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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들도 발을 멈춘 동해의 자연늪

'바윗돌 깨져서 돌멩이, 돌멩이 부서져 모래알~' 잘고 잔 모래알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주(砂洲)와 사취(砂嘴)에 의해 바다로부터 떨어져 만들어진 호수를 석호(潟湖, lagoon)라고 한다. 동해의 푸른 용들이 꼬리치며 만든 석호에는 그곳만의 고유한 자연과 생물이, 또 자연의 풍류를 읊고 그 속에 파묻혀 산 아름다운 삶들이 있다.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바다와 만난 수 만년의 세월
사람이 살면서 발길이 생기고 발길이 많이 묻힌 곳에 큰 길이 생겼다. 문화와 생활을 아우르는 길은 동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군까지 이어져 7번 국도가 되었다. 바다와 어우러져 길게 뻗친 7번 국도는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있는 석호를 가득 안고 있다.

석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유산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빙하기에 바닷물이 크게 줄어들어 해수면이 크게 낮아진 곳에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동해안에는 큰 골짜기들이 생겨났다. 그 후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높이도 높아져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골짜기에 물이 차게 되면서 움푹 들어간 지형인 만(灣)을 만들었다.

먼 바다에서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올라왔다 다시 내려갈 때 한 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이런 파도의 힘으로 바닷가의 모래들이 계속 한쪽으로 밀려나 만의 입구에 모래로 이루어진 둑(사주, 사취)이 만들어지게 된다. 계속 모래가 쌓이면 둑은 커지게 되고, 결국은 만의 입구를 막아 버린다. 그래서 석호의 물은 담수의 물도 아니고 바닷물도 아닌 그 중간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강릉의 경포호와 풍호, 주문진의 향호, 양양군의 포매호와 순포, 속초의 청초호와 영랑호, 고성군의 광포호, 봉포호, 송지호, 화진포호, 북녘 산하의 감호, 삼일포, 시중호 등이 있다.

문학과 어울려진 석호의 백미는 경포호지만, 자연과 어울려진 풍광의 아름다움은 속초 북방에 분포하는 석호들에 있다. 금강산과 설악산이 품었던 지하수들이 뿜어 나와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진 여러 호수들. 이 호수들에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다. 예로부터 절경의 금수강산은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 하늘의 뜻을 이어받고 기개를 높이는 매개체로 이용되었다. 신라의 화랑들은 높은 산과 깊은 골에서 심신수련을 통하여 나라 사랑과 삶의 의미를 공부하였다. 그들이 즐겨 찾던 곳 중 하나가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백두대간의 대줄기인 태백준령이다.

신선이 머무는 아름다운 풍경
1만 2000개의 봉우리와 여러 계곡으로 이루어진 금강산에 아름다운 호수가 위치하니 그곳이 삼일포이다. 북녘의 산하에 놓여 있는 삼일포는 조선시대 정철이 노래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신라시대에 금강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의 네 화랑이 서라벌에서 열리는 무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처음 머문 곳이 삼일포인데,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3일 동안 놀다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이 이곳에 머문 흔적은 호수 가운데 위치한 정자의 이름인 사선정과 가까이에 위치한 해금강 총석정에 위치한 육각으로 된 네 기둥의 이름인 사선봉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삼일포는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백두산의 삼지연, 통천의 시중호와 함께 북측의 3대 호수에 속한다.

삼일포를 뒤로 하고 남으로 내려오면 구선봉 아래에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의 무대가 된 감호가 나타난다. 멀리 거진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구선봉이 보이고, 그 아래에 보이는 작은 호수가 감호이다. 남측에서는 떠나버린 선녀를 기다리는 나무꾼의 심정으로 남방한계선과 휴전선 사이의 버려진 경작지에 자연습지를 복원하고 있다. 남측의 가장 북방에 위치한 석호는 화진포인데, 둘레 16㎞의 대부분에 해당화가 자라고 있어 말 그대로 꽃의 호수이다. 남측의 석호 중 가장 규모가 큰 화진포는 중평천과 월안천이 호수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이루고 있는데, 호수 주변에는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넓게 펼쳐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에 많은 별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화진포를 거쳐 해안을 따라 내려오면 죽왕면에 송지호가 위치하고 있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개발되고 있는 송지호는 맑은 물과 소나무숲 및 산봉우리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호수로 재첩이 잡히고 있어 여름철에 재첩잡이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호수 중간까지 만들어진 목도를 통해 송지호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성군에는 봉포호와 광포호가 위치하고 있는데, 봉포호는 대학을 설립하면서 대부분이 사라지고 일부가 대학의 진입로 주변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담수화되었다.

