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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글학회와 국어순화추진회, 외솔회 등 50개 한글단체가 모인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배재학술지원센터에서 초등학교 영어 교육 확대에 대해 토론회를 연 뒤 반대 입장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9년 전부터 교육 당국은 철저한 준비 없이 초등학교 3학년 이상에게 영어 교육을 강제하면서 유치원 학생부터 영어 사교육에 시달리고 조기 유학이 유행하는 등 사회 문제만 양산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영어 열풍으로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이 국가 경쟁력을 실추시키는 더 큰 요인이 될 것"이라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민은 영어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두모임은 지금까지 시행한 영어 교육에 대한 평가부터 철저히 한 뒤 확대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중ㆍ고등학교 영어교육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 환경과 국어를 비롯한 기초 교육을 충실히 하는 교육 정책을 세우라고 교육 당국에 주문했다. 모두모임이 보낸 질의서에 대해 교육부는 "초등학교 1ㆍ2학년 영어교육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9월부터 연구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지 영어교육 확대 시행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신록의 계절이자 감사의 달인 5월. 그 어떤 달보다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인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선생님에게 있어 그 어떤 날보다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지관행으로 인해 대부분의 학교들이 스승의 날을 '재량 휴업일'로 결정해 학생들을 쉬게 하였으며 행사 또한 취소하거나 축소하여 실시하였다. 이에 일부 단체는 이와 같은 조치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물며 교권침해와 관련 연일 계속 보도에 초·중·고 각급 학교 선생님들의 사기 저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릎 꿇은 교사'의 기사에 이어 인천의 모(某)중학교 한 여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남학생 제자로부터 폭행 당한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월요일 출근을 하자,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즘 교육 현장에서 일고 있는 자태를 보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하물며 어떤 선생님은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교직에 환멸을 느낀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교원 평가가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학부모는 '제 자식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자신의 아이들이 그 누구로부터 간섭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은 선생님과 학생, 선생님과 학부모 나아가 학부모와 학생사이의 대화 단절이 불러낸 결과가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지 못한 선생님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학생의 이야기만 듣고 선생님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 학부모에게도 문제가 많다고 본다. 따라서 바쁜 일정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아이들과 자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과 대화 내지는 상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설령 상담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대학입시와 관련된 내용일 뿐 메말라 있는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기 위한 상담이 이루어지기란 거의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점심시간.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학교 급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으며 학교 급식에 대한 의견을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학교생활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곁들이는 것이 좋겠다. 특히 청소시간의 경우,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청소를 맡기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직접 청소를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연 학부모는 학교에 대해 얼마나 신임을 하고 있을까. 이제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라는 말이 옛말로 되어 버린 지도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학부모와 선생님들 간의 벽이 두터워져 허물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학교와 학부모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그렇다고 본다. 학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맡겨놓은 이상 학교를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며 학교 또한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이 있듯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여 뒤틀어져 가는 교육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 어떤 나라들과 비교해 보아도 뒤지지 않는다. 교육은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만큼 선생님, 학생, 학부모 모두가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노력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처음 교단에 설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튼 이번 일로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들이 더 이상 기가 죽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좋은 자연환경을 물려받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바로 생활 터전이었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시간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엔 지금같이 환경이 훼손되지 않았었다. 그리 오래전도 아니건만 자연은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낙원이었다. 그때 우리는 아카시아 꽃이나 철쭉꽃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산골짝에서 내려오는 냇물로 목을 축였다. 하늘에서 내린 눈을 배부르게 먹거나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먹어도 탈나지 않았다.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수질·토양 오염 및 소음·진동 등으로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이 많이 손상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환경오염 때문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나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지나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누구나 쾌적하고 조용한 생활환경 속에서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환경이 오염되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환경오염의 폐해를 잘 아는 사람들도 나 하나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기주의를 앞세워 환경보존에 동참하지 않는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 시대다. 모두 같이 노력해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다. 충북괴산군 청천면 뒤뜰 냇가 옆 도로변에 있는 환경공원에는 환경지킴이 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조형물이 있다. 뒤뜰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형물 사이로 바라보며 훼손된 환경 만큼이나 엉망이 된 교육을 생각했다. 요즘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작태들을 보면 '울고 싶어라'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직 5월이 지나려면 9일이나 남았는데 교사가 학부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학생에게 걷어 차이는 등 교육이 수난을 겪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연이 바로 생활 터전이고, 바른 교육이 21세기를 헤쳐 나갈 원동력이다. 그래서 환경오염을 막아야 하듯 교사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일들도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 청주기계공고의 학부모님들이 사랑의 매를 때려달라고 회초리를 전달하며 스승존경 풍토 조성에 앞장서는 모습이 짙어가는 녹음처럼 싱그럽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회의실이 학부모들의 고성으로 떠들썩합니다. 평소 여자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심을 빨리 먹도록 강요했다며 항의합니다. 식사시간을 지키지 못한 학생에겐 벌을 주고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어제(17일) 담임교사의 집을 찾아가 항의한데 이어 오늘 다시 학교를 찾아와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18일밤 SBS 8시뉴스의 중간쯤에 방송된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뉴스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없으나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건의 경위야 어찌 되었든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를 했다는 것에 대해 교사의 한 사람으로 착찹한 심정이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마음이 내내 무겁다. 