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 (월)

  • 구름많음동두천 27.7℃
  • 흐림강릉 29.4℃
  • 구름조금서울 29.1℃
  • 구름조금대전 30.2℃
  • 맑음대구 32.3℃
  • 연무울산 29.4℃
  • 맑음광주 31.6℃
  • 구름조금부산 26.6℃
  • 구름조금고창 32.1℃
  • 맑음제주 29.6℃
  • 흐림강화 26.9℃
  • 구름많음보은 28.2℃
  • 구름조금금산 30.3℃
  • 구름많음강진군 30.8℃
  • 구름조금경주시 32.9℃
  • 구름조금거제 28.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봄을 꿈꾸는 민주지산의 생명들 / 김재일

민주지산은 추풍령과 덕유산 사이에 자리잡은 충북 영동의 지붕이다. 삼도(충북, 전북, 경북)가 만나는 위치에 있어서 '두루[周] 굽어보는[岷] 산'이라고 했다. 해발이 1242미터나 되지만, 민주지산에서 석기봉에 이르는 능선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부드러운 육산(흙산)이다. 그래서 다른 산들에 비해 생태계가 튼실한편이다.

이번 기행은 겨울의 긴 잠에서 봄꿈을 꾸고 있는 민주지산 물한리 산간마을을 찾아나선다.

 옛날 영동땅에 효자가 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는 보름을 내리울며 지새더니 2월 초하루 어머니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갔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구하게 죽은 효자의 원혼은 바람신[風神]이 되어 해마다 2월 초하루면 꽃샘바람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영동할미 전설이 깃든 민주지산은 추풍령과 덕유산 사이에 자리잡은 충북 영동의 지붕이다. 삼도(충북, 전북, 경북)가 만나는 위치에 있어서 '두루[周] 굽어보는[岷] 산'이라고 했다.

