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1 (목)

  • 맑음동두천 26.0℃
  •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맑음대전 25.8℃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2.5℃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고창 25.3℃
  • 구름조금제주 18.9℃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보은 25.4℃
  • 맑음금산 26.8℃
  • 맑음강진군 22.8℃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1.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양과 장엄에 숨은 보물찾기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상징② 서수와 식물, 기타



상상속의 서수(瑞獸)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문화에 숨은 상징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瑞獸)의 대표격은 용입니다. 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만큼 평범하면서도 신성함 자체입니다. 하늘을 마음대로 휘젓기도 하고 물속을 평정하기도 하죠. 그래서 예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상속의 동물일 뿐 그 실체는 아무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 물을 다스리는 용왕은 신앙 그 자체였기에 용왕제나 용왕굿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물 때는 용왕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기를 빌었으며 폭우가 쏟아질 때는 용이 노한 까닭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절집에서는 용이 불법을 수호하는 충실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해서 지혜를 깨달아 피안(彼岸)의 극락세상으로 인도하는 배를 용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통도사 극락보전에 그려진 반야용선도, 태안사 극락보전 건물의 앞에는 용머리가 뒤에는 용꼬리가 조형된 것들이 극락길로 인도하는 용의 역할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좌청룡우백호’란 말과 같이 동쪽을 지키는 청룡을 으뜸으로 칩니다. 김천 직지사 천왕문이나 동화사 비로암 대적광전에서 건물 동쪽에 청룡이, 서쪽에 황룡이 버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용안’이니 ‘용포’니 하는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은 또한 황제나 왕의 상징이었습니다. 조선시대는 중국과의 대외관계상 봉황이 그 역할을 해냈습니다. 봉황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상상속의 동물입니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상징합니다.

봉황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동 강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장 구경을 나간 김선달이 닭을 파는 가게에서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 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그 닭이 ‘봉(鳳)’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김선달은 봉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모자라는 체하고 계속 물어대니까 닭 장수가 봉이 맞다고 대답을 했지요. 김선달은 그 닭을 사서 사또에게 바치고는 봉황이라고 우겨댔습니다. 사또가 말도 아닌 억지논리를 펴는 김선달을 가만 놔두지 않았지요. 그러자 김선달은 자기는 닭장수의 말만 믿고 속았을 뿐이라며 둘러 대자, 사또가 닭장수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결국 김선달은 닭 장수에게서 닭 값과 볼기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고 하며 이렇게 닭을 봉이라 속여 이득을 보았다 해서 ‘봉이(鳳伊) 김선달’이라 불리게 되었다네요.


이 봉황은 오동나무숲에 깃들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공산 동화사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일주문의 이름도 봉황문이며, 봉황이 깃들어 있다는 봉서루 앞에는 봉황의 알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절을 중창한 인악대사의 비신은 그 흔한 거북이 아닌 봉황이 받치고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가구재로 손색이 없고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옛날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혼인할 즈음 그 나무를 베서 가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필자가 졸업한 부산교대에는 ‘오동골’이라고 불리는 오동나무숲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대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태라고 불리는 해치 또한 상상의 동물입니다. 해치는 그의 뿔로 죄가 있는 사람을 가려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대사헌이나 왕을 대신해서 민생을 보살피던 암행어사들은 해치가 그려진 흉배를 부착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상상의 동물인 기린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대군의 흉배였습니다. 중요민속자료 제65호인 흥선대원군기린흉배는 흥선대원군을 대군으로 예우해주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대군의 흉배로 보기 드물어 그 가치가 큽니다.

궁궐에서 만나는 상징
불가사리는 용이나 해치 등과 함께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서수입니다. 불가사리는 쇠와 불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바늘에서부터 농기구, 무기까지 쇠붙이란 쇠붙이는 기본이고 악몽(惡夢)과 사기(邪氣)까지 쫓는다고 합니다.


경복궁에는 경회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 불가사리 조각이 지키고 있습니다. 경회루처럼 큰 건물에 화재가 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코끼리처럼 긴 코를 가졌다는 불가사리가 유사시 그 긴 코로 물을 빨아들여 화재를 막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경회루를 조성할 때 나온 흙으로 만든 아미산에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연결된 굴뚝이 있지요? 이 굴뚝에도 불가사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굴뚝을 통해 교태전으로 들어가려는 사악한 기운은 접근을 말라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복궁 후원인 아미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으로 궁궐 중에서 이곳을 제일 좋아합니다. 경복궁 교태전 뒤편의 아미산과 주변의 꽃담, 건너편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굴뚝까지를 말합니다.