학부모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한 요즈음의 현실에서 그래도 언어 폭행에 그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 사건의 전말은 관계당국에서 자세히 진상조사를 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반면, 이런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어 우리의 안방에까지 방영되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를 보았다면 알 수 있겠지만 그 교사를 전혀 모른다면 알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교사가 누구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뉴스 앵커의 이야기 중에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교사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교사가 잘못했다고 치더라도(현재로서는 방송 내용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지만) 학부모가 그런식으로 나섰다는 것보다 더 아쉬운 부분은 언론의 자세이다. 분명히 공개적으로 미리 예견된 촬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SBS의 이런 태도는 해당교사에 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음성변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모자이크 처리도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일반인들이 예측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옳다. 방송보도에서 인권을 충분히 지켜줄 수도 있었는데 그 과정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학부모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조용하다고 했지 않았나,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 흥분상태라고는 하지만 교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큰 죄를 지은 상대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교사는 '정말죄송합니다.'라고 경어를 사용했다. 교사의 약점을 이용하는 듯한 학부모들의 행동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사도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이해를 한다. 리포터 역시 교사이지만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런식으로 흥분상태로 대응하여 교사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방법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이야기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여기 다 지식인들이야, 왜 흥분하게 만들어.'라는 학부모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학부모도 지성인이지만, 교사들도 지성인이다. 지성인과 지성인이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뉴스보기
한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잘 아는 쓰시마 섬은 한국에서 약 50 킬로미터 떨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한글 표기의 패트병이나 폴리 용기 등이 떠내려 와 북서의 계절풍이 강한 겨울이 되면 해안선은 쓰레기로 가득 차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쓰레기에 골치를 앓고 있는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에서는 지난 5월 20일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현지 주민 약 250여명이 해변에 쌓인 쓰레기의 수집 작업에 땀을 흘렸다. 쓰시마시는 전용봉투 등을 사용해 해수에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고 있지만, 2003년에 약 140여개, 04년 약 250여개, 05년 약 400여개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곳에는 일반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 밖에 없기 때문에, 해수를 포함한 플라스틱이나 금속 제품의 처리는 어려워, 대부분의 표착한 쓰레기를 배로 후쿠오카까지 반송하여 처리를 하고 있고 한다. 이것을 안 쓰시마 출장지소에 근무하는 국제교류원, 박병준씨(37)가, 모교인의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에게 이의 문제를 제기하여 3년전부터 이같은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한일 학생이 해양 환경 문제를 모두 생각하는 「 제1회 한일 학생 쓰시마 회의」의 일환으로 한일 공동의 쓰레기 줍기가 실현되었다. 이 날은 현지 주민과 T셔츠차림의 학생들이 밀려온 쓰레기를 수집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냉장고도 발견되어, 반출에 시간이 걸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한국의 한 학생은 「대마도의 깨끗한 해안에 한글 표기의 용기가 많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일본의 학생과의 교류도 확대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무심코 버린 하나의 쓰레기가 해외에서 발견되어 환경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평소에 버리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할 것 같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한분계시다. 영어선생님들의 수업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회화수업에 적극활용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방학이되면 어학연수다 해서 난리들이지만 우리 시골학교에서는 감히 생각조차도 하기 힘든 일 들이다. 다행이 우리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파견되어 수업에 활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일이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동안 우리학교에만 계신것이 아니라 이웃학교에 순회를 다니시니까 우리 학생들의 불만 또한 크다. 다행이 현 정부가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한 여러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시골학교에 우선적으로 원어민 교사를 파견하는것도 좋은 정책이 아닐까 싶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하루에 TV나 인터넷, 컴퓨터 게임에 바치는 시간이 엄청난 현실이고 특히 유선방송이나 공중파TV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젊은 청소년의 취향과 그들의 기호에 맞춰가는 실정이라 이들을 상대로 방송하는 방송인들의 우리말 사용 습관과 우리말글 실력은 바로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수된다. 따라서 방송인들이 일상 언어를 정확히 해야 하고 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묘책이 요구된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다양한 채널에서 표준말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은 말씨, 서울 사투리, 잘못된 발음을 수시로 듣고 있다. 공개방송 사회자, 리포터, 기자, 기상 캐스터, 스포츠 중계방송 해설자, 개그맨, 심지어 원로 아나운서도 해당된다. 다행히 몇 몇 방송에서 우리말 퀴즈나 우리말 겨루기 같은 공개방송을 내보내고, 같은 프로그램을 연중 편성하고 있지만 방송인들의 말씨 고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지 두 가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일시적 유행어나 비어, 속어는 제쳐두고라도 일상용어에서 즉시 고쳤으면 하는 것들을 꼽아 본다. 첫째, 서울 사투리 문제. 드라마에서는 적절한 사투리가 극 전개과정에서 재미와 실감을 더해주는 양념 구실을 한다. 그러나 뉴스 보도나 교양프로그램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지방에 살던 어린이가 서울 쪽으로 이사한 뒤 달라진 말씨를 보니 리을 덧붙이기식 발음이 심하다. 다르다[달르다], 기다려라[기달려라], 바르고[발르고], 부르고[불르고] 등의 발음은 연속극에서는 물론 정치토론 사회자, 인터뷰, 뉴스 취재기자의 말에서 너무 자주 듣고 있다. 둘째, 받침에 이은 토씨의 발음 문제. 꽃이[꼬시] 피었다. 젖을 [저슬] 먹다, 빚을[비슬,비츨] 지다, 볏짚이[볃찌비] 쌓였다, 밭이[바시] 보인다, 깨끗이[깨끄치]쓸어, 꿈도 사랑도 싣고[실코]…이 외에도 너무 많아 열거하기 조차 어렵다. 셋째, 두 갈래로 쓰이는 발음 문제. 역사극 방송에서도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은 가거라, 오너라, 먹어라 인데 “이리 오거라,” “어서 먹거라.” 라는 대사가 자주 나와서 그렇게도 사용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평소에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도 힘들고 우리말에 과연 표준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짧다[짭따/짤따], 굵다[국따/굴따]로 나뉘어져 혼란을 주고 있으며, 젊은 출연자들 중에 다른 사람-[따른 사람]으로 잘못 발음하고 있고, 교과서, 중부지방, 효과[교꽈서], [중부찌방], [효꽈]로 발음하는 방송인이 있고, 또 어떤 방송 뉴스에서는 500원짜리 가짜 담배 관련 뉴스를 취재 보도하면서 ‘한 갑에 500원’이라고 할 말을 [한 갑세] 500원으로 전하는 것을 보고 ‘품삯은’, ‘책값을’, ‘넋이야’ 이런 발음을 제대로 전할 능력이 있는 방송인인지 청소년이 그대로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웠다. 넷째,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상식 이하의 발음 문제. 이십 세, 삼십 세도 아니고 서른 살, 마흔 살도 아닌 칠십 구살, 이십 팔살 이라고 전달하는 뉴스앵커도 있었고, 기자들이 대부분 영상자료를 제시할 때 ‘화면 보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주어가 생략된 말로 이해할 것인지 의문이 간다. 어법에 맞는 말이라면 ‘진지 잡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워 계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등이 모두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본인의 생각으로는 ‘화면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는 ‘화면 보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로 고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한 번은 개그맨 출신 방송 진행자가 명량대첩을 명랑대첩이라고 답한 출연자에게 힌트를 준다는 것이 ‘토씨 하나 차이’라고 지적했고 자막으로도 똑같이 그렇게 내보내었다. 토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진행자가 전하는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방송국의 무성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방송인들이 바른 언어생활의 첨병 역할을 해 주어야 앞으로 어린이, 청소년 언어생활이 바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교육계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듀나’라는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가 교사들을 향하여 저급한 독설을 쏟아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스승의 날’이 휴무일로 되면서 이젠 ‘스승의 날’도 잃어 버렸다. 오월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기를 고대하였지만 오월이 되자마자 정부여당에서는 ‘교감제 폐지’를 들고 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든다. 