속초 시내에는 청초호와 영랑호가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청초호는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는 유일한 석호로 작은 배들이 드나드는 내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전국의 항만 중 오염도 1위를 차지하였던 청초호는 강원관광엑스포를 열면서 호수의 1/3이 매립되어 사라져 고니들의 보금자리인 갈대숲이 사라졌지만 하수 처리 시설이 설치되면서 수질은 좋아진 상태이다.

영랑호는 속초시 장천동, 금호동, 영랑동 일대에 있는 호수로 둘레가 8㎞에 달한다. 삼일포에 머물던 네 국선이 이곳을 지나는 중 영랑이 이 호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도 잊고 이곳에 머물면서 고기를 잡고, 뱃놀이를 하면서 풍류에 취해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영랑호가 되었다고 한다.

영랑호 주변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호안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드라이브, 도보여행, 자전거하이킹을 할 수 있으며 도심지 속의 작은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습지대는 없지만 그런대로 자연의 운치를 느낄 수 있고, 그 운치를 더하는 속초팔경의 하나인 범바위가 있다. 주변에 콘도미니엄과 유원지가 조성되어 경관이 많이 파괴되었지만,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영랑호의 전경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범바위는 바위의 모양이 범 형상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속초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바위로 알려져 있다. 해질 무렵 하구 쪽에서 영랑호를 바라보면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어울려진 낙조는 이곳이 선경(仙境)임을 알게 해 준다.

바닷가 식물들의 수줍은 유혹
시냇물과 바닷물 및 육상이 만나 만들어진 석호에는 다양한 환경이 나타나 여러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기에 담수에 사는 잉어, 향어, 메기, 붕어, 가물치와 바닷물에 사는 연어, 황어, 은어, 학공치, 숭어, 도미가 함께 살고 있다. 또 이들을 먹이로 하여 살아가는 철새들이 찾아 겨울에는 특별히 백조의 호수가 된다. 몸이 희어 백조로 일컬어지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 흑고니, 큰고니가 다수 찾고 있다.

석호에 나타나는 식물의 종류도 다양한데, 육상식물,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 바닷가식물들이 어울려져 살아가고 있다. 육상식물로는 소나무가 가장 많이 자라고,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에는 갈대, 물억새, 달뿌리풀, 부들, 질경이택사, 솔방울고랭이, 순채, 매자기, 송이고랭이, 세모고랭이, 창포, 큰고랭이, 부채붓꽃, 노랑꽃창포, 부처꽃, 마름, 이삭물수세미, 말즘, 민나자스말, 개발나물, 눈양지꽃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부채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가면서 일부 분포지가 나타나는 희귀한 붓꽃으로 5~7월에 꽃이 청자색으로 피며 꽃잎이 다른 붓꽃류에 비해 넓다. 우리나라에서 특정야생식물로 지정된 희귀종이며, 북측에서도 부채붓꽃 분포지인 함경남도 부전군 백암리에 있는 부채붓꽃밭을 천연기념물 제30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눈양지꽃은 우리나라 동해 바닷가에만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5~8월에 노란색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매달린다.

