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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영국의 교사들에게 '문제 학생'을 합법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이 처음으로 명문 법규정 형태로 부여됐다. 1일을 기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발효된 이 법정 권한에 따라 교사는 부적절하게 행동하거나 교사 지시를 무시하는 학생들에게 벌을 가할 수 있게 됐다. '교육.시찰 법령 2006'에 포함된 이번 조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당신(교사)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는 학교 문화풍토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불문율(不文律) 상으로 학부모와 똑같은 권한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허용됐었다. 그러나 새 법규정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권한을 갖고 있고 ▲학생 혹은 교사가 다칠 위험이 있을 때 싸움을 말리기 위해 '합당한 힘'을 사용할 수 있으며 ▲수업 질서를 해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쫓아낼 수 있도록 한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앨런 존슨 교육장관은 학생들의 나쁜 행동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선 교사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게 절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학생 통제권을 법령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국교사연합도 이번 조치를 환영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교사들은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아이팟(iPod)' 같은 물품을 압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이는 다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위협하는 등의 '사이버 폭력' 행위 대처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폭력범죄퇴치법안에 수정을 가한 이번 조치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무기를 소지했는지 검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은 가정의달, 청소년의 달이라고 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다. 우리의 미래요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키워주는 어린이날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 오고 있다. 어버이날도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선물도 드리며 식사 대접을 하거나 찾아뵙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유독 스승의날 만은 왜 그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모르겠다. 그 동안 스승의날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부작용이 있어 언론에 오르내리며 선생님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였고 지난해는 휴업을 한 학교가 많았다. 최근에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스승의 날을 학년말인 2월에 실시하겠다고하여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2월로 옮기자는 안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 한 학년을 마치고 1년간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날로 운영하자는 취지라고 본다. 그러나 교육청 단위의 행사로 하기에는 타시도 교육청과 또는 교원단체와 논의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 문제이고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본래의 취지에 맞게 스승의 날을 정착사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승의 날을 현재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감사의 선물이나 주는 소극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어른들의 스승을 찾아 감사의 뜻을 표하는 근본취지를 살리며 옛 스승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존경하는 날로 정착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스승의 날은 가르침을 받은 학생 즉 제자들의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진정한 감사의 날이 되어야지 학부모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된다고 본다. 즉 부모님들이 선물을 사서 학생편에 보내거나 학부모님들이 직접 선생님을 찾아 인사를 하는데 문제가 있다. 부모들이 선물이나 촌지를 주는데서 스승존경 풍토가 훼손되고 교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원인을 제공하므로 학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스승의 날은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도 누구나 학창시절의 스승의 있는데 1년에 한번이라도 스승님에게 안부전화라도 한통화 드리는 날로 정착이 된다면 정년퇴직을 하고 노후를 외롭게 보내고 계시는 스승님에게 얼마나 기쁜 선물이 될까? 그러면 평생을 교단에서 제자를 기른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교육자가 된 자긍심을 맛 볼 수 있는 날이 될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도 스승을 존경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다. 셋째,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자기 손으로 만든 꽃한송이를 달아드리도록 학부모님들이 가정에서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들은 제자들의 손으로 만든 서툰 꽃 한송이를 받는 것이 값비싼 선물보다 더 감격해 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을 빙자하여 자기 자녀를 잘좀 부탁하는 날, 그것도 서로 시샘하여 선물 또는 촌지를 건네주려는 부모의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모르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들이 먼저 눈치채는 법이다. 이는 자녀에게 교육적으로 악역향을 끼치고 살아가는 방법을 잘못가르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자녀의 인성을 망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잘못된 선물문화를 새로 정립해야 할 것이다. 선물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마음이 담긴 선물, 받는 사람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 선물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고 기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문화가 되도록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고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이날 하루만 많은 돈을 써가며 넘치는 사랑을 줄것이 아니라 평소 못하던 것들 즉 어린이와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든지 장래의 꿈을 이야기 하며 희망을 안겨준다든지 자녀와 함께 운동을 즐기며 부모의 사랑을 느끼도록 감동을 안겨주는 날이 진정으로 어린이를 위하는 날이 될것이고, 어버이날도 평소에 나누지 못한 가족이야기, 건강이야기, 자녀나 손자 손녀들의 성장이야기를 나누며 옛날 화롯가에서 나누던 정담같은 것을 나누며 가족의 정을 느끼도록 해야 어버이에게 진정한 효를 실천하는 날이라는 생각이다. 스승의 날도 학생시절에 올바른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거나 선생님의 칭찬한마디가 성취동기가 되어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면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또는 억울한 꾸중을 들었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선생님이 있다면 찾아 뵙고 마음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옛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작은 상처라도 대화로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제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학부모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남보다 과시하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대하면 그 사제관계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더러 아름다운 사제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스승의 날이 진정으로 스승존중 풍토로 자리 잡으려면 어른들의 과잉 자식사랑으로 빚어지는 그릇된 교육방법을 바꾸고 자녀가 올바른 인성을 형성하도록 부담없는 교육상담을 하며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그 동안 왜곡 되었던 스승의 날을 올바르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고 휘손되었던 스승존중 풍토도 되살아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교정엔 꽃들이 만발해 있다.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 등. 모 고교 교감에게 희망찬 봄소식을 전하니 그는 4월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작년에 있었던 학생 사고를 떠올린다. 그리고보니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극히 일부분이지만 10대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성(性)’이 위험수위에 도달하였다. 한 여중생을 7개월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중·고생 25명이 경찰에 검거된 광주(光州) 사건. 점심시간에 같은 반 여학생을 6명의 남학생이 교내 특별활동실과 화장실 등에서 2개월간 성폭행한 가평(加平)의 중학교 사건. 그밖의 남양주(南揚州), 부산(釜山)에서의 10대 청소년 성폭행 사건 등. 정부가 해마다 학년초가 되면 ‘학교폭력 자진신고 및 집중단속 기간’을 운영, 학교폭력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오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내성이 붙었는지 경찰의 자진신고·집중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누가 그랬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요즘 범죄의 특징은 연소화, 흉포화라 하는데 계절도 앞당겨진 느낌이 든다.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자기네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범죄인지도 모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 가정교육의 부재, 학교의 무신경함 내지는 교육에 대한 방기(放棄),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이 이루어낸 합작품은 아닌지?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정부에서 내놓은 교육정책마다 앞장서 선생님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결과 학생 생활지도에 손을 놓은 학교가 한 둘이 아니다. 흐트러진 학생들 바로 잡아 보고자 열심히 해 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에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 만나면 얻어 맞기 십상이다. 지도 과정에서 교사에게 조그마한 잘못이 드러나면 금방 죄인이 되고 마는 학교 현장이다. 언론의 집중포화도 한 몫 거든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잘못된 학생들 바로 잡으려 할까? 꿩(학생) 잡는 것이 매(교사)인데 매가 꿩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잡지 말란다. 멋모르고 잡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상한 학부모 만나면 교사가 돈까지 뜯기는 세상이다. 말 안들으면 '옷 벗긴다‘고 공공연히 협박한다. 교사 본인이 직접 경험하거나 주위에서 이런 광경 한 번 보면 학생생활지도에 아예 손 놓아 버린다. 보아도 못 본 체 눈 감아 버린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무서움의 대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부, 학부모, 사회, 언론이 힘을 합쳐 이런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교사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교육을 도외시 하면서 인권타령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교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약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얼마나 큰 범죄인지도 모르는 얼굴 두꺼운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을까? 학교와 가정이 유기적으로 협조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인터넷, 휴대폰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성윤리 의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시급하다.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과정(敎育課程)도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 쉬는 시간, 방과후에 화장실이나 취약지역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빈 교실 관리나 특별실 문단속 등에 각별 신경을 써야 한다. 리포터는 토요일 오후 교내 곳곳을 둘러본다. 학교에서 성폭행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장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창문을 잠그고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외부에서 침입할 수 없도록 점검을 하는 등 사전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이제 ‘잔인한 달’ 4월이 시작된다. 성폭행이 일어난 해당 학교장 직위해제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가정, 학교, 사회, 언론이 힘을 합쳐 겁없는 10대들의 폭력 범죄, 기필코 막아야 한다. 학교가 범죄의 온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범죄는 예방이 최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학교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일본의 교육기본법은 헌법이 시행된 해인 1947년 공포, 시행됐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반성에서 만들어진 헌법 정신의 '평화주의'의 이념 실현을 기치로 제정, 헌법과 함께 '전후 평화주의'를 이끌어온 두 기둥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일본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이미 15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움직임이 여론의 지지를 받게된 것은 학력저하가 문제가 된 가운데 고이즈미 전 정권 이후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로 국가가 학교교육에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1947년 공포된 일본 교육기본법은 패전의 산물로 '개인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중시한 일본 교육의 헌법으로 불려왔다. 제정된 뒤 한 차례의 개정도 없었으며 개정 시도는 '금기'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전후 보수 세력들이 여러 차례 법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 다수는 이 법의 개정으로 자칫 군국주의 교육이 부활할 것을 우려하여 반대했었다. 그렇지만 '아베 정권'은 '애국심'과 '전통' 등 국가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 법 개정을 호소하면서 정권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이어 시민세력과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정안이 가결된 것이다. 개정안은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함양한다' '공공의 정신에 기초해 주체적인 사회의 형성에 참가하고 그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함양한다'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그 법률 및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애국심 조항'이 줄곧 논란을 빚어왔다. 시민단체등은 학생들에게 무리하게 애국심을 강조할 경우 민주의식의 함양은 뒷전으로 밀리며 결국 '국가주의 및 배타심'을 갖게 할 것이라며 반발해 왔다. 또 중대한 것 중의 하나는 공립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재일 외국인은 이나 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일본을 무리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용납될 것인가하는 점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이상 일본을 사랑하는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이다. 이에 대하여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재일 한국인은 부정적이다. 무엇보다도 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다. 일본을 애국심을 강요하는 교육보다는 사랑받는 나라가 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관심있는 외국인은 문제는 애국심의 표현에 대하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위하여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일교조도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왜 강행 채결을 하여야 했는지 강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2008학년도 대학 신입생부터 일반학과를 통한 교직과정 이수인원이 크게 축소돼 교사자격증 취득이 한층 까다로워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반학과에 설치된 교직과정을 통해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인원을 현행 과별 입학정원의 30% 이내에서 10%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의 중등교사 양성과정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개선안은 2008학년도 대학 신입생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교직과정 이수인원이 입학정원의 30% 이내에서 10% 이내로 줄게 되면 2008학년도 신입생이 졸업하는 2012년에는 교사자격증 취득자 수가 9천929명으로 2006년(1만5천379명)에 비해 5천400명 감소할 것으로 교육부는 전망했다. 5천400명은 연간 교사자격증 취득자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개선안은 또 부전공을 통해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를 없애고 복수전공으로만 교사자격을 취득하도록 했다. 부전공으로 교사자격을 취득할 경우 30학점만 이수하면 됐지만 복수전공으로 교사자격을 얻으려면 42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현직 교원에게 재교육을 통해 부전공 자격을 주는 제도는 유지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등교사 임용률이 2004년 17.3%, 2005년 19.6%, 2006년 15.3%에 그칠 정도로 수급이 매년 불균형했다. 이번 개선안에 따라 중등교사 양성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수급 불균형 문제도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승객에 의한 시내버스기사 폭행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운전기사를 폭행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시내버스내에는 이런 안내문들이 붙어있다. 당연히 승객들에게 운전기사를 폭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이로인해 앞으로는 승객에의한 운전기사 폭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확실하게 법으로 제정하였기 때문이다. 처벌의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에 이한 교사폭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폭행에 대한 한계가 있을 수 없지만 최근의 사태는 우려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이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것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제는 어떤 교사라도 안전지대에 있지 못하다. 답답한 마음 뿐이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교사가 교권을 잃어버리는 사태는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앞장서서 학생들이 묻지도 않는 두발문제를 거론하면서 학교에서의 두발문제는 계속해서 이슈화가 되고 있다. 