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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육인적자원부가 4일 "2008학년도 대입제도 취지에 벗어나는 결정을 한 대학에 대해 행ㆍ재정적 제재를 하겠다"며 정부 방침을 이행한 정도에 따라 대학에 차별을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은 이날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전형계획에 대한 교육부 입장을 밝히면서 "학생부 반영비율을 낮게 책정하거나 등급간 점수차를 미미하게 설정하는 등의 결정을 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대입전형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행ㆍ재정 지원과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교육부 입장을 명확히 밝혀달라. 대학에 제재를 하겠다는 것인가. ▲ 제재한다. 제재라는 용어가 대학들에겐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부 방침을 잘 따른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에 차별을 둬야 한다. -- 제재 시점은. ▲ 대입전형이 다 끝난 뒤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각 대학의 모든 전형방법이 2008 대입제도 취지에 부합하는지 분석하겠다. 그럴려면 내년 2월 이후, 2월 말에나 가능할 것이다. -- 제재 대상이 되는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선정과도 연계를 할 방침인가. ▲ 내년도 예정 사업을 지금 얘기하긴 어렵다. 로스쿨의 경우 인가대학 심의기준에 이 부분이 포함될지 여부를 현 단계에서는 알 수 없다. 로스쿨 심의는 로스쿨 설치법에 따라 구성될 심의기구에서 알아서 할 부분이므로 교육부가 방향을 제시할 순 없다. -- 부총리가 7월6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내신 반영비율을 '가급적' 30%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사실상 제재는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는데 입장이 두달만에 바뀐 것인가. ▲ 그렇지 않다. 당시 담화를 발표할 때도 대입전형이 다 끝난 뒤 전형별 반영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평가해 행ㆍ재정적 지원과 연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입장이 바뀐 게 아니다. -- 담화 발표 때 서남수 차관이 '정책기조에 변화가 있다. 종전엔 행정적 조치를 통해 대학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려했는데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판단해 정책기조를 바꿨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 제재 여부에 대해 예스(yes), 노(no)로 분명히 답변하지 않았다. '제재 여부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 등급간 점수차에 대한 방침을 명확히 해달라. 등급간 점수차를 좁게 하든, 넓게 하든 점수차만 두면 문제삼지 않겠다는 게 교육부 입장 아니었나. ▲ 지금 단계에서 등급간 점수차를 어떻게 하면 잘못이고, 아니고를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 종합적인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대학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학생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 경우를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 (내신반영비율을 30% 미만으로 결정한)일부 수도권 사립대들이 제재 대상이 되는 건가. ▲ 30% 미만 대학을 획일적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형이 다 끝난 후 종합적으로 분석해 결정하겠다.
2008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내신 반영비율이 30% 미만인 대학들에 대해 교육부가 내년초 행재정적 제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부 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은 4일 대교협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199개 대학 정시 입시요강을 발표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행재정적 제재 카드 방침을 공개했다. 지난 6월 일부 사립대들의 '등급간 만점' 처리안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내신 갈등은 교육부와 대학간의 공방 속에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을 연출하다 7월초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대학 자율 부여' 담화가 발표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 행재정적 제재 카드 왜 나왔나 = 교육부 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은 "정부가 권고한 내신 비율을 지키지 못한 대학들에 매우 유감"이라며 섭섭한 맘을 솔직히 밝힌뒤 "내신 비율을 지킨 대학과 지키지 못한 대학은 차별화해야 하며 전형 결과를 분석한뒤 제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 국장은 "대학들의 입시 전형 결과를 최종 분석한뒤 내년 2월 제재 대상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제재 방침은 내신 비율 차등화로 '손해 볼' 대학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기조에 따라 내신 비율 30% 이상 권고안을 지킨 대학들 입장에선 그렇지 못한 대학들과 정부에 대해 '속은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재 없이 내신 반영비율을 정부가 수용할 경우 2009학년도 이후에도 내신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고 교육부는 보고 있다. 또 '등급간 만점' 처리 방안을 밝혀 내신 갈등을 촉발시킨 서울 소재 일부 사립대들이 전년보다는 높아졌지만 내신 비율을 여전히 20% 안팎으로 적용하겠다며 정부 방침에 제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들 대학들의 '내신 저항'이 다른 대학들에 미칠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 '제재 방침' 논란 계속되나 = 교육부의 강도높은 제재 방침이 다시 불거지자 제재 방침을 수능이 임박한 이 시점에 꼭 발표해야 하는지, 교육부가 지난 7월 내신 갈등 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적 기조가 달라진 것이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다시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6월 일부 사립대들의 '등급간 만점' 처리안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내신 갈등은 교육부와 대학간의 공방 속에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을 연출하다 7월초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대학 자율 부여' 담화가 발표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수능을 앞두고 교육부의 제재 방침이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들에 또다시 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때문이다. 교육부의 제재 방침이 내년초 전형 결과가 나온뒤 시행될 예정이라면 수능 등 입시 일정이 대체로 마무리된뒤 발표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대학들이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나 모집 요강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수험생들로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재 대상으로 떠오르는 일부 사립대는 "교육부가 정책 기조를 바꿨다더니 갑자기 선회한 이유가 뭐냐"며 섭섭한 맘을 감추지 못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4일 대학들이 발표된 입시 요강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이미 결정된 마당에 수험생들이 불안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능 반영비율과 내신 반영비율이 명확히 결정된 상태여서 대학들에 대한 교육부 제재 방침은 수험생들과 무관하다는 얘기다. 교육부의 제재 방침에 대해 지난 7월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담화 발표에서 나왔던 정책 기조를 스스로 바꾼 것 아니냐는 불평도 나온다. 김 부총리는 당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가급적 내신 비율을 30% 이상으로 맞추도록 권고한다"며 "제재 여부에 대해선 지금 시점에서 언급하는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총리가 당시 '제재한다', '안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교육부 간부들은 "기존의 정책적 기조가 바뀐 것"이라고 부연 설명해 행재정적 연계 문제가 물건너 간 것이라는 분석을 낳았던 게 사실이다. 교육부는 "담화문 발표 당시에도 제재 여부에 대한 가능성은 남겨둔 상태였다"며 "제재 안한다고 공언한 사람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다만 교육부 간부의 '정책 기조 변화'라는 언급은 제재 방침이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해석될 소지는 있었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의 학교들에서도 '다언어교육'이 새로운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영어구사를 못하는 외국학생들이 뒤쳐지지 않도록 그들의 언어로 개별과목을 가르치는 보충적 의미의 교육방식과는 달리, 영어 구사자와 비영어 구사자가 한 데 섞여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방식이다. 여러 언어를 동시에 학습함으로써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아이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취지이지만 다언어 습득 자체가 아이들의 두뇌계발 촉진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 "미국인도 세계와 경쟁하려면 언어능력 키워야" = 뉴욕에 사는 프랑스 외교관 파브리스 조몽(35)은 뉴욕 브롱크스 내 빈민가에 있는 조던 L. 모트 공립중학교에서 불어를 통한 과학수업 등 다언어수업을 올해 가을 학기부터 맡을 예정이다. 조몽은 "미국인들 역시 세계와 경쟁해야 하고, 언어 능력에서 뒤쳐져선 일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가을 뉴욕에서는 조몽이 맡게 될 과정을 포함, 불어를 통한 다언어교육 과정 3개와 중국어를 통한 과정 1개 등 네 개의 과정이 새로 개설된다. 또한 중국 표준어를 주로 사용하는 맨해튼 남동지구의 슈앙웬 아카데미는 중국계가 아닌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입학하기 위해선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다. 이는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외국어를 통한 수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교육 추세의 일부분일 뿐이다. 뉴욕에서만 67개의 다언어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으며 1만명 이상이 이 같은 교육의 적용을 받는다. 이는 2004년 51개와 비교할 때 증가한 것이다. 올 가을 수십만명의 학생이 스페인어와 히브리어, 아이티의 크리올어, 한국어 등 외국어를 통한 정부 보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전망이다. 응용언어학센터는 다언어교육 이수 학생의 숫자가 10년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상황이라고 추산했다. ◇ "다언어교육 자체가 성적 향상에 기여" = 모트 중학교의 파멜라 크루즈(11)는 이미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지만 학교에서 불어로 사회과학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과테말라에서 이민 온 파멜라의 아버지 에니오는 "그녀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직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공식 외교언어로의 지위를 영어에 내준 불어를 배우기 위해 국가의 세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에 대해 모트 중학교의 시몬 워론커(38) 교장은 "아이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연관관계를 습득하며 정신적으로 더욱 빠른 성장을 보인다"며 "외국어를 배운 학생은 다른 과목에서도 우수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워론커 교장은 "어떤 언어를 배우느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개천에서 용 난다’ 또는 ‘개천에서 선녀가 난다’는 속담이 있다. 모두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뜻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오직 자신의 힘 하나만으로 고군분투 노력해서 눈부신 결과를 창조해낸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이 주변에서 많이 회자됐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또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의 사례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개천의 용’ 점점 어려워져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교육양극화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브르디외(Bourdieu)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좋은 환경, 좋은 시설, 좋은 교사진에게 배우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학력 격차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이러한 사례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출신 고교별 입학생 현황’에서 서울지역 외국어 고등학교와 강남지역 출신의 합격생이 기형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학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 및 교육지원 정도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영어에 있어서는 질 좋은 사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에는 엄청난 격차가 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서 영어 실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곧바로 사회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에 더욱 심각한 것이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한문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누리는 사회 경제적 차이와 같다. 물론, 학력 격차의 원인을 사회 경제적 원인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약간 무리한 접근일 수도 있다. 지능지수를 비롯한 개인적 요인, 가정환경 결핍, 가르치는 교사의 열의 등도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경제력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예전 같이 개인의 노력이 먹혀들던 환경이었으면 벌써 용이 되어 승천했을 불쌍한 우리의 이무기들을 위해 정부와 사회는 다양한 대비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가장 먼저 공교육을 내실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수요자의 의사를 반영한 각종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교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연수를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 둘째, 양질의 방과후 학교 운영을 통해 사교육 시장을 공교육으로 흡수하여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셋째, 사회 불우계층에 대한 배려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 확대 및 이들에 대한 대학 정원 외 입학 등도 추천할만하다. 넷째, EBS교육방송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양질의 교육을 보급해야 한다. 기존의 딱딱하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강사와 수강생이 상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쌍방향 기법이면 더욱 좋겠다. 공교육 내실화가 우선 과제 교육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누구든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우리의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그들의 빛나는 꿈을 접어야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일로 매진하는 우리의 가능성 있는 이무기들을 위해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은 물론,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요구된다.
일본 교육현장에서도 왕따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는 문제이다. 이같은「따돌림」등 아이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를 관찰해보면, 아이들이「마음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이 없는 것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에 아이들이 품고 있는 장래의 꿈을 통하여, 그러한 에너지를 발산하게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여 사람의 심리나 행동 연구를 기본으로 학교 상담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한 민간연구소가「아이들의 꿈」에 대해서 조사를 추진한 것이다. 졸업생이 장래의 꿈을 자화상으로 그리는 것을 계속하고 있는 요시다초등학교 교실로부터 조사의 협력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학부모가 아이들의 꿈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 조사하였다. 이같은 조사는 2006년 3월에 졸업한 아동의 학부모 57명에게 의뢰하였다. 아이들의 꿈에 대해서「실현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79.0%에 해당하는 45명이 「예」라고 회답하고, 「아니오」라고 답한 12명의 4배 가까이에 이르렀다. 한편,「아이들의 꿈과 학부모의 기대, 희망은 일치하고 있다」라고 대답한 것은 30명으로 반수를 넘었지만,「일치하고 있지 않다」도 24명 (42.1%)에 이르러 거의 양쪽이 서로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장래의 꿈에 대한 것이 화제에 오른다」라고 대답한 학부모는 39명으로 68.4%인 7할에 가까웠다. 「아이들이 꿈을 가지게 된 이유」로는「그림을 좋아한다」, 「동물을 좋아한다」라고 하는 「흥미」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스포츠 등의「체험」이 8명, 드라마 등「대중 매체의 영향」이 5명이었다. 주목을 끈 것은 아이들의 꿈에 대한 학부모의 자세이다. 부모와 자녀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가정이 반수를 차지하였지만,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려고 하는 학부모는 8할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상당한 노력과 기회가 필요하다」라는 현실도, 어느 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단지, 현실적인 생각에 비중을 너무 둔 나머지, 아이들이 희망에 빛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꿈」을「인생의 목표」로 바꾸어 생각하여 보면, 만약에 목표가 달성되지 않더라도, 정열과 노력을 쏟아 도전했던 순간은 마음과 몸이 함께 자기를 단련시키는 장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생의 재산이 된다. 또한,「흥미」나「체험」이「꿈 가꾸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가정의 여러 가지 보살핌이 없이는 아이들의 흥미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자식 간에 장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가정이 7할을 넘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학부모가 자신의 꿈 실현을 향하여 어렸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이야기하면,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것 이상 마음 든든한 조언자는 없다.
