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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랑으로 키운다. 사랑만이 아이를 온전하게 키울 수 있다. 사랑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부모의 아이 사랑은 당연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향해 한없이 주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비유한다. 무조건 주기만 하는 사과나무의 사랑은 부모의 마음과 닮았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어려울 때는 열매까지 내어 주는 헌신적인 태도가 부모의 사랑과 똑같다. 주변에서도 보면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다. 혹여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른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지 주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보에 싸서 키운다. 아이가 크고 제 힘으로 걸어 다녀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넘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돌본다. 이것이 어릴 때로 끝나면 좋은데,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은 끝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 부모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 남보다 잘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욕심이다. 그래서 학교 공부로 부족하니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킨다. 전문가들이 과외는 효용이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매년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이것이 빈부격차를 더욱 가속화하는 사회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부모의 이기주의이고 핵가족 시대에 자기 자녀만 생각하는 속물적 사고라고 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자기 자녀만 더 공부시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은 지적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이것이 부모의 잘못만은 아니다. 과외를 해야 하는 우리 교육 환경이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이 결정되고, 그 대학의 가판이 좋은 직장까지 보장한다. 당연히 부모들은 사교육까지 하면서 시험에 전력할 수밖에 없다. 더욱 자주 바뀌는 입시 시스템도 사교육을 부추긴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은 결국 좋은 조건으로 결혼까지 하려는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선후 관계를 잘 따져야 한다. 사람을 좋은 성적으로 평가하고, 결혼의 조건으로 연봉을 따지는 사회가 이런 문제를 만든다. 부모들이 아니 자식들까지 그들은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학력과 수입을 따지는 세상에 누가 고고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닦기 위해 고군분투할까. 결국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부모들의 마음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이다. 석차 한 줄로 세우는 평가 방식이 있는 한 사교육은 줄지 않는다. 소수점 차이까지 두면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은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어렵다. 기업도 인재를 뽑을 때 미래 역량을 측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해야 한다. 광복 70주년이라고 좋아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무턱대고 흥겨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서는 우리나라 미래가 밝지 않다. 물질보다는 더 높은 정신적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나라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산업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학교가 나서야 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성적으로 인재를 가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학력이 중시됐다. 과도한 경쟁으로 학교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게다가 빈곤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물질을 중시하고,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패와 비리가 만연했다. 급기야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했다. 법으로 정한다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까. 물론 인성교육으로 좋아지면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아기가 귀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모두 밥상에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 이 사회가 직업, 학력, 쇼핑 등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중시한다면 부모들은 아이들과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이렇게 된다면 지나치게 공부해라 명령하지 않는다. 체계적인 독서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영원한 가치를 탐색하도록 돕는다. 사회가 변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 과거 학문에서는 높은 투자와 교육 연구개발 만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발전된 경제학에 따르면 경제 성장의 뿌리는 좋은 제도와 문화라고 한다. 제도와 문화가 잘 확립돼야 거기서 자율과 창의가 나오고 지속적인 혁신이 이루어진다. 경제학자의 말이다. 이 말이 꼭 경제학에만 해당될까. 서구의 선진국은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 한계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즉 각종 문화와 제도가 좋은 나라는 국민소득이 계속 성장하지만,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려도 문화와 제도에서 발전하지 못한 나라는 국민소득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꼭 그런 위치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오르고 저성장을 걱정해서 노동 및 경제 개혁 등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교육과 사회 등의 개혁도 필요하다. 그것은 의식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의 편협한 잣대가 없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자신의 가치와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우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르쳐도 손해를 보지 않는 사회 문화가 인성교육, 가정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장마의 막바지 칠월 말 자비를 들여 삼십여 년간 교직 생활의 손때와 추억이 묻은 자료들을 허름한 농가에 전시해 놓은 박연묵교육박물관을 찾았다. 장마의 눅눅함과 곰팡내가 촌집의 이곳저곳에서 피어나고 이끼긴 슬레이트 지붕과 솟아오른 텔레비전 안테나가 시선을 앗아간다. 그 박물관의 주인공은 퇴임한 지 이십 년이 지나서인지 교직에 몸담았던 분이라기보다 촌 할아버지란 인상이 더 진하게 묻어난다. 반가운 인사 끝에 여러 말이 오가다 인성교육에 관하여 묻자 “요즘세상 엄마는 있어도 어머니는 없어요.” 탄식하며 옛날의 농촌 일상을 반추하신다. 못 먹고 가난한 시절, 며느리가 젖먹이를 두고 밭일을 나가 일하다 보면 젖이 불어난다. 분유가 귀했던 시절 보채는 아기를 업고 시어머니가 밭 가에 오면 엄마는 아기를 얼른 넘겨받아 젖을 물린다. 젖을 빠는 아기는 한 손으로는 엄마 젖을 만지며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안정감을 찾는다. 그리고 배가 어느 정도 차면 옹알이도 하고 엄마와 눈웃음도 나눈다. 이렇게 엄마와의 교감으로 인성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돈이면 최고라는 황금만능의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인성교육의 부재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된 인성교육진흥법을 들먹거린다. 이 법안은 이미 7월 21부터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하는데 무슨 인성교육을 법으로 만들어 한단 말인가? 개탄할 일이라고 혀를 찬다. 그러면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든 목적은 뭘까? 그것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으로 주요 골자를 보면 ‘2015년 7월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인성교육 교과목 수업시간이 법으로 정해지고 학교는 총예산의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써야 한다. 교육감은 기본계획에 따라 자체 세부계획을 세우고, 학교장은 매년 학기 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한 뒤 이를 연말에 평가받도록 한다. 교사들은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화해서 관련 연수를 강화하고, 교원 양성 기관에서는 인성교육 필수과목을 개선한 뒤 임용시험에서 검증을 강화하도록 한다.’ 이다. 그런데 가장 혁신적인 점은 미국처럼 인성교육 예산을 정부정책과 예산으로 뒷받침되도록 의무화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성교육은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심을 기르는 게 그 핵심적 가치로 학습자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본성을 실현 촉진하는 활동 또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습자가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 나아가 습관의 변화를 불러오게 하는 가치 내면화 차원의 교육’이 인성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인성교육의 법제화를 불러온 것은 무엇인지 고개를 돌려봐야 한다. 몇 년 전 학교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은 모두 귀하고 소중한 만큼 부모의 관심과 목소리도 크다. 그런데 손자를 귀엽다 하면 할아버지 상투를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나친 관심은 논란을 가져온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사소한 다툼이 있어 학부모가 교무실에서 서로 언쟁과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한 치의 양보도 배려도 없는 험악한 상황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년을 얼마 안 둔 어느 선생님은 걸레질 한 번 안 해보고 손빨래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이 부모가 되어 제 아이만 두둔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큰 일이라고 했다. 남의 눈 티는 잘 봐도 내 눈의 티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인성의 부재는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자살 등 수많은 사건․사고를 양산하고 있다. 이런 인성피폐의 원인은 어디에 찾을 수 있을까? 모두 잘 알고 있는 입시 위주, 경쟁교육,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 라는 승자독식 우월주의의 사회 국가적 현상에 찾을 수 있다. 어느 고등학교의 학년도 말 모습이다. 수학능력고사가 끝나면 교문 앞에 ‘축! 000, 서울대 00학과 합격’이라는 현수막과 지역신문에는 축하광고가 등장한다. 그리고 졸업식이 되면 명문대와 4년제 대학에 몇 명 입학했다는 학사보고와 학교장의 회고사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그 대열에 낀 졸업생은 장학금과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그네들만의 축제의 장이 된다. 또한, 학교는 이제 명실상부한 명문고임을 애써 힘을 준다. 이런 ‘학력지상주의’, ‘일등지상주의’가 뒤흔드는 현실 상황에서 어떻게 바른 인성교육이 가능해질까? 진정한 인성교육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활에서 감성과 감동으로 사랑과 인연,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가슴으로 배우는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는 것이다. “내 교직 생활에서 가슴 아픈 일이 딱 한 가지 있네. 새 학년 담임을 하였지만 몇 달째 학교에 오지 않아 여름방학을 앞두고 가정방문을 가보니 수술비가 없어 심장병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지. 그래서 준비한 몇 권의 책을 주며 방학 후에 만나자고 했는데 개학 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억장이 무너졌지!” 