라였음으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②고구려는 중국에게 항상 칭신납공(稱臣納貢)의 신속(臣屬)관계를 가진 조공(朝貢)을 한 중국에 예속된 나라이다. ③수·당 전쟁은 고구려가 도전하였음으로 불가피하게 토벌한 국내 전쟁이다. ④고구려의 멸망 당시 인구가 70~80만 정도였는데, 이 중에서 포로, 전사, 납치, 도망자(신라·발해)를 제하면 10여만 명만 남았음으로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동화되었다. ⑤고구려는 고씨(高氏)왕조이고, 고려는 왕씨(王氏)왕조이므로 그 주인공이 달랐고 양왕조의 존속 기간과 지배지역이 다르므으로 서로 관계가 없다. 이러한 중국측 주장은 그들이 갖고 있는 중화사상을 자기식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중국 최초의 정사인 와 에는 별도로 을 두었으며, 를 비롯한 중국의 문헌에도 동방의 이웃 나라(東夷傳)에 고구려, 신라, 백제, 일본 등을 함께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만 지방정권이라고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면 백제, 신라, 일본도 같은 지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문헌에도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기록이 없다. 중국 기록(, , )에 음식, 의복, 예절, 풍속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같다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정복하였다는 사실은 고구려가 그들의 지방정권이 아님을 보여준 반증이 된다. 한 국가의 성격 파악에는 민족의 기원, 언어와 습관, 특히 생활풍습 등을 고려해야 한다. 고구려와 중국은 언어체계가 달랐으며, 3국은 다같이 이두문을 쓰고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치마, 저고리를 입었고, 결혼시에 지참금(婚納金)이 없었으며, 윗사람을 공경하는 예의범절이 있었다. 고구려는 끝까지 중국의 정치제도를 채용하지 않았으며, 중국정부에 세금납부나 징병을 당한 일이 없다. 어디까지나 고구려는 중국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동진(東進)을 막고 한반도를 지켜준 당당한 독립국이었다. 고구려는 고구려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내세웠으며(광개토왕비), 신라를 동이(東夷:중원고구려비)로 격하시킨 천하의 대국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의 주장은 중국은 만국의 중심, 천하의 중앙으로서 주변 지방(四方)은 중국의 정치적 신속(臣屬)관계를 갖고 있다는 논리에서 중국황제는 천하의 공주(共主)라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사회의 영토(Territory)와 고대사회의 영역(Frontier)을 구분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며, 중국 중심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현대사회에 적용시킨 것으로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말에 무너져버린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중국의 주장인 ‘고구려의 기원이 되는 고양씨(高陽氏) 후손의 거주지가 내몽고지역(노합하, 대릉하유역)이므로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것은 그 성립 시기나 지역이 사실과 다르다. 즉, 고구려족의 계보가 고양씨라는 유사성이 문제가 아니다. 고구려가 출발한 곳은 내몽고지역이 아니라 만주의 장춘, 길림 지역이었고, 중국이 주장하는 그 문화는 고구려건국과 3000년의 차이가 있다. 즉, 중국의 홍산문화는 청동기문화이고, 고구려의 적석총문화는 철기문화이다. 둘째로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하였으므로 자신들에게 예속된 나라라는 것’은 조공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조공은 원래 주(周)나라에서 황제와 제후(諸侯)간에 있었던 주종관계였으나, 그것이 주변 나라로 확대된 고대의 외교방식이었다. 중국이 주변 나라의 왕을 책봉(冊封)하면서 정치적 우위를 나타낸 것이지만, 조공국의 국가적 정통성과 독립성이 저해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고대 외교의 한 형식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분열기에 한 국가와 외교를 맺는 것이 아니라 중복된 관계를 가졌으며, 가장 극성기를 구가하던 장수왕(고구려)과 성덕왕(신라)이 가장 많은 외교사절(조공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조공의 의미를 보여준다. 셋째로 ‘수·당전쟁은 중국에 도전한 것을 응징한 국내 전쟁이며 토벌이다’라는 견해는 당시 상황이나 전쟁의 내용을 외면한 허구적 표현이다.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16년간이나 천리장성을 쌓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속국이 본국에 맞선 방어책(천리장성)을 세울 때 보고만 있었겠는가 하는 반문이 있다. 더구나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100만 대군을 동원했다면, 그것도 황제가 친히 앞장섰다면 그 전쟁이 국내 전쟁이 될 것인가? 정복전쟁을 일으키고는 그것이 국내 전쟁[討伐]이라는 궤변을 하고 있다. 당나라는 전쟁 직전에 고구려에 보낸 국서에서 ‘두 나라의 평화(二國通和)’라고 하여 고구려를 상대국으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이미 233년 (동천왕7년)에 중국[吳]의 손권(孫權)은 고구려왕(동천왕)을 흉노의 왕인 선우(單于)로 봉하였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흉노의 추장으로 임봉했으며 진귀한 물건을 보냈던 것이다. 넷째로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이 대부분 중국인[漢族]으로 동화되었다’는 주장은 그 인원 파악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중국문헌에는 고구려 멸망시의 인구를 70만 호라 하였다. 당시 1호당 인구가 5명(전후)으로 파악하면 인구수가 350만이 되니까 이 수치는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그 대신 의 기록인 21만호에서 1/3(한족)을 제한 15만 호(70~80만 인)로 파악하였으며, 이 중에서 50~60만이 감소(30만 사천, 발해·신라 귀화 각각 10만, 사망자 다수)되었으므로 본토에 살던 고구려인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70년 전쟁(수·당전쟁: 598~668)기간에 고구려는 많은 인구의 감소를 가져 중국측 기록에도 유녀(遊女), 유인(遊人)이라는 남편 잃은 여인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 당시의 고구려 인구는 호당 3인으로 210만 인(70만 호)이라고 추정된다. 이 중에서 강제이주 42만, 피살 10만, 포로 8만5천, 고구려·해로의 귀화 각각 10만 등 80여만 명이 감소되었으므로 130~140만 명이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고구려 옛땅에 남아 때로는 신라와 함께, 또는 자기들 스스로 대당항쟁을 주도한 것이다. 에 고구려 멸망 후 당에 항복하지 않은 성(城)이 목저성과 남소성 등 11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 후 계속된 대당항쟁은 곧 고토에 남아있던 유민들의 활동의 결과였으며,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북쪽으로 쫓아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와 고려왕조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우선 국호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중국문헌에는 고구려를 고려로 불렀으며 발해나 고려의 왕들은 한결같이 고구려의 후신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송나라 때 고려에 온 서긍(徐兢)도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하고 있었으며, 고려 태조(왕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자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993년(성종12) 거란과의 전쟁 때 서희(徐熙)는 적장(소손녕)과의 대담에서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므으로 나라이름을 고려라 하였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인이 현대를 고대로 착각해서 나온 공상의 산물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중국인의 낡은 의식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무너진 마르크시즘과 같은 한계와 과오를 범하고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21세기에 있어서 중국의 ‘쇼비니즘’은 시대역행의 회고적 망상과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주장이 모순과 오류라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확인하고, 우리 고대사나 고구려사를 여러 외국어로 번역하여 제3국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국제적 고아가 될 수 있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송상헌 / 공주교대 교수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계기로 역사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7차 교육과정에서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이 되었다는 것, 역사 과목이 교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교과의 한 과목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 절대 수업 시수가 축소되었다는 것, 역사교육의 강화 주장이 과목이기주의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 교과서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세계사 교육이 황폐화되어 있다는 것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체로 역사교육이 홀대받고 있으며, 부실하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활발하게 진행 중인 역사교육 논의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세세하게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현행 역사교육이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의 배경에 깔린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주로 역사교육의 질적 측면을 위주로 논의하면서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최근 논의의 문제점 최근에 문제가 된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와 관련하여 역사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제시되는 방안은 주로 수업시수를 늘리거나 교육내용을 확충하자는 등의 주로 양적인 문제에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양하게 제시된 양적인 확충 방안과 함께 논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교육의 질적인 개선 방안이다.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보면서 당황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바라볼 수 있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져 왔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중국과 관련하여 역사전쟁의 사례를 소개한 내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의 전개에서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편입되는 것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역사교육 내용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역사라는 것이 본디 끊임없이 수정되는 것이고 수정된 역사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역사 담론의 적연성(plausibility)의 정도(degree)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내용도 없다. 