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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5월 26일 오후 4시경 히타카츠항을 출항한 비틀호가 5시 20분경 부산항에 도착했다. 달맞이언덕의 야간 풍경과 해운대모래축제를 보기 위해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어둠으로 물든 세상을 인공불빛들이 밝힌다. 아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달맞이길로 향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가에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주변의 야경이 아름답다. 그동안 여러 번 들렀던 곳이지만 야간 풍경은 처음이라 새롭게 다가온다. 달맞이길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와우산(높이 109.3m) 중턱의 고갯길로 ‘달맞이고개, 문탠로드’라고도 부른다. 도로변에는 젊은 사람들이 찾는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영화촬영 장소도 몇 곳 있다. 고갯길 꼭대기 달맞이동산에 해월정이 있고, 달맞이길의 아름다운 월출은 대한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달빛꽃잠길, 달빛가온길, 달빛바투길, 달빛함께길, 달빛만남길 등 한적한 오솔길을 밤에도 산책할 수 있도록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하늘에 달이 없는 날이었지만 아내와 솔 향을 맡고 운치를 느끼며 추억 쌓기를 했다. 날씨가 흐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숙소 앞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해운대모래축제장을 둘러봤다. 해운대모래축제는 2005년 APEC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시작된 모래를 소재로 하는 친환경 테마축제다. 백사장을 캔버스 삼아 풀어놓은 모래조각품들이 어울림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고, 어른과 아이가 소통하고, 꿈과 희망을 키우고, 추억과 낭만을 즐기게 한다. 달맞이길은 벚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선 해안도로가 8km에 이르고, 굽잇길이 15번 나온다하여 15곡도로 불릴 만큼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전날 밤에 걸은 길을 차로 넘어 전망대와 해월정에 들르며 청사포로 갔다. 미포, 청사포, 구덕포가 해운대의 삼포다. 청사포는 달맞이길 너머의 바다마을로 터널을 뚫기 전에는 해운대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수령 300여년의 망부송, 해변철길, 아름다운 일출, 갯바위 낚시, 질 좋은 미역이 유명하다. 멋지게 생긴 용비늘 와송나무에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 마을에 모두 부러워할 만큼 금슬이 좋은 정씨 부부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는데 바다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소나무 두 그루를 심고 나무에 올라가 수년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송이 되었고, 부인을 가엽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남편을 만나게 해 청사포가 되었단다. 방파제 끝 등대까지 나가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육지방향을 바라보면 해안선이 길게 뻗어 있고 그림 같은 집들이 언덕위에서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어 유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운치가 느껴진다. 송정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운데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이나 연인들의 피서지로 좋다. 해운대와 송정을 연결하는 도로와 송정터널이 개통되고 관광객도 많아졌다. 작은 포구마을(구덕포)에서 죽도공원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고 해안을 따라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횟집들이 많다. 송정해수욕장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죽도공원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그늘에서 편히 쉬기에 좋다. 이곳 바닷가 바위 위의 팔각정자 송일정은 일몰이 아름다운 장소로 유명하다.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나 광안리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이 간다. 기장해안로에서 연화리 방향 해안으로 들어서면 등대길이 시작되고 서암마을 앞바다에서 개성이 넘치는 이색등대들을 만난다. 연화리를 1구는 서암, 2구는 신암으로 구분하는데 서암마을에서 바다방향을 바라보면 4개의 등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의 오른쪽과 왼쪽에 흰색의 젖병등대와 빨간색의 차전놀이등대, 멀리 대변항의 출입문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등대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는 월드컵등대까지 바다위에 등대박물관을 만들었다. 등대에도 각각의 사연이 담겨있다. 뱃머리를 닮은 차전놀이등대는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닭의 벼슬처럼 보여 닭벼슬등대로도 불린다. 젖병등대는 당시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부산시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방파제를 따라가면 젖병등대를 축소한 사랑의 편지함이 있다. '젖병등대, 부산의 미래를 밝히다.' 젖병등대의 동판에 있는 문구처럼 부산의 미래를 밝힐 144명 영유아의 손과 발을 하나하나 양각한 타일이 이색적이다.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대변항은 해마다 5월초에 멸치축제를 여는 항구다. 미역도 이곳 기장의 자랑거리다. 해안을 따라 멸치회와 장어구이를 파는 횟집들이 즐비하고 멸치를 말리거나 크기별로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연화리와 대변리는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웃이다. 옛 이름이 용암인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하나로 천혜의 조건을 가진 어항이다.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들이 참 많다. 연화리 2구 신암선박출입항신고소 앞에 있는 섬이 대변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죽도다. 올해 완공된 너비 2미터, 길이 65미터의 연죽교가 대변항과 죽도를 연결한다. 다리위에서 바라보면 대변항과 뒤편의 봉대산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5월에 들어서며 말경에는 아내와 오붓하게 남쪽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을 앞두고 우연히 해양성기후라 궂은 날이 많은 대마도가 우기에 이틀간 맑다는 것을 알았다. 늘 그렇듯 여행은 날씨가 한몫한다. 그래서 날씨에 맞춰 25일은 대마도, 26일은 부산, 27일은 울산에서 숙박하는 3박 4일짜리 여행을 떠났다. 사방을 연결한 고속도로 덕분에 청주에서 부산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다. 여행이 생활의 일부분이 되며 몸도 장거리 운전을 즐긴다. 교통량이 적은 평일이라 청주상주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고속도로를 3시간여 달리면 부산역과 가까운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여객터미널의 1층은 주차장, 2층은 입국장, 3층은 출국장이다. 3층에서 출국수속을 하고 부산항과 부산항대교가 만든 바다풍경을 감상한다. 12시 30분이 되자 일본인 승무원들이 맞이한 비틀호가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대마도의 히타카츠를 향해 출항한다. 부산항대교 밑을 통과하면 북동쪽의 신선대와 남서쪽의 국제크루즈터미널을 지난다. 3년 전, 부산 여행길에 너무나도 날씨가 맑아 혹시나 하고 신선대에 올랐었다. 그때 수평선 위로 기다랗게 모습을 드러냈던 대마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날씨가 화창한 날 쾌속선 안에 갇혀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크루즈에서 자유를 누리며 일본을 여행했던 기억도 새롭다. 대마도는 일본에서 부르는 쓰시마(つしま)보다 대마도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섬으로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 거리에 위치해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가 훨씬 가깝다. 또한 조선통신사들이 외교를 펼치며 오가던 징검다리로 일제강점기의 한과 조선 마지막 황녀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대마도는 히타카츠항이 위치한 북쪽의 상대마도와 이즈하라항이 위치한 남쪽의 하대마도로 나뉜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남쪽과 대마도의 북쪽이 가까워 부산항에서 히타카츠는 1시간 10분, 이즈하라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마도 안에서는 버스투어가 이뤄져 부산항에서 대마도에 입출항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히타카츠항·이즈하라항 중 한곳에서 입출항하거나 히타카츠항·이즈하라항 중 한곳으로 입항해 다른 곳으로 출항할 수 있다. 내가 이용한 발해투어의 비틀호는 첫날 히타카츠항으로 입항해 다음날 다시 히타카츠항에서 출항했다. 대마도(對馬島)는 나가사키현에 딸린 섬으로 전체가 쓰시마시에 속한다. 쓰시마시청은 면적이 작지만 본토와 가까운 하대마도의 이즈하라에 있다. 당연히 상대마도의 히타카츠는 이즈하라보다 작은 도시이다. 그래서 일본의 화려한 도시를 상상하고 여행 온 사람들은 히타카츠항이나 여객선터미널의 모습에 실망한다. 어쩌면 작은 터미널의 입국심사장에서 양쪽 검지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으며 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히타카츠에서 이즈하라까지는 관광버스로 2시간 거리다. 거제도보다 작은 섬이지만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협소한 길이 이어지고, 상대마도의 위쪽에서 하대마도의 아래쪽까지 83㎞ 거리에 터널이 65개나 있는데다 가끔 일방통행 도로를 만나 이동시간이 길다. 그래도 멋진 바다풍경과 밀림을 지나듯 좌우로 늘어선 편백나무들이 여행을 즐겁게 하고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도 배운다. 