학부모 마저도 학생들의 두발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들의 두발단속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입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가 학생들의 잘못된 사고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발문제 이후에 복장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은 각급학교의 규정은 있으나 마나 한 규정으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학생들끼리의 다툼으로 사소한 신체적 접촉이 있을경우, 무조건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들은 교사에게 무조건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교사가 학생지도를 잘하기 위해 노력한 것밖에 없는데, 학부모들은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교사에게 감정적인 폭행을 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부모나 학생들에 의한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그동안은 '교권침해'라는 우려를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권침해'는 더이상 관심에 없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 교권침해는 이미 넘어섰고, 교권과 관련없는 '인권침해'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교권침해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교사들도 분명히 인권이 있는데 이런 사태가 지속되는 것은 결국은 정부나 교육당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두발을 과도하게 단속하지 말라면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학부모나 학생에 의한 교사폭행의 경우는 함구하고있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교사들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정부와 교육당국의 대책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그래도 교사들은 모든것을 참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상대를 고소, 고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자이기 때문이고 그 제자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교사들의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남아았다. 학생을 우선생각하는 마음때문이다. 어쩌다가 고소,고발을 했더라도 결국은 쉽게 물러서는 것이 교사들이다. 그러나 역으로 학부모가 교사들을 고소, 고발했을 경우는 중도에 물러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끝까지 법정에까지 가서야 시비를 가리게된다. 교사들과 학부모는 폭행사건등에 대해 대처하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론도 문제이다. 학부모나 학생에 의한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대책제시없이 보도를 한다. 신문을 읽다보면 교사들에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부분이 꼭 그렇다고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 언론의 행태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혹여 교원들이 학부모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가했을 경우에는 모든 언론의 촛점이 해당 사건에 집중된다. 역시 촛점은 교사들에게 집중된다. 교사들의 잘못으로만 몰아간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고...학생들끼리의 폭력을 학교에서는 절대로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교사들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부모나 국민들은 학교에서 좀더 적극적인 폭력예방활동을 해주기 원한다.학교폭력문제가 이슈화될때마다 교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 열심히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 이런 교사들이 단 한마디의의견을 제시하면 마치 교사들이 학교폭력예방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학부모의 학교방문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방문후에 자신들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교사폭행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자녀교육에 도움을 줄 수있을까.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로인해 자신의 자녀인 학생은 상처를 받을 것이고 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다. 결국 학생지도는 학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교육의 3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것을 학교에만 의지하거나 반대로 모든것을 가정교육에만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3주체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에 도래했다고 본다. 교원평가도 중요하고 교원성과급도 중요하다. 그러나 폭력문제는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주축으로 다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늘 바쁘다. 일에 바쁘고, 관계가 중시되는 집단중시 사회분위기상 모임에 빠지면 안되므로 또 바쁘며, 고생만하다 죽은 가여운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가 졸장부로 낙인이 찍혀 관직에서 파직되던 조선시대의 의식이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집안식구에 엄격한 대장부(?)로 보이기 위해 집밖으로 돌아야 하므로 또 바쁘다. 식구들을 멀리하고 집밖에서 허황된 시간을 보내느라 바쁜 것이 대장부인가? 오늘날의 대장부의 개념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예전에 경계하였듯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집안, 자신의 코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졸장부이다. 사이비 대장부, 사이비 가부장과 진짜 대장부, 가부장은 구별되어야 한다. 권위만 누리며 책임은 미루기만 하는 사람은 파렴치한이다. 요즈음 처자식 거느리기 힘들다고 장가가지 않고 늙는 총각들, 손위 누나 연배 여성에 기대는 결혼 풍속도는 버리고 싶은 남성, 가부장의 버거움을 들려준다. 더불어 나누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 변화해야할 가부장의 형태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말할 때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많이 기억하고, 이동속도가 빠른 인터넷, 휴대폰이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이며, 식민국에서 해방된 후 사람과 자연 그 모든 것이 피폐해진 여건, 無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기적을 만들어낸 남성들은 가부장이었다. 집 밖에서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느라 온 힘을 기울였으므로 사회는 휙휙 쾅쾅 빠르고 힘있게 변화되어 갔고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시간은 생각조차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기술 그 어느 것도 없었던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보다는 집단적 가치가 우선했어야 했을 것이다.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집단적 가치를 위해 힘의 향배는 한 곳으로 몰렸고, 개인들은 참아야 했으며, 참을 수도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외국여행도 쉽게 생각하게 되었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커다란 상점들이 들어오고 삶에 윤기가 돌던 시기부터 집 밖과 집단 우선의 가치에 변화가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팔려고 내어놓은 사과 한 알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사과를 줄 수 없었던 가난 했던 시절에 아내와 아이들은 밖에서 일하는 아빠가 밤늦게 귀가하거나 며칠 집에 올 수 없을 때 안위를 걱정하며 응원했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개인이 사회에 요구하는 제도와 가치는 달라진다. 국민소득 백달러 미만, 또 5000불의 생활에서의 제도와 가치가 국민소득 이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수용이 되겠는가? 가정,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국민소득 이만달러, 삼만달러 시대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반영한 가치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그에 상응하는 계획과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출산율이 낮아지고 결혼기피율이 높아진 까닭이 무엇인가? ‘아녀자’라는 단어에서 배어나오는 의미가 ‘하찮다’로 들리는 사회의 통념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처럼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된 남편은 아이들 방에 놓인 낮은 책상위의 컴퓨터를 널찍한 큰 책상 위로 옮겨놓고, 평소에 기계를 모르는 필자가 여기저기 놓아 둔 전기선, 배터리, 마이크, 카메라 부품 등 잡동사니를 하나하나 꺼내어 용도에 맞게 각각의 서랍에 정리를 하고, 이방 저방 다니며 필요한 물건과 필요없는 물건들을 구분하여 깔끔하고 편리하게 해 놓았다. 사관학교 졸업 후 오랜 군생활로 다져진 정리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필자의 남편은 군인이며, 조종사이고, 항공공학자이다.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환해진 방을 보며 즐거워하며 몇 가지 손보고 싶었던 기계들을 내어 놓고 아버지와 의견을 나누었다.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부자간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대로마제국의 기틀을 잡아가던 초기에 로마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의 삶에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가 뒤이어 나오는 아들을 위해 수건을 들고 섰다가 물기를 닦아주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의 이상과 삶의 방향은 아들에게 이어진다. 목욕은 함께 할 수 없을지라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딸에게도 중요하다.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는 딸 인디라에게 옥중서신을 통해 국가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반을 닦아주었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가 어릴 때에는 생활에 필요한 일상을 거들어주는 것과 기본생활 습관 형성,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필자는 자녀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다. 교육을 전공하였고, 교육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하지 못하였음을 생각할 때 아이들에게 두 배로 더 미안하며, 그럼에도 심신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음에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한 달에 한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자’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큐는 중국에서 자손이 아버지를 공경하며, 죽은 후에도 제사를 모셔주는 관념과 장려 정책이 인구수 증가를 가져오는 반면 장자에게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나머지 자손은 빈털터리로 만드는 유럽의 정책이 인구의 빈곤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의 안위 더 나아가 흥망성쇠를 고려할 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군사안보영역보다 더 중요하다. 최신 기술의 훌륭한 무기와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다루는 사람의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기계도 무용지물이 된다. 더 중대한 것은 그 자리, 그 일에서 정신을 실종했을 때이다. 무기가 훌륭할수록 기술이 좋을수록 패망의 속도만 더 빨라질 뿐이다. 필자로부터 볼 때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의 식민지국 전락과 한국동란으로 통일된 한국역사상 가장 한심한 조상이 되었으나 논팔고 밭팔며 자손을 교육하여, 자손이(아버지 세대) 황폐와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으로 중진국 입성을 이룩할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아버지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자손(현재의 우리세대)의 교육에는 실패하여 선진국으로의 입성을 위한 기본 교육과 의식을 갖추게 하지 못한 탓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 혹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할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반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10년 가까이 머물게 하였다. 갈등과 반목, 이기심이 충돌하는 사이 2세를 위한 교육은 내 가족, 내 아이의 안녕, 나 자신의 행복만을 고집하는 그야말로 깊이 얕은 소위 ‘아녀자(?)’에게 전담되었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황폐화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다소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선진국 입성을 위한 연착의 가능성이 보인다. 반드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아버지들이 가부장의 권위를 가지고 팔을 걷어부치고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멀리 해외에 출장을 가 있을지라도 전화나 이메일 안부를 전하고, 일관계로 공휴일에도 운동약속이 있을지라도 저녁은 가족과 같이하며, 집안 행사에 딸과 아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집안의 역사를 들려주고 의례를 알려주며, 조상과 자신, 후손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 그리고 넓은 세상과 긴 안목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자신의 위치와 뿌리에 중심을 두고,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구한 전통속의 장점을 살리고, 잘난 나라들의 의식과 제도, 가치를 연구하여 우리의 몸에 맞는 넓고도 큰,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 중심이 바로선 앞선 의식과 틀이 필요하다. 잘난 나라, 앞서 가는 나라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18세기를 살았던 몽테스큐의 글을 읽으며 왜 프랑스가 당시 세계 제일의 강국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도원에 있는 대형도서관에는 일반인들도 열람이 가능하였고, 여성들은 살롱의 중심인이 되어 남성들과 더불어 정치, 사회, 과학, 문학, 외교 전반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도서관에 비치한 도서목록은 웅변, 기하, 형이상학, 광활한 우주의 구조와 아주 간단한 기계에도 똑같은 관심으로 연구하는 물리학, 병과 치료법에 관한 의학서적과 해부학, 연금술, 지극히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점성술과 주변 국가들의 근대 역사서, 소설과 시 등 인간지식의 총망라이다. 현대의 국가통치체제, 의식과 가치 이 모든 것에 유럽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강국이 된 것이다. 유럽에 풍요를 가져다 준 20세기의 양식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부품을 조립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대량생산 방식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담당한 부품만을 만들어내면 되었으므로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통한 다양성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귀가 맞지않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부품은 대량의 생산을 방해하였으므로 철저한 전문화, 고립화를 통한 이익 창출 형태였다. 이와같은 경제, 산업부문의 가치는 단순히 그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 분야의 의식과 가치가 그러한 경제구조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전문화로 일컬어지는 고립화는 상대를 알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결구도를 심화시켜 지배자와 피지배자, 풍요와 빈곤의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인간의 풍요를 위해 자연은 희생되었고, 한 국가를 위해 다른 국가가 희생되었으며, 이 사람을 위해 저 사람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 추구와 기계화 덕택으로 먹거리 문제의 해결, 질병의 극복과 수명 연장,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의 극복은 20세기 문명의 지대한 공헌이다. 21세기는 생존을 위하여 단절에서 비롯된 황폐화의 치유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다양성의 인정과 통합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내 것은 문명이고, 네 것은 야만이고, 나는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고, 나는 윗분이고, 너는 아랫것이고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간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접합하여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바깥양반이고 어머니는 안사람, 아이들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집안을 함께 일구어가는 소중한 동반자이며, 동식물은 마구잡이로 이용당하고 버려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 먹거리와 즐거움, 일손을 덜어주는 함께 살아야 할 고마운 존재이며, 손을 모우고 인사하는 사람, 악수를 하는 사람, 코를 비비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을 존중 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새 틀은 보다 나은 개인과 국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새롭고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21세기 한국 교육의 목표는 현지화와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성인식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어른이 되는 무거움과 즐거움을 알려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한국에는 계례식과 관례식의 전통이 있다. 남녀 공히 성인이 되어 오랜 세월을 이어온 가정과 국가의 맥을 이어갈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책임있는 성인으로서의 개인의 행동이 조상과 부모 더 나아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중함을 의식을 통하여 꼼꼼히 알려주고 가르치면 한 공동체를 이루는 친구를 학대하고, 작은 이익을 위하여 죄를 짓는 일은 하지는 않지 않을까? 물론 의례만 부활시킨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대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 정상적인 사회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자기가 제일이라고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좁은 한국땅에서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잘났다고 끼와 부지런함, 노력과 포부를 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세계 여러나라에 나가있는 사람들 즉, 기업 등 민간인, 정부기관들, 군관계자와 재외 교포들이 현지의 생활과 사고로 현지인과 협력하여 최고로 발전할수 있도록 잘난 끼를 발휘하고 업적을 내도록 후원을 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 평가를 하면 이만불, 삼만불의 선진국 고지에 곧 다다르지 않을까? 참하고 훌륭한 지역민과 혼인하는 것도 째려볼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은 우리의 사고와 문화의 폭을 넓혀주고, 세계와 세계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에 네트워크망을 형성하여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공유하면 세계인이 배우고자 성황을 이룰 모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을 거드는 동안 이리저리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존재, 가장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다. 오랜 동안 출장을 나가있어 비어있는 시간이 많을지라도 식탁에 남편의 수저를 놓아두고, 안방에 남편의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한 아줌마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 방이 비좁고 책은 많아 커다란 공간이 필요할지라도 크고 좋은 안방은 쓰임이 적더라도 아버지의 상징으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도 상기해보았다. 자신이 타던 전투용 비행기를 자신의 힘을 보태 만들어 보겠다고 개발에 골몰하느라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던 남편이 집에서 휴일을 보내며 구석구석 일을 챙기는 모습에 감격하여 몇 자 적어보았다. 필자는 사관학교시절부터 박사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였으므로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수없는 날들을 밖에서 보내는 군인정신 투철한 남편이 다소 집안을 소홀히 한다고 째려보고 있을망정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푼이 마나님에게 자신의 남편은 누구보다 더 크고 잘나 보이는 것이다. 다른 집의 마나님들도 그러하겠지만.