동아시아사를 시야에 넣고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역사교육도 실행할 여지가 없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이 중국의 역사 수정 움직임과 같은 사태에 대응할 만한 능력을 키우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그들의 이런 주장을 하나의 역사 담론으로 보고 역사적 맥락에 그 주장을 위치시켜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가지는 적연성의 정도를 판단할 능력을 키워주는 역사교육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역사교육 논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의 소재 현행 역사교육이 가진 문제를 살펴보면 교육과정이나 제도와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과 교과 내용이나 수업과 같은 내부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교육의 외부적인 조건은 현실적으로 정책을 결정짓는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역사교육 담당자들이 간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역사교육의 틀을 결정짓는 외부적 조건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는 있고 아울러 내부적 조건과 유기적 관련 하에서 문제를 부각시킬 필요도 있다. 역사교육 내부·외부를 막론하고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교육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과의 합의가 어려운 것도 문제이지만 관련당사자들 사이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단은 여러 가지로 내릴 수 있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 이유는 역사교과에 대한 관점의 불일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육에 접근하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역사교과관을 중심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자국사 교육의 문제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역사교육 내부·외부를 막론하고 자국사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자국사를 포함한 역사교과를 여러 교과 가운데 하나로서만 생각할 뿐, 국민의 정체성이나 공동체 의식과 관련하여 역사교과가 가지는 특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 , 와 같은 예에서 보듯이 자국사 서술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나 와 같은 세계적인 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역사를 하나의 종교처럼 신봉해왔기 때문이고, 항상 자신의 전통과 시각에서 자국사를 포함한 역사를 정리해온 전통이 유달리 강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전통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대국이면서 신기할 정도로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중국이라는 거대국가의 위협과 지정학적인 영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침 속에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특히 우리는 유사 이래 인접국의 역사왜곡을 수도 없이 겪어왔기 때문에 자국사의 전통이 강할 수밖에 없었고 역사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를 수 있었다. 예컨대 중국은 기자 동래설에서부터 역대 사서의 을 통해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기록한 사실이 있고, 와 같이 노골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로부터 일제 강점기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끊임없이 왜곡해 왔다. 이처럼 한국사는 중·일 양국과의 ‘역사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험한 역사 경로를 거쳐 왔던 것이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항상 자신의 전통과 시각에서 역사를 정리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강한 자국사 서술의 전통은 사라지고, 자국사 교육을 실용적인 목적에서 가르치는 교과와 다름없는 교과로서 취급하는 정서가 만연되어 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가 선택 교과로 결정되는 과정이 그런 정서의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정책 입안자들조차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국사를 중시하는 전통이 어떤 것이며 왜 그런 전통이 있었는지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대로 간다면 고등학교에서의 자국사 교육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사회과 심화선택과목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사의 경우 과목으로는 들어가 있지만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자연계열 학생의 경우 수능에서 사회탐구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공부할 필요가 없고, 인문계열 학생은 비교적 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교과에 몰리게 되기 때문에 국사나 근현대사를 외면하게 되어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있다. 앞으로 자국사 교육은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 초라한 과목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역사교과가 어떤 교과인지를 오해한 결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런 배경에는 설익은 세계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자국사의 강조는 자칫 국수주의로 흐르게 되어 세계 시민의식을 함양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후쿠야마가 말하는 세계가 하나의 모습으로 귀결되는 ‘역사의 종말’ 단계의 모습이 아니라 개별 국가의 문화가 보편으로 승화하는 ‘구체성의 보편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 시민의식은 진정한 자국사의 교육에서 함양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바람직한 자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는다. 세계사 교육의 실종 현행 교육과정 하에서 문제되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육이 실종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국사의 경우는 그나마 따로 편찬된 교과서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상당한 수업시수를 배정받고 있지만, 세계사의 경우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6차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공통사회’를 일반사회와 지리만으로 구성하여 세계사를 제외시킨 바 있었다. 교육과정 입안자들이 세계사는 필요 없는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이런 일은 교육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공통사회’가 ‘사회’로 교과명이 바뀌었지만 전체 10개 대단원 가운데 세계사 내용은 한 단원에서 다루고 있고 그것도 시민혁명, 산업혁명에 대한 내용만 들어가 있는 형편이다. 사회 교과에 세계사를 끼워주는 형국이다. 심화 선택과목으로서의 세계사도 ‘한국근현대사’와 선택을 다투게 되어 있어 거의 선택될 여지가 없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로 자연스럽게 세계화 시대에 세계사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주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교육정책 당국자들의 정서에 있다. 세계사 교육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문제는 세계사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와 관련해서도 세계사를 교육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세계사의 내용을 현행처럼 모든 나라의 역사를 관광 안내문처럼 나열할 것인지, 아니면 세계사의 흐름을 위주로 서술할 것인지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주제이다. 이 경우 의제는 대개 서구 중심의 서술을 벗어나는 문제나 혹은 중국 중심의 동양사 서술을 벗어나는 문제로 설정된다. 하지만 세계사가 어차피 몇 줄기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획기적으로 교과서 서술을 바꾸는 시도도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세계사 교육이 개별 국가사의 단순한 종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과 통합의 문제점 현행 역사교육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사회과 통합의 문제이다. 사회과 통합은 해방 이후 끊임없이 추진되어 왔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사회과 통합을 반대해 왔지만 철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정책 당국자들의 통합 의지에 비해 비판의 논리가 빈약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사회과 통합에 대한 비판은 많았어도 심도 있는 비판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역사과가 사회과에 통합되어 있어서 문제라고 하는 동어반복적인 비판은 많지만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은 드물었다. 사회과에 통합됨으로써 공통사회 교사나 지리 혹은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역사를 가르치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견해도 설득력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판단된다. 사회과 통합이 미국식 발상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런 피상적인 문제의 지적이 아니라 왜 역사가 사회과에 통합되면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있는 비판은 부족하고 통합 사회과가 문제라는 목소리만 높였기 때문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 통합의 진정한 문제는 역사교육을 보는 교과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의 교육과정 입안자들은 역사교과를 ‘사회과 역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오해의 대표적인 예는 과거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 사실은 시디롬이나 백과사전에 모두 실려 있다. 엄밀하게 말하여 교사가 역사 시간에 시디롬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할 필요는 없다. 