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하는 만큼 복잡해지는 것이 세상살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또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각종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 중에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건 사고가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미담도 있다. 오늘 매스컴을 장식한 여러 가지 내용 중 내 눈길을 끈 교육에 관한 얘기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초등학생들의 올바르지 못한 네티켓 문화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이 학원 주변의 PC방 등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곳저곳의 사이트에 이상한 내용의 리플을 마구 달아 사이트 운영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지도를 하고 있지만 매스컴을 통해 많은 학부모님들이 알게 되는 것도 교육상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서울지역 초중고교의 절반 가량이 학교 운영비에서 멋대로 교장회비를 지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두 번째 얘기가 문제였다. 학교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경영자의 권위가 떨어진 만큼 학교나 교육을 부정하는 불신의 골이 깊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매스컴에 나온 내용은 이렇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예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아이들과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게 교원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퇴임한 후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문학적으로도 소재가 폭넓지 못합니다. 하지만 교원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 문학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원들 중에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교육을 하다보면 문학의 모든 장르를 두루 섭렵해야 합니다. 어쩌면 교육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육신문에서 주관했던 2006 교원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수상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하고 싶습니다. 한국교육신문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즉 수상 자체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수상자들이 소감에서 했던 ‘한국교육신문의 선택이 부끄럽지 않은 좋은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한교닷컴에서도 좋은 글 솜씨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랍니다. 한국교육신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상자들과 교류를 해야 합니다. 한교닷컴의 활성화 방안으로 수상자들이 글 솜씨를 마음껏 펼칠 마당을 마련해 주면 어떨까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하얀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창살 너머로 바라봐야만 하는 사람들이 같은 하늘아래서 살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바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죄 값을 치루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피해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 고생쯤은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잔인하게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이나 잔머리를 굴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경제사범들을 미워한다. 하지만 그 중 누구도 철창 안에서 사는 삶을 원하지 않았을 테고 어쩌다 순간적이거나 우발적으로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 특히 힘이 약하고 경제력이 없는 여자들의 경우가 더 그러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미평동에 여자 재소자들만 수용되어 있는 청주여자교도소가 있다. 그곳에 교도소에서 태어났거나 엄마 품이 필요한 아기들이 18개월이 될 때까지 재소자인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양육유아실이 두 곳 있단다. 사실 죄를 저질러 사회에 빚을 진 것은 엄마일 뿐 어린 생명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일반 재소자들의 거처와 다를 바 없지만 아기들을 위해 온돌마루가 깔려 있고 아기들에겐 쌀밥이 제공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장기수와 무기수들이 많은 교도소 내에서 이 아기들
어제 5학년 81명의 어린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동학년 학예회를 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예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재능과 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놀이마당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이들 스스로 상의해 결정하도록 했다. 당연히 연습기간도 짧았고 준비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무대를 열고 보니 예상과 달리 사물놀이, 연극, 댄스, 개그, 단소, 핸드벨, 노래, 즉석 수수께끼 등 종목도 다양했고 17팀이나 참여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좋아서 스스로 참여했기에 학예회 내내 출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모두 즐거워했다. 학예회를 통해 아이들의 새로운 면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 얌전했던 여자 아이의 화려한 율동을 보았고, 연극을 하며 능청스러울 만큼 대사를 잘 전달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재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진 어린이에게는 자신감을 더 키워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만의 잔치였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며 같이 동참했고 아이들은 오랫동안 기억될 추억거리를 만드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평소 지니고 있던 재능을 보여주면 되니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고, 연습
학기말이 되니 눈코 뜰 새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연말이라고 이러저런 모임에도 많이 참석해야 한다. 바쁘게 살다보면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거나 자주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홀할 수 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게 인생살이다. 사소한 일로 쉽게 틀어질 수 있는 게 우리네 삶이다. 또 남이 자기를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오해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고 알지 못하는데서 부풀어진다. 퇴임하신 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중 하나가 ‘불러만 주면 고맙지’라는 말이다. 누구든 현직을 떠나는 날부터 외로움과 싸우게 되어있다. 더구나 평생을 교직에 몸 바친 교직원들은 더 그렇다. 그게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이기도하다. 그렇다면 퇴임한 교직원들이나 원로교사로 근무하는 교원들을 누가 챙길 것인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연말, 그 많은 모임 중 한두 번은 퇴임한 선배 교직원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 거기까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관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정이 부족하거