차창 밖으로 흑전복과 적전복을 비롯하여 김·톳·가리비 양식장, 벌통과 버섯, 다랭이 논밭, 꾸미지 않은 집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마도는 국립공원에 준하는 명승지인 국정공원지역으로 길가에 휴게소도 없다. 하대마도의 이즈하라에 대마도의 전체인구 32000여명의 반에 해당하는 15000여명이 거주한다. 시계탑이 보이는 쓰시마시청 주변이 이곳에서는 가장 화려하다는 번화가로 가장 큰 건물인 교류문화센터와 가장 높은 건물인 대마호텔(6층)이 이곳에 있다. 우리의 역사 유적들도 길 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 금석성은 도주 자리를 노린 친척이 대마호텔 부근의 도주관아에 불을 지른 대마도판 왕자의 난 때 불을 뚫고 도망친 장소에 3번째 성을 쌓은 관아로 소실되었다. 금석성의 대문격인 야쿠라몬(樓門)은 1990년 복원한 대마도에서 일본색이 가장 짙은 건축물이다. 1811년 제12회 조선통신사 366명은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국서를 전달했다. 이때 조선통신사의 국서를 접수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로 건너온 ‘통신사 접반사’가 13군데 임시거처를 마련했던 곳에 세운 비가 조선통신사막부접우노지로 금석성 안에 있다. 덕혜옹주결혼봉축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는 결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덕혜옹주가 1925년 일본으로 끌려가 대마도주의 입양아 후예인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던 우리의 아픈 근대사라 가슴이 쓰리다. 한말 비운의 역사 희생양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결혼 후 조발성치매증 악화·이혼·딸의 자살 등 비극을 겪다 1962년 귀국해 낙선재에서 지내다 1989년 한과 애달픔이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십시일반으로 비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아랫단 위에 그 당시를 상징하듯 동전들이 놓여있다. 야쿠라몬 안쪽에 역관사와 상인들의 교역장소로서의 기능이 컸던 조선통신사의 영빈관이 지금의 체육관 자리에 있었다. 체육관을 건축할 때 땅에서 고려기와, 조선기와, 조선토기가 출토되었다. 쓰시마시청 옆 언덕 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마도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자료를 전시해 놓은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이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 덕혜옹주 남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내부촬영은 할 수 없다. 자료관 앞마당에 조선국통신사지비, 주환조난자위령탑, 성신지교린 표석, 고려문이 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하던 사절단으로 정사와 부사, 종사관 등 500여명의 대규모 인원이 한양에서 출발해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시모노세키 등을 거쳐 에도까지 가는 데 반년 이상 걸렸다. 통신사행렬의 일본 첫 기착지였던 대마도의 이즈하라에 1992년 조선국통신사지비를 세웠다.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은 아메노모리 호슈의 외교 정신으로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과 일본이 교류하였듯이 '진정으로 믿음을 갖고 이웃끼리 교류한다'는 뜻이다. 1990년 당시의 노태우대통령이 일본 궁중만찬에서 이 말을 인용했다. 주환조난자위령탑은 2차 세계대전 때 조난된 사람들을 기리는 위령탑이고 고려문은 대마도 번주의 관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신사의 입구에는 커다란 문으로 글자 '天'을 닮은 도리이(鳥居)가 있다. 신도에서는 새를 사람의 뜻을 신에게 전달해 주는 신의 사신이라고 믿어 새가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도리이(とりい)라고 부른다. 신사에서 만나는 도리이의 수나 재료가 다양하다. 이즈하라를 여행하며 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만난다. 시내의 하치만궁 신사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 사가들이 삼한을 정벌하였다는 신화속의 인물 신공황후를 모시는 신사다. 마리아 신사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 고니시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이 모셔진 신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대마도주 소요시토시와 그의 부하였던 유키나가의 딸 마리아를 정략결혼 시킨 슬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히치만궁신사에서 사무라이 거리로 가는 길에 종의지공지상을 만난다.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야욕이 발동한 임진왜란으로 단절되었다. 조선과의 교류는 대마도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 대마도주 종의지(宗義智)는 7년간의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과의 교역을 재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성씨를 가지고, 칼을 2자루씩 차고 다니며, 칼로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3대 특권을 주며 강한 것을 아름답다고 잘못 미화시킨 게 사무라이다. 막부시대의 사지키바라성 아랫마을 무가저택들이 있던 거리를 정비하여 사무라이 거리를 만들었다. 돌담이 아름다운 이곳의 나카라이 토슈이 기념관은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서 소년기를 보낸 토슈이의 생가다. 기념관은 자료전시와 지역주민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토슈이는 한국을 존경하던 도쿄 아사히신문의 기자로 춘향전을 최초로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한 문인이었다. 토슈이의 제자로 그를 연모했던 히구찌이치요는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며 소설가로 5000엔 지폐에 등장하는 훌륭한 여성이다. 이즈하라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수선사는 골목으로 들어서야 만난다. 수선사는 656년 비구니 법명이 건립한 백제의 사찰로 단식 끝에 대마도에서 순국한 최익현선생의 시신이 이틀 동안 안치되었던 곳이다. 수선사에 들어가면 오른쪽 맨 앞에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가 서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는 지부소(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당할 만큼 강직한 분으로 1906년 의병을 일으켰으나 동포끼리 싸울 수 없다며 의병을 해산하고 일군에게 잡혀 대마도에 감금당했다. 대마도 경비대장이 내가 주는 음식을 먹고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자 노구에도 감옥에서 단식으로 버티다가 3개월 만에 돌아가신 애국지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산새마을금고(이사장 김정한)는 6월 15일(수) 서산 서령고를 찾아 학생 여섯 명에게 각각 50만원씩 장학금 300만원을 기탁했다. 김정한 이사장님은 장학금을 전달하며 “서령고는 서산지역뿐만 아니라 충남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고로, 이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자 장학금을 기탁하게 됐다.”며 “아무쪼록 명문고에 걸맞는 실력과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동민 교장선생님께서는 “어려운 경제 환경 하에서도 미래의 인재양성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본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김정한 이사장님과 서산새마을금고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역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화답했다.
오래 전 전교조 선생님이 한국전쟁을 가르치는 수업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동영상에는 한국전쟁(6.25)은 미군이 유발시켜 발생했으며 미군 개입에 의한 우리 국민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가르쳐 잘못하면 북침 전쟁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줄까 염려되어 잊혀져가는 6.25에 대해 이 글을 쓴다. 먼저 6.25가 발생했을 당시 한국에는 미군이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대답은 우리 땅에 미군이 한명도 없었다. 미군이 없는 한국 땅에는 좌와 우로 나눠 혼란이 극에 달했다. 우리 땅에는 이전에 없던 38선이라는 경계선이 생겨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국경의식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남북분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북진통일까지 주장하여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2차 세계대전의 산물로 얻어진 주권은 자주성을 침해받으며 남북을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주권 선택 문제도 모스크바 삼상회담, 미소공동위원회 등 대립각만 세워 정치적 혼란과 군사적이 충돌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주권 문제는 남과 북이 갈린 채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여 별개의 정부를 세우는 형국이 되었다. 유엔군이 주둔한 남한 땅은 미군정 하에 1948년 3월 31일 이전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며, 이를 위해 유엔임시위원단이 선거 및 정부수립을 감독하고, 통일정부가 수립되면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마련했으나 중국대륙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의 쇠퇴와 공산화 가속 등 예상하지 못한 사태 야기로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주한미군 철수로 귀착되었다. 