창덕궁의 후원이 깊고 넓은 맛이 있으며 늘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듯한 멋이 있다면 아미산은 그 좁은 공간에 계단을 만들어 온갖 화초와 나무를 심고 괴석을 놓아 웅장한 자연을 압축해 놓은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돋우는 것이 바로 꽃담입니다. 아미산 굴뚝에서 시작된 꽃담의 아름다움은 자경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이른 봄 복사꽃이 만개한 과수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한겨울을 이겨내고 진한 향을 내뿜는 복사향과 시선을 어디에 고정해야 할 지 모를 듯 여성스러운 분홍빛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네요. 창덕궁 후원이 자연의 멋이라면, 경복궁 후원은 바로 인공의 멋이로군요.

이 꽃담에는 불가사리뿐만 아니라 박쥐, 학, 봉황, 사슴, 나비, 벌, 새 등 각종 동물과 보름달이 걸린 매화나 대나무, 소나무, 모란, 석류, 국화, 덩굴 등 다양한 식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시사철 꽃은 피어 있으며 길상무늬와 형상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벽 전체를 쉼 없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경전 뒤에 있는 십장생 굴뚝으로 건너가볼까요? 굴뚝 중에 제일 아름답다는 자경전 굴뚝은 대비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문양을 새겨 두었습니다. 무늬의 주제는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이며 둘레에는 학, 불가사리, 박쥐, 당초무늬 등을 배치하였지요. 해, 바위, 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이고, 포도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듯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박쥐는 보통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고 박쥐를 뜻하는 복(蝠)자가 복(福)자와 같은 발음이 나기에 예로부터 오복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려 교태를 부리고 있으니 궁궐에서 숨은 보물찾기는 바로 이곳이 적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식물로 보는 상징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한때 꽃말을 외우고 다니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답사를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저의 생각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이 됩니다. 처음에는 답사를 다닐 때면 오로지 그 문화재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그 문화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돌이켜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 어떤 꽃이 있는지,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떤 때는 답사의 중심이 꽃이나 나무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여름철 무더울 때 만나는 상사화는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상사화는 곧 스님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꽃이기 때문이지요. 그 사랑은 어떤 가수가 불렀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애달픕니다.

이야기는 대략 한 스님을 사랑했던 처녀가 자기의 사람을 고백했지만 스님이 받아들일 수 없자 그를 연모하는 마음이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반대로 한 스님이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다 죽은 후 그의 무덤가에서 이 꽃이 피어났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스님과 한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 꽃임은 분명합니다.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상사화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서 쓰러지고 나서야 꽃대가 올라옵니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사화와 비슷한 꽃으로 석산(꽃무릇)이 있습니다. 둘 다 전설이 비슷하고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상사화는 7~8월에 분홍색 꽃이 피고, 석산은 9월 이후 붉은색 꽃이 핍니다. 강진 백련사와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등의 석산이 유명합니다.

경북 김천에 있는 수도암은 비구들의 수행도량입니다. 이곳에도 8월이면 상사화를 볼 수 있습니다. 세속의 여인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꽃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수도암의 본절이 청암사인데 청암사는 비구니 사찰이라는 점입니다. 본절이 비구니 도량이고 부속 암자가 비구 도량이니 부속 암자가 본절의 영향을 받아야 하겠지만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배롱나무는 흔히 백일홍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100일 동안 붉은 색 꽃을 피운다는 꽃인데요, 실은 100일 동안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꽃봉오리가 돌아가면서 꽃을 피우기에 100일 동안 꽃이 피어 있는 착각을 하는 것이죠. 담양의 명옥헌 배롱나무가 유명합니다. 이 나무가 왕성하게 꽃을 피우는 때가 바로 한여름 무더위 철입니다. 그래서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도 배롱나무 꽃이 피어 있을 때 오면 장모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창덕궁에서 만나는 뽕나무는 색다릅니다. 조선시대 임금이 친히 농업와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후원에서 농사를 짓고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잠실’이라는 지명이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누어 주던 곳에서 비롯된 것을 서울 분들은 알고 계실 테죠? 창덕궁 후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크기의 뽕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뽕나무와 다른 나무가 후원의 숲에서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드니까 열매가 떨어지는 6월경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디라고 부르는 검붉은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내가 뽕나무일시다!’하고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오리의 발모양을 닮아서 압각수(鴨脚樹)라고 불리는 은행나무는 전국에 걸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가 많습니다. 수령이 500년쯤 되는 나무도 명함을 쉽게 낼 수 없을 정도로 장수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옛날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쳤다 하여 ‘행단(杏亶)’이라고 불렀습니다. 충남 아산에 맹씨 행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서원이나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요즘의 학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2회에 걸쳐 문양과 상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앞으로 몇 회 더 실어야할 것 같으나 지면은 제한되어 있고 해서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숙제로 돌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만 있다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흔한 동물이요, 상상속의 짐승이요, 그저 그런 식물이었고, 보기 좋게 꾸민 무늬에 불과했는데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고 난 후 너는 나에게로 와서 나만의 소중한 문화재가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도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흔하디 흔한 모든 것들이 내게는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학년말 업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