이곳에 나타나는 바닷가 식물에는 갈대, 청비녀골풀, 수송나물, 해당화, 갯완두, 갯메꽃, 갯방풍, 순비기나무, 좀보리사초, 쇠보리, 해란초, 지채, 갯씀바귀 등이 있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작은 나무로 바닷가 모래땅이나 산기슭에서 높이 1.5m까지 자라며, 뿌리에서 많은 줄기가 나와 큰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꽃은 홍색으로 5개의 꽃잎이 지름 6~7㎝ 정도로 줄기 끝에서 피며, 열매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순비기나무는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 자라는 상록 관목으로 줄기는 눕거나 비스듬히 자라면서 전체에 회색빛이 나는 흰색의 잔털이 퍼져 있다. 꽃은 진한 자주색이고 이삭 모양으로 모여 나며, 열매는 약용으로 잎과 가지는 목욕용 향료로 이용된다. 특히 순비기나무는 해변을 망토 모양으로 덮는 역할을 하여 해변을 이루는 모래를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갯방풍은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굵은 황색의 뿌리가 모래 속에 깊게 들어가며 높이는 20㎝ 내외로 자라고 꽃은 6~8월에 줄기 끝에 펼쳐진 우산 모양으로 뭉쳐난다. 전체에 흰털이 가득 나고,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해란초는 여러해살이풀로 7~8월에 꽃이 피며 꽃대에 연한 황색 꽃이 달리며, 열매는 둥글고 씨에는 두꺼운 날개가 달려 있다. 주로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고 꽃이 난초와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해란초라고 한다.

해당화 피는 꽃의 호수, 화진포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한때 유행하였던 이씨스터즈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처럼 화진포는 희망과 아름다움이 흘려 넘치는 낙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호인 화진포를 둘러보는 것은 석호에 살고 있는 생물과 석호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화진포는 소금의 농도가 낮아 수면이 잘 얼지 않고,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물과 넓은 갈대밭 및 주변에 농경지가 분포하고 있다. 쉴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먹이가 풍부하여 철새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진포의 대부분은 도로와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자연성을 많이 잃었지만, 도로변마다 해당화를 심어 꽃의 호수라는 이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습지대가 형성되어 다양한 석호 생물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화포리 장평 부락과 잣골 사이에 개설된 일주도로이다. 이곳의 습지대에서 갈대, 해당화, 쉽사리, 부채붓꽃, 흰여뀌, 눈양지꽃, 벌노랑이, 개발나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일주도로에는 조용한 곳을 찾는 철새들도 많이 날아오고, 사람의 왕래도 적은 곳이다.

다시 이 길을 돌아 나와 송림 사이에 위치한 이기붕과 김일성 별장을 찾아가 보자.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화진포해수욕장의 모습은 더욱더 우리 가슴을 풀어헤치게 한다. 해수욕장에는 많은 바닷가식물들이 살고 있는데, 갯방풍, 좀보리사초, 쇠보리, 수송나물, 해란초, 갯메꽃, 갯씀바귀 등이 있다. 다시 차량을 이동하여 화진포교 위에서 이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고, 그 주변에 있는 이승만대통령의 별장도 가보자. 화진포와 해수욕장을 굽어보는 위치에 해양박물관이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바다에 사는 어류, 조개류, 갑각류의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가 지켜야 할 민족의 보물
보름달이 휘영청 쏟아지는 밤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두레박을 타고 내려오는 석호. 가끔씩 화를 내는 바다와 높은 산이 만나 날씨의 변덕이 심한 이곳에 예전부터 사람들이 살아 왔다. 석호에 기대어 먹을 것을 얻고, 동해의 구름과 안개를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에게 석호는 삶의 터전이자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선경의 세계였다.

사람의 힘으로 쉽게 만들 수 없기에 그 값어치가 뛰어난 이곳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첫째, 많은 생물들이 석호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석호에 살고 있는 생물은 석호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석호는 보호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최대의 휴양지인 동해안은 산과 바다가 어울러져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있다. 이 낙원에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만든 석호는 더 아름다운 운치를 더하여 준다. 셋째, 새들이 날고 있는 석호를 보면서 아름다운 심성을 싹 틔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따뜻한 마음을 글로서 전달하는 석호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동해안에 있는 남과 북의 석호들이 만나는 날, 민족의 혼과 웅지가 다시 한 번 떨쳐지는 날이 되리라. 이처럼, 바다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늪인 석호는 낙원이면서 희망의 땅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이처럼 귀중한 땅인 석호가 사라지고 있다. 선조들이 지켜 물려준 석호, 우리도 우리 후손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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