현장의 교육활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지 묻고 싶다. 지금 참여정부에는 ‘참여’라고 하는 거창한 수사만 있을 뿐 실제적인 ‘참여’는 없다. 편향된 시각에서 특정 세력의 의견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감이 필요 없으면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신 부교장을 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감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정부나 열우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법안이나 제도들이 이처럼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그래서 늘 비난의 대상이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제안들이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황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교감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감의 하루’를 단 한 번이라도 따라 가 보라.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고, 그 동안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들은 담임이나 부장교사 이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 자율학습에서부터 시작하여 저녁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늘 함께 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때로는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조정해야 하고,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하고서도 저렇게 고생할 거라면 아예 승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교장 제도를 제안하면서 교감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이것은 교장선출제와 연결되어 있어 학교 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선출제에서의 교장은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하고 대중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이고 대중적 역량이란 교육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인맥 관리를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또한 ‘부교장 제도’가 교장으로 선출되기 위한 주요 경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뻔하지 않은가. 교장은 누구를 부교장으로 지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교장 선출에 공헌도를 감안하여 임명할 것 아닌가. 교원들에게 정치적 역량을 학습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육의 본질 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현행 교감제도와 차별화된 점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개선된 점은 없는 것 같다. 개악이 지나지 않는다. 얄팍한 술수를 가지고 교원정책을 논해서는 안 된다. 교원정년 단축과 연계된 또 하나의 시도라는 지적도 있다. 그럴듯한 지적이다. ‘교감제 폐지 법안’에 따르면 승진 폭이 훨씬 좁아지게 되고 선출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어 조기 퇴직을 유인하는 기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혁신이 피곤하다고 속내를 보인 바가 있다. 정말 피곤하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 놓아 누구라도 공감하는 제도라면 몰라도 제안하고 있는 정책마다 이해집단간의 싸움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저쪽 이야기도 들어보고 지금까지 제도의 틀에 맞추어 살아온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한다. 제도의 희생자를 양산하는 개혁이나 혁신은 공감을 가져오기보다는 반발을 가져온다. 어떤 분야든지 구성원의 성장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조직에 활력이 있는 것이다. 교직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수업전문가로서, 교육행정가로서, 교육전문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교육적 본질에 맞는 정책 제안을 기대해 본다.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원을 원하는가 아니면 정치적 역량을 갖춘 교원을 원하는가. 더 이상 교원들을 ‘진흙 구덩이’의 정치판으로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한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교직안정의 토대 위해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글쓰기 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어떤 책은 선보인지 5개월만에 6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소설이나 시집같은 문학류가 아닌 책으로는 대단한 판매부수이다. 그만큼 글쓰기의 필요성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독자층은 대입논술을 앞둔 고교생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회사원들이 주를 이루었다는게 출판사의 조사결과이다. 하긴 학교에서도 “글쓰기에는 워낙 재주가 없어서…” 라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그 말은 유감스럽게도 겸사가 아니다. 직무와 관련한 일종의 ‘영업기밀’ 이라 미주알고주알 까발릴 수는 없지만, 열에 아홉은 진짜로 글을 못쓰는 것이다. 한두 번 첨삭으로 꼴이 갖추어지는건 그나마 다행이고 아예 통째 바꿔 써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인터넷시대의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어찌어찌 컴퓨터를 배워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거의 모두 ‘인터넷식’ 이다. 글쓰기의 기본기가 갖춰진 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니 말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사용이 교원근무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글쓰기 역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만이 배우고 지녀야 할 특기가 아니다. 또 소질이나 재주따위로 치부해버리며 부담없이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전달하는 수단이다. 특히 교원의 경우 교장 등 관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공을 불문한 교사 모두가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필수과목이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아예 학생들은 글쓰기라면 차라리 죽을 맛이라는 반응들이다. 고교 3학년을 멀쩡히 수학하고 졸업까지 했는데, 논리적인 글은커녕 편지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 근저에 입시지옥이라는 주범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교원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 진척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컴퓨터 보급과 더불어 의무적으로 실시했던 연수처럼 글쓰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교장이나 교감자격 연수시 리포트 제출 등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을텐데도 왜 글쓰기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담당교수의 봐주기 내지 형식적 연수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교원임용고사에서부터 글쓰기과목을 넣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전공이나 초·중등을 불문하고 글쓰기가 교사임용의 필수조건이 된다면 지금처럼 글 못쓰는 교원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특히 교감·교장자격연수, 전문직(장학사·연구사)시험이나 교육장 공개전형에는 반드시 글쓰기 과목을 넣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글쓰기는 소설가같은 전문적 소양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철자법이라든가 문단나누기같은 원고지 사용법, 문장의 호응 등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글쓰기가 되어 있는지 측정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나 특기가 아니다. 저절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 역시 이론적 공부와 함께 부지런히 익히고 또 익히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늦었지만, 전 교원의 글쓰기 연수가 시급한 시점이다.
최근에 교육부는 새로운 안을 계속 언론에 흩뜨리고 있다. 부교장 제도, 수석교사제도 등 교사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수석교사제를 시행한다고 하였으면 그 안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서서히 나와야 하는 데도 부교장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여 교감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다. 교장초빙제도도 그렇다. 교장초빙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여 시행하는 방안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학교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담임제도다. 학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학급담임제도가 무너지고 있고, 그에 따라 학생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현 실정인데도 수석교사제, 부교장제도 등의 논의가 학교사회를 바르게 진단하고 있는 것일까? 학급담임 기피는 무사안일주의의 전형 어느 집단이나 어느 체제나 그곳에 속한 구성원들의 개성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McGregor는 인간의 특성을 두 계층으로 분리한 바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는 인간이라는 두 유형으로 나누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인간은 어느 그룹에서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많고 많은 사람들. 