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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나는 당장에 그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인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긴 대낮부터 저녁 무렵까지 열심히 읽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듯 끝까지 탐독하고 완전히 만족감에 젖었다. 그리고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었다. 처칠이 지은 (나의 청춘기)에 수록된 글이다. 처칠이 포로가 되어 읽은 책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성망 사이다. 처칠의 고백 속에서 행복한 독서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니?”라는 질문에 “ 재미있었어요.” 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하는 우리 아이들이 체득해야 할 독서의 과정을 이 짧은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을 주는 독서의 첫 단계는 내가 읽는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그 문장으로 내 마음이 저려온다는 것이다. 그 문장에 의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내 의지의 변화가 그리고 실천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도 잊게 만드는 사로잡힘의 경험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적은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글을 읽어내는 지혜의 눈이 부족하고 사로잡힘의 경험이 없어서는 아닐까? 그래서 독서지도의 첫 단계는 “책 읽어”라는 지시적 말이나, 방안 가득 책을 채워주는 환경제공이 아닌 아이들이 책 속 보물 문장을 찾아내는 눈을 먼저 길러주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 셋째, 책을 읽으며 스스로 성장의 기쁨을 스스로 느끼는 일이다. 독서를 통해 성장의 경험을 한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책을 끝까지 탐독한다. 마지막 책 읽기의 가장 절정적 단계는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는 비판적 사고 즉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이견이나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비판 및 대안 제시하기이다. 처칠처럼 우리 아이들도 책의 포로가 되기 위해 현장에서 시급한 교육활동은 어휘력 신장이다. 학력 우수 아동조차도 쉬운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족한 어휘력으로 책을 읽은 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이해될까 걱정이 든다. 책을 읽으면 어휘력이 향상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어른들께 여쭈어 볼 때 어휘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휘력을 향상시키지 않는다. 낯선 어휘를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 없이 책을 읽어 똑똑해지지 않는다. 책 속 어휘가 내 삶 속에서 체득화될 때 세계가 내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부모가 책 속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 질문을 받을 때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나에게서 시작된 자발적 궁금증이 진정한 배움의 씨앗이 된다. “책 읽어.”라는 지시보다는 “이렇게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책 읽기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이 시급하다.
혁신학교와 행복교육, 충북 교육의 두 가지 키워드이다. ‘오늘의 배움이 즐거워 내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학교’가 충북교육이 추구하는 행복 교육이다. 충청북도 혁신 학교의 별칭이 행복 씨앗학교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행복이 충북교육의 기저임을 말해준다. 배움과 행복의 조화에 대해 그리고 행복한 배움이란 표현에 혹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좋은 직장을 위해서 내 안락한 미래를 위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쓰디쓴 과정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부다.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표의 결과가, 치열한 공부의 결과가 행복이지 배움의 과정 제체를 행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이들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배워라. 열심히 공부해라. 그 배움의 끝에 행복한 너희들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우리 어른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종종 접하게 되는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위는 좋은 직장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누군가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과 행복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달콤함,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거저 지켜지지 않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게 행복이라면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듯이 행복도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책 읽는 사람은 책 속 수많은 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책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의 현실에 더 감사할 수 있다. 책 읽기로 얻은 행복은 삭막한 현실에서 마르지 않는 나만의 오아시스를 얻은 것과 같다. 그 오아시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그가 당당하게 고난과 맞서게 해준다. 아이스크림을 더 오래 맛보기 위해 냉동고가 필요하듯 독서를 통해 얻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얻은 교훈을 끊임없이 나에게 적용하는 실천의 아이스박스가 필요하다. 책에서 얻은 교훈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까를 고민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천에서 책의 뒤대함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그렇게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 이들은 책을 늘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한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일 뿐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독서교육 없이는 행복 교육의 시작도 완성도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뛰어넘어 나의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주는 사회인의 육성이 교육의 막중한 역할 중 하나이기에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은 시급하다. 모든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행복교육에 가슴 설레며 기대하는 많은 학부형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을 체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오늘(6월 16일)까지 국내 감염자수 154명, 사망자수 16명으로 연일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지만 줄어들지 않은 두려움은 다시 공포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까지 양성, 음성 판정을 거듭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학교휴업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 선진국의 이미지는 물론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세계적 기업의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환자 부실관리가 하나씩 들어나면서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세월호를 능가할 정도다. 삼성서울병원이 이번 메르스에 대한 대처능력은 그 명성을 무색할 정도도 무능했다. 그 결과 메르스에 대한 새로운 진원지가 되었고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게되었다. 메르스의 전국 확산으로 모든 국민이 불안해 하고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들의소비심리까지 더 위축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에도 위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교육현장을 찾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들은 한국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하고 있고, 한국인 입국자까지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한국인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금이 가는것이다. 어떻게 하든 우리는 이 위기를 단시일 안에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메르스확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연일 골드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이 골드타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합심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메르스에 대한 위기관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만일하나 확진환자가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과 같이 몇일 학교휴업만으로도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학교휴업으로 인해 학교교육과정에서 수업일과 수업시수를 수정해야 하고 학교행사를 다시 재수정해야 한다. 