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도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노래했던 은정이. 그 아이는 내게 음악교사로서의 보람을 흠뻑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아이였다. 사회에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던 교직 첫해, 시골 중학교의 낡은 강당 안에 울려퍼지는 여중생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시골 마을까지 하루 3시간이 걸려 통근하며 생긴 나의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음악 수업을 좋아했지만 은정이는 유달리 음악수업을 좋아했고 특히 아름다운 노래를 배울 때면 예쁜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 학생이었다.
언젠가 강당의 유리창을 닦던 그 아이의 거친 손을 본 나는 은정이의 가정환경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통해 그 아이의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몇평 안되는 밭에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 은정이는 집안 살림을 거의
도맡아야 했다.
그런 은정이가 안쓰러웠지만 여린 마음에 행여 상처를 줄까 내색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은정이를 위해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클래식 소품들을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로 주고 합창부 파트장으로 지명해 늘 부끄럼을 많이 타고 자신 없어하던 그 아이에게 용기를 주려 했다. 은정이는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어두웠던 얼굴이 가끔 해맑게 빛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은정이는 15살 여중생, 난 풋내기 음악교사였지만 그 시절 우리는 사제간의 따뜻한 고리로 연결돼 있었다. 그 학교를 떠난 후 난 은정이와 몇통의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 후 안타깝게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학교 업무에 지쳐 의욕이 없어질 때, 타성에 젖어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잊어버리고 쉽게 현실에 안주하려고 할 때 난 그 시절을 생각해본다.
맑고 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노래 부르던 그 아이의 모습을, 편지글 속에서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게 비추는 촛불 같은 좋은 분이 되세요"하던 그 아이의 속삭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