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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6일밤에 텔레비젼을 보았다면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방송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학교체벌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체벌 문제는 답이 없다고 본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입장 차이가 명확히 나고 있기 때문이다. MBC에서 새벽 2시정도까지 이어진 토론방송을 끝까지 지켜 보았다. 같은 교사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정리를 하면서 시청을 했다. 체벌을 반대하는 입장과 불가피한 경우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또한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논리도 펼치는 모습들이었다. 그 방송을 시청하면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체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고싶다. 어차피 자신의 논리를 통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비슷한 체벌사건의 판결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도 판사의 판단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에 출연했던 패널이나 시민논객(MBC에서 붙인 명칭)들 중 일반인들이 여럿보였다. 여기서 일반인들이라 함은 교사가 아닌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조금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일반인들은 학교에서의 체벌을 폭력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말 그대로 체벌이 아니고 폭력 그자체로 보고 있었다. 체벌을 폭력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반복적인 잘못을 했을때, 불가피한 경우 체벌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폭력으로 보고 있었다. 이야기 중에도 여러번 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학교의 체벌은 폭력과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하고 실제로 구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체벌을 폭력을 생각하는 것은 학교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과 체벌은 엄연히 다르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학교뿐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있다면 당연히 퇴출되어야 한다. 이의가 없다. 그러나 체벌 모두를 폭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체벌이 폭력의 원인이 될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사집단은 그렇게 쉽게 이성을 잃고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둘째, 학교에서의 체벌을 폭력으로 보면서 그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교사에 의한 폭력성 체벌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의 체벌이 일반화 되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또한 날로 교사에 의한 폭력성 체벌이 증가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어떤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셋째, 체벌을 반대하는 쪽이나 불가피한 체벌을 찬성하는 쪽, 모두 문제가 있다. 서로가 극단적인 사례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체벌에 의해 피해의 경우나 체벌이 없을때 발생하는 문제를 일반적인 것이 아닌 극단적인 내용만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것은 확률적으로도 낮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기도 어렵다. 보편, 타당한 이야기를 했어야 옳다. 양측모두 나름대로의 논리로 토론을 이어갔지만 역시 결론은 '글쎄올시다.'였다. 결론이 나올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예측이 되었지만 토론을 통해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학교체벌문제를 해결할 대안제시가 제대로 안되었다. 겨우 대안이라고 내세운 것들은 원론적인 내용뿐이었다. 최소한의 객관적인 대안제시가 있을 것으로 기대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출연자들이 좀더 깊이 연구하고 정리하여 실질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토론, 대안제시가 필요한 토론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이들이 버릇없이 굴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흔히 하는 말이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라고 한다. 글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정에서 그렇게 가르친 것이 아니었을까? 요즘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본 질서를 가르치는지 묻고 싶다. 사실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예절이나 행동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렇게 버릇없이 하는 짓을 보면 흔히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거, 뉘집 자손인고 좌립할 줄을 모르는 구만...."하시는 말을 들었다. 어느 학교 아이인가가 아니라, 뉘집 자손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것을 학교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예절이나 규율을 지키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일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가정에서 이러한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가르쳐야할 일을 안 가르쳐서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서 꾸짖기라도 하면 잘 못 가르친 부모로서 부끄럽게 생각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당신이 뭔데 남의 귀한 자식의 기를 죽이려고 하느냐?" 고 따지고 싸우려고 덤비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대표적으로 음식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도록 뛰고 소리를 지르는 어린이를 나무라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버릇없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지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 라고 할만큼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바란다면 이런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학교의 교육 방침에 따라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지도한 것을 반드시 지키도록 가정에서도 일관성 있게 지도가 되어야 한다. 교육이란 가정, 학교, 사회가 정 삼각형을 이르고 있으면서 협조가 이루어질 때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에서 지도를 포기한 채, 도리어 학교에서 애써 가르친 것 마저 지키면 손해라는 식으로 가르치면서, 잘 못 된 것은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 라고 한다면 이것은 도저히 용납 될 수 없는 교육의 파기가 되고 말 것이다. 가정에서 기본을 가르치고, 예절을 가르쳐서 적어도 많은 사람이 생활하는 단체 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어져야 한다. 이것이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모른 채 도리어 학교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친 것을 지키게 하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누가 내 자식의 기를 죽이느냐라고 덤빈다면서 어떻게 학교에서 버릇을 가르치고 기본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옛날에는 조부모님들이 한 집안에 살고 계셔서 어린 손자, 손녀들에게 기본을 가르치곤 하였다. 밥상머리교육이 그랬고, 무릎 학교가 그런 것이었다.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기본을 가르치고, 밥을 먹으면서 잘 못을 하지 않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무릎에 앉은 손자에게 자신의 내력을 가르친다. 마치 옛날 큰 문제작의 되었던 영화 [뿌리]에서 킨타 쿤테의 조상들은 자기 집안의 내력을 두 시간, 또는 며칠 동안 말로 전해주면서 이어가게 하듯이 집안의 족보를 가르쳤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기본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란 거의 없다.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이미 대 가족이라는 형태가 이상한 집안이고, 박물관의 유물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속에서 조부모의 무릎학교, 밥상머리 교육은 없어지고, 오직 내 자식만을 호호 불어서 키우는 과보호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자란 어린이들이 학교에서는 말을 잘 들으며 사회에 나가서는 준법정신을 발휘하여 살아갈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의 바탕에서 자신이 해야할 의무는 하지 않은 채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의무는 하기 싫고 자기에게는 베풀어주기만 바라고, 특별 대우만 받겠다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누구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조차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세상이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가치 기준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질서는 어디로 가고, 이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가정에서 가르쳐서 지켜져야 할 기본질서가 사회를 지켜 나가는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을 지키지 못한 모습을 보았을 때만은 학교에 그 책임을 전가한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학교를 탓하지 말고 가정에서 바르게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내 귀여운 자녀가 학교에 가서 기본도 모르는 망나니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당연히 잘 가르쳐서 남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행동은 어떻든 공부만 잘하면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말 자신이 부모로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 하는 기본적인 임무조차 모르고, 왜 저렇게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기는지 묻고 싶어진다.