이들은 학부모들의 생활계획과도 맞물려있어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는 일이다. 매일 학생들의 등하교에 체온을 재는 일도 교사의 새로운 업무로 나타나면서 메르스로 인해 교사의 피로도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한 학부모의 민원 증가는새로운 학교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로 인해 우리 교육이 더 이상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학생 보건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외부인의 학교 출입 통제를 포함한 학부모들의 학교 출입자제에 대해 상호이해와 '메르스 의료진' 자녀들에 대한 배려교육도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산 서령고등학교(교장 김동민)에서는 6월 16일(화) 학부모 공개 수업을 실시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한국사, 음악, 미술 체육 등 전과목에 걸쳐 공개했다. 본격적인 수업참관에 앞서 오전 9시시에는 2층 다목적실에 모여 수업참관 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았고, 이후 교장, 교감선생님의 안내로 각 학년의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학교생활 모습과 함께 수업시간에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렸고, 학부모님은 흐뭇한 모습으로 이를 지켜봤다. 2학년 조재신 군의 어머님께서는 “서령고 선생님들의 수업역량 및 교육환경 그리고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수업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고 참관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학부모 대상 수업공개와 함께 급식에 대한 공개도 있었다. 이를 통해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의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서령고에서는 앞으로도 학부모 공개 수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메르스가 6월을 강타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모두가 청결에 힘을 써야 할 것 같다. 소독을 해야 하고 깨끗하게 주위를 청결하게 해야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과 행동은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싶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편애를 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에 끌리기 마련이고 마음에 드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든다고 편애하면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워하는 것도 선생님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어떤 학생이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이런 선생님이 되려면 마음이 넓어야 하겠다. 하늘처럼 마음이 넓어야 하겠다. 하늘의 마음은 너무나 깊다. 하늘은 멀고 멀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늘과 같은 넓은 마음, 하늘과 같은 그윽한 마음이 있어야 학생 모두를 가슴에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편해하지 않게 된다. 편애하는 선생님은 속좁은 선생님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선생님은 일의 우선순위를 아는 선생님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바둑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낭패를 당한다. 다 이긴 바둑, 순식간에 지고 만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이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제일 먼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긴급한 업무처리가 있다고 하여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업무보다는 수업이 먼저다. 수업을 가장 중요시여기는 선생님이 우선순위를 아는 선생님이라 하겠다. 좋은 선생님은 때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때가 중요함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시험이 그렇다. 시험시간표가 발표되고 시험날짜가 발표되었는데 이때는 시험준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공부가 싫다고 하면서 페이스북에 빠져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이건 학생으로서의 때를 놓치는 꼴이 되고 만다. 때가 참 중요하다. 농부 청년이 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때를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농부는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때에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되나? 가을에 수확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때를 놓치면 어떻게 되나?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다. 모자라는 과목을 나이가 들어 보충한다고 하면 얻는 것도 없고 부끄러움만 쌓이게 된다. 말하는 것도 그렇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말을 하는 이가 지혜로운 이다. 상황에 맞는 말을 잘 할 줄 아는 선생님은 지혜로운 선생님이고 좋은 선생님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학생들에게 공부하라 하고 어떻게 하라고 하고 힘들게 하면 그건 학생들에게 약이 아니도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말, 적절한 말만 할 줄 알아야 하겠다. 좋은 선생님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생님이다.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성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성실하지 않고 많은 것, 좋은 것 풍성하게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부지런해야 얻는 것이 있다. 좀 더 자자, 좀 더 놀자, 좀 더 즐기자, 좀 더... 이런데 좀 더 사용되어져야 하겠다. 좀 더 공부하자, 좀 더 책 읽자, 좀 더 글을 쓰자, 좀 더 선한 일 하자. 좀 더 돕자. 좀 더 성실하자. 좀 더 베풀자...
학부모님, 최근에 어느 학부모님께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았던 내 딸인데 요새는 말조차 거는 게 쉽지 않다고 고민하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부모노릇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사랑과 열정만으로 자녀를 키우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시겠지요? 따라서 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으시다면 부모님도 자녀와 관계맺는 법을 매우면 좋을 것 같아서 안내드립니다. 인간의 성장은 최초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인도 민족운동 거장 간디는 인도인이 잘 아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그는 인도의 지도자나 위대한 영혼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19세기 후반 인도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디는 13세에 결혼해 성에 눈을 뜨면서 향락에 빠져들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시 인도에서는 금기였던 육식과 음주를 하면서 마약에 까지 손을 대는가 하면 돈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지난 날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쓰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심하게 꾸짖을 상황에서 간디의 아버지는 그를 야단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편지를 찢어버리고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아들을 껴안았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간디는 충격을 받고 그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가 없었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성악가인 카루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악가를 꿈꾸는 소년이었는데, 그의 목소리에 대해 그의 선생님은 “마치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같구나. 아무래도 네게는 성악이 맞지 않은 것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단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면 틀림없이 위대한 성악가가 될 거야. 엄마는 널 믿는다.” 이런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의 힘을 얻어 그는 결국 전설적인 테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간디나 카루소 외에도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 뒤에는 반드시 그들을 있게 한 훌륭한 부모가 존재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케네디는 목표를 세우고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한 아버지가 있고 식사시간에 자연스런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어머니가 뒤에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워렌 버핏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1살 때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하여 지금은 금융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등과 자유 평화에 대한 신념을 심어준 어머니가 계셨으며, 현재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정직과 도전정신을 강조한 어머니 교육 덕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사회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 역시 항상 존경받는 부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준 부모가 뒤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메르스로 혼란스러운 모습이지만 너무 걱정마시고 훌륭한 의사들의 헌신을 믿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는 ‘정신적 에너지’ 말입니다. 