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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지난 시간에 대한 집착은 허망한 것이다. 또 한 해를 살아 냈다는 안도감과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자괴감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교차로에 섰다. 날마다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니 무주공산이다. 변명도 합리화도 아닌데 지나쳐 온,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자꾸만 걸음을 머뭇거리게 하고 시간의 뒷발에 차인다. 더구나 오상고절이라는 국화꽃도 된서리를 맞았는지 12월 아침에 상처받은 아이처럼 바짝 움츠려 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맘쯤이면 모두가 떠올리는 말이 유종의 미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 말은 뜻이 무색할 정도로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 만큼이나 마음속에 뎅그렁 하다. 매일 바쁘게 살아왔지만 원하는 것들은 크게 변한 것 없이 아직 그대로인 듯하다. 옛말에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실천하기가 어렵고,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끝내기가 어렵다”는 말이 실감 난다.

 

대개 우리의 일 년은 년 초 계획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이든 미완이든 간에 마무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 동안 머릿속에 빼곡하게 그려놓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걸어왔다. 그러나 하나둘 어느 계절, 어느 지점에서인가에서 결심은 흐려지고 놓쳐버린다. 알 수가 없으니 맺을 수가 없는 법, 어쩌면 이 또한 자기 삶인데 과한 반성은 욕심이 아닐까 한다.

 

삶이 흐르는 물처럼 순조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구속되거나 수동적이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에 동기부여를 하고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함이 얼마간의 끝을 마무리해 주는 쓰다듬음이다.

 

12월이 되자 태양의 고도는 점점 낮아진다. 그런 만큼 낮의 길이는 짧아지고 그림자는 길어진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허상이 아닌 실상임을 알고, 고마움과 감사함보다는 아집과 욕심으로 그림자를 더 길어지게 하지 않았는지 경계 해 볼 일이다.

 

여기 조금 더 자신을 추스를 이야기가 있다. 호두 농사를 짓는 농부가 일 년 동안만 자기 마음대로 날씨를 바꿀 수 있도록 신에게 간청해 허락을 받았다. 농부는 햇볕, 비, 바람, 천둥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나무 그늘에 낮잠만 자고 놀았다. 이윽고 추수할 때가 되어 풍년에 감격한 농부는 기쁨으로 큰 호두알을 깨트렸다. 그런데 호두는 모두 빈 껍데기였다. 왜 그랬을까? 신은 농부에게 고난이 없는 것에는 알맹이가 없고 폭풍과 시련, 가뭄의 고통이 있어야 껍데기 속 영혼이 여문다고 대답한다.

 

이 이야기를 되새기며 지금 내 삶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는지 매사를 되짚어 본다. 하루하루를 남의 입에 안 오르겠다는 얄팍한 처세술과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보신주의로 살지 않았는지를…. 삶은 유한하며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한 해를 지나오며 자신은 시간 앞에 얼마나 겸손했는지 고개를 들 수 있을까?

 

흔히 시간을 유수 같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언뜻 시간은 곁눈질도 없이 앞으로만 나간다는 외고집 뉘앙스도 풍긴다. 또한 우리는 세월을 쏜살같다고 표현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보다 훨씬 빠르다. 화살은 재우는 과정이 필요하나 시간은 준비가 필요치 않고, 떨어진 화살은 주울 수가 있어도 시간은 그럴 여지가 없다. 가끔 추억에 잠기는 일이 쏜 살을 줍는 것 같지만 그동안에도 시간은 여일하게 흐른다.

 

시간은 천금 같은 권력으로도 살수 가 없다. 부자라고 더 주거나 가난하다고 박절하게 덜어내지도 않는 두루두루 공평한 것이 시간의 속성이다. 단지 시간 속에 사는 것 자체가 싸움일 뿐이다. 1분 전만큼 먼 시간은 없으며, 1분을 허비한 사람은 반드시 1분 때문에 후회할 일이 생김을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12월 한 장 남은 달력이 펄럭인다. 그 뒤엔 빈 여백만 남는다. 반성과 겸손, 시간의 고마움을 아는 날들이었다면 조금은 위안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로 점철된 한 해는 가슴에 회한의 먼지만 일으키고 구멍 난 조롱박으로 퍼 올리는 물처럼 시간은 새고만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잘못으로 인해 기죽거나 책망하지 말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다시 나아가야 한다. 마치 열매를 달기 위해 아름답던 꽃을 버리는 나무처럼, 벽에 달린 달력도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지난 일들을 떨치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남은 한 장을 건건히 버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마음이 유달리 수수롭다. 반성문은 자주 쓸수록 좋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책보다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고 토닥이며 격려하는 응원이 더 필요하다. 올해 못다 이룬 꿈은 새해의 희망으로 남겨놓고 한 해를 정리하는 것도 좋은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빈한해진 마음, 초라한 눈빛 그곳에 깃들은 영혼이 파리할지라도 모든 이의 가슴에 불씨 하나 따스하게 지피며 12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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