지난 달 23일 일본 오사카시내에서 열린 식육(食育)추진 전국 대회가 열렸다. 작년 6월에 식육기본법이 성립되어, 금년3월에는 식육 추진 기본계획이 작성된 것을 바탕으로 한 첫 개최였지만, 「식육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고 하는 근본적인 과제에 관련된 전시나 발표는 조금 미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는 언제 어디서나 즐거운 식육, 모두가 매일 아침 밥 먹기이었다. 오사카부는 독자적으로 추진한 구호 야채 를 많이 먹자, 아침 식사를 잘하자를 어필했다. 약 1만명이 방문했으며, 각지의 산물이나 요리의 시식, 특산품의 판매점에 참가자가 줄을 잇는 등, 물산전에 가까운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식육은 지금 붐이다. 식육지도에 관련된 민간 자격이나, 기업의 출장 수업이 증가하고 있다. 식육에 관한 조례를 책정한 것은 금년 5월 현재 21도도현(都道県)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교사나 영양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되는 것인가」라고 하는 불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본 계획으로, 학교에서는 조직적인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천예로서 소개되고 있는 것 중에는 벼나 야채의 재배, 영양, 지역의 식재료에 관한 학습 등이 많았다. 벼농사나 영양에 대해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연과학이나 가정, 종합 학습 수업이다. 한정된 시간과 시설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벅찬 것이 사실이지만, 식육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체험을 중시하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 교실 등을 열고 있는 식육·요리 연구가 사카모토씨에 의하면, 어떤 현에서는 「아침 식사를 먹는 아이는 착한 아이」 「야채를 먹지 않는 아이는 나쁜 아이」이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달력에 동그란 표시를 붙이게 하고 있었다고 한다. 1개월 후 동그라미표로 채워진 달력을 자료로 하여 「식육의 성과」라고 보고하였다. 아이에게는 표를 붙이는 것이 목적이 되고, 아침 식사나 야채를 먹는 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보고서를 보면 식육이 왜곡되어 있다」라고 사카모또씨는 한탄한다. 군마 대학 교육학부 교수 타카하시 쿠니코씨는, 평범하게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를 가르치고, 기본을 잃지 않고 한끼니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식습관을 스스로 관리하는 힘을 얻는 「식의 자립」이야말로 식육이 목표로 해야 할 목표 지점이 아닌가라는 지적이다. 대회 개회식에서, 이노구치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은 「어른이도 아이도, 남성도 여성도 폭넓게 참가 하세요」라고 외쳤다.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이나 어린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는 인식도 식육의 대중화에는 빠뜨릴 수 없다. 출근, 등교전은 누구나가 시간이 없다. 추진을 호소하는 측도 통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 대화를 주고 받는 장소는 되지 못하였다. 이념이나 방침, 수치 목표가 나열된 법이나 기본 계획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보충수업 수강신청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맞춤형 보충학습’이란 명칭으로 시작된 이 제도는 학생들이 별도로 마련된 수강신청용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선생님들이 탑재한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자신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한다. 비록 보충수업에 한정되지만, 학생들이 선생님을 직접 고른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학년이 달라 정규수업 시간에 만날 수 없는 교사라 하더라도 강의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면 그 강좌는 밀려드는 학생들로 인하여 순식간에 제한인원이 마감된다. 반면에 교사의 강의 수준이 떨어지거나 학습 동기 유발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강좌는 신청자가 없어 곧바로 폐강된다. ‘학생 선택권’이란 옥동자를 얻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그 동안 별 탈없이 진행되었던 제도를 굳이 ‘학생 선택’이란 듣기 거북한 용어를 앞세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궁극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지향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막상 시행이 결정되자, 과거의 방식에 익숙했던 선생님들 가운데는 “아이들의 선택을 신뢰할 수 없다.” “수업을 가장한 인기투표”라는 등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해전만 하더라도 주요과목(일명 국영수)을 맡고 있는 교사라면 보충수업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당장 대학진학에 필요한 과목부터 시수를 배정하는 관례에 따라 오히려 시수가 많아서 불평할 정도였다. 정규수업과는 달리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적용되는 보충수업은 참여한 교사들에게 일정한 수당을 지급한다. 그래서 한 때는 보충수업을 두고 교사 복지 차원의 배려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그만큼 수업의 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맞춤형 보충수업’이 시행 2년째로 접어들면서 당초 우려와는 달리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눈에 띄게 드러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보충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의 자세다. 오랜 지도 경험으로 해당 교과목에 능통한 교사들도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하여 몇 시간씩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과거처럼 시간 때우기 식의 안이한 수업으로는 다음 수강신청에서 학생들의 낙점(落點)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신이 직접 수강 과목과 지도교사를 선택했다는 책임의식 때문에 그만큼 진지할 수밖에 없다. 불과 삼 년전만 하더라도 오후 늦게 진행되는 보충수업은 피곤에 지친 학생들이 꿈나라를 오가는 시간이었으나 이제는 정규수업시간보다도 오히려 더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몰두한다. 한 마디로 학생선택이 불러온 선물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가치 판단은 치즈를 놓고 벌이는 생쥐와 꼬마 인간 ‘허’와 ‘헴’의 이야기를 담은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작가는 과거의 영화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나선 생쥐와 뒤늦게나마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인 ‘허’에 비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선택의 기회를 놓친 ‘헴’을 통하여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현대인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리차드 프리드먼도 세계화의 흐름을 놓치고 섣부른 애국주의에 빠진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아웃소싱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생들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번 여름방학에 집에서 쉬어야할 선생님들도 있을 것이다. 시장의 윈리가 게재된 ‘학생 선택’은 이처럼 냉정한 것이다. 어차피 교육도 ‘투자’와 ‘수익’의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이미 시범 실시중인 교원평가제도 언젠가는 ‘정규 수업’의 ‘학생 선택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교사들의 의식이다. 맛있는 치즈와 안정된 일자리를 언제까지나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환상은 빨리 벗어날수록 좋다.
“선생님, 무슨 책 읽어요?”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반에서 아침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이 종종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망설이곤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과 내가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재미이다. ‘무슨 책 읽어요.’ ‘추천해주세요.’ 하고 물을 땐 ‘무슨 책이 재미있어요?’ 하는 물음과 같다. 그런데 그 재미가 문제다. 내가 느끼는 재미와 아이들이 느끼는 재미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겁지도 않고 의미성도 있는 책을 권하며 ‘이 책 되게 재미있다. 한 번 읽어 봐.’ 하면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책을 들고 간다. 며칠 전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가 물어 보았다. 3월부터 시작한 독서를 마무리할 즈음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얼마나 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1학기 동안 열심히 책 읽느라 애썼다. 이번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에겐 상품과 상장을 줄까 한다. 누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아?” “민정이요.” “아니에요. 혜영이가 젤 많이 읽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볼래.”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을 들어 보라 했더니 여섯 명 정도 손을 든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라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이 손을 든 모습을 보고 한 녀석이 “만화책은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 “만화책은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인터넷 소설류의 연애 소설도 안 돼. 혹 그런 사람 있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 전 있는데요. 그럼 안 되나요?” “그건 제욀 시켜야겠다. 안 읽는 것보단 낫지만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은 재미없어서 못 보게 돼. 아침 독서의 취지에도 안 맞고. 그럼 다시 한 번 손들어 봐.” 이번엔 두 명 정도가 손을 든다. 다섯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보라 했더니 12명이나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성공적이다. 사실 2학년에 올라와서 1학년 1년 동안 2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 손들어보라 할 때 2명밖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올 1학기 동안 아이들의 독서 성적은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책과 함께 한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예쁘기 그지없다. 처음 책 읽자고 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도 많았는데 믿고 따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데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아침에 책 한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가 책을 펴들고 읽는 것과 아이들이 책을 원할 때 이런 저런 책을 권하여 준 것, 즉 책을 읽을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것밖에 없다. 그렇게 멍석을 깔아주니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재미나게 논다. 물론 멍석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몇 몇 아이들이 있을 땐 그때그때 잡아주었지만.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소홀히 해지려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서 손을 놓아버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아이들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힘을 주는 게 책을 빌리러 오는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니까 너무 좋아요’ 하며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한 권, 두 권 읽어가고 책 목록에 기록할 때마다 아이들 못지않게 나의 마음도 기쁜 물결이 인다. 책은 음식물과 같다. 책을 한 권 더 읽는다고 인생이 금방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 지식이 빠른 시간에 많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씹고 씹다보면 입안에 단물이 나듯 언젠간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도 단물이 날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장면을 읽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지금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엄마가 됐을 때 자신의 아이들에게 책의 맛을 이야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 책은 씹을수록 맛난 음식이니까.