아이들을 안아 준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너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얘기만 하지 말고 아이들 손도 잡아주어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들을 부모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을 만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아이와 건강한 관계가 아이와 건강한 관계가 이루어지면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해지고, 아이들에게 에너지가 생겨서 이것이 학습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만 공부를 시키지 말고 어머니들도 글로벌시대를 사는 부모로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 아이들에게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제 부모님들도 아이들에게만 몰두하지 말고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춰 준비하는 부모, 공부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화’에 대해 미국 등 서구세계만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만 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아이들이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도록 지도하는 방법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실행하시면 여러분의 자녀는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항상 훌륭한 지도자 뒤에는 그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 훌륭한 부모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공문생산을 줄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매주 수요일을 공문없는 날로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교육청은 물론이고 각급학교, 산하기관까지 공문생산을 원칙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공문을 생산하게 되면 그 사유를 기재한 후에 생산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경우는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략 수요일은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문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교원들은 이런 정책의 추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수요일 오전에 공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받는다기 보다는 전달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옳다. 즉 공문이 학교에 도착한 것은 화요일오후 늦은 시간이다. 정확이 이야기 하면 5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실제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수요일인 경우가 있다. 왜 이런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수요일이 공문없는 날이니 화요일에 서둘러서 공문을 발송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면 학교에서는 접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학교의 접수담당자가 퇴근한 후에 공문이 오게되면 전달을 수요일에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각 부서로 공문을 분류하는 교감이 조금더 시간을 끌게 되면 수요일오전이 다 지나간 뒤에나 담당자가 공문을 전달받게 된다. 수요일이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수요일에 공문을 전달 받으니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요일에 공문이 없다고 하더니 공문이 온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결국 교육청 등에서 수요일에 공문을 생산하지는 않았으나, 학교에서는 수요일에도 공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공문없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학교에서 다같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교육청에서는 화요일 오후 4시까지는 공문발송을 마치고, 학교에서는 업무종료시간 이전에 공문을 접수해야 한다. 담당자에 전달되는 것이 화요일 업무종료 전이면 수요일에 공문을 전달받지 않게 되어 실질적인 공문없는 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문이 없는 수요일이라고 해서 교원들의 일상에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 어차피 수요일에 받을 공문이 목요일에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교육청에서 중점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문없는 날 운영에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공문이 없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여기에 한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행정구청등 일반행정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교육청 및 산하기관에서 오는 공문은 없지만 다른 기관에서 오는 공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지를 잘 설명하고 적극적인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청할 필요가 잇다고 생각한다.
11일 오전, 휴업조치가 내려진 경기도 수원의 학 피시방(왼쪽)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학생들이 몰려있다. “학교에 안 가는게 더 문제”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학교, 학부모 모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발표한 2016학년도 초중등 교사 가배정 인원수를 종합한 결과 2015학년도 대비 약 2300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우리나라의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17년까지 교원 충원을 통해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상위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공약한 바 있는데 도대체 어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초·중·고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각각 18.4명, 18.1명, 15.4명으로 OECD평균 15.3명, 13.5명, 13.8명보다 많다. 학급당 학생 수 역시 초교 25.2명, 중학교 33.4명으로 OECD 평균 21.3명, 23.5명과 격차가 크다. 대통령의 ‘공교육 정상화’ 공약 이행과 교육여건 개선, 교·사대 학생들의 청년실업 및 교단 고령화 현상의 해소 등을 위해서는 오히려 매년 3000명 이상의 초·중등 교원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교육부, 행자부, 기재부 등은 이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저출산 등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감원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교원 증원은 단순히 공무원 정원 동결이나 인건비 같은 행정적, 경제적 관점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원 증원은 대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수 기준만 고집해 신규교사 선발을 감원한다면 교육복지 확대에 역행하는 처사다. 교육여건은 더욱 열악해져 질 저하로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는 향후부터 교원 증원을 학생 수만을 척도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OECD 기준, 교육의 질 향상, 농어촌 등 소외 지역의 공교육 활성화와 도농 교육격차 해소 등 거시적 정책 기조 아래 접근하길 기대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온 나라가 비상이다. 경기 평택지역에서 시작된 메르스 확산사태가 전국 유·초·중·고 2300여 곳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휴업사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학교휴업은 학교장에 있다’는 책임 전가 등 교육행정의 일관성 부재로 혼란과 갈등만 키웠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도 그랬듯 이런 상황에서 휴교를 학교장 재량과 판단에 맡기는 건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법적 수업일수 문제로 학사운영의 차질이 따르게 되는데 어떻게 학교장 판단으로 휴교를 할 수 있겠는가. 법적 수업일수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방학을 줄이면서까지 마냥 휴업을 하게 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럴 땐 정부가 기준을 재빨리 만들어주거나, 법적 수업일수를 줄여주겠다는 등 대책을 과감히 내놨어야 한다. 