지역 여건과 시대 흐름에 맞춰 충북도내 4개 학교의 교명이 변경된다. 충북도교육청이 신설 학교와 기존 학교 등 4개 공립학교의 변경계획안을 충북도교육위원회에 제출했다. 변경 안에 따르면 내년 9월 개교예정인 청원오창 과학산업단지내 목령초는 비봉초로,목령중은 각리중으로 교명이 확정했다.또 기존 영동농공고는 영동산업고로,제천 의림공고는 제천산업과학고로 교명을 바꾸기로 했다. 옛날 어른들의 이름에는 부르기 민망한 이름들도 많았다. 그만큼 신분을 중시하던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 이름이 달랐다. 이름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집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 때문에 놀림받는 아이들이 이슈화되며 개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호적법이 간소화되었다. 신청 취지와 신청 이유를 기재한 개명허가신청서와 신청이유를 뒷받침하는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등의 자료를 주소지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특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의 개명신청은 대부분 허가해 준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바꾼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교라는 공동체의 이름을 바꾸려면 어려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들이 사회변화에 맞춰 교명이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
혹 이런 학교는 없나요? 어쩔 수 없이 승진 대상자가 같은 학교에 근무해야했고, 근평이 나간 후 교직원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직원 분위기마저 살얼음판을 걷는 학교 말입니다. 현재 승진 체계로는 연속 2년 동안 만점 수를 받지 않으면 관리자가 될 수 없지요. 한 학교에서 한명만 만점 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요. 그러다보니 소규모 학교에 근무하는 승진 대상자들에게는 누가 만점 수를 받느냐가 최대 관심사이지요. 연말이면 들려오는 불협화음의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요. 승진 대상자로 물망에 오를 정도면 인품이 훌륭한 교원들입니다. 교직경력이 말하듯 누구보다도 아이들에게 봉사를 많이 한 교원들입니다. 당연히 직원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합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회든 삐걱거리기도 하고 불협화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학교라고 예외일수도 없는 일이고요. 하지만 그 이유가 아이들이나 일반인들이에게 존경받는 관리자가 되기 위한 일이라면 문제입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에 누구의 잘못이라고 집어서 탓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들은 당사자들에게만 중요한 것
연말을 맞아 그동안 느꼈던 것이나 원하는 것을 아이들이 솔직하게 써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있었던 일을 뒤돌아보게 하고, 교사인 나는 아이들의 글을 통해 올 한 해를 반성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학급운영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성적표를 받는 날이었다. 나온 결과를 보니 학급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 좋았다거나 아주 좋았다는 아이들이 많아 다행이었다. 부정적으로 답한 아이들도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는 게 좋지 않은 이유였다. 그나마 힘이 센 친구들이 학기 초보다는 잘 대해 준다니 다행이었다. 학급운영이나 수업시간의 이해도에 대한 물음에서는 괜찮다거나 이해가 잘된다, 수업시간 분위기에 대해서는 자유스럽다거나 적당하게 엄격하다, 수업시간의 표정에 대해서는 재미있거나 부드럽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중점을 두었던 생활지도에 대해서도 생활습관이 나쁜 어린이들을 잘 이끌어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예상 외의 답변도 있었다. 어떤 때 누구를 편애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답변에 남자들은 여자애들에게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만 선생님이 잘해 준다는 의견으로 대립되어 있었다. 또 한 남자아이에게만 잘해준다는 의견도
유머는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웃음을 일으키는 의사소통이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거나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말이면서도 동서고금을 넘나들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인터넷에서 ‘씁쓸한 유머-세기의 천재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이라는 글을 봤다. 출처가 없어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없지만 흥미만을 위해 아주 엉터리로 쓴 글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복지,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보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그냥 재미로 한번 읽어봤지만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과 맞물려 제목에서 암시하듯 조금은 입맛이 쓴 유머였다. 그래도 여러 가지 교육현안으로 골아픈 요즘 이 글 읽어보고 한번 웃어보자. 1. 뉴턴-강남에서 제일 잘나가는 학원 강사가 돼 있다. 종래의 과학이론을 뒤엎을만한 실력을 가졌으나 이를 시기한 학계로부터 건방진 놈, 선배를 무시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왕따를 당하자 머리 좋은 뉴턴은 골치 아프지 않고 돈 잘 버는 학원강사를 택한다. 2. 아인슈타인-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하고 있다. 수학과 물리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보니 영어와 내신성적이 나빠 대학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고졸학력으로 취직할
며칠 전, 전임지 직원들을 만났다. 시골의 작은 학교가 다 그렇듯 수시로 얼굴을 대하다보니 근무하는 동안 직원들간에 정이 넘쳤다. 교무실은 아이들이나 교직원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했고, 모이기만 하면 커피 향을 맡으며 아이들 사랑에 대해 얘기꽃을 피웠다. 모든 일들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니 일거리가 많아도 즐거웠다. 교직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니 교육적인 효과도 컸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했던 교육들이 가장 알찼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 전의 일이건만 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아이들과 교직원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이기도하다. 나는 그때 작고 적은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다. 학교 주변에 널려있는 야생화에서 작고 적은 것의 가치를 찾아내며 자연의 섭리를 배웠다. 작은 학교에서 적은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작고 적은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 교직원들이 하는 일도 신바람이 났었다. 적은 인원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마음을 모으니 어떤 일이라도 못할 게 없었다. 그래서 당시 직원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만나면 그냥 ‘하하 호호’ 저절로 즐거운 시간이 된다.