지난해 11월 ‘수석교사제 법제화를 환영하며’라는 글을선배님께 보낸 적이 있다. 너무 기다리고 바라던 것이 이제야 이루어진다며 구구절절이 올렸던 글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퇴직을 하였던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으며, 이제 제대로 교육이 제자리를 찾는다며 많은 격려와 함께 모두가 원하는 바 이었기에 지난해 11월 16일에 한교닷컴에 투고하였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반가워하고 환영했는지 글의 일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선배님! 오늘은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교육현장에서 애타게 갈망하던 수석교사제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이 된다고 합니다. 수석교사제가 이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25년이나 기나긴 시간이 지난 이제야 말입니다. 조금만 일찍 시행이 되었더라면 선배님 같이 훌륭한 선생님들도 40여 년을 교단에서 2세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을 하시고 승진 못하였다는 무능한 사람으로 쓸쓸이 교단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였던 일이 바로 평생을 평교사로 학생교육을 위해 불사르고 쓸쓸이 떠나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 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중략 존경하는 선배님! 이제 평생을 2세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신 분들이 나라와 사회에서 인증을 해 주는 수석교사제 시행으로 떠나시는 분들의 뒷모습이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훌륭한 사도이면서 승진 못하시고 떠나셨던 선배님들께 삼가 알립니다. 25년의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수석교사제가 2007년 9월부터 시범운영 후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이제 교육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수업과 학생지도에 탁월한 우수 교원을 양성하는데도 일조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수석교사의 역할, 자격, 지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모형을 의견을 수렴하고 정립하여 법제화 해 주길 기대해 봅니다.』 이렇게 한교닷컴에 본 리포터가 투고한 글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교육현장에서 얼마만큼 고대하고 기대하였던 일이었는지를 되새기기 위해 그대로 올려본 것이다. 그런데 9월부터 수석교사제 시범운영을 한다고 약속한 교육부는 왜 아직까지 추진일정에 대해 아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내외 수석교사제 사례에 대한 1차 연구는 5월 마쳤다고 하는데, 시범 실시 모형 개발, 선임교사 및 수석교사의 규모, 배치 기준, 시범학교 수 등이 아직도 답보 상태로 있는 듯 하여 답답하기 그지없다. 벌써 오늘이 9월 3일인데 수석교사제 추진일정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수석교사제 시범운영 2학기 출범은 물 건너 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수석교사제 모형이 개발되더라도 시범학교 선정, 수석교사 선발, 연수 일정 등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석교사제의 도입은 현행의 자격·승진·연수·평가·보수제도 등 교원인사제도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한 수석교사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학교 내에서 교장(감) 및 동료교사와의 역학관계, 정원, 선발, 배치, 직무, 대우 등 제도시행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리돼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또한 수석교사제 도입에 찬반양론이 있지만, 정작 어떠한 모형의 수석교사제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를 하는 가 분명하지 않은 점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수석교사제가 올 9월부터 시범운영 후 2008년도 3월부터 시행을 한다고 한 교육부의 약속은 차질 없이 이루어지도록 추진하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석교사제는 4반세기 동안 꾸준히 노력한 연구와 다양한 의견 수렴을 해 왔으며, 제반 어려운 점을 충분히 감안하여 교육부는 2008년도부터 시행한다는 발표를 하였을 것이다. 또 수석교사제와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는 교원평가제나 교장공모제는 차질 없이 이루어지는데 반하여 유독 수석교사제만이 추진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수석교사제 도입 문제는 교사들에게 교감·교장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단선적 승진구조 체제에서 벗어나 교사 자격을 세분화함으로써 상위 자격 취득 과정에서 전문성 향상을 유도하고 교사로서 자긍심과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 준다는 소박한 꿈이기도 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장은 교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지속적으로 유도·촉진시킴으로써 교직사회에 창조적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교를 전문적 학습공동체로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간 평교사들의 숙원과제였던 수석교사제가 관료적 학교풍토를 학습조직 풍토로 전환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며, 평교사가 존중받는 교직풍토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공교육정상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임이 틀림없다며 환영하였었다. 그간 수석교사제 도입에 관한 각종 설문조사 결과는 대부분 높은 찬성 비율로 이 제도 도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였었다. 이처럼 수석교사제 도입과 관련한 교원, 학계,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의 공감대를 고려해 정부도 수석교사제 도입을 여려 차례확정 발표하였으나 아직까지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대표적인 미완의 교원정책과제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매년 공교육 정상화를 강조하면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수없이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작 교사들이 체감하는 만족수준은 매우 낮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만큼 정부의 교원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며, 공교육 위기의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정부라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부가 수석교사제 시범운영에 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였으므로 하루 빨리 구체적 일정을 밝혀 현장 교사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해소시켜야 한다. 수석교사제처럼 민감하고도 첨예한 교원정책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대로 소신 있게 실천해 보인다면, 여타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 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뢰회복의 지름길은 정책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체류자격에 문제가 있는 원어민 강사를 채용한 학교들이 적발되면서 광주 일선 학교들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위축 등 '후폭풍'을 맞고 있다. 3일 광주시 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경찰에 적발된 광주 지역 초.중학교는 7곳으로, 해당 학교 교장이 입건까지 되면서 원어민 강사 프로그램이 폐쇄되거나 잠정 중단되고 있다. 특히 한 중학교의 경우 말썽이 된 영어.중국어 프로그램을 폐쇄해 일본어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으며 다른 초.중학교에서도 교장에 대한 행정조치와 형사처벌 등이 확정된 상황에서 새 강사를 구해 원어민 강사 프로그램이 정상화되기 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에서는 원어민 강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사정과 관리상 어려움에 비춰 원어민 프로그램을 아예 포기하는 학교도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시 교육청은 이런 가운데 원어민 강사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에 나섰다. 시 교육청은 이번에 적발된 강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는 '저질 강사'가 아닌 출입국관리법에만 저촉되는 '체류자격상 문제가 있는 강사'였다고 해명, 학부모와 학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려 애쓰고 있다. 또 초 28, 중 13, 고교 10개 등 51개 학교를 표본으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해 미비점을 시정.보완토록 했으며 9개 점검항목을 담은 방과후학교 운영지도 관점표를 만들어 각 학교에 보냈다. 이밖에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원어민 강사의 체류자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크게 부족한 상태인 원어민 강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광주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강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남 지역 교육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원어민 강사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은 일선 학교에서 부담하게 돼 있는 데다 강사를 구하기도 힘들어 일선 학교의 고충이 크다"며 "학생들의 외국어 교육이 위축되지 않도록 행정.재정적인 관리와 지원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방송공사는 방송 80년 KBS 연중기획 희망릴레이 1편 청소년 희망 백서! 십년 후 난 뭐하지? 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필자가 마침 패널로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그 가운데 필자가 발언한 내용을 정리하여 보았다. “10년 후 우리 애는 도대체 뭘 하고 살까?”는 자식을 가진 부모는 정말 궁금해 하는 문제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진로를 결정한 비율은 82.6%이다. 이 비율은 진학을 할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 비율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졸업 후 어떤 직업을 가질지 결정을 한 학생은 48.6%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대학진학이라는 진로는 정하였으나 구체적인 분야는 결정하지 못한 학생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하여도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대학을 가야할지 “진학교육”은 열심히 시키면서 앞으로 수십년간 종사할 직업을 어떻게 선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성공하여야 할 것인가 “진로교육”은 한 게 없구나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진로교육과 진학교육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하겠다. 말 그대로 진학교육은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기 위한 교육이고 진로교육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인생 전반에 걸친 미래 설계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진로교육 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도 포함이 되는 것.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떤 직업을 가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 봄으로서 장래에 가질 직업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진로교육이다. 그에 따라 진로교육에는 자기 자신이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을 갖는 것, 공부하는 법, 직업에 대하여 긍정적인 가치관을 갖는 것, 직업세계를 거시적으로 보는 것 등이 포함된다. 때문에 진로교육은 가능하면 일찍,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마치 교육의 목표가 대학진학인 것처럼 진학교육에만 열중하고 진로교육을 등한시 하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꿈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막상 희망 직장이나 직업을 살펴보니까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별 차이가 없다.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 보면 학생들이 직업에 대해서 잘 모른다. 노동부가 발행하는 한국직업사전에 수록된 직업명칭은 약 1만여개에 이르는데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호직업을 조사해보면 전체학생의 50%가 대는 직업이 고작 19개이다. 그것도 대부분 공부하고만 관련된 직업들. 그러니까 실제 성적이 그에 미치지 않는 학생들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이들이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보면 “자기의 적성과 흥미를 몰라서(33.6%),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선택하기 힘들어서(26.6%), 직업에 대해서 아는 게 적어서(16.5%)”라는 대답이 많다. 이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꿈이나 진로를 정할 수 있는 정보들을 거의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사를 해본 결과 70%가 넘는 학생들이 진로지도나 직업체험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사실 부모들은 진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힌다. 학교에서 좀 알아서 해주면 안 됩니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진로교육은 학교와 가정, 사회가 모두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미루다보면 지금처럼 죽도 밥도 안 된다. 학교교육에서도 진로 적성 검사나 직업 체험의 기회를 강화해야겠지만 부모들도 과연 아이가 이 성적으로 어떤 대학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 보다 아이가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아서 소질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꿈을 찾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많다.앞으로 더 많은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진로교육이 이뤄져서 한사람도 탈락하는 일 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 학생들 모두가 국제 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경쟁력 있는 인재로 거듭나야 하겠다. 억지로 시키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니까 상당히 즐겁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면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고민을 해 본 후 그에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도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청소년도 혹시 원하는 꿈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젖 먹던 힘까지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전 세계 65억 인구가 다 같이 경쟁을 하는 것이기 모두 마찬가지이다.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기회가 많아지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는 없는 새로운 직업에 종사할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앞선 부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뒤처진 산업을 일으키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세계와 직업 환경 변화를 잘 파악해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과 부모님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성년 여학생들의 원조교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소위 얼짱이라는 여성이 자신의 치장을 위하여 주위의 여성들을 원조교제시켰다는 것이다. 얼쩡인 만큼 온라인상으로 따르는 사람이 많으며 얼짱의 말한마디에 한 사람 병신 만드는 것은 쉬우며 피해자들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 어쩔수 없이 원고교제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몇달전부터 알려진 것이었는데 얼마전 텔레비전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영되면서 많이 알려진 것이다. 즉 인터넷 얼짱으로 알려져 하루에 수천명 이상이 접속하는한 소녀가폭행과 심지어 자신의 애완 고양이 똥을 먹이며 여중생과 여고생 들을남자 원조교제 하루에 5번씩 강행시켜 막대한 수입을 올려 하루에 백만원가까이명품사고 머리하고 놀러가곤 하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소년들의 지나친 외모 집중 현상, 청소년의 건전하지 못한 이성교제관, 원조교제를 하는 남성, 원조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우리 사회의 지나친 외모중시 현상이다. 한국의 10대 소녀 중 절반이 17세 이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59%가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똥똥한 것이 외국에서는 문제가 안되는데 한국 여성들은 정상적인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청소년의 성의식도 문제이다.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 조숙하여 성에 대한 관심도 일찍 형성되어 부모나 교사들의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성에 대하여 인식이 잘못된 것 같다. 최근 대구 YMCA의 조사에 의하면 대구 고교생의 15.4%가 돈이나 선물을 주면 성매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에서도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높은 인터넷 보급률에 따라 심지어 정부에서 가난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여 줌에 따라 이들 학생들이 음란 사이트를 접촉한다고 한다. 그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사이버로 인터넷을 접한다고 한다. 청소년 위원회가 2004년 3월 초등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71명 중 14.1%가 음란물을 올리거나 내려받은 경험이 있었다. 성인 사이트 방문 경험이 있는 51명중 1주일에 한번이상 방문자도 10명중 4명꼴을 넘었다. 또 유명 포털 사이트로 검색이 가능한 이색 아르바이트 사이트 가운데 20여곳은 청소년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구인의 52%가 많은 돈을 미끼로 성매매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소년 58%가 음란물을 경험했으며 가장 접촉이 많은 매체로는 인터넷(85.4%), 케이블TV(54.1%), 영화·비디오(52.9%) 순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음란물을 보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등 전체의 76%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답했다. 성에 대한 지식 습득 경로는 친구가 35.6%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선생님 27.8%, 인터넷 18.3% 순이었다. 고교생의 경우는 과반수(56.5%)가 인터넷에서 성지식을 얻는다고 응답해 고학년으로 갈수록 인터넷이 성지식 습득 경로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너무 생물학적 성 중심이고, 교육시간 확보의 어려움이 크며, 학교 교사들의 인식도 부족하며(전인적 발달을 돕도록 전교사의 참여 요구), 전달교육 위주의 교육방법(전교생대상, 유인물 대체)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에 대한 성교육을 더욱 강조하여야 하며, 앞으로청소년들의 수십년간에 걸친 미래를 바라보는 성교육이 되어야하겠다. 성교육에 대하여도 청소년들이 성에 관하여 부정확한 지식을 갖는데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지식(knowledge),올바른 태도(attitude)을 교육하여야 하겠다. 나아가서 이세상의 반은 남성이고 반은 여성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양성간 서로 적절한 역할이 있고 이를 연결하여주는 면에서그만큼 청소년들이 성에 대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교육하여야 하겠다. 아울러 인터넷상에서 청소년들이 접촉을 못하게 하여야 하겠으며 청소년에 대한 원조교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얼짱 소녀의 두얼굴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보면서 학교 교사들은 과연 학교내에서 얼짱이라는 아이들이 갖는 이런 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 교사들 가운데 아이들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것인가? 이제 2학기도 되었으니담당하는 반 아이들 미니홈피도 들어가서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현재고민이 무엇인가 알아보는 노력을 하여 보자.