당시 미국은 중국 내전으로 국민당 정부(장개석)를 지원했지만 공산당(모택동)에게 몰락의 길을 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빌미를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적이 전범국가 일본과 독일에서 전쟁을 함께 수행했던 소련과 중국이 잠재적 적국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미국과 정치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스탈린과 모택동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동북아시아 군사적 영향력 확대와 힘의 균형 유지를 위해 오키나와 미군 주둔을 결정하고 극동지역 방어라인을 구성하였는데 당시 국무장관 이름을 딴 애치슨라인이다. 애치슨라인은 한반도를 포함시키지 않은 동해 동쪽으로 설정했다. 그것은 한반도가 미국의 잠재적 적극 중국과 소련 턱밑에 위치하여 충돌 위험이 높으며 한반도 충돌 시 핵무기 사용 등 세계대전까지 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한국)는 충돌위험의 완충지대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대비하여 감군과 국방예산의 감축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오키나와에 미군주둔을 결정했다. 1947년 10월 미 육군부는 우리 땅에 미군철수를 염두에 두고 맥아더와 하지에게 한국군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하지는 그 달 남한에 사령부와 지원부대로 구성된 6개의 사단을 편성하고, 그 무기와 장비는 1년간 미군에 의해서 지원되고 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맥아더는 한국에 국방군을 설치하는 것은 유엔 총회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는 연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4부조정위원회 실무단의 검토로 넘겨져 사실상 육군부와 공군 관련기관 사이를 선회하며 미국의 정치·군사 지도자들 간에 남한의 국방군 건설과 관련하여 논의만 계속하는 동안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의 창설을 전격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년 4월 미 국무부는 하지 중장에게 동년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도록 한국 측과 협정 체결을 지시했다. 같은 해 우리 정부 수립을 앞두고 5만 명 수준으로 경비대 병력을 증원하고, 미군 철수를 결정하고 무기와 장비는 이양시킨다는 조선경비대 증강계획을 추진했다. 이렇게 하여 주한미군은 1948년 9월 15일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1949년 6월 30일부로 철수를 완료했다. 미군이 한명도 없는 남한 땅에 무기와 장비 이양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북의 김일성에게 전쟁 발발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템플스테이, 절집에 드는 것은 바쁜 일상에 쫓기는 나를 내려놓고 나를 채우는 일이다. 적막을 깨는 예불소리, 풀벌레소리, 숲속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소리만으로도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힐링 그 자체다. 교총회원과 가족 27명은 지난 11~12일 경기 남양주 운악산 자락에 있는 봉선사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에 흠뻑 빠졌다. 앞선 8일 교총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업무협약을 맺고 템플스테이 활성화를 위해 매달 무료 체험을 진행하는데 따른 첫 일정이다. 저마다 부모님, 배우자, 자녀의 손을 잡고 참여한 이들은 달빛이 머문 자리, 휴월당에 여장을 풀고 모처럼 여유와 평온이 깃든 쉼을 누렸다. 1박2일 동안 이어진 참선, 새벽 예불과 백팔배, 숲길 걷기 명상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혜련 서울 상명사대부속여고 교사는 “30분의 짧은 참선이지만 살면서 단 5분도 멈춰본 적 없는 내 삶을 오직 호흡에 집중하며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둘째 날 새벽 4시, 설법당에서의 백팔배는 모든 이에게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무릎 꿇고 번뇌를 지우며 마음이 멈춘 곳에 진짜 마음이 말을 건네 왔다. 욕심이 눈을 흐려 보이지 않던 만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김태영 강원 철원여고 교사는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아이들과 더 사랑해주지 못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로 행복했던 지난 5년을 떠올리며 감사했다”며 “학교로 돌아가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는 다짐을 수없이 되새기며 백팔배를 마쳤다”고 말했다. 다음 참가자에게 공양할 연잎밥 만들기를 끝으로 속세로 돌아오는 길, 맛보기 템플스테이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표정이다. 길준선 경기 풍양초 교사는 “잊을 수 없는 행복과 자유로움을 느꼈다”며 “최소 2박3일 일정으로 다시 봉선사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템플스테이가 오랜 버킷리스트였다는 김유진 세종 고운유치원 교사는 “부처님 얼굴이 우리 아이들 얼굴이구나 깨달았다”며 “더 사랑하고 존중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교총 회원은 전국 29개 사찰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할 경우 본인과 동반 2인(총 3인)에 대해 20% 할인 혜택을 받는다. 또 올해 11월까지 매달 20명에게 무료 체험 기회도 이어간다. 7월 체험처는 강원 백담사다. 참가 신청은 교총 복지플러스 홈페이지(www.kftaplus.com)에서 하면 된다.
자신의 롤 모델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도록 노력하라! 학기 초. 아이들의 영어 어휘력 향상을 위해 좋은 방법을 고민하던 중 생각해낸 것이 일주일에 한 번 단어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내 결정에 아이들은 불만을 토로하였으나 영어 공부를 하는데 어휘력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난 뒤, 단어 시험을 시행하였다. 하루에 30개 이상의 단어를 제시하고 난 뒤, 매주 금요일에 100단어 시험을 보는 것으로 하였다. 그리고 합격점을 80점으로 정하고 합격한 아이들에겐 거기에 상응하는 상을 주기로 하였고 80점 미만인 아이들에겐 소량의 과제가 주어졌다. 아이들 대부분은 과제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부여된 단어를 열심히 외우는 것 같았다. 물론 시험 하루를 남겨놓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학급마다 이런 식으로 단어를 외우는 아이들 중 단어 시험을 통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매번 단어 시험을 볼 때마다 100점을 맞아 다른 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2학년 ○반 ○○○이었다. 순간, 그 아이의 단어 외우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수업에 앞서, 그 아이에게 단어 암기 KNOW HOW를 친구들에게 공개해 볼 것을 주문하였다. 내 요구에 ○○이는 자신의 공부 방법에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다며 말하기를 꺼렸다. “얘들아! ○○이의 공부 방법이 궁금하지 않니?” “네∼, 선생님.” 내 질문에 아이들은 환호하였고, 그 소리에 ○○이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자신만의 공부 비법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이의 공부 비법에 귀를 기울였고 중간 중간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의 공부 비법은 다름 아닌 자투리 시간의 활용이었다. 자투리 시간만 잘 활용하면 단어를 외우기 위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복도나 교정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이의 손에는 늘 단어장이 쥐어져 있었다. 매일 아침 아버지의 차로 등교하는 ○○이는 그 시간도 단어를 외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단어를 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학교생활 중 자투리 시간(쉬는 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 등)을 최대한 활용해 볼 것을 조언하였다. 특히 벼락치기는 공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가능한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실천할 것을 주문하였다. 지금까지 고3 담임을 역임하면서 느낀바, 상위 5%에 해당하는 대부분 우수한 학생들의 공부 비법이 자투리 시간의 최대 활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수업 시간 집중력은 내신 성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대학에서의 모든 전형이 학교생활을 충실한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이것을 실천해 온 것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롤 모델을 멀리서 찾으려고만 한다. 2학년 ○반의 ○○이야말로 아이들의 롤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는 내신 성적이 최상위권이면서 수업시간 집중력 또한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이다. 사실 가장 훌륭한 롤 모델은 항상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학급에는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 뛰어난 아이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우선 롤 모델이 친구라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쩌면 그 친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롤 모델을 통해서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져보라. 그러면 분명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이의 공부 비법 발표 이후, 2학년 ○반의 학생들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단어 시험을 보면 늘 합격자가 10명도 채 되지 않았던 합격자 수가 무려 20명 이상이 넘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 우연히 마주치는 아이들의 손에는 늘 단어장이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실상 2017 대선 출마를 시사해 관심이 집중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분열을 얘기했다.