서울시내에는 지역교육청내에 있는초, 중, 고등학교를 몇 개씩 묶어서 지구별 장학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지구별 장학협의회이긴해도 교장협의회, 교감협의회, 교과협의회 등도 이렇게 나누어져있다. 전체 지역교육청을 하나로 묶으면 각종 협의회등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편의상 나누어놓은 것이다.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 안에는 생활지도부장 협의회도 속해 있는데, 며칠전에 우리학교가 속해있는 지구의 생활지도부장 협의회가 열렸다. 10개의 초, 중, 고등학교가 속해 있는데 생활지도부장이 바뀌지 않은 학교가 2개학교뿐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참석한 생활지도부장들은 한결같이 '연속해서 생활지도부장을 해야 학생지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의 위치가 매우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2년 혹은 3년연속 한다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생활지도부장을 하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한다. 주변의 학교에서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생활지도부장이 소송에 걸린 경우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송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재산을 다 소송비로 사용한 생활지도부장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생활지도부장이 기피 1호의 보직이다. 서로가 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매년 바뀌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생활지도부장을 기피하는 이유는 업무의 어려움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분불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해 보려고 학생지도를 열심히 한 것이 죄라면 죄인데, 학부모들은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조건 학교책임, 생활지도부장 책임으로 돌리려는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반면,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좀더 강력한 생활지도를 해주기 원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문제, 복장문제등을 학교에서 강제해서라도 바꿔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보다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측면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결국은 학생지도는 교사, 학부모가 함께 해야 효과적이라본다. 기피하는 것은 생활지도부장뿐이 아니다. '스쿨폴리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출발한 제도가 있다. 그러나 스쿨폴리스제도가 정착하기도 전에 그것을 담당하려는 인사가 많지 않은 문제점에 봉착하고있다. 우리학교의 경우도 교내순시를 하던 자원봉사자가 1년만에 그만두었다. 업무적으로나 학생지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새학년이 시작된지 거의 1개월이 흐른후에 인선을 겨우 한 상태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담당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 걸까. 일단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안에 대해서 학교나 생활지도부장의 잘못된 처리로 인해 학생에게 심각한 피해가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즉 일반사건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고 학교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최대한 보호를 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생활지도부장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무조건 소송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것은 결국은 교권침해로 이어져서 생활지도부장이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최소한 생활지도부장에 대한 우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는 우대책으로 제시하는것이 '승진가산점부여'를 많이 거론하는데, 이는 우대책이 아니다. 모든 생활지도부장이 승진가산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우대책보다는 실질적인 우대책이 필요하다. 생활지도부장에게는보수나 수업시수등에서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해서 생활지도부장 기피현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가시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면 실시하는 것이 옳다고본다. 만일 소송에 휘말릴 경우는 어느정도의 소송비용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부담해 주어야 한다. 생활지도부장이 모두 책임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책임만 강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날로 어려워지는 학생지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깊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보통 일선학교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감면과 급식비 지원등을 해주고 있다.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학교에서 점심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이나 학비를 제때에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할 수 있다.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실시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실제로 학비문제로 상당한 고통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의무교육실시와 함께 학비부담이 대폭줄었지만 아직도 줄어든 학비마저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의 혜택을 꼭 받아야 함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학교에서 가정형편을 제대로 실사한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런데 IMF이후에 학비감면이나 급식비면제등의 조치가 단행되면서 지원을 받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식의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런 풍토와 함께 학교에서의 심사가 허술한 틈을 타고 실제로는 학비나 급식비를 납부할 형편이 되면서도 지원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교육부와 시교육청에서는 감면받을 수 있는 대상을 어느정도 기준으로 정했는데, 그 기준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최우선이 되었다. 급식비는 그래도 어느정도 융통성이 있지만 학비감면의 경우는 기준을 거의 모든학교가 준수하고 있다. 이런 사정때문에 실질적으로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부모중 한쪽이 없거나 있더라도 중한 질병치료로 수입이 없는 경우에도 지원을 못받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그 학생들의 경우는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는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지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전세를 살고 있다는 것을두고 그래도 형편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수입이 없을 경우는 전세금은 가정형편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최근의 이혼률 증가와 함께 편부, 편모가정이 늘고 있다. 이 경우도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담임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하여 상당한 객관성을 입증하더라도 학비감면의 경우는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질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객관적으로 입증되더라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본다. 학비나 급식비지원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준에 밀려 지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최소한 담임교사가 비교적 객관적인 상담을 실시하여 추천한다면 지원해줘야 옳다고 본다. 물론 예산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해진 예산내에서 지원을 하다보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모두를 지원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급적이면 실제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주기 위한 쪽으로의 개선은 필요하다. 담임교사나 학교에서 객관적으로 상담이 되었다면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임교사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는 자치단체에서 매달 일정액을 지원받는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렵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는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도리어 이들이 더 형편이 어려울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형편이 안좋은 학생들 모두에게 지원을 해 줄수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담임교사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은 상식적 안목에서 지적 안목 형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지성인을 육성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목적인 미래지향적 활동으로써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국가 흥망의 원동력이다. 수박 농사를 짓는 아버님을 도우며 원두막에서 글짓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주렁주렁 열린 수박을 따서 차에 싣고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팔아본 경험이 있는 중학생이 막상 수박에 관한 시험문제에서는 0점을 맞았다. 그러나 학원에 다닌 도심지 학생은 “박과에 속한 1년생 덩굴 풀”이라고 암기해 100점을 맞았다는 픽션이 있다. 이것은 시골 학생은 상식적 안목에 머물고 도심지 학생은 지식이 암기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질수업을 전개하여 질적 평가를 실시하면 도심지 학생은 0점이고 농촌 학생은 100점이 될 것임에 분명하므로 수업과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입시교육은 칠판에서 수영과 논술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고, 도덕과 수학 그리고 과학 교육이 전개되고 필기시험에서 100점만 맞으면 실력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교육은 수영장을 찾고, 논술지도에 앞서 다독부터 시키며, 원어민 수업을 전개하고 도덕적 논의를 시키며 수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철학을 하도록 한다. 즉, 자기 주도적 지식 구성학습으로 스스로 지적 안목을 형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학교에는 과학실과 도서실, 어학실, 정보실, 실습실 등이 존재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목적과 방법이 다르고 평가가 다르다. 사교육이 명문대 입학을 목적으로 학습문제(시험문제)를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개념, 원리, 법칙을 다양한 방법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면 학생들은 앉아서 주의 깊게 듣고, 이해된 내용을 암기해서 시험문제가 나오면 기계적으로 대입(代入)해서 푼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며, 학교에서 방과 후에 개인차에 따라 이해력과 기억력 신장을 위한 보충학습을 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따라서 입시교육은 테니스는 교사가 하고 학생은 구경하고 있는 모습에 비유되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라고 평가되고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라 혹평 받고 있다. 또한 입시교육은 학생들의 이해력과 암기력, 단순 사고력이 신장되지만 타율, 암기, 경쟁을 학습하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건강, 자주, 창의, 도덕)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육성될 수가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면 강의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기초교육을 받아야 하며, 취업 후 또다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를 두고 교육적 낭비라 질타하고 입시 지향적 교육행태를 망국적 병리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 각급 학교 교실에서는 미국 등 선진 국가처럼 교사가 학습목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학습문제를 선정(수준별 학습을 위해)하고 스스로 인터넷, 도서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가설(아이디어 창출)을 설정하고 협동으로 실험, 관찰, 성찰, 토의, 조작 등을 통하여 스스로 개념, 원리, 법칙을 구성시켜야 한다. 즉 학생들이 학문을 듣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 지식 구성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혁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적 탐구력과 창의력이 신장되어 학생의 삶과 대학을 포함한 평생학습에 필요한 수학 능력 신장은 물론 자주성과 도덕성(협동성), 창의력이 육성되고 학습량(많은 문제 풀이 연습)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확보된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건강관리와 논술의 기초가 되는 독서와 인성의 요인이 되는 사회성, 정서 함양 등 사람다운 사람 육성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입시교육이 대증요법이라면 공교육은 보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고, 입시교육이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라면 공교육은 ‘수박 재배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자체에서는 고장을 떠난다고 지금 당장 대증요법을 쓰지 말고 먼 훗날을 내다보고 보약처방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지방 고등학교를 명문 고등학교로 만들어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길러 놓으면 이들이 오히려 부모님과 고향을 생각하고 취직도 잘하고 고향에 남아 창의적 사업을 일구어 고향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개인차에 따라 어떤 학생은 명문대학에 들어가 지도자가 되겠지만 그것만이 성공은 아니며 교육의 본질적 목표는 지도자가 되기 전에 우선 사람다운 사람을 육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재의 현대적 의미도 낙제생이었지만 발명왕 에디슨과 같이 인성과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소프라노 조수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야구선수 박찬호 등과 같이 예·체능이 탁월한 사람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필자가 지방에서의 지도자(군수, 의장, 군 의원, 사회단체장 등)의 특성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명문대학 출신이라기보다는 애향심과 사회성, 도덕성, 협동성과 같은 인성과 창의성이 탁월한 인격자, 즉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에 부합된 민주시민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 사회는 공무원, 회사원은 물론 자영업자까지도 학벌보다는 인성·창의성이 우수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어야만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국가가 생존할 수 있다. 근래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이 사적 목적 실현을 위한 입시교육을 조장하는 부적절한 행정으로써 국가백년대계를 저해하는 오점을 남길 수가 있다. 따라서 공교육은 현행 법제도와 같이 전문기관인 교육청에 위임하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부족한 예산을 확충하여 적극 지원함으로써 본질적 수업을 통한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슬기로움 교실수업 및 평가 방법의 혁신에 대한 계속적인 노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한반도 끝에서 시작한 신라, 기지개를 켜다 신라 천 년의 세월 안에는 ‘신라’라는 한 나라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힘을 키워서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또한 어떻게 스러져갔는가를 완벽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신라는 진한, 즉 경상북도 지역에서 12개의 작은 나라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기원전 57년). 촌장이 지도하는 촌락공동체에서 출발한 사로국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 4세기 무렵에는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고, 676년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와 치열한 전쟁을 거쳐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통일 과정에서 외세의 도움과 한반도 남쪽을 차지하는 데 그친 불완전한 통일이었지만 최초의 민족 통일국으로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신라의 시조왕 박혁거세는 여섯 부족의 촌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초기 왕들은 박·석·김씨가 번갈아 왕위에 올랐고 사로국의 영역도 경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신라가 여러 세력 집단이 연합하여 임금을 선출하였고, 이러한 시기에는 더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엔 힘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건국설화에 따르면 박혁거세가 탄생한 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나정’은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우물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던 이 곳은 지금 발굴조사가 한창이어서 들어가 볼 순 없지만 우물 터, 건물 터 등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신라 천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랍니다. 석탈해와 월성 탈해가 신라에 와서 살집을 찾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였는데, 그곳은 호공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탈해는 밤중에 몰래 호공의 집 주변에 숫돌과 숯 등을 묻고서 다음날 호공의 집을 찾아가 이곳은 자기 조상의 집이니 돌려 달라 주장했지요. 결국 탈해와 호공은 서로 다투다 법으로 결정하기로 하고 관가를 찾아갔습니다. 탈해는 그 집은 자기 집이 틀림없으며 집주변을 파보면 알 수 있을 거라 큰소리쳤겠죠? “나의 조상은 대장장이인데 잠시 멀리 떠나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차지한 것이니 집 주변을 파보면 알 수 있다”고 말이에요. 결국은 탈해의 꾀에 호공은 억울하게 집을 뺏겼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2대 임금인 남해 차차웅에게까지 알려졌대요. 탈해의 지혜를 높이 산 남해 차차웅은 자신의 딸과 탈해를 혼인을 맺게 하였습니다. 이로서 탈해는 임금의 사위가 되었지요. 그 후 파사 이사금 때에 이곳에 성을 쌓아 월성이라 했습니다(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하지요). 월성에 가면 성벽을 따라 파놓은 인공해자를 볼 수 있습니다. 월성 안에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하던 창고로, 원래 월성 서쪽에 있던 것을 영조 때 옮겨 지은 것이에요. 월성과 첨성대 중간에 나무가 우거지고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이랍니다. 탈해왕 시절 서쪽 숲에서 우렁찬 닭울음소리가 나서 찾아가보니 나뭇가지에 금빛 궤짝이 걸려 있고 그 아래 흰 닭이 울고 있어 궤짝을 열어보니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금빛 궤짝에서 나왔다 하여 성이 김씨가 된 김알지랍니다. 신라의 기틀을 다지다 신라는 17대 내물왕 때 이르러 나라의 기틀을 갖추고 왕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김씨가 왕의 자리를 독차지하게 되었으며 ‘여러 우두머리 중에서 대장’이란 뜻을 지닌 마립간을 왕의 호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왕의 힘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고구려, 백제와 맞설 만한 힘을 갖춘 것은 아니었답니다. 신라는 5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倭)의 침입으로 곤경을 당할 때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5만의 군사를 보내며 신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답니다. 신라의 왕위 계승 문제에 간섭하거나 신라 땅에 고구려 군대를 주둔시켜 신라를 간섭하고 지배하려 하였지요. 427년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 백제의 비류왕과 신라의 눌지마립간은 나제동맹을 맺게 되었고, 드디어 신라는 조금씩 고구려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한편 힘을 강화해가기 시작합니다. 경주 시내 여기저기 산처럼 불쑥 솟아 있는 거대한 무덤들을 보았나요? 마립간과 왕족들의 무덤이랍니다. 대릉원은 미추왕릉으로 추정하는 무덤을 비롯하여 천마총, 황남대총 등 돌무지덧널무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천마총은 하늘을 나는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가 발견되어 붙은 이름입니다. 