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후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결과들에 열광했다. 이에 그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유명인사가 되어 널리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만났다. 아인슈타인은 먼저 "당신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누구나 당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열광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에 채플린은 "아닙니다. 당신이야말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무도 당신의 이론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열광하니까요"라고 답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영국의 두 신사가 주고받았다는 대화가 있다. 한 신사가 "당신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어보셨나요"라고 물었다. 상대방은 문득 기분이 상했지만 신사다운 정중한 태도로 "예, 읽어보았죠"라고 답했다. 이에 질문을 했던 신사는 다시금 "그럼 혹시 열역학 제2법칙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상대방은 더욱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역시 신사다운 세련된 태도로 "아니오, 그런 것은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짐짓 노골적인 태도로 "누가 그 따위에 신경 쓰는가?"하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굳이 찾아본다면 다른 일화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 두 가지만으로도
현대 과학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로 블랙홀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블랙홀의 실존 여부는 아직 불명이다. 물론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이 그 존재를 믿고 있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굳이 수치화 한다면 99.9% 이상이 아닐까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00%라는 수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점에서 블랙홀은 실존 여부가 확증되지 않은 채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자연과학적 존재로 꼽힌다. 블랙홀 관념을 처음 떠올린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존 미첼로 1783년의 일이었다. 그는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을 기초로 태양보다 250배 이상의 무거운 별에서는 빛도 탈출하지 못해 '검은 별'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착상이었을 뿐 더 이상 진지한 과학적 연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뒤 상황이 급변했다. 이듬해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처음으로 풀어내어 블랙홀의 경계에 해당하는 '사건의 지평선'이란 개념을 내놓는 한편, 그 안에 물질의 밀도가 무한대로 되는 특이점이 형성됨을 보였다. 1939년 오펜하이머는 중성자별의 질량
격언은 인간 사회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지혜를 압축된 표현에 담아서 일깨워준다. 이에 따라 여러 문화는 고유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많은 격언을 갖고 있다. 속담·금언·잠언·경구 등도 기본적으로는 대략 비슷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격언을 들자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객관적인 답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교육 현장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최고의 격언은 아무래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이는 암기 및 문제풀이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하는 데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여러 지식들이 별 이유 없이 제시되기 쉬우며, 이로 인한 궁금증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 이런 저런 공부를 하면서 "도대체 이것들은 어디에 써먹나"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현실 세계와 직접 맞닿지 않고 추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학의 경우에 아주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이른바 자연수는 1, 2, 3 …을 가리키며 0이 빠진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책들은 아무 설명 없이 그저 자연수는 0이 아니라 1부터 시작한다고만 기술한
잘 알려진 이야기로 아주 오래된 고대의 이집트 비석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 있다. 이를 들을 때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과 똑 같은 현상이 수 천년 전부터 있어왔는지를 생각하면서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만일 이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재 우리의 사회는 어찌되었을까. '버릇없음'이라는 현상이 계속 누적된 결과 지금쯤 이 세상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통 버릇없는 사람들로 넘쳐나 혼란과 분규의 도가니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정말로 위 이야기가 옳을 경우 실제로는 인간 사회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기는커녕 오랜 옛날에 이미 끝장나버렸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는 오늘날에도 의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 문구에 부분적으로는 수긍하는 한편 이 말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 자체에도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문제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잘못'이란 점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대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좀 다르면 (차분히 비교
화학을 배울 때 가장 기초적인 개념 가르기의 문제로 '원자'와 '원소'의 구별이 있다. 어쩌면 너무 기초적이라 공통과학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직접 예를 들어보면 금방 이해된다. 물은 분자식이 H2O라는 데에서 보듯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원소로 말한다면 물은 수소와 산소라는 두 종류의 원소로 되어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원자는 각칭(各稱), 원소는 총칭(總稱)'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몇 가지인가 또는 몇 종류인가"라고 물을 때는 원소, 그리고 "몇 개인가"라고 물을 때는 원자로 대답해야 한다. 원자와 원소를 영어로는 각각 atom과 element로 쓴다. 한자로는 原子와 元素로 쓰는데, 이때 '원'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잘 새겨두어야 한다. 원소라는 말은 화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주 쓰인다. 대표적인 예로는 수학에서 '집합의 구성체'를 가리키는 데에 쓰는 것을 들 수 있다. 간단한 예로 '짝수의 집합'을 보면 2, 4, 6, 등이 그 원소들이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원소란 용어만 쓰일 뿐 원자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성체의 종류든 개수든 모두 원소로 답해야 한다. 수학의
'학문'이란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추측컨대 '체계성'이란 특성도 높은 순위에 들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누누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그저 책상 위에 있는 아무 책이나 손에 닿는 대로 집어들어 보면 곧 이해할 수 있다. 그 책들을 몇 페이지만 넘기면 '차례'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차례를 차분히 읽어보면 지은이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꾸미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가 하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차례로 대표되는 체계성은 교육 현장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공부의 '진도'는 기본적으로 이 차례에 따라 진행하며 각 진도 내에서 구체적 내용을 학습할 때도 전체적 체계가 잘 정립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나아간다. 그러나 체계성에 너무 집착할 때는 바람직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초래된다. 체계의 완성은 교육 및 공부의 목표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한번 구축된 체계는 일종의 고정된 틀로 작용, 예기치 못한 문제 상황이 요구하는 융통성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교사는 이런 체계를 책에서 학생에게 옮겨주는 '전달 기계', 학생들은 그 체계를 기계적으로 적용
중학 시절 수학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수는 신이 만들었고, 다른 수는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며('정수' 대신 '자연수'로 인용하는 곳도 많다),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라는 의문도 품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수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배경을 파헤쳐 보면 우리에게 해롭다고 할 편견이나 선입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여러 교재에는 적절한 설명 없이 그저 이 말만 실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오해와 의구심만 조장하고 있다. 이 말은 독일의 수학자 크로네커가 남겼다. 그의 전공분야는 정수론이었는데, 정수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학자적 양심을 넘어 광신에 가까웠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에는 이미 정수는 물론, 유리수, 무리수, 복소수에 이르는 다양한 수 체계가 널리 받아들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수를 조합해서 얻는 유리수까지만 인정했을 뿐 무리수의 이상의 존재는 부정했다. "무리수가 실재하지 않는 터에 가 초월수란 점을 증명한들 무슨 쓸모가 있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초월수는 무리수이되 'x에 관한 n차 방정식'의 근이 아닌 수를 말한다. 원주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