역사교육은 과거 사실 이상의 그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사에 나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편입되었을 때의 문제도 다루어야 하는 교과가 역사교과인 것이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역사교과관은 사회과 교과관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과는 개념이나 일반화를 가르치는 교과이고, 이런 개념이나 일반화를 가르치는데 역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J. A. Banks가 주장하는 바, ‘혁명’이나 ‘변화’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역사는 사회과에 통합되어야만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사교과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오히려 역사교과는 ‘혁명’이나 ‘변화’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과정을 가르치는 교과이다. ‘혁명’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을 가르치는 것은 역사 수업이 아니고 사회 수업이다. 만약 혁명 개념을 이용하여 프랑스 혁명을 가르치려 한다면 사회과 역사로는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역사교과는 과거 사실이라는 자료 더미에서 사실을 알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담론)까지 다루어야 하는 교과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과 통합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거나 푸념성 비판에 그쳐버리게 된다. 요컨대 역사교과가 사회과에 통합되면 안 되는 이유는 사회과의 교과 성격과 역사과의 교과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통합되어 서술된다면 역사를 이해하는 사고와 사회과 내용을 이해하는 사고가 다르고, 추구하는 교육목표도 달라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교사 양성의 문제 사회과 통합과 교사양성제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과 역사라고 믿는 정책 입안자들의 고안물로 대표적인 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에 공통사회과를 설치하여 공통사회 교사를 양성하게 한 것이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과라고 한다면 공통사회 교사의 양성은 아주 효율적인 방안이다. 역사를 다른 전공자가 가르쳐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가르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교과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의 경우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사학과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만족스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가르칠 궁리를 거친 ‘교사 지식’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가 가르칠 궁리를 포함한 ‘역사교사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사양성기관의 커리큘럼도 손질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통사회 교사의 양성이라는 발상을 한 것은 잘못된 교과관과 교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통사회 교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발상이 논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전문 교사양성기관 무용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적당한 역사지식을 갖춘 사람이면 역사적 사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범대학이라는 교사양성기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경우 같은 강좌명이라도 사범대학에 개설된 강좌는 사학과 학생들의 강좌와 달라야 한다. 그것은 교과교육에 관련된 과목을 끼어 넣어 사범대학의 특성을 살리려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범대학에서 개설되는 강좌는 사학사적 흐름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사학과의 강좌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경우 교사가 될 사람은 그 사실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강조하여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 교사양성대학의 존재는 역사에 관한 한 필수적이라고 본다. 역사학의 메타 담론으로서의 역사교육 기왕의 역사교육 담론은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한 시대적인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정보 소통 환경의 변화는 일방적 소통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역사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제약도 크게 완화되어 대중들은 역사에 대해 더 이상 염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상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역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부응하는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메타 담론으로서의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역사학의 논의에 메타적으로 접근하여 논의 자체를 교육대상으로 삼고 역사 담론(discourse)을 통하여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 논의 자체를 문제화하는 역사화(historicization)가 필요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데 특정한 사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맥락화(contextualization)가 필요하다. 이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경우를 수업할 때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는 학생으로 하여금 동북공정 움직임 자체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통하여 동북공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19세기 후반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전체 흐름을 역사적 맥락으로 잡았을 때 전반적인 흐름은 20세기의 뒤틀린 역사 구도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냉전 해소 이후 나타난 흐름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까지 잘못된 것들이 점차 원상으로 회복되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의 흐름 속에서 당연히 중국이나 일본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과정이 있게 된다. 1980년대 일본의 전후 반성이나 위안부 문제, 전후 보상 문제 등이 대두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나 우경화 경향은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갑작스런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는 일본의 우경화나 수정주의 역사관이 대두한 배경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둘러싼 20세기 역사의 질곡을 만들어낸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한반도가 뒤틀리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싫은 것이고, 그렇게 뒤튼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의 하나가 역사 수정 움직임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수정 시도는 한반도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의 통일 시도에 대비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같은 역사적 맥락에 간도 문제를 위치시킨다면 중국은 지금 상태로 고착시키거나 아니면 그 이상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19세기 말 경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전근대 시기 중국의 대한 반도 정책은 한사군(漢四郡) 이후 분열 정책의 연속이었고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할 때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으로서는 현재 남북한 체제의 대립 구조가 거대 한국(Great Korea)의 출현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담론은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또 하나의 담론과 대비된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가 한국에 의해 통일된다는 예상 하에 통일 이후의 동북 지방의 영토 분쟁을 차단하기 위하여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고 보는 역사 담론이다. 학생들은 이런 종류의 대비되거나 다양한 역사 담론을 경합시키는 가운데 역사 이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화, 맥락화, 담론 경합의 요구는 자체의 시점을 가진 관찰자의 입장에 서야만 총족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의 수요자(학생)와 공급자(교사, 역사학자)의 상호 소통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역사 담론의 적연성(plausibility)의 정도를 판단하게 되고 나름대로 역사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그 본성이 구성적이어서 현실적으로 특정 담론에 대한 비판의 기준을 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역사 분쟁의 본질은 이런 역사 담론의 다툼이지만 그것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안으로 부각된 문제를 긴 흐름의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역사 담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담론으로 다투게 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 속하는 한국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 수정 시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역사적 진실을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다른 강력한 무기는 우리가 처한 역사적 입장을 성찰하여 적연성의 정도가 아주 높은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피해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중국·일본에 비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역사 교육은 역사 담론들을 비교, 판단하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사 담론 교육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 진 환 / 동국대 교수 최근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선방안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와의 연계 강화에 초점을 두어, 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감 부여,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로 하는 교육감 주민 직선제, 시·도교육위원회의 시·도의회 분과위원회로의 소속 이동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선방안은 그 동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교육위원회의 독립형 의결기구화를 요구해 온 교육계의 주장과는 역행되는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크다. 