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요. 교육지원청을 두고 ‘교육 방해청’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게요.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교사는 교육지원청을 교사로서 지원을 받는 곳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교육지원청은 학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관, 교사가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외롭고 고립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보다도, 각종 보고와 회신 그리고 민원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행정과 실적 중심의 정책이 반복되면서 불필요한 업무량은 늘어나고,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이나 악의적인 공격에도, 심지어 교사가 학부모·학생에게 폭행당해도,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운 교실은 점점 배움의 터가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곳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교육청과 교육부는 교사 개인의 입장이 아닌 ‘교육 전체’를 조망해야 하는 곳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함께 듣고 반영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여유를 가지고
전문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이 가진 고유성을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현장 밖의 많은 사람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교사는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읊고 채점하는 존재가 아니다. 같은 과목 같은 차시여도 매년 달라지는 학생들에 따라 학습 활동을 바꾸고, 발문을 고민한다. 심지어 수업 중에도, 학생들의 표정이나 반응에 따라 미리 준비한 수업 흐름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 어떤 직업보다 고도의 창의성과 유연성 그리고 직관과 통찰이 요구되는 자리다. 교사 전문성 간과해선 안 돼 또 개별 교사에게는 고유한 교육철학이 있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100개의 교실에는 100가지의 교육과 수업이 있다. 교사마다 교육철학이 다르고 같은 교사도 그 해 만나는 새로운 학생들에게 배우고 매년 성장한다. 학생들은 어떤 해에는 음악을 활용한 수업 연구에 관심 있는 선생님을 만나 음악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느끼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지식 암기에 중점을 두는 선생님을 통해서는 많은 배경지식을 쌓기도 한다. 또 다음 해에는 놀이학습을 통해 친구들과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