구릿빛 주름이 말린 얼굴에 묻어나는 원로 은사님의 회한이 인성교육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김 선생님,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전략지형과 지정학적 역학관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지각 변동이 일본의 부상과 중국의 쇠퇴에 기인한 것이라면 21세기에는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정체가 역내 세력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현상을 타파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신흥세력 간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충돌할 위험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 장소가 바로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 영토분쟁, 일본의 ‘보통국가화’ 등 역내 핵심 안보 현안의 중심에는 그런 알력과 대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현재 당하고 있는 도전도 심상치 않습니다.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받고 있는 러브콜은 동아시아 지정학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과 체급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에서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그르치면 오힐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21세기 생존전략 수립 출발점은 우리 안보와 생존에 대한 위협이 어디서 올 것인지를 직시하는 것이지요.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동북아 세력 균형을 파괴하고 패권을 장악하는 세력이 항상 우리를 침탈하고 종속관계를 강요한 주범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반도를 지배하고, 한반도가 적대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패권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지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 등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전쟁은 우리를 둘러싼 역내 패권 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마다 우리는 힘이 부족하였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킬 힘이 없을 때 당한 일들이었습니다. 이제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고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문명 세상은 결코 없을 것 입니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험난한 안보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략으로 나라를 지켜나갈 것인가를 찾아야 할 때 입니다. 첫째, 주변국이 함부로 우리를 힘으로 겁박하거나 얕보지 못할 독자적 역량과 유사시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데 결코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일수교가 이뤄지던 1965년 당시 한일간의 경제력 차이는 30배에서 50년이 지난 지금은 3.8배로 한국이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외교 영향력은 일본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엔본부에 근무하는 한국직원은 111명이고 일본은 203명이며, 특히 국제기구 책임자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와 흡사한 지정학적 제약을 안고 있는 베트남이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보다 국력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강대국 위세에 주눅들지 않고 결사항전으로 외침을 막아내겠다는 불굴의 정신 때문이 아닌가요? 중국은 1979년 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응징하려고 쳐들어갔다가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서둘러 퇴각하는 수모를 겪었지요. 작년 5월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해온 파라셀제도에서 중국이 원유 시추를 강행하다가 양국 간 충돌이 일어나자 베트남 내 140여 개 중국 기업이 반중 시위대의 피습을 받고 중국인 9000여 명이 혼비백산해 국외로 탈출하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베트남을 얕잡아 보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중국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였습니다. 우리 나라도 중국의 위세에 눌려 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굴종의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모화사상과 사대주의의 DNA를 버리고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안보전략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 입니다. 안보 차원에서는 한중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우리의 ‘엘도라도’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핵심 국익이 충돌하는 것을 막는 것이 대중 외교의 핵심 과제가 될 것 입니다. 경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안보에서 대중국 적대정책의 문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의 생존과 명운이 걸린 사안이 아니면 중국과의 대결과 충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회복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유리한 안보 지형을 만드는 것을 외교안보 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역내 세력균형이 한국에 가장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고 독자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되면 패권 세력이 힘으로 주변국을 압박하고 싶은 유혹도 덜 받게 될 것입니다.이를 위해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과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안보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관계도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목표로 발전시켜 나가고 국민 정서가 국익을 훼손하도록 방치하여서는 안된다는 점 입니다. 끝으로, 모든 방책이 실패하고 불의의 상황이 닥칠 가능성에 대비하여 확실한 보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미동맹으로 위험을 보장하는 강한 최선의 보험이 될 것입니다. 20세기 초까지는 새로운 패권 세력이 출현할 때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은 무모하게 대들었다 치욕을 당하거나 새 질서에 순응하여 군신관계를 맺고 생존을 의탁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우리에게는 동맹이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기고 지정학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으로 패권 세력의 발호를 견제할 최후 균형자는 미국임을 알고 이에대한 외교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2014년 6월 29일 인기리에 막을 내린 KBS대하드라마 ‘정도전’ 이후 사극이 맥을 못추고 있다. 이미 방송된 SBS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 KBS ‘왕의 얼굴’과 ‘징비록’이 ‘정도전’만한 시청률(최고 시청률 19%)을 기록하지 못한 것. 현재 방송중인 MBC ‘화정’도 10% 이하의 대박과는 거리가 먼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과 ‘왕의 얼굴’에 대해선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각 24부작이란 호흡(길이)의 문제와 기본적으로 팩션이란 점에서 ‘징비록’과는 다르다. ‘징비록’은 KBS가 ‘정도전’ 후속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50부작 정통사극, ‘광복70년특별기획 대하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하긴 2015년 2월 14일 첫 방송의 ‘징비록’ 시청률은 10.5%였다. 제2의 “‘정도전’이 보인다”커니 “명품 대하드라마의 ‘대박 예감’” 같은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중앙일간지 등에서 ‘징비록’ ‘관련기사를 거의 내보내지 않은 가운데 출발한 첫 회 시청률이어서 그런 기사들은 그럴 듯했다. 그러나 8월 2일 막을 내린 ‘징비록’ 마지막회 시청률은 12.3%(닐슨코리아 전국기준)다. 최고 13.8%까지 오른 적이 있지만, 10%를 웃도는 시청률이라 할 수 있다. 시청률 면에서 정도전 인기보다 못한 류성룡, 그리하여 빛바랜 광복70년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되고만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식상함과 피로감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조연에 그쳤던 류성룡(김상중)을 주연으로 내세운 대하 드라마이면서도 연이은 선조와 광해군 등장이 그것이다. 요컨대 ‘왕의 얼굴’에 그려진 선조와 광해군 이미지가 채 사라지기도 전 ‘징비록’ 방송이 시작된 것. 그뿐이 아니다. 4월 13일 첫 방송된 MBC 50부작 ‘화정’도 30회까지 주인공은 광해군이었다. 수 개월 동안 같은 인물이지만 다르게 묘사되는 광해군을 지켜봐야 했다. 도대체 어느 광해군이 진짜일까 하는 고민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무슨 학술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골치 아픈 것 그냥 안 보면 된다. 다음으로 ‘단순한 전쟁’과 복잡한 정치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징비록’은 결코 단순한 전쟁만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치열할 수 밖에 없는, 한편으로는 제작비가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전쟁장면은 생략한 경우가 많았다. 선조(김태우)와 대신들의 대화로 전쟁 상황이 치열하게 오갈 뿐이었다. 대신들간에는 동인⋅서인⋅남인⋅북인 등 당색의 정치가 그려지곤 했다. 끝무렵엔 아예 이름과 함께 ‘남인’ 등 자막을 넣기도 했다. 정치가 난무했는데도 ‘정도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걸 전쟁 탓으로 돌려야 하나. ‘임진왜란-피로 쓴 교훈’을 애써 대면치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란 말인가?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 힘이 없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란 사실이다. 왕후장상이 따로 있냐지만, 왕재(王材))가 엄연히 존재함도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서자출신 임금인 선조는 타이틀 류성룡의 존재감을 위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진게 아닌가, 왜군들을 하나같이 포악하거나 덜떨어진 인물들로 획일화시킨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도 남는다.
지난 7월 28일, 지인 부부와 강원도 동쪽에 위치한 봉평의 허브나라농원과 이효석 문학관, 주문진의 아들바위공원에 다녀왔다. 차가 막히는 여름휴가 기간인데다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을 하루에 돌아보는 여행이라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7시 30분 청주 용암동에서 자가용 한 대로 출발해 중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를 달렸다. 아침을 먹으려고 들른 금왕휴게소에서 치악산으로 산행 가는 산악회원들을 만났다.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의 상행선에서 평택제천고속도로로 영동고속도로의 상습 지정체 구간을 우회할 수 있어 강원도 여행길이 편해졌다. 영동고속도로 면온IC를 빠져나가 휘닉스파크와 평창무이예술관을 지나면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맑은 물이 흐르는 흥정계곡을 만난다. 흥정계곡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서 용평면 백옥포리까지 이어지는 계곡으로 송어, 산천어 등이 서식할 만큼 물이 맑은 곳이다. 흥정계곡 중 가장 깊고 물 흐름이 세다는 구유소까지 계곡 주변에 늘어선 펜션과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계곡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장관인 구유소 옆에 허브 전문식물원으로 이름난 허브나라농원(http://herbnara.com)이 자리하고 있다. 1993년 흥정계곡에 문을 연 허브나라농원은 1만여 평의 밭에 100여종의 허브를 재배하고 있는 자연생태관광지이다. 허브나라농원의 주차장은 구유소 가기 전 왼쪽 길가에 있고 관람은 입장권 구입 후 흥정계곡의 기다란 물줄기를 구경하며 청향교(淸香橋)를 건너야 시작된다. 허브나라농원(033-335-2902)은 아름다운 자연과 허브향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누구나 가볍게 돌아보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가족 휴양지이다. 농원에서 가꾸고 있는 갖가지 허브를 팔레트가든, 유리온실, 셰익스피어가든, 코티지가든, 락가든, 나비가든, 중세가든 등 13개의 테마공원에 관람객들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관람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다. 허브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허브차를 즐길 수 있는 찻집, 허브로 만든 상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전시실도 있다. 농원 내에 먹거리가 골고루 갖춰져 있지만 아기자기한 쉼터가 많아 본인이 음료수 등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하면 오랜 시간 허브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봉평에 왔으면 당연히 들러야하는 곳이 이효석 문학관(http://www.hyoseok.org)이다. 