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부에서 여러 가지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것이 해외에 가끔 보도되는 걸 보면서 약간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다”고 대답한 것. 그런 분열을 통합할 지도자가 나와야 하고, 자신이 그 적임자임을 에둘러 밝힌 것이든 아니든 그런 보도를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은 잦아들었지만, 지난 2월 새 학기를 앞두고 극명하게 분열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친일인명사전’이 그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발간한 3권짜리 책으로 4389명의 친일행적을 기록해놓고 있다. 프랑스의 나치청산처럼 친일에 대해 혹독한 단죄를 하지 못한 나라이니 애오라지 역사적 의미에 빛나는 ‘친일인명사전’이라 할만하다. 서울시의회가 그런 역사적 의미를 먼저 깨달았다. 2014년 12월 ‘친일인명사전’을 각급 학교에 배포하기 위한 구매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 “독일에서 나치의 잘못을 가감없이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도 친일에 대해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서울시 관내 중⋅고교 583곳에 구입 예산을 내려보낸 것은, 그러나 2016년 2월이다. 교육시민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 “정치적⋅이념적으로 편향된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해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 1년 남짓 예산 집행이 미뤄진 것이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던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서울 디지텍고가 예산반납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후 예산 반납 학교는 30여 곳으로 늘어났다. 서울 사립 중⋅고교 교장회는 항의 성명을 내기까지 했다. 보수성향 학부모 단체는 지방재정 위반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서울시 교육감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교육부도 나섰다. ‘친일인명사전’ 일괄 구매요구가 학교의 자율적인 도서구입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확인에 나선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 학교의 선택권을 아예 없애려는 정부가 학교의 자율성 운운하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지만, 분명한 건 있다. 정부가 ‘친일인명사전’ 배포의 방해꾼이란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 4389명이 모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4389명 친일인사들의 이름과 행적을 1명씩 베껴쓰는 운동을 펼치기로 한 것. 8월 15일 광복절 이전 발간할 계획도 밝혔다. 한편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도 ‘친일인명사전’의 각급 학교 적극 비치를 제안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제안을 즉각 받아들여 전체 769개 교중 아직 없는 478개교의 ‘친일인명사전’ 구입 예산을 1차 추경에 편성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처럼 학부모 단체 등의 반발은 없었다. ‘친일인명사전’의 두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다. 내용은 한가지인데, 그걸 해석하는 시선이 그렇듯 분열적이란 사실이 진짜로 두렵다. 특히 사립학교 교장들의 예산반납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낯선 풍경이라 놀랍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정치적⋅이념적 편향성이란 주장이다. 그들 모두가 친일파 후손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부끄럽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거부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설사 친일파 후손들이라해도 그래선 안된다. 더 이상 과오의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줘선 안되기 때문이다.
여수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여수시 관문동에 위치한 여주여자중학교(교장 정태안)는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장을 비롯하여 모든 교직원들은 ‘꿈을 키우는 학생, 지혜를 넓히는 학생, 인간미가 넘치는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내일의 꿈을 만들어가는 교육활동,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수업, 공감과 배려가 있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국악오케스트라 활동은 40여명을 학교장 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하고 있으며, 그 실력이 대단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학교이다. 6월 13일 7교시 시간을 이용하여 442명 전교생을 대상으로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하였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은 모여 통일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라사랑과 통일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리를 함께하여 주셨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은 강의를 듣게 하고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속삮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학생들이 보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학생들의 듣는 모습은 양호하였다. 때때로 주목을 하지 않으면 주의 집중을 유도하여 다시 수업을 진행하는 기술도 필요하였다.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하여 현재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우리 선조들이 정신을 제대로 못차려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인 6.25를 겼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만 즐기면서 살고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다. 과거를 이해한 바탕에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발견하여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한때 국가라는 제방이 무너졌다. 일제의 침략을 받고 노예가 되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 흔적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직시하는 위안부 문제이다. 이제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여야 할 때이고 다시는 이 땅에 이같은 비극이 일어나기 않도록 똑똑한 국민이 되도록 정신 무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을 살리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휴전상태이지만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여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로 여자, 어린이들이 힘들게 된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학생들이 나라 사랑교육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생존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잠시 소화라도 시킬 요량으로 교정을 거닐었다. 날씨가 조금 무더웠지만 산책하는 데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다. 교정 여기저기 벤치에는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실 학교에 근무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교정 어느 곳 하나 내겐 정들지 않은 곳이 없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학교교정은 계절마다 다른 느낌과 운치를 가져다준다. 특히 6월, 교정 뒷산에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밤나무 꽃들이 만발하고 교정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수를 놓고 있다. 그런데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교정 여기저기에 뒹구는 쓰레기였다. 쓰레기 대부분은 무더워진 날씨 탓에 아이들이 먹고 버린 빙과류와 음료수 캔이었다. 아이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에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내 앞쪽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다가오는 한 여학생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심 청소 당번이 아니면 잘못한 일로 벌을 받는 중일 것으로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제일 먼저 눈에 뛴 것은 그 아이의 양손이었다. 그 아이의 양손은 더는 주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러니? 쉬면서 하렴.” “……” 그 아이는 내 말에 대답 대신 가벼운 묵례를 하면서 쓰레기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난 뒤, 교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목격했던 그 여학생이 몇 학년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에 대해 알 만한 선생님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다름 아닌 2학년 ○반의 ○○○였다. 