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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이게 대학이냐?”

진리와 정의가 사망한 대학에 유감(有感)을 표하며…

근대 대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훔볼트는 “교수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라고 대학을 정의한 바 있다. 그는 또한 대학을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대학은 이제 지성의 폐허, 정신의 황무지, 정치의 볼모지가 된지 오래이며 대학 밖의 세상보다도 더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과거 김예슬의 ‘자퇴선언’과 주현우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이제는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도 정치의 공론장도 아닌 기업의 하청 업체이자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서글픈 현실로 변모했을까.

 

최근에는 대학을 둘러싼 입시비리 및 박사 학위 관련 연구 부정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조민 씨의 입시 부정과 윤석렬 전 검창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의 연구 부정 의혹이 그것이다. 그러나 진리 탐구와 정의의 표상인 대학의 위상이 날개가 없이 추락하는 것은 어느 한두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이 땅에 진정한 대학은 없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대학을 죽인 것은 이 땅의 권력이다. 정치 권력과 재벌 권력에 예속되어 눈치를 보는 작금의 대학을 보라.

 

최근 부산대는 조민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다. 2019년 9월 조국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입시 부정 혐의가 불거진 이후 2년 만이요, 1심 판결 후 8개월 만의 입학 취소 결정이다. 2심에서 그동안 입시비리의 의혹 7건이 모두 유죄로 판명된 것은 충격적이었다. 이는 1심 판결 전에 학교로부터 철퇴를 맞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나 정유라의 부정 입학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만약 부산대가 신속히 결정했다면 조민의 의사면허 취득과 인턴 합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는 조민의 의사 자격 취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전공의를 하는 해당 병원도 고민을 떠안게 됐다.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과 고려대의 부정입학은 무엇이 문제인가? 상아탑의 상징인 대학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부정 입학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차일피일 미루려다 교육부 장관의 한 마디에 겨우 부랴부랴 조사를 단행해 결국 입학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산대와 고려대는 서류 조작에 의한 부정입학에 대한 철저한 자체 조사를 먼저 실시해 위법행위와 입학부정의 판단을 내렸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가 여론에 밀려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1심 판결로 확인된 허위 문서는 한두 개가 아니고 발행 기관도 단국대·공주대·동양대·서울대·KIST·호텔까지 망라한다. 이는 곧 스스로 학문의 권위와 진리와 정의의 요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뿐이랴. 국민대의 김건희 박사 학위 논문 관련 민심 또한 학문의 권위 상실에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어려운 경제 사정을 안고 장기간 학위 과정에 도전하는 대학원생들에겐 이처럼 힘 빠지고 허탈하며 분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극히 유아적이다. ‘…회원 유지’라는 논문의 제목에서 이를 영문으로 ‘…Member Yuji’라 표기한 것이다. 회원 유지는 고유명사가 아니기에 우리말을 영문으로 그대로 표기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삼척동자도, 초·중고생들도 알고 있는 영문 표기의 기초 중의 기초다.

 

이렇게 저질의 논문이 버젓이 대학의 학문의 권위를 좀먹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이 논문의 검증 시효가 지났다고 하여 당연한 권한 행사를 회피하고 있다가 역시 여론에 못 이겨 이제야 겨우 논문을 검증하겠다고 발표만 한 상태다.

 

필자는 문제가 여기에 그치지 않음을 크게 우려한다. 대학이 이처럼 저자세로 눈치를 보니 정치권이 더 기세등등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당 의원이 교육부총리에게 고려대의 입학 취소 검토와 관련해 “교육부에서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 달라”고 요구한 게 대표적 사례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사실상 정치의 하수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필자는 이런 대학의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최고 지성의 요람이자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이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대학은 사회의 모든 모순이 집적된 적폐의 하치장이 되었다는 김누리 교수의 비판은 가슴을 후비는 말이다.

 

교수란 ‘앞에서(Pro)’ ‘말하는(fess)’ 자이다. 즉,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업(業)인 사람이다. 이제 한국의 교육, 대학 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은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 초·중등학교 교사, 대학교의 교수, 강사와 연구소의 연구원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 직접 나서야 한다.

 

여기엔 무엇보다도 교육이 재벌 권력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죽어가는 학교, 대학, 학문을 살리는 최후의 방편이다. 필자는 이처럼 권위가 추락하고 학문 연구의 본질과 진리와 정의가 사망한 대학에 심심한 유감(有感)을 표하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님’을 재삼 표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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