일본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를 위한 대책으로 교원의 질 향상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이에 문부과학성은 지난 8월 28일, 「지도력 부족 교원」의 정의나 인정 절차의 가이드 라인 작성을 위해, 유식자가 모여첫 회의를 열었다. 도도부현·지정시의 교육위원회별로 규정해 온 정의나 운영이 가지각색이어서 통일된 지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이드 라인은 연내에 정리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첫 회담에서는「이미 지도력 부족 상태가 되어 있는 사람에 대한 연수보다, 예방형 연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등의 의견이 나오는 등 논의가 활발하였다는 것이다. 지도력 부족 교원 인정 제도는 문부과학성이 처음으로 조사한 2000년도는 미야기, 도쿄, 카나가와, 히로시마, 사가의 5개 도현이었지만, 06년도에는 모든 도도부현·지정시 교육위원회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05년도는 전국에서 506명이 인정되었다. 단지, 그 정의는「전문성과 관계되고 문제가 있어, 학생을 적절히 지도할 수 없다」(시가현)라고 단순한 것으로부터, 미야기현이나 도쿄도 등과 같이 복수의 항목을 들어 규정하고 있는 것까지 매우 폭 넓다. 인정 절차나, 누가 지도력 부족이라고 판단하는지도 교육위원회별로 가지각색으로, 05년도의 인정 인원수는 요코하마시의 23명으로부터, 야마가타현, 토치기현, 삿포로시, 사카이시의 1명까지 다양한 실태이다.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문부과학성은「교육 3법」 중에서, 지도력 부족 교원의 규정을 넣은 교육 공무원 특례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6월에 성립한 것을 계기로 가이드 라인 작성에 들어갈 것을 결정해 교육위원회의 담당자나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으로 구성하는 유식자 회의를 출발시켰다. 이 날 첫 모임에서, 유식자 회의 심사가 된 핫토리 아키라 기후여자대 교수는, 가이드 라인에 (1) 정의나 인정의 기준, (2) 연수 내용, (3) 연수 종료의 인정 방법, (4) 인정 후의 조치 등을 포함시킬 것을 제시하였다. 회의에서는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담당자가「신청한 단계에서면직까지 제안하면, 교장은 신청 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해, 상황에 따라 복수의 연수를 준비하고 있는 도교육위원회의 시스템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쿠로다 카오루 토오레 경영연구소 인재 개발 1 부장은「기업의 상식으로서는,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연수를 하는지가 소중하다」라고 지적했다.
교장임용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시범운영에 들어간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특히 일선학교의 교원들 사이에서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어져 일상대화에서 심심찮게 이슈가 되고 있다. 긍정쪽은 '혹시 나도'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반면 부정쪽은 '이런식의 교장임용은'이라는 전제를 달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긍정쪽 보다는 부정쪽의 의견이 많다. 더우기 적극적으로 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전교조의 조합원들 마저도 교장공모제는 잘못된 제도라는 의견을 많이 이야기 한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찜통더위로 정상적인 교실수업이 어려웠었다. 이에따라 교육부에서는 각급학교에 폭염에 대비한 수업대책을 세우라는 공문을 보냈었다. 일부 교육청에서는 그 대책을 세워서 보고하라는 공문까지 있었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은 찜통더위때문에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운점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단축수업정도는 학교장이 허용할 것으로 생각했었고, 많은 학교들이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의 학교는 단축수업이나 방학연장등의 그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이런 사정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어느학교는 단축수업없이 수업을 하는데, 우리아이 다니는 학교는 단축수업을 한다. 우리아이 다니는 학교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단축수업이라고 해봐야 겨우 매 시간당 5분정도 단축하는 것이 전부인데도 그것이 큰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과정운영 지침에 보면 5분단축은 폭염이 아니더라도 학교장이 발휘할 수 있는 권한으로 되어있다. 다소 이야기가 빗나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와관련하여 교사들도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학교장이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학교 눈치보느라 제대로 권한발휘를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학생들만 찜통더위에 고통받고 있다. 학교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어느 전교조소속 교사는 '정상적으로 오랫동안 준비된 상태에서 임용된 교장인데도 이렇게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무작격교장을 임용하는 공모제가 시행되면 학교장이 제대로 권한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제대로된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교육부에서는 이런 현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교장은 아무나 하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 아무나 못하듯이 교장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되고나면 다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준비없이 갑자기 교장이 되면 더욱더 학교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로 의미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교육부에서 아무리 억지로 밀어 붙인다고 해도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제도이다. 이미 공모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그래도 교육부는 문제가 없다고 우길 것이다. 교사들의 생각이 다양하겠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대책속에는 교장공모제 시행이 성급했다는 부분이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급하게 법개정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간을 두고 공모제가 시행되는 학교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관련법안을 폐기하거나 입법화하거나 해야 한다. 문제많은 교장임용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고자 했던 교장공모제가 도리어 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면 당연히 해당법안은 폐기되어 마땅하다. 개선이 안되는 제도를 계속밀어불일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2007년 9월 1일부로 e-리포터가 근무하는 대전광역시동부교육청의 김창규 교육장이 취임 1주년이 되어서, 우리교육청 자랑과 함께 교육장 취임 1주년의 성과를 알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취임 1주년을 맞는 감회는? 봐야 할 곳 너무 많고 듣는 얘기 너무도 다양한 곳에서, 여기 보고 저리 뛰다보니 남들이 벌써 취임 1년이 지났다기에 헤아려보니 맞기는 맞는가 봅니다. 가치야 있든 없든 맘껏 욕심내어 가지고 온 소재들, 아직도 꺼내지 못한 것들도 많은데 벌써 1년이 다 갔으니……. 이쯤해서 정리해 보니 펼쳐놓은 일들이나 완벽하게 추진하여 그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아봐야 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 하나 얻은 것이 그나마 보람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그동안 펼쳐놓은 그림 하나하나 챙겨보면서 엇나간 색칠부분은 바로잡고, 빠뜨린 작은 소개 다시 화폭에 담아 감동적인 감상 작품이 되도록 24시간 시간운용을 더욱 알차게 해야 겠습니다. 교육장 취임 후 역점을 둔 교육 사업은? 우선 다섯 가지에 큰 방점을 찍고 교육 추진 중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첫째, 실천중심 인성교육을 위해 기본생활 습관 형성, 공동체 의식 함양, 인권존중 풍토를 조성, 건전한 학생 문화를 만들고 체험학습의 내실화를 꾀하였습니다. 둘째,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영재․과학․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내실화하였습니다. 또한, 학부모들이 바라는 학력신장을 위한 각급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있어서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셋째, 교육적 배려가 요구되는 대상자에 대한 교육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교육기회 균등을 꾀하여 교육복지 사회 구현에 힘썼습니다. 환경이 열악한 계층과 지역을 위해 유아․특수․학생 복지를 집중 투자했고, 소외계층이 많은 판암,대동지역에 방과후 학교 운영을 활성화했고 평생교육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넷째, 교직원의 전문성을 신장하고, 권위를 향상시켜 긍지와 보람이 있는 존경받는 교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교실수업 개선 중심 장학활동과 교과전문성 신장을 지원하였습니다. 人事는 萬事라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사제도를 운영하여 교직원들의 호평을 받았고, 청렴한 교육풍토 조성을 위한 교직원 새마음 갖기를 독려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위학교 자율경영 및 행정혁신을 도모하고, 교육환경 격차를 완화하여 교육의 균등발전을 도모하는 학교중심 지원행정을 구현한 것이 보람을 갖게 합니다. 대전동부교육청의 특색사업은? 우리교육청의 관할 지역은 대전의 원도심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지역입니다만, 신도심이 개발됨에 따라 인적․물적 기반이 대거 이동하여 서부지역보다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합니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동부교육 및 교육환경을 정확히 진단하고, 지역유관 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학교 안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동부지역 교육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유초중 교원 15명을 조직하여 동부교육발전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여 학교현장 및 동부지역의 현안 과제를 수시로 발굴하고 토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부교육발전협의회를 구청장, 운영위원장, 교장과 함께 구성하여 교육현안을 협의하고 교육재정 확보 및 인력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색사업을 자치구와 시민들의 협조를 통해 원도심을 활성화하여 떠나가는 원도심에서 돌아오고 살고 싶은 원도심 지역으로 변화시켜 동부지역을 대전의 교육중심의 도시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리포터가 본 김창규 교육장 처음에 김창규 교육장님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초등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교육청 근무 전에 초등학교 근무할 때 모셨던 어느 교장에 대한 부정적 그림자가 강해서였을까요. 하지만 직접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눠보니 그러한 선입견이 한낱 젊은이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결재를 하기 위해 교육장실에 가면 항상 직원들에게 웃으며 일어서서 맞으십니다. 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나도 높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하지 않으셨는가 합니다. 사람을 한 두 번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김창규 교육장님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작은 철학자 같은 師表라고나 할까. 비록 160센티미터의 短尺이지만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큰 성품과 넓은 인품을 지닌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현재 동부교육청의 당면과제인 신도심과 원도심의 교육기회의 격차로 인한 학력수준 차이와 같은 엉킨 실타래 같은 교육적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갈 것으로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30여년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몇 가지 어록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실수를 줄이며 삽시다. 교직에 몸담은 우리는 자신의 하는 일에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다워야 합니다. 진정한 프로의 가장 큰 특징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금년은 가급적 실수를 줄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삽시다. 내가 당신의 입장을 생각해준다면…….그 사람의 처지에서 내가 미소를 보내준다면…….당신과 나 그 사람과 나는 얼마나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까요? 금년은 가급적 역지사지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셋째, 한 달만 앞서 삽시다. 두 달 후, 반년 후, 1년 후 이렇게 욕심내지 않습니다. 다만 한 달 후의 계획만이라도 지금 꺼내어 꼼꼼히 챙겨보며 미리미리 완벽히 준비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금년은 한 달 앞서 살았으면 합니다. 넷째, 하루 2시간만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삽시다. 때는 정해놓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 1시간은 건강을 챙긴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개인 운동에 투자하고, 또 1시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독서하는 시간으로 써 봅시다. 하루 중 2시간은 불과 8%에 지나지 않습니다. 2시간 투자에 너무 인색하지 맙시다. 금년은 그저 2시간만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2007년 3월 월례회에서) 우선 프로가 됩시다. 또한 프로에서 나아가 『참ㆍ피ㆍ온』이 됩시다. 챔피언이 되는 과정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참는 것입니다. 우리는 업무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갖가지 어려움을 참으며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피할 줄 아는 것입니다. 검은 유혹, 검은 손길을 피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온순함과 온화함을 갖추는 것입니다. 온순함과 온화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 챔피언이 됩시다. (2007년 6월 월례회에서)
자연늪 품고 낙동강 구원하는 황강 거창군 가북면의 산악지대에서 출발된 황강은 덕유산에서 내려온 위천을 만나 몸통을 불린 다음, 거창과 합천군을 가로질러 가다가 청덕군 적포리에서 낙동강에 흘러 들어간다. 전체 길이는 111㎞이고, 물길의 경사가 심해 토사가 많고 일부에서는 하천의 바닥이 평야지대보다 높은 천정천을 이루기도 한다. 토사의 대부분은 은백색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강바닥과 주변은 황금 색깔을 보인다. 먼저 자리 잡은 모래알들은 강물에 떠내려 온 작은 진흙 입자를 받아 들여 넓은 퇴적층을 이루고, 그 퇴적물들은 버드나무의 씨앗을 잉태하여 웅장한 버들숲을 만들었다. 여름이면 황금빛 나는 강변에 시원하게 잎을 드리우는 버들숲은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버들숲은 사람들에 의해 더렵혀진 강물에서 나쁜 성분을 걸려 내고, 몸속에서 많은 산소를 뿜어 강을 맑게 해 준다. 이렇게 깨끗하게 정화된 강물은 낙동강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구원의 물이 된다. 새 생명이 어미의 젖을 먹고 생명을 이어 가듯 주변의 공단에 의해 크게 오염된 낙동강에 다량의 용존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에 ‘모성의 강’이라고도 한다. 합천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큰 군이지만 80%가 산으로 되어 있어 골이 깊고 물이 맑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던 이곳에 1988년 홍수 조절과 전력 생산을 위해 합천댐이 들어섰다. 합천댐의 건설로 낙동강의 수위가 60㎝ 정도 낮아져 홍수의 피해를 크게 줄였지만, 평상시에 황강을 흐르던 물이 크게 감소하여 자연늪의 입장에서는 많은 물을 빼앗겨 이들의 육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합천의 자연늪들은 황강에 의해 만들어진 배후습지성 호수들인데, 용주면의 박실늪과 연당늪, 대양면의 정양늪이 있고, 인위적으로 산의 중턱에 조성된 율곡면 내천리의 연지못이 있다. 한때 39.7㏊였던 정양늪은 대양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황강으로 들어가다가, 홍수 때 역류하여 만들어졌다. 황강으로 들어가는 수로의 길이는 매우 짧아 황강의 물높이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몇 년 전 수로의 바닥을 낮추어 호수의 물이 많이 빠져나가 대부분의 늪이 육상화 되었다. 박실늪은 둘레 5.5㎞, 넓이 40㏊의 장화모양으로 황계폭포에서 내려오던 황계천의 물이 황강에 들어가다가 역류하여 만들어진 늪이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2호인 백조 도래지로 지정되었다가 1974년 해제된 곳으로 지금은 이 사실을 기록한 비석만이 제방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직도 이곳에는 여름에는 백로 류가, 겨울에는 백조 무리가 무리지어 찾고 있다. 황강에 인접한 연당늪은 연꽃이 자라고 있기에 이름이 붙여졌고, 규모는 작지만 지금은 합천에서 유일하게 보존이 잘된 자연늪이다. 배후습지는 아니지만 율곡면 내천리에 있는 연지못은 내천마을에서 1㎞ 떨어진 해발 180m의 야산 정상부에 있으며 넓이는 0.5㏊이다. 산 정상부근의 샘에서 임진왜란 때 우리의 군사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판 곳이 연못의 형태로 남아 있다. 샘에서 나오는 물에 의해 일 년 내내 같은 물 높이를 유지하나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의 높이가 증가한다. 희귀식물 낙지다리의 군락 박실늪 한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8년 버들밭을 없애고 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귀한 유산이 사라졌다. 남아있던 부분도 근래에 수로의 바닥을 황강의 높이로 낮추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육상화 되고 있다. 이곳의 습지에는 솔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물옥잠, 선버들, 버드나무, 고마리, 낙지다리, 질경이택사, 택사 등이, 물속에는 개구리밥, 생이가래, 어리연꽃, 가시연꽃, 통발, 붕어마름, 물수세미 등이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붕어, 잉어, 메기 등의 여러 종류 물고기와 수달, 남생이, 금개구리, 유혈목이 등이 살고 있다. 물옥잠은 한해살이풀로 9월에 청자색의 꽃이 피는데, 그때 박실늪 전체는 보라색의 밭으로 변한다. 물옥잠의 사촌인 물닭개비는 꽃의 색깔이나 잎의 모양이 비슷하지만, 원줄기에 하나의 잎이 달리고 물옥잠보다는 작은 잎을 가진다. 물닭개비는 물에 사는 달개비라는 뜻으로 꽃이 육상에 사는 닭의장풀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낙지다리는 전 세계에 단 3종뿐으로 학자에 따라 돌나물과 또는 낙지다리과로 나누고 있는데, 어디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은 특이한 식물이다. 7월에 줄기 끝에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황백색 꽃이 하늘을 보며 모여 달리는 모습이 낙지다리처럼 보인다. 뿌리에서 짜낸 즙을 부스럼에 바르는 낙지다리는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는 식물은 아니다. 