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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삭막한 교실부터 혁신해 보자

학교 공간혁신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학교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사업이다. 이는 단순히 노후화된 학교시설을 개선하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학교에 관한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미래 시대를 대비한 학교 공간 조성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학교시설 공급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학교는 시설이 노후화돼 가는 곳이 많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력 인구 감소로 교육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학교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도 아니다. 학생들이 참여하고 협업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사회성을 증진하고, 인격발달을 함양하는 기능을 수반하는 학교가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학교 공간혁신 사업은 당장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아예 시설이 낙후된 학교는 사업을 한다지만, 아직 쓸만한 학교는 그럭저럭 버텨야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는 학교에 녹지 공간을 늘리고, 책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복도에 조형미를 입히는 정부 투자 사업만 기다릴 게 아니다. 먼저 학교 구성원이 조금씩 바꿔 보는 것도 괜찮다. 지금 교실은 삭막한 분위기가 자리했다. 고등학교는 학기 시작 때 하는 환경미화도 하지 않는다. 현란한 장식이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에 사라졌다. 책상과 의자만 칠판을 향해 정렬하고 있다. 뒤에 사물함 옆에 있는 청소 도구함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제대로 담지 못해 늘 배를 열고 있는 것이 전부다. 급훈도 없다. 과거 교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다. 컴퓨터로 수업할 때 필요한 기자재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특정한 공간에 머문다는 의미다. 시간과 더불어 장소라는 맥락 속에서 경험하고 사고를 형성하면서 일정 부분의 자아가 만들어진다. 교실은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자아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단순 기능 위주로 설계된 교실은 감성이 피어나기 어렵다. 학생들은 자존감이 상실되고, 서로 경계하면서 따돌림과 폭력을 일삼는다.

 

교실 시멘트 창틀에 작은 화분부터 키워보자. 화분에 꽃이 피면 아이들 가슴에도 꽃이 핀다. 아이들은 화분을 돌보면서 책임과 배려라는 정서도 배우게 된다. 꽃을 돌보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 학습도 안전하게 도전하고 탐구하며 잘 배운다.

 

교실은 사랑을 주고받는 실천의 공간이어야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몸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교실에 아름다운 글이라도 걸어보자. 불순물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건져 올린 언어 표현은 거친 현실에 공짜로 갖는 위안이 된다. 아이들은 귀하고 밝게 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위태롭게 흔들리며 사는 아이도 있다. 그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하다. 광화문 글판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듯, 선생님이 주는 한 마디의 글이 아이들의 마음을 적실 수 있다.

 

교탁을 향해 줄줄이 늘어선 책상이 활기찬 수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교실에서 학습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이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 학급 구성원의 정체성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내 책상이 있고, 우리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에서 누구나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이런 정서가 편안함을 느끼고, 마침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학습 태도를 만들어 간다.

 

교실이 오직 학습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관점도 덜어내야 한다. ‘다른 반 학생 출입 금지’라는 스티커를 부착하며 면학 분위기를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기회를 얻는다. 특히 또래 친구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협력하고 이해하는 자신들만의 범주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교실은 흥미롭고 친숙한 공간이어야 한다.

 

교실은 삶과 배움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공 지능 수업도 중요하지만,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정서적 환경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도 공간혁신 사업이다. 긍정적이고 신나는 교실이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삶이 풍요로우면 학습 의욕이 생기고, 몰입이라는 경이로움을 느끼며 성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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