교육당국과 학교가 서로 떠넘기는 사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병원명단 공개로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학생 수백 명이 확인되고 고교 메르스 확진환자까지 나오면서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향후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교육당국은 확실한 대처 기준과 방침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대량 학교휴업만이 학생 건강을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휴업은 메르스에 대한 최적의 처방이라기보다 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과 걱정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교휴업을 틈타 일부 학생들은 사교육에 더 놓이게 됐고, 부모가 없는 틈을 이용해 PC방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는 문제로 메르스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등 실효성 논란도 따랐다. 무분별한 휴업보다 단위학교 차원의 질병예방교육이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대량 휴업사태로 인한 적절한 후속조치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강화한다던 정부가 1년 만에 또다시 초기 대응을 잘못해 더 큰 화를 자초했다는 불신을 키운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책임 있는 일관된 행정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올해 3월 27일, 국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이 법안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당초 취지 무색, 논란만 양산 이 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이라 해서 ‘김영란 법’으로 더 유명하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논의될 때만 해도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부정청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부패예방시스템’이 사회에 완전히 정착되기를 기대했다. 법안은 금품과 결부된 청탁에 한해 처벌하던 기존 법률과는 다르게 청탁행위 자체를 규제함으로써 부패통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장기간 숙의와 논란 끝에 통과된 법안은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숱한 문제점만 낳고 있다. 첫째, 위헌 논란이다. 원안은 적용 대상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 또는 준공직자로 한정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립학교 이사장·교원과 학교법인, 그리고 민간언론 등을 포함시켰다. ‘사립학교’와 ‘학교법인’은 일반 공공기관과 공공성의 정도와 성격이 다른 사인(私人)임에도 이들을 적용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법적 근거 없이 ‘필요’에 의해 구성 요건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공직자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함으로써 오히려 민간영역을 제한할 수 있다. 둘째, 과잉입법 논란이다. 지금 전국의 많은 교육감들이 이 법안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촌지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고 1억 원 신고포상금을 내걸었고, 1만 원만 받아도 주의・경고・감봉・견책 등을, 10만 원 이상이면 파면・해임・강등・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부산, 인천, 경기, 충남 등 많은 지역에서도 이에 준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은 또 어떤가. 복종의무, 직장 이탈, 친절・공정의무 등 항목별로 세밀한 기준을 두어 이를 위반할 경우 파면과 해임, 강등, 정직, 감봉 등의 절차가 따르게 된다. 이미 교원의 부정 청탁에 대한 규정이 각종 정책과 규칙에 의해 명시돼 있는데, ‘청탁금지법’을 또 마련해 과잉입법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선의 피해자, 자정노력 물거품 우려 셋째, 대다수의 선량한 교원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이 법안은 부패예방시스템을 구축, 보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육계는 교원과 학생, 학부모가 서로 협력해 건강한 학교를 만듦으로써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교원을 규제와 개혁으로 대상으로 몰고 있다. 특히 교원과 학교의 권한과 자율성은 대폭 축소하고 대신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청탁금지법’은 교직 사회 전반의 위축과 복지부동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아울러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대다수 선량한 교원들이 이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우리 교원들은 다양한 자정노력을 통해서 신뢰받는 교직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자칫 ‘청탁금지법’이 교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몹시 우려된다.
교육재정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교부금이 많이 늘어난다 해도 2조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내년에도 3조원 이상의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험 수준 도달한 지방채 돌려막기 최근 계속적으로 교육재정이 부족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세수결손이 발생할 경우 지방채를 발행하여 메우는 정책을 계속 썼기 때문이다.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한 지방채 발행은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다를 바 없다. 개인의 경우에도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계속하다보면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듯이 세수결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없이 임기응변적으로 지방채 발행을 반복하다보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교육재원이 부족해지자 민간투자사업(BTL)으로 학교신설을 함으로써 지방채카드에 BTL카드까지 돌려막기에 동원하였다. 돌려막기 규모가 금년 말에 이르면 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갈 경우 머지않아 늘어나는 재원규모보다 부채 상환 규모가 더 커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산당국이 교육재정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계속 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이미 교육재정 상황이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교부금이 전년도보다 증가했으므로 교육부도, 시·도교육청도 교육재정 상황을 낙관한 듯하다. 교육재정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시·도교육청은 무상복지 시리즈를 양산하게 되었고,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와 국회는 누리과정지원사업을 밀어붙였다. 연간 4조원 이상 소요되는 국책사업을 추가재원 확보없이 기존 재원으로 시행했던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재원 부족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2015년에야 문제가 된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였으므로 향후 교육재정 수요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학생 수가 줄어도 학교 수와 학급 수는 늘었고, 교원 수도 많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교육재정 수요가 줄지 않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교육재원을 학급수와 학교수를 기준으로 배분함으로써 소규모 학교 및 학급을 통·폐합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학교 수와 학급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교육청이 반응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은 교육여건과 교육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2000년대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기였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육재원 확보없이 교육여건과 교육서비스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다. 무상 재검토, 재정확충 나서야 교육재정 부족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수결손이 발생했을 때,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메우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세수결손의 원인이 시·도교육청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전가하면 안 된다. 세수결손 시에는 교부금 정산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다음으로, 보편적인 무상 시리즈를 재검토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은 물론이고, 무상급식 등 무상복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교육이 곧 복지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복지가 교육일 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교육청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국회도 교육재정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누리과정 지원비를 지방재정법상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며, 교부금 배분기준을 학생 수로 바꿔서 해결될 상황도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보다 적극적으로 추가적인 교육재정 확보책을 강구해야 할 적기다.