습지가 파괴되고 하천이 정리되면서 살 곳이 없어져 버린 낙지다리를 산림청에서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연늪의 변화과정 보여주는 정양늪 1983년 정양늪은 습지와 물이 드러나는 부분이 반씩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습지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줄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줄은 4월에 싹이 나오기 시작하여 점차 자라기 시작하다가 태풍이 오기 전에 최대 250㎝까지 자란다. 이때 줄 밭에 들어서면 공기가 혼탁하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씩 늪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들이 터져 나오면서 ‘끙끙’ 울음소리를 낸다. 이런 줄 밭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자연늪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정양늪도 박실늪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정양늪을 통하여 우리나라 늪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호수에는 상류에서 내려온 흙들이 쌓여 점차 물 깊이는 낮아지고, 이곳에 습지식물인 부들과 줄 및 갈대가 들어서게 된다. 이때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게 되는 가뭄이나 댐의 건설로 인하여 들어난 습지에 버드나무가 들어서게 된다. 육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나도미꾸리낚시와 고마리가 버드나무 밑에서 자라기 시작하고, 이런 늪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 육지로 변하게 되고 버드나무 대신 소나무나 오리나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 늪의 육지화에 큰 역할을 하는 버들에는 선버들, 왕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등 30여 종류가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4월에 피고, 5월에 열매가 익으며 가을에 낙엽이 진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이것으로 진통제 성분인 아스피린을 만든다. 살리실산은 배고픈 딱정벌레가 버들잎을 먹을 때, 벌레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약품을 만들었다. 이처럼 자연이란 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면 파괴하지 않고도 더 좋은 이용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멸종 위기의 순채 자라는 연지못 연지못에는 순채, 통발, 창포, 나래새, 털여뀌가 자라고 있으며 이 중 순채가 가장 넓게 분포한다. 특히 이곳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순채가 나타나는 곳으로 순채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및 보호 식물이다. 순채는 물 위에 잎을 띄워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땅속줄기는 옆으로 기어 다니고, 줄기는 물 위까지 자라 드문드문 가지를 친다. 어린줄기와 잎은 투명하면서 미끈거리는 점액으로 덮여 있고, 잎자루는 잎의 중앙에 달렸으며 잎의 뒷면은 자주빛이 난다. 긴 꽃자루에 달린 꽃은 검은 빛을 내는 홍자색이며 물에 약간 잠긴 채로 초여름에 핀다. 전 세계에 1속 1종이 있으며, 온대와 열대지방에 자라는 순채는 점액질이 분비되는 어린줄기가 있다. 잎은 피부병 치료를 위해 바르거나 소화제로서 그대로 먹는다. 예전에는 남한 전역에서 자랐지만, 현재는 연지못, 울산의 못산늪, 전남 영암의 형제제, 익산의 신성저수지, 김제의 석동저수지와 명덕저수지, 충남의 삽교천, 제주도의 괴살메와 갈마못, 속초 근방의 광포호와 봉포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세월 아닌 사람에 의해 변해가는 자연 사람이 변하듯이, 우리 삶의 모태인 자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1917년 자료에 의하면 박실늪은 지금의 약 2배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해곡동 앞의 들에도 물이 고여 있는 호소였는데, 지방도로에서 해곡동까지 둑을 쌓아 논을 만들면서 넓이가 반으로 줄어든다. 이후에 박실늪 상류 제방에 황계천에서 떠내려온 흙들이 쌓이면서 습지대가 점차 넓어지다가,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황강의 물 깊이가 급격히 낮아져 박실늪의 습지대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그때까지 경작지의 옆에만 자라고 있던 몇 그루의 버들이 갑자기 물에서 드러난 습지대에 많은 씨를 뿌려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 1990년대 초반에 가뭄이 자주 우리나라를 찾아 왔다. 가뭄이 들어 박실늪의 수위가 낮아질 때마다, 버들이 몇 년 간격으로 찾아오면서 나이가 다른 버들 밭이 습지를 원 모양으로 그리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귀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버들밭을 보면서 이를 없애고 논을 만드는 작은 이익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결국 1997년 겨울에 버들들은 모두 베어졌고 1999년 여름에 모내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논은 해마다 홍수 때 물에 잠기게 되고, 눈앞의 이익에 현혹된 사람들은 기어이 황강으로 들어가는 보를 허물어 박실늪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고대 다라국의 신비 간직한 황강변 예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용된 황강의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지천에 늘려 있다. 박실늪 상류에 있는 황계폭포는 구장산의 계류가 험준한 계곡을 감돌아 2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2층 폭포이다. 여름철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천둥소리를 내고, 사시사철 일정한 수량을 보인다. 1단 폭포 밑의 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이를 가져 예전부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곳의 풍광이 아름다워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하였고, 합천 8경 중 7경에 해당된다. 황강의 금빛 모래를 이용하여 번성을 누렸던 다라국(多羅國)도 황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적중면에는 옥전고분(玉田古墳)이 있는데, 옥이 출토된 밭에 있는 고분이라는 의미이다. 다라국은 가야의 한 소국으로서 일본서기와 중국의 양직공도에 나타나는데, 합천의 황강과 낙동강을 끼고 서기 400년 전후에 등장하여 560년대에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 및 철제무기를 만들어 수출하였는데, 고분에서 전쟁 시 말을 보호하기 위한 말 투구 6점과 갑옷 3구가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말 투구 14점 중 반이 이곳에서 나왔다.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을 다듬었던 다라국은 합천박물관 주변에 대형 고분 27기와 약 1천기의 무덤을 남겼다. 봄철에 만나는 합천댐과 백리 벚꽃 길(44㎞)은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등의 수려한 산이 감싸고 있어 절로 신선이 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합천호를 감싸는 황매산의 철쭉제, 합천댐 아래에 조성된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게 한다. 존재의 위협을 받는 자연늪! 비단 합천의 늪만이 가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늪의 파괴가 계속 일어난다면 우리 후손들은 책을 통해서만 자연늪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연늪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연늪이 사라지면 늪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많은 생물들이 살 터전을 잃고 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은 현 정부의 야심작이었다. 복지 정책을 강조하는 참여정부는 살인적인 경쟁과 만성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야심에서 혁신적인 대입제도개선안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대학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성적의 석차나 수능 시험의 백분위 점수를 제공하지 않고 각각 9개로 구분된 등급만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책에 대한 대책 부실이 문제 사실 정책입안자들의 주장처럼, 2008학년도 대입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수능과 내신에 등급제를 도입하고, 내신에서도 교과뿐만 아니라 교과 외 활동의 반영을 유도하는 대입 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과 사교육비 문제 등을 어느 정도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대학들이 정책입안자의 의도대로 움직여 준다고 가정할 때에 그렇다. 그러나 좀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관성에 비추어 볼 때, 2008학년도 대입 방안을 대학이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 모집단위별로 분석해 볼 때, 지원자 대부분의 수능과 내신 등급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수능과 내신을 지원 조건이나 일차적인 선발 기준으로 격하시키고, 논술이나 면접시험 점수를 학생 선발의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고자 하였다. 논술이나 면접이 학생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함에 따라 각 대학은 논술의 신뢰도와 변별도를 높이기 위하여 논술을 이른바 통합논술, 수리논술, 본고사형 논술 등과 같은 형태로 바꾸고자 하였다. 면접도 더 이상 단순한 면접이 아니라 오랄 테스트로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책입안자들은 모든 ‘정책’에는 반드시 ‘대책’이 따름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에 본고사형 논술과 면접시험이라는 대학의 ‘대책’이 뒤따랐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은 본고사형 논술 열풍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논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2008학년도 입시가 다가옴에 따라 고등학교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실력 차이로 인하여 내신의 비중을 높일 경우 우수 학생의 선발에 어려움을 느낄 것을 예상한 대학은 각 대학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기 위하여 대학별로 내신 1·2등급, 1·2·3등급, 1·2·3·4등급에 모두 만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각 대학 지원자의 대다수에게 내신 만점을 주려는 대학의 ‘대책’에 정부는 내신 무력화 조치라고 경고하였으며, 이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각 대학에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08학년도 대입에서부터 내신 실질 반영률을 50%로 끌어 올릴 것을 요구했다. 내신 실질 반영률이 10% 내외에 그쳤던 그간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교육부의 이러한 요구를 대학은 황당한 요구로 간주하고,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하였다. 내신 실질 반영률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 각 대학은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허용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까지 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와 이로 인한 자율성 침해를 비판하면서 내신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대책’의 계속적인 맞대응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첫째로 내신, 수능, 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히게 되었고, 둘째로 대입정책의 불확정 속에서 ‘저주받은 89년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대, 2008학년도 대입정책 입안자들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학교교육은 더욱 왜곡되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내신 논란이나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으로부터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난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에 이미 이런 논란의 씨앗이 담겨져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5년 초에,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의 파급 효과를 우려하면서 교육관련 잡지에 실린 필자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적·교육적 가치 중시돼야 대입 논술 고사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맥락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대입 논술 고사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본고사형 논술금지’라는 이념적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교육부는 상당한 유연성과 동시에 경직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의 유연성을 드러내 보인다. 다만 논술이 통합형 논술이나 교과형 논술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할 뿐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대학 논술 고사의 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육부는 본고사형 논술을 금지하는 이유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목적’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지점이 교육부가 매우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본고사형 논술이 사교육비를 정말로 증가시킬 것인가? 일시적인 사교육으로 본고사형 논술에서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깨닫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본고사형 논술을 치르지 않는다고 사교육비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목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진술될 수 있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교육적 가치를 지닌 대학 논술 고사를 놓고 진행되는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 정책’간의 싸움의 결말은 어떠할 것인가? 현재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과 ‘사후심의’ 정책으로 인한 논란은 궁극적으로 본고사 실시와 관련한 논란으로 발전할 것이며, 논란이 본격화될 경우 본고사 실시 정책이 본고사 금지 정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본고사 실시는 한편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성이라는 ‘민주적 가치’로, 다른 한편으로는 수월성 추구라는 ‘교육적 가치’로 정당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본고사 금지는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비교육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본고사를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비가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통제정책 아닌 지원정책 필요 2년 반 전, 교육부가 2008학년도 대입정책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예상했던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은 처음에는 ‘본고사형 논술’ 시험 문제에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문제로 바뀌어 다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3불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와 대학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할 태세다.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 즉 정책 수립 및 집행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통제’보다는 학생 선발 결과에 따른 ‘지원’의 차등화를 통해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학생 선발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허용하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균형 있게 학생을 선발한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통제 패러다임’을 ‘지원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더 나아가 미래의 사회에서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을 통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을 통제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정부의 정책 의도와 일치하는 선발 결과를 보인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 집행 방식이 대학의 학생 선발에 있어서의 자율권 보장이라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대학 진학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정책 취지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명문 대학일수록 사회적 약자의 진학 비율이 낮아져 온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는 대입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의 문제와 사회복지의 문제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정책의 배후에는 사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가 놓여 있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대입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관심과 노력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교육을 통하여 사회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가 입시제도 등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적 관심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 교육 논리를 무시한 채로 정치 논리, 경제 논리 또는 사회복지 논리로 입시문제 등에 접근할 경우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하게 엉클어 놓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사회적 책임 잊지 말아야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교육부의 간섭, 즉 본고사 금지, 논술가이드라인 제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금지와 같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교육 자체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많다. 달리 말하면 사회 계층의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교육까지도 망가뜨릴 가능성이 있다. 학력과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계층의 양극화 문제는 사회복지제도나 경제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대입제도와 같은 교육정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을 정치나 경제, 사회복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정부의 태도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렇다고 대학의 잘못은 없는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의 대입 정책에 대한 ‘간섭’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 부족 때문에 초래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사례는 이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적이다. 