최근에는 ‘천마가 아니라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그린 것이다’라는 주장이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말다래는 말 탄 사람의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을 말합니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는 삼국시대 신라의 유일한 그림으로 바로 이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천마총이랍니다. 이외에도 그릇에 담긴 채 발견된 달걀이나 화려한 금관 등 여러 가지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금관, 금귀걸이, 토우, 금동신발 등 신라왕릉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평지무덤의 왕, 황남대총은 남과 북의 고분이 표주박처럼 붙은 표형분으로 부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굴 결과 남편의 무덤인 남분이 부인의 무덤인 북분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남분에서는 60세 전후의 남자 인골과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15세 전후의 여성의 인골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남편의 무덤에서는 도금한 금동관이 출토되었고 부인의 무덤에서 순금제 금관이 나온 사실이지요. 북분에서 부인대(부인의 허리띠)라는 글자가 새겨진 허리띠 장식품이 나온 사실로 미루어 북분이 부인의 무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겠지요. 무덤의 주인공이 소지왕이니 내물왕이니 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답니다. 미추왕은 13대 왕으로 김씨로는 최초로 신라왕이 된 인물입니다. 미추왕릉은 다른 고분과 다르게 담장이 둘러있고 삼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14대 유례왕 때 이서국 군사들이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한 일이 있었지요. 온 힘을 다해 적을 막던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귀에 대나무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는 사라졌습니다. 군사를 뒤쫓아 가보니 군사들은 간 데 없고 대나무잎만 미추왕의 무덤 앞에 수북이 쌓여 있으므로 미추왕이 도왔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후 미추왕릉을 ‘죽장릉’이라 하였고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 부르는 이 무덤들은 땅 속에 모래와 자갈을 깔고 나무로 만든 관을 놓고 그 관 위에 다시 나무로 만든 곽을 씌웁니다. 곽과 관 사이에 금관이나 허리띠, 귀걸이 등 껴묻거리를 넣고 나무 곽 주위에 자갈돌을 쌓아 진흙을 덮어 다진 뒤 마지막에 흙을 쌓아올린 형태로 삼국 중에서 신라만 이런 무덤을 만들었답니다. 어마어마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어 도굴하기가 어려웠겠죠? 한편, 굴식돌방무덤은 사람이 사는 집처럼 돌로 방과 통로를 만들고 입구에 문이 있어요. 무너질 염려가 없으니 입구만 찾으면 도굴하기가 쉬운 구조랍니다. 신라의 발전, 분황사와 황룡사 6세기 초 지증왕 때 농업생산이 크게 발전하였고 국가의 모습이 날로 새로워짐에 따라 나라 이름도 신라(新羅)라고 새로 정했습니다(503년). 법흥왕 때에는 법률을 발표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적 왕조국가로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진흥왕 때는 신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지요. 가야연맹 지역을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고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공략하여 한강상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후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마저 빼앗아 명실상부한 한강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신라는 독특한 신분제도인 골품제도를 마련하여 지배층의 지위를 보장하였고, 성골만이 왕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진평왕에겐 딸만 셋이 있었는데 큰딸이 왕위에 올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됐습니다. 선덕여왕 재위시 당나라(태종)와 고구려(연개소문)는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며, 백제(의자왕)와 신라(선덕여왕)도 치열한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답니다. 또한 여자가 왕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의 반란과 당나라의 비웃음을 극복해야 했던 선덕여왕은 부처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고 여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분황사와 첨성대를 세웠고 황룡사 9층탑을 세웠으리라 여겨집니다. 분황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승 원효와 황룡사 9층탑을 세울 것을 건의한 자장이 머물렀던 곳입니 다. 분황사는 이름 그대로 향기 나는 황제의 절이라는 뜻입니다. 분황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탑이 삼국 시대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이지요. 분황사 모전석탑은 안산암이라는 돌로 벽돌모양을 본떠 쌓은 탑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허물었던 탑을 조선시대 승려가 수리하려다 오히려 더 손상이 되었고,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보수되었으나 원형대로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9층 또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여러 차례 파괴되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탑에서 나온 사리함에는 여성(선덕여왕)을 상징하듯 바늘과 가위가 나왔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황사를 나서면 눈앞에 드넓은 잔디밭이 보이지요? 이곳이 바로 황룡사터입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년)때 새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을 짓고 황룡사라 하였답니다. 진흥왕 때 이곳에 커다란 부처님(금동장륙상)도 만들었으며, 진평왕 6년(584년)에는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금당을 세웠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황룡사 9층목탑에 오르는 꿈을 꾸면 과거에 합격하는 행운의 꿈이라 여겼답니다. 황룡사는 총 면적 2만 여평으로 동양 최대의 사찰이며 진흥왕 때 시작하여 선덕여왕 때까지 4대왕 9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신라 역대 임금이 절에 와서 고승의 설법과 강의를 받는 등 신라 최고의 사찰로 유지되었으나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버렸습니다. 황룡사 터를 발굴하던 어느 날 목탑의 심초석 밑에 있는 사리구멍에서 사리기구가 사라졌습니다. 심초석을 옮기던 중 날이 저물자 발굴팀은 다음날로 일을 미루고 일정을 마쳤답니다. 그날 저녁 기회를 노리던 도굴꾼에 의해 사라진 것입니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행히 금판에 쓰여진 탑지는 찾았지만 나머지 사리기구는 영영 사라져버렸습니다. 탑지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황룡사 창건에 대한 기록과 일치하여 삼국유사의 진가를 확인해주었지요. 부왕의 은혜, 감은사와 대왕암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부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고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따라 완성한 사찰이지요. 금당터 아래를 보면 빈 공간이 있는데 용이 되신 아버지를 위해 물길을 파서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금당 앞에 우뚝 솟은 쌍둥이처럼 생긴 두 개의 탑이 있습니다. 수십 개의 돌로 조립된 통일신라 초기의 탑이지요. 두 탑의 당당한 모습에서 삼국통일 후 신라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대종천이 흘러드는 감포 앞바다 일대를 신라 사람들은 동해구라 불렀습니다. 왜구가 이곳으로 자주 침입하여 당시 방어의 요새로 중요하게 여겼답니다. 이곳에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 무열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마무리한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는데 대왕암이라 불립니다. 죽어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동해를 지키겠으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검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지요. 유언에 따라 대왕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이곳에 매장하였다고도 하고, 뿌려졌다고도 합니다. 대왕암이 있는 곳에서 바다 건너 언덕에 정자가 한 채 보이는데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이견대입니다. 통일신라의 전성기, 불국사와 석굴암 한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삼국의 백성을 아우르게 된 통일신라는 보다 앞서있던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여 진정한 의미의 통일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당나라를 통해 교역이 빈번해지면서 서역과의 교류도 활발해져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라 문화는 통일 이후 장기간의 평화를 바탕으로 성덕왕에서 경덕왕 때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높은 문화수준을 기반으로 석굴암과 불국사, 에밀레종을 탄생시켰지요. 신라 사람들의 소망이 한 곳에 모아져 불국사와 석굴암이 탄생했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은 김대성이라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모량리의 가난한 집안 출신 대성이 전 재산인 밭 한마지기를 부처님께 시주하고 죽게 되었는데 명문가에 환생하였습니다. 그는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서 석굴암을 지었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불국사와 석굴암은 국가적인 대사업이었습니다. 경덕왕은 이 절을 지으면서 당대의 고승이며 국사인 표훈과 신림에게 조언을 구하고 완공 후에는 이곳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두 절이 창건된 시기는 통일 전쟁을 치른 후 100년, 정치적·사회적으로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문화가 골고루 발달한 때였습니다.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힘들게 토함산을 올랐겠지만 우린 차를 타고 갑니다. 창밖을 한번 보세요. 멀리 동해바다에서 밀려오는 구름과 안개가 온 산을 휘감고 있습니다. 토함산이란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하는 산이랍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지나야 석굴암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본래 이름은 석불사였고, 원래는 암자가 아닌 독립된 절이었습니다. 석굴암은 300여 개나 되는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인공석굴로, 예배와 공양을 하는 네모난 공간과 본존불이 놓여진 동그란 공간을 통로를 통해 연결해 놓았습니다. 석굴암 후실 중앙에는 본존불이 앉아있고 본존불 주위의 둥근 벽을 빙 돌아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보살상과 제석천, 범천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통로에는 사천왕을 조각하였는데 부처님의 나라를 동서남북에서 지키는 신이지요. 전실에는 금강역사와 팔부신중을 조각하였습니다. 조각들의 표정과 동작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어 벽에서 걸어 나오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요. 천년을 끄떡없이 버텨온 석불사는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를 바른 뒤부터 석굴 안에 이슬이 맺히고 곰팡이가 피어 조각들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후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웠지만 습기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지금처럼 유리벽을 세우고 석굴을 밀폐시켜 냉방시설을 들여놓게 되었답니다. 현대의 최첨단 기술이 천 년 전 신라인의 과학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몰락하는 신라, 포석정 세월이 흐르면서 신라 내부에서는 여기저기서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골품제도에 막혀 뜻을 이룰 수 없었으며, 비참한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는 왕실과 귀족들 간의 권력 쟁탈전은 지방 통제력의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착취와 억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의 반란이 이어지고 정부의 간섭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에서 힘을 키운 호족들은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궁예와 견훤이지요.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라는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항복하는 935년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포석정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유상곡수연을 하던 곳입니다. 유상곡수연이란 구불구불한 수로에 흐르는 물 위로 술잔을 띄워 잔이 머무는 곳에 앉아있는 사람이 시를 짓는 놀이입니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의 기록에도 나오는데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어 포석정의 유적이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포석정은 927년 음력 11월에 경애왕이 비빈과 신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즐기다 견훤에게 잡혀 자결을 강요당했다는 이야기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경애왕이 잔치를 벌였다는 때는 추운 겨울입니다(음력 11월). 또한 9월에 견훤의 공격이 있어 왕건에게 원군을 요청했던 급박한 상황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삼국유사에 보면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이 춤을 추었는데 왕의 눈에만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남산의 신이 보였다는 것은 곧 국가적인 행사를 하는 신성한 장소임을 의미하지요. 견훤의 공격이 감행될 때 경애왕이 질펀하게 잔치판을 벌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위해 신께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기록으로, 또 구전으로 이어져 오지만 누구에 의해서였든 사실 그대로가 아닌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기정사실화해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라의 몰락에서 이어져 오는 얘기도 마찬가지고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그것에 깃든 우리 조상의 훌륭함과 왜곡되지 않은 바른 역사를 알아내 공부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숨 쉬는 우리의 땅, 한번 슥 지나오며 사진 찍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더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문화 교육은 남을 이해하는 교육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되찾는 신뢰의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질적인 다문화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국제이해교육(EIU,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이란 개념은 아직도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그리 친숙하지 않다. 대학에서 조차도 국제이해교육이나 개발교육, 인권과 평화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와 취업에 필요한 실용 교육이 갈수록 범람하고 있다. 나와 다른 남도 인정해야 국제이해교육은 세계시민 교육이나 지구촌 교육, 다문화 교육, 평화와 인권 교육,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 교육, 민주주의와 관용 교육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교육 현장에서는 너무 거창할 뿐 아니라 이념과 가치 중심의 교육이라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왜 국제이해교육인가? 필자는 국제이해교육이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왜 절실히 필요한지에 대해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고 있지만 가장 난감한 경험으로 말하는 것은 목욕탕에 들어가다가 제지당할 때이다. 한국인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어떤 외국인은 피부가 검다는 것을 마치 더럽다고 느끼며 함께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 한국인을 만날 때 더욱 서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있지만 동남아 여성들과의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은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는다’는 식의 광고를 버젓이 언론에 내기도 하였다. 19세기 노예상인들이나 했던 인종차별과 야만 행위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의 모습은 더욱 문제가 많다. 한류 때문에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 스타들을 좋아하고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영화를 즐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류가 한국인들의 ‘함께 살지 못하는’ 배타적 모습을 바꾸어 주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해외 한인 사회는 배타적이고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유색인들에게는 매우 권위적이고 차별적이기도 하다. 현지 문화나 언어를 알려고 하지 않으며 반말과 욕, 고압적 태도, 때로는 폭력을 쓰기도 하여 현지인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한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몽골과 같이 한인들의 사업체가 많은 지역에서는 한인들의 부적절한 태도 때문에 현지 언론에서 ‘야만적인 한국인들’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더욱 끼리끼리 뭉쳐 산다. 대부분은 한인 거주 지역에 모여 살면서 한인 교회에 나가고, 한인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며, 한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한인들과 사업을 하고, 한인들 끼리 골프를 치고, 한인 노래방에서 모여 떠들고 논다. 다른 민족 집단들도 해외에서 일정한 배타성을 지니고 현지적응하고 있지만 한인사회는 유별나다고 평가된다. 왜 그럴까? 어려서부터 함께 사는 교육과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가 끼리끼리 문화를 조장하고 강화하기도 하지만 학교교육에서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종족(ethnic)에 대한 감정은 원초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지고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학습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게으르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면 그러한 부정적 종족 감정이 후세들에게도 학습될 것이다. 반면에 나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니지 못한 아름다운 특성을 지닌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게 되면 함께 사는 긍정적 종족 감정이 전승될 것이다. 나와 다른 피부색과 머리, 복장과 음식습관 등에 익숙해지고 이러한 차이들을 즐기고 아름답게 생각하는 문화 다양성 교육과 훈련이 절실하다. 실제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남아시아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면 이들과 함께 손으로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문화가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먹고 일하고 사귀고 결혼할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유네스코의 ‘21세기 교육위원회 보고서’(1995)는 ‘함께 사는 학습’과 ‘지구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이해교육은 함께 사는 학습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이해하며,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될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신뢰(confidence)는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인식함으로부터 싹튼다. 우리의 학생들이 세계의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고 ‘또 다른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세계 속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진정한 신뢰와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문화와 사고방식, 종교와 일상의 습관에 매몰되어 있는 자는 아집과 독선, 과신과 오만을 범할 수는 있어도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신뢰와 자신감을 갖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는 누구도 국가 경계와 민족에 갇힌 채로 살아갈 수 없다. 