더욱이 교육자치제를 기초단위까지 확대하여 지역교육장을 구청장과 함께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어 교육청의 수적 증가에 따른 예산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점에 비추어 매우 적절치 않은 개선안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개정안은 일반행정에의 교육행정의 예속을 예고하고 있어 교육자치의 기본정신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을 저해하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며 시대적 조류에도 역행하는 방안이라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교육의 본질이 가치 창조적 활동이기 때문에 교육행정은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교육자치 확립에 있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기초이념이며,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전문성 인정을 기반으로 한 일반행정으로부터의 교육행정의 분리·독립은 교육자치 확립을 위한 주요 관건이 된다. 그러기에 헌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등에서도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게 위해 교육·학예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인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인 자치단체장과 별도로 특별기관으로서 교육위원회와 교육감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991년 지방교육자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도 교육자치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재정상의 비효율성의 문제를 내세워 교육행정의 전문성 인정과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독립은 미결의 상태로 시행착오만을 거듭해 오고 있다. 현 정부가 마련한 교육자치개정안에 기초해 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함께 교육행정에 대한 외적인 세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력 배제의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우리의 교육자치는 또 다시 시련을 겪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부주도의 이번 교육자치법 개정안은 주민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 하의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정당 소속인 시·도지사 후보와 러닝메이트로의 연계는 ‘지방교육의 특정 정당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과 ‘시·도마다의 들쭉날쭉 교육정책 혼란’으로 인한 교육의 혼란을 초래하고 진정한 교육자치 확립에 저해되는 착상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리당락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이루어지는 교육개혁 안건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는 물론 온 국민들을 혼란의 늪 속에서 수없이 허우적대게 하고, 희망과 신뢰보다는 ‘이번 개정안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회의만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내세운 참여정부의 교육혁신을 위한 과정과 정책이 그동안의 다른 정권들의 과오(위로부터의 개혁)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특히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훼손은 급진적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행정의 전문성 향상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 사회는 지식이 모든 부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지식기반사회로 교육자치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정보화와 세계화를 동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적 조류는동안의 사회를 지배해온 중앙집권적 통제에 기초한 교육에서 개방과 경쟁을 향한 현장 중시의 다양성, 자주성,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경우 교육행정은 고도의 전문성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이번 교육자치법 개정안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와의 연계 강화를 통해서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의 한 분과위원회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교육현장을 중시하는 다양성, 자주성, 자율성 등은 물론 교육행정의 전문성 보장이 무시되고 있다.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전문성 무시는 큰 정부에서의 중앙집권적 통제의 틀이 환생하는 과오의 반복과, 미래사회 변화에 대한 교육의 적응력 약화를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 자체의 행정의 다양성, 전문성을 저해하고 이로 인해 교육의 문제가 더욱 과장되고 교육시장의 개방화와 세계화의 흐름에서 경쟁력과 적응력 상실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최근 물가 동향과 경제 상황 부총리가 지난 6월 말 하반기 나라 경제 운용 방향을 밝히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작년 대비 3.5%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국내 물가는 장마와 폭염에 따른 채소류의 작황 부진, 교통요금 인상,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원유가 폭등과 맞물려 상승세가 가파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달 대비 3.6%였는데 7월에는 전달보다 0.8%포인트가 오른 4.4%를 기록했다. 8월에도 전달 대비 4%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나서서 도시가스 요금과 휴대전화 기본료를 내렸지만 물가 불안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못하고 금리는 떨어지는 추세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기를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8월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노동부가 밝힌 바로는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명목임금 상승률이 4.6%에 그쳤다. 임금소득의 크기는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만큼 뒷걸음질친다.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였던 점을 감안하면, 명목 임금상승률(4.6%)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을 뺀 실질임금 상승률은 1.3%에 불과하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7.1%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의 1/5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급격히 위축되어, 물가 상승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상은 봉급생활자와 서민들의 소비 능력, 의욕을 위축시켜 소비가 매우 침체한 지금 우리 경제에 한층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은퇴해서 직장 없이 연금이나 이자소득에 의지해 사는 서민층은 더 어렵다. 한국은행이 8월 12일 국내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콜 금리를 연 3.75%에서 연 3.5%로 내림으로써 시중금리가 한층 낮아지면서 이자소득도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물가는 어떻게 정해지나 물가란 여러 개별 상품의 가격을 한데 묶어 평균 낸 값, 가격은 상거래를 위해 개별 상품에 붙이는 값이다. 가격이나 물가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상품 수급에 따라 시장에서 일단 가격이 형성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거꾸로 시장가격이 상품의 수급을 조절한다. 즉 상품의 수요-공급이 시장가격을 형성하고 나면 시장가격이 거꾸로 상품의 수요-공급을 좌우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여러 원리 중에서도 기본이다. 그런데 가격과 물가가 시장에서 상품 수급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이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상품 수급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끼어들어 가격과 물가를 움직일 때가 많다. 중요한 변수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그 하나다. 시장에 따라서는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한 개 혹은 몇 개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독과점 시장’이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당연히 상품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유리하다. 소비자가 상품을 살 곳이 달리 없으니 기업이 가격을 제멋대로 매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독과점 기업이 시장에 내놓는 상품, 서비스에 자기 좋을 대로만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막무가내로 가격을 올린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그래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없는 상품, 서비스라면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선다. 전형적으로,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두고 독과점 기업의 횡포를 법률로 견제해 시장에서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한다. 둘째, 환율도 수급 관계 외에 물가에 영향을 자주 미치는 변수다. 수입 상품 대금이 달러 당 1000원 하다가 1050원이 된다고 하자. 외화 표시 상품 판매가가 변함없다 해도 상품 구입에 드는 원화 액수는 오른다. 이 여파가 다른 상품 가격들에까지 미치면 물가가 오른다. 만약 환율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면 정반대 결과가 생긴다. 환율이 물가를 뛰게 하는 예로는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후반 외환위기 때 당한 이른바 ‘IMF 한파’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우리나라는 단기외채를 못 갚을 정도로 외화가 바닥 나 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 투자자들이 원화 가치 폭락을 예견하고 일제히 원화를 팔아치웠고, 이 바람에 원화는 기록적으로 폭락했다. 달러 당 900원 정도였던 환율이 삽시간에 달러 당 1800원을 넘어섰다. 그러자 수입 상품 판매가도 일제히 급등해, 전과 같은 양을 사더라도 원화 대금을 배 이상 내줘야 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완제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수입 원자재도 가격이 올랐고, 수입 원자재로 만들어내는 국산 완제품도 가격이 뛰었다. 