매사 열심히 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특히 학교 행사가 끝난 뒤,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뒷정리를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罰)로 쓰레기를 줍고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이 빗나간 것이었다. 강원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지도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다. 평준화 원년 때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평과 불만이 많이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의 경우, 여전히 학교를 불신하고 요구사항 또한 많다. 비평준화 때의 경우, 아이들 대부분이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다녀서인지 그나마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러나 평준화가 시행되면서 아이들의 고교선택권이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원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모교에 대한 애정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겨진다. 더군다나 오로지 좋은 대학에 합격만 하면 그만이지 학교에 대한 애정이 안중에도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과정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생각인 듯싶다. 그나마 비평준화일 때는 졸업 후 많은 아이들이 학교가 그리워 다시 학교를 찾곤 하였으나 평준화 1세대가 졸업한 올해는 예전보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방문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비평준화 때, 소위 지역 명문고를 졸업한 일부 사람들은 평준화 시행 이후 졸업한 아이들과 차별을 둬야 한다며 동문회 또한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준화 이후, 고교 간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평준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일부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단언컨대 평준화 실시 이후, 아이들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열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도교육청의 학교 배정에 불만을 가진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의 경우, 학교의 모든 학사일정에 비협조적이고 꼬투리를 잡아내려고 한다. 어쩌면 이와 같은 행동이 아이들로부터 애교심을 더 멀리 느끼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요즘 학생들의 애교심이 예전보다 많이 퇴색해져 가는 것 같아 교사로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학생들이 여러 방법으로 애교심을 고취하고 있으나 과연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정성이 묻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다. 모교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서 모교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모교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이 학생이 보여준 행동이야말로 진정 모교를 사랑하는 작은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날씨가 좋다. 그리 덥지도 않다. 선생님의 출근길이 가벼울 것 같다. 낮에는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출발이 좋으니 하루의 결과도 좋을 것이다. “애들이 왜 이리 밝아요?” 어느 학부모님이 교장선생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래요,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은데 매일 봐서 그렀나 봐요” 학부모님은 기대 이상으로 학생들이 밝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교장선생님은 겸손한 말씀으로 하고, 한편으로는 더 밝고 맑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학부모님은 학교를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애들의 모습을 봤을 때 어두워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밝게 생활하는 것을 보니 기뻤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학교에 모든 것을 믿고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선생님들의 사랑의 수고가 넘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들이 밝게 생활하니까 학생들도 밝게 생활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밝으면 학생들은 밝게 되어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닮는다.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우면 학생들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얼굴이 밝을 수가 없다. 선생님의 인성지도를 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애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그대로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애들이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말을 안 해도 얼굴에 그대로 다 나타난다. 애들이 얼굴이 밝으면 집에 와도 가정생활이 활기차다. 마음이 깨끗하면 깨끗한 말이 나오고 마음이 쓰레기통이면 더러운 말이 나온다. 또 하나는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얼굴이 밝아지게 된다. 친구들 간에 좋은 말이 오가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면 얼굴이 밝아진다. 친구끼리 서로 다투고 미워하면 얼굴이 좋아질 리가 없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관계가 좋았기에 애들이 얼굴이 한결같이 밝게 보이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나 학생생활의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면 얼굴이 밝게 된다. 하는 것이 만족하게 되면 밝게 되고 하는 것이 만족이 없으면 불평이 자주 나오게 되고 원망하게 되며 얼굴에 다 나타나게 된다. 쉬는 시간에 각 교실을 돌면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한다거나 사각지대를 돌면서 학교규칙을 어기는 학생이 없게 한다거나 점심시간 각 교실이나 쉴 만한 공간에서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면 학생들의 얼굴은 밝아진다. 학생들의 고민이 있을 때 선생님과 상담의 시간을 갖게 되면 학생의 고민이 해결될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생기게 된다. 이런 학교는 좋은 학교다. 오래 머물고 싶은 학교다. 오고 싶은 학교다. 사랑이 넘치는 학교다.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의지력과 상상력이 동조했을 때 거기서 생성되는 ‘힘의 양’은 두 가지의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에 의해서 측정된다.” -에밀 쿠에 성공이라는 말을 쓰기가 안타까운 세상이 되었다. 금수저나 흙수저를 논하는 서글픈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성공이란 단어는 금수저에게나 해당되는 단어처럼 들리는 탓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은 옛말이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이야 어찌 됐던 성실한 노력과 열정만으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고 설득해야 하는 선생으로서, 내 제자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성공이란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성공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중시되는 객관적 성공이다. 그러나 주관적 성공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을지 모르지만 본인 자신에게는 성공적인 삶이라면 주관적 성공으로 스스로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체면을 중시해 온 우리의 풍토에서는 객관적 성공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든지 갑부가 되거나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스펙을 갖춘 표면적인 모습을 성공했다고 알아주는 문화였다. 이렇게 표면적인 성공, 보여 지는 모습을 중시해 온 까닭에 성공이라는 말이 풍기는 느낌은 지극히 역동적이다. 이제는 성공학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시대가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는 허접할지 모르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어제보다 더 노력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주관적 성공으로 손색이 없을 테니. 이 책도 객관적 성공학 계보를 충실히 따른 책이다. 이 책에서는 객관적 성공을 위해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성, 시간 활용의 기술, 독서의 중요성 등이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연구 사례를 들어 접근한 정보로 설득력이 강하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인문영재반 학생들에게도 소개하여 성취동기를 강화시켜 주고 싶은 대목이 많다. 초등학생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어서 이 책에 소개된 주요 내용을 소개해 보면, 셀프 스타터란?