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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가락을 잉태한 담양습지

방울방울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여럿의 실개천이 실핏줄처럼 엉켜 담양천을 만들었다. 담양천을 비롯한 여러 소동맥들이 모여들어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을 형성하였다. 발원지에서 시작된 강물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가득 담고 흘러내려 바닷물에 몸을 섞는다. 그렇지만 사람의 흔적 중 좋지 않은 것들은 중간에서 걸러지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이 하천습지이다.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오염된 물질 걸러주는 하천습지
상류에서 떠내려온 퇴적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가다 저 편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주로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이 퇴적물은 식물의 종자를 받아들여 쉽게 자리를 잡게 해 준다. 이곳에 자리 잡은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그 종류가 늘어나면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찾아와 생물의 지상낙원을 만들게 된다.

하천에 있는 습지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강둑 옆에 길게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하천변습지라 하고, 홍수 때 물살이 세어지면 중간 중간에 수로가 발달된다. 담양습지는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강 가운데 퇴적물이 쌓여 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섬의 윗부분은 빠른 강물에 깎이고, 아랫부분은 중간에서 꼬리 모양으로 퇴적물이 쌓이는데, 마치 그 모습이 고구마를 닮아 있다. 이 섬의 이름을 강 가운데 만들어진 섬이라고 하여 하중도(河中島, 하중은 강물에 의해 떠 내러온 퇴적물임)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강의 밤섬이 있다.

이런 하천습지는 각 마을과 도시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나 축산폐수를 걸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천습지에서 자라는 갈대와 고마리 및 버들류가 오염된 물에 포함된 질소와 인 성분을 흡수해 성장하면서 물을 맑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대와 버들류가 자라는 하천습지를 오염된 물질을 걸러내고 맑게 해주는 자연 정화조라고 부른다.


풍월산천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
예부터 사람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모여 마을을 만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공동의 생활체를 이루고 살면서 문화와 전통을 가꾸어 왔는데, 담양습지를 안고 있는 영산강도 예외는 아니다. 전남 담양군 용면 용추봉에서 발원된 영산강은 115.5㎞를 여행하다가 황해로 몸을 섞는다. 1976년 용추봉 아래에 만들어진 담양호는 사시사철 물을 내려 보내 담양습지가 마를 날이 없도록 한다. 담양호에서 내려온 물이 담양읍을 지나기 전에, 금성천이 몸을 섞어 그 수량을 늘리고, 관방제림(官防堤林)의 나무들에게 단물을 제공한다.

담양읍을 관통하고 내려온 강물에 동에서 서로 흘려오는 오례천이 합쳐지면 더욱 강폭이 넓어지는데, 두 물이 합쳐지는 이곳을 바라보고 면앙정(俛仰亭)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면앙정은 ‘우러러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풍월산천 속에서 한 백년 살고자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정자는 중종 28년(1533)에 송순이 건립하였는데, 이황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고, 후학을 기르며 학문을 논한 곳이다. 이곳은 송순의 시문활동 근거지이면서, 당대 시인들이 즐겨 찾는 호남제일의 시문학 장소였다. 지금도 정자 안에는 그와 교류한 이황, 김인후, 임제, 임억령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봉산면에서 시작되는 5번 군도를 따라 수북면으로 가면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삼우교를 만나게 된다. 삼우교를 지나 바로 좌회전하여 강둑을 따라 약 5㎞를 내려가면 장성-담양 고속국도의 일부인 영산교를 만나게 된다. 삼우교에서 영산교까지의 구간을 특별히 담양습지라고 부른다. 강물이 영산교에 이르기 전, 다시 한 번 남도의 들녘을 적시고 내려온 증암천을 받아들이는데, 특별히 잘 발달된 하천습지의 특징을 보이는 구간은 증암천이 합쳐지는 부분에서 영산교까지의 2㎞ 구간이다.

증암천의 물이 영산강에 섞이는 지점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정자가 있는데, 이것이 송강정(松江亭)이다. 송강정은 환벽당(環碧堂), 식영정(息影亭)과 함께 송강 정철의 대표적인 유적지인데, 특히 송강정은 벼슬에서 물러난 송강이 초막을 짓고 4년간 살면서 은거생활을 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한 많은 시가와 가사를 지었다.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겨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 글은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대표적인 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가사문학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아름다움을 풍겼기에, 후세 사람들은 정자 앞을 흐르는 증암천을 송강으로도 부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산강 상류에 해당하는 담양습지는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송순과 정철은 사시사철 유연히 흐르는 강물과 넓은 농토를 바라보면서 자연에 묻혀 사는 이의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였다. 지금의 담양습지는 식물과 동물이 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전국의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예전처럼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입을 열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있다.