아니 많은 교사들과의 생활을 통해 느끼고 들은 바 있다면, 그것은 현실에서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특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경쟁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즐기면서 어우러져 살아가고자 하는 이가 많은 것이 교사 집단의 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담임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의식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문제는 보통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의도로 해석하면 교사가 학생을 외면해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교사는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의 일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도도 아니다. 다만 교사가 학생 담임에 기피증이 일어나고 자가만의 영역을 지키면서 더 이상 다른 것에 관심을 쓰지 않는다면 기존의 학교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수술을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지도하고 이끌어 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시켜 주려는 의지가 없는 담임교사가 다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교육부가 교사를 잘못 채용했거나 아니면 교사 자신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담임교사에 대한 새 대안이 필요한 극한 시점에 이르렀다. 무사안일주의 사고에 빠져있는 교사에게나 그렇지 않는 교사에게나 똑같이 성과급을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사의 승진에 있어서도 최소한 10년은 담임으로서의 경력을 갖추어야 하는 안과 그 경력에서 80%이상을 ‘우’이상의 근평을 받아야만 하는 단서 조항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담임을 기피하는 현 체제에서 담임제도가 형식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중고등학교 담임체제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자라나는 후세를 길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담임이라는 존재가 부실하여 생활지도도 인성교육도 팽개쳐 이제는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교과지도에 대한 도전까지 받는다면 이는 교권의 흔들림은 물론 앞으로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조차 든다. 담임에 대한 파격적 승진 조건을 이대로 학교체제는 안 된다는 말은 이미 학교사회에 파다하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의 지도에 앞장서야 할 교사가 학생•학습지도에 흠이 있다고 한다면 이미 학교는, 담임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보다는 논밭에 허수아비로 취급될 것이다. 교육부는 교사 승진과정에 담임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학급에 두드러진 공적이 있었던 것은 승진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점수를 얻기 위해 시골학교로 몰려드는 현상도 방지하여 시골학교의 고령화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현 학교체제는 더욱더 빠르게 무너져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기수업’이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ㆍ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주제나 사건이 있을 때 필요에 따라 별도로 실시하는 수업을 말한다. 교육부에서는 학교의 교육과정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장의 사전승인을 거쳐 학년·교과협의회를 통해 교수학습안을 작성해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7차교육과정 상에도 재량활동 및 특별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장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계기수업 자체는 문제되지 않으며 교육적이라면 오히려 활용을 적극 권장할 일이다. 현재 각종 국경일과 기념일이면 조․종례 시간과 수업시간, 필요하면 가정통신이나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여 다양한 계기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학교장의 승인을 받은 후에다. 정치․사회적 특정 사안에 대해 교사가 자신의 수업이나 교육활동에서 나름의 소신을 피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외에도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에는 ‘교육은 교육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계기수업 자체가 교육과정에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교육 중립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이는 교사 입장에서 보면 권한남용이자 교육을 빙자한 사상학습이며,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방침을 주입시키는 명백한 ‘교육폭력’이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희망을 갖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며 장차 사회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리분별 능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자칫 균형 감각을 상실한 한쪽의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FTA 협상' 문제도 그렇다. 이번 전교조 주관의 FTA 관련 계기수업에는 FTA 반대 파업 투쟁에 나선 단체와 영화배우 등이 동원됐다. 학생들에게 ‘교육적’ 차원에서의 ‘객관적’인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진정 학생을 위한 '교육적' 계기수업이 되려면 'FTA 협정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학생들이 깊이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계기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판단 능력을 키워주는 범위 내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그것도 가능하면 교사들에 의해서다.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계기수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처럼 유명 연예인 등 외부 인사들의 힘을 의존하는 모습을 학부모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국민들에게 교직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만 심어주게 될 것이며 ‘계기수업’ 그 본래의 취지나 목적을 퇴색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적' 차원을 벗어난 무분별한 계기수업은 교육의 본질 면이나 교육과정 운영상으로 봐도 주객전도(主客顚倒)요 본말전도(本末顚倒)인 것이다. 지금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아줄 때의 생각이나 마음은 까맣게 잊은 채 국민이 올바르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제쳐두고 오직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정치공방만 하는 본말전도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5월의 유독 감사해야 하는 날이 많다. 뿐만 아니라 봄과 더불어 찾아오는 낭만과 운치가 만물을 완연하게 소생시키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감사의 낭만의 달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소 괴로운 달이 되기도 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런 오월에 유독 글짓기나 독서 감상문 대회 등을 자주 열게 된다. 물론 아이들의 독서와 논술 향상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분히 형식적인 행사로서 아이들에게는 괴로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단체에서 아이들의 글짓기 공모전에 참가해 달라는 협조 공문이 하루다 멀다하고 일선 학교 현장으로 날아든다. 이거 아이들이 글짓기 선수도 아니고! “이거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애. 아이들이 무슨 글짓기 선수도 아니고, 하루가 멀다하고 무슨 기관 단체에서 글짓기 협조 공문이 오니 말이야.” “학교에서도 오월이면 어버이 달이다 스승의 달이다 해서 이런 저런 글짓기 행사를 많이 하는데, 여타 많은 단체들에서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협조 공문을 보내니 선생님께서 괴로우시겠습니다.” “인근에 있는 단체들의 협조 공문이니, 학교 체면도 있고 해서 하기는 한다 만은….” “교장 선생님도 딱 거절하시니 못하니, 어떡하겠어요. 인근 일선 단체들도 모두 학교와 연계되어 있어 지역 사회에서 혹시나 관계가 소원해지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어려운 점이 많겠습니다.” “아이들만 죽어나는 거지 뭐. 정말로 글을 써고 싶어서 써도 힘든 판국에 억지스럽게 글을 만들어 내야 하니 오죽하겠어.” 오월은 기관 단체별로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이 열리는 달이다. 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모든 단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그 연계선상에서 청소년들의 생각을 담은 많은 글들을 무슨 행사의 작은 부야쯤으로 생각하고 뽑아서 시상을 하곤 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관단체의 행사에 반쯤 강제로 참여하는 셈이다. 물론 담당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주말까지 반납하며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물론 아이들은 대부분 그저 학교의 공식 행사거니 하면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심 속으로 선생님을 원망하는 수도 있을 터이다. 선생님 저 상금 안 받을 랍니다 이런 기관 단체의 행사와 관련된 글짓기 공모전이나 대회에서는 동기 유발 차원에서 소정의 상금이나 상품권을 걸어 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꽤나 많은 상금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런지 몰라도 가끔은 그런 기관 단체에서 열리는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 올해는 작년에 열렸던 ○○대회 열리지 않습니까?” “왜, 작년에 글짓기에서 상금받았다고 너무 우쭐해진 것 아니야.” “아이, 선생님도 제가 어떻게 돈에 눈이 멀어서….” 하지만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에서 무슨 기관 단체에서 열리는 글짓기 공모전에 참가해 입상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특히 글짓기 실력이 대회에 참가할 만한 아이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몇몇 아이들이 여러 기관의 공모전이나 행사에 집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선생님, 저는 올해 글짓기 하지 않을 겁니다. 작년에 일요일날 교회도 못가고, 시험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글짓기 대회 나갔다가 정말 후회했어요.” “이놈아, 그렇다고 네가 나가지 않으면 우리 학교에서 누가 나가겠니!” “선생님 그래도 올해는 절대 나가지 않을래요. 억만금을 준다해도 나가지 않을 거니까 선생님 괜한 기대 걸지 마세요.” 