허브나라농원에서 6㎞ 거리의 이효석 문학관으로 가며 흥정계곡과 봉평면소재지를 지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고구마와 함께 구황작물로 많이 심었던 농작물이 메밀이다. 봉평면에는 메밀막국수, 메밀전병, 메밀부침 등 메밀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 흥정천을 가로지른 남안교를 건너 물가에 있는 거기막국수(033-334-3002)에서 메밀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효석 문학관(033-330-2700)은 이효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창동리 주차장 뒤편의 낮은 언덕 위에 있다. 메밀꽃이 산자락을 하얗게 물들이면 그제야 가을 문턱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낀다는 곳이 봉평이다. 봉평면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자 작가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문학관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을 비롯하여 문학교실과 학예연구실이 있고, 훈장과 잡지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입구의 전망대에서 물레방앗간과 봉평면소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문학 정원, 메밀 꽃길, 오솔길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문학관 서쪽의 이효석 생가는 이효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원래의 생가가 매매와 개량에 의해 본래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토대로 600여m 아래쪽에 초가집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2015 평창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기간(9.4~9.14)에 찾아가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는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봉평에서 장터를 떠돌던 장돌뱅이 허생원, 조선달, 동이 그리고 동이의 어머니이자 허생원과 하룻밤 인연을 맺은 성서방네 처녀의 고단한 삶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이효석 생가에서 나와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달리면 80여㎞ 거리에 아들바위공원이 있다. 주문진항에서 북쪽으로 2㎞ 거리에 위치한 아들바위공원은 바닷가에서 소돌해변, 주문진해변, 향호해변과 이웃하고 있는 이색 여행지이다. 아들바위공원이 위치한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이 소처럼 생겼다하여 소돌(牛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소돌의 상징인 아들바위(소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데 크고 각진 바위의 모양이 힘이 센 수소를 닮았다. 옛날 노부부가 이 바위 앞에서 백일기도하여 아들을 얻은 후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하는 바위로 알려져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도에 의해 태어나는 아기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동자상은 아들바위 앞 물속에 있어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아들바위, 코끼리바위 등 바람과 파도에 깎여 절묘하게 생긴 기암괴석들이 가득한데 그 모습이 쥬라기 공원에 온 듯 신비스럽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다리로 연결해 바위를 건너다니며 공원과 바닷가의 풍경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공원 바닥에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와 물이 빠져나갔을 때의 느낌도 다르다. 공원 입구의 조형물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다 요절한 가수 배호의 히트곡 '파도'가 바닷가에 울려 퍼진다. 여행지에서 돈 500원 아까워할 사람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이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왜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하는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등을 안내하는 문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원한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먹는 회 맛이 최고다. 주문진항이나 식당가 뒤편의 소돌항에 가면 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아들바위공원에서 바닷바람과 함께 자유를 누리다 해가 넘어갈 무렵 청주로 향했다.
최근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통보한 ‘2016년 초중등 교원 가배정 결과’에 다르면 2016년 교원 정원은 초등 2,350명, 중등 1,417명 등 3,767명 감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6월 논란이 됐던 2300여 명 감축보다 커진 것으로 가배정 결과로 향후 교육부와 행자부, 기재부 등 관련부처 협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으나 5월 정부의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교원 정원을 학급수 중심에서 학생수 중심으로 소규모학교 통폐합과 교원 정원 축소가 검토된 바 있어, 내년 2,000~3,000여명 규모의 대규모 교원정원 감축은 정부의 일관된 기조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교원수는 OECD 평균에 훨씬 못미친다. 교육부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등 ‘경제논리’에만 매몰돼 교원 감축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제 환경에 맞는 인재양성, 교육여건 개선, 교육력 향상, 공교육 정상화 등 ‘교육논리’를 바탕으로 교원 정원 감축 계획을 철회하고 안정적인 교원확보에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공약 이행과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오히려 매년 3,000명 이상의 대폭 초‧중등 교원의 증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교원 정원 감축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르면 2017년까지 주당 수업시수와 함께 교원 충원을 통해 학급당 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으나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교원 감축이 아니라 오히려 증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교원정원의 축소는 결국 신규교사 선발에도 영향을 미쳐 예비교원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고 추산이다. 이는 지난 7월 정부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 발표 당시 윗돌인 교원 명예퇴직을 늘려 아랫돌인 신규채용을 증원한다고 공언한 것이 며칠 만에 허언이 되고 말았다. 교원 명퇴 전원 수용 등 퇴직 확대를 통해서라도 신규 교원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선발규모 축소와 맥을 같이 하는 교원 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비일관성 측면을 지적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신규교사를 예년보다 더 선발해 청년실업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것을 금세 뒤엎은 것은 정책의 조변석개로 정책의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청년 고용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신규 교원 증원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역으로 교원 정원을 감축하는 것은 시대역행적인 정책이며 나아가 교육의 질 저하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원정원과 관련한 정책은 거시적인 교육 예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미시적인 단순한 인건비 같은 단순한 행정적,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또 정부의 다양한 교육정책을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로서 충분한 교원확보만이 국가 교육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출발점이다.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정책은 공허한 것이다. 결국 교육부는 교원정원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학생‧학부모의 학습복지 및 학교의 교육여건 개선, 청년실업 해소, 사교육비경감 대책 등 국가 교육정책의 성공을 위해 교원증원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 최종 교원수의 증감 규모는 내년 2월 확정되는 만큼 교육부는 교원 정원 증원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적 접근과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부디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외치면서 실제적으로는 이 시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백수들을 더 낭떠러지로 떠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재일동포 사회는 올해 110년째를 맞는다. 이들은 일본 땅에서 온갖 수난과 차별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현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중앙본부 단장을 맡고 있는오공태씨는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재일동포 수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강제병합의 1차 피해자이면서도 주재국으로 귀화(시민권 취득)한 수가 많다는 점에서 특수한 위상을 갖고 있다. 특히 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두 조직이 70여 년간 맞섰다는 점도 다른 동포사회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민단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0월 3일 창립했다. 이 명칭 속에는 국민(民)이 단(團)결하자는 취지가 이름에 담겨 있다. 총련은 1955년 5월 25일 설립됐다. 초창기 총련은 하나의 단체로 태어났기에 규모와 조직력에서 거대한 조직이었으나 남북분단 이후 두개의 조직으로 갈라섰다. 총련은 1959년부터 재일동포 5만9000여 명을 북송하면서 재산을 기부 받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총련의 우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에 따라 협정영주권을 신청하면서부터다. 1971년까지 5년 남짓 동안 당시 재일동포 60만 명 가운데 36만 명이 한국 국적을 신청했다. 민단이 여권 발급을 대행하면서 단원 수도 크게 늘었다.총련이 쇠락한 결정적인 원인은 평양에 무조건 복종하던 경직된 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기자였던 김현 씨는 “평양의 지시가 만능이 아님을 알면서도 추종한 총련이 나중에는 지령이 떨어져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도 북한의 3대 세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등을 돌린 게 몰락의 원인이라는 관점이다. 이로 인하여 총련사회으 공동체 역할을 했던 총련 학교의 쇠락은 학부모들의 외면으로 가속화 되고 있다. 총련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입회나 탈퇴 과정이 없는 점조직이기 때문이다. 4만5000명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지난해 말 재일동포 총수(50만451명)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핵심세력은 여전히 공고해 총련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보는 건 착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교가 없는 북-일 사이에서 총련은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대화 창구로 남겨둘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있는 10개 공관(대사관, 총영사관) 가운데 9개의 부지와 건물을 모두 민단이 기증했다. 현재 시세로 2조 원이 넘는다. 재일동포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돈을 모아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인 1960년대 모국 투자와 1970년대 새마을운동, 1980년대 서울올림픽 성금을 모아서 댄한민국을 지원하였으며, 1990년대 외환위기 때에도외화송금을 하는등 현금 지원(약 8000억 원)도 이어졌다.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에 ‘재일동포 학도의용군’ 642명을 파견하기도 했다. 어느 나라나 대부분이 그렇지만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에서 선거권이 없는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일본 사호재일동포들은 피부색으로 일본인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일본인이 되고 싶은 유혹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런 연유로 재일동포 1세들은 차별을 받으며서도 귀화하지 않았지만 후대가 차별을 받지 않기 원하여 귀화를 하는 추세이다. 이가튼 분위기 속에서도 민단을 중심으로 귀화하지 않고 70년간 재일 한국사회를 유지한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민단도 이젠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젊은 단원들이 유입되지 않아 민단원의 고령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총련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민단의 존재 이유도 희미해졌다. 