이렇게 수입 완제품과 원자재의 가격 인상이 국산 완제품 가격을 올리고 상품 전반으로 파급되면서 물가가 폭등했다. 환율이 뛰면 수입 원유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뛴다. 원유(crude oil)는 자동차 운행 등 각종 산업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필수 에너지원이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원유를 쓰는 산업도 아주 많다. 때문에 원유 값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효과는 특히 크다. 원유 관련 제품 가격이 오르면 원유와 직접 상관 없는 수많은 다른 상품들도 꼬리를 물고 값이 뛴다. 물가는 경기와 무슨 관계가 있나 보통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왜 그럴까. 수요가 높아지고, 생산비가 오르기 때문이다.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 기업이나 가계나 소비가 늘어난다. 그 결과 원재료와 에너지, 노동력 등 생산요소와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아지면 상품 가격은 오른다. 원재료나 에너지 값,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기업은 생산비 부담이 늘어 완성품 판매가를 올리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전 산업에 걸쳐 확산되면서 물가가 오른다. 경기가 좋을 때는 소비자들이 비싼 상품도 기꺼이 사들일 만큼 소비의욕이 높다. 그러므로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 생산비가 더 들더라도 생산량을 늘린다. 기업이 생산을 늘릴 때는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노동력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늘면 노동의 대가 곧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봉급생활자들은 두둑해진 호주머니를 믿고 물가가 비싸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물건 값이 비싸도 잘 팔리니 상품 판매가는 자꾸만 오른다. 결국 경기가 좋아지는 동안에는 기업이나 가계나 생산과 소비가 함께 활발해지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 반면 경기가 나빠지면 물가는 어떻게 될까.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생산 활동이 침체하면 직장인들의 임금 수입도 늘지 못하거나 줄어든다. 그 결과 가계의 소비 의욕이 떨어지므로 소비가 줄고, 그러면 물가는 떨어지거나 상승률이 둔해진다. 다만 예외적으로 경기가 나쁠 때 물가가 오르는 수도 있다. 지난 1997년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에는 경기가 나쁜데도 물가가 치솟았다. 당시 원화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입 상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경제는 경기가 나쁜데 물가가 오르고 있다. 지금은 기업의 경쟁력이 외국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정부의 정책실패 같은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이 겹쳤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투기와 신용카드 남발이 조장됨으로써 가계 부채와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된 끝에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를 못해 소비 침체 → 판매 침체 → 생산 위축 → 고용 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밖으로는 고유가와 중국의 경기 긴축 등이 원유를 비롯해 수입원자재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경기가 좋아지면 상품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물가가 오른다. 수요가 공급을 많이 웃돌면 물가 상승세도 심해진다. 그러다가 물가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계속 오르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단기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부른다. 흔히 줄여서 ‘인플레’라고도 부른다. 다만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오르면 인플레이션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몇 % 이상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이라고 본다’는 식의 규정이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여느 때에 비해 물가 상승이 심한지 여부로 인플레이션을 판별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인플레이션은 발생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다. 물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인플레이션 사례도 있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터키 같은 나라들은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1990년 물가가 한 해 전에 비해 무려 30배나 뛰었다. 1991년 물가는 전년에 비해 4.4배를 넘었다. 이후에도 계속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1993~1994년 사이에는 물가가 20배나 올랐다. 1995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물가상승률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화폐 현찰은 값어치가 떨어진다. 어제 한 봉지에 1000원 하던 콩나물이 오늘 2000원 하면 1000원이라는 돈 가치는 어제의 반절밖에 안 된다. 물가가 웬만큼 오르면 몰라도 이 정도로 물가가 심하게 뛰는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돈 가치도 큰 폭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봉급이나 연금, 이자 등 정기적으로 일정액씩 얻는 현찰 수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은 당장 살림살이가 빡빡해진다. 물가가 뛰면 전·월세 등 집세와 가게 세, 자녀 학비, 교통비 등 생활비가 일제히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때맞춰 직장인 봉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 등이 연금이나 이자를 더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서민 대중의 생활수준을 끌어내린다. 인플레이션이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는, 아침에 1000원 하던 상품이 저녁에 2000원 하는 식으로 뛰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사람들이 경제의 앞날을 자신하거나 예측하기 어렵게 되므로 돈 융통을 포함해 기업 활동, 경제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디플레이션은 왜 문제인가 인플레이션과 반대 되는 현상도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이다. 수요가 공급에 훨씬 미치지 못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경제 상태를 말하는데, 흔히 줄여서 ‘디플레’라고 부른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에겐 좋을 것 같지만 디플레이션 때의 물가 하락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수요, 소비가 공급을 크게 밑돈다는 것은 국민경제의 공급력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국민경제의 생산과 투자 규모를 줄여 성장능력을 약화시킨다. 디플레이션 때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잇달아 내린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이며 나중에 살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해 소비를 미룬다. 그럴수록 기업은 판매 부진이 심해져 제품 값을 더 내려야 한다. 결국 제품 값 하락과 소비 부진이 되풀이된다. 그런 가운데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수익성 하락과 경쟁을 견디다 못해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상품 품질을 떨어뜨리는 기업은 소비자에게서 외면당한다. 디플레이션 때는 상품이 싸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공장 설비와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실업자가 늘어 가계의 구매력은 한층 떨어진다. 가계의 소비는 더 줄어들고 제품 가격은 더 떨어지면서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가격도 수요가 적어 거래가 부진하므로 시세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소비 침체는 한층 심해진다. 이처럼 디플레이션 때는 소비자가 돈을 절약할수록 제품 값이 더 떨어지고 투자와 생산이 부진해져 국민경제 형편이 나빠지는 ‘절약의 역설’이 나타난다. 소비 부진 → 판매·거래 부진→투자, 생산 침체→고용 감소, 실업 증가→소비 부진으로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어디선가 끊어지지 않는 한 경기는 불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가계가 소비를 늘린다면, 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소비가 늘어나면 설사 그로 인해 제품 가격과 물가가 오르더라도 생산과 투자를 자극하고 고용을 자극해 경기가 좋은 사이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절약이 생산·투자를 한층 부진하게 하고 그 결과 기업의 어려움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경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가속될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불황을 부른 심한 예가 유명한 1929년 세계 대공황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가 대폭락을 시작으로 물가가 이후 3년여에 걸쳐 약 27% 하락했다. 실업자도 1천만 명 이상 늘었다. 경제 규모는 3년 사이 2/3로 줄어들었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돈 수요가 줄어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상거래에서 거래자 상호간 신용이 흔들려 사회가 불안해진다. 디플레이션으로 빚어지는 경제 거래의 불안이 사회, 정치 불안까지 빚는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지난해 민간단체에 지원한 사업비 22억여원 중 24.4%인 5억4000여만원이 용도가 불분명하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 소속 정봉주(열린우리당) 의원은 교육부와 15개 시·도 교육청에서 받은 `민간단체 지원사업 예산집행 현황'을 분석, "전국 298개 민간단체에 지급된 시·도 교육청 보조금 22억여원 중에서 24.4%인 5억4천여만원에 대해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았거나 정산보고서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30일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일부 민간단체들은 유적지 답사, 송년회 등 친목도모와 관광에 자체 회비가 아닌 보조금을 사용했다. 또 프린터나 빔프로젝터 등 사무기기를 구입하는데 보조금이 지원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리업체가 여는 탁구대회나 중국어 구현대회 등에 보조금이 지원된 사례도 확인됐다. 