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을 ‘셀프 스타터 self-starter’라고 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유형으로서 전체의 2~3퍼센트를, 두 번째는 남이 시켜는 일만 하는 유형으로서 94퍼센트를, 마지막 세 번째는 시키는 일도 잘 안 하는 유형으로서 2~3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공한 사람l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가 첫 번째 유형, 즉 스스로 알아서 하는 셀프 스타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성공한 사람이 될 것인가, 실패한 사람이 될 것인가는 오직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적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데 마음을 쓰고, 재능 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 데 마음을 쓴다.” -쇼펜하우어 한 샐러리맨이 30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분석해 보았다. 30년은 날짜로 10,950일인데, 그 중에서 잠잔 시간이 3,505일, 불쾌했던 시간이 1,596일, 담배를 피운 시간이 1,140일, 텔레비전을 본 시간이 775일, 책을 읽은 시간이 722일, 차 타는 데 소모한 시간이 554일, 모임이나 파티에서 보낸 시간이 517일, 남을 흉본 시간이 441일, 술집에 간 시간이 266일, 도박으로 보낸 시간이 258일, 그리고 땅바닥을 기어 다닌 시간이 197일이었다고 한다. 30년 동안 잠자고, 화내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도박하고 흉보고, 텔레비전을 본 날들을 합치면 8,493일, 즉 23년을 비생산적으로 소모한 셈이다. (204쪽) 나는 지난 1년 365일, 즉 8,760시간을 어떻게 사용해 왔을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한 사람들이다. 긍정적인 자기 대화로 위대한 자신을 만들도록 노력한 사람들이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 중국 송나라 3대 황제였던 진종의 권학문에는 실린 내용이다. -부자로 살기 위해 좋은 논밭을 가지려고 하지 마라. 천 말들이 곡식이 책 속에 들어 있다. -편안하게 잘 살기 위해서 고대광실 높은 집을 짓지 마라. 황금기둥의 집이 책 속에 들어 있다 -대문 밖을 나서는데 따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갈대숲처럼 빽빽한 마차가 책 속에 들어 있다 -혼인을 하려는데 중매하는 자가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옥 같은 얼굴의 여인이 책 속에 들어 있다. -남자가 평생 욕심을 낼 것은 밝은 창문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진다’ 고 하지 않던가? (238쪽) 독서하는 사람의 유형을 보면, 첫째, 국수주의형 : 한국인이 쓴 책밖에는 읽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어느 특정 작가의 것만을 골라 읽는 사람이다. 순수하지만 폭이 좁다. 둘째, 유행추종형: 유행하는 시기물의 책만 골라서 읽는 사람이다. 셋째, 경소단박형 : 짧은 단행본만 읽으며, 전집은 물론 상하 두 권의 책도 읽은 일이 없는 사람이다. 내용도 비교적 가벼운 책들만 읽는다. 독서열은 왕성한데 중후함이 빠져있는 독서가다. 넷째, 광고현혹형 : 신문광고나 화려한 광고 문구에 혹해서 책을 사는 사람이다. 자칭 신간 전도사라고 자처하지만 고전은 한 권도 읽지 않는 유형이다. 다섯째, 지지부진형 : 읽는 속도가 소걸음처럼 느려서 진전이 없는 사람으로, 문장을 지나치게 되새겨 가며 읽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읽는 데 오래 걸린다. 여섯째, 액세서리형 : 책은 곧잘 사지만 결코 읽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겉치레로 책을 갖고 다니거나 진열해 놓는 소유자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원천이자 인간이 성숙하게 되는 지적 작업인 독서는 어떻게 해야만 바람직한 지 올바른 독서법으로 독서가가 되는 방법으로는, 첫째, 읽고 싶은 때에 집중하여 읽는다. 둘째, 장편소설이나 대작은 단숨에 독파한다. 셋째, 동서고금의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읽는다. 넷째, 빠른 속도로 개요를 파악하면서 읽는다. 다섯째, 전문서적이나 중요하누 부분은 되새겨 가며 읽는다. 선진국의 비즈니스맨은 수입의 5퍼센트 정도를 도서구입비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또 최소한 집값의 1퍼센트 정도는 투자된 집이라야 최소한의 문화주택이라고 한다. 셀프 토크로 성공 인생을 성공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셀프토크, 즉 ‘자기 대화’를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 문자,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자기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 인간행동 연구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의 77퍼센트가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학연구가들은 ‘모든 질병의 75퍼센트가 자기 유도에 의해서 기인한다’ 고 말한다. ‘기적을 창조하는 자기 대화’로 알려진 방법을 살펴보면, 침묵을 통한 자기 대화는 말없이 생각으로 하는 내면을 향하는 대화로, 자신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이나 주위에 있는 것에 대한 생각 모두가 포함된다. 내용은 부정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던 자신을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된다. 이 자기 대화는 옛것을 새것으로 바꾸는데 좋은 간단한 방법이다. 이외에도 언어를 통한 자기 대화, 대화를 통한 자기 대화, 테이프를 통한 자기 대화 등이 있다. 성공의 85퍼센트는 하트파워가 좌우 미국 카네기대학에서 5년 동안에 걸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느냐?’의 질문에 85퍼센트가 ‘인간관계를 잘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고, 15퍼센트가 ‘머리, 기술, 노력’이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하트파워를 지닌 사람이다. 하트파워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트파워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그 특성을 살려서 충분히 효과 있게 활용하는 힘이다. 하트파워의 제1요소는 덕성德性이다.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본성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행위의 습관화로 말미암아 생기는 상태’라고 했으며 공자孔子는 ‘진실과 신의를 지키고 정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덕을 높이는 길’이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서 타인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간관계의 능력인 ‘감성지능’도 하트파워다. 용장龍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가운데 덕장을 으뜸으로 친다. 어질고 너그러운 인격을 지닌 상관에게는 모든 사람이 자발적이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먼저 나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어서 요약하다 보니, 성취동기가 강화된 듯 하여 뿌듯하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중요 내용을 요약해 보는 것은 뇌과학에서도 추천하는 방법인데 생각보다 효과가 높다. 독서록을 남기는 습관은 되새김질하고 복기하는 것 같아서 책을 읽고 난 자신에게 상을 주는 느낌이라서 좋다. 한 권의 책이 나의 뇌세포 거름망에 걸러져서 진액으로 남아서 마음이 소진되는 순간 꺼내 마실 수 있는 상큼한 음료수가 되어 주리라 확신한다.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힘을 돋우는데 가장 값싸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책만한 게 없다. 힘들 때일수록 책 속으로 피신하자. 말없는 친구처럼 그대를 위로하리니!
지난해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한국관광 만족도가 전년에 비해 되레 하락하고, 개별여행자보다 단체관광객의 만족도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얼마 전 정부 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대응팀을 구성하고 여행사 거래자료를 뒤져 여행사는 물론이고, 쇼핑센터·식당 등의 업소를 직접 조사해 바가지 요금 등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강력한 제재를 병행해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오는 10월 중 외국인 관광객의 관광불편과 불만족 사항에 대한 신고를 휴대폰으로 실시간 전송하고 1주일 이내에 처리현황을 통보받을 수 있는 ‘불편신고통합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바가지 요금 피해가 확인되는 경우 한국 재방문시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 배상제도를 연내에 관광업계와 공동 운영해 유커의 재방문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행사가 싸구려 요금으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그 대신 그들의 국내 여행에서 바가지를 씌워 이익을 보겠다는 발상은 우리나라 국가 이미지 실추는 물론 장기적인 관광객 유치에 있어서도 악재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사와 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제재는 환영한다. 이번 기회에 불친절과 바가지 요금은 근절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관광 불편과 불만족을 휴대폰으로 신고하고 1주일 이내에 처리 결과를 통보하는 ‘불편신고통합시스템’ 운영도 기대가 된다. 다만 그 통보기한이 문제다. 1주일이면 관광객의 대부분이 우리나라를 떠난 상태다. 3일 이내에 통보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요즘 같은 초고속 정보화 사회에 있어 빠른 민원 처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어이가 없는 것 하나. 바가지 요금 피해 시 확인 될 경우, 재방문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 배상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바가지로 기분이 잡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한 관광객에게 ‘재방문하면 바가지 요금만큼 배상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광객을 우롱하는 처사다. 관광객을 두 번 울리는 결과다.