미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조기입학허가제(early admission)’가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자체 분석 결과에 따라 하버드 대학은 우수 학생 선점에 유익한 정책으로 간주되어 왔던 조기입학허가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의 자율은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대학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가능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학생 선발은 한편으로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정확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도 있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이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키우거나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그리고 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생을 선발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대학은 변별력 있는 선발제도를 통해 탁월한 학업 성취를 보인 학생을 선발하는 것 못지않게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으나 사회적 여건이 불리하여 발전할 기회를 놓쳤던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에 정부가 간섭하는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느끼기에는 그런 듯하다. 1997년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는 12개국 학자들을 대상으로 고등교육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 조사 항목 가운데는 “대학의 주요 학사 정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나친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90% 가까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조사 대상 나라들 가운데 긍정 비율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부분 반응이 50% 이하였던 것에 비교하여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같이 조사된 나라들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에서만 50% 조금 넘는 긍정 반응이 나왔을 뿐, 아시아의 일본과 홍콩, 유럽의 네덜란드와 스웨덴, 남미의 브라질과 칠레, 그리고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다른 모든 조사 대상 국가에서 긍정 반응을 한 빈도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정부 간섭 지나치다는 응답 90%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통제)은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국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전제적 정권들이 으레 자행했던 대학 통제의 유습, 뒤늦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학을 국가 발전 수단으로 여겼던 통념, 일천하고 척박한 고등교육 역사 속에서 불거졌던 대학들의 부정과 부패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진원이었던 대학들은 여러 이유로 정권의 통제를 받았고, 성장이든 배분이든 대학은 그 문제에 대한 중요한 국가 정책 수단으로써 조정돼 왔으며, 급속한 팽창 와중에 빚어진 대학의 비리들도 정부의 개입을 불렀다. 이런 역사의 연장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등교육의 문제를 대학에 맡긴다는 생각은 아직 멀다. 문제가 터지면 정부를 탓하고 정부가 나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관성은 여전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관성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자율권을 요구하는 강도는 세지고 있다. 대학들의 이런 변화(요구)에 대한 사회적 동조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일차적으로 이른바 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대학들이 자유시장적 경쟁을 통해 강해져야 한다는 개혁 논리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대학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라는 방안들이 중요한 개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연히 대학 경영상에서 자율 폭이 커지고 있다. 경쟁적 생존을 요구하면서 자율을 제한하는 것은 모순인 셈이 된다. 대학의 자율권은 이런 개혁 추세가 아니더라도 점차 회복되기 마련일 것이다. 대학은 본디 자율의 바탕 위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통제적 전통은 점차 해소될 것이다. 대학이 그 긴 역사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나 사회(종교)적으로 완전하게 독립적이었던 적은 없을 것이다. 대학 생존에 이바지하는 주체가 늘 대학 밖에서 받치고 있었다. 그 주체는 때로는 귀족이기도 했고, 때로는 교회이기도 했으며 자선재단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만 본다면 많은 나라에서 대학을 뒷받침한 주요 주체는 정부(국가나 지방 정부)이다. 대학이 이들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율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지원한 주체들은, 적어도 대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와 지역(국가)을 두고 보면, 대체로 후원자(patron) 자리에 머물렀지 대학 운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대학의 자율은 대학의 본질에 붙박여 있는 것으로 여겼다. 본질적 자율 범위에 대한 논란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선발 권한이 대학의 본질적인 자율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 종종 논란이 생긴다. 특히 정부쪽에서는 학생 선발의 쟁점이 대학 자율 문제와 거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학의 자율은 본질적으로 학문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여 교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자유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에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대학의 학문적 자유(대학이,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탐구하고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와 관련해서 가져야 할 자유)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 입장은 사실 옹색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어쨌건 합리화해야 하는 궁지에서 학문의 자유를 좁게 규정함으로써 빠져나갈 논리를 찾는 꼴이다. 대학의 역사를 서구 유럽에서 찾는다면 대학의 자율권은 본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설립 900주년을 맞던 1988년에 유럽 대학 총장들이 볼로냐에 모여 채택한 대학대헌장(Magna Charta Universitarum)은 근본원칙(Fundamental Principles) 첫 조항을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은 사회의 심장에 자리한 자율적인 기관이다.” 이 원칙대로 대학의 자율권이 사회적 심장의 자리에서 향유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경 전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학생 선발에서의 자율도 물론 포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당위적이고 선언적인 바탕에서 대학 자율권이 학생 선발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생겨난 많은 신생국의 경우와 크게 다름없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애당초 국가 기관이나 마찬가지인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이 초기부터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적 지위 이동에서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사회적 환경에서 대학 진학 기회가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관심이 예민한 데 따른 시비는 종종 증폭되고, 결국 증폭되는 시비를 해결할 당국(곧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우리나라 대입 선발에 대한 정부 개입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 선발권을 전적으로 대학에 주었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초기 역사는 대학들의 비리로 얼룩졌다. 이 역사적 기억은 오늘에 와서 자율의 이름으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주려는 생각을 너무 순진한 발상으로 여기게 한다. 서구 대학의 전통이 그 순진한 생각을 지지해준다 하더라도, 우리 상식은 그런 전통에 기대는 정책 행위를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학생 선발에 관하여 규범적인 검토보다 ‘사실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학과 정부 가운데 어디가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가져야 할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전통(규범, 당위)이 어떤 답을 주는지 살피기보다 우리의 대학 운영 현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살피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것이다. 선발권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들 대학이 학생 선발의 권한을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역사적 사실이 잊지 못하게 하는 문제는 대학들의 부정 가능성이다. 대학들이 적격하지 못한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고 정작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을 버릴 위험이 있다. 과거 대학들이 보였던 입학부정 사례들이 이런 걱정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이와 같이 탐욕을 보였던 대학들은 더 나아가 학교교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대학들이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입생들을 챙길 방도만 찾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하여 대학들이 최근 보이는 경쟁은 이런 우려를 절감하게 한다. 경쟁에 눈이 어두운 대학은 또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사회는 여긴다. 이를테면, 불우한 여건에서 도전하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요컨대 대학들이 공익에 먼저 마음을 쓰기보다 자체의 이해(利害)를 먼저 계산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에서 정부가 내놓는 입장도 이런 것이다. ‘공공성’의 견지에서 정부가 대학 정책(특히, 학생 선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공공 기관으로서 몫을 해내지 못하거나 안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들어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자율을 구가한다면 학교교육의 정상화나 교육기회 균등을 위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걱정할 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반드시 걱정한 대로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물론 이해관계에 매인 행위를 보이겠지만, 공공성을 견지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마냥 방기하지만은 않을(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유보한 채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행사한다고 해서 곧 공적인 이익이 확보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가 정책을 책임진다고 해서 공공성이 당연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가 그 유지를 위해 사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그 결과가 취지에 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간섭 결과 냉철히 따져봐야 우리나라 대입 정책은 적어도 반세기 가까이 정부가 좌우해왔다. 물론 정책 입안과 시행 과정에 다양한 목소리가 개입했고, 대학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인 정책 권한은 정부에 있었다. 단순하게 자문해보자. 과거 반세기 정책 역사가 대입 학생 선발에서 공익을 키워왔는가? 그렇다고 긍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도 대입 부정 사례가 과거보다 현격하게 줄었다. 교육기회 배분(학생 선발)이나 장학금 지원 등이 사회적 평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대입 정책을 대학 자율에 줄곧 맡겼었더라도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학도 발전을 강구하면서 사회적 요구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한때 부정을 자행했던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런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학습하게 되고, 정책의 정도(正道)로 돌아갈 수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강자 우선의 정책만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학교의 위신을 높이거나 사회적 지원을 얻어내는 데 더 유효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국의 명문 대학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그 대학들이 고매한 도덕률을 지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런 정책이 종국에는 대학에 득이 된다는 인식을 경험적으로 얻게 된 점도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 대학들이라고 이런 역사적 지혜를 체득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사실 무의미하다. 대학에게 맡겼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보다 정부가 권한을 행사한 결과를 좀 더 따져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늘날 정부가 지휘하는 대학입학 제도에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수능시험이나 대학별 전형 등에서 큰 사건 없이 한 해 한 해 넘겨오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대입과 같은 심각한 사안에는 정부가 개입했을 때 안심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인 무난함이 공공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객관적 관리가 오히려 파행 불러 대입정책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얻는 성과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정(査定)이 이루어지게 되는 점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정부가 엄정하게 관리하는 시험을 통하여 핵심적인 전형자료를 제공한다. 다른 전형자료들(예컨대, 학교생활기록부, 논술고사 등)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지침으로 표준적인 활용을 도모한다. 이런 수고를 통하여 정부는 입학 사정에서 ‘커트라인’을 긋고 당락을 가르는 데 다른 입김이 작용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객관적이고 효율적이게 보이는 정부의 대입 관리는 역설적이게도 대입 경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교육의 파행을 더 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형을 위해서는 국가 수준에서 하나의 표준 잣대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이의 없이 받아들일 척도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잣대는 학생 전형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대학의 서열을 가르는 데도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몇 점이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진학할 수 있는지 탐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가 되고, 학과나 대학의 커트라인이 해당 학과와 대학의 위세를 결정하게 되는 현상도 따라서 일어난다. 대학들 역시 위세를 확보하기 위해 입학전형에서 전국 표준의 잣대를 가장 중시하게 된다. 학생이나 학교가 학습(교육) 과정에서 그 잣대를 가장 중요하게 의식하게 되리라는 짐작은 우리 현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결국 학교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되는 파행이 거듭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 전국 표준의 지침(또는 잣대)을 적용하게 되는 사태는 불리한 학생들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효과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대로 내신 성적을 중시하는 지침이 전국 대학에서 관철된다고 해보자. 단순하게 보면, 이 지침은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되어 있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 특수목적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중소도시 또는 읍면 지역의 이른바 ‘우수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정부는 소위 ‘특수한’ 학교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작은 도시나 시골의 우수한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어려서 도시로 나가지 못한 형편에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는 간과된 듯하다. 이 경우에 정부가 실수로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실수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실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실수라는 점이 심각한 것이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즉 획일적인 정책을 추구할 때 ‘목소리 낮은’ 소수는 흔히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획일적이지 않은 정책을 추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그런 정책이 바로 대학에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목표’를 제시하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규칙’(정책)은 대학이 스스로 만들고 지키도록 맡겨두는 것이 그 대안이다. 국가가 이를테면 대학에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입학전형 방안을 요구하는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만들어 강요할 만한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대안을 강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사회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대안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대안에 대학들이 사악한 방책들로 대응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견제는 정부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대학답지 못한 대학들을 의식하며 대학다운 대학 만들기를 주저해선 안 될 것이다.