어떤 아이는 사전에 내가 글짓기 대회에 나가자고 부탁할 것을 알고 거절을 하는 경우도 심지어 생겨나기도 한다. 수많은 글짓기 대회가 아이들에게 동기유발이 될 수 있을까! 글을 본디 마음에서 흘러 넘쳐 써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써야 제대로 되는 법이라 배웠고, 또 글을 조금 써보니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정작 교사로서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이런 동기유발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글짓기가 마치 무슨 행사의 전리품인냥 되어가는 모양새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양질의 글짓기 대회나 공모전에는 많은 아이들이 참가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그에 따라 좋은 대가를 받는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무슨 날만 되면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일선 기관 단체에서 아이들이 마치 글짓기 공장의 글 찍어 내는 노동자인냥 생각하고 일선 학교로 협조를 구하는 것은 자못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된 글짓기 관습으로 고착화 될까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요즈음 일선 학교에서는 논술이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지도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다. 특히 상위층 학생들은 저마다 논술이 제일 중요한 줄 알고, 학교의 특기적성이나 계발 활동 시간에 논술반에 몰리기도 하는 조금은 서글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대학입시라면 목을 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일선 학교에서는 자주 독서 감상문이나 여러 과목에서 논술관련 글짓기 대회를 주관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대로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무수한 주제를 놓고 써야만 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에서 그대로 옮겨 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일부는 누구에게 부탁을 해서 써 오기도 하는 부정적인 일들이 곧잘 일어나가도 한다. 오월은 정말로 감사의 달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못 그런 감사의 달이 글짓기로 인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날이 될 법도 하다. 어른들의 잘못되고 이기적인 생각이 우리 아이들을 정말로 글짓기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글을 쓰면서 그 대상을 향해 마음 속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몇 자라도 정말로 형식적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들을 우리 아이들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교육환경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의 올곧은 시각이 정말로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스승의 날이 지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엊그제 황당한 뉴스를 보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은 휴무를 한 학교가 많았습니다. 꽃 한 송이도 못 받고 제자들과 떨어져 하루를 보내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허전하고 씁쓸한 하루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자녀를 교육하면서 속상했던 일은 없으셨나요. 아이들이 말은 잘 듣던가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하던가요? 웃어른을 공경 할 줄 알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던가요? 제가 초임 교사시절에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들었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힘이 드는 줄을 몰랐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요즈음 아이들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하나 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과잉보호를 하면서 키우고 아이들 기를 죽이지 않는다고 공공질서를 잘 지키지 않아도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도 바로잡아주는 부모 보다는 감싸주려고 하기 때문에 나 밖에는 모르는 왕자처럼 공주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우선 식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며 장난을 쳐도 부모님들은 그냥 방치합니다. 다른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내 아이 기를 살려준다고 바로잡아주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직 내 자식만 최고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 지구촌 시대가 되면 세계 어느 곳도 이웃처럼 오고 갈 텐데 어려서부터 철저한 공공질서를 배우며 자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걱정이 앞섭니다. 식사예절과 급식지도는 요즈음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배운 식습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여러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은 한번쯤 생각해 보셨는지요. 선생님의 생활지도에 문제가 있으면 담임선생님 또는 영양사, 교감선생님과 충분한 상담을 거쳐 시정되도록 하는 방법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요. 교권은 선생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학부모님의 자녀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학부모님의 자녀가 이번일로 받은 충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무뤂을 꿇게 한다고 자녀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학부모님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을까요?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크고 넓게 보셔야 합니다. 나무만 보시지 말고 더 넓은 숲을 보셔야 합니다. 더 심한 것은 이런 일들을 언론에 터트려서 어떤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청주는 교육도시입니다. 우리학교 우리고장의 이미지에 어떤 도움을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대학 교수가 자녀가 질문한 내용을 바로 가르쳐주지 않고 “ 아빠는 잘 모르겠으니 내일 담임선생님에게 여쭤 봐라 ”라고 한 다음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한 질문의 답을 전화로 알려드려서 자식이 담임선생님을 존경하게 하였다는 일화를 들은 적은 없으신지요? 어느 것이 내 자식을 위하는 길인지 교육적인 것인지 깨우쳐 주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의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에 더 많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세살 버릇부터 잘 가르쳤는지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부모님의 아이가 교육받아야 할 기간은 대학까지 졸업하자면 14년은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 가정교육을 잘 시켜서 훌륭한 아이로 키우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교권(敎權)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벌이다가 학부모의 항의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는가 하면 가장 존중받아야 할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일까지 터져나왔다. 스승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 어이없는 교권침해 실태 = 19일 오후 3시30분께 인천시 연수구 Y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종례 훈시중이던 담임교사 S(23.여)씨가 K(15)군으로부터 폭행당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인천시 교육청에 따르면 K군은 S교사에게 "종례를 빨리 끝내라"고 소리치며 교실을 나가려다 이를 저지하는 S교사를 밀어 넘어뜨린뒤 발로 수차례 걷어 찬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현장에는 동료학생 30여명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제지를 하지 못했고 해당학생은 자신을 말리던 동급생들에게도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K군은 한 달 전에도 S교사에게 폭언을 했다가 징계위에 회부돼 특별인성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앞서 18일 오전에는 청주시내 한 초등학교 회의실에 이 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들이 찾아와 담임 여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고 이 여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무릎을 꿇겠다"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는 이 교사의 경우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벌이다가 학부모의 협박에 못이겨 이런 수모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 9월 경기도 A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새로 발령받은 미술교사가 수행평가를 실시하던 중 학생이 작품을 부수고 교사에게 대드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이 사건 전에도 해당 교사에게 "신규교사 주제에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면 짓밟아 버릴거야"라는 등의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는 것. 이에 학교측은 자치위원회를 개최, 이 학생에게 '사회봉사명령' 처분을 내렸다. 경북 C초등학교 학부모 김모씨는 작년 5월 '담임교사가 자녀를 집중적으로 표적 삼아 학대한다, 자녀가 교도소 생활과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 민원서를 지역교육청에 내면서 해당 교사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 협박 등 부당행위로 인한 교사들의 피해사례는 52건으로 전년도의 40건에 비해 30% 증가했다. ◇ 교사-학생, 교사-학부모 '신뢰 상실' = 이처럼 교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교원과 학부모, 학생 등 교육주체간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부 교원의 금품 및 촌지수수와 성폭행, 성적조작 등 각종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육계에 대한 불신은 커져왔다. 