고산준봉에 금강의 발원지
 해발이 1242미터나 되지만, 민주지산에서 석기봉에 이르는 능선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부드러운 육산(흙산)이다. 다른 산들에 비해 생태계가 튼실한 편이다.
 이번 기행은 겨울의 긴 잠에서 봄꿈을 꾸고 있는 민주지산 물한리 산간마을을 찾아나선다. 오는 2월 4일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봄은 이미 땅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황간을 돌아 상촌에 이르면 한천이 민주지산 물한계곡으로부터 내려온다. 상촌 아래쪽으로는 초강천이라고 부른다. 금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물한계곡은 상촌에서 삼도봉까지 20킬로미터 가까이 거슬러올라간다. 봄눈이 아직 쌓였는데도 계곡에는 제법 수량이 많다. 한천을 따라 난 길을 달리다보면 차창 밖 멀리 삼도봉(1176m)-석기봉(1200m)-민주지산(1242m)-각호산(1204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펼쳐진다. 모두들  하얗게 눈을 이고 있다. 2월이면 물한계곡 아래쪽 양지부터 눈이 녹기 시작한다. 따사한 햇살에 얼굴을 씻고 서서히 버들가지도 움트기 시작한다.
 물한계곡은 옛부터 물이 맑고 차서 한천계곡이라고 불렀다. 고산준봉들이 빙 둘러 있어서 계곡에 수량이 비교적 많다. 보가 막힌 곳은 호수처럼 넓은 곳도 있다. 거기 청둥오리와 쇠오리들이 얼음물 속에 모여있다. 오리류들은 발에 신경이 없어
서 얼음물 속에서도 발이 시린 줄을 모른다. 쇠오리는 글자 그대로 덩치가 작아서 저네들끼리 저만큼 떨어져서 모여있다. 먹이는 식물의 열매, 작은 연체동물, 수초, 무척추동물 등을 즐겨먹는다. 지나가는 버스 소리에 원앙 한 쌍이 소스라치게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마을 원앙은 모심기철이면 올챙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개울논으로 몰려들어 곧잘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어린 모의 잎을 볼썽사납게 뜯어놓는다. [PAGE BREAK]건강한 숲·튼실한 생태계 간직
 길을 따라 들어가면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좁고 긴 계곡 좌우로 발달해있고,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당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당나무는 키보다 덩치가 좋다. 당나무의 덩치가 좋은 것은 주위에 경쟁수가 없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도 여러 나무들과 함께 있으면 덩치보다 키가 커진다. 당나무는 마을의 우주수(宇宙樹)로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문화의 상징이다. 당나무는 나무나 숲을 물질로만 보지 않았다는 우리 조상의 수목관(樹木觀)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당나무가 서 있는 마을은 웬지 여유가 있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마을 들머리부터 아름드리 호두나무들이 병정들처럼 사열해 있다.
 이곳 특산품은 알이 고르고 튼실한 호두와 달고 빛깔 좋은 곶감이다. 호두가 익을 때면 마을사람들은 청설모와 전쟁을 벌인다. 청설모는 식물은 물론 버섯 종류와 새 알까지 먹는 잡식성이다. 이곳 청설모는 특히 호두를 즐겨 먹는다. 앞발가락이 길어서 호두를 까먹기 좋게 되어 있다. 겨울에는 귀 끝에 붓처럼 생긴 붓털이 생긴다. 먹이를 바위 구멍이나 땅 속에 저장해두고 먹는 습성이 있다. 청설모와 사촌인 하늘다람쥐도 가을이면 호두를 훔쳐먹기 위해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다
 버스 종점인 물한리에 내려 10분 거리에 황룡사가 있다. 대개는 황룡사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굳이 등산객들을 헐레벌떡 따라갈 필요는 없다. 물한계곡에서 가장 긴 삼도봉 골짜기 주변을 살펴보고, 내려와서는 마을 뒷산 주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알맞다.
 민주지산 일대는 일제시대와 1950년대 숯 생산을 위한 남벌로 숲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회복된 상태이다. 숲은 수종이 다양할수록 건강하다. 숲이 건강해야 조류와 야생동물들이 튼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키 큰 나무 아래로 조릿대들이 등에 눈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 조릿대는 전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키 작은 대나무이다. 그걸 잘라서 복조리를 만든다고 해서 조릿대라는 이름을 붙였다.[PAGE BREAK]  삿갓을 만든다고 한자로는 '입죽(笠竹)'이라고도 하지만, 시인들은 즐겨 '산죽(山竹)'이라는 이름을 쓴다. 조릿대는 여러해살이식물로 분류하지만, 수명은 5년이다. 다른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일생을 통해 딱 한 번 꽃을 피우고는 죽는다.
 계곡의 물푸레나무들도 봄꿈을 꾸고 있다.‘겨울내내 쉬고 있던 농기구들이 하품을 하고 / 아버지는 먼 산에서 해온 물푸레나무 자루를 다듬어 / 건너마을에 쟁기를 벼르러 간다 / 아버지는 조율사처럼 / 호미자루며 도끼자루 괭이자루를 다시 갈아 끼운다 / 농기구들은 아버지의 건반이 되어 사계가 시작된다'
 이은옥의 <漁盛田의 봄>에서 말한 물푸레나무처럼, 이 나무는 목질이 단단하여 도끼자루나 기타 여러 가지 농기구로 많이 만들어 썼다고 한다.
 민주지산에는 43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따금 눈에 띄는 솔개, 밤사냥을 잘 하는 올빼미, 떼를 지어 다니는 까치와 까마귀… 그리고, 딱새·딱따구리·어치·굴뚝새·할미새 등등이 모두 민주지산의 새 가족들이다.
 새들은 해당지역의 생태계의 건강상태를 가장 상징적이고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종이다. 새들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야생동물들도 살아갈 수 없다. 이곳에 솔개와 새매 종류가 살고 있다는 것은 생태계 피라미드의 구조가 아직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고비 한 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나선다. 산새들을 관찰하는 요령 가운데 하나는 관찰 대상인 새가 나무 타기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동고비는 딱따구리처럼 나무 줄기에 달라붙어 오르내리는 기술이 뛰어나다.
 서커스 재주꾼들처럼 나무줄기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는 재주꾼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서 친근하다.
 잎 떨어진 낙엽송 위에 붉은배 새매의 빈 집이 외롭다. 주로 작은 새들과 들쥐·개구리를 사냥하는 붉은배 새매는 크기가 30센티 안팎이며, 가슴이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다. 진달래가 필 때쯤 남쪽에서 날아왔다가 단풍이 지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름철새다.