공정한 권력배분 장치 공교육의 위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특정 계급에게 집중되거나 귀속되지 않고 국민 모두에게 있다. 과거의 귀속주의(Aristocracy) 사회에서 현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민주적인 권력배분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곧 학력(學歷)이다. 요즘에 와서는 진정한 의미의 학력(學力)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도 이른바 ‘가방 끈’이 권력배분의 중심에 있다. 대학교육을 받았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그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의 정도를 가늠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대입 경쟁에서 남보다 좋은 조건에 들기 위해 고액 과외를 받거나,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행태를 비난하기 어렵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지역, 어느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를 불문하고, 각자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더 나은 학력을 갖게 되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가 주어진다.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노력한 결과를 가지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계층 이동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공교육을 통해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왔다. 1960년대 후반의 ‘중학교 무시험전형’과 70년대 초반의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이 그 일환이다. 이 두 정책은 공교육 기관이 권력배분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는 대입제도이다. 특히 대입전형에서 고등학교 교육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어느 요소보다 중요하게 반영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바로 ‘내신의 반영’이다. 우리의 공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경쟁이 치열해지고,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학교마저 적자생존의 경쟁 시장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우리 모두 최고가 되려고 경쟁하는 사이에 성적이 하위권에 속한 학생들이 먼저 소외되기 시작했다. 공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하위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위권 학생들로부터 학교가 외면당하고 있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경쟁에 이기는 데 학교가 학원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김동춘, 1999:1). 내신을 무력화 하려는 일부 대학들은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실시하면서 한편으로는 ‘기회균등할당제’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대학 졸업자에게 투표용지를 두 장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별 다름이 없다. 우리는 근대 시민사회에 살고 있다. 시민사회의 교육이란 위대한 시민(citizen)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시민은 태생의 청탁수박(淸濁秀薄)은 다를지라도 그 본성의 존엄함에 있어서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현실태(現實態)의 우열은 있을지라도 평등주의적 인간관의 원칙(egalitarian ideal)에 의해서 교육돼야 할 권리를 소유한다. 젊음이란 가능태(可能態)일 뿐이다. 한 시점에서의 한 기준이란 위인의 준칙이 될 수 없다(김용옥, 2007). 공정성 위해 내신 반영비율 높여야 국가 또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공정한 권력배분의 잣대를 잘 만들어 실시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잣대의 객관성을 그 어느 것보다 중시했다. 이제는 객관성만을 담보한 잣대로 권력을 배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전에는 명문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이제는 부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사회과학연구원, 2004:3 ; 김동춘, 1999:4). 학교가 더 이상 권력배분의 장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돈도 권력도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공교육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입전형에서 단순히 현재의 성적만이 아니라 그가 처한 교육 환경까지도 고려하는, 즉 공정성이 중시되는 잣대를 개발해야 할 시점이다.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필요조건(충분조건은 아니지만)은 내신의 실질 반영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수능은 대학지원 자격요건 정도로만 활용하고 대입전형에서 고교내신을 주로 활용하겠다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시의적절하다. 새 정책의 취지는 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각 학교는 주어진 권한 내에서 교육과정을 소신 있게 편성하여 운영하고, 그 결과는 다른 학교와 비교할 필요 없이 해당 교사들이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에도 고교내신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영의 명목상 비율은 꽤 높으나 실질 비율은 매우 낮은 상황이었다. 내신 반영비율의 이런 이중 구조는 대학의 기존 서열 구조를 지키려는 명문 대학들의 암묵적 담합을 바탕으로 조성되고 유지되었다. 이른바 일류 대학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신입생의 전국단위 시험 성적이었다. 과거의 대학입학학력고사와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그 대학의 일류, 이류를 결정하였다. 내신 성적이 수능 성적보다 예언 타당도가 높다는 게 상식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신이 높은 학생을 뽑는 데 소홀하다. 대학의 일률적인 서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도 새 대입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 제도가 정부의 방안대로 순순히 실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교 평준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학교 간 학력 격차는 심화되었는데(강상진, 2005:176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5), 정부는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명문 대학에 수십 명의 입학생을 배출하는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학생과 명문 대학 지원서조차 써본 적이 없는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학생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대입전형의 공정성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발상이기는 하나 국민들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 효과성 측정으로 내신 등급 보정 고교등급제와 같이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평균 성적을 그 학교의 성취 수준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편 각 학교의 평균 성취도에 관계없이 모든 학교의 1등급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양 극단을 취한 두 가지 관점을 지양하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각 학교가 처한 여건을 감안하여 학교의 효과성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함으로써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의 동의를 구하면서,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필자는 위계선형모형(HLM, Hierarchical Linear Model)으로 학교 효과성(School Effectiveness)을 측정하고(김경성, 1998), 이를 바탕으로 단위 학교의 내신 등급을 보정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그 연구(남현우, 2006a)는 미국에서 수집된 자료를 이용한 것이었다. 또 미국과 우리는 교육환경이 같지 않고, 학교 효과성을 결정하는 변수도 같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한 연구(남현우, 2006b)를 수행했다. 전국의 학생들을 하나의 잣대로 재어서 줄 세우는 현행 제도는 물론, 각 학교의 수준을 무시하고 모든 학교의 1등을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을 지양해서, 각 학생과 학교가 처한 여건을 감안하여 학교 효과성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내신을 단위 학교 내에서 과목별 9등급으로 산출한다는 게 교육부의 기본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교육부의 기본 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입시 관계자들이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엄존하는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고교평준화를 기본 정책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 실적과 관련해서 명문고와 비명문고를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교육부의 생각과 여러 입시 관계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되, 여건(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학교 위치, 개인 과외의 기회 등)이 비슷한 다른 학교들에 비해 높은 효과성을 보인 학교(School Effectiveness)의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등급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 반대로 여건이 비슷한 다른 학교에 비해 낮은 효과성을 보인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등급을 낮춰주는 것이다. 학교 간 학력 차이를 무시하고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한다면, 각자가 처한 여건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가지고 전국의 학생들을 하나의 잣대로 재서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방안도 그에 못지않게 문제가 있다. 양 극단을 지양하여 입시 관계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필자는 학교 효과성을 반영하는 내신 등급 조정 방안을 제안하였고, 이의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공정성 확보위한 타당성 검증 계속돼야 고교평준화가 명실상부하게 이루어져 있고 고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단위 학교별로 내신 등급을 산출하자는 교육부 안에 대부분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 간 학력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모종의 경과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을 필자는 위계선형모형(HLM)을 이용한 학교 효과성 측정과 이를 이용한 내신 등급의 보정이라고 보았다. 학교 효과성을 결정하는 최적의 함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신 등급을 보정하여 대입 전형에 반영한다면, 대학 입시 때문에 고교교육이 파행으로 치닫는 현상은 없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학부형과 학생들이 고등학교 선택을 자유롭게 해도 괜찮은 상황이 될 것이다. 새 대입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고교평준화가 실현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교육 여건의 평등과 교육 효과의 차등을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HLM 방식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노력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빈약한 필자의 안목으로 볼 때, 대입전형 방법의 타당성 문제는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가치론적 추론의 대상이며, 경험적 검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LM 방식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교육평가의 기본 철학은 사회 정의의 실현에 있어야 한다(황정규, 2000). 학업 성적이라는 결과는 그 밑에 ‘능력’과 ‘노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이라는 개념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것은 오랫동안 가족 구성원이 보내준 지원이나 사회적 기회의 불공정이 누적되어 나타난 집약체로서 형성되어 있다. 교육평가가 공정성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려면, 평가하려는 객체가 무엇이며, 그것을 결정하리라고 짐작되는 선행 변수 또는 선행 제약 조건이 공정하게 평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고 있는지 되짚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데 잘 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도 잘 할 때 칭찬이 필요하다. ‘잘 뽑는 것’ 아닌 ‘잘 기르는 것’ 필요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대학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국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는 이러한 국가의 간섭이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국가적인 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우수한 신입생을 뽑기 위해 대학들이 노력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국가가 정한 대입제도의 틀을 무시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안겨주는 일부 대학들의 처사는 비난 받아야 한다. 대학 신입생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들이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각 대학의 희비는 갈리겠지만 대한민국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우수 인재들이 기초 학문 분야보다 장래의 안락한 직업이 보장되는 학과에 몰리는 현상이다. 일류 대학의 입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 양 포장되는 사례가 많다. 대학입시제도의 자율화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수 요건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대학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우수한 인재를 잘 ‘뽑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입생이 들어오더라도 이들을 잘 ‘길러내는’ 것이다. 공교육은 사회적 약자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국가는 공교육을 굳건히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도 이러한 인식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고 공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2008학년도 입시제도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면서 자기 대학의 이익을 챙기려는 소위 일류 대학들의 행태가 있었다. 이를 제지해야 할 교육부장관은 애매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공교육 기관의 맏형인 대학, 그 중에서도 최고를 자칭하는 일류 대학이 할 짓이 아니다. 이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공언하는 부총리의 행동도 잘못됐다. 세계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서방 선진국의 유명 대학 대신에 우리나라의 대학에 유학 오도록 하는 대입제도를 만드는 데 국가의 대입 정책이 걸림돌이 된다면 수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3 학생들을 나누어 갖는 방안을 짜면서 국가의 기본 틀을 무시하는 대학의 처사를 용납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가가 정한 대입 제도를 따랐을 때 특정 대학의 입시 경쟁력은 약화될 수 있어도 그것이 공교육의 기본 취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켜야 한다.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자율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입 제도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을 감안할 때, 초등 및 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받아야 한다. 대학이 자율권을 구가해야 할 영역은 신입생 선발이 아니라 이들의 교수·학습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대학의 오판 서울에 소재하는 이른바 일류 대학의 입학 처장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노력하는 것 같다. 이들은 수능 성적을 9개 등급으로만 보고하고 학생부의 비중을 확대하여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이루려는 정부의 의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매번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새 대입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일류 대학들은 정부의 방안에 아랑곳 않고 제 갈 길을 가곤 했다. 주요 대학들이 반발할 것이 뻔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또 그런 대학들에 적절한 행정 지도도 못하는 교육부 관리와 국가 전체의 교육은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대학에 성적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도록 생떼를 쓰는 대학의 입학 처장들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조롱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일류 대학들은 수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가? 학생부(내신)보다 수능의 변별력이 높아서인가? 수능을 표준점수로 보고할 때에도 수능의 변별력이 낮다며 논술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류 대학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능이 9개의 등급으로만 보고되는데도 오히려 변별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진짜 이유는 일류대의 ‘기득권 지키기’이다. 이른바 ‘일류’를 계속 지키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방법들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에 대입 제도에서 기득권 지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교수의 연구 업적이 일류이며, 그것을 계속 지킬 수 있는가? 학부 학생 또는 대학원생의 학업 성취도가 일류이며, 계속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시설이나 재정 상태 등을 포함한 교육 여건이 일류이며, 이를 계속 지킬 수 있는가? 등을 통한 일류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류 대학은 전국의 학생들을 오직 하나의 잣대로 재서 얻은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 중에서 상위에 있는 학생들만 쏙쏙 뽑을 수 있는 기득권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서울대에는 수능 성적 상위인 자들이 가장 많다. 그 다음에 연세대나 고려대 등에 많다. 게다가 이러한 관행은 잘 바뀌지 않는다. 국가가 제안하곤 하는 새 제도가 정착되는 것만 적당히 방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9개 등급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이제는 거꾸로 등급에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몽니를 놓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대학인들까지 제 몫을 챙기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현실태(現實態)의 우열에 주목하지 않고 젊은이의 가능태(可能態)를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일류 대학을 이 사회는 기대한다.