정 의원은 "첨부된 영수증이 거의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첨부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원금이 지역교육 활성화보다는 교육감선거 등을 의식한 관련단체 관리에 전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원금이 짜임새있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민간단체의 결과보고서에 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실질적인 평가 ▲교육청의 지원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의 자체적인 재정부담 규정 신설 ▲영수증 첨부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 등은 24일 교육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3개 영역 구축․운영 방안 합의를 정면 비판했다. 윤종건 교총 회장과 류명수 한교조 위원장, 고진광 학사모 대표 등은 이날 오전 ‘NEIS 합의’를 ‘밀실야합’으로 규정짓고 정부종합청사로 안병영 교육부총리를 항의 방문했다. 교총 직원 등 30여명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청사에 진입하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고 한때 농성을 벌인 뒤 안 부총리를 면담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해 향후 이견조율에 진통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안 부총리에게 “사전 협의를 무시하고 느닷없이 전교조와 일방적으로 합의해 발표한 것은 교육부가 전교조라는 특정단체와만 교육정책을 협의하겠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는 “교총 회원교사만 20만명인데 교총의 협조 없이 교육정책이 잘 될 수가 없는 만큼 합의를 전면 무효화하고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라”며 “10월초까지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도 “국무총리 산하 정보화위원회에서 새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을 충분히 거치기로 합의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한다”며 “왜 사사건건 전교조에 끌려 다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안 부총리는 “지난 3월 NEIS와 관련한 대체적 합의가 이뤄진 뒤 일정 등을 놓고 일부 갈등이 전교조하고만 있었고 교총, 한교조 등 다른 단체와는 없었기 때문에 갈등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전교조와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도와 다르게 일이 진행돼 항의 방문을 오게 한 것은 유감으로, 다른 단체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며 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인 만큼 새 시스템 구축 등을 책임지고 차질 없이 완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교육부는 NEIS의 교무․학사․보건․진학 등 3개 영역에 대한 새 시스템을 내년 7~9월 순차적으로 개통, 2006년 3월1일부터 완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민․교원․학부모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를 한차례 더 열어 정부 계획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와 특정교원단체의 밀실 야합으로 NEIS가 졸속 시행될 우려가 높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교육계가 또 다시 갈등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교총과 한교조, 학사모, 정보화교사들은 24일 오전 안병영 교육부총리를 방문해 "NEIS를 내년 9월부터 전면 시행키로 한 교육부와 전교조의 합의는 충분한 검증기간의 미확보로 운영상 예기치 못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며 "합의를 전면 무효화하고, 합의를 추진한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주장했다. 교총은 또 "교육부는 새로운 NEIS 시스템을 2005년 1년간 시범 운영하고 2006년 3월 1일부터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윤종건 교총회장은 “교원 절반을 회원으로 가진 교총을 제외한 이번 합의는, 앞으로 어떤 정책이라도 전교조와만 합의하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육역사상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교육부가 추석이 지난 10월 초까지 어떤 조치를 취하는 지 지켜볼 것”이라며 “교총의 요구를 이행치 않을 경우 앞으로 어떤 교육정책에도 협조하지 않고 제2단계 조치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NEIS는 교육부와 전교조의 갈등이 문제라, 실무자들이 갈등해소 차원에서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며 “유감”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장관 퇴진이나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한교조의 류명수 위원장은 “매주 목요일은 전교조와 공동으로 실무협의를 하는 날인데, 갑자기 실무교섭을 취소하고 전교조하고만 합의했다”며 “고교등급제 문제로 위기에 몰린 교육부와 전교조가 빅딜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최미숙 학사모 서울지역 대표는 “다른 교원단체들과도 논의해 다시 합의하라”며 “교단 갈등의 피해는 학생에게 되돌아온다”고 지적했다. 항의단들은 아침 9시 30분 장관실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정부종합청사 진입을 저지하는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장관실에서 오가는 대화 또한 고성이 오가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항의방문에는 김운념 교총부회장과 김관익 대전교총회장, 손인식 교총사무총장, 김형운 전국정보화교사협의회장(과천 외고 교사) 등이 함께 했다. 이에 앞선 23일 교육부는 "2005년 7월 1일부터 새로운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개통하여 2005년 9월 1일 전국적으로 전면 개통 한다"는 NEIS(교무/학사등 3개 영역) 시스템 구축방안을 전교조와 합의했다. 교총의 문권국 부장은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 시기는 자문위원간에도 다수안과 소수안으로 나눠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구체적인 시행시기를 전교조와만 합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컨설팅자문회의는 지난해 12월 교육정보화위원회에 결정에 따라 구성된 것으로 서울등 3개교육청, 3교원단체, 한국전산원등 3개 전문기관, 전자정부 및 교육정보화관련 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학사모,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진보네트워크 등 15명으로 구성돼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회의를 가졌다
Q. 유난히 식탐이 심한 편입니다. 특히 간식과 밤참을 즐겨 먹습니다.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점심을 먹고도 커피와 간식거리를 잘 챙겨먹는데요. 요즘에는 몸무게가 부쩍 늘어 군것질을 끊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A. 음식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식탐입니다.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공복중추와 만복중추 덕택에 우리는 배고픔을 느끼지요. 배가 고프면 혈액 속에 유리지방산이 늘어나 공복 중추를 자극하고, 배가 부르면 만복중추가 “그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중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식탐이 생기게 됩니다. 가장 큰 식탐의 원인은 잘못된 습관으로 중추신경이 혼란에 빠지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입니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만복중추를 자극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양을 먹게 됩니다.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거나, 야식을 즐기는 경우에도 중추신경이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스트레스 또한 식탐을 부르는 요인입니다. 스트레스는 코티솔 호르몬 분비를 늘리고 뇌의 기능을 떨어뜨리는데, 이때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세르토닌이라는 신경물질을 자극해 뇌를 안정시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식탐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먹는 것이 문제이니 먹는 것을 줄여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먹어줘야 합니다. 단,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식사는 뇌기능을 활발하게 해 주므로 꼭 챙겨먹고, 한창 활동하는 시간대인 점심은 탄수화물 위주로 열량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저녁은 비교적 가볍게 먹되 배가 고프면 폭식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거르지 않도록 합니다. '도움말=강남베스트클리닉 권혜석 원장(02-592-4560, www.clinicbest.co.kr) ※교실건강 Q&A는 독자 여러분의 문의를 받습니다. 평소 궁금했던 질환이나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한 건강 문제를 이메일(prepoem@kfta.or.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중·일 삼국은 지금 역사분쟁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과는 오래전부터 일본의 우익교과서의 식민지배 미화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중국과 일본도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그 전후 처리에 대한 역사분쟁이 진행 중이다. 특히 내년부터 중국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개편될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역사 왜곡 문제가 이제 역사교육과 역사 교과서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역사교육의 경쟁력 제고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중국·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교육현장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중학교 국사 시간은 주당 1시간에 불과함에 따라 질적인 수업을 기대할 수 없고, 고등학교 2·3학년 학생들은 선택과목인 근·현대사를 32.6%만 선택하여 근현대사교육이 외면당하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국사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를 아주 간략하게라도 배우지만 대부분(67.4%)의 학생들은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졸업한다. 