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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당신의 때가 있다

시골 중학교에 학년을 마무리하는 작은 축제가 열렸습니다. 전시하는 도서관에 학생들이 자기 작품을 감상하느라 모였습니다. 시화와 미술 작품, 수업 시간에 만든 다양한 산출물이 가득합니다. 캘리그라피 반에서 쓴 엽서들이 줄에 매달려 있고 알 공예와 목공예 작품도 멋있습니다.  즐거운 이벤트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원하는 학생에게 주역의 괘를 뽑아 풀이해 주었습니다. 긴장한 얼굴로 음과 양으로 정한 동전의 면을 뽑아 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주역 64괘 중 하나를 찾아 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물론 좋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슬쩍 덕담을 곁들여 주니, 아이들의 얼굴에 꽃이 피어납니다.

 

하지만 금세 아이들은 달고나와 소떡소떡이 있는 옆 반으로 우르르 몰려가 버리고 개점 휴업이 된 저도 괘를 뽑아 보았습니다. 화수 미제(火水未濟). 괘사를 읽으니 未濟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괘는 형통하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을 즈음 그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바가 없다.)

 

공부가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짐짓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여우가 강을 건너지도 못하고 꼬리를 적셨다고 합니다. 아, 올해는 어렵겠구나. 하지만 화수 미제는 주역의 마지막 괘입니다. 미완성의 괘입니다. 어린 여우라는 말에 저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다시 삶의 시작점에 선 어린 여우의 마음으로 큰 강을 건너기 위해 저를 성장시키고 변화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문학 관련 작은 상을 받게 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강을 건너지 못하고 꼬리를 적신 우울한 어린 여우에게 주는 따뜻한 위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이런 것일 것입니다. 강 앞에서 건너지 못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는 절 위로해 주었습니다. “고생했구나. 널 응원해! 니가 있어 참 좋아!” 이런 몇 마디의 말이 절 다시 일어서게 하고 면역력 주사를 맞은 듯 힘이 나게 합니다.

 

제가 힘들 때 가끔 들여다보는 책이 있습니다.  블로그 ‘희희락락호호당’ 에서 자연운명학에 대한 글을 쓰는 김태규의 '당신의 때가 있다'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를 건너기 위한 자신의 운명, 즉 자신의 때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돋보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지 우연은 없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인생의 겨울을 지나야 봄이 오듯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야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합니다. 가을에서 봄으로 건너뛰는 일이 없는 것이 자연이듯,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화수 미제(火水未濟), 꼬리를 적신 강가의 어린 여우는 희망을 품고 다시 천천히 봄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강을 건널 수 있겠지요.

 

강마을은 겨울비로 촉촉합니다. 물은 고랑을 지나 어리디 어린 마늘이 심어진 밭으로 흘러갑니다. 가늘고 여린 마늘 싹들은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이하면 튼실하고 굵은 얼굴로 자라나 있을 것입니다.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당신의 때가 있다』, 김태규 지음, 2015, 더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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