선생님, 오늘은 놀토이라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새벽 일찍 바깥바람을 쐬니 신선한 공기가 참 좋네요.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게 오래도록 마시고 싶었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맛보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아침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매일 아침 7시쯤이면 키가 작은 중년의 아줌마가 우유배달을 위해 교무실에 들어오는데 지나가면서 얼마나 깍듯이 인사를 하는지 저는 정말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아줌마를 볼 때면 저가 오히려 먼저 우리 선생님을 맞이하는 것 이상으로 반갑게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합니다. 아침을 여는 아줌마의 인사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제는 1학년 다니다 미국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복학을 하려는 학생 한 명과 어머님이 저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먼저 학생이 나를 알아보고는 웃으며 인사하더니 뒤에 따라오는 어머니도 똑같이 웃으면서 인사하더군요. 그 딸과 그 어머니는 얼굴생김도,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복사판이었습니다. ‘어디서 공부했나?’ ‘미국에서 했습니다.’ ‘영어 잘 하겠네, 열심히 해라’하니까 학생도 그 어머니도 격려가 되었는지 만족하는 듯이 웃으며 ‘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좋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사를 웃으며 잘 하니 저도 기분이 좋아 학생에게 덕담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이 만족으로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웃음은 남을 기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며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를 향해 좋은 덕담을 하게 만들고 그것이 인사한 사람에게는 힘이 되어 열심히 할 것이니, 웃음은 진정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인사는 기쁨의 원천이구나, 인사는 용기를 샘솟게 하는 샘물이구나, 인사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구나, 인사는 하면 할수록 마음을 순하게 만들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어떤 때는 한 선생님께서 감독을 하시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인사를 하네요. 또 어떤 선생님은 청소를 하다가 역시 웃으며 인사를 하네요. 또 어떤 선생님은 저가 퇴근하면서 늦게까지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저녁식사는 했느냐?, 식사를 거르면 안 된다’고 하니 현관까지 나와 웃으며 '잘 가세요'하고 인사하네요. 또 지난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운영위원 한 분께서 골마루에서 만나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오르네요. 우리학교 학생들도 반갑게 다가와 인사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면 학교에서 살맛이 납니다. 골마루를 지나갈 때도, 운동장 트랙을 돌 때도, 출퇴근할 때도, 운동장 트랙을 돌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저도 선생님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면 저도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마음이 편하니까, 선생님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니까,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생활하는 것을 보니까 자동 웃음을 머금으면서 인사를 하게 되더군요. 억지로 무표정하게 하는 인사보다 웃으며 하는 인사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네요. 하지만 아직도 인사를 외면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히 아침 출근을 할 때 학생들이 빤히 쳐다보면서 무표정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학생들은 인사의 중요성을 모르고 인사의 체험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어서 이들도 인사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가장 기본 중의 하나인 인사가 체질화되도록 교육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우리들의 바쁜 업무 때문에 외면할 때가 있음도 보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며 어떻게 오셨는지?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안내하는 배려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을 보는 중에 어느분이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디가나 친절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로선 관공서를 방문할 때 친절 서비스 정신이 실종된 것을 경험한다면 황당하리만큼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민원인들이 북적대고 업무에 쫓겨 인사할 겨를조차 없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한가한 아침 일찍 찾아간 손님을 애써 외면하는 공무원 자세야말로 아직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끼게 한다. 아침 일찍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업무를 지켜봐도 몇 안 되는 숫자의 손님(민원인)방문에 인사조차 할 수 없다면 뭔가 공무원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글이 가슴에 와 닿네요. ‘아침 일찍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업무를 보면서 손님(민원인)방문에 인사조차 할 수 없다면 뭔가 공무원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지적을 똑같이 우리 선생님들이 받지 않도록 우리 모두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안내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학교의 교화인 백합처럼 향기를 발하며, 우리학교의 교목인 태산목의 새하얀 꽃처럼 아름다움을 뽐내셔야죠.
교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한 번 울리고 두 번 울리고 아니 아홉 번 열 번을 울려도 받는 사람이 없다.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받는 사람’이 없다. 누구의 귀에도 벨소리가 들리질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큼지막한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꽂고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저마다 인터넷에 몰입해 있으니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그래, 그렇잖아도 할 일 많은 학교 교감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본연의 임무 말고 한 가지 일이 더 늘고 말았다. 전화 당번 노릇이 그것이다. 인터넷의 발달,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빠름과 편함, 유용함에 우리 모두가 탄복하고 있지 않은가.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뒤져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자료를 검색하는데 바쁜 선생님들의 노고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이며, 순간순간의 뉴스를 신속하게 검색해 보는 것도 가르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터이다. 머리도 식힐 겸 수업이 없는 시간에 사이버 바둑을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컴퓨터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하루 동안의 피로가 풀려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학교는 선생님들에게 더 편하게 컴퓨터를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까지라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지척에서 쉼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아니면 들려도 못 들은 채 하면서 까지 매달리는 우리 선생님들의 인터넷에의 몰두 내지는 탐닉현상이 가져온 부정적 교단문화가 이제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컴퓨터와 마주하느라 동료 간의 대화가 사라져버린 교무실, 거기다가 개인주의 만연으로 남의 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게 좋고 그저 자기업무와 수업만 잘하면 되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보니 상호 간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고립이 더욱 심화되어 학교가 하나의 작은 섬이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말로는 직장동료라고 하면서도 개인적 대화 한번을 차분히 못 나누고,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공식적인 교무회의 석상에서 겨우 얼굴 한번 스치고 마는,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업무적인 대화, 의례적 인사나 주고받지 가슴을 열고 대화해 볼 기회조차 사라져 가는, 심지어 학교규모가 크고 교직원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까지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교의 선생님 한분이 도로상에서 접촉사고가 나서 상대방과 잘잘못을 놓고 언성을 높이다 멱살잡이 일보 직전에 보험사의 중재로 겨우 어떻게 합의를 보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차량이 자신의 뒤를 따라 학교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어서 아직도 해결 안 된 무엇이 있나했더니, 알고 보니 그 상대방이 바로 자기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학교 수학 여행단이 제주도로 출발한다고 해서 수업이 빈 시간을 이용하여 큰 맘 먹고 공항까지 배웅을 갔던 모 선생님, 대합실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동료교사 한분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너려는데 마침 그 옆에 처음 보는 여성분이 함께 계시면서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아, 사모님이신가보다 생각하고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입니다.”했더니 동료교사는 박장대소를 하고 그 여성분은 기절초풍을 했더라고 한다. 그 여성분은 바로 자기 학교 소속 선생님이셨는데 그걸 모르고 사모님이라 했으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백 날 천 날 먹으면 무엇 할 것인가. 대화가 없다면,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가 전제된 관계의 다리를 놓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인간애, 동료애가 싹틀 것인가. 결국 서로 간의 관계가 모래알 같다 보면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사라지게 되고, 덩달아 직무만족감 또한 현저히 떨어지게 되며 학교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방관자적 분위기가 팽배해져 학교 조직의 건강성이 심대한 위협을 받기에 이르는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가 교육혁신을 이야기 하고, 당국에서도 혁신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일선학교를 채근해가며 별별 정책들을 내놓곤 하는데, 차제에 모든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 제안 하나 하고 싶다. 