갈수록 상이한 민족과 문화들 간에 교류가 많아지고 상호의존성은 심해지며, 인간과 기술, 자본, 물질과 상품, 정신과 이념, 이미지와 기호들이 세계를 넘나들며 범람한다. 어떤 것이 한국적인 것인지, 어떤 것이 미국문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화의 혼성화와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천의 상이한 민족 집단들이 각각 다른 세계관과 언어, 종교, 습관을 고집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다. 100% 미국인이 없듯이 순전한 한국인도 없다. 혈연적으로 순혈주의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더욱 더 그렇다. ‘잡종과 혼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은 당연하다.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에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 집단들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싹트게 된다. 다문화 교육은 남을 이해하는 교육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되찾는 신뢰의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질적인 다문화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사회 교과서에는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마호메트의 초상화를 삽입하기도 하며, 신세계를 아직도 콜럼부스가 발견한 것으로, 오세아니아를 백인들의 대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문화 교육에서 다른 문화는 외국의 이문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역문화(local culture)와 지방의 전통, 소수자들의 문화와 다양한 정체성은 모두 다문화 교육에서 중요하다. 다문화 교육은 세계를 가르칠 뿐 아니라 지방을 가르치며,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그 다양성 때문에 아름다운 것과 같이, 모든 인간 집단과 문화도 다양성 때문에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라는 존재는 세계에서 유일한 개체이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개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다문화 교육이고 국제이해교육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국제이해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 국제 사회 정세에 대한 이해 교육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이루어졌던 인류 문명의 진화보다도 더 큰 변화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질주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볼 여유도 없이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는 남을 추월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에 적응하며, 세계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種)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자연계의 이치일 뿐 아니라 인류사회의 진화과정이기도 하다. 최적의 적응을 위해서는 변화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며 세계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인 것이다. 변화는 생명복제나 나노 기술, IT, 항공우주공학과 사이보그의 출현과 같은 기술적 혁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술 혁명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가치관과 생활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혁명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변화의 본질은 기술 혁명이 초래하는 삶의 양식과 사고의 혁명에 있다. 21세기의 인류사회는 생명과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혼과 양육, 교육과 노동, 여가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고 있다. 인간 수명의 연장과 의료산업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의 인구학적인 변화가 초래되고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들이 등장하고 있다. 민족과 국민국가에 갇혀 있던 문화는 폭발하듯이 국경을 넘어서 유동하고 있으며 소수자집단들의 다양한 대안적 삶의 양식이 등장하고 반문화와 대안문화가 범람하면서 기존의 주류문화에 도전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권위는 신인류의 등장으로 약화되고 대체되고 있으며, 문화와 가치관의 충돌과 이행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혁명과 동시에 종교적 근본주의와 전통주의가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문명의 충돌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이러한 세계 변화의 현상과 본질에 대해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가. 국제이해교육은 다양한 지구촌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변동과 교류, 충돌을 주목하고 기술혁명과 가치관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대륙과 다른 종교, 다른 문화에서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사상과 조류를 읽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모두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러한 세계이해교육은 신자유주의적 교육 담론을 통해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영어와 실용교육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영어권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와 단일 문화 지배적 세계관이 아닌 보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이며 인류문화의 새로운 생존과 적응 양식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 만드는 준비 국제이해교육은 참 권리 교육이다. 국제이해교육은 우리가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서 세계 시민권과 책임을 지닌 자들임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시민교육은 행동과 실천이 수반되는 권리와 책임 교육이다. 우리는 한 국가의 국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고, 평화와 공존, 상생이 가능한 지구촌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세계 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국제이해교육의 주된 교육과정은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평화교육, 소수자와 차별받는 자들의 인권을 이해하고 이들의 인권을 신장하도록 돕는 인권교육, 지속가능한 환경을 일구고 후속 세대가 환경과 조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 교육, 지구촌의 공동 발전과 국제협력을 통해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교육, 다른 문화와 민족 집단을 존중하고 공존하도록 하는 다문화 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평화, 인권, 환경, 개발, 다문화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 모든 문제들은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으로 보아야만 한다. 국제이해교육은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이슈와 공통의 과제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문제해결에 동참하도록 하는 실천 교육이다. 지구촌 시민으로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지니고 세계시민이 지녀야 하는 의식과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이다. 따라서 국제이해교육은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과 인권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소수자 권익운동, 원주민운동, 문화 정체성 운동 등과 같은 실천적 프로그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제이해교육은 무엇보다도 현장성과 실천성을 강조하며, 학교에서만의 국제이해교육은 불가능하다.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가 확대되기도 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활동을 통해 지구촌이 함께 잘살 수 있는 각종 인도적 구호 프로그램이 확산되기도 한다. 또 소수자들이 무지개와 같이 화려한 색으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획일적인 개발과 난개발에 저항하고 환경과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도록 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권사회를 실현하는데 기여한다.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폭력과 차별, 전쟁이 우리들 안에 있으며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일도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더 나은 세상, 모두 함께 어울려 잘사는 세상, 차별과 폭력,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에게 국제이해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교육에서부터 ‘소통의 장벽’ 없애야 국제이해교육은 단순히 국제화 교육이 아니다. 국제이해교육은 세계 속에서 참 인간성을 깨닫도록 하는 자기발견의 교육이고, 가치 교육이며, 인성교육이다. 국제이해교육은 개인과 개인, 교육자와 학생, 문화와 집단, 국가와 민족 간에 소통을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국제이해교육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소통 증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계의 공통 문제에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 교육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국제이해교육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교육 현장에는 제도적 장벽 뿐 아니라 세대 간, 문화 간, 교육 주체 간에 보이지 않는 소통의 장벽이 너무도 많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사회의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 장벽과 격차는 오히려 커져가고 있다. 소통이 없는 곳에서 ‘너’가 있을 수 없고 당연히 ‘나’도 있을 수가 없다. 소통이 없는 곳에는 세계도 지방도 있을 수 없다. 소통이 없는 곳에는 인권도 평화도 민주주의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소통이 없는 곳에 국제이해교육은 없다. 국제이해교육의 출발과 내용, 방법, 성과는 모두 소통의 증진으로 귀결된다.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 간의 보다 원활한 소통을 통해 평화의 문화가 구축되고 상호 공존하는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통은 결국 참여를 촉진하고 자발성과 자유가 신장되는 인류의 참 진보를 이루는데 기여한다. 영어교육도 역사교육도 사회교육도 과학교육도 다문화교육도 모두 소통 증진을 위한 것이며,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평화의 문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소통에 기반한 국제이해교육이 있는 현장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나 순혈주의가 있을 수 없으며 종교적 근본주의도 이념적 도그마도 있을 수 없다. 분쟁과 폭력의 싹이 사라지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을 위한 거울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인간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보편적 인간성은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다른 문화를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이해교육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나의 인간성을 이해하고 참 인간됨을 이루는데 기여한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참 인간을 이루는 것에 있듯이 국제이해교육의 궁극적 목적도 참 인간성의 발견에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이해교육이 전처럼 그리 거창하고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누리안 → 코시안 → 다문화 가정 교육부는 올해 시행할 사업으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습지원 강화와 다문화가정을 이해하는 사회 환경 조성을 위해 ‘다문화교육센터’를 설립, 운영키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낯선 용어인 ‘다문화가정’이란 말 그대로 단일문화가 아닌 문화적 배경이 다른 가정을 뜻하는데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그 역사가 20년에 가까운 외국인이주노동자 가정과,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시작인 국제결혼가정, 즉 결혼이민가정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정과 국제결혼가정으로 분리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모두 언어가 불편하고 문화충격을 겪고 있으며 교사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소수자이므로 이들을 모두 다문화가정으로 아울러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교육부에서 판단하여 그대로 쓰고 있다.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을 처음에는 혼혈아동으로 부르다가 이 명칭의 부정적인 의미를 없애려고 전북교육청에서는 정책을 시행하기 전 이름을 공모하여 ‘온누리안’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는 마을 주민의 반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자 그 자녀들을 따뜻이 품어 안으려고 처음으로 ‘코시안’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나 차츰 아시아가 아닌 다양한 국적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또 역차별 현상도 우려되던 바 결혼이주민 본인들도 ‘다문화가정’으로 불러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이 말도 쓰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필자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외파견근무가 계기가 됐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그 때 이역만리로 이주해 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며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다른 언어, 문화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절감했다. 정체성 고민하는 이민 2세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그리고 그 자녀 세대들이 겪는 문화 충돌, 한국어와 한국식의 가정생활, 가치관과 아르헨티나라는 백인사회와의 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참으로 컸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다. 언어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니 현지어인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다음이 정체성의 문제인데, 현지어를 몰라 당한 설움을 곱씹으며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페인어만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나 의사, 예술가 등이 되어 성공한 사람들이 현지인 주류 사회와 어울릴 때가 문제였다. 현지인이 ‘당신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은 어떠냐, 한국문화는 어떠냐’ 등을 물어보면 한글과 한국 문화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 정체성에 혼란과 회의를 느껴 뒤늦게 한국을 찾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부를 이룰지라도 자기의 고유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오히려 현지 문화와 대등하게 어울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늘 심리적 열등감을 안게 된다는 걸 절감하고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데 열성을 다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이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아르헨티나에 살게 될 아이들이어서 학부모들은 스페인어 학습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고, 레슨은 스페인어로 하되 곡은 아리랑이나 도라지 등을 연주하게 해서 전통 음악을 익히게 했다. 추석에는 학부모와 함께 한복을 입고 송편을 빚으며 윷놀이를 하는 등 전통문화를 알게 했다. 또 동요대회, 백일장 등을 열어 아이들이 한글을 수준 높게 접하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는 당장 아이들의 조부모나 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경험은 한국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이며 올바른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파키스탄 다문화가정 자녀 지도 귀국하여 2003년에 경기 부천 옥산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5월 경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메리와 마훔이라는 파키스탄인 자매를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데리고 왔다. 한창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웠는데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는 당시 교육부에서 막 발표한 ‘출입국사실증명서 또는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 제출만으로도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는 지침 서류 한 장을 가져왔지만 그 아이들 부모는 미등록노동자여서 아무런 공식 서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직 시행령이 내려오지 않은데다 아이들이 한글을 몰라서 학업에 지장이 있다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필자가 나서 한글 지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자매를 입학시켰다. 당시 언니 마훔이는 4학년 나이이고 동생 메리는 2학년 나이인데 둘 다 2학년 같은 반에 있게 되었다. 1) 한글 교육 남동생도 한 명 있는 메리와 마흠이 자매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지나 우리말은 잘했지만 글은 아무 것도 몰랐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던 그 아이들은 그토록 고대하던 학교를 다니게 되어 기뻐하면서 열심히 공부했고, 필자도 학교에 약속한 대로 매일 열심히 한글지도를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늘 보던 벵갈어와는 다른 한글을 보고, “왜 한글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가 많아요?”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무척 신나했고, 힘들어 할 땐 가끔씩 간단한 산수 문제를 풀게 해 주면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자기주장이 분명한 이 자매는 반의 다른 아이들과 차츰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2) 한국 아이들과의 문화 충돌 극복하기 한국 아이들은 “선생님, 쟤들은 음식 다 안 먹고 버려요”, “ 선생님, 쟤들은 냄새나요”, “이상한 옷 입고 와요”하면서 그 파키스탄 아이들이 자기들과는 다르고 별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자매가 다투거나 울 때 까닭을 물으면, 음식이나, 냄새, 의복 등이 다르다는 것으로 따돌림 당하는 일이었고 그만큼 학교생활이 점차 위축되어갔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는 타일렀지만 학교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으면 메리와 마훔이가 계속 상처를 받겠다 싶어 전교 재량학습 시간을 만들어 국제이해교육을 했다. 메리와 마훔이에게 예쁜 전통의상을 입고 오도록 하고 전교생에게 파키스탄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가르치게 하자 처음엔 쑥스러워하다가 아이들이 벵갈어를 진지하게 따라하자 차츰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인사말과 함께 인사할 때의 동작도 배우고, 파키스탄 전통 의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발표도 하게 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의 이슬람교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는 다 다르다고 말하고 아이들과 반대 입장인 마훔이에게 한국인들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마훔이는 머뭇거리며 “마늘 냄새가 나서 싫어요”하자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서로 쿵쿵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차츰 서로 따뜻하게 다가서게 되었다. 3) 네팔인 초대 국제이해교육 수업 한번은 외국인노동자센터의 도움으로 한국어를 잘 하는 네팔인을 교실로 초대했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 중에는 의외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고,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외국에 온 사람들인 만큼 대단히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다. 