방문객 반기는 담양습지 생물들
2004년 7월 환경부는 전남 담양군의 대전면, 봉산면, 수북면과 광주 용강동 일대 영산강 상류 98만㎡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이곳은 하천습지로는 처음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담양습지’로 명명되었다.

담양습지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물길을 따라 선버들과 버드나무숲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달뿌리풀과 줄 군락이 밀집되어 자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상징 식물인 대나무 군락이 하천변에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어 멸종위기종인 매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보호야생동물인 삵, 다묵장어, 맹꽁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밝혀졌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 살고 있는 식물은 205종류, 조류는 58종으로 확인되었는데, 여름철에는 많은 개체수의 해오라기, 쇠백로, 중대백로 등이 찾고 있다.

하천바닥에 무리지어 자라는 달뿌리풀은 갈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다. 갈대와 다른 점은 마디에 털이 있고, 잎의 크기가 훨씬 작은데 있다. 줄기가 땅바닥에 닿으면 마디에서 뿌리를 내어 강변에 길게 자라는데, 마치 그 모습이 강변을 달려가는 모습이라 ‘달려가면서 뿌리를 내는 풀’이라는 달뿌리풀이 되었다. 갈대가 주로 강의 하류에 자란다면, 달뿌리풀은 모든 산의 계곡이나 강의 상류에 자라는 하천 보호 식물이다.

홍수 시 담양습지를 찾으면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이제 물속에 잠긴 식물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며칠 후 물이 빠지면, 물속에 잠겨 있던 버드나무와 달뿌리풀은 거짓말처럼 처음의 모습을 금방 회복해 간다. 이런 강인한 생명력을 보면서 이곳에 나타난 생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에 적응하여 살아온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담양습지에는 하천의 가장자리에 다수의 물웅덩이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물 흐름이 완만하여 많은 물속식물들이 살고 있고, 그래서 많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물속식물에는 물수세미, 말즘, 붕어마름, 검정말, 마름, 개구리밥 등이다. 마름이 가득 자라고 있는 물웅덩이의 바닥에는 많은 우렁이가 기어 다니고, 이곳에서 낚시하는 아저씨의 손길은 붕어, 참붕어, 피라미를 들어올리기에 마냥 바쁘다.

홍수를 막기 위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하천 둑은 자연습지와 농경지를 가로 막는 장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천 둑은 사람들에 의해 자주 훼손을 당하지만, 해마다 다양한 식물이 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하천 둑에 자라는 식물들 중 일부는 외국에서 들어와 번성을 누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전부터 우리와 같이 삶을 이어온 것들이다. 쑥, 박주가리, 돌콩, 차풀, 민들레, 자귀풀, 사위질빵,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갈퀴나물, 인동, 환삼덩굴, 칡, 익모초….

그 중에서 가장 번성을 누리는 것은 환삼덩굴이라는 일년생풀인데, 손가락 모양을 닮은 잎을 가지고 있다. 한삼, 또는 율초라는 이름을 가진 환삼덩굴은 줄기나 잎 꼭지에 바늘 같은 털이 있어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데 사용한다. 몸에 쉽게 달라붙는 모양이 어머니가 아기의 손을 잡은듯하다고 하여, 아기를 잃은 어느 어머니가 죽어서 이 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담양습지의 하천 둑에 가면, 거칠면서도 반가운 어머니의 손처럼 다정한 환삼덩굴의 잎이 손처럼 펼치고 있어 마치 우리를 반기는 것 같이 보인다.


