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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민중의 삶을 노래한 시집

신경림의 '농무'

푸르름이 넘치는 산과 들을 지나 한참을 비좁은 산길을 올라가는 작은 암자를 찾은 석가탄신일입니다. 도시의 법당을 정리한 친지의 벗인 스님께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은 노란 금계국이 길을 밝히는 시냇가와 인동덩굴, 찔레꽃이 무성하여 아름다웠습니다. 올해도 등을 달기 위해 찾아간 그곳에서 이야기 한 자락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계시는 암자 전부를 교육단체에 기부하셨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등바등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사는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마음을 밝힌 오래된 시집 한 권을 책꽂이에서 꺼내었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몰락하고 힘든 이들을 노래한 시인 신경림의 첫 번째 시집 『농무』입니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고 가슴이 뛰던 시절을 생각하였습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저에게 민중을 노래한 시인들이 무척 익숙합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상이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침이슬’ 등의 노래를 일상으로 불렀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시단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등단 다음 해부터 10년 동안 농촌과 공사장, 광산과 장터 등을 떠돌며 사회적 약자의 모습과 현실을 재인식하여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발간된 시집이 『농무』입니다.

 

장석주 시인은 『농무』에 대해 “철저히 민중적 소재, 민중적 가락, 민중적 정서, 민중적 언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평합니다. 그는 “『농무』의 시적 공간은 광산과 산촌, 들판, 논 같은 일터와 먼지로 뒤덮인 길이며,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주변부로 밀려난 광부, 농민, 노동자, 빈민, 건달, 아편쟁이들이다. 『농무』의 시편들은 시인이 시골 곳곳을 떠돌면서 만난 민초들의 삶을 밑거름 삼아 일궈낸 것이다. 전쟁의 상처, 답답한 현실, 그리고 궁상맞고 스산한 삶…….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슬픔과 한, 노여움, 서글픔, 절망, 낙담, 실의, 죽음의 이야기를 시인은 알기 쉬운 민중 언어로 풀어낸다. 산업화에서 소외되고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비애를 감상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삶의 구체성과 현장의 숨결을 그대로 담아 생생하게 재현했다는 데 『농무』의 드높은 문학적 성취가 있다.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중략>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전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 부분

 

시란 작은 것, 버려진 것, 하찮은 것, 괄시받는 것들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고 신경림 시인은 밝혔습니다. 어른들의 폭력으로 쓰러져간 어리고 약하고 작은 아이, 장애를 이유로 괄시받아 상처입은 사람, 가난으로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였습니다. 모두 함께 가야 할 우리의 소중한 이웃입니다.

 

오월의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도심의 절 마다 소원을 담은 등에 불이 켜지는 시간입니다. 저 등불에 담긴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사라지기를 빌어보는 저녁입니다.

 

『농무』, 신경림 지음, , 1975,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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