한국 정부의 정책에서도 민단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임의단체인 법적 지위를 사단법인으로 바꾸지 않으면 연간 80억 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금을 40%까지 깎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재일동포 사회가 갈등을 극복하고 새출발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민단과 총련 사이의 ‘치유’를 시도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2006년 5월 17일 당시 하병옥 민단 단장이 총련을 찾아가 전격 화해를 선언했다가 큰 반발을 불렀던 ‘5·17 사태’ 이후로 민단-총련의 교류는 완전히 끊어졌다. 즉흥적인 통합보다 체계적 준비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하지만 지역에 따라 총련과 민단의 개인적인 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나 한국의 만북관계보다 더 어려운 것이 민단과 총련의 교류이다. 총련 학교와 대비해 ‘민단계 학교’로 불리는 한국 학교는 일본 전역을 통틀어 4곳이다. 대학교까지 있는 총련 학교(60여 곳)와 비교가 안 된다. 한국 학교 중 3곳은 일본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일본식 사립학교(일조학교)이다. 다만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일본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 국어와 한국역사 등 일부 교과목에만 자율성이 있다. ‘한국’이라는 이름도 쓸 수 없다. 광복 직후 민족학교를 지켜내려다 동포 2명이 목숨을 잃는 ‘한신교육투쟁’까지 겪었던 역사가 부끄러울 정도다. 오사카의 금강학교는 도심에 있다가 재개발에 밀려 남부 바닷가(스미노에 구 난코·住之江區 南港)로 이전되었다. 학부모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지만 자녀에게 한국을 가르치기 위해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 이 학교에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열정에만 기댈 수는 없다.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총련 학교 흡수는커녕 민단 소속 자녀들의 한국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다.
이 선생님, 선생님은 공대 출신으로 일본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일본인과 만나고 생활하는 가운데 다양한 현실을 경험하였을 것 입니다. 올해 8월은 한국에서는 광복 70년, 일본에는 종전 70년의 달이지요. 두 나라 모두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경제적, 사회적 분위기는 대조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본은 과거 고도 성장의 거품 경제가 무너진 1990년대 초반부터 장기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으나 요즈음 일본은 경제 부활 조짐과 함께 활력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물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는 예측은 어려운 것이지만요. 올해 1분기 일본 경제는 전(前)분기 대비 1.0% 성장해 0.8%에 그친 한국을 2년 만에 앞질렀습니다. 엔화 약세와 ‘제조업의 부활’로 기업 실적이 호전되면서 대졸 취업률은 무려 97%에 이르고, 여성 취업은 195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답니다. 아베노믹스로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재정 적자 증가 등의 부작용이 생겼고, 앞으로 발표될 일본의 2분기 성장률은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경기 회복의 큰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한국 경제는 활기를 잃으면서 ‘대한민국호’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네요. 조금은 걱정이 되는군요. 이러한 시점에서 되돌아 봐야 할 역사는 대한제국의 재조명입니다. 지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시장에 가면, ‘대한제국, 근대국가를 꿈꾸다’ 전시회를 볼 수 있어요. 일부 관람객이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10년 뤼순감옥에서 쓴 단지(斷指) 유묵(遺墨)을 보면서 "이게 여기 왜…"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낙관 대신 무명지가 잘린 왼손을 먹물로 찍고 그 위에 쓴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대한제국과 안중근의 관계로, 이는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 의사는 거사 직후 심문에서 “군인이 적장을 죽이는 건 당연하다”며 자신이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신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안 의사를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려는 일본 측 시도에 대한 정면 대응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망국책임론’에 밀려 한동안 폄훼된 대한제국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대한제국의 근대화 시도를 보여 주는 당시 화폐와 서양식 병원인 대한의원 개원 칙서, 궁내부 현판 등 관련 유물 11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보시는 것이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근대화에 대한 고종의 의지를 반영하여 1910년 건립한 덕수궁 석조전은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복원돼 최근 문을 연 서양식 건축입니다. 석조전은 일제강점기 미술관으로 바뀌어 내부가 심하게 훼손됐지만, 설계도와 사진 고증을 거쳐 원형을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란을 떠난 선조가 돌아와 덕수궁을 임시 거처로 썼다”며 “고종이 아관파천 직후 경복궁을 버리고 덕수궁으로 환궁한 것은 선조의 고초를 되새기며 항일 의지를 내세운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하지만 대한제국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무엇보다 대한제국 위정자들이 망국의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대한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보다는 왜 망했는지를 규명하고 반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갈려 대한제국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내놓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가 자체적인 근대화 동력을 갖췄다고 보는 내재적 발전론은 고종과 대한제국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2004년 양측이 치열한 지상 논쟁을 벌일 당시 이 명예교수는 “대한제국의 근대화 사업은 일제의 침략으로 미완에 그쳤지만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조선 후기를 소농(小農) 사회로 규정하고, 부농과 빈농의 발생과 같은 근대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도 처음부터 명확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시대 대한제국을 둘러싼 주변 열강들은 한결같이 한반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관파천, 민비시해 등 치욕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주변국과의 경쟁은 총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요, 경제전쟁이며, 외교전쟁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는 국가의 장래를 누가 책임지고 이끌어 갈 것인가를 묻고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으로 동북아 정세는 더큰 격랑을 예고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기업만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도, 지도자도 경쟁을 하는 엄연한 현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같은 급박한 국제정세와 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 돌파구를 찾는 적극적 외교정책이 요구됩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할 정치가들을 기르는 것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중대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극일을 이루려면 경제력은 물론이요, 외교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한데 단지 자신만의 안정이나 안일만을 위하여 공부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에 조금은 염려스럽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런지요. 선생님께서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2012년 7월24일 ‘인성이 진정한 실력이다’ 기치 하에 출범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3주년을 맞았다. 가정-학교-사회가 동참하는 범국민 인성교육 실천운동에 앞장서 온 결실로 인성교육진흥법까지 시행됐으니 인실련의 사회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학교폭력·가출·자살 등 청소년 문제 행동에 대한 원인 해소 및 근본적인 대책을 인성교육으로 보고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선순환 해결구조 마련을 위해 실천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던 출범 당시만 해도 인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미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과열 조짐까지 보인다. 최근 백지화됐지만 올 초 교육부가 대입에 인성요소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해서다. 많은 민간단체와 교육기업들이 인성지도사 등 민간자격증 과정을 개설해 그 수가 270여개에 달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인성이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돼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제도적 장치가 또 다른 규제가 돼 민간의 인성실천 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인성교육이 사교육시장에 잠식되기 전에 과도한 영리추구를 바로잡아줄 시민사회단체의 자정활동이 그래서 더 절실하다. 인실련은 그동안 사회 각계의 참여를 끌어냈다. 그 결과 300개 회원단체 가입, 13개 시·도 인실련지부 창립 등 저변을 확대해왔다. 이제부터는 인실련이 가정-학교-사회를 하나로 연결해 덕·체·지가 조화로운 인성교육을 실천하도록 지원하는 구심체가 돼야 한다. 아울러 배려와 존중 등 바람직한 공동체적 인격과 품성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패러다임 전환에도 막중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인성교육은 공익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며, 기업의 영리추구에 매몰돼 황폐화 돼선 안 된다. 인성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는 어떠한 활동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사회적 지지가 모아져야 범국민 실천운동이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범 3주년을 맞는 인실련의 재도약을 기대한다.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토론이 있는 교사회의와 교직원회의 활성화 지원’이 결국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교사간담회를 개최한 조 교육감의 행보나 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인사혁신 TFT 등을 통해 가시화된 내용을 보면, 아무래도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교무회의는 학생회, 학부모회와 더불어 학교운영을 위한 주요 자문기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를 의결기구화한다면 학운위의 의결권 침해는 물론, 초·중등교육법 위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교육공동체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학교혁신’이란 미명하에 급조된 것이어서 학교현장의 혼란과 반발은 명약관화다. 학운위는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근거한 법적 기구로 교무회의, 학생회, 학부모회 등의 안건을 심의·의결한다. 단위학교 중심의 다양한 교육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학교 책임경영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업이 학교운영상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교무회의는 교육공동체 간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1항은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학교경영의 책임 소재를 학교장으로 명확히 하고 있다. 때문에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는 학교장 권한 침해이며 학교경영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추진하면서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비민주적 발상이다. 