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바가지 요금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외국인이 국내 여행 시 바가지 요금 피해를 보았을 경우, ‘불편신고통합시스템’에 신고를 하고 관계기관에서는 이를 즉시 조사하여 바가지로 확인되면 그들이 출국하기 전에 바가지 쓴 요금만큼 배상하는 제도를 운영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곁들여 바가지를 씌운 여행사나 업소 관계자의 사과까지 있으면 더욱 좋고 그것이 안 되면 시스템 운영기관 관계자나 관광업계에서 사과를 표하는 것이다. 배상 방법은 해당 관광객 통장에 온라인 입금이 좋을 것이다. 정부의 관광객 유치 전략, 탁상 행정에 머무르면 아니 된다. 상식적으로 보아서도 우리 국민과 관광객이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내국인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여행지 업소에서 바가지를 썼을 경우, 다음에 방문하면 그 만큼 배상해 준다면 그것이 통할까? 그 즉시 사과와 동시에 돈을 돌려주어도 재방문할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당 유성엽(56‧전북 정읍고창) 의원이 제20대 국회 전반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 선출됐다. 국회는 1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원장 선거를 통해 의원 93% 찬성으로 3선의 유 의원을 교문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유 신임 위원장은 선출 소감에서 산적한 현안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을 해소하고 대학의 자율을 확대하면서 구조조정을 잘 해결해야 하는 과제 등이 놓여있다”며 “여야 의원들과 함께 하나하나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유 의원은 27회 행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뒤, 전북 도지사 비서실장, 정읍시장 등을 거쳤다. 2008년 무소속으로 정읍시 국회의원에 당선돼 18대 국회에 입성했고 2012년 다시 무소속으로 정읍시에서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해 단수후보로 정읍시에서 3선에 성공했다. 한편 교문위는 당초 ‘교육’과 ‘문화’를 분리하는 대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복수로 설치해 운영한다. 교육 법안소위와 문화체육관광 법안소위로 나눠 효율성을 높이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다.
지난 6월 11일(토) 서산 서령고 학습지원센터에 신간도서 1002권이 새로 들어왔다. 지락동아리회원과 일부 2학년 인문반 학생들이 신간도서를 분류하고 색인 작업을 거쳐 서가에 비치했다. 시간이 날 때 도서관에 들러 새책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충주시교원총연합회(회장 문완식)는 6월 11일 신입회원환영 및 단합대회를 강원도 무릉계곡 및 묵호항 등지에서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번 행사에는 충주시 교총 회원 110여명이 참석해서 충주교총 단합대회 사상 가장 많은 회원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다. 회원들은 무릉계곡에서 쌍폭포까지 등반을 하면서 충주교총이 나아갈 방향과 교권 신장 및 교육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 수렴을 하였으며, 묵호항에서의 단합행사를 통해 회원들간의 끈끈한 정과 유대를 쌓게 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충주상고 김성수 부장교사는 충주교총 회원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여 행사가 뜻깊었으며, 특히 신규교사가 많이 참석해서 앞으로 충주교총의 발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 교장 선생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개그맨 A 씨, 음주운전 도주’, ‘가수 B 군, 음주운전 거짓 해명 파문’….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던 뉴스들이지요. 하지만 2026년에는 더 이상 ‘유명인 음주운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널리 퍼져서 아무리 술에 취해도 주소만 입력하고 뒷좌석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졸음운전 경고판이 사라지고 대리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진 것도 10년 뒤 세상의 새로운 풍경입니다. 줄서서 운전면허를 따던 모습이나 운전 못한다고 구박받던 일도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인터넷 쇼핑 문화도 확 달라졌습니다. 10년 전에는 ‘로켓 배송’이라는 말이 화제였는데, 지금은 ‘드론 배송’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드론은 30분이면 아무리 차가 밀리는 도심 한가운데라도 내가 주문한 상품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공원 잔디밭에 가족과 앉아 있으면 드론이 날아와 한 상 차려주는 시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창 성업중인 오토바이 퀵서비스는 드론 퀵서비스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산에 가면 드론이 산불을 감시하고, 사막이나 오지를 날아다니면서 고대 도시의 흔적이나 미확인 생물을 찾는 드론도 많아 질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훨씬 더 건강해져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을 포함해 몸에 달고 다니는 모든 것이 계속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이지요. 혈압이 높아지거나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면 시계나 안경, 목걸이 같은 웨어러블 바이오헬스 장비가 곧바로 경고 신호를 내어 알게 되면 병원의 의사와 연결이 되어 해결을 하게 됩니다. 속옷이 체지방을 체크해주고, 집 안의 미세먼지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감기에 걸릴 것 같으면 미리 휴식하라고 알려주는 장치도 나오는 등, 각종 바이오헬스 장비 덕분에 사람들은 예전보다 병원에 훨씬 덜 가게 되고, 건강보험료마저 내려가는 기현상이 벌어질 것 입니다. 또한, 10년 뒤 우리나라는 석유나 가스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주택 지붕이나 아파트 벽에 태양광 전지가 달려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집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바다에 해상 풍차를 건설한 덕분에 풍력 전기도 풍부해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 풍차도 등장하게 될 것 입니다. 해상 풍차나 공중 풍차는 소음 공해가 없어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데 제격이 되겠네요.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덕분에 세상은 더욱 편리해지겠지요. 한때 난수표보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대학 입시는 빅데이터 분석이 보편화되면서 학생의 성적과 장단점, 진로 희망 등만 입력하면 자신에게 맞는 입학 전략을 전문가보다 정확하게 뽑아주는 시대가 올 것 입니다. 나머지는 부모, 교사와 상의하며 진로를 결정하면 될 것 입니다. 한때 강남을 휩쓸었던 고액 입학 컨설팅 전문가는 설 자리를 잃고,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이용한 소비 행태 분석이 정확해지면서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업종으로 창업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빅데이터가 정확하게 알려주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사물인터넷은 디즈니랜드 같은 대형 놀이공원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관람객은 현재 가장 줄이 짧은 놀이기구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도 모니터에서 바로 볼 수 있어서 음식을 낭비하거나 찾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헤매는 일이 확 줄어드는 편리한 세상이 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지금은 신기술 또는 신산업으로 보이지만 10년 뒤에는 꽤 비슷한 모습으로 현실에 나타날 것 입니다. 어떤 모습은 이르면 2~3년 뒤에도 우리 생활에 등장할 것이고요.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는 우리 삶과 경제, 직업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니 우리 교육이 무엇을 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할 것 입니다. 10년 뒤 눈앞에 펼쳐질 멋진 신세계를 기대하면서 오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기 바라면 이만 필을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6월 9일(목)부터 12일까지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개최된 제68회 충남도민체전 보디빌딩종목에서 서산 서령고(교장 김동민)선수단이 고등부 및 일반부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단은 6월 10일 13시 예산문화회관에서 실시된 75kg급 대회에서 3학년 박기철 군이 은메달을, 이설송 군이 4위(65kg이하)를 차지했다. 이어 6월 11일 13시에 실시된 대회에서는 2학년 오해성 군이 은메달(75kg이상)을, 최문석 군이 동메달(75kg이상)을 획득했다. 선수들은 그동안 몸을 만들기 위해 3일 동안 식사도 못하고 바나나와 식빵만 소량 섭취하며 배고픔을 이겨내 이 같은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흐리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흐리다. 오늘 아침에 "성폭행은 중대한 교권침해, 근본적 안전대책 마련해야" 기사를 읽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전남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국민적 공부를 사고 있는 가운데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목사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도서벽지에는 근무하는 여선생님은 언제나 이런 위험을 안고 근무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안전대책을 세우라, 하면 눈가림식으로 교육부가 내놓은 CCTV 확충, 비상벨 설치 등이라니 이러고는 제2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 못한다. 