역사교육전문가들은 일찍부터 역사교과의 독립과 수업시간의 확대, 수능 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 등을 통한 역사교육 강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적 조건의 확보와 더불어 평가를 통해서라도 국사에 대한 관심 유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수시로 불거지는 중국·일본과의 역사분쟁이나 교과서 왜곡논쟁을 감안한다면, 오늘날의 역사교육의 부실을 다른 과목과의 형평성에만 책임을 돌리는 정책 당국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하루 빨리 역사 교과를 필수화하고 시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보완뿐만 아니라 단순한 지식 습득의 단계를 넘어서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역사적 사고력을 신장할 수 있도록 역사교육의 변화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 민족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투철한 역사의식의 확립,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인간의 육성, 통일의식의 강조 등 어느 때보다 역사교육에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 이제 역사교육을 강화하여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청소년의 역사적 교양과 전망을 제고해 나갈 때만이 장기화되는 중국·일본과의 역사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인적자원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26일 교육부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비율 확대를 골자로 하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개선시안’을 발표한 후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고교 등급제에 대해서는 첨예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고교간 학력 격차가 나타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를 반영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밝힘으로써 고교간 학력차를 입시에 반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교육혁신위원회 전성은 위원장은 “학생을 보지도 않고 그 학생 선배의 진학 실적과 학교 이름만 보고 신입생을 뽑는 것은 연좌제와 다름없다”며 고교 등급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교육위 소속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은 지역간, 학교간 학력차를 보여주는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여 고교 등급제 논란에 불씨를 당겼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 전국 초·중·고생 2만2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수준 교육성취도 연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교의 경우 특수목적고와 지방 비평준화고, 서울 강남에 있는 고교의 성적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 고교 등급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8년 당시 2002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이 발표되었을 때에도 서울대 등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었고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이 고교 등급제를 적용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현재 지역별, 학교별로 나타나는 학력 차이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을 감안할 때 대학입시에서 고교 등급제의 적용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고교간 격차는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수 목적고나 비평준화 고교에는 우수학생이 몰리게 마련이다. 어느 지역에 살고 어느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공정해야 할 입시에서 차별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결국 교육 문화적 여건 등 학력차 원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농어촌과 지방 중소도시, 실업계 학교 등을 더 지원하고 배려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입시문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고교, 대학, 교육 당국이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개선안 시안의 핵심인 수능시험 등급제 전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는 학생부 강화와 수능 비중 축소를 골자로 하여 기존의 수능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안을 발표하고 이를 2008학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수능등급제 전환 문제와 더불어 최근 일부 대학의 신입생 선발시 고교 등급제 적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소위 명문 사립대학들이 전형 기준을 어기고 비공식적으로 고교 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진정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교육위에서는 관련 대학의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이 사건을 철저히 규명할 계획이며, 교육부도 최근 실태 조사에 들어가 사태에 따라서는 합격자와 탈락자의 처리, 소송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개연성이 있다. 위헌의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는 등 사태의 파장에 따라서는 교육계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우려도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학교간 현실적 학력차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고교 등급제를 도입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기준도 없이 고교의 우열을 가름하여 소위 더 좋은 학교, 덜 좋은 학교’ 등으로 구분하여 학생 선발에 편차를 둔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이는 결국 고교간 비민주적 성적 경쟁을 부추겨 공교육의 파행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교원들이 정기적으로 순환되는 공립학교의 경우 가르치는 사람의 질은 같은데 학교의 질은 우열이 드러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고, 나아가 또 다른 명문 학교 탄생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는 과거 대입제도가 혼란과 파행에 빠졌을 당시 과감하게 본고사를 폐지하고 수능을 도입하여 고교 평준화제도, 교육과정 정상화를 정착시키고자 한 본래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고교 등급제 문제는 분명하게 규명되어야 하며, 이번 공표한 '2008 대입제도개선안시안’은 좀 더 재고돼야 할 것이다. 이 시안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차라리 본고사 부활, 수능의 자격고사화, 학생선발권의 대학 일임 등을 주장하는 교직 단체들의 의견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입제도가 초·중·고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제하면 이상만 추구한 정제되지 않은 대입제도가 보통 교육의 뿌리까지 뒤흔들 우려가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이후의 대입시 개선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교육부와 교육혁신위원회가 교사별 평가제 도입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교사가 전적으로 수업과 평가를 책임지는 교사별 평가를 학교 현장의 여건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도입한다고 시안에서 밝힌바 있다. 교사별 평가제 도입으로 교사의 교육기획과 수업·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고, 교사평가의 기초 자료로 활용해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교사별 평가제의 도입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인해 교육부와 교육혁신위원회는 이를 시안에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였고, 이는 최종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교육부는 ▲같은 학년 같은 교과목 내에서도 교사별로 평가 내용과 수준이 다를 경우 평가의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고 ▲교사별 담당 학생수 규모, 교사의 능력 등에 따라 내신성적의 유·불 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 선택권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교사별 평가제들 최종안에서 제외시키자는 입장이다. 반면 교육혁신위원회는 포함할 것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23일로 예정했던 2008년 이후의 대입시 최종안 발표를 다음달 초로 연기한다고 20일 밝혔다. 일부 사립대가 1학기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이에 대한 실태조사가 진행중이고, 공청회과정에서 제기된 의견에 대한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기 사유이다. 교육부는 그러나 "고교진학을 앞둔 중3생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공청회과정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특수목적고 관련 사항은 시안대로 조기 확정한다"고 밝혔다. 대입시 개선시안에는 과학 및 외국어 계열 학교에 대해 동일계 특별전형을 도입하며, 특수목적고 설치 학과 이외의 별도과정 개설을 금지하고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전문교과 운영을 대폭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등이 담겨있다.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e-learning 지원체제 구축이 본격화된다. 교육부는 학습 콘텐츠 개발 강화, 교원 연구활동 지원, e-learning 관련 법 제정, 전자교과서 개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e-learning 지원체제 방안’을 마련, 최근 발표했다. 교육부가 마련한 안은 크게 양질의 교육용 콘텐츠 제공, 소외계층의 교육기회 확대, 시스템 효율을 위한 인프라 구축, 법․제도 정비 등으로 나눠진다. 콘텐츠 확충을 위해 우선 국민공통 기본교과 콘텐츠를 2008년까지 총 110종 서비스한다. 학급내․학급간 수준별 수업 콘텐츠를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0종을 개발하고 교과별 활동중심 수업 콘텐츠도 매년 12종씩 개발, 서비스한다.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선택과목에 대한 콘텐츠를 총 52종(중 10과목, 고 42과목) 개발하고 실업계 고교의 수업을 지원하는 전문교과 콘텐츠도 2008년까지 17종을 개발하게 된다. 교과교육연구회, 연구대회 등의 지원을 통한 연구 분위기 확산을 위해 2008년까지 매년 1300~1500개 연구회를 지원할 계획이다.교․사대 교수, 교과서 집필진, 교육전문직 등의 전문 컨설턴트 조직을 구성해 온라인 장학서비스도 펼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전자교과서도 보급한다. 시험기(2006년까지)를 거쳐 도입기(2009년)에 보급․활용방안을 수립하고 2013년까지 관련 제도 정비기간을 거쳐 2013년 이후에는 일반화할 예정이다. 또 언제 어디서나 학습자 개인의 학업성취도를 파악하고 학습을 보완할 수 있게 온라인 문제은행 DB를 구축, 학력진단․평가 서비스를 실시한다. 이밖에 온라인 학습활동 지원을 위한 통합 교과형 데이터베이스를 2008년까지 총 93종 개발하고 사이버 학급 서비스와 전문상담 서비스도 구축하게 된다. 아울러 소외계층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해 매년 저소득층 학생 1만명에게 PC를 지원하고 6만명에게는 인터넷통신비도 지원한다. 