전북, 광주에서 수년 전부터 조례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가 교육계 반발로 보류된 것을 상기한다면, 조 교육감의 시도는 ‘포퓰리즘 정책 남발’이나 ‘무모한 교육실험’으로 치부될 수 있다. 조 교육감이 서울교육을 올바르게 이끌어나가려면 소수 의견이 집중된 고립무원의 성(城)에서 나와야 한다. 학교는 탁상공론자들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10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올해 발표한 ‘2014년 인터넷 중독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0~19세 청소년 중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에 속하는 비율은 무려 29.2%로 나타났으며, 이 비율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매년 상승하는 중독 위험군 비율 최근 영국 더비대 연구팀이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 중독이 술·담배보다 건강에 훨씬 나쁜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나왔다. 안구건조증, 어깨 및 목의 통증을 유발하며 그 결과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의 주요 증상으로는 학업장애, 디지털 치매, 수면장애, 주의력결핍 행동장애(ADHD), 충돌조절 능력 저하, 대인관계 미숙, 불안 및 적응장애, 우울증과 사회 부적응 현상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의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성장발달을 저해하고 있으며 학습장애, 사회성 저하는 물론 자살과 친족살인 등으로 비화, 현재 우리사회에 심각한 위해요인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부적절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리에서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느라 신호등도 살피지 않고 길을 건너는 위험천만한 모습은 물론, 운전 중에도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하거나 정보검색을 하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기도 한다. 또 식당에 가면 2~3세의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무심코 자녀에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부모들이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기에 ‘어제 밤에 몇 시에 잤어?’라고 물으니 “새벽 3시에 잤어요”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잠을 자?’라고 물으니 “새벽 3시까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카톡, 카카오스토리)을 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이런 학생은 한 학급에 1~2명 꼭 있다. 물론 학업 때문에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는 것 역시 좋지 않은 습관으로 볼 수 있지만, 공부도 안 하면서 불필요하게 스마트폰을 밤늦게까지 사용하는 습관은 아주 좋지 않다. 어른부터 자제하는 솔선수범을 그렇다면 청소년의 스마트폰(인터넷) 중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저 부모와 선생님 등 성인들이 학생들 앞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한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통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교사들이 스스로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도록 모범을 보일 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자녀와 식사를 하는 부모님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는 나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식사시간에는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마트폰을 잠시 꺼 놓아도 별 무리가 없다.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정보검색을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만큼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건전한 스마트폰 사용 가정환경 만들기 캠페인이 시급하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중독에 따른 폐해를 알려주고, 올바른 사용 습관을 길러 스마트폰 이용을 절제하도록 모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녀 인성교육 책임을 오로지 학교로만 돌려 왔다. 이미 가정에서 망가뜨린 아이들을 학교에서 고쳐놓으라는 꼴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학생 뒤엔 언제나 문제부모 소위 문제학생의 배경에는 반드시 문제부모가 있다. 우리는 아동의 문제를 학교에서 잘못 가르친 것이라 탓하지만 이미 가정에서 잘못 길러진 학습된 행동일 뿐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라. 부모의 행동을 바꾸니 아이의 행동이 달라진다. 아이의 행동을 직접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현대 교육심리학 분야의 석학인 앨버트 밴두러(Albert Bandura)의 고전적인 모방학습이론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가 주창한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의 핵심적 용어인 모방학습이론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상적인 환경 내에서 아동은 거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방하는데, 긍정적이고 일상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공격적이거나 부정적인 모델에 대해서도 모방 학습을 한다. 아이의 행동은 그 부모에 의해 사실상 결정된다. 여기에 사회의 불건전한 환경까지 가미되면 아동의 정서행동은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 성인이 돼서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학교에서 잘못 교육한 결과처럼 여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사회가 부정부패, 무질서, 폭력, 선정적인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상쇄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모든 교육은 학교에서 이뤄진다'는 학교주의 신화를 믿고 있는 듯하다. 가정은 가정대로 교육할 몫이 있고,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할 몫이 있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핵가족 사회라서 어렵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핵가족이기 때문에 더 체계적으로 가정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결혼을 하는 모든 가정은 다문화가정이라 할 수 있다. 20년 이상 서로 다른 가정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 또 다른 가정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다문화가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20년 이상을 따로 살던 두 사람이 결혼하는 데 별도의 교육도 받지 않은 채 결혼하고 있다. 입시위주 교육은 받아도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할 배우자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부교육은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녀 양육 문제다. 20년 이상을 키워야 하는데 부모교육도 안 받고 자식을 낳아 양육하도록 돼있는 현실은 한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대만처럼 ‘가정교육법’ 제정 시급 인성교육의 시발점은 가정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찾아보면 아내가 임신한 집안에서는 남편이 태교를 해야 했다고까지 기록돼 있다. 교육부가 학교교육에만 치중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가정교육에 대해서도 돌아볼 때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녀양육방식도 교육적으로 전수되고 인성교육도 이뤄졌지만 핵가족 사회에서는 국가가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대만에서는 2003년부터 ‘가정교육법’을 만들어 혼인신고자들이 ‘부부교육', '자식교육’ 등을 받도록 하고 있다. 더 이상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을 미룰 수 없다. 가정이 바로 서야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사회가 안정화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인성교육법에 ‘혼인신고시 부부교육 및 부모교육’을 의무화하거나 별도로 ‘가정교육법’을 제정해야 한다.
교사 ‘근무 폐지’ 단협 이행 요구 교육부 시정 지시도 안따라 등교학생들 안전 소홀 우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전북교육청 등이 방학중 교사 근무를 폐지한 것과 관련해 학교 현장에서 혼란과 폐해가 줄을 잇고 있다. 교육부가 ‘위법’임을 경고하고 잇따라 공문을 발송했음에도 도교육청이 무시한 탓이다. 교사와 관리자 간 사이가 좋았던 학교들은 이 문제로 인해 서로 눈치를 보며 급속히 냉각된 분위기로 바뀌는가 하면, 교사 없이 관리자만 출근하는 곳이 속출하면서 방학중 등교한 학생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런 학교들은 본지가 전북지역에서 파악한 곳만 50개교가 넘는다. 등교하는 학생을 100명만 잡아도 최소 5000명 이상 학생 안전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전북 A초의 경우 관리자와 교무실무사가 학교를 지키고 있으며, 방학중 교육활동과 관련해서는 업무담당교사만 출근하는 실정이다. 방과후교실이나 돌봄교실은 3주 이상 진행되는 만큼 교사들이 나눠 출근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말조차 꺼내지도 못했다. 도교육청 지침도 그렇거니와 교사 일직성근무 폐지를 주도한 전교조 측의 각종 압박과 신고가 잇따르니 교사 근무에 대한 부담이 커진 탓이다. 이 학교 B교감은 “도교육청에서 방학중 일직성근무 폐지라는 공문을 연거푸 보내와 말도 못 꺼내고 관리자만 출근하게 됐다”며 “이뿐 아니라 전교조는 행정적 조치 등 내용을 담은 협박성 공문을 보내고, 학교마다 감시하고 신고하며 전화로 항의하는 등 어떤 형태의 근무도 못하게 했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지역 C초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도서관을 개방했음에도 교사가 출근하지 않자 교무실무사가 겸직하며 책 대출을 하고 있다. 이 학교 D교감은 “전교조 간부 2명이 교무실로 와서 일직성근무를 교사가 하게 되면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면서 “그럼 학교 자체적으로 교무회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하자 회의 자체가 위법이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털어놨다. 일부 관리자들은 “오는 겨울방학 때는 방과후활동을 전면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개탄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학생, 학부모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무엇보다 교직원의 복무와 관련해 학교 관리자가 책임지도록 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전교조와 단협을 우선하는 교육청의 지침은 모순이라는 불만도 잇따르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7월3일 ‘교사의 방학·재량휴업일 일직성근무 폐지를 유보해달라’는 요청 공문을 전북교육청에 보냈지만 교육청이 무시한 결과다. 학교 현장에 혼란이 지속되자 교육부는 7월24일 ‘위법’이라는 유권해석까지 내려 재차 공문을 발송한 뒤 이에 대한 조치 결과를 7월31일까지 제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그 갈등 역시 지속될 전망이다. 전북교육청은 전북교총의 요청에 따라 기존 입장에서 ‘불가피한 경우 근무 허용’이라는 모호한 단서 등을 추가해 7월21일 관내 학교에 다시 내려 보냈을 뿐이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그것으로 교육부 지침을 충분히 이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혀 추가적인 시정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이 조치한 내용이 7월24일 발송한 공문에 비해 현저히 미흡할 경우 추가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1994학년도부터 실시하던 대학수학능력(이하 수능) 시험이 흔들리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수능 출제 오류가 있었고, 2015년 영어와 생명과학에서 출제 오류가 나오면서 교육부도 개선 방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영어는 2018학년 수능부터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절대시하던 등급과 석차가 의미 없게 된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취임 1주년 기자 회견에서 수능 시험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능 시험은 시작과 달리 대학에서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가 없어지고 수시 전형 위주로 가고 있다. 2016 대학 입시에서 모집 인원의 67.4%를 수시 전형으로 선발한다. 