우리 자연의 식구 된 귀화식물들
귀화식물은 사람들의 늘어난 교류 활동으로 자생지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돼 우리 산야에서 자라게 된 것과 수입하여 재배하는 식물이 논밭을 벗어나 야생화된 것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강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시의 도로변이나 자연이 많이 훼손되어 기존의 자생 식물이 살기 어려운 지역에 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지역에 귀화식물이 나타나는 비율이 높으면 자연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귀화식물의 분포가 자연 파괴 정도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나타난 귀화식물은 약 18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확인되지 않은 종까지 합치면 200여 종이 되리라 추측된다. 담양습지에도 여러 종류의 귀화식물이 나타나는데, 달맞이꽃, 소루쟁이, 미국가막사리, 도꼬마리, 돼지풀, 미국자리공, 개망초, 망초, 나팔꽃, 서양민들레, 아카시나무 등이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다른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낼 때, 저 혼자 부끄러워 하다가 다른 꽃들이 잠든 시간인 밤에만 노란색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은 ‘달을 맞이하는 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 꽃말도 소원과 기다림이 되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달만을 사랑한 님프가 쥬피터의 노여움을 사 달맞이꽃이 되었고, 그래서 밤이 되면 사랑하는 달의 신 다이아나를 보면서 부끄럽게 꽃잎을 연다고 한다.

돼지풀은 잎이 쑥 모양과 닮아 쑥잎풀이라고도 하는데, 아메리카에서 들여왔다. 돼지는 먹지 못하는 것이 없는 잡식성 동물인데, 이 풀은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돼지만 먹을 수 있다고 돼지풀이라고 한다. 이것의 꽃가루는 몸에 열이 나게 하는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망초 종류는 전 세계에 250여 종이 있는데, 이중 우리나라에는 민망초, 개망초, 실망초, 망초, 주걱개망초 등이 있다. 망초란 이름은 밭에 이 식물들이 들어오면 농작물이 망하고 잘 자라지 못한다고 붙여졌다. 또는 이 식물이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해에 우리나라 전역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기에 나라가 망할 때 들어온 식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망초는 작은 꽃들이 꽃줄기에 많이 달린다고 잔꽃풀이라고 하고, 개망초는 꽃의 모양이 계란을 익힌 모양이라 어린이들은 보통 계란부침풀이라고 한다.

이처럼 달맞이꽃, 돼지풀, 망초, 개망초는 우리 자연의 식구가 되었기에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다. 단지 이들이 귀중한 자연 유산인 담양습지에 빠르게 잘 조화되고 융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과 자연 공존하는 공간으로
예로부터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하다. 대나무는 선비의 정신을 대표하는 식물이고, 계절에 관계없이 푸르고 꿋꿋하여 절개를 상징한다. 대나무의 푸른 기상은 죽어서도 악기에 남아 오랫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대나무가 있는 곳에 음악이 없다는 것은 ‘팥 없는 붕어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담양습지를 주변으로 한 영산강 유역에는 가사문학이 발달했다. 지금도 가사문학의 흔적은 소쇄원(瀟灑園),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식영정에 남아 있고, 이들을 감싸고 있는 자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담양습지 주변의 대나무밭에 들어가면 대나무의 흔들림이 노래와 율동이 되고, 습지를 흘려가는 물소리는 창이 된다.

자연습지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든 곳도 담양이다. 관방제림은 국가에서 홍수나 바람을 막기 위해 강둑에 만든 인공적인 숲인데, 인조 26년(1648)에 처음으로 조성되어 식재되기 시작하였다. 약 2㎞의 제방에 수령 200년 이상 된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다.
그 풍치가 아름답고 유명하여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특히 이 숲과 하천은 사람의 삶터로 그대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담양장터와 어울려진 관방제림은 그 자체가 생존의 공간이다.

그 외에도 담양에는 대나무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죽림원과 죽박물관이 있고, 수삼나무(메타세퀘이아)길과 담양호가 있어 자연미를 가슴 깊이 느끼게 해 준다. 대나무와 담양이 인연을 맺은 것은 예전부터이지만, 많은 대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홍수로 농경지가 침수되기 시작한 1960년대 무렵이다. 하천변의 농경지는 잦은 홍수로 경작이 어려웠고, 이것을 이겨내는 길은 대나무 밖에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비록 강둑이 만들어지고 대나무의 인기가 시들하면서 많은 대나무밭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하천 둑 가까이에는 많은 대나무들이 자생하여 담양습지와 더불어 학술 및 생태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자연유산이 되었다.

이처럼 담양습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 자체이다. 예전부터 담양습지와 더불어 살아온 이곳 사람들은 넓은 농토에서 풍부한 양식을, 넓게 펼쳐진 대나무밭에서 경제적인 이득과 여유로움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몸으로 노래를 불러 가사문학을 발전시켰다. 지금도 담양습지는 많은 생물들에게 쉼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귀화식물들까지도 받아들여 융화된 생태계를 만들고, 여기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심상을 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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