지금 대한민국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메르스와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메르스 공포 심리와의 전쟁이다. 우선 첫 번째 전쟁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초기 방역의 실패와 비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지휘체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 허술한 응급의료 체계, 후진적 병실문화, 낙후된 시민의식 등 우리 사회의 경박함과 몰합리성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할수록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국이 자료를 집계하고 발표를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가 아쉽다. 그 결과로 국민들은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 상륙한 메르스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전하는 메르스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아직 비관하기에는 이르다. 우리가 메르스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많기 때문이다. 변이는 없다는 정부 발표를 믿기 힘들 정도다. 메르스는 2차 감염자부터 감염력이 뚝 떨어져 3차 감염이 없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4차 감염에 이르고 있다. 메르스 감염력은 1인당 0.7명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1번과 14번 환자는 각각 31명과 37명에게 전염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치사율이 40%라고 했으나 현재 7.36%이고 사망자도 대체로 심각한 질환을 가진 고령자들이었다. 공기감염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에어컨을 통한 에어로졸 형태의 감염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 메르스가 두려운 이유는 아직 그 정체성을 확실히 모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중세시대 흑사병, 대항해시대 괴혈병, 산업혁명 시대 콜레라, 20세기 에이즈가 그랬다. 1740년 영국 해군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배에 타고 있던 1955명 가운데 997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단 4명. 이 저승사자의 정체는 1928년에 와서야 비타민C 결핍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질병은 극복의 대상은 될지언정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1992년에 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는 1995년에 라는 책에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는 데 ‘사회적 미덕’으로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 나라와 민족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깊을수록 사회 조직의 형성이 쉽고 활발해지며, 보다 큰 자본의 형성도 원활해져 결국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적·경제적 조직과 협력이 어렵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큰 자본의 형성도 어려우며, 또한 그 규모도 자연히 작아지기 마련이란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장이 위축되고 그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우리가 채택한 시장경제체제는 자유로운 계약으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해 가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두터워지기를 바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가와 시민, 시민과 시민 상호간의 신뢰가 두터운 사회에서는 거짓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것을 무엇보다 부끄럽게 생각 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뚫렸다느니 병원이 뚫렸다느니 이야기기 많지만 진정 뚫린 것은 국민의 가슴이 아닌가! 이에 경제활동이 위축된 현상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들의 경제활동이란 사회생활의 중요 부분을 나타내며, 그 사회를 형성하는 다양한 기준·규칙·도덕적 의무, 그리고 이들 이외의 관습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설명했다. 따라서 경제생활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국민의 복지 및 다른 국민과의 경쟁력(결국 국제경쟁력)은 그 사회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문화적 특징, 즉 그 사회의 고유한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문화, 환언하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그 민족이나 국가의 ‘달성 가능한 번영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위기가 더 이상 신뢰의 위기로 확산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선책을 찾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진학했다는 천재 한인 소녀 김모양의 이야기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TJ)과학기술고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양은 지난해 말 하버드대에 조기 합격한 데 이어 올해는 스탠퍼드대 등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김양은 처음 1∼2년을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하고 이후 2∼3년을 하버드대에 다닌 뒤 졸업 대학을 학생이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두 대학은 유학생 신분인 김양을 위해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 거액의 학비를 전액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하버드는 김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수 장학금을 특별히 제공하겠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와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양이 지난 4월 말 두 대학을 놓고 마지막 고민을 할 때 저커버그에게 이메일로 조언을 구했다는 내용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며칠 지나 이 기사가 거짓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 내용 중에 김양의 수상 실적, 대학 교수의 인터뷰, 대학 동시 합격 등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김양이 직접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까지 해서 전국적으로 퍼졌는데, 그 미담 사례가 모두 허위였다. 김양의 사건은 여러 면에서 충격이 크다. 어린 소녀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언론사에 사실처럼 말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건 후 보도에 의하면, 김양의 부모는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로 추리해 보건대 김양은 마음이 많이 아픈 듯하다. 김양의 집안은 소위 명문가이다. 그러다보니 집안과 부모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김양은 정신적으로 명문 대학 입학해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국내 언론사의 보도 과정과 대응이다. 언론 보도는 사실이 생명인데 보도 과정에서 검증이 전혀 없었다. 기사 제보자가 제시한 합격증서와 기타 자료를 근거로 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썼다. 기장 기본적인 사실 관계만 확인했어도 이런 엄청난 오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 과정 없이 그대로 베껴 쓴 언론사들도 문제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는 보도 자료를 적당히 편집해서 보도하는 관행에 익숙하다. 이런 언론사들이 아무런 도덕적 양심도 없이 타사의 기사를 베끼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한 매체에서 기사를 내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라고 판단한 언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베끼기 기사를 냈다. 역시 이 과정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냈던 것이다. 언론사의 과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짓이 판명난 후 일부 언론사는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미흡하다.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사의 사명을 잊은 채 느슨하고 안이한 조치다. 치명적인 실수에 대한 대응 방식이 업무 처리 하듯 했다. 신문 구석에 반성 기사만 냈을 뿐 오보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회사 방침, 차후 예방책은 없다. 속칭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일부 언론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양의 거짓 사건은 우리 사회의 학벌중심주의 문화가 낳은 폐단이라고 진단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벌보다는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벌 숭상주의가 책임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언론사의 진단이 틀린 것은 없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고 있다. 명문 대학 학벌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력을 발휘한다. 명문 대학 출신은 직장을 들어갈 때 이익을 보고, 이것으로 승진과 기타 혜택을 누리면서 평생 덕을 본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 시작해 산업 사회에서 절정을 이루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벌 중심 사고는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창의적 인재들의 길을 막아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는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 막는 독소이다. 김양의 대학 입학 거짓 사건은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생이라고 속이고 교수에게 결혼식 주례까지 받았다가 들통 난 사례도 있다. 대학 교수까지 지낸 사람도 학위가 가짜로 판명 났다. 그때 사회 지도층 인사 및 인기 연예인들도 학력을 속이고 활동한 것이 속속 드러났다. 이때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져 법의 심판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는 개인적 문제로 끝났다. 