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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고교학점제 했더니 교사업무 두 배로 늘더라”

인터뷰_ 고교학점제 시범 1년, 서울 한서고 김상래 교무부장

“교사도 모르고 학생도 모르고, 처음엔 몹시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래도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살리는 좋은 제도라는 생각에서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현장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완할 점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교사들 업무 부담이 많고 자칫하다간 교육대란을 초래할 수도 있고요.”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선정돼 1년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서울 한서고등학교 김 상래 교무부장은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학생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교육정책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교육 브랜드로 꼽히는 고교학점제는 오는 2022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도 2019년부터 개방형 교육과정을 실시, 고교학점제의 조기 정착을 거들고 나섰다.


“학생들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교육과정이 뭔지, 필수이수단위가 뭔지 모르는 학생들은 교육과정 편성표를 받아보곤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어요. 솔직히 교사들도 교육과정은 완전히 알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매일 교직 원 회의를 하다시피 했어요. 연수도 많이 하고요.” 김 부장은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왜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선듯 배울 과목을 고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사들이 직접 나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막상 수강신청을 받자 특정 교과로 학생들이 몰리고 교과 개설 요구가 100여 개에 이르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수학과 같은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고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특히 두드러졌다. 사회나 과학 영역에서는 선택과목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이 나와 조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학생들을 설득해 겨우 겨우 교사들과 수급을 맞춰 학급을 편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간표였다. 만약 교사들이 수기로 시간표를 짜야 했다면 당장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시간표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준비돼 다행이었지만 종전처럼 시간표를 짰다가는 난리가 날 겁니다. 어렵사리 시간표를 만들었다 해도 그것이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을 거고요.” 김 부장은 “시간표야말로 교육부나 교육청이 나서서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학교에 보급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도 크게 늘었다. 그는 “선택과목이 늘어나면서 교사들의 수업부담이 커진 데다 부수적인 행정업무까지 계산하면 업무강도는 견디기 힘든 수준에 이른다”고 털어놨다. 예컨대 5단위 ‘국어’를 학교 지정 2단위, 학생 선택 3단위로 각각 편성했다면 가르치는 과목이 두 개가 돼 담당교사의 수업부담은 산술적으로 두 배가 된다는 계산이다. 2학년과 3학년 등 동시에 담당하는 교사는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김 부장은 “수업 준비와 교재연구, 평가에 이르기까지 고교학점제는 교사들에게 상상 이상의 부담을 안겨 줄 가능성이 높은데 교육당국은 이 부분을 쉽게 여기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특히 평가는 예민합니다. 대학입시가 걸려 있으니 학생들은 단 1점에도 사생결단이죠. 고교학점제로 업무 강도는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는데 수행평가, 과정중심 평가 등등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요. 기존 인력으로는 어림없습니다.”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인 탓에 교과목 선택이 정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실제로 시범운영 과정에서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찾거나 내신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몰리는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을 일반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수강신청을 해 놓고도 입시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교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대입전략에 따라 학생들이 이리저리 쏠리는 현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해질 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고교생들의 교과 선택에서 또래집단의 영향력은 두드러졌다고 한다. 교과목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이 친구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인 것으로 김 부장은 풀이했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일견 교사에 대한 평가로 비춰져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 영, 수 담당교사는 그래도 괜찮지만 한두 명의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에 서는 교사의 능력과 상관없이 학생들 선호에 따른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교사의 수업시수를 줄이는 대신 다른 교사의 수업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난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학교 측은 수업이 줄어든 교사에게 창체활동을 맡기거나 별도의 교육활동을 신설하는 고육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 부장은 고교학점제 실시 이후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교과 교사들의 위기감과 자괴감은 매우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부터 개방형 교육과정을 전면 실시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공부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단 한 차례 예행연습도 없이 모든 학교에 적용하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조급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생선택제 한 번 안 해보고 단박에 전면 실시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조만간 인근 학교 교사들과 이 문제로 모임을 갖는데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부가 강사 인력풀을 확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김 부장은 썩 미덥지 못한 눈치다. “강사 구하기가 쉬운 줄 아세요? 정작 사람을 쓰려고 하면 없어요. 학교들이 얼마나 애를 먹는데요. 그나마 서울은 견딜만 하겠지만 지방은 정말 힘들 겁니다.”


그러면서 강사들에게 시험 출제와 채점 등 평가 과정을 맡겨야 하는지도 고 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분들이 한 시간에 1만 7천원의 수당을 받아요. 그런데 이것 은 수업에 대한 대가이지 평가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수업을 했으니까 평가도 당신 책임이다’ 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논리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고교학점제를 시범운영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녀의 진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로 평가했다. 학생들 역시 스스로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진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모습 을 보인 것도 고무적이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을 재미있게 공부했다는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그런 바람을 고교학점제가 어느 정도 구현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능성과 방향을 믿 고 노력하면 보람도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교학점제가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고교 교육 변혁의 모멘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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