유명한 멧돼지 사냥터… 지금은 수렵 금지
 민주지산은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인근에 대도시들도 없어서 백주대간 여러 산 가운데서 비교적 야생동물이 가장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산 가운데 하나이다. 낙엽진 다음의 겨울 숲속에는 온갖 동물들의 길이 드러난다. 시골사람들은 숲속에나 있는 동물들의 길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족제비 길인지, 토끼 길인지를 안다. 눈이 내리면 말할 것도 없다. 일명 산토끼로 불리는 멧토끼는 겨울철에 싸리와 칡넝쿨을 먹고 자란다. 여름털은 짧고 거칠지만, 겨울털은 길고 부드럽다. 지금은 수렵이 일체 금지되어 있지만, 한때 이곳에서도 철사줄로 덫을 놓아서 잡았
다. 토끼는 옛부터 산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겨울철 단백질 공급원이었다.[PAGE BREAK]  이따금 고라니들이 과수원 묵밭으로 내려온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멀찌감치 일하고 있는 논둑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놈도 있다. 족제비와 토끼가 사투를 벌인 눈밭을 비껴 노루 한 마리가 지난 밤에 계곡을 건너간 자국도 있다. 이곳은 멧돼지가 유난히 많다. 여러해 전만 해도 엽사들이 들어와 멧돼지 사냥을 하곤 했다. 요즘은 야생조수보호 정책 때문에 마을사람들도 멧돼지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천적이 없는 멧돼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마을 뒷산까지 내려와 애써 키운 농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한다. 멧돼지는 암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수컷을 거느리는 흔치 않은 모계사회를 이루는 동물이다. 겨울에 짝짓기해서 5월에 10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다. 이따금 마을 사람들이 새끼를 주워 와서 사육하기도 한다. 멧돼지를 보려면 바람이 없고 햇살이 잘 드는 높은 산 양지쪽을 찾아야 한다.
 민주지산의 야생동물의 주민등록표를 보면, 족제비·너구리·오소리·삵 등등의 육식동물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강한 적응력과 풍부한 먹이로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식육류 가운데 가장 작은 족제비는 다리와 꼬리가 짧고 주둥이는 뾰족하다. 겨울철에 암갈색 털로 바뀌는 족제비는 진달래가 필 때쯤이면 발정을 해서 다섯 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다. 마을에까지 내려와 닭을 습격하는 고약한 놈이다. 밤이면 산간마을은 그대로가 야생동물원이 된다. 깊은 겨울밤이면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온 삵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삵은 얼룩무늬 고양이 모습이지만, 덩치가 훨씬 크고 사납다. 삵은 고양이과 육식동물로, 무리를 짓지 않고 단독생활을 한다. 원래는 야행성이지만, 이곳에서는 낮에도 돌아다니며 토끼 등을 사냥한다.
 삵은 아직까지 전국 전역에 걸쳐 많은 개체수가 살고 있나, 제주도와 대마도의 삵은 거의 멸종 상태이다. 특히 대마도에서는 멸종 위기의 삵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과 정성을 쏟고 있다. 삵 박물관을 짓는가 하면, 버스마다 삵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달고, 가게마다 삵의 캐릭터를 팔고 있다. 늑대와 여우는 환경부에서 고시한 '멸종 위기종'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목격되었다고 한다. 또,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표범이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시라소니라고도 말한다. 마을사람이 산에서 표범이 먹다 남은 노루를 가져다 구워먹었는데, 표범이 밤중에 그것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와 설쳐대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고 산에서 만난 한 주민이 신나게 들려주는데, 믿어야 할 지 믿지 말아야 할 지…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