혁신은 거창하고 관념적인 구호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위에 계시는 몇 사람의 욕심 속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우리 선생님들이 몸소 부딪치고 느끼는 일선 현장에서,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문제 가운데서 실천 가능한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당장, 하루 중 점심시간만이라도 컴퓨터를 끄고 서로 간에 대화를 좀 하자고. 그래서 동료간에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나아지면 생각까지도 공유하고, 좀더 깊어지면 개인사적 기쁨과 슬픔도 함께함으로써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는 진정한 교육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30년 만에 초등학교 제자 7명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중고교 시절에 가끔 보았던 제자도 있고, 어쩌다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기특한(?) 제자도 있었지만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완전히 변해버린 어른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제자도 있었다. 교직 3년차에 처음으로 담임했던 6학년 제자들이어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 항상 잔상으로 그려지던 제자들이다. 벌써 40을 넘은지도 삼사년이 지났을 나이들이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느 정도 안정을 확립했을 나이도 되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제자들도 많겠지만……. ‘스승의 날’ 무렵이었다. 가끔씩 소식 전하는 제자의 전화를 받았다.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머지않아 친구들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했다.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했다. 객지에서 고향의 동창생들과 만나서 온갖 푸념도 해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별별 얘기들을 다 한다고 했다. 즐거워하기도 하고 안타가워하기도 하며 그리워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이 펼쳐진다고 했다. 으레 선생님얘기는 단골 메뉴라고도 했다. 4시간 동안의 식사와 대화시간이 오히려 짧았다. 당시의 어린 시절의 얘기와 살아온 얘기, 나의 지나온 세월의 이력, 지금의 모습 등 할말이 태산보다 많았다. 아직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어린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부끄럽고 자신감이 위축되고 떨리기도 한단다. 많이 늙으셨을 줄 알았는데 너무 젊단다. 그땐 정말 미남이었는데 지금도 거의 그 모습 그대로란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어서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재미있었단다. 글짓기를 잘한다고 작가가 되라고 했단다. 수학문제를 잘 푼다고 잘못하는 다른 친구들 도우라고 해서 수학이 제일 좋았단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 못할 형편이었는데 장학생으로 선발해 줘 진학할 수 있어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됐단다. 글자를 잘 쓴다고 칠판에 자습문제를 제시하게 했단다. 너무 말이 없다고 자신감을 키워주겠다고 부반장을 시켜주고 인사말을 하라했는데 못했단다. 봉사활동 가서 혼났던 일, 신혼이었던 선생님 댁에 3일이 멀다하고 놀러 다녀서 얼마나 귀찮았느냐고, 그 땐 몰랐는데 자라면서 후회했단다. 냇가에 가서 다슬기를 잡아 선생님 댁에서 삶아서 다 같이 먹던 일, 반 대항 이어달리기나 각종 시합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 했단다. 나는 그때의 우리 반 애들에 대해 아직까지 적어도 이름정도는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자신만만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해 낼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어쩔 수 없는 나의 기억력의 한계에 놀랐다. 어떻게 이름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네가 아주 모범생이었는가 보다 그래서 잘 기억 못하나 보다고 얼버무려 버렸다. 미안한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도 못한 체 어정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곱고 수학도 잘했으며, 부모는 학교 근처에서 가게를 하였다니 여러 면에서 특징이 있는데 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내 기억의 세계가 원망스러웠다. 과연 50 명 전원을 만난다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나 얼굴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감이 추락하는 실망을 갖게 되었다. 우린 헤어지기 싫었다. 선생님께서 사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서 자리를 옮겼다. 결국 찻값까지도 내가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았지만……. 다시 전망 좋은 찻집에서 초등 6학년 시절로 되돌아갔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철모르는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써의 보람이 바로 이런 거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맑고 밝은 미소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만큼 그들도 많은 시련을 겪었을 텐데 본시 착하고 순하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시골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생하면서 낮엔 일하고 밤엔 서울모고등학교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땄단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고객에 대한 친절과 신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과 상사들에게 신임을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영업에 성공할 수 있어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 있게 산다고도 했다. 콧등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 별로 잘 가르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려 노력은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들 하나하나에 지극한 관심과 배려를 주지 못했다. 엄격한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잘 놀아주지 못했고, 모범적인 행동만을 주문했었고, 점수를 더 올리라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했었다. 입을 모아 노래한번 불러보지 않았고, 어울려 술래잡기 한 번 못해준 멋대가리 없는 평범하지도 못한 교사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스승이라는 정신적 은사로 생각해 주기 보다는 그냥 우연히 만나 1년 동안 같은 교실에서 머물렀던 선생님이었던 것만으로 기억해도 과분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 안아 주세요.”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내게 안기는 하나하나의 제자들의 등을 다독거릴 때 나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두워서 눈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무척 다행이었을까. 거의 9시간의 만남이 이렇게 끝났다. 교사의 보람은 바로 이런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격스런 체험을 한 하루였다. ‘진심으로 고맙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할 나를 고마운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교장선생님이라면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조금은 점잖은 분이라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비교적 존경을 받는 자리에 근무를 하는 분이고, 특별히 욕을 먹을 짓을 하는 일도 별로 없는 분들이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엄격하신 분이고, 존경받는 위치에 서 계신다고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변하여 비록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점잖은 직업이고 점잖은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임을 하자마자 이제 할 일이 없으니까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 중에 상당수가 야간 당직을 서는 경비업체에 고용이 되어서 야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야근이라면 범죄예방이나 여러 가지 힘들어서 해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요즘 대부분의 경비업체에서는 정년 퇴임을 한 분들을 주로 뽑아 쓰고 있다. 이런 곳이 아닌 전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신 분들이 가끔 눈에 뜨인다. 부동산 중계업을 하는 분들도 그렇고, 택시 기사로 취업을 하신 분들도 가끔은 눈에 띈다. 오늘 여기 소개할 분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을 하자마자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이발소를 차린 분이다. 이미 퇴임을 목전에 둔 겨울 방학 동안에 이발학원에 등록을 하여서 공부를 시작하였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서 퇴임을 한 뒤로 두 달만에 자격증을 따냈고, 곧장 이발소를 차렸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어서 처음 3개월 동안은 이발사를 한 분 두고 운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배운 것만으로 모자란 부분을 스스로 익히고 실제로 경험하면서 배웠단다. 이렇게 해서 퇴임 6개월만에 정식으로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이발소의 사장님이 되셨단다. 이름하여 '모범이발관'. 요즘 흔히 말하는 퇴폐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옛날 식의 이발관이란다. 요즘 이발관에 간다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정도로 이발소가 아닌 이상한 곳이 되어 버린 이발관을 순수함을 지키는 그런 이발관으로 만들어서 운영하겠다는 의지라고 하였다. "처음엔 좀 쑥스럽고 그랬지.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런 부끄럼도 쑥스럼도 없어졌어. 내가 뭐 남을 속이고, 남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봉사하고 봉사한 만큼만 받아서 생활에 보탬이 되면 좋고 아직은 그냥 소일거리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별로 걱정도 없고 얼마나 속이 편한지 몰라." 이렇게 말하면서 지난달에는 이발을 하던 분이 나가고 혼자서 시작을 하여서 처음으로 결산을 해보니까, 운영비가 빠듯하더라고 운영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래도 걱정은 없단다. 