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학창시절에 국악기에 대해 배운 적도, 교단에 선 이후 연수 한번 받아본 일이 없다. 그런데 요즘 음악교과는 국악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배우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새학기가 시작되자 두달 동안 학원을 다녔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가르치고 싶은 충동에 매일 아이들 앞에서 장고가락을 가르쳤다. '덩덩덩 따쿵따' 아이들도 신이 나서 수업 마치기가 바쁘게 장고와 설장고를 친다.
학예회가 열리게 되자 학교에서 장고를 올리라고 한다. 실수할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무대에 올릴 때는 나도 아이들도 들떠 있었다. 구색을 갖춰 무대에 올리니 아이들은 연습할 때보다 더 잘 휘몰아치고 장고가락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이 겁 없기로는 나보다 더하다. 12월에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오는 것이다.
"선생님, 우리 성 프란체스코 요양원에 위문공연 가기로 했어요."
"야들이 뭐라카노? 니들 뭐 갖고 위문한단 말이고?"
"설장고예."
"뭐? 설장고라고?"
어이가 없었다. '지들이 얼마나 두들겼다고 위문공연이야. 나도, 저희들도 초보인 주제에.'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옆반 선생님이 자기반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반은 설장고를, 옆반은 노래와 무용 등을 정해
며칠간 연습을 했다.
할머니들은 준비해간 떡과 과일을 드시면서 손자 같은 아이들 재롱에 즐거워하셨고 어떤 분은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다음은 우리 학교가 자랑하는 설장고를 소개합니다. 설장고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신 한경자 선생님이 지도해주셨습니다."
할머니들의 손뼉에 신이 난 아이들은 신나게 두들겼다. 휘몰아치는 손놀림이 제법 멋을 부리고 있었다. 할머니들도 한분 두분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이렇게 배우면서 또 남에게 베푸는 거야. 이런 재미 때문에 영원히 교사이고 싶다니까.' 나는 가슴에 흐르는 뭉클한 감정을 추스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