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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되는 토론 교육

1년여 동안의 연재를 마감할 때가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끝에 서면 그 일의 처음을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까요? 1995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찬반 토론을 만났던 때가. 그것은 한마디로 짜릿한 충격이었습니다. 토론에 대해 좋지 못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제겐 특히 더 그랬지요.

책 읽기를 좋아하던 저는 우리 반 아이들도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어서 수백 권의 책으로 교실을 작은 도서관처럼 만들고 자잘한 일들을 함께하며 아이들과 책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즐거운 책 읽기는 아이들의 생각도 쑥쑥 키워서 저절로 사고력도 길러지고 창의성도 길러 주리라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거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만난 것이 토론이었습니다.

>>> 처음 토론을 접했던 때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배우긴 했지만 ‘과연 아이들에게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기쁨은 정말 컸습니다. 포항공대 김병원 교수님께 일주일에 한 번씩 오후 내내 배웠는데 그때 참으로 오랜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맘껏 누려 보았습니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때 함께 배운 선생님들이 많게는 100명, 가까이에서 30~40명은 꾸준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는지…. 1999년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토론 수업을 공개하고 난 뒤 바로 전국 교과 연구 모임을 만들어 당당하게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저는 서울로 왔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가늘게 이어지던 토론대회가 서울초등토론교육연구회의 ‘서울시 어린이 토론대회’와 ‘민족사관고등학교 토론대회’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지 않은 저로서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최근에 나온 <토론의 전략>(이정옥 지음, 문학과지성사)이란 책을 보니 토론대회에 대한 상세한 보고 자료가 나와 있었습니다.

‘토론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록을 통해 교내 규모는 제외하고 전국 규모나 혹은 지역 규모의 토론대회를 안내하고자 한다. 토론대회 안내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다음의 세 가지 문제점을 확인하였다. 하나는 토론대회마다 용어를 달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토론대회의 일정이나 형식, 진행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은 한번 개최되었던 토론대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토론대회를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단체의 사정에 따라 개최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 토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무척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 있을 때 늘 느끼던 것이었고 토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그러함을 알고 있었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부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토론대회는 주로 중학생 토론대회가 많은 편이고 시민단체나 대형서점, 대학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고등학생 토론대회가 많은 듯합니다. ‘벌써 이렇게 많아졌나?’ 하는 기분으로 읽어 가는데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물론 일부 선생님들의 의견이었겠지만,

“토론대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토론대회도 사교육 받은 아이들이 돋보이는 곳이더군요.”
“현장에서 열심히 나름대로 지도했다고 해도 대회에 나가 예선에서 떨어지거나 등위에 들지 못하면 아예 토론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발언이 오가는 토론대회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다시는 토론을 하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에요.”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토론교육을 받은 아이는 횟수에 관계없이 토론에 자신감을 갖는 것 같아요.”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의견들이었습니다.

교육은 없고 대회만 있는 ‘토론대회’
새 교육 방법이나 정책을 효과적으로 널리 알리고 빨리 뿌리내리게 하려고 할 때 상위 기관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대회를 개최하여 등위를 매기고 표창을 하거나 전체 평가를 통해 경쟁하게 하는 것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매우 효율적인 것 같지만 그 성급함이 오히려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하게 하고 이제까지 많은 교육이론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 왔듯 결국 일회용 행사를 위한 교육을 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나 교육 방법도 현장에서 지도하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실천에 의해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저 한때 우리 곁에 머물렀다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의미일 뿐이지요. 가만히 서서 조금만 견디면 또 새로운 이론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자조적인 독백은 언제쯤 듣지 않게 될까요?

교육청 단위의 토론대회를 개최하는데 담당 교사 연수 두어 번 하고 공문 내려 보내고는 6개월 만에 수백 명이 참가하는 토론대회를 치러 내야 하는 계획서를 우수한 기획으로 표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을 받은 담당자는 정해진 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그 기획을 추진하느라 바쁘기만 합니다. 현장 선생님들은 토론이 뭔지, 왜 지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막연하기만 하고 제대로 이해도 되지 않았다고 답답해하고 있는데 대회는 출전해야 하니 말이지요. 토론교육은 없고 토론대회만 있습니다.

기본적인 독서교육의 부재도 원인
제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독서교육에도 있는 듯합니다. 읽으려고 하지도 않고(책 읽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인 선생님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학년 수준에 맞는 읽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을 토론까지 하라고 하니, 게다가 대회에 나오라고 하니 급한 김에 토론에서 이기는 요령만 가르치고 익히게 되지는 않을는지요? 그런 우려는 어쩜 저만 하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현실적으로 이미 드러나고 있는 듯하네요.

읽기와 토론, 그리고 쓰기의 통합 교육을 통해 ‘소비로서 독자 만들기’가 아니라 진정 ‘창조하는 독자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은 최근 펴낸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그린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험담이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데는 토론 경험이 부족한 데도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제를 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내고 두루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를 개인적으로 소화해 내기가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토론 형식으로 거치게 하면 의외로 학생들이 빨리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게 되고 쓰는 데 필요한 과정을 잘 소화해 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쓰는 것과 말하기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하고 나면 잘 써진다. 쓰기 교육에서 말하는 개요 짜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대학에서 연 정책토론 대회에 심사하러 간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 주제어만 치면 주르륵 올라오는 자료를 바탕으로 형식에 맞춰 토론하고 있어서였다. 토론대회 상금이 만만찮아 그걸로 등록금 마련한다더니, 복장이나 어투는 스튜어디스와 아나운서 뺨칠 정도였다. 전문적인 꾼이 등장한 것이다. 도대체 그래서 무엇을 하는 걸까. 토론 요령을 익히는 데 정책토론이 여러모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데다 자료를 구하기 쉽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고작 그런 주제로 경연을 벌여야 하나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사실은 모두가 답답한 현실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토론교육
방송, 신문, 인터넷을 통해 그 어느 해보다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진 2008년, 우리도 이제는 대화와 토론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을 본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때맞춰 토론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이제는 골라서 보아야 할 정도가 되었네요. 세계 토론대회에까지 우리 아이들이 출전하고 그 결과도 기대할 만하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주장이긴 하지만 장차 논술을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더 불안해진다고 합니다.

우선 토론대회부터 열어서 분위기를 만들고 현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평가를 통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겠다는 정책적인 고려는 잠시 곁에 놔두고 ‘왜 가르치는지?’ 그러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어떤 교육을 하려고 하는지?’ 자신을 향해, 또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교단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좀 더 깊이 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자신이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 토론 교육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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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1년을 계획하고 시작한 연재가 조금 더 길어졌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새교육>이라는 잡지는 교장·교감 선생님만 보시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가끔 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온 과월호를 주르륵 훑어보던 기억이 나는데 참 오랫동안 제 미숙한 글을 싣고 또 다른 분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새교육>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되었네요. 얼마 전에 한 교육청에서 강의를 하는데 거기 오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새교육>에 나온 예문으로 토론을 해 보았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고개 숙여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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