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시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거의 한달 정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우리 집과 멀지 않은 큰댁에서 사시다시피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명의 딸들이 잠든 방문을 여시며 어머니께서는 “할머니 돌아가셨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미리 준비해 두셨던 흰 상복을 안고 큰댁으로 가셨다. 나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40대 중반에 들어선 나에게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그립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보석이다.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보석을 갖게 해 주신 나의 할머니에게 새삼 감사를 드린다. 나의 할머니께서는 반촌에서 자라 마음만 좋으신 할아버지에게로 시집을 오셔서 평생 길쌈으로 집안을 꾸리시고 밭떼기를 늘리셨다. 한 동네 200여 미터 안에 할머니가 사시던 큰댁과 우리 집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니보다 활동적이었던 나는 학교를 파하면 집에는 가방만 던져놓고 큰댁으로 갔다. 큰집과 우리 집의 개념조차 없이 큰집을 내 집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후덕하고 순종적이시던 큰어머니와 할머니의 따뜻한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안다. 대지가 30
이성준 | 경기 용인 지석초 교사 올해도 작년에 이어 특별활동 부서 신청란에 영어연극부를 적어 냈다. 작년에 일곱 명을 데리고 연극반을 지도하면서 충실히 가르쳐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힘들지만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 연극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교차한 것이 그 이유이다. 연극은 늘 만족하게 끝나지 않지만 본 공연보다 준비 과정이 힘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로 걱정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아이들이나 지도교사는 형언키 어려운 값진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 처음 발령받아 영어교과 전담교사로서 큰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던 해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모 대학에서 개최했던 초등학생 영어연극대회에 우리 학교도 영어연극부를 급조해 참여하게 되었다. 4학년 학생 중에서 성적이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연극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겠다고 기대되는 아이들을 뽑는 것을 캐스팅 기준으로 삼았다. 대부분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상태라 학원에 안 다니는 학생이 많았다. 그러니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 남아서 연습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소문난 개구쟁이 우람이, 천사 같은 언니 수연이 와는 달리 고집불통 수진이, 꼼꼼하고 착한 희숙이 등등 연극부원이 확정되었다. 이제부터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인간과 유전자가 흡사한 침팬지 침팬지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개미굴에 넣고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여기에 개미가 까맣게 묻으면 꺼내 핥아먹는 영리한 동물이다. 인간처럼 집단을 이뤄 사냥하는 것은 물론, 사냥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줄 알고, 돌과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한다.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면 수백 단어의 수화도 할 줄 안다. 한국, 일본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002년 침팬지의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침팬지와 사람의 생명체 설계도를 열어보니 유전 정보를 기록한 DNA 염기서열 가운데 98.8%가 같았다. 침팬지와 인간의 염기서열 차이는 1.2%이다. 침팬지 다음으로는 고릴라, 오랑우탄이 인간과 가깝다. 고릴라는 사람과 DNA가 97% 같다. 최근에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너무 흡사해 사람과 같은 호모(Homo)속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35억 년 전을 24시간 전이라고 보면, 사람과 침팬지가 한 몸에서 갈라진 600만 년 전은 3분 전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동물의 행동과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침팬지를 거울삼아 인간의 본성을 알고자 노력해 왔다.
곽해선ㅣ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on.net) 일본에 발목 잡힌 한국의 무역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하는 상품 무역에서 단 한 해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해, 만년 적자국 신세다. ‘일본을 상대로 상품을 수출하고 받은 대금’에서 ‘일본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고 내 준 대금’을 빼면 그 결과가 대일 상품수지(무역수지)가 된다. 대일 상품수지는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항상 더 커서 해마다 적자를 보고, 매년 적자폭도 커지고 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액은 145억 달러. 1980년대에는 353억 달러, 1990년대에는 1001억 달러로 대략 10년에 3배씩 규모가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대일 무역적자는 2000년 114억 달러, 2001년 101억 달러, 2002년 145억 달러, 2003년 190억 달러, 2004년 245억 달러로 매년 연간 적자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해마다 적자를 크게 보면서 적자 누적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대한민국 수립 후 국교를 재개한 것이 1965년. 그때부터 2003년 말까지 38년간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가 무려 2070억 달러다. 달러 당 1000원으로 환산하면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