전기세 몇 푼, 가계세와 수도세 조금 내면 되는데 그까짓 거야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점점 알려져서 중년들은 우리 이발소를 일부러 찾아오고 있어. 요즘 이발관에 가기가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여기 오면 나하고 얘기하면서 부끄러운 일없이 이발만 하고 가니까 깨끗하고 기분이 좋다고들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단골도 생겼어"하고 말을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게된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다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재를 기르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많으며, 그 동안 쌓은 경륜을 살려서 좀 더 유익한 곳에서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단순 노동에 해당하는 가위질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태백이 현실이고, 45정이 보통이며, 56도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갈수록 노령화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노령 인구의 활용이 대단한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다. 노령 인구의 활용을 하되 가장 효율적이고, 경력이나 개인이 가진 기능이나 능력을 살려서 나라에 유익한 노동력이 되도록 하는 것만이 이 나라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발사가 된 교장선생님의 경우는 국가가 가장 잘 못된 인력관리를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매 맞는 장면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연구실로 돌아 온 나는 기간제 교사인 새내기 박 선생님한테 매 맞는 장면의 동영상을 빨리 보여 달라고 하니 “선생님, 그것 보지 마세요.” 한다. “왜 그러지?” 하니까 “그것 보면 대단히 기분이 나빠요.” 한다. 더욱 궁금하여 “그래. 더 궁금해지는군, 빨리 보여줘.” 하는 순간에 벌써 화면에 체벌하는 장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면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매를 맞는 사람보다도 매 맞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더 공포심을 가지듯, 그야말로 이제 겨우 유치원 생활을 벗어난 아이들을 교단으로 불러내 뺨을 때리고 책을 던지는 모습이 보인다. 같은 교육자의 입장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내가 체벌을 한 당사자인 양 수치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들의 각종 비행으로 국민들의 눈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얼마나 언론의 매를 맞아야 할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체벌 하면 먼저 '회초리'를 떠올리듯 물리적 수단으로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교육 효과를 얻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물리적 수단'은 통상 회초리 같은 도구나 체벌을 가하는 교사의 신체의 일부를 의미하지만 반드시 직접적 접촉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걸음이나 손들고 있기 등 당사자간 직접적 접촉 없이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혹은 언어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도 체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두 분 계신다. 한 분은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6학년 선생님이시다. 2학년 때 선생님은 새내기 선생님으로 키도 작으시고 마음씨가 참 좋은 분이라고 기억을 한다. 감기로 결석을 하여 숙제를 6학년 누나가 그림 그리기와 글씨 쓰기를 대신 해 준 것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숙제검사를 맡을 때 나는 누나가 해 준 것을 알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며 책상위에 펼쳐 놓았는데, 오히려 여러 친구들 앞에서 결석을 하였는데도 숙제를 잘 해왔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그 때 칭찬의 위력은 너무나 위대하고 감격스러워서 지금껏 잊어지지 않는다. 그 때의 칭찬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후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칭찬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 그 때 선생님이 숙제를 대신 해 주었다는 것을 모르고 칭찬을 하였으리라고 생각은 않는다. 항상 순둥이처럼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것을 알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하셨다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6학년 때 선생님은 엄격하시고 무서웠던 분이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으로 매달 시험을 보아 우열반 편성을 하였었다. 선생님은 붓글씨를 잘 쓰셨는데, 교실벽면에 큰 글씨로 ‘언행일치, 실천궁행’이라는 표어를 붙여 놓고 철저하게 실천하기를 강요 하셨다. 선생님 스스로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실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다 보니 스파르타식으로 규율과 규칙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는 엄청난 꾸지람과 매를 맞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지휘봉 겸 회초리가 머리위로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하여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였는지 지금 생각을 하여도 등에 땀이 흐른다. 선생님의 발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기도 하고,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심하게 맞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매가 무서워서 공부시간은 쥐 죽은 듯 조용하여야만 하였고,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숙제도 꼬박꼬박 열심히 하였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입시가 다가올수록 선생님은 더욱 열성적으로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하시게 되어 회초리의 강도도 더 늘어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도 선생님만 나타났다고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리는 부동자세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20여년이 지난 후 반창회를 하자며 연락이 왔다. 반창회를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도 찾아뵙는다며 꼭 함께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어릴 때 의욕에 넘쳐 열심히 가르치시던 엄격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건강은 어떠신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였다. 같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엄하고 무서웠던 선생님을 만나면 주눅이 들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하고, 어렸을 때의 그 느낌을 씻어버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같은 교육자로 당연히 찾아뵙고 선생님의 교육경륜과 교육업무와 관련된 지도조언을 받고 싶기도 하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도 학생들과 생활한지도 30여 년이 지났다. 해마다 학생을 맡게 되면 우리 반 학생들을 1년 동안에 어떠한 학생으로 지도를 할 것인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희망에 부풀어 학급경영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학생을 대할 때는 내 자식과 같이 잘 했을 때는 칭찬으로 잘못했을 때는 꾸지람과 체벌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열린 교육은 교육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교사 주도의 수업에서 학생주도의 학습으로 일방적인 강의식 위주에서 다양한 학습형태로 창의적인 학습활동과 학생주도의 학습으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변화이다. 종전에는 교과서와 선생님의 말씀이 법전이며 성전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ICT활용 교육으로 기성세대와는 달리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신성시 하거나 절대시 하지 않으며,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의견과 주장을 내 세우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이제 그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계셔도 장난을 치고, 감정을 감추지 않고 똑바로 선생님 눈을 쳐다보며 의사 표현을 당당히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준비하지 않은 수업시간은 학습지도가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생활지도 또한 다양한 사회변화에 따른 문제행동,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성폭력, 반항적인 언어와 행동, 학부모님들의 자기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해가 다르게 학생 가르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제 변화하는 사회에 선생님들도 학생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알맞은 다양한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또한 체벌보다는 칭찬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는 칭찬의 위력을 내가 실제로 체험을 하였고 학생지도에서 칭찬의 효과를 톡톡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칭찬은 체벌보다 지속성이 오래가며 바람직한 행동의 개선이 된다는 점을 교육학자들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아 실감나게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칭찬은 잠자고 있는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자씨는 아프리카 기아지대를 탐방하고 돌아와서 저술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그의 수상집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잘 타나내는 것이리라.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 모두 다시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는 31일 실시되는 교육위원선거가 과열경쟁으로 인해 혼탁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와 비전교조의 세력다툼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 사립과 비사립간의 대결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선거운동초기에 과열, 혼탁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위원선거에서 과열경쟁으로 인한 우려는 이번 선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매번 선거때마다 뒤풀이 되어왔던 현상이다. 