실제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맹형규 전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2∼2005년 상반기 교원이 성추행이나 성폭행, 혼외 성관계를 했다가 징계를 받은 건수는 모두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직무불성실 및 직무거부에 따른 징계가 49건으로 그 뒤를 따랐고 불법단체 가입 및 불법 집 단 행동 33건, 회계 및 인사 문란 28건, 외부 금품수수 27건, 폭언ㆍ폭행ㆍ체벌ㆍ 불화ㆍ음주추태 19건, 직원과 학생에 대한 감독ㆍ지도 소홀 19건, 성적ㆍ입학ㆍ출제 등 부정 9건 등 이었다. 다른 직종보다 엄격한 도덕적 책임이 수반되는 교직사회에서 일부이긴 하지만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직사회 전체가 학부모와 학생 등 다른 교육 관련 주체로 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교원단체들은 정부가 최근 교원복지 강화정책을 실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정년단축과 교원평가제 실시, 부적격교사 퇴출 등 교원지위 약화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점도 교권 약화의 한 요인으로 교원단체들은 꼽고 있다. 교총 관계자는 "정부가 모든 교사들을 반개혁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세우다 보니 상당수 국민들이 교육계를 폄하하고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대책은 없나 =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각 교육주체들이 교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총 관계자는 "일부 교사의 경우 교원으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교사들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 교원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고 전문성을 높인다면 무너진 교권을 어느정도 회복하면서 교육계가 존경받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칭 '학생교육 및 교권보호법'이 제정되고 학교내에서 학부모들의 과도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대책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교원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무모 상담ㆍ민원 절차를 마련하고 학생지도 방법 및 징계절차를 학칙에 규정, 교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협박과 폭언, 폭력행위가 있는 경우 교사나 학교장이 즉각 경찰에 고발토록 하는 등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교육부는 교권침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권 보호 법률지원단'을 설치하고 교권침해사례를 은폐하거나 늦게 보고하는 학교장을 엄중 문책키로 하는 등 교권보호 안전망도 조속히 구축키로 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비례대표․교육위)이 발의할 예정인 가칭 ‘학교촌지금지법’에 대해 찬반 측의 욕설․비방이 가열되면서 도마 위에 오른 교권이 벌써부터 난도질당하고 있다. 촌지를 건넨 학부모에게 실형을 내리고 교사에게 금품 가액의 50배를 과태료로 부과하는 내용에 대해 토론을 진행 중인 진 의원과 한국교총의 홈페이지에는 찬성 측 네티즌들의 ‘교사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애 피해 입지 말라고 얼마 전 ‘기본’ 액수를 건넸다”는 한 네티즌은 “양심적인 교사는 많아야 5%도 안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상품권 선물에 영수증 포함(교환용), 도서에 봉투(현금10만원 이상), 소풍에 과일(골든키위 이상)에 일당, 집에서 먹는 집 반찬까지…정말 해도 너무 한다”며 찬성했다. 심지어 “한국 학교에는 어떤 형태로든 촌지가 존재하며 학생을 볼모로 받는 촌지교사는 한마디로 인질범”이라고 몰아붙이고 “모두들 삥을 뜯겼다는데 뜯어먹은 ××은 없다니…짐승만도 못한 저것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죽이고 싶다”는 독설 등 게시판에서 교사는 이미 ‘공공의 적’이 됐다. 이에 대부분의 반대론자들은 “촌지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인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고 실천의 문제”라며 “특정 집단을 부패집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겨냥한 입법은 교권을 넘어 사제 간을 무너뜨릴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부는 “그렇다면 정치인부터 가장 먼저 입법화하고 경찰, 일반 공무원, 군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해서도 떡값근절법을 따로 만들라” “새삼스런 입번 제안은 한탕주의 정치적 술수”라는 격앙된 반응이다. 진수희 의원은 답변에서 “네거티브 한 방법으로 우리 학교현장을 바꿔나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촌지근절법안은 제정되었을 때 촌지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추진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촌지근절에 대한 법안을 만들어도 의원들마다 생각이 달라 교육위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교육위원 측은 “특정 집단을 겨냥한 입법례는 없고 과잉입법적 성격도 짙다”고 말했다. 현재 진 의원 홈피의 설문결과는 입법 찬성이 69%, 반대가 29%이며, 한국교총 설문 결과는 찬성 38%, 반대 72%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윤종건 한국교총회장은 22일 서울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청주 지역 모초교 여교사가 학부모들의 사표강요 등 집단행동에 못이겨 무릎을 꿇고 사과한 교권침해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교육당국에 촉구했다. 윤 회장은 이날 “학부모가 사과문을 학교측에 전달했다고 어물쩍 넘겨서는 안된다. 교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제고와 함께 이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교육행정당국은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또 “정부는 허울뿐인 교원예우에관한규정, 실속 없는 교권보호대책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그 대책의 하나로 ‘학생교육 및 교권보호법(가칭)’ 제정을 제안했다. 윤 회장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학교급식 여건도 시급히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정부는 예산을 확보해 급식시설을 확충하고 현대화해야 하고, 학교급식의 전면적인 검토를 통해 문제점이 조속히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윤 회장은 교육행정당국이 담임교사와 해당 학교의 명예회복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언론도 교육문제 보도에 신중히 접근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이원희 교총수석부회장은 사건의 원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의 교원지위약화정책이 교원경시풍조를 불렀다”고 지적하고 “교권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운념 교총부회장은 “현장교사들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빠져 있을 정도로 교원의 사기가 저하됐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며 “재발방지와 교권확립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충북교총은 이번 사건을 주동한 학부모를 경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청주시내 모 초등학교 여교사가 일부 학부모들에게 무릎을 꿇은 일이 발생해 교육계에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교사가 강압적으로 급식을 지도했다면서 그 교사를 징계하도록 학부모가 항의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한 교사로서 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비록 사유야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으나 교사가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잘못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중징계를 받을 만큼 잘못되었다면 행정적 조치를 받을 일이지 교사가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수치 중에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권위를 강화시켜야 하고, 학생에 대한 징계를 강도있게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아 지는 이 시점에 교사로서의 위상이 하강된다는 것은 교육부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잘못 먹인 것은 아닐까? 교사와 학부모간 갈등은 교육부의 선악과 탓 학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계층이 사회의 어느 계층보다 학부모의 집단이다. 학교의 운영위원회는 학교에 대한 운영을 보다 민주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만들어 지는 학교의 심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학교에 주인은 마치 학부모가 주인인 양 예사로 학교에 목소리를 드높여 학교에 교사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교사는 권위를 먹고 사는 집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를 축적하기에 좋은 위치도 아니다. 오로지 순박한 학생들과 때 묻지 않은 심성으로 진리의 전당을 지켜가고자 하는 것이 교사 집단이다. 이 집단이 사회로부터 학부모로부터 학생으로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은 교육부가 선악과를 교사와 학부모에게 잘못 먹인 탓은 아닌 지.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내세운 여러 안건이 두 계층 사이에는 갈등을, 집단 내에서는 불신을, 개인 간에는 회의를 각각 불러 일으켰다고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가?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교육부로 던지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 자신들이 지켜야 할 고유의 권한을 지켜가지 못한 것이 큰 흠이라고 한다면 흠일 것이다. 교권은 타인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학교의 자잘한 일을 학교 측이 학생의 입장에서만 일을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교권을 추락시켜 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일은 원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권위를 지켜가는 것은 엄격한 학교 규율을 강화시켜 나가면서 청소년전문기관과의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안이 고려될 수도 있다. 