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최소한의 제재권마저 완전히 박탈돼 교실은 일탈 학생 중심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살벌한 정글이 됐다. 그래서 이제라도 교권 침해를 무겁게 보고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소는 예전에 다 도망갔는데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사전답사하는 꼴이다. 그래도 교권 보호를 지금이라도 생각한 것이 다행이기 때문에 거기서 간과하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위기에 빠진 수업 받을 권리 교사 수업이 몇몇 일탈 학생에 의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때 일차적 피해는 교실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수업과 생활지도를 거부하며 부정하고 방해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그 순간 교사가 필요 없다. 그러나 일탈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탈 학생으로 수업이 멈추고 훼손돼 수업 받을 권리가 사라져 버린다. 교사를 보호하자는 것도 교권을 세워달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동료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이 발생하면 교사는 그 학생을 제재하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제대로 된 수업이 될 리 없다. 교사도 사람인데 일탈 행동을 당하거나 보면서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런 상
올해 우리 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아이, 바로 탈북 학생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출생은 아니지만 북한 사람인 어머니가 중국으로 탈북하고 거기서 만난 조선족 아버지와 함께 낳은 아이라서 법적으로 탈북 학생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정민(가명)이는 남학생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다가 우리나라에 온 탈북민이었다. 외모는 한국인과 전혀 다른 점이 없었고 우리말도 잘했다. 단지 글자를 잘 쓰지 못했고 학업 성적이 많이 낮았다. 그 외에는 다른 학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쨌든 탈북 학생을 처음 만나 조금 긴장되었는데 교감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김 선생님, 학급에 탈북 학생이 하나 있지요? 그 학생이 탈북민인 걸 다른 학생들이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어요.” 그 말을 듣자 긴장이 더욱 커졌다. 마치 대단한 특수임무를 맡은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엄청난 비밀유지와 보안을 요하는 일이 하필이면 내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학생들은 늘 정민이를 자신과 똑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교우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