이는 70%의 학생들이 수능 시험 성적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서강대는 아예 정시를 폐지하고 수시 100%로 선발하면서 수능 최저를 폐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수능이 필요 없이 학생부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추세에 대해 일부에서는 변별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맹물 수능’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까지 떨어지는 수능 성적으로 대학이 정시 모집에서 학생을 뽑는 것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이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우수 학생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이 수능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이 우수하다는 편견을 버리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 등의 입시 경험을 통해서 정성 평가 위주로 우수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수능 시험이 처음에는 통합 교과서적 소재를 바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 위주로 출제하면서 공교육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했다. 단순 암기식 교육을 조장해온 학력고사의 병폐를 해소하고 학교 교육이 살아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도 역시 선택형 시험이기 때문에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수능의 등급 및 석차가 입시를 좌우하면서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사교육이 성행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초등학교 1년부터 고등학교 3년까지 12년 동안 공부했던 것을 수능 하나로만 평가해 대학에 진학해야 된다는 현실은 교육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수능 시험 제도 하에서는 바람직한 교육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학생들은 공부에 짓눌리고, 경쟁에 치우친 학생들은 급기야 학교 폭력이라는 모습으로 일탈을 했다. 학교는 대학 입시 준비를 한다며 많이 가르치고 있지만, 결국은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욕만 먹는다. 과외 문제가 대두되어 빈부 격차 문제는 사회 문제로 비화 된다. 이제 수능 시험을 버릴 때가 왔다는 징조다. 교육부는 연초에 수능 출제 오류에 대한 대안으로 수능 개선을 약속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개선의 초점이라는 것이 결국은 출제에 한정되어 있게 된다. 그렇다면 좋은 문항보다는 오류 없는 안전한 출제를 한다. 이러다보면 결국 수능 시험 문제를 꼬아서 내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문제 풀기만 답습하는 틀에 갇히게 된다. 수능 개선이 아니라 개혁을 해야 한다. 21세기란 단순히 세기적 전환이 온 것이 아니다.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전환한 것은 물론 가치관 지식관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두고 여전히 개인의 소질과 적성이 무시되는 획일적인 교육 내용과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EBS 방송ㆍ교재의 연계 출제를 하는 것도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정책이다. 수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시험을 제안한다. 대학입학자격고사이다. 일종의 미국 수능 격인 SAT(대학입학자격시험)다. 이 시험은 수험생의 창의성, 사고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계획해야 한다. 특히 이 시험은 수험생의 분류, 선발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미래 역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교육 정책을 포함한 입시제도 등의 전환은 단순히 정책의 변화만으론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이 겪어야할 고통과 인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미래 삶에 긍정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수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입자격고사에는 반드시 이것이 담겨야 한다. 참고로 최근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실시를 두고 우려가 많았다. 이 기간은 공부를 중단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적응하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교육의 핵심인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기 때문에 환영 받는 것이다. 입시 제도도 마찬가지다. 수능 체제는 오히려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는데 위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이를 떨쳐 내기 위해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대학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제도를 정착하는 방향으로 가기 바란다. 전제되어야 할 것은 대입 제도가 학교 문화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학생부 종합 전형 제도 정착으로 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학교 문화의 자율성을 측정하고, 학생 개개인의 미래와 꿈을 내다보는 선발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동력인 제조업이 위기에 빠졌다. 제조 강국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우수한 인력과 추진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호령한 대한민국이 불과 10여 년 만에 바톤을 중국에 넘겨줬다. 이를 이끌던 기업들도 위기에 빠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하며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내외부의 도전 속에 미래 전략 부재로 최대 위기에 빠졌다. 세계 1~3위의 조선사를 두며 오대양을 누비던 조선산업은 지난 2분기 5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철강, 정유, 화학, 가전 등 우리의 주축 산업 모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수출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이 기회는 그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지식경제의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산업을 뒷받침할 지식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인식하고 구성원들이 학습을 위한 학습조직이 필요하다. 정치도 학습으로 성공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스터디 서클 민주주의(Study Circle Democracy)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또, 스웨덴의 전 총리 올로프 팔메(1927~86)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스터디 서클은 스웨덴인에게 합리적 분석력과 비판의식을 심어줬다. 이것이 스웨덴의 사회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북유럽의 ‘스터디 서클’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1900년대 초, 스웨덴은 가난한 나라였다.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나왔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고등교육은 귀족층에게 한정됐다. 이에 1902년 교육학자이자 정치인인 오스카 올슨(1877~1950)이 ‘스터디 서클’이란 말을 처음 만들었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공부 모임, 생활개선 모임을 조직했다. 1914년 ABF라는 총괄조직이 생겨났고 스웨덴 정부가 지원을 결정하면서 스터디 서클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1905년 스웨덴에서 분리 독립한 노르웨이,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핀란드도 이 제도를 적극 수입했다. 스터디 서클은 ‘싸게’ ‘자발적으로’ ‘모든 멤버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해진 형식이나 의무는 없으며 리더는 팀 내에서 정하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는 인문학 공부모임과 비슷한 성격이라 할 것이다. 80년대까지 스터디 서클은 철학이나 역사,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는 장이었다. 금주교육 등 생활개선 모임과 함께 냉전, 복지국가, 유럽통합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80년대 이후에는 외국어·취미생활 등의 실용적 주제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 사회인류학과 브라이언 파머(49) 교수는 “내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셀프 헬프 퀘스쳔(Self-help Question)’에서 시작된 스터디 서클이 보다 풍요로운 삶을 향한 ‘셀프 헬프 인터레스트(Self-help interest)’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각 분야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습조직을 만들어 어려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현재 막힌 것이 무엇이며, 미래에 대응할 전략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학습을 통하여 발견하여 문제해결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29일 인천공항을 떠나 13시간 비행 끝에 워싱턴에 내렸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갖고 추억을 쌓으려는 것과 작은 아들의 대학편입 관련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과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내용과 아들 본인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선택한 몇 군데 학교를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자동차로 여행할 계획이므로 한국에서부터 국제면허증을 준비하고 여권과 더불어 운전면허증도 가져갔다. 미국 현지에서 만날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한국 홍삼으로 만든 홍삼, 홍삼차, 양갱, 사탕 등을 포장하여 가방에 넣었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쁨, 그 동안 아이들이 살고 있던 기숙사나 집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 보름동안 미국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한다는 들뜸으로 Up 된 마음으로 가방을 꼭꼭채웠다. 큰 아들이 부탁한 ‘기타’도 뽁뽁이라 불리우는 에어캡으로 나름 정성껏 싸서 인천공항으로 향했지만 ‘기타’처럼 손상이 우려되는 물건은 별도의 포장이 필요하여 공항내 포장센터에서 재포장하여 모두 화물로 부쳤다. 워싱턴에서 남편의 후배이신 변박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5시간 운전을 하여 큰 아들이 있는 버지니아 공대까지 바래다 주셨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마중을 나오시고 긴 시간 운전을 하여 주시니 지금 생각하여도 감사할 따름이다. 필자 개인의 성향이겠지만 선배와 후배 사이의 관계가 이처럼 돈독한 적은 없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유명한 말씀이 생각났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나도 그렇게 해야지’하고 나름 단단히 결심하였다. 큰 아들이 학교내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학회에서 돌아왔다고 하였다. 항공학회가 텍사스에서 있어서 대학원생들이 교수님을 모시고 일주일간 참석하고 돌아왔는데 텍사스에서 버지니아까지 더러 쉬면서 장장 23시간 운전하여 왔다고 하였다. 젊은 청춘들이라 가능한 일이다. 학교내 호텔에서 짐을 풀고 아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로 걸어갔다. 학교 빌딩들은 넓디넓은 잔디밭으로 이어져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학교내 호수에서 오리들이 모여서 잠을 자는데 사람이 옆을 지나가도 개의치 않았다. 100여년 세월을 견딘 기숙사는 외관이 훌륭하지만 층마다 화장실이 하나인 탓으로 기숙사비는 저렴하였다. 청소는 늘 잘 되어있고, 직원들이 친절하다고 아들은 아주 좋다고 하였다. 필자가 기숙사에서 유심히 본 것은 현관을 들어오자 보이는 기념판이었다. 이 기숙사는 고인이 되신 분들을 기리고 있다는 현판과 Baldwin 부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명단을 나타내는 현판이다.이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만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튿날 아들의 교수님도 뵙고,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러 나라 학생들도 만났다. 학생들간에 서로 돕는 따듯함이 흐르는 분위기라 마음이 안심되었다. 아들이 자동차를 운전하여 워싱턴으로 이동하였다. 한국전 참전 용사를 기리는 추모공원, 스미소니언 박물관 중 과학관을 구경하였다. 항공공학자들인 남편과 아들이 열심히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브루클린 다리 위도 걸어보았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우리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 여성이 합류하여 사진을 찍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재미있는 곳이다.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가는 유료 도로는 총 35불 정도의 통행세를 내야한다. 하이패스가 없는 우리 차는 골골이 기다렸다가 현금으로 통행세를 내야했으므로 조금 불편하였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항목이다. 