교육부가 선악과를 먹인 두 계층이 자기를 되돌아보게 했다는 면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질시하고 헐뜯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빈도가 많음에 문제가 있고, 언론도 학교의 불미스러운 일을 타 기관의 부패고리와 같은 측면에서 공공연히 확대시켜 나감으로써 자라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에 대한 불신과 학교에 대한 불만을 갖게 했다는 측면도 있었다. 자잘한 것은 소리없이 해결해 나가는 것도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시켜 나가는 기성세대의 위상을 드높이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 사회는 간과하고 있음도 슬픈 일이다. 교권은 교사의 철학으로 지켜야 한다 교권이 추락하는 시대에 교권을 지켜가려는 안간힘을 쏟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하는 이 시대에 교직을 희망하는 학과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교사의 권위를 지켜주지 못하는 교육부, 교사의 입장을 지지해 주지 못하는 학교가 교사의 권위를 더 실추시키는 것은 아닌 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학교의 교사, 학교의 학생, 가정의 학부모 모두가 서로를 서로 지켜가는 자기 선이 있어야 한다. 자기선을 지켜가려는 자정노력이 지금의 학교사회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男학생은 男교사에게…女학생은 女교사에게" 배울때 교육효과가 극대화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18일 미국 스와스모어대 토머스 디 교수가 전미경제연구소(NBER) 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인용, 이 같은 결과를 보도했다. 디 교수는 1988년부터 8학년(한국의 중2) 학생들의 성적자료를 분석했는데,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교사의 성별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일보, 5월 19일자 인터넷판)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남교사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에서 나온 연구결과라 우리교육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중등임용고사의 합격자가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우려하는 주장들이 나왔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된 바가 없다고 밝혔고, 향후 연구를 검토 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는것으로 논란은 긑났었다. 그러나 이번의 미국 연구결과를 볼 때, 이와 관련된 연구를 마냥 미룰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남학생을 남교사가 지도할때 비교적 성적이 높게 나타났고, 여학생을 여교사가 지도했을 경우 역시 성적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 이 연구의 주된 결과이다. 이렇게 볼때 각급학교에는 남교사와 여교사의 비율이 적절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남·여공학의 경우에도 가급적 합반보다는 분반을 하는 것이 좀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남학교와 여학교를 따로 두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되면 남학교는 남교사로 여학교는 여교사로 채워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나라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는 참고가 될지언정 그것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연구는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교사와 여교사 중, 어느 한쪽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쪽의 교육이 우수한가에 촛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교사보다 여교사가 많은 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촛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필요이상으로 남교사와 여교사의 자존심 대결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도 여교사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현실에서 지금이라도 관련연구를 실시하여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로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국가가 뭐니 민족이 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서 가지고 있는 관심사 중에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저의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유대인은 인구로 보면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총수는 1,500여만 명이라고 하니까 세계 인구의 0.4%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대인은 분명히 소수 민족이요 약소 민족임에 틀림이 없지만 오늘날 유대인을 약소 민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의 32%를 그들이 수상했다는 점이라든가 현재 세계 금융가를 지배하는 그들의 저력이야 말로 유대인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와 같이 세계사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두뇌가 선천적으로 우수한 때문만은 아니며 나라를 잃은 속에서 그들이 겪은 시련과 교육에 대한 과학적이고 끈질긴 노력의 덕분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이 로마 정벌군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당시 16살이던 아키바는 로마 정벌군 사령관을 만나 하나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키바의 요청은 의외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도 아니오, 재산을 약탈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오, 성전을 불지르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성 안에 남아 있는 작은 학교를 보호해 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소년 아키바의 간청을 가상하게 생각한 로마의 정복자는 그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기꺼이 승낙함으로 모든 것이 불탄 폐허 속에서도 그 학교만은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아키바는 말하기를 "설령 예루살렘은 망할지라도 유대인의 교육만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사범학교 교장이 되어 82살이 될 때까지 일생을 교육에 몸 바쳤다고 합니다. 아키바의 일생을 돌아보노라면 유대인들이 오늘날 저토록 강성한 것은 단순히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한 피어린 투자가 있었으며, 그 결실을 오늘날에 보게 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 먹는 문제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두게 된 것은 지난 날 박봉 속에서도 많은 아이들을 한 교실에서 맡으면서도 불평없이 아이들을 가르쳐낸 선생님들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밝고 맑아야 할 5월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어쩐일일까요. 최근들어 교육이 무엇이며, 학교가 무엇이고 선생님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도 그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촌지를 근절하는 법을 만들고,학교를 경영하는 최고 경영자를 공모제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한숨만이 나올 뿐 입니다. 더 이상 교육을 망가뜨리는 일은 중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권 추락으로 인하여 멍든 선생님들의 상처를 치유하여 무너진 학교를 살리고, 선생님의 떨어진 권위를 다시 세워 교육력을 회복하는 일이 없이는 결코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예루살렘은 망할지라도 학교만은 보호해 달라는 아키바의 심정으로 돌아가 우리의 교육을 살리는 일에 중지를 모아가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에’라는 자작시와 함께 올린 ‘차라리 노동절에 쉬고 싶다'라는 저의 글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습니다. 한 포털싸이트에는 1,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뜨거운 논쟁을 벌였습니다. 제 블로그까지 찾아와 의견을 주시니 분도 많았고 이메일까지 보내주신 분도 많았습니다. 제가 이글을 쓴 취지는 ‘근로자의 날’(노동절)에 쉬지 못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누리꾼들이 ‘방학도 있고 스승의 날에도 휴업하면서 근로자의 날까지 쉬려고 하느냐’ 거세게, 그것도 감정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우선 이렇게까지 교사가 불신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잘 잘못을 떠나 교사의 한 사람으로 심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교단 불신풍조가 이 지경까지 이른데 대해 교사들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책임을 통감하며 동시에 거듭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못내 안타까운 것은 글의 취지를 왜곡시키는 일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제발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봐주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글을 쓴 취지는 ‘스승의 날’이라 정해 놓고 스승을 기리기보다는 오히려 교사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 모멸감만 안겨주는 그런 스승의 날이라면 차라리 없애고, 교육노동자로서 누려할 기본적인 대우(교육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복지제도 확충, 노동3권 보장 등)나 제대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도 누리지 못하게 하면서 너희는 스승이니까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다시 돌팔매를 맞을 각오로 이글을 씁니다. 다소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고 반론이 있다면 제발 논리적으로 반박해주기 바랍니다. 교사와 공무원도 분명히 일하는 사람(일꾼)이니, 노동자(근로자)입니다. 다시 말해 교사는 교육노동자입니다. 일하는 사람을 일꾼이라 하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교사를 ‘교육노동자’라 하면 색안경 끼고 부정적으로 보는 나라가 우리나라 외에 또 있을까요? “교사가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라면 근로소득세를 왜 내라고 하는 거야? 매달 근로소득세는 꼬박꼬박 떼어가면서, 교사는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다? 정말 ‘교직(敎職)’이 ‘성직(聖職)’이라면 확실하게 성직자 대우를 해주든지, 말로는 성직이라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근로자 대우도 안 해주면서...” 