대학입시 경쟁이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세계의 모든 선진국은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교육의 역할이 컸고 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적이다. 다만 대학입시 경쟁이 요란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성숙된 사회냐, 아니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대학입시 경쟁 없는 나라는 후진국 일부 사람들이 마치 선진국들은 입시경쟁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선진국들에서 입시 경쟁이 더 심하다.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지원자의 합격률이 10%대에 머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도 전체 대학 진학자가 고등학교 졸업자의 50%를 넘지 않을 정도다. 중국도 명문대학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고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대학입학통일고사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은 지대하며 6월에 치르는 이 시험시기에는 전국의 도관과 사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기도 인파가 쇄도한다.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대학입시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유럽도 대학입시가 치열한 것은 여타의 국가들과 다름이 없다. 유럽 국가들은 고등학교 진학단계에서 대학으로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에 대학입시의 경쟁률은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보다 낮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대학문이 크게 열려있는 프랑스는 대학들과 소수의 엘리트 교육을 전담하는 ‘그랑제꼴(Grandes Ecoles)’이 이원화되어 있어서 마치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독일은 고등학교 진학단계에서 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와 대학진학을 위주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의 진학하는 것을 엄격히 분리하여 적용하기 때문에 대학 경쟁이 크지 않게 보일 뿐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대학 진학률이 1960년대 5%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지만 여전히 50% 미만에 머무르고 있을 정도로 소수의 엘리트가 대학을 진학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경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입시 경쟁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며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대학입학 전형요소를 두고 정부와 대학들이 대립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대학들의 입장은 학교별로 수준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에서 얻은 성적을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의 의도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대학의 입시에까지 국가가 간섭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을 해치는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가 대학입시에 내신반영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위주로 흘러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등학교가 평가하는 내신비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있는 이른바 일류고등학교에서는 내신우수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고 농어촌이나 낙후지역의 내신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입시제도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대입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대입제도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은 가깝게는 학생과 학부모, 대학, 정부를 대표하는 교육부, 대학졸업자를 채용하는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전체가 될 수 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대학교육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이에 비해서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유치할수록 자신들의 명성이 올라가고 동시에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한다. 한편 기업은 인적자원들이 기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특성을 대학교육을 통해서 기르기를 원한다. 기업이 직접 기르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업의 요구에 맞는 특성을 많이 갖추기를 바라고 교육부는 국가의 경쟁력을 갖춘 인적자원 개발은 물론이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국민들을 교육을 통해서 기르려고 한다. 이와 같이 대학교육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수용해야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이나 대입제도에는 항상 긴장과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전인적인 인격을 가진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는 목표는 생산성 향상을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바람과는 충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가가 대학교육을 통해서 얻으려는 것과 개인이 대학교육을 받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대학교육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은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우수한 인적자원개발이 국가의 목표라면 대학의 목표, 학생의 목표가 일치하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는 크게 감소한다. 갈등의 출발은 대입제도를 사이에 두고 이해당사자 간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이 중에서 어떤 갈등들은 구조적인 문제로서 해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워서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대학입시 경쟁 자체를 없애려는 노력,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노력이나 정책은 구조적인 문제들로서 정부의 정책과 단기적인 노력으로 해결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해결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을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은 생산자들의 경쟁과 소비자들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산자는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언제나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은 시장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대학입시 경쟁도 시장의 경쟁과 원리는 같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은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쌓아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한편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고 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든지 교육비가 싸야한다. 이와 같이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기르는 능력은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목적 달성에도 기여한다. 예를 들어 외국어 구사 능력이 입시전형으로 들어가면 학생들은 외국어 구사능력을 신장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학과 국가는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셈이 될 것이다. 잘못된 수단과 목적이 갈등 야기해 대학입시 경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되고 동시에 대학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선별도구가 된다. 그러나 대학입학시험은 한정된 입학정원을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쟁은 당사자에게는 힘이 들겠지만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경쟁이다. 그동안 대학입시 경쟁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 경쟁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경쟁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거나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 되지 못했다. 대학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 여태까지 해온 노력 중의 하나가 대학의 정원을 늘리거나 대학 설립을 자유롭게 하여 대학의 문호를 넓히는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대학입시 경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대학입시 경쟁의 본질은 대학의 입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학을 통하여 좋은 일자리를 갖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학입학 정원을 늘려서 대학을 쉽게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자리 얻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대학졸업자의 기대감을 높여서 일자리를 위한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학입시 경쟁 과정에서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을 여러 가지 시도하였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 대학입학시험 문제를 쉽게 내고 내신을 강화한다는 정책을 펴는데 일견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수단과 목적이 잘못된 것이다. 경쟁은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지속되는 한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에 이기기위해서라면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비용을 지불하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 약화시키는 평등 정책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이른바 ‘3불 정책’이 존재한다. 기여입학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그리고 대학별 본고사 금지의 3불 정책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학생들이 대학입학에서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흔히 교육의 수월성을 포기하고 평등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통하여 입시경쟁이 없어지고 학교의 서열화가 없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교육당국의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을 따름이다. 수능시험 성적의 비중을 높이든 낮추든, 본고사를 보든 보지 않든, 내신의 비중을 높이든 낮추든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나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의 결과는 항상 불평등하다. 다만 그 경쟁을 대학입학시험에서 하느냐 아니면 취직시험에서 하느냐하는 시기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더구나 고등교육은 본래의 목적이 수월성임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단계인 대학교육에서 평등을 찾으려는 것은 세계화의 시대적인 상황과도 맞지 않다. 세계화에 따른 국가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교육에서 경쟁을 빼겠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이 정부에서나 시도할 만한 무모한 발상이다. 고등교육을 평등기조로 운영하려는 정부의 발상이 잘못된 것이고 또 평등을 달성하려는 정책수단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대학입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이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가 하는 안쓰러운 느낌도 있다. 그러나 교육이 평등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평등이 유지될 수는 없다. 정말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조세제도를 통해서 소득의 평등을 추진해야지 능력과 적성이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대학의 수시 1학기 접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도 일선 고교의 내신 반영률이 확정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등 대학은 교육부가 요구하는 반영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수시 1학기 대입전형에서는 내신만으로 합격의 당락이 거의 좌우되기 때문에 일선 고교에서는 내신 비중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고, 대학 당국에서는 내신만으로 선발한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경험한 터라 내신 반영으로만 선발하는 학생을 줄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학 담당교사들의 혼란 가중돼 대학 당국은 학생선발권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 지 뚜렷한 발표도 없이 언론에 흘려보냄으로써 진학을 담당하는 현장교사들의 업무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1등급에서 4등급까지 간격을 미미한 차이로 설정함으로써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특수고등학교나 도시 중심지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대학 측의 의도가 깔려 있는 듯하다. 이로 인해서 시골 고교생들의 내신 등급은 상대적으로 무의미하게 되어 버리고, 수능에서도 대도시 같은 등급의 학생들과의 경주에서 시골 학생들은 유리한 환경에 처해 있지 않다. 그러기에 농어촌 전형이 생겨난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 학생 선발에 내신 반영률을 높이지 않으려는 것은 이런 시골의 학생선발 특혜를 줄이고 도시 변두리에서 농어촌 전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성적 등급을 대도시의 학생들의 등급과 같이 인정하지 않고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대학 본연의 연구력을 높이려는 의도는 인정한다고 해도 대학 당국도 대학 자체에서 수학 능력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반영도 높여도 부작용 염려돼 대학 당국에서는 학생의 능력을 고교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내신의 반영률을 낮추려는 의도를 들어내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 추세를 보면, 방과 후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열성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학업에 대한 성취도가 높아지려고 하면 학생들의 바른 생활태도부터 갖춰져야 할 것이지만, 고교현장에는 학생지도를 교내 상주 경찰에 맡기고 있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의 손을 떠난 학생지도는 학생들을 자유방임의 천국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인지 현장교사들의 반론을 듣고 싶을 정도다. 학생들의 내신 반영도가 높아질수록 교실현장의 질서는 높아지고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태도는 높아질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박 겉핥기’식의 공부가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고, 학원은 학생들의 중간고사 대비, 기말고사 대비 하면서 상술에 열을 올릴 것이다. 그로 인해 학원 강사들이 학교교사와의 결탁해 학교 홈페이지에 시험문제를 빼내는 등의 일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학원은 시험지를 복사해 시험지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평가하여 학생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학교에 대한 평가절하를 하게 되는 등 시험지 공개로 인한 불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이다. 현재 대학에서 요구하는 내신반영률 평가절하는 고교 교육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런 차원에서 교육부는 교사초빙제와 초빙교장제를 병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장초빙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교장의 잔임을 채워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다는 따가운 여론을 불식시키는 방안이 없이는 초빙교장제는 무의미할 것으로 본다. 그러기에 초빙교장제를 취하는 학교에서는 교장을 초빙하는 데 조건을 내세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임기 동안 주어진 조건을 잘 수행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했는가를 1년마다 평가해 내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고교생의 대학수학능력 키워야 그렇다면 내신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전국학력평가 시험을 중간고사 아니면 기말고사에 적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국학력평가를 인문계 고교 1, 2학년생은 1년에 5번, 3학년은 6번 정도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날 학생들이 시험에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지 못하다. 아니면 말고 하는 형식을 취하는 자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 제도가 무언가 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국가의 세금으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려는 의도가 유명무실해져 버린다면 그 제도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수시 1학기 대입 전형을 치루는 학생에게는 대입적성검사를 받는 방안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2010년도부터 수시 1학기 대입 전형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시 1학기 대입 전형은 유지하면서 보완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수시 1학기를 통해 합격이 남아 있는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여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여건은 무엇보다도 교사의 수를 확보하고 교실의 수를 보충하고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될 때 가능하다. 셋째,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학교마다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교육부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교등급제가 인정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각 고교 내신 성적을 일률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대학 측의 견해인 것 같다. 