나름대로 도서벽지나 오지에 근무하는 선생님에 대한 인사대책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줘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도서벽지를 가지 않으면 승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많은 여선생님들이 가정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 도서벽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다. 왜 도서벽지를 가야만 승진이 되나? 이런 제도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도서벽지나 오지에 요즘은 지원하는 선생님이 없어 신규 여교사를 보낸다. 이는 더 위험한 인사조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승진에 대한 인사대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교원지위법에 교육감 의무가 명시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전남도교육청이 교육 중 발생한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 발생 2주가 지나서야 교육부에 보고하는 등 늑장 대처한 것과 관련해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의 보완'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법은 교권침해 발생 시 학교장이 보호조치를 한 후 공·사립은 교육감, 국립은 교육부 장관에 보고하도록 돼있지만 보고 받은 상급기관의 의무는 빠져있다. 교총은 교육감의 보고 의무도 명시해 신속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감은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즉각 교육부에 보고하는 체제가 갖추어져야 교육부에서도 발빠른 대책을 강구할 수 있지 않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예사로 들으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제2, 3의 소를 잃지 않는다. 후회만 하고 한탄만 하고 책임만 전가하고 임시방편의 대책만 내세우면 또 이런 유사한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대책을 기대해 본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미래를 보는 비전, 판단력, 성실성, 긍정적 마인드도 필요하며 협동심과 강인한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결국은 '사람'을 지향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리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최고의 리더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나누고, 맡은 일을 수행할 때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네트워크 안에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도록 사람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리더들은 이런 것들을 오로지 혼자서만 간직한다. 자신의 지식이나 지위, 혹은 인간관계가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준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한마디로 인간의 관계이다. 이끌려는 리더와 따르기를 선택한 팔로워들 간의 관계이다. 한 사람과의 관계이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이든 리더십은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팔로워들 스스로 말이다. 학교조직을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의 교육리더십이다. 교직원들이 교육리더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자신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 일하고 교직원들을 잘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교육리더가 아끼고 존중하는 교직원들이 성공하는 삶을 넘어 교직에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은 리더의 가장 큰 즐거움이며 동시에 중대한 책무이다. 최고의 교육리더는 자신의 성공보다는 학생이나 교직원들의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리더십 역량은 언제나 개인이나 조직의 성공 한계를 결정한다. 리더십이 강하면 조직의 성공의 한계는 높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계는 낮다. 그 때문에 학교조직이 어려움에 봉착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십을 찾게 된다. 새로운 교육리더에 의해 새로운 학교혁신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훌륭한 교육리더는 교직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다. 반면에 리더라는 자격을 갖고 있더라도 그렇지 못한 리더들도 많다. 이 두 리더의 차이는 리더십이다. 그래서 교육리더의 리더십 역량에 따라서 교직원의 교직의 보람과 성공이 결정되기도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재산이 없어지고 사랑스런 가족을 잃은 것이다. 이산가족도 많았다. KBS가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 전쟁으로 죽고 상처받고 정신적으로 피해받은 군인들에게는 부모와 아내, 자식, 조카, 삼촌 등 많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친구들까지 포함한다면 전쟁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친구들도 6,25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들도 남의 나라 전쟁터에 와서 전사함으로부모를 잃었고 형제를 모른 채 살기도 했다. 이런 전쟁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에는 6·25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이다.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고, 그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 돼 있던 유엔군 전몰 장병들의 유해가 차례로 이송돼 안장됐다. 이후 일부 유해는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됐고,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 36명을 포함해 11개국 2300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유엔은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국제연합군을 파병했다. 이는 유엔군의 이름으로 세계 분쟁지역에 파병한 유일한 사례다. 1955년 11월 한국은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한국 간에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관리·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 간의 협정’이 체결됐고 지금의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 :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레오 드메이씨는 캐나다인 전몰장병 앙드레 레짐발드(Andre A. Regimbald)의 아들이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그는 2006년 친모를 만나 전몰장병인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듬해 아버지가 안장된 부산으로 건너와 아버지 곁에서 남은 삶을 보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뒤에야임신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후 레오 드메이씨는 입양되어 자랐고, 수십 년 뒤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한 전몰장병이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다행히도 아버지를 알고 계신 생존해 있는 참전 군인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존재, 한국전 참전용사로서의 희생은 그로 하여금 어떤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있게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우들은 그들이 해야 마땅한 일들을 하셨어요. 그들은 침략당한 한 나라를 구했고, 한국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죠. 그들 모두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2007년 드메이 씨는 뒤늦게 찾은 아버지의 묘 앞에서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가족들의 안부를 전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전 서울에서 6·25 참전국이 어딘지 묻는 길거리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얼마나 섭섭했을까 짐작이 간다. 심지어 그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한국과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싸운 참전국과 전사자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빚을 진 채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역사를 가르친다. 16개국에서 총 34만1000여명이 참전해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거나, 부상을 당했다. 부산에 있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는 그 상징이다. 영국(885명), 터키(462명), 캐나다(378명), 호주(281명), 네덜란드(117명), 프랑스(44명), 미국(36명), 뉴질랜드(34명), 남아프리카공화국(11명), 노르웨이(1명)의 전몰장병들이 이역만리 타향 땅에 묻혀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원조를 주는 나라’라는 표현보다도 ‘국제사회에 크게 진 빚을 갚기 시작한 나라’임을 고백하는 게 어떨까. 겸손함을 넘어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현대사를 온전하게 살피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