한 선배교사의 자조 섞인 푸념입니다. 누가 뭐래도 교사는 노동자입니다. 무위도식하는 신선이 아닙니다. 물론 단순노동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교육노동자라는 말입니다. 아직도 교사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이 학교 현장에 와서 한달만 근무하라고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노동자다’ 그러면 마치 스승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라 속단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권위의식은 버리고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구태도 벗어버리고 교직을 승진의 발판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오로지 학생 중심으로 “가르치는 노동”에만 충실할 사람들이 교직에 들어와야 합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의 한 고교 선생님이 계속되는 0교시와 자율학습 등의 과중한 업무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과로사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 한동안 저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아마 전국에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그리했을 것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교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요, 난리통입니다. ‘수업하랴, 잡무 처리하랴, 상담하랴, 청소 지도하랴, 자율학습 감독하랴......’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대개 인문계 고교(학교 간 차이가 있지만, 서울은 조금 덜하고 지방으로 갈수록 심하다)의 경우,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새벽별보고 나와 저녁별 보며 집에 들어갑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사나 학생은 하숙생입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3년만 고생하면 이 지옥 같은 쳇바퀴 생활에서 해방되지만, 교사들은 10년, 20년, 또는 평생을 운명의 십자가려니 여기고 감내하며 묵묵히 걸어갑니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7시 30분 정도에 출근해서, 0교시 자율학습 지도, 정규수업, 보충수업,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 특히 신학기에는 새로 맞이한 아이들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안내하고 설명하랴, 없는 시간 쪼개서 상담하랴, 사진, 등본 등 이런저런 제출물 걷으랴, 각종 장부 만들랴, 공문 처리하랴,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환경 미화하랴, 급식자 파악하랴, 자율학습자 파악하랴...... 잡무의 연속입니다. 끝이 없습니다. 정작 교재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에 겨우 두세 시간 정도 빈 시간이 주어지는데, 한 시간 점심 먹는 시간으로 할애하고 나면, 나머지 한두 시간으로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싸 짊어지고 와서 집에서 졸린 눈을 열어가며 교재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에게 신학기는 악몽 같은 달입니다. 살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때때로 하늘이 노랗게 보이며, 녹초가 되는 날이 허다합니다. 대한민국은 교사에게 슈퍼맨이 되라고 강요합니다. 정말 철인이, 초인이 아니고는 버텨내기 어려운 곳이 바로 교육 현장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어언 16년... 대학 때까지만 해도 동안이라 앳되다는 소리를 들었건만, 지금은 아닙니다. 정수리 부분에 머리까지 빠져 겉늙어 보일 뿐만 아니라, 위장과 간장이 좋지 않아 몇 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설에 저의 얼굴을 본 고향 어머니께서 병자 같다며 한약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요즈음 약을 먹어가며, 속된 표현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서서 수업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밤 11시까지 자율학습 감독을 하라고 하니... 격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어디 예전 같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습니까? 얼마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톡톡 튑니까? 갈수록 철이 없고, 천방지축이고 제멋대로입니다. 솔직히 가정에서는 자녀 하나 둘을 가지고도 혀를 내두르고 쩔쩔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철부지 아이들을 40명 가까이 모아놓고 하루 종일 씨름하는 교사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한번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설상가상으로 소위 교육관료라는 분들이 내놓는 교육정책이라는 것이 대부분 교육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고 보면 교사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갑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길은 끝없는 자기희생이요 헌신입니다. 가끔 미꾸라지 같은 교사 한 두 명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언론에 오르내려 전체 선생님들의 얼굴에 먹칠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교사 십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묵묵히 소명의식으로 교단을 지켜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 교사 십계명 >--- 1. 하루에 몇 번이든 학생들과 인사하라. 한 마디의 인사가 교사와 학생 사이를 탁 트이게 만든다. 2.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라. 밝고 다정한 선생으로 호감을 줄 것이다. 3. 학생들에게 이름을 부르라. 이름 부르는 소리는 누구에게나 가장 감미로운 음악이다. 4. 친절하고 돕는 교사가 되라. 학생들과 우호적 관계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친절하라. 5. 학생들에게 성의껏 대하라.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즐거이 말하고 행동하되 다만 신중할 것을 잊지 마라. 6.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라. 내가 노력한다면 거의 누구든지 좋아질 수 있다. 7. 칭찬을 아끼지 마라. 그리고 가능한 비판을 삼가라. 8. 항상 내 앞의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라. 서로 입장이 다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 편이 있음을 고려하라. 그것은 ‘나의 입장’, ‘학생의 입장’, 그리고 ‘올바른 입장’이다. 9. 봉사를 머뭇거리지 말라. 교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로운 것은 학생을 위해 사는 것이다. 10. 이상의 것에 폭넓은 실력과 멋있는 유머와 인내, 겸손을 더하라. 그러면 교사가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교직이 천직(天職)이라는 굳은 사명감 하나로 새봄을 잉태한 겨울나무처럼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선생님들의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썩어지는 밀알’ 같은 자기희생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그나마 조금씩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새봄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부터도 집안일보다 학교일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늘 불만입니다. 주말에는 몸이 천근만근이라 몸져 누워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두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대충하라, 살살하라, 요령껏 하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저의 완벽주의적 성격 탓인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투철한 교육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저는 교사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교사라는 신분이 사회적으로는 별 볼일 없을지 몰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손가락질 받는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가던 길을 쉬지 않고 가려는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이 생겼을까 몰랐었는데, 제가 교사가 되고 나서 실감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의 일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의욕이 넘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올해 한해 너희들을 위한 그림자가 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저의 일보다, 집안 문제보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스물 네 시간 내 뇌리에서 물방개처럼 돌다가 소금쟁이처럼 앉았다가, 그렇게 온 신경이 아이들에게로만 쏠려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 아이가 결석하거나 사고라도 치는 날이면 물구나무를 서는 기분이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흐르고 맥은 다 빠져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면 아침마다 신물이 넘어오고 밤에는 귀울음에 잠을 떨구고…… 왜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왔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이토록 속을 썩으니 똥개라도 피할 밖에요.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학교 환경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조개탄 때던 교실에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선풍기와 함께 냉방기도 들어오고, 교육정보화라는 이름 아래 컴퓨터와 멀티비젼도 들어오고, 학생수도 줄어들고, 학교 급식도 이루어지고......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무언가가 아직도 빠져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잃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학교다운 학교 - 0교시, 보충수업, 자율학습이라는 말이 사라진 학교,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정말 신바람나고 즐거운 학교, 교사와 학생이 행복한 학교 - 대한민국에서 그런 학교를 꿈꾸는 일은 진정 백일몽일까요? 끝으로 ㅅ고교 김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빌며, 김선생님의 과로사를 계기로 학교가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