후보자들의 과열경쟁, 비방등이 원인이 되어 고소, 고발등의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 결과에 따라 중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후보직을 사퇴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렇게 다른 선거에 비해 유독 교육위원 선거에서 과열경쟁으로 인한 혼탁선거운동이 많은 것은 선거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구조적인 문제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교육위원선거가 학교운영위원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는 간접투표형식이다 보니 학연, 지연등의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후보가 학교운영위원을 자기 사람으로 진출시키느냐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 교원들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엉뚱한 인사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교육자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위원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세가지 뿐이다. 후보자의 선거공보물, 언론등에서 주최하는 토론회 참가, 합동연설회가 전부이다. 이 방법외에는 유권자를 만나거나 전화, 문자메시지, 메일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엄격한 선거법이 결국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을 엄격히 지킨다고보면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선거법이라는 지적이다. 선거법 자체가 이렇게 엄격함에 따라 해당 유권자들의 알 권리도 침해될 수 있다. 후보자를 정확히 알고 투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거공보물만을 참고로 하여 투표를 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그동안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후보가 교육을 위해 일할 후보자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후보자들은 이미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깊숙히 관여를 할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간에 인맥을 총동원하고 자기 사람을 운영위원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당,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일선학교의 운영위원회가 자칫 변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순수함을 잃고 운영위원회가 정치판으로 변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직선에 의한 선출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선거법 자체만이라도 손질되어야 한다.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요즈음 같은 정보화시대에 인터넷활용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활용등은 도리어 적극권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위원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교육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과열, 혼탁선거를 없애기 위해서는 교육위원 출마자들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도적인 보완도 중요하다고 본다. 즉 의식변화와 함께 선거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것이 과열, 혼탁선거를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경쟁력 확보를 통한 선진화를 추구하는 전ㆍ현직 교육자와 학자, 학부모들의 모임인 '교육 선진화운동본부'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에서 발기인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했다. 이명현 발기인 대표(前 교육부 장관)는 "교육의 내용을 다양화하고 운영은 자율과 책임에 맡기며 암기와 주입식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게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우리 단체는 교육의 새 패러다임을 전파하고 경쟁력을 키우도록 다양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명현 대표와의 일문일답. --교육선진화본부 창립을 추진한 계기는. ▲ 교육부 장관을 할 때부터 우리 교육체제를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바꿔야 한다고 꿈꿔왔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분야의 혼란이 급증, 그대로 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임 구성을 추진했다. --현 교육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전교조와 386세대가 청와대에 앉아서 교육정책을 흔들어 정보화 사회로 제대로 못 가고 있다. 사람의 능력이 다양한데 자꾸 평준화시키려니까 능력 발휘가 안되는게 아니냐. 정부가 자꾸 교육시장에 개입하고 규제책을 내놓을게 아니라 자율성을 길러줘야 한다. --교육선진화본부의 이념적 성향은 무엇인가. ▲ 보수, 진보의 이념논쟁은 이미 20세기의 것으로 지식정보화 사회에는 필요 없다. 다만 전교조가 교육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선진화본부는 반(反)전교조 단체인가 ▲ 교육선진화를 가로막는 집단은 많은데 전교조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이들은 획일적인 교육, 교육의 정치화를 갖고 오는데 우리는 교육의 다양화와 정치적 중립성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전교조라는 특정 집단을 반대하는 단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다. -- 교육선진화본부가 바라는 교육정책 방향은.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맞게 교육의 시스템을 다양화해 개인이 가진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해야 한다. 교육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교원평가 시행 등으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교육선진화본부의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발기인이 95명인데 전국적으로 교육전문가, 교사, 학부모, 학교운영자 등 각 분야의 회원을 모집해 수 천명까지 넓혀가겠다. 현안에 대해 세미나, 토론회를 하는 것은 물론 여론을 모으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포괄적인 교육운동을 하겠다.
한국교총이 교육혁신위의 교장공모제 강행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총은 25일 교육혁신위의 교원승진제도 변경추진에 대한 성명 발표를 통해 “노무현 정부 퇴진운동, 대규모 규탄집회, 교장․교감자격증 반납 투쟁, 보직교사 반납투쟁 등 40만 교원의 총의를 모아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강력 투쟁하겠다”고 천명했다. 21일 교육혁신위는 본회의를 열어 교직경력 15년 이상의 교사가 응모하는 보직형 교장공모제를 실시하되, 공모제 학교선정 및 학교수는 시․도 교육청에 위임하거나 결정하도록 하고, 교감직은 유지하되 공모교장이 초빙한다는 내용의 교장공모제 도입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혁신위는 또 보직형 수석교사제 도입, 근평에 학부모·학생평가 10% 반영 등을 골자로 하는 교원승진제도변경안을 마련한 것을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교총은 교육의 전문성을 무너뜨리는 교장공모제 도입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혁신위 본회의가 마련한 안이 기존 교원정책특위에서 논의된 안보다 다소 완화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교직전문성을 부정하고, 학교의 정치판․선거장화라는 공모제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특히 “공모교장의 교감 및 교사초빙에 따른 학교구성원간의 위화감 조성과 갈등초래는 궁극적으로 학교교육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총은 또 보직형 수석교사제 도입방안을 즉각 철회하고 자격체제개편을 통한 수석교사제 도입을 요구했다. 교총은 “교육혁신위가 가르치는 교사의 꿈인 수석교사제를 기존 승진체제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보직형 수석교사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는 수석교사제의 취지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교총은 교사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근무평정 도입방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교총은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저해하고 교사의 자율성 침해가 우려되는 졸속 방안이다”며 “교사로 하여금 교육본질에 앞서 학부모․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눈치보는 교사’로 내몰 것”이라고 지적했다.
퇴근 후 교육에 뜻을 같이 하는 몇 교감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일상 모임의 경우, 항상 장소 때문에 문제다. 모인 구성원 다수가 만족해야 하는 장소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음식점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또 그 이후 2차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리포터의 경우, 음주를 잘 못하기 때문에 음주문화를 새롭게 만들려 하고 있다. 즉, 술잔 돌리기는 금물, 주량에 맞게 자기 술잔에 본인이 알아서 따라마시기다. 술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매력없는 술문화인 것이지만 이런 문화를 전파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대개 다음과 같이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저녁 식사하고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라이브 카페에서 맥주 한 잔으로 이상 끝. 정 분위기가 좋으면 뜻 맞는 사람끼리 노래방. 그 정도였다. 그것으로 대화도 무르익고 분위기도 어느 정도 잡고... 괜찮은 모임으로 자평하고 있다. 오늘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즉, 술을 아예 배제시키고 야외 공원을 이용하는 방법.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그 이후엔 과일 한 봉지 사서 공원 한바퀴 산책하면서 못다한 이야기 과일 먹으면서 오붓하게 나누고 벤치에 앉아서 심야토론하기. 건강도 지키고 우리 고장 문화재에 대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자신의 교육철학에 대해 열변도 토하고. 또 교육현안, 학교에서의 교감의 역할, 교직원과의 관계, 교육청과의 관계, 교장과의 관계 설정, 앞으로의 진로 등 이야기거리가 끝이 없다. 맨 정신에 하니 허튼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실수도 없다. 과음으로 인한 결례가 나올 수 없다. 자연히 대화는 진지해 진다. 각자의 '교육애(敎育愛)'가 나온다. 학교에서의 실천사례가 이어진다. 이웃학교 이야기도 하면서 교훈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술 없는 회식 문화, 한 번 쯤 고려해 볼만하다. 아니 실천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식사 후 고장의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건강을 생각하고, 애향심을 돋우는 이야기를 나누고 맑은 밤공기를 쐬면서 나누는 진지한 교육토론. 교육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어찌 신선하지 않을까!