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그때 같이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을 자랑한다. 음악을 사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편리해진 것 중 하나가 이메일 사용이다. 웃어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정성들여 편지를 쓰거나 우체부를 기다리느라 골목 어귀로 눈길을 보내던 풍경이 사라져 아쉽지만 주고받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없고,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메일의 사용은 문화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람들의 생활형태를 바꿨다. 사무 간소화는 물론 능률향상에도 기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많은 이메일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는 내용들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그런데 생활에 간편하고, 편리하고, 자주 이용되는 것일수록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 또 어떤 것이든 과하면 문제가 된다. 스팸 메일이나 폭탄 메일 등 인터넷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자나,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로그아웃을 한 채 다른 일을 하려면 뒤통수가 당긴다.’는 이메일 강박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이용해 가족신문을 만들게 했다. 일찍 끝냈다고 미리 결과물을 보내오거나 남녀간에 있었던 사소한 다툼까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는 이메일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메일을 받다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 번에 첫눈이 오기는 왔었다. 그런데 그날 내린 눈은 양도 적었고 날씨마저 포근해 내리자마자 물로 변해 길거리만 지저분하게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의 초입부터 세상을 하얗게 만든 첫눈을 기다렸다. 토요일 저녁부터 흩날리던 눈송이가 자정 무렵이 되면서 점점 굵어졌다. 초등학교 동창생 부부모임에 다녀오던 길이라 하얀 눈송이가 더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집에 도착해 몇 번을 들락거리며 베란다 밖을 내다봤지만 하얀 눈꽃세상을 그냥 집에서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피곤해 하는 아내에게 강요할 일도 아니었다. 혼자 꿀물을 넣은 보온병과 장갑, 스틱 등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겼다. 옆에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던 아내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주섬주섬 등산복을 찾아 입는다. 같이 준비물까지 챙기면서 첫눈을 맞이하려니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이른 새벽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사실 처음 집을 나설 때만해도 아내는 불만이 있었다. 아무리 첫눈이 좋다고 해도 야심한 밤에 뚱딴지 같이 낭만타령을 하며 집을 나서겠다는 남편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도 하얀 눈꽃 세상에 빠져들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가 자연에 동화되는 것이라고
연말이 가까워오면 학교 문집을 담당한 교사들이 바빠진다. 사실 책을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구나 각급 학교에서 1년간 교육한 학습 결과물을 모두 담아야 하니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연히 어느 반에서 학교 문집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조사한 것을 봤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읽어보는 학교 문집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밝히게 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바라는 소원을 해결해 주려는 게 교사의 의도였다. ‘컴퓨터에 게임 프로그램을 깔고 싶다거나 아버지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의외의 답변이 많았다. 어쩌면 아이들답지 않은 답변을 읽으며 요즘 아이들이 너무 어른스럽고 현실에 민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 부자 만들기, 부자 클럽, 부자가 되는 방법이나 요령 등을 알려주며 부자 열풍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래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불나비처럼 앞만 보고 달려들도록 만들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답변이 부자가 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하다.
청소년위원회가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 국제심포지엄’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사회 부적응 현상을 보일 위험이 높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의 수가 4만3천여 명에 달하고, 학업까지 포기한 고위험군 고교생도 5천6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단다. 조사 집단이나 조사방법에 따라 분석 결과가 다를 수 있기에 숫자에 큰 의미를 둘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학교도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는 원인이 치열한 입시와 좁은 취업문, 경쟁적인 사회분위기 때문이라니 아이들보다는 사회구조를 잘못 만들어 논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학자가 ‘6개월 이상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거부한 채 방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히키코모리가 일본 전체인구의 약 1%에 달하는 130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니 아직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더 희망적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은둔형 외톨이 일수록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으로만 존
미국에서 응답자의 약 70%가 20-30년 전에 비해 미국인들이 무례해졌으며, 특히 아이들의 무례함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이라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는데 이런 현상의 원인을 가정과 학교교육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또 대부분의 아동심리학자들은 예전에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올바른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성공만을 강조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교육자들도 사회적 예절교육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과보호 현상이 아이들의 버릇없는 행동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 지난해 전체 교사의 80% 정도가 학생과 부모의 반발로 인해 엄격한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단다. 왜 미국만 그렇겠는가?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종종 무례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미성숙 단계이니 어린이라면 누구나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예전이라고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요즘 아이들의 행동만 자꾸 문제 삼으며 다른 눈으로 보는 어른들이 많은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전 아이들의 행동은 의도적이었더라도 악의가 없었고, 남에게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