우리 학교에 와서 네팔 문화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여러 가지 사진과 네팔의 전통의상, 쌀, 화장품(헤라연지) 등을 가지고 와서 재미있는 수업을 해주었다. 필자가 전통의상을 직접 입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때 네팔인에게 배운 ‘돈네밧’(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학년 말이 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는 외국에 다닐 때 모았던 소품들과, 국제회의에서 외국 지인들에게 받은 선물, 한복과 교환했던 그들의 전통의상 등 외국 물품 이백여 점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건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이고 설명을 써서 학교 축제 때 전시했다. 학부모 도우미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각 코너마다 안내를 맡겼더니 학부모는 신나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아이들은 갖가지 질문 속에 세계로 향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4) ‘외국 노래 배워오기’ 숙제 여름방학 숙제로 ‘외국노래 배워오기’를 내주었다. 영어 노래는 제외했다. 인터넷으로 배워 오는 것은 금지시키고 반드시 사람을 만나서 배워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아는 외국인이 아무도 없다며 기가 막혀 했지만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노래를 배우게 된 과정을 보고서로 작성하게 했다. 사실 필자도 어떻게 될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50여 명이 숙제를 해 왔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처음엔 이런 황당한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엄마와 함께 동대문시장에 갔다(동대문시장에는 뭐든지 다 있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어떤 일본사람이 한국 사람과 서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인사하고 사정을 말씀드린 뒤, 간단한 일본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일본 사람은 신기해하며 노래를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이 부른 노래는 내가 아는 노래와 비슷했다. 어머니는 그 분께 감사하다고 차를 대접했고 그 분은 나를 많이 칭찬해 주셨다. 어려웠지만, 하고보니 참 재미있는 숙제였다. 이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이 너무 멋있다.” 아버지의 사업장에 가서 현장 직원인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배웠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도 노래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것을 더 많이 배웠다고 했고, 외국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한 것이 아주 큰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엄마 친구의 식당에서 일하는 연변사람에게서 중국노래를 배워 온 아이, 옛날 살던 동네에 찾아가서 필리핀 사람한테 타밀어로 노래를 배워 온 아이, 외국인노동자센터로 찾아간 아이 등 이 숙제의 파급효과는 아이들이 외국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학부모들도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처지가 되어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인간 대 인간 관계를 만들어낸 점이다. 아이들도 외국인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숙제를 해 온 아이들에게 상으로 몽골에서 사 온 몽골 전통 주택인 게르 모형을 한 채씩을 주고, 필자가 몽골에 가서 배워 온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5) 지역축제 참가 가을이 되어 ‘우리도 부천을 사랑해요’라는 주제로 열 세 나라가 참가한 이주노동자 축제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행사에 참여한 내용을 보고서로 쓰고, 그 행사에 참가한 각 나라 사람 7명을 만나서 이름을 써 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행사장에서 각 나라 부스를 돌아다니며 마치 여권에 도장 찍듯이 각 나라의 국기가 새겨진 도장을 책자에 찍기도 하고 음식도 먹고, 여러 가지 볼거리도 접했다. 다음 가장 큰 고민인 숙제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헬로우’, ‘익스큐즈미’, ‘플리즈’, ‘왓츠 유어 네임’, ‘땡큐’ 등의 영어를 직접 외국인에게 써서 물어보았다. 능숙한 한국어로 되돌아오는 대답도 있었고, 통역 자원봉사자들을 통해서 이름을 알아 온 경우도 있었다. 몽골 부스에 가서는 그 분들의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학교에서 배운 몽골노래도 부르고 왔다고 했다. 그 몽골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는 한국 땅에서, 한국아이들을 통해서 자기 나라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느낌이 어땠을까? 또한 각 부스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행사에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고 또박또박 공책에 적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어떤 걸 느꼈을까? 아이들은 훌륭한 민간외교를 국내에서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거부감’ 먼저 없애줘야 다문화이해교육의 측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주노동자 자녀여서 본국으로 돌아갈 아이든지, 결혼이민자가정의 자녀로서 다른 외모를 가진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아이든지, 반드시 이중문화의 당위성을 가르쳐야 하고 두 문화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해야 바르게 자랄 수 있고 나라의 앞날도 밝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특히 그 부모가 자기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앞서서 이끌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하는 일반 어린이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든, 결혼이민가정의 자녀든, 혹은 외국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사회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하며 다른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자기 문화 속에 고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는 자신과 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는 반드시 큰 상처를 입을 게 훤한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이유가 없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더 늦출 수는 없다. 특히 우리에게 다문화이해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오랫동안의 일제지배와 군사지배의 틀 안에서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다 설렁탕으로 통일한다. 누가 다른 걸 시키려고 하면 ‘아, 다 같이 통일 하지…’하면서 그 사람에게 눈치를 준다. 이처럼 틀리거나 다른 걸 우리는 잘 참아내지 못한다. 다 같이 이민을 와도 일본인들은 현지사회에 섞여 들어가서 살지만 한국인은 현지사회와 동화하지 않고 따로 모여 산다. 한국인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면 그 거리, 마을 전체는 한글로 도배를 한 간판들만 있게 된다. 칠성복덕방, 수정미용실, 은혜목욕탕, 영원비디오. 무궁화노래방…. 스페인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거리에 들어와 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네 땅에서 알 수 없는 글자로만 된 광고 간판들이 몇 블록이나 되면 느낌이 어떨까? 현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한국인들이기에 더욱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개인의 존재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온 세상이 하나라는 인식,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개인의 존재 자체도 위태롭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전체의 다문화에 대한 열린 인식이 필요하지만, 급한 것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맡고 있는 담임교사와 전 교직원의 열린 인식과, 학부모의 바른 이해, 아울러 교육의 테두리를 제시해주는 관계부서의 실질적 지침이 있어야겠다. 이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희망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이주노동자자녀든, 결혼이민자가정의 자녀이든 반드시 이중문화의 당위성을 가르쳐야하고 두 문화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해야 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특히 그 부모가 자기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앞서서 이끌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족 형태가 다문화가정이다. 다문화가정이란 한 가족 내에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 가족,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이주남성 가족, 이주민 가족(이주노동자, 유학생, 새터민)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가정의 형성은 국가 간 인적 교류의 확대, 외국인 근로자 유입, 국제결혼 증가 등으로 인해 날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며, 나라별로 보면 중국과 베트남이 가장 많고 일본, 필리핀, 몽골,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동남아지역이 많다. 다문화가정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므로 적절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그들의 문화를 우리 문화와 접목시켜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나아가 국제경쟁력의 원천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을 보는 사회의 시각은 차별과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 자녀들은 언어, 생활습관, 외모의 차이로 인하여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고 공동체에서 화합하지 못하며 스스로 위축감에 젖어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문제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에 우리는 다문화가정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다문화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문화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고 다문화교육에 대한 이해나 교육자료 개발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래에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교육자료 개발과 개선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다문화 국제대안학교 설립을 추진 중에 있으며, 교육부에서는 다문화가정지원정책연구를, 시·도 교육청에서는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집중 지도할 계획이며 지자체에서는 부모교육, 문화교육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다문화교육 프로그램 적용으로 다문화가정 구성원이 정체성을 확립하여 바람직한 우리 사회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교육자들의 이해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직은 학급 내, 학교 내 다문화가정의 수가 적고 다문화가정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낮아 상대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는 1차 지원자는 사회도 아니고, 단체도 아닌 지도교사이다. 다문화가정 대부분은 언어 소통, 문화적 편견, 교육 문제, 경제적 곤란 등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자는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적자원으로 대우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정규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이 교육자인 우리의 책임이다. 이에 교육자는 정책 개발보다도 인간적인 사랑의 관심으로 시작하여 다문화 학생교육, 부모교육, 사회교육을 실천해야 하며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한국계 미국 풋볼스타 하인스 워드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이 어머니 교육의 힘이었다면 지금 다문화가정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중 한국의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아이들이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다문화교육을 통해서 세계 속의 한국 인재를 육성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이 속에서 느끼는 자긍심도 교육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이제는 우리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국제결혼을 통해 이 나라에 정착한 결혼이민자나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는 우리 사회의 한 일원이고 우리 이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단일민족, 백의민족이라는 자긍심과 더불어 사회 현실과 함께 이루어진 다문화가정을 우리의 새로운 문화로 끌어안고 지도해야 한다.
진실게임, 누가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가? 세기 말의 암운이 드리워진 지난 1999년, 미국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명의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다른 13명의 학생과 교사를 살해하고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직후 각종 언론 매체와 거기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범행을 저지른 아이들이 악마숭배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를 일삼는 ‘마릴린 맨슨’과 폭력적인 영화 '매트릭스‘에 심취했던 것을 근거로, 대중문화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이런 끔찍한 사건의 배후라고 입을 모아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은 물론,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여과 없이 받아들여졌고, 이후 상당기간 동안 폭력과 섹스를 주요 표현양식으로 사용하는 영화나 컴퓨터 게임 그리고 음반 등의 각종 대중문화 컨텐츠는 청소년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의 총기관련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일부 가해 학생들의 경우 폭력적인 게임이나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에 다큐멘터리 영역의 새 장을 연 ‘개척자’ 혹은 ‘악동’으로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은 특유의 역발상적인 태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던 ‘콜롬바인 사태’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정말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타락한 대중문화의 탓이었을까? 혹시 매체들이 선동하듯 늘어놓는 이런 표면적인 이유들 말고 진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콜롬바인 총기 난사사건을 다루어 아카데미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쓴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은 이렇게 다소 삐딱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문제 학생 뒤에 문제 학교가 있다?! 일종의 탐사 리포트 형식을 지닌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볼링 포 콜롬바인은 ‘콜롬바인 고교 사태’라는 특수한 사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우리의 교육현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루어지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전제로 하는 교육의 장은, 이런 이유로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파생되는 가변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대개의 인생사 일들이 그러하듯 교육현장에서 학생 상호간, 혹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표면과 그렇지 않은 이면의 세계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어떻게든 학생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어 판단하고 나름의 처방을 모색해야 하는 교사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콜롬바인 사건’에 대한 사후 처방 중 가장 큰 실패가 참사의 주된 책임을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원인, 예를 들어 과격한 표현형식을 가진 영화나 음악의 몫으로 돌려 버린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일견 명확해 보이는 원인에 일체의 책임을 돌림으로서 보다 근원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해체된 가정,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 그리고 피 말리는 경쟁과 낙오자에 대한 왕따 문화 등이 일반화 되어 있는 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들의 책임은 회피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문제 학생의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는 경구가 말해주는 것처럼, 청소년 음주, 흡연, 성적문란, 폭력, 금전갈취, 게임중독, 왕따 등등의 청소년 문제들은 단순한 금지와 처벌 그리고 현장정리 등의 미시적인 처방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지닌 일종의 ‘징후’들이다. 적잖은 교사들이 이를 다루기 위한 거시적 안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적인 처방에 머무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징후’를 야기 시킨 원인을 다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큰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자조어린 말처럼 교사 개인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육현장의 문제를 절차와 체계에 따라 총체적 안목에서 다루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 시정해 나가는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볼링 포 콜롬바인을 통해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임 있는 영역 주체들이 결단하고 실천해 나가지 않는 한, 피의 악순환의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려움이 우리를 구원할꺼야 볼링 포 콜롬바인이 다루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총기 사고에 관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인구 대비 총기보유량이 미국보다 훨씬 많은 캐나다의 총기 사고가 연간 300여건에 불과한데 비해, 미국에서는 1만1천여 건 이상이 발생하여 캐나다에 비해 거의 35배 이상 많은 사고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캐나다의 총기관리가 상대적으로 철저한 편이며, 총의 종류도 사냥용 등 제한된 용도의 것을 주로 판매하는 등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아 단순비교에 일부 무리가 따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미국의 총기 관련 사고가 지나친 수준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런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미국 사회가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조장하는 ‘두려움’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 영역이 타인에 의해 침해를 받을 때 소극적으로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적극적으로는 공격적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침해의 정도가 심각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여기게 된다면 그만큼 대응수준도 과격해 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대중 매체들이 시청률 확보를 위해, 또 여타 상업적인 영역의 기업들은 보다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공포 마케팅’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보험을, 이 약품을,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당신의 미래가, 건강이, 인생이 치명적인 위험과 끔찍한 불편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반 협박식의 광고들은 그 구체적인 예들이라 할 수 있다. ‘두려움’을 방법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교육 영역이라고 예외이지 않다. 여전히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학생 상호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전체적인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인생을 망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감을 암암리에 조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압력이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전체에 편만해 있는 현실이다.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두려움’이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공포심은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극대화하도록 만들고 모든 에너지를 오직 자신의 안위에 사용하게 되는 이기적인 상태를 조성하게 된다. 그리고 볼링 포 콜롬바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두려움’은 결국 폭력적 태도를 낳는다. 이렇듯 ‘공포 권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학생과의 관계에 있어 진정한 교사가 가야 할 길은 오히려 명확해 보인다. 그것은 일상의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상대방을 긍휼히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획일적인 성공의 길과 다른 학생 개개인의 특별한 차이점을 격려하며 두려움이 아닌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것, 이를 통해 학생들 간에 그리고 학생과 교사 사이에 서로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참된 소통과 만남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 노력만이 시대의 흐름을 바르게 거슬러 올라가는 교육 현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자칫 주제의 진지한 무게에 짓눌릴 수 있을 것 같은 심각한 내용을 마이클 무어 감독은 특유의 풍자와 해학의 가벼운 방식을 이용해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예쁘장한 캐릭터에 욕설과 폭력적 표현을 가미한 문제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제작진이 폭력을 조장하는 미국사회를 풍자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의 삽입이라든지,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에 맞춘 영상으로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미국 근, 현대사를 개관하는 등의 창의적인 시도는 그의 작품이 다큐멘터리 수준을 넘어 하나의 영상예술작품으로 인정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제 3월, 새 학기가 시작과 함께, 일선 교육현장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아이들과의 보다 속 깊은 만남을 준비하려는 교사에게 적잖은 자극과 도전이 될 수 있는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이다.