뉴욕에서 남편 지인의 집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분은 미국에서 성공한 분으로 공주대학교 객원교수로 계시며, 공주대학교 학생들 두명을 유엔에 인턴사원으로 취업을 시켜주었고,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한국을 알리는데 공이 많은 분이다. 작은 아들은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미주리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미술쪽으로 유명한 학교로 편입하고 싶어하여 이번 여행에서 몇몇 학교를 둘러보려 계획하였다. 뉴욕의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롱아일랜드 대학을 찾아가 보았다. 목가풍의 아담한 학교였으며 현재 방학이라 학교 분위기만 보려했는데 경비를 담당하는 분이 나오셔서 다양한 자료를 주었다. 주변을 돌아보는 여자분들이 있어 물어보니 스페인에서 온 선생님들이며 연수차 들렀다고 하였다. 로드아일랜드 학교는 미술계에서 매우 유명한 학교이다. 아들은 그 학교를 보고싶어했다. 뉴욕에서 로드아일랜드주로 가보기로 하였다. 로드아일랜드는 도시 전체가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였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학교와 도시의 경계가 없어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 건물이 도시 건물 속에 섞여있었다.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과 자매대학인 브라운대학이 록펠러도서관 앞쪽에 있었는데 브라운대학은 학교 울타리가 있어 도시의 건물들과 경계를 확실히 하였다. 브라운대학은 매우 아름다웠다. 길가 주차장에 몇 불을 넣어 주차시간을 확보하고 학교 안팎을 돌아다녀보니 방학인데도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동양계 학생들이 많이 보여 반가웠다. 학생들의 숙소사무실에 들러 뱃지도 받아오고 간단한 자료도 받았다. 로드아일랜드에에서 하루를 지내고 보스톤으로 갔다. 보스톤에서 반가운 분을 만났다. 남편 후배분인데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마치시고 하버드대학 근처에서 주변의 대학과 연결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다. 아이들의 수업에 관련된 다양한 말씀도 듣고 퍽 유익한 정보도 많이 얻었다. 하버드대학 바로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관계로 사무실을 나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다. 하버드대학도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분위기이다. 1990년대 초에도 왔었기 때문에 건물과 분위기에 대한 감동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한 여행이라 퍽 즐거웠다. 매사추세츠 주립대학도 들러보고 주변 마트에 들러 물과 과일, 김밥 등을 사서 호텔로 가져왔다. 보스톤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차가 없어도 생활이 가능하다. 보스턴에서 현재 작은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갈 계획을 세웠다. 자동차로 13시간 거리였다. 이번 여행 중에 아들과 남편, 그리고 필자가 정확히 2시간씩 운전하고 쉬며, 순번을 세워 운전하기로 규칙을 세웠다. 워싱턴, 보스턴, 뉴욕 등 복잡한 거리는 아들이 하고, 비가 오거나 어두운 밤 운전은 남편이 담당했다. 필자가 하겠다고 해도 ‘못미더움’이라 하며 배려해 주었다. 작은 자동차 안에서 복작거리며 음악듣고, 수다떨고, 맛있는 것 사서 나누어 먹었다. 이태리 음식이 먹고 싶으면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구글맵을 눌러 평점 좋은 음식점을 찾고, 음식점이 선택되면 바로 주소를 입력하여 길안내를 받아 찾아가서 맛나게 먹었다. 오하이오주에서는 한국음식을 먹자고 의견이 일치되었다.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20분쯤 가면 갈비찜이 유명한 평점 5점 만점에 4.9인 한국 음식점이 있다고 구글맵이 알려주었다. 갑자기 앞이 안보일정도로 장대비가 퍼부어 내렸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을로 들어갔다. 오하이오의 주도가 클리블랜드이다. 클리블랜드 소속 추신수선수도 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고 종업원이 말해주었다. 음식비 외에 팁을 넉넉히 주고. 지니고 있던 동전도 한웅큼 주었다. 한국어로 신나게 말하고 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을 만난 까닭에 인심이 후해졌나보다. 주로 미국 식당에서 다양한 주문에 시달리다 낯익은 밑반찬에 단지 한마디 ‘갈비탕’ 하고 주문하였다. rare, midium, well done이 아닌 그냥 ‘갈비탕’ 한 마디. 다시 퍼부어내리는 빗속을 뚫고 나와 휴게소에서 휴발유를 넣었다. 가장 짧은 거리도 5시간 운전인 까닭으로 휴게소에 들러 휴발유넣고, 아이스크림, 과자 등 먹고, 다시 휴게소 들러 휴발유넣고 스트레칭하고를 반복하였다. 음악듣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과 아주 재미있었다. ‘엄마, 이 노래 어때?’ ‘ 얘, 듣기 좋다. ’ 아버지 세대와 아이들 세대였지만 그 부모 밑에서 커서 그런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의 노래가 필자와 남편에게도 즐거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들었다. 김동율의 ‘출발’, 버스커버스커의 ‘벗꽃엔딩’, 아이유의 ‘너와 나’, Sg워너비의 ‘라라라’ 등. 보름동안 같은 노래를 반복하여 들으며 미국 11개주를 돌았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필자는 자동차 여행이 가족여행으로는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중에 마을마을 곳곳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자동차 정비를 위하여 정비소도 들어가보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우연챦게 미국에 유학와서 공부끝나면 귀국하리라 하였던 것이 35년째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는 한국사장님도 만날 수 있었다. 끝없이 넓고 푸른 옥수수 농장도 보고, 말과 양이 뛰노는 농장도 보았다. 산이 많아 꼬불꼬불한 길이 많은 동부와 길이 넓게 쪽 곧은 중부의 차이도 알 수 있었으며, 길고 긴 여행을 해야하는 차들이 한밤중에 60마일 이하로, 트럭은 45마일 이하의 속도로 서로 배려하며 운전하는 모습도 보았다. 길에는 오랜 시간 운전으로 닳아버린 타이어가 뱀허물 벗어지듯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물과 음식이 필요하면 마을로 들어가서 한아름 사서 차에 실었다. 또한 자동차 그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번갈아 잠도 자고, 먹기도 하고,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도 하고, 노래도 함께 하였다. 보름 동안 아이들은 100번을 더 넘게 들었다고 고만하라고 하였지만 아이들이 태어날 때 너무 커서 의사선생님이 ‘우아 크다’ 하고 아기를 번쩍 들어올렸다는 이야기, 자라면서 참외먹다 체하여 고생한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즐거워하였고, 머리컸다고 엄마, 아빠와 다른 시각의 의견을 마구 주장하며 운전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운전석에 앉지 않고 토론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공부스트레스, 지나간 시간의 어려움 등을 듣고 마음이 아팠으며 그 고통의 시간을 잘 지낸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올해는 남편의 회갑이며 이 여행은 남편의 회갑여행이기도 했다.필자는 아이들이 결혼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국내 자동차 여행을 해보리라 결심을 해본다. 필자의 회갑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국내 자동차 여행을 꿈꾸어 본다.대충의 계획을 세워놓고 지도와 휴대폰에 의지하여 서로 의논해가며 전국을 유람해 보자고 집안 안건에 올려놓을 생각이다. 더 나아가고희연에 건강과 여건이 허락되어 손주들도 함께 하는 가족여행을 하고 싶다.
35℃가 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집 인근에 있는 일월물놀이장에선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이 울려 퍼진다. 아이들은 폭염을 피하지 않고 여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그늘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즐기며 피서를 대신하고 있다. 기자로서 작품 사진 하나 남기려고 물놀이장 인근 아파트 고층에 올라섰다. 일월저수지와 함께 새로운 전경이 펼쳐진다. 카메라 줌을 당기기도 하고 원경도 촬영하니 신세계가 펼쳐진다. 수원 도심지 바로 인근에도 이런 거대한 녹색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구태어 피서 고생을 하면서 멀리 강원도까지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폭염이란 매우 심한 더위를 뜻하는 말로 주로 여름철 고온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 기상청에서는 폭염특보를 내린다. 폭염특보는 하루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계속된다고 예상할 경우 발표하는 기상 경보다. 뉴스를 보니 이번 폭염으로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4명이나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기상청에선 내리는 폭염주의보는 6월~9월 사이 하루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할 때 발령하는 것으로 폭염특보의 첫 단계다. 폭염경보는 6월~9월 사이 하루 최고 기온이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할 때 발령한다고 한다. 열대야는 밤 최저 기온이 25℃ 이상일 경우이다. 요즘 며칠간 폭염과 무더위로 잠을 설쳤다. 숙면을 위하여야 하는데 얕은 잠에 중간에 기상을 하다보니 그 다음 날까지도 피곤한 것이다. 이렇게 얼마간 지내다 보면 생체리듬이 깨져 건강에 이상이 찾아올 수도 있다. 무더운 여름 이겨내기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가족, 폭염과 열대야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대학생인 아들은 자기 방에서 옷믈 다 벗었다. 팬티차림이다. 선풍기 하나로 잘도 이겨내고 있다. 그러나 젊음은 막을 수 없나 보다. 바로 어제 새벽 4시, 배고픔에 일어나 탑동까지 자전거 타고 가서 24시 순대국집을 찾아 허기를 달랬다고 알려준다. 우리부부는 저녁 식사 후 일월저수지를 산책한다. 저수지를 돌다보면 저녁 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러나 취침하기 전 심한 운동을 오히려 숙면을 방해 한다고 한다. 잠자기 전, 미지근한 물로 하는 가벼운 샤워도 숙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다음은 침실 불빛 차단이다. 방안을 깜깜하게 해 놓으면 숙면이 된다. 우리 집의 경우, 창문과 방문을 다 닫으니 바람이 통하지 아니하여 방안이 후덥지근하다. 베란다에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느라 모기장을 열어 놓으니 귀에서 앵앵거리는 모기가 수면을 방해한다. 방울토마토냐 모기 퇴치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얼마 전, 밤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는지 왕골돗자리를 바닥에 깐다. 바로 강화화문석이다. 바닥의 촉감이 좋아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잠에 빠져 들었다. 강화화문석은 통왕골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기공조직이 살아 있다고 한다. 여름과 겨울에 자동 습도 조절기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올해의 열대야는 이 돗자리로 이겨내야 할까 보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 난지 65년이 지났는데도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도 있어 호국보훈의 달이라 합니다. 민족의 아픔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유월도 내일이면 세월의 뒤안길로 보내야 합니다. 백암산 비무장지대 양지바른 산모퉁이에 어느 이름 모를 용사의 돌무덤 나무비석에 녹슨 철모가 걸려있었습니다. 돌무덤은 이끼가 낀 채 허물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던 청년장교 한명희 소위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어 한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화약 냄새조차 채 안 가셨을 것 같은 그 자리에서 십자 나무만 세워진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넋을 기리기 위해 헌시 "비목(碑木)"이 쓰여 졌다고 합니다. 이 시에 장일남 선생이 곡을 부쳐 탄생한 국민 가곡이 "비목"입니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제목도 원래는 목비(木碑)인데 비목(碑木)으로 붙였습니다. 앞뒤 글자를 바꾸어 시의 맛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비목의 가사를 지은분이 충주 주덕에서 출생하셨다는 것을 충주시민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목(碑木)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한명희 선생님은 시인, 수필가로도 유명하지만 대학시절전공은 국악이었습니다.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악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를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으셨습니다. TBC 방송국 프로듀서, 제11대 국립국악원장,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서울시립대 음악교수로 정년을 하셨습니다. 