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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장 담가 급식하는 광덕초등학교


# 오전 10시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초등학교. 장 담그는 ‘특별’한 학교라더니, 학교 입구도 ‘특별’하다. 군 검문소 바로 앞이 교문과 이어진다. 이곳이 강원도 산골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급식을 담당하는 최현옥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또박또박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흐른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운동장이 많이 질어요. 축구 골대 옆으로 지나서 언덕을 올라오시면 관사가 있고, 그 옆으로 주차하시면 되요. 교무실은 다시 앞으로 돌아 나오시면 되고요.”

유치원을 포함해 전교생 37명인 작은 학교의 교무실로 들어서니 “별로 대단한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데 먼 길을 오셨네”라며 최현옥 선생님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장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지 않냐”고 하니 “요즘은 집에서도 잘 담그지 않으니, 그런가요?”라며 급식실로 안내한다.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조그만 급식실. 테이블에는 안으로 접어 넣을 수 있는 동그란 의자가 달려있다. 37명이 앉으면 가득 찰 이 작은 급식실 안에 어떤 ‘특별’함이 감춰져 있을 지 자못 궁금해진다.

# 오전 10시 30분
“장을 직접 담그신다고요?”


아이들 점심 준비로 분주한 김순옥 조리사가 칼질을 잠시 멈춘다. 급식을 시작한 이래 광덕초등교의 교사도, 교장도, 영영사도 3~4번 바뀌었지만, 10년째 급식실을 지키고 있는 그녀가 손으로 창밖을 가리킨다. 작은 텃밭에 키 작은 장독 셋이 나란히 놓여있다.

“매년 3월 어머니들이 모여 같이 장을 담죠. 학교가 작으니까 한 독이면 일 년은 충분하답니다.”

고추장에 된장, 간장까지. 나란히 놓인 장독 삼형제에 ‘학부모’의 자식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듯 느껴진다. 광덕 학부모들의 ‘특별’한 자식 사랑은 장 담그기에서 끝이 아니다. 더 좋은 것, 더 깨끗한 것을 먹이고자 하는 마음은 친환경급식으로 이어졌다.

2003년 3월 시작한 친환경 급식이 올해로 5년째. “직접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다 보니 친환경 농산물이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죠. 학부모님들의 적극 협조가 없었다면 친환경 급식은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라고 최현옥 교사가 이야기한다. 오히려 농촌이라 쉬웠다는 것이다.

“저는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조미료를 안 쓰니 맛이 안 나더라고요. 이젠 화학조미료 없이도 맛을 내거나 삶고 찌는 요리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지만…”이라며 김옥순 조리사가 은근히 자랑을 한다. 5년째 친환경 급식을 해온 학교의 식단은 어떻게 다를 지 호기심이 일었다.

# 오전 11시
월: 차조밥/ 소고기 미역국/임연수 카레구이/배추김치/우유, 화: 보리밥/해물동태찌개/사태떡찜/깍두기/우유/호박죽, 수:카레 라이스/콩나물된장국/단호박 핫케익/배추김치/우유/사과, 목: 검정콩밥/청국장찌개/돈육불고기, 상추쌈/감자채볶음/배추김치/우유/바나나, 금: 찰밥/ 수삼닭죽/ 참나물장떡/오징어젓무침/깍두기/우유


식단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선 매일매일 바뀌는 잡곡밥. 그리고 식용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햄이나 어묵, 튀기는 요리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작은 학교에서, 매일, 매주 어떻게 식단도 매번 다르게, 그것도 친환경으로 급식을 5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을까. 상주하는 영양교사도 없는데….

인근 실내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1주일에 한 번 광덕초등교에 공동 관리를 나온다는 고봉순 영양교사는 ‘학부모와 함께 만드는 식탁’에 그 비결이 있다고 설명한다. 학부모들이 장뿐만 아니라 직접 재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오는 등 식자재를 가져오거나, 값싸게 공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추 농사를 지으신 분이 재료를 가져오시면, 어머니들이 김치를 담가요. 그렇게 1년에 두 번, 김장을 하면 김치 걱정은 사라진답니다. 그 외에 소소한 고추, 상추, 고구마 같은 채소는 텃밭에서 아이들과 선생님, 조리사가 같이 가꿔 조달하기도 하죠.”

