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개념이 없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 큰 장애가 된다. 그래도 과거에는 두부 한 모, 콩나물 몇백 원 어치 심부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폐에 대한 개념을 익힐 수 있었지만, 신용카드 사용이 빈번한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은 애초에 이런 개념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다. 어른들 역시 신용카드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화폐 개념을 잃어가고 있다. | 김미선 에듀머니 재무컨설턴트
화폐 개념이 없는 사람은 지갑에 만 원이 있으면 신중하게 소비하는 반면 10만 원이 있으면 충동적으로 소비하게 된다고 한다. 만 원은 적은 돈이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구매를 하지 않기 위해 신중히 소비하는 반면, 10만 원은 열 개의 만 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저 ‘많은 돈’을 가졌다는 생각으로 쉽게 써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금을 사용하면 조금씩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현금이 지불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그런 물리적 지불 과정이 생략된 채 원하는 물건을 얻게 된다. 단말기에 카드를 긁기만 했을 뿐 당장 내 지갑에서 사라진 돈은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교환의 법칙에서 내가 포기한 것은 없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의 인지능력 범위 내에서는 공짜의 짜릿한 경험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용은 사람들의 의사결정 능력을 떨어뜨린다.
화폐 개념이 없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 장애나 다름없다. 상담을 하다 보면 당장 대출이자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아이를 무용학원에 보내는 부모도 있고, 조만간 파산절차를 밟아야 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당장의 소비 조절조차 하지 못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겠으나 기본적인 화폐 개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황당한 일이다.
신용카드 사용습관이 아이의 학습 기회도 빼앗아
이렇게 성인들조차 의사결정 상 오류를 범하는 일이 빈번한데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우고 자라야 할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 돈이 없으면 신용카드로 쓰면 되잖아.” 지금의 부모 세대는 어릴 적부터 심부름으로 자연스런 경제교육을 받았다. 두부 한 모, 콩나물 몇백 원어치의 심부름 속에서 화폐의 구매력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대량의 물건을 신용카드를 긁어 소비하는 부모의 소비생활 덕분에(?) 화폐 구매력 개념을 배우지 못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원의 크기가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필요 지출과 욕구 지출, 모호한 경계선을 벗어나자
우리나라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OECD 국가 중 가장 비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싸야만 잘 팔리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품의 질에 상관없이 ‘가격만 고급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품 시장 경제론에서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지만, 사치성 소비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베블런 효과(과시적 소비)라 일컫는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높은 가격으로 장사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합리적인 소비의사결정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즉, 화폐가 교환 수단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등식의 화폐 개념에 갇혀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