현대를 자아상실의 시대라고도 한다. 개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24시간 동안을 나하고 같이 있는 몸뚱어리와 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작용(생각, 의지, 상상, 잡념, 번뇌 등)들이 나인데 이와는 무슨 별도로 참나가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뿐만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도 직업이나 삶의 방식은 다양하게 다르지만 그들의 행위나 작품, 학문적 연구 성과가 전하는 메시지는 참나에 대한 추구와 참나의 인정이다. 참나는 참마음, 심성, 영성, 본성, 진아, 진면목, 생명의 실상, 얼나, 신명, 불성, 신, 하나님 등의 용어로 불리어지고 있다. 우리는 참나를 아는 공부를 제도권에서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런 공부는 특수한 종교적, 신비적 영역으로 제쳐놓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또한 이런 공부는 단지 지적인 것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따르는 어려움이 있다. 인생은 ‘참나’의 깨달음에 대한 여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사유는 종교인이나 철학자의 몫으로 돌리고 우리는 가끔 그들이 내놓은 지식을 귀동냥할 뿐이다. 왜냐면 당장 이러한 본질적 공부는 물질적 부를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현대물질사회는 인간을 상품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까지 한다. 온갖 교육과 홍보, 각종 선동 등을 통해 끊임없이 무엇인가 주입당하고 있고 세뇌되고 있다. 진리나 법이 아닌, 진실이 아닌 세속적인 것들에 세뇌된 채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아상실의 시대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파악해 본다면 음양, 선악, 정사, 정도와 사도, 안과 밖, 속과 겉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세속적인 것들은 물질, 명예, 권력 등으로 밖이고 겉이고 양으로 단지 삶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참나, 법, 도 등은 안이고 속이고 음으로 삶의 본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한 깨달음만이 영원한 자유나 평화, 행복을 가져다 준다. 세속적인 것들과 참나의 깨달음은 밤 알맹이와 밤송이로 비유할 수 있다. 토실토실한 밤 알맹이가 본질이지만 밤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이를 싸고 있는 가시 돋친 겉껍데기인 밤송인 것이다. 인생의 참다운 길은 참나의 깨달음에 대한 여정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심신이란 것이 있기에 필요한 수단으로 물질이나 명예 등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 현대인의 삶은 겉만 팽창하고 화려하고 속은 빈약하고 비어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현대의 모든 문명사적 문제인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빈곤이 기인된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인의 진정한 행복은 물론 물질문명에서 빚고 있는 도덕의 상실, 인간성 파괴와 소외, 생태계의 종말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나를 깨닫는 것에 열쇠가 있다. 명상수련이란 참나를 아는 것이다. 참나를 알아야 주체적으로 나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修身, Self‐leader ship) 그리하여 내가 나를 다스리는 힘이 물질문명(자동차, 인터넷, 핸드폰 등)과의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 참나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가 아닌 것들에 의해 세뇌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로써 마음을 다시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수행법을 자기기억법이라 한다. 세뇌된 마음을 없애는 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스스로 주체적으로 새롭게 자기기억을 하는 것에 있다. 흔히들 명상수련에 있어 “마음을 비워라” “무심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지만 초보자에게 이것은 텅 빈 말장난으로 들려온다. 마음의 실체도 모르는데 어떻게 비우고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라는 것인가, 음·양의 원리 중에는 “음이 다하면 양으로 기울고 양이 다하면 음으로 기울어 간다”는 것이 있다. 이 이치에 따른다면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바로 새로운 마음을 채우라는 것이 된다. 바로 새롭게 마음을 채우는 것이 「자기기억법」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며 생활한다. 또한 몸으로, 손으로, 다리로, 연속적인 움직임을 통해 사물을 감지하며 머리속의 뇌에 기록한다. 그리고 이 기록된 수많은 기억을 소재로 하여 생각을 창출한다. 수없이 반복된 기억(생각)은 부지불식간에 나의 지식이 되고 믿음(信)이 된다. 이 믿음이 깊어지면 나의 마음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집단적이면 양심(良心)이 되는 것이다. 칼 융에 의한 서양심리학에 의하면 믿음(信)은 잠재의식이고, 마음은 개인 무의식이며, 양심은 집단무의식으로 표현된다. 결국 마음이란 각자가 처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여러 감각ㅡ미각, 후각, 거리감각, 시각, 청각, 촉각, 성감각, 영감각ㅡ을 통해 받아들여 기억시켜진 것이 잠재의식으로 가라앉아 형성된 것이다. 명상수련의 첫 단추 「자기기억법」 우리는 이처럼 뇌에 무엇인가 기억시키면서 사는데 왜 자신 스스로가 자기의 뇌에 주체적으로 기억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자. 자기기억과 비슷한 단어가 있는데 하나가 암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뇌이다. 암시란, 간단히 말해서 직접적으로 기억시키는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 자신 및 타인의 뇌에 의미와 개념을 기억시키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세뇌란,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주입시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피교육자가 순종심리를 형성하도록 집중적으로 기억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판단력이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하나의 수단이라 하겠다. 따라서 위의 두 방법은 각 개인에게 도움을 주는 면보다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면이 더 많다. 그러므로 내게 유익한 것을 기억시키고 나쁜 것을 잊어버리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 스스로가 자기 뇌에 올바른 점을 기억시키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좋은 기억을 스스로 주입시킴으로써 보다 더 좋은 마음, 정신을 창조하고 다스려 나갈 수 있다. 우리는 건강하고 위대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 「자기기억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습관화 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컴퓨터에 입력하듯이, 내 머리속의 두뇌에 새로운 정보를 계속적으로 입력시키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 기억입자에 기록된 것은 단순한 보관에 그치지만 인간의 두뇌는 더 정밀해서 뇌에 기록, 보관된 것을 종합 분석하여 관념 및 사상, 신념으로 정리시켜 심층심리를 지나 마음과 양심 등으로 발전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나의 뇌에 기억되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암시 및 세뇌를 받아 기억된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음에서 행한 행위는 진실된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또 그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자기기억법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스스로에 의해 기억하고 이 기억에 의해 형성된 마음과 양심으로 생각을 창출하고 행동을 유발한다면, 이야말로 비로소 진실된 행위이며, 주체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엄격히 따져서 전자가 원시시대 때에 남이 심어 놓은 자연 발생적인 곡식과 과일을 얻어먹는 생활이라면, 후자는 내 땅에 내가 씨를 뿌리면서 농사를 짓는 주체적 영농시대를 의미하는 발전된 생활이다. 우리의 마음, 양심은 삶 속에서 뇌에 기록된 것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의해 행위가 이루어진다. 결국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기억에 의해 마음과 양심을 형성시키고 그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명상수련의 최종 목적은 각종 심리적 억압에서 해방되고, 자기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하며, 마음을 비워서, 마음의 자유를 누려 무아의 경지(無我之境)에 이르는 것에 있지만ㅡ이것을 三昧라고도 했다ㅡ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스스로가 나에게 진실되고 유익한 것만을 뇌에 기억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명상수련의 첫 훈련은 「자기기억법」수련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I. 목적 1. 우리 문화의 정수인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태도를 기른다. 2. 세계화․개방화의 시대에 학생들의 문화 정체성을 함양하고, 우리 언어문화를 바르게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른다. 3. 국어 사용의 일반적인 소양과 일상 속에서 국어 사용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길러 능동적인 국어생활 실천 태도를 기른다. II. 방침 1. 국어 사랑의 기초를 이루는 초등학교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국어 애호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2. 국어 사용 문화를 이해하고 국어생활에 발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 고유어뿐만 아니라 한자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한다. 4. 국어의 규범을 알고, 이것을 국어 생활에 발전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III. 세부추진계획 1. 국어과교육연구회 활동 지원 가. 목적 : 도 단위 및 지역교육청 단위 국어과교육연구회를 통한 국어애호 관련 연구 시행 및 국어 사랑의 선도적 역할 수행 나. 방침 : 도 단위 국어과 교육연구회의 분과연구에 국어사랑 관련 주제 분과 다. 활동 내용 (1) 창작 교실 운영(방학 중 연 2회) (2) 문학 창작 동아리 활동 전개 : 문집발간 (3) 지역별 국립국어연구원 연계 국어문화학교 운영 (4) 자율연수 및 문학기행 (5) 교수∙학습 자료 개발 보급 (6) 국어과교육연구회 홈페이지 운영 (7) 논술지도팀 구성 라. 학교단위 국어과협의회 활동의 활성화 (1) 단위학교 국어과 교사 협의회를 통한 국어사랑 지도 방안 모색 (2) 학교홈페이지, 유인물 배부 등을 활용한 활동 전개 2. 국어 애호교육 관련 장학 자료 개발 가. 국어 애호교육 프로그램 개발위원을 위촉하여 국어 애호교육 및 한글날 계기교육 자료 개발 나. 보급 시기 : 2007년 9월 중 3. 국어 애호 활동 실천 우수 학교(교사) 표창 가. 대상 : 국어 애호 활동이 우수한 학교 및 교사 약간 나. 시기 : 2007년 12월 중 다. 훈격 : 교육감 라. 선발 방법 : 지역교육청과 협장교에서 추천한 학교, 교사 선정 마. 제출서류 (1) 국어 애호 활동 실천 보고서 : A4 5매 내외 (2) 공적조서 (3) 공적요약서 및 표창결격 여부 심사표 바. 분야 : 국어 애호교육과 관련하여 학교단위에서 추진한 우수 사례 전반 사. 우수 사례를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탑재하여 국어 애호 분위기 확산 4. 각종 외부 백일장 안내 및 참여 권장 가. 언론기관, 대학교, 유관기관 등에서 시행하는 백일장 대회에 참여 권장 나. 문예관련 동아리 학생 중심의 백일장 참여 지도 다. 문학에 재능 있는 학생의 조기 발굴 5. 국어능력인증시험(TOKL) 응시 참여 안내 가. 2005년 7월부터 시행된 ‘국어기본법’에 의해 실시 나. 2006년부터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 후원으로 재단법인 언어문화연구원에서 주관 다. 연 5회 실시 예정(3, 5, 7, 9, 11월 실시) 라. 자세한 사항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http://www.tokl.or.kr) 참조 6. 국립국어연구원 연구자료 및 프로그램 활용 가. 국립국어연구원 시행 국어문화학교 등 참여 나. 국어정보검색, 표준국어대사전 등 활용 다. http://www.korean.go.kr 참조 IV. 학교별 추진사항 1. 학교별 국어 애호 교육 추진 계획 수립 가. 학교별 국어 애호 기본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 나. 학교급별, 지역별로 실천 가능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 추진 다. 학생들이 국어의 소중함을 알 수 있도록 계획 추진 2. ‘국어 순화 및 국어 사랑 의식 함양 자료’ 연중 게시 가. 학교 게시판이나 학급 게시판에 연중 교체 부착 및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 (1) 1일 혹은 주간 단위로 교체 나. 경기도교육청에서 개발한 자료 활용 (1) 탑재 위치 : 교육청 홈페이지 / 교육국 / 중등교육과 / 사이버 자료실 3.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지도 강화 가. 교원 연수 추진 : 단위 학교별로 교원의 국립국어연구원 직무 연수 참가 나. 학교별 교육과정 연계 지도 다. 학교 홈페이지와 국립국어연구원, 언론사 등‘우리말 다듬기 사이트’ 연동 (1) 우리말 실력 알아보기, 한글맞춤법 실력테스트 등 4. 장학자료 『 함께 하는 우리말 사랑 』 적극 활용 가. 경기도교육청에서 2006년 9월 중․고 각급 학교별로 개발하여 팸플릿(개발 자료에 대한 안내)과 CD자료로 배부 5. 국어 애호 교육 프로그램 행사, 학습 및 훈화 자료 적극 활용 가. 국어 애호 교육 프로그램 행사 자료 (1) 중학교용 :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 과자료실 / 중등교육과 / 사이버자료실(743∼751) (2) 고등학교용 :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 과자료실 / 중등교육과 / 사이버자료실(757) 나. 국어 애호 교육 학습 자료 (1) 중학교용 : 내가 만드는 낱말 사전 (사이버자료실 : 756) (2) 고등학교용 : 문학어휘사전 (사이버자료실 : 761) 다. 우리말 사랑을 위한 초․중․고등학교 훈화 자료 (1) 경기도교육청홈페이지 / 과자료실 / 중등교육과 / 사이버자료실(1070∼1072) 6. 한글날 기념 행사 개최 및 계기교육 강화 가. 한글날 기념 행사 및 한글날에 즈음한 계기교육 나. 한글 자∙모순 외우기 지도 다. 인터넷 시대의 한글 우수성 알리기 7. 학교별 추진 행사 (예시) 가. 국어 사랑 학생 동아리 조직 운영 (1) 전교생에게 확산될 수 있는 우리말 가꾸기 관련 활동(우리말 오용사례, 아름다운 우리말 등의 게시 활동) (2) 홈페이지에 우리말 순화에 관한 내용 게시 (3) 인터넷 언어 순화 관련 활동 나. 우리말 애호 관련 훈화 실시 다. 우리 고유어 퀴즈 대회 라. 우리말 골든 벨 행사 마. 우리말 사랑 으뜸이 선발대회 (1) 한자어, 고유어의 능숙도를 묻는 문항 출제(고사성어, 한자성어 포함) (2) 가족 관계, 집, 농업, 자연물, 생물, 과학과 관련된 어휘 등 출제 바. 국어사전 가지고 다니기 사. 한글 자모의 순서 및 읽는 법 올바르게 알기 아. 국어 사전 빨리 찾기 자. 고전 속의 우리말 활용하기 차. 우리말이 많이 쓰인 동화, 문학작품 읽기 카.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용례 중심 퀴즈대회 열기 타. 시(시조, 동시) 외우기 대회 파. 속담 알기 대회 하. 고사성어 알기 대회 8. 학교급별 국어 사랑 (문예) 캠프 운영 권장 가. 추진 방향 (1) 희망을 받아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학교별로 자체 운영 (2) 운영 기간은 자율, 장소는 학교시설이나 청소년 수련원 등 이용 (3) 국어(문예)에 대한 바른 이해와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프로그 램을 창의적으로 구안하여 활용 (4) 프로그램 (예시) (가) 국어 사랑 사례 발표 (나) 바른말 고운말, 표준말과 사투리 구분하기 (다) 틀리기 쉬운 맞춤법 발표하기 (라) 말하기․듣기 훈련 (마) 장르별(동시, 동화, 소설, 희곡, 극본 시조 등) 문학 체험 (바) 국어사전 빨리 찾기 (사) 바른 독서법 (아) 학교도서관 이용 체험하기 (자) 민요 부르기 V. 기대효과 1. 연중 각종 국어 애호 관련 자료의 게시, 각종 행사, 훈화 등을 통하여 우리말․글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2.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뿐 아니라 우리말도 소중하다는 문화적 균형감각을 갖추게 될 것이다. 3. 언어 규범에 어긋난 무분별한 통신언어의 사용에 문제의식을 갖고, 국어 순화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VI. 소요예산 번호사업 과제산출 내용계 (천원)비고1장학자료 개발 ․원고료, ․인쇄비, ․편집비, ․급양비 VII. 행정사항 1. 학교별 「2007 경기도 국어 애호 교육 추진 계획」관련 현황 제출 2. 제출 대상 : 초․중․고등학교 3. 제출처 및 기한 가. 초․중학교 : 지역교육청으로 2007. 0. 0까지 나. 고등학교 : 협장교로 2007. 0. 0까지 다. 지역교육청과 협장교 : 해당지역 학교 현황을 취합 도교육청 제출 VIII. 참고자료(개발될 장학자료) 1. 바른말 고운말 가.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반성하고 바른 사용을 위한 게시 자료 2. 우리말 바로 알기 가. 명사들의 한글사랑, 맞춤법과 표준어, 바람직한 언어문화 가꾸기 나. 언어예절에 대한 동영상 다. 우리말 순화에 대한 게임(파워포인트 자료, 플래시 게임 등 다수) 3. 우리말 뿌리 찾기 가. 관용어와 일상생활 용어에 대한 어원 해설 자료 4. 예문으로 소설 어휘 알기 가. 문학교과서의 주요 소설 속 어휘와 예문을 함께 실은 소설 어휘사전 5. 내가 만드는 낱말사전 가. 학년 과정의 단계별 낱말 학습문제를 교과수업과 재량활동 또는 계발 활동시간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어휘 학습 자료 6. 시의 창으로 들여다 본 아름다운 우리말 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시의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시를 선정하여 제작한 시낭송 동영상 자료