학부모 부담 1780원에 도서벽지 보조금 300원. 2000원이 조금 넘는 급식비로 규모도 작은 학교에서 친환경 급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재료 구입에서 조리사 도우미까지 교대로 담당하고 때때로 장 담고, 김치 담고, 겨울엔 만두 빚고, 봄엔 화전도 함께 부치는 광덕초등교의 학부모는 그야말로 ‘특별한 친환경 급식의 주체’ 그 자체였다.

# 오전 12시
유치원 학생 3명과 1학년 학생 4명이 교사와 함께 조잘조잘 데며 급식실로 들어온다. 오늘의 메뉴는 검정콩밥에 청국장찌개, 돈육불고기, 상추쌈, 감자채볶음, 배추김치 그리고 바나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좀 맵지 않을까, 아이들의 식단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잠시, 식판을 받아든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그 생각이 무색하다.

“하나도 안 매워요. 집에 밥보다 더 맛있어요. 선생님, 저 고기 더 주세요.”라며 한 입 가득 쌈을 입에 무는 1학년 김서현 양. 작은 입을 오물오물 암팡지게 다물었다 폈다하며 쌈을 맛있게도 먹는다.

1학년 담임이기도 한 최현옥 선생님은 아이들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콩도 다 먹어야지, 밥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먹고, 다 먹은 사람은 양치질 꼭 하세요”라며 급식지도도 꼼꼼하게 하신다.

2~6학년 아이들이 들이닥치니 급식실은 금세 활기가 넘친다. “조금만 더 주세요. 바나나 하나 더 먹으면 안돼요?” 왁자지껄 떠들며 쌈 한 입 가득 채운 아이들의 얼굴은 ‘부모님의 애정 담긴 급식’인지 모두 다 아는 양 행복해 보인다.

# 오후 1시30분
아이들이 빠져나간 급식실엔 영영사와 조리사 그리고 학부모 도우미만 남겨졌다.

김희경 학부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한 달에 한 번 도우미를 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잘 먹는 걸 보니 오늘도 도우미를 나온 보람이 있네요.”라며 웃는다. 그녀의 한 마디에서도 광덕초등교 학부모들의 급식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교무실로 돌아오니 교장선생님과 몇 분 선생님들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올 3월 전근을 오신 원영희 교장선생님이 “어때요? 저희 학교 급식이 맛이 괜찮았나요? 이곳에 오고 선생님들이 2~3kg은 늘었다고 불평 아닌 불평들을 한다”며 “저도 살이 찔까 걱정”이라며 자랑 섞인 농담을 건네신다.

“이 지역은 아무래도 빈곤층이 많은 만큼 학교에서라도 한 끼는 균형 잡힌 영양식을 먹여야한다고 생각해요. 친환경급식 덕에 아토피를 앓는 아이 하나 없이 건강한 건 덤이겠죠.”라며 “계속 친환경 급식을 유지해 나가고 싶지만 걱정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신다. 점점 학생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만해도 60명이었던 학생이 올해 37명으로 줄었고, 유치원에 7살 아이들이 없어 내년엔 그나마 더 줄어들 거 같다는 것이다.

“학생 수가 줄면 학부모로부터 친환경농산물을 조달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 테고. 다들 이 학교 졸업생이시고 하니 지역민들이 도와주시긴 하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급식은 생존 문제와 직결되니까요.”

# 오후 2시 30분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나서는 길에 장독대 옆 작은 텃밭으로 저절로 눈이 간다. 이제 좀 있으면 고구마, 땅콩, 근대, 상추, 고추가 자랄 텃밭 옆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교사, 학부모, 조리사의 노력으로 어렵게 일구어 온 저 아이들의 건강한 미소가 끊어지지 않기를…. 교장선생님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고, 밥상위에 행복한 웃음꽃이 계속 피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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