지난달 학교급식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학교급식조례가 본격시행되면서 충남도가 올해부터 시군 지원에 나섰으나 일부 시군에서는 조례가 제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행이 시작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논산시 민주단체연합회와 민주노동당 논산시위원회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 당국이 학교급식조례에 따라 예산집행을 논의할 심의위원회도 구성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예산을 일선 학교에 배분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논산시는 올해 초 학교급식조례가 입법예고만 됐을 뿐 아직 심의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는데 예산 7억8천여만원 중 절반을 이미 집행했다"며 절차상 문제점을 제기했다. 논산시 학교급식조례안에서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시 교육청과 학부모, 교사 등이 참여하는 급식비지원 심의위원회를 구성토록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시는 "충남도에서 학교급식 도 심의위원회를 열어 시군별로 예산을 집행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며 "조례제정 문제로 논의가 길어지면 자칫 학생들에게 급식지원을 못할 수도 있는 만큼 도의 공문에 근거해 상반기 예산을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혼선은 도와 일선 시군에서 모두 조례안에 '급식지원 심의위원회'를 두도록 명시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일선 공무원들은 지적했다. 도 관계자는 "도에서 이미 심의위원회를 열어 예산집행을 결의했는데 시군에서 또다시 심의위원회를 여는 것은 (권한관계가) 애매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학교급식법 제정시 행자부가 마련한 표준조례안에 따라 시군도 심의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도와 시군에서 각각 심의해야 할 역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26일 '통일학교' 세미나 자료의 북한자료 인용문제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의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지난해 10월 진행된 통일학교는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 주관으로 20명 내외의 교사가 모여 국내에 출간된 서적에 실려 있는 북한측 역사자료를 토대로 세미나 활동을 한 것"이라며 "세미나는 최근 남북교류사업을 통하여 북한을 직접 방문했던 교사들이 남한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모습을 접하면서 북한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부산지부는 "자료집이 인용한 '현대조선역사'는 1983년 북한이 펴낸 역사책이나, 국내에서도 발행돼 현재 국내의 역사학자들의 저술에는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며 "이 자료를 토대로 토론활동을 벌인 것이 친북 활동이 된다면 학자들에게는 허용되는 학술.연구의 자유가 교사들에게는 왜 허용되지 않는지 되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또 "일부 언론에서 자료 내용의 문구 하나하나를 마치 전교조 부산지부의 주장인 양 왜곡하고 남한 정서상 도저히 그대로 인용하기에 부적절한 부분을 일부 수정, 삭제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주체사상을 교묘하게 미화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으로 색깔공세를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그러나 "자료집이 북한측 자료를 발췌, 인용하였음에도 서론 등을 통해 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자료집 표지에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란 명의를 표기함으로써 마치 자료집의 내용이 전교조 부산지부의 입장인 듯한 오해를 살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불찰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교조 부산지부는 "북한측 자료가 실린 것이라는 점을 세미나에 참가한 교사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오늘 새벽은 비가 제법 많이 내리더군요. 그 동안 소강상태에 있던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하여 비가 많이 올 기세를 보이고 있군요. 그래도 선생님들은 평소와 같이 정상대로 일찍 출근하셔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니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시도와 마찬가지로 울산에서도 오는 8월11일에 제4대 울산시교육위원 선거가 실시됩니다. 교육위원의 유급직 전환으로 인해 역대 선거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고 특히 올해 울산교육위원 선거는 제4대 교육위원회 구성은 물론 사전 선거법 위반으로 사실상 공석상태인 차기 교육감 선거의 전초전 성격이 강해 교육위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샅바싸움도 뜨거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앞선 교육감 선거와 마찬가지로 과열 혼탁선거로 얼룩이 질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울산에는 4명의 교육위원을 뽑는 제1선거구(중구·북구·동구)의 경우 10여명이 출마 채비를 마쳤고, 3명을 뽑는 제2선거구(남구·울주군)에도 10여명 이상이 출마여부를 저울질 하며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밖에도 8월1일 후보자 등록 전까지 학연·혈연·지연 등 각종 연줄을 동원, 세를 모으면서 출마 여부를 저울질 하고 있는 분도 상당수에 달해 전체 출마 후보자는 20~25명선에 달할 것으로 언론계는 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엊그제 지난 8월 말에 퇴직하신 교육위원 후보군 물망에 오르고 있는 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를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운영위원도 아니고 전에 교육청에서 과장으로 모신 분이라 만나기를 원했고 함께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나누며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교육청에 있을 때도 무슨 현안이 생기면 저를 불러 귀를 기울이는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이번에도 교육위원 출마를 앞두고 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 교육위원 나오시려면 학연, 혈연, 지연 등 각종 연줄을 동원하려 하지 말고 곁눈 팔지 말고 오직 다만 선거공보의 발행 및 배포, 두 차례의 소견발표회, 언론기관 등의 초청대담·토론회를 통해 승부수를 던져라고 했지요.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발자취에 흠집을 남기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울산과 같은 불법 혼탁선거로 두 번이나 교육의 수장이 물러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혼탁선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교육위원으로 선출되도 살고, 떨어져도 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분들이 많이 나오니까 교장선생님은 초등교사, 중등교사, 중학교 교장, 고등학교 교장, 장학사, 과장으로 근무한 44년의 경험을 무기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연세많으신 현 교육위원들이 나오니까 교육위원하기에는 아직 젊음을 무기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급제로 인해 경쟁이 치열하고 과열현상이 일어나는 만큼 교육위원이 되면 유급제로 인한 급료는 모두 교육발전을 위해 쓰겠다고 선언하라고 했지요. 유급제 만들어 놓지 않아도 헌신하는 마음으로 교육위원 하실 분이 많은데 왜 국가예산 없다고 하면서 유급제를 만들어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남들 의식하지 말고 꼭 공약 안에 넣어 차별화를 시도하라고 했지요.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만약 교육위원이 되신다면 앉아서 말만 하는 그런 교육위원,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교육위원이 되지 말고 40년 교직평생의 투자했던 그 열정으로 울산교육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발바닥으로 뛰면서 몸으로 해결하는 교육위원이 되셨으면 한다고 말씀도 드렸습니다. 아무튼 울산에 새로 선출되는 교육위원들은 말만 하고 영향력이나 행사하고 행함이 없는 그런 분보다 교육의지가 투철하고 실천력이 강하며, 근면성실을 무기로 열심히 발로 뛰며, 교육에 현안에 대한 깊은 연구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비전 있는 그런 교육위원들이 뽑혔으면 합니다.