또 ‘e-learning 기본법(가칭)’을 연내 제정해 법․제도의 정비를 꾀하고 학교단위 e-learning 기반을 구축해 2007년부터 모든 학교에 대한 지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시․도교육청 등 21개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인터넷 교수-학습 콘텐츠의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 400회 이상 활용된 자료는 3만8112건으로 전체의 9%였고 1만회 이상 활용된 우수자료는 185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번도 활용되지 못한 자료가 9만8455건(전체의 23%)이나 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대학입시 정책과 제도가 크게는 몇 년 주기로 작게는 한 해가 멀다하고 바뀌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입시제도의 구체적 시행내용이 매년 바뀌는 연유로 고3 담당교사와 학부모밖에는 모른다. 단순히 입시일정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수능시험에서 특정과목이 빠지거나 불쑥 시험과목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반사이다. 한번 재수를 했다고 하면 완전히 입시제도가 바뀌어 새로운 교과목을 공부해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교육부가 또 다시 새로운 형태의 대학입시 정책을 연중행사처럼 발표하여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고교입시 준비 중인 중3 수험생부터 적용되는 ‘2008학년대입개선안’에서 과학·외국어 특목고생들이 사회·자연계열에 진학할 경우 불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올 1학기 수시모집에서 일부사립대학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는지를 놓고 파문이 확산되자 개선안 발표가 연기되면서 중3 학부모는 럭비 볼이 어디로 튕겨 나갈지 갈피를 못 잡고 애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법정주의를 도입·시행한지 50년이 다가오고 있건만 왜 이토록 대학입시 정책만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매년 바뀌어야 하는가. 도대체 대학입시 정책에 대한 교육법규는 어떠한가. 국가는 교육기본법 제26조(평가 및 인증제도)에 의거 국민의 학습 성과 등이 공정하게 평가되어 사회적으로 통용되도록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으며, 교육부장관은 고등교육법 제34조 제3항 및 동법시행령 제36조에 의거, 대입전형자료로 활용할 목적으로 대입수능시험을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매년 실시되는 대학입시에 대한 수립과 공포를 동법시행령 제32조에서 매 입학년도의 전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6월 이전에 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즉, 고3학년 학생이 치룰 대입수능과 관련된 입시정책을 고1학년 여름방학이전에 고지하였음을 뜻한다. 한편, 교육부장관은 동법시행령 제36조 제2항에서 고3학년 학생이 치룰 대입수능시험의 출제경향과 배점기준 그리고 성적통지 및 시험일정 등의 시험시행기본계획을 그해 3월말까지 공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웃 일본은 문부성산하에 ‘대학입시센터’를 두어 초등학생부터 당해 적용되는 교육과정에 의거 수업을 받게 되면 대학입시까지 당해 교육과정에 의거 입시정책이 일관되게 운영되어 대학입시를 치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학입시 날짜 역시 법정일로 정해 누구나 당연히 알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때 배운 교육과정, 심지어 고등학교 때 배운 교육과정이 초지일관되게 운영되어 대학입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정책으로 교육법정주의에 입각한 백년지대계의 교육의 기본 틀이 과연 마련되어 있는지 교육부 핵심 당국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위정자들은 언제까지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식으로의 입시정책을 개발해 고3수험생들을 고통 속에 허덕이게 할 것인지, 또한 학부모들에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입시정책과 고통정책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제는 예측가능성이 살아 숨 쉬는 입시정책, 즉 교육과정이 시대적 부응에 다소 괴리감이 생기는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초등학생이 배우는 교육과정이 초지일관되게 대학입시 치루는 날까지 자신이 배운 교육과정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입시정책이 유지되도록 고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고 대입 수능일도 가급적 법정 일에 준하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실현될 때 비로소 교육법정주의가 실현되어 교육의 안정성과 형평성이 공고해 질 것이다.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를 놓고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 못지않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8월초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 교원의 임면권을 교장에 이양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 방향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사립학교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은 10일 민주노동당이 먼저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한 상태.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 교원의 임면권을 교장에 이양하는 부분에 대해 교육부가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아직 당론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학재단법인연합회, 대한사립중·고교장회, 사학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종교계 등은 사학법인의 자율운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0월중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어서 조만간 당론을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원의 임면권을 재단이사회에서 교장으로 이양하는 부분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자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교원임면권 이양을 포기하는 대신 공익이사회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동안 한국교총은 열린우리당이 당론 확정을 미루고 있어 사학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주로 강조해 왔다. 교육계 최대 이슈인 사립학교 관련법 개정에 대한 교총 입장을 알아본다. ◇교총의 사립학교법 개정 기본 입장= 사립학교법 개정의 교총 기본 입장은 비리사학의 엄단, 학교회계의 투명성 강화, 교원 인사 관리의 공정성은 기하되, 사학의 자주성과 특수성을 보장해야한다는 것. 즉 사학 운영상의 각종 문제점을 고려해 교육의 공공성을 제고하되, 사학의 자율성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총은 △사학의 자주성과 공공성의 조화와 균형 △학교법인 이사회와 설치 학교 권한관계의 합리적 조정 △학교법인 이사회의 구조와 운영 개선 △사학교원 인사의 객관성과 신분보장 강화 △사학재정 운영의 투명성 제고 등 다섯 가지 원칙하에 사립학교법 개정 교총 입장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 개정안 검토 의견=교총은 열린우리당이 8월초 발표한 사립학교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사학 설립자의 권한에 대해 과도한 통제 △사학 구성집단간 운영 주도권 갈등과 대립 증폭 우려 △사학 교원의 신분보장과 재정 운영의 투명성 강화 미흡 등을 문제점을 지적했다. 교총은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이 사학의 비리와 부패 방지를 목적으로 사학 운영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강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사학 설립자의 권한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즉, 사학비리와 부정 근절을 위해 사학경영자 및 학교법인의 부당한 권한의 남용은 방지돼야 하지만 학교법인 이사회의 임원 선임권과 같은 사학의 기본적 권한을 침해하는 근거로서는 불충분하다는 것. 초·중등의 경우 교사회·학부모회를, 대학의 경우 교수회·학생회·직원회 법제화는 구성원의 권한과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사학의 문제에 대해 사학 구성 집단의 자체적인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법인 이사회와 교사·학부모 집단간, 평교사와 학교장간 마찰과 갈등이 커질 수 있고 오히려 사학분규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봤다. 교총은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에서 사학교원의 신분보장과 재정 운영의 투명성 강화부분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학 재정 운영에 있어 사학설립자의 재정운영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그 투명성 강화대책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총 개정 방안=사립학교법 개정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 임면권은 사학 법인의 고유 권한이므로 현행대로 이사장이 임면권을 가지되 학교장 임용의 제한 조건을 강화하고 교원 임면방식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보완, 비리 소지를 줄였다. 사립학교장은 ‘교육경력 15년 이상’으로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교원 임면권은 이사장이 가지지만 신규교원 채용시 공개전형 의무화, 교원인사위원회의 구성을 이사, 외부전문가, 동문, 학부모, 교원 대표 등으로 다양화해 객관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사학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문기구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안별로 자문·심의·의결 기능을 달리 부여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교사회는 현행대로 자생조직으로 유지하고 현재 관습상 존재하는 ‘교무회의’를 초·중등교육법에 규정, 심의기구화해 교육과정 및 수업, 학사 운영 등 학교 교육의 중심적 기능을 공동으로 의논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다고 봤다. 학부모회는 학부모 위원 대표성 강화와 학교운영 참여 확대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의 분과위원회로 법제화하고 자문 및 제한적 심의기구로 권한은 제한했다. 이사 수는 현행 7인 이상에서 초·중등은 11인 이상, 대학은 15인 이상으로 분리해 상향조정하고 다양한 인사가 참여해 이사회 운영의 전문화를 도모하도록 했으며 감사의 이사회 출석을 임의사항에서 강제사항으로 의무화 했다. 또한 이사의 임기는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이사의 친족 비율도 현행 3분의 1이하에서 4분의 1이하로 축소했으며 이사 중 3분의 1 이상은 ‘교육경력 5년 이상인 자’로 자격요건을 강화했다. 비리임원의 복귀시한은 현행 2년경과 후 복귀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복귀 승인시 재적이사 2/3 이상의 찬성을 받도록 했다.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관할청에 제출하는 학교회계 예·결산서를 학교 구성원에게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결산서 제출시 감사 전원이 날인한 감사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