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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내 삶의 화양연화

 

앞산 뒷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작은 활화산처럼 번지는 꽃의 향연이 사월을 물들인다.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분분히 꽃비를 뿌리고, 연분홍 복사꽃은 새색시 얼굴처럼 담장 낮은 집 봄 마당을 훔친다.

 

사월의 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시기가 계절의 화양연화라 할 수 있겠다. 깊어가는 봄, 오늘도 봄날 하루는 저만치 걸음을 옮기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봄바람의 살랑거림을 볼 터치로 마주했던 며칠 전이었다. 같이 걷던 아내가 갑자기 당신의 삶에서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대답으로 제일 행복할 때가 당신과 연애할 때였지만 불안한 두근거림이 있었고 곰솥을 데우는 은은한 행복은 지금이라 했다.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꽃처럼 빛나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봄꽃의 향연을 보며 내 인생에 있어서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의문을 던진다. 삶에 있어 좋은 날들은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고 저녁 바다처럼 흘러간다. 덧없다 속절없다는 말처럼 머리카락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꺼풀에 내려앉아 잡아당긴다. 어느덧 유리창엔 먼지가 앉아 돋보기가 필요하고 사물을 살피려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어디를 가도 누구도 반겨주거나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과연 내 삶에 있어서 화양연화는 있기나 한 것인가?

 

지난날을 반추해 본다. 행복의 절정을 이루고 별이 반짝반짝 빛났던 시기도 있었을까?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열정의 20대와 설익은 자신감과 포기로 갈등이 함께 교차했던 30대는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40대를 뒤로, 세상사 모든 것에는 하늘의 뜻과 시기가 있음을 깨닫고 겸허함으로 앞을 보는 50대를 지나고 있다.

 

흔히 요즘을 100세 시대라 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삶의 여정 그 어디에도 봄날 같은 기억보다는 결핍과 아쉬움만으로 세월을 낚으며 그저 앞만 보고 겁 없이 무작정 달려온 아픈 기억만 있을 뿐이다.

 

사람마다 인생의 봄날은 다르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자기 인생의 화양연화일까? 우리 삶에 있어 화양연화는 자신이 서 있는 곳 지금의 행복이라고 해야 한다. 이 지금의 중요성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자신의 시집에서 언급한 '카르페 디엠'(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살자)과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은 평범한 일상적인 삶에 물들어 있다가도 죽음과 종말을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진지하고 소중해진다고 한다. 이 사실을 로마인들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알고 있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일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은 결합 되어 있는 것으로 지금이 중요함을 말한다. 이는 다르게 사람의 욕망과 집착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모든 희로애락을 지고 갈 수는 없다. 지난 2월 새로움으로 마음을 다잡자고 세간살이 정리를 했다. 유행에 뒤진 먼지 쌓인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미련 없이 버렸다. 왜 쌓아 놓을 줄 만 알았지 버릴 줄은 몰랐을까? 집 좁다고 불평 말고 정리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소용치 않은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슴에 있는 해묵은 상흔을 비우고 이해와 너그러움, 관용으로 채울 때 인생도 어느덧 성숙이란 봄날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우리는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 세월이 간다 늙어간다 하며 한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 때가 오고 또 새로운 계절이 자리하면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일처럼 익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삶의 단계를 거쳐오면서 일궈낸 것을 어떻게 한껏 지고 가느냐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재 된 욕망과 아쉬움, 버려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가 가장 큰 숙제다. 마음속 소용없는 것을 덜어내면 지금이 더 빛나고 소중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그리는 인생의 화양연화는 어떤 모습일까? 마치 날아가는 새처럼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지 않고,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는 나이 든 젊은 청년으로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계절상의 봄처럼 젊은 날의 화창함이 반드시 인생의 봄날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인생의 봄날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득했던 지난 순간을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을 소중하게 맞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도 그 순간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열정이 있다면 그게 삶의 화양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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