대학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그냥 지나갔다. 대학들은 인기 연예인이 자기 대학 출신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학적 관계만 확인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덮어두고 모교 출신임을 활용해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했던 반성은 없었다.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도 언론사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내 언론사들이 김양 사건을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것도 결국은 미국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례 자체가 기사 거리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언론사들이 이미 학벌 우선주의 문화에 젖어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실제로 대학 순위 조사를 보도하고 있다. 이 조사 보도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순위로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고 있다. 득보다 실이 많은 대학 순위 조사에 대해서 비판적 여론이 많으니 중지해야 한다. 언론사의 사명은 진실보도다. 발로 뛰지 않는 보도는 세월호 사건 때도 엄청난 오보로 충격을 주었다. 김양의 대학입학 위조 사건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을 소리 없이 부추기고 있는 언론사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확인 과정 없이 무작정 베껴 쓰는 언론사의 시스템도 이 사건을 키웠다.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남 탓하기 전에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
최근 대한민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MERS) 대란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학교가 휴업을 시행하고 국민들이 외출을 극도로 삼가서 국민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위축된 경제를 살리는 일도 시급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취소됐고 이달 들어 메르스 여파로 한국 방문을 취소한 외국인이 10만 명에 육박했다.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이 몰려오지 않자 서울 명동 등의 화장품점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매출도 크게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메르스 사태가 6월 말까지 끝난다면 4조 원, 8월 말까지 이어지면 20조 원의 피해가 날 것으로 예측한다. 국민은 이제 미뤘던 야외활동과 쇼핑, 외식을 다시 시작하고 기업들도 내수를 살리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 침체에 설상가상인 형국이다. 일반적으로 메르스 바이러스는 환자의 기침 재채기 등에서 나오는 비말(飛沫)로 전파되며 공기를 매개로 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기 감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그것도 ‘병원 같은 특수한 공간’에서의 얘기다. 비말과 공기의 중간 형태인 에어로졸에 실려 감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 정도로는 지역사회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은 3차 유행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꾸민들도 지역사회 감염이 없는 이상, 과민 반응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 국민들은 메르스는 안전수칙만 잘 따르면 확실하게 예방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근거 없는 소문은 무시하고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일상생활에 복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성찰과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먼저,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의 큰 일을 당한 후에 허겁지겁 사후 대응을 하는 관행적 행정과 교육을 불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예방이 최선이다. 아무리 훌륭한 처방과 치유라도 예방을 능가할 수 없다. 과거 2009년 신종 플루 사태 후에도 우리는 이번 사태의 예방에 소홀히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메르스 안전수칙도 손을 자주 씻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일회용 티슈나 소매로 입을 가리는 등 우리 교육의 기초 기본적인 내용이다. 왜 메르스 대란 후에만 손을 자주, 그리고 깨끗이 씻어야 하나? 항상 손을 자주 씻고 깨끗이 씻는 것은 보건 위생의 기초 기본인 것이다. 결국 정부나 개인이나 ‘기본’이 중요한 것이다. 둘째, 이번 매르스 대란은 각급 학교의 휴업 대란을 야기했다. 물론 학교의 휴업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학교장이 결정하게 법령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각급 학교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같은 지역의 학교에서도 휴업 학교, 비휴업 학교가 제 각각인 것이다. 같은 가정의 형제자매들도 휴업 학교에 다니는 자녀, 비휴업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혼재된 혼란을 겪고 있다. 물론, 학교 휴업과 관련하여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휴업 기준을 보면 학생, 학부모(가족), 교직원 중 메르스 확진자 및 의심환자, 격리조치된 자가 발생한 경우. 인근지역에 메르스 확진자 및 의심환자, 격리조치된 자가 다수 발생한 경우. 보건당국이 감염확산을 우려해 휴업을 권고하는 경우. 다수 학부모가 자녀 감염 등을 우려해 등교를 기피하는 경우. 기타 학교장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등이다. 물론 학교운영위원회 소집이 쉽게 되면 다행이지만 소집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성원이 안 되어 회의를 못하기도 한다.아무튼 각급 학교가 매뉴얼대로 움직여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행정적, 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의 휴업은 방학 기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번 사태와 같은 비상 휴업이 발생하면 수업 일수 준수 때문에 여름 혹서기, 겨울 혹한기에 수업일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중요한 정보의 국민적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국기 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하지만, 메르스처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감염병 예방의 경우는 환자 발생 지역, 병원, 감염 경로, 확진자 및 격리자등이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고 자율적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니, 정확하지 않은 유언비어와 소문들이 꼬리를 물어 더욱 불안해지고 민심이 이반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확진 환자들이 정보를 숨긴 채 타 병원, 슈퍼, 택시 등으로 옮겨 다녀 2차 감염이 가중 발생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1번 환자가 확진된 지난달 20일로부터 근 한 달이 돼 가고 있다. 어렵기는 하지만, 이 난국도 우리는 극복해야 한다. 방역당국과 병원들은 메르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저력을 갖고 있다. 정부는 초기 대처에 실패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우리 국민이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언제나 단결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메르스 대란이 하루빨리 종결되고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초 기본이 바론 선 교육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국민 경제도 회복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대란과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처방과 치유보다는 예방이 우선’이라는 평범한 교훈임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메르스로 인한 경기도의 많은 학교가 5-10일간 휴업을 했다. 이러한 학교휴업이 장기화되면서 일선 학교들이 고민에 빠졌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지침서는 일주일 이상 휴업을 한 학교의 경우 법정 수업일수를 맞추고 수업시수도 반드시이수하라고 했다. 이러한 190의 법정 수업일수와 수업시수를 확보하려면 여름방학은 물론이고 겨울방학까지 줄여야 할 상황이다. 단 휴업일이 15일을 초과한 경우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 45조에 의해 10분의 1 범위에서 수업일수를 감축할 수 있다고 일수 감축을 허용했다. 문제는 수업시수는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수업일수만 줄여주고 수업시수는 이수해야 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않는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도 7-8교시 수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은 올해부터 관광주간 단기방학을 권장했다. 권장이라기보다 일률적으로 강제한 것과 다름없어 모든 학교가 실시했다. 이로 인해 각급학교의 수업일수는 대부분이 190에 맞춰져 있어 올 여름방학은 3, 4주에 불과하다. 여기에 메르스로 인한 휴업 결손까지 채우려면 가뜩이나 짧은 여름방학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이렇게되면 1주일 이상 휴업을 한 학교는 7월 30-31에나 여름방학이 가능하다. 또 한번 더위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메르스로 인한 학교휴업을 두고도 학교장 권한과 재량이라고 강조한 교육당국의 태도도문제였다. 이번 학교휴업을 두고일선 학교장들은 학보모로부터 많은 갈등과 학교경영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학교휴업 이후 후속조치에 대한 진짜 필요한 재량권은 학교장에게 정작 없다. 물론 교육법령에 의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번과 같은 일은 특수한 경우는 이에 대한 적절한교육행정력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파는 무엇보다 신체적 접촉이 가장 위험하다. 그러함도 이번 도교육의 지시사항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등교, 출근시 발열체크를 일부 학생 및 직원만 실시하지 말고 전직원 전교생 대상으로 실시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이다. 