일부 사립대학 측에서 내놓은 1등급에서 4등급까지 같은 등급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천차만별인 내신 등급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은 어렵고, 그래도 각 학교의 우수한 학생이라고 한다면 4등급까지는 같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는 수준별로 반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혼합성을 띤 반구성에서 교사의 교수 방법을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기에 어떤 반은 수업 분위기를 방임형으로 이끌어 나갈 때가 있고, 어떤 반은 민주형으로 이끌어 나갈 때도 있다. 현장교사들의 이 같은 어려움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평가 문항의 선정에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만들어 평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항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야 한다고 하니, 현장교사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닌 경우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중학교에서 적성검사를 충분히 하여 이과로 가야 할 학생과 문과로 가야할 학생을 분명히 해 주었을 때 고교에서는 학생들의 지도에 그나마 어려움을 덜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고교 인문계에서는 도저히 수학 능력을 인정할 수 없는 학생의 상태인데도 부모님의 극성에 의해서 또는 실업계 기피 현상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인문계 고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없게 되고, 수업시간에도 집중을 할 수 없어 옆 학생들과 소란을 피우거나 아니면 수업시간에 핸드폰으로 몰래 게임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등 교사와 학생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나타나곤 한다. 넷째, 교교등급제와 내신반영률 문제, 지역할당제와 선발된 학생의 대학수학능력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도 궁극적으로 대학에 선발된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 부족에서 야기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류 대학의 문턱에도 갈 수 없었던 고교에서 당당히 합격이라는 명함을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시골 학교의 이미지가 높아지고 새로운 희망을 줘 우수한 시골 학생이 타 시·도에 전출을 가지 않는 이유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좋은 결과를 외형상 도출해서 좋았지만, 대학 측의 입장에서는 고등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대학의 본래 목적은 국가 목적에 맞는 다양한 인력을 배출하여 다방면에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집단에 속하는 개개인은 집단에 맞는 수준을 갖춰야 하고 강의도 그 수준에 맞게 진행돼야 한다. 고교 신입생 선발부터 신중해야 혼란스러움 속에서 그것을 바로 잡기위해서는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지역할당제 신뢰도를 높이려고 한다면, 농어촌 전형지역 확대를 강화하고 실업계 특별전형의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것이 고교현장에서 수월성 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 수월성 교육이 학교현장에서 진행되려면 방과 후 학교의 수준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마나 소수의 학생을 지도하기에 필요한 지도비용을 충당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학부모 부담으로 진행하려고 하니 민원이 야기되고, 학교차원에서 하려고 하니 소수 학급인 고교에서는 인원을 채우기에 어려워 수월성 교육이 일반 학생들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을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고교현장에서 보는 고교내신제와 지역할당제의 만족도에는 뚜렷한 대안이 있다기보다는 고교내신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고교 신입생 선발에 있어 적성검사를 강화하여 인문계 고등학생으로서의 수학능력 정도와 적성을 평가하는 방안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또 현재 인문계 고교에서 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해소하기 위해 고교 신입생 선발 원서접수도 인문계와 실업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 인문계는 실업계보다는 그래도 학업에 대한 집착이 드높아야만 되는데,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기 위해 붙잡아 두어 오히려 타 학생에게까지 학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고교 신입생 선발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고교내신제 등급에 신뢰성을 드높이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생활 주변에 우스개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 사회가 먹고 살만 하니까 생겨난 소통의 여유 징후라고나 할까. 사석에서라도 능동적 발신자가 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생리를 반영한 것이라고나 할까. 소통의 여유를 가지는 사회는 토론을 풍성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사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너나없이 재미있는 이야기 한두 개쯤은 챙겨 가지고 다니면서, 고만고만한 친교의 자리에서 적절하게 활용한다. 이런 현상을 불러오게 된 원인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이런 현상의 결과로 보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 공간에는 각종 우스개 이야기들이 허다하게 떠돌아다닌다. 학자들은 ‘새로운 구비문학의 시대’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우스운 이야기도 자꾸 들으면 면역이 생기는 모양이다. 어지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웃으려고 들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에 소통의 건강성이 있기도 하다. 우스운 이야기에도 여러 층위가 있어서 질박한 웃음을 불러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웃음도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종류의 우스개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의 내용 자체는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터무니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무언가 공감의 마당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으로는 소통의 매개거리들이 많아지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열린사회’의 한 양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일전 어느 자리에서 한 친구가 모임의 분위기도 살릴 겸, 우스개 이야기 하나를 꺼내었다. 요즘 나돌아 다니는 우스개 이야기의 전형이다. 이야기의 요지는 이러하다. 어떤 사나이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더란다. 사나이와 의사가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의사 선생님, 침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군가가 침대 밑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면 누군가가 침대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거 참 미칠 지경입니다!” “2년 동안 매주 세 번씩 나한테 와서 치료받아야겠군요.” “치료비는 얼만데요?” “한 번 올 때마다 5만원이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간 사나이는 그 후 병원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6개월 후 의사는 그 사나이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쳤다. “왜 병원에 다시 오지를 않았죠?” “한 번에 5만원씩 들여가면서 어떻게 갑니까? 우리 동네 목공소 아저씨가 단돈 만원에 고쳐준 걸요.” “아니, 어떻게 고쳐주었다는 말이요?” “간단하던데요. 침대 다리를 없애버리라더군요.”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웃었다. 과장된 황당함이 웃음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고, 정신적 고통을 물리적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생각을 좀 깊게 해 보자면,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잘난 체하는 모습에 한방을 먹이는 듯한 풍자가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그렇게 느껴도 그만,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이야기를 지어내자니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굳이 의미를 규정하거나 해석을 통일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웃자고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 중에 의사 친구 한 사람이 정색을 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야기가 근거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우스개 이야기라도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라야지, 엉터리없다는 것이었다. 침대 위와 침대 밑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의식을 치유하는 데 그리 많은 치료비가 든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환자의 증세가 침대 다리 자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냐고 다소 흥분하여 따지고 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리고는 기어이 이런 말 한 마디를 내뱉으며 말문을 닫았다. “비싼 밥 먹고 쓸데없는 소리 하고 다니지 말아라.”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상대가 불쑥 화를 내면 그것처럼 민망한 것도 없다. 모든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하여 시시비비를 굳이 가리기로 친다면, 이 이야기는 결함투성이의 이야기이다. 처음 이야기를 한 쪽에서 민망하기는 하지만 사태를 수습하려고 들었다. ‘어디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고 했느냐.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 아니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말도 못하느냐.’ 이런 식으로 화를 낸 친구에게 이해를 구하였다. 그랬더니 화를 낸 친구는 누그러지기는커녕 더 날카로워졌다. ‘말이 그렇다는 거라고? 말도 못하느냐고?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해야 될 말이 따로 있지, 그 따위로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달리 방도가 없다. 이야기를 꺼낸 쪽에서 거두절미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 네 마음을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다. 물론 그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회복되기 어렵다. 머쓱해지는 분위기, 어딘가 불편하고 답답한 소통 단절의 씁쓸한 분위기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쉽사리 사과하지 않는다. 기왕에 분위기는 망가지게 된 것. 오히려 역공을 퍼붓는다. 여기에는 물론 상대가 너그럽게 들어주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 깔려 있는 것인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역공에 나서는 것이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속아지가 밴댕이 속 같이 좁아 터져 가지고서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들이대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서해 바다에 가서 밴댕이하고나 놀아라.’ 이렇듯 거침없이 야유성 공세를 취한다. 이쯤 되면 싸움은 점입가경에 드는 것이고, 양쪽 다 잘한 놈도 없고 못한 놈도 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형세를 연출하게 된다. 말이란 엄격하고 정확하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이 말의 전부는 아니다. 그 엄격과 정확에 집착할수록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소통의 본질을 놓쳐 가면서까지 부스러기 말의 정확성에 매몰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말이 말 그 자체로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영원한 꿈일지도 모른다. 말이란 기껏해야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기분과 사람의 뜻과 사람의 사는 모습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불충분하게 드러내는 도구이다. 사람들 사이를 원활하게 하는 말이라면 그것이 곧 사람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 말이다. 좋은 소통은 ‘뜻·마음’들 사이에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도 못해 보나.’ 이 말은 실없이 해 본 말을 상대가 무어라 이의를 달 때, 슬그머니 변명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현실을 초극하려는 인간의 열정과 상상력이 매몰찬 현실과 늘 맞서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열정과 상상력은 언어를 통하여 비로소 소통된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우의(寓意)로서 살아나 인간의 지혜를 밝혀 나아가게 한다. 젊은 날 내 존재와 영혼 모두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냈던 절절한 연애편지의 언어들은 어떠했는가. ‘하늘에서 별을 따다 그대에게 드리리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그대에게 드리리다. 나와 결혼해 주면 평생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도록 하리다’등등. 이런 약속의 언어들이야말로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의 영역에 속하는 언어들이다. 이렇게 받은 사랑의 메시지들을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공증받아 두고, 훗날 약속 이행을 왜 않느냐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하는 것은 알면서도 즐겁고 감격스럽게 그것을 받아 준 것이다. 일제 억압과 수난의 현실을 살며, 광복의 그 날을 절절한 마음으로 소망하던 그 열정과 해방의 상상력을 표출한 시 가운데 우리는 심훈의 그 날이 오면을 익히 알고 있다. 시인은 광복에 대한 열정어린 감격을 특유의 시적 상상력으로 보여 준다.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하겠다고 했던가.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겠다고 한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으니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겠는가고 말한다. 그 뿐인가. 그날이 오면 드는 칼로 자기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겠다고 말한다. 심훈 선생은 아깝게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만약 선생께서 광복을 보셨다면, 과연 종로 인경을 울리려다 두개골이 깨어지고, 칼로 살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치고 다녔을까. 이런 질문이야말로 우문이다. 숨어 있는 열정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사실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과 말의 작용을 크게 보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우문이다. 그러고 보니 문학이야말로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의 방식으로 인간의 숨은 열정과 상상력을 드러내며, 말의 감동적 효용을 실현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현재의 사실 세계를 넘어서려는 ‘열정과 상상력의 말’을 창공 높이 자유롭게 쏘아 올리려 한다. 인간에게 말이란 그러한 것이다. 그걸 두고 ‘비싼 밥 먹고 헛소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의 본질 기능 하나를 거세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인간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전국 16개 광역시ㆍ도의회에 청소년의 인권, 공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오후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9월 23일 시행되는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에는 ‘학교 수업과 학생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시ㆍ도 조례가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학원 교습 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한국일보 인터넷판 2007-08-30 19:18 ) 그동안 정부와 교육부에서는 사교육 경감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여러가지 정책도 내놓았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사교육경감을 위한 여러가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방과후 학교 발전방안도 사교육경감책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학원의 심야교습은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밤10시로 학원교습시간을 조정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시 11시로 연장하기도 했었다. 이번 국가청소년위원회의 권고는 최소한의 청소년 인권을 보호하고 공교육을 활성화시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두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사교육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학원숙제를 하는가 하면, 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학원갈 걱정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청소당번이면서도 다른친구에게 청소를 부탁하거나 그냥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도 있다. 학원시간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느것이 주인지 학생들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눈치이다. 전국 16개 광역시ㆍ도의회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의호소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자녀를 두고있는 모든 학부모들과 일선학교 교사들이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중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6-7교시의 수업을 받는다. 방과후에 오후 5시반에서 6시에 시작된 학원교습이 밤 10-11시에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학생들이 이런데, 고등학생의 경우는 어떨지 쉽게 짐작이 간다. 그 다음날도 같은 과정이 계속된다. 최소한 쉴틈을 주어야 한다. 무조건 시간만 많이 갖는다고 실력이 부쩍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을만큼 회복시키는 일이다.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될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학부모들도 무조건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집 아이들이 학원에 가기 때문에 우리아이도 보낸다는 식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최소한 학원에 1-2개월이라도 보내지 말고 실력이 향상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진다면 학원교습시간은 자연스럽게 밤10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볼때, 이번의 국가청소년위원회의 호소를 결코 쉽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다시한번 전국 16개 광역시ㆍ도의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