전쟁의 여운과 산골의 아름다운 자연이 모태가 된 비목은 시대적 산물이자 무명용사의 희생을 상징하는 곡으로 우리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고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다고 합니다. 1995년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에 비목공원이 조성되었고, 다음해부터 비목문화제를 개최하여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젊은 영혼들의 넋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는 위령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시 문화 서원을 설립하여 “나라사랑 물망초 예술제”를 개최하며 6.25를 상기하고 희생자를 추념하는 평화통일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유월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날씨가 무척 덥다. 밤에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쳤다. 야밤 1시 반에 잠이 깨어 그때부터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보니 머리도 맑고 시간도 잘 갔다. 더위도 이겨낼 수 있었다. 열대야가 계속 될 텐데 우리 모두가 건강에 유의해야 하겠다. 참고 견디고 또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더위도 달아나고 시원한 날이 올 것이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정직을 가르치고 정직을 강조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미국에서 가장 정직했던 대통령이 누구냐 하면 클리블랜드라고 한다. 가장 뛰어났던 대통령이 아니라 가장 정직했던 대통령을 꼽을 때 클리블랜드를 뽑는다고 한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좌우명은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이었다고 하니 진실, 정직, 솔질이 아마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상표가 아닌가 싶다. 평생 진실되게 정직하게 살았으니 미국과 같은 대국에서 대통령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뉴욕 월드지는 클리블랜드가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 그를 지지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말했는데 첫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둘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셋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넷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다섯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심지어 상대편 후보도 그를 비난할 때 ‘꼴사납게 정직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정직성만큼은 인정했다. 정직해야 자신도 견고해지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도 견고해지며 자기가 정직해야 자기의 말이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많이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정직한 사업가, 정직한 정치가, 정직한 교육자, 정직한 지도자. 정직한 국민이 되면 나라는 든든하게 세워갈 수가 있지만 정직하지 못하면 곳곳에 부패해서 나라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 설렁탕을 운영하는 정직한 분에 대한 글을 오늘 새벽에 읽었다. 이분은 가장 좋은 재료를 가지고 가장 좋은 설렁탕을 만들어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하는 것이 식당 운영의 방침이었다. 한 번은 가장 좋은 재료 뼈를 공급하는 곳에서 재료를 잘못 보내어서 몇 시간 뼈를 끓이는데 누런 물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더니 뼈를 잘못 보냈다고 하였다. 이럴 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면 누런 국물을 버리지 않고 거기에 커피 프리마를 넣어서 팔면 손님들은 그것을 구분 못하고 먹게 되고 식당 주인을 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직한 주인은 누런 국물을 다 버리고 그날 장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국물이 모두 누렇게 되어 다 버렸습니다.’라는 글을 써 붙였다. 모든 손님들이 이 정직한 식당의 주인의 마음을 읽고서는 그때부터는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는 것이다. 장사가 잘되기 위해서 버린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좋은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되었다는 것이다. 바른 양심을 갖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니 식당도 잘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되고 사업도 번창케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모든 분야의 모든 사람들이 정직해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 머리만 좋고 정직하지 못하면 부패하는 냄새가 곳곳에서 나서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고 삶이 피폐해질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언제나 정직한 사람, 솔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 깨끗한 사람, 오직 사랑 가운데 모든 일에 참되게 살아가는 자가 되도록 지도하면 우리나라는 보다 살기 좋은 나라, 앞서가는 나라, 선도적인 나라가 될 것 아닌가 싶다.
박 선생님, 방학을 한 후 우리학교에서는 특별히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아 희망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처음에는 참가하겠다고 약속한 학생들이아무 연락도 없이 학교에 오지 않으니 정말 마음이 상하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교육이 더욱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이유는 어떤 목적을 위해계획하여 실시하고자 하면 기본적으로 이에 참여하여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일주일 내내 오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운 마음이드실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유야 많겠지요. 무엇보다 더운 날씨 때문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학생과 학교간의 약속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부모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정이, 그리고 자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식이 귀한 것이야 누구나가 다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러니 이 방법이 바로 교육을 잘 시키는 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을 너무 귀하게 싸고도는 사람들에게 사자의 새끼 양육법에 관함 얘기를 비유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구 사람들은 이럴 경우 스파르타식 교육을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사람들은 자기의 자식들에게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여행을 시켜주라고 이야기 합니다. 인생은 직성이 아니라 곡선입니다. 곡선의 강은 큰비가 내리면 언제 바뀔지 알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도 큰 힘이 작용을 하면 바뀌게 되는 것인데, 과정에 많은 사람이 그리고 책이, 더 나아가 크고 작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세상살이는 명상이나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만 가지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겪은 경험이 가장 좋은 길잡이요 스승이 될 것입니다. 경험은 내가 만들어서 하는 경험도 있고 외부 환경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피하기 어려운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직접 꿈을 만들어 보고 친구들과, 그리고 선생님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직접 하는 체험은 질이 다르지요. 헤겔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은 경험인데 다만 그 값이 너무 비싼 것이 흠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분의 강사님을 통하여 그 경험에 가까운 수업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번 공부는 문제를 푸는 공부, 점수를 많이 올리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내 자신을 알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견하는 중요한 공부입니다. 노벨문학상을 1949년에 받는 포크너는 본시 현재의 미시시피 주립대학이 있는 옥스퍼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주립대학 재단에서 사업 담당자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집안은 대체로 유족한 편이었습니다. 더구나 대대로 명문이어서 포크너는 어렸을 적부터 고생 같은 것을 모르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포크너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도 못했으며 고등학교를중도에서 그만두고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은행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광범한 독서를 시작했고 문필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늑하게만 살아온 이제까지의 삶은 사회현상의 지극히 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 세상에는 어둡고 음울한 그늘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포크너는 이러한 사회현상들을 자신의 소설의 주제로 삼고자 했으나 막상 붓을 잡고 보니 소재가 빈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포크너는 남이 가기 싫다는 군대에 지원해서 1차대전에 참전해 보고 싶었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징병검사에 불합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몸소 겪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길이 없어 끝내는 캐나다로 건너가 영국 공군에 입대할 수가 있었고, 1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공군 소위로 제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자 포크너는 당신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는데, 상점도 경영해 보았고 목수며 칠장이까지 해보다가 나중에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대학의 우편국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곧 집어치우고 말았습니다. 그가 당시에 제출한 사표를 보면 ‘나는 단돈 2센트짜리 우표를 사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녀석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이 싫어서 이에 사표를 제출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야기는 포크너가 27살이 될 때까지 겪은 일들입니다. 그후 그는 1962년 5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음향과 분노」와 같은 소설을 남기고1949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포크너의 일생을 생각할 때마다 인생을 평안히 안주하려는 사람에게는 한 세상 왔다 가는 길에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가 만약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평안히 청년시절을 보냈고 키 작은 것을 빙자하여 군대도 가지 않고 그저 평범한 한 청년으로서 세상을 살았다면 그에게는 노벨상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또 지금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는 화제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젊어 한때의 어려움을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내일을 위한 교훈으로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그 고생을 덜 억울하게 하는 것이오, 또 자신을 웃음짓게 해주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필자는 근무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꾸게 하기 위하여 지역사회 굿네이버스의 힘을 빌려서 아이들의 꿈을 심는 교육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꼭 야 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제자들이 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꿈을 갖고 이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뜻과 기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기를 기대하는 소망에서 한 일입니다. 험이 짧고 보는 것이 적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기댈 곳은 아직도 학교가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절에 날이 새도록 책을 읽은 학생들의 미래는 분명히 밝을 것이며, 꿈을 꾸고 하루를 시작한 아이들은 혹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기른 내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