만일 하나 바이러스에 감연된 학생이 있다는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다고 비접촉 측정 체온계가 모든 학교에 학급별로 보급된 것도 아니다.전혀 줍비 안 된 학교현장 상황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교육당국의 행정이나리더십은찾아볼 수 없다. 재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일부 병원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매일 메르스 확진확진자가 늘어나는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메르스 사태로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철저한 교육행정과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나라 고등학생들의 공부환경은 거의 비슷하다. 오전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한 교실에서 보낸다. 하지만 성적은 1등부터 꼴찌까지 제각각이다.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공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에 달렸다. 이는 성적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각자의 지적 수준과 능력보다 중요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공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네 가지 정도다. 첫째, 우선 주변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공부하는 동안에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라는 얘기이다. 이른바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자기가 해야 할 공부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앉아 공부만 한다. 이는 공부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주의 산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할 땐 목표를 끝낼 때까지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공부 효과가 커지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연습을 거듭해 습관을 들여야 가능하다. 둘째, 공부한 내용을 남에게 설명하는방법이다. 친구들과 같은 주제를 두고 토론하면 기억력도 높아진다. 점심 먹을 때나 등·하교 시간에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만일 오래 기억하고 싶거나 어려워서 잘 해결되지 않는 내용을 친구들과 함께 얘기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공유한 내용은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다. 이는 수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주도적으로 발표하는 경우 그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셋째,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다. 모든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생활한다. 특히 학교에서는 늘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시간 사이에는 분명히 자투리 시간이 있다. 여의 시간은 하루 계획이나 주간 계획을 보고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학교 시간표를 보면 요일별로 쉬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짧은 시간에 공부하기 좋은 수학문제 풀이나 영어단어 암기를 한다. 남들은 낭비하는 시간이라 금세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끈기 있게 습관을 들이고 공부한다면 나중에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공부할 때 최대의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휴식은 필수이다. 학생은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1년 365일 공부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결코 효율적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육대회, 축제 등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다 보면 공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공부하다 지칠 땐 적극적으로 쉬어야 한다. 특히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주말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자신을 격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취미 생활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적절한 휴식은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노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잘 이용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 뛰놀았던 동네 모습이 그립다. 그 동네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무척 많이 변했을 것이다. ‘실행이 답이다’를 신조로 삼고 있는 필자, 아내와 같이 그 동네를 찾았다. 그 동안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수원시 권선구 매산로 3가 111번지. 모교인 세류초등학교 인근이다. 지금의 정문이 아닌 옛정문 앞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필자는 이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니까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자가용으로 그 당시 우리집 골목길을 천천히 오른다. 얼굴이 익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보인다. 바로 어렸을 적 구멍가게 주인이다. 그렇다면 이 분은 이 곳에서 60년 이상을 사신 분이다. “바로 앞 집에 살던 영관이여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인사를 드리니 알아보지 못한다. 그 분의 연세는 88세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보다 5살 아래인데 아직 정정하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집 모습. 그러나 그 흔적은 전혀 없다. 그 대신 2층집이 들어섰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대추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등을 기억했지만 삭막한 건물만 버티고 있다. 주소는 세류로 83번길로 바뀌었다. 우리집 뒷집인 방00 선생님 댁도 당시 흔적이 없고 2층집이 들어섰다. 골목길 마루터기로 올라섰다. 나무가 우거진 서울대 농대 교수 집터는 연립주택이 들어섰고 자가용 한 대가 주차해 있다. 이 마루터기에서의 추억. 명절이면 윷놀이를 했고 기다란 의자를 내놓아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지나가던 엿장수와 장기놀이를 했고 동네 누나가 기타로 가르쳐준 ‘해뜨는 집(The House of Rising Sun)을 연주해보던 곳이다. 마루터기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한 쪽 공터가 유리 구슬치기 하던 곳. 지금은 대문이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구슬치기를 하였는데 ‘알빼기’라는 것이 있다. 구슬 여러 개를 던져 상대방이 지적하는 구슬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내 놓았던 구슬을 모두 가져가는 놀이다. 그 당시 소년들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났는지 어려운 위치에 있는 구슬을 곧잘 맞추었다. 막다른 골목도 한 곳 있었다. 지금도 막다른 골목인데 대문 두 곳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아마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 곳은 얼마 안 있으면 주거 환경 개선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것을 보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비탈 아래에 있는 저 집으로 몰려 들겠네!” 당시 한옥 기와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6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유년시절 이 기와지붕 속에 할미새가 둥지를 치고 새끼를 쳤다. 그 당시만 해도 개발이 되지 않아 동네에서 할미새, 때까치 등의 새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집 울타리 위를 보니 깨진 유리가 박혀 있다. 그 당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옛 우리집 앞에서 모교 세류초교를 바라다본다.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교의 시종 사이렌 소리가 우리집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선생님들의 출퇴근 모습도 종종 보았다. 담임선생님은 가정방문으로 우리집을 찾기도 하였다. 박00 선생님은 우리집에서 자취를 하였다고 들었다. 아내와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은 아직도 있다. 이 곳에서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추억 한 장면. 당시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은 휘파람. 대개 남학생이 부르면 고고한 여학생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친구 중 한 명이 골목길에서 한길을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을 부니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린 골목길 안쪽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하는 말, “아! 우리가 불렀는데 왜 도망치는 거지? 그 여학생에게 가자!” 골목길 빈터에서 그 여학생과 마주했다. 그 여학생 허리에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 하는 말, “야,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왜 도망가는 거냐!” 우리 친구 중에 누군가 조그맣게 한 마디 한다. “야, 쟤랑은 안 되겠다.” 이 곳을 돌아보니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집도 눈에 보이고 집을 허물어 공터가 된 곳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세류초교 인근은 세류지구 주거 환경개선사업으로 15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다. 여기도 머지않아 이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유년시절, 학교 건물이 그 동네에서 가장 높고 최신식 건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모교 모습을 보니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낡기도 하였지만 주위 고층 아파트에푹 파묻혀 있다. 어찌보면 이게 교육의 모습이다. 학교가 그리고 교육이 앞서가야 하는데 뒤쫒아 가기 바쁘다. 누군가가 변하는 동네 모습과 학교 모습을 기록해 두었으면 한다. 이게 살아있는 우리네 삶의 역사 기록이다.