일본 문부과학성 중앙육심의회 워킹그룹은 6일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교원을 양성하는 「전문직 대학원」설립에 관한 기본 구상을 정리했다. 처음 계획단계에서는 2007년 4월의 개교를 목표로 하였으나, 1년 연기하여 2008년에 개교할 예정으로 있다. 전문직대학원의 설치는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이 2004년 10월, 중교심에서 자문한 것으로, 지도력 부족 등 「교원의 질」이 문제가 되는 가운데 아이들의 학습 의욕 저하나 등교 거부 등 현안 교육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교원을 폭넓게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기본 구상은 우선, 대학의 교원 양성 실태 대해서, 「강의가 중심으로, 연습이나 실습이 불충분하다」 「교직 경험자에 의한 지도가 충분하지 않다」 등, 학교 현장의 실태나 요구와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양과 질 양면에서 뛰어난 교원을 양성·확보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제언했다. 게다가, 신설되는 전문직 대학원에는 첫째, 각 지역에서 지도적 입장을 담당한 교원이나, 관리직이 되려는 교원을 육성하는 일, 둘째, 학부 졸업한 교사를 「바로 유능한 교사로 활동」하도록 양성한다. 셋째, 교원 자격을 갖고 있지 않는 사회인도 폭 넓게 받아들이는 등의 역할을 요구했다. 수업 연한은 원칙적으로 2년이지만, 교원 면허가 없는 사회인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직대학원에 재학 하면서 학부에서 배우는 교직 과목도 이수할 수 있는 「장기 재학코스(3년)」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교재연구와 수업계획, 학생 지도 등을 전원이 학습하는「공통 과목」으로 하고, 심리학이나 집단학습론 등 「코스별 선택 과목」도 마련한다. 필요에 따라서 현지조사나 실무 실습 등도 실시할 예정으로, 지도자에게는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교사 등을 배치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동 비행 문제 등에 정통한 가정재판소의 조사 경험자 등을 채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31일에 울산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의 53개 선거구에서 교육위원 선거가 실시된다. 중앙선관위가 분석한 시・도별 경쟁률에 따르면 7명(1선거구 4명, 2선거구 3명)을 뽑는 충북의 경우 29명이 등록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4.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선거구별 출마자 수도 4명을 선출하는데 17명이 등록한 충북 1선거구가 전국 선거구 가운데 가장 많다. 충북에서 이번 교육위원에 출마한 사람들의 면면을 알아본다. 제1선거구에서는 고규강 교육위원(60·경력), 곽정수 청주 흥덕고교장(61·경력), 김강현 민병철어학원장(49·비경력), 김남훈 교육위원(66·경력), 김병우 전 전교조충북지부장(49·경력), 김윤모 청주 베다니학교장(45·비경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63·경력), 김진환 충주대 영어강사(56·경력), 김학선 전 청원교육장(63·경력), 민병천 한국어린이신문사장(45·비경력), 박노성 청주 중앙초교장(60·경력), 서수웅 청주교대부속초교장(61·경력), 송인수 전 학교운영위원회충북협의회장(45·비경력), 이기수 교육위원(64·경력), 이승업 전 보은교육장(62·경력), 정무 전 옥천교육장(64·경력), 한재순 충북중·고태권도연맹회장(45·비경력)이 출마했다. 제2선거구에는 권영정 충주목행초 교장(61·경력), 김부웅 진천 상산초교장(62·경력), 박천규 충주교육청 교육과장(62·경력), 성영용 교육위원(59·경력), 심재선 괴산북중교장(62·경력), 어경선 전교조충북부지부장(55·경력), 이상일 교육위원(67·경력), 이철주 전 충주교육장(64·경력), 전유근 전 단양교육장(63·경력), 정세헌 청주 경덕초교장(62·경력), 정태국 충주중교장(63·경력), 최성택 제천농고교장(62·경력)이 출마했다. 7월 25일 오후 2시부터 청주시민회관에서 이번 선거에서 출마자가 가장 많아 관심을 끌고 있는 충북 1선거구의 소견발표회가 열렸다. 이번에 출마한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다. 충북 교육계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게 좋은 일이기도하다. 그런데 출마자가 많은 것과는 달리 소견발표회장의 좌석은 듬성듬성 비어있고 분위기마저 썰렁했다.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직접 참여해 소견발표를 들어보며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출마자 개개인의 인격이나 능력도 검증해야 한다. 단상에 있는 출마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교육자치가 걱정되었다. 이날의 소견발표회는 후보가 17명에 달하는 만큼 소요시간을 감안해 관할 선관위인 청주시 흥덕선관위가 최대 20분으로 돼있는 소견발표회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했다. 문제는 10분이라는 시간이 모든 교육철학을 밝히는데 짧다는 것이다. 당일 추첨에 의해 결정된 순서대로 소견발표가 진행되었는데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시간에 쫓겨 소신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래도 자신의 교육철학을 알리느라 최선을 다하는 출마자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권역별 소견발표회가 진행 중이지만 후보들을 옭아매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행 교육위원 선거법으로는 직접 투표에 참여할 학교운영위원들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더구나 투표하는 날이 방학기간이고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떠나는 기간이라 투표율까지 걱정된다. 이번에 출마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경륜이나 교육철학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지역 언론에서 토론회 등을 개최해 출마한 사람들이 자신의 교육철학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7월 31일 학교운영위원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소중한 한 표가 교육을 발전시키고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한다는 것을 알고 소신껏 교육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교육위원에 출마자한 사람들도 선거 때만 철새마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후 당락을 떠나 내가 충북교육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교육발전에 매진해야 한다.
오늘은 논술 연수를 받다가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 바로 창의력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대학교수님들이 논술을 채점할 때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바로 창의력이라더군요. 창의력이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한발 먼저 생각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창의력이란 것이 묘해서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평소 논술에 필요한 창의력을 기르려면 대략 네 가지 정도를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창의력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 구조를 재조직하거나 변경함으로써 생성된다. 둘째, 각각의 요소인 낯선 부분들을 엮어본다. 그 부분들을 재배치하거나 재조직할 수도 있으며 형태를 바꾸어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키면 바로 창의적인 생각이 된다. 셋째, 친숙한 장면에서 어떤 관계를 낯선 장면으로 전이시키는 유추적 전이를 해본다. 넷째, 드러난 대상이나 요소들을 보다 기본적인 범주로 줄여보는 것이 ‘축소’인데 범주를 축소시키면 대상이 가지는 기능이 보다 넓은 것이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창의적인 경우의 예를 들어보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를 그릴 때 수평으로 떠 있는 모습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럴 때 나 혼자 수직으로 서 있는 물고기를 그리거나 아니면 거꾸로 박혀 있는 물고기, 또는 정면에 본 물고기를 그리게 되면 바로 창의적인 그림이 되는 것이죠. 안구기증협회에서 안구기증을 호소하는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답니다. 본격적인 광고가 나가기 전 늘씬한 미녀들의 사진을 30초 동안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멘트가 나옵니다. “안구를 기증하십시오. 그러면 죽어서도 저런 아름다운 미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봉사, 종교적 희생, 개인의 도의심 등에 호소하는 것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 호소할 때 사람들은 더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죠. 또 이런 예도 있습니다.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연수를 시킬 때 실제로 냈던 문제라고 합니다. 1번부터 20번까지 아주 까다로운 문제를 출제한 뒤 그 문제들을 빠른 시간에 모두 풀고 가장 먼저 본부에 도착한 팀에게 큰상을 주는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펼쳐든 신입사원들은 그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 문제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세종대왕이 몇 살 때 훈민정음 창제를 결심했는지 쓰시오. 북극과 남극 중 어느 곳의 얼음이 더 두꺼운가 논술하시오. 여자가 남자보다 많은 나라들을 모두 순서대로 쓰시오. 모든 팀들이 이처럼 황당한 문제에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갑자기 어느 한 팀에 문제를 모두 풀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더랍니다. 다른 팀들이 너무나 의아해서 주어진 문제를 자세히 읽어보니 글쎄 20번 문제에 이렇게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위 문제를 풀지 말고 빨리 가시오." 이처럼 우리는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고정관념이란 함정에 빠져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논술에서 이런 경향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점만 각별히 조심하면 우수한 논술문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