문1. 학습자 주도적 학습과 교사 주도적 학습을 비교하고 21세기에 필요한 학습능력 신장을 위한 교사의 역할을 논술하시오. 1. 序論 시대가 바뀌면 요구되는 교육의 방향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로서 창의적 지식이 새로운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폭발적인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지 않고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교사 주도적 학습보다는 학습자가 중심이 되는 학습자 주도의 학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本論 교사 주도적 학습이란 교사가 중심이 되어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학습자들이 따라오도록 하는 학습을 말한다. 즉, 교사가 설명을 하고, 시범을 보이며, 학생의 질문을 받아 안내하는 설명식 교수법을 의미한다. 또한 학습에 대한 평가와 그것에 대한 피드백 역시 교사가 중심이 된다. 반면에 학습자 주도적 학습이란 학습자 스스로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의 계획 하에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고 평가하는 등 학습에서 학생 스스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학습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안내자, 촉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활용 및 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주도적 학습력과 창의성, 정보활용능력 등이 요구된다. 따라서 교사는 우선, 교사 스스로 정보화 능력을 갖추고 적절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CAI, 멀티미디어 및 인터넷활용 수업을 통해 학생의 자기주도력을 신장해야 한다. 또한 학생 중심의 수업을 전개해야 한다. 토론학습, 실험․실기학습, 역할놀이학습 등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수-학습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끝으로 학습자의 자기주도적 학습과정을 촉진하기 위한 평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토론법, 실험실습법, 연구보고서법, 포토폴리오법 등 자기주도력 신장에 도움이 되는 평가방법을 활용․실시해야 한다. 3. 結論 시대가 변하면 그에 따라 교육도 변해야 한다. 지식기반사회는 급속한 지식의 증가에 자기주도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과 정보활용 능력이 중시되는 만큼 교사는 자기주도적 학습환경 조성, 학생중심의 수업, 다양한 교수․학습전략과 평가방법을 통해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21세기를 주도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2. 글레이저(Glaser)의 수업모형 중 출발점 행동진단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효과적인 학습결손 보충방안을 논술하시오. 1. 序論 출발점 행동이란 학생들이 새로운 도착점 행동을 습득하기 전에 이미 습득해 있어야할 행동을 의미한다. 수업절차에 앞서 이 단계에서 진단 평가를 실시하여 학습 결손을 발견하고 수업 처방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서는 출발점 행동에서 학습 결손에 대한 진단 및 처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2. 本論 출발점 행동 진단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에는 블룸의 완전학습이론을 들 수 있다. 완전학습이란 학급의 95% 이상의 학생이 학습목표의 90% 이상을 달성하는 학습을 의미한다. 완전학습에 영향을 주는 변인은 학생의 지적, 정의적 출발점 행동, 교사의 수업, 기타의 변인으로 구성되며, 그 중 출발점 행동은 학업성취도의 65%의 영향을 준다고 한다. 따라서 출발점 행동이 잘못되면 완전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다 는 측면에서 학습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습결손의 원인은 학습자의 출발점 행동의 부족과 반복적인 학업성취 실패에 있다. 또한 교사의 단순 강의식 지식전달 수업과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일제식 수업, 기타 과밀학급 등 열악한 교육환경도 개별학습을 곤란하게 하게 한다. 따라서 학습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는 우선, 학생의 현재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여 그 수준에 맞는 학습을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다양한 학습매체의 활용으로 학생에게 학습동기와 흥미를 이끌어 내야 한다. 또한 CAI, Project 등의 교수 학습방법을 활용하여 학생 개개인의 수준을 고려한 개별학습이 이루어 져야 한다. 그리고 과밀학급에서는 이질적 집단을 구성하여 동료에게 배우고 동료를 가르치는 협동학습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끝으로 학교는 학습결손 학생에 대해 특별 보충과정을 수립하여 더 많은 학습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3. 結論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모든 학생이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습결손의 원인이 출발점 행동의 부족으로 인한 반복적인 학습실패, 일제식 수업 등에 있는 만큼 교사는 모든 학생의 출발점 행동을 정확히 진단하여 수준별 개별 학습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3. 수행평가 한계점 (문제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술하시오. 1. 序論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로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시 된다. 따라서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실제상황하에서의 문제해결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 수행평가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수행평가는 지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의적․신체적인 전 영역을 포괄하는 전인적 평가이며, 일회적이 아닌 지속적․종합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무늬만 수행평가’ 라는 비판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2. 本論 수행평가 시행상의 문제점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의 문제,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 결여, 수행평가에 대한 이해 부족, 평가방법의 어려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등이 있다. 이 중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론적 근거로서 신뢰도란 한 검사가 측정하려는 대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느냐의 정도를 말한다. 그리고 채점자 신뢰도인 객관도 역시 측정의 결과에 대하여 여러 채점자가 어느 정도 일치된 평가를 내리느냐의 정도이다. 또, 실용도는 문항제작 및 평가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한 문제인 실용도가 있다. 그런데 수행평가는 객관식 평가에 비해 신뢰도와 실용도가 낮으므로 현장에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의 학생평가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동시에 수행평가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켜야 한다. 예컨대, 연수, 세미나 참여, 전문서적 탐독 등을 통한 지속적인 평가능력 계발이 필요하다. 또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채점기준을 제시하고 동시에 채점결과의 공개 등으로 평가결과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끝으로 교사들이 교수․학습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여건 개선이 필요하다. 과밀학급 해소, 과중한 업무 경감을 통해 교사들의 학생지도와 평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結論 수행평가의 성패는 공정성 확보여부에 달려 있다. 수행평가의 한계가 교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의 부족 및 교육환경에 있는 만큼 현직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과 평가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교육여건의 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 21세기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수행평가 정착이 가능할 것이다. 문4. 교육양극화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양극화 해소방안을 논술하시오. 1. 序論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이미 옛 말이 되었다. 최근 서울대에서 발표한 ‘출신 고교별 입학생 현황’을 보면 서울지역 외고와 강남구 출신의 합격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및 교육지원 정도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많은 영향을 미쳐 교육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같은 교육현상은 계층간 위화감과 소외감을 낳고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2. 本論 교육양극화의 원인으로는 문화재생산이론이나 교육격차이론을 생각할 수 있다. 브르디외에 의하면 사회계층간의 문화습관(Habitus)이 학교에서의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미쳐 계층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또, 교육격차이론에 의하면 교육격차의 원인을 지능 등 개인적 요인, 가정환경결핍, 교사결핍에 의해 교육격차가 생긴다고 한다. 특히, 교사결핍은 편견에 의한 교사의 기대와 평가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격차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교육을 내실화하여 공교육의 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프로그램 운영과 교사의 전문성 함양으로 학교의 신뢰성을 높이고, 교사․학생 간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방과 후 학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다양한 양질의 프로그램 운영과 우수교사 확보, 다양한 인적 자원 및 지역사회의 시설 활용을 극대화하여 사교육을 학교 내로 흡수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신장시키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 온라인망을 이용하여 저소득층 아동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EBS교육방송, ICT활용 교육 등을 적극 활용하여 학습자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 제공은 물론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통해 열악한 가정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끝으로 농산어촌 및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이나 무료 급식 등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겠다. 3. 結論 교육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장치이다. 교육양극화가 개인 및 가정환경 결핍과 사회구조적 요인에 있는 만큼 학교에서는 공교육의 정상화와 방과 후 학교의 활성화, 이러닝 등을 활성화하여 교육격차를 보상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은 물론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 요청될 것이다. 이를 통해 참다운 교육 경쟁력이 발휘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학생과 대화하는 기술 배워야 교사역할 훈련(T.E.T)실천가이드 GIT코리아 / Chie Kondo 지음, GIT코리아 편역, 윤기선 감수 / 12,000원 열심히 준비해 온 수업계획, 배우는데도 때가 있다고 깨우쳐 주고 싶은 열정도 학생의 무기력과 무관심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때론 체벌에 의존하고 싶고, 칭찬으로 달래고, 구슬리고, 위협도 해보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 교직은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인데, 이같은 교사의 열정은 표현과 정상적인 의사소통 채널로는 잘 전달되지 않고 반항적인 학생들의 태도가 늘어날 때 결국 교사의 스트레스만 증가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70년대 초 ‘교사의 스트레스는 전쟁터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 질문 미국의 임상병리학자 토마스 고든이 제시한 T.E.T(교사역할훈련)에 따르면 학생과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것과 생활지도, 학생의 자발적 학습참여, 교직에 대한 자긍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미 60년대 개발 돼 전세계 25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40여년 이상 실시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교직은 전문직이며 교육기술이라는 방법론이 중요한 것처럼 학생과의 인간관계 만들기도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사는 열정과 함께 학생에 대한 인간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합니다. 최근 출간된 교사역할훈련(T.E.T)실천 가이드는 3일 24시간동안 진행되는 교사역할훈련 워크숍에서 강의와 실습하는 속에서 체득하는 교사의 대인관계 기술, 교사들이 학생에게 경청하도록 만드는 법, 강요나 처벌을 적게하기 위한 교실운영방법, 학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 훈육법 등을 구체적인 사례와 그간 참여했던 교사들의 생동감있는 경험들을 통해 전달합니다. 실제 워크숍에서 이뤄지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교사역할훈련(T.E.T)실천 가이드는 다른 상담심리학 분야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들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또 교사역할훈련의 필요성과 현장에서의 적용, 워크숍 후 교사와 학생들의 변화 그리고 교사역할훈련 워크숍의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 문화재1 언어세상 / 이광표 지음 / 12,000원 ‘문화재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사람들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특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비춰진 문화재의 상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물이거나 고리타분한 유물쯤이 아닐까? 살아있는 역사, 문화재는 살아있는 증거요, 남겨질 기록이며 우리 삶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역사책인 문화재를 편하고 즐거운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1권에서는 성곽, 궁궐, 고분, 근대문화재 등을 소개하고 앞으로 발간될 2권을 통해 탑, 불상, 범종 그리고 기록문화재 등을 다룰 예정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도구상자 텔레비전 읽기, 만들기, 보여주기 커뮤니케이션북스 / (사)일본민간방송연맹 지음, 안미라·황조희 옮김 / 15,000원 ‘표현’과 ‘학습’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실천적으로 연구하고자 출범한 도쿄대 대학원의 MELL 프로젝트의 여러 프로그램 중 민간 방송협회와 함께 한 텔레비전 미디어 중심의 연구에 대한 기록이다. 비록 내용이 일본 미디어 교육 현장을 다룬 것이지만 우리나라 중·고교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참조할 만한 미디어 교육 현장 사례가 담겨 있다. 또한 미디어를 단순히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것 뿐만 아니라 주제적으로 비판하고 수용해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란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산호와 진주 / 박수현 지음, 박은연 그림 / 8,500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감동적인 삶을 위인동화로 엮었다. 유엔 사무국의 수장이 되기까지 반 총장이 어떤 꿈을 꾸고 실현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잠시라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공직에 오른 후에도 매사 겸손하게 행동했던 반 총장의 모습 속에서 학원을 몇 개씩이나 다니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조용히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내 말에 상처 받았니? 커뮤니케이션북스 / 상생화용연구소 / 9,800원 별 뜻 없이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내 말에 상처 받았니?는 다른 말하기 기술 서적에서 다루지 못했던 것, 즉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한국식 말하기의 사례를 중심으로 ‘무심코’ 말하는 경우, 위로하거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배려하여’ 말하는 경우, 같은 뜻이라도 ‘상황을 바꾸어’ 말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경우 등을 재미있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10년간‘생명의 전화’상담해온 서울 숭례초 홍정임 교사 최근 잇단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자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 더 큰 문제는 청소년의 사망 원인의 2위가 자살이라는 것(통계청의 ‘2006년 청소년 통계’)이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걸까? 이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24시간 자살예방상담전화인 ‘생명의 전화’에서 10년간 봉사하면서 1500건 이상 상담을 해 온 서울 숭례초 홍정임 보건교사를 만나 ‘자살 예방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홍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청소년 자살 예방 지도자료 ‘생명, 사랑, 행복한 미래’도 공동 집필했다.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 교육해야 최근 홍 교사가 상담한 38세의 한 여성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을 보고 자신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며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생명의 전화’에 상담을 해오는 청소년들도 이런 모방 심리를 느낀다고 토로한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살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게임 등의 영향으로 생명을 쉽게 여기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홍 교사는 자살 예방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집중적으로 시작해야한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자아존중감을 배울 수 있는 인성교육이 필요해요. 또 사람의 ‘생애’에 대한 교육도 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고비가 있고, 그것을 극복하며 성숙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홍 교사는 평소에 별 문제가 없는데도 유독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을 학기 초부터 유심히 관찰한다. 무엇보다 자살 위험자를 조기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선택하는 길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학교 부적응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가서 문제를 일으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자살을 시도 할 수도 있거든요. 관련이 없어 보여도 초등학교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파악해서 학교생활을 잘 하게 지도하는 것이 자살 예방의 첫 걸음이에요.” 학교 부적응 아이들에 더 큰 관심을 홍 교사는 위험군에 속해 있는 아이들을 파악한 후에는 정말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한다고 충고한다. ‘마음열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이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상담실을 찾아 올 수 있는 문화를 학교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살 예방 교육이 아니더라도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친구 잘 사귀기’, ‘언니, 오빠와 잘 지내기’, ‘공부 잘하기’ 등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특기적성 교육으로 해야 합니다.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힘을 얻게 되거든요.” 예방교육이 중요한 초등학생과는 달리 중·고등학교 학생은 직접 개입이 필요하다. 자살의 단서나 경고 표시가 있을 때는 우선 충분한 상담을 하고, 자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살 기도 계획과 빈도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자살에 대해서는 언급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직접 대화로 자살에 대한 생각을 물어봄으로써 그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도 좋다는 것을 허용하고 보살펴 주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본인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강점을 말해주고 가족들이 받을 상처도 각인시켜 주는 것도 중요해요.” 상담교사-담임-학부모 유대 중요 홍 교사는 S초에 근무할 때 친구의 왕따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김나리(11·가명) 학생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상담교사와 담임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유대관계가 문제해결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뇌성마비를 앓은 김 양은 심한 왕따를 당해 학교에 다니기 싫어했고, 몸이 불편한 아이를 매일 업어서 등교시켰던 김 양의 엄마 역시 ‘죽고 싶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다. 홍 교사는 담임교사와 상의해 상담 교사의 반으로 김 양을 옮겼다. 이때부터 담임교사는 상담을 통해 김 양의 고민과 고충에 귀를 기울였고, 홍 교사는 학부모 상담을 시작했다. 또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국립재활원의 ‘장애예방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체험하게 했다. 아울러 교육청에 보조교사를 요청해 수업에 도움을 받도록 하고 관할 보건소와 협의해 김 양의 치료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김양은 신이 나서 학교를 다녔고 중학교까지 무사히 진학했다. “자살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심’입니다. 그 이후에는 학부모와 담임교사, 상담교사의 유대 관계가 문제해결에 무척 중요해요. 앞으로는 교사들이 좀더 자살의 징후를 선별할 수 있게 교육을 해야 합니다. 또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센터 등 전문 기관과 연계해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