아직도 메르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메르스가 하루 빨리 종식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며 메르스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사선생님을 보면서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고 존경하게 된다. 의사선생님이 없으면 우리의 생명은 많이 짧아졌을 것인데 성실하고 유능한 의사선생님이 많이 계셔서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학생들의 장래를 책임지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님도 모든 사람도 불평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불평을 하며 살아오게 되어 있다. 그래도 불평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이들을 보면 부럽다. 선생님 중에도 그런 선생님이 있다. 이런 선생님이 되면 좋은 선생님이 된다. 비난이나 비판을 하고 남을 헐뜯기 싫어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남을 비난하는 것을 일삼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알고 머리가 좋아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해도 나와 생각이 다른 선생님, 나와 행동이 다른 선생님,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선생님을 싫어하면서 계속 비난하며 돌아다니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비난을 삼가고 비판을 삼가는 선생님이 되어야 좋은 선생님이다. 남 말하기를 좋아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 아니다. 남 말하기를 좋아하는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을 좋게 말하지 않고 안 좋은 것만 끄집어내어 말한다. 이게 습관화되고 남의 단점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쾌락을 누리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핑계하지 않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무슨 일을 하다가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럴 때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자기에게서 찾아야지 남에게서 찾으면 안 된다. 누구든지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린다. 환경을 탓하고 조건을 탓하면서 핑계를 대는 것은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나에게 주어지면 탓하는 자세, 핑계하는 자세보다 내가 책임지고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핑계하는 자세는 비굴한 자세다. 책임을 전가하는 이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모든 일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남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선생님은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마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선생님이다.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 자체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교사자격증을 가지고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이가 너무나 많음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인재를 상대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런 인재를 가르치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보람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이 장차 세계를 이끌어가는 인재가 되고 나라를 세워가는 지도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니 감사할 것밖에 없다. 학교에서 땀을 흘리고 수고를 많이 하는 것도 결국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일이 힘들고 가르치는 것이 고되더라도 감사할 것밖에 없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불평이 나오고 불만이 나온다.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먼저 오르려고 하면 비난이 나오게 된다. 내가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하면 핑계가 나온다. 비난도 불평도 핑계도 선생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낱말들이다.
교직경력으로 치면 적지 않지만 요즘들어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네요. 교감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질문이지만 혹시 답을 아신다면 알려 주십시오. 1. 메르스 예방책으로 학교에서 매일같이 학생들 체온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당연히 학교장이 정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담임교사가 아침 조회시에 발열 체크를 하도록 했습니다. 질문입니다. 첫째,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교장, 교감, 보건교사 3명이 결정하는 것이 맞는지요. 해당 부서장이나 학년부장도 함께 참가하는 것이 맞는지요. 둘째,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담임교사들이 하도록 결정되었지요. 교내 통신망을 통해 담임교사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은 누가 해야 할까요. 교장, 교감, 아니면 보건교사? 2.학교에 교육청에서 협조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교감입니다. 그런데 교감이 결정해 놓고 담당부장에게 통보식으로 하는 것이 맞나요? 아니면 담당부장과 이야기를 한 후에 다시 연락드린다고 하는 것이 맞나요? 3. 자유학기제 운영방법을 교육과정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교육과정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건의사항을 내놓았습니다. 그 자리에 교장선생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교감선생님은 계셨고요. 당연히 부위원장인 교감선생님에게 건의를 한 것이지요. 건의사항을 교장선생님에게 보고없이 그 자리에서 교감이 가 부를 바로 결정하는 것이 맞나요? 아니면 교장선생님의 의견을 들은 후 결정해야 하나요? 4. 교감이 수석교사 야단쳤다고 교사들에게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 맞나요? 5. 업무분장으로 결정된 업무를 해당부서가 바쁘니 다른부서에 해달라고 교감이 압력을 넣는 것이 맞나요. 그런 경우 가 일부부서에만 국한되고 있습니다. 즉 다른 부서 업무를 하는 부서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간혹이지만 다른 부서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업무분장(교무분장)에서 정해진 업무가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되나요? 6. 학교의 교원 복무관련 업무는 누구 업무인가요? 책임자 말고 주관하실 분이 누구인가요. 가령 메르스 관련하여 교원 복무관련 공문이 왔다면 교직원들에게 알려야 하는 분이 누구인가요? 교장, 교감, 교무부장, 행정실장? 이상입니다. 더 궁금한 것들도 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질문 올립니다. 제가 교감을 안해봐서 잘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교감선생님들께서 도움을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