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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참나무 혹은 손기정참나무

한겨울 집을 나서자 갈색 단풍잎을 거의 온전히 달고 있는 가로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근래 가로수와 조경수로 각광받고 있는 대왕참나무다. 요즘 전국 어디서든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쪽 등 도심 곳곳에서 이 나무 무리를 만날 수 있고, 서울숲에는 대왕참나무숲이 따로 있다. 이 숲에서 책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가로수로 대왕참나무를 심어놓은 길도 적지 않다.

 


대왕참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도입나무로, ‘상굴·졸갈·신떡’ 등 우리나라 참나무들과 같은 참나무속(Quercus)이다. 그래서 늦가을 이 나무 아래에 작은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수형이 단정한데다 진한 붉은색 계열로 드는 단풍도 독특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그래서 가을이면 다시 보는 나무 중 하나다. 요즘 곳곳에 이 나무가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왕참나무 잎은 길쭉한 잎 가장자리가 여러 번 깊이 패어 들어가 마치 ‘임금 왕(王)’ 자 같다. 이 때문에 이 나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잎 뒷면에는 흰색 털이 있고 꽃은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아래로 늘어진 꽃줄기에 황록색으로 피지만, 꽃잎이 없어서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대왕참나무가 각광받는 이유 중에는 이 나무가 공해에 강하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도심에 심어도 잘 자라고, 나아가 도로변에 심어 자동차 매연이나 소음 등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이 나무를 심고 있다.


 

 

 

 

 

 

 

 

손기정참나무는 월계수가 아닌 대왕참나무
이 대왕참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기념공원에 있다. 이곳은 손기정 선수 모교인 양정고 자리인데,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히틀러에게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심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 나무를 월계수로 알고 있었지만, 자란 것을 보니 대왕참나무였다. 오랫동안 이 나무를 월계수로 안 것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월계관과 월계수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나무 옆에는 월계수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얼마 전 겨울에 손기정기념공원에 가보니 이 나무가 상당한 크기로 자라 있었다. 한쪽으로 살짝 기운 것은 원래 저 나무 옆에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기정 선수는 시상식 때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나오자 고개를 푹 숙이고 이 나무가 심어 있는 화분으로 일장기가 박힌 가슴을 가렸다고 한다. 인근 만리동광장(서울역 옆 서울로 7017 만리동쪽 끝) 일대에도 대왕참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역시 손기정기념공원 때문에 일부러 심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1936년 시상식 때 들고 있는 화분 속 묘목, 그리고 손기정기념관에 보관 중인 월계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왕참나무가 아니라 루브라참나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루브라참나무는 대왕참나무와 비슷하지만, 열매가 좀 더 길고 잎 결각이 덜 깊은 나무다. 그래서 독일이 루브라참나무로 월계관을 만들고, 묘목은 모양이 비슷한 대왕참나무로 잘못 준 것은 아닐까, 루브라참나무 묘목을 받았는데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같은 다양한 궁금증이 나오고 있다.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에서 묘목을 받은 것은 8월이었고, 40여일에 걸쳐 10월에 귀국했고, 이 묘목을 양정고 교정에 심은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고 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하는 얘기들이니 체육계 등에서 연구해 속 시원하게 밝혀주면 좋겠다.


이 나무의 잎 꼭짓점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핀오크(Pin Oak·바늘참나무)’라고 부른다. 이 참나무를 1990년 중반 조달청에 우리말 등재를 하면서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뜻으로 대왕참나무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박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책 <우리나무 이름 사전>에서 “대왕참나무가 이름에 특별히 대왕이란 접두어를 붙일 만큼 다른 참나무보다 뛰어난 나무는 아니다”고 썼다. 1990년대에야 이름을 등록한 나무치고는 빠른 시간에 국내에 대표적인 가로수·조경수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 나무와 손기정의 인연을 고려해 대왕참나무보다는 ‘손기정참나무’나 ‘손참나무’ 등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손기정참나무 또는 손참나무로 바꾸면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면서 이 나무도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무 이름에 사람 이름을 딴 나무가 이미 있다. 현사시나무는 수원사시나무와 은백양나무를 교잡시켜 만든 나무다. 이 나무를 만든 현신규 박사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한겨울에도 잎을 온전히 달고 있는 감태나무
대왕참나무를 얘기하면서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대왕참나무 잎이 겨우내 오래 달린다는 것이다. 이 나무가 복자기 등 다른 나무보다 살짝 늦게 단풍이 들지만 늦은 겨울까지도 잎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겨울에 대왕참나무 주변에는 낙엽이 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가로수라는 얘기가 있다. 대체로 참나무 종류들이 겨울에 잎을 오래 달고 있는 편이다. 숲에서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참나무 종류가 대부분인 것을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 겨우내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대왕참나무라면 숲에서 한겨울에도 잎을 온전히 달고 있는 나무가 감태나무다. 대왕참나무보다도 늦게까지, 늦으면 다른 나무들은 꽃이 피는 4월 초까지 잎을 달고 있다. 대왕참나무 잎은 겨우내 조금씩 떨어지지만, 감태나무는 겨우내 잎을 온전하게 달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감태나무는 왜 묵은잎을 매달고 겨울을 견디는 걸까. 감태나무 모성애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새순의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겨우내 묵은 잎으로 감싸고 견딘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조상이 상록수여서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떨켜가 잘 생기지 않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상록수 본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칼바람 속에서 단단히 잎을 매달고 있는 것이 어미 나무가 새끼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대왕참나무도 마찬가지다. 상술이 뛰어난 일본인들은 입시철에 감태